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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판타지아-153화 (153/169)

DeJaVu   리얼판타지아 [217 회]  2003-08-14 조회/추천 : 235 / 5   글자 크기 8 9 10 11 12

카오스

“그런데, 이렇게 나와도 되는 겁니까?”

앞서 걷고 있는 마이어스 물었다. 길드 마스터를 응접실에 그냥 두고 나온 것이 왠지 궁금해지는 사이토였다.

“뭐가 말씀이십니까?”

“조금 전 길드 마스터를 무시한 듯한 것을 말하는 겁니다.”

사이토의 대답에 마이어스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대답했다. 정말 웃음이 많은 남자였다.

“아아... 자주 있는 일입니다. 솔직히 말해 그리 제정신이라고 할 수도 없는 분이니까요. 하하..”

“제정신이 아니라니요?”

황당한 마이어스의 대답, 자신의 길드마스터를 그렇게 부르다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조금 전 느낌만으로 봐서는 사이토와 동급... 아니 그 이상의 실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무서운 강자이다. 게다가 왠지 성격도 개차반일 것 같은 느낌, 그런 상급자를 제정신이 아니라고 부른다. 납득이 가지 않는다.

“아아... 뭐 마스터께서 사이토씨에 대해서는 초특급으로 대우해 드리라고 했으니 말씀드려도 상관없겠지요. 혹시 ‘배회하는 자’에 대해 아십니까?”

“예, 조금은 알고 있습니다.”

배회하는 자... 학과수업에서 배운 내용이다. 리얼판타지아사가 만든 최악의 게임요금 패키지, 사전 신청을 받아 식물인간...혹은 그에 준하는 신체상의 상해를 입었을 시 뇌를 그대로 게임내로 접속시켜 주는 요금 패키지의 일종이다.

“저희 실바누스님은 그 배회하는 자들 중 한분 이십니다.”

“네?”

놀란 사이토는 그가 들은 것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반문했다.

그가 알기로 그 패키지가 사라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그의 말대로 따진다면 아누비스는 최대 180년의 생애를 겪어온 인간이라는 뜻이었다. 물론 게임시간으로 180년이라는 것이지만, 일단 뇌에 통째로 접속되어 버리는 그 황당한 패키지를 생각하면

실바누스는 근 180년을 게임 안에서 버틴 것이다.

“제가... 저 분을 처음 만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이었습니다. 당시에 저는 겨우 초보 딱지를 뗀 애송이... 그리고 실바누스님은 그분과 같은 처지이신 두 분의

‘배회하는 자’들과 목적 없는 방황을 하고 계셨지요. 그리고 우연찮은 기회로 그분의 도움을 받게 되어 함께 여행하게 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그분들은 게임 안에서 근 200년을 살아오시는 분들이었기에, 당시 그분들은 정말 모든 것이 지쳐 계셨습니다. 뭐, 후에 들은 바로는 배회하는 자분들 중 2/3 이상은 이미 접속을 영원히 끊어버리셨다고 하더군요. 아무튼 저는 그 이후로 실바누스님과 여행을 다니다가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뭐 지금의 꼴이라고나 할까요? 그런 이유로 실바누스님은 평소에 좀 제정신이 아니실 때가 많습니다. 뭐, 저희도 이제 어느 정도 적응이 됐고요. 하하... 이거 이거 쓸데없는 것까지 주저리주저리 떠들어 버렸군요.”

“그렇게 된 거군요.”

말로만 듣던 배회하는 자를 눈으로 보게 된 사이토는 새삼스레 뒤를 돌아 방금 걸어 나온 응접실을 쳐다보았다. 근 200년간을 게임 안에서 버텨온 인간, 미치지 않는 다는 것이 이상한 것이다.

혹자들은 그런 그들의 삶을 동경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짓된 삶속에 살고 있는 그들이다. 수많은 유저들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다고 하지만 그들은 외톨이 이방인일 뿐이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사이토는 어느새 마이어스와 거대한 돔에 도착해 있었다. 사이토의 양해를 구한 뒤 돔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마이어스,

“운반할 것을 넘겨주려는 건가.”

일반적으로 살인자라 하더라도 은행의 이용은 자유로웠다. 그 만큼 게임 상에서  PK를 배제하지 않는 다는 것도 되지만 문제는 경비병들이었다. 그렇기에 살인자 길드들은 길드가 데이모스와 같이 치안이 되지 않는 도시에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창고를 지니고 있었다.

“저 안에는 뭐가 들어 있을까...”

솔직히 말해 사이토에게 저 돔을 침투하라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일이었다. 버그 아이템인 이세계의 후드... 그러나 침투한 후의 일은 별로 감당하고 싶지 않는 그였기에 애써 궁금증을 접으며 주변을 감상했다. 멀리 자신이 이곳으로 들어왔던 입구가 보인다. 거대한 나무들 사이에서 본 초막과 똑같은 모양의 초막... 그 외에는 모든 것이 똑같았다. 그가 초막을 지나 들어오지 않았다면 깜빡 속을 정도로 기묘한 장치...

“이런 시스템은 들어 본적도 없는데...”

처음에야 그냥 그러려니 하는 마음에 넘겼지만, 다시 차분히 생각해보니 리얼판타지아에는 그런 특수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까 마이어스의 태도로 보아서는 쉽사리 대답해 주기를 바라기는 요원한 듯 보인다.

“좀 걸리는군.”

대략 20분 정도 지나 사이토가 슬슬 지루해 할 무렵, 마이어스는 돔에서 나왔다. 들어갈 때는 혼자였으나 나올 때는 세 명의 인원, 아마, 원래부터 안에 배치되어 있었던 듯 하다.

“하하, 죄송합니다. 요즘 미스틱핸즈라는 이가 길드창고를 제집 드나들 듯 한다 하여 통과 절차가 까다로워서 말이죠. 하하하.”

“아...예”

마치 들으라는 듯이 대 놓고 웃어재끼는 마이어스... 이미 어느 정도 눈치 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는 사이토는 머리만 긁적일 수밖에 없었다.

“아이템의 수령인은 알고 계십니까?”

뒤에 시립해 있는 두 길드원에게 아이템을 받아 들며 마이어스가 물었다.

“멀린에 말로는 이곳에 도착하면 담당자가 가르쳐 준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렇습니까?”

메시지를 보내는 듯 아무 말 없는 마이어스... 그도 수령인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듯 보인다.

“아... 수령인은 아리유내의 좌표 110,87 ... 285번지에 살고 있는 케인이라는 사람입니다.”

“예에..”

어디선가 들어본 듯 친근한 아이디이지만 사이토는 별 것 아니려니 하고 생각하며 그 정보를 머리에 기억시켰다.

“여기 있습니다.”

마이어스가 내미는 긴 검 한 자루와 짧은 마법지팡이 두개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상자 하나... 마이어스에게 아이템을 받아 하나하나 차곡차곡 배낭에 집어넣던 사이토는 마지막으로 건네는 검은 상자를 손에 들고는 마이어스에게 물었다.

“이건 뭡니까?”

“아... 그건 저희도 모릅니다. 단지 사가시는 분이 이걸 선택했을 뿐이지요. 케인씨는 처음 보는 물건에 흥미가 많으시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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