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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판타지아-152화 (152/169)

DeJaVu   리얼판타지아 [216 회]  2003-08-14 조회/추천 : 1087 / 18   글자 크기 8 9 10 11 12

카오스

“데스스타 길드에 잘 오셨습니다.”

처음에야 거대한 식물군들 사이에 자리잡은 작은 초막으로 안내되었던 사이토였다. 하지만 그 곳을 통과 한 후 발견 한 것은 환상같이 펼쳐지는 데스스타길드의 길드타워라는 거대한 저택이었다.

“마법입니까?”

“응용이지요.”

뜻 모를 말로 얼버무리는 마이어스라는 마법사... 살인자의 문양을 지닌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마법사였다.

“자신감인가...”

그의 뒤를 따르는 사이토는 마이어스의 등을 쳐다보며 혼잣말했다. 살인자의 문양을 지닌 이라면 응당 일반 유저들을 경계해야 한다. 언제 뒤를 칠지 모르는 법... 그런데 이 마이어스라는 마법사는 사이토에게 뒤를 훤히 내주고 있었다.

“그렇게 경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네?”

마이어스의 뜬금없는 한마디에 어리둥절한 사이토, 그러나 곧 그 말의 의미를 깨달은 사이토는 너털웃음으로 대답했다.

“그렇게 보였습니까?”

“아아...조금요.”

사이토에게는 약간의 식은땀을 흘리게 하는 날카로운 한마디였다. 지금 그의 위치는 마이어스의 한걸음 뒤 왼편에서 걷고 있었다. 무의식중에 걷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마이어스를 그의 간격 안에 두는 것이다. 정말 마법사가 맞나? 라는 궁금증이 일기는 했지만 그리 친하지 않는 이에게 자신의 클래스를 밝힌다는 것은 리얼판타지아의 금기... 사이토는 묵묵히 그의 뒤를 따랐다.

“자...도착했습니다. 길드 마스터께서는 응접실에서 기다리십니다.”

저녁의 문 앞에 도착한 마이어스는 예의 친절한 웃음을 지으며 사이토에게 고개를 숙였다.

마이어스를 따라 응접실에 도착한 사이토는 그의 성격에 맞지 않게 완벽하게 긴장해 버렸다.

“젠장, 완전 용담호혈이군.”

응접실로 안내 되면서 만난 몇몇 길드원들 때문이리라. 완벽하게 정돈 된 느낌의 길드원들이었다. 물론 식스센스에 스며 들어오는 기운들도 긴장시키는 요인 중 하나였지만, 진짜 이유는 그들 중 몇몇의 느낌 때문이었다. 가장 첫 번째 만난... 그를 스치듯이 지나간 이... 그 짧은 시간에 그는 사이토의 위아래를 훑어보며 지나갔다.  그리고 중간에 만났던 거의 18살밖에 되어 보이지 않았던 엘프 남자...그는 사이토를 쳐다보지는 않았지만, 그가 스치는 순간 식스센스에 섬뜩한 기분이 스며 들어왔다.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단순한 운반인인 제가 길드마스터님을 만나야 한다니 좀 이상하군요.”

“글쎄요. 저희 쪽에서 보기에는 그리 단순해 보이지는 않는데요.”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눈웃음을 치며 사이토에게 대답하는 마이어스... 어째 들킨 것 같은 기분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길드 마스터께서 들어오십니다.”

마이어가 쇼파에서 일어서며 말하자 사이토는 따라 일어서서 문 쪽을 쳐다보았다. 아무리 일개 작은 길드의 길드 마스터라 할지라도 길드 마스터라 하는 것은 특별한 존재였다.

끼익...

거실의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곱슬의 머리를 아무렇게나 늘어뜨린 초췌한 인상의 남자, 허리춤에 매달린 두 자루의 숏소드는 바닥에 끌릴 정도로 밑으로 쳐져 있었고 가슴에는 두 마리의 용이 새겨진 팬던트가 걸린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남자가 문을 닫고 쇼파 쪽으로 뚜벅 뚜벅 걸어오자 사이토는 사람들이 더 이상 들어오지 않는 것에 궁금증을 느꼈지만 그 이유는 곧 몸으로 알게 되었다. 그에게는 호위병 따위가 필요하지 않았다.

“쳇, 오늘 여러 번 놀라는군.”

놀랍게도 그에게서는 그 어떤 느낌도 받을 수 없다. 정말 완벽하게 존재감이 지워진 듯한 존재... 사이토의 앞까지 걸어왔건만, 사이토는 미동조차 하기 힘들었다. 예전에 만났던 루피아에게는 잘 갈린 듯한 힘찬 살기가 느껴졌다면 이 인물에게서는 그 존재감 자체가 위협이었다.

“데스 스타 길드의 수장을 맡고 있는  아누비스라고 하오.”

내밀어진 손은 사이토가 본 그 어떤 PK보다도 더 뚜렷한 살인자의 문양을 지니고 있었다. 마주 악수를 하며 바라본 그의 눈은 초점이 없었다. 흡사 먼 곳을 응시하는 양...

“레드플레그의 운반인 자격으로 온 사이토라고 합니다.”

다행히 복잡한 확인절차 따위는 필요 없도록 멀린이 미리 손을 써 놓았다. 그러나 편안하게 물건을 받아 운반하기에는 길드마스터까지 만난 마당에 힘든 듯...

“멀린씨에게서는 말씀 많이 들었소.”

“멀린... 으득..”

아무래도 너무 많이 손을 써버린 듯 하다. 잠시 동안 멀린에 대한 차후 계획을 생각하며 이를 가는 사이토...

“하하.. 그렇습니까? 그런데 물건은...”

“...”

아누비스가 묘하게 그를 응시하자 사이토는 애써 눈을 피하며 마이어스를 쳐다보았다. 이런 상황은 정말 사절이었다.

“물건은 준비되었습니다.”

마이어스가 살짝 웃음 지으며 사이토의 물음에 대답해 주었다. 고개를 돌렸음에도 사이토를 빤히 쳐다보는 아누비스... 고역이었다. 마이어스는 그런 사이토의 고충을 이해한다는 듯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솔직히 아누비스의 눈빛을 그대로 받고 있기에는 뭔가 피부가 스멀거리는 느낌까지 들 정도였다. 게다가 예전이라면 오기로라도 쏘아봤겠지만, 아누비스의 눈빛은 그런 것과는 전혀 틀렸다. 살기가 아닌... 뭔가 동질감을 느낀다는 듯한 눈빛.갈구하는 눈빛. 게다가 그 흐릿한 눈빛은 정말 으스스할 지경이다.

“나가시죠.”

“예.”

마이어스의 말에 사이토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아누비스가 미동도 하지 않는 채 그대로 앉아있자 사이토는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뭔가 깊은 생각에 빠지신 듯 하군요.”

“그렇습니까?”

사이토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마이어스를 따라 나가자 응접실에는 아누비스 홀로 남았다. 초점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사이토가 앉았던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아누비스...

“그분이 아니었던가...”

처음으로 그의 눈빛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낮은 한숨... 그는 처음 그 이름을 들었을 때 깜짝 놀랐다. 마이어스에게 미스틱핸즈라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아는 한 사이토라는 아이디를 가진 이는 단 한명 뿐... 다시는 자신을 찾지 말라는 그와의 언약을 지킨 지 근 180년... 게임에서 절대 빠져나가지 못하는 그에게 있어서 게임 내에서의 180년은 정말 긴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가 자신에게 온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직접 대면한 사이토라는 인물은 그가 알던 이가 아니었다.

“설마, 캐릭터를 삭제하신 건가...”

아누비스는 무심결에 주먹을 꽉 쥐었다. 이대로 긍정할 수는 없었다. 좀 더 확인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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