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JaVu 리얼판타지아 [214 회] 2003-08-10 조회/추천 : 2827 / 31 글자 크기 8 9 10 11 12
카오스
“이잉... 아까워.”
밀레나가 단상 쪽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듯 투정을 부린다. 단상 위에서 드워프 커플이 받고 있는 그 물건, 커플용으로 제작되었다는 수영복이라는데, 둘의 몸에는 절대 안 맞을 듯 보인다. 그러나 운영자가 마술을 부리듯 수영복을 스윽 문지르자 그 커플 수영복은 드워프용으로 바뀌어 두 드워프들에게 전달되었다.
“우으,아까운 건 둘째치고 글쎄다. 나라면 안 입겠다.”
더 이상 록산느라는 드워프여성을 바라보는 것이 고역인 듯 사이토는 고개를 돌렸다.
“훗...”
어느 교회에서 보았던 구절이 생각난다. “눈을 돌리니 천국이더라.” 사이토는 밀레나에게 손짓을 했다.
“이리와~ 우리 애기~”
“아잉~”
밀레나가 부끄럽다는 듯이 비실비실 다가온다. 푸른색 비키니 수영복이 너무나도 섹시한 밀레나였다. 게다가 밀레나는 의외로 나올 곳은 나오고 들어갈 곳은 들어간 다이너마이트보디, 수영복 차림으로 보니 감회가 새로워 질 정도였다. 게다가 더 행복한 것은 밀레나의 현재 몸매가 현실의 몸매와 같다는 것, 축복이었다.
“브랜이랑 스티스씨는?”
해변 이벤트가 있다면 사이토를 잡아 채던 브랜과 스티브가 이번에도 종적을 감췄다. 그들을 찾는 듯 고개를 휘휘 돌리는 사이토, 밀레나는 낮은 한숨과 함께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이런 곳에 왔으니 둘이 가만히 있겠어요? 또 여자 꼬시러 갔겠죠.”
메시지를 보내려던 사이토는 밀레나의 말에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고 보니 몇 칠전부터 여자친구를 만들어 보겠다고 둘이 의기투합하여 돌아다니고는 있지만, 왠지 그 둘이 한 쌍이 되어 놀고 있는 듯 보인다. 브랜은 그렇다 치더라도 고령의 스티브씨까지 그 커플 만들기에 동참했다는 데서 머릿속 아련히 종말의 경종이 메아리치는 듯하지만, 어쩌겠는가. 노망끼의 전주곡인 것을...
“우리가 자극이 좀 심했나?”
부인할 수 없다. 그 동안 밀레나와 있을 때 항상 둘은 항상 닭살커플의 면모를 유감없이 둘에게 선보였다. 현실에서의 브랜, 즉 혜인이 짝사랑 하고 있는 것은 사이토의 누나인 하린이었다. 그러나 게임 안에서의 브랜은 거의 난봉꾼 수준... 물론 들어주는 여자가 없으니 스토커라고 해야겠지만, 한편으로 보기에는 그 대상이 하나에 한정되지 않은 ‘여자’라는 개체에 포괄적으로 적용이 되니 그렇다고 보기도 뭐했다.
“오빠! 뽀뽀..”
“응...”
사랑을 확인하듯 짧지만 깊은 키스를 나눈 둘은 곧 팔짱을 끼고 해변을 거닐었다. 중간... 방향을 바꾸는 사이토, 그의 시야를 어지럽히고 지나가는 록산느라는 드워프 여성이 증오스럽기만 하다.
“정말 욕 나오는군.”
“그...그러게요.”
이번에 걸렸던 커플 수영복의 옵션은 매력+10 이었다. 한편으로는 엄청난 효능의 아이템... +10의 매력이라면 지능이 있는 몬스터들 중 1/3 정도는 모두 헬렐레 하며 타겟을 다른 곳으로 돌리리라. 물론 사냥하는 곳에 가서 비키니를 자랑할 그런 여자는 별로 없겠지만, 일단은 꽤나 주목받을 아이템이었다. 생각해 보라... 리얼 판타지아에서는 매력 포인트가 높으면 정말로 매력적인 기운을 주위로 발산한다. 아무리 못생긴 이라도... 일단 호감과 함께 눈길을 끌게 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 대상이 엄청난 근육질의 드워프 여성이라는 것과 그 보기 싫은 근육질이 자꾸만 눈길을 끈다는 것을...
“다른 곳으로 가자.”
“으..으응..”
둘은 서둘러 그들을 피해 걷기 시작했다. 반수 이상 대회장을 빠져나가는 인파들... 그들도 눈이 괴로운 가 보다.
“오빠 잠깐만요...”
사이토와 함께 해변을 빠져나와 인근 산책로를 걷던 밀레나가 사이토를 멈춰 서게 했다.
“저 온도 적용 수치 좀 바꿀게요. 너무 덥네요.”
“그래.”
수치를 조종하는 듯 초점 없는 눈빛으로 바뀌는 밀레나... 사이토는 밀레나가 수치를 조정하는 동안 주변을 둘러보았다. 몇 몇 개의 NPC상점들이 보인다. 인공지능의 NPC들은 간 혹 찾아오는 유저들에게 한결 같은 웃음을 보이며 이것저것 권하고 있다.
“가...가이... 아...아니구나.”
한 수영복 가게 점원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 해졌던 사이토는 그 NPC가 뒤를 돌아보자 실망한 듯 말이 잦아들었다. 한 동안 보이지 않아서였을까? 아무 말 없이 그 NPC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사이토는 독백조로 나지막이 읊조렸다
“난 최악의 남자인가?”
옆에 빤히 여자친구를 두고서도 다른 여자를 떠올리고 있다. 설령 그것이 AI라 해도, 그가 그녀에게 느끼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기에 사이토는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 치솟을 뿐이었다. 그는 그런 남자였다.
“오빠 뭐해요?”
수치 조정이 다 끝난 듯, 밀레나가 채근했다.
“응... 가자.”
사이토가 앞장서 걷자 밀레나는 고개를 갸웃 하며 사이토의 뒤를 따랐다. 그런 카마디스 블루의 해변 풍경이 햇살 속에 녹아드는 어느 정오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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