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얼판타지아-166화 (166/169)

제 목  리얼판타지아 [230 회]

날 짜  2003-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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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와 현재의 만남

“끄으...”

“개 쉑!”

희뿌연하게 비치는 공간을 인지하려 눈을 깜빡이던 형민은 느닷없이 그의 머리위로 날아드는 주먹에 황급히 고개를 옆으로 움직였다.

파앙!

푹신한 베개에 주먹이 박히는 소리가 맞을까... 흡사 샌드백에 펀치가 박히는 소리 같다. 등에 식은땀이 주르르 흐르는 것을 느끼던 형민은 곧 그 주먹의 주인에게 소리를 질렀다.

“미...미쳤냐! 어디서 주먹질이야! ”

“어쭈! 다 나았구나! 목소리 팔팔하구만!”

“꺄악! 거기 뭐하는 거에요!”

마침 지나가는 간호사가 달려들어 말린다. 아무리 우락부락한 인상의 혜인이라도 간호사가 옆에 달라붙어  낑낑대자 난감한 듯 얼굴을 붉히며 물러섰다. 역시 한번 쑥맥은 영원한 쑥맥이인 듯 당황한 기색이 역력...간호사가 나가고 서로 말없이 노려보며 씩씩거리기를 한참 그들의 침묵은 형민의 기침으로 인해 멈췄다.

“쿨럭... 컥... 야, 물 좀 내놔봐.”

“젠장...”

욕지거리를 하면서도 얌전히 정수기에서 물을 떠오는 혜인이었다.

“풍경을 봐서는 병원 같은데, 내가 왜 여기 있는 거냐?”

“ 미친놈, 이틀 밤낮을 잠 잔 주제에...”

“끙...이틀 밤낮이라..."

침대 옆에 비치된 탁자에는 선물로 놓고 갔는지 음료수와 과일 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한참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형민...

“누나 왔다갔냐?”

“그래, 요즘 바쁘다면서 미안하다고 그거 놓고 가더라.”

“그렇구나.”

그냥 모두 그렇게 사는 거지 하면서도 한 편으로 마음이 공허해진다. 바쁘게 살아가는 때이다. 혜인과 혜미네 가족은 다 함께 모여 살기에 그런 일이 없었지만, 형민의 가족들은 모두 제 각기 할일을 찾아 뿔뿔이 흩어져 지낸다. 서로간에 별다른 간섭 없이 그냥 가족이라는 명패만 달았을 뿐, 성인이 되고서부터 반 정도는 남남이었다.

“아버지는?”

“바빠서 못 오신단다.”

혜인은 애써 담담한 목소리로 답해 주었다. 지금 형민의 심정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혜인이다. 그가 그 일로 힘들어 하는 것을 몇 번 겪어 보았기에 알 수 있는 것, 혜미를 아프게 한 괘씸한 놈이라도 그들은 친구였다.

“근데 아까는 왜 주먹질이냐?”

“크흐...”

다시 열불이 솟아오르는지 솥뚜껑만한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는 혜인이다. 긴장하는 형민... 뭔가 잘못한게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감지한다.

“그러니까.. 그게..”

혜인의 설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그러냐? 내가 정말 그런 말을 했다구?”

“그래, 이 자식아!”

퉁명스러운 어조속에는 친구에 대한 원망이 섞여 있다. 그의 하나 밖에 없는 여동생이 울면서 뛰쳐나갔다. 아무리 오빠들을 껌으로 보는 왈가닥 동생이라도 그에게는 귀엽디 귀여운 여동생이다.

“그래. 그런일이 있었구나. 그런일이 있었어.”

차츰 목소리가 옅어져가며 형민은 고민에 빠져 들었다. 솔직히 자신이 그런말을 내 뱉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형민이다. 행여 자신의 무의식속에 가이아를 사랑한다던가 하는 감정이 있을까도 생각해 봤지만, 지금으로써는 그 자신의 감정도 복잡하기 이를데 없다. 게다가 머릿속에는 미약한 편두통이 계속 그를 괴롭히는 형편이다.

“후우... 생각 좀 해보자.”

“그러시던가...”

혜인을 집으로 돌려보낸 형민은 새벽이 되어 몰래 바깥으로 빠져 나왔다. 병원음식은 원채 체질에 맞지 않아 병원 매점에서 간식거리나 살까 하다가 지갑이 없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다리에 깁스는 언제 풀었는지 말끔히 벗겨져 있었다. 어차피 공복을 제외하고는 몸에 별다른 이상이 없었기에 별달리 제지하는 이도 나타나지 않았다.

“ 쳇...걸어가야 하나...”

다행히 병원은 예전에 다리 치료를 했던 그 병원이었다.

걸어서는 20분... 조깅삼아 뛰어가면 대략 10분이면 도착할 거리...

가랑비가 내린 듯 습하고 찬 밤공기가 몸을 엄습해 온다. 환자복 위에 걸친 셔츠가 좀 우습기는 하지만 한창 여름이니 하는 마음에 가볍게 입고 나온 것이 후회될 정도였다.

“우우... 이럴 줄 알았으면 옷 좀 더 가져오라고 할 것을...”

옷 가져오기 귀찮다며 자기가 입고 있던 셔츠를 벗어서 던져주던 혜인이 못내 미워지기 시작했다. 혜인의 대한 원망과 혜미와 가이아에 대한 복잡한 마음들로 인해 꿍얼꿍얼 거리며 길을 재촉하는 형민이다.

“목표물이 움직인다.”

그를 따르는 몇 개의 검은 그림자가 있었다.

작 가    DeJaV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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