소설리스트

리얼판타지아-144화 (144/169)

DeJaVu   리얼판타지아 [208 회]  2003-07-29 조회/추천 : 2864 / 51   글자 크기 8 9 10 11 12

카오스

“개새끼! 그런게 아냐! 병신아!”

브랜은 팔로 사이토를 거칠게 밀치며 소리쳤다. 역시나 힘에서는 브랜을 당해낼 수 없는지 사이토는 뒤로 엉덩방아를 찧고는 그대로 탄력을 이용해 몸을 일으켜 새웠다.

“그럼 뭐야! 새꺄!”

상당히 격분했는지 사이토는 가차 없이 욕을 퍼부으며 브랜을 몰아붙였다. 머리를 긁적이는 브랜... 말을 짧게 줄인다는 게 그만 오해를 산 듯 하다. 그와 함께 브랜의 말에 인상을 찡그리며 그 둘을 바라보던  스티브옹과 밀레나는 사이토가 전에 없을 정도로 광분하며 욕이 섞인 말로 브랜을 다그치자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둘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솔직히 한국인들의 다혈질 근성에 스티브옹은 쫄았다는게 정답이었다.

“병신... 내가 그런 미친 짓을 할 거 같냐? 내가 말한 건 하드웨어를 건드린다는 게 아니라 게임 안에서 그걸 조작한다는 거야. 부작용 따위는 없는 거라구.”

브랜에 말에 그제야 공격자세를 푸는 사이토... 브랜의 말을 듣고 보니 화가 조금씩 누그러든다. 아직 의구심이 완전히 풀린 것은 아니지만 생각해보니 자신이 너무 성급했던 듯 하다.

“미안하다.”

“쳇...”

혀를 차고는 침낭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브랜이었다.

“후우...”

속으로 한번 정도 의심하거나 다시 되물었어야 했는데 너무 성급하게 브랜에게 폭력을 휘두른 듯한 마음에 속이 무거워졌다.  무릇 친구라면 언제 어디서나 믿어야 하는 것이거늘 한편으로는 오해로 점철된 주먹 한방에 완벽하게 삐져버린  브랜이 의아스럽기도 했지만 저렇게 화를 내는 이유도 다 그렇고 그런 맥락이려니 하는 마음에 사이토는 말  없이 침낭 안으로 들어갔다.

“저... 밀레나?”

걱정스런 눈초리로 사이토와 브랜을 번갈아 쳐다보는 밀레나, 사이토는 그런 그녀를 조용히 불렀다.

“미안하지만... 브랜녀석 기분 좀 풀어주겠니.”

“오빠는 괜찮아요?”

“나야..뭐.. 괜찮지. 쩝... 그럼 나 먼저 잘게.”

침낭 안으로 웅크려 들어가는 사이토, 한숨을 내 쉰 밀레나는 왠지 쪼잔하다고 느껴지는 브랜의 등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조용히 그 쪽으로 걸어갔다. 한쪽 손에 솜망치를 든 채로...

“역시 관리자 책임이야. 냠...”

다음날 아침 사이토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자신에게 악수를 청하는 브랜으로 인해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브랜의 손과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는 사이토... 잠시 후 브랜의 뜻을 알아들은 사이토는 만면에 웃음을 띠며 브랜의 손을 굳게 잡았다.

“오해해서 정말 미안하다! 녀석아!”

“그래. 자식아!”

왠지 이를 가는 듯한 브랜, 이유를 알 길 없는 사이토는 그냥 아무 뜻 없으려니 하는 생각에 브랜과 손을 굳게 잡고 연신 흔들어댔다. 사실 그가 무었을 알겠는가... 게임상의 수면은 일종의 현실감을 위한 장치의 하나일 뿐, 중간에 깨어날 일은 외부로부터의 안전지대에 대한 공격뿐이었다. 그런 이유로 어젯밤 밀레나가 벌인 만행을 절대 알 수 없는 사이토... 게임의 특성상 상처도 남지 않는다는 데서 완전범죄였다.

“출발 할까?”

“네~ 오빠.”

밀레나가 활기차게 대답한다. 뒤따라 말에 오르는 브랜과 스티브... 준비가 끝나자 사이토는 전면에 뻗은 길을 응시하며 힘차게 박차를 가했다.

“출발!”

“물건은...”

“분실하였습니다.”

여느 회사의 한 곳과 같은 사무실의 한켠이었다. 벽에 걸린 시계는 일상적으로 돌고 있었고 딱딱한 플라스틱제의 아이보리색 사무용 책상은 사무실안의 삭막한 분위기만 더 할 뿐이었다.

“탐지 가능한가?”

조용히 침묵을 지키던 상사로 보이는 이의 한마디... 책상에 앉아 심각한 표정으로 담배를 연신 빨아대는 그의 얼굴에는 피곤함과 짜증이 덧씌워져 있었다.

“일단 미국측과 연계하여 최대한 찾고는 있습니다만, 현재로써는 당시 그 장소에 있었던 유저들을 중심으로 탐문수색과 함께 추적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그의 실수는 아니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의 소관이었던 일이었음으로 상사에게 이런 보고를 해야 하는 그의 심기는 매우 불편했다.

“후우...”

상사로 보이는 이는 깊은 한숨을 들이키며 옆쪽에 놓인 은색의 기계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제 4-2 비공개 라인 개방.... 정현문씨...회의실로 빨리 올라와요.”

잠시 후 일상적인 푸른색 와이셔츠를 입은 한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신중히 문의 잠김을 확인하는 모습... 뒤돌아서서 걸어오는 그 눈빛이 너무나도 매서운 20대 후반의 평범한 셀러리맨의 모습...

“둘은 업무 중에 가끔 만난 적이 있겠지?”

“그렇습니다.”

눈빛에서 밀렸으리라. 보고하던 이는 정현문의 눈빛을 피하며 대답했다. 정현문은 게임 내에서 사용하는 모든 불법프로그램을 만드는 프로그래머이다. 그들의 칼을 만들고 방패를 만들고(물론 대장장이가 아니다) 모든 것들이 그 한사람의 손에서 만들어진다. 그 수준은 최고급... 아니 대한민국에서 비공식적으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스페셜리스트였다. 그리고 그는 리얼 판타지아에 침입하여 그녀의 잔재를 찾아 모든 조각을 맞춰 되살려낸 이였다.

“무슨 일이십니까?”

정현문의 사무적인 물음...

“자네가 만든 그 프로그램 키를 입수하던 중 문제가 발생했다.”

“그런...가요.”

난감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는 현문, 이전에도 회 내에서 다시 만들 수 없냐는 요청이 몇 번 들어왔지만,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지닌 이라도 그것은 불가였다. 아니, 혹시나 자신이 뇌를 빼았겨 그것을 토해낼까 두려워 자기 자신도 풀지 못할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만든 프로그램이었다. 그렇기에 그 프로그램을 시동시킬 수 있는 그 물건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그것을 다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알고 있네. 우리 회 내의 다른 프로그래머들에게도 비밀리에 문의해 봤지만 모두

고개를 흔들더군.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자네가 맡고 있는 그녀를 이번 수색 작업에 좀 더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거야. 솔직히 그녀의 게임 안에서의 능력은 거의 신급 아닌가?”

“사용이 아닙니다.”

현문의 제동에 상사는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부탁입니다.”

“알았네.”

고개를 끄덕인다. 자신의 직속부하라면 그의 행동을 나무랄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진짜 신분은 자신보다 훨씬 높았다. 단순히 회사 안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

“일단 부탁이야 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할지 안할지는 저도 장담 못합니다.”

의례적인 듯 목례를 한 현문은 더 이상 볼일이 없다는 듯 사무실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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