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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판타지아-157화 (157/169)

DeJaVu   리얼판타지아 [221 회]  2003-08-20 조회/추천 : 1296 / 25   글자 크기 8 9 10 11 12

과거 와 현재의 만남

“전원 경계하라”

대열을 정비하던 성기사들은 리더의 말에 따라 둥근 부채의 형태로 초막을 향해 접근해 갔다. 대열의 중심에는 현문과 리더... 특별히 도둑이 필요 없는 그들이었지만, 조심해야 할 것은 조심해야 했다.

“그냥 집입니다.”

가장 선두에서 경계를 하던 성기사가 허탈한 목소리로 리더에게 잘못 짚었음을 알렸다.

“어떻게 된 겁니까?”

리더는 현문에게 따졌다. 솔직히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던 오카리나였다. 사전에 현문이라던가 상부에서 그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고는 하지만, 그녀는 자신들에게 너무 비협조적이었다. 게다가 요즘같이 금쪽같은 시간에 그녀의 말을 쫓아 이곳까지 왔건만, 헛다리를 짚은 모양이다.

“그녀가 맞다면 맞는 겁니다.”

현문의 눈은 이미 차가운 빛을 뿌리며 초막의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 초막은 주변 풍경과 잘 어울리는 듯 보이지만 그가 보기에는 어설픈 점이  많았다. 먼저 초막의 벽과 주변의 조화가 틀렸다. 또한 위치상으로 보았을 때 절대 게임으로는 부적절한 곳에 위치한 초막이다. 숲 속 공터를 떡 하니 차지하고 있는 초막, 퀘스트가 아니라면 언벨런스이다.

“이건 조건 충족형 게이트입니다.”

“예?”

“한마디로 일정한 조건이 충족되면 게이트가 작동하도록 만들어진 듯 합니다. 뭐... 그 조건이라 하면 마법을 써야 한다던가, 주변 기물에 스위치가 달렸거나 하겠지만...”

현문은 초막의 안쪽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흠, 뭐 나오는 녀석들을 기다리는 방법도 있겠지만, 일단 빨리 들어가야 하겠군요. 준비해 주십시오.”

잠시 후 리더의 명령에 성기사들이 모두 준비를 맞추었다. 그들은 이 초막이 누구의 것인지 아직까지 모른다. 재수 없으면 운영자들의 쉼터인 시크릿타워일 수도 있겠지만 만약 운영자 타워라도 그들은 그것을 탈취해야 한다.

[오카리나, 근처에 있어?]

현문은 메시지를 사용해 오카리나를 불렀다. 그도 이런 게이트에 대한 준비는 해 오지 않았다. 어차피 그녀의 성격상 근처 숲을 배회하고 있을 것이다.주변에 사는 몬스터들이랑 담화나 나누면서...

[뭐죠?]

[하하, 시치미 떼지 말고, 이 게이트 좀 열어줘.]

잠시 침묵하던 오카리나는 현문이 다시 한번 메시지를 보내려 할 때 즈음 답을 해 주었다.

[열렸어요.]

이제 그들에겐 거칠 것이 없었다. 무급 운영자까지 엿 먹인 마당에 그 어떤 것이 그들을 가로막을 것인가...

“출발!”

잔뜩 긴장한 리더가 먼저 무기를 뽑아들고 초막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뒤 따르는 성기사들... 그들의 눈에는 서서히 살기가 돌기 시작했다.

“미안하오.”

“...”

막상 얼굴을 대 놓고 보니 화내기가 힘들다. 얼굴에 미안한 기운을 잔뜩 품고 사이토의 앞에서 고개를 못 드는 아누비스도 이유 중 하나다. 게다가 사이토 차례가 끝나면 자신들도 할 일이 있다는 듯 옆에서 씩씩거리고 있는 엘프...

“XX를 뽑아버리겠어!”

엽기적인 말투로 사이토를 얼어붙게 만드는 엘프여성이었다. 처음 남성인 줄 알았던 그녀는 하플링인 발데아라의 소개로 여성인 것을 알게 되었다. 어차피 엘프들은 남자들 여자든 미형으로 생겨먹어 구분하기 힘들다. 게다가 그 말투가 여자들이 쓰기에 적합한 말투는 절대 아니다. “XX를 뽑... 니X XXXX"같은 말투는 남자들이 주로 애용하는 욕들이다.

“저스틴씨... 저는 괜찮으니, 이만 화 푸시죠.”

“아닙니다. 내 이 자식을 그냥!”

이 자식이라고 하지만 하는 짓으로 보아 진짜 자식은 아닌 듯 싶다. 하플링인 발데아라에게 눈짓을 한 사이토는 조심스럽게 응접실을 나왔다.

“실례지만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뭐... 그 분의 손자시라니 실례될 것도 없습니다.”

사이토는 앞장서는 발데아라를 따라 길드건물 옆을 둘러싼 긴 언덕으로 올라갔다. 높다란 곳으로 올라오니 사이토는 길드의 모습을 대충이나마 알 수 있었다. 처음 이 곳에 들어왔던 초막을 정면으로 길드 건물은 간단한 방어벽을 형성하고 있었다. 흡사 그 초막에서 쳐 들어오는 적들을 방어하려는 듯 길드 쪽으로 올수록 지대가 높아진다. 일반인들은 코웃음 치겠지만, 다른 길드들의 방어형태가 단순히 높은 담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것은 꽤 파격적인 방어 조건이었다. 게다가 이곳은 마법으로 이어진 공간.. 초막 쪽으로 습격하는 이들만을 방어하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이곳의 위치가 어떻게 됩니까?”

“하하... 눈치 채셨군요.”

사이토의 질문에 발데아라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사이토가 바라보는 쪽을 쳐다보았다. 멀리 푸른 대양이 보인다. 길드를 감싸고 있는 둥근 방어막... 땅으로 이어져 길드 전체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작은 섬과 같은 형태... 그러나 거대한 대양 한가운데에 있는 것 치고는 매우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카모프왕국의 북단의 북단의 북단 최북단이라고 할 수 있죠. 이 곳으로 올 수 있는 방법은 그 초막으로 위장한 게이트가 유일합니다.”

잠시간 얼이 빠진 사이토는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것은 상식에 위배된 곳이다. 처음으로 카모프 땅을 밟았다는 데에 대한 감회 따위는 없었다. 일게 살인자 길드에 이런 특혜를 주다니... 사이토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갈수록 궁금증이 많아지게 만드는군요.”

“그럴 겁니다.”

발데아라는 언덕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곳에 저희 길드가 들어선 것은 리얼 판타지아가 첫 서비스를 시작하고 얼마 안 된 시기였습니다. 사실 이곳은 좀 특이한 곳이죠. 하하...”

“특이한 곳이요?”

사이토가 반문했다.

“예, 이곳은 원래 최고급 퀘스트 중 하나의 조각의 일부입니다. 길드 뒤편을 보면 이 섬에 있는 보스몬스터의 거대한 동공이 있지요. 아무튼 이곳을 찾아낸 길드 창시자분들은 아주 재미있는 생각을 하시게 됩니다.”

“설마, 이런 곳에 길드 건물을...”

발데아라의 말을 종합해 보면 이런 것이었다. 리얼 판타지아는 건물을 짓는 것이 매우 자유스럽다. 땅만 된다면 당장 드래곤 앞에다가도 집을 지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몬스터들은 건물을 파괴할 수 있다. 게다가 쉼터가 되어야 할 곳에 몬스터들이 어슬렁 거린다면 그 또한 기분 나쁠 것이다. 그러나 그 길드 창시자는 안정보다는 방어의 이점을 택했다.

“그 길드 창시자가 누군지 아십니까?”

“설마...”

발데아라는 향수에 젖은 눈으로 사이토를 바라보았다. 모습이 많이 바뀌기는 했지만 사이토에게는 그분의 향기가 묻어 있었다. 엄밀히 따지만 이 곳을 만든 것도 지금 사이토가 사용하는 캐릭터이다. 그것은 게임만이 느끼게 할 수 있는 서글픈 기분이었다.

“맞습니다. 이곳을 처음 만드신 분은 할아버지 되시는 분입니다. 재대로 말하면 데스스타의 초창기 길드 마스터시지요.”

잠시 말을 끊었던 발데아라는 자조적인 웃음을 사이토에게 보이며 말을 이었다.

“아누비스... 그 녀석은 처음 게임에 들어오고 거의 몇 년 동안을 폐인과 같이 살았지요. 그 녀석이 이곳에 들어온 이유는 교통사고였습니다. 오토바이를 좋아했다고 하더군요. 사고의 이유도 그것이었지요. 그들은 거의 죽음에 이르게 만든 사고를 겪은 이를 황량한 게임 안에 풀어놓았습니다. 후유증은 생각 못한 거지요.”

“그렇군요.”

그 후로 사이토는 발데아라와 저스틴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그래도 아누비스보다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저스틴은 불치병으로, 그리고 발데아라는 교통사고 후, 한 동안 식물인간처럼 지내가다 게임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방황하던 그들은 게임에 적응하지 못하였다.

“부탁이 있습니다.”

사뭇 심각한 어조로 발데아라가 사이토를 쳐다보았다.

“데스스타를 받아 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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