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JaVu 리얼판타지아 [215 회] 2003-08-12 조회/추천 : 317 / 4 글자 크기 8 9 10 11 12
카오스
“쉣, 이것들은 또 뭐야.”
다짜고짜 달려드는 시뻘건 분칠 꼬맹이... 살인자들이었다. 물론 지금이야 한 녀석만이 홀로 남아 먼저 간 친구들에 대한 회한에 빠져 있었지만, 어쩌겠는가... 덤벼들은 죄요... 날아간 것은 팔인 것을...
“아으...아으..”
사이토의 앞에 한 녀석이 무릎을 꿇고 있다. 날아간 팔이 꽤나 아쉬우리라. 팔이 날아갔다는 것은 시각적 효과로도 상당히 기분 나쁜 느낌일 것이다. 사이토는 팔을 잡고 끙끙거리는 살인자의 목을 걷어찼다. 중얼거리던 입에서 신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주문을 외우고 있었던 듯, 주위로 몰려들며 사이토의 식스센스를 건드리던 느낌들이 사라진다.
“뭐냐.”
“칫, 재수 없게 걸렸군.”
게임 안에서의 살인자들의 유형은 대략 세 가지였다. 첫째는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한 인간들...그래도 이런류의 인간들은 좀 가리면서 살인한다. 두 번째로는 무차별적으로 살인하는 녀석들... 이런 녀석들을 보통 계급도 빵빵하고, 절대 죽더라도 아쉬운 소리는 안한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로는 지금 사이토의 앞에 있는 것 같은 녀석들... 아이템을 노리고 초보자 또는 중급자들을 노리는 녀석들이었다. 일정한 장소에 몸을 숨기고 마법이나 화살로 기습하는 녀석들... 현재 사이토의 앞에 있는 녀석의 실수라면 마법사들의 천적 2순위로 꼽히는 도둑클래스를... 게다가 재수 없게 사이토를 먹이로 삼은데 있었다.
“혹시 부근에 다른 팀이 있냐?”
“있다! 개자식아!”
“없나보군. 그리고 니가 우리 아버지 봤냐?! 어디서 개야!”
다시 한번 마법사의 턱주가리를 날린 사이토는 입맛을 쓰게 다시며 메시지창을 열었다. 다행히 목적지의 근접하기는 했지만, 갈 수록 유저들도 적어지고, 몬스터만 우글거린다.
“대체 이딴 곳에 길드타워를 짓고 사는 녀석들이 어디 있어!”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꽤 외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출발 전 멀린에게 그쪽에 연락할 수 있는 아이디를 받아 두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한참을 헤맸을 것이다.
[레드플레그 길드의 운반자. 사이토입니다.]
사이토는 엎드려 있는 마법사의 등을 발로 고정시켰다. 그에게는 아직 확인할 것이 남아 있었다. 잠시 후 메시지 창으로 메마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거의 도착하셨습니까? 저는 데스스타 길드의 마이어스라고 합니다.]
살인자 길드 치고는 꽤 예의를 차린 목소리에 사이토는 작게 웃음을 지었다. 역시나 알려진 길드인 만큼 그 목소리에는 자신감과 정중함이 묻어있다.
[혹시, 온두레즈 지역 남쪽 샛길에 애기들 몇 명 심어 두셨는지요.]
[글쎄요. 오늘은 쉬는 날이라서요. 혹시 이름을 알 수는 없을까요? 혹시나 푼돈 벌겠다고 나간 친구들이 있을지 모르는데.]
낮은 한숨을 내 쉰 사이토는 허리춤의 헬리오스를 뽑아 들었다. 단도가 움직일 때마다 따르는 잔영은 확실히 협박에 좋았다.
“이름이 뭐냐?”
“Go fuck yourself!”
무의식 적으로 나머지 한 팔을 그어버린 사이토... 비명을 질러대는 마법사의 귀에 대고 다시 한번 물었다.
“나.. 영어 못해. 번역기 켜고 이름 말해 주겠니?”
“아인즈다. 네 자..커억!”
아인즈라는 마법사의 욕이 통역기를 통해 들려오기 직전 사이토는 두꺼운 강철 장식이 달린 부츠로 입을 막았다.
[아인즈라고 합니다만...]
[흠, 우리 쪽 얘는 아닌 듯싶군요. 죄송합니다. 요즘 들어 근방 떨거지들이 저희를 사칭하고 꽤 돌아다니고 있거든요. 청소를 해야 하는데 귀찮아서요.]
장화 끝에 걸려오는 부러진 이빨의 감촉이 상큼하게 다가온다. 누군가 보면 잔인하다 욕하겠지만, 이런 것이 게임의 묘미 아니겠는가... 괜히 성인용 게임이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조금 후에 찾아뵙지요. 그럼 이만...]
메신저를 끊은 사이토는 양팔이 끊겨 그의 부츠을 입에 물고 버둥거리는 마법사의 등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의외로 생명력이 질겼다. 특정한 아이템이라도 소유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조금 전 죽었던 두 살인자들에게는 특별하달만한 아이템이 떨어지지 않았다. 마법사인 만큼 아이템도 진귀하고 화려하리라는 생각에 사이토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왠지 이 게임을 하면서 성격이 독살스러워 지는 사이토였다.
“저....기”
한 여자의 손이 푸른 하늘을 가리켰다. 일제히 돌아가는 42쌍의 눈동자, 의혹이 일지만 여자가 누군지 알기에 모두 침묵을 고수했다.
“오카리나, 좀 더 자세한 위치를 가르쳐 줘.”
역시나 그녀에게 재대로 말 걸 수 있는 이는 현문뿐이었다. 구원의 손길을 보내는 42쌍의 눈길들... 현문은 그들을 애써 무시하며 오카리나에게 간절한 눈길을 보냈다. 그녀는 하기 싫은 건 아무리 졸라대도 들어주지 않는다. 거기에 재멋대로인 면도 상당한 여자... 겉으로는 얌전해 보이는 청순 여인이지만 실상은 면도날이었다. 아주 날카로운 면도날...
“저......어기.”
장난을 치는 듯 하늘을 가리키던 손가락은 조금 땅으로 내려왔다.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는 42쌍의 눈길들.. 이제 불쌍하기까지 하다.
“데려다 드리지요.”
한숨을 내쉬며 오카리나가 말했다. 환호하는 성기사들... 데이모스를 몇 칠 동안 이 잡듯 뒤지는 일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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