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리얼판타지아 [228 회]
날 짜 2003-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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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와 현재의 만남
늦은 오후... 형민이 사는 동네에 인접한 병원에는 응급차에 실려온 한 환자가 있었다. 원룸의 관리 프로그램의 의해 구출 받았다는 환자, 당시 최초 발견자인 관리인의 말에 의하면 게임 중 변을 당했다고 한다. 별다른 외상은 없었지만, 당시 환자는 기절한 상태로 눈과 귀, 그리고 코로 조금씩 피를 흘리고 있었고, 10분만 늦었어도 쇼크가 일어났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형민아!”
“오빠!!”
뒤 늦게 연락을 받고 달려온 혜인 혜미 남매가 형민의 침대 가에서 외쳤지만, 형민은 묵묵부답일 뿐이다.
“환자는 아직 위독합니다.”
의사가 급하게 말린다.
“형민이 녀석 상태가 어떤데요?!”
“현재로써는 뇌신경 계통에 충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정확한 결과는 검사 후에...”
혜인은 간호사의 제지로 인해 더 이상 묻지 못하고 응급실에서 쫓겨 나왔다. 마지막으로 닫히는 문틈으로 비친 형민의 얼굴은 창백 그 자체였다.
“열쇠 여기 있어요.”
오카리나가 검은 상자를 내밀었다. 그러나 현문은 상자 따위는 상관 없다는 듯 그녀를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리얼판타지아의 메인컴퓨터를 건드린 거지?”
“왜긴요... 어차피 당신의 상관들은 더 좋아하지 않나요? 제가 메인 컴퓨터을 잠식한 이상 당신들의 행동은 더 편해지실 텐데...”
시큰둥한 표정으로 상자를 더 내밀며 오카리나가 말했다.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는 현문, 물론 그의 상관들은 좋아할 것이다. 그러나 오카리나가 메인컴퓨터를 장악했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오카리나... 너도 잘 알고 있겠지? 내가 널 되살려 내기 위해 어떤 방법을 썼는지... 솔직히 너무 기적적이었던 일이라서 그 일은 한 나 자신도 잘 몰라. 하지만 이건 확실하지. 넌 그 가이아라는 메인 컴퓨터가 아니야. 아무리 그녀의 뒤에서 조종한다지만, 네 신체는 일반 유저와 같아. 너에게는 죽음의 룰이 그대로 적응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넌 그 가이아라는 메인 컴퓨터를 감당하지 못해! 붕괴되고 싶은 거냐?!"
처음 차분히 말하던 현문은 감정을 조절 못했는지 목소리가 격하게 올라갔다. 어색한 공간... 오카리나는 침묵했다.
“후훗, 여자에게는 비밀이 많은 법이랍니다. 너무 알려고 하지 말아요.
오카리나가 더 이상 말해주지 않을 듯 미소만 짓고 있자 현문은 한숨을 내쉬며 상자를 받아 들었다.
"그럼 난 카모프 왕국으로 가겠다.“
“그래요.”
오카리나가 사라지자 현문은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생각에 빠진 듯 진중한 표정의 현문, 밖에서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준비가 끝났습니다.”
“알겠습니다.”
현문은 거실을 빠져 나와 집 밖으로 나갔다. 그동안 그들이 머물고 있었던 곳은 일반 유저들이 흔히 사용하는 옥상이 달린 평범한 방 다섯 개짜리 집이었다. 근처 성곽도시인 데이모스와 꽤나 동떨어진 곳에 위치한 집이다.
“기분 더럽군.”
이쪽으로 온지 얼마 안 된 현문 바닥에 밟히는 모래의 감촉이 영 적응이 되지 않는다. 날카로운 눈으로 집을 한번 둘러본 현문은 그의 앞에 도열해 있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성기사들과 그동안 함께 일했던 이들이 모두 정렬해 있다.
“모두 필드 바깥으로 나가 주시기 바랍니다. 곧 폐쇄하겠습니다.”
그들이 그 동안 숨어 있던 은신처를 제공하고 보호하는 역할을 하던 남자가 그들을 향해 손짓했다. 그의 말에 따라 필드의 기준이 되는 울타리 바깥으로 모두 움직인다. 현문은 필드를 폐쇄하기 위해 준비하는 그에게 다가갔다. 어차피 그도 비슷한 일을 하는 이였다.
“현재 본사 관리부의 낌새는 어떻습니까?”
현문이 다가와 묻자 그는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가로젓는다.
“뭐... 워낙 저희 동지들이 많으니까, 그 전까지는 중간에 차단하거나 숨길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힘들 것 같습니다. 이상한 일들이 자꾸 일어나니 감사부쪽에서도 신경이 곤두선 것 같고요. 하하, 그래도 뭐 어떻게 잘 되겠지요. 감사부 쪽에도 저희 쪽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
너털웃음으로 대답을 마무리한 그가 다시 작업에 열중한다. 생각에 잠기는 현문... 자신의 손에 들린 상자를 한동안 뚫어지게 쳐다보던 그는 상자를 그의 품에 소중히 집어 넣었다.
현문과 이야기를 나누던 그는 집의 대문에 쭈그려 앉아 필드를 폐쇄하기 시작했다. 이 집은 보통의 일반유저들이 사용하는 집과 같았지만, 그 외부에는 게임상의 이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보이지 않는 장치를 해 놓았다.
“폐쇄 완료”
장치를 해제하고 집문서를 챙긴 그가 대열에 합류했다.
“모두 경계선으로 출발!”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 한 무리의 남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일단 고비는 넘겼습니다.”
의사에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혜인이다.
“머릿속에 미세한 뇌출혈이 있기는 했지만, 문제는 뇌신경이었습니다. 도대체 이 양반 게임을 몇 시간이나 한 겁니까? 검사 결과로는 거의 10일동안 쉬지않고 게임한 것 같군요."
질책 어린 의사의 말... 혜인은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었다.
혜미가 환자용 침대에 마련 된 의자에 앉아 걱정스러운 얼굴로 형민을 바라본다. 예전에 관리인에게 메신저 번호를 남긴 것이 다행이다.
“아무튼 이제 환자가 깨어나는 일만 남았습니다. 환자가 깨어나더라도 무리한 운동이나 자극은 삼가 주십시오. 아마 머리가 혼란스러울 겁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신과 치료가 필요할지 모르니... 음, 환자의 실제 보호자는 아직 도착하지 않으셨군요. 아무튼 도착하시는 대로 정신과 의사와의 상담을 의뢰해 주시도록 말해 주십시오.”
의사가 나가자 두 남매는 형민의 옆에 둘러앉았다.
“아저씨는 언제쯤 도착하신다냐?”
“으응, 아마 내일쯤...”
“쳇...”
낮게 혀를 찬 혜인은 형민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형민의 집은 특이하게도 가족간에 거의 소통이 없었다. 그의 누나가 있기는 하지만 가족들이 모두 각지로 뿔뿔이 흩어져 살기에 연락이 되었는지도 알 길이 없다.
작 가 DeJaV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