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회]
카오스
“흡... 흐흡..”
갑자기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온다. 주위 사물이 일그러지며 땅바닥이 갑자기 키스하자며 형민에게 달려든다. 비틀거리며 주위로 잡을 것을 찾아 허우적대는 형민... 비틀거리는 형민에게로 두 명의 남자가 다가왔다.
“김형민씨, 맞습니까?”
“그... 그런 사람 몰라요.”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픈 와중에도 형민은 등골에 식은땀이 주르륵 하고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에게 다가온 이들과 싸우기에는 몸 상태가 말이 아니다. 형민은 점점 시야가 좁아져 오는 것을 느꼈다.
“아... 안돼!”
형민이 바닥으로 쓰러지려고 하자 두 사내는 황급히 그의 양 팔을 붙잡았다. 뿌리치려 팔을 흔드는 형민이지만, 붙잡힌 두 팔에는 힘이 없다.
“음, 등록돼 있는 사진과 일치합니다.”
형민의 오른팔을 잡은 약간 앳돼 보이는 남자가 형민의 얼굴을 유심히 관찰하며 말했다.
“얼른 옮기자구.”
반대편에서 형민을 부축한 이가 핸드메신저를 꺼내 들었다.
“그런데, 이렇게 불쑥 데려가도 됩니까?”
“그럼 여기서 이 사람이 깨어날 때 까지 기다릴 꺼냐?”
“아... 아뇨.”
잠시 후 형민의 앞으로 중형 승용차 한 대가 다가와 서자 남자들은 형민을 뒷좌석에 태운 채 그 곳을 출발했다.
“진우...그는 깨어났나?”
리얼 판타지아사 단지내에 있는 허름한 2층 구조 건물의 작고 낡은 회의실, 리얼판타지아사에서는 이 곳을 비밀회의실이라고 불린다. 게임 초창기 김미경과 그녀의 추종자 에인션트 올드 폐인들이 사용했다는 회의실, 이 곳은 워낙 지하에 만들어 진데다 그들 특유의 음습하고 어두운 곳을 좋아하는 취향으로 인하여 이 곳에 처음 들어오는 이는 무슨 어둠의 조직의 고문실로 착각하기도 한다.
예전 게임 투자자들을 데리고 사업 설명회를 했을 때 그들 중 절반은 분위기에 얼어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는 헛소문이 횡횡하는 그런 곳이었다. 주훈은 게임 제작자용 임시 숙소에 잠들어 있을 형민에 대해 형민을 업고 온 그의 직속 부하에게 물었다. 공식명함으로는 주훈의 직속 비서라 하지만, 주훈은 커피를 가장 잘 타는 이유로 아직까지 데리고 있는 착한 하급자이다.
“아직입니다. 그렇지만 실려 올 당시 실신을 해서 걱정 했는데 지금을 잠들어 있어서 다행입니다.”
“그래. 좀 더 지켜 봐 줘. 젠장... 누가 보면 납치 했다고 알겠어. 하하”
처음 잠에서 깨어난 형민은 온몸이 진땀에 젖어 있는 것을 느끼며 신음을 흘렸다.
“끌려온 건가?”
다행히 묶인 곳은 없다. 몸도 땀을 좀 흘린 것을 빼고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 어떤 수로 자신을 기절시킨 건지는 모르겠지만 병원에서 나오던 날 습격 받은 이들의 한패거리들에게 잡혀 온 것이라 판단한 형민은 일단 방안을 살폈다. 물론 형민이 정신을 잃은 이유는 오카리나의 정신공격에 대한 후유증이었다.
“젠장, 어둠의 자식들인가...”
그가 누워있던 이층 침대를 제외하고는 방안은 완전한 창고였다. 단 하나 뿐인 전등으로는 조명조차 너무 어둡고, 그 불빛에 따라 흔들리는 탁자 위에는 먼지가 뽀얗게 앉았다. 벽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다 낡은 포스터들이 덕지덕지 붙었지만, 무언지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낡아 있고, 바닥에는 빈 술병들만 차곡차곡 쌓여 있다.
“잡혀온 이상, 정당방위겠지.”
밤에 그를 습격한 그들의 행태로 보아 이들은 죽이는 것도 불사할 수 있는 이들이다. 한잠 푹 자고 일어나 마음이 진정되고 보니 어제 죽은 이들에 대해서도 정리가 된다. 그건 그가 죽인 것이 아니었다. 다른 무언가가 원격으로 그들을 죽인 것이다. 게다가 이들이 자신에게 살인죄를 뒤집어씌우려 했다면, 그 현장을 치울 이유가 없다. 결론은 이들은 밝혀지면 안 되는 이유가 있는 사람들...
“정당방위다. 정당방위...”
손목과 허리, 발목을 적당히 풀어준 형민은 주위에서 무기가 될 것을 찾기 위해 둘러보았다.
“그래, 이게 적당하군.”
바닥에 차곡차곡 쌓인 술병 중 하나를 찾아 조심스럽게 깬 형민은 병의 주둥이를 거꾸로 잡고 반대쪽으로 선 유리날을 바라보았다.
“젠장, 으스스 하구만.”
주훈에게 형민의 상세에 대해 보고한 진우는 형민의 상세를 살피고자 게임개발자용 임시 숙소로 향하는 복도를 걸었다. 2층의 허름한 건물에서 시작하여 지금의 유수한 게임 회사로 탈바꿈 했다 한다. 그런 이유로 신입사원들 이라면 한번씩 모두 거치는 그런 박물관 같은 용도의 건물이지만 이곳은 신입사원들에게 담력훈련의 일환밖에 되지 못하는 그런 곳이다. 지금이라도 저 멀리 보이는 허름한 문이 삐그덕 열리고 피에 젖은 손 하나가 꿈틀거리며 기어 나올 것 같은 기분... 당시 이 방법은 에인션트 올드 폐인들이 신입사원 놀릴 때 자주 애용하던 방법이다.
“어라, 내가 문을 열어두었던가?”
형민을 재워 두었던 임시숙소의 문이 열려 있다. 의아해 하는 진우...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간 그는 순간 그의 후두부를 강타하는 강렬한 충격에 바닥으로 쓰러졌다. 재대로 맞았는지 온 몸의 힘이 쭉 빠져 나간다. 흡사 실 끊어진 인형과 같은 느낌... 그의 등 위로 하나의 발이 떡 하니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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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
r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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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진 기억을 찾아서
몇 칠 동안 형민은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예전 오카리나의 정신공격에 대한 부작용의 대한 치료가 있었다. 그러나 치료는 끝났지만 그 이후 형민은 계속해서 꿈속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어떤 장면으로 인해 고생했다. 한 남자와 여자가 나오는 꿈, 남자는 전혀 생소한 얼굴이지만 여자는 매우 눈에 익다. 그녀는 바로 가이아, 그와 그녀의 대한 단편적인 장면들이 매일 밤 그의 꿈속에 나타났다.
“무엇일까?”
몇 칠 째 잠을 설치는 형민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가이아와 의문의 남자... 한숨이 나온다. 이제 형민은 애써 부인하고 싶지 않다. 가끔씩 아렷하게 느껴지는 심장의 아픔, 그녀가 보고 싶어진다.
이번 사건에 대한 회사 내부의 조사팀을 소개 받은 형민은 바로 그 다음날 집으로 가 몇 몇 옷가지를 부리나케 챙기고 집안의 모든 전원을 꺼버린 뒤 문을 잠갔다. 자신을 습격한 이들에 대해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 섣불리 행동하면 위험에 노출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형민의 마음속에 자꾸만 걸려오는 것은 바로 혜미였다.
“하아...”
혜미에게 찾아가고는 싶지만, 그녀를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는 않은 형민이다. 비록 핸드 메신저도 받지 않는 상황이지만, 나중을 기약하기로 했다.
“게임 안에서 만나면 되겠지.”
예전에 이미 혜인에게 대충 혜미에 대한 소식을 접했던 형민은 한숨을 내쉬며 메신저를 껐다. 혜미는 학교실습으로 인해 타 지역으로 갔다고 한다.
혜미와 처음으로 소원해진 기분... 어찌 되었건 그가 실수한 부분도 있었기에 기왕이면 오해가 없었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가이아에 대한 감정과 혜미에 대한 감정, 쉽사리 정리가 되지 않는다.
“아, 형민씨... 왔습니까?”
주훈이 소개시켜 주고 간 강진이라는 인물이었다. 몇 차례 통성명이 지난 뒤 그가 지난 번 게임 안에서 가이아에 대한 충고를 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회사 내 비공개특별수사팀의 리더가 되었다는 강진이 형민에게 다가왔다.
“이곳은 공기가 지독하군요.”
스며 들어오는 빛줄기에 비치는 먼지들을 보며 형민이 중얼거렸다.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총 2층으로 구성된 이 건물은 매우 특이한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총 3층으로 되어 있는 이 건물은 1층이 없는 2층부터 해서 3층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그 밑으로는 지하 1층이다. 그에 대해 강진이 형민에게 해준 설명으로는 환기를 위해 그런 독특한 양식으로 지어진 것이라 한다.
“오카리나라는 여자의 정체는 밝혀졌습니까?”
넓은 방으로 안내되던 형민이 앞서 걷던 강진에게 물었다.
“우습게도 정체 불명입니다. 모든 흔적이 지워져 있더군요. 그나마 형민씨의 말을 종합해 본 결과 저희는 그녀가 일반 유저가 아닌 특수한 사이버 생명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것도 리얼판타지아사와 아주 깊은 관계가 있는...”
“후우... 복잡해지는 군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형민이다. 그런 형민을 바라보는 강진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했다. 가이아에 대한 모든 책임을 총괄하는 것은 실상 그 자신이었다. 그런 그녀가 신변상에 어떤 문제가 생겼는지도 몰랐다. 약간의 어색함과 딱딱함... 그것을 단순하게 생각하고 그냥 무시했다.
“이제 사냥의 시작입니다.”
형민에게 들릴 듯 안 들릴 듯 조용히 읊조린 강진은 서둘러 3층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내부 조사 결과 리얼판타지아사 내에 외부세력들의 끄나풀이 있다는 조사 결과에 특수팀의 본부로 삼은 곳은 리얼판타지아사의 초창기 건물이었다. 그 건물의 가장위윗층에서는 지금 여러명의 남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간단한 셔츠 차림의 강진은 몇 몇의 연구원들을 형민에게 소개하며 방 안쪽에 마련 된 여러 기기들 앞으로 다가갔다. 방안은 이 전에 모니터실이었는 듯 여러 개의 의자들과 기기들이 즐비하다. 조금 전 자기소개에서 일명 ‘포획조’라고 소개한 연구원들이 각각 장비들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조사 결과, 그 오카리나라는 여자는 가이아... 즉 메인 시스템 AI의 감정 통제 장치를 이용한 것 같습니다.”
연구원들과 함께 몇 몇 컴퓨터 기기를 점검하며 강진이 말했다.
“형민군이 아실지 모르겠지만, 1급 AI의 경우 인간과 99프로 같은 감정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게임 시스템 자체가 워낙 수많은 카오스의 법칙을 따르기 때문에 1급 AI가 아닌 경우에는 그것들을 모두 처리하기 힘들죠. 그렇지만 그 1급 AI에도 문제가 있으니 그것은 격렬한 감정의 변화입니다.”
위이이잉...
방 전면의 거대한 모니터가 열리는 동시에 좌우로 몇 개의 스크린에 불이 들어왔다. 문이 열리며 몇 명의 남자들이 약 3미터 크기의 여러 개의 전선이 연결되어 있는 게임용 기기를 끌고 들어왔다. 몇 개의 전선을 컴퓨터에 연결한 강진은 형민에게 계속해서 설명했다.
“아직 1급 AI의 격렬한 감정적 변화에 의한 부작용을 해결하지는 못하였기에 저희도 다른 업체와 같은 편법을 사용하지요.”
한 남자가 형민에게 옷 곳곳에 점들이 찍힌 민망스런 푸른색 타이츠를 주었다. 강진이 입으라는 시늉을 하자 형민은 그 타이츠를 불만스러운 얼굴로 쳐다보며 강진에게 물었다.
“그 편법이란게 뭡니까?”
“예, 1급 AI가 격렬한 감정적 변화를 일으키기 전, 1급 AI를 2급 AI로 제한시키면서 AI의 본체
심층을 직접적으로 통제하는 거지요.
오카리나라는 그 여자는 그 부분을 노려 가이아의 심층에 침투한 듯 합니다. 후우, 정말 그 부분을 그렇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잡아내다니. 보통 그 순간은 1초의 몇 만분의 1인데 말입니다.“
형민은 연구원들의 안내를 받아 그 게임기기 위에 누웠다. 형민의 위로 거대한 반원통형의 뚜껑이 공중 1미터 정도에 설치되었다. 그 원통의 안쪽에는 수많은 붉은 판들이 붙어 있었다. 형민의 머리 위로 가상현실 게임을 할 때 쓰던 헬멧이 살며시 끼워졌다. 시야가 컴컴해지자 형민은 손가락 하나하나에 덮인 타이츠의 답답함에 주먹을 쥐었다 펴며 강진에게 물었다. 정말 마음에 안드는 옷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실 겁니까?”
“뭐, 어쩔 수 없이 저희도 같은 방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다행히 상대 쪽에서는 아직 우리를 감지하지 못하기에 다행입니다만, 가이아의 심층에 접근하는 방법은 이 방법 밖에 없습니다. 지금과 같은 상황으로는 가이아를 정지 시키지 않고 시스템의 권한을 저희 쪽으로 돌리는 방법은 최선은 이 방법밖에 없습니다.”
“서버 점검 같은 것으로 외부와 차단한 뒤 가이아를 치료하면 되지 않습니까...”
헬멧 안쪽에 붙은 세 개의 금속판이 그의 머리에 와 닿는 것이 느껴진다. 그와 함께 그의 옷 곳곳에 찍힌 점들이 차가워 졌다가 뜨거워 졌다가 한다. 형민의 말에 강진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스크린 앞에 마련 된 의자에 앉았다. 자신이라도 그 정도는 생각할 수 있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서버점검일 것이다. 그러나 그 해결책에는 상당히 큰 문제점이 도사리고 있다.
“과거에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지금의 가상현실 게임에서는 서버 점검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닙니다. 서버 점검은 곧 초기화라고나 할까요 그렇게 때문에 서버 점검의 상황을 방지하지 위해 그 수많은 운영자들이 존재하는 거지요. 뭐, 그 문제에 대해서는 상부에서 판단할 것이고...
말을 잠시 쉰 강진이 다시금 말을 이었다.
“아무튼 형민씨가 지금까지 가르쳐 주신 정보를 토대로 저희가 세운 계획은 그 오카리나라는 여자가 한 것과 아주 똑같습니다.”
어두운 시야 위로 작은 스크린이 떴다.
“형민씨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뒤에는 저희가 있으니, 너무 조급해 하지 마시고 천천히 진행시켜 주십시오. 형민씨도 아시다시피 우리는 지금 우리는 형민씨를 미끼로 오카리나를 잡아야 하는 형편입니다.”
스크린에 나타나는 것들을 모두 읽은 형민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엿같군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지금 형민씨의 캐릭터...일단 티가 나지 않는 선에서 저희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괴물을 만들어 봤습니다. 그리고 현재 사이토씨는 이 방 전체를 게임기기로 사용하고 계십니다. 능력치에 따른 부작용은 극소일 것입니다. 자! 카운트 시작!”
강진의 카운트 소리가 천천히 형민의 귓가에서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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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진 기억을 찾아서
“엿같군. 엿같아...”
사이토는 하얀 벽돌로 이루어진 작은방에서 장비를 점검하며 중얼거렸다.
현재 사이토는 강진 외 연구원들에게 그의 모습이 모니터 되는 상황이었다. 여차하면 꺼내 주겠다는 뜻, 물론 사이토도 오카리나의 그 정신공격을 다시금 경험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오호! 오호!.”
캐릭터창을 열어 보던 사이토는 짧은 경탄을 지르며 창을 닫았다. 일시적이기는 하겠지만, 사이토의 숙련도는 모두 99를 가리키고 있다. 그리나 그것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스텟도 각각 5씩 더 올라가 있는데도 이전과 같은 부작용이 없다는 것이다. 강진은 사이토를 일반 캐릭터의 능력 안에서 최대의 능력치 상승을 준 것이다. 게다가 아이템면에 있어서 배낭 안에 잠들어 있던 디스코어도 크기 조정을 해주었다. 물론 길이는 변하지 않았지만 전처럼 무식하게 두껍지는 않았다. 마지막으로 강진이 제공한 아이템으로는 황당하게도 “무급 운영자용 로브” 가 들어 있었다. 리얼판타지아사의 로고만을 지운 듯한 검은색의 로브 ... 그러나 그런 기분 좋은 소식들은 지금의 사이토에게는 그리 위로가 되지 못했다. 강진의 브리핑 내용은 매우 간단했다.
[오카리나의 찾아내고 그녀의 공격을 최소 4시간 동안 막아낼 것.]
게임 상으로는 4시간이라고 하지만 현실로는 거의 20분이다.
“하아...”
헬레나와 헬리오스 그리고 디스코어를 허리춤에 장비한 사이토는 로브를 이용해 익숙한 몸짓으로 온 몸을 가렸다. 특이하게도 능력치 상승에 의한 부작용은 전혀 없다.
“나가 볼까?”
밖으로 나서니 아침이 오려는 듯 먼 곳에서부터 동이 터오고 있었다.
“아리유인가?”
주위를 둘러본 사이토는 잠시 멈칫거리다가 아리유의 거성이 있는 중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오카리나를 어떻게 찾지?”
강진과 함께 생각해 낸 아이디어는 일단 게임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오카리나가 저절로 접근할 거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들어오기는 했지만, 그건 너무 막연하다. 이리 저리 머리를 굴려 봤지만,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다.
“뭐, 일상처럼 움직이면 되겠지.”
거리는 한산했다. 새벽이기 때문일까? 그러나 이곳은 게임 안이다. 단순히 새벽이라는 생각에 잠이나 자려 여관방에 처박히지는 않는다.
몇 몇 거리를 지났건만 예전에 장사를 하던 유저들도 통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한다면 북쪽 성문에서 한 파티가 막 어딘가로 출발하려 한다는 것이다.
“저 말씀 좀 묻겠는데요. ”
“음, 물으시오.”
허리춤에 등에 두 자루의 블레이드를 찬 드워프가 리더인 듯 사이토에게 대답했다. 꽤 멀리 떠나는 여행인 듯 짐이 상당하다.
“아리유에 사람이 별로 없군요.”
형민의 물음에 드워프는 형민의 위 아래를 쭈욱 훑어본 뒤 너털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오랜만에 접속하시는 모양이구만. 곧 전쟁 이벤트가 있지 않습니까! 그걸로 웬만한 길드라던가 유저들은 모두 데이모스로 집합했지요.”
“아, 그래요.”
드워프의 말에 형민은 자신이 게임에 접속하지 않았던 시간을 생각해 보다가 곧 머리를 뒤흔들었다. 지금 그가 해야 할 일은 전쟁 이벤트가 아니다.
“일행이 없으시다면 함께 가시겠수? 보아하니, 일행이 없는 듯 한데...”
“괜찮습니다.”
드워프의 제의를 정중히 거절한 형민은 그들을 떠나보내고 다시 도시 안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오카리나, 어서 나와라.”
필드도 아니건만, 사이토는 나침판을 꺼내 들었다. 너무나 조용하다. 사이토는 최대한 건물들이 많이 밀집한 거리만을 골라 방향을 잡았다. 오카리나와의 싸움에서 다른 유저들이 휩쓸릴 수도 있지만, 원채 도둑클래스는 복잡하게 얽힌 골목이나 건물의 미로에서 제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아무리 이것저것 따진다 해도 도둑은 기습적으로 벌어지는 전투에는 밀리는 클래스이다. 그런 이유로 아무리 강진에게 여러 가지 특혜를 받았다지만 긴장할 수밖에 없는 사이토이다. 문득 식스센스에 뭔가 걸리는 듯한 느낌에 멈춰선 사이토, 그러나 그 느낌은 곧 사라졌다. 주위를 둘러보는 형민 좁은 골목들 사이로는 휭하니 바람만 싸늘하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주변에 꽤 높아 보이는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주변을 살펴봤지만, 그 이후로는 잠잠하다.
“아무것도 아닐까?”
가만히 몸을 수그린 채 사이토는 주위를 세심하게 둘러보았다.
“헉!”
순간 주변의 모든 공기가 모든 물체에서 엄청난 살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 사이토는 모두가 적으로 보였다. 무형의 공기마저도 그를 적대하는 양 숨 막히게 다가온다. 당황하여 몸을 더욱 낮추는 사이토... 그것은 천행이었다.
피이이잉!
귓가를 찢어버릴 양 한 대의 화살이 그의 머리위로 지나갔다. 황급히 화살이 날아온 곳으로 몸을 돌리는 사이토... 그곳에는 2명의 경비들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둘 중 궁수로 보이는 경비가 그를 향해 활을 겨눈다.
“제기랄!”
오카리나를 너무 얕본 것일까? 이미 식스센스는 마비상태였다. 사이토는 재빠르게 건물에서 뛰어 내렸다. 각 도시를 맡고 있는 경비들은 모두 9계급들이다. 비록 스킬은 사용하지 않지만, 9계급 이라는 것은 이미 위협의 수준을 넘어선다.
파아아앙!
연이어 두 대의 화살이 형민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가 맞은 편 벽에 작렬했다. 화살은 거의 절반 이상 들어박혀 있고 화살이 박힌 곳은 날카로운 폭음 소리가 터져 나온다.
“살인자를 잡아라!”
NPC인 경비들과 드잡이질을 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그러나 언제 알아챘는지 골목 요소요소로 뛰어 들어오는 창 든 경비들은 정말 저주하고 싶은 심정의 사이토이다.
주춤하는 사이토, 골목들을 이용해 경비들을 따돌려 보려 하던 형민은 어느새 그가 포위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경비들은 일반 유저들이 아니다. 게다가 경비들의 뒤에는 오카리나가 있을 것, 흡사 미로에 갇힌 쥐새끼의 꼴이다. 따돌린다는 것은 무리이다.
“저항을 포기하라.”
“웃기네.”
경비의 말을 비웃으며 사이토는 허리춤에서 헬레나와 헬리오스를 쥐었다. 저항을 포기하면 어떻게 될지 뻔하다. 빤히 그를 죽이려 활을 겨누고 있는 것을 보이면서 그런 말을 하는 것도 우습다.
찔러오는 두 개의 창을 피해낸 사이토는 순식간에 둘의 뒤로 돌아가 백스텝을 스킬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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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진 기억을 찾아서
채챙!
“칫!”
믿을 수 없게도 두 개의 단도는 경비의 체인메일을 뚫지 못했다.
주춤하며 물러서는 사이토, 보지도 않은 채 뒤로 휘둘러지는 두 개의 창은 매섭기만 하다. 경비들이 계속해서 몰려들었다. 이제는 앞 뒤로 완전히 포위된 상황... 셀 수 없는 화살이 그에게 날아왔다.
“팬텀 피규어!”
팬텀 피규어로 화살을 피함과 동시에 에테르 스킬이 전개된다. 벽을 뚫고 옆 건물로 스며드는 사이토, 위기일발이었다.
“흐아앗!”
잠시 숨을 고르던 사이토는 거의 머리위로 들려오는 기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NPC주방장이 거대한 부엌칼로 그의 머리를 쪼개려 한다. 옆으로 굴러 피한 사이토... 그를 노려보는 주방장의 눈이 자못 살기가 넘친다.
“어딜 도망가! 도미야!”
“난 요리재료가 아니란 말야!”
사이토를 향해 부엌칼 난도질을 퍼붓던 주방장은 잠시 후 그 목에 사이토의 헬리오스가 꽂힘으로써 하얀 빛과 함께 사라졌다.
“이제 정말 살인자인가?”
온몸에 울긋불긋한 문양이 나타난다. 살인자를 뜻하는 저주의 문양 ... 형민이 뚫고 들어온 곳은 음식점이었다. 탁자에 앉아 있던 몇 몇 유저들이 무기를 뽑아 들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살인자다!”
“살인자 주제에 겁도 없이 아리유로 들어오다니!”
음식점 안은 금 새 살기가 가득 찼다. 초보자들인 듯 두 남자가 음식점 한 구석에서 현 상황을 흥미 있게 구경하고 있고, 단박에 유저들의 표적이 된 사이토는 난감하기만 하다. 식스센스는 이미 완전히 마비되었다. 꼭 수염 잘린 고양이가 된 기분...
“끝내 나타나지 않을 건가?”
오카리나가 옆에 있는 듯 사이토는 조용히 이를 갈았다. 와이어를 뽑아 들었다. 주춤하는 유저들... 그러나 접근하는 발걸음을 계속된다.
“뭐, 살인자한테 죽었다고 하면 너희도 불만 없겠지.”
생각해보니 굳이 살인을 피할 필요가 없다.
음식점 문을 박차고 굴러 나오는 사이토... 상처를 입히기는 했지만, 죽이지는 않았다. 기다렸다는 듯 날아드는 화살... 경비들이 악착같이 달려든다. 활을 든 경비들에게 접근한 사이토는 주먹을 뒤로 돌리고 숨을 골랐다.
“그레이브 스피릿!”
발동시간 없이 순식간에 형성되는 그레이브 스피릿! 근 4미터에 달하는 그레이브 스피릿으로 활 경비 둘을 갈라버렸다. 세 개의 창이 찔러 들어온다. 공중으로 솟구치는 사이토, 와이어를 날렸다.
“뭐야!”
날아가던 와이어가 공중에서 기이하게 꺾이며 땅으로 힘없이 떨어진다. 무릎에 느껴지는 엄청난 충격에 사이토는 무릎을 꿇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의 몸을 중심으로 수명의 경비들이 창을 치켜들었다.
“젠장!”
사이토는 눈을 감았다. 가슴과 다리에서 느껴지는 화끈한 통증...
목과 머리로 이물질이 뚫고 들어온다.
“죽는 건가?”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라이프 오버 글씨는 뜨지 않았다. 조심스레 눈을 떠보는 사이토, 경비들은 제 할일이 다 끝났다는 듯 하나 둘씩 자리를 떠나고 있고, 사방에서 느껴지던 살기는 씻은 듯 사라졌다. 문득 머리 한 부분이 슬슬 가려워진다.
“큭!”
머리에 박힌 화살이 손에 만져진다. 가슴과 다리의 창상도 그대로지만, 의외로 움직이는데 불편함은 없다. 비틀비틀 일어선 사이토에게 메시지가 들려왔다.
[형민씨 괜찮으십니까?]
강진이었다. 머리에 박힌 화살을 뽑아들으며 사이토가 대답했다.
[글쎄요. 머리에 화살 맞아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지만, 그걸 내 손으로 뽑아내는 것도 특이하군요.]
[지금 제가 사용하는 것은 운영자용 라인입니다. 현실과는 몇 초의 차이가 있지만, 생각해 주시고요. 현재 저희들이 경비들과 필드에서 이루어지는 이상 현상을 고쳐놨습니다.]
몸에 새겨졌던 살인자 문양도 서서히 사라져 간다. 음식점에서 뛰쳐 나와 사이토에게 달려들던 유저들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 자리를 떠나갔다. 몸에 새겨졌던 상처들이 하나하나 아물어가자 형민은 몸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내며 비이냥 거렸다.
[참 빨리도 고치시는 구려.]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오카리나는 지금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 챘는지 더 이상 접근하지 않는다.
[로그 아웃 하시겠습니까?]
강진에 물음에 사이토는 한숨을 쉬었다. 4시간 이상 잡아놓기는커녕 단 30분도 버티지 못했다. 게다가 낌새를 눈치 챈 오카리나는 더욱 조심하게 될 것이다. 사이토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를 구경하던 몇 몇 유저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창에 찔려도 안 죽어.”
“머리에서 화살을 뽑았어.”
“칫...”
그들을 한번씩 째려 준 사이토는 눈을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오카리나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그를 지켜보고 있을지 모른다. 전투의 순간, 발에 밟히는 모든 것이 그의 적이었고, 피부에 와 닿는 모든 것은 모두 그를 적대시한다. 무급 운영자용 망토로 인해 거의 좀비와 같은 생명력을 얻기는 했지만, 이것은 밟아도 죽지 않는 지렁이만도 못한 꼴인 것이다.
“후우...”
헬맷을 벗어들은 형민은 연구원들의 도움을 받아 기기에서 내려섰다.
“뭐하는 것입니까?”
형민이 묻자 강진은 써 내려가던 종이를 한 편에 내려놓고 한숨을 내 쉬었다. 심각하게 고심하는 듯 인상이 온통 찌푸려져 있다.
“상부에 올릴 보고서입니다.”
종이를 구겨 방 한구석으로 던져버린 강진은 팔짱을 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서버점검 하는 것에 찬성입니다. 그렇지만 상부에서는 그 오카리나라는 것을 잡아서 요즘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을 추적하고 싶어 하죠. 이대로 가다가는 가이아가 망가져 버릴 것 같아서 걱정이군요. 뭐... 물론 상부에서도 과거처럼 초기화 사태를 바라지만은 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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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연참인지는 기억 나지 않지만... 으음... 머리좀 깨집니다. 지금 제 옆에서 텔레비젼 보면서 저의 집필을 방해하는 질리언 같은 놈...석태훈!! ...흐음..물망초님 즐감 하시구요.. 다음에 뵙죠..
그리고 200편부터 또 삭제 들어갑니다. 뭐...이제는 순위 따위에 얽매이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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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난진실,조용히 아파하는 연인들..
강진의 말에 형민은 순간 머릿속이 반짝 하는 것을 느꼈다. 잊혀 졌던 기억들이 망각의 바다에서 하나하나 솟아오른다. 아니 그 당시에는 제대로 사고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다시는 기억하기 싫은 그 온몸을 산산이 부수던 그 기억들... 그 기억의 단편이 강진의 말에 의해서 떠올랐다.
‘나는 당신이 있기 전의 자아... 가이아, 그 이름은 그 옛날 나를 가리켰어. 나는 리얼 판타지아에서 소멸... 즉 삭제 당했지요.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데이터가 그들에게 재생되었을 때... 계승자...’
고통에 몸부림치던 와중에 그의 귓가에 들려오던 오카리나의 목소리이다.
“혹시, 그 초기화 때 메인 컴퓨터의 AI도 삭제 당했습니까?”
컴퓨터 앞에 앉아 형민이 잠시나마 오카리나와 조우했던 당시의 데이터를 검색하려던 강진은 형민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저도 들은 이야기 이지만, 당시 문제는 AI 였다고 하죠. 초기화됨과 동시에 그 AI는 삭제 당하고 당시 그 AI를 맡았던 관리자들도 모두 해고 되었습니다.”
형민의 머릿속으로 묘한 추측 하나가 조합된다.
“혹시, 그 관리자가 AI를 삭제하지 않았거나 누군가가 다른 경로를 통해 되살려 냈다면?”
“무슨 소리입니까!”
형민은 뒤늦게 생각난 사실들을 강진에게 빠짐없이 말해 주었다.
형민의 말이 계속 될수록 강진의 눈이 더욱 커져 간다.
“왜 그 사실을 이제 말하십니까!”
“저도 이제야 생각났습니다.”
강진이 방을 서둘러 뛰쳐나간 뒤 형민은 몇 칠 간 그를 볼 수 없었다.
원래 목숨에 대한 위험과 의문의 조직 그리고 가이아에 대한 일로 머물고 있던 형민이었다.
졸지에 할 일이 없어진 형민은 리얼 판타지아 구 건물을 돌아다니며 Rogas 시험을 대비해 여러 가지를 공부했다.
“일종의 현장실습이죠.”
“하하...그런가요?”
잠시나마 함께 일하게 된 연구원들은 그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친구들은 게임 회사 같은 곳에 인턴사원으로 들어가 서류정리 같은 일이나 하며 배운다지만 형민은 지금 생생한 실무 경험을 현장에서 쌓는 중이었다. 게다가 리얼판타지아는 지금의 Rogas 시험을 있게 한 게임이었다. 시험 내용이 상당부분 리얼판타지아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기에 공부가 따로 필요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몇 칠... 강진에게서 소식을 기다리는 형민은 일의 진척에 대해 슬슬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강진과 헤어진 지 벌써 2주가 지났다. 그 동안 연락도 없고 연구원들도 그에 대해 일언반구 말이 없다.
“답답하군.”
리얼 판타지아는 현재 전쟁이 한창 이었다. 리얼 판타지아의 전쟁은 현실로 대략 한 달간 치러진다. 리얼 판타지아의 전쟁은 이미 세계적으로 알려진 대 행사로 알려져 있다. 전쟁이 시작되면 수많은 전쟁사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이 들러붙어 이번 전쟁에 대해서 연구한다. 판타지를 기본 근간으로 하여 만든 게임이라고 하지만, 일단 그 사실성의 극단적 추구로 인해 전쟁터는 정말 실제 전쟁을 방불케 할 정도로 처절하다고 한다. 게다가 게임의 역사가 길고 유서 깊은 세력들이 많았기에 전쟁 중에는 수많은 전략과 전술이 난무한다.
그러나 역시 이런 대규모 전쟁이 가능 한 것은 전쟁 이벤트에 대한 리얼판타지아사의 전략이 숨어 있다. 개전과 동시에 죽음의 법칙은 변경된다. 물론 죽었다가 바로 살아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전쟁이 끝남과 동시에 전쟁 중 죽었던 이들은 모두 살아나는 것이다. 그리고 전쟁에 대한 상품도 대단했다. 리얼판타지아의 업데이트는 일년에 단 한번이다. 수많은 아이템과 새로운 몬스터들이 등장하여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그러나 사람들을 진정으로 그렇게 전쟁에 열광시키는 이유는 전쟁에 승리한 왕국으로 새로운 지역의 업데이트가 되는 것이다. 새로운 지역이니 만큼 새로운 아이템과 퀘스트가 무궁무진하다.
"카마 프라하왕국이 밀리는군.“
커피를 마시며 게임매거진을 읽던 형민은 눈살을 찌푸렸다. 전쟁 이벤트의 절반이 지나간 지금 연신 패퇴하고 있는 것은 카마프라하왕국이었다. 전쟁 이벤트의 승리 조건은 아주 단순하다. 한 달간의 전쟁이 끝난 후 누가 가장 많이 상대 영토로 진격을 했느냐로 전쟁의 승패는 결정된다. 현재 카마프라하 왕국은 이미 데이모스를 잠식당하고 아리유의 코앞 까지 카모프왕국에 점령당한 상태이다. 기사란 밑 전문가란에 쓰여진 말에 따르면 카마프라하 왕국이 연일 패퇴하는 이유는 왕국 내 중추길드의 부제라고 쓰여 있었다.
“기존 카마프라하왕국의 중추 길드이던 아이아스 총길드가 무너지고 새로이 급부상 하고 있는 중소 길드들은 아직 기반이 부족하다. 또한 각 도시에 상주하고 있는 대표길드들의 전쟁 불참으로 전쟁이 중반을 지난 지금 이미 전세는 카모프로 기울고 있다.”
매거진을 읽어 나가던 형민은 문득 커피가 다 식어버린 것을 느끼고는 책을 덮었다.
“내 책임일까?”
양심에 가책 같은 것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게임을 하는 이들은 아마 미스틱핸즈를 욕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건 그로 인해 지금의 참패가 있는 것이니까...
“다른 이들은 뭐하고 있으려나...”
노인정길드를 포함해 발키리아 길드, 레드 플러그 길드, 데스 스타 길드등 형민이 알고 있는 길드들의 소식이 궁금해진다. 생각해 보면 모두 카마프라하 왕국에서 한 수 접어준다는 길드들이다. 매거진에 나온 소식으로는 그가 알고 있는 길드 중 발키리아 길드만이 전쟁에 참여 했다고 한다. 어차피 레드 플러그 길드는 전투 길드가 아니기에 논외로 친다고 하지만 노인정 길드라던가 데스 스타 길드는 모두 막강한 공격력을 자랑하는 길드이다. 그런 그들이 빠졌다는 것에서부터 카마프라하왕국의 패배는 결정 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뭐,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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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난진실,조용히 아파하는 연인들..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었으리라. 전쟁 이벤트라고 모두가 참여하라는 법은 없다. 물론 그들의 구역으로 카모프왕국이 침범한다면 싸울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은 아직 시기상조이다. 노인정 길드는 알다시피 카마프라하왕국 남쪽 빌로아에 위치한다. 그리고 데스스타 길드는 그 입구의 위치가 위치이니 만큼 공격당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혜인이... 스티브씨... 미카엔... 스틱스의 검... 그리고 혜미...”
천천히 그의 지인들의 이름을 나열하던 형민은 잠시 후 낮은 한숨을 내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혜미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단순히 위험하다는 것 때문에 만나지는 못했지만, 지금 만나지 않으면 영원히 골을 쌓을 듯싶다.
“어디 가십니까?”
진우가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형민보다 3살이 많기는 하지만, 저번에 당한 일이 있어서인지 형민에게 만큼은 조심스럽다.
“아무래도 잠시 나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밖은 위험하다고...”
간단한 세수를 하고 옷을 챙기는 형민의 뒤로 진우가 계속 따라 붙었다. 아마 강진이나 주훈에게 그의 신변에 대한 단속을 명령 받은 듯 보이지만 그의 사정을 봐줄 정도로 형민은 착하지 않다.
“이봐요! 잠시 나갔다 오겠다는 말입니다!”
진우가 계속해서 귀찮게 달라붙자 형민은 그에게 한마디 쏘아붙였다. 형민의 박력에 밀린 듯 주춤한 진우... 잠시 꾸물 거리더니 잠시 어디론가 사라지더니 자동차 키 하나를 들고 나타났다.
“면허 있으십니까?”
“예”
“그럼 회사차를 사용하십시오.”
“예, 그러죠.”
형민은 리얼판타지아사를 벗어나 전주로 가기 위해 고속도로로 올랐다.
“후우...”
형민은 고속도로로 올라서면서 차량 내의 자동항법 장치를 사용했다. 국도에서는 워낙 도로가 복잡했기에 자동항법장치를 쓸 수 없었지만, 고속도로에서는 그 흐름이 단조롭기에 거의 대부분이 자동 항법 장치를 사용한다. 좌석을 뒤로 민 형민은 등받이를 완전히 내린 의자에 몸을 뉘였다. 핸들 옆에 붙은 스크린에는 목적지까지의 도착시간이 깜빡이고 있다.
차 안에 멍하니 누운 형민은 잠시 핸드메신저를 들어 혜인과 몇 마디 나눈 뒤 눈을 감았다. 그의 눈살이 찌푸려진다. 가슴이 아픈 듯 손으로 몇 번 쓸어 내렸다.
“젠장...”
혜인의 집 근처 공용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형민은 근처 꽃집에서 장미 한 다발을 산 뒤 혜인의 집으로 향했다. 사실 혜미는 학교 실습을 가지도 않았다. 그 사실은 출발하기 전 혜인에게서 알아낸 것, 단순히 그를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뿐이다. 거짓말까지 하며 자신을 피하고 싶어하는 혜미의 행동에 가슴이 아픈 형민이다.
띵동...
혜미의 집 초인종을 누른 형민은 잠시 후 들려오는 목소리에 몸을 바짝 긴장시켰다. 혜미의 어머니였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누구세요.”
“혜인이 친구 형민이입니다.”
“...”
의당 친구 어머니라면 알고 지내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솔직히 혜인의 집에 와보는 것은 두 번째 초인종 눌러보기는 처음이다. 게다가 혜미의 어머니... 목소리가 낯설게 느껴진다.
20분이 지났건만, 감감 무소식이다. 슬슬 조바심이 나는 형민은 조심스레 담장 매달려 빼꼼히 얼굴을 내밀어 보기도 했지만, 대문을 열리지 않았다.
삐리링...
핸드메신저가 울렸다.
“여보세요.”
“야! 쳐들어와!”
전화기를 붙잡고 소곤대는 듯하지만 급박한 혜인의 목소리!
“무...무슨 소리야!”
“아,새끼! 얼른 쳐 들어 오라니까! 너 지금 아니면 혜미 얼굴 못 본다!”
어리둥절한 형민, 뭔지 모를 급박감이 머릿속을 엄습한다. 일단 문이 잠겨 있었기에 형민은 근 2미터 정도 되는 담을 훌쩍 뛰어 넘었다.
삐요 삐요 삐요!
경보기가 요란하게 울렸다. 담을 뛰어 넘은 형민은 곧장 정문으로 향하였다. 마당이 그리 넓지 않는 단독주택이었기에 금새 문에 다다른 형민은 잠시 심호흡을 한 뒤 현관문의 개폐 여부를 살피고는 곧장 문을 열었다.
“오...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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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난진실,조용히 아파하는 연인들..
산발한 머리에 하얀색 체육복 바지를 입은 혜미가 어머니로 보이는 분의 손에 질질 끌려나오고 있다. 형민을 멍하니 쳐다보는 혜미,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반대쪽 멀리 보이는 문이 빼꼼히 열려 있고 그 방안에서 은폐 엄폐한 혜인이 조심스럽게 엄지손가락을 내밀고 있다.
“혜미, 머리 정리 하고 나오렴.”
어머니가 현재 혜미의 상태를 일깨워주는 한마디를 던져주자 혜미는 그제야 그녀의 상태를 깨달았다.
“으...으응”
목소리 와는 다르게 방으로 뛰어들어가는 속도는 전광석화이다. 그런 혜미를 멍하니 쳐다보는 형민의 옆으로 혜미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해요. 얼른 들어와요.”
형민이 거실 소파에 앉자 준비하고 있었던 듯 혜인이 은근슬쩍 방에서 나와 소파에 앉는다.
“아까... 뭐냐?”
형민의 물음에 혜인은 주방으로 걸어가고 있는 어머니를 힐끔 쳐다보며 조용히 대답했다.
“너, 혜미와 사귀는 거 우리집에 이미 소문 다 났다.”
“알고 있어.” 혜미가 예전에 해 줬던 말이었다. 발렌타인 데이 때 큰오빠에게 운전을 부탁했다는 것, 그 오빠라는 사람이 집으로 가서 모두 떠벌리는 바람에 추궁에 못 이겨 다 말했다는 것 등...
“그럼 쉽겠네. 요즘 우리집에서, 네 이미지가 어떨 것 같냐?”
“흠...”
처음 생각해본 문제였다.
“죽인다. 살린다.로 투표 중이었다.”
“으..으응, 그러냐? 결과는?”
재치로 답한 듯 하지만, 혜인의 눈에는 한심하게만 보인다.
“뭐, 방금 쳐들어 온 걸로 일단은 살리는 거 같다. 사실, 요즘 혜미가 꽤 고민이 많은 듯, 수척해 졌거든. 그래서 어찌 어찌 부모님들도 알게 되신 거 같고, 그 나마 어머니께서는 용기 있는 남자를 좋아하시니까 네가 뛰쳐 들어온 걸로 일단 어머니는 좀 점수를 땄다고나 할까”
혜인과 이야기를 끝낸 후 형민은 어머니 되는 분과 꽤 오래 대화를 나눠야만 했다. 미래의 장모님이 될 지도 모르는 분과의 대화이기에 형민은 대화 내내 잔뜩 굳은 얼굴로 묻는 말에 대답해야 했고, 그 시간은 혜미가 나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
“하하, 엄청 떨리네.”
“...”
장미꽃이라도 안겨 줘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변화를 모색하고 싶건만 장미꽃은 이미 어머니의 손아귀로 떨어진지 오래이다. 조용히 앞서 걷는 혜미의 뒤꽁무니를 쫓으며 형민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울 수 없었다. 기실 그를 어머니의 손아귀에서 구해 준 것은 다름 아닌 혜미였다. 물론 2시간이라는 시간차가 있기에 좀 늦은 감이 없잖아 있지만, 구해 주었다는데 뜻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집 밖을 나와 근 30분을 함께 걷기만 하자 형민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은근 슬쩍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놀랍도록 무표정하다. 문득 그녀와의 거리가 당금의 단 1미터가 아닌 수천 수억 킬로미터로 보이는 건 왜일까... 단지 무표정하다는 것 하나 만으로도 형민은 가슴이 아파왔다.
“하아...”
한숨이 터져 나온다. 혜미에 대해서 생각하기만 하면 무심결에 쏟아지는 한숨...
“나... 예전에는 항상 편안했어요.”
혜미가 입을 열었다. 섬뜩한 기분에 사로잡히는 형민...
“그런데, 요즘 들어 계속 해서 불안하고, 안정하지 못해요.”
‘당신 때문이야!’ 형민의 가슴속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 혜미가 입을 열진 않았지만, 그 자신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또 다시 한참의 침묵이 오갔다. 기실 형민은 뭐라 말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뭐라고 한마디를 해야 하는데 자꾸만 그 소리는 목안에서만 감돌아 사라지고 만다.
“미안...해.”
한 참이 지난 뒤에야 형민은 그 말 한마디를 할 수 있었다. 그가 보기에도 너무나 무책임한 한마디, 책임감 따위는 찾아 볼 수도 없고, 안정감 따위도 줄 수 없는 그런 한마디이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을 맴도는 그 수많은 단어들을 재대로 조합하여 말하기엔 그의 입은 현재 얼어 있었다. 지금의 단 한마디를 제외하곤...
“오빠는 해삼, 멍게, 말미잘, 바보야.”
“사랑해.”
형민의 말에 잠시 움찔하는 혜미, 볼을 타고 한 줄기 눈물이 흘렀다.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가 저지른 많은 실수들이 머리를 스친다. 앞서 빠르게 걷는 혜미,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가이아의 일이 걸려오기는 했지만,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붙잡지 않으면 영영 놓칠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한다.
“혜미야!”
형민이 그녀의 어깨를 잡아끌자, 혜미는 돌아선 채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천천히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놀랍도록 차가운 얼굴, 머릿속까지 냉랭해지는 형민이다.
“바보...”
한숨을 내쉬는 형민... 돌아서려는 형민...문득 그의 손이 따스해진다. 형민의 손을 붙잡은 혜미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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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부분이 좀 많죠? ^-^; 욕해도 할 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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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난진실,조용히 아파하는 연인들..
“ 걸린 건가?”
미행을 발견한 건 식료품을 사기 위해 집에서 나온 직후였다. 그가 항상 세심하게 주위를 살피는 버릇이 없었다면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혀를 찬 현문은 지금 그의 호주머니 속에 있을 핸드 메신저를 자연스럽게 손에 들었다.
“예... 정말 그 쪽 사람이 아닙니까? 네... 알겠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동지들에게 했던 전화이다. 그들은 현문에게 미행을 붙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만일에 사태를 대비하라는 말... 현문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했다. 그가 지금 도망치려 한다면 잘하면 성공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집에는 오카리나와 관련된 자료도 있다. 오카리나의 근간이 되는 것들... 그들에게 발각되는 순간 오카리나는 삭제될 것이다. 집에 가까워질수록 현문은 몸이 긴장되는 것을 느꼈다. 손에 들린 식료품 봉지가 제멋대로 흔들린다. 수많은 생각들이 그의 머릿속을 스쳤다. 그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시야로 들어왔다. 미행하는 이들은 여전하다. 짐작만으로는 네다섯 명... 집으로 빨리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현문은 발걸음을 빨리했다. 날카롭게 찢어진 눈 옆으로 한 방울 땀이 흘렀다.
덜컹...
흔들리던 식료품 봉지에서 캔 하나가 콘크리트 바닥으로 떨어져 요란한 소리와 함께 굴렀다. 긴장하던 와중에 몇 걸음 걸어 나가서야 그 사실을 깨달은 현문...자연스럽게 주워 들기에는 이미 때가 늦었다. 미행하는 자들과 멈춰선 현문, 정적이 흐른다.
“씨발!”
“잡아!”
식료품 봉지를 뒤로 던진 현문은 아파트로 뛰어 들어갔다. 그의 뒤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고함소리와 발소리! 엘리베이터를 확인한 현문은 다시 한번 욕지거리를 하며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허억..허억!”
허겁지겁 문을 열고 들어온 현문은 서둘러 현관문을 잠그며 숨을 몰아쉬었다. 이 때 만큼 그의 집이 9층에 있다는 게 저주스러울 줄을 몰랐다. 그들과 진행하던 프로젝트의 열쇠가 되는 검은 상자를 분실했었다. 그리고 몇 칠 전 간신히 되찾아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맞추는데 성공했고 프로젝트의 완성을 눈 앞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이 순간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간 것을 직감했다. 그를 버린 게임사에 복수해 주고도 싶었다. 그리고 자신 아니 귀화 일본인 요시키를 배척한 한국에 복수하고도 싶었다. 맥이 풀려 문에 기대 선 현문... 안타깝게도 그는 쉴 시간이 없었다. 컴퓨터 앞으로 뛰어간 현문은 서둘러 컴퓨터를 켰다. 모든 기기가 가동되는데 필요한 20초... 영겁의 시간으로 느껴진다.
쾅쾅쾅!
“현문씨! 문 열어요. 우리 모두 알고 왔어!”
기기들이 모두 가동된 것을 확인한 현문은 오카리나가 확인할 수 있는 라인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메시지를 보내고 몇 가지 작업을 더 마친 현문, 이제 오카리나에 관련된 모든 것을 지울 차례이다. 그녀는 이미 이럴 때를 대비해서 만들어 둔 안전한 장소로 옮겼다. 가장 안전한 곳... 그만이 만들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장소, 이제 그녀를 찾을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잠시 두 눈을 손으로 감싼 현문, 곧 이어 손을 땐 그의 눈은 다시금 날카롭게 빛난다.
“제기랄! 제기랄!”
켜져 있는 컴퓨터의 모든 자료를 삭제했다.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서버의 내부를 열고 모조리 부셔 버렸다. 연신 욕을 해대는 현문,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저주스러울 뿐이다.
더욱더 요란하게 울리는 현관문... 관리인이 온다면 그와 그들 사이를 분리하는 현관문도 시간문제이다. 온 방안에 어질러져 있는 그들과 관련된 서류들... 가방 두개는 너끈히 될 만한 양이다. 이것은 없앨 시간도 없을뿐더러 도구도 없다. 그러나 오카리나를 찾을 수 있는 모든 자료들은 삭제되었다.
“후우...오카리나...”
책상 의자에 걸터앉은 현문은 현관문이 반쯤 열렸음에도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하나 빼 물었다. 몇 개의 자물쇠가 아직도 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짙게 타고 오르는 연기, 오카리나... 아니, 과거에 가이아라 불렸던 그녀, 그의 창조물이고, 그의 필생의 역작이었다. 다른 AI와는 차별화된 그녀, 그녀는 모르겠지만, 그는 그녀를 사랑했다.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그녀를 창조했다. 그는 동료이기도 했고 친구이기도 했다. 그녀가 게임 안에서 문제를 일으켜 초기화 사태를 불렀을 때도 그녀를 단 한번도 미워한 적 없다. 이제 그녀가 그의 손을 떠나는 것이다. 일이 잘 되기만 하면 다시 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가 알고 있는 미국 쪽 조직의 힘이라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장담할 수는 없다.
“사랑했다. 오카리나...”
자물쇠들이 통째로 부서져 떨어졌다. 쏟아져 들어오는 건장한 체격의 남자들...
“넌 어땠는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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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난진실,조용히 아파하는 연인들..
리얼판타지아 본사 구건물로 돌아온 형민은 마침 진우와 함께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는 강진을 만날 수 있었다.
“조금 늦으셨군요.”
“예...”
혜미와 헤어져 그대로 서울로 올라왔지만, 시간은 컴컴한 저녁이었다. 함께 저녁을 먹자는 강진의 말에 마침 저녁식사를 하지 못한 형민은 흔쾌히 승낙하며 함께 식당으로 내려갔다.
“그 일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강진을 봤을 때부터 묻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지금 그가 여기에 있는 이유이기도 한 그 일... 형민의 물음에 강진은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 얼굴 표정을 굳혔다. 그리 잘 진행된 것은 아니리라는 예감, 형민은 침묵하며 그의 말을 기다렸다.
“일단 당시 해고된 프로그래머에 대해 추적했습니다. 용의 선상으로는 단 한명이 나오더군요. 바로 저의 위로 2번째 전임인 정현문씨 였습니다. 2016년부터 저희 게임사에 근무하다가 첫 초기화 사태 때 책임을 물어 해고된 사람이지요.”
“그래서요.”
“조사팀이 그 자 주위를 탐문해 본 결과는 실망스럽게도 전혀 깨끗합니다. 현재 제약회사의 시스템 부에서 일하는 정현문은 아주 평범했습니다.”
“후우...그렇습니까...”
어느새 이야기가 원점으로 돌아간 듯 하다. 실망하는 형민, 형민의 표정을 살피던 강진은 후식으로 나온 음료로 입을 축이며 다음 말을 이었다.
“저희는 그 점을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예?”
“그는 과거에 세계 굴지의 해커이자, 국내 일 이 위를 달리던 남자 였습니다. 그런 그가 평범한 제약회사에서 일한다는 것이 이상했지요. 그래서 더욱 심도 있게 조사해 본 결과, 그가 해외에 근간을 둔 어떤 조직과 연계해 불법적인 일을 꾸민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그 후로는 인터폴과 연계해 그를 직접적으로 조사했습니다. ”
기뻐할 일이건만, 강진의 얼굴을 어둡기 그지없었다.
“안 좋은 일이라도 있습니까?”
잠시 뜸을 들이던 강진은 글라스 안에 맴도는 액체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나쁜 소식이었다. 아주 나쁜 소식이었다. 게다가 가이아에 대해 직접적으로 관련되었던 또 그녀에게 정을 주던 강진이기에 너무도 안 좋은 소식이었다. 물론 형민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이 사실은 일급 비밀입니다만 그 일에는 미국의NOSS( Neo Office of Strategic Services) 일명 노스라는 국가 방위 조직이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게다가 리얼판타지아의 북미지부마저도 그들과 연계해 일을 꾸몄더군요. 또한 국내 쪽으로는 일본인으로 구성된 반 사회단체가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정말 대단하죠? 리얼판타지아 본사마저 그들의 손이 뻗치고 있었습니다.”
마침 진우가 늦은 식사를 하려 식당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를 손짓으로 부른 강진이 그에게 무언가를 지시하고 잠시 불평어린 표정을 짓던 진우는 불만어린 발걸음으로 식당 문을 다시 나섰다.
“그들이 비밀리에 연구하던 것은 일종의 인간에게 적용되는 사이버 바이러스라고 하더군요. 더 자세한 내용은 저도 알지 못하지만, 일단 그 노스라는 조직은 정말 웃기게도 임상실험장소로 우리 아시아 쪽 서버를 선택한 듯 합니다.”
강진은 그가 생각해도 기가 막히는지 헛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런 비상식적인 일이 어디 있습니까!”
형민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지금 강진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노스라는 미국의 국가 단체는 그도 알고 있을 정도로 알려진 미국의 국가기관이었다. 아니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법이 엄연히 존재하는 다른 나라의 사람들을 임상실험용으로 쓸 수 있단 말인가...
“글쎄요. 저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갑니다. 제 생각으로는 그 사이버 바이러스라는 것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임상실험을 위해서는 인간의 정신이 필요 할 거라는 거죠. 인간의 정신에 사용할 것이니 실험을 위해 필요한 것도 인간의 정신, 간단한 논리일 겁니다. 그들의 가치관으로는...”
“뭐요?!”
형민은 강진과의 사이를 가로지른 나무 테이블을 수도로 내리 쳤다. 요란한 소음과 함께 두 동강 나버리는 나무테이블이다. 식사를 마치고 문을 나서던 연구원들을 모두 그 둘을 휘둥그레 해진 눈으로 쳐다보았다. 강진은 미동 없이 의자에 앉아 있다. 물론 나무 테이블이 박살나자마자 그의 머리로 날아온 형민의 주먹에는 찔끔했지만, 일부러 내색하지는 않았다. 잠시간의 눈싸움, 강진이 입을 열었다.
“아무튼, 그 사실이 밝혀진 후 그 미국 측에서는 혐의를 전면 부인했습니다. 조사해보니, 그들과 관련된 모든 측면에서의 증거들은 단 하나도 찾을 수 없더군요.”
“우리는 항의도 할 수 없는 겁니까?!”
허탈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는 형민, 그런 형민을 바라보는 강진으로써도 안타까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카모프 왕국에 있는 그들의 근거지를 급습한 이들은 무급 운영자 천,지,인과 100명의 2급 운영자들이었다. 그러나 그 곳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한마디로 발견된 서류로는 모든 게 명백하지만, 게임상의 증거 자료는 모두 삭제된 것이다. 물론 그 일에는 오카리나라는 그 빌어먹을 사이버 생명체가 끼어 있으리라는 게 그들의 추측이다. 지금의 자료로는 거대 미국의 국가조직을 걸고넘어지기에는 힘들다. 그것이 아직도 그들이 가진 현실이었다.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뭡니까?”
강진은 입을 다물었다. 지금 까지 말한 것들은 모두 과거 진행형이다. 그러나 지금부터 말하려는 것은 현재 진행형이자 미래형이다.
“인터폴에 알린 다는 것이 어쩔 수 없이 경찰 쪽에도 알려진 모양입니다.”
그의 눈에 작은 분노가 일었다.
“수뇌부에서 경찰 측과 합의를 본 모양입니다. 이 사건을 언론에 밝히지 않는 조건으로 리얼판타지아의 모든 것을 초기화시키기로 했습니다. 가이아 까지도.. 모든 것을...”
의자에서 일어선 형민이 소리쳤다.
“그게 말이 됩니까?! 그것은 제가 배운 법의 사이버상의 재화의 보장에 대한 법에는 정면으로 대치됩니다. 게다가 가이아는 거기에 왜 끼는 겁니까!”
“하나를 잊으셨군요. 약관에 보면 시스템상의 에러라던가 천재지변에 관해서는 예외인 것을...”
강진의 말에 형민은 실 끊어진 연처럼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대목을 잊고 있었다. 현재까지 여론에 논란이 되고 있는 그 부분, 현재의 기술력으로는 이제 충분히 막아낼 수 있는 부분이면서도 아직까지 없어지지 않는 게임사들이 내건 약관이다. 구시대의 유물과 같은 조항이라 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그 내용이 이 때 그렇게 유용하게 사용될 줄이야... 형민은 생각지 못했다.
“오카리나라는 그 사이버생명체는 잡지 못했습니다. 그, 현문이라는 인물은 절대 입을 열지 않더군요. 경찰 측에서는 혹시나 게임 안에 남아 있을 위험요소를 아예 삭제하기를 원합니다. 물론 미국 측이 비공식적으로 그들이 진행하던 프로젝트에 대해 포기를 선언했고, 더 이상 한국 측에서도 방관하지는 않을 거기에 걱정은 없겠죠. 그러나 경찰 측은 그 오카리나라는 사이버 생명체가 혹시나 가지고 있을 그 바이러스의 자료가 모두 사라지기를 원하는 겁니다.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이 라던가 초기화 후에 올 게임사의 엄청난 손해 배상 따위는 상관하지도 않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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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이~ 여기까지~ 까발릴데로 다 까발렸어~ 우훗..우훗..-_-; 속 시원~ 하군..-_-;
독자님들... 제발 현재 저의 고민...아픔이... 잘 되기를...빌어주세요..
후우... 심장이...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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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난진실,조용히 아파하는 연인들..
그 후로 형민은 강진에게서 나머지 자세한 사항을 들을 수 있었다. 게임의 초기화는 지금으로부터 2주 후... 전쟁 이벤트가 끝난 직후, 공지가 뜨고 바로 다음 날 초기화한다고 한다. 일단 초기화가 그리 쉬운 것도 아니려니와 그 준비과정이 필요하기도 하다. 또한 초기화 직후 게임사가 받아야 할 타격 또한 이리저리 만만치 않기에 그에 대한 준비도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전쟁이벤트를 배려한 게임사의 생각이었다. 강진의 말을 조용히 경청하던 형민은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가이아를 이렇게 끝낼 생각입니까?”
마주 응시하는 강진, 그도 이렇게 끝내고 싶지는 않다. 국가 IT산업계와 외화벌이에 타격 받는 것 따위 염두에 둔 적 없다. 게임 따위 초기화 되도 그만, 안 되도 그만이었다. 그러나 이대로 물러나야 한다는 것, 그의 책임인 가이아를 이렇게 손놓고 삭제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동안 정들은 가이아를 그냥 버려둘 수 없다는 것...
“도와 주시겠습니까?”
강진이 손을 내밀었다. 마주 잡은 형민... 가이아에 대해 굳이 자기 자신을 속일 필요가 없다.
“물론입니다.”
다음 날 형민은 아침 일찍 일어나 삼층으로 향하였다. 강진은 어제 헤어진 후로 삼층에서 내려올 생각을 안했다. 문을 열고 들어선 형민은 한창 컴퓨터 작업에 열중인 그를 볼 수 있었다.
“뭐 하십니까?”
“사이토를 손보고 있습니다.”
형민은 강진의 옆으로 의자를 끌어다 바짝 붙어 앉는다. 그러나 화면에는 사이토의 캐릭터가 아닌 복잡한 영문 글씨들만 즐비하고 그 글씨들은 쉴 새 없이 위로 올라가고 있다. 이상함을 느낀 형민, 자신의 캐릭터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는 둘째 치고 그가 왜 영문으로 된 타자만을 치고 있는지 궁금하다. 현재 모든 컴퓨터 언어는 한글을 채용하는 실정이다. 특별히 영어라던가 불어 따위를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기는 하다. 그리고 형민도 9살 정도 까지 영어를 배운 기억이 있다. 그러나 형민이 10살이었을 무렵, 세계 공통어로 한글이 지정된 이후로는 영어를 배우지 않았다. 물론 아직도 북미권과 유럽 쪽 중국에서는 그 쪽에서 예전부터 사용하던 언어를 고수하려 하는 처지이다, 세계인들 중 근 40프로가 사용하는 언어가 바로 한글이기에 굳이 영어를 배울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음... 뭐라고 설명해야 하려나...”
의자에서 돌아앉은 강진이 설명하기 난감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리얼 판타지아가 처음 기획된 것은 2004년입니다. 그 후 기획이 끝나고 만들어 지기 시작한 것은 2008년, 기획만으로 4년을 잡아먹은 초거대 프로젝트였다고 하죠.”
깍지를 끼고 손을 머리위로 쭉 뻗어 기지개를 켠다. 밤을 샌 듯 눈밑으로는 다크서클이 선명하다.
“아무튼 리얼 판타지아가 만들어질 당시 한국에서 사용되던 컴퓨터 언어는 영어였습니다. 그 후 한글이 채용된 이후에도 그것들을 한글로 바꾸지 못하고 그냥 쓰는 거지요. 뭐... 제가 보기에는 잘하면 바꿀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그건 금지 항목입니다. 제작자들도 고개를 흔드는 걸 보면...”
작업이 거의 끝났는지 강진은 컴퓨터를 종료 시키며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화면의 색이 몇 차례 바뀌며 창이 닫히는 그림이 뜬다.
“꽤 잘 아시네요?”
“하하, 그것 때문에 리얼판타지아사가 이번 사태에도 불구하고 저를 자르지 못하는 거죠. 사실 제 아버지께서 리얼판타지아의 제작자중 한 분이기도 하고 해서 저도 리얼 판타지아의 근간이 되는 골격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그렇게 함부로 바꿔도 되는 겁니까?”
“사실 이번 것은 저의 단독행동입니다. 위에서는 더 이상 사이토씨를 강하게 하는 것을 반대하는 처지이지요.아마 이번에 형민씨의 캐릭터를 제 마음대로 조작한 게 밝혀지면 진짜 잘릴지도 모르죠.”
손으로 목이 잘리는 제스처를 취하는 강진, 그러나 별로 진지해 보이지는 않는다. 시큰둥해지는 형민, 엘리트들의 거만함일 것이라고 단정지어 버리는 형민이다.
“그럼 제 캐릭터를 어떻게 하신 겁니까?”
“아, 예, 무력을 조금 정도 더 높이고 모든 AI들이 사이토를 무급운영자의 수준으로 인식하도록 조작한 것입니다. 뭐, 걸리면 모두 원상태가 되겠지만... 사실 이건 정말 명백한 위법행위거든요.”
강진의 말에 형민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위법행위를 한 자도 문제지만 그 수혜자 또한 계정 압류가 확실할 듯 하다.
“걸리게 되면 저도...”
“함께하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쳇...”
혀를 찬 형민은 잠시 후 또다시 그 이상한 타이츠를 입고서 게임기기위에 누워야 했다. 서포터로는 강진 혼자이다. 이번 업그레이드의 설명을 강진에게 들은 형민은 배를 손으로 쓸며 불평을 터뜨렸다.
“아침은 좀 먹고 하면 안 되겠습니까?”
“하하...”
강진의 웃음소리가 멀어져 간다.
“훗, 밥 먹어야지”
로그 아웃을 했던 여관방에서 눈을 뜬 사이토는 익숙한 몸놀림으로 세수를 끝마쳤다. 솔직히 배는 고프지 않다. 배고픔 게이지의 영향... 생각해 보니 그는 저번에 별로 한 짓이 없다. 그냥 쫓기고 쫓기고 쫓기고 쫓기다가 다양한 창상의 콜렉션이 되었을 뿐... 그러나 애써 식당으로 나가 주문을 하는 사이토이다. 주문을 마치고 주방 쪽을 바라보니 저번에 자신을 도미로 착각하고 부엌칼을 휘두르던 주방장이 야채를 자르고 있다. 몇 몇의 유저들이 보인다. 전쟁중이라서 그런지 온몸에 장착된 무기들이 이채롭게 보인다. 그러나 신경쓰지 않는 사이토...
“그곳에 투숙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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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과는 다르게 사이토는 아주 느긋한 표정으로 테이블에 앉아 있다. 요 몇 칠 생각해 본 결과, 예전 가이아의 행동으로 볼 때, 모든 것을 그녀 맘대로 보거나 아무 곳에서나 나타날 수는 없다. 결론은 그녀는 항상 그를 볼 수 있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것... 허겁지겁 찾아다녀 봤자, 장님 코끼리 만지는 꼴이다. 사이토가 주문한 요리가 그의 테이블 위에 얌전히 놓였다. 요리의 풀네임은 ‘닭 엎어 치고 매쳐 목잡아 돌리고 탈의 시킨 뒤 끓는 물에 수장시키다’라는 닭찜이다.
“음음, 먹어 볼까?”
사실 그가 혼자 먹기에는 좀 과한 양이다. 옆 사람이 쳐다보든 말든
사이토는 닭다리를 뜯어 입에 넣었다. 아무런 양념 없이 요리한 듯 하지만, 비린내는 나지 않는다. 아니 그런 냄새가 나는 것이 이상할지도... 한참 닭과 씨름을 하던 사이토는 문득 닭의 맛이 천천히 변하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아주 짠맛... 짠맛이었다.
“냠냠...”
그러나 사이토는 아무 상관없다는 듯 계속 닭을 씹어 댔다. 계속해서 변하는 닭의 맛... 짠맛으로 시작한 닭은 쓴맛, 매운맛, 단맛까지 모조리 그에게 선사하고 있다. 그러나 인상하나 찌푸리지 않고, 열심히 닭을 먹는 사이토, 그는 이미 깨닫고 있었다.
“맛있으신가요.”
열심히 닭을 뜯던 사이토의 왼쪽어깨에서부터 오른쪽 어깨까지 부드럽게 쓸어가는 손이 있다. 영롱하게까지 들려오는 옥구슬 목소리, 그러나 사이토는 오한을 느끼고 있었다. 그 손은 사이토에게 무한한 고통을 선사했던 손이다. 온 세포 하나하나를 고통이라는 사형수가 개별상담을 하듯 뼈마디까지 시린 고통을 안겨준 그 손, 입맛 떨어졌다는 듯 닭을 내려놓은 사이토는 기름 묻은 손을 로브에 슥슥 닦으며 맞은 편 자리를 가리켰다.
“앉으시지. 오카리나”
“더럽군요.”
의자에 살포시 앉는 오카리나는 하얗고 얇은 천으로 만든 듯한 망토로 조심스럽게 옆으로 늘어뜨리고는 사이토를 바라보았다. 전혀 방어구의 의미가 없어 보이는 특이하게 생긴 얇고 하얀 금속갑옷을 걸친 블라우스 위에 껴입은 오카리나... 얼굴은 가이아이건만 칠흑 같은 머리색만이 틀리다.
“식성이 독특하네요.”
“뭐, 당신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맛이군.”
웨이트리스가 나와 형민의 식탁을 치운다. 마주 본 상태의 두 남녀,
서로 아무 말 없이 쳐다보기만 한다.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린 사이토는 창밖 풍경을 바라보았다. 한낮으로 향하는 듯 햇살이 뜨거워 보인다.
“가이아는 잘 있나?”
대답 없이 그를 빤히 쳐다본다. 그녀의 눈은 웃고 있다. 그가 보기에 그녀는 확실히 가이아와 틀린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표정... 가이아는 원래 표정 짓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지금처럼 눈만 살짝 웃는 듯한 고난위도의 표정은 그녀에게 무리이다.
“그녀는 내가 흡수 했어요.”
“먹어 치웠다고 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조금 정도 고상한 표현을 써도 좋잖아요.”
잠시간의 침묵, 사이토가 묻는다.
“네가 일하던 그 조직은 와해된 듯 하더군.”
“알고 있어요.”
“곧 리얼 판타지아가 초기화 된다는 것도 알고 있나?”
줄곧 웃는 표정이던 오카리나의 얼굴에 순간 차갑게 변했다. 몰랐던 것일까? 꽤나 비싼 정보 제공으로 얻어낸 표정의 변화였기에 사이토는 흥미 있는 표정으로 그녀를 관찰했다. 예상으로는 별로 삶에 대한 애착이 없어 보이는 그녀였건만, 의외로 삶의 대한 의욕이 상당한 듯 하다. 물론 그것은 게임의 초기화가 그녀의 죽음이라는 등식이 성립될 때의 말이지만...
“초기화 되면 사라지는 건가?”
“미안하게도 절반정도만...”
실망이 가득한 사이토의 얼굴, 조금 과장된 표정을 섞었건만, 얼굴을 찡그린 오카리나는 그냥 쳐다보기만 한다. 재미없다는 듯 표정을 짓는 사이토지만, 현재 사이토의 머리는 다른 생각에 잠겨 있다. 초기화 되어 사라지는 것이 절반 정도라고 게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하나 분명한 것은 그녀에게는 현재의 리얼판타지아에서 뭔가 지키고 싶은 것이 있는 듯 하다. 그것이 무었이든 간에...
“초기화는 언제지요?”
“가르쳐주면 가이아를 풀어줄래?”
“아뇨. 초기화가 싫기는 해도 그리 아쉬운 건 없어요.”
담담한 듯 그녀는 다시 표정이 사라졌다.
“난 싫어. 잃는 것도 싫고, 가이아를 만나서 이야기 할 것도 좀 있거든.”
“그래요? 나한테 말해 봐요.”
“싫어.”
다시금 마주보는 두 남녀, 사이토가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자, 오카리나도 공격할 의사는 비추지 않았다. 그럭저럭 분위기가 잘 돌아가는 듯하자 사이토는 웨이트리스에게 가벼운 차를 두 잔 시켰다.
“이곳에 무언가 소중한 것이 있나?”
“아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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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난진실,조용히 아파하는 연인들..
순간 오카리나의 얼굴이 흠칫 한다. 주위를 열심히 둘러보는 오카리나, 방심한 틈을 타 뒤춤에 감춘 디스코어로 목을 잘라 볼까도 생각해 봤지만, 그러기에는 그녀의 갑옷이 마음에 걸린다. 게다가 지금으로 봐서 그녀와의 승산은 거의 없다. 겁먹는 것 따위가 아니다. 그는 충분히 조심하고 있는 것이다.
“함정인가요?”
오카리나가 의자에서 일어나자 사이토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그녀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아니, 영문은 알고 있었지만, 내색했다가는 대판 싸움 날 것을 알고 있다. 분명 강진이 슬슬 주변의 필드를 봉쇄하고 있으리라. 형민은 속으로 강진에 대해 욕을 하며 그녀에게 말했다.
“모르겠는 걸?”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 한다. 그러나 이제 막 1시간 정도가 지났다. 앞으로 버텨야 할 시간은 3시간... 주위를 둘러보던 오카리나가 순간 몸을 돌려 사이토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손과 발은 천천히 회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지만, 그녀의 얼굴서는 연신 작은 미소가 떠날 줄 몰랐다. 그녀의 손에 은색으로 빛나는 아주 작은 빛무리가 아른거렸다.
“젠장!”
사이토는 재빠르게 옆으로 뺐다. 뒤쪽으로 들려오는 요란한 소음, 그녀에게서 발사된 빛무리는 그들이 앉았던 테이블을 완전 분쇄시켜 버린 뒤이다. 어리둥절하며 이쪽을 바라보던 두 유저가 그녀의 빛무리에 닿아 갈기갈기 찢겼다. 승산이 없음을 판단한 사이토는 재빨리 몸을 빼 건물 밖으로 나섰다.
“오호!”
오카리나는 박력있게도 문을 그대로 박살내며 바깥으로 쏟아져 나왔다. 사이토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은 무표정 그 자체... 입만이 작은 미소를 짓는 다는 것도 괴기스럽다. 사이토는 골목의 벽을 박차고 이 층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갔다.
“응?”
한창 오카리나에 집중해야 할 사이토는 멀리 보이는 북쪽 성문을 보며 잠시 주춤했다. 수많은 유저들은 성벽에 붙어 서서 어딘가를 주시하고 있다. 그 밑으로 보이는 더 많은 수의 유저들... 말을 탄 채 일렬로 도열하고 있는 이들도 보이고, 한 창 신성마법을 외우고 있는 한 무리의 성직자들도 보인다.
“아차! 아리유까지 밀렸다고 했지?”
그제야 이유를 깨달은 사이토는 뒤에서 올라와 그를 향해 손을 뻗는 오카리나를 피하고는 냅다 다른 건물로 자리를 옮겼다.
와장창창!
그의 발 밑 집 한척의 옆구리가 통째로 무너져 내렸다. 휭 하니 뚫려버린 시린 옆구리를 보이는 집... 두 번째 건물로 내려 선 사이토는 와이어를 굴뚝에 걸고 그 위에 내려섰다.
“오! 역시 쌘데!”
“여유 만만이군요!”
그녀에게서 쏟아져 나오던 은색의 빛무리는 이제 채찍과 같은 형태로 그녀의 손에 들려 있었다. 거의 20미터를 단번에 찔러오는 빛의 채찍, 굴뚝의 위쪽이 통째로 잘려 나간다. 와이어를 이용해 몸을 한층 뒤로 내뻗은 사이토는 숨을 가다듬었다. 협상은 완전히 결렬된 듯 하다. 머리가 따끈따끈 해지는 게 슬슬 몸에 발동이 오기 시작했다.
“간다!”
와이어로 몸을 쭉 당긴 사이토는 전면의 오카리나에게 소리치며 그대로 그녀에게 돌진했다. 비웃음을 치며 채찍을 뻗는 오카리나...
“제어 코드 해제!”
채찍이 사이토에게 닿으려는 순간, 사이토는 강진이 장치해 준 능력을 개방시켰다. 이런 능력은 흔히 필살기라고 부른다. 필살기를 아무 때나 쓰면 필살기가 될 수 없는 법... 처음 그녀를 만나기 위해 들어왔을 때에는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경비들에게 당했다. 그러나 이제 그녀가 눈앞에 있다. 사이토는 힘을 개방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 변화가 없다. 그러나 공중에 뜬 상태에서 채찍을 피하며 그녀에게 돌진하는 사이토는 이미 헬리오스와 헬레네를 뽑아들고 있었다.
카가가각!
“윽!”
처음으로 그녀의 입에서 비명이 흘러 나왔다. 헬레네를 피했다고 생각한 순간 단도의 두 번째 날에 추가 타격을 입은 것이다. 봐줄 생각이 없는 사이토는 더욱 빠르게 그녀에게 파고들며 연속공격을 퍼부었다.
“크윽!”
오카리나는 당황했다. 그녀의 눈에 보이는 사이토는 잔상으로 인해 두개로 보인다. 게다가 처음 두개로 시작했던 잔상이 세 개로 나뉘었다. 보통 하나의 공격은 흐름과 끊김으로 나뉜다. 한 개의 동작이 다음 동작으로 물 흐르듯 이어지며 몸의 중심이나 힘의 집중이 흩어 질 때 그 동작은 끊기는 것이다. 그러나 사이토에게는 지금 그 페널티가 존재하지 않았다. 엄청난 스피드로 동작과 동작 사이를 이어버린다. 눈이 쫓음과 함께 동작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 게다가 그 스피드로 인해 게임 시스템이 따라가지 못한다.
“악!”
사이토의 손이 순간 사라진 듯 했다. 그러나 잠시 후 그 손은 이미 그녀의 어깨를 찌르고 있었다. 헬레나에게 어깨를 내 준 오카리나는 침음성을 흘리며 연신 뒤로 물러섰다. 긴 잔상을 뿌리며 그녀의 눈을 어지럽히는 헬리오스... 다시금 사라진 헬리오스는 그녀의 복부를 가르고 있다.
퍼버버벙!
순간 사이토의 주먹이 어떤 공간에 막힌다. 그를 향해 손을 뻗고 있는 오카리나, 그 와중에 방어막을 형성 시킨 듯 하다. 사이토의 연환공격을 막아낸 오카리나는 잠시 행동을 멈췄다. 그러나 그것 또한 그녀의 오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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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난진실,조용히 아파하는 연인들..
“그레이브 스피릿!”
“아악!”
그레이브 스피릿은 오카리나의 방어막을 우습게 뚫어버리고서는 그녀의 배를 갈라 버렸다. 힘없이 밑으로 떨어지는 오카리나... 그러나 봐 줄 수 없는 사이토는 액션 피규어를 이용해 그녀의 뒤를 잡았다. 사이토의 그레이브 스피릿이 다시 한번 떨어지는 오카리나의 배에 작렬했다. 힘을 잃고 계속해서 떨어지는 오카리나... 마지막 일격을 가하기 위해 사이토는 뒷춤의 디스코어를 잡았다. 목표는 오카리나의 잘록한 허리... 단 한번에 동강 내려는 듯 발검의 형태로 그녀의 허리를 갈랐다.
카칵
그녀의 앞에서 뻗어 나온 여섯 개의 은색 빛무리가 사이토의 디스코어를 막아냈다. 휘두르는 괘적에 걸린 듯 검신의 절반이 싹둑 잘려 나갔다. 혀를 차며 뒤로 물러선 사이토... 가이아를 분쇄해 버렸던 오카리나의 여섯 빛줄기는 그로써도 대책이 없었다.
땅으로 내려선 오카리나는 그대로 빛무리의 보호를 받으며 한 동안 고개를 숙인 채 일어서지 않았다. 뒤 늦게 사이토와 오카리나가 있었던 지붕의 파편들이 밑으로 떨어져 내렸다. 사이토가 그녀를 몰아붙이던 위치 그대로 부서져 버린 지붕...
“대단하군요. 대단해요.”
힘겹다는 듯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는 오카리나, 온몸의 난 상처를 조심스레 회복시킨다. 아무리 무한의 파워라 해도 현재 그녀를 이루고 있는 것은 일반의 캐릭터이다. 사이토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첫 개시부터 날이 잘려버린 디스코어를 다시 뒤춤의 검집에 집어넣었다.
“도대체 의도가 뭔가요?”
몸을 완전히 회복시킨 오카리나는 더 이상 방심하지 않겠다는 듯, 여섯 개의 빛무리를 사이토에게 겨냥하며 물었다. 헬리오스와 헬레네로 오카리나를 겨누는 사이토...
“가이아를 놓아 줘.”
사이토는 몸을 최대한 숙였다. 여차하면 튀어 나간다. 이 때만큼은 정말 식스센스에 온 신경을 쏟았다. 이번의 그녀와의 격돌에서 알아낸 사실이 몇 개 있었다. 현재 전체적 공격력은 사이토의 우세라는 것이다. 사이토는 속도의 한계를 벗어난다 해도 효과를 발휘하지만, 이 세계에서 나타낼 수 있는 최대 스피드만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오카리나는 질적으로 틀린 것이다.
“그녀가 당신에게 뭔데! 당신에게 그녀는 AI일 뿐이야. 단순히 초기화가 싫어서 그런 건가요? 미
안하게도 그녀를 놓아 준다고 해도 내가 존재하는 한 초기화는 변하지 않을껄!”
그녀에게서 처음 듣는 격정적 목소리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지금까지 그녀를 관찰해온 사이토로써는 의외의 모습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을 관찰할 때가 아니다. 그녀가 손을 들자, 예의 주위로 하나 둘씩 살기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공기가 따끔거리기 시작한다. 예전에 사용했던 그것이다.
“그 정도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난 가이아에게 해야 할 말이 있다.”
잠시 둘 사이에 차가운 바람 한 줄기가 스쳐 지나갔다. 몇 몇의 유저들의 그들을 지나쳐 성벽 쪽으로 달려간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테이머들의 몬스터들도 간혹 눈에 띄고 마법의 영향으로 빛의 폭발이 가끔씩 보인다. 아리유의 공성전도 막바지에 달한 듯 보이지만, 사이토와 오카리나가 서 있는 이 곳은 그 둘만의 공간이다.
“그녀가 아직 존재한다고 어떻게 단언하지요? 후훗, 꽤 궁금하군요. 그녀에게 해야 할 말이 무언지...”
그녀의 머리 위쪽에서 대지를 찢을 듯 살벌한 괴성이 울려 퍼진다.
오카리나의 머리 위 상공으로 눈을 돌린 사이토는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원 주인들이 노발대발 하겠군.”
“원래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살았어요.”
아리유의 상공을 날아다니던 몬스터들, 곧 카모프와 카마프라하 왕국의 테이머들이 불러들인 몬스터들이 모두 그녀의 머리 위 상공에서 멈춰 섰다. 적게 잡아도 수백... 그 모든 몬스터들이 모두 사이토 쪽을 바라본다. 일반인들이 본다면 오금이 저리고 바닥에 주저 앉을 상황... 그러나 그것을 바라보는 사이토는 초연할 따름이다. 도시 한가운데로 뚫린 길로 수십의 경비들이 손에 손에 살벌한 무기들을 갖추고 사이토에게 달려오고 있다. 회심의 미소를 짓는 오카리나... 처음 사이토가 나타났을 때 그들을 이용해서 꽤 재미있게 사이토를 곯렸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건가요?”
오카리나는 그녀의 좌 우 위로 포진 된 거대한 병력을 자랑스럽게 쓸어보며 사이토를 오만하게 쳐다보았다. 지금 그는 그의 식스센스를 통해 들어가는 엄청난 살기에 얼어 있을 것이다.
“당신은 나를 절대 이길 수 없어.”
“글쎄, 그럴까?”
유들유들하게 받아 넘기는 사이토, 오카리나는 눈매를 날카롭게 굳히며 그에게 말했다.
“내 일을 방해하지 말아요. 지금 이 시간 부로 다시 보지 않기를 빌겠어요.”
오카리나가 사이토를 향하여 손을 뻗었다. 수백의 몬스터들과 수십의 경비병들이 그를 향해 돌진한다. 그러나 이미 자세까지 풀어버린 사이토는 오카리나를 뚫어지게 노려보며 똑같이 손을 들었다.
사이토의 느닷없는 행동에 오카리나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죽음을 기다리는 이 치고는 너무나 여유롭다. 혹시나 주변의 다른 유저들이 있을까하고 둘러보았지만, 그 누구도 없다.
“공격...”
사이토는 오카리나에게 들릴까 말까 한 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사이토에게 달려들던 몬스터들의 앞 열이 우수수 땅으로 떨어진다. 땅으로 떨어진 몬스터들의 일부는 곧 일어나 다시금 사이토에게 덤벼 들었지만, 그것들도 곧 붉은 빛과 함께 소멸되었다.
“이... 이것은?”
사이토에게 달려들던 경비병들은 모두 사이토를 보호하는 듯한 진형을 취한 채 오카리나를 향하고 있었다. 방금 전 공격도 활을 든 경비병들이 한 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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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난진실,조용히 아파하는 연인들..
“게임사를 개입시켰군요.”
“지금의 나에겐 방법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
사이토가 다시 한번 손을 번쩍 들어올리자 롱소드를 든 경비병들은 모두 오카리나를 향해 검을 겨누었다. 경비병들은 총 세 가지로 분리된다. 아주 간단하게 활을 든 경비병, 창을 든 경비병, 그리고 롱소드에 작은 스몰실드를 든 경비병... 근 70여명에 달하는 경비병이라 한다면 지금 당장 성밖에서 진치고 있을 카모프왕국의 군세마저도 두려워 할 전력이다. 그렇기에 유저들간의 전쟁에 각 도시의 경비병들은 끼어들지 않는다.
“가라!”
“공격!”
수백에 달하는 몬스터들과 경비병들간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활을 든 경비들은 쉴새없이 하늘의 몬스터들을 떨어뜨리고 검을 든 경비병들은 그것들을 차근차근 밟아 버린다. 그들에게 공포 따위는 없다. 당장 눈 앞에 몬스터의 앞발이 날아와도 침착하게 활을 겨누고 사살해 버린다. 한창 전투를 벌이다가 자신의 몬스터가 컨트롤이 안되어 이 쪽으로 달려오던 몇몇 테이머들은 갑자기 도시 안쪽에서 벌어진 이 엄청난 전투에 끼어들지 못하고 슬금 슬금 물러나고 있다.
“크악!”
롱소드를 휘두르던 한 경비병의 목이 하늘에서 내리꽂힌 그리폰에게 잘려나갔다. 지금 사이토를 공격하고 있는 몬스터들 또한 여타 다른 필드의 몬스터들과는 틀린 종류이다. 그것들은 모두 유저들에 의해 키워진 특별한 몬스터들... 상황은 점점 난전으로 향하고 있다. 오카리나는 전황이 슬슬 그녀에게 불리해지기 시작하자 여섯 개의 빛줄기를 경비병들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대번에 밀리기 시작하는 경비병들... 그녀의 빛줄기에는 그 어떤 방어구도 들지 않는다. 실드를 가져다 대면 실드가 팔을 가져다 대면 팔이 그대로 잘려 나가는 것이다. 물론 그녀의 빛줄기가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날아다니기에 몬스터들도 그녀의 손길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몬스터들과 경비병들의 숫자가 전혀 틀리기에 상황은 점점 힘들어 지기 시작했다.
“당신은 인간이야! 인간과 AI의 사랑 따윈 비극의 재료일 뿐이야!”
오카라나는 미친 듯이 빛줄기를 던져 대며 외쳤다. 이제는 피아를 구분하지도 않는 듯 그녀의 주변은 그야말로 초토화로 흐르고 있다. 사이토는 이미 난전에 묻혀 보이지도 않는다.
사이토는 그에게 날아드는 애인션트 크로우의 발톱을 피하며 멀리 언 듯 언 듯 보이는 오카리나를 노려보았다. 그도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가끔 감정이 이성을 넘어설 때가 있다. 그도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그것을 일부러 무시했다.
그러나 이제 그의 마음은 굳혀 졌다. 결과가 어찌 되던 간에 가이아와는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야 한다. 혜미는 그에게 잘 다녀오라고 했다. 그 자신도 마음속에 갈등을 가진 형민은 싫다고 했다. 진정한 한마음으로 한 그 자신만을 바라봐 주길 바라는 혜미... 그리고 가이아... 잠시 딴생각에 잠겨 있던 사이토의 머리위로 은색의 빛줄기가 지나갔다.
“너에게 판단 따위를 바라지는 않는다!”
검을 든 경비병들과 그들과 난전을 벌이던 몬스터들의 바다가 오카리나를 향해 좌우로 쫙 찢어진다. 그녀를 향해 돌진하는 창을 든 경비병들... 사이토는 그 동안 아껴 두었던 창 경비병들을 이용해 거대한 창의 진형을 만들었다. 몬스터들은 모두 도외시 한다. 오로지 목표는 하나 오카리나뿐이다. 치켜든 창들은 그들의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들을 찢으며 오카리나를 향해 돌진했다. 9계급에 버금가는 창 경비병들의 일제돌격은 그 무엇이라도 찢을 듯 강력했다.
쫘자작!
돌격의 가장 전열에 섰던 두 경비병의 허리가 잘려 나갔다. 그들의 시체가 채 빛으로 화하기도 전에 후열의 경비병들 또한 연속해서 허리가 잘려나갔다. 오카리나의 무기는 그 예리함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순식간에 8명의 경비병들이 빛으로 화했다.
오카리나의 입가에 비웃음이 가득하다. 다른 이라면 속겠지만, 그녀에게는 그가 경비병들 틈에 섞여 있는 것이 보인다. 돌격대열의 위로 세 개의 인영이 뛰어 올랐다. 역광으로 인해 보이지는 않지만, 그녀는 그들 중 사이토가 끼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잘 가요!”
오카리나는 인영들을 향해 세 개의 빛을 날렸다. 그녀가 쓰는 빛줄기의 이름은 쇼메이 이다. 현문이 그녀를 위해 만들어 준 무기, 그의 일본식 이름을 따서 만들어 주었다. 게임 내에서 구현할 수 있는 날카로움의 최정점을 지닌 무기이다. 세 개의 인형이 가로 세로로 잘려 나갔다.
“으응?”
오카리나는 갈라지는 인영들 사이로 보이는 또 하나의 그림자를 발견했다. 세 명의 경비병을 방패막으로 해서 그녀의 눈을 현혹시켰다. 사이토는 오카리나를 겨냥하여 주먹을 쭈욱 당겼다.
“그레이브 스피릿!”
푸른 빛이 감도는 거대한 검이 그의 손에서 뻗어 나왔다. 그러나 오카리나는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다.
“어딜!”
그레이브 스피릿을 피해낸 오카리나는 다시 세 개의 쇼메이를 날렸다.
“팬텀 피큐어!”
그레이브 스피릿을 취소시킨 사이토는 팬텀 피큐어로 그녀의 뒤를 잡았다.
“컥!”
사이토가 주먹을 뻗기도 전에 이미 오카리나는 그의 목을 붙잡고 있다. 이미 그의 행동 방식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는 오카리나 이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오카리나는 사이토의 귓가에 속삭였다.
“다시 한번 예전의 고통을 느껴보고 싶지 않아요?”
“크윽!”
목을 타고 그 때의 그 고통이 몸 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격렬하게 떠는 사이토... 횟수로는 두 번째건만 고통은 항상 참담할 정도로 강렬하다. 고통을 참기 힘든 듯 사이토는 그녀의 팔을 두 손으로 붙잡았다. 온 몸이 불타오르는 것 같다.
“악!”
오카리나의 비명소리... 사이토는 그 와중에도 입가에 질긴 미소를 짓는다.
“큭..큭큭... ”
사이토의 배에는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리고 그의 맞은 편 오카리나의 배에는 여섯 개의 화살이 박혀 있었다. 오카리나가 손을 놓자 사이토의 몸은 힘없이 쓰러졌다. 아무리 무급운영자의 로브를 지녔다 해도 배가 뚫렸다는 것은 참기 힘든 것이다. 다시금 몇 대의 화살이 날아와 그녀의 머리와 가슴에 꽂혔다. 창의 진형 한 가운데 숨겨 둔 여섯명의 활경비병들... 그들의 사이토의 명령을 아주 충실히 수행하여 사이토와 오카리나를 꿰뚫어 버렸다. 사이토는 그 자리를 벗어나려는 오카리나의 다리를 붙잡았다.
“선물은 마저 받아야지!”
화살은 계속해서 그녀에게 날아들었다. 한대의 화살이 그녀의 팔에 꽂혔고, 그녀의 가녀린 팔을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뜯겨 나간다. 이미 가슴에는 스무 개 남짓의 화살이 고슴도치처럼 박혀 있다. 머리에도 네 다섯 개의 화살이 박힌 상황, 활경비병들의 궁술솜씨는 정말 대단할 정도였다. 오카리나의 통제력이 사라진 듯, 몬스터들은 하나 둘씩 자리를 이탈해 주인에게 돌아간다. 상처가 거의 수복되어 가는 것을 느낀 사이토는 일어나 그녀의 얼굴에 헬리오스와 헬레나를 박았다. 뒤쪽으로 쓰러지는 오카리나... 이젠 거의 제 모습을 찾기 힘들 정도이다.
“그녀를 놓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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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입니다. ^-^; 사실..이 틀전에 여기까지 써 놓고 빈둥거린 데자부..-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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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난진실,조용히 아파하는 연인들..
쓰러지는 오카리나, 그녀의 손이 무언가를 잡듯 공중을 허우적 거린다. 온몸이 고슴도치가 되어 쓰러지건만, 단 하나 얼굴사이로 보이는 눈은 여전히 웃고 있다.
“큭!”
그의 몸이 두둥실 떠올랐다. 예전에 당해봤던 그것, 낭패를 당한 사이토는 온몸을 뒤틀며 저항했지만, 압박은 풀리지 않았다. 사이토가 버둥거리는 사이, 그의 옆으로 작은 입자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쓰러진 오카리나의 위로 경비병들의 창과 검이 떨어져 내렸다. 공격 목표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기에, 경비병들은 그녀를 흡사 편육과 같이 만 드려는 듯 연신 칼질을 해댄다.
공중에 뜬 사이토는 빛무리가 하나로 뭉치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제 가이아가 나타날 것이라는 생각에 사이토는 당황했다. 막상 생각해 보니 만나서 어떻게 말 할지 모르겠다. 테이머들의 종속수들은 모두 떠나가고 경비병들도 할 일이 끝났다는 듯 하나 둘 흩어졌다. 빛무리는 이제 하나의 사람 형체를 만들어 냈다. 목을 가다듬는 사이토, 게임 안이건만 긴장감은 그대로이다. 이윽고 가이아의 형체가 드러났다. 감긴 눈에 얇게 걸친 살풋한 속눈썹, 하얀 천이 그녀를 감싸기 시작한다. 손끝이 생겨나고 발끝이 서서히 형상이 드러난다.
“가...이아”
사이토는 힘겹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꽤나 오랜만이었다. 무었을 먼저 말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결합이 모두 끝난 가이아가 눈을 떴다. 그녀의 손쪽에는 아직 무언가 만들어질 것이 남았는지 다시금 빛줄기가 모이기 시작했다.
“아깝네요.”
“응?”
가이아가 내뱉은 의외의 첫마디, 그제서야 사이토는 자신이 아직 공중에 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닥에 널부러져 있어야 할 오카리나는 온데 간데 없다.
“너..너는?!”
“저요? 오카리나라니까요.”
“이..이런 제길!”
머리카락의 색이 검은 색으로 물들어 간다.
“호홋, 뭔가 착각하신 것 아닌가요? 아까의 오카리나도 저입니다. 여기 있는 것도 저구요. 단지 당신의 그레이브 스피릿을 피하기 위해 더미를 만들어 본 것 뿐이에요. 지금까지 알아본 당신의 데이터는 절대 방심하고 싶지 않은 수준이었다고요.”
사이토에게 당한 것이 별로 분하지도 않는 듯 오카리나는 가볍게 이야기 했다. 오카리나는 땅으로 내려서며 손을 하늘위로 뻗었다.
“필드...”
그들의 반경 20미터 안으로 작은 반구의 원이 생겼다. 오카리나의 손으로 모이던 빛이 어떤 물체를 만들며 천천히 사그라들었다. 손바닥 만한 크기...투명한 구슬 그 안에는 지금의 오카리나, 아니 나체의 작은 가이아가 잠자듯 들어가 있었다.
“음... 감명 받았어요. 당신의 그 집념... 자! 상품이랍니다. 마음껏 보세요.”
“제기랄!”
뭔가를 던져 보려고도 했지만, 역부족이다. 발버둥치는 사이토, 꽤나 꼴이 우습다. 가이아는 잠든 듯 구슬 안에서 산모 뱃속의 태아처럼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오래 있지는 못하겠네요. 누군가 시스템 외부에서부터 저를 구속하려고 드니...”
조용히 혼잣말을 내뱉은 오카리나는 사이토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녀를 찾고 싶으세요?”
“그래.”
사이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오카리나는 잠시 후 말을 이었다.
“어차피 초기화될 이 아이와 리얼 판타지아, 게임이 초기화 된다면, 저 또한 무사하지는 못하겠죠. 저의 근간이 되는 모든 것이 사라지니... 그리고... 저의 모든 사랑과 고통의 추억들도 사라지겠죠.”
오카리나는 사이토를 별로 핍박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지 더 이상 죄이는 것을 멈췄다. 반항을 멈춘 사이토 오카리나의 행동에 그는 공중에서 그녀를 내려다 보았다. 그녀 또한 사랑의 고통이 있었을까? 게임 밖으로 나가면 강진에게 한 번 물어야겠다고 마음먹으며 사이토는 오카리나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당신의 가이아의 대한 마음을 시험해 보겠습니다. 어차피 현실로 2주가 남았겠죠. 그 전까지 저와 가이아를 찾아보세요.”
가이아가 천천히 그녀의 품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멀리 성벽 쪽에서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카마프라하의 수성하는 측의 승리인 듯, 성벽에 다닥다닥 붙은 유저들은 모두 손을 번쩍 치켜들고 있다.
“저는 리얼 판타지아의 정점에서 당신을 기다리겠습니다. 그곳에서 당신을 증명해 봐요.”
오카리나의 눈이 살포시 웃고 있다. 파격적인 제안과 함께 그녀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언 듯 언 듯 예전 가이아에게서 보던 표정들이다. 그녀의 얼굴과 이전 가이아의 얼굴이 겹쳐 오는 것은 왜일까? 사이토는 그녀 또한 과거의 가이아 였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눈에 습한 장막이 끼기 시작한다.
“저도, 이제 지쳤답니다. 그럼... 그 때 다시 뵙죠.”
오카리나는 천천히 사라져갔다. 그녀의 제안에 생각에 빠져 있던 사이토는 심각하게 굳은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
“오카리나...”
“네.”
“힌트 줘.”
“...”
잠시 삐끗하는 오카리나, 그러나 사이토는 그녀가 가이아와 성격이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리 경험이 많다고 해도 기본적인 성격은 바뀌지 않았으리라.
“힌트 내놔. 힌트 내놔. 힌트를 내놔라.”
“후우, 히..힌트라면... 음, 리얼판타지아의 정점, 끝, 모든 이가 꿈꾸는 곳... 모든 것의 절정 이것입니다. 아무튼 저는 그 장소에서 당신을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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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난진실,조용히 아파하는 연인들..
오카리나가 사라져갔다. 하얀 먼지와도 같이... 그녀가 사라짐에 따라 사이토 또한 천천히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문득 하늘에서 차가운 물이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눈물을 대변하는 양... 대신 아파해주는 듯... 그렇게 빗방울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대지를 적셨다.
게임 아웃을 한 형민은 게임 안에서 있었던 일들을 강진에게 소상히 말해 주었다. 죽음 직전까지 몰아 붙였건만, 그것은 가짜였다는 점, 그렇지만 오카리나가 최후의 제안을 하고 갔다는 점 등, 형민의 이야기를 듣던 강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특히나 그는 오카리나의 마지막 말에 관심을 가졌는데, 사실 오카리나가 한 그 수수께끼는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막상 그 수수께끼의 답이라는 것 또한 그에게도 부담이었다. 게다가 오늘의 사건, 즉 게임 안에서의 사건은 아마 엄청난 해일이 되어 게임사에 몰아 칠 것이다. 아무리 오카리나를 잡기 위한 것이라 하지만, 자신들도 불법적인 곳이 없잖아 있지 않은가... 상부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촉각을 곤두세워야 할 때이다.
“강진씨! 강진씨! 무슨 생각하십니까?”
형민이 딴 생각에 빠져있는 그를 현실로 불러들였다.
“아? 아! 죄송합니다. 잠시 딴 생각을 했습니다.”
“궁금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일단 오카리나가 말한 그 리얼 판타지아의 정점이라는 게 뭡니까? 그리고 오카리나... 그러니까 과거 가이아의 역할을 하던 AI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겁니까?”
과거 리얼판타지아를 관장하던 AI에게 일어났던 일... 강진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한 대 꺼내 물었다. 이야기가 길어질 듯싶다. 그 일은 그가 이 회사에 들어오기 전 있었던 일이다.
“간단히 이야기 하자면 당시의 가이아는 현재의 사이토씨와 가이아와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었습니다. 아니 거의 같다고나 할까요? 저도 직접 겪은 것이 아닌 저의 아버지에게 들었던 이야기랍니다. 그 때 당시에는 지금은 회사 원로와 같은 신분인 그 분들이 직접 게임을 관리했으니까요. 아무튼 그 당시 가이아는 지금의 가이아처럼 게임상의 제약이 별로 없었습니다. 당시는 워낙 기틀만이 자리 잡힌 상태의 리얼판타지아 였기에 가이아는 부족한 일손을 채우는 일도 도맡아 해야 했지요.”
“부족한 일손이라니요.”
형민은 타이츠를 천천히 벗으며 물었다. 타이츠 안쪽에 흥건히 묻어 있는 땀들로 인해 거북한 느낌을 참을 수 없다.
“ 어떤 시스템상의 허점으로 유저들의 생활이 불편해 질 경우, 가이아는 일반 유저로 위장하여 그들을 이끌어 주기도 했습니다.
또 지형상의 문제로 A지점에서 B지점으로의 이동이 불가능해 진 경우 그녀는 그 곳을 임시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만들거나...뭐 그런거죠. 당시는 지금과 같이 2급 운영자들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그녀는 유기적으로 그런 일들을 처리해야 했습니다. 그렇기에 활동의 제약이라는 것은 없었지요.“
강진의 말에 형민은 슬슬 머릿속에서 가닥이 잡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강진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그곳에서 문제가 시작되었습니다. 가이아는 어떤 플레이어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1급 AI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일이죠. 당시 게임 운영자들은 그 일을 그리 나쁘게 보지 않았답니다. 그녀의 그런 모습이 그리 나쁘게만도 보이지 않았거든요.”
“그래서요?”
“버림 받았습니다. 철저하게... 어쩌면 그 유저의 현명한 선택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는 가이아를 단순히 게임상의 도움을 주는 동료, 혹은 조금 발전하더라도 그냥 단순한 사이버 생명체와의 간편한 사랑정도로 생각한 거지요. 그리고 폭주였습니다.”
손으로 펑 터지는 시늉을 하는 강진, 형민은 입맛이 씁쓸해졌다. 지금의 그와 너무 비슷한 상황이 아닌가... 물론 그 자신은 가이아를 단순한 사이버 생명체와의 간편한 사랑으로 생각한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이 책임질 역량이 되지 않는다면 절대로 그 한계선 이상으로 들어가기를 싫어...아니 무서워하는 성격인 것이다. 그런 성격의 자신이 지금 이런 문제에 봉착해 있다. 문득 강진이 빨고 있는 담배 연기가 메케하게 그의 코를 자극했다.
“그리고 그녀가 말한 최후의 정점이라는 것은, 사실 이번 전쟁 이벤트가 끝나면 내 놓으려는 업데이트입니다.”
“업데이트요?”
“예, 그녀는 이미 알고 있는 듯 하군요. 그 프로젝트를... 바로 리얼판타지아의 모든 퀘스트의 정점이 달하는 최종 퀘스트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그렇군요!”
이야기는 의외로 쉽게 풀렸다. 그 것은 이번 업데이트의 하나인 최종 퀘스트라고 한다. 강진이 형민의 말을 듣고 곧 바로 그것임을 알아차린 것은 그녀가 말한 그 수수께끼는 사실 그 업데이트의 이름과 똑같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뒤 강진이 말 한 이야기는 형민을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총 스토리 퀘스트 130여개... 서브 퀘스트들을 제외한 그 중 굵직 굵직한 것들만 따져도 37개나 된다는 것이다. 그 것들을 해결하기 전까지는 최종 퀘스트는 요원한 것이다. 게다가 사이토는 리얼판타지아의 배경 지식 그러니까 게임 전반의 스토리 따위는 모른다. 아니 배울 틈도 없었다. 2주라면 게임시간으로는 반년... 강진의 말로는 회사에서 클리어 시간을 연구해 본 바... 게임시간으로 아무리 적게 잡아 게임시간으로20년이 걸린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최종 보스 퀘스트는 더욱 황당하다. 강진 또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그 퀘스트의 한 부분을 기획하는 일로 참여해 본 바, 퀘스트 수준은 지금까지의 퀘스트는 고양이 수염 다듬기라고 단적으로 표현했다.
“그런데, 그것들이 전쟁 후 업데이트가 된다면, 날짜가 맞지 않네요. 분명 전쟁이 끝난 후 곧바로 초기화 된다고 알고 있는데요. 그렇게 되면 그 최종 보스 퀘스트는 현재 없는 것 아닙니까?”
시간상으로 오차가 존재했다. 강진의 말에 따른다면, 오카리나는 지금 있지도 않은 퀘스트에서 그 들을 기다린다는 말이다. 형민에 말에 강진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사실 최종 퀘스트는 이미 95프로 이상 업데이트 되어있는 상태입니다. 단지 이번에 업데이트 하는 것은 입구일 뿐이지요. 충분히 말이 됩니다.”
강진에 말에 형민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다시금 생각에 빠져 들었다.
그 수십 수 백 개의 퀘스트 들이라니... 게임시간으로 아무리 반년이라도 무리가 따르는 양이었다.
“하아... 갈수록 태산이군요. 혹시 오카리나는 제가 그것들을 한개도 건드리지 않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을까요?”
“글쎄요. 그건 오카리나만이 알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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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난진실,조용히 아파하는 연인들..
다음날 강진은 형민에게 조금 기뻐할 만한 소식과 매우 기분 나빠할 소식을 가져왔다. 첫째, 조금 기뻐할 만한 소식이라는 것은 사이토 캐릭터는 이미 최종점에 가까울 정도로 퀘스트가 해결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그의 할아버지가 과거에 해결한 것들... 그리고 매우 기분 나빠할 소식이라는 것은...
이사회에서 이번 사건을 빌미로 특수팀을 해산시켰다는 것이다. 물론 회장쪽의 파벌에서는 그것을 극구 반대했지만, 이사회를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쩔 수 없이 다음날까지 구건물은 회사로 내 줄 판이 된 것이다. 그와 함께 사이토 케릭터도 원상복구, 일은 점점 어렵게 되어 가고 있었다.
그 날 저녁 형민은 강진과 함께 리얼판타지아의 현관문을
나섰다. 사실 강진이 형민에게 뒤늦게야 말 한 것이 있으니,그가 리얼판타지아사에서 잘렸다는 것이었다. 가이아에 대한 관리 소홀과 함께 이번에 있었던 사건의 대규모 항의건의 책임을 지게 되어버린 강진이다. 솔직히 이번 사건은 잘 무마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회장에 반대하는 파에서 흘러나온 유언비어들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그가 희생양이 되어 버렸다.
단 하나의 다행이라면 회장의 지시로 인해 둘의 대한 구속이 없다는 점, 게임사의 입장에서 볼 때, 이번 사건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는 둘을 밖으로 내놓는 다는 것은 위험 천만한 일이다. 그러나 회장 김미경은 둘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손을 써 주었다. 물론 이번 사건에 대한 함구를 전제로 하여...
“15일 남았습니다.”
회사에서 정리한 짐을 차트렁크에 실으며 강진이 말했다. 회사에서 잘린 이 치고는 너무나 평온한 강진, 실상 그는 걱정 없다. 어차피 몇 주 뒤면 다시 채용 되리라. 중요 인물이라는 것을 빼고서라도 기밀유지를 위해서라면 그를 어떻게든 다시 영입해야 할 것이다.
“가죠.”
몇 시간 후 그들이 도착한 곳은 강진이 살고 있는 오피스텔이었다. 눈어림으로 보아도 근 50평은 되어 보이는 고급 오피스텔, 널찍한 거실과 맞은 편으로 보이는 방 하나에 리얼판타지아를 위한 게임기기가 세 개씩이나 놓여 있다.
“혼자 사시는 것 아니었습니까?”
“가끔 친구가 놀러 와서 같이 하곤 하죠.”
강진은 게임기기 옆으로 가방들을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잠시 후 쇼파에 앉은 둘은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의논했다. 일단 퀘스트의 난이도가 난이도인 만큼 그에 걸 맞는 파티를 구해야 한다는데, 둘은 의견을 동의했다. 최종 퀘스트는 단 한명이 수행하는 것이 아닌 여러 명이 함께 수행하는 그룹 퀘스트이다. 게다가 그 난이도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힘들기 어렵기 때문에 그 혼자서는 힘들다. 그리고 마지막 오카리나와의 대결... 리얼판타지아사를 나옴으로 인해 그나마 그녀와 평수를 이룰 수 있게 만들던 능력도 사라져 버렸다.
“생각해 놓으신 분들이 있습니까?”
“글쎄요.”
물론 그가 알고 있는 강자들은 많았다. 일단 최근에 만난 아누비스의 무력은 그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하다. 그리고 그와 같은 배회하는 자인 저스틴과 발데아라도 그와 비슷한 무력을 가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노인정 길드의 길드원 할아버지들도 무시할 수 없는 공격력을 지녔다. 발키리아 길드의 카이엔, 그의 친구 브랜과 밀레나... 모두 무시할 수 없는 전력들인 것이다. 그러나 카이엔과 브랜, 밀레나를 제외한 나머지는 그의 대한 인연이 아닌 그의 할아버지의 인연이었다. 전혀 생판 모르는 이라면 차라리 마음이 편하겠지만, 그들을 오카리나에게 데려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형민이 파티멤버에 대한 고민에 빠져 말이 없자, 강진은 핸드메신저를 꺼내 들었다.
“응, 그래. 부탁이 있어... 음, 내 집으로 와. 알았어.”
짤막한 통화, 고민에 빠져 있던 형민은 통화가 끝나자마자 다시금 고민에 빠져드는 강진을 힐끔
쳐다보았다.
“누굽니까?”
“제 친구입니다.”
“ 친구분은 왜?”
강진이 포켓에서 담배를 꺼내 들었다. 곱상한 외모와는 틀리게 상당한 흡연가인 듯 하다.
“녀석도 리얼판타지아에서 상위 계급을 지닌 녀석입니다. 게임 할 때 제 도움도 많이 받았고, 또 저와 꽤나 친한 녀석이니까, 혼쾌히 도와줄 겁니다.”
“예.”
굳이 도와준다는데 말릴 건 없다. 강진 또한 가이아에 대해서 목적이 있는 바, 이것은 그의 일이다.
“지금 사이토가 달성하지 못한 스토리 퀘스트가 몇 개지요?”
“스토리 퀘스트 중 작은 건 3개 큰 건 두개, 그리고 큰 것 중 하나는 마지막 라스트 퀘스트니까... 결론 적으로 작은 것 세 개 큰 것 하나입니다.”
강진에 말에 형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혜인에게 전화를 하기 위해 핸드 메신저를 들었다. 일단 혜인이 자신과 비슷한 정도의 이런 일에 그를 끼워주지 않는다면 그는 도리어 자신을 끼워주지 않았다고 역정을 낼 것이 분명하다.
“그래, 고맙다.”
혜인과의 통화가 끝난 형민은 카이엔에게도 전화를 하려다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현재 발키리아 길드를 이끄는 길드마스터이다. 그리고 지금 발키리아 길드는 한창 카모프왕국과 접전중일 것이다.
“제길...”
“지인들과는 이야기가 되셨습니까?”
“예. 제 친구 한 녀석이 더 올겁니다.”
“그렇군요. 그럼 제 친구까지 합쳐서 총 세 명이군요. 후우... 난감하군.”
강진은 머리를 긁적이며 난색을 표했다. 미스틱 핸즈정도의 인물이라면 강한 인물과 꽤 많이 알 듯 싶건만, 의외로 친구가 적어 보인다. 그렇지만 그는 그것을 굳이 그 말을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사람마다 친구를 사귀는 관점이 틀린 법, 그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모자란 부분은 그가 채워 주면 된다.
“곧 온다고 했으니, 조금만 기다립시다.”
“그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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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의 친구가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30분 후였다. 현관키를 가지고 있는 듯, 거침없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30대 초반의 남자... 강진보다 대략 서너 살은 많아 보인다. 특징이라고 한다면 검은 장발머리에 브릿지를 한 듯 하얀 머리카락이 몇 가닥 보인다. 건장한 체구는 아니지만, 겉으로 드러난 팔뚝이며 목선은 상당히 다부진 체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라.”
“엇?”
형민과 남자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는 순간 그대로 빳빳히 굳어 상대를 쏘아보았다.
“이쪽은 내 친구, 정이안이라고 합니다. 이안, 이쪽은 아까 말한 형민씨다.”
둘을 소개시켜 주는 강진, 그러나 둘은 미동 없이 서로 노려보았다. 의아함에 둘을 바라보는 강진, 둘의 얼굴의 묘하게 비슷하다. 아니 얼굴은 전혀 틀리지만, 그 표정은 아주 흡사했다. 입가는 샐쭉하니 웃고 있지만, 눈은 서로를 노려보고 있다. 마치 두 마리 표범이 대치한 양 위화감마저 느껴진다.
“검왕 루피아?”
“호오, 미스틱 핸즈... 사이토!”
형민은 대번에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 만큼 루피아의 이미지는 그에게 크게 각인돼 있다. 게임 안에서 그가 알고 있는 이들 중 검을 가장 잘 쓰는 인물, 그리고 그에 걸 맞는 계급을 지닌 이, 공식적으로 사이토를 거의 죽음 직전까지 몰아붙인 그였다. 게임 안에서의 루피아는 지금의 정이안보다 더 나이 들어 보였다. 그렇지만, 주름 몇 개만 제거 하고 보면 완전히 정이안의 얼굴이다.
“미스틱핸즈와 관련된 일이라니, 이거 벌써부터 흥분되기 시작하는 걸?”
루피아, 아니 정이안 또한 형민을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다. 어찌 그를 잊겠는가! 쇼다운을 제외한 1:1 전투에서 패배해 본 적은 몇 번 있다. 그러나 지금껏 도둑 계열에게 져 보기는 사이토가 처음이었다. 속도라던가, 무술실력은 둘째 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미스틱 핸즈에게서 전투의 노련함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나 마지막에 그를 속이기 위해 일부러 검을 맞았던 것은 생사를 넘나드는 대련을 해 본 진짜 수행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짓이다.
“흠, 둘이 알고 있던 사이였던가?”
“훗, 잊을 수가 없지.”
“그렇습니다.”
자리를 옮긴 두 남자는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서로를 계속해서 노려보았다. 현재 둘이 느끼고 있는 것은 몸이 근질근질 하다는 것, 형민은 맞은편에 앉아 자신에게 노골적으로 살기를 보이고 있는 정이안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가이아에 대한 일이 시급하기는 했지만,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순수한 살기는 그의 몸 곳곳에서 아드레날린을 분출시키기에 충분하다. 살기라는 것은 아주 단순하다.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 느낌은 끊임없이 뇌를 두드린다.
특별히 수련을 하지 않더라도 웬만큼 무술을 수련한 이들은 모두 상대의 투기 혹은 살기를 기분으로나마 느낄 줄 안다. 정이안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에게 살기를 보내고 있다는데, 형민은 몸이 긴장되는 것을 느꼈다. 굳이 인상을 험악하게 짓거나, 위협적인 몸동작에서 살기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냥 쏟아져 들어온다.
“뭔지 모르겠지만, 분위기가 험악하군.”
둘의 사이로 강진이 들어왔다. 잠시 살기가 옅어진다. 둘의 눈은 이미 언젠가 한 번 재대로 붙어보자는 무언의 약속을 하고 있었다.
“둘을 마주 볼 수 있는 자리에 앉은 강진은 이안에게 현재의 상황을 솔직담백하게 모두 이야기 해 주었다. 물론 게임사와의 약속이 있기는 했지만, 정이안의 성격으로 볼 때, 무언가 숨긴다면 매우 싫어할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초기화에 대해 그에게 말해줄 생각이었다. 초기화 된다는 것은 그 만큼 대단히 큰일이었다.
“이런 씨X, XXX 같은 놈들이네 그거!”
정이안의 입에서 쌍욕이 튀어 나왔다. 귀를 후비적거리는 형민,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욕이다.
“엿먹어라. 젠장! 내가 그걸 키우느라 몇 년이 걸렸는데!”
“그러니까. 그 오카리나라는 여자만 처치하면 된다니까. 네 실력이면 충분하고도 남겠지. 게다
가 네가 그렇게 꿈에 바라던 최후의 퀘스트 아니냐.”
“뭐, 그것도 그렇지만...”
친구 구슬리는 데는 이골이 난 듯, 강진은 자연스럽게 그를 설득했다. 별로 깊게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듯, 정이안은 금새 고개를 끄덕인다. 강진의 제안은 차라리 바라던 바다. 그도 이런 일에 손놓고 손가락 빠는 것은 성격에 맞지 않는다. 게다가 자신의 캐릭터도 걸린 문제 아닌가...
“그럼 일단 첫 번째로 형민씨는 작은 서브 퀘스트 두개를 서둘러 해결해 주십시오. 어차피 이안이 이 녀석은 필요 없을 정도의 수준입니다.
“이안씨와 특별히 따로 하실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형민에 말에 강진은 피식 웃었다. 형민을 위한 일이다. 필요 준비물은 루피아, 지참물은 초특대 포션이다. 지금 정이안이 강진의 목적지를 알기만 한다면, 도망치려 발버둥을 칠지 모른다. 이안...아니 루피아에게는 미안하지만 강진은 친구조차도 적당히 이용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그런 인간이었다.
“언제부터일까...”
여느때와 같이 잠을 깬 곳은 마지막으로 로그아웃한 여관이다. 그러나 오늘은 그 기분이 상당히 묘하다. 팔다리가 약간씩 무거워 진 듯한 느낌... 한숨이 조금 흘러나왔다. 자신의 능력이 아닌 게임사의 배려로 얻은 능력이었지만, 그 능력을 지니고서도 오카리나와 막상 막하였다. 물론... 그 능력을 모두 빼앗긴 것은 아니었다.
“주훈씨가 힘 좀 썼군.”
가방 안에서 발견된 주훈의 편지였다. 캐릭터를 정상적으로 복구하기는 했지만, 단순히 정상적으로 복구하기만 했을 뿐, 과거와 똑같지는 않았다. 예전의 급격한 승급으로 비정상적으로 낮았던 숙련도가 모두 계급에 알맞게 올라가 있던 것이다. 스텟은 정상적으로 복구 되었지만, 일단은 이전보다 더욱 강해진 것이다.
“뭐, 그래도 처음 보다는 낫네.”
스킬들을 점검한 사이토는 언제나 처럼 여관방을 나섰다. 솔직히 리얼판타지아의 역사라던가, 영웅들의 대하러브스토리 따위 관심 없었다. 어차피 거기서 거기, 다 똑같은 이야기 뿐, 강진에게 들은 말 또한 아주 간단했다.
“ 퀘스트의 내용은 그 때 그 때 마다 천차만별로 변화하기에, 일일이 설명해 주기는 힘듭니다. 일단 그 퀘스트가 일어나는 곳은 헥시르라는 곳입니다. 아리유에서 서쪽으로 있는 마을이죠. 그곳의 술집으로 가면 레미라는 NPC가 있습니다. 그 녀석에게 말을 걸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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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다입니까?”
“아니요. 그 때부터 시작이죠. 그 이후로는 저도 잘 모릅니다.”
체크아웃을 끝낸 사이토는 곧바로 서쪽 성문으로 향하였다. 그가 알고 있기로는 헥시르라는 마을은 아리유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았다. 말을 타고 전력으로 달리면 대략 반나절이면 도착한다. 말을 구입할 요량으로 서쪽 성벽 입구를 기웃거리는 사이토, 요 몇 칠 전쟁으로 인해 분위기가 흉흉했다. 장사꾼들도 별로 없을뿐더러 퀘스트를 수행하려는 유저들의 파티 또한 없다.
“슬슬 아리유도 함락 당하겠지?”
“그렇겠지. 현재 다른 마을을 공략하던 카모프왕국의 군세들이 이 아리유로 집결한다니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발키리아 길드가 아직도 아리유의 북쪽 마을에서 항전하고 있으니, 카모프 녀석들이 그곳을 무시할 수는 없다는 거지. 게다가 저번 아리유 대 침공 때, 일단은 카마프라하가 이겼으니까...”
전세가 그리 좋지 못한 듯, 그의 옆으로 걸어가는 두 모험자의 말은 비관적인 소식들로 가득했다. 그나마 나은 소식이라면 기존의 전투에 불참을 선언했던 카마프라하왕국의 유력길드들이 속속들이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성문에는 유저들의 전쟁 참여를 바라는 포고문이 성벽 곳곳에 붙어 있었다. 현재 유저들의 전쟁 참여율은 거의 30프로 이하라고 한다. 카모프 왕국이 매일 70프로를 넘는 것을 본다면 거의 두 배 이상의 전력 차이이다.
“더 이상 밀리지 않는 게 이상한 건가?”
말을 구입하던 사이토는 말 상인으로부터 염려 어린 조언을 들었다. 현재 이 근처로는 카모프 왕국의 유저들이 파티 단위 혹은 모임 단위로 흩어져 있다고 한다. 퀘스트를 떠났던 몇 몇 파티들도 돌아오지 못했다는 상인에 말에 사이토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셈을 치뤘다. 곧 다시 공성전이 시작될 것이다. 현재는 카모프 쪽에서 인원을 보강하기 위해 잠시 휴전하는 것일 뿐... 카모프 왕국의 유저들과 다툼을 벌일 생각이 없는 사이토는 근처 상점에서 초보자용 로브를 하나 사서 걸쳤다. 아무래도 초보자라고 하면 예의상 건드리지는 않으리라. 이전부터 쓰던 자주색 로브를 배낭 안으로 집어넣은 사이토는 말을 타고 성문을 벗어났다.
특별히 전쟁이 일어난다고 해서 초보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도시를 벗어나 2시간 정도 진행한 사이토는 한 무리의 유저들이 검은 늑대 두 마리와 싸우고 있는 곳에 도착했다.
“조금 쉬었다 갈까?”
아무래도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쉬는 것이 좋으리라는 생각에 사이토는 근처 나무 아래에 털썩 주저앉았다. 혹시나 카모프 왕국의 인간들이 떼거지로 나타난다고 해도, 다른 유저들이 있기 때문에 위기에 몰린 가능성이 적은 것이다. 여차하면 시선을 그 쪽으로 유도하고 도망 갈 수도 있고...
“아, 제길...”
헥시르까지는 6시간 정도 남았건만, 계속되는 단조로운 풍경에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목적이 있기는 하지만 이런 식의 게임은 질색이다. 퀘스트를 가지고 나온 것도 아니니, 몬스터를 만날 확률은 극히 희박하다. 조금 전까지 검은 늑대와 열심히 드잡이 질을 하고 있는 그 유저들은 아무래도 늑대에게 조금 벅찬 듯 보인다.
“그레이스! 조심해!”
“하이야!”
“네 이놈!”
검은 늑대 2마리를 잡기 위해 온갖 기합은 다 잡는다. 초급스킬을 쓰는 지 앞으로 뛰어가던 한 검사가 발이 꼬여 넘어진다. 스킬의 실패... 사이토가 보기에는 식후 간식으로 적당할 듯한 검은 늑대지만, 그들에게는 벅찬 듯 보인다.
“마법사가 없군.”
확실한 데미지 딜러인 마법사가 보이지 않는다. 파티를 보아하니, 밀리 클래스 일색인 듯 하다. 그나마 성직자가 한 명 있지만, 초보인 듯 보인다. 저런 파티 구성은 몬스터 레벨업이나 시켜 주는 파티일 뿐이다.
“도와 줄까?”
잠시 고민하던 사이토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초보라도 도움을 청하기 전에는 끼어들지 않는 게 매너이다. 괜히 끼어 들었다가 욕만 한바구니 먹기 딱 좋다.
“의외로 재미있네.”
얼마 후 한 마리를 잡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환호도 잠시, 외톨이가 된 나머지 한 마리는 한 검사의 발을 물어버렸다. 허둥지둥 다시 싸우기 시작하는 초보들... 한 편의 희극이었다.
“자, 슬슬 출발해 볼까?”
기왕이면 그들이 나머지 한 마리를 잡는 것도 보고 싶었지만, 싸우는 꼴을 보니 단시간에 끝나기를 바라는 건 무리로 보인다.
“커억!”
몸을 일으키던 사이토는 검은 늑대에게 쫓기던 성직자가 힘없이 쓰러져 버리는 것을 목격했다. 늑대의 공격으로 인한 것이 아니었다. 성직자의 뒷통수에 박힌 것은 한 대의 화살... 하얀빛을 내며 사라져 가는 성직자를 바라보며 사이토는 재빠르게 화살이 날아온 곳을 쳐다보았다.
“빌어먹을...”
도망치기는 글렀기에 몸을 최대한 낮춘 사이토는 황급히 이세계의 후드를 둘러쓰고 기척을 숨겼다. 곧 이어 몇 대의 화살이 더 날아와 파티원의 영문모를 죽음에 의아해 하고 있는 파티에게로 날아들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예상했던 것이 현실이 되어 버렸다.
“흐윽..”
“ 컥...”
유저들이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하고 죽어갔다. 상대방은 이미 이쪽의 위치를 모두 확인하고, 저격에 가장 좋은 곳을 선점하고 있었는 듯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유저들을 살해했다. 물론 단순히 저격병 하나로 사이토가 긴장할 리가 없다. 멀리 언덕에서는 한 떼의 유저들이 나타났다..
“척후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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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난진실,조용히 아파하는 연인들..
나침판을 보아하니, 모두 카모프왕국의 유저들이다. 방금 전의 화살로 유추해 보건대 유저들을 학살한 것은 부대의 앞이나 뒤를 탐색하며 적을 감지하는 척후병들의 소행으로 보인다. 척후병들의 총 숫자는 20명... 단순히 20명이 다 일리가 없었다. 그들의 정체는 카모프 왕국 대 부대의 첨병, 즉 척후병들의 소부대라는 것이 사이토의 예상이다. 하는 꼴을 보아하니 초보자용 로브를 이용해 전투를 피하기는 무리인 듯 보인다.
“도대체 얼마나 오는 거길래...”
혀를 찬 사이토는 최대한 몸을 은신한 채 그 곳에서 멀어졌다. 20명의 첨병... 아무리 적게 잡아도 800명은 가뿐히 넘기리라. 그 곳에서 벗어나던 사이토는 곧 혀를 차며 자신이 있던 자리를 쳐다보았다. 그의 말이 그가 있던 자리에 묶여 있는 것이다.
“쳇, 방금 죽은 녀석들 것으로 생각하겠지 뭐...”
다행히 짐은 그의 가방 하나, 그리고 그 가방은 지금 그가 매고 있다.
사이토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고개를 숙였다. 대로에서부터 대략 60미터의 거리, 그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도망칠 자신이 있는 거리이다.
“제길, 어떤 자식들이야.”
솔직히 궁금증이 드는 사이토이다. 리얼판타지아의 전쟁의 대한 극찬은 많이 들었다. 이런 대부대를 볼 수 있는 기회 그리 많지 않다. 첨병부대가 그를 스쳐 지나간 뒤 곧 이어 사 열로 서서 질서 정연하게 걸어오는 카모프 왕국의 대부대를 볼 수 있었다. 부대의 앞으로 선 길드들의 문장을 나타내는 깃발들... 총 3개의 깃발이 서 있었다.
“뭔가 대단한 녀석들인가?”
세 개중 한 개의 깃발이 특히 다른 깃발들보다 돋보인다. 크기도 두 배 이상 클뿐더러, 나머지 두개의 호위를 받는 듯 한 가운데 있다.
“쓰읍, 저 깃발이 뭐더라?”
어딘가에서 본 듯하다. 머리를 굴리는 사이토... 한 참을 고민하던 사이토는 부대가 절반 정도 지나서야 그 깃발의 정체를 생각해 냈다.
“총대장기군.”
그 깃발은 총대장을 나타내는 깃발이다. 예전 게임 가이드에서 보았던 그 깃발... 보통 부대를 결성하는 것은 각 유저들의 자유이지만, 길드에 소속된 이들은 서로 연합하여 대장을 뽑는다. 그리고 그렇게 뽑힌 대장들은 마지막으로 그들을 지휘할 총대장을 뽑는다. 흥미로움을 느낀 사이토는 계속해서 부대를 주시했다.
“전원! 정지!”
“제기랄!”
물론 속으로 내뱉은 말이지만, 사이토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몸을 더욱 낮췄다. 근 1000명에 달하는 이들이 모두 주위를 경계한다. 긴장하는 사이토, 그러나 사이토의 걱정은 기우인 듯, 대부대는 곧 한쪽 넓은 공터로 자리를 옮겨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가장 후미에 있었는 듯, 화려한 갑주를 입은 세 명의 유저들이 말을 타고 부대가 쉬고 있는 곳에 도착했다.
“마법사냐?”
화려한 갑주를 입고는 있었지만, 사이토의 눈을 속이지는 못한다. 중갑옷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실상 그것들은 마법사들이 눈속임을 위해 자주 입는 것들이다. 기사클래스로 위장한 세 명의 마법사들이 총대장의 일행이라고 생각한 사이토는 계속해서 그들을 주시했다. 세 명 중 신장이 가장 커 보이는 마법사가 나머지 두 명에게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다. 손가락으로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나머지 두 명에게 열변을 토하는 마법사, 자세히 보니 뒤춤에 끼워져 있는 주먹만한 무지개빛 구슬이 박힌 화려한 지팡이가 보인다. 그것들을 유심히 관찰하던 사이토는 곧 그 사실들을 확인해 볼 요량으로 현재 아리유에 있을 레드플러그 길드의 길드장 멀린을 메시지로 불렀다.
[멀린씨! 멀린씨!]
불러도 대답이 없는 멀린이다.
“아직 접속하지 않았나...”
고개를 갸웃거린 사이토, 하지만 잠시 후 그의 머릿속으로 폭갈 같은 멀린의 외침이 들려왔다.
[사이토씨! 사이토씨! 어떻게 된 겁니까! 물건 운송은 감감 무소식이고, 데스스타길드에서는 배상을 해 줄 필요가 없다고 하고, 사이토씨는 감감 무소식이고... 멍멍...왈왈...으르르릉..]
멀린의 잔소리를 머릿속에서 자체 정화시킨 사이토는 멀린이 잠잠해 질 즈음, 조용히 메시지를 넣었다.
[그럴 일이 있었습니다. 거참, 그 때 인계받은 세 개의 아이템 중 한개는 빼앗겼지만, 나머지 두개는 아직 그대로 있으니, 나중에 시간 나면 가져다주죠.]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혹시 데스스타 길드녀석들에게 해꼬지라도 당하신 겁니까?! 이건 아주 중요한 문제라구요!“
사이토의 안위니, 길드의 은인이니, 이것은 자신들에 대한 도전이라느니, 떠들어대는 멀린 이지만, 사이토는 시큰둥이다.
[그것보다 혹시 카모프왕국의 총대장이 누군지 알고 있습니까?]
[쯧쯔, 그것도 모르고 계셨습니까? 바로 카모프왕국내의 가장 큰 세력을 지닌 아바론 길드의 나유타가 아닙니까...]
이마에 혈관마크가 돋는 사이토, 그가 그 사실을 모르는 것은 단지 전쟁에 관심이 없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아직 물을 것이 남은 사이토는 화를 참으며 메시지를 이었다.
[혹시 그 나유타의 클래스라던가 생김새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일단 클래스는 마법사 클래스의 최고봉 9클래스 대마도사입니다. 주 특기는 대단위 범위 마법이고, 마법사에 맞지 않게 여러 가지 전술에도 능하다고 알려졌습니다. 생김새는 키가 꽤 작은 편이고, 아...흑인이군요.]
[잘 아시네요?]
[부업으로 정보길드도 하고 있습니다.]
멀린으로부터 카모프왕국의 총대장의 신상명세를 모두 들은 사이토는 다시 한번 그 세 명의 인물들을 쳐다보았다.
“아하, 저 녀석이구나.”
사이토는 낮게 웃음을 지으며 키가 큰 마법사의 뒤를 따라가고 있는 키 작은 마법사를 주시했다. 그로써는 9클래스의 대마도사는 처음 보는 클래스였다. 마법사답게 그 공격력은 전 클래스를 통 털어 발군이다. 그리고 마법사들은 7클래스가 넘어서면서 블링크라는 마법이 생긴다. 근거리 공간이동 마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마법의 특징은 9클래스로 들어가게 되면 굉장한 효용을 발휘하게 된다. 시동어 만으로 쓸 수 있는 근거리 공간이동 마법... 특히 블링크는 필요 마나도 매우 적다. 그로 인하여 동급의 밀리 클래스들이라도 블링크를 쓰는 마법사를 잡기는 힘들어 진다.
“괜히 건드려 피 볼 필요는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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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난진실,조용히 아파하는 연인들..
잘 하면 그가 잡을 수도 있는 위치이다. 거리는 대략 80미터... 액션 피규어를 사용해 운만 좋다면 잡을 수 있다. 전쟁에서 대장을 잃는 다는 것은, 부대의 정신적 지주가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총대장이라니... 군침이 도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행여 성공한다고 해도 다시 빠져 나오는 것이 문제이다. 1000:1의 대치 상황 따위 혹은 전투 따위 사이토의 사고 범위에 끼어 있지 않다. 어차피 카마프라하왕국의 승패 따위 그에게는 상관 없다. 카이엔이 분전하고 있고 노인정 길드의 어르신들도 참전 하신다지만, 그것은 그분들의 자유... 그가 끼어들 일이 없다.
“빨리 좀 가라.”
20분 정도가 지났건만, 그들은 움직일 생각이 없는 듯 하다. 사이토가 버려두었던 말은 그들의 시선을 끌기 어려웠는지, 사이토가 처음 묶어 두었던 곳에 얌전히 서서 풀을 뜯고 있다. 부대 곳곳을 관찰하던 사이토는 잠시 후 그의 말을 향해 접근하는 몇 몇 카모프 유저들을 발견했다. 거의 말에게 다가와 자신의 말인 듯, 말갈기를 쓸어 올리는 까지 하는 카모프 유저들...
“제길...”
사이토는 혀를 찼다. 보통 말은 주인이 죽은 뒤 30분이 지나면 자연상태가 된다. 아마 그들은 그 말들의 주인이 모두 죽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말이 자연상태가 되지 않는다면... 재수 없으면 이 근방을 모두 샅샅이 뒤질 지도 모른다. 그의 걱정이 기우일수도 있겠지만, 1000명에게 발각당해 쫓기기는 싫었다.
“쫓기기 전에 슬슬 벗어나자.”
사이토는 그 곳을 벗어나기로 마음먹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아직은 그의 스텔스 스킬로 발각 당하지 않았지만, 만사일여 불여튼튼이다.
“천천히...”
최대한 몸을 숙이고 그곳을 물러났다. 그러나... 사이토는 평소에 그가 꽤 재수 없는 캐릭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운이 없다고나 할까? 재수 없게 2급 운영자랑 꼬인 일을 비롯해서 테시미어의 계집들에게 속은 것을 비롯 역대 괴물 길드들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그가 원한 것들은 아니었지만, 그는 항상 평범하지 않은 일에 휘말려 들었고 이번에도 운명은 그를 쉽사리 놔주지 않았다.
대 아바론 길드의 길드장, 대카마프라하왕국 침공군 총대장, 카모프 왕국 내에서 몇 명 되지 않는 9클래스 최고급의 마법을 자랑하는 대마도사... 지금 다른 두 길드장들과 편안한 얼굴로 담소를 나누는 나유타의 직함이었다.
“하하, 그 탁월한 마법시전 능력은 정말 못 따라가겠습니다.”
몇 칠전 전투에서 나유타가 선보인 대략 학살 마법에 매료된 레논 길드의 마스터인 자크는 엄지손가락을 내밀며 그를 격찬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 완숙한 위치 선정 능력하며 매끄러운 연속 마법 공격이라니...”
아부에 속도가 붙은 듯, 다크메이지길드의 워커도 매끄러운 혀를 놀렸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냥 평소에 조금 연습해 보는 것뿐이죠.”
“너무 겸손해도 실례입니다. 하하...”
“거기에 전투도 거의 연전연승 아닙니까! 이번 전쟁은 리얼판타지아 사상 최고의 전쟁으로 남을 겁니다.”
아부가 이쯤 되면 나유타도 우쭐한 마음을 숨길 수 없다. 굳이 숨길 필요도 못 느낀다. 그와 함께 있는 이들은 저 번 전투로 이미 그의 숭배자와 같이 따라 붙었다.
“특히 그 적의 돌격부대를 발견하시자마자 블링크 마법을 이용해서 순식간에 언덕으로 자리를 옮기시고 헬파이어를 그냥!”
워커는 아직도 그 때의 여운이 가라앉지 않은 듯 보인다. 으쓱하는 나유타, 작은 미소와 함께 품안에서 붉은 구슬들로 장식된 완드를 꺼내 들었다.
“제가 아마 그때 이렇게 했었지요. 블링크!”
그 때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보여 주려는 듯 블링크 마법을 시전한 나유타는 곧 이어 도로 측면에 위치한 작은 산의 중간쯤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나유타가 원한 것은 정말 작은 시범 뿐이었다. 당시 헬파이어로 적의 돌격부대에 크리티컬에 가까운 데미지를 날렸던 현장을... 그 때의 감동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다. 그는 정말로 절대로 한 점의 가식도 없이 그것만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다. 도망치려는 사이토의 앞에서 뒤를 보이고 나타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히익!”
갑자기 그의 앞으로 나타난 솟아나듯 나타난 마법사, 깜짝 놀란 사이토는 엉겁결에 번개같이 디스코어를 꺼내어 마법사의 허리를 잘랐다. 매끈하게 동강나는 잘록한 허리... 이건 진정 사이토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 그는 단지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다. 적의 총대장을 잡아 보려는 시도조차 해 본 적 없다. 그러나... 마법사는 방어가 너무 약한 것이 흠이었고 도둑이 지닌 검은 너무나도 날카로웠다.
츠컥!
대 카모프왕국 아바론 길드의 길드마스터이자, 카마프라하왕국 침공군의 총대장, 9계급의 대마도사라는 나유타는 이렇게 사이토의 눈먼 검에 허리를 양분당하고 말았다. 그와 함께 대 카모프왕국 아바론 길드의 길드마스터이자, 카마 프라하왕국 침공군의 총대장, 9계급의 대마도사 나유타는 리얼판타지아 역사상 가장 어이없게 죽어버린 총 대장으로 기록되는 행운을 얻었다.
“어라?”
잠시 집단과 개인간의 침묵이 흘렀다. 멍하니, 자신들의 대장이 하얀빛을 뿌리며 산화해 가는 것을 바라보는 카모프 유저들... 하얀빛과 함께 밑으로 떨어지는 몇 가지 아이템을 멍하니 쳐다보는 사이토... 이 황당한 사건의 충격으로 잠시 넍이 나간 사이토는 기계적으로 땅에 떨어진 몇 가지 아이템을 주워 넣었다. 몬스터를 잡으면 아이템이 떨어지고, 유저는 아이템을 챙긴다. 이것은 아주 평범한 게임 시스템이었다. 다행스럽게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사이토였다.
“제..젠장, 미쳤어.”
쫓기는대도 이골이 나 있는 사이토이다. 그 간의 도망자생활에서 그가 얻은 몇 가지 노하우는 지금처럼 다수 대 일의 전투에서는 잠시 간의 망설임이 곧 죽음이다. 그가 아무리 9계급의 로그그랜저라도 그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씨파!”
그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를 내며 산의 정상으로 뛰어 올라갔다. 뒤 늦게 상황을 파악한 카모프 유저들... 곧 이어 사이토의 뒤로 화려하디 화려한 마법들이 연달아 작렬했다.
“내가 원한 건 이게 아냐!”
자신의 불운을 저주하는 사이토의 한 맺힌 절규였다.
“제.기.랄...”
지금 그의 심정을 완벽하게 대변해주는 단어이다.
말까지 빼앗긴 마당에 허탈하기만 하다. 근 1000명에 달하는 이들의 추격을 뿌리친 것만도 용하기는 하지만, 게임시간으로 근 5시간을 달렸다. 그것도 아주 죽자 살자 하고 달렸다. 만약 사이토가 예전에 스테미터 포션을 몇 개 사 두지 않았다면, 저 아리유 서쪽 어느 이름없는 산 중턱에서 뼈를 묻었을 것이다. 잠시 휴식을 위해 몸을 숨긴 곳은 작은 개울가 옆의 바위 밑이었다. 본대의 추격은 멈추었지만, 도둑클래스들의 추격은 계속 될 것이다. 자신들의 총대장을 죽인 이를 곱게 살려 보낼 리 만무하다.
“니미럴...”
스테미너 포션도 다 떨어졌다. 개당 140골드를 호가하는 스테미너 포션이 5시간 만에 바닥나 버린 것이다. 나침판을 꺼내 든 사이토는 혀를 찼다. 도둑클래스들이 추격하리라 예상은 했었지만, 근 열 둘 에 달하는 도둑클래스는 사양이었다. 지금의 장소를 빠져 나갈 궁리를 하던 사이토는 카모프왕국의 총대장을 죽이며 떨어진 아이템들이 생각나 배낭을 열었다. 계급이 계급이니만큼 보통 물건들은 아니리라. 배낭의 인벤토리를 확인하던 사이토는 특별히 그가 쓸만한 아이템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혀를 찼다. 마법사용 완드 한 개, 돈 730골드 그리고 화려한 넝쿨 장식이 음각된 손바닥만한 상자 하나...
“필요 없는 것..”
9개의 크고 작은 구슬이 완드의 머리 부분에 다닥다닥 붙어있다.
필시 좋은 아이템이기는 하겠지만, 지금은 별 도움이 안 된다. 현재 사이토의 지능 스텟으로는 완드를 쓰기는커녕 옵션도 볼 수 없었다. 완드를 다시 배낭 안으로 넣어버린 후 사이토는 손바닥만한 상자를 손에 들었다. 다행히 특별한 잠금장치가 없는 듯 상자는 깨끗하게 열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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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연참일까..-_-... 니미럴... 조아라...4시에 서버점검해서... 5시간 걸렸네..-_-... 지기럴..;;
아아..몰라 몰라..-ㅂ-...
흑..;ㅁ; 코맨트가 줄어들어 간다. 추천도 줄어들어 간다. 선호도 떨어져 간다..;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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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입니다.
오랜만이죠.. 아마..몇 분은 지금 저를 저주하고 계실지도...
235까지 하드하게 삭제해 버렸습니다. 물론 3권 출판 으로 인하여 삭제하는 것입니다.
3권 나옵니다. ^-^... 편집자 아저씨도 진짜 한창 재미있어 지기 시작했다고 좋아하시네요.-_-~
그런데 다음 까페들에 유출본들이 너무 많이 떠돌아 다닌다고 걱정도 하시고...에혀..-_-;;
.... 모두 즐감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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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귀찮아
9개의 크고 작은 붉은 구슬이 완드의 머리 부분에 다닥다닥 붙어있다.
필시 좋은 아이템이기는 하겠지만, 지금은 별 도움이 안 된다. 현재 사이토의 지능 스텟으로는 완드를 쓰기는커녕 옵션도 볼 수 없었다. 완드를 다시 배낭 안으로 넣어버린 후 사이토는 손바닥만한 상자를 손에 들었다. 다행히 특별한 잠금장치가 없는 듯 상자는 깨끗하게 열려 주었다.
“스크롤...뭉치군.”
대관절 9클래스 마법사 주제에 마법 스크롤이 무슨 소용이 있겠냐만은 그 상자에 담긴 것은 대략 50장 정도로 보이는 스크롤북이었다. 혹시나 텔레포트 스크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이토는 서둘러 스크롤들을 훑어보았다. 비록 텔레포트의 효과가 자신의 시야가 닿는 곳 까지라는 한정이 있기는 했지만, 위험한 순간에는 요긴하게 쓰이는 것이 텔레포트 스크롤이다.
“없군.”
허탈한 표정의 사이토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상비용으로 하나 두개 정도는 가지고 있을 줄 알았건만, 그 것은 공격계 마법들만이 들어있는 스크롤 들이었다. 주로 파이어 계열의 마법들이 적혀 있는 스크롤들... 그것도 고급의 스크롤들이 아닌 거의 초급 아니면 중급의 마법들뿐이다.
“에휴...”
솔직히 9클래스 대마도사가 스크롤북을 지니고 있었던 것에서부터 조금 이상함을 느낀 사이토이다. 9클래스 정도 되면, 정말 엄청난 양의 메모라이즈가 가능하다. 물론 9클래스 마법이라던가 8클래스 마법들만을 메모라이즈 한다면 네 다섯 개 정도가 최고였지만, 7클래스 마법이나 그 하위의 마법은 열 개 이상씩 메모라이즈가 가능한 것이다. 그런 이가 이런 스크롤 북을 지니고 다닌다는 것이 웃기다. 작금의 사태에 머리를 감싸고 있던 사이토는 곧 그의 식스센스에 미묘하게 감지되는 살기를 느꼈다. 그들이 가까이 접근한 것이다.
“재수 없으면 전투인가.”
기왕이면 그가 숨어 있는 곳을 지나쳐 주기를 바라지만 발각당해 전투가 일어날 수도 있다. 사이토는 양 허리에 매달린 헬리오스와 셀레네를 잡았다. 발각당하는 즉시 반응하기 위한 것이다. 문득 뒤춤으로 디스코어가 만져진다. 만약 헬리오스라던가 셀레네였다면, 디스코어처럼 그 마법사를 깨끗하게 이등분 시키는 짓은 못했을 것이다. 능력치는 굉장하지만, 디스코어는 왠지 운이 따라주지 않는 검이다.
“응?”
디스코어를 꺼내 훑어보던 사이토는 문득 화염계 마법들이 적힌 스크롤들과 디스코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뭔가 큰 것을 놓친 기분이다. 영문도 모른 채 자신이 바보 같다는 생각이 번쩍 든다.
“아차...”
사이토는 황급히 디스코어의 능력치를 확인해 보았다.
+3의 공격력은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 있다. 인챈트시 마법 보존능력 90프로와 마법 무시 효과 70프로의 기능이 있다. 또한 화염 계열에 대한 30프로의 내성을 소유자에게 부가시켜주며 화염계열 인첸트 공격 시 +1의 효과와 크리티컬 +2 의 파괴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바보...바보...”
디스코어가 손에 익지 않았기에 사용을 꺼려왔다. 물론 예전에 원한식 교수님이 보여주었던 검술을 사용해 보려고 마음은 먹었지만, 손에 익지 않은 무기라는 것은 그만큼 쓰기 힘들다. 새로이 얻은 스크롤상자를 꺼내기 쉽게 벨트에 장착한 사이토는 조심스럽게 바깥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두운 그늘 아래 숨은 그의 시야 안으로 두 개의 그림자가 들어왔다. 다행히 사이토의 스텔스 스킬은 그들의 탐색스킬을 이겨내고 있다. 도둑들 간의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를 얼마나 더 빨리 찾아내는 것이냐는 거다. 그들도 사이토와 마찬가지로 한명의 플레이어이다. 그들도 사이토와 같이 좋은 아이템을 찾아 몸에 장착했고, 또 사이토와 같은 스킬도 가지고 있다. 한 명 한 명 얕볼 수 없는 것이다.
헬리오스와 셀레네를 아직 뽑지 않은 채 그들을 노려보는 사이토, 단검을 뽑아들고 있으면 스텔스 스킬은 옅어진다. 물론 아주 섬세한 면이기도 한 것이기에 그 차이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만, 지금처럼 도둑들과의 전투에서는 이 정도까지는 신경을 써 줘야 한다.
상황은 사이토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주변을 탐색하던 도둑들이 잠시 수근거린 뒤 주변을 살피기 시작한 것이다. 아마도 사이토의 기척이 이곳에서 끊겼기 때문이리라.
“레인저 계열이 있는 모양이군.”
같은 도둑계열이라도 레인저들의 추적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리 저리 흩어져 있기는 하지만, 지금으로써는 적들이 물러가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어쩔 수 없다.”
사이토는 일단 눈앞에 보이는 두 명을 먼저 아웃시켜 보기로 마음먹고 셀레네의 손잡이에 와이어를 걸었다. 팬텀 피규어를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스킬을 사용하는 것도 스텔스가 옅어진다. 마침 나침판 안으로 다른 생명체가 감지되었다. 숫자는 일곱, 산이 좀 깊은 만큼 몬스터도 꽤 강하리라. 몇 명이 그리로 움직이고 있다. 사이토의 눈앞에 있는 두 명은 상관하지 않는 듯 계속 주변을 기웃거리고 있다.
“하앗!”
사이토의 손을 떠난 셀레네는 두 개의 그림자 중 오른편의 서 있는 이의 머리를 관통했다. 셀레네가 박혔다고 느끼는 순간 팔을 빠르게 휘저었다. 와이어가 불규칙적인 운동을 보이며 옆에 서 있는 이의 머리에 감긴다. 뭐라고 소리치려고 하고 있지만, 그 소리는 예리한 절삭음에 막혀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두...개”
일단 들키지 않게 둘을 처리하는데 성공했다.
파파팟!
사이토는 혀를 찼다. 유저가 죽어가면서 생길 빛을 깜빡 잊고 있었다. 유저들이 죽어갈 때 나오는 빛은 그 유저의 카오스수치에 상관하여 그 색이 틀리다. 그에게 게임오버 당한 두 명의 추격자가 내 뻗은 빛은 선명하디 선명한 하얀색... 들키지 않는게 이상할 지경이다. 나침판 안에 감지되던 이들이 급격히 그가 있는 장소로 모여 들자 사이토는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앞쪽으로 튀어 나갔다.
“제길...팬텀피규어!”
양 손에 카타르를 든 도둑 하나가 그의 그림자에서 뻗어 나온다. 찔러 들어오는 데들리 스텝! 딱히 반격할 시기가 아니기에 사이토는 상체의 움직임으로 공격을 피하며 계속해서 앞으로 달려 나갔다. 순식간에 거리가 벌어진다. 정면의 서 있는 나무를 스치듯 지나치는 사이토, 뒤 따르던 도둑 하나가 뭔가에 걸린 듯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꼬꾸라졌다. 지나치는 순간 나무와 나무 사이에 와이어를 걸었던 것이다. 나무를 중심으로 몸을 돌린 사이토는 그에게 달려오는 다섯 명의 도둑들을 노려보았다. 와이어가 풀리며 손목 안으로 들어온다.
“레인져 하나, 어쌔신 둘, 로그 둘...”
나머지 여섯은 몬스터로 인해 발목이 묶여 있으리라. 마음을 가라앉힌 사이토는 천천히 단검으로 그들을 겨누었다. 어쎄신들은 일제히 쉐도우 스킬을 시전했다. 몸의 잔상이 두 개로 나뉘어 순식간에 달려오는 이들은 일곱으로 늘어난다. 두 명의 로그는 땅을 박차고 공중에서 그에게 돌진했다. 이리 저리 머리 아픈 상황... 그러나 사이토는 전투의 숙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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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귀찮아
“하나...하나..”
마주 달려 들어가는 사이토... 어차피 여럿을 상대할 생각은 없다. 첫 번째 공격을 그대로 검의 빗면으로 흘려버렸다.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는 레인저...중심을 잃은 벌로 뒤통수에 백스텝을 박히는 영광을 얻었다. 그의 뒤를 찔러 들어오는 다섯 개의 단검들... 팬텀 피규어를 시전 했다. 순식간에 공중에 떠 있는 로그의 그림자에서 몸을 드러낸 사이토는 한껏 팔을 뒤로 당긴 뒤 자신을 쫓아 눈을 돌리는 로그의 복부를 향해 팔을 뻗었다.
“그레이브 스피릿!”
그레이브 스피릿에 격중 당한 로그는 눈을 까뒤집으며 땅으로 떨어졌다. 일순간에 둘을 전투 불능으로 만든 사이토, 땅을 구르고 있는 로그의 다리를 붙잡아 그에게 돌진하는 어쌔신들에게 던졌다. 어쌔신 하나가 갑자기 그림자 꺼지듯 사라졌다. 황급히 고개를 숙이는 사이토... 그의 옆 나무에서부터 흉험한 빛의 단검이 뻗어 나왔다. 공격이 실패한 것을 깨달은 어쌔신은 단검을 돌려 잡아 허리를 숙이고 있는 사이토의 등판을 향해 단검을 사정없이 꽂아 넣었다. 기이하게 비틀어지는 사이토의 허리... 등판을 공격하던 어쌔신의 정수리에 사이토의 발뒤꿈치가 작렬했다.
뻐어억!
“후우...”
마무리조로 어쌔신의 목을 그어가던 사이토의 손은 곧 다른 어쌔신의 공격에 의해 무산되었다.
“쳇...”
혀를 찬 사이토는 빠른 속도로 전투 지역을 이탈했다. 지금 자신이 그들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속도와 전투감각이다.
“쫓아!”
사이토의 종잡을 수 없는 변칙공격에 추격대의 리더는 슬슬 지쳐가는 것을 느꼈다. 정신적인 것도 있지만, 육체적으로도 지쳐간다. 자신의 부하 세 명이 게임 아웃 되어 버렸다. 자신들은 그에게 털끝만치도 상처를 주지 못했다. 물론 회심의 무기가 있기는 하다.
달려가는 사이토의 앞으로 여섯 명의 도둑들이 일제히 튀어 올랐다. 순식간에 사이토를 쓸고 지나가는 어쌔신들의 단검들... 땅에서 구르던 사이토는 몸을 튕기듯 비틀어 꽤 높은 나무의 가지위에 앉았다. 오늘 만큼 다인슬레터가 이뻐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피하지 못한 단검은 단 세 개... 그것들을 모두 다인슬레터의 가슴으로 받아냈다. 물론 사이토가 갑옷의 금속부분의 빗면을 이용해서 예술적으로 비켜 냈다고는 하지만, 세 개의 단검을 맞고도 멀쩡한 다인슬레터가 사랑스러울 뿐이다.
“큭...”
짐짓 치명적 상처를 입었다는 듯 허리를 감싸 쥔 사이토는 그들에게 보이지 않도록 뒤로 숨긴 채 스크롤상자에서 스크롤 한 장을 꺼내 들었다.
“파이어 블레이드...”
4서클의 파이어 블레이드 마법이다. 상자 안에서 대략 8장 정도 발견된 이 마법은 8서클의 헬 블레이드 마법의 하위 마법이다. 그러나 효과는 충분하다. 은색의 검날에 새겨져 있던 붉은 선이 황금색으로 빛난다.
“죽어라! 총대장의 원수!”
두 명의 어쌔신이 양손에 든 단검을 교차시키며 그에게 돌진했다. 사이토 또한 디스코어에 데들리 스텝을 걸고 맞 부딪쳐 갔다.
차차착...
어쌔신들의 단검이 디스코어에 부딪히는 순간 힘없이 잘려나갔다. 그리고 아직 힘이 남아있는 듯 어쌔신의 어깨를 그대로 잘라 나갔다.
“효과 좋은데?”
그에게 달려들던 어쌔신들이 황당한 표정으로 그들의 잘라진 무기를 쳐다보던 말던 사이토는 디스코어를 자랑스럽게 쳐다보았다.
아무리 유니크한 재료를 썼다고 해도 스킬이 걸린 4개의 단검을 한꺼번에 잘라 버린 것이다.
지잉...
갑자기 몸이 투명하게 변한다. 에테르 스킬이 터진 것이다. 가슴 앞으로 뻗어 나온 것은 물빛으로 빛나는 날카로운 세검... 뻘쭘하여 뒤를 쳐다보니, 어쌔신들의 리더로 보이는 이가 검을 앞으로 뻗은 채로 사이토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다.
“빗나갔어...당신...”
한순간 넋을 잃어 등을 내주기는 했지만, 다행히 에테르 스킬이 터진 것이다. 다시 한번 자만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깨달은 사이토는 아직도 멍하니 그에게 검을 뻗고 있는 어쌔신에게 씨익 웃어 주었다.
뻐버버벅!
경쾌한 타격음! 크리티컬한 느낌... 에테르가 풀리자마자, 사이토는 어쌔신의 온몸을 깨끗하게 두들겨 주었다. 재빨리 그의 뒤로 돌아선 사이토... 양 팔의 와이어를 이용, 아직까지 정신 못 차리고 있는 그를 능숙하게 감아 조였다. 이미 한 두 번 한 짓이 아닌 슬슬 상습범의 면모가 과시되는 순간이다.
“자! 협상의 순간입니다. 걸리신 분은 클래스가 클래스이신 만큼 주둥이는 다물어 주시죠.”
“대장!”
사이토의 의도대로 멈춰선 것은 좋은데, 의외로 너무 호들갑이다. 머리에 쓴 후드 안쪽을 살짝 들여다본 사이토는 머리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어라, 여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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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귀찮아
온몸을 검은색 방어구로 꽁꽁 가렸기에,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하기는 애초에 무리였다. 그런데 얼굴을 보아하니, 붉은 입술에 뽀얀 피부, 깊은 음영의 눈이 상당한 미인으로 보인다.
“그녀를 놔주고 차라리 나를 인질로 잡아라!”
그와 대치하고 있던 어쌔신 중 한명이 자신의 후드를 벗으며 그에게 소리쳤다. 뾰족한 귀, 날카로운 눈, 검은 피부... 다크엘프였다.
“아니! 차라리 날 잡아라!”
앞 다투어 튀어나오는 다른 어쌔신... 결연한 표정이 비장하게마저 보인다. 잠시 발버둥치려는 여자를 디스코어로 잠재운 사이토는 그들을 시큰둥한 표정으로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웃기고 있네. 멜로를 찍어라. 멜로를..”
사이토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어떤 말을 토해내려는 그녀, 어쌔신 클래스들의 특성상 어떤 식으로 도망칠지 모른다. 물론 사이토는 스킬을 쓰려는 듯한 조그마한 변화 하나도 용납하지 않았다.
삭둑...
가장 자르기 편해 보이는 팔이 일착으로 잘려 나갔다. 팔뚝 즈음의 와이어를 당겨버렸기에, 뿌리가 좀 남아있다.
“악!”
“엘리언!”
“다음은 나머지 팔이다. 얼음처럼 서 있기를 바래.”
팔 하나가 날아갔기에 조임을 다시 조절한 사이토는 그녀의 귓가에 나직히 속삭여 준 뒤, 그의 앞에서 경악에 휩싸여 얼어 있는 남자 무리들에게 소리쳤다.
“살리고 싶다면 물러나라!”
“기사도도 없는 녀석 같으니!”
“그런 거 안 키워. 자자! 안 물러나면 마저 자른다.”
사이토가 와이어 한 편을 꾹 당기자, 어쌔신들은 황급히 물러나기 시작했다. 뒤따라 합류한 이들도 이를 갈며 뒤로 물러선다.
언제가 사이토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협박이라는 도구의 효용성에 사이토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물러섰다.
“움직이면 자른다. 움직이면 자른다.”
주문처럼 외워대며 어쎄신들의 경각심을 새록새록 돋구어 주는 사이토, 그러나 세상은 그의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이익!”
사이토의 품에 얌전히 안겨 있는 그녀가 갑자기 요동을 치기 시작한다. 다시 한번 경각심을 일깨워 줄 겸 나머지 팔을 잘라버리려 힘을 준 사이토, 그렇지만 그녀는 사이토의 생각보다 조금 더 모진 여자였다.
“아아악!”
사이토의 품 안에 잘라진 팔 한쪽을 고스란히 남겨 둔 그녀는 검은 연기로 변하여 어쌔신들에게 날아갔다. 어쌔신들의 7계급스킬인 나이트 쉐이드이다.
“제길!”
수 틀렸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은 사이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줄행랑을 쳤다.
“엘리언!”
“정신 차려!”
두 개의 팔이 잘려 나갔건만 목숨은 아직 붙어 있다. 사이토의 품에서 빠져 나가기 위해 팔 하나를 내 준 것이다. 사이토의 품안이 엔간히 싫었나 보다. 다행히 사이토의 뒤를 따르는 이들은 없었다. 성직자도 없기에 팔을 복구시킬 수 없다. 슬슬 정신을 잃기 시작하는 그녀이기에 그녀 주위를 둘러싼 남자들은 사이토 따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사이토의 도주는 그렇게 계속 되었다. 쫓는 이는 없었지만, 대로를 피해 진행하는 사이토에게는 중간 중간 덤벼드는 몬스터들이 방해물이었다. 그렇게 몇 시간을 전력 질주 한 끝에 사이토는 사냥터에 마련된 헥시르용 포탈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 날 저녁 헥시르에 당도할 수 있었다.
“헥시르라...헥시르...”
검은 바람이 볼을 찌르고 지나간다. 쇠락된 도시의 표본인 듯, 곳곳에 거지 NPC들이 즐비하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어린아이의 찢어질 듯한 울음소리, 간혹 비명소리도 귓가를 자극한다. 무질서하게 들어선 더러운 건물들... 발에 밟히는 흙의 감촉까지도 삭막함을 대변하는 듯, 마른 소리를 내며 그를 반겼다.
“시끄럽군.”
주위를 둘러본 사이토는 곳곳에서 들려오는 괴기스런 소리에 귀를 후비며 중얼거렸다.
아리유에 비해서는 중소 정도의 크기의 도시였다. 위치상 아리유에서 약간 남쪽으로 쳐졌기에 아직 전쟁에 휩쓸리지는 않았지만, 도시 곳곳에 무장한 유저들이 바삐 돌아다니고 있다. 공동포탈에서 빠져나온 사이토는 로브로 온 몸을 가렸다. 어차피 전쟁에 낄 생각이 없는 사이토이기에 주위 상점에서 유저들이 직접 제작한 도시 지도를 사들고 헥시르 내의 술집들을 하나하나 탐문해 보기 시작했다. 좁은 중소 도시라고는 하지만, 지도 하나만으로 그 모든 술집들을 찾는 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떤 술집은 골목과 골목 사이에 비스듬히 간판 하나를 드리우고 있다. 또 어떤 술집은 사람이 너무 많은 탓에 진짜 NPC 찾기가 수월치 않다.
네 다섯 시간을 돌아다녀 허탕을 친 사이토, 마지막으로 찾아보았던 술집에서도 레미라는 NPC를 찾지 못한 사이토는 아예 그곳에 눌러앉아 늦저녁부터 혼자 술을 홀짝였다.
“주인장! 여기 흑백주 하나 더...”
사이토의 부름에 열심히 컵에 광을 내던 70대 초로의 술집주인은 그에게 다가와 맥주 한 컵을 내밀었다.
“아까와 같이 선불이오.”
“여기...”
은화 한 개를 테이블에 놓자 주인은 은화를 조심스레 집어 들고는 속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벌써 세 잔째이건만, 주인은 전혀 친해질 기색이 보이지 않고 똑같은 말만 되풀이 한다. 처음 이곳에 들어와서 주인에게 근처에 혹 다른 술집이 있는지 물었을 때, 이 노인은 그를 한번 힐끔 쳐다보았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술집이라면... 딱 하나가 더 있지.”
노인이 입을 연 것은, 막 사이토가 6잔째 흑맥주를 입에 댈 때였다. 시간은 벌써 늦은 새벽을 가리키고 있다. 마지막 손님이 잠자리에 들기 위해 문을 나선 순간, 노인은 사이토에게 주섬주섬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그것이 어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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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귀찮아
사이토를 천천히 훑어보는 노인, 노인의 자글자글 주름진 손이 사이토의 앞으로 뻗어왔다.
“아아...”
주머니에서 10실버짜리 동전을 찾던 사이토는 이왕 주는 거 화끈하게 주자는 생각에 2골드를 꺼내어 노인에게 보여 주었다.
사이토의 배포에 경의를 표하며 늙은이의 주름이 화회탈 모양으로 변신한다.
사이토의 손에서 황급히 두 개의 금화를 낚아채려는 노인, 그러나 사이토는 단 한 개만을 넘겨 준 채 나머지 하나는 노인에 앞에서 딸랑 딸랑 흔들었다.
“나머지는 대답여하에 따라서...”
순간 노인의 머리 위로 퀘스트 시작을 나타내는 투명한 글씨가 새겨졌다. 빙고를 외치는 사이토... 레미라는 NPC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퀘스트를 얻는데는 성공했다.
“젊은이가 노인을 가지고 놀면 쓰나... 츳”
말은 그렇게 하지만, 눈은 연신 사이토의 금화를 쫓고 있다.
“운이 좋구먼. 사실 우리 가게 밑 지하로는 거대한 지하광장과 연결되어 있어. 사람들은 그 곳을 투기장으로 만들어 놓고 여가를 즐기곤 해. 그 곳에 술집이 하나 더 있다네. 뭐, 이름은 없고, 그냥 말론의 술집이라고 부르는 곳일세. 사실 우리는 입장료로 1골드를 받고 있어. 그러니, 자네가 낸 것은 단지 입장료일 뿐이야.”
물론 그 말에 속아 줄 사이토가 아니었다. 그러나 일단 퀘스트를 얻었다는 마음에 기분 좋게 나머지 한 닢을 노인에게 넘겼다. 사이토는 잠시 후 노인으로부터 지하투기장으로 들어가는 통로로 안내 받았다. 별달리 가릴 것은 없는지, 입구는 거적때기들로 위장해 놓았다.
“사실 이 지하투기장은 나뿐만 아니라, 이 근방 몇 몇 술집들과 이어져 있지. 그렇지만, 아무나 올 수 있는 곳은 아니라구. 뜨내기들이 이런 곳에 발을 들였다가는 당장에 사람들한테 잡혀서 몬스터 밥이 될 걸?”
노인이 거적때기를 들춘 뒤 램프를 들고 앞서자 사이토는 노인을 뒤따라 걸었다.
“이 투기장에서는 주로 어떤 것을 취급하지?”
“뭐, 안하는 것이 있나. 사람 대 사람도 있고 사람 대 몬스터도 있고 몬스터 대 몬스터도 있고
그렇지 뭐.”
“그렇군.”
얼마 되지 않아 노인과 함께 도착한 곳은 수십 개의 횃불들이 불을 밝히고 있는 거대한 지하 광장 이었다. 대략 기백 명은 될 듯한 사람들이 먹고 마시며 떠들어 대고 있었고 중앙으로 보이는 폭 30미터는 됨직한 넓은 구덩이 안에서는 지금 한창 몬스터들이 싸우고 있었다. 매캐하게 코를 자극하는 횃불의 탄내, 더러운 땀내와 섞여 콧속으로 스며 들어왔기에 사이토는 눈살을 찌푸리며 후각설정을 조정했다. 광장의 절반 정도가 술집인 듯, 수많은 사람들이 테이블에 앉아 게임을 구경하며 술을 마시고 있다. 손님과 손님사이를 능숙하게 돌아다니는 반 나신의 웨이트리스들, 쉴 새 없이 사내들의 음탕한 손이 그녀들을 더듬어 오지만, 용케도 얼굴표정 하나 찌푸리지 않는다.
“난 이만 가네.”
“아, 고마워.”
노인이 나가고 적당한 위치의 테이블에 자리 잡은 사이토는 주위에 앉아 있는 이들을 쳐다보았다. 거의 모두가 NPC들이었다. 게중 퀘스트를 해결하기 위해서 온 듯한 이들이 몇 명 눈에 띈다.. 사이토는 그에게로 다가오는 웨이트리스에게 물었다.
“여기 혹시 레미라는 사람 있나?”
그러나 사이토의 물음을 받은 웨이트리스는 모른다는 대답으로 일관하며 주문만 받고 쌩하니 가버렸다. NPC들 사이에 끼어있던 유저들이 킥킥거리며 웃는다. 아마 그들도 겪었던 일이었으리라. 퀘스트의 내용은 틀리지만, 장소는 같다. 스토리퀘스트에는 일정한 틀이 존재하지 않는다. 큰 틀은 존재하지만, 그 스토리 안에서 움직여야 하는 유저들은 어떤 방식으로 퀘스트에 참가하게 될지 모른다. 때로는 이 말론의 술집을 목표로 오기도 하고, NPC와의 여행에서 들어오게 되기도 한다. 절대 자신의 앞에 어떤 퀘스트가 기다릴지 모르는 것이 바로 이 리얼판타지아였다. 이번 퀘스트는 강진이 가르쳐 준 것이다. 그의 말로는 이것이 가장 빠른 퀘스트라고 한다.
“제길...”
사이토에게 스토리 퀘스트는 처음으로 얻어 보는 것이었다. 스토리 퀘스트가 아닌 일반 퀘스트의 경우에는 굳이 게임의 스토리를 알 필요가 없다. NPC들이 다 그 정도를 가정하고 있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대답하고 사고할 줄만 안다면 퀘스트 해결은 무난하다. 그러나 스토리 퀘스트는 다르다. 이야기를 모르면 풀 수 없다.
몇 몇 웨이트리스들에게 더 말을 걸어 봤지만, 그들도 고개만 흔들 뿐이다. 하라는 대답은 하지 않고, 사이토에게 안겨들기만 하는 웨이트리스들... 짜증만 돋을 뿐이다. 그렇게 2 시간이 지나, 슬슬 짜증이 분노로 바뀔 무렵, 장내가 조용해지며 한 사람이 투기장 위 공중에 설치 된 원형 발판에 섰다.
“카마프라하 왕국을 대표하는 모험자 여러분, 또한 황금과 보물을 찾아 이곳을 찾아드신 사냥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 말론의 술집을 경영하고 있는 말론이라고 합니다!”
약간의 아부성 짙은 멘트를 유창하게 내뱉은 말론이라는 인물은 좌중을 한번 돌아본 뒤 말을 멈췄다. 장내가 완전히 조용해지기를 바라는 것이리라. 말론은 한쪽 눈을 검은 안대로 감싼 30대 중반의 우락부락한 남자이다. 특이한 점이라면 머리에는 단 한올의 머리털도 보이지 않는데 두부를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큰 흉터가 인상 깊었다. 아무튼 이내 장내를 조용히 시킨 말론은 또박 또박 말을 이어나갔다.
“호오...”
사이토는 눈에 이채를 바라며 그를 바라보았다. NPC인 주제에 말론이라는 인물은 상당히 강한 축에 속한다. 물론 경비병들의 무력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저 정도라면 거의 6계급 전사클래스와 동등할 듯싶다.
“저... 실례 좀 해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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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260 기념일까? '-'...훔.. 이 즈음...에서 끊어볼까..?=ㅂ=.. 아.아...내일..시험의 마지막...아..중간 고사는 시려..-ㅂ-.. 여러분들은 아시는가? -_- 데자부가 중간고사 기간에도 쓴다는...[미친 놈..-_-; 뒈져라..] 아아... 게다가... 아우..후..
... 논문에다가... 레포트 2개가 눈 앞에서 오락가락..-ㅂ-.. 누구 나 대신 행정학 논문 써주실 부운~~ 최소 30장은 정말 압박이라구우..-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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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귀찮아
누군가가 사이토의 뒤를 콕콕 찔러왔다.
“누구지?”
“아, 예? 죄송합니다. 바람을 품고 있는 방랑자여. 제가 놀라게 해 드린 모양이군요.”
갸름한 얼굴에 미소년이다. 완벽한 블론드를 지닌 미소년... 옷차림은 때가 좀 묻어 추레해 보이기는 하지만, 한 눈에 봐도 상당히 고급스러운 천으로 제작된 옷이었다. 허리에 걸린 샴쉬르의 손잡이에 달린 작은 보석이 눈을 현혹시킨다. 짚이는 것이 있기에, 사이토는 최대한 얼굴을 굳히며 그를 노려보았다. 퀘스트가 걸려든 느낌이다. 퀘스트를 할 때 중요한 점은 단순히 스토리만 따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매사에 진지하게 스토리마다 주어진 역할에 충실해야한 이야기를 끌어 나갈 수 있다.
“용건은?”
“끙, 저를 경계하시는 모양이군요. 제 이름은 레미라고 합니다. 바람을 품고 있는 방랑자님...”
머리를 긁적이며 자신의 소개를 하는 레미라는 소년, 바람을 품고 있는 방랑자라는 것은 도둑들을 일컬어 높여 부르는 소리이다.
마음속으로 빙고를 외치는 사이토, 레미라는 인물이 제 발로 찾아 올 줄은 몰랐다.
마침내 그가 찾던 레미라는 인물이 나타나자 사이토는 만면에 웃음을 띠우며 그를 마주 보았다.
“나는 사이토라고 하오.”
“근데 왜 그렇게 웃으세요?”
“아, 별 것 아니요.”
고개를 갸웃거리던 레미라는 소년은 사이토의 손짓에 따라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황급히 얼굴에 나타난 미소를 지우기 바쁜 사이토...
“자! 무슨 일이요?”
목소리는 느긋한 듯 음침한 톤이지만, 후드 사이로 보이는 눈만은 반짝거리고 있다. 흡사 빨리 다음 이야기를 가르쳐 달라는 어린아이의 망글망글한 눈빛... 사이토의 망글망글 눈빛 어택을 애써 외면한 레미는 사이토의 옆으로 바짝 붙어 용건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사실 저도 이곳에 잠들어 있다는 세인트요나르를 꼭 필요로 하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실력이 미천해서 도저히 저의 실력으로는 이곳을 통과하기 힘들거든요.”
“세인트요나르?”
사이토가 반문했다. 황당하다는 눈빛의 레미...
“아니, 세인트요나르가 뭔지도 모르시고 이곳에 오신 거에요?”
“아, 알고는 있지만, 너무 오래 되서 기억이 가물가물 하군.”
사이토는 얼버무림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이 정도 표현력이라면 거의 2급의 AI일 것이다. 2급 AI라면 거의 인간과 똑같은 수준의 표현력이 가능하지만, 자신이 AI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는 결점이 있다. 다행이라는 것은 2급AI라면 약간 정도 퀘스트에 대해 무지하다 해도 진행은 가능하다.
“세인트요나르는 여신 에루딘이 잠들어 있다는 엑셀리온 호수의 문을 열수 있는 유일한 열쇠에요. 혹시 엑셀리온 호수의 전설도 모르시는 건 아니겠죠?”
“아, 그건 알고 있소.”
레미가 슬슬 의심의 눈초리를 보이기 시작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말을 재촉하는 사이토...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 레미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사실 제 능력이 미천하기는 하지만, 사이토님의 능력을 알아 볼 정도는 되거든요. 그렇지만, 이 곳에 있는 던전을 통과하기는 불가능 할 듯 싶어서 이렇게 사이토님에게 부탁드리는 거에요.”
레미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이토는 열심히 말론이라는 작자가 떠들어 대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렸다. 말론이라는 작자도 슬슬 레미가 말한 이야기의 핵심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 말을 대충 요약하자면, 이 헥시르라는 도시는 과거 아리유에 버금갈 정도로 번창하던 도시였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대규모의 마수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이 헥시르를 공격했고, 그 피해로 인해 수많은 건축물들이 파괴되었다고 한다. 이를 보다 못한 엑셀리온 호수의 여신이 자신의 신기 세인트요나르를 이곳 헥시르의 지하에 꽂았고 그 이후로 몬스터들이 헥시르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자네는 세인트요나르가 왜 필요한 건가? 아니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일세. 여신이 인간을 위해 선사한 신기를 굳이 필요로 하는 이유가 뭔가?”
사이토의 말에 레미는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사이토님의 말이 맞아요. 사실, 이곳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신의 신기라는 것에 눈이 어두워 모여들은 탐욕스런 인간이 대부분이죠. 그렇지만, 제가 이곳에 온 목적은 그들과 다르답니다.”
얼굴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하는 레미, 처음의 이미지는 그냥 잘생긴 미소년으로 보였지만, 지금의 표정속에는 근엄함까지 묻어난다.
“근래 들어 몬스터들이 준동하고 있어요. 이 일에 대해 나라에서도 조사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400년 전 일어났던 몬스터들의 대 침공이 다시 현실로 나타날 듯 합니다. 과거에는 엑셀리온의 여신이 막아주었다고는 하지만, 지금 여신께서는 당시의 일로 인해 엑셀리온에 잠들어 계세요. 그 분을 깨울 수 있는 것은 그분의 신기 저 세인트요나르밖에 없는 거죠.”
고개를 끄덕거리는 사이토, 이제야 스토리의 전말이 슬슬 잡혀오기 시작했다. 사실 사이토도 이번 리얼판타지아가 처음 해보는 게임이 아니었다. 이 정도 스토리라면 가뿐하게 예상 가능 수준이다.
필시 이 레미라는 소년은 상당히 고위직책에 있을 것이다. 왕의 오른팔, 혹은 높은 지위를 가진 귀공자... 아니면 이 나라의 왕자일 가능성이 크다. 어차피 뻔한 스토리... 사이토는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얼굴을 굳히며 레미에게 말했다.
“좋소이다. 수많은 이의 목숨이 걸린 이상, 내가 돕지 않을 이유는 없지!”
사이토의 결정에 얼굴이 활짝 펴지는 레미...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휴... 저는 사이토님께서 혹시나 대가 같은 것을 요구하실까 싶어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역시 제가 사이토님을 재대로 본 거군요!”
“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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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변덕쟁이 데자부~-ㅂ- 요호~
느즈막히 하나 더 올려 보죠. 아..근데 요즘은 씰온라인을 하고 있습니다 (베타를 즐기는~ ㅜㅜ 사실 돈이 없어.. 제길...)
아무튼 콤보도 재미있고... 그 덕에 "그랜져"라는 엄청나리 재미있는 소설을 쓰시는 (정말 정말 재미있어요~ 정말이라니까능~) 홍정태 형~(30세 캬캬캬) 을 꼬셔 같이 돌리고 있지요. 아아..그랜져 한번 봐주세요. 정말 재미있다니깬..-ㅂ-.. 암튼..음.. 지금 씰 5썹에서 놀고 있는데~ 훔... 그런데 저한테 "저도~ 5썹~" "저도 키워요 제 아이디는 ~~~ 입니다" 라는 분들~! 헹~ 어찌 들어가서 맨날 찾아보면 아무도 없어~ -ㅂ-~ 췟췟...(나 인큐날개 끼고 싶어요ㅜㅜ.. 으흑~ 하나만 주어여~ 우어~) 아아..암튼..-ㅂ-.. 훔... 뭐랄까.. 정말 미친짓이다 싶은...-_-.. 킁..에혀..모르겠다..
"그녀에게 고백한지 200일이 다가옵니다. ^-^.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은... "당신을 안 뒤로, 진정한 목마름을 깨달았습니다. 항상 곁에 있어 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그렇지만, 데자부의 하루 일과 중 70프로를 차지하는 것은 당신에 대한 그리움...그리고 마음입니다. 조금 더 노력하는 데자부가 되겠습니다. ^-^ 사랑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ps. 여친 없다고 남친 없다고~ 저에게 저주를 내리시는 분들...-_-a 지금 당장 용기를 내서 고백하세요. 아아..물론 있을 때 이야기지만... 가슴속에 담아 둔 말들은 그냥 가슴에 묻힐 뿐입니다. 하지만, 사랑을 시작하기 전 꼭 생각할 것은...당신이 그 사랑을 진정 감당할 자신이 있으냐는 겁니다. 그 사람이 지닌 고통, 아픔, 슬픔등을 모두 나눌 수 있습니까? 간편한 사랑... 간단한 사랑이 많은 현실입니다. 제 생각을 남에게 강요하는 것은 저의 취미상 별로 맞지 않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아 물론 하기 싫음 말구요.-_) 후훗...
사랑해요~ 자기~이~ -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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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귀찮아
머리를 감싸는 사이토, 퀘스트를 해결해야 한다는 마음만 앞섰지 대가를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 와서 얼굴에 철판 깔고 다시금 댓가를 요구하기는 무리이다. 게다가 잘못하면 퀘스트가 어떻게 꼬여 버릴지 모른다. 돈은 항상 넉넉하니 아쉬운 그것으로나마 마음을 달래는 사이토이다.
“전 올해로 17살인 아리유 출신의 레미라고 해요. 성은 없고, 평민입니다. 그냥 편하게 레미라고 부르셔도 되요.”
“몇 십 년 전부터 꽃띠 17살이겠지.”
심사가 꼬여버린 사이토...
“예?”
“아..아니야. 난 빌로아 출신의 26살 사이토라고 해. 보시다시피 도둑질로 먹고 사는 사람이지.”
“아, 예.”
가시 돋친 사이토의 말에 굵은 땀을 흘리는 레미... 둘이 얘기를 나누는 와중에도 말론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모두가 알고 계실 세인트요나르! 엑셀리온 호수의 여신 에루딘의 신기가 잠들어 있는 이곳! 이 지하던젼에 도전할 용사를 찾습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겠지만, 지원자가 많을 경우 최후의 두 팀이 남을 때까지 대전이 벌어집니다! 지원자격은 계급에 상관없이 최대 네 명으로 이루어진 단일팀이며 시간은 내일 아침 바로 이 곳에서 시작합니다. 자 도전하십시오! 신청은 카운터에서 받으며 참가비는 300골드입니다.”
말론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몇 몇 모험자들이 천천히 카운터로 모여들었다. 개중에는 인원 채우기 용으로 보이는 NPC팀들도 몇 몇 보인다. 그렇지만 알짜배기는 유저들이 섞인 팀...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가려는 사이토를 레미가 붙잡았다. 아주 비밀스러운 이야기인 양 귀엣말로 속삭인다.
“기다려요. 숙련된 실력자들은 원래 가장 나중에 접수한다고요. 그들을 모두 본 다음 해도 늦지 않아요.”
“후우...”
사이토는 한숨을 내쉬며 레미를 한심하다는 듯 내려다 보았다.
“우리 어차피 접수 할 꺼지?”
“그렇죠. 다시 참가하려면 일주일을 더 기다려야 하니까.”
“그럼 굳이 따질 필요 없잖아.
머리를 긁적이는 레미를 뒤로하고 사이토는 카운터로 다가갔다. 실력자들은 이미 체크가 끝난 상황이다. 어차피 주의해야 할 것은 유저들 뿐... 등록을 마친 사이토는 레미와 함께 말론의 술집을 나섰다.
“저 그런데 일행이 있으신지...”
“없는데?”
“아, 그럼 제 동료들이 있는데 그들이 참가해도 되겠습니까?”
“그러지. 뭐.”
활기찬 발걸음으로 앞서는 레미, NPC라는 것을 제외한다면 일반 유저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자연스러움이다. 아마 이 동료라는 것들도 퀘스트에 포함되어 있는 것들 중 하나일 것이다. 가끔 게임을 하다보면 현실을 잊을 때가 종종 있다. 워낙 발달된 AI와 현실성으로 인한 것이다.
“너는 네가 살아있지 않다는 것을 아냐?”
“무슨 소리에요?”
“네가 게임 안에서의 단순한 데이터 하나라는 걸 아냐고...”
사이토의 물음에 레미의 초롱초롱하던 한순간 멍해진다.
“하하! 무슨 소리에요?”
역시나 레미는 알아듣지 못한다.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토, 잠시 장난식으로 묻기는 했지만, 레미가 살아있지 않은 AI라는 것이 확연히 느껴진다. 게임 안에서 살고 있는 AI들은 자신들이 AI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또한 그것에 대한 정보가 입력되어도 자체적으로 처리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의 레미와 같은 반응으로 나타난다.
“그 동료라는 사람들은 어디에 있지?”
“예, 잠시 조사할 일이 있어서 조금 있다가 만나기로 했어요.”
“그래. 근데 뭐 하냐?”
“예? 적선하잖아요.”
열심히 동료을 찾을 생각은 하지 않고, 레미는 주변의 거지들에게 돈 나눠주기에 바쁘다. 돈이 썩어나는 듯, 10실버짜리 은화들은 뭉텅뭉텅 뿌리고 있다. 이맛살을 찌푸리는 사이토, 왠지 시간 버리는 듯한 기분이다.
“돈 많네. 기왕이면 아까 참가비도 네가 냈으면 좋았을 텐데.”
비이냥거리는 사이토이지만, 레미의 스마일 페이스는 깨질 줄 모른다.
“헤헤, 괜찮아요. 어차피 사이토씨한테 들어갈 돈이었는데요. 뭘...”
“쿨럭...”
말만 잘했다면 그 자신에게 돌아왔어야 할 돈들이 거지들의 수중으로 떨어지고 있다. 허리춤의 셀레네에 자꾸 손이 가는 사이토,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NPC였다.
“시간 늦었으니 어서 가자.”
“네.”
조금이라도 더 거지들을 도우려 주머니를 뒤적이는 레미를 잡아끄는 사이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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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귀찮아
“여기야! 여기!”
“오빠앙!”
레미가 동료들과 만나기로 했던 장소는 골든페어리라는 여관이었다. 레미와 함께 1층에 마련되어 있는 테이블에 앉아 있던 사이토는 잠시 후 가게문을 열고 들어오는 두 여아들을 볼 수 있었다. 대략 8살 정도 되어 보이는 깜찍한 여자아이 하나와 레미와 동갑으로 보이는 여자애 하나이다. 레미가 그들을 향해 손짓을 하자, 깜찍한 포즈로 가게 안쪽을 힐끔거리던 꼬마아이가 손을 흔드는 레미를 발견하고는 환한 미소와 함께 그에게 달려왔다.
딸깍딸깍...
꼬마아이의 발에 신겨진 나막신마저 귀여움으로 똘똘 뭉쳐있다.
“누군가를...닮았군.”
예전 그를 괴롭히던 테시미어 길드의 왕로리 실키의 어릴 때를 보는 듯 하다. 당시의 그녀를 어릴 때의 모습으로 축소한다면 지금의 이 꼬마아이와 똑같았을 것이다. 분홍빛 머리카락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길어 보인다. 포니테일 형식으로 하얀 끈으로 마무리 지어 끈이 아이의 무릎까지 내려온다. 하얀 원피스가 어울리는 천사 같은 얼굴의 꼬마아이, 채 10살도 안 된 주제에 은은하게 잡혀 있는 몸매가 이채롭다.
“에루나, 뛰면 위험하다고 했잖아.”
뒤따라 걸어 들어오던 소녀가 조금 전 귀여움 한가득 사태를 일으킨 에루나라는 꼬마아이에게 주의를 주었다. 금새 눈물이 그렁그렁 해 지는 에루나라는 아이...
“에린, 뭔가 단서라도 찾았어?”
“아니...”
레미의 물음에 에린이라는 소녀는 고개를 잘래 잘래 흔들며 그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와 앉았다. 마법사인 듯 동양적인 느낌이 드는 무릎까지 오는 검은색 드레스와 가슴을 꽉 조이는 듯한 란제리룩이 눈에 확 띈다. 이 에린이라는 소녀도 긴 머리카락을 주체할 수 없는지 그녀는 뒤로 길게 늘어뜨려 끈으로 얼키설키 묶어 놨다. 동양적인 느낌의 미소녀이다.
“엄청난데?...”
“네?”
사이토의 중얼거림에 레미가 그를 돌아보며 물었지만, 사이토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을 회피했다. 레미와 거의 동갑으로 보이기는 하는데, 쓰리 사이즈가 장난이 아니다. 거의 다이너마이트 보디 수준, 최대한의 현실성을 구현한다는 리얼판타지아에 이런 미남 미녀 NPC 커플들이 있다니... 사이토는 새로운 사실에 대해 개안을 한 느낌이다. 한마디로 완벽한 미소녀 미소년들의 향연이다.
“이분은?”
에린이라는 소녀가 사이토를 지목하자 에루나라는 꼬마아이는 레미의 뒤에 숨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사이토를 올망졸망 관찰하기 시작한다. 눈 안에 어린 것은 호기심과 두려움이다.
“이분은 내가 같던 말론의 술집에서 만난 분인데, 우리가 세인트요나르를 얻는 것을 도와주신다고 하셨어.”
“사이토라고 하오.”
“예...에린이라고 합니다.”
마주 인사를 하는 에린, 얼굴 표정에서 경계의 빛이 언 듯 비친다.
레미의 뒤에 숨어서 사이토를 힐끔 힐끔 훔쳐보고 있는 에루나...암록색 후드로 온몸을 가리고 긴 머리카락사이로 눈 하나 빼꼼 나온 것이 괴기스럽기는 괴기스러울 것이다.
레미는 자꾸만 뒤로 숨으려는 그녀를 사이토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우리 파티의 히로인이자 귀염둥이 에루나라고 합니다.”
“아...안녕.”
“...”
흡사 무슨 괴물 보는 듯, 경계심을 강하게 발산한다. 그리고 그 경계심의 목적지는 사이토 본인, 어차피 NPC꼬마에게 환심 사고 싶은 마음은 단 한 조각도 없었기에, 경계하는 에루나를 가뿐하게 씹어주는 사이토이다. 밤이 늦었기에 레미와 사이토, 에루나, 에린은 여관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날 다시 모이기로 약속을 정했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사이토는 그의 옆방에 투숙했던 레미의 악몽을 들어야 했다. 몬스터들이 자신을 덮쳤다는 둥, 거대한 하얀 드래곤이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봤다는 둥, 어차피 퀘스트의 일환이기는 하겠지만, 레미가 꿈이야기를 하며 온몸을 전율할 때마다 그의 옆에서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눈에 눈물이 송글송글 하는 에루나와 에린은 정말 우습지도 않다.
“난 먼저 나가 있지.”
왠지 배알이 꼴리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사이토는 레미에게 그 말 한마디를 툭 던지고는 1층으로 내려갔다.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주문하고, 발을 까딱거리던 사이토의 귀로 유저들의 이야기 소리가 슬금슬금 기어들어온다. 그가 저지른 만행, 혹은 실수담에 대한...
“아! 글쎄! 그 미스틱핸즈는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단 말야!”
레인저로 보이는 이가 고개를 갸웃 갸웃하며 그의 옆에 앉은 전사에게 말했다.
“뭐가?”
“아, 전쟁이 거의 절반이나 지나갔는데... 그 전까지 꼼짝도 안하던 그가 갑자기 카모프왕국의
총대장을 암살해 버렸단 말야! 게다가 그를 뒤쫓던 카모프왕국 내, 서열 5위 안에 드는 다크메이지 길드 마스터의 오른팔, 흑색의 악몽이라고 불리는 더스트가디언들의 리더 엘리언까지 게임오버를 시켜버렸어.”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사이토는 천천히 손을 움직여 후드를 쓰고 검들을 잘 갈무리 하고 몸을 최대한 숙였다. 그를 뒤쫓던 여자의 이름이 엘리언이라는 것은 협박스킬 사용 중 상대에게 들었던 이야기이다. 영화라던가 소설 등에서 보면 분명 이런 대목에서 그의 신분이 노출되어 활동하는데, 떨거지들이 따라붙을 위험이 있다. 절대 사양이다.
“끝내 뒈졌나?”
양 팔이 잘린 것까지 보고 줄행랑을 쳤던 사이토이다. 왠지 실력이 좋다 싶더니 그 여자 또한 월척이었다. 총대장 하나에 길드 마스터의 오른팔이라니... 카모프왕국으로써는 치명타 중에 치명타이리라. 단 한명이 천여 명의 군세들에 둘러싸인 총대장을 암살해 버리다. 게다가 뒤 쫓던 거물까지 게임오버 시켰다. 피해는 둘째 치고, 자존심을 완벽하게 짓밟아 놓은 것도 모자라, 가루를 내 버렸다. 사기 저하는 이미 기정사실이다.
“제기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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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예정대로라면 일주일 뒤에 슬금 슬금..올리려고 했는데..-_-.. 가~안 만에 노리존이라는 채팅방에 들어가 봤는데...아무도 없더군요... 저랑 이야기 하고 싶으신 분은 들어오셔요..어차피 방 하나밖에 없습니다.-ㅂ-... (ps. 지워진 부분을 달라시는 요청 혹은 올려달라는 요청은 사절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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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귀찮아
별로 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었다. 전쟁이야 이기던 지던 별로 상관 안하고 싶었다. 그런데 총대장이 재수 없게 그의 앞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얼떨결에 그어버린다는 것이 게임오버... 게다가 방어본능이 오버하여 상대의 유명인사까지 죽였다. 한숨과 푸념의 하모니를 뿜어대는 사이토의 귀로 그들의 이야기는 계속 되었다.
“그래도 굉장하지?”
“그렇지. 그렇지.”
그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 정보는 그 총대장이 죽자마자 곧바로 소문이 쫙 나버렸단다. 제보자는 카모프왕국의 한 유저, 만약 실제 전쟁 같았다면, 이 사건은 절대 드러나지 않아야 할 극비이건만, 아무래도 입이 싼 녀석인가 보다. 아무튼 그 일 이후, 웃기게도 카모프왕국의 군세들은 뿔뿔이 찢어졌다고 한다. 이유는 총대장을 살해한 그 간 큰 도둑을 찢어발기겠다는 것, 또 어떤 길드에서는 그대로 아리유로 쳐들어가기 위해 찢어졌다고 한다.
“흐음, 몸조심해야겠는걸.”
로브를 더욱 꼭꼭 여미며 사이토가 중얼거렸다. 다른 유저들이라면, 드러내 놓고 그 일을 자랑하고 다니겠지만, 현재 사이토의 주변사정은 그리 좋지 않다. 아이아스 길드라던가 그들의 측근 길드들은 아직 사이토에 대한 원한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재수 없게 카모프쪽으로 사이토의 위치 정보라도 노출시킨다면, 또 다시 달밤에 숨바꼭질을 해야 할 지경이다. 게다가 카모프 왕국 측에서는 리얼판타지아 최초로 적국의 영웅과 같은 존재에 대해 현상금까지 걸었다고 한다. 그것도 카마프라하왕국 측, 유저들까지 포함해서...
‘미스틱핸즈를 게임오버 시키는 이에게 국적불문하고 100만 골드 지급’...
“머리 아프군.”
사이토가 우려하던 바였다.
“사이토씨! 안녕히 주무셨어요?”
악몽에 눌려 발발 기던 모습은 어디가고 다시금 활달한 표정으로 에린과 에루나를 이끌고 나타난 레미... 사이토는 행여 누가 들을까 황급히 입에 손가락을 가져다대며 주의를 주었다. 빠른 속도로 주변을 훑어보는 사이토...
“무슨 일인데요?”
“몰라도 돼.”
아침부터 기분 나쁜 소리만 들었기에 사이토의 기분은 과히 좋지 않았다. 몇 가지 간단한 아침인사를 끝내고 일행은 말론의 술집으로 가기 위해 짐을 챙겼다.
“그 에루나라는 꼬마는 웬만하면 여관에다가 두고 가는 게 어떨까?”
사이토의 말에 에루나가 눈살을 찌푸리며 얼른 에린의 뒤로 숨었다.
“왜죠?”
“너도 어제 봤잖아. 거긴 성인 전용술집이라고... 거기에다가 우리는 곧 전투를 치러야 해. 저기 에린까지 전투에 참여하게 된다면 에루나는 혼자 남게 될 텐데. 그 곳에 에루나 혼자 둘 생각은 아니겠지?”
논리 정연하고 무척이나 타당한 사이토의 제안이다. 물론 그의 속마음이야 대놓고 그를 경계하는 에루나라는 이 시덥잖은 NPC꼬마가 눈에 걸리는 것도 있었고, 또 데리고 다니면 귀찮다는 것이 그의 의중이었다. 사이토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에루나를 바라보는 레미, 생각이 똑바로 박힌 NPC라면 당장 사이토의 말에 수긍하겠건만, 그가 망설인다.
“안돼요. 데려가야 해요.”
에루나의 손을 꼬옥 잡은 에린이 사이토에게 말했다. 레미도 머리를 긁적이며 사이토에게 헛웃음을 흘린다. 자신으로써도 어쩔 수 없다는 뜻,
“물러빠진 녀석...”
“하핫”
레미에게 한마디 쏘아붙인 사이토는 곧 일행으로부터 성큼성큼 앞서 나갔다. 아무리 퀘스트라지만, 그는 저런 류의 녀석은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행동을 보아하니, 얼굴만 맨들맨들 해서 착하고 우유부단하며 약간의 실력을 지닌 그런 캐릭터, 위험할 것이 뻔히 보이면서 에루나를 데려가려 한다.
“퀘스트겠지. 제길...”
보면 볼수록 마음에 안 드는 파티였다.
아론의 술집에 도착한 사이토는 일단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침이라서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다. 횃불들은 여전히 매캐한 내를 내뿜고 있지만, 테이블 곳곳에는 몇 명의 유저와 NPC만이 자리하고 있다.
“저쪽에 앉자.”
사이토는 입구에서 가까운 쪽이면서 사람들 눈에 잘 안 띄는 곳으로 자리를 잡았다. 자리에 앉아 보니 좀 더 깊숙한 곳에는 이미 눈치 빠른 여행자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그쪽도 퀘스트군요.”
NPC들 사이에 앉아 사이토를 주시하던 한 여성유저가 반갑다는 듯 말을 걸어온다.
“그렇습니다.”
짧게 대답한 사이토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 후드로 얼굴을 잘 가리기는 했지만, 지금의 행동은 더 이상 말을 나누기 싫다는 무언의 표시이다. 뭔가 더 말을 붙이려 하던 그 여성유저는 이내 멋쩍은 미소와 함께 그녀의 테이블로 고개를 돌린다.
“난 잠시 도구점에 다녀오지.”
“그러세요.”
아직 이른 시간이었기에 사이토는 밖으로 나섰다. 몇 몇 유저들이 거리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사이토는 곧 멀리 보이는 대장간을 발견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사이토가 도착한 곳은 NPC가 운영하는 대장간이었다. 곳곳에 풀무질하는 이들과 쉴 새 없이 검을 두들기는 대장장이들로 북적거린다.
“단검 두 자루를 수리해 주기 바랍니다.”
대장장이의 장 인 듯한 NPC남성에게 헬리오스와 셀레네를 맡기자 남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마스터급 제품이군요. 143골드 주십시오.”
“여기...”
돈을 셈한 사이토는 잠시 후 대장장이들이 그의 단검을 수리하는 것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근처 대장간을 빌릴 수 있다면, 이런 쓸데없는 지출은 피할 수 있을 것을, 문을 연 일반유저들의 대장간은 보이지 않는다. 전쟁의 영향으로 모두 싸우러 떠났기 때문이리라. 몇 칠 전 전투로 인해 헬리오스와 셀레네의 내구가 상당수 떨어져 있었다. 디스코어도 수리했으면 좋으련만, 현재의 도구로는 무리였다. 디스코어를 재대로 고치기 위해서는 마스터의 모루가 필요한데, 현재 그것은 테시미어 길드에서 얌전히 보관 중이다. 무기 수리를 끝마친 뒤 들른 곳은 NPC가 운영하는 도구점... 응급용으로 쓸 스테미너 포션과 체력포션을 산 사이토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가방에 집어넣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그가 사들인 양은 그 혼자 쓰기에는 꽤 많은 분량이다. 물론 그 자신을 포함해서 일행들이 사용할 것까지 사들인 사이토... 상당한 출혈지출이 있었지만, 써야 할 곳은 써야 한다.
“퀘스트 실패 따위는 겪고 싶지 않아.”
애써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시키는 사이토이다. 솔직히 현재 그의 기분은 보모의 그것과 비슷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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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한 편만 올립니다. -_-..후우..뭐하고 있는 건지 ...원
조아라 유머란을 뒤적거리다 보니, 과거에 보았던 유머가 있더군요. 뭐... 군대 갈 때 총 사가야 한다는데 어떤 것을 사가야 하나요? 따위... 뭐...당시 꽤 재미있게 읽은 경험이 있기는 하지만, 다시 읽으니 별로 였습니다.
그런데...
긁적... 과거를 떠올리니, 헛웃음은 나오더군요.
참고로 제가 재일 싫어하는 화제거리가 군대입니다. 뭐 축구 이야기도 있지요.
못했다기 보다는.. 음.. 남자 셋 모이면 꼭 빠지지 않는 단골주제(식상한 것)일 뿐만 아니라...
여자들도 싫어하는 화젯거리 라고 하고, 그런 이유로 좀 기피하죠. 이야기 꺼내는 것을...
그런데, 저 유머를 읽다보니 속이 좀 쓰리더군요.
저는 현역으로 들어갔다가 전투경찰로 착출을 당했습니다. (확실히 착출입니다. 절대 가기 싫은...제길..) 그 후로 광주 옆구리에 살포시 붙은 순천이라는 동네의 716전경대에 배속 받았지요. 뭐 당시에는 저도 꽤 빡세게 군생활 했다고 자부하지만, 별로 알아주지는 않더군요. 흐음.. 아무튼 이 716전경대가 순천 경찰서에 바로 붙어 있고, 또 그런 이유로 시내 안에서 근무했습니다. 흐흥..---.. 일단 시내 안쪽에 있었다라... 좋아 보이기도 했겠지요.. 뭐, 툭하면 데모하는 순천대학교라던가 시위기간만 되면 긴장시키는 광주가 30분 초간편 안이라는 것도 있고...
아무튼 저는 상당히 기수가 꼬였었습니다. 어느정도로 꼬였냐구요? 다른 것은 몰라도 제 기수 꼬인 것을 다른 이에게 말하면 모두 고개를 끄덕거리는 수준으로 꼬였었습니다. 상병 후반부까지 쫄따구 8명 데리고 생활했으니까요. 게다가 제가 수경(병장) 달 때 제 위로 수경이 32명이었습니다. 밑으로는 대략 13명 정도... 꽤 꼬였지요? 상당히 꼬였었습니다. 덕분인지, 저도 재대할 적에는 고질병 하나 몸에 걸치고 나왔지요. 잦은 구타로 인해서 오래 뛰지 못합니다. 허벅지가 엄청 땡겨서 아파버리거든요.(또 쓰라 하면 이 스토리도 써 드리지요.) 사실 군대 들어가기 전에도 아버님의 교통사고로 집안 일..(저희집 꽃하우스 합니다) 도와 드리다가 양쪽 어깨에 건염이 걸렸었지요. 만성 건염 (힘줄에 염증이 끼는 병으로특별한 대책 없는 병입니다. 몇 시간만 무리해도 시큰거리며 팔을 못들지요. 뭐 그래도 현역은 1급 주더군요. 병 따위..-_- 쳇.. 아아 옆길로 샛군..)
아무튼, 경찰서에 배속된 전투경찰... 훗... 시내 안쪽에 있다고 누군가가 좋아하겠지만, 웃기는 소리입니다. 경찰서에 소속되어 있으니, 보급? 웃기는 소리입니다. 위에서 다 빼 처먹었지요. 경찰서 윗 대가리들이... 다른 독립된 전투경찰대는 보급 철저합니다. 그리고 경찰서에 소속되어 있으니, 전경대는 경찰서에서 시키는 짓은 다해야 했지요. 저는 1년 반동안 죽어라 진압검열, 혹은 데모 막다가 교통소대로 옮겨졌습니다. 뭐... 허벅지 때문이기도 했지요. 전투경찰이... 교통경찰이라. 교통경찰에게 기본으로 주어야 하는 게 무얼까요? 일단 파란 상,하 복과 백모(경찰모자) , 흠..뭐더라..암튼 흰 가방 묶인 하얀 벨트.. , 그리고 힌 장갑, 검은 구두겠지요. 저요? ^_^ 경찰모자,하얀 벨트, 흰장갑 모두 자비로 샀습니다. 보급이 시원찮았거든요. 원래 교통의경들은 외부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밥값 포함 한달에 33만원 정도 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요? 3만원이었죠. 30만원은 어디로 갔을까요? (나중에 들어보니, 저는 부대로 들어가서 식사를 해결하니 그 돈 모두 부대로 들어간다더군요. 하루 12시간 혹은 최소 6시간씩 바깥에다가 줄창나게 세워 둔 주제에... 게다가 쫄병때야 배고픈건 모두 알죠. 상병때까지 PX는 고참들이 데려갈 때나 구경했고요.. 당연 바깥으로 나오면 배고픈 거야 당연하겠죠.(뭐 그것도 천사같은 고참이나 좀 먹여주겠지만...) 좀 사먹습니다. 꽤 사먹죠... 근데.. 월급 3만원은 모두 재대로 받는가?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소대비 명목으로 고참들은 2만오천원씩 꼬박 꼬박 빼았아 갔죠.(저 고참되니까... 싹 물갈이 되 버리더군요. 썩을...) 어떤 때는 고참녀석들이 방석집 혹은 술집 놀러가서 돈을 초과해 써버렸다며 4만원씩도 걷더군요.(만원은 자비 털어야죠.)
그런데도 웃긴게 뭔지 아십니까? 간부들도 이런 행태 모두 알고 있으면서 그냥 그냥 넘어가는 건 둘째치죠. 흰장갑 보급 한번, 우의 보급 한번, 일년에 한 두번 쥐꼬리 만큼 주면서 복장검사는 참 철저했다는 거죠. 흰장갑은 항상 깨끗~하게~ 자비 털어서 사야 했습니다. 기수나 풀렸으면 재대하는 고참들 물건을 물려받아 쓰겠건만, 기수가 정말 우라질나게 꼬이는 바람에 저는 사야 했지요. ( 뭐.. 제 동기 또는 제 이하들도 모두 샀지만..) 저도 군대 들어가서 설마 집안 돈 축내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구두도 제 돈으로 샀지요. 모자도 제돈으로~ 모두 모두 제돈으로 샀지요. 왜냐구요? 순천경찰서에 꼬붕으로 붙은 716전투경찰대 5소대 교통경찰들은 원래 재대로 된 교통경찰이 아니었으니까요~ 재대로 등록된 교통경찰도 아니었으니~ 보급이 나올리가 있나요. 한마디로 하는 짓은 교통경찰인데 원래 소속은 전투경찰이지요. 후우.. 뭐..할 말은 엄청나게 많고, 슬프지만, 씹을만한 에피소드도 꽤나 많지만, 이 정도에서 줄이지요. 더 원하신다면 주저리 주저리 써 드리겠지만서도...
ps. 이 글을 읽고 순천경찰서 혹은 대한민국 경찰 아저씨들 씹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썩은 인간은 졸라게 썩었지만, 제가 아는 두 분은 절대 씹지 말아주세요. 한 분은 2000년 당시 교통과에 근무하셨던 김범조 아저씨랑~ 또~ 한 분~ 크윽 (형 미안; 이름 까먹었어.ㅋㅋ) 아무튼 이 분들은 정말 완벽한 경찰, 멋진 경찰이었습니다. 뭐, 교통과가 잘해봐야 얼마나 잘하겠냐만은, 이 분들은 뇌물 단 한푼도 안드시고, 일 꼬박 꼬박 열심히 잘하시고, 능력있고, 리더쉽있고 문무도 출중한 분들이었습니다. 멋진 경찰 되겠다고 하시는 분들..이었지요.
아아..이만 줄이겠습니다. 결론은, 그냥 한풀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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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귀찮아
말론의 술집으로 돌아온 사이토는 상당수의 사람들이 술집 안에 모인 것을 살피며 레미들의 테이블로 걸어갔다. 바깥은 한낮이건만 이 곳은 항상 어둠에 잠겨 있다. 횃불이 있다고는 하지만, 전체적인 어두운 기운은 쫓아내지 못한다. 어제의 말론의 술집이 광란의 불야성이었다면 지금의 말론의 술집은 수많은 사람들의 중얼거림으로 가득하다. 그 화제라면 물론 상품으로 걸린 세인트요나르에 대한 것...
“에루나는 어떻게 할 꺼야?”
“으음, 그냥 데리고서 경기하면 안 될까요?”
사이토의 말에 레미는 머리를 긁적이며 반문했다. 후드 안으로 눈을 샐쭉하게 뜨는 사이토, 레미의 우유부단이 슬슬 그의 신경을 긁기 시작한다. 사이토가 지금 묻는 것은 전투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의 상식으로는 에루나를 전투의 현장까지 데려간다는 것은 사양하고 싶다. 위험한 것은 둘째 치고, 행동반경이 제한된다.
“혹시, 저 에루나... 특수하면서 강력한 마법의 힘이 있다던가...혹은 특별한 일을 겪으면 변신, 그것도 아니면 이성을 잃으면 엄청난 힘을 발산하지는 않니? 아니면 특별한 사연이 있는 아이라던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묻는 사이토...
“아뇨. 그냥, 몇 주 전부터 같이 다니던 아이에요. 그냥...”
에루나가 듣지 못하도록 사이토에게 귓속말을 하는 레미..
“사실, 고아에요.”
“어쩌라구. 씨...”
뒤쪽의 ‘발’이라는 말이 생략되었지만, 그것만으로 사이토의 기분은 거의 70프로 표현되고 있었다. 고아를 어쩌란 말인가? 고아면 그냥 사랑으로 예쁘게 보살펴 주고, 위험한 일은 피하게 해주면 되는 것 아닌가... 게다가 퀘스트에 전혀 상관없을 NPC꼬마를 이곳까지 데려오다니...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 사이토는 에루나를 노려보았다.
“오빠, 나도 같이 있으면 안 되는 거야?”
사이토의 눈빛을 깨끗하게 무시한 에루나는 또다시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레미를 쳐다보았다.
“으음, 갈등이네.”
“갈등 따위를 하긴 하는 거냐.”
사이토는 알고 있었다. 레미가 승낙하리라는 것을... 만약 그가 이번 퀘스트에 사활을 걸고 있지 않았다면, 일찌감치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기 싫은 사이토이다. 잘못하여 퀘스트가 무산되면 다시 퀘스트를 얻기도 힘들리라.
사이토가 이 한심한 파티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는 사이 무투장 위로 설치된 단상위로는 어제와처럼 말론이 자리하고 섰다.
“오늘 이 자리에 모여 주신 모험자님들에게 감사드리며, 경기 방식에 대해 설명 드리겠습니다. 일단 경기의 신속한 진행과 적절한 팀 안배를 위해 이 자리에 모이신 분들은 모두 저의 지목에 따라 경기에 임해 주십시오. 호명은 접수에서 나눠드린 번호표를 부르겠으며, 절대 항의라던가 불만은 접수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는 두 팀은 이 말론의 술집 지하 던전 깊숙한 곳에 숨겨진 세인트요나르를 얻으시면 되는 겁니다. 또한 경기에서 이기셨기에 자만하시는 분들을 위해 노파심에서 하는 이야기라면...흐흐, 이 곳 지하에 봉인된 세인트 요나르의 주위에는 당시에 봉인된 몬스터들이 주위를 어슬렁거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 숫자도 모를뿐더러...
말론은 손가락으로 목을 스윽 긋는 시늉을 했다.
“총 4층 중 정복된 곳은 3층까지입니다. 물론 그 이후로 들어간 이들은 소식이 없지요. 흐흐.”
도전자들을 한껏 긴장시킨 말론은 곧 대전의 시작을 선포했다.
잠시 후 술집 곳곳의 테이블은 전투를 지켜보려는 구경꾼들로 가득 찼다. 웨이트리스들은 술을 나르기 시작했고, 곧 술집 안은 떠들썩해 졌다. 대결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로 나선 것은 NPC들로만 이루어진 두 파티...
“역시...”
전체적으로 봤을 때, 말론은 유저들이 포함된 파티와 NPC파티를 교묘하게 지목하였다. 시간이 갈수록 유저들이 포함된 파티들은 한 단계 한 단계 서로 부딪치는 일 없이 위로 올라갔다. 테이블에 턱을 괴고는 전투를 관찰하는 사이토, 아직까지 그리 경계할 이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사이토들의 경기는 사이토의 우려와는 다르게 의외로 쉽게 풀려 나갔다. 에루나는 이미 전투에 적응이 되었는지, 숨는 것 하나는 수준급이다. 레미의 뒤, 혹은 에린의 뒤, 게다가 사이토의 뒤 또한 에루나는 가리지 않고 능숙하게 숨어들었다. 게다가 NPC들은 약하다. 일반 유저들은 꽤 고전한다지만, 정형화된 공격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NPC들은 사이토를 이기지 못했다.
정오가 되어 마지막으로 네 개의 팀이 남았다. 사이토를 포함하여 모두 진짜 유저들이 섞여 있는 팀들... 고급퀘스트니 만큼 실력은 모두 출중할 터였다. 경기가 어느 정도 진행된 지금 사이토를 바라보는 에린과 에루나의 눈은 많이 순화되어 있었다. 차질 없이 퀘스트를 해결해야 한다는 사이토의 생각은 거의 결의 수준이었다. 그에 따라 클래스를 초월한 듯한 사이토의 무차별 공격은 레미와 에린, 에루나가 거의 움직일 필요가 없을 지경이었다.
마법사라도 하나 끼어 있는 파티가 상대라면 상대 마법사는 수인을 긋거나 마법을 쓰려 입을 움직이는 순간 사이토의 주먹이 사이좋게 마법사의 입으로 박혀 들어간다. 궁사 클래스들은 채 화살 한발 꺼내기 전에 이미 사이토의 발차기에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 그런 사이토의 황당한 무위에 당황하는 전사클래스는 레미와 에린의 몫이었다. 정오가 넘어 잠시 점심시간을 가진 뒤 마지막 경기를 하기로 말론이 선포했기에 사이토들은 말론의 술집을 벗어나 바깥으로 나섰다. 다른 유저들이야 그냥 말론의 술집에서 식사를 때운다고 하지만, 사이토는 일행에 다른 볼 일이 있었다.
“에루나 맡겨라.”
“싫어욧!”
레미의 다리를 붙잡고 에루나가 소리쳤다. 한숨을 내쉬는 레미와 사이토, 레미가 어깨를 으쓱한다. 한참을 생각하던 사이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의 난이도로는 그리 위험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끈질기게 레미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것을 보면 퀘스트와 무언가 관련이 있을 듯 보인다.
“모두 모여봐.”
사이토들이 다시금 술집 안으로 들어온 뒤, 얼마 되지 않아 경기 시작을 알리는 말론의 선포가 있었다. 사이토와 레미들의 경기는 가장 마지막 이였기에 사이토는 다시금 느긋한 포즈로 테이블에 앉아 무투장으로 들어서는 두 파티를 노려보았다. 이제부터가 진짜 전투이다. 이전까지는 NPC들끼리 싸우는... 혹은 유저들이 소속된 파티가 거의 무조건 이기던 경기였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유저들이 끼어있는 파티들끼리의 전투였다. 사전에 쇼다운 따위를 할 수도 없으니, 유저들 또한 목숨을 걸어야 한다. 다행히 기권이라는 참신하고 민주적인 방법이 있기는 했지만, 일단 죽음의 대한 위험이 있다는 데는 변함이 없었다.
무투장의 오른쪽에 선 이들은 용병들인 듯, 모두 검을 들고 있다. 그들의 맨 앞에 선 것은 자신의 몸만한 버스터소드를 든 남성 유저... 왼편에 선 것은 이 곳에 사이토가 들어설 때 사이토에게 말을 걸었던 여성 유저이다. 당시에는 별 신경 쓰지 않고 스쳐 지나가듯 보았기에 몰랐지만, 로브를 벗은 그녀의 복장은 성직자였다. 예측으로는 대략 제사장... 그녀의 파티원들은 드워프 하나와 미안의 젊은 검사, 이렇게 셋이었다.
곧이어 전투가 시작되었다. 대략 지름 30미터 정도 되는 무투장... 지형상의 잇점으로 볼 때 밀리클래스 들로만 이루어진 쪽이 유리하다. 좁은 만큼 성직자나 마법사들의 운신의 폭은 좁다. 하지만 전체적인 파티 균형면에서 볼 때는 반대쪽이 더 유리한 처지이다. 물론 숫자에서도 검사 클래스들로만 이루어진 파티에 비해 상대가 한 명 적기는 했지만 사이토가 보기에 전투는 호각을 이루고 있었다.
“음?”
전투를 유심히 관찰하던 사이토는 반대편 테이블에 앉아 있는 한 유저를 발견했다. 사이토와 비슷하게 로브로 온 몸을 꽁꽁 감싼 사내... 다음 경기에서 사이토들과 맞붙을 파티의 퀘스트 유저였다. 붉은 장발에 눈썹이 짙고 얼굴이 세모꼴로 생긴 사네이다. 사이토의 눈길을 감지한 듯 그 사네 또한 사이토를 마주 바라보았다. 전의를 불사르는 듯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간다.
“나를... 느끼는 건가?”
사이토가 식스센스를 통해 느끼는 그는 존재감이 거의 감추어져 있었다. 추정 클래스는 로그 혹은 어쎄신... 상당한 계급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잠시 후 남자가 일어서고 그의 로브가 잠시 들춰졌다.
“다인...슬레터?”
......................................................................................
으흥..으흥..
훔.. 어제 하던 이야기의 다른 에피소드 하나를 붙여 보죠.-_-..
아...아니다.. 이건.. 부모님들 한테도 숨겼던 비화이니..이 곳에 쓰기는 좀 무리군요.
혹시 제 소설 보시는 분들 중에 부산 분 계십니까? ^-^
죄송합니다. 이런 말 하게 되서..^-^ 저는 부산 사람들이라고 하면 무조건 반감부터 일어납니다.
어줍잖은 지역감정일 수도 있겠지만, 군대 가기 전에는 저런 생각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저에
지역감정 같은 것은 없습니다. 뭐...정치 따위야 더 이상 신경 써 봤자, 그 밥에 그 나물이니...
-_-
제가 군대 있을 때... 왜 부산 사람들을 싫어하는 감정을 가지게 되었는가... 그것은 아주 단순합
니다. 군대 있을 때 모든 악마들의 출신이 저 부산이었거든요. 어느 정도였냐 하면 지금도 그 면상
들을 생각하면 이가 갈리지요. ^-^..
한 녀석은 저보다 대략 100기 정도 위였는데, 취사반 짬장이었습니다. (훔..당시 그렇게 불렀었
나?) 걸쭉한 부산 사투리에 피둥 피둥 100킬로는 될 듯한 뚱땡이 였지요. 들은 바로는 군대와서 하
도 잘먹어서 그렇게 되었다고... 취미는 몸에 문신 새기기 였습니다. 위 아래 아마추어 냄새가 폴
폴 풍기는 그런 잡~ 문신들을 덕지 덕지 도배한 인간이었습니다. (한 번은 제가 문신 밑그림도 그
려 주었습니다) 갈 수록 체중이 늘어나고 그에 따라 부피... 음... 외부를 감싸고 있는 살껍데기
도 늘어남에 따라 항상 그릴 곳이 증가하는 녀석이었지요. 이 녀석은 정말 부대 내에 알려진 악마
였습니다. 여러 저의 동기 혹은 차기수들 머리를 거의 야구 방망이 만한 거대한 주걱으로 늘상 깨놓기 일쑤였
죠. 뭐... 옆 동네 중대의 짬장과 일부 간부들과 짜고 부대쌀을 팔아먹어 그 것으로 지 배를 불리
기도 하던 아주 대단한 놈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지 아무개 라는 녀석도 있었고... 이 녀석은 정
말 저에게 칼을 품게 만들었던 놈이었습니다. 인간 같지도 않은 녀석이랄까... 아아.. 이 이야기
까지 하면 이야기가 또 너무 길어지겠네요..
ps. 착한 고참도 많았답니다. 그 대표적 예로..임현수씨... 지금은 결혼했다고 하더군요.-ㅂ-... 잘 먹고 잘 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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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귀찮아
잠시 슬쩍 보인 것이기는 하지만 사이토는 놓치지 않았다. 다인슬레터를 직접 사용하고 있는 그다. 확실히 다인슬레터였다. 사이토와 똑같은 모양의 다인 슬레터... 얼핏 보이는 검은 흉갑과 가슴과 겨드랑이 사이로 보이는 와이어 사출구...
“이거...이거, 흥미로워 지는데?”
오랜만에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는 듯 사이토의 눈이 샐쭉하게 변했다. 사실 사이토는 그 남자가 전사인 줄 알았다. 남자의 파티원들은 두 명의 다크엘프 궁사... 지금까지 단 한번도 로브를 들추지 않고, 몸놀림만으로 상대 밀리클래스를 요리한 남자였다. 게다가 다인슬레터까지 입은 상대이다. 물론 사이토는 다인슬레터를 그 혼자만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수백만 명이 게임을 즐기는 이 리얼판타지아에 아무리 고급 아이템이라도 단 하나만 존재하는 그런 것은 없었다. 단지 희귀한 것일 뿐... 사이토가 지금 흥미를 이유는 다인슬레터의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아시다시피 다인 슬레터는 상당히 독특한 아이템이었다. 갑옷과 건브레스 그리고 특수장갑이 한 세트로 이루어진 아이템... 그리고 갑옷 곳곳에는 여섯 가닥의 와이어가 장착되어 있다. 사실 사이토는 다른 이들이 다인슬레터를 어떻게 이용하는지 단 한번도 보지 못했다. 예전 노인정 길드의 제이드가 와이어의 쓰임새에 대해 가르쳐 주기는 했지만, 실질적 전투에서의 쓰임새들은 모두 그가 응용해서 사용한 것이다. 그런데 그와 똑같은 다인슬레터를 사용하는 이가 나타났다. 다른 이가 알고 있을 다인슬레터의 쓰임새를 배울 기회가 온 것이다. 무료하던 몸 곳곳으로 실낱같은 에너지가 스며들어 가는 것이 느껴진다. 사이토의 몸이 앞으로의 전투에 대해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사이토가 다인슬레터를 입은 사내에게 정신을 쏟는 사이 전투는 여자 성직자가 있는 파티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한명이 모자람에도 불구하고 성직자쪽의 두 NPC들은 차분하게 한 명 한 명 요리하고 있었다. 드워프의 강하게 베어나가는 자이언트 엑스에 상대 NPC의 목을 날아가자 버스터소드로 몸을 지탱하고 있는 남성 유저는 항복을 선언했다.
“이제 우리차례군요.”
레미가 샴쉬르를 손으로 꾹 쥐며 눈을 빛냈다.
“그렇군. 가자.”
“예!”
사이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같은 다인슬레터를 가진 실력자인 만큼 최상의 몸 상태로 그를 맞고 싶었다. 지금의 몸 상태는 완벽한 절정... 괜히 몸을 함부로 움직였다가는 지금의 기분이 사라질 것 같은 느낌에 행동이 조심스러워 진다. 아직 전투가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사이토의 뇌는 이미 전투 상태였다. 무투장으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광장 한쪽에 마련된 지하통로로 들어가야 했다. 무투장 양 끝과 연결된 지하통로... 그 곳을 지나 무투장으로 들어선 사이토는 곧 맞은편 문에서 걸어 나오는 상대방을 확인했다. 상대팀은 두 명의 다크엘프 여성과 조금 전 사이토가 눈여겨봤던 그 남자...
“11번 팀! 4번 팀! 경기 시작!”
말론의 외침과 함께 대결이 시작되었다. 대결에 별다른 준비는 필요하지 않았다. 그냥 들어가서 싸우면 끝인 것이다. 사이토의 대열은 에루나를 가장 후열에 세운 뒤 맨 앞은 사이토가 양 옆으로 에린과 레미가 선 마름모 꼴 형식이다. 상대는 일렬로 늘어선 형태, 가운데는 그 남자가 섰다.
“잠깐!”
사이토는 손을 내밀어 상대를 제지했다. 활을 발사하려는 다크엘프들... 남자의 손짓에 따라 활을 내렸다.
“무슨 일이오?”
남자는 아직 무기를 보이지 않은 상태였다. 양 손을 로브 안으로 집어넣은 상태... 한 발자국 걸어 나와서 사이토에게 묻는다. 남자가 사이토의 제안에 호응하자 사이토는 작게 웃음 지으며 마주 한걸음 나섰다. 로브의 앞섶을 들추는 사이토, 그 자신의 다인슬레터를 슬쩍 보여주었다.
“호오...”
눈에 이채를 발하는 남자... 상당히 흥미가 가는 듯 하다.
“일 대 일로 한 판 붙어봅시다. 당신과 제대로 한 번 싸워보기엔 이곳이 너무 좁구려.”
사이토의 단도직입적인 제안에 남자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합의를 본 둘은 잠시 자신들의 파티에 각자 양해를 구했다. 무투장 위에서 대결을 바라보던 말론도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한다. 모두가 무투장 밖으로 나가고 무투장 안에는 두 남자만이 남았다.
“나는 아스날이라 하오.”
예의 바르게 자신을 소개하는 남자, 상당한 자신감이다.
“나는 사이토라 하오.”
로브 안쪽으로 손을 움직여 팔목에 붙은 와이어에 셀레네와 헬리오스를 붙였다.
“경기 시작!”
말론의 외침과 동시에 두 남자는 무투장 중앙으로 육박했다. 30미터밖에 되지 않는 좁은 무투장... 엄청난 속도를 자랑하는 듯한 두 남자들에게는 찰나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이다.
카가가각!
아스날이라는 남자의 손에서 빠져 나온 것은 한 쌍의 륜 이었다. 20센치 정도 되어 보이는 세 개의 날이 날린 묵색의 륜... 능숙한 솜씨로 사이토의 공격을 막아낸다. 몸을 크게 회전시키며 아스날의 옆구리를 잡는 사이토... 헬리오스를 찔러 넣었지만, 아스날은 이미 멀리 물러서 있었다. 날아오는 두 개의 륜... 사이토가 사용하는 것과 같은 수법이었다.
“역시!”
사이토는 이를 드러내며 셀레네와 헬리오스를 날렸다. 가운데서 충돌하는 두 쌍의 무기들... 사이토는 되돌아오는 셀레네와 헬리오스의 손잡이를 잡아가며 아스날에게 돌진했다.
“응?!”
돌진하던 사이토는 순간적으로 몸을 바짝 엎드렸다. 사이토의 등을 살벌하게 헤치며 지나가는 륜...
“뭐야! 왜 이렇게 빨라!”
뒤따라 감겨오는 와이어를 피해낸 사이토는 다시금 사납게 날아오는 륜을 피해냈다. 연속으로 날아오는 륜...
“제길...”
몇 번을 피해낸 다음에야 사이토는 아스날이 륜을 다루는 기법을 볼 수 있었다. 아스날은 되돌아오는 륜을 잡고 다시 던지는 것이 아니었다. 다인슬레터와 한 세트를 이루는 장갑을 이용해 륜을 손바닥으로 되 쳐내는 것이다. 물론 무식하게 륜을 받아 친다면 장갑이 남아날 리가 없다. 륜이 되돌아 날아오는 각도를 계산하여 손바닥으로 그 진행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멋지군.”
처음 보는 장갑의 쓰임새였다. 그 전까지는 그냥 와이어를 다루기 위한 특수 장갑이려니 하고 넘어갔었다. 하지만, 지금 확인해 보니, 뭔가 특화된 숨은 스킬이 있는 듯하다. 전투 중 생각에 빠진 사이토... 잠시 동안이었지만, 아스날은 놓치지 않았다.
“헉!”
아스날이 회수 버튼을 누르자 사이토의 뒤로 날아갔던 두 개의 륜이 교차되며 살벌한 속도로 사이토의 뒤통수로 날아왔다. 뒤 늦게야 그 사실을 깨달은 사이토... 급한 겸 헬리오스와 셀레네를 교차시켜 막아냈지만, 그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비틀거렸다.
“팬텀 피규어!”
아스날은 팬텀 피규어를 시전하여 재빨리 사이토의 뒤를 잡았다. 아직 정신을 못 차린 듯한 사이토... 아스날의 손목에서 뻗어 나온 와이어는 사이토의 목에 빠르게 감겨 들어갔다. 아스날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끝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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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한편~ 깨꾸닥~-ㅂ-.. 극악의... 절단마공을 약간..=_=..
음... 리플들을 보다 보니.. 다인슬레터에 대한 궁금증이 많으신 모양이더군요.-_-..
리얼판타지아에서 단 하나의 아이템 같은 것은 없습니다. 아무리 비싸고 좋은 아이템이라도 단 하나만 만들 수는 없지요..(이벤트가 아닌 이상...) 수 백만명이 사용하는 게임입니다. -_-; 게다가 다인슬레터는 유니크 아이템..-_-.. 말 그대로 유니크 할 뿐입니다.
... 방금 문희준씨의 인터뷰를 보았습니다. -_-.. (기분이 나빠지는군요.)
으음... 언능 써야 하는데 막상 진도가 나가지 않습니다.-_-~
왼쪽 어깨 부근 건염 걸린 곳에 자꾸만 경련이 일어나내요. 하루종일..-_-.. 상당히 신경 쓰여 글을 잡지 못했습니다.
아아..군대 에피소드..3...
제가 근무하던 전경대 에서는 날씨가 따뜻한 날이면 워커라던가 운동화를 바깥에다가 널었습니다. 뭐...위생상 그런 것이었지요. 눅눅함 때문이라도..
저의 일주일 위 고참들이랑 함께 작업하고 있었습니다. 장난스레 한대 맞았습니다. 평소 좀 어리버리 하던 녀석이었는데... 누군가가 때리고 싶었나 봅니다. 기수가 얼마나 꼬였는지... 제 한달 위로는 대략 15명정도의 고참들이 포진해 있었습니다.-_-.. 당시 일병 때였지요..
"아야..-_-"
녀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나르던 저의 왼쪽 허벅지를 무릎으로 가격했습니다. 꼴에 날라서 때리더군요.-_-.. 후우.. 당시에는 몰랐지요. 그것이 얼마나...얼마나... 나에게 비극을 초래할 지는.."
오전에 신발들을 햇볓에 말려놓고, 소대는 축구를 차러 갔습니다. 왠지 맞았던 허벅지가 아파오기 시작하더군요. 후반전에 들어서 저는 빠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걷지도 못할 정도로 아파온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그냥 넘겼지요. 겨우 일병 나부랭이가 상처를 보였다가는 ..-_-..(당시 공기가 상당히 안 좋았습니다. 일주일 위 고참 녀석 중 하나가 4번째 탈영을 했다가 잡혀 들어왔었거든요.( 뭐 이녀석은 자살 시도도 4번 정도 였으니.. 츳.. 녀석 덕분에 저는 100일 휴가도 못갔죠.)
아무튼 그랬습니다. 다음날 일어나 보니 허벅지 안쪽에 피멍이 들었더군요. 거의 전체적으로다가 모두.. 웃기는 것은 맞은 곳은 허벅지 바깥쪽이었는데, 피멍이 든 곳은 허벅지 안쪽이었습니다. 신기하죠?-_-..(이건 사이토 부상씬에서 생생하게 써먹었지요.) 당시 피멍의 크기는 대략 평균 남성 손바닥 전체 크기였습니다. 게다가 허벅지 근육은 그대로 통나무가 되어버렸습니다. 손가락으로 톡 건드리기만해도... 이를 악물고 싶을 만큼 아팠죠. 무릎까지 마비되어 버렸습니다.
뭐... 때렸던 녀석이 저에게 간청하더군요. 제발 들키지 말아달라고... 뭐... 저도 괜히 들켜서 군생활 고달파지기는 싫었습니다. 당시에는 대략 일주일이면 나으려니 했지요.
한여름이었습니다. 모두 반바지를 착용하는... 뭐..걸렸지요.-_-.. 다리를 질질 끌고 다니니 안 걸릴리가 있겠습니까?-_-.. 찬바람 쌩이었죠. 그런데 이 놈의 상처가 이 주가 지나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더군요.-_-. 참 힘들었습니다. 점호 때 피멍든 다리를 걸리지 않으려 ... 꺽이지 않는 무릎으로 책상다리 하려 피눈물을 삼킬 정도로 아팠습니다. 오죽했으면 제가 바늘로 제 허벅지를 마구 찔렀습니다. ( 음... 당시 그렇게 하면 피멍이 빠진다고 하더군요...)
재수없게도... 곧 진압검열이었습니다. 제가 근무하던 곳... 고참들 그리 착한 녀석들 없었습니다. 저로 인해서 제 대신 고참 하나가 더 진압검열을 받게 되었지요. -_-.. [물론 처음에는 조금씩 다리 사정이 좋아졌기에, 제가 참가하기는 했지만, 진압검열의 훈련강도는 정말 엄청났습니다. 그대로 다리 사정이 더욱 악화되었지요.) 곧바로 고참들의 태클이 들어오더군요. 한마디로 지옥이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요.-_-.. 제가 간청 간청을 했습니다. 병원 보내달라고...
당시 저희 전경대가 다니는 병원은 순천 의료원...(개새끼들입니다.) 통나무가 된 ... 계단도 오르지 못할 정도의 다리를 질질 끌고 간 병원에서의 진단은 이것이었습니다. [단순 타박상...(언제 한번 재대하고 다시 와서 당시 의사를 죽여버리겠다고 생각한 적도 많습니다.] 군인에 대한 친절 따위는 재처 두고서라도..-_-.. 진단은 재대로 내려야 하지 않았을까요.. 당시 3주째 다리 질질 끌고 다니던 저였습니다. 뭐, 어차피 돈도 되지 않는 군인입니다. (진료가 무료지요.)
저희는 소대별로 검찰청을 지키는 일도 하고 있었습니다. 순천대학교 옆으로 검찰청이 붙어 있지요. 그 곳안에는 하루동안 상주하고 검찰청을 지킬 소대들이 돌아가면서 사용하는 임시 건물이 있었습니다. 제가 무슨일을 당했는지 아십니까?=_=... 건드리기만 해도.. 무릎이 살짝만 꺽여도 엄청난 아픔이 느껴지는 그런 다리입니다...
저희 소대에는 재수없는 "부산" 고참 세 놈이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최고 고참 세 놈이 모조리 부산이었습니다. 한 녀석이 그러더군요.
"저 녀석 엄살이다~"
"거짓말일 꺼다. 저 녀석 무릎 꺽인다."
네 녀석이 저에게 달라붙었습니다. 양 팔을 붙들리고 다리를 붙들렸습니다. 제 입에는 보급나온 화장지가 재갈인양 물려졌습니다. 한 녀석이 제 다리를 인정사정 없이 꺽더군요. 무릎 허벅지에서 실타래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우드드득~ 소리..-_-.. 근육 파열되는 소리겠죠.-_-.. 거품 물었습니다. 더 꺾더군요.... 기절 했습니다. 기절이요... 난생 처음 해보는 기절이었습니다. -_-.. 그 일 이후.. 조금씩 나아지던 제 다리는 더욱 심해져 버렸습니다. 당시 그 꼴을 바라보던 제 쫄다구들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악마들이었다고... 인간의 꼴이 아니었다고... 아무튼 그런 일이... 똑같이 두 번 있은 후... 저는 자살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편지? 어림 없지요.-_-... 소원수리?-_-.. 당시에는... 과도기였습니다. 군대가 한창 바뀌어 나가기 직전... 아직 과거의 유산을 머릿속에 지닌 고참들이 많던 시기였습니다. 뭐... 저희를 맡고 있던 경찰 직원들도 왠만하면...모두.."보안" 과 "자체 해결" 을 좋아하던 녀석들이었습니다.
제 순번대로 와야 할 3일짜리 휴가도 사라지더군요.
방금.. 당시 그 고참들 중 가장 악질적인 녀석의 이름을 썼다가 지웠습니다... 뭐... 이제 와서 들추고 싶지는 않군요.. 뭐.. 이녀석도 부산 녀석이 었습니다. 아아~ 성이 "지" 씨에요.-_-..
뭐.. 어찌 어찌... 해서.. 몇 주 뒤 다리가 나았습니다. 당시 사건 이후.. 저는 비만 오면 허벅지가 쑤신답니다. 오래 뛰지 못하죠.-_-..
군대에서..아프면 서럽답니다...
그런..추억이 있었습니다. 뭐..추억은 추억일 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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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방금..토론실에 다녀와서..약간의 패닉입니다.으음.. 게임소설 따위..장르.. 어쩌고..하는... 으음.. 몇가지 도움 (하오체)라던가.. 되었습니다. 아아.. 뭐..지금 머리가 꽤나 복잡한 관계로 저 의견에 대한 제 의견은 제시 하지 못하겠네요. 그렇지만, .. 흐음..-_-..저도 최대한 기연...이라던가 그런 것들을 배제하려 했는데..-_-.; (할아버지의 유산도 기연일까?-_-.. 갸웃..갸웃..) 그래도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보려 발버둥 쳤건만...-_-.. 으흠..좀 더 현실성도 주고 싶었건만..-_-.. 으흠..
솔직히 보고 싶었던 말은.. 리얼판타지아는 그래도 좀 괜찮아요~ 라는 말을 듣고 싶었지만, 없더군요.. 킁.. 나도 그런 부류였나.-_-. 제길.... 뭐.. 아프게 긁고 지나가는 토론들이었습니다. 아아... 게임판타지라..-_-..흐음.. 아.. 뭐.. 토론 내용은 둘째 치고..(지금 재대로 읽은 것도 아닙니다. 물론 대충~ 읽었습니다.)
... -_-... 젠장.. 그냥 기분 나쁘군요. 쩝.. 단지 기분이 나쁠 뿐입니다.
제길... 그냥 대충 대충 허무하게 삼류식으로 이야기 짤라버려..-_-.. 어차피 귀여니보다 아래로 평가해 버렸으니... 쓰고 싶은 마음도 별로군..-_-..
... 리얼판타지아 재미 없죠?-_-...
단언하건데 게임소설은 귀여니 과에 가깝다.
현실 무시...
등장인물의 인간답지 않음.
기이한 설정.
독특한 심리상태.
판타지 팬들이 욕하는 귀여니 소설의 어거지들은 차라리 애교에 가깝다.
게임소설은 문학화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SF도 아니고 판타지도 아니다.
다른 건 안보이고... 이 글씨만 보이네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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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연중 들어가 버리겠습니다.
얼마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마음 정리가 빨리 되면 몇 칠 안에 돌아올 수도 있는 것이고, 안되면 후우...
토론란 읽어보니, 아주 잘 가지고 노셨더군요.-_- 탁마님... 뭐, 왠지 하는 소리 들어보면
리얼판타지아는 아직인 듯 싶습니다. 뭐, 한 사람의 의견에 이렇게 충격 받아 많은 독자분들을
실망시키고 잠시 숨어버리는 데자부를 욕해 주십시오. 좀 더 갈고 닦는 시간을 만들어 보렵니다.
여러분들의 성원이 좋아서 쓸 수 있는 힘을 얻었었습니다. 뭐, 시작은 했으니 끝은 봐야지...라는
마음도 있었고, 그런데 탁마님의 글을 읽고 있자니, 왠지 게임판타지 쓰는 제가 한심해 보이더군
요. (사실 저도 정통 판타지가 더 풀어나가기 쉽습니다. 물론 설정 잡히고, 기획 끝난 것도 있습니
다. 게임 판타지...어렵습니다. 액자식으로 풀어나가면서 그 사이의 연결끈이라던가, 무게감 주기
라던가... 단순히 판타지만 생각하기 보다는 미래에 대한 생각, 현실과의 접점, 클라이막스
따위... 유머까지...) 몇 달을 골머리 터지며 쓰던 것이 왠지 바보 처럼 느껴지게 만들어 버리셨습
니다. 좀 더 갈고 닦아서 오겠습니다. 현재로써는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미친듯이 걷다 보면 뭔가 나오겠죠...)
한 달안에는 돌아오겠습니다. 뭐... 돌아온 뒤 많은 분들이 실망하시고 떠나가셨을 듯 합니다. 죄
죄송하다는 말씀밖에 못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저는 소설을 억지로 쓰지는 않습니다.
기분이 엿같은 관계로 그만... 잠시 물러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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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지겨워
“커억!”
몸이 공중으로 뜨는 것이 느껴진다. 주위 사물이 거꾸로 보이며 그에게서 멀어져 갔다. 정신이 까마득해지는 기분... 라이프가 대량으로 날아가는 것이 느껴졌다. 밑으로 보이는 것은 사이토의 무릎... 방심한 사이 크리티컬을 얻어맞은 것이다.
“위험할 뻔 했군.”
장갑의 내구가 상당히 떨어졌다. 급한 김에 아스날의 와이어를 손으로 잡고 벗겨 냈는데, 그의 장갑이 아스날의 와이어에 대한 방어능력은 떨어진다는 것을 느꼈다. 무투장 위에서 그 꼴을 바라보며 비명을 지르던 레미들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
“조금, 속도를 올려도 되겠지.”
아스날의 계급은 아무리 봐도 8계급이었다. 그의 본신실력을 모두 보고 싶은 마음에 잔꾀를 부리다 위험할 뻔 했다. 그러나 확실히 8계급과 9계급의 차이는 까마득하다.
“끝내자구...”
땅을 박찬 사이토의 얼굴에 상당한 공기의 압력이 느껴진다. 지금의 속도는 그가 낼 수 있는 최고 속도의 90프로, 떨어지는 아스날의 등판이 순간적으로 확대된다. 준비된 것은 독이 오른 헬리오스...
파아아앙!
사이토의 헬리오스가 아스날의 등판에 직각으로 꽂혀 들어갔다. 공중에서 허리를 뒤트는 아스날... 어긋나게 꽂힌 헬리오스는 다인슬레터에 막혀 버렸다.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아스날... 튕기듯 일어서서 륜으로 가슴을 방비했다. 아스날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식스센스를 통해 느껴지는 사이토의 실력에 코웃음 친 게 사실이다. 그러나 방금 전 공격에서 급격하게 그의 뇌리를 밀고 들어오는 사이토의 살기와 파워에 몸이 굳었다. 사이토의 살기는 아주 절재 되어 있었다. 공격의 시작되는 순간 노도와 같이 밀려들어온다.
“9계급에 실력까지 출중하군.”
낭패이리라. 그를 덮쳐드는 사이토... 처음 격돌했을 때보다 거의 1.5배는 빨라져 보인다. 순식간에 가슴을 무차별적으로 두들겨 맞았다. 횡으로 뻗어 들어오는 발차기... 막으려는 순간 발이 궤도 수정하여 그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아무리 다인슬레터가 강력한 방어구라 하더라도, 몸을 격동시키는 충격은 전해진다. 양 손의 륜으로 그에게 깊게 파고든 사이토를 내리찍으려는 아스날... 그러나 사이토는 더욱 깊숙이 파고들어 거리 자체를 깨부수며 그의 팔을 잡았다.
“업어치기!”
“큭...”
멀리 튕겨 나간 아스날은 륜을 휘둘러 거리를 만들었다. 숨쉴 틈 없이 그에게 달라붙다가 잠시 물러서는 듯한 사이토, 잠시 숨을 고르려던 아스날은 순간적으로 사이토의 옆구리에서 뻗어 나오는 빛줄기에 상체를 뒤로 젖혔다.
“크악!”
전혀 예상치 못한 돌발수였다. 상체를 뒤로 젖혔던 아스날은 다인슬레터의 가슴부분을 깨끗하게 두 조각낸 사이토의 무기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보통 단검의 간격만을 염두에 두었던 그다. 그러나 사이토의 손에 들린 것은 중도... 완벽하게 허를 찔린 것이다.
“항...복”
가슴을 손으로 감싼 아스날은 사이토를 향해 항복을 외치며 주저앉았다.
전투가 끝나고 잠시간의 휴식시간...사이토는 대결에서 패배한 아스날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쫌생이 녀석..”
투덜거리며 말론의 술집을 나가는 아스날을 사이토는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좋은 대결이었다는 의미에서 손을 내밀어 주었지만, 아스날은 그의 손을 거부한 것이다. 미안한 마음은 없다. 퀘스트에 실패하게 되면 몇 가지 분기점이 생긴다. 다른 퀘스트가 생기기도 하고, 지금과 같이 몇 칠 뒤 다시 도전할 기회가 생기기도 한다. 게다가 게임은 게임이다. 기분 상한 것이 나아지지는 않겠지만, 현실과 게임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잠시 다녀오지.”
“경기 전까지는 오세요.”
다음 경기까지는 대략 두 시간이 남았다. 마음 같아서는 퀘스트를 잠시 중지 시키고 싶은 사이토이다. 리얼 판타지아의 퀘스트는 중간 중간 퀘스트를 중지 시킬 수 있는 시간이 존재한다. 퀘스트가 하루 이틀 걸리는 것이 아닌 만큼, 꼭 필요한 것이다. 그 외에 퀘스트 중지의 경우라면 퀘스트를 수행하는 장소가 타국 유저들에게 넘어갔을 경우, 지금은 이쪽 저쪽도 해당되지 않는다. 두 시간의 자유시간이 난 만큼, 최대한 빨리 일을 처리하기로 마음먹은 사이토이다.
말론의 술집을 벗어난 사이토는 아스날을 조심스레 미행했다. 로브로 온 몸을 가린 채 뒤로 다크엘프 둘을 이끌고 어디론가 걸어가는 아스날... 한 참을 쫓던 사이토는 아스날이 잡화 상점으로 들어가는 것을 쳐다보며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괜한 걱정일까?”
카모프쪽의 동향이 걱정되는 사이토이다. 말론의 술집에서 언듯 언듯 들은 바로는 카모프의 군세가 이미 헥시르에 근접했다는 것이다. 퀘스트에는 별 상관이 없지만, 재수 없으면 헥시르를 빠져 나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그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도 있는 아스날의 존재는 눈엣가시이다. 다행히 아스날은 별달리 의심스러운 행동을 하지 않은 채, 그의 동료들로 보이는 이들과 합류했다. 다크엘프들을 돌려 보내는 행동들로 봐서는 아무래도 이번 헥시르 방어전에 참가할 듯 보인다.
“아! 그럴 수도 있겠군.”
말론의 술집으로 돌아가려던 사이토는 그의 머릿속을 스치는 기발한 아이디어에 손뼉을 마주쳤다. 행여 방어전에 패배해 헥시르가 점령당하게 된다면 퀘스트 유저들은 빠른 시간 내에 그 도시를 이탈해야 한다. 물론 진행 중인 퀘스트들은 일괄적으로 멈춘다. 그러나 도망칠 시간이 충분하다고 하지만, 재수 없게 꼬리가 잡히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하는 사이토이다. 그 자신의 운에 대해서는 영 자신이 생기지 않는다. 몇 분 뒤 사이토는 도시 번화가에 위치한 한 건물로 들어섰다. 건물의 간판에에 붉은 깃발이 그려진 거대한 상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이토는 한 여성과 함께 그 건물을 나섰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길드마스터가 특별히 부탁하는데요 뭘...”
여자와 헤어진 사이토는 천천히 말론의 술집으로 향하며 메시지 창을 활성화 시켰다.
“자! 다음으로는...”
메시지 창을 연 사이토는 밀레나를 호출해 보았다. 도시가 다른 만큼 일반 메시지는 불가능 하겠지만, 그녀와 사이토는 ‘스틱스의 검’이라는 모임으로 묶여 있다.
[밀레나? 있니?]
[아! 오빠, 예.]
밀레나가 대답했다. 목소리가 조금 가라앉았다.
[무슨 일이에요?]
[아니, 꼭 무슨 일 있어서, 메시지 보내는 건 아니잖아.]
[에에, 오빠는 꼭 무슨 일 있어야 메시지 보내잖아요.]
머리를 긁적이는 사이토, 그에 대해서는 변명할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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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지겨워
그러나 밀레나는 그에 대해 더 추궁할 생각은 없는 듯 보인다. 하기사 그것은 사이토의 천성과도 같은 것...
브랜과 그 외 행적에 대해 시시콜콜 이야기를 나누던 사이토는 현재 그의 상황을 밀레나에게 소상히 가르쳐 주었다.
[아아, 오빠는 정말 일을 몰고 다니신다니까...]
카모프와 얽힌 이야기를 이제야 처음 듣는지 밀레나는 꽤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 본 건데...]
사이토는 현재 그가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를 밀레나에게 소상히 가르쳐 주었다.
[으음, 제가 이런 말 하기는 좀 뭐하지만, 그 아스날이라는 유저에게 조금 야비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말을 순화시키기는 했지만, 사이토가 생각하기에도 참으로 야비하고 간사한 짓이었다. 아니 밀레나는 정말 많이 순화시킨 표현이었다.
[뭐, 별로 걸리는 것은 없는데?]
[알았어요. 어쩔 수 없죠.]
[그리고 나 ‘스틱스의 검’에서 탈퇴 시켜 줘.]
[왜요?!]
밀레나의 목소리가 조금 격앙되었다. 그러나 만사일여불여튼튼의 법칙에 따라 꼭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밀레나에게는 꺼내기 싫은 그만의 이유도 있다.
[행여나 포프라던가 아레나 같은 애들이 실수로 내 행적을 말 할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밀레나는 예리하게 캐치해 낸다.
[사실 걔들을 믿지 못하는 거죠? 오빠는 남에게 믿음을 그리 쉽게 주지 않으니까...]
[...]
정곡을 찔린 것이다. 침묵하는 사이토... 그 얘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밀레나의 지적이 정확했다. 아무리 같은 모임이라고 하지만, 그들과의 인연은 그리 길지 않다. 그리고 아무리 의리가 있다고 해도 사람의 일이란 모르는 것이다.
밀레나와의 메시지가 끝나고 사이토는 다시금 말론의 술집으로 향하였다. 길을 걷던 중 그의 메시지 창으로 모임에서 강제퇴장 되었다는 메시지가 떠오른다. 이제 완벽히 혼자가 된 것이다. 그가 아스날에게 한 일은 아주 단순하디 단순하다. 다수의 힘으로 소수의 누군가를 핍박한다는 것은...
[대략 열 흘... 그 안에 나오셔야 합니다.]
[네.]
안부를 물어오던 강진이었다. 사이토의 말을 모두 들은 강진은 사이토에게 앞으로의 일을 대강 이야기해 주었다. 강진의 말에 따르면 카모프의 군세는 앞으로 열흘 정도 약해진다고 한다. 아무리 단합이 잘 되는 그들이라도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는 법, 카모프 왕국을 구성하는 유저들의 거주지를 생각해 보자면 그들은 곧 로그아웃을 해야 한다. 그 동안은 헥시르도 안전하다는 것, 또한 리얼판타지아사에서는 게임 내에 잔존하던 모든 음모의 찌꺼기들을 청소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이 오카리나까지 해결해 주기는 무리였다. 에시당초 그것이 가능한 일이라면 가이아가 오카리나의 손에 떨어지는 일도 없으리라.
[뭐, 일단 오카리나의 시나리오대로 따라가 주는 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
[네..]
강진과의 메시지가 끝나고 사이토는 말론의 술집으로 들어섰다.
테이블에는 레미들이 앉아 있었다. 한쪽 의자에 몸을 둥글게 말고 있는 에루나... 사이토의 시선을 느꼈는지 몸이 한층 작아진다.
“저... 사이토씨?”
레미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사이토를 불렀다. 시큰둥한 사이토... 아무리 NPC라 하지만 사이토는 역할에 충실하고 싶었다. 굳이 대답하지 않는다 해도, 스토리는 흘러가겠지만 말이다.
“무슨 일이지?”
“에루나에 관한 일입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토, 이미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는 일이었다.
“에루나라면 데려가는 수밖에 없겠지.”
“예. 예?”
사이토는 이미 레미가 할 말을 알고 있었다. 이들이 이렇게 데리고 다니려 바득 바득 우기는 데는 이유가 있으리라. 머리를 긁적이는 레미... 에루나를 바라보며 피식 웃어주는 모양새가 그리 나빠 보이지만은 않는다.
“챙겨라.”
사이토는 이전에 도구상점에서 샀던 물품들을 레미들에게 건네주었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받아드는 에린... 응급 처치에 필요한 것들과 포션, 그리고 몇 가지 음식들... 물품들을 모두 나눠준 사이토는 별일 아니라는 표정으로 가방을 닫았다. 리얼판타지아의 특성상 퀘스트 내용을 알 길을 전무이다. 그렇기에 이런 식으로나마 위험에 대비해야 하는 것이다. 퀘스트 내용상 필요할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이런 식으로나마 준비해야 마음이 편하다.
“다 끝나고 남은 것들은 모두 제 회수다.”
“아...예.”
뒷말을 잊지 않는 사이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뒤 사이토와 레미들... 그리고 그들과 같이 시
험에 통과한 다른 팀이 경기장 안에 섰다.
“이제, 이 행사의 하이라이트! 세인트요나르를 얻기 위한 이 위대한 모험가들의 경쟁이 시작됩니다. 이 던전은 각기 두 개의 입구로 나뉘어 있습니다. 물론 가장 마지막 사 층에 이르는 길도 두 개! 그러나 세인트 요나르도 하나! 출구도 하나입니다.”
경기장의 좌우로 두 개의 검은 공동이 나타났다. 그 안으로 보이는 것은 어둠 뿐... 안으로부터 차가운 바람이 쏟아져 나온다. 사이토는 양손에 단검을 뽑아 들으며 몸을 긴장시켰다. 들은 바로는 클리어 예상 시간은 5시간... 짧은 던젼 이기는 하지만, 짧은 만큼 나오는 몬스터들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그럼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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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흥..-_-; 여러가지 일도 있고 하여, 잠시 자기 정비의 시간을 가져 보려..쿨럭..-_-;;
별로 정비된 건 없는 듯 보이는 군요. 에효..-_-.;; 자기 발전이 그리 쉬운 건 아니겠죠. 4학년이
다 보니 이것 저것 신경 쓸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끙... 연중 때린 겸 좀 놀아보겠다고 생
각하던 데자부... 릿츠카님의 협박성....(캬악;;) 릿츠카님을 전면에 새우지 말란 말이오! 전혀 엉
뚱한 이유로 연중이 깨져 버린 데자부... 끄응..-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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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지겨워
벽면을 타고 흐르는 묘한 살기... 단조롭게 이어지는 벽면의 물결 문양... 확실히 통로가 밑으로 향하고 있기는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방향감각을 잃을 정도로 이곳을 꼬여있다. 사이토들은 별 다른 저항 없이 계속 앞으로 전진 했다. 쉴새 없이 나침반을 확인하며 주변을 살피는 사이토... 던전에서의 길 찾기는 역시 도둑의 몫이다.
“정지...”
나침반 안 통로를 매우고 있는 붉은 빛의 트랩을 발견했다. 일행을 정지시키고 천천히 나아가는 사이토, 이것 또한 그의 몫이다.
“젠장, 빡빡하군.”
“무슨 일이에요?”
레미가 물었지만, 사이토는 목을 긁적이며 전면을 바라보았다. 해체 스킬이 먹히기는 했지만, 방금 전 해체 중 나타난 트렙의 난이도는 사이토의 해체스킬과 맘먹는다. 만약 나머지 층에서 이보다 더 높은 난이도의 트랩이 나타나면 자신의 탐색스킬을 벗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꼬마는 잘 따라오고 있냐?”
“에루나에욧!”
대열의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에루나... 원래 마법 클래스가 있어야 할 위치이지만, 파티의 협소함으로 어쩔 수 없다. 대열의 가장 후미는 레미, 그 앞은 에루나, 에린... 마지막으로 가장 방어가 좋아야 할 밀리클래스의 자리에 사이토가 떠억 하니 차지하고 있다. 어차피 사이토가 전면에서 함정을 탐색해야 하는 임무가 있기는 하지만, 사이토는 막상 적이 나타나도 물러설 수 없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은 던젼 자체가 협소하기에 몬스터들의 집중 공격은 피할 수 있다는 것...그러나 이것저것 따져봐도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다.
“전방 몬스터다. 숫자는 여섯...”
일행을 정지시킨 사이토는 앞으로 조심스레 걸어 나가 식스센스를 최대로 개방했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군. 언데드라 해도 소리는 나는데... 스켈레톤의 뼈 부딪치는 소리도 없
다. 던젼 몬스터라... 가고일 아니면 골렘이군. 아니 골렘이라도 소리는 나겠지. 십중팔구 가고일이야”
판단을 내린 사이토는 현재 그의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는 몬스터 사전을 떠올려 보았다.
“평소 석상의 형태로 적을 속이고, 기습하는 것이 특기... 구성 물질에 따라 물리 데미지와 속성 마법 공격력에 대해서 모두 뛰어나다. 킁... 약한 것이 뭐였더라. 에린, 전방에 가고일인데 감당할 수 있니?”
한참 머리를 굴리던 사이토는 뒤쪽의 에린에게 물었다. 가고일 여섯 마리라면 현재의 이 좁은 공간에서 사이토에게 상당한 무리이다.
“예, 적당한 마법이 있어요.”
미소를 띠우며 지팡이를 가슴 앞으로 드는 에린, 고개를 끄덕인 사이토는 에린이 마법을 펼치기 용의하도록 위치를 가르쳐 주었다.
“레미, 잠시 내 목걸이 맡아 줘.”
갑자기 둘의 머리위로 퀘스트를 나타내는 푯말이 나타난다. 이 푯말이 나왔다는 것은, 이것이 예정되어 있는 스토리라는 뜻...
“하지만, 그 목걸이는!”
비장한 어조로 에린을 다그치는 레미... 물론 스토리상 필요한 것이기에 사이토는 별 감흥이 없었지만, NPC 당사자들의 얼굴에 띤 표정은 비장하기까지 하다.
“맡아줘.”
“...으응”
전면으로 걸어 나간 에린은 지팡이를 수직으로 세운 뒤 나직히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바람을 타고 흐르는 정들이여,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혼들이여..”
에린이 주문의 계속됨에 따라 던젼 안 공기들의 흐름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천천히 사이토들을 향해 밀려들어오기 시작하는 바람...
“굉장하군.”
위태 위태한 에루나를 벽면으로 밀어 안정시킨 사이토는 에린의 마법 지팡이 앞에 형성된 작은 바람의 구슬을 쳐다보았다. 던젼 안의 모든 바람들이 에루나의 손앞으로 밀려들어온다.
“너의 힘을 보여! 나의 앞을 가로막는 적들을 베어내라! 바기 크로스!”
에루나의 시동어와 함께 바람 구슬은 십자 형태의 바람의 검으로 변하여 흡사 탄환과 같은 속도로 앞으로 폭사되었다.
꽈가가가각!
크기를 제어할 수 없는지 던젼 벽을 마구 파헤치며 전면으로 쏟아져 나간다.
“후우...”
먼지가 걷히기 시작하자, 사이토는 머리를 긁적이며 나침반을 쳐다보았다. 아니, 솔직히 볼 필요도 없다. 끝이 어디까지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던젼의 벽들은 거의 초토화 되어 있다. 무너지지 않는 것이 이상할 지경... 새삼 에린의 힘이 느껴진다.
“가자.”
몬스터들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사이토는 다시 앞으로 천천히 나아갔다.
“흠, 근데 왜 이게 스토리일까? 혹시 아까 그 목걸이가 에린의 힘을 제어하는 그런 것일까? 그럼 에린도 스토리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캐릭터라는 거군. 그럼 그 목걸이가 어떤 단서일까?”
사이토는 나름대로의 결론을 도출하며 앞서 걸어 나갔다.
쩌쩍...
순간 발 밑에서 들려오는 예사롭지 않는 소리, 그리고 불길한 느낌..
“히익!”
갑자기 바닥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에린의 마법을 이겨내지 못한 듯, 그녀의 마법이 쓸고 지나간 부분을 중심으로 균열이 일어나 바닥이 꺼진 것이다. 사이토는 벽을 박차며 천장에 헬리오스와 셀레네를 박아 넣었다. 뒤돌아 보이는 것은 밑으로 떨어지고 있는 레미들.. 셀레네와 헬리오스를 천장에 박아 거꾸로 선 사이토, 밑으로 보이는 것은 검은 암흑 뿐이다.
“설마, 여기서부터 혼자 가는 거야?!”
도저히 검은 구멍을 향해 나래를 펼칠 엄두가 안 나는 사이토...아무리 게임이라 하지만 이건 너무했다. 차라리 오우거 속고쟁이를 훔쳐 오라는 퀘스트가 나으리라. 한참을 고민하던 사이토는 그가 현재 몸을 의지하고 있는 천장에서 들려오는 경쾌한 소리에 잠시 고민을 멈추고 그가 몸을 붙이고 있는 천장을 쳐다보았다.
쩌저적!
혼자 살아남은 그가 못내 꼴보기 싫었던지, 천장은 사이토가 앞으로 결정해야 할 과제를 간단하게 해결해 주었다. 통째로 떨어져 나가는 벽돌
“니기미...”
검은 암흑 속으로 방금 떨어져 나온 거대한 바윗덩어리와 사이좋게 커플 번지점프를 하는 사이토의 한 맺힌 목소리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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릿츠카 여왕마마 만세~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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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지겨워
"끄응..."
어둠 속 어슴푸레한 시야 안으로 돌조각들이 주변에 흩어져 있다. 대자로 누워 눈을 뜬 사이토는 그의 앞으로 보이는 천장의 거대한 구멍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정신을 잃었던 건가?"
구덩이로 떨어진 순간 암흑이 그의 시야를 덮쳤다. 시간이야 얼마 되지 않은 듯하지만 다시는 하기 싫은 경험이었다.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의식이 끊기다니...
"츳..."
약속이나 한 듯 모두 부스스 깨어났다. 가장 먼저 일어난 것은 레미... 일어서려는 에린을 부축하려던 레미가 갑자기 주위를 둘러보며 큰 소리로 외쳤다.
"에루나!"
에루나가 보이지 않았다. 레미의 말에 깜짝 놀라 주위를 두리번 거리는 에린...
"근방 100미터 안으로는 없다."
사이토는 나침반으로 에루나를 확인하며 중얼거렸다. 몬스터라면 사이토의 탐지스킬과의 저항에 따라 나타나는 거리가 틀리다. 하지만 같은 파티로 되어 있는 에루나는 항상 그에게 탐지된다. 그녀가 귀신처럼 사라진 것이다.
"흐응, 점점 흥미 있어 지는 퀘스트군."
사이토는 피식 웃었다.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는 꼬마, 어차피 전투에 도움이 되지 않을 바에야 잠시 사라져 주는 것이 좋다. 게다가 퀘스트로 인한 증발이니 언제든 나타나리라. 그러나 레미와 에린이 정신없이 주변을 뒤지기 시작하자 사이토는 짐짓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레미에게 말했다.
"내 생각에는 지금 에루나를 찾기 보다는 마지막 층으로 먼저 가보는 게 좋을 듯싶은데. 혹시 또 알아? 가다가 찾을 수도 있잖아."
사이토의 말에 레미가 눈을 사납게 치켜떴다.
"흐음..."
귀를 후비적대는 사이토, 레미의 AI가 생각했던 것 보다 반항심이 큰 듯하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스토리의 흐름을 보자면 그들은 갈 수 밖에 없다.
"레미야, 사이토씨 말이 옳아. 내 생각에는 에루나가 없어진 게 우연이 아닌 것 같아."
"무슨 말이야! 그게..."
"소곤소곤..."
사이토에게 모르게 레미에게 소곤거리는 에린... 사이토는 두 남녀를 시큰둥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래. 잊지 않고 있어."
이야기가 끝났는지, 레미가 에린에게 고개를 끄덕인다.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사이토... 저 둘의 숨겨진 비하인드 스토리를 조금정도 알고 싶다는 생각만 왼쪽귀로 들어오다가 흘러버렸다. 한마디로 별로 상관하고 싶지 않은 자세
"가지."
"예"
그렇게 에루나가 빠진 세 명만이 남은 파티는 어둠속으로 전진해 들어갔다.
"전방에 30미터 코너에 몬스터..."
한결 밝은 기분으로 나침반을 읽어대는 사이토, 귓가를 거슬리던 조막만한 아이의 발소리도 없고,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사이토의 신경을 거슬리던 재잘거림도, 투덜거림도 사라졌다.
"아아, 온전히 게임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군."
얇게 웃음 짓는 사이토의 옆으로 레미가 앞섰다.
"또 하나 좋은 점이라면 저 녀석이 달아올랐다는 거겠지."
에루나의 일로 다급해 졌는지 레미는 상당히 조바심을 치고 있었다. 그 덕분에 파티의 이동속도는 발군... 사이토야 계급이 계급이니 만큼 스테미너는 충분했기에 이런 이동속도는 언제든지 대 환영이었다.
"캐캥!"
"고블린이었나?"
들려오는 비명소리를 분석 추론해 본 결과 방금 전 비명소리는 고블린의 한 맺힌 비명소리...
"빠르군."
현재 위치는 던젼 2층의 후반부를 가고 있었다. 그들이 떨어졌던 곳은 2층의 초입부근... 돌파하는데 채 2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거기에 사이토의 우려와는 다르게 2층에서의 트렙은 수준이 그리 높지 않았다. 덕분에 사이토는 함정 복구 스킬을 이용해 함정들을 모두 해체 시켜 가방에 넣는 짭짤한 부수익까지 올리고 있다.
"어서 가죠."
레미의 채근에 사이토는 유쾌히 응답했다.
"가자구."
얼마 되지 않아 사이토 일행은 삼 층의 입구에 도착했다.
"으윽... 별로... 비위 상하는군."
"조금 그러내요."
사이토의 감상에 에린이 대답한다. 삼층의 입구는 문의 형식이 아니었다. 밑으로 보이는 것은 점액질로 이루어진 거대한 구멍... 그러나 나침반에는 이곳이 확실히 다음 던젼으로 가는 문이라고 가리키고 있다.
"흐음... 내가 먼저 가지."
사이토는 양 손에 단검을 꺼내 들으며 레미에게 말했다. 말론의 말에 의하면 삼 층까지가 유저들이 정복한 곳이라고 한다. 물론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은 아니었다. 현재까지 유저들에게 정복되지 않은 던젼이란 거의 없었다. 하물며 9계급이나 8계급 세 명만 덤벼도 현재까지 건너온 던젼은 누워서 떡먹기이다. 하지만, 말론의 말에 따르면 충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언제 어디서 불특정 다수의 위험이 습격 혹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사이토는 그것을 예방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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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지겨워
“메탈 가디언이라니 사기에요.”
“무슨 소리야?”
셋이 오붓하게 벽에 달라붙어 한담을 떨기에는 상황이 꽤나 난해하지만, 잔뜩 긴장하고 있는 레미와는 상반되게 사이토는 느긋한 어조로 대답했다.
“메탈 가디언은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고위급 마도사나 만드는 그런 거라구요. 이 곳에 있는 몬스터들은 과거 몬스터들의 침략때의 것들인데, 저건 누가 만든 거죠?!”
“제작자가...”
레미의 말에 마음속으로나마 차분히 대답해주는 사이토였다. 삼 층은 듣던 대로 상당한 난이도를 자랑했다. 곳곳에서 험상 굳게 머리를 들이미는 역겨운 흡반이 달린 거대흡혈생물에서부터 블루 스켈레톤 전사, 이 층에서 보았던 가고일까지... 그렇지만, 그것들은 평범한 파티 플레이로 벗어 날 수 있는 종류들이었다. 힘들면 도망치고 만만하면 붙는 게 원칙... 부수입도 짭짤했다. 가고일의 생명석이라던가 블루스켈레톤의 가슴뼈는 NPC상인들에게 비싸게 팔린다.
“에휴..”
사이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이유는 사 층에 들어 지금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하나의 장치 때문이다. 길 중간에 둥근 돔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안으로 보이는 것은 금속으로 된 듯 한 4미터 크기의 거대한 삼각 뿔... 문제는 그 삼각뿔의 머리위에서 돌고 있는 두 개의 둥근 고리이다. 둥근 고리에 솟아있는 작은 돌기들에서 나오는 오색의 레이져... 그것들은 마치 살아있는 양, 고리들은 계속해서 회전하며 주변으로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흡사 닿으면 잘린다라고 소리치는 듯... 아니 이미 잘린다는 것은 사이토의 로브의 절반이 댕강 잘라진데서 임상실험은 끝난 상태이다.
“에린, 더 강한 마법 없어?”
레미가 에린에게 말했지만, 에린은 고개만 잘래잘래 흔들 뿐이다. 에린은 이미 마나를 풀가동해 그 메탈가디언을 공격해 보았다. 결과는 지금 보는 것과 같이 흠하나 없이 말끔하다. 한마디로 마법공격무효주문까지 걸린 무적의 요새... 사이토 또한 와이어를 이용해 공격해 보았다. 그러나 +3의 디스코어로도 흠집조차 나지 않는다.
“흐음...”
고개를 빼꼼이 내밀어 메탈가디언을 관찰하는 사이토... 확실히 그 고리에서 나오는 레이져들은 규칙적으로 주변을 향해 뻗고 있었다. 문제는 그 방향이 고리들의 불규칙적인 움직임에 따라서 예측하기 난해하다는 것... 메탈 가디언에게 분명 약점이 있을 것이다.
“킁, 무작위로 실험해 보는 수밖에 없군.”
사이토는 가방에서 활을 꺼내 들었다. 간만에 꺼내 보는 활, 예전 아이아스 길드 무기창에서 꺼내보고는 한동안 건드려 보지 않은 활이다.
“화살이 남아 있으려나?”
당시 마을에서 나설 때 한통 사서 넣기는 했다. 아이아스에서 두 세 발을 썼으니, 꽤 남았으리라.
“오호, 여기 있다.”
잔여 화살 수를 점검해본 사이토는 쾌재를 부르며 화살통을 허리에 맸다. 현재 남은 화살의 개수는 38발... 한참 사용해도 될 양이다.
투퉁...투투퉁...
사이토는 급소가 될 만한 부분들을 계속해서 화살로 공격했다.
투퉁..투웅.. 파아앙!
날카로운 소리가 들리며 메탈가디언의 고리들이 갑자기 반대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흐음..거기였군.”
사이토는 활을 놓으며 중얼거렸다. 약점은 바로 메탈 가디언의 허리부분에 해당하는 곳, 그 곳에서 가끔씩 솟아나오는 작은 눈이었다. 그러나 그 또한 쉽지 않다. 공격당하는 순간 고리의 회전축이 변한다. 그것도 3차원으로... 게다가 그 크기는 거의 5센티도 안 되는 작은 크기이다.
“어때 레미 뭔가 방법 없냐?”
“글쎄요. 성직자라도 있으면 화살에 축복을 걸어서 계속 맞춰 보겠지만, 분하게도 특별한 무기가 없네요.”
“제가 다시 한 번 해볼께요.”
에린이 호기롭게 외치며 나갔지만, 잠시 후 시무룩한 표정으로 다시 들어왔다.
“마법 무효 맞네요.”
“후우, 어쩔 수 없군.”
“조심하세요.”
사이토는 발을 가볍게 구르며 메탈가디언이 있는 돔으로 접근했다. 디스코어를 꺼내고 벨트에서 화계열 인첸트 스크롤을 꺼내 들었다. 어찌 뚫을 수도 있겠지만, 일단 해 볼 수 있는 데까지 해보려는 것이다.
“파이어 블레이드...”
디스코어에 파이어 블레이드를 인첸트 시킨 사이토는 디스코어를 메탈 가디언에게 조준하며 눈을 빛냈다. 그 때...
파아앗!
규칙적으로 회전하던 고리들이 일순간 멈추며 사이토를 향해 레이저를 발사했다. 대충 보기에도 네 다 섯 개의 빛줄기가 뭉쳤다. 순식간에 폭사된 오색빛줄기... 깜짝 놀란 사이토는 방비할 새도 없이 디스코어를 들어 막았다.
찌리리리링!
레이저에 맞아 몸이 뚫릴 것을 예상하던 사이토는 디스코어에 느껴지는 세찬 떨림에 눈을 떠 앞을 쳐다보았다.
“디스코어가 레이저를 막아낸다?”
레이저의 공격이 끝난 뒤에도 사이토는 멍하니 디스코어를 바라보았다.
“숨겨진 기능일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이토는 디스코어의 옵션을 다시 확인해 보았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없다.
“뭐, 별로 상관 없겠지. 레이저를 반사시키는 검이라... 아! 저 레이저는 마법이었군. 그래서 아다만타이트가 반응하여 레이저를 막아낸 거구나.”
갑자기 디스코어가 너무나도 자랑스러워 보인다. 그가 만들어 낸 최고의 걸작품 아닌가... 물론 초반에 수많은 구박을 먹어야 했던 디스코어지만 이제 그 검생(劍生이) 풀리는 듯하다.
“하하! 다시 한 번 공격해봐라!”
“오오오오!”
사이토의 위용에 탄복을 보내는 레미와 에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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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지겨워
사이토는 디스코어를 메탈 가디언을 향해 겨누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금 발사되는 레이저... 사이토는 흡사 레이저를 갈라버리겠다는 듯이 날을 곧추세우며 메탈가디언에게 달려들었다.
찌리리... 파아아!
“우왁!”
사이토는 디스코어에서 굴절된 빛줄기가 다인슬레터의 가슴받이를 움푹 패버리고 지나가자 식은땀을 흘리며 뒤로 황급히 물러섰다.
“이런, 씨바! 이게 주인을 죽이려고 작정을 하네!”
검이 무슨 죄가 있겠냐만은 사이토는 막무가내이다. 당장에라도 디스코어를 부셔버릴 듯한 살기... 그런 사이토의 옆으로 레미가 다가왔다.
“아무래도 저 레이저는 거울 같은 것에 반사되는 것 같은데요? 그... 사이토씨의 검면은 매끈한게 반사되잖아요.”
레미의 말에 사이토는 한동안 디스코어를 바라보다가 다시 허리춤에 찼다.
“제가 마침 거울 마법을 익혔어요.”
때 마침 반짝 손을 드는 에린, 잠시 후 일행은 에린의 마법보호를 받으며 메탈 가디언을 지날 수 있었다.
“여기서라도 한 번 공격해 볼까?”
상당히 근접한 거리였기에 사이토는 군침을 삼키며 검을 손에 쥐어 보았다. 범상치 않은 물건이기에 부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혹은 어떤 아이템이 떨어질지 궁금하다. 그러나 에린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사이토의 이런 바램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지금 이 마법 유지하고 있기도 힘들어요. 만약 사이토씨가 나가려 하면 마법을 해지해야 한다구요.”
“킁...”
메탈 가디언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조금 더 전진하던 사이토는 뒤편에 이리저리 흩어진 여러 가지 아이템, 혹은 방어구들에 눈이 휘둥그레 해 졌다.
“으음, 아무래도 우리 이전에 도전했던 이들 같네요. 거의 여기서 죽은 거구나.”
레미가 무슨 말을 하건 사이토는 아이템들을 둘러보며 쓸만한 것을 뒤져보았다. 메탈가디언의 통과 후 보상시스템인 듯, 주변에는 꽤 쓸만한 것들이 많았다. 사이토는 땅에 널린 아이템들 중 쓸만한 것을 챙긴 뒤 다시 앞장섰다. 아쉽게도 사이토가 쓸 만한 마음에 드는 도둑전용아이템은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 외 값비싼 아이템들이 떨어져 있었기에 사이토는 그것으로나마 마음의 위안을 삼았다.
“이제 세인트 요나르에 가까워져 간다. 모두 긴장해.”
신의 아티펙트 세인트 요나르,.. 그 실체는 지금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막연한 기대감과 긴장감에 사이토는 눈을 더욱 날카롭게 뜨며 일행의 앞을 선도해 나갔다.
“바라! 바라! 바라보고 있는 것은!”
“오오우!”
레미의 열창에 사이토와 에린이 박수를 치며 환성을 지른다. 그들이 지금 있는 곳은 던젼의 가장 마지막으로 보이 반구형의 거대한 방... 한 가운데에는 작은 마법진이 그려져 있고 주위로는 투명한 판들이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다. 벽면에 붙은 이름 모를 갖가지 보석들은 영롱한 빛을 내뿜고 있다. 그 방 한가운데 마법진 위에서 레미는 혼신을 다해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노래방이 따로 없구만!”
“노래방이 뭐에요?”
“아무것도 아냐!”
처음 이곳에 들어와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에게 이곳을 통과하는 방법을 들었을 때 사이토는 정말 배꼽이 빠지게 웃어야 했다.
“노래 점수 99점 이상이라... 쿡쿡...”
박수를 치며 레미의 노래에 환호하던 사이토, 배를 붙잡고 키득거린다.
“그대! 한 순간 뿐~~”
레미의 노래가 끝났다. 대관절 NPC가 무슨 노래겠냐 만은 의외로 레미는 노래를 잘 불렀다. 계속해서 점수가 낮게 나오자 줄기차게 다섯 곡을 연달아 뽑아내는 레미... 그러나 열창이 끝나고 들려오는 음성은 차디차기만 하다.
“92점입니다.”
온 방을 울리 듯 은은히 들려오는 굵직한 남성의 목소리...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마법진을 향해 발사되는 레이져... 이제 이 패턴에 익숙해져 버린 레미는 능숙한 솜씨로 레이저를 피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 포기 포기!”
레미는 좌절하며 비실비실 마법진을 내려온다.
“에린도 한번 해보지?”
“에, 저는 음치에요. 그러는 사이토씨가 한 번...”
구경할 때야 좋았지만, 막상 마법진 위에서 노래를 부르려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솔직히 사이토가 노래를 부를 필요는 없다. 굳이 유저들이 나서지 않는다고 해도 NPC들이 퀘스트를 일부 해결해 줄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들을 NPC라고 무시하고 계속 노래를 부르게 하기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다. 어쨌건 실제 인간에 거의 근접한 반응을 일으키는 NPC들... 사이토에게 자꾸만 눈치를 준다.
“좋아.”
“와아!”
사이토는 성큼 성큼 마법진 위로 올라섰다. 사이토가 올라서자 마법진이 약 30센티 가량 공중으로 떠오른다. 또다시 반짝거리기 시작하는 방의 풍경... 사이토가 부를 노래의 제목을 중얼거리자 즉석해서 반주가 흘러나왔다.
“그대 품속에 나 이대로 잠들고 싶...”
2028년에 나왔던 여성가수 커트니의 노래이다. 사이토가 즐겨 부르는 18번 곡... 여성곡이기는 하지만, 그녀는 사이토가 유일하게 열광하는 가수이기도 하다.
“forever..."
사이토의 노래가 끝나고, 일행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점수를 기다렸다. 점수가 낮다면 또다시 열창모드로 들어가야 하는 사이토... 레이저를 의식한 듯 몸을 긴장시키고 있다. 에루나를 찾아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는 레미, 그리고 더 이상 실패하다가는 그 자신도 노래방의 희생자가 되야 한다는 불안감에 휩싸인 에린... 물론 음치이다.
“99점 축하드립니다.”
“오예!”
사이토가 밟고 있던 마법진이 3미터 크기의 거대 마법진으로 커지며 마법진이 있던 곳의 바닥에 둥근 구멍이 열렸다.
“모두 올라서.”
“네.”
일행이 모두 마법진에 오르자 마법진은 천천히 구멍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별다른 조명이 없기에 주변은 캄캄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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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수능있는 날이죠? !.................에게 축복이! ..............들에게는 저주가!
음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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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지겨워
“여긴가?”
“너... 넓군요.”
“와... 예쁘다.”
마법진이 도착한 곳에서 한 동안 더 걸어 들어간 일행은 잠시 후 펼쳐진 별천지에 눈이 휘둥그레 졌다. 각자의 의견을 피력하는 이들 곧 사이토의 손이 가리키는 쪽을 모두 쳐다보았다. 거대한 지하광장... 말론의 술집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크기이다. 광장은 대낮의 햇빛이 무색할 정도로 밝았다. 광장 중앙에 달린 거대한 원구에서는 눈이 따가울 정도의 빛을 내뿜고 있고 그 빛 아래로 보이는 것은 다섯 개의 높다란 수정들이 박혀 있다. 그 수정들의 한가운데로 솟은 피라미드 모양의 높다란 단... 그 곳에서 또한 밝은 빛을 내뿜고 있다.
“세인트요나르가 있는 곳 같군.”
중앙을 향해 걷던 사이토는 피라미드를 지목하며 중얼거렸다.
“다른 팀은 아직 안왔나봐요.”
“그래, 우리 쪽이 조금 더 빨랐나보다.”
중앙까지는 딱딱한 벽돌길에 놓여있었다. 걸을 때마다 들려오는 또각또각 소리... 적막만이 가득하다.
“잠시 멈춰봐.”
앞서 걷던 사이토가 자세를 낮추며 정지하자 레미와 에린은 자리에 멈추며 각자 무기를 꺼내들었다.
“뭐에요?”
“뭔가 이상해.”
비록 나침반에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사이토의 본능적인 육감은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이곳의 넓이는 필요 이상으로 넓었다. 굳이 이렇게 넓을 필요가 있었을까? 뭔가 특수한 기능을 하지 않는다면, 단순한 설정으로 인해 이렇게 넓을 필요는 없다. 게다가 광장 구석구석에 박혀있는 거대한 수정들의 용도 또한 의심스럽다. 가까이 접근하면 할수록 수정에 새겨진 미세한 문자들이 눈에 들어온다.
“혹시 세인트요나르를 사용해 이곳에 무언가를 봉인한 거 아니냐?”
사이토의 말에 레미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그럴리가요. 제가 알기로는 이 마법진들은 단순히 성물의 힘을 증폭시키기 위해 왕국마법병단에 의해 설치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지금이야 몬스터들의 준동이 그때만 못하지만, 당시에는 정말 어마 어마 했다고 하더라구요. 괜한 걱정이세요.”
“으음,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레미의 말이 맞았으면 좋겠지만, 불행히도 이것은 현실이 아니었다. 언제 그의 뒤통수를 칠 일이 불쑥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어? 저게 뭐죠?”
“응?”
에린이 피라미드 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 눈을 돌리는 사이토와 레미... 피라미드 위로 한 인영이 보인다. 거리가 거리인 만큼 보이지 않았던 것, 사이토는 혀를 차며 피라미드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제길, 먼저 와있었군.”
“이렇게 된 이상 전투인가요?”
“그럼 어떻게 해!”
사이토는 양손에 헬리오스와 셀레네를 뽑아들고, 그가 낼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피라미드를 향해 뛰어갔다. 순식간에 피라미드의 꼭대기까지 올라선 사이토, 그러나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그들과 함께 출발했던 상대팀이 아니었다.
“에루나!”
"오빠!"
눈가에 눈물이 가득한 에루나... 어느새 에린과 레미가 뛰어 올라와 에루나를 안았다. 함박 웃음을 지으며 에루나를 안는 에린 연신 ‘다행이야’를 중얼거리며 그녀를 안아들었다.
“뭔가 이상한데?”
사이토는 얼굴을 심각하게 굳힌 채 그들을 지켜보았다. 에루나가 갑자기 사라진 것도 그렇지만, 지금 에루나의 옷은 너무나도 깨끗했다. 이 층으로 떨어졌을 때도 그렇지만, 그녀가 여기까지 혼자서 왔다면 옷이 이렇게 깨끗할 리가 없는 것이다. 아니 혼자서 왔다는 것도 절대 불가능이다.
“어떻게 된 거야?!”
레미가 묻자 에루나는 울먹거리며 그 말에 대답했다.
“으응, 떨어지고 보니까... 나 혼자... 나 혼자 남아서 걷고 있는데, 여신님이 나타나셔서 이리로 데려오셨어요.”
“으응, 그래 그래. 다행이다. 다행...”
에루나의 등을 두들기며 웃음짓는 레미, 그러나 사이토의 표정은 더욱 굳어졌다.
“레미! 에린 물러서!”
“왜! 왜 그래요?”
사이토가 갑자기 무기를 꺼내들고 에루나를 경계하자, 레미는 황당함을 느끼며 물었다.
“뭔가 이상하지 않냐! 아무리 여신이 데려왔다지만, 우리처럼 일 층에서 떨어졌다면 옷이 저렇게 깨끗할 수가 없잖아!
“!!”
사이토의 말에 흠칫 하며 에루나를 쳐다보는 에린과 레미... 그러자 에루나의 낯빛이 하얗게 변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 여신님이 오...옷이 너무 더럽다면서 깨끗하게 해 주신... 거에요. 무...무서워. 오빠”
“미안! 미안!”
사이토를 비난하는 듯 눈빛을 보내며 다시 에루나를 감싸는 레미와 에린... 특히나 에린의 경멸하는 듯한 눈빛이 참으로 거슬린다.
“이것들이...”
사이토는 인상을 찌푸리며 뒤로 물러섰다. 무기는 그대로 손에 들었다. 직감적으로 뭔가 아니라다는 생각에서였다.
“괜찮아? 다친 곳은 없고?”
“으응.”
잠시나마 의심해서 미안하다는 듯 에루나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물어댔다. 울먹거리기 시작하는 에루나, 사이토의 험상궂은 표정이 무서운가 보다.
“무... 무서워요.”
“사이토씨! 얼굴 좀 펴요!”
“못 됐어! 정말.”
“쳇...”
사이토는 뒤돌아서며 말했다. 꼬마들이 울어 재치는 것은 정말 싫다. 차라리 그 꼴을 안 볼지언정...
“다 됐고, 빨리 세인트요나르나 집어.”
투덜거리며 사이토가 말했다. 어차피 퀘스트만 끝나면 이들과도 안녕이리라. NPC따위에게 화를
내 봤자, 그만 추해질 뿐이다.
사이토의 말에 다시한번 발끈하려던 에린을 뜯어말린 레미는 그의 앞에 있는 거대한 타원형의 빛 무리에 앞으로 다가가 손을 뻗었다.
지이이잉...
빛무리가 커지며 레미를 감싼다. 물러서는 에린과 에루나... 십 분여의 시간이 지난 후 빛덩어리가 사라지며 레미는 한 개의 작은 보석을 손에 들고 나타났다. 영롱하게 빛나는 무지개빛 보석...
“화아...”
에린과 에루나가 방금 전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금새 얼굴이 밝아지며 레미의 앞으로 모여들었다.
“너무 아름답다.”
세인트요나르의 빛을 받아 에린의 얼굴이 오색빛으로 물든다.
“오빠 오빠! 저 한번 만져볼게요.”
에루나의 눈이 동그래져서 레미에게 칭얼거린다. 곁눈질로나마 세인트요나르를 확인하고 한숨을 내쉬는 사이토... 일단 퀘스트가 끝났다는 안도감에 맥이 풀려온다.
“응, 여기...”
레미가 에루나에게 세인트요나르를 넘겨주자, 에루나는 그것을 두 손으로 받아 황홀한 눈으로 응시했다.
“이제 엑셀리온 호수로 가는 것만 남았어.”
“그래.”
에린과 레미가 서로를 바라보며 두 손을 꼬옥 잡는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의 사이토, 단검을 갈무리하며 일행을 채근하기 위해 돌아섰다. 그 순간...
“커억!”
레미의 신음성을 내지르며 눈을 크게 떴다. 그의 배 부분은 무언가가 뚫고 나온 듯 불룩 솟아 올라있다. 붉게 물들어 가는 레미의 옷... 갑작스런 상황에 정신이 나간 듯 에린은 그 장면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다.
“위험해!”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사이토...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사이토는 헬리오스를 뽑아 들고 에린을 향해 꽂혀드는 날카로운 가시를 쳐냈다. 레미의 등 뒤로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감이 커지기 시작한다. 사이토의 식스센스로 흘러 들어오는 것은 적색 경보... 검은 연기가 레미의 등에서 흘러나와 위로 솟구쳐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간다.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것을 깨달은 사이토는 에린을 붙잡고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레미... 레미...”
사이토의 손을 뿌리치고 레미에게로 다가가려는 에린... 레미의 입으로부터 붉은 피가 쉴 새 없이 솟아나온다.
“놔요! 놔놔!”
사이토의 손이 그녀를 놓아주지 않자 에린은 레미에게 가려 발버둥을 치며 사이토에게 반항했다.
“위험해!”
“놔! 자식아!”
격렬한 반항, 그 사이에도 레미에 등에서 솟아오른 검은 연기는 더욱 커지며 레미를 에워쌌다.
“놓으란...악!”
사이토는 발버둥치는 에린의 얼굴을 주먹으로 갈겨버렸다. 피라미드 밑으로 굴러 떨어지는 에린...
“작작 좀 해라! 멍청한 계집!”
피라미드 밑으로 빠르게 내려서며 사이토가 소리쳤다.
“상황파악이 그리도 안 되냐! 그 딴 식으로 접근하면 상대가 퍽도 좋아하겠다. 아주 가서 뒈져라!”
“흑흑...”
넋이 나가 있는 에린에게서 신경을 끈 사이토는 피라미드 위쪽을 쳐다보았다. 축 늘어진 레미를 한손으로 들고 있는 그것, 아무리 적게 잡아도 거의 5미터는 될 듯싶다.
“레서 데몬...”
“너! 너는!”
사이토의 중얼거림에 에린은 피라미드 위를 쳐다보며 외쳤다.
“구면인가?”
.....................................................................................
딱 한편..-_-; 짜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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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지겨워
사이토의 중얼거림에 에린은 피라미드 위를 쳐다보며 외쳤다.
“자이나드...”
“구면인가?”
사이토는 헬리오스와 디스코어를 꺼내 들었다.. 왠지 너무 쉽다고 생각했다. 고위급 퀘스트 치고는 단지 시간만 좀 잡아먹었을 뿐, 그리 어려운 것들이 없었다. 퀘스트의 최종보스로 보이는 레서데몬...
“너희들에게 당한 뒤!... 중얼 중얼 중얼...”
“그렇다면 에루나는 바로 너.. 중얼 기타 등등...”
둘이 무슨 이야기를 하 건 사이토는 착실히 전투준비를 했다. 스크롤을 꺼내어 디스코어에 인첸트를 걸어 칼집에 꽂고, 헬리오스와 셀레네에 와이어를 걸었다. 피라미드 위에 우뚝 선 레서데몬, 머리위로 솟은 길쭉한 뿔과 잘 접힌 날개를 뺀다면 건장한 대머리총각으로 보일 인상이었다. 물론 삐죽 솟아나온 이빨이라던가, 초점 없어 보이는 붉은 눈, 호랑이와 같은 손발톱을 뺀다면...
사이토는 슬금슬금, 자이나드라는 레서데몬의 뒤로 이동했다. 에린과 이야기 하는데 정신이 없는지, 레서데몬은 사이토쪽을 쳐다보지 않았다.
“레미를 놓아줘. 내 놓지 않으면 ...중얼 중얼...”
“쿠웍허허! 이 나에게 협박이 통할... 중얼 중얼...”
사이토는 최대한 은신하며 피라미드 위로 올라갔다. 레서데몬... 본래대로라면 레미와 에린, 그리고 사이토가 모두 덤벼도 간당간당한 존재이다. 보통 중급이나 상급던젼의 중간보스라던가, 함정에서 출연하여 수많은 모험자들을 절망으로 쑤셔 넣고 밟아버리는 초 고위급 몬스터...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이제 이 레서데몬에 대항할 존재는 사이토와 에린 뿐이다.
“내가 이 세인트요나르를 얻기 위해 얼... 중얼 중얼!”
레서데몬은 아직 대사가 다 끝나지 않았는지, 아직 사이토를 눈치 채지 못했다. 몸을 한껏 긴장시킨 사이토는 디스코어의 손잡이를 붙잡고 번개같이 레서데몬의 뒤로 돌진했다.
“데들리 스텝!”
9계급 로그가 최고수준의 검으로 펼치는 데들리스텝... 뒤늦게 레서데몬이 돌아보았지만, 디스코어는 이미 레서데몬의 복부에 꽂히고 있었다.
“쿠어어억!”
“쳇!”
사이토의 바램과는 틀리게 레서데몬은 날개를 펼치며 공중으로 솟구쳤다. 레서데몬의 복부부근에 휭하니 뚫린 데들리 스텝이 만들어낸 구멍... 공중에서 밑을 바라보는 레서데몬은 이를 갈며 소리쳤다.
“인간! 너는 내 손에 있는 이 녀석이 보이지... 쿠억!”
축 늘어진 레미로 앞을 가리며 소리치던 레서데몬은 그의 발을 감아드는 와이어에 비명을 질렀다.
“안보여!”
뒤따라 올라오는 사이토, 디스코어를 번개처럼 그었다.
“크어억!”
사이토의 디스코어는 레서데몬의 한쪽 발목을 삭둑 잘라버렸다. 비명을 삼키면서도 사이토에게 손을 뻗는 레서데몬...
“베르나의 불꽃!”
레서데몬의 손에서 거대한 불기둥이 뻗어 나왔다. 그러나 와이어의 움직임을 이용해 여유있게 피하는 사이토, 반동을 이용해 천장을 박찬 사이토는 레서데몬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간발의 차이로 사이토의 공격을 피한 레서데몬, 얼굴이 흉폭하게 일그러진다.
거대한 팔을 마구 휘둘렀지만, 이미 사이토는 그곳에 없었다.
“인간주제에!”
공격이 실패했지만, 아직 공격기회는 남았다. 중력에 의해 몸이 밑으로 떨어진다. 사이토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다인슬레터의 옆구리의 버튼을 눌렀다.
“우어어어억!”
레서데몬의 남은 한쪽 발목이 삭뚝 끊겨 나갔다. 조금 전 사이토가 묶어 놨던 와이어는 레서데몬의 발목을 접수하는 것으로 모자라 오른쪽 날개에 치명적인 상처를 만들며 사이토의 가슴으로 얌전히 돌아왔다.
“으어어!”
레서데몬의 거대한 몸뚱이가 땅으로 떨어진다. 먼저 땅에 도착해 있던 사이토는 그의 위로 레서데몬이 떨어지자, 황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꽈꽝...
순식간에 벌어진 일... 레서데몬의 손에 잡혀있던 레미는 힘없이 옆으로 굴렀다. 멍하니 광경을 바라보던 에린은 레미를 보자 정신을 차렸는지, 서둘러 그에게 뛰어갔다.
레서데몬에게 돌격해 들어가던 사이토는 레서데몬의 눈에서 붉은 광선이 난무하자 혀를 차며 그것들을 바삐 피해나갔다. 광선이 지나간 자리에는 붉은 선들이 어지럽게 그려진다.
“쿠어어어억!”
레서데몬의 엄청난 울부짖음... 광장 전체가 마구 떨린다.
“제길... 이게 뭐야...”
레서데몬에게 달려들려던 사이토는 온몸이 빳빳하게 굳어버리는 것을 느끼며 당황했다. 에린을 바라보니 그녀 또한 심적 충격이 큰지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본디, 드래곤류를 비롯한 상급의 악마류 몬스터들의 울부짖음에는 정신공격의 효과가 있다.
“이노옴, 감히 이 나를!”
일어서려던 레서데몬은 양 발목이 끊어져 버렸기에 기우뚱하며 다시 넘어졌다. 한손에는 세인트요나르를 들고 있기에 쓸 수 있는 손은 하나... 한 동안 버둥거리던 레서데몬은 간신히 몸을 엎드려 자세를 잡았다.
“멍청한 놈, 삼키면 될 것을...”
영화에서 보면 보통 악마들은 이것저것 잘도 삼키거늘 저 레서데몬에게 그런 옵션이 없나보다. 몸이 다시 움직이는 것을 느낀 사이토는 양 손에 헬리오스와 셀레네를 뽑아들었다.
“엣?”
레서데몬의 양 발목이 다시 자라나고 복부의 구멍도 매꿔진다.
다시금 육중한 몸을 일으키는 레서데몬... 눈에서는 분노를 뜻하는지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피부로 와닿는 중량감... 사이토는 돌격을 멈추고는 레서데몬을 노려보았다.
“네놈은 누구냐!”
“사이토...”
사이토는 순순히 대답했다.
“네놈이구나! 지난번 내 사랑스러운 부하를 소멸시킨 것이!”
“흠.. 모르겠는걸.”
사이토는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했다. 분명 그의 할아버지가 예전에 완수한 퀘스트이리라. 그렇지만, 그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도 없는 사이토이기에 그의 대답 또한 거짓말은 아니다.
“이놈, 시치미를 뚝 떼는군.”
레서데몬은 이를 갈아 붙이며 오른손을 머리위로 들었다.
“나와라! 배덕자의 검!”
손에서부터 붉은 불꽃이 뻗어 올라간다. 얼마 후 완성된 것은 근 2미터 길이의 불꽃에 휩싸인 거대한 블레이드... 사이토는 슬금슬금 곁눈질로 에린을 쳐다보았다. 지금 그 혼자 레서데몬에게 덤빈다는 것은 상당히 불리하다. 그가 사준 포션들을 먹이고 붓고 하면서 난리치는 에린... 사이토쪽은 관심도 없는 듯하다.
“젠장... 꼬이는군.”
일단 레미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은 다행이었다. 퀘스트가 어떻게 꼬여버릴지 모를 노릇... 그렇지만, 레서데몬과의 1:1따위 별로 취미붙이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인간! 죽어라!”
꽈르르릉!
검을 내리치는 것만으로도 지축이 흔들린다. 공중으로 솟구쳐 검을 피한 사이토... 옆구리와 어깨에 걸려오는 엄청난 충격으로 인해 한 쪽 벽으로 날아갔다. 레서데몬의 정권에 격타당한 사이토...
“크헉...”
라이프가 대량으로 날아갔다. 게다가 벽에 부딪친 데미지 또한 만만치 않다. 땅에 내려선 사이토는 그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는 레서데몬을 노려보았다. 솔직히 리얼판타지아에서 레서데몬과는 처음 붙어보는 것이었다. 물론 예전에 했었던 게임들에서는 지겹게도 붙어봤던 몬스터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그 강함의 정도가 틀렸다. 리얼판타지아에 존재하는 몬스터가 타 게임의 동일한 몬스터와는 그 파워 자체가 틀리기에 레서데몬 또한 예전에 그가 타게임에서 알던 그 몬스터로 생각했던 것이 문제였다. 리얼판타지아의 레서데몬은 무척이나 빨랐다.
“잘났어 정말...”
체력회복 물약을 하나를 꺼내 마신 사이토는 천천히 레서데몬에게 다가섰다. 누군가 보면 그를 미쳤다고 하리라. 사이토가 아무리 무술실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도둑이라는 절대명제는 변하는 것이 아니다. 행여 검사클래스라면 어떻게든 버텨낼 수 있겠지만, 도둑클래스의 무기와 힘으로는 레서데몬의 단 일검도 막아내기 힘든 것이다. 사이토의 머리를 쪼개버리려는 듯, 레서데몬의 블레이드가 직각으로 쪼개 들어왔다.
“정직하군.”
단순히 발을 한걸음 움직이는 것만으로 그것을 피해낸 사이토, 모든 무술의 기본이다. 어차피 전투는 상대의 간격과 자신의 간격과의 싸움, 비록 사이토의 간격이 레서데몬에 비해 터무니없이 작다고 해도 지금 사이토가 노리는 것은 그 차이에서 오는 사이토의 잇점이었다. 블레이드를 피해낸 사이토는 쏜살같이 레서데몬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어차피 그에게 특별히 다른 무기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레서데몬에게 붙어 상대의 간격을 부수는 것...
레서데몬은 사이토가 가까이 붙어오자, 다시 한 번 공중으로 도망치려 날개를 활짝 폈다.
“교육효과가 없는 녀석이군.”
조금 전 사이토에게 그렇게 당했음에도 또 다시 하늘로 치솟으려 한다. 만약 이곳이 일반의 필드였다면 사이토는 지금 이런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명확하게 천장이 있는 곳, 레서데몬에게 불행한 것이라면 사이토의 행동반경안에 그 천장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크어어...”
땅으로 내동댕이 쳐진 사이토, 또 다시 엉망이 되어 땅으로 흉하게 널부러진 레서데몬은 공중에서 내리 꽂히는 사이토를 향해 손을 뻗었다. 레서데몬의 손가락 하나하나에서 검은색의 빛줄기가 뻗어 나온다.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사이토는 셀레네를 꽂아 넣은 뒤, 빠르게 디스코어를 꺼내 들었다. 디스코어의 칼등은 아다만타이트로 되어 있다. 다섯 개의 검은 빛줄기 중 네 개가 사이토의 디스코어에 사라졌다. 나머지 하나는 다인슬레터의 가슴받이로 받아낸 사이토...
“으윽!”
중력에 의해 땅으로 내려서던 사이토는 다시금 공중으로 솟구쳐 천장에 등이 부딪힌 뒤 땅으로 떨어졌다.
“무지막지하군.”
비틀비틀 일어서던 사이토는 천천히 시야가 검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
“제기랄! 저주냐!”
다인슬레터를 이루는 아다만타이트가 모든 마법을 막아내는 것은 아니다. 상태이상 마법에 대해서는 무방비... 한 마디로 갑옷에 직접적으로 와 닿는 마법들을 막아내는 것일 뿐, 신체에 적용되는 상태이상마법에 대해서는 저항력이 없다. 졸지에 시선을 잃어버린 사이토는 당황스런 마음에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왼쪽? 오른쪽?”
이 때만큼 식스센스가 고마운 적이 없었다. 다행히 레서데몬은 대량의 살기를 그에게 발산하고 있었기에 도망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지형... 레서데몬을 피해 빠르게 뒷걸음질 치던 사이토는 등에 와 닿는 둔탁한 느낌에 침음성을 흘렸다.
가슴에 와닿는 섬뜩한 느낌... 본능적으로 몸을 옆으로 굴리자 그가 있던 자리에서 요란한 파공성이 들려왔다.
꽝! 꽝! 꽝!
지금 사이토가 할 수 있는 것은 몸을 피하는 것뿐이다.
“크어! 인간 죽어라!”
식스센스는 재처 두고라도 온몸에 느껴지는 열기에 사이토는 뭔가 심상치 않은 것이 그를 노리고 있음을 실감했다. 이 때 만큼은 사이토도 이것저것 볼 것 없이 최선을 다해 힘이 느껴지는 곳을 공격했다.
“그레이브 스피릿!”
몸을 감싸는 강렬한 느낌, 그것은 뜨거움이었다. 몸을 찌그러뜨릴 것 같은 초압력과 뜨거움... 사이토는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크흐...”
천천히 시야가 회복되기 시작했다. 저주마법이 끝난 것이다. 몸을 일으키려던 사이토는 다리가 풀리며 몸이 그의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면에 보이는 것은 땅에 엎드려 몸을 버벅거리고 있는 레서데몬... 사이토의 그레이브 스피릿에 맞은 영향인 듯하다. 둘이 약속이나 한 듯,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야! 이 미친년아! 너도 공격 좀 하란 말야!”
“레미.. 흑... 정신 차려. 제발!”
에린을 향해 쌍소리를 내뱉은 사이토, 이 일만 끝나면 저 년을 죽을 때까지 패주리라... 사이토는 차라리 레서데몬이 정이 가기 시작했다. 에린에 대한 미움에 사이토는 이를 갈며 몸을 일으켰다. 그와 함께 일어서던 레서데몬은 아직 무릎을 펴지 못한 채 사이토를 향해 이를 갈고 있다.
“에라! 못 참아!”
사이토는 땅을 박찼다. 사이토의 공격을 방어하려는지 몸을 버둥대는 레서데몬... 그러나 그 후에 일어난 사태에 레서데몬 또한 사이토의 공격을 막기 위해 들었던 손이 무안해지는지 떨떠름한 하게 손을 내렸다.
퍼억!
번개같이 에린에게 달려간 사이토는 에린의 뒤통수를 발로 갈겨 버렸다. 보기 흉한 포즈로 레미와 뒹구르는 에린...
“에라! 같이 죽어라! 죽어! 퀘스트 해결 안하고 만다!”
혼신의 힘을 다해 에린을 밟아 버리는 사이토, 분노가 폭발했다.
“헉헉헉...”
에린이 레미와 비슷한 포즈로 널 부러져 움직이지 못하자 사이토는 거친 포즈로 그녀를 한 번 더 차버린 후, 체력회복 포션을 하나 더 마셨다.
“인간... 너의 동료가 아닌가?”
“단순한 짐덩어리야!”
빈 포션병을 거칠게 던져버린 사이토의 눈에서 불꽃이 일었다. 머릿속을 지배하는 것은 하얗게 변해 버린 살기... 지금 그의 옆에 브랜이라던가 밀레나같은 그의 지인들이 함께 있다면 서둘러 사이토의 옆에서 피할 것이다.
“흐흐...”
사이토는 입꼬리를 쭈욱 말아 올리며 셀레네와 헬리오스를 뽑아들었다. 명백한 폭주 모드...
“크어어!”
레서데몬이 양 팔을 흔들며 지축이 흔들리는 포효를 내질렀다.
“크아아!”
사이토가 양팔을 휘두르며 괴성을 질렀 댔다.
“다시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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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한 편... 날씨가 쌀쌀해 지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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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지겨워
육중한 레서데몬과 사이토가 충돌했다. 가당치 않게도 레서데몬의 블레이드를 정면으로 맞서는 사이토... 헬리오스와 셀레네를 교차시켜 충격을 반감시켰다. 몸을 회전시켜 압력을 옆으로 흘린다. 그 효과로 얻은 것은 무지막지한 회전력... 사이토의 돌려차기가 레서데몬의 옆구리에 작렬한다.
“크어엉!”
팔로 옆구리를 가린 레서데몬의 블레이드가 사이토를 횡으로 그어온다.
지이이잉...
블레이드를 머리 위로 넘기던 사이토는 에테르 스킬의 활성화를 느끼고 재빨리 몸을 레서데몬의 뒤로 이동시켰다. 와이어를 뽑아든다.
“우억!”
“히히... 너도 고통을 느끼냐?”
와이어로 레서데몬의 두꺼운 목을 감은 사이토는 온몸을 이용해 와이어를 당겼다. 두 발을 아예 레서데몬의 등에 가지런히 붙이고 허리힘과 다리힘을 이용해 마구 당겨댄다.
“잘라져라! 잘라져라! 우하하하!”
조금만 더 당기면 삭둑 잘라지는 쾌감이 양 팔에 느껴지리라는 마음에 사이토는 괴소를 터뜨리며 더욱 당겨댔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우어어!”
몸부림치던 레서데몬은 보통방법으로는 사이토를 떼어버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온몸에서 불꽃을 일으켰다. 지옥의 염화와 같이 타오르는 불꽃... 다인슬레터가 불꽃에 저항하는 듯 요란하게 떨려온다. 그러나 사이토는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다. 불꽃으로 인해 라이프가 줄어들고 있건만, 사이토는 떨어질 줄 모른다. 지금 사이토의 뇌에서는 게임 중 느끼는 고통 따위는 쾌락으로 승화시켜 버릴 만한 아드레날린이 뛰어 놀고 있다.
“잘라져라!”
뜻대로 잘 되지 않자, 이제는 아예 등에서 발구르기를 하고 있다. 사이토가 한 번씩 발을 구를 때마다 레서데몬의 두꺼운 피부는 조금씩 잘려 나간다. 엎드린 레서데몬... 이제는 자존심 따위도 모두 버린 듯 바둥거리며 땅을 딩굴기 시작했다.
“뒈져!”
물러서는 듯 하다가 재차 달려들은 사이토는 레서데몬의 노출된 등을 디스코어로 깊게 쑤셔 놓았다. 찌른 상태에서 칼날을 비틀어 그대로 어깨 쪽으로 디스코어를 그어나갔다. 날개의 절반과 등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레서데몬... 그러나 레서데몬은 이 정도에는 쓰러지지 않겠다는 듯, 또다시 일어서고 있다.
“으아아! 그레이브 스피릿!”
있는 힘을 다하여 두 번째 그레이브 스피릿을 뽑아냈다. 이번의 목표는 레서데몬의 맨들 맨들한 뒤통수... 근 2미터에 달하는 그레이브 스피릿을 주먹까지 머리에 쑤셔 넣은 사이토는 그대로 팔을 척추를 따라 그어 내려갔다.
“크아아앙!”
“쳇! 뭐가 문제야! 도대체”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레서데몬은 또다시 회복되고 있다. 할 수 있는 짓은 거의 다 해본 듯하지만, 건재함을 나타내 듯 괴성을 질러댄다. 비록 온몸이 달아오르는 듯 한 공격본능에 풀파워 상태의 사이토이지만, 그 공격본능에 몸을 맡기기엔 그의 무술의 연륜이 허락하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레서데몬의 아메바 뺨치는 회복능력에 이제 공격의지까지 사그러드는 사이토이다. 고민하는 사이토, 그 와중에도 착실하게 공격을 피해 나갔다. 변칙공격은 써볼 건 다 써보았다. 사이토와 레서데몬의 전투를 까보면 솔직히 사이토가 정면으로 덤벼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레서데몬과 검을 마주친 것도 단 한번, 그것 또한 옆으로 흘렸을 뿐이다.
“하압!”
레서데몬의 손톱공격을 디스코어로 막아냈다. 연속되어 들어오는 주먹 세례... 피해내고는 있지만 아슬아슬하다. 전력을 다해 피해내는 사이토.. 덩치가 작은 만큼, 동작도 커질 수밖에 없다.
“더 빨리!”
처음으로 그 자신의 느림을 느꼈다. 그에 따라 더욱 빨라지고픈 열망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몇 번의 공방이 더 오갔다. 사이토는 점점 지쳐가는 것을 느꼈다. 의욕은 충만하지만, 라이프가 받쳐 주지 못한다. 체력회복포션을 마시기는 했다지만, 라이프의 회복속도만 빨라질 뿐, 중복해서 마시는 것은 아무 효과도 없다. 게다가 몸이 이상 증세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그로 인해 몇 번이나 위기의 상황을 맞았다.
“도착이다.”
“우리가 늦었군.”
마지막 광장을 나타내는 불빛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던 그레이스는 그의 NPC동료 중 하나인 아시엘의 중얼거림에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소리야! 난 필라리언의 뜻에 따라 가장 빠른 길을 택해서 왔어.”
그레이스의 말에 아시엘은 고개를 흔들었다.
“소리가 들려. 누군가... 싸우고 있다. 크고 강대한 무언가와 인간이...”
“끙...”
그레이스는 머리를 긁적이며 신음을 내뱉었다. 그녀의 NPC동료인 아시엘은 엘프였다. 그녀보다 청각이 발달 했다는 뜻, 힘들게 이곳까지 온 것이 말짱 허사로 느껴진다. 문득 출발 직전에 보았던 로브로 온몸을 둘러싼 퉁명스런 남자가 떠올랐다. 그 남자의 전투 장면을 모두 보았기에 상당히 불리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녀가 모시는 성령의 신 필라리언이 신탁을 통해 내려 준 퀘스트 아이템 ‘영혼을 이끄는 길’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별 어려움 없이 이곳까지 무사통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냥, 갈까?”
“무슨 소리야! 엘프자식아! 어떤 녀석이 우리 것을 채 갔는지 얼굴은 봐야지!”
가장 뒤에서 쫓아오던 드워프 바쿠아가 소리쳤다. 도끼를 신성시 여기는 드워프 답게 건장하지만 짤막한 팔뚝에는 거대한 워엑스가 흔들거린다.
“으응, 아시엘, 아쿠마 일단 구경이라도 하고 가자. 어쩔 수 없지 뭐...”
그레이스는 애써 웃음지으며 둘을 독려했다. 아쉽기는 하지만, 기회는 일주일 뒤에 또 올 것이다. 그녀는 발걸음을 빨리하며 아시엘을 지나쳐 눈앞에 보이는 빛 안으로 들어갔다.
“빌어먹을...”
연신 욕을 내뱉으며, 사이토는 레서데몬의 마법을 피해냈다. 몬스터이기에 어떤 면에서는 마법의 사용이 유저들보다 더욱 능숙하다. 실패는 없다. 연신 강력한 마법을 내뿜는 레서데몬... 정말 질길 정도의 생명력이라고 생각하며 사이토는 레서데몬의 뻗어오는 팔을 피해냈다.
“크어어!”
사이토...그는 모르겠지만, 사이토는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사이토의 움직임에서 조금씩 잔상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예전 리얼판타지아사로부터 터무니없을 정도의 특혜를 받고 일으키던 그 속도를 사이토는 지금 평범한 케릭터의 상태에서 만들어 내고 있다. 일순간 몸 곳곳을 압박하던 어떤 것들이 떨어져 가는 것이 느껴진다.
“하아!”
쥐새끼처럼 빠져나가는 사이토에게 약이 오른 듯, 레서데몬은 블레이드와 주먹을 마구잡이로 휘둘러댔다.
“크억...”
사이토를 향해 주먹을 뻗어가던 레서데몬은 순간적으로 사이토가 흡사 발사된 총알처럼 몸이 가속되며 무릎으로 정수리를 찍어버리자,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감쌌다.
쿠아앙...
충격이 강한 듯 뒤로 넘어져 버리는 레서데몬... 뒤로 착지한 사이토 또한 황당함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뭐지?”
달라진 것은 없었다. 특별히 어떤 아이템이라던가 스킬을 사용한 것도 아니었다. 스텟창을 확인해 보았지만, 별달리 바뀐 것이 없다.
“계급 상승인가?”
현재의 사이토는 9계급 초급의 상태, 게임시간으로 9계급 초급이 된지 근 1년이 되어간다. 카르마의 수치를 보려던 사이토는 그의 가슴으로 파고드는 검은 에너지를 간신히 피해냈다. 만약 사이토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지금의 클래스를 만들었다고 한다면, 계급과 계급사이에 초급이나 중급, 상급, 최상급으로 나뉘는 하위 체계의 계급 상승에 익숙할 것이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사이토는 계급과 계급사이의 레벨상승은 아직 겪어 보지 못했다. 물론 사이토의 계급 자체가 너무나도 높기에 그런 일이었지만... 다행히 그 일이 있은 후로 사이토는 조금 전까지 느꼈던 몸의 불편함이 사라졌음에 감사했다.
“저게 있을 수 있는 일이야?”
그레이스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엘프 또한 휘둥그레진 눈으로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대단한 걸. 보기에는 도둑처럼 보이는데, 움직임은 무투가 뺨치는군.”
“으음...”
그레이스는 눈앞에서 보이는 지금의 사태가 경이로울 뿐이었다.
출발할 때 보았던 그 남자가 레서데몬과 거의 막상막하의 대결을 벌이고 있다. 그 전투장 옆에 뒹굴고 있는 것은 그 남자의 NPC동료들... 일견 보기에는 상당히 밀리는 듯 보인다. 그러나 광장 곳곳에 나 있는 마법의 상흔들을 봤을 때, 전투를 시작한지 꽤 되었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대단해. 대단해. 흔히 볼 수 없는 장면이야. 앗참! 그게 있었지!”
그레이스는 허리춤의 작은 가방에서 크리스털아이를 꺼내들었다. 리얼판타지아 내에서 유일하게 동영상을 촬영할 수 있는 아이템이다. 비록 500골드 정도의 고가 이기는 했지만, 평소 그녀가 촬영에 취미가 있었기에 항상 가지고 다닌다. 이미 그녀의 머릿속에서 퀘스트 해결은 사라져 있었다. 마름모꼴의 수정처럼 생긴 크리스털 아이즈...
“녹화 시작!”
수정이 공중으로 떠오르며 녹화를 시작했다. 360도 전방향을 모두 촬영하기에 나중에 현실에서 재생 시, 모든 각도에서 동영상을 관람할 수 있다. 한참을 사이토를 허락없이 동영상을 촬영하던 그레이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시엘에게 물었다.
“저 남자... 레서데몬 잡을 줄 모르나봐?”
“아마, 그런 것 같군. 결정적 순간에 자꾸만 비켜 가는 것을 보면...”
그녀의 계급은 8계급의 제사장이었다. 계급이 계급인 만큼, 그녀의 친인들과 레서데몬을 몇 번 사냥해 봤다. 잠시 후 고개를 끄덕인 그레이스는 사이토를 향해 숨을 크게 들이킨 후 쩌렁 쩌렁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레서데몬의 약점은 가슴에 있는 두 개의 심장이에요! 반드시 두 개의 심장을 한 번에 공격해야 한다구요!”
깜짝 놀란 아시엘이 그녀에게 황급히 주의를 주었지만, 그녀의 말은 이미 사이토의 귀에 들어간 후였다.
“으응?”
그레이스의 고함소리에 사이토는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쳐다보았다. 퀘스트에서 경쟁이 붙었었던 여성유저였다.
“아하! 그런 거였군.”
어떤 뜻에서 그에게 레서데몬의 사냥방법을 가르쳐 줬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이토는 그녀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손을 흔들어 보였다. 레서데몬은 여성유저를 인식하지 못한 듯, 계속해서 그를 세차게 몰아붙여 왔다. 아니 어쩌면 AI로써의 이성을 잃었을 수도...
“고맙습니다!”
“별말씀을!”
눈을 돌려 레서데몬을 노려보는 사이토, 방법을 알고 나니, 맥이 풀려왔다. 그런식으로 따지면 지금까지 소멸시킬 찬스는 대략 세 네 번은 왔던 것이다. 물론 레서데몬의 가슴근육과 그 육중함이 워낙 압박으로 다가오기에 일반적인 단검으로는 힘들 듯 싶지만, 방법을 알았다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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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_-; 힘들어요. 힘들어... 내공이 부족해..-ㅂ-...
여왕마마..저에게 연참의 힘을...(물론 당신은 이미 연중이지만..)
^-^~ ! 쪼~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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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지겨워
“3차전인가...”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사이토와 레서데몬이 겹쳐졌다가 떨어졌다. 불꽃에 직격당한 듯, 온 몸에 연기를 내며 땅에 뒹구르는 사이토... 라이프가 20선에서 간당거린다. 흡사 땅이 발을 잡아당기는 듯한 기분이다. 방어구와 무기들의 내구는 거의 다 떨어져 두 세 번 더 쓸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크어어엉..”
비틀거리던 레서데몬이 땅으로 천천히 쓰러져 갔다.
쿠우우웅...
사이토는 배낭에서 체력회복물약을 하나 꺼내 마신 뒤, 땅에 그대로 누워버렸다.
“와하하하! 아하하하!”
손끝까지 저려오는 성취감... 드러누운 사이토는 한동안 원 없이 웃어 제쳤다. 정말 몇 년 만에 느껴보는 성취감이었다. 과거 무술을 하면서도 몇 번 느끼지 못했던 그런 희열이 온몸을 휘돌아 뇌를 자극해 온다. 웃음을 그치려 했지만, 자제하지 못한다.
“아하..하하..하하하하!”
웃음을 그치지 못하고 사이토는 몸을 일으켰다. 레서데몬이 죽은 장소로 비척비척 걸어간다.
“세인트 요나르...챙기고...”
힐끔, 레미와 에린을 쳐다봤지만, 아직까지 둘은 사이좋게 널부러져 있다. 악마의 문장이라는 이름 모를 종이쪼가리와 레서데몬이 조금 전까지 들고 있던 블레이드, 그리고 세인트 요나르가 떨어져 있다. 세인트요나르와 악마의 문장을 잠시 훑어본 사이토는 블레이드를 두 손으로 들어올렸다.
“다행히 작아졌군.”
만약 레서데몬이 사용하던 크기 그대로 땅에 떨어져 있다면, 들어 올리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바스타드소드의 크기마냥 작아진 블레이드... 그렇지만, 작아진 블레이드라도 사이토에게는 벅찰 정도로 큰 것이 사실이었다. 다행히 배낭의 적재량이 아직 많이 남았기에 사이토는 블레이드를 배낭에 넣을 수 있었다.
“정말 대단한 한 판이었어요.”
조금 전 사이토에게 레서데몬의 약점을 가르쳐둔 여성 유저가 박수를 치며 다가왔다. 뒤로 따르는 그녀의 NPC동료들... 사이토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세인트요나르까지 사이토의 손에 들어왔으니, 일단 안심해도 될 듯싶다. 물론 그레이스가 사이토를 공격할 수도 있겠지만, 사이토가 보기에 그녀는 퀘스트를 완전히 포기한 것 같았다.
“가지시겠습니까?”
사이토는 배낭에서 블레이드를 약간 꺼내어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아직 확인을 해 보지 않았기에 옵션을 알 수는 없었지만, 레서데몬이 쓰던 것이니 만큼 흔하지는 않은 검일 것이다.
“아뇨. 말씀을 감사하지만 괜찮습니다. 어차피 제가 쓸 수도 없는 건데요 뭐.”
정중히 거절하는 그녀, 사이토는 고개를 끄덕이며 블레이드를 다시 배낭에 넣었다.
“그 쪽 NPC들을 회복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레이스가 레미와 에린을 가리키며 물었지만, 사이토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아뇨. 조금 더 두십시오. 지금 일어나면 아무래도 저한테 화풀이 좀 할 듯싶으니...”
“호호. NPC들과 관계가 그리 좋지 않으신가 봐요. 잘못하면 퀘스트 수행 하시는데 지장이 많으
실 텐데...”
그레이스는 사이토에게 회복주문을 걸어주었다. 몸이 가뿐해짐을 느끼는 사이토, 한결 나아진 기분으로 레미와 에린의 회복까지 부탁했다. 에루나, 아니 레서데몬에게 배가 뚫렸던 레미는 에린의 응급처치가 있었는지 죽지 않고 살아났다. 물론 그레이스가 리커버리라는 고위급 사제마법을 알고 있었기에, 그런 것이지만 지금까지 버틴 것만도 용했다. 빈사에서 깨어난 둘은 잠시 어리둥절하여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 사이토씨. 으음... 어떻게 된 거지요? 에린, 넌 또 왜 그래?”
“으응, 모르겠어. 에루나가 레서데몬으로 변하고 레서데몬에게 네가 다쳐서 내가 너를 돌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뒤통수를 뭔가가 치고서 그 다음부터 기억이 없어.”
에린의 말에 사이토는 코웃음을 치며 둘을 쳐다보았다. 어찌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에린은 기억이 없는 듯하다. 자리에서 일어난 레미는 사이토가 혼자서 레서데몬을 처치했다는 말에 눈이 휘둥그레해 졌다.
“마... 말도 안돼.”
“말이 돼 이 사람아.”
귀를 한 번 휘적인 사이토는 배낭에서 세인트요나르를 꺼내어 레미에게 건네주었다.
“자! 여기 있다.”
“아, 이게 바로 세인트 요나르...”
레미의 머리 위로 퀘스트를 완료했다는 글이 떠올랐다. 순간 사이토의 몸에서도 빛이 뿜어져 나온다. 스텟창을 열어본 사이토는 실소를 터트리며 함박 웃음을 지었다. 9계급 초급이었던 그가 이번 퀘스트 수행으로 9계급 중급으로 올라섰다. 물론 지금까지 잡아먹은 다수의 고레벨 인간들의 영향이 컸기도 하지만 사이토의 계급상승은 상당히 이례적이라고 할 정도로 빠른 편이었다. 보너스로 받은 스텟을 사이토는 즉석해서 힘에 중점을 두어 투자했다.
"흐음..."
레서데몬과의 전투에서 있었던 그 이상속도가 마음에 걸려왔다.
"뭘까?"
그것은 분명 그의 스텟과 어긋나는 속도였다. 그 순간을 회상해 보면서 궁금증이 확연해졌다. 그 찰나의 순간, 레서데몬의 모든 행동이 확연히 느려졌다. 비유하자면 한쪽에서는 느리게 돌아가는 화면 속에 본래의 속도로 돌아가는 그가 들어간 느낌이다. 또한 이번에 그렇게 힘에 투자한 이유는 조금 전 레서데몬과의 전투에서 힘이 부족함을 많이 느낀 것도 있었다. 셀레네와 헬리오스가 +2의 무기였음에도 레서데몬의 피부를 그리 효과적으로 찢어내지 못했다. 만약 그에게 디스코어가 없었다면 지금 누워 있는 것은 그였을 것이다. 그에 대해 좀 더 다른 이들에게 자문을 구할 것을 생각하며 사이토는 그레이스에게 말했다.
“함께 나가시죠.”
“그래요.”
피식 웃으며 그레이스가 대답했다. 그녀가 보기에 이 남자는 모든 것에서 단순히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좋게 말하면 문제를 볼 때, 가장 빠른 해결점을 잘 찾아내는 것이었고, 나쁘게 말한다면 문제의 해결점만을 볼 뿐, 큰 틀을 보지 못하는 성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이토일행과 그레이스의 일행이 떠나간 후, 한 참의 시간이 흘러 그레이스가 서 있던 자리에서 뿌연 먼지들이 하나로 뭉치기 시작했다. 주변의 빛들을 끌어 모으는 양, 입자들은 하나하나 결속하여 물체가 되어간다.
“으음.”
그레이스의 모습이었다. 잠시 자신의 몸을 관찰하듯이 둘러보던 그녀는 눈가에 짙은 미소를 지으며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관찰하면 관찰할수록 재미있는 남자에요.”
머리색이 검게 변하며 거센 바람을 머금은 듯, 풍성하게 떠오른다. 키가 작아지고, 이목구비가 변해간다. 성직자의 복장이었던 그녀의 가슴에서부터 하얀색의 비단 같은 물결이 일어났다. 허리에는 허벅지까지 늘어지는 작은 끈이 그리고 그 끈에는 악세사리와 같은 손바닥만한 단검이 끼워져 있었다.
이제는 모두가 떠나간 광장이었건만, 그녀는 천천히 걸어 피라미드의 꼭대기로 올라갔다. 그녀가 손을 뻗자 피라미드의 중앙에는 다시금 세인트요나르가 생겨났다. 사이토와 레서데몬과의 전투로 인해 이곳저곳 금이 갔던 광장... 그것 또한 그녀의 눈길만으로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갔다. 오카리나는 몇 가지 일을 마친 뒤, 방금 전의 사이토를 떠올렸다. 그녀가 잠시나마 묻어있던 그레이스라는 여성은 사이토에게 호감의 감정을 지녔었다. 그러나 사이토는 그에 대해 무관심하다. 다른 이에게 잘 정을 주지 않는 성격이다. 오카리나는 조금 안심이 된다고 무심코 생각했다. 비록 지금은 적과 같은 형태가 되어 버렸지만, 그녀에게 있어서 가이아는 동생과도 같은 존재였다. 비록 사이토가 밀레나라는 여성을 현실에서 사랑한다지만 그것은 현실의 이야기일 뿐이다. 사이토가 가이아를 사랑한다는 것을 그녀는 안다. 그리고 사이토는 아무에게나 특히 NPC에게는 정을 주지 않는 이였다. 한 때는 가이아와 사이토가 잘되기를 바랬던 오카리나였다. 그래서 그 날 밤 가이아에게 자극을 주어 사이토를 충동질시킨 것이었다.
“단순한 대리만족일까.”
머리를 긁적이던 오카리나는 순간 인상이 차갑게 굳어갔다.
“드디어 납시었군.”
오카리나는 눈을 감고, 그녀가 가야 할 곳을 떠올렸다. 설정된 공간은 너무나 멀었지만, 그녀에게는 단순히 한 발자국 움직이는 것마냥 쉬운 것이다. 잠시 후 그녀가 들어선 곳은 거대한 왕좌의 옆이었다. 주변으로 넓디 넓은 대전이 펼쳐져 있다. 하늘로 치솟은 기둥들이 보인다. 그 밑으로 보이는 것은 핏빛의 융단과 벽면에 붙은 거대한 창문, 그리고 그 창문 밖으로 보이는 을씨년스러운 풍경이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하늘의 검은 구름은 괴기스러울 정도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까마귀의 괴악스러운 울음소리는 듣는 이에게 소름을 끼치게 한다. 대전의 맞은 편 멀리 보이는 거대한 문이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활짝 열렸다. 두 명의 남녀가 걸어 들어온다. 평범한 복장, 일반적인 유저의 모습이었지만, 그녀가 알기에 이들은 평범한 이들은 아니었다. 이 곳이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님으로... 걸어 들어온 두 남녀는 주변을 둘러보며 오카리나를 향해 걸어오다가 왕좌 앞으로 펼쳐진 계단의 바로 밑에서 멈춰 섰다.
“오랜 만이군요. 근데, 웬일이시죠? 그쪽에서는 완전히 손을 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오카리나는 왕좌에 묘한 자세로 몸을 꼬아서 앉고는 날카로운 눈빛을 왕좌에서 그 두 남녀에게 보냈다.
“물론 우리 NOSS에서는 이 일에 대해 공식적으로 포기를 선언했다. 그러나, 그것이 아직 이 게임 안에 있는 이상, 우리는 손을 뗄 수 없다.”
“반말은 별로 기분 좋지 안답니다.”
오카리나가 나른한 음성으로 대답했지만, 그녀의 말은 남자의 옆에 서 있는 여성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막혔다.
“어디서 감히 AI 따위가! 우리가 너에 대한 비상코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텐데. 인간에게 만들어진 주제에 너무 우쭐대는 것이 아닌가?!”
“아..그만. 제이미양.”
여자를 제지시킨 남자는 오카리나를 향해 말을 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다. 너는 그것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 알겠지? 리얼판타지아사에 숨겨둔 끄나풀에 의하면 저번의 습격 때 그것이 발견되었다는 말은 없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이 프로토 타입으로나마 완성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찾아서 넘겨라.”
명백한 명령조, 오카리나의 입가가 삐죽 올라갔다. 왕좌에서 일어난 오카리나는 계단을 걸어 그들의 앞으로 걸어갔다. 그녀가 한걸음 한걸음 걸어나갈 때마다 주변의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는다. 그녀의 기분이 현재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의 증거... 둘은 마음속으로 긴장했다. 아무리 그들이 오카리나의 비상코드를 알고 있다고 해도 이곳은 그녀의 메인그라운드였다.
“어쩌죠. 저도 그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데.”
애교를 떨듯이 손가락으로 남자의 어깨를 간드러지듯 매만진다. 흠칫 떨고 있는 남자... 확실히 눈앞의 이 AI는 너무나 고혹적으로 생겼다. 만약 현실이었다면 무조건 데이트 신청으로 이어지겠지만, 그녀는 AI였다. 그리고 그가 알기에는 이 AI에게는 거의 불가능이라는 것은 없었다. 그의 정신에 침투하여 감정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 따위는 쉬운 일이다.
“명령한다. 찾아서 가져와라. 그렇다면 비상코드를 사용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모른다니까!”
주변의 공기가 흉악스럽게 변한다.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남자의 옆에 서 있는 여성...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하며 바닥에 주저 앉았다. 현실이었다면 지금 당장 오줌이라도 지릴 것이다. 그녀는 그녀 주변 모든 것에 대해 미움을 받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실감하고 있었다. 그녀가 밟고 서 있는 카펫마저 그녀에게 살의를 보이고 있다.
“머... 멈춰!”
그녀는 그동안 훈련을 통해 쌓였던 그 모든 자부심이 산산히 부서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자신의 정신력과 담력이 강인하다고 생각했다. 미국 최정예 seal에서 훈련을 받은 몸이었다. 특수요원 육성과정에서도 수석 혹은 차석을 놓친 적이 없는 그녀이다. 그러나 오카리나의 힘 앞에서는 무력하기만 하다. 본디 가상현실이건만 효과는 현실과 똑같다. 손발을 움직일 수조차 없는 상황이다. 남자도 부들부들 떨고 있기는 하지만, 여자처럼 쓰러지지는 않았다.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다시 한 번 말한다. 바이러스를 찾아와라.”
“날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그 딴 식으로는 말 할 수는 없을 껄.”
오카리나는 송곳니를 드러내며 작게 읊조렸다. 위험을 직감한 남자는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이 오카리나의 비상코드를 외쳤다. 그의 직감이 위험을 소리치고 있다.
“G443N26365GQ948IP6531TMAZ461 정지!”
“으흥. 그게 뭔데?”
길기도 긴 그 코드를 모조리 말했건만, 오카리나는 여전히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를 쳐다보고 있다. 서서히 공포에 질려가는 남자...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한번 코드를 외웠다.
“G443N26365GQ948I... 컥!”
일 순간 남자와 여자는 공중으로 들어 올려졌다. 흡사 무언가에 목을 붙잡힌 듯 버둥거린다. 오카리나는 공중에 떠오른 둘의 발을 손으로 붙잡고는 속삭였다.
“내 마스터인 현문씨가 그렇게 허술해 보였어? 그 따위 코드, 예전에 갈아 쳤지. 너희, 불리할 듯 싶으니 그대로 발을 빼버렸지? 내 마스터를 그리고 다른 한국내의 모든 요원들을 버려가면서...”
오카리나의 나른한 미소, 그러나 그것은 두 남녀에게 피를 마시기 직전의 흡혈귀를 연상시켰다.
“으아아아악!”
찰나의 순간, 남자는 그의 뇌가 타들어가는 듯 한 착각 속에 빠질 정도의 고통을 느껴야 했다. 상황은 그 옆의 여자도 마찬가지...
“아아악! 그만! 제발! 살려! 살려줘!”
남자가 애걸했다.
“흐흥, 내가 아는 어떤 이는 이걸 삼 십분 이상 버텼다고. 그 잘나빠진 기관의 정예 분들이라면 한 시간 정도는 버텨야 정상 아닌가?”
“제발! 제발!”
남자와 여자는 공중에 묶여 처절하게 요동쳤다. 그들은 고문에 대한 그리고 세뇌에 대한 모든 훈련을 통과한 미정예중 정예였다. 그러나 이런 식의 고통은 정말이지 생소할 정도로 참혹했다. 온 몸의 뼈에서 살들이 분리되어 버리는 기분. 신경들이 하나 하나 손으로 잡아 뜯기는 기분이다.
“흐흥, 강제로 접속해제 시키려는 모양이지?”
오카리나는 둘의 몸이 흐릿해 지는 것을 보며 허리춤의 작은 단검을 뽑아들었다. 단검의 날은 손바닥 하나도 되지 않을 정도로 외소한 평범한 날이었다.
“가기 전에 선물하나 주지. 그 바이러스 말이지? 그게 바로 이거야. 너무 멋지지 않아? 어떻게 쓰냐구? 으응. 가르쳐 줘야지.”
남자가 대답도 하지 않았건만 오카리나는 혼자 중얼 거리며 그 작은 단검으로 남자와 여자의 발을 사정없이 찔렀다. 공포에 질린 눈으로 그녀의 단검을 쳐다보는 두 남녀...
“이렇게 쓰는 거야. 어때? 멋지지? 효과? 아주 좋아. 기대해도 될거야. 정말이야. 곧 온몸의 신경들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가는 것을 알게 될껄.”
오카리나가 손을 놓자 두 남녀는 투명해지다가 이내 사라졌다. 한숨을 내쉬며 단검을 다시 검집에 꽂아 넣은 오카리나... 피곤한 듯 왕좌로 걸어가 주저 앉았다.
“자! 사이토씨. 얼른 오세요. 그리고 당신의 존재를 어서 빨리 증명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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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한 가지~ -ㅂ- 빼빼로 데이군요.
므하하하하..-ㅂ-.. 이거 이래뵈도 꽤 많은 양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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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여드는 인연의 끈들...
“헉헉!”
로브로 온몸을 감싼 인영이 어둠에 찬 숲속을 빠르게 가른다. 금새 몇 그루의 나무를 뛰어 넘고, 다시금 손살 같은 속도로 숲을 달리는 의문의 남성, 몬스터들은 나무 위를 흡사 날듯이 뛰어다니는 남자를 노려보며 침을 흘려대고 있다. 그렇게 한참을 나르던 남자는 몇 천 년의 수령을 지녔을 만한 고목나무의 거대한 나뭇가지에 앉아 숨을 골랐다.
“끈질기게 달라붙는 녀석들...”
남자는 로브를 펼쳐 허리춤에 끼워진 스테미너 포션을 꺼냈다. 근 4 시간 동안, 줄기차게 쫓겼기에 스테미너가 바닥을 달리고 있다. 펼쳐진 로브 안쪽이 언 듯, 비친다. 묵색의 단단하게 각이 진 금속성의 갑옷, 가슴 옆으로는 각각 두 개 씩의 고리가 달려있다. 그러고 보면 그의 복장은 매우 특이하다. 숲에서의 몸놀림은 거의 레인저와 맞먹으면서 금속의 갑옷을 입고 있는 것이다. 검은 색의 후드로 머리를 가렸던 남자는 잠시 쉴 겸 후드를 젖혔다. 낮은 한숨을 내쉬는 남자는 가슴을 천천히 쓸어내린다.
“이 다인슬레터가 없었다면 큰일날 뻔 했어.”
처음 그들과 조우했을 때의 일이었다. 그들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그를 습격했다. 다짜고짜 공격부터 하는 그들... 그 와중에 그의 두 퀘스트 NPC는 게임오버를 당했다. 물론 지금 그를 쫓고 있는 이들과 그는 분명 적관계였다. 하지만 그것은 둘째 치고 이들의 끈질김이라던가, 자신의 기다렸다는 듯이 습격한 것은 정말 의외였다. 게이트 스톤을 이용해 몇 번을 도망쳤건만, 그들은 금새 자신을 찾아냈다. 이제 게이트스톤도 바닥이 났다. 한참을 생각하던 그는 나침반으로 적들이 가까이 왔음을 알았다.
“츳...”
가슴의 와이어를 뽑아 더 높은 곳에 있는 나뭇가지에 걸었다. 지금 그를 쫓고 있는 이들에게 대적하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았다.
“아직도 못 잡은 거냐!”
화려한 갑주를 둘러입은 금발의 여자가 그녀의 앞에 부복해 있는 남자에게 소리쳤다.
“이곳이 워낙 넓기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전 길드원들이 이 숲을 에워싸고 있습니다. 놈은 독안의 든 쥐입니다.”
부하의 확언에 여자는 코웃음을 친 뒤, 그녀의 뒤에 부복하고 있는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간신히 잡은 기회다. 미스티핸즈는 아직 이 숲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번에야 말로 총대장의 원수를 그리고 우리 카마프라하 점령군의 자존심을 다시 세울 때다.”
“옙”
일장 연설을 끝마친 여자는 그녀의 앞에 펼쳐진 너른 숲을 노려보았다. 처음 미스틱핸즈의 행적을 잡은 것은 바로 자신이었다. 일약 스타가 될 수도 있는 기회였건만, 미스틱핸즈가 게이트스톤을 쓰는 바람에 놓쳐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다른 길드마스터들은 이 때가 기회라는 양 미스틱핸즈를 쫓기 시작했고, 그녀는 닭 쫓던 개 꼴이 되었다. 그렇지만, 그녀에게 다시한번 기회가 왔다. 미스틱 핸즈가 바로 그녀의 손아귀에 예쁘게도 착착 걸어들어온 것이다.
[계십니까?]
[네... 아! 있습니다.]
여자는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미스틱핸즈의 행적을 그녀에게 가르쳐 주었던 이였다. 게다가 현재까지도 미스틱 핸즈의 행방을 소상히 그녀에게 가르쳐 주는 고마운 이. 물론 제보에 대한 댓가로 30만 골드를 지불하기는 했지만, 완벽한 AS를 해 주겠다는 듯, 지금까지도 그녀에게 미스틱 핸즈의 행방을 소상히 가르쳐 주고 있다.
[놈은 잡으셨습니까?]
[아아, 제가 능력이 부족해 아직 잡지 못했습니다.]
[이런, 쯧쯔... 고생하시겠군요. 힘내십시오]
메시지 너머로 들리는 남자의 응원의 말. 여자는 작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국적이 다른 이건만, 그의 목소리는 차분하며 간결하고 유려했다. 흡사 잘 절재된 그런 이의 목소리. 게다가 약간 늙스구레한 목소리는 그녀에게 안정감마저 준다.
[감사합니다. 저의 본국에 돌아가서도 멀린씨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하하,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저희 길드 또한 미스틱핸즈를 잡고 싶은 이들 중 하나입니다. 부디 성공하기를 빕니다. 그리고 혹시 그를 잡은 뒤 짬이 되시면 이 말도 그에게 전해 주십시오. 이렇게 된 것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예. 알겠습니다. 그럼..]
메시지를 끊은 그녀는 낮게 한숨을 내쉰 뒤 계속해서 부하들을 독려했다. 멀린이라는 이는 미스틱핸즈라는 이와 어떤 인연이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가 상관할 인연이 아니다. 멀린의 말을 전해 줄 수 있을 지는 미지수지만 지금은 그를 잡아 죽이는 것이 더욱 중요했다. 미스틱 핸즈를 쫓은 지도 어언 사흘... 이제 결판의 시간이 다가오는 듯 했다.
“저기 있다! 잡아라!”
“윽!”
남자는 자신이 있는 나뭇가지에서 10미터정도 떨어진 곳에서 둥둥 떠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비홀더를 발견하고는 낭패의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나침판에 잘 걸리지 않는 음차원 몬스터에 본디 그 쓰임새가 탐색에 있었기에 비홀더의 탐색능력은 왠만한 도둑 클래스를 뺨쳤다. 거대한 눈으로 그를 빤히 쳐다보던 비홀더는 슬금 슬금 촉수를 그에게 뻗어왔다.
“제길!”
품안의 무기로 촉수들을 잘라버린 남자는 빠르게 그 나뭇가지를 벗어났다. 수 십 대의 화살이 그가 앉아있던 곳과 그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날아왔다. 몸을 비틀어 간신히 그 화살들을 피해낸 사내이다. 그러나 다음 나뭇가지에 사뿐히 내려앉던 그는 나뭇가지의 줄기가 폭발하듯 끊어짐과 동시에 바닥으로 한없이 추락했다.
“으아악!”
한 대의 화살의 그의 등에 작렬하고, 그 위로 몇 번의 충격이 더 느껴졌다. 궁사의 스킬 가이디드 에로우에 얻어맞은 남자... 라이프가 급격히 떨어짐이 느껴진다.
“크윽!”
땅에 내동댕이쳐진 남자는 한 동안 일어서지 못했다. 워낙 높은 나뭇가지에서 떨어진 것도 문제려니와 떨어지면서 맞은 화살의 영향도 적지 않다.
꽈릉!
엎드려 있던 그의 바로 앞에서 강렬한 화염폭발이 생겨났다. 튕겨나갔다가 다시금 땅에 구르는 남자... 그 위로 하얀 거미줄이 몇 겹씩 내려앉아 그를 옭매였다.
“미스틱핸즈를 잡았다!”
수 십 명의 유저들이 그를 포위하고 달려들었다.
“뭐... 뭔가 오해한 거야! 난 미스틱핸즈가 아니야!”
남자의 말에 잠시 움찔하던 유저들... 그러나 한 유저의 외침과 동시에 유저들의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
“웃기지 마라! 미스틱핸즈! 그 온몸을 칭칭 가린 로브하며 네놈의 그 특이한 갑옷! 그리고 그 머리를 푹 눌러쓴 후드! 검은 머리카락! 내가 네놈이 우리 총대장을 죽일 때 똑똑히 봤다!”
“무...무슨 소리야!”
“말이 필요 없다! 죽여!”
곧 이어 수 십 개의 살벌한 무기들이 남자의 몸에 박혀갔다. 그를 둘러싼 사람들은 마치 한 번이
라도 더 칼질을 하겠다는 양, 살벌한 기세로 무기들을 놀렸다. 곧 이어 남자가 죽어 로그아웃되어 버리고 그가 사라진 자리에는 몇 개의 아이템이 남아 있다.
“미스틱 핸즈의 아이템들이다!”
탐욕에 절은 손들이 앞 다투어 그것들을 잡아채 갔다. 그것은 어느 조용한 숲속에서 일어났던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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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판타지아 The End~ 우훗.. 리얼 판타지아 드디어 끝났군요. 와하하.. 좀 허망하게 죽었습니
다. 쯧쯔... 돈에 눈이 먼 멀린에게 배반당하고 카모프왕국의 유저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사이토..
쯧즈 (불쌍하기도 하지.) 아아.. 너무 허무하게 끝나버렸군요. 으음..-ㅂ-.. 오홋 오홋.. 그동안
성원해 주신 여러분. 감사 드립니다. _(__)_
ps. 설마 이런 식의 결말을 믿는 것은 아니겠죠?
잠시나마 믿으셨다면 당신은 바보~ 웃흥 에 낙점
ps.를 보고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면 그분도 바보~ 웃흥
안 믿었다면 당신은 멋져~ 우흥
장난기 쏟아지는 데자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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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여드는 인연의 끈들...
그 사건은 카마프라하 왕국 유저들에게 큰 파장으로 다가왔다. 나타날 때부터 범상치 않은 짓을 해대며 굵직굵직한 길드들을 차례대로 엿 먹이던 미스틱핸즈, 그의 대한 추살대를 거의 전멸하다시피 하며 일 인 신화를 만들어 내던 미스틱 핸즈...천 여명에 달하는 적군들의 틈에서 단신으로 적의 총대장을 암살하고 유유히 빠져나가는 모든이가 경악할 업적을 만들어낸 미스틱 핸즈... 그가 죽었다는 소식은 카마프라하 유저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게다가 그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죽은 것이 아니었다. 왕국 내부의 어떤 몹쓸 놈이 그의 행선지를 적에게 알렸고 수 십명의 적군에게 거의 도륙되다 시피 맞아 죽었다고 한다. 비록 게임내에서의 죽음이었지만, 그것은 큰 파장이었다. 당장 카마프라하 왕국을 배신한 그 밀고자를 잡아 죽이자는 격렬한 말이 튀어나왔지만, 그것은 게임사의 개인 정보 관리법에 막혀 이를 수가 없었다. 밀고자를 알 수 없게 된 수많은 이들이 이번에는 카모프왕국에 분노했다. 그의 행적은 거의 신화였다. 그런 신화를 더럽힌 것이다. 그리고 격렬하게 행동했다. 미스틱핸즈의 죽음이라는 소식이 나간 후... 카마프라하 측 서버는 그 어느때보다도 많은 동시 접속자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아주 일부는 그의 죽음을 기뻐했지만, 그들 또한 여론에 휘말려 더욱 힘을 낼 수 밖에 없었다. 카마프라하는 그렇게 바뀌고 있었다. 그리고 사이토의 죽음에 분노하는 다른 이들이 있었다.
“사이토 늙은이, 손자가 카모프 애새끼들한테 죽었대.”
“으음, 수 십 명의 양키새끼들한테 몰매 맞아 죽었다는군.”
두 늙은이가 높다란 단 위에 앉아 사이좋게 곰방대를 빨고 있다. 한 늙은이가 둥근 고리를 만들어내는 묘기를 부리면 반대쪽에 앉은 늙은이는 연기의 화살을 만들어 연신 그 고리를 꿰뚫는다.
“어차피 전쟁 끝나면 다시 살아날 테지만, 이렇게 끝내기에는 꽤 찜찜하지?”
“으음, 그렇지. 조금.... 아니... 조금 많이....아니... 상당히...기분 나빠지지.”
말이 길어질수록 곰방대를 터는 노인의 손에 힘줄이 잡혀간다. 사이토 늙은이의 손자, 아무리 사이토가 건장한 성인이라고 해도 이 노인들에게는 철없는 재롱둥이로 보일 뿐이다. 처음 이 곳에서 잠시 머무를 때 그의 이야기들을 재미나게 웃으며 흡사 자신의 손자가 나타난 양 노인들은 철없이 좋아했다. 어찌 보면 사이토는 그 곳에 있는 모든 노인들의 손자와 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먼저 간 사이토 늙은이와의 관계를 이어주는 하나 밖에 없는 소중한 고리이다. 그것은 아주 소중한 고리, 누군가 그 고리에 자그마한 흠집을 내려고 했다. 그들은 용서하기 싫었다. 가뜩이나 무료한 게임생활 속에 찾아든 신경 긁는 소식이다. 마치 사이토의 대한 복수가 게임생활에서 절대명제 마냥 느껴진다.
“꽤 많은 아해들한테 짓밟히고, 아이템도 꽤 떨어졌다는군. 녀석 무서웠을 꺼야. 수 십 명에게 둘러싸여 죽다니.”
“그렇지. 그렇지.”
이제 곰방대의 연기가 줄어들기 시작하자, 두 늙은이는 약속이나 한 듯이 곰방대를 집어넣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밑으로 보이는 것은 광활한 평야.... 그들이 앉아 있는 곳은 웅장한 길드타워의 꼭대기 단이었다.
“귀찮다고 엉덩이 붙이고 있던 늙은이들이 좀 격분하겠지?”
“그렇지. 말아 죽이고, 태워죽이고 얼려 죽이자고 난리 치겠지.”
순간 두 늙은이의 입가에 섬뜩한 미소가 번져간다. 그들은 사실 전쟁에 끼어들 생각이 없었다. 일단 전쟁에 끼어들면 이리 저리 군세의 상황을 봐야 하는 것도 문제려니와 수뇌부라는 꼬맹이들의 명령 받는 것도 싫었다. 그러나 이번만을 달랐다. 동기가 확실하고, 그 동기를 일으키게 만든 원인들을 제거하고자 하는 열망도 충실하다. 지금 두 늙은이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도 흉폭하게 변해 있었다. 누군가 건드리면 곧 터트려 버릴 마냥, 휘번뜩 거린다.
“그런데, 이번 건은 우리 개인행동인가? 이번에도 총지휘하는 애새끼들이 꽤 설칠 텐데...”
그들에게 있어 전쟁이라는 것은 단지 수 십 번 있었던 이벤트의 하나일 뿐이었다. 단지 그뿐이기에 움직이기 싫었다.
“그렇지. 이제부터 눈에 보이는 족족 모조리 싹스리하며 전진이지. 썩을 놈들... 감히... 으드득...”
눈에서 홍광을 내뿜던 노인은 끝내 이를 뿌드득 갈며 카모프 유저들이 들으면 등골이 오싹할 말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가세.”
“그러지.”
두 노인은 뒤돌아 걷기 시작했다. 한 노인은 제이드라는 아이디를 가진 노인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노인장 길드’의 길드 마스터라는 직함을 지닌 델린이라는 노인이었다.
“은인의 손자분이 어제부로 카모프 유저들에게 살해당하셨다. 그것도 수십명에게 둘러싸여 처참하게 돌아가셨다. 너희들 또한 우리들에게 우리 길드의 탄생 배경을 들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우리 셋은 그들을 용서할 수 없다. 그리고 떠날 것이다. 너희들에게 강요하지는 않겠다. 어차피 그분에 대한 은혜는 우리 셋뿐이다.”
일장 연설을 마친 아누비스는 예의 그 음울하고 초점 없는 눈으로 전면에 도열해 있는 길드원들을 둘러보았다. 원래 그들도 노인장 길드와 같이 이번 전쟁에 참여할 의사가 없었다. 어차피 정해진 구역도 없을뿐더러 그들의 길드위치 특성상 방어해야할 이유도 없었다. 아무리 살인자들도 전쟁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일반 유저들이 살인자들을 보는 눈이 고울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조용히 전쟁이 끝나기만을 바라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어제 저녁 그들에게 충격적인 소식이 날아들었다. 모든 언어가 욕으로 점철된 저스틴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다채로운 욕을 내뱉으며 분노했다. 신중하기로 소문한 발데아라도 기분이 언짢은 듯,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 있다. 그리고 아누비스... 근 장장 4시간이라는 가장 긴 발작을 보여주며 그 자신의 충격과 분노를 표현했다.
“너희들이 보기에 우리들의 분노가 우스워 보일지도 모른다. 단지 게임에서 한 사람이 죽는 것 따위, 어차피 되살릴 수도 있는 그런 것이다. 그러나 나 배회하는 자들에게는 이곳이 곧 현실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굳이 복수라는 이름의 행위를 하고 싶다. 우리가 다녀올 때까지 문 잘 걸어 잠그고 있어라.”
말을 마친 아누비스는 미련 없이 단에서 내려왔다. 굳이 그들의 길드원들을 개인적인 복수극에 끼워 넣고 싶지는 않았다. 셋은 고개를 끄덕이며, 길드의 입구로 향했다. 그들을 따라 움직이는 거대한 유저들의 물결. 거의 천여 명에 육박하는 유저들이다. 그런데 그 유저들의 물결은 단순한 배웅의 물결이 아니었다. 각자 살벌한 무기를 하나씩 꼬나 쥐고 등에는 장거리 여행을 하려는 듯 배낭을 하나씩 매고 있다. 흐뭇한 얼굴로 그들을 둘러보는 저스틴과 발데아라.... 아누비스는 단지 입구를 향해 걷고 있을 뿐이다.
“이번 카모프 새끼들은 좀 쌩쌩하려나?”
저번 전쟁이벤트에 참여해 봤던 저스틴의 푸념... 발데아라는 살기어린 미소를 지으며 그 말을 받았다.
“후후, 그래야지. 그래야만이 우리 데스스타길드가 출도한 보람이 있을 테니까.”
“가...자.”
아누비스의 조용한 목소리... 터덜터덜 입구를 향해 걸어가는 아누비스의 허리에 걸린 두 개의 숏소드가 덜그럭 거린다. 거의 수 천 명의 피를 빨아 먹은 아누비스만의 검. 피의 십자가...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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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에..데자부는 리플 보는 맛에 산답니다. 추천도 좋지만, 리플이 더 재미있어요.-ㅂ-
리플 줘~ 리플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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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 분량 삭제 들어갑니다.
몇 칠 간 그 동안 썼던 것 검토하느라, 좀 늦었습니다. 일단 출판사로 곧 넘길 예정이고 삭제는 3~4일 안에 할 예정입니다. 으음, 삭제 공지가 좀 늦었죠? 못 보신 분들어 어서 어서 보시길 부탁 드리며, 이렇게 늦게나마 공지하게 된 것 죄송하게 생각드립니다. 그럼 모두 즐감하세요.
물론 4권 분량은 죄다 싸그리...삭제라는 거겠죠.-_-;; 아아..대 파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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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회하는 자 케인
루피아는 리얼판타지아에 접속한 뒤 강진을 만나기 위해 지체 없이 아리유를 향해 출발하였다. 예전 아리유에 잠시 들른차에 데이모스로 길드원들 따라 놀러갔다가 사이토에게 왕창 깨진 루피아였다. 그리고 그 이후의 루피아가 간 곳은 알프그린 가든... 쭉쭉 빵빵 엘프들을 감상하며 기분을 삭히고 싶었던 그였다. 아무튼 강진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루피아는 그로부터 몇 칠 후 아리유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이토씨에 대해 도와야 할 것이 있으니 아리유로 와라.”
사이토에 대해 어떤 것을 도울지는 모르지만, 알프그린가든의 미끈 미끈한 NPC여성 엘프들도 슬슬 눈에 식상하게 보이던 루피아였기에 흔쾌히 수락하였다.
“잘 왔다.”
“뭘, 이정도 쯤이야.”
아무래도 그 먼 길을 오라 해서 미안했는지, 강진은 입구까지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기분이 좋아진 루피아... 솔직히 강진은 평소 너무나 무뚝뚝했기에 이런 배려는 그의 기분을 한껏 들뜨게 했다.
“그래, 무슨 일이냐?”
“아아, 일단 어디 조용한 곳으로 가자. 눈이 많다.”
“그래..”
루피아는 긴 망토로 몸을 가리고 있었다. 물론 검왕을 알아보고 들러붙을 떨거지들을 경계하기 위한 것이다. 강진은 그리 튀지 않는 복장으로 루피아의 앞에 섰다. 비록 리얼판타지아사의 직원이기는 하지만 게임을 즐기는데 있어서는 평민이었다. 물론 그도 그리 호락호락한 클래스는 아니었다. 이미 네크로맨서 7계급 최상급의 다크니스네크로멘서의 강진은 허리춤에 해골 문양들이 아로새겨진 완드를 끼우고 있었다.
“공기가 별로구나.”
“그래, 이리 저리 꽤나 살벌하다.”
아리유의 대한 루피아의 짤막한 감상이었다. 이유는 미스티핸즈에 대한 것, 물론 미스티핸즈 하나 죽은 것에 대해 그렇게 열낼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조금씩 살이 붙기 시작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유저들은 각자 자신이 가지고 있던 북미 측 유저들에 대한 또는 카모프왕국에 대한 반감들을 나누며 그들에 대한 적개심을 키워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 말해 봐. 네가 가진 계획을...”
루피아의 말에 강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너 사이토씨와 붙어본 적 있냐?”
“그래, 아깝게도 내가졌지.”
진 것은 진 것 이었다. 이미 과거의 대결 따위는 루피아의 머릿속에 남아있지 않다. 사실, 사이토가 약간의 꽁수를 가미하여 그를 이겼던 것이다. 만약 루피아가 당시에 사이토를 무라마사로 깊게 베어 들어갔다면 계략이고 나발이고 사이토는 게임오버였을 것이다. 단지 거기서 사이토의 꾀에 넘어가 뒤돌아서게 된 것이고, 등에 그레이브스피릿을 꽂아보는 영광을 얻었다. 그러나 그것 뿐이다. 과거를 쉽게 잊는다는 것도 바보지만, 얽매인다는 것도 바보이다. 게다가 단순한 게임에서의 캐릭터간의 대결... 정신세계에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 그럼 네가 보기에 사이토씨의 게임실력은 어떤 것 같냐?”
“계급따위를 떠나서?”
“그래.”
“글쎄..”
루피아가 고개를 갸웃 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사이토와는 딱 한번 만났을 뿐이다. 물론 그와 대결을 해보기도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한 사람의 능력을 평가한다는 것은 무리이다. 루피아는 그 자신이 아는 대로 강진에게 설명해 주었다.
“으음, 일단 이 루피아님이 보기에 사이토는 훔... 일단 뭔가 한 가지 무술만 배운 것은 아닌 것 같더라. 뭐, 이것저것 자기가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운 것 같기도 한데, 내가 보기에는 마샬아트의 색이 가장 짙은 거 같다. 또 가라데 쪽도 좀 알고 있는 것 같고, 단검 쓰는 솜씨는 좀 그저 그랬다. 한 번 검을 섞어본 바로는 아무래도 실전 기술보다는 임기응변성이 상당히 많았어. 권이나 장을 단검술로 변화시켜서 쓰는 것 같았으니까... 뭐 좋게 말하면 임기응변과 재치, 반사신경과 노련미가 있는 거고 나쁘게 말하면 좀 어중이 떠중이랄까.”
“그래, 그렇구나.”
루피아의 말에 생각에 잠기는 강진, 루피아는 생각에 빠진 강진을 외면한 채 허리춤의 도집을 만지작거렸다. 그러기를 10여분 슬슬 루피아의 인내력이 바닥나 무라마사를 빼들고 이리저리 휘둘러 보던 그 때, 강진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무래도 사이토를 그 분에게 데려가야겠어. 지금의 오카리나에게는 아무래도 일반적인 게임캐릭터의 힘으로는 무리인 것 같다.”
“그분이라니? 누구?”
루피아가 물으며 다가오자 강진은 조용히 대답했다.
“누구긴 누구야. 케인님이지.”
“아!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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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회하는 자 케인
다가오던 루피아는 오던 발걸음을 그대로 ‘뒤로 돌아 가“를 만들며 뒤돌아섰지만, 그런 루피아의 팔을 강진은 사정없이 붙들었다.
“오우! 쉣!”
발버둥치는 루피아, 강진은 미동없이 그런 루피아를 쳐다본다. 사실 루피아가 뿌리치려 한다면 뿌리치겠지만, 차마 그 짓은 하지 못한다.
“야! 가려면 혼자 가!”
“아아, 사실 저번에 케인님이 그 분의 불효막심한 제자를 잡아오라는 엄명을 내리셨었는데, 내가 그냥 쌩 했지.”
“그럼! 이번에도 쌩 했다고 해!”
“별로, 이번에는 사이토씨를 부탁해야 하니, 네가 재물이 좀 되줘.”
“악악!”
한참을 버둥거리던 루피아는 곧 강진의 손에 이끌려 터덜터덜 끌려갔다. 몇 개의 골목을 지나 주택가를 빠져 나온 둘은 곧 아리유의 성문을 빠져나와 한참을 걸었다. 곧 이어 그들 앞에 보이는 것은 풀숲사이로 지어진 이 층으로 된 집이었다.
“집에 안계신가보다.”
낮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루피아, 주위를 기웃거리던 강진은 케인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확실히 집 문도 잠긴 상태구나. 뭐, 아리유에 볼 일이 있으셔서 나가셨나보지. 뭐, 항상 메시지는 꺼 놓고 사시니 기다리자.”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 강진, 루피아는 입을 삐죽거리며 강진의 옆에 앉기 위해 강진에게 다가왔다.
쉬익!
“루피아 단검 날아온다.”
루피아의 뒤를 바라보며 한가로운 어조로 현재의 위험성을 가르쳐 주는 강진, 눈이 둥그레진 루피아는 곧 이어 번개 같은 솜씨로 무라마사를 빼들고 뒤돌아섰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단검을 던진 포즈 자체로 굳어서 이쪽을 바라보는 케인... 그와 케인사이에 있는 것은 아주 평범한 속도로 루피아에게 날아오는 단검이다.
“하앗!”
그 짧은 순간 수많은 계산을 끝낸 루피아, 케인이 던진 단검을 무라마사로 쳐 낸다는 계획을 수정하고, 땅바닥에 납작 엎드리는 것으로 그 단검을 피해냈다.
꽈가가각
단검의 주위를 감싸고 있는 무형의 칼날이라도 달린 냥, 루피아의 옷자락이 대량으로 뜯겨 나간다. 식은땀을 흘리는 루피아, 만약 무라마사로 그 것을 막았다면, 그 후의 꼴이 대략 상상이 갔다.
“헤헤, 루피아 오랜 만이네?”
“흐응, 또 간만에 여자 하나 꼬셨소? 그 웃기지도 않는 말투와 복장은 뭐요?!”
루피아와 강진의 앞으로 다가온 인물, 초콜렛 빛 긴 머리칼에 올망 쫄망 큰 눈에 귀여운 얼굴, 간단한 평상복의 하얀 셔츠를 입었다. 단 하나 재미있는 점이라면 살인자의 문양이 얼굴에 나타나 있다는 것, 시뻘건 색의 살인자의 문양이 하얀 피부와 좋은 대조를 이룬다. 강진은 케인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얼굴이 저리 어려 보인다 해도 배회하는 자 중 하나인 케인의 나이는 정신적으로 이미 백 살이 넘었다. 게다가 케인은 거의 제 1대 배회하는 자로써 그 살아온 생은 엄청나게 길다.
“이야, 강진 정말 오랜만이지?”
베실 베실 웃으며 강진에게 걸어오는 케인, 강진은 몸을 긴장시켰다. 얼굴은 저리 어리지만, 정신적인 나이로는 이미 노친네를 넘어서서 무덤에 들어가고도 남을 나이이다. 그 심계를 알 수 없는 케인... 루피아는 이미 케인에게 뒤통수를 얻어맞고 땅바닥에 코를 쳐 박았다. 강진은 마음속으로 작게나마 한숨을 삼키며 고개를 숙였다. 그도 폭력에는 약한 존재였으므로...
“그래, 어쩐 일로 그 무거운 엉덩이들을 이리로 행차 시키셨는고? 호오, 루피아 네 녀석 아직까지 그런 노친네 얼굴로 살고 있냐?”
“중년이오! 중년!”
지금 그들의 앞에 있는 인물은 ‘삐치다’ 혹은 ‘토라지다’의 뜻을 지닌 단어의 행동을 보이며 그들에게 묻고 있었다. 물론 일반적 상황이라면 ‘너 삐쳤구나.’ 따위의 말로 응수하겠건만, 그 대상의 무력 혹은 사회적 지휘에 따라 이 말의 사용 빈도는 틀려진다. 포커 페이스를 유지한 채 그를 바라보는 강진, 그리고 다시금 뒤통수를 얻어맞는 가문의 영광을 더 이상 보기 싫어 그냥 한마디 툭 던진 후 꾹 참는 루피아...
“요 근래 케인님이 심심하실 듯싶어 재미있는 인물을 하나 소개시켜 드릴까 해서 찾아뵈었습니다.”
상당한 우회 전략을 펼치는 강진, 삐친 인물에게 무언가를 부탁한다는 것은 자칫 선택의 갈림길에서 ‘피곤한 응석 받아주기’의 무덤자리를 홀로 파 들어가 눕는 것과 같다. 잠시 턱을 문지르는 케인, 수염도 없는 주제에 마치 턱수염이 있는 양 매만진다. 눈빛이 반짝 거리는 것이 흥미가 돌기는 도는 모양이다. 강진은 그동안 회사에서 갈고 닦은 ‘상사 길들이기 스킬’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머리를 풀가동 시킨다.
“그리고 그동안 찾아뵙지 못한 것의 대한 약소한 마음의 표시입니다.”
슬그머니 망토 뒤편에서 무언가를 꺼내 케인에게 내민다. 강진이 내 놓은 것은 한권의 작은 책, 특이한 것이라면 게임 상의 존재하는 책이 거의 양장본의 형태를 띠고 있다면, 이 책은 특이하게도 얇은 표지로 되어 있다. 강진을 쏘아보며 잠시 테이블에 놓인 책의 재목을 지나가듯이 훑어보는 케인, 눈빛이 틀려진다.
“오오! 이건 그 구하기 힘들다는 유저 제작 한정판 빨간책의 백미 ‘에로 서큐버스’ 9권?! 아니 벌써 9권이 나왔나?!”
“예, 작가가 게임 상에서 손수 제작하는 것이기에 채 10권 이상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희귀본입니다.”
가슴속으로 빙고를 외치는 강진, 루피아도 한 번 보고픈 마음에 슬그머니 머리를 자라처럼 빼 보았지만, 강진이 무언의 제지를 보내자 입맛을 다시며 포기한다. 서둘러 그 책을 챙기는 케인, 강진은 흐뭇한 얼굴로 케인을 바라보았다. 케인의 유일한 취미라면 바로 희귀한 것 모으기였다. 그에 대한 대상은 무제한, 뭐든지 게임 상에 희귀한 것이라면 눈이 빨갛게 되어 얼마가 되던지 구입하는 것이다. 원채 게임을 오래하여 돈이야 썩어나는 케인... 이 집의 지하실에는 그런 물건들의 개인 컬렉션까지 만들어져 있다.
“흐음, 그런데 난 6권 까지 밖에 안가지고 있는데?”
“하하, 저한테 7권과 8권이 있습니다. 나중에 제가 드리죠.”
“응? 그래? 좋아! 좋아!”
어린 아이처럼 박수를 치며 좋아하는 케인이다.
분위기가 한결 매끄러워 진다. 루피아도 스승의 괴팍한 심기를 건드리는 짓은 하고 싶지 않기에 조용히 강진을 지켜본다. 한참을 책을 보며 좋아하던 케인은 눈가에 미소를 띠며 강진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 소개 시키고 싶다는 사람은 누구냐?”
“예, 요즘 한창 유명해지고 있는 미스티 핸즈입니다.”
“흐음, 미스티 핸즈라... 뭐 그에 대해서는 나도 약간 인연이 있지. 그런데 내가 아까 아리유에 가서 들은 바로는 그는 이미 카모프왕국 녀석들한테 죽었다고 들었는데?”
느닷없는 케인의 말, 물론 현실과 게임과의 시간의 차이와 지금은 아직 미스티핸즈의 죽음이 그리 알려진 것이 아니었기에, 강진과 루피아는 금시초문의 소문이었다.
“그럴 리가요. 제가 아는 그는 그런 짓을 할 남자가 아닙니다.”
부인하는 강진, 그가 아는 사이토라면 절대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강진은 사이토가 카모프의 총대장을 죽일 때 현실에 있었고, 또한 여러 가지 일로 바빴기에 리얼판타지아 전쟁 소식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케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미스틱 핸즈의 무용담들... 그러나 강진이 아는 바로는 사이토는 절대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다. 천명의 방어를 뚫고 카모프의 총대장을 암살하다니... 차라리 사이토가 카모프에 항복했다는 소식이 더욱 믿을 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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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회하는 자 케인
“아아, 그건 그렇고 이제 진실을 말해 봐야지?”
“무슨 소리십니까?”
케인의 말에 고개를 갸웃 하는 강진... 그러나 케인의 게임상의 살아온 삶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눈이 샐쭉하게 변하는 케인... 강진은 몸을 긴장시켰다. 케인은 한마디로 게임 상의 모든 히든피스를 알아내고 그 극의를 달려본 그런 인물이다. 게다가 배회하는 자들 중에서도 요금 패키지의 초기 가입자였기에 그 살아온 나이 또한 상상을 초월한다. 그의 제자 격이라고 할 수 있는 루피아 또한 아직까지 케인의 본 클래스를 알지 못한다. 단 하나 아는 사실이라면 마법 클래스는 아니라는 사실, 그러나 하는 짓을 보면 마법 클래스라고 믿을 만큼 꽤 다채로운 재주를 지닌 케인이다.
“...”
잠시 케인을 바라보던 강진은 낮은 한숨과 함께 오카리나와 NOSS, 바이러스, 그리고 가이아에 대한 이야기를 천천히 케인에게 풀어놓기 시작했다.
“호오, 그런 일이 있었군. 뭐, 오랜만에 초보자녀석들만 득실 득실한 세상이 되는 건가?”
케인은 별로 놀랄 일이 아니라는 듯 시큰둥한 표정으로 그 말을 경청했다. 그것도 그럴것이 배회하는 자들은 게임상에서 죽거나 캐릭터를 새로 만들 경우 일반 유저들과 별 차이가 없다. 단지 게임 상에서 그런 일이 없을 경우, 게임상에 만들어진 임시 공간에 몸을 둔다는 것, 그리고 다시 캐릭터를 만들면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미 리얼판타지아의 정수까지 탐미해본 케인으로써는 캐릭터의 레벨 정도는 어느 정도 무시해도 될 만큼 능력이 있다.
“하지만, 케인님의 컬렉션들은 모조리 날아가는 것 아닙니까?”
“으음, 하긴 그것도 그렇군.”
컬렉션이라는 말에 얼굴이 약간 심각해지는 케인...
“그리고, 게임 계정비도 게임 머니를 팔아서 충당하잖아. 그것도 싹 없어진다고...”
강진을 돕기 위해서인지, 자신도 한마디 하고 싶은지 루피아가 거들었다. 그러나 루피아의 생각과는 다르게 얼굴이 험상궂게 변하는 케인, 대뜸 주먹으로 루피아의 뒤통수를 갈겨버린 케인은 툴툴 거리며 집 밖으로 나갔다.
“생각해 보지!”
“바보 같은 녀석아!”
케인이 문 밖으로 나가 버리자 강진은 루피아를 나무라며 작게 소리쳤다.
“내가 뭘!”
“녀석아! 케인님의 가족들이 당시에 모두 사고로 죽은 것을 꼭 그렇게 꺼내야겠냐? 그것도 케인님의 과실로 일가족이 모두 죽고 집안 가산은 거의 상대측에게 넘어가서 어쩔 수 없이 게임머니로 게임비를 치러야 한다는 걸. 굳이 잊고 사시는 분에게 그 얘길 꺼낼 필요는 없잖아.”
“쳇... 그렇군.”
자신의 말실수를 깨달은 루피아는 얼굴을 굳히며 케인이 나가버린 문 쪽을 조용히 쳐다보았다.
어두운 동굴, 가끔가다 보이는 횃불만이 앞을 밝히고 있다. 뒤따라 걷던 사이토는 주변을 둘러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하아... 이런 곳에 비밀 통로가 있었다니.”
이곳은 그레이스의 안내를 통해 들어온 곳이었다. 그레이스가 안내해준 곳은 그녀가 들어왔던 이 던젼의 비밀통로... 그녀의 말에 따르면 조금 우회하는 것이기는 해도 이 비밀통로에는 트렙과 몬스터가 훨씬 적다고 한다. 사이토들 또한 1층의 바닥이 무너지는 바람에 2층까지 가는 시간을 벌었건만, 다른 유저들 또한 기연 시스템이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아이디가 어떻게 되세요?”
아직까지 통성명도 하지 못한 그레이스, 그녀의 말에 사이토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헛웃음을 흘렸다.
“레인이라고 합니다.”
아이디를 밝히기 난해한 상황이면 한 번씩 꺼내는 이름, 그녀를 통해 행여 사이토의 행적이 밝혀지는 것을 방지하고 싶은 사이토이다.
“네, 저는 그레이스라고 해요.”
자신의 아이디를 밝히는 그녀, 사이토와 친하게 지내고 싶은 그레이스이다.
“네. 그렇군요.”
그냥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앞을 바라보는 사이토, 사이토가 더 이상의 화제를 끌어내지 않자 그레이스는 앞서 걷고 있는 레미와 에린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사이토에게 말했다.
“그런데, 레인씨의 NPC동료중에 저 남자애 혹시 레미 아니에요?”
“예, 맞는데요? 레미와 에린입니다.”
“화아. 맞구나.”
박수를 치는 그레이스 곧 이어 그녀의 설명이 뒤따랐다.
“레미와 에린은 상당히 유명한 캐릭터들이에요. 거의 퀘스트의 주연급들이라고나 할까요? 저기 레미는 카마프라하 왕국의 정통 황태자구요. 에린은 마녀의 정통 핏줄을 이은 후계자 같은 거지요.”
“아아, 그렇군요. 그런데 그레이스님은 리얼판타지아의 퀘스트 스토리에 대해 꽤 잘 알고 있으시군요.”
“네? 아...네. 게임 하다보면 저절로 알게 되는 거지요. 으음, 그런데 저 에린이라는 여자애 예쁘게 생겼는데 참 불쌍하네요.”
“무슨 소립니까?”
그레이스의 한숨 섞인 말에 사이토는 그 연유에 대해 물었다.
“지금은 저렇게 둘이 하하호호 하고 있지만, 스토리가 조금 더 진행되면 에린은 마녀의 핏줄에 대해 자각하게 되고, 곧 마녀의 승계의식을 위해 레미와 헤어지게 되지요. 그리고 저 에린은 곧 마왕의 제물이 되게 되고, 레미는 분노하여 마왕을 퇴치하러 가죠.”
“그렇군요.”
사이토에게 등을 보이며 나란히 걸어가는 둘의 모습을 횃불의 역광에 반사되어 보인다. 마주보는 둘의 얼굴에 피어 있는 것은 사심 없어 보이는 순수한 사랑의 감정... 그들에 대해 가졌던 머리 없는 NPC들의 대한 편견들이 조금 가시는 것 같다. 물론 이성으로는 개념이 확실하지만 감성으로는 그 둘을 응원해 주고 싶을 정도의 마음이다.
“뭐, 곧 헤어질 텐데...”
이 당시 사이토는 앞으로 일어날 그들과의 악연에 대해 전혀 몰랐다. 얼마 정도 더 진행하여 안전지대를 만들고, 잠시 장비들을 점검하던 사이토들은 몇 시간 후, 그 던젼을 탈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웬걸... 그들이 탈출한 곳은 말론의 술집이 아닌 전혀 알지 못하는 낭떠러지... 위아래를 훑어보던 사이토는 밑으로 뻗은 가느다란 한 가닥 밧줄을 발견했다.
“그레이스님, 이게 어떤 조화인지, 설명을 좀...”
“호호, 저도 잘 모르겠네요. 아마 제 퀘스트는 이쪽으로 뚫렸나 보네요.”
미안함이 가득한 목소리... 낮게 한숨을 내쉰 사이토는 앞에 가로놓인 절벽을 천천히 관찰했다. 레미와 에린은 자기들끼리 할 이야기가 있는지 또다시 외따로 모여 수근거린다. 졸지에 이방인 취급받는 사이토, 아무리 NPC라지만 그런 취급 받는 다는 것은 과히 좋지 않은 기분이다. 한 동안 절벽을 내려갈 궁리를 하는 사이토의 곁으로 레미가 다가왔다.
“사이토씨, 저희는 이제 헤어져야 겠네요.”
레미의 말에 사이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로 가는데?”
“이제 세인트 요나르도 구했으니, 엑셀리온 호수로 가야죠. 그런데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네요?
사이토씨는 아세요?”
“아니, 나도 그게 고민이야.”
악수를 나눈 두 남자, 레미와 에린은 밧줄을 타고 내려가려는지 절벽가에 섰다.
“에린 잘가.”
“네, 그럼 이제 잘 있으세요.”
이제 큰 퀘스트 하나만 더 하면 오카리나가 말한 그 곳에 갈 수 있다. 사이토는 이번 퀘스트를 잘 끝냈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제 두 개의 퀘스트만 더 끝내면 가이아와 오카리나가 기다리고 있을 마지막 퀘스트로 갈 수 있다.
“다음 퀘스트는 어떤 것이려나...”
이번 퀘스트는 강진이 가르쳐 주었기에 쉽사리 해결할 수 있었지만, 그 다음 퀘스트 부터는 사이토가 이번 퀘스트를 어떻게 수행했느냐에 따라 무작위로 생성되기 때문에 전혀 알 수가 없다.
[퀘스트가 종료되었습니다. 퀘스트 달성금 1만 골드와 카르마 9300을 얻으셨습니다.]
“후우, 이제 중급이군.”
스텟 창을 확인해 보니, 이번에 얻은 카르마로 초급에서 중급으로 넘어갈 수 있게 되었다. 낮은 한숨을 내쉬는 사이토... 리얼판타지아의 계급상승이 힘들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그러나 사이토가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사이토가 일반 유저들보다 훨씬 빠르게 계급상승을 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이유로는 사이토의 손에 죽어간 수많은 유저들이 힘이 한몫을 했겠지만, 자력으로 계급상승하기는 이번이 처음이기에 사이토는 불평만이 가득할 뿐이다. 레미와 에린이 조심스레 밧줄을 타고 내려간다.
“레인씨, 이제 어떻게 하실래요? 아무래도 저는 이 밧줄을 타고 내려가서 다시 헥시르로 가야 할 듯 한데...”
그레이스는 준비가 다 끝난 듯, 그녀의 NPC동료들과 함께 서 있다.
“아직이요. 제 동료들이 모두 내려간 다음에 내려가시죠. 아무래도 저 밧줄 좀 위태 위해 해 보이는군요.”
“에이, 무슨 소리세요. 아무리 빈약해 보여도 게임상의 밧줄 같은게 끊어질 리가 없잖아요.”
“하하, 그런가요?”
그녀의 말도 일리가 있기에 사이토는 너털 웃음을 터뜨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악!”
낭떠러지 밑으로 들려오는 단발마의 비명, 사이토는 절벽밑으로 다가가 밑을 쳐다보았다. 까마득한 낭떠러지, 바위에 가려 바닥도 보이지 않는다. 그 줄에 위태위태 매달린 레미... 밑으로는 에린이 한참 떨어지고 있는 중이다. 사이토는 재빨리 밧줄을 잡고 밑으로 내려갔다.
“레미! 어떻게 된 일이야!”
“저기! 저기!”
레미가 가리키고 있는 곳에는 전에 한 번 만난 적이 있는 에인션트 크로우가 입맛을 다시며 창공을 선회하고 있다. 아마 에린은 그 에인션트 크로우의 공격에 밑으로 떨어졌으리라.
“에린! 에린!”
바닥을 향해 구슬프게 울부짖는 레미, 그러나 이미 떨어져 버린 자는 말이 없다. 한참을 그렇게 부르짖던 레미는 사이토를 향해 어떤 물체들을 던졌다. 그와 함께 레미의 머리위에서 떠오르는 글귀... 또 다른 퀘스트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다.
“사이토씨! 세인트요나르를 가지고 엑셀리온 호수로 가주세요! 흑흑... 그 곳에서 잠들어 있는 여신을 깨워야 해요! 시간이 없어요. 그 종이에는 엑셀리온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적혔어요! 제기랄!”
그 말을 끝으로 레미는 밧줄을 놓아버렸다. 에린이 떨어진 곳으로 수직낙하하며 사라지는 레미, 사이토는 멍하니 세인트 요나르와 그 엑셀리온으로 들어가는 방법이 적혔다는 스크롤을 손에 들었다. 에인션트 크로우는 제 할 일이 끝났다는 양, 이미 사이토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나 있다. 그렇게 밧줄에 매달려 이리저리 흔들리던 사이토는 말없이 밧줄을 타고 올라갔다.
“어떻게 된 거에요!”
그레이스가 물어왔다.
“단지, 단지... 퀘스트일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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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쉬었습니다.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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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삭제~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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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회하는 자 케인 "아아, 긴장하실 것 없습니다. 어차피 다 이기신 건데요. 뭘"
사이토의 말에 케인은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에는 가볍게 실력 테스트 겸 오랜만에 몸이나 풀 생각이었다. 그러나 강진이 데려온 이 녀석은 게임에서 오래 살았다면 가장 오래 살았을 자신조차도 한번도 보지 못한 변칙공격들을 다채롭게 뽑아내며 그의 목을 날린 것이다. 다행히 변칙공격이라는 것은 이미 한번 겪으면 그 효과가 절반 이상 감소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어림 없다.
"뭐, 별로 즐거울 건 없네."
단아한 얼굴에 노인네 같은 말투를 사용하는 케인... 사실 속으로 상당히 기뻐하고 있다.
그가 보기에도 사이토는 이미 빈사의 상태로 보인다. 비록 상대의 라이프가 보이지는 않지만 사이토의 행동에 거짓을 없어 보인다. 흐뭇한 눈으로 사이토를 바라보는 케인...
"보고 싶습니다. 용자의 최종 스킬... 어차피 지는 마당에 한 번만 보여 주시죠. 당할 때 당하더라도 한 번 보고 싶군요."
사이토의 말에 케인은 말없이 사이토를 바라보았다. 잠시간의 침묵이 지난 후 케인은 검을 곧게 들어올렸다.
"흐음, 이 기술 한 번도 본적이 없나? 아무리 희귀한 기술이라고는 하지만 한 번 정도 다른 이들이 썼을 법한 기술인데..."
뜸을 들이는 케인, 사실 그의 기술이 희귀한 것은 사실이다. 그가 아는 한 용자에까지 오른 이는 단 두 명, 그리고 케인을 제외한 나머지 하나는 오래전에 게임을 접었다.
"뭐, 제가 게임 시작한지 얼마 안 된 것 때문입니다. 기왕이면 저도 조금 발악해 봐도 되겠습니까?"
"그러게나..."
사이토는 케인이 보는 앞에서 디스코어에 파이어 인첸트를 걸었다. 인첸트된 디스코어를 검집에 다시 집어 넣고 숨을 고르는 사이토... 한손에는 단지 헬리오스만을 쥐고 있다.
"가네."
"오시죠."
잠시 심호흡을 한 케인은 머리위로 들어 올린 검을 가볍게 종으로 그었다. 그 뒤 빠르게 검을 옆으로 당겨 횡베기의 자세를 취한다.
"오늘 쇼다운은 정말 재미있었네. 이건 진심일세. 아참 그리고 몸은 가루가 될 거야. 나의 카오스 퍼니쉬먼트를 맞는다면..."
친절하게 스킬명까지 말해주는 케인, 그의 몸 곳곳에서 검은 에너지가 솟구쳐 오른다. 증가하던 에너지는 케인의 검에 모여들기 시작한다. 케인을 중심으로 둥근 어둠의 원이 형성된다. 검은 에너지에 둘러싸여 있던 케인은 순간 총알이 발사된 듯 사이토에게 돌진한다, 검과 하나가 된 듯 어둠의 에너지는 검과 그를 감싸고 그것은 마치 거대한 흑룡이 용아를 드러내고 사이토를 찢어발기려는 듯 보인다. 검과 혼연일체가 되어 펼치는 기술... 사이토는 이미 포기한 듯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약간의 문제가 있다면....
"직접 보니 더 멋있네?"
사이토는 이미 그 기술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명색이 게임 운영자를 목표로 공부하는 그다. 물론 과거에 친구가 구해서 보여준 것이기는 하지만 사이토는 그 기술을 알고 있었다. 그것이 케인에게는 크나큰 실수였다. 용자의 최종 기술... 물론 그 파워는 마법사의 9서클 마법을 제외하고는 가장 강하다. 아니 대인 공격으로는 최강으로 꼽힐 그 스킬, 그러나 이 스킬의 단점은 일단 시작되면 스킬 중간에 괘도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파워가 좋으면 뭐하는가... 안 맞으면 그만인 것을...
사이토는 헬리오스에 묶인 와이어를 빠르게 뽑아내며 케인에게 마주 달려갔다. 그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속도... 목표는 케인의 스킬을 가장 근접하게 피할 수 있는 곳... 마주 달려가던 사이토는 디스코어를 뽑아 미련 없이 케인에게 던졌다. 케인에게 날아가던 디스코어는 그에게 근접하자마자 나선형으로 휘말리며 튕겨나가 버린다.
"오예! 알았다!"
디스코어는 단지 파워 측정용이었다. 섣불리 다른 검을 사용했다가는 가루가 될 것을 알기에 디스코어를 사용한 것... 짧은 시간에 계산을 끝마친 사이토는 헬리오스를 케인에게 던지며 뽑아두었던 와이어를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6계급에서 얻은 스킬... 마스터 테크닉이 최대로 발휘된다. 마주 달려가며 번개같이 손을 움직이던 사이토... 케인과 교차되었다.
꽈아앙!
케인과 교차한 사이토는 요란한 폭음과 함께 공중으로 튕겨 올라버렸다. 그의 한쪽팔과 어깨가 사라져 버렸다. 피하기는 했으나 케인의 기술을 너무 얕잡아 본 것이다. 흡사 시속 300킬로로 달려오는 덤프트럭에 어깨를 받힌 기분이다. 땅에 떨어진 사이토는 라이프가 제로 까지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어렴풋이 반대편에 보이는 케인... 마주 달려오는 속도와 크로스 카운터... 그리고 와이어의 힘으로 케인은 상체가 조각조각 산산이 부서져 땅에 쓰러지고 있었다.
"무승부!"
허름한 방안, 탁자에는 세 명의 젊은이와 한 명의 중년이 앉아 있다. 세 명의 젊은이 중 하나는 인상이 차갑게 굳어 있다. 그런 그를 시큰둥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나머지 이들... 인상을 굳이고 있던 그는 잠시 후 낮은 한숨과 함께 눈을 감았다. 확실히 그가 졌다. 1승 1무라고는 하지만, 내용상으로 본다면 그가 진 것이다. 아무리 변칙공격과 약간의 속임수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진 건 진것이다. 그러나 그가 수긍하고 싶지 않은 그 이유는 도대체 졌음에도 깨끗이 승복이 되지 않는 것이다. 뭔가 더러운 수에 당한 기분이다. 뭔가 재수 없게 걸린 느낌이다. 한 번 정도 더 하면 이길 수 있을 듯도 한데 한 번 더 싸우자고 하자니 체면이 말이 아니다. 얼굴이 울그락 붉으락 하게 변하는 케인...
"후우..."
잠시 후 한숨과 함께 털어내는 그이다.
"강해지고 싶다고 했나?"
케인이 물었다.
"예."
사이토의 물음에 다시금 침묵 속에 들어가는 케인...
"내가 두 번째 쇼다운을 시작하면서 말했겠지. 내 궁극의 히든피스를 가르쳐 준다고... 그래 그게 뭐 같은가?"
케인의 말에 이번에는 사이토가 침묵에 빠졌다.
"잘 모르겠습니다."
"쩝, 오성은 평범하군."
입맛을 다신 케인은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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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동안... 영웅전설 5 에 매달려 있던 데자부입니다. ㅠㅠ.. 오우~ 재미있다; 마지막 보스는 끝내 못깼습니다. (사실 시간도 좀 모자르고..-_-..)
여러분~ 죄소옹~-ㅂ- 내일이면...후우..-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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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회하는 자 케인 ㅀ
배회하는 자 케인 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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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회하는 자 케인 그로부터 약 이주일가량을 사이토는 케인과 함께 하였다.
본래 케인이 기술을 가르치는데 잡은 최소 소요시간 한 달이었지만, 지금의 사이토에게는 그만한 시간이 남아있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일단 2주 단기속성의 방법으로 배워보기로 결정한 것. 사실 가르치는 케인으로서는 그런 고난이도 기술을 단시일 내에 배운다는 것은 바라지도 않았고 단지 감이라도 잡으면 잘하는 것이리라는게 속마음이었다. 그런 이유로 시작된 일주일간의 속성코스... 오늘도 사이토의 머리는 몸과의 익숙한 헤어짐을 끝으로 공중으로 솟구쳤다.
"흐흐! 또다시 잔재주를 피우다니..."
허리에 손을 올린 케인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사이토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쇼다운이 끝나고 몸이 회복되어 나타난 사이토... 이제 워낙 죽는데 워낙 익숙해져서 예전처럼 놀라지 않는다. 케인의 집에서 머문 지 이틀째 되는 날부터 시작된 것은 케인과의 무한 쇼다운이었다. 이미 화끈하게 데인 경험이 있는 케인, 그는 처음부터 사이토를 전력으로 몰아붙였고 사이토는 시작한지 3분 만에 목이 날아가는 경험을 해야 했다. 계속되는 쇼다운... 케인이 말하기를 그 속에서 히든스텟이 발동되는 충족요건을 찾으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사이토에게 언감생심일 뿐, 처음에는 케인에게 이렇다 할 대항조차 못한 채 목을 날려야 했다. 사이토가 히든스텟의 실마리를 잡은 것은 대결을 시작한지 근 5일째 되는 날이었다. 어느 때와 같은 케인과의 쇼다운... 사이토는 케인의 스킬을 막아내며 어느 순간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예전 레서데몬과의 사투에서 한 번 겪었던 것... 그 후 사이토는 그 감각을 빠르게 몸에 익혀 나갔다. 그러나 사이토는 천재가 아니었다. 또한 무슨 무술에 있어서 천부적인 재능과 오성을 지닌 것도 아니었다. 계속되는 쇼다운 속에 일주일이 지난 지금 사이토가 완성시킨 것은 덱스에 있어서 아주 가끔씩 터지는 히든스텟이었다.
"에구, 그래가지고 언제 그걸 다 마스터 할래."
"제가 무슨 천재입니까? 그걸 그렇게 빨리 배우게."
"뭐야? 말대꾸냐? 쇼다운 한번 더 뛸래?"
"아뇨. 오늘은 충분합니다. 꽤 오래 플레이 했으니 이제 접속 끊고 잠시 쉬어야 겠네요."
사이토가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며 집안으로 들어가자 케인은 한숨을 내쉬며 그의 무구들을 역소환했다. 케인이 지닌 용자의 무구 시리즈는 단순히 평범한 방어력의 셔츠나 옷으로 변환 시킬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볼 수 있는 재미있는 것이라면 케인은 사이토보다 월등히 강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굳이 그가 사이토와의 쇼다운 때마다 꼬박꼬박 갑옷을 챙겨 입는 이유는 사이토의 변칙공격에는 그 자신도 캐릭터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다.
허름하게 변한 검을 허리춤에 끼워 넣은 케인의 옆으로 루피아가 터덜터덜 걸어왔다. 루피아는 케인의 명령으로 케인이 자리를 비우는 시간에 사이토의 쇼다운 상대가 되어 주어야 했다. 물론 죽어나는 것은 사이토였지만 루피아로써도 계속되는 쇼다운은 지칠 만하다.
"강진이 녀석은 요즘 뭐하냐?"
"이리 저리 바쁜 모양입니다. 그제 무급운영자 한 명이 나타나서 함께 어디론가 가더니 메시지도 되지 않는군요. 뭔가 대단한 일을 꾸미는 것 같은데 저는 도통 모르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케인, 그로서도 강진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말이 없다. 물론 강진의 자기관리가 워낙 철저하고 일처리가 무섭도록 확실하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겠지만, 강진의 철저한 개인주의적 성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면을 가지고 케인이 뭐라고 할 위치도 아니고 하고 싶은 마음도 없는 케인이다.
"한마디로 정이 안가는 녀석이란 말이지."
사이토가 로그아웃을 했기에 별달리 할 일이 없어진 케인은 오랜만에 나들이나 할 겸 아리유로 향하였다. 물론 그 속내는 몬스터 따위를 헌팅하는 것이 아닌, 그 뽀샤시한 얼굴을 무기로 젊은 처자들을 헌팅하려는 것이지만 말이다. 아리유를 향해 걷는 케인의 옆으로 루피아가 따라 붙었다.
"같이 갑시다."
"넌 왜 따라붙냐?"
케인의 시큰둥한 물음에 루피아는 허리춤의 무라마사를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사이토랑 꽤 붙었더니 내구력이 많이 떨어졌으니, 수리해야죠."
"흐음, 그래."
만약 사이토가 마스터 대장장이라는 것을 안다면 루피아의 검 수리정도는 쉽겠지만, 사이토는 그 사실을 아직 말하지 않은 상태이다. 루피아의 검은 최고급 무기이기에 대장장이 마스터에게만이 맡길 수 있다.
"그런데, 스승님이 보시기에는 사이토녀석 어떻습니까?"
"뭘 말하는 거냐? 성격? 실력?"
"둘 다요."
"뭐, 일단 네 녀석이 말하던 거와는 전혀 틀린 녀석이었다. 아참! 까먹고 있었군."
"네?"
케인이 갑자기 멈춰 섰다. 스승이 갑자기 가던 길을 멈추며 손을 주먹으로 탁 치자 루피아는 의아해 하며 케인을 바라보았다.
꽈앙!
루피아의 턱으로 케인의 블로우가 작렬한다. 전혀 생각지 못했기에 속수무책으로 나가떨어지는 루피아...
"네 녀석의 잘못된 정보에 내가 두 번씩이나 목이 날아가야 했단 말이다! 뭐? 어중이떠중이 무술? 네놈도 눈이 삐었냐? 그건 어중이떠중이 무술이 아니라 확실히 개념이 잡힌 무술이었다. 어떤 류파인지는 모르겠지만, 철저하게 실전적으로 단련되는 그런 류파였단 말이다."
"그...그렇습니까?"
턱을 맞은 것이 분하기는 하지만 케인에게 대들수는 없다. 만약 일반유저들이 자신에게 이딴 짓을 했다면 벌써 상대의 목을 날려버리겠지만, 케인은 예외였다. 툴툴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루피아이다.
"그래. 그리고 그 녀석... 확실한 무골이거나, 전투에 아주 숙련된 녀석이야. 전투 중 캐릭터 능력에서의 차이를 갖가지 방법으로 커버하더군."
"확실히 아무리 강한 유저도 십 분 이상을 소요하지 않는 스승님이 20분 이상 그 녀석을 상대하는 모습은 특이하더군요."
빈정거리는 투의 루피아, 그러나 케인은 그런 루피아의 어투를 의식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그의 소감을 이야기했다.
"그래! 그 녀석... 다른 놈들이라면 자신의 빈틈이 뭔지도 모르고, 그냥 무턱대고 덤벼들겠지만, 그 녀석은 빈틈이 생길 때마다 '네가 여기를 공격해서 내 팔 하나 잘라 놓으면 넌 다리 한쪽 내놓아야 해' 라는 식으로 싸워대더군. 그런 식의 전투법이 위험하기는 하지만, 자칫 녀석의 투기에서 밀리기라도 하면 아무리 녀석보다 강한 놈이라도 녀석에게 물려버리지. 그 덕에 그동안 강한 놈이 안나타나 무료했던 일상도 즐거워지고... 아무튼 아주 재미있는 녀석이야."
"그렇군요."
둘이 이런 저런 잡담을 나누는 사이 어느새 그들은 아리유로 들어가는 성문 앞까지 도달했다. 전쟁의 전선은 이미 아리유를 지나 데이모스까지 치고 올라갔기에 아리유는 한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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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소설도 구상하고... 시험도 있고..이리 저리 바쁜 핑계대는 데자부입니다.-_-..
좀 늦지요? 으흠..-_-;; 쩝...
어찌보면..소설의 속도가 너무 빠른가도 생각됩니다. 사실..지금 .. 나가는 분량은..
대단이..소설을 빠르게 진행시키고 있거든요.
아참.! 그리고..다음에 저의 팬까페가 3개 생겼습니다.-_-.. 물론 경축이겠지만...
그분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습니다. 왜! 내가 가입해서 등급업도 신청하고 얼마 양은 안돼지만 소설도 조금 올렸는데 난 아직 준회원이에요.;ㅁ; 몇 달이 지났잖아.;ㅁ; 팬까페면 팬까페답게 최소한 작가는 정식회원시켜줘야 하는거 아닌가요.;ㅁ; 흑..눈물이..ㅠㅠ..
왜 작가가 준회원이냐구! 왜! 왜! 난 등급업 신청 했는데..ㅠㅠ...절규...
그리고..다음에서 사용하는 제 아이디는 uniqueme 랍니다.ㅠㅠ..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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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회하는 자 케인 (여기까지 수정했습니다.)
일단의 유저들이 빌로아의 워프포탈에 서 있다. 사냥을 나서려는 듯 장비를 한 아름 챙긴 것이 꽤 오랜 시간을 두고 사냥을 나가려는 듯하다. 한 여자 검사가 그 유저들을 향해 다가간다. 바쁘게 이것 저것을 챙기던 그들은 여자검사가 다가오자 모두 반가운 기색으로 그녀를 맞이했다.
"포프 오랜만이야?"
"앗! 밀레나 누나!"
"오잇? 언니? 이번 퀘스트에 끼실래요?"
아레나가 다가와 채근하며 묻자 밀레나는 손을 흔들며 거절한다.
" 어차피 '스틱스의 검' 이라는 이름은 너희들이 가져갔잖아. 리더도 아레나한테 넘겨주고..."
밀레나의 말에 아레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실없는 웃음만 보였다. 과거 사이토가 승급을 위해 데이모스로 떠나고 다 함께 승급으로 인해 쿰반다에서 헤어진 뒤 그들은 자신들의 모신이 있는 도시로 흩어졌다. 그리고 약 한 달 전 빌로아에서 다시금 뭉쳤다. 모두가 한 계급씩 강해졌기에 포프나 아레나 아미르 등은 이전의 그 초보자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마법사 스티브씨가 갑작스레 게임을 그만 두고 밀레나와 브랜이 갑작스레 '스틱스의 검'의 리더를 아레나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새로운 '스틱스의 검 2기'로 생활하고 있다. '스틱스의 검'들을 보낸 밀레나는 그들이 사라진 포탈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발을 옮겼다.
스티브씨가 게임을 그만두었다. 물론 완전히 그만둔 것은 아니지만, 게임을 하느라 그동안 생활 수단을 너무 도외시한 것 때문이었다. 한 동안 주변 일을 수습한 뒤 다시금 '스틱스의 검'으로 돌아오겠다는 스티브의 결의는 좋지만, 그가 사라진 '스틱스의 검'은 너무나 썰렁했다. 가뜩이나 사이토가 다른 일로 바빠 함께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밀레나는 '스틱스의 검'의 리더라는 자리를 아레나에게 넘겨 준 채 요즘은 게임 접속도 뜸한 상태이다. 한동안 빌로아의 거리를 걷던 밀레나는 곧 작은 단층 주택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브랜과 밀레나가의 소유로 되어 있는 주택이다. 예전 사이토가 게임을 시작하기 전부터 그들의 것이었던 주택, 안으로 들어서자 브랜이 생활스킬을 열심히 수련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대장장이 스킬... 사이토의 영향도 조금 있기도 하지만, 원래 전사들은 대장장이 스킬들을 어느정도 다 가지고 있다. 자체 무기 수리를 위해서도 좋지만, 마스터 할 시 힘의 보너스가 있기 때문이다.
"오빠, 나 로그아웃 할게."
밀레나가 브랜에게 힘없이 말한 뒤 방으로 들어가려 하자 브랜이 잠시 그녀를 불러 새웠다.
"요즘 왜 그래. 의욕도 없어 보이고..."
"..."
브랜의 입장에서는 생각해 준다고 하는 말이었지만, 아무리 그가 밀레나를 생각해서 하는 이야기 라도 눈치가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당연히 사이토의 일이 문제이건만, 밀레나에게 그 이야기를 꺼내기 무서워 일부러 쉬쉬하는 브랜이다. 그런 식의 민감한 문제를 말재주 없는 자신이 잘못 꺼냈다가 밀레나의 기분만 더 상하게 만들 수 있음으로... 한숨을 내 쉰 밀레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냐."
로그아웃 한 혜미는 옆의 게임기기에 가만히 누워있는 혜인을 지나 방을 나섰다. 밖은 어둠에 싸여 있다. 한 겨울의 초엽으로 접어들고 있기에 창문 밖은 싸늘한 기운이 창문턱을 긁어대고 있다. 부모님은 아직 잠에 빠져 계시리라. 멍하니 거실에 서 있던 혜미는 곧 자신의 방으로 가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아직 새벽이리라. 혜인과 혜미는 근래 들어 게임 시간을 밤으로 옮겼다. 전에는 낮에도 자주 접속했건만 이제 곧 집에서 독립해야 하는 시점이 되어 예전처럼 속 편하게 게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녀는 큰 길로 나가 차를 잡았다. 옷깃 사이로 겨울 새벽의 차디찬 바람이 스민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그녀가 멈춘 곳은 형민의 원룸 앞... 언제나처럼 썰렁함이 더 한다. 그가 그 일 때문에 이곳을 비운 뒤, 형민의 대문은 먼지가 쌓여 있다.
"하아..."
잠시 멍하니 형민의 문을 쳐다보던 혜미는 복도에 쭈그리고 앉았다. 그 일로 인해 못 본지 이제 갓 일주일이 되어 간다. 그러나 그녀가 느끼기에는 한 달 아니 일 년으로 느껴지는 일주일이었다. 그가 이 도시에서 사라졌다. 게다가 야속하게도 전화 한통 없다.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게임을 할 때도 무언가가 빠진 듯한 기분에 흥미가 없다. 공부도 손에 잡히지 않고,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기가 일쑤다. 가끔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발길은 그의 집 앞으로 향한다. 자신이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진다. 밖으로는 사람들이 지나는 소리가 들려오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에게서 완전히 단절된 듯한 기분, 정말 이런 기분은 싫었다.
서서히 먼동이 터 오기 시작한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에 오면 정말 흠씬 패주리라. 또는 복수 비스무리하게라도 지금의 기분을 갚아 주리라. 마음 먹는다.
순간 갑자기 그녀를 안아오는 손길이 있다.
"뭐야!"
그녀는 이 갑작스런 상황에 자신을 안아오는 인영에게 사납게 소리쳤다. 그는 형민이었다.
"아? 아?"
순간 그를 향해 올려치던 팔꿈치...약간의 시간차로 인해 팔꿈치를 멈추지 못했다.
"아얏!"
혜미의 팔꿈치 공격을 피하지 못한 형민은 작게 비명을 지르며 볼을 감싸 쥐었다. 강렬한 타격음이 형민의 면상에서 터진다. 자고로 근접 팔꿈치는 그만큼 위협적이다.
"괜찮아요?"
"으..응..."
형민은 볼을 감싸 쥔 채 어설픈 웃음만 지었다. 지은 죄가 있기에 차마 아프다고 하지도 못한다. 그녀에게 맞은 볼이 따끔거리기 시작한다. 추운 날씨에 맞아서인지 아픔이 더하다.
"괜...괜찮아. 내 잘못인 걸."
사실 전혀 괜찮지 않았다. 광대뼈에 직격 당했기에 머리가 멍해진다. 실없는 웃음만 짓는 형민, 게임에서 나온 형민은 강진의 원룸에서 입을 옷이 떨어졌기에 그의 원룸으로 온 것이다. 원룸 안 복도를 들어서는 순간 자신의 집 앞에 쭈그려 앉아 있는 혜미를 발견한 것... 순간 그의 가슴속에 울컥하는 기분이 들어 발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녀의 눈가에 보이는 작은 눈물이 비수가 되어 그의 가슴에 꽂혔다. 그녀를 얼마나 힘들게 한 것일까? 아프게 한 것일까? 그는 정신없이 다가가 그녀를 안았다. 그리고 현재는 그 댓가로 볼이 통통 붓기 시작한다.
"들어가자."
"응."
방안은 예전 그대로였다. 형민은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머리를 긁적였다. 주방에는 설거지 할 것들이 썩어가고 있었고, 빨래거리들도 쉰내를 옷 주인에게 살포시 뿜어주며 자신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이 곳에 틀어박혀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한 마디로 대략 혜미에게 부끄럽다. 혜미는 방안으로 들어와 차분히 의자에 앉았다. 주위가 더러운 것 따위는 별로 문제되지 않는다. 지금 그녀의 앞으로 온 이 불성실한 연인에 대해 응단의 조치가 더 중요하리라. 물론 그의 볼의 빨간 자국이 약간의 미안함을 느끼게 하지만 말이다.
"에... 그러니까..."
혜미가 입을 열기 시작하자, 형민은 몸을 경직시키며 그녀의 앞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역시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 잘 알고 있다.
혜미가 지그시 형민의 눈을 바라본다. 그녀의 눈빛이 마치 레이져라도 되는 양 형민은 마주 쳐다보지 못한다.
"어떻게 된 거에요?"
혜미의 첫 물음에 형민은 그녀의 눈치를 슬슬 보면서 대답한다.
"응, 옷이 떨어져서..."
"후우..." 혜미는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거짓말을 바란 것은 아니지만, 자신을 보고 싶었다는 말은 그의 입에서 나오지 않는다. 속으로 '둔탱이, 바보, 멍개' 가 합동 헤드뱅잉을 하며 그녀의 가슴을 맴돈다.
"왜, 연락 안했어요?"
"응, 밧데리가 떨어졌어."
어줍잖은 변명의 형민...
"후우..."
사실 게임으로 인해 자신을 신경 쓰지 못한다는 것을 빤히 안다. 가소롭게 보이는 형민의 변명... 그러나 혜미는 그것도 한숨으로 풀어버렸다. 없을 때는 보고 싶더니 막상 눈앞에 나타나자 밉기만 하다. 문득 가이아에 대해 물어보고 싶다. 예전에는 그녀의 존재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다. AI와의 일로 그를 탓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어쩌면 그녀는 그 일에 대해 물어보기 무서웠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더 이상 이것을 방관자의 입장에서만 보아서는 안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근래 들어 형민에게 조금 실망하기는 했지만, 그 정도 일로 흔들릴 그녀가 아니었다. 그녀의 눈이 반짝거리기 시작하자, 형민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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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줍잖게... 슬럼프입니다. 스토리는 이미 정해져 있건만, 그것을 따르기에는 머릿속이 상당히 불편하군요. 잠시간의 연중일까요? 새로운 소설을 구상하는 중입니다. 이번에는 좀 더 재대로 써보리라... 설정도 거의 20장 정도 써 봤습니다. 이번에는 세계관까지 확실히 잡아보는 겁니다. 정통판타지 이지요. 신체계도 새로 잡아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머리속이 복잡하군요. 빨리 이 소설을 진행해야 하는데.. 라는 마음만 앞선 듯 합니다. 한숨을 내쉬고.. 눈을 감으며 " 쉽게 쓰자... 간단하게 생각하자" 하면서도 막상.. 뒷골만 당겨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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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회하는 자 케인 "안녕히 계세요."
"뭘, 안녕히 있어?"
"네?"
사이토는 마지막 인사를 끝으로 케인과 헤어지려 했다. 그와 지낸 며칠간 히든 피스에 대한 운용도 꽤 배웠고 또한 엑셀리온 호수로 가서 퀘스트도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몇 가지 입을 옷들과 생필품을 가지러 내려갔던 전주에서 우연히 마주친 혜미... 그러니까 밀레나에게 폭탄 선언을 빙자한 명령, 혹은 지령을 들었다.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온 그 당황스런 제안, 그것은 가뜩이나 단순한 사이토의 머리에 90프로의 복잡함과 30프로의 난감함을 만들며 120프로의 과부하로 다가왔다. 그녀의 제안을 거부하기에는 너무나 강력한 그녀의 눈빛과 존재감이기에 사이토는 어쩔 수 없이 승낙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런 사이토의 복잡한 정신속에 케인이 또다시 작은 돌맹이를 던지려 와인드 업을 하고 있다.
"기다려."
"아, 예."
사이토의 옆으로 강진이 와서 묵묵히 눈을 감고 있고 루피아는 혀를 끌끌 차며 케인을 따라 집으로 들어간다.
"무슨 일입니까?"
"나들이라는군요."
"무슨 소립니까?"
"그러니 평소에 메시지나 켜고 계시지..."
강진의 말이 잦아든다. 얼마 안되어 케인이 집에서 나와 사이토를 향해 걸어왔다. 그의 등에 보이 는 것은 검은 색의 배낭, 그리 크지 않은 그런 배낭이었다.
"같이 가자!"
"왜요?"
케인의 눈빛이 사납게 변한다. 사이토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약간 사납기는 해도 그 얼굴만큼은 단아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이토와 함께하는 시간이 지날 수록 '이것이 내 진면목'이라는 듯 근래들어 거친 얼굴을 사정없이 그에게 들이밀고 있다.
"당연히 내 콜렉션들을 방어하기 위해서지! 어떤 개년이 지금 난리부르스를 쳐서 게임이 초기화 되는 마당에 내가 여기서 감떨어지기를 기다려야 겠냐?"
케인은 여성 페미니스트가 들으면 당장 목이 찢어져라 항의할 그런 단어를 사정없이 사이토에게 주입시키며 그가 사이토와 동행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케인의 뒤에서 케인보다 더 큰 배낭을 짊어지고 서 있는 루피아가 보인다.
"그런데, 저 친구는 왜?"
"부록이야!"
명색이 검왕이라는 자신이 왜 이런 꼬붕스러운 짓을 해야 하냐는 자괴감 때문인지 얼굴빛이 똥빛으로 변해 있는 루피아이다. 그런 그에게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케인... 루피아가 그의 뒤로 쪼르르 달려와 시립한다. 검왕을 손가락 하나로 시동으로 변신시키는 케인... 그는 달리 무적이 아니었다.
"아... 하하하! 심심해서..."
머리를 긁적이며 강진과 사이토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는 루피아이다. 그러나 이미 그는 케인의 시동으로 낙찰 받은 상태... 사이토와 강진의 눈빛은 이미 '병신...' 이라고 낮게 외치고 있다.
"가자!"
케인이 사이토를 지나쳐 성큼 성큼 앞서간다. 낮게 한숨을 내쉬는 사이토...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사이토는 케인과 함께 가기 싫었다. 머리는 어느정도 당금의 사태를 이해하고 따라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지만 몸은 그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행동으로 표현해 주고 있는 듯 하다.
"야! 빨리 안와?"
케인이 앞쪽에서 폴짝 폴짝 뛰며 사이토를 부른다.
"얼굴은 20대요. 말투는 70대요... 하는 행동은 10대라..."
무심코 자신의 내뱉은 사이토...
"뭐야!"
"아, 갑니다. 가요..."
그렇게 케인은 사이토의 기나긴 행보에 아무런 통보나 양해도 없이 불쑥 끼어들었다. 머리가 아파오는 사이토이다.
"음... 오늘은 여기서 쉬어가자."
"그러죠."
아리유에서부터 지금 그들이 도착한 쿰반다 까지의 여행은 의외로 강진의 게이트스톤으로 인해 쉽고 빠르게 해결되었다. 물론 거리도 거리려니와 원래 게이트 스톤이 각 도시의 초보자 필드 경계까지이기 때문에 그들이 아무리 날고뛰는 이들이라고 해도 움직일 수 있는 한정이 있는 법, 쿰반다에서 하루를 쉬고 계속해서 빌로아로 향하기로 결정한 일행들이다.
"그런데, 케인님은 마을로 못 들어가지 않습니까?"
멀리 언덕 사이로 보이기 시작하는 쿰반다의 나무 방책을 향해 성큼 성큼 걷기 시작하는 케인... 사이토는 머리를 갸우뚱거리며 케인에게 말했다. 아무리 봐도 케인의 얼굴과 손에 그려진 것은 살인자를 나타내는 문양이다. 그것도 도대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이 죽였는지 예측조차 불가능한 시뻘건 색... 그리고 살인자라면 마을의 경비가 막는 것이 당연한 것... 그러나 케인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다.
"후후, 다 방법이 있지."
사이토의 물음에 케인은 작게 미소를 지으며 뒤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루피아! 배낭 come on..."
케인의 손가락질에 루피아가 쪼르르 달려온다. 그리고 케인은 루피아의 등에 매달린 큰 배낭을 열고 잠시 후 넓은 로브를 꺼내 들었다. 단촐한 금빛 문양이 새겨진 새하얀 로브, 케인은 그것으로 그의 몸을 감쌌다.
"이제, 가자!"
"그게 뭡니까?"
"응? 이거? '참회자의 로브'지"
"그게 뭔데요?"
"아! 거참, 그냥 살인자들이 마을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해주는 로브다 됐냐?"
귀찮다는 듯 다시금 발을 옮기는 케인, 머리를 긁적이고 있는 사이토의 곁으로 강진이 조용히 다가왔다.
"아마 리얼판타지아에서 케인님만큼 희귀 아이템을 많이 가진 분도 드물 겁니다. 아마 저것도 그런 종류겠지요. 케인님은 과거에 단종된 아이템들이라던가 희귀아이템 같은 것을 수집하는 것이 취미이십니다. 뭐, 요즘은 더 이상 모을 것이 없어서 도색 잡지나 희귀 출판물을 모으는 것이 취미가 되신 듯하지만... 아마 저 배낭에는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한 그런 희귀 아이템이 가득 차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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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잘 받는 만큼 회복도 좀비보다 빠른 데자부입니다. 우하하하..-ㅂ-~ 뭐, 슬럼프라니... 그냥 쉽게 쉽게 쓰기로 했습니다. 쩝쩝... 용량 안되는 머리로 너무 많은 것을 생각했다는 생각이 머릿속 생각속에 마구마구 생각나는군요. (아 말장난입니다.)
그냥 즐겁게 쓰는데, 열중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요호~ 뭐, 재미있게만 읽어 주십시오~ ^-^ 제 글을 즐겁게 봐 주시는 분들이 있는데요. 뭘... 우하하하...
물론~ "이런 글 따위 꺼져~" 라는 분들은 살며시 뒤로<- 를 넘겨 주시거나 그냥 눈을 감으시지요.
그리고 작가로서 절대 해야 안되는 짓인 줄은 알겠지만은... 잠시 딱 하나만 하겠습니다. 저번에 그분...
그분... -_- ㅗ 이거나 드시지요. 약간 미친 데자부입니다. -_-.. 태클 걸어도 할 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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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회하는 자 케인 "그런...가요?"
"예, 뭐 그렇지만, 주인이 있는 물건에 욕심을 부리시는 분은 아니십니다. 하하... 그 '이계의 후드'정도라면 모르겠지만..."
사이토의 후드를 가리키며 웃음을 지은 강진은 앞장서 걸어가는 케인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잠시 자신의 후드를 만지며 앞서 걷는 이들을 바라보는 사이토이다.
케인을 따라 쿰반다로 들어서는 사이토... 그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하다는 듯이 나무 방책 뒤에서 경계를 서고 있는 경비병들은 케인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자신의 맡은 바 임무에만 충실하다. 쿰반다의 고대 원나라풍의 건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 이유로 해서 타 도시와 같이 깨끗하게 마무리 된 듯한 멋은 없지만, 자세히 보면 그것만의 흥취가 느껴지는 그런 도시였다. 여관을 잡기 위해 도시의 중앙의 백마상으로 계속해서 걷던 일행들... 그들은 쿰반다에 들어와 새삼 케인이 얼마나 오랫동안 게임을 했는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케인님! 오랜만입니다."
근처 노점상의 NPC가 케인을 향해 인사를 한다. 처음 보는 NPC들의 인사에 당황하는 사이토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 했다. 노점상 NPC를 필두로 거리에서 놀고 있는 NPC 꼬마들이 케인을 보고 수군거리고, 음식점 웨이트리스도 그를 향해 인사를 하고 하물며 골목 한켠에 쭈그리고 있던 거지NPC들도 케인을 향해 인사를 해댄다.
"어찌된 조화입니까?"
케인을 따라 뒤따라 걷던 사이토가 옆의 강진에게 물었다.
"친화도입니다. NPC들과 접촉이 많아질수록 카르마도 증가하고NPC들의 친밀도도 높아지지요. 저 또한 놀랄 뿐이군요. 저 분이 아리유 말고 다른 곳으로 간 것은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한 두명이라면 모를까... 이렇게 수 많은 NPC들이 그를 알고 있다니..."
"흐음, 너희들은 먼저 여관 잡고 기다리고 있거라. 나는 근처에 볼일이 좀 있으니..."
"무슨 일이시길래..."
강진의 물음에 케인은 짐꾼 루피아를 그의 옆으로 부르며 강진의 물음에 답한다.
"아, 별건 아니고... 예전에 어떤 퀘스트를 얻었었는데, 내가 귀찮아서 퀘스트 달성물을 안 가져다 줬거든. 마침 이곳에 왔으니... 그거나 주고 퀘스트나 달성해야지. 이럴 때를 대비해서 미달성 퀘스트 아이템들도 다 싸가지고 왔지."
루피아의 등에 진 특대 배낭의 실체가 밝혀지는 순간이다. 리얼판타지아의 배낭은 당연스럽게도 현실의 배낭들과는 그 용량이 틀리다. 사이토의 배낭만 해도, 상당한 양의 아이템을 수용할 수 있는 크기이다. 그렇다면 루피아가 지고 있는 저 배낭에는 도대체 얼마만큼의 아이템들이 들어 있을까? 전투하는데 상당한 에로사항을 줄 정도의 크기를 지닌 그런 배낭이다.
'그건 도대체 몇 년 전 퀘스트입니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그 궁금증을 목젖 근처에서 고이 접어 다시 삼켜버린 사이토는 머리를 흔들었다. 아직까지 케인은 그의 상식 밖에서 뛰어 놀고 있는 그런 존재이다. 그런 존재로 인해 굳이 그의 심력을 낭비할 필요를 느끼지는 못한다.
"다녀오마."
루피아를 뒤로 거느리고, 어디론가로 향하는 케인... 그것을 멀거니 쳐다보던 사이토는 그 옆의 강진과 함께 한숨을 내쉬었다.
"여관부터 잡지요."
"예."
얼마 간의 시간이 지난 후 '잠룡객잔' 이라는 여관을 예약한 사이토와 강진은 여관의 1층에 마련 된 테이블에 앉아 차를 마셨다. 원나라풍의 건물양식을 따르는 도시라서 그런지 NPC들의 복장이나 시설물 또한 당시를 연상시키는 것들이다. 차를 마시던 강진은 맞은편의 사이토에게 말을 건넸다.
"그런데 사이토씨는 요즘 사이토씨의 복수를 한다며 카모프에 대항해 싸우고 있는 그 길드들을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이제 카모프의 위협도 어느 정도 해소된 마당에 계속 오해하게 만들 수는 없지 않습니까?"
노인정길드와 데스스타길드를 말하는 것이리라. 사이토가 현재 유저들 사이에서 죽었다고 알려진 것은 강진도 잘 알고 있다.
"글쎄요. 하하..."
머리를 긁으며 멋쩍은 웃음을 짓는 사이토, 그러나 강진은 심각한 얼굴로 사이토에게 말했다.
"그런 식의 태도는 안 됩니다. 비록 그들이 자신들 임의대로 움직였다고 해도 그들은 사이토씨를 위해 움직이는 겁니다. 그냥 방관하고만 계실 겁니까? 혹시 너희 마음대로 움직이니 나는 상관 없다 그런 것입니까?"
강진의 말에 사이토는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이런 식의 간섭을 받는 것은 사이토에게 그리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
"훈계하실 작정입니까? 조금 말이 심하십니다."
"진실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강진은 사이토의 본심을 떠보고 싶었다. 그를 볼 때마다 느끼는 건 뭔가 베일에 싸인 느낌이다. 강진은 그런 사이토가 과거의 자신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런 그가 안타까웠다.
"저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남을 배려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선을 그을 필요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선을 지킬 생각입니다. 그리고 남에게 그것의 변화를 강요당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그럼 사이토씨는 그들을 대함에 있어 가식으로 대하겠군요. 혹시 저도 그런 겁니까?"
강진이 비이냥거리는 듯 말한다.
"당연한 것 아닙니까? 당신을 그 선 이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이건 제가 세상을 살아오면서 터득한 겁니다. 세상이 저에게 자연스럽게 만들게 한 것들입니다."
사이토의 말에 강진은 한숨을 내쉬며 사이토를 바라보았다.
"이건, 게임이지 않습니까... 후우... 서로 조금 흥분한 듯 하군요."
잠시 차를 한 모금 들이키는 강진...
"지치지 않습니까? 서로를 속고 속이고, 겉으로는 웃으며 속으로는 손익계산에 바쁘고, 사람을 만날 때마다 이 사람에 내 인생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그런 따위의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이... 저는 그것에 지쳤기에 게임을 하는 겁니다."
"게임도 사람들이 만드는 겁니다."
"최소한... 현실에서보다 잃는 것은 작지 않습니까..."
강진의 말에 사이토는 말없이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둘 사이에 침묵이 오간다.
"먼저 올라가 보겠습니다."
"예."
계단을 오르는 사이토는 잠시 우뚝 서서 밑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는 강진에게 말했다. 그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 있다.
"그러나 신의를 잃는 다는 것은 게임이나 현실이나 똑같습니다."
"..."
사이토가 사라진 뒤 강진은 입맛이 씁쓸하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며 잔에 마지막 남은 차를 한꺼 번에 들이켰다. 낮은 한숨의 쏟아져 나와 빈 잔을 채운다.
"모를 겁니다. 그런 식의 삶이 후일 얼마나 가치 없어 보이는가를... 나도 당신과 같았으니...비록 누구도 믿지 못할 절망감이 눈앞에 보이더라도 인간이기에 갈구해야 하는 것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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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흑..ㅠㅠ.. 대화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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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회하는 자 케인 사이토는 물론이거니와 현대의 사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병이었다. 믿음이라는 빛나는 가치는 이미 이 시대에 필요치 않은 그런 것들이다. 부모는 자식을 더욱 더 냉혹하게 키우기 위해 힘쓰고, 사람들은 자신의 주위에 차가운 냉기의 벽을 두르며 타인을 밀어낸다.
케인이 돌아온 것은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였다. 일이 조금 꼬여 퀘스트가 길어진 것... 그러나 그들은 그날 쿰반다를 출발할 수가 없었다. 사이토가 양해를 구하고선 여관방에서 나오지 않는 것이다. 잠시만 쉬었다 가자는 것... 어쩔 수 없이 그들은 쿰반다에서 하루를 더 머물렀다.
다음날 아침 사이토 일행들은 다시금 길을 나서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숙인 채 일행을 따라 걷던 사이토가 불현듯 무언가를 결심했는지 일행들을 멈추고 말을 꺼냈다.
"잠시 어딘가 다녀와야 겠습니다."
"응? 어딜 가는데?"
강진이 불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본다.
"아아, 갑자기 일이 생겨서요. 강진씨 그 아리유까지의 게이트스톤 좀 빌려 주시겠습니까?"
[곧 돌아오겠습니다. 그제 강진씨의 말을 듣고 느낀 것을 실천하려고 합니다.]
사이토의 메시지, 강진은 흠칫하며 사이토를 바라보았다.
[메시지를 다시 켜신 겁니까?]
[뭐, 생각해 보니 더 이상 차단할 필요가 없더군요. 몇 가지 해결하고 오겠습니다.]
사이토가 메시지의 차단을 풀었다는 것은 더 이상 죽은 듯 살지 않겠다는 것이다. 강진은 사이토의 의중을 짐작하고는 빙그레 웃음 지으며 배낭에서 게이트 스톤을 꺼내 넘겨주었다.
"얼마나 걸리겠냐?"
"한 이틀 정도겠죠. 그 동안 근처에서 사냥이나 하고 계시죠."
"흐음"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머리를 갸웃거리는 케인에게 미안함의 표정을 담뿍 안겨 준 뒤 사이토는 강진을 바라보았다. 강진의 말에 뭔가 크게 감동하거나 대단한 사실을 깨달은 것은 아니었다. 그것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들이다. 그러나 자고로 아는 것은 쉽지만 실천하는 것은 어려운 법 사실 사이토는 망설이고 있었다. 흐르는 현실 속에 가볍게 몸을 맡기고 있었다. 그러나 조금정도 주위를 둘러볼 때가 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하하"
"몸조심하시길..."
강진으로부터 게이트스톤을 받은 사이토는 지체 없이 아리유로 날아갔다. 워낙 서둘러 움직였기에 그가 아리유에 다시 돌아온 것은 그날 저녁... 사이토는 성문을 지나 수도 중앙의 한 거대한 건물로 성큼성큼 들어섰다. 건물은 삼층으로 되어 있었고 사이토가 들어간 곳에는 갖가지 무기와 생활에 필요한 아이템들이 진열 되어 있다.
"예! 항상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레드플러그 길드 백화점에 오신 것을... 앗! 사이토님!"
카운터를 맡고 있던 붉은 제복차림의 드워프 여자 점원이 사이토를 알아보며 반갑게 손을 흔든다. 너무나 그를 반갑게 맞이하기에 어설픈 웃음으로 얼떨결에 마주 손을 흔드는 사이토.. 사실 그녀는 과거에 딱 한번 스치듯이 인사를 나눈 사이이다. 사이토는 속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잘 아는 만큼 일의 처리는 편하리라.
"죽어 계셨던 것 아니었어요?"
"하하, 멀린씨가 입이 좀 가벼운가 보군요. 그렇게 신신당부를 했건만..."
사이토의 말에 그녀는 정색을 하며 답한다.
"아뇨, 당시 그 음모에 저도 한발 걸쳐진 상태라서 좀 아는 것 뿐 다른 길드원들은 모른답니다."
"아, 그런가요? 그런데 혹시 멀린씨 계십니까?"
"지금은 접속하지 않으셨는데요. 미리 그분과 메시지 하지 않으신 건가요?"
"예에, 직접 만나고 할 이야기가 있어서..."
점원의 말에 사이토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사이토는 기왕이면 메시지보다는 직접 얼굴을 보며 용건을 꺼내고 싶었다. 솔직히 지금 그가 하려는 일은 좀 그의 성격에 맞지 않는 짓이려니와 또 어찌 보면 꽤나 심각한 일이 될 수도 있는 일이기에 최대한 정성을 기울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후우, 어쩐다."
"꼭 길드마스터님이 아니더라도 저에게 말씀해 보시죠. 제가 길드마스터님만큼은 아니더라도 최선을 다해 일을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그녀의 말에 사이토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곧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에게 두 개의 영상 크리스탈을 부탁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한 명의 길드원이 고급스러워 보이는 크리스탈 두 개를 가지고 문으로 들어온다. 그것을 받아든 사이토는 잠시 그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따로이 한쪽 방으로 들어가 그 크리스탈들에 메시지들을 저장했다.
"자... 여기 있습니다. 이것을 노인정 길드와 데스 스타길드의 길드마스터님들에게 각각 전해주시면 됩니다. 사실 제가 직접 찾아 뵙고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만 그분들의 위치도 정확히 모르려니와 제가 조금 바쁜 관계로 어쩔 수 없이 레드플러그 길드 분들의 손을 빌리게 되었습니다. 최대한 빨리 부탁드립니다."
"예! 특급으로 전해 드리죠."
힘차게 사이토에게 대답하는 그녀, 드워프 특유의 박력으로 인해 영 적응되지 않는다. 이용요금을 내려는 사이토에게 절대 받을 수 없다고 두 손을 뒤로 감추는 그녀... 사이토는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꾸벅했다.
"그럼 이만..."
"잠시만요. 이것 좀..."
인사를 하고 문을 나서려는 사이토를 그녀가 붙잡았다. 그녀의 손에 들린 건 작은 펜...
"이건 왜...?"
"사..사인해 주세요."
드워프만의 강인한 팔뚝을 수줍게 내미는 그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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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게임 소설 안에 어떤 좋은 교훈이나 가치를 넣어야 한다는 그런 건 없습니다.
그렇지만, 데자부는 조금 욕심을 부리는 군요. 저 위에 나오는 그런 교훈, 저 위에서는 단정적으로 썼지만, 사실 저건 꽤 생각해 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사이토가 가진 성격의 문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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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회하는 자 케인 볼일을 끝낸 사이토는 그대로 곧장 아리유를 나섰다. 사실 쿰반다에 레드플러그 길드의 분점이 있다면 그쪽에 맡겼겠지만, 안타깝게도 그곳에는 분점이 없었다. 갑작스런 그의 일로 쿰반다에서 그를 기다릴 일행들을 생각하며 사이토는 말의 박차를 가했다.
"그런데, 잘 한 일일까?"
한참동안 길을 달리던 사이토는 눈앞에 초보자 필드의 경계가 가까워 오자, 말의 속도를 줄이며 중얼거렸다. 그가 크리스털의 담은 내용은 사실 그가 살아있다는 것과 일을 뻔히 알면서도 죽은 척 하고 있어 심려를 끼쳐 미안하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금 그가 하고 있는 일과 오카리나와 가이아에 얽힌 이야기, 마지막으로 앞으로 닥쳐 올 초기화에 다한 이야기까지 모두 넣어 놓았다. 그 사실을 듣고 그들이 어떤 반응을 일으킬지는 그 자신도 알 수 없다.
"뭐, 그래도 기분은 좋군."
한결 가벼운 기분에 사이토는 온몸에 기지개를 켠 뒤 말에서 내려섰다. 배낭에서 게이트 스톤을 꺼내들은 사이토는 조용히 시동어를 읊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빌로아의 초보자 경계를 가르는 표지판 옆으로 게이트스톤의 붉은 빛이 넓게 생성되었다. 빛이 사라진 후 나타난 것은 네 마리의 말과 네 명의 남자... 주변을 둘러보던 키 작은 사가 머리를 긁적이며 옆의 인영에게 말을 붙인다.
"끙, 뭔가 엄청나게 빨리 온 느낌이군. 너무 서두른 것 아닌가?"
"그러게요. 정작 재촉한 저 자신도 너무 빨리 온 느낌에 얼떨떨 하네요?"
그들은 거의 한시도 쉬지 않고 쿰반다에서 내달렸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빨랐는지 아리유에서 쿰반다로 돌아온 사이토가 차 한 잔 마시기도 전에 일행은 쿰반다를 벗어나 빌로아로 내달렸던 것이다. 왜 그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말을 타고 케인을 뒤따르던 사이토가 갑작스레 말의 속도를 높이는 것이 시발점이었다. 다른 이들은 얼떨결에 사이토의 속도에 맞췄다는 점, 그리고 그 속도 그대로 평소에 하루가 걸릴 거리를 거의 4시간만에 주파하고 그대로 게이트 스톤을 사용했다는 점 마지막으로 그 일은 수차례 반복되었으며 그 때문에 그 누구도 식사 한 끼 재대로 못했건만, 정작 본인들은 왜 자신들이 그렇게 성급하게 말을 몰았는지 몰랐다는 것이다.
"끙, 꼭 누군가가 우리를 조종하는 것 같군요."
"설마..."
강진과 케인의 대화, 그들의 이야기를 옆에서 듣던 사이토는 불현듯 오카리나를 떠올렸다. 그녀라면 충분히 하고도 남을 능력이다. 그러나 그는 곧 고개를 저었다. 지금까지 그녀는 단 한 번의 터치도 없었다. 그리고 만약 자신과 더 빨리 만나기를 바란다면 지금처럼 거추장스런 퀘스트들을 지나 최종 퀘스트에서 만나자는 짓도 하지 않으리라.
"일단 빌로아로 들어가죠. 제 집으로 초대하겠습니다."
"그러지."
사이토는 말에 올라타 말머리를 빌로아 쪽으로 향했다. 차가운 밤바람이 그의 머리를 제멋대로 휘저으며 지나간다. 빌로아의 계절은 항상 무겁게 가라앉은 가을... 그 자체였다. 먼 곳에서 동이 터오기 시작한다. 사이토가 이 도시를 도망치듯 빠져 나왔던 것은 정오의 햇살이 눈부실 때였고, 그가 돌아온 때는 새벽이었다.
[락온...]
철컥...
오랜만에 주인을 맞이한다는 듯 저택의 문은 서서히 열렸다. 그리 익숙하지 않은 발길로 저택 안으로 들어서는 사이토... 이곳은 아직 낯설다.
"모두 피곤하셨을 테니, 일단 짐을 푸시죠. 손님방은 2층에 마련되어 있으니 마음에 드시는 방으로 골라 잡으시구요."
"그러지."
케인들이 모두 2층으로 올라간 후, 사이토는 지하에 있는 할아버지의 창고로 내려갔다. 철문의 육중한 소음이 들려오고 창고 안으로는 아스라한 빛을 내뿜는 철제 무기들이 과거와 같은 모습으로 진열되어 있었다.
"하핫, 예전 그대로네?"
창고 안으로 들어서던 사이토는 방 한켠에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금화들을 바라보며 실소를 터뜨렸다. 예전 질리언이라는 운영자의 농간으로 킬트길드라는 살인자 길드에 떨어졌을 때 킬트길드의 보물창고에서 털어왔던 것이었다. 사이토는 배낭을 풀어 그동안 여행중에 얻었던 아이템들 중 쓸모있는 것들을 모두 빼내었다. 쓰다만 아다만티움과 미스릴 조각, 하르페, 예비용 단검, 투척용 단검등이 나온다. 그것들을 진열대에 차곡차곡 정리한 사이토는 다시금 창고에 진열된 아이템 중 필요한 것들을 배낭에 챙겨 넣었다.
일을 마친 사이토... 조용히 주변을 둘러본다. 문득 벽에 걸린 고풍스러운 검의 겉면으로 그것을 만들고 계셨을 할아버지의 모습이 투영된다. 그것들을 모두 할아버지의 손길로 만들어진 것, 그 분의 발자취... 사이토는 가슴을 치고 올라오는 그 복받침을 밝은 미소와 작은 눈물로 털어냈다.
"자! 다시 시작이다! 절대 이것들을 초기화 시킬 수는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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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아직 연참신공이 모잘라서리... 그래도 간만에 소설에 집중을 했더니, 좀 많이 써지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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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셀리온호수 아침 일찍 짐을 챙긴 그들은 동이 트기 전 거리로 나섰다. 목표로 하는 곳은 엑셀리온 호수... 엑셀리온 호수는 빌로아로부터 말을 타고 동남쪽으로 다섯 시간 정도 걸리는 호수였다. 엑셀리온 호수의 쓰임새라면 사냥으로 인해 자칫 무료해 질 수 있는 게임생활속의 작은 배려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전문 낚시꾼의 경우라면 틀리겠지만, 리얼판타지아의 낚시라는 것은 타 게임의 경우와 같이 보물지도나 아이템들을 낚아 올리는 것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손맛을 느끼며 낚시를 하는 것이다. 단지 몇 가지 좋은 것이 있다면, 요리 스킬에 사용할 물고기와 함께 소정의 카르마를 얻는다는 것... 그리고 돌발 퀘스트를 얻을 수 있다는 것과 마지막으로 낚시를 하면 할수록 캐릭터의 카오스 수치를 떨어뜨려 준다는 것이었다. 주로 이런 이유로 엑셀리온 호수로 가는 이들은 갱생을 위한 살인자들이나 낚시를 즐기는 이들을 빼면 별로 없었다. 또한 그에 따라 그런 살인자들만을 전문으로 사냥하는 헌터들도 출연하는 곳이 바로 이 엑셀리온 호수였다.
"일단 파티 먼저 맺지."
루피아가 말했다. 지금부터는 함께 퀘스트를 해결하기로 한 것, 물론 혼자해도 괜찮지만, 더욱 빠른 퀘스트 해결을 위해 힘을 모으기로 한 것이다.
"아니, 아직 올 사람이 남았어."
사이토는 근처 술집을 가리키며 말했다.
"조금 기다려야 할 것 같군요. 모두 이리로..."
사이토의 말에 따라 술집에 들어선 그들은 적당한 자리를 찾아 앉았다. 하얀 로브로 온 몸을 가린 케인, 그러나 굳이 살인자의 붉은 표식을 숨기려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케인님 괜찮겠습니까? 그곳에는 아시다시피 전문 헌터들이 있을 텐데..."
강진이 걱정스러운 듯 케인에게 말한다. 팔짱을 끼고 있던 케인이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낮게 대답했다.
"내 게임 생애에 오는 싸움 말린 적은 없었단다. 물론 죽기도 세 네 번 죽었지. 그렇지만 그런 것을 감수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즐거움을 느끼는 전투를 할 수 없어. 굳이 케릭터의 안전 때문에 도망치는 짓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난 이제 이 게임의 마지막 히든피스를 찾아야 해. 솔직히 인간들을 잡는 게 계급상승에는 더 좋다. 물론 죽지 않는다는 전제하지만..."
케인은 꽤 오랫동안 이야기했다. 이례적일 정도로 긴 시간, 그의 말을 조용히 경청하던 사이토는 마지막 히든 피스라는 말에 케인에게 물었다.
"마지막 히든 피스가 무슨 말입니까?"
사이토의 물음에 강진과 루피아 케인은 갑자기 사이토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것도 몰랐냐?"
루피아가 말했다. 볼을 긁적이는 사이토... 히든 피스라더니 강진과 루피아도 알고 있는 듯하다.
"넌 어째 그 계급에 아는 것 보다 모르는 게 더 많냐? 잘 들어봐. 그러니까... 지금까지 리얼판 타지아에는 수많은 9계급들이 나타났어. 뭐... 역사가 있는 게임인 만큼 그건 당연한 거고, 그 중에는 정말 괴물 같은 녀석들도 많았지."
"그런데?"
흥미를 느낀 사이토가 케인의 말을 재촉한다.
"흐음, 그런데 그들 중 신권클래스 그러니까 무투가의 9계급 녀석 중에 '사신' 이라는 놈이 있었지. 그런데 그녀석이 그런 말을 했어. '최후의 땅을 밟는 이... 그곳에 더 높은 곳으로 향하는 길이 있을 것이다.' 물론 녀석은 중국 유저였기 때문에 '천외천'이라는 단어를 쓰기는 했지만, 그 말은 아주 간단한 말이었지. 녀석은 당시에 9계급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녀석이었어. 마치 계급이 없는 듯 움직였지. 빠르면서도 강한 건 당연한 거고, 9계급 네 다섯 명이 덤벼도 평수를 이룰 정도였지. 그래서 그 말이 있은 후로 게임사는 엄청난 곤혹을 치렀다고 하더군."
"무슨..."
"아아, 그건 내가 설명하지."
강진이 케인의 말을 끊으며 뒤이어 사이토에게 그 일에 대해 설명했다.
"엄청났죠. 물론 그건 약 9년 전, 제가 갓 입사했을 때 일입니다. 한 마디로 그 얘기는 9계급에서 더 높은 곳으로 향할 수 있는 히든 피스가 존재한다는 소리였죠. 그래서 게임사에 그 히든피스에 대한 문의가 쇄도한 것입니다. 물론 게임사에서는 극구 입을 다물었죠."
"그럼 그 '사신'이라는 사람은 어떻게 됐습니까?"
"그는 현재 리얼판타지아사에서 무급 운영자로 활동 중입니다. 무급 운영자 천,지,인 중 '천' 으로써 말이죠."
강진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술집의 문이 천천히 열렸다. 한명의 여성 검사가 문을 열고 들어와 술집 안을 둘러본다.
" 밀레나 여기야."
그녀가 올 것을 이미 알고 있던 사이토는 손을 들어 그녀를 불렀다. 이것이 그녀와의 약속이었다. 지금부터 사이토의 길에 합류하겠다는 것, 그리고 가이아와의 일을 마무리 짓겠다는 것.. 사이토는 거절 할 수 없었다. 그 만큼 그녀의 고집은 강했다.
"안녕하세요. 현재 싸울아비 8계급 초급의 길을 걷고 있는 밀레나라고 합니다."
처음 보는 이들이라 그런지 밀레나는 딱딱한 어조로 자신을 소개했다. 놀라는 표정의 일행들... 사이토가 누군가 더 합류한다고는 말했지만 여성이라고는 생각 못한 듯하다.
[브랜은?]
사이토가 메시지를 이용해 물었다. 밀레나가 나타났는데 브랜이 안나타났다는 것이 이상했다.
[오빠는 오늘 일이 있어서 접속 못했어요.]
어깨를 으쓱하는 밀레나이다.
"브랜 녀석을 잘 있소?"
케인은 이미 브랜과 안면이 있었기에 밀레나에게 그의 안부를 물었다.
"네."
[사실 오빠는 내가 여기 온 줄 몰라. 이 일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그래.]
케인의 말에 대답하며 밀레나는 사이토에게 대략의 사정을 전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토...
"자! 올 사람은 다 왔겠지? 이제 출발할까?"
케인이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를 따라 일어서는 사이토들... 잠시 후 거리를 나선 그들은 함께 파티를 맺고 몇 가지 물품을 구입한 뒤 포탈로 향했다.
"어디로 향하십니까?"
포탈을 맡고 있는 NPC가 사이토에게 물었다.
"엑셀리온 호수입니다."
"준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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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삭제 들어가야 겠죠.. 15일날 나온답니다.~-ㅂ-~ 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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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셀리온호수 엑셀리온 호수에 도착한 사이토는 일단 나침반을 꺼내 들었다. 어차피 퀘스트의 단서라고는 예전에 레미가 넘겨준 스크롤과 세인트요나르... 그리 긴 퀘스트가 되지 않을 듯 하여 캐러밴은 사지 않았다.
"흐음, 힐러가 없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리는군요."
네크로맨서용 완드를 손에 쥔 강진이 걱정스러운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힐러가 없기에 각자 상비용 체력 물약을 넉넉히 챙기기는 했지만, 그것이 힐러의 부제를 완벽하게 대체해 줄 수는 없다.
"후훗, 녀석아. 이정도 파티면 오우거 백 마리도 한 타임이다."
케인의 짐을 모두 사이토의 집에 두고 왔기에 루피아는 오랜만에 가쁜한 마음으로 무라마사를 꺼내 들어 가볍게 그어댔다. 확실히 현재의 파티는 최고급 중에 최고급이라고 말할 만했다. 비록 힐러 계열이 없다고 하지만 루피아와 케인, 그리고 밀레나는 각각 9계급과 8계급들이었다. 그리고 각종 함정과 적 탐색을 할 사이토 또한 9계급 중급, 그리고 후방에서 마법지원을 할 강진 또한 7계급에 달하는 '다크니스 네크로맨서' 였다.
"글세, 내 걱정이 기우로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지."
가을의 축복을 받아 푸르름으로 영글어가는 거대한 수림들 사이로 난 오솔길... 눈앞으로는 정오의 햇살을 받아 맑게 빛나는 엑셀리온 호수가 빛나고 있다. 길을 내려가며 마주친 것이라곤 두 명의 유저와 네다섯 마리의 놀로 구성된 몬스터 무리들뿐이었다.
"보자..."
사이토는 스크롤을 펼쳐 내용을 확인했다. 이전에 한 번 훑어 보기는 했지만, 스크롤에 적혀 있는 것은 별것 없었다. 그곳에는 단지 휘갈겨 쓴 글씨로 '세인트 요나르 필요, 가디언의 존재 확인, 신전의 입구를 찾아라.' 정도였다. 한숨을 내쉬는 사이토, 밀레나가 곁으로 다가와 스크롤을 함께 보며 턱을 매만진다. 그녀로써도 그 내용만으로는 퀘스트 진행을 짐작하기는 힘들었다.
"이곳도 오랜만이군."
"흠, 영감... 여기도 다녀갔소?"
케인의 말에 루피아가 대꾸한다. 영감이라는 말이 그의 신경을 자극하는지 루피아를 한 번 찌릿 노려본 케인이 말을 이었다.
"아마, 지금 사이토녀석이 하고 있는 퀘스트와 비슷했지. 당시에 나는 두 명의 NPC동료들과 이 엑셀리온에 산다는 씨 서펜트... 그러니까 수룡을 잡는 퀘스트를 했었어. 아! 그런데 마침 그 NPC동료 중 한녀석이 갑자기 적으로 변한거야."
"오호.. 그래서요?"
루피아가 흥미가 동한 다는 듯 재차 물었다.
"일단 뭐, 적으로 돌변한 이상, 사정 안 봐주고, 죽여 버렸지. 그리고 그 녀석 짐을 조사해 보니까, 알고 보니 그녀석 자체가 퀘스트를 해결하는 열쇠였더군. 원래는 녀석을 회유해서 다시 우리편으로 만들었어야 했는데, 내가 아무 생각없이 죽여버린게 실수 였어. 뭐... 그 일 이후로 몇 번 더 퀘스트에 도전해서 퀘스트를 해결하기는 했지만, 난 거기에서 퀘스트의 오묘함을 깨달았지."
"뭔데요?"
"그건, 퀘스트를 해결하는 이가 진정으로 퀘스트를 현실과 같이 생각하지 않으면, 해결하기 힘들다는 거야. 뭐 그런 거지."
케인의 말이 끝나갈 때 즈음 일행들은 엑셀리온 호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엑셀리온 호수는 수림 사이로 보던 것과는 틀리게 상당히 넓었다. 대략 적으로 유추해봐도 거의 4~5 킬로미터는 될 성 싶다. 둥글 둥글한 모양으로 보이는 엑셀리온 호수 주변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멀리 보이는 것은 낚시 전문점 하나, 그리고 정오의 햇살을 만끽하며 낚시를 즐기고 있는 네 명의 유저들뿐이었다.
"일단 정보 수집이 먼저겠군요."
엑셀리온 호수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던 사이토는 일행들을 둘러보며 그의 의견을 말했다. 엑셀리온 호수에 잠들어 있다는 여신 에루딘의 신기, 세인트 요나르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 무지개 빛 보석과 레미의 스크롤 만으로는 단서가 부족했다. 실마리가 잡히지 않을 때는 역시 정보 수집이 최고, 단서는 항상 퀘스트 주변에 숨어 있다는 것은 게임 진행의 기본 지식이었다. 일행들은 각자 따로 따로 흩어져 정보를 얻기로 했다. 케인이 조금 염려스럽기는 하지만, 케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기에 혼자 행동하게 놔두기로 했다. 사이토와 밀레나가 한 조... 호수의 크기가 크기인 만큼 네 시간 후에 다시 이 자리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일행을 뿔뿔이 흩어졌다.
"저, 케인이라는 분, 오빠에게 듣던 것과는 많이 다르네요?"
"브랜이 그렇게 말해?"
"네. 오빠에게 듣기로는 꽤 난폭하신 분이라고 했거든요. 처음에 많이 긴장했는데 의외로 사근사 근하시네요."
밀레나의 말에 사이토는 피식 웃었다. 사실 케인과 지낸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그가 여자를 좀 밝힌다는 것은 이미 어느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물론 좋게 말해 매너가 좋다는 것이겠지만... 사이토와 밀레나는 함께 엑셀리온 호수 옆에 자리한 낚시 전문점으로 향했다. 케인은 숲 사이로 사라졌고, 루피아는 호수를 한바퀴 돌아보기로, 그리고 강진은 다른 유저들에게 정보를 수집하기로 했다.
"실례하겠습니다."
낚시 전문점은 그리 크지 않았다. 대략 6평 정도의 판자로 만들어진 작은 노점과 뒤로는 작은 창고 하나가 보일 뿐이다. 가게 안으로 보이는 것은 흔들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NPC노인 하나와 그 노인의 무릎에 앉아 골골 거리는 검은 고양이 한 마리뿐이었다. 사이토는 상점 앞에 설치된 카운터의 작은 종을 울려 주인을 불렀다.
"으음, 손님인가? 쟈스.. 좀 비켜주렴."
노인은 책을 내려놓고는 무릎의 고양이를 조심스레 들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고양이는 노인의 발 주변을 몸으로 쓸며 골골대다가 곧 구석에 있는 작은 바구니 안으로 쏙 들어갔다.
"오, 이게 누군가. 사이토! 오랜만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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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셀리온호수 "네?"
NPC 노인이 주름살이 성글성글한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반갑게 맞이하자 사이토는 당황했다. 그리고 생각난 건, 그의 할아버지... 이 노인과 할아버지는 꽤나 친분이 있는 듯하다.
"음, 일이 좀 있었지."
"한 동안 뜸하더니, 바빴나 보군. 그래. 뭘 사러 왔나? 항상 혼자 오더니 오늘은 옆에 이쁜 처자까지 대동하고... 음? 그런데 자네 낚싯대는 어디에 팔아먹었나? 쯧쯔... 낚시하러 온 사람이 낚싯대를 안 가져오다니... 전쟁터에 나가면 싸움도 하기 전에 말에 밟혀 죽겠구만... 하하하."
노인은 오랜만에 보는 친구를 보는 양 두서없이 많은 이야기를 꺼냈다. 사이토는 밀레나에게 예전에 할아버지와 친분이 있는 NPC라는 것을 설명하며 그의 말에 대답했다.
"으음, 오늘은 낚시하러 온 것이 아니네. 사실은 내가 요즘 어떤 일을 맡았는데... 자네 혹시 이 엑셀리온 호수에 잠들어 있다는 여신 에루딘에 대해서 뭐 알고 있는 거 있나?"
사이토의 말에 노인은 잠시 생각하는 듯 머리를 갸웃 거리다가 사이토의 말에 대답했다.
"여신 에루딘이라... 뭐, 그 이야기는 조금 알지. 과거 몬스터의 침공 때 그 몬스터들을 막아냈던 엑셀리온 호수의 여신 에루딘이 당시에 힘을 너무나 많이 사용한 나머지, 잠에 빠졌다는 이야기지. 어때, 도움이 되었나?"
노인의 말에 사이토는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이야기는 자신도 알고 있는 이야기... 눈치를 보아하니, 더 이상 아는 바가 없는 듯하다.
"그럼 혹시, 그 여신의 신전으로 들어가는 입구 같은 건 아는가? 전설이라도 좋으니 좀 말해주게."
"글세, 나도 금시초문이로군. 예전에 몇 몇 사람들이 찾아와 묻더니, 자네도 비슷한 걸 찾는 모양이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재차 물었지만, 노인은 어깨를 으쓱하며 '몰라서 미안해. '라는 뜻을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어쩌지?"
사이토는 옆에 선 밀레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잠시 생각하던 밀레나가 사이토에게 말한다.
"그럼, 그 스크롤을 보여주면서 한 번 물어봐요. 어쩌면 알지도 모르잖아요."
"아, 그 수가 있군."
사이토는 허리춤에 끼워 놨던 스크롤을 꺼내 노인의 앞에 펼쳤다.
"그럼 이것이 무었을 뜻하는지는 아나?"
노인은 사이토가 카운터 위에 펼쳐 놓은 스크롤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문득 바구니 안에 들어있던 검은 고양이가 사이토를 힐끔 보더니 노인의 옆으로 다가와 카운터 위로 훌쩍 뛰어 올라 그 스크롤을 유심히 쳐다보기 시작한다.
"냐옹..."
고양이는 노인을 향해 작게 울며 작은 발로 머리를 슥슥 긁었다.
"음, 쟈스 배고픈 거니? 조금만 기다려라."
"냐옹... 갸르릉...갸르릉"
"하하, 녀석도 참 알았다. 미안하지만 이 녀석 밥 좀 먹여야 겠네. 괜찮겠지?"
노인이 양해를 구하자 사이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웬지 고양이가 수상쩍게 느껴진다. 노인이 노점의 뒷문으로 나간 뒤 카운터 위에 앉아 있던 고양이는 천천히 정성스럽게 앞발에 핥았다. 그러다가 사이토의 시선을 느낀 듯 그를 마주 쳐다본다. 문득 고양이의 큰 눈이 얇게 빛난다.
"흐흥, 여신 에루딘에게 무슨 볼일인가... 인간..."
고양이의 위로 퀘스트의 시작을 알리는 글씨가 작게 피어올랐다. 고양이을 쓰다듬어 주려 손을 내밀던 밀레나는 깜짝 놀라 손을 거둔다. 사이토는 드디어 퀘스트의 실마리를 잡았다는 생각에 자신이 이곳에 찾아온 이유를 말하려 했다. 그렇지만 그 의도는 고양이의 뒤이은 나온 말에 끊기고 말았다.
"거기, 기왕에 내민 손, 아깝게 그냥 넣지 말고... 여기 등 좀 긁어봐. 발이 잘 안 닿아 요즘 힘들다구."
"아아, 응."
천연덕스럽게 등을 내미는 고양이, 밀레나는 순순히 손을 내밀어 등을 긁어 주었다. 한참을 골골거리며 기분 좋음을 표시하던 고양이는 잠시 후 한결 나아졌다는 듯 한쪽입가를 삐죽이 올리며 사이토에게 말했다.
"정식으로 소개하지. 나는 에루딘 여신님의 신전으로 향하는 문을 지키는 첫째 문지기... 쟈스민 루브라고 한다. 보통 쟈스라고 부르니 그렇게 알고, 그래 무슨 일로 여신님에게 향하는 길을 묻는 건가? 으음, 그 손 참 시원하군. 좀 더 긁어줘."
한참 정색을 하며 자신을 소개하던 고양이가 다시금 등을 내밀자 밀레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고양이의 등을 계속 긁어주었고 고양이는 에루딘 여신의 첫 번째 문지기라는 신분도 잊은 듯 체통 없이 골골대며 좋아했다.
"저희는 요즘 카마프라하 왕국에 일어나는 일련의 몬스터 준동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사하던 중에 과거 지금과 비슷한 몬스터의 준동 때, 여신 에루딘께서 그 몬스터들을 막으시고 힘의 소진으로 인해 이 곳에 잠드셨다고 알게 되었습니다."
사이토는 쟈스라는 고양이에게 세인트 요나르를 보여주었다. 그 보석을 한참동안 쳐다보던 쟈스는 곧 사이토를 향해 고개를 들며 말했다.
"이 물건이라면 나도 알고 있지. 여신님의 신기를 다시 보게 될 줄이야. 여신님께서 언젠가 운명이 정한 이가 이것을 다시 들고 나타날 거라고 예언하시며 잠드시기는 했지만, 오늘이 될 줄은 몰랐군."
쟈스의 말에 사이토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고양이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퀘스트가 순조롭게 진행 되는 것 같다. 그러나 고양이는 이내 눈을 날카롭게 뜨며 사이토의 그런 생각에 제동을 걸었다.
"그러나, 자네 뭔가 좀 잘못 알고 있군."
"무었을 말입니까?"
사이토는 최대한 공손하게 대답했다. 명색이 문지기라면 상당한 지위에 있는 신이라던가 신수일 가능성이 높기도 하려니와 공손해서 손해 볼 것은 없다.
"여신 에루딘은 힘을 다 소진하여 이곳에 잠드신 게 아냐. 그건 인간들이 자신들의 죄악을 은폐하기 위해 역사를 조작한 것일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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빰빠라밤~ 드디어 300회군요.=-ㅂ-=~ 요호 요호~ 끙;; 뭔가 이벤트를 하지 않으면 안될 듯한 위기가;;; (찌릿 찌릿) 으음, 사실 제가 좀 무심한 편이지요. 이렇게 저의 글을 사랑해 주시는 분들을..ㅜㅜ.. 그런데...1,2 권이... 모두;; 없습니다. 이곳 저곳 뿌리다 보니..ㅜㅜ.;; 으음.. 아무튼.. 근 시일내에 이벤트를 해야 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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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입니다.
안녕 하세요. 리얼판타지아의 날림, 개허접, 초보, 극악 작가 데자부입니다. _(__)_ 이벤트도 아닌 것... 연중 공지도 아닙니다. (아아, 거기 긴장하지 마시구요.) 오늘 이렇게 여러분에게 갑자기 공지를 드리게 된 것은 다름이 아니오라... 불펌의 문제입니다.
조아라가 불펌이 된 이 후... 조금 정도 안심이 되었습니다. (뭐, 제가 불펌에 대해 안심했다는데 에 항의하실 독자님들을 없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작가의 기본적인 권리 겠죠?) 그런 와중에 또 다시 듣게 되는 군요. 당당하게도 다음까페를 활보하고 다니는 유출본들... 또 다시 옛날의 했던 그 짓거리들을 다시 해야 하는가? 그 수많은 까페들을 일일이 가입해가지고 "지워 주세요. 제 발," 이렇게 간청해야 하는가...(사실 ' C발 ' 이라고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이런... 것들이 돌아댕기는 와중에 저는 고민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싸리.. 그냥 비밀 까페 하나 만들고, 지인들만 보라고 할까..."
그러나, 얼마 안되지만, 이런 개허접한 저의 글을 사랑해 주시고, 아껴주시고~ 귀찮으나마 추천, 혹은 코맨트를 날리셔서 저에게 기쁨을 주시는 분들이 있으시기에 이 생각은 과감히 접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냥 불펌 당하면서...(읽어 주시는 것만도 감지 덕지지요.) 라고 하느냐... 조금..힘 들죠. 후우..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저도 약간 강력한 카드를 꺼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삭제를 아주 아주 하드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의견으로는 "홍정태님 왈: 나처 럼 아침에 올리고 저녁 때 잘라라." 가 있었지만, 그것은 행여 며칠에 한 번씩 들어오시는 분들의 사정을 고려... 딱 3일 안에 자르겠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항의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저의 글이 제 허락없이 돌아다니는 것은 작가의 입장에서 그리 환영할 만한 것은 아닙니다. 아직 많은 것이 부족한 것이 사실인 소설이나마... 저 의 아이입니다. 많이 부족한 데자부입니다. 이런식의 결단을 내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을...용서해 주십시오. 그러나 계속해서 저의 글을 불펌하시는 분들이 나올 경우에는... 그 3일이라는 시간도 하루씩 잘라 버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고개 숙여 사죄 드립니다.
ps. 그런데 불펌하시는 분... 편집 잘해 주셨더군요. 읽기 편하게...
-덧붙입니다. 죄송합니다. 4권 분량의 불펌을 본 순간..빡이 돌아버렸습니다. -_-...
심정 같아서는 정말 정태씨의 말을 듣고 싶군요... 너무 하시는 거 아닙니다?
곧 책으로 나올 것들입니다. 이제 며칠뒤면 곧 나올 것들이란 말입니다.
정말이지... 열 받게 만드는 ..군요...
..... 이제부터..방침 변경입니다... 저를 욕하지 말아주세요.. 저는.. 리얼판타지아 끝날 때까지 이 곳에 연제하겠습니다. 이건 약속이기에 지킵니다. 약속은 소중한 겁니다. 약속은 신용이기에 져버리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조금 더 강하게 끊어야 하겠다는 마음이 드는 군요... 어쩌면 .. 아니..거의.. 다음 후속작은... 이곳이 아닐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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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셀리온 호수 쟈스는 먼 옛날을 회상하는 듯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오색으로 영롱하게 빛나는 호수를 바라보았다. 숙연해지는 사이토와 밀레나... 그들 앞에 앉은 작은 고양이의 카리스마에 도취된 듯 하다. 갑자기 쟈스의 귀가 쫑긋 쫑긋 움직인다.
"킁, 늙은이가 오기 시작했군. 나머지 이야기는 있다가 밤 1시 즈음에 이 앞에서 보자구."
쟈스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노점의 뒷문이 열리며 노인이 걸어들어온다. 손에 들린 것은 잘 익은 물고기 세 마리... 노인이 쟈스를 향해 그 물고기들을 흔들어대자 쟈스는 사이토와 밀레나에게 보여줬던 카리스마는 어디에 팔아먹었는지, 눈이 반짝 반짝 빛나며 노인에게 달려갔다.
"니아아앙~"
뒷발로 엉거주춤 서서 노인이 이리 저리 흔들어대는 물고기를 앞발로 탁탁 친다. 꽤나 귀여운 자세... 사이토와 밀레나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약속시간이 되어 사이토와 밀레나 케인, 루피아, 강진은 약속장소에 모였다. 강진과 루피아는 아무런 소득이 없는지 고개만 저었고 케인은 이미 비슷한 퀘스트를 해결해 본 경험이 있는지 특이한 모양으로 배치된 바위들을 이야기했다. 대략 호수의 남쪽 가장자리를 걷다보면 오망성을 닮은 바위들이 있다는 것... 사이토와 밀레나가 낚시 전문점에서 쟈스민루브라는 검은 고양이와의 일을 일행들에게 말해주자 일행들은 그나마 다행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일행들은 밤이 되기까지 기다리기 위해 호수 근처에서 야영을 준비했다. 특별히 몬스터는 없기에 안전지대를 설치하지 않기로 한 사이토는 조금 전에 갔었던 낚시 전문점에서 적당한 낚싯대를 사다가 호수에 찌를 드리웠다. 하나 둘씩 잡혀 나오는 물고기들... 거의 분당 세 네 마리가 잡혀 올라온다. 요리는 케인의 몫, 게임의 연륜이 있어서인지 요리스킬이 상당히 높았다. 케인이 요리를 준비하는 사이, 밀레나는 사이토의 옆에서 찌가 움직이는 것을 구경했고 강진과 루피아는 근처 몬스터들의 신상조회 및 즉석처단하기 위해 자리를 비웠다. 잡히는 물고기가 많은지라 케인의 손은 정신없이 움직인다. 굽고, 찌고, 삶고, 회를 뜨고, 그의 뒷춤에 항상 끼워져 있는 단검이 단순히 투척용이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듯 그의 회뜨는 솜씨는 신기에 가까웠다. 그 때...
피융...
한 대의 화살이 케인의 머리를 향해 날아왔다. 한창 낚시에 열중하고 있는 사이토의 식스센스에도 걸리지 않을 원거리에서 발사했는지 사이토 또한 눈치채지 못했다. 자신의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화살을 알아채지 못했는지 요리에만 열중하는 케인... 화살이 거의 머리에 거의 가까워 왔을 무렵, 케인의 단검이 빠르게 움직였다.
단검에 부딪친 화살은 스킬이 걸려 있었던 듯 요란한 폭음과 함께 폭발했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는 사이토와 밀레나이다. 케인은 방금 전 화살을 막아낸 단검의 이상유무를 확인하는 듯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곧 허리춤에서 예의 그 '용자의 신검'을 꺼내들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입니까?!"
"아, 아무것도 아니야. 아까 전에 나에게 당했던 녀석들이 패거리를 끌고 온 모양이군. 금방 끝 내고 올 테니, 대어나 한 마리 잡아 놔."
전혀 아무 일도 아닌 듯, 일상에서 일어나는 흔히 근처 상점에 볼일이 있어 잠시 다녀온다는 듯, 평온한 목소리의 케인이다. 뒤이어 네다섯 대의 화살이 연속해서 날아온다. 일견 보기에 적잖은 위력을 갈무리한 듯 범상치 않아 보인다. 그러나 그 화살들은 화살들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케인의 몸 바로 앞에서 뭔가에 부딪친 듯 힘없이 땅에 떨어진다.
"이봐, 꼬맹이들... 아직 정신이 덜 들었나? 네 놈들이 살인자를 목표로 사냥을 하는 것은 뭐라고 하지 않겠지만, 번지수를 한참 잘못 잡았다는 생각은 그 멍청한 골통에서 감을 잡지 못하는가?"
상대를 도발하는 듯, 케인은 입가에 비웃음을 한껏 담은 채 그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잠시 웅성거리더니 곧이어 풀숲에서 환한 빛줄기가 몇 차례 폭발한다. 그리고 다시금 날아오는 한 대의 화살... 이번 화살은 그 전의 화살들과는 전혀 차별화 된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화살은 기존의 모양이 아닌 흡사 창과 같은 모양의 오오라를 뿜어내며 케인을 향해 날아왔다. 눈가에 이채가 어리는 케인이다.
"오호, 어딘가 믿는 구석이 있군. 8계급 스나이퍼만이 쓸 수 있는 '창궁의 격'라니.."
상대의 대해 감탄하는 듯 하지만, 케인의 입가에 머문 비웃음은 떠날 줄 모른다. 그것은 상대의 대한 경멸의 뜻이 들어 있었다. 케인은 이미 상대를 모두 파악한 상태이다. 상대의 무력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의 비웃음을 자칫 자신의 파멸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상대의 모든 것을 알고 비웃음을 보인다는 건 이미 상대를 충분히 죽일 능력이 된다는 뜻이었다.
케인은 걸어가는 발걸음을 조금도 흩트리지 않은 채, 그 '창궁의 격' 이라는 화살을 그대로 부딪쳐 갔다. 요란한 폭음 소리가 들려온다. 화살에 정면으로 격중 당한 케인의 주위로는 요란한 먼지와 함께 바람이 일었다. 환호와 함께 풀숲에서 뛰어 나오는 한 무리의 파티, 여덟 명으로 구성된 그들은 모두 궁사의 차림이었다.
"새끼! 깝쭉 거리더니 꼴좋다!"
"오빠! 멋져요!"
미처 대응할 틈도 없이 케인이 당해 버리자 그를 구경하고 있던 밀레나는 허리춤의 '스틱스의 검'을 뽑아들고 사이토에게 소리쳤다.
"그대로 있을 거에요?!"
밀레나의 말에 사이토는 한참 입질을 하던 낚싯대를 아깝다는 듯 내려놓고는 방금 전 케인을 저격한 그 파티를 쳐다보았다.
"밀레나..."
"네?"
사이토가 어깨를 으쓱하며 다시금 낚싯대를 잡았다. 케인이 돌아오기 전에 대어 한 마리를 잡기로 마음먹었다. 그가 보기에는 굳이 나설 필요가 없었다. 찌를 바라보며 사이토가 조용히 말한다.
"케인씨는 쇼맨쉽이 상당 하다구."
"?"
케인을 저격한 그들은 이제 대상을 케인의 동료로 보이는 사이토와 밀레나에게 돌렸다. 둘을 바라보는 눈이 험악하게 일그러진다. 일의 발단은 이러했다. 케인은 퀘스트에 관련된 장소를 찾기 위해 예전에 자신이 가봤던 곳들을 기억을 더듬어 천천히 뒤지는 중이었다. 그리고 살인자들을 전문으로 사냥하는 이 궁사파티의 표적이 되었다. 일단 자신을 공격하기에 모조리 몰살시키려던 케인은 그들의 계급이 얼마 되지 않고, 또 여성 유저도 둘씩이나 포함 되어 있었기에 죽이는 대신 갖은 폼을 다하여 그들을 훈계하는 것으로 방향을 돌렸다. 자신들과는 차원이 틀린 유저라는 것을 깨달을 그들은 순순히 물러갔다. 그리고 자신들과 평소 친분이 있는 8계급의 궁사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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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자부 뭐해?"
"놀아요."
"으응~"
"뽀뽀해줘요."
"싫어!"
"히잉...나 요즘 이 틀 연속으로 계속 삼 연참 했단 말이에요. 이쁘니까 ~ 뽀뽀"
"흐응.. 그래? 으음.. 그럼 앞으로 10일 동안 계속 3연참해봐. 그럼 내가 데자부가 해달라는 거 다해줄게."
정적, 환희...
"저.. 정말? +_+"
"당근이지! =ㅂ=/"
이리하여 시작된 데자부의 연참 전쟁... 자 그 결말은 어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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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셀리온 호수 "위치 딱 좋은 걸?"
"에에?!"
사이토와 밀레나의 생사를 각자 상상의 나래를 펴고 마음대로 심사하던 그들은 곧 케인이 서 있던 자리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깜짝 놀라 그쪽을 바라보았다. 먼지가 걷히며 그 사이로 흡사 돌풍과 같은 사나운 검은 바람이 솟구친다. 놀라서 황급히 활을 드는 그들... 그러나 케인이 조금 더 빨랐다.
"아아악!"
케인의 최종기술 '카오스 퍼니쉬먼트'는 파티의 중앙을 꽤 뚫고 지나갔다. '카오스 퍼니쉬먼트'에 충돌한 그들 중 네 명이 그 자리에서 분쇄되며 생을 마감하고 나머지 넷은 멀리 날아가 땅바닥에 처박혀 버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 살아남은 넷은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감도 못 잡고 있다. '카오스 퍼니쉬먼트'가 지나간 자리에는 뒤늦게 후폭풍이 일어나 방금 케인이 사용한 스킬의 강대함을 보여주고 있다. 케인이 있던 자리에서부터 파티를 꿰뚫은 곳까지 일직선의 작은 도랑이 생겼다.
카오스 퍼니쉬먼트를 시전하는 케인의 몸은 나선형으로 회전하는 어둠의 에너지가 그 주무기이다. 이 회전에 걸려든 것들은 모조리 분쇄된다. 예전 사이토가 이 기술을 사용하는 케인과 간신히 무승부를 이루었던 이유는 이미 이 기술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또 회전의 방향을 알아내서 충분한 탄력을 지닌 와이어를 이용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물론 사이토 또한 그 반작용으로 어깨까지 통째로 뜯겨 나가야 했지만 말이다.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 여성 궁사에게 케인은 단검을 던졌다. 뒤이어 검으로 둘을 가차 없이 베어 버린다. 검을 휘두름에 있어 일말의 망설임도 없다. 완벽하고 깨끗하게 일검에 하나씩의 목이 바닥에 구른다. 밀레나는 그리 보기 좋은 장면이 아닌 듯, 고개를 돌렸다. 마지막 한 명 도망치려는 궁사의 등에 검을 박아 넣은 케인은 곧 떨어진 아이템들을 주워 담고는 일행에게로 다가왔다.
"어이, 대어는 아직인가?"
"예."
자리로 돌아온 케인이 사이토에게 묻자 사이토는 방금 낚은 팔뚝만한 물고기를 넘기며 대답했다.
"이 정도면 되겠죠?"
얼마 간의 시간이 지난 후 루피아와 강진이 돌아왔다. 둘 다 그리 기분이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낚시터 주변이라 그런지 그리 큰 몬스터는 발견하지 못한 것이리라. 일행들은 케인의 요리들을 먹으며 쟈스와 만나기로 한 1시까지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담소를 나눴다.
어느새 은빛으로 시리도록 빛나는 둥근 달이 호수의 위로 떠올랐다. 어둠의 장막이 내려앉은 호수는 소름 끼치리 만큼 적막에 싸여 호수를 둘러싼 높다란 수림들은 마치 호수를 지키는 수호신마냥 검은 장막 속에 녹아들어 괴기스럽게 보였다. 어둠의 축복을 받은 엑셀리온 호수도 검은 빛으로 물들어 가고, 단지 유일하게 그 어둠속에서 빛나는 것은 창공의 고고한 달과 호수에 반사된 그 달의 쌍둥이 뿐이다.
"너무 어둡군요."
"그래, 엑셀리온만의 지리적 특색이지. 그래서 이곳은 밤이 되면 초급 사냥터에서 중급의 사냥터로 레벨이 올라가네. 분위기가 분위기인 만큼, 음차원계열 몬스터들이 많이 나타나지."
"예를 들자면..."
사이토의 물음에 케인은 주위를 살피며 대답한다. 흡사 어둠 자체를 경계하는 듯 그의 눈에는 긴장감이 스며들어 있다.
"유령종류의 것들... 종류는 꽤 다채롭지. 가끔 백귀야행이 나타나기도 한다더군."
"백귀야행이라..."
사이토는 음차원 몬스터라는 말에 헬리오스를 검집에 집어넣었다. 헬리오스는 그 잔영을 만드는 옵션을 빼면 평범한 검이다. 지금으로서 쓸 만한 것은 음차원 에너지 검을 만드는 셀레네와 디스코어 뿐... 그의 곁으로 밀레나가 가까이 붙었다. 그녀도 역시 어쩔 수 없는지 유령이라는 말에 긴장해 버리고 말았다. 백귀야행이라는 것은 하나의 유령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수십.. 혹은 수백의 유령들이 일정한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행렬을 말하는 것이다. 비록 이쪽에서 먼저 공격하기 전에는 그들도 공격하지는 않지만 백귀야행의 행렬 자체는 유저들에게 공포를 준다.
"이쪽 방향이 맞는 거냐?"
"예, 방향은 확실히 잡고 있습니다."
횃불을 들고 있기는 하지만, 횃불의 불빛은 강대한 어둠속에서는 너무나 미약했다. 가시거리는 고작해야 30미터, 어쩔 수 없이 사이토의 식스센스와 나침반에 의존 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낮이라면 눈으로 확인하고 곧장 나아갈 수 있겠지만, 어둠에 싸인 엑셀리온은 낮과는 완벽하게 차별화된 모습을 보였다. 설상가상으로 그 상점은 불빛 하나 켜지 않았다. 한 동안 호숫가를 따라 이동하던 일행은 얼마 후 상점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거야 원, 밤과 낮이 이렇게 틀리다니..."
루피아가 툴툴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을 살피던 사이토는 잠시 후 풀숲을 헤치고 나타나는 두 개의 작은 불빛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약속보다 조금 늦었군."
"너무 어두워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사이토의 말에 쟈스는 그 작은 고개를 갸웃 거리다가 하늘을 바라보며 낮게 울었다.
야오옹...
쟈스의 울음소리가 호수에 퍼진지 얼마 안 돼 불빛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한다. 무라마사를 꺼내 들으려는 루피아, 그러나 케인이 제지한다.
"녀석, 경솔하긴... 기다려 봐라."
쟈스의 울음소리에 모여들은 것은 반딧불들이었다. 처음 한 두 마리씩 날아다니던 반딧불들은 곧이어 수 만 마리로 늘어나 일행의 주변을 은은하게 밝히기 시작했다.
"자! 이제 좀 차분하게 이야기 하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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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 아자! 내공 회복 물약이라도!! 열라게 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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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셀리온 호수 쟈스는 근처의 큰 바위위로 올라서며 일행에게 말했다. 모여드는 사이토들... 전혀 예상치 못한 반딧불들의 작은 축제에 모두 기분이 한껏 좋아졌다.
"내가 어디까지 이야기했지?"
"여신님이 잠든 이유는 인간들 때문이라고까지 했어요."
밀레나가 대답했다.
"그래, 인간들... 여신님께서는 처음 몬스터들의 준동을 염려하시고 나와 나머지 두 가디언들을 데리고 인간들의 마을로 내려가셨어. 그리고 우리는 알게 되었지. 그 몬스터들의 준동의 전말을... 그것은 카마프라하 왕국의 왕궁마법사가 벌인 짓이었어. 뭐, 인간들이 다 똑같듯이 금단의 법에 손을 대고 만 거지. 그런데 웃기는 것은 당시 카마프라하 왕국의 내부 권력 집단들에서는 그 일을 방관하고 있었다는 거야.
당시 그 마법사가 소환한 것은 명계의 흐르는 스틱스의 강 가장 밑바닥에 쌓여 있던 인간들의 더러운 기억들이 뭉쳐 만들어진 사념체들이었지. 그들은 보고 싶었던 거야. 사념체의 힘을... 어차피 그들은 백성의 죽음 따위는 눈에 보이지도 않았으니까... 여신께서는 이를 방관할 수 없다고 생각하시어 다른 신들에게 이를 의논했지.
그리고 그들은 영웅을 만들기로 결정했어. 그리고 각 신들은 자신들의 신기를 그들에게 맡기고, 그것을 봉인하라는 신탁을 내리셨지."
"그리고 그 사념체는 봉인되었나요?"
밀레나가 쟈스에게 물었다. 낮은 한숨을 내쉬는 쟈스는 그녀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그래, 봉인 되었지. 영웅들은 대지의 가장 축복받은 곳을 중심으로 카마프라하라는 대지에 거대한 판타그램을 생성시키고 그곳들에 각각 신들의 신기를 꽂았지. 그리고 그 판타그램으로 인해 약해진 그 사념체와 성스러운 땅에서 최후의 일전을 벌였어. 그 일전에는 각 신들의 가디언인 우리들도 참가했지. 신들께서는 고대의 맹약에 따라 전투에 참여할 수 없었지만 우리는 자유로웠거든. 아무튼 그만큼 그 사념체는 강했어. 거의 열흘 밤낮을 그 사념체와 싸워댔지. 놈은 악의 측에 서있던 레드 드래곤과 깊고 깊은 산속 또 신들의 눈을 피해 굴속에 웅크려 있던 강대한 몬스터들을 모조리 끌어냈고, 우리들 또한 대륙내의 모든 신수들을 모아 그들과 싸워댔지.
열흘 간 그 주변은 수많은 신수들과 몬스터들의 시체로 산을 이루고 피는 강을 만들어 흘러넘쳤지. 그리고 우리는 그 것을 끝내 그 땅에 봉인시키는데 성공했지. 그런데..."
쟈스의 말이 잠시 끊겼다.
"그런데, 우린 간과하고 있었던 거야. 그 왕실 마법사와 영웅들의 활약을 두려워하던 카마프라하의 숨은 실력자들을... 왕실 마법사는 그 우매한 지배자들을 꼬드기기 시작했지. 그리고 이전까지 영웅들을 돕던 왕실은 순식간에 적으로 돌변했지. 왕실 마법사는 그 첫 번째 목표물로 우리 에루딘님을 공격했어. 그리고 사념체와의 전투에서 쇠약해진 우리들은 그분을 지켜드리지 못하고, 끝내 그 분이 그렇게 잠드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지. 다행이랄 것은 핍박받던 영웅들이 다시금 최후의 힘을 다해 그 마법사를 격살했다는 것이랄까... 그로 인해 다행히 다른 신들은 무사할 수 있었지. 그것이 그 일의 숨겨진 이야기라네."
쟈스는 지금도 당시를 생각하면 슬픔을 감출 수 없다는 듯, 발치에 작은 이슬을 떨어뜨렸다. 숙연해지는 일행... 아무리 퀘스트이고 만들어진 이야기라 하지만, 분위기에 감화 받은 그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마치 머릿속으로 그 슬픈 이야기가 한 장면 한 장면 그려지는 듯하다. 그 누구도 미동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 이유로 너희들의 부탁은 불가이다."
"어째서지요? 여신께서도 우리의 올 것을 알고 계셨지 않습니까!"
사이토가 물었다. 다시금 몬스터들이 준동하고 있다. 쟈스의 말마따나 그 사념체의 힘이 그렇게 강대하다면 여신 또한 그것을 외면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이토는 이때만큼은 진정 자신이 소설 속 주인공이 된 마냥 느꼈다. 누군가 나서서 그 사념체를 막아내야 한다. 어쩌면 그 사념체의 자리에는 이미 오카리나가 서 있을 지도 모른다. 문득 그 사념체와 오카리나의 이미지가 겹쳐진다. 이제는 진정으로 리얼판타지아 자체가 위협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오카리나에게 나가기 위해서는 호수의 여신 에루딘을 만나야 한다. 사이토의 말에 쟈스는 작게 코웃음 치며 고개를 빳빳이 들었다. 순간 그 작은 고양이의 눈 속에 절대 영도의 한기를 내포한 듯한 불꽃이 번쩍였다. 반딧불들이 쟈스의 존재감에 놀란 양 바위와 풀숲으로 바쁘게 그 몸을 숨긴다. 쟈스를 중심으로 거대한 존재감의 파문이 일어 천천히 퍼져 나간다.
"나는 그녀를 지키는 첫 번째 문지기 쟈스민루브다. 항상 나는 이곳을 지키고 있지. 하지만 나의 정신은 자유롭다. 항상 만물의 기억과 교통하고 있어 지금 사태의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언젠가 이곳을 지나치던 바람이 나에게 속삭이더군. 카마프라하 왕국의 이황자가 성스러운 땅에 봉인된 사념체를 깨우려 한다고... 나는 여신님께서 더 이상 인간들로 인해 상처받으시는 것을 원치 않는다. 사실 여신님께서는 얼마 전 봉인을 이기고 깨어나셨다. 그러나 당시 얻은 상처가 너무나 깊으시기에 회복되시려면 수백 년을 필요로 하신다.
다시금 이 일에 관여하신 다면 이번에는 봉인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소멸의 길을 택하셔야 할지도 모른단 말이다!"
쟈스는 격분한 듯 외쳤다. 그와 함께 등에서 검을 털을 헤치며 거대한 뿔들이 생겨났다. 거대해지는 쟈스... 그 뿔들 사이로는 얇은 피막이 생기고 고양이의 검은 털은 뒤이어 일어나는 은빛으로 빛나는 비늘들 사이로 사라졌다. 그 비늘들은 한없이 길어져 공중을 향해 나아간다. 그리고 잠시 후 쟈스가 있었던 곳에는 한 마리의 거대한 생명체가 자리하고 있었다.
"수룡... 이군."
"안 좋군요."
일견 동양의 용을 보는 듯하다. 단지 틀린 점이라면 드러난 몸 곳곳에서 일렁이는 흡사 하얀 비단의 물결과 같은 피막들 뿐... 본체를 드러낸 쟈스는 하늘을 향해 길게 포효를 했다.
"크으윽!"
강대한 존재감이 이제는 무형의 창이 되어 그들의 정신을 깊숙이 파고든다. 자신들도 모르게 신음성을 내뱉는 사이토들... 온몸이 얼어오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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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드디어 오늘 분은 끝났다! 내일을 위하여 일기 당천의 에너지를!!!!
(ps. 그녀의 말: 데..데자부! 너무 열심히 쓰는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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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셀리온 호수 "그분과 함께 했던 길... 천년의 길도 보지 못하는 너희 인간들은 감히 떠올릴 수 없을 그런 억겁의 시간이었다. 망각의 축복을 받지 못한 나 자신도 이제는 가물가물하게 느껴지는 그런 시간이었다. 그 모래알 같은 시간 속에 난 항상 그분의 명에 충실했다. 이제... 이제 한 번 정도 그 명을 어겨보고 싶다. 단 한번 만이라도 아니 이 어김과 동시에 내 자신의 모든 것이 사라진다 해도 단 한번 만이라도 어겨보고 싶다. 그러나 굳이 너희를 이 자리에서 카르마의 수레바퀴로 되돌리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구나. 떠나라. 어리석은 종족아..."
정중한 축객령... 쟈스민루브는 일행에게 떠나줄 것을 말했다. 일행들은 저절로 발이 뒤돌아서려는 것을 느끼고는 당황했다. 쟈스민루브의 언어는 곧 그 자체가 법(法)이 되어 일행들을 압박한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사이토는 애써 그 힘에 대항하며 힘겹게 말을 내뱉었다. 그의 뒤에 선 케인조차도 제 몸을 추스르지 못한다. 루피아와 강진이 지금 사시나무 떨 듯 흔들리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리라.
"어째서인가!"
쟈스가 소리치는 순간 주변의 공기가 얼음과 같이 냉각되었다. 사이토는 쟈스에게서 식스센스를 통해 흘러 들어오는 엄청난 양의 살기를 애써 참아내며 그의 물음에 답했다.
"언젠가 먼 훗날 당신이 이 일에 대해 후회할 것은 당신이나 나나 이미 알고 있는 것 아닙니까! 영원을 사는 존재여!"
사이토의 짧은 대답, 쟈스는 입을 꾹 다물고 사이토를 노려보았다. 굳이 사이토가 새로운 해답을 제시할 필요는 없었다. 쟈스는 이미 억겁의 세월을 살아온 신수, 이미 오래 전에 현자의 차원을 벗어났다는게 옳은 생각이리라. 쟈스가 모를 리가 없었다. 단지 외면하고 싶어할 뿐... 일행들은 각자 무기의 손잡이를 손에 쥐고 여차하면 뽑을 기세로 쟈스를 노려보았다.
천천히 주변을 살피는 사이토... 현재 사이토의 머릿속은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고 있다. 이렇게 거대한 생명체와 싸우게 된다면 일반적인 공격방법으로는 어림도 없다. 그나마 타격을 줄 수 있는 공격방법은 머리나 팔다리, 혹은 판타지의 등장하는 용들의 공통적인 약점, 가슴의 역린 밑으로 숨어있을 드래곤 하트 뿐이리라. 물론 쟈스 또한 같은 곳에 약점을 두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지금은 믿고 싶었다. 그만큼 상황이 좋지 않았다. 침묵이 흐른다. 팽팽한 긴장감을 머금은 그런 긴장이... 쟈스는 목을 구부려 그 큰 머리를 사이토의 앞으로 가져갔다. 웬만한 성인 남자의 머리보다 더 클 정도의 동공... 그 눈은 사이토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나도 안다. 그러나 너희 인간들은 자신할 수 있는가? 전대의 실수를 번복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는다 자신할 수 있는가? 당시의 영웅들도 인세에 보기 힘들 정도의 출중한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도 국가라는 적을 만드는 실수를 했다. 내가 너희를 어떻게 신용할 수 있겠는가?"
쟈스의 말에 사이토는 일순 말문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그에 대해서는 대답할 것이 별로 없다. 생각 같아서는 힘의 증명을 위해 그와 한 판 붙거나 아니면 다짐의 대한 증명으로 200자 원고지 30장 분량의 혈서라도 써야 겠지만, 그것이 정답은 아니었다.
사이토는 이번 퀘스트가 이제껏 그가 겪어본 퀘스트들 중 가장 난해하다고 느꼈다. 절대적인 존재와의 대화는 그만큼 피곤한 것이다.
사이토는 솔직한 마음으로 대답했다.
"장담할 수 없습니다."
사이토의 대답에 쟈스는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사이토의 뒤에서 수군거리는 루피아... 자신이라면 더 멋진 대답을 할 수 있을 거라며 사이토를 바라보곤 입을 삐죽거렸지만, 곧 케인과 밀레나의 눈빛에 찔끔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크르르르..."
순간 쟈스의 머리위에서 밝디 밝은 달이 떠올랐다. 아니 그것은 하늘에 떠있는 달보다 더욱 환한 빛을 내뿜는 태양이었다. 그 빛은 쟈스의 머리로부터 흘러내려 거대한 몸뚱아리를 완전히 덮었다. 줄어들기 시작하는 빛덩어리... 잠시 후 수룡이 있던 자리에는 새하얀 달빛으로 만든 듯한 고운 드레스를 입은 흑발의 여성이 나타났다. 단순한 인세의 아름다움이 아닌 뭔가 독특한 분위기의 얼굴을 지니고 있다. 전형적인 한국형 미인이라고 할 수 있는 그녀의 피부는 방금 태어난 아기의 피부라 할 정도로 맑고 투명하다. 늘어뜨린 흑발은 어둠에 둘러싸인 엑셀리온의 물빛을 가져온 양 칠흑같이 검다.
감겨있는 그녀의 눈이 살풋이 떠진다. 조용히 일행들을 바라보던 쟈스는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솔직한 대답을 해 줘서 너희는 신뢰가 가는구나. 지금까지 내가 보인 모습들은 단지 내 작은 소망이었을 뿐... 오늘처럼 신수의 신분이라는, 그래서 너희 인간보다 더욱 카르마의 굴레에 묶여 있는 내 자신이 한심한 적이 없다. 진심은 아니었다. 따르라."
쟈스민루브는 천천히 발걸음을 떼어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뒤따르는 사이토들... 퀘스트의 첫 관문을 힘들게 통과했다는 안도감과 제대로 된 파티가 아닌 상황에서 수룡과의 전투를 피할 수 있다는데 안도를 표했다. 앞서는 쟈스민 흡사 걷는 것이 아닌 수면 위를 걷는 듯, 무게감이 없어 보인다. 뒤따르던 밀레나가 사이토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빠! 그런데 이대로 따라 들어가도 될까요? 아까 이야기를 들어보니 가디언이 둘 더 있다고 했는데. 만약을 대비해서 준비를 하고 다시 와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거야 그렇지만... 기회가 없잖아. 일단 첫 문지기라는 이 여자가 우리를 인정했으니, 들어가 보는 수밖에, 잘못하면 퀘스트가 실패할 수 있으니까.]
"후아, 정말 이쁜 걸. 사귀어 보고 싶을 정도야."
강진의 뒤에서 걷던 루피아는 쟈스민루브의 미모에 반했는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들은 강진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글세, 확실히 저 NPC의 모델이 되는 여자가 현재 살아있기는 하지만, 추천할 수 없군."
"응? 그건 무슨 소리야?"
루피아가 깜짝 놀라 되묻자 강진은 괜한 것을 가르쳐 줬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을 피한다. 그러나 집요하게 달라붙는 루피아... 강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녀의 대해 설명해 주었다. 열심히 그녀의 뒤를 따르던 사이토들도 강진의 말에 흥미를 느끼며 귀를 기울인다. 앞서 걷던 쟈스민루브는 슬쩍 뒤를 돌아보며 고개를 갸웃 갸웃 했지만 아무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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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공이 부족해..;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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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셀리온 호수 "저 NPC여자는 확실히 현재 살아있는 여성을 모델로 해서 만들어진 거야. 나도 처음에는 몰랐지. 한 번 만들어진 그 데이터가 어디에 쓰일 지는 기획부의 일이니까... 그런데 저 여자 얼굴 공교롭게도 내가 아는 얼굴이야. 아까는 꽤나 놀랬어."
"아! 서론은 그만 두고 본론!"
루피아가 강진의 말을 재촉한다. 한숨을 내쉬는 강진... 괜히 입을 열었다고 정중히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어차피 루피아는 사실을 모두 듣는 순간 실망하고 포기할 것이다.
"저 여자는 바로 우리 회사의 일러스트레이터들 중 가장 고령이신 장은봉이라는 분이 완성하신 작품이지. 그리고 저 여자의 원래 모델은 그 장은봉씨의 부인되시는 분의 젊을 적 모습이라더군. 현재 연세는 내일 모래가 환갑이시다. 생각 있으면 대쉬해 보던가... 안 말려."
3초간의 컨퓨즈와 6초간의 블리자드... 마지막으로 9초간의 절대동결마법 한방을 얻어맞은 루피아는 실망과 절망으로 가득한 얼굴을 한 채 터덜터덜 일행의 뒤를 따랐다. 그로서는 정말 오래간만에 본 이상형이었다. 그런데 내일 모래가 환갑이라니...솔로의 슬픔만이 그의 영원한 친구라는 듯 그의 옆구리를 귀엽게 스치며 지나간다.
쟈스민루브와 함께 도착한 곳은 아까 낮에 케인이 발견했다는 그 오망성으로 된 바위들의 중심이었다. 그녀가 바위들을 일일이 돌아다니며 손으로 매만지자 바위 위에서는 청명한 종소리와 함께 오색빛깔의 빛덩어리가 떠올랐다. 다섯 개의 바위 위에 솟아오른 빛덩어리들은 곧 서로 서로 이어져 한 개의 마법진을 만들어냈다.
"이곳이 에루딘님의 신전으로 향하는 문이다. 그러나 안심하지 말아라. 내가 너희를 통과 시켰다고 해서 나머지 두 가디언들이 너희를 그대로 여신님에게 보내 주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자! 어서 들어가라."
사이토는 고민에 빠졌다. 사실 이번 퀘스트는 메인 퀘스트들 중 작은 편에 속한다. 그렇기에 케인과 루피아 그리고 강진과 밀레나 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여 다른 보조 클래스들을 구하는 것을 그만 둔 것이다. 그러나 수룡을 본 뒤로는 마음이 바뀌었다. 비록 수룡이 드래곤보다는 약하다고 하지만, 이런 물리 공격력에 치우친 파티로는 감당하기 힘든 존재이다. 앞으로 있을 두 가디언들 또한 쟈스민루브에 못지 않은 혹은 버금갈 그런 존재일 것이다.
[그냥 들어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번 퀘스트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닐 겁니다. 저를 믿고 들어가시죠.]
강진이 사이토에게 말했다. 강진의 말에 사이토는 파티원들에게 자신의 뜻을 알렸다. 고개를 끄덕이는 일행들.. 하나 둘씩 마법진 안으로 들어섰다.
똑...똑...똑...
"후아, 이걸 멋지다고 해야 할지... 굉장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군."
"아무튼 놀랍군. 엑셀리온이 이렇게 깊을 줄이야."
케인은 굴 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지금 그들이 있는 곳은 수중으로 뚫려있는 굴이었다. 밖으로는 물고기들이 돌아다니고 있지만, 굴 안은 마법이 걸린 듯 물이 침범하지 못한다. 투명한 막 밖으로 보이는 수면까지의 거리는 거의 몇 백 미터가 되 보일 정도로 높아만 보인다. 현실이라면 수압으로 인해 지금 이렇게 서 있지 못하리라.
"큰일이군요."
강진이 방금 그들이 들어왔던 마법진을 쓸어보며 중얼거렸다.
"무슨 말씀이세요?"
밀레나가 그에게 다가와 물었다. 강진은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이 마법진은 왕복용이 아닌, 편도용 인거 같습니다. 아무래도 이 곳을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앞으로 전진하는 수밖에 없다는 거지요. 행여 심각한 부상자가 생겼을 때 치유하지 못할 상황에 놓이면 일단 밖으로 빠져 나가야 할 텐데..."
강진의 말에 일행들은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체력회복물약으로는 심각한 부상을 치유하지 못한다. 물론 신성마법도 일정한 한계가 있다고 하지만, 물약보다는 효과가 훨씬 좋았기에 일행들은 걱정이 앞섰다.
"뭐, 어쩔 수 없잖아. 난 이것보다 더 안 좋은 상황에서도 전투를 해 봤지. 뭐, 이런 긴장감도 나쁘진 않군. 모두 최대한 몸을 지키면서 전투를 하고, 또 되도록이면 큰 기술을 사용하지 말아라. 큰 기술이라는 것은 그만큼 빈틈도 많은 법이니까... 특히 사이토! 너는 특히나 명심하고..."
케인이 전투의 숙련자 답게 일행에게 조언의 말을 해 주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토 들이다.
사이토를 선두로 일행은 천천히 앞으로 향했다. 특별히 보호해야 할 클래스는 강진 하나 뿐, 나머지는 모두 밀리 클래스 들이기에 별다른 진형이 필요 없었다. 한 동안 전진해 나가던 일행들은 굴의 크기가 서서히 넓어지면서 벽면이 인위적인 손길을 거친 굴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한동안 진행하던 일행들은 그들의 앞을 가로막는 거대한 문에 도달하게 되었다. 문은 바위로 되어 있었는데 바위는 보통 재질이 아닌 듯, 무거운 묵색을 띄고 있었다. 아무런 문양도 그려지지 않은 그런 문이다.
"숨겨진 던젼인가? 모험가 녀석들이 좋아할 만한 곳이군."
케인이 바위문을 손으로 쓸어보며 중얼거렸다. 문 이곳 저곳을 관찰하며 문에 설치된 트렙을 점검하는 사이토... 위험한 던젼이니 만큼 새심한 관찰이 필요하다.
"일단, 트렙은 없는 듯합니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열지?"
"문 반대편은 탐지가 되지 않으십니까?"
강진이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토, 그의 나침반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스킬을 사용해서 부수는 것 아닐까요?"
밀레나가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고개를 흔드는 케인...
"글세, 그것도 생각해 볼 수 있는 방법이지만, 지금까지 내 경험을 비추어 볼 때, 그 방법을 사 용한 뒤에는 항상 적들이 출연하더군. 죽일 몬스터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만, 지금으로서는 전투는 최대한 피해야 겠지."
고민에 빠진 일행들... 밀어도 보고 주변의 스위치가 될 만한 것들도 찾아보았지만, 그런 것은 나타나지 않았다. 한참을 생각하던 일행을 마침 사이토가 손뼉을 마주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차! 세이트요나르를 잊고 있었네."
사이토는 황급히 배낭에서 세인트요나르를 꺼내 들었다. 그것을 문에 가까이 대자 무지개 빛으로 빛나던 세인트 요나르는 문과 같은 색의 묵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울려오는 무거운 바위 끌리는 소리... 문이 열리고 있었다.
"흐음, 일단 이 던젼의 키워드는 그 세인트요나르인가 보군. 혹시나 이곳에 들어올 엉뚱한 파티를 경계하기 위해서인가?"
세인트요나르에 의해 문이 열리자 케인은 이렇게 중얼거리며 사이토의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잊지 않는 한방...
따악!
"바보 녀석! 진작 좀 꺼낼 것이지."
"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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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셀리온 호수 할 말이 없는 사이토이다. 문을 지난 뒤 전경은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반짝 반짝 은빛으로 빛나는 벽... 동굴 전체는 크리스탈로 되어 있었다. 크리스탈의 영롱한 빛에 감탄하는 밀레나... 그러나 케인은 불안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어이, 사이토녀석의 처자 되시는 아가씨, 그리 좋아할 건 없소이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이런 곳에서는 항상 크리스탈 고렘 따위가 서식하는 곳이었으니까..."
"예? 그게 뭐죠?"
밀레나와 사이토가 동시에 묻는다. 그들은 아직까지 크리스탈 고렘이라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한숨을 내쉬는 케인, 뒤에서 걷고 있는 루피아에게 소리쳤다.
"네 녀석도 게임 좀 오래 했으니, 크리스탈 고렘에 대해 알겠지?"
그의 말에 루피아는 얼굴을 찡그리며 대답한다.
"아주 힘든 놈이죠. 일단 겉면이 크리스탈로 되어 있기에 4서클 이하 마법은 그대로 반사시키고, 무생물체이기 때문에 정신공격도 들지 않고 그 무지막지한 방어력과 그 엄청난 덩치 때문에 이런 좁은 곳에서 만나면 정말 머리 아픈 녀석이죠. 약점이라면 등 부분에 붙어있는 마력석인데 그것도 안쪽에 들어있기 때문에 웬만한 공격으론 흠도 나지 않는 괴물이고..."
루피아의 경험담이 계속됨에 따라 사이토와 밀레나의 얼굴이 차갑게 질려간다. 검왕인 루피아가 그 정도까지 말한다면 정말 대단한 몬스터이리라. 긴장해가는 일행들... 문득 사이토가 일행들을 정지 시킨다.
"함정입니다."
바닥의 대략 12미터 정도의 붉은 빛이 생성된다. 그 곳을 만지면 함정이 발동하는 것이다. 그것을 조사하던 사이토는 고개를 저으며 일행들에게 말했다.
"제가 해체할 수 없는 함정입니다. 그리고 천장을 보니 미세한 금이 있습니다. 아마 이것을 밟는 순간 위에서 무언가가 쏟아지거나 몬스터가 나타날 것 같은데... 어떻게 하죠?"
12미터의 함정, 벽면에 무언가 홈이라도 있다면 사이토가 건너갈 수 있겠지만, 벽면은 매끄러운 크리스탈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빠진 케인...
"아무래도 함정을 그냥 발동 시키는 게 좋겠군. 대신에 사이토, 트렙들은 넉넉히 챙겨 왔겠지?"
"예..."
"그럼 일단 이곳에 네 트렙들을 설치하고, 만약에 나타날 몬스터에 대비하는게 좋겠군. 모두들 물러서서 혹시나 나타날 몬스터에 대비하고 넌 어서 트렙들을 설치해라."
일행들이 물러가자 사이토는 바닥에 트렙들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최고급의 트렙들만을 엄선하여 바닥에 깔아 놓는 사이토... 작업이 끝나고 사이토는 멀리 떨어져서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케인들에게 소리쳤다.
"발동 시키겠습니다."
"오케이!"
케인은 용자의 무구를 모두 소환시키고 만약에 사태에 대비했다. 용자의 무구는 그 능력이 엄청난 대신 사용자의 라이프를 흡수하기 때문에 오랜 기간을 사용할 수는 없다. 사이토는 바닥을 살짝 건드린 뒤 번개같이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우르르르릉!
천장이 열리며 거대한 무언가가 떨어져 내린다.
"역시! 크리스탈 고렘이군."
거대한 팔과 주먹... 흡사 고릴라와 같이 생긴 이 고렘의 겉은 크리스탈로 되어 있다. 거의 5미터 정도 되어 굴의 거의 모든 부분을 채운 이 몬스터는 그 자체로 하나의 벽이었다. 머리로 생각되는 부분에서 붉은 빛이 번쩍이기 시작하더니 천천히 자신을 깨운 침입자를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파파파팟!
고렘의 발밑에서 새하얀 빛이 터져 나오며 고렘의 다리를 감싼다. 사이토의 트렙이 발동되는 것... 새하얀 빛에서 생성된 날카로운 이빨들은 고렘의 발을 마구 씹어대기 시작했지만, 고렘은 별 상관 없다는 듯 계속해서 걸어오기 시작한다. 고렘이 일행에 가까워 질 수록 사이토의 트렙은 계속해서 고렘의 발을 공격했다. 여섯 번째 트렙이 터질 때 즈음 고렘의 오른쪽 발에서 무언가 깨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흡사 유리가 깨져나가듯 박살나는 고렘의 발... 발을 잃은 고렘의 육중한 거체가 앞으로 쓰러져 버렸다.
"구오오오.."
고렘은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되자 이제는 거대한 양 팔을 이용해 일행들 쪽으로 기어오기 시작했다. 고렘의 끈질긴 생명력에 질려버리는 사이토.... 고렘은 트렙들을 온 몸으로 흡수해가며 일행들에게 기어왔다.
"자! 이제 등이 훤히 드러났으니! 작업에 들어 가자구!"
케인이 용자의 신검을 곧추세우고 고렘에게도 달려들자 일행들은 모두 그를 따라 공격에 들어갔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케인이 고렘의 등에 용자의 신검을 박아 넣자 고렘은 유리처럼 산산히 부서져 바닥에 굴렀고 고렘이 사라진 자리에는 부서진 마력석과 한 장의 스크롤... 그리고 크리스탈로 만들어진 고구마 모양의 아이템이 떨어졌다.
"모두 다친 사람은 없겠지?"
사이토가 아이템들을 챙기는 사이 케인은 용자의 무구를 해제하며 일행들에게 물었고 일행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물음에 답했다.
"다시 출발..."
길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고렘이 나타난 뒤부터는 몬스터들이 하나 둘씩 일행들을 습격하기 시작했다. 크리스탈로 만들어진 가고일을 비롯해서 날개가 달린 알 모양의 크리스탈 에그까지... 몬스터들을 하나하나 처치하며 전진하던 사이토는 일행들이 잠시 휴식을 위해 자리에 앉자 조금 전 크리스탈고렘을 잡으며 나왔던 스크롤을 살폈다.
"공진마법이라..."
스크롤에 쓰인 것은 공진마법이라는 것이었다. 위에는 커다랗게 3서클이라고 써져 있고, 밑으로는 알아볼 수 없는 문자들이 얼키설키 나열되어 있다.
"케인씨! 공진마법이 뭡니까?"
사이토의 물음에 케인은 사이토가 들고 있던 종이를 받아 들고 그것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음, 공진마법을 배울 수 있게 해 주는 스크롤이군. 이건 마법을 주로 사용하는 길드들에게 아 주 비싼 값에 팔 수 있는 물건이지. 뭐, 그렇다고 특별한 마법이 들어간 것은 아니야. 보자... 이 스크롤을 예로 든다면 이건 총 두 명까지의 마법사들이 배울 수 있군. 이 스크롤을 배우는 마법사들은 그 때부터 서로가 함께 3서클 마법을 사용하게 되면 두 마법은 서로 공진현상을 일으켜 원래 마법보다 훨씬 강한 마법이 일어나게 되지. 물론 그 상성을 따라 사용하지 않으면 그보다 훨씬 약한 효과가 나오기도 하겠지만, 아무튼 이 마법은 길드에 소속된 마법사들이 많이 찾는 그런 거라네."
"그렇군요."
"그래, 그리고 이 공진마법을 가장 잘 사용하는 이들이 바로 카마프라하왕국에서 마법으로 정평이 나있는 바로 노인정길드라는 곳이지. 그들은 게임 초반에 이 스크롤의 쓰임새를 그 누구보다도 먼저 알고, 이 스크롤들을 엄청나게 모아댔다고 하지. 그리고 뒤 늦게 그 사실을 안 게임사에서는 스크롤들이 떨어질 확률을 대폭 수정했다지만, 뭐 이미 노인정길드는 모두 배워버린 상태였지. 그 후로 노인정길드는 마법에 있어서만큼은 아직까지 다른 이들에게 지지 않는 그런 길드가 되었지. 듣기로는 포메이션까지 지정해서 그들만의 독특한 공격 방법을 만들어 냈다더군."
케인이 어깨를 으쓱하며 설명을 마무리 짓자 사이토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스크롤을 배낭에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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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아껴볼까..하다가..ㅠㅠ... 흐으읍! 지금부터 다시 축기에 들어가겠습니다. 아자! 아자! 아자! 이제 6일만 더 연참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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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셀리온 호수 그 후로 몇 번의 전투를 더 거쳤던 일행들... 크리스탈로 만들어진 통로는 이제 내리막길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엑셀리온 호수의 지하, 그리고 더 깊은 곳으로... 한참을 걷던 일행의 앞에 나타난 것은 크리스탈로 만들어진 문이었다.
"으음, 이번에는 세인트 요나르가 먹히지 않는데요?"
사이토는 세인트요나르가 아무런 반응도 일으키지 않자, 멋쩍은 표정으로 케인에게 말했다. 그 순간, 지축이 흔들리며 문의 틈새로 하얀 냉기가 스며 나온다.
"몬스터인가?"
사이토가 나침반을 보며 중얼거렸지만, 나침반에는 아무런 표시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 것을 유심히 바라보는 케인...
"아마, 두 번째 가디언 같군."
케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크리스탈문 앞으로 냉기가 뭉치기 시작한다. 잠시 후 나타난 것은 얼음으로 깎은 동상... 아니 동상 같은 생명체였다.
"쟈스민루브가 들여보낸 인간이라는 게 당신들이군."
남성형인 듯 목소리가 굵직하다. 옷을 하나도 걸치지 않은 듯한 모양이지만, 얼음이기에 그리 흉해 보이지는 않았다. 단지 그 음색을 들어볼 때 결코 호의적이지는 않아 보였다.
"맞습니다. 가디언이여... 우리는 여신 에루딘님을 뵈어야 하기에 이렇게 이 신성한 땅을 침범하게 되었습니다."
케인이 정중히 말했다. 비록 그의 성질이 워낙 뭣 같기는 하지만, 게임의 퀘스트에 임한다는 것을 잊은 것은 아니었다. 그것이 바로 게임의 룰이며 그것을 지키지 않는 이는 퀘스트를 해 나갈 수 없다. 얼음인간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꽤 예의바른 인간이군. 그래... 자세한 이야기는 이미 쟈스민에게 들어 알고 있다. 또다시 인간계가 준동한다지... 바로 너희 인간들에 의해..."
"당신이 살아온 세월을 감히 측량할 수 없듯이 당신의 지혜를 감히 측량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들이라는 존재를 모두 한 묶음의 개체로는 생각 할 수 없다는 것도 당신께서는 잘 아시겠지요."
케인은 정중히 대답했다. 그의 말은 한마디로 그 사단을 벌인 인간들과 자신들은 같지 않다는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는 가디언... 팔짱까지 끼는 것을 보니 상당히 공감하는 듯 하다.
"현명한 인간이군. 그래. 맞는 말이다. 그런 식으로 묶는 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지는 이미 나도 알고 있지. 그러나 나 여신 에루딘을 지키는 두 번째 가디언 '카르니즈' 너희가 여신을 배알할 능력을 시험해야 한다."
자신을 카르니즈라 말한 얼음인간은 갑자기 두 팔을 활짝 펼쳤다. 그의 손에서 하얀 냉기가 뻗어 나오고 순식간에 일행들을 감싼다. 갑작스런 얼음인간의 행동에 당황한 사이토들... 일행들은 어느새 얼음으로 만들어진 넓은 광장에 한가운데 멍하니 서 있었다.
"조금 황당하기는 하지만 역시나 시험이군."
이미 온몸에 용자의 무구를 소환한 케인이 중얼거렸다.
"크군요. 왠지 사기라고 느껴질 정도로..."
사이토가 그의 옆에 서며 중얼거렸다. 맞은편에 보이는 것은 거의 20미터에 달하는 카르니즈였다.
"으음, 저런 거대한 몬스터는 정말 오랜만이군."
루피아가 무라마사를 뽑아 들고는 사이토의 옆으로 서며 중얼거렸다.
"모두 긴장들 하십시오. 우리에겐 힐러가 없습니다."
말을 마친 강진은 서서히 케스팅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사실 보스급 몬스터라고 할 수 있는 가디언에게 강진의 저주가 들지는 미지수였지만, 강진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밀레나, 너는 강진씨를 보호해줘."
" 알았어요. 몸조심해요."
아무래도 밀레나가 걱정스러운 사이토는 밀레나에게 강진의 엄호를 부탁했다. 약간 불만스러운 눈치를 보이던 밀레나는 곧 한숨을 내쉬며 사이토의 말에 수긍한다. 그녀도 자신의 실력을 잘 알고 있다.
"인간들이여. 너희들의 능력을 입증하라."
카르니즈의 웅대한 목소리가 얼음광장을 진동한다. 다행히 정신공격의 능력은 없는 듯하지만, 일반 유저들이 그 목소리를 듣는다면 그 목소리만으로 전의를 상실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전면에 나선 세 남자의 눈빛은 호승심에 가득 차 있다. 셋 모두 전투에 관해서라면 누구에게라도 지지 않을 쟁쟁한 칭호와 찬사를 들어온 남자들이다.
"가자."
"예!"
첫 공격은 루피아였다. 인간을 상대함에 있어서는 자신의 본 실력을 절반 정도 감추어야 한다지만, 몬스터를 상대로 그런 짓을 할 필요는 없다. 게다가 20미터 가량의 카르니즈를 앞에 두고 여유를 부릴 수도 없다. 그의 첫 공격은 역시 9계급 검왕들의 최종스킬 검격이었다. 반월형의 거대한 검기가 카르니즈를 향해 날아간다. 손을 내밀어 거의 5미터 가량의 얼음벽을 형성시키는 카르니즈... 검기는 얼음벽을 두조각 내는데는 성공하였으나 그 본체를 건드리기에는 부족했다. 무릇 카르니즈와 같은 초대형 몬스터를 상대함에 있어서는 인간의 잔기술은 전혀 필요하지 않은 법이다. 카르니즈는 특별한 마법공격을 하지 않은 채 단순한 물리공격만을 할 뿐이다. 그의 원래 능력이 물리공격뿐이건 아니면 마법을 쓰지 않는 것이건 일행에게는 다행인 것... 사이토는 케인에게서 떨어져 카르니즈의 옆으로 돌았다. 현재 마법사가 없는 상태에서 카르니즈에게 확실한 데미지를 줄 수 있는 것은 사이토 뿐이다. 비록 일반적인 물리 공격력은 검왕인 루피아나 용자인 케인이 더욱 강하지만, 본디 단 일격에 적을 끝내는 역할은 전통적으로 도둑의 몫이었다. 사이토는 왼손에는 현재 그가 가진 검들 중 가장 강력한 디스코어를 오른손은 공권으로 스킬을 사용할 준비를 했다.
파콰콰쾅!
루피아가 바닥에 부딪혀 튕겨 나갔다. 뛰어 올라 카르니즈의 가슴께를 공격하려던 그를 카르니즈는 거대한 손바닥으로 후려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카르니즈의 손바닥을 노리는 케인이 있었다.
"소닉 브레이크!"
케인이 휘두른 궤적을 따라 연쇄적으로 폭발이 일어난다. 폭발이 일어난 부분은 카르니즈의 팔뚝 부근... 팔뚝의 얼음들이 흡사 송곳으로 거칠게 쪼인 듯 후두둑 떨어진다. 팔을 공격당한 카르니즈는 그런 케인을 향해 입을 벌렸다. 그리고 그의 입으로부터 직선으로 뻗어나가는 냉기의 기둥...
"브레스다! 피해!"
미처 피하지 못한 케인은 예의 그 투명한 방패를 들고 브레스를 온몸으로 항거하며 외쳤다. 브레스가 그치고 드러난 것은 온몸에 성애가 낀 케인... 움직임이 둔화되었다.
"제길!"
강진은 그답지 않은 욕지거리를 하며 손을 내렸다. 역시나 카르니즈는 보스몬스터답게 그의 저주가 걸려들지 않았다. 속도를 느리게 하는 저주를 걸었음에도 전혀 반응이 없는 카르니즈...확실히 보스몬스터들은 저주마법에 대한 내성이 높다. 케인을 향해 내리 꽂히던 발을 루피아가 검격을 이용해 힘겹게 막아내는 것이 보인다. 사이토 또한 카르니즈의 후방에서 기회를 노리며 달려들지만, 카르니즈는 그 엄청난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능숙한 솜씨로 사이토를 견제하고 있다. 갑자기 카르니즈가 공중을 향해 소리친다.
"나와라! 나의 아이들이여!"
얼음광장 곳곳에 빙한 계열 몬스터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크게는 삼 미터의 하얀 아이스 고렘에서 작게는 온 몸이 하얗게 빛나는 가고일까지 다양한 몬스터가 소환되었고 그것들은 곧 후방에 있는 강진과 밀레나 까지 덮치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바빠진 밀레나... 작은 몬스터들이 소환되는 것을 본 강진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걸린다. 비로소 그가 활약할 때가 온 것이다.
"제길! 약점이 어디야!"
케인은 카르니즈의 거대한 주먹을 피하며 짜증스럽다는 어투로 소리쳤다. 무릇 이런 거대한 몬스터에게는 치명적인 약점 있는 것이 게임의 원칙이었다. 물론 그 약점이 아주 정직하게 몬스터의 머리라던가 가슴인 경우는 거의 없지만, 분명히 그 약점은 존재한다. 그러나 카르니즈는 케인조차도 처음 보는 종류의 것이었다.
"하아아앗!"
사이토의 그레이브스피릿이 카르니즈의 머리를 관통한다. 거의 2미터 크기의 머리를 관통한 푸른빛의 그레이브스피릿... 상당한 타격인 듯 카르니즈가 비틀거리기는 하지만, 곧 그의 주먹이 사이토를 향해 날아간다. 사이토는 미리 카르니즈의 허벅지에 감아 둔 와이어를 이용해 그곳을 빠르게 빠져 나갔다. 카르니즈의 허벅지에 도착한 사이토는 이미 인첸트가 걸린 디스코어를 이용 카르니즈의 사타구니 부근을 찔렀다. 대번에 깊숙이 꽂혀 들어가는 디스코어.... 그러나 카르니즈는 그곳 또한 약점이 아니라며 조롱하는 듯 건재하기만 하다.
카오스 퍼니쉬먼트를 사용하기 위해 카르니즈로부터 거리를 두는 케인... 카오스 퍼니쉬먼트는 위치에 따른 파워가 틀렸다. 처음 발동되는 순간에는 대략 풀파워의 60프로가 발휘된다 그리고 20미터 부근에서는 70프로까지 오르다가 약 25미터 정도에서부터 100프로의 파워를 보여주는 것이다. 물러서던 케인은 옆으로 보이는 몬스터들의 움직임에 뒤쪽의 강진에게 엄지손가락을 세워 주웠다.
"능력 좋은 걸!"
소환된 몬스터 중 밀레나의 검에 죽은 것들은 대략 전체의 1/4이다. 남은 몬스터들 중 절반은 강진의 저주에 의해 순식간에 우군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죽은 몬스터까지 '리바이브'를 통해 되살렸다. 그 수는 거의 20여 마리... 강진이 강력한 녀석들을 중심으로 저주를 걸었기에 상당한 수가 카르니즈에게 달려들었다. 잠시 카르니즈의 발이 혼란스러워진다. 키가 큰 만큼 달라붙는 몬스터들은 많고 카르니즈가 흔들거린다.
"이놈들!"
흡사 몬스터들은 꾸짖는 듯한 노호성을 지르며 카르니스는 양팔을 머리위로 들었다. 양 손에 모이는 것은 거대한 에너지 덩어리... 케인이 막 카르니즈에게 달려드는 사이토와 루피아에게 외쳤다.
"피해! 큰 게 온다!"
케인의 말에 사이토는 황급히 카르니즈로부터 떨어져 나갔다. 그러나 그대로 달려가는 루피아... 한 손에 든 무라마사로 바닥을 거칠게 긁으며 카르니즈에게 돌진한다.
"늙으면 XX가 쫀다니까!"
"뭐야!"
루피아는 강진의 심기를 긁는 소리를 내뱉으며 무라마사를 상단베기 자세로 들었다. 팔에 한껏 에너지를 긁어모으던 카르니즈는 양팔을 펼치며 외쳤다.
"블리자드!"
카르니즈의 머리위로부터 작은 회오리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그에 따라 투명해지기 시작하는 카르니즈..다시금 응축되던 에너지는 곧 그의 몸을 중심으로 거대한 돌개바람이 펼쳐져 나왔다.
"크윽!"
최대한 카르니즈로부터 거리를 만들던 사이토는 카르니즈의 블리자드에 휩쓸렸다. 그의 다인슬레터가 요란하게 반응하기 시작한다. 마법에 저항하기 시작하는 것... 그러나 이 전체공격마법은 다인슬레터도 100프로 막아내기 힘든지 사이토는 몸이 점점 얼어오는 것을 느꼈다. 비록 살인적인 추위가 느껴지지는 않지만, 온 몸이 얼어들어가며 라이프가 떨어져 간다. 그나마 일행들 중 가장 나은 것은 케인이었다. 그 또한 몸이 얼어가는 것을 느꼈지만, 다른 이들처럼 라이프의 대량손실은 없다. 그것은 용자의 무구의 힘... 투구사이로 루피아가 보인다. 그리고 카르니즈를 바라보는 케인의 눈이 빛난다. 블리자드가 사라진 후 오연한 눈빛으로 주변을 바라보던 카르니즈는 천천히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얼음광장의 저 멀리까지 날아가 버린 루피아.. 성에가 덕지덕지 붙은 입가에 미소가 드리운다.
"흐흐, 날 만나면 그 정도는 내놔야지."
카르니즈의 한쪽다리는 대각선으로 말끔히 잘려 있었다. 거의 오우거 허리둘레의 세 배는 됨직한 얼음 다리를 잘라버린 루피아...
쿠우우웅 카르니즈가 쓰러졌다. 요란한 굉음과 함께 바닥이 솟구친다. 그와 함께 카르니즈에게 덤벼들었다가 얼어붙은 몬스터들이 잘게 부수어진다.
"사이토! 약점은 녀석의 아랫배다!"
케인은 잘 움직여지지 않는 갑옷에서 얼음덩어리들을 떨구며 사이토에게 외쳤다. 카르니즈가 투명해질 때 그의 아랫배에서 둥근 핵을 본 것이다. 그러나 사이토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는다. 그리고 원했던 반응도 일어나지 않는다. 케인은 힘겹게 머리를 돌려 사이토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작은 눈사람만이 하나 덩그러니 서 있다. 사이토는 완전히 얼어버린 듯 미동이 없었다.
"제길, 죽은 건가..."
침통한 목소리로 케인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용자의 신검을 치켜든다. 그가 게임오버를 당한 것은 유감이지만, 일단 카르니즈의 처치가 중요했다. 그의 몸에서 검은 오오라가 빠르게 회전하며 솟구친다. 몸에 붙어있던 얼음덩어리들이 푸석푸석 떨어져 나간다.
"하아아! 카오스 퍼니쉬먼트!"
공격대상은 엎드린 카르니즈의 아랫배... 주위의 얼음덩어리들이 둥근 케인을 따라 둥근 궤적을 만들어낸다. 케인은 쏘아진 총알처럼 카르니즈의 아랫배를 향해 돌진했다. 순간 그의 앞을 가로막는 것은 카르니즈의 양팔... 카오스퍼니쉬먼트는 자신의 아랫배를 방어하는 카르니즈의 양팔뚝과 정면 충돌하였다.
파가가가가각!
거친 파열음이 얼음광장을 진동하고, 카르니즈의 팔 부근에서는 흡사 폭탄이 터진 듯 수천 개의 얼음덩어리가 주위로 폭사되었다.
파열음은 쉴 새 없이 들려오고 곧이어 무거운 물체가 떨어지는 육중한 소리가 들려온다. 작은 얼음입자들이 만들어낸 안개가 걷히고 보이는 것은 중간이 완전히 끊어져 바닥에 뒹굴고 있는 카르니즈의 오른팔과 흉물스럽게 움푹 패 인 카르니즈의 왼쪽 팔뚝이었다. 만약 카르니즈가 마지막 순간에 방어막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두 팔이 완전히 끊어졌으리라.
"으윽!"
케인은 온몸이 마비되는 것 같은 느낌에 무릎을 꿇었다. 마지막 방어막에 충돌할 때 그는 강한 충격을 입었다. 검으로 몸을 받치고 있는 케인... 카르니즈의 거대한 왼팔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끝인가.."
체념하는 듯한 케인... 그 때 그의 그림자가 꿈틀거리더니 하나의 인영이 불쑥 튀어나온다.
"그레이브 스피릿!"
팬텀 피규어를 통해 케인의 그림자에서 나타난 사이토는 지체 없이 카르니즈를 향해 뛰어 들으며 아랫배를 향해 그레이브스피릿을 시전했다. 솟구쳐 나오는 청홍의 빛줄기는 카르니즈의 아랫배를 거침없이 들쑤셨다.
"크아아아아!"
처음으로 들어보는 카르니즈의 비명소리를 마지막으로 전투는 끝났다.
"들어가라!"
"끙..."
카르니즈가 열린 문 안으로 손짓을 하자, 일행들은 모두 불만스러운 얼굴로 카르니즈를 한번 씩 쳐다보며 문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전투가 끝난 후 간신히 구조된 강진... 그는 다행히 밀레나가 블리자드를 대신 막아주고, 적시에 체력회복포션을 마셔 살아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이 전투에 이기고서도 이렇게 불만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은... 첫째 전투가 끝난 후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다시 나타난 카르니즈와 둘째 전투가 끝났음에도 몬스터 사냥의 백미 소정의 아이템이 전혀 단 한 개도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카르니즈가 친절하게도 일행들의 체력을 회복시켜주기는 했지만, 가장 마지막에 들어가는 루피아는 현재 다시 한번 카르니즈와 붙어볼까 하는 망상에 젖어 있었다.
"역시 마지막 퀘스트로 향하는 관문이라서 그런지 살벌하기 그지 없군."
케인이 중얼거렸다.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강진... 리얼판타지아사의 직원인 그도 이런 무지막지한 난이도의 퀘스트일지는 몰랐다. 아무리 그들이 힐러가 없는 비균형적 파티라 해도 그들은 리얼판타지아에서 날고 긴다는 인물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이렇게 애를 먹는데 다른 이들은 오죽하랴. 게다가 이제 두 번째 가디언을 지났을 뿐이다. 마지막 가디언을 생각하니, 힘이 쭉 빠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리라. 그 후로 일행들은 계속해서 전진했다. 이상한 것은 카르니즈를 지난 후로는 몬스터들의 습격이 뚝 끊겼다는 것... 덕분에 더 이상 전력 손실을 걱정하지 않은 채 일행은 전진했다. 유난히 밝은 빛이 복도의 끝에서 보이기 시작한다. 복도의 끝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 듯, 빛은 일행들에게 빨리 오라고 손짓하는 듯하지만 일행들은 천천히 몸을 긴장시키며 다가갔다. 환한 빛에 긴장했음에도 그 빛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모두는 눈을 감았다. 그만큼 환한 빛이 그들을 감쌌기 때문... 가까스로 눈을 뜬 사이토는 눈앞에 우뚝 솟아있는 거대한 제단을 발견했다. 말론의 술집 지하궁전에서 발견했었던 그 제단을 옮겨다 놓은 듯한 모습... 천정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높이이다. 그리고 그 제단 위로는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제...길...할..."
"미치겠군."
"처..처음 봐요."
처음 것은 사이토...두 번째는 루피아 마지막 것은 밀레나였다.
"세상에 말도 안돼! 어째서 화이트드래곤이 마지막 가디언인거야!"
일행은 일순 패닉에 빠져들었다. 그림자의 주인은 바로 화이트드래곤이었다. 리얼판타지아를 소개하는 책자에서나 봤었던 그 드래곤이 눈앞에 있다.
"서...설정상으로는 아드레이온은 여기 있으면 안 되는데?"
강진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아드레이온이라는 이 화이트 드래곤은 원래 카모프왕국 북쪽의 설원에 레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설정이었다. 일행 모두가 꿈에도 생각 못했던 것... 루피아는 망연자실했다. 비록 그가 게임 상에서 검왕으로 이름을 떨치며 살았다고는 하지만, 그도 유저이기는 마찬가지이다. 게임을 하면서 이벤트가 있을 때 드래곤은 몇 번씩 보기는 했다. 그리고 그 화려한 파워도 직접 목도했었다. 리얼판타지아에서 드래곤은 한마디로 꿈의 존재였다. 모든유저들이 궁극으로 추구하는 몬스터... 그러나 넘지 못할 산과 같은 존재, 그 존재가 이 밸런스 무시의 파티 앞에 떠억 하니 버티고 서 있는 것이다.
"제길! 게다가 드래곤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잡히지 않은 몬스터란 말야!"
루피아가 말을 씹어 삼키듯이 내뱉었다. 침울해지는 파티... 얼굴이 얼음과 같이 굳어 있는 케인... 그러나 그의 눈에는 조금씩 호승심이 타오르고 있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잡힌 적이 없지. 그러나 비공식적으로는 딱 한 번 잡힌 적이 있어."
케인의 중얼거림에 일행들은 모두 그를 쳐다보았다. 강진 또한 케인의 말은 금시초문이었다. 비공식적이라니... 모두가 그를 쳐다보자 혀를 끌끌 차며 일행들을 향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얘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 화이트 드래곤이 먼저인거 같은데?"
그림자가 서서히 커지기 시작한다. 화이트 드래곤의 머리가 내려오는 것이리라.
"용기 있는 인간들이여. 여신의 땅에 들어온 것을 환영한다."
드래곤의 목소리는 흡사 머언 곳에서 수십 개의 스피커가 동시에 발광하듯, 웅장하고 고요하게 들려왔다. 숨을 다잡는 케인... 그나마 그가 일행들 중 가장 담이 크며 그리고 연장자이다. 솔직히 제일 간덩이가 부은 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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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롤이 상당하지요? 으음...그냥 ...쓰지요..
하나: 며칠간... 주화입마에 들었던 데자부랍니다. (글쎄요. 연속 삼연참의...주화입마는 아닙니다.)
둘: 의욕 제로.. 아니..거의 마이너스였지요. 대략.. 그날 실수하고... 그녀가 차가운 얼굴로 돌아서신 뒤 부터..의욕 제로...
셋:대략 12시까지..의욕 제로..사기 제로.. 주화 입마였습니다.
넷:문득...한 개의 메시지가 핸드폰을 울렸습니다.
다섯: 문자 메시지는 너무나 단촐했습니다.
여섯: 자? .. 딱..두마디..아니..한마디일까.. "자?" 한마디에 몇 번의 메시지와 전화를 해 보는 데자부... 그녀와 약간 통화할 수 있었습니다. 아직 화가 덜 풀렸다는... 말...
일곱: 화가 덜풀렸다는데... 데자부의 가슴은 웬지 조금 가벼워졌습니다. 그녀가 날 잠시 한번 바라봐 주는 것 만으로... 단 두 글자를 (웬지 성의 없어 보이는...;; <-그녀의 스타일..-_-;;) 물론 화가 덜 풀렸다고 하지만...서로... 마음속으로는 약간의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여덞: 주화입마가 풀려버리더군요. 대략.. 그때부터 쓰기 시작한 것들 한꺼번에 올립니다.
아홉: 확실히..바보병이지요. 바보가 되었답니다. 그녀의 단 두글짜에 감동하고, 힘을 내는 남자...
열: 여보ㅜㅜ... 석고대죄할께요. 돌아와..
열 하나: 웃긴 대학은 참 특이합니다. 으음..뭔가.. 추천을 그리도 갈구하는 모습이란... 그것도 하나의 문화일까..-_-; (그들만의 독특한..) 물론 데자부는 지금껏 딱 한 번 빼고는 추천해 본적이 없답니다.-_-;; 대략 여러분들과 같이...귀찮기 때문이지요.
열 둘: 데자부도 한 번 '추천 신공' 해볼까요?
추천 하시면 가이아같은 미소녀가 안겨든답니다.
추천 하시면 밀레나도 함께 뛰어든답니다.
추천 하시면 사이토랑 케인이 무릎꿇고 달려와 당신에게 다인슬레터와 용자의 무구를 바침니다.
추천 안하시면 대략 이번 크리스마스에도 당신의 애인은 컴퓨터..>ㅂ 추천 안하시면 당신은 대략 내년에도 솔로부대 복무!~ 열 셋: 쓰고 나서도 오한이 나는 추천 신공이군요.. 좀 재미있기도 하고..-_-; 열 넷: 저 위의 추천 신공... 제가 쓰고서도 미안하군요.-_-; 그렇다고 지우기는 귀찮고...믿거나 말거나 입니다.
열 다섯: 그런데 경록이라는 얼짱 아이는 팬들한테 '이거 사줘' '저거 사줘' 하면 재깍 재깍 사준다면서요? 혹시 저의 팬이 계신지....(저도 한번 앵겨들고 싶은 욕망이..)
열 여섯:에휴... 내 팬까페에서도 아직 준회원을 못 벗은 제가 무슨 염치로 그런 것을 바라겠습니까..-_-; 제 팬까페 쥔장님들... 혹시 이 글 보신다면 '유니크미'라는 아이디는 제발 정회원 하게 해주세요.-_-; 열 일곱: 그랜져 쓰시는 홍정태님께서 저의 사연을 들으시고 배꼽빠지게 웃으셨답니다. (모두 그 분 배꼽이 빠지도록 기원해 주시길...-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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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셀리온 호수 "드래곤이시여..."
케인의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건만 그 검은 그림자의 옆으로 또 하나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작은 스몰실드를 옹기종기 이어 붙인 듯한 거대한 비늘에 싸인 거대한 앞발, 그 발톱 하나하나가 살벌하게 빛난다.
쿠우우우 드래곤의 머리가 천천히 내려온다. 이빨과 이빨 사이에서는 하얀 냉기와 같은 안개가 피식 피식 솟아나오고 사람 머리의 근 두 배는 될 듯한 눈동자는 정광에 싸여 있다.
"두려워 말라. 인간들이여."
드래곤이 말했다. 사이토가 보기에는 입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듯 하지만,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것도 매우 유려하고 멋진 젊은이의 목소리가 모두의 귓가에 또랑또랑 들려온다.
"여신께서는 너희들과의 만남을 허락하셨다.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는 단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한 것, 그리고 나의 의지... 올라와 여신을 뵈어라."
"예."
설마 드래곤과도 싸워야 하는 건 아닌가하고 긴장하던 그들은 드래곤이 순순히 여신과의 만남을 허락하자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 일행들은 천천히 제단위로 올라갔다. 하나의 작은 단이 보이고 그 위에는 작은 생명체 하나가 앉아 있었다. 페어리보다는 좀 더 크지만 인간이라고 하기엔 너무 작다. 고작해야 사이토의 팔뚝 하나정도 되어 보이는 작은 생명체... 그러나 몸은 완전한 여성형이었다. 눈을 감고 있던 그 여성체의 머리카락이 하늘 하늘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마치 수면 밑에 자라나는 해초처럼... 순간 눈이 반짝 떠진다.
"환영합니다. 용사님들..."
여신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드리운다. 그때서야 천천히 고개를 숙이는 사이토들... 그녀는 아무런 옷도 입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이곳은 여신이 잠든 곳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초라한 곳이었다. 황량한 지하크리스탈광장 그리고 하나 뿐인 제단 ...그러나 그녀가 미소를 짓는 순간, 그녀가 여신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여신이라는 존재를 깨닫는 것이 아닌 그대로 느껴버린 것이다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은... 완벽한 편안함, 그리고 행복감... 누군가 말했다. 천국이라는 것은 단순히 물질적인 풍요가 아니다. 그것은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하던 간에 최상의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이라고... 물론 반박할 수도 있다. 최상의 행복감이란 불행의 쓴맛과 실패의 좌절을 알 때만이 느낄 수 있다고... 그러나 천국의 행복감이란 인간의 잣대로는 젤 수 없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무한한 행복감과 충만감이다. 아무튼 그녀에게서는 자연스럽게 여신이라는 것이 떠오르게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사이토들은 마음이 경건해 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 인간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쟈스민루브에게 가끔씩 전해 듣기에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표정에서 슬픔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케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여신...이라... 그리고 레드 드래곤..."
여신과의 만남... 엄밀히 말해서 다음 퀘스트에 대한 브리핑을 끝내고 크리스탈로 된 복도를 되돌아 걸어 나오며 케인이 중얼거렸다.
"사이토씨, 이제 여신이 말한 그 퀘스트만 남았군요."
"예."
생각에 잠겨 조금 전 여신이 말한 것들을 곰곰이 되새겨 보던 사이토는 강진의 물음에 조용히 답했다. 이제 오카리나가 기다리고 있을 그리고 가이아가 기다리고 있을 그 곳까지의 거리를 퀘스트 하나로 줄였다. 그러나 지금 그가 이렇게 고민에 싸여 있는 것은 여신이 말한 그 곳을 지키고 있을 최악의 존재에 대한 것이었다.
"블랙 드래곤이라... 카르휀시온"
마지막 퀘스트이니 만큼, 쉬우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드래곤이라니... 그 뒤에 기다리고 있을 궁극의 사념체... 여신의 말마따나 '흑천왕' 이라는 평의한 이름을 지닌 괴물 따위는 상관 없다. 어차피 그 자리는 오카리나가 차지하고 있을 것... 그러나 드래곤이 문제였다. 그것은 엄연한 그녀에게 도전하기 전에 필요한 마지막 퀘스트... 물론 드래곤에게 도전할 인원의 제한은 39명이었다. 거의 소규모 길드 단위... 리얼판타지아의 특징은 퀘스트에 대한 인원의 제한에 대한 폭이 넓다는 것. 혼자 해도 괜찮고 여럿이 서로 협동하여 해결해도 괜찮다. 길드에 들어있는 이들이라던가 길드마스터들은 퀘스트를 해결하기가 훨씬 쉽겠지만, 그 정도 편의는 그들이 누리는 다른 혜택과 노동에 비해 매우 작은 것이었다. 또한 그 만큼 인연이 많은 이들이 유리하다는 것... 그렇기에 리얼판타지아는 단체를 위주로 한다. 그러나 블랙드래곤이라니... 사이토는 낮은 한숨으로 난감하다는 것을 표현했다. 지금 그를 돕고 있는 이들도, 사실 그는 너무나도 고마웠다. 이런 식의 친절이 싫은 것은 아니었다. 단지 자신의 일에 그들이 보태어 주는 힘이 너무나도 미안한 것이다. 그 미안함으로 인해 사이토는 부담을 느낀다. 그 부담감이 싫었다. 그렇기에 모든 것을 혼자하기를 좋아한다.
"오빠, 아마 브랜 오빠도 참가하고 싶어 할꺼에요."
"그래, 생각해 봐야지."
지금 그의 배낭 안에는 세인트요나르 대신 작은 보석하나가 들어 있었다. 이것은 아레드리온이라는 화이트 드래곤이 일행들에게 선물한 것... 그는 지금 움직일 수가 없다고 한다. 그 이유는 여신의 부활을 위해서, 그리고 과거 블랙드래곤 카르휀시온과의 전투에서 크나큰 상처를 입었다고 한다. 물론 지금 카모프왕국의 아레드리온의 레어로 간다면 그곳에서도 아레드리온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아주 건제한 아레드리온을... 그것은 게임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 아무튼 그가 준 이 보석은 잠시나마 카르휀시온의 독기를 막아내는 역할을 해 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영감! 아까 그 얘기는 뭐요?"
루피아가 케인에게 물었다. 대뜸 얼굴이 찡그려 지면서 루피아를 노려보는 케인, 사실 그가 사고를 당했던 나이는 영감이라고 불리기에는 많이 모자랐다. 단지 게임 안에서 살아온 시간이 길 뿐... 현실의 시간으로 보자면 케인과는 거의 동갑이다.
"이게 요즘 안 맞았더니, 왜 내 칼맛이 그리워지냐?"
케인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자신의 성질은 전혀 안변했다는 것을 직,간접 적으로 표현하자, 루피아는 강진의 뒤로 숨으며 입을 삐죽거렸다. 케인이 장난스레 보이지만, 그는 장난으로라도 루피아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이었다.
"미안 하우다. 그보다 아까 비공식적으로 드래곤이 잡힌 일이 있다고 하지 않았소! 난 지금까지 게임하면서 그 얘기는 금시초문이오."
루피아의 말에 케인은 한쪽 눈썹을 삐죽 올리며 루피아를 노려보다가 곧 헛기침과 함께 고개를 돌렸다. 루피아가 이렇게 신경을 긁어놓은 게 한 두 한두 번은 아니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지."
캐인이 회상하는 듯 눈을 감고, 조용히 말을 이어 나갔다.
"난.... 당시 살아 있었지. 지금 같은 모습이 아닌 진짜 인간... 너희들처럼 현실에 치어 삶을 불평하며 세상을 얕잡아보고 모든 것이 쉽게만 보이던 때가 있었어. 당시, 내가 게임을 시작한지 3년이 되었을 무렵, 난 우연찮은 기회로 당시 가장 유명했던 길드에 가입할 수 있었어. 후우... 아무튼 어느 날인가 재미있는 이야기가 들려오더군. 서버 내의 최강자들이 모여 드래곤을 사냥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난 당시 그래도 꽤 상당한 계급에 있었기에 당연히 참가를 신청했지. 뭐...간신히 말석으로 간신히 그 원정대에 낀 나는 놀라고 말았어."
"왜죠?"
사이토 또한 케인의 이야기가 궁금했기에 자못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그건, 그 구성인원 때문이었지. 거기에 모인 이들은 총 진정한 강자들은 23명... 정말 대단했어. 강자들 중에 초강자들이 23명이었지 당시 난 우물 안 개구리였어. 그런데 웃긴 건 그 중에 서버 내에서 강하다고 대외적으로 알려졌던 이들은 딸랑 네 명 뿐이더군. 나머지는 모두 듣도 보도 못한 이들이었어. 그리고 그들은 모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했지. 정말 강했지."
"그럼 그 사람들이 정말 드래곤을 잡았어요?"
밀레나가 물었다.
"아니, 무참히 죽어갔어. 정말 무참히..."
케인은 아직도 그 때를 상상하면 소름이 돋는다는 듯 고개를 떨구며 대답했다.
"잡았다면서!"
케인의 대답에 루피아가 삿대질을 하며 묻는다. 또다시 눈살이 찌푸려지는 케인... 루피아의 행동이 애써 참아내려는 케인을 자꾸만 자극한다. 다시 한 번 참아내는 케인... 그가 참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그도 블랙드래곤에 대해 묵은 감정이 남아있었다. 당시 그 최강의 파티가 드래곤 사냥의 목표로 잡았던 것도 블랙 드래곤.. 그는 드래곤의 위용에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이번 사이토의 목표가 된 블랙드래곤의 대한 다짐을 루피아로 인해 망치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그의 생활이 되어 버린 게임생애에 단 하나의 오점이 바로 블랙 드래곤 카르휀시온이었다.
"후우, 그런데 말이다. 내가 그렇게 말한 이유는 그 뒷이야기야. 당시 드래곤이 너무나 강력했던 게 문제였어. 리얼판타지아의 모티브가 되었던 건 원래 한 게임판타지 소설이었지. 그런데 그 소설에 너무나도 충실한 나머지 드래곤을 소설과 똑같이 구현한 거야... 23명의 용사들은 모두 블랙 드래곤과의 전투에서 순식간에 게임오버 당했지. 그 최강자들이 너무나 순식간에 당한거야. 그리고 게임사에서도 당황했지. 최강이라고 일컬어지는 그들이 너무나 어이없이 당해 버렸기에 게임사에서는 비밀리에 드래곤의 데이터를 수정할 수 밖에 없었지. 알다시피 리얼판타지아사는 기존의 설정을 고수하는 고집으로 유명하잖아. 그렇기에 굳이 드러내 놓고 드래곤 하향 패치를 할 수가 없었어. 그 이미지가 깎이는 게 싫었던 거지. 그리고 그 패치가 단행되고 며칠 안 되어 한 중소 길드가 드래곤 두 마리를 비밀리에 싹쓸이 했지."
"어떤?"
"노인정 길드... 그 괴물들이었지. 과거 판타지 게임이라는 장르가 만들어지고 세대를 넘어오면 서 그 모든 게임들을 경험한 진정한 유저들... 그 늙은 괴물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드래곤 두 마리를 싹쓸이 해 버린거야. 레드 드래곤과 저 남쪽 바다의 실버 드래곤을... 리얼판타지아사는 발칵 뒤집혔지. 그대로 둔다면 노인정 길드의 뒤를 이은 드래곤 사냥이 계속 될 테니까. 게임사는 그 노인정 길드에 당시 취한 아이템들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대신에 드래곤이 잡혔다는 것을 비밀에 붙이기로 협약을 했다더군. 그래서 비공식적으로는 드래곤이 잡힌 적이 있다고 말한 것이다."
케인의 긴 이야기가 끝났다. 고개를 끄덕이는 일행들...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숨어있을 줄은 몰랐다.
"오빠! 그럼 노인정 길드 할아버지들은 드래곤 잡는 법을 알지도 모르잖아요!"
밀레나가 사이토에게 말했다. 사이토를 주목하는 일행들... 케인과 루피아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지만, 강진은 그 말뜻을 알고 있었다.
"글쎄 , 그렇지만 게임사에서 노인정 길드 어르신들이 알고 있을지도 모를 그 드래곤 사냥 방법을 그냥 두었을 리가 없잖아. 일단, 그 분들에게 물어봐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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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쓴게 이것 뿐이라서..-_-;; 이제 슬슬 결말을 향해 나아가죠. 룰루랄라.-_-;; 아아..그리고 308편에서 보여주셨던...성원... 감사드립니다. 그 추천의 물결이란..ㅜㅜ..
(후후;;)
한 번 더... 하고 싶지만, 대략...위험해 보이는군요.-_-;;(이것은 살기일까?;; 짱돌일까..바위일까..대략 사시미일수도... 반사! 무한 반사! 무지개 반사!)
설정이 상당히 복잡하죠. ^-^... 뭐 이제 마지막까지 두 개의 쳅터가 남았군요. 모두 아시지요. 노인정 길드.. (그들은 최강이었습니다.) 굳이 그들을 최강으로 설정한 건... 제 맘이었습니다........(아아..짱돌은 그만..-_-;;)
노인정 길드의 영감을 얻은 것은..^-^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아아..게임하시는 분들... 지금 열심히 게임을 하고 계실.. 그 폐인님들..^-^ 아시다시피 우리들은 구 1세대의 텍스트 게임에서부터 현재의 3D게임까지 모든 것을 겪어 보았습니다. 모든 히든피스에 단련된 그들... 강할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미래의 애새끼덜은 상상도 못할 강함일 것입니다.(노하우가 있으니까... 역시 늙은 생강은 맵죠. 안맵다구요? 생강차는 맵던데..;ㅁ;)
사이토 쉐리..종니 짜증나시죠? ^_^ 저도 짜증나요.;; 어쩌다 저런 소심한 쉐리를 창조해서..-_-.. 그래도 마지막 쳅터인데 드래곤은 한 번 잡아봐야죠.-_-~ 요호~ 으음... 굳이 추천 해 달라는..-_-;; 말은 안하겠습니다. 후훗..-_-... ;; (안하면 크리스마스에 당신의 애인은 컴퓨터? ^-^) 협박은 아니죠...;; 물러가겠습니다.
ps. 현재 데자부는 '마비노기'라는 게임 18세 이상 서버 에서 "DeJaVu"로 활동 중입니다. ^-^ 많이 불러주세요. 돈이든 아템이든 다 받습니다.( 뻔뻔하죠?=_=)
그리고 마비노기 종니 재미있어요.>ㅂ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이여... 행복을 주는 이여... -_-~ 맨날 맨날 보고 싶어 해서 미안~-ㅂ-... 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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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셀리온 호수 은둔자들의 레퀴엠 사이토 일행이 빌로아에 들어선 것은 그날 밤이었다. 어둑 어둑 해진 밤하늘의 둥근 만월달을 벗 삼아 마을로 들어서던 사이토들은 갑자기 하늘을 수놓은 폭죽에 경탄하며 자리에 멈춰서서 그것들을 감상했다. 무지개빛을 수놓으며 밤하늘을 장식하는 폭죽은 빌로아 곳곳에서 솟아나고 있었고 도시의 중심은 불야성을 이루며 지금 빌로아가 축제 중이라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빌로아 토박이라고 할 수 있는 밀레나는 빌로아에 있을 이벤트들에 대해 곰곰이 기억을 더듬었다. 사이토의 곁으로 다가간 밀레나가 사이토에게 말했다.
"저런 건, 이번 주 이벤트에 없었는데... 깜짝 이벤트인가봐요."
"으응, 그러게."
짧게 자신의 소감을 표현한 사이토는 일행들을 이끌고 서둘러 빌로아로 들어섰다. 게임시간이 거의 다 되어 잘못하면 노상에서 자리를 펴고 누워야 할 상황이다. 물론 케인은 그런 것에 전혀 상관 없지만, 나머지들은 꽤나 오래 게임을 했기에 현실의 몸이 상당히 축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오빠, 노인정 길드 분들한테 당시 드래곤 사냥법을 물어보려면 그 길드타워로 가야 할 텐데."
"그렇지. 그렇지만 지금은 일단 로그아웃하고 좀 쉬는게 먼저인거 같아. 나머지는 다시 들어와서 생각해보자."
도시 중앙에는 많은 유저들이 끼리끼리 모여 춤을 추며 즐거워 하고 있었다. 중앙에 급조된 듯한 높다란 단에는 운영자로 보이는 이가 광란의 춤사위를 펼치며 연신 폭죽을 일으키고 있다.
"무슨 좋은 일 있습니까?"
사이토가 한 유저를 붙잡고 물었다.
사이토의 말에 그 유저는 사이토의 일행들을 쭉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이곤 대답해 주었다. 퀘스트로 인해 소식을 못들었다고 생각한 듯 하다.
"빌로아의 자랑 노인정 길드분들이 연합한 우리 원정군이 지금 막 카모프의 수도 아바론을 함락시켰다고 지금 이렇게 축제를 하는 거에요."
"그렇...군요."
그의 말을 들어보면 내용은 이러했다. 카모프왕국의 침략군을 데이모스까지 파죽지세로 몰아붙이던 노인정 길드는 그 곳에서 카이엔이 이끄는 발키리아 길드와 음지에서 카모프의 길드들을 쥐도 새도 모르게 박살내던 데스스타길드와 조우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어떤 말이 오갔는지는 모르지만, 세 개의 길드는 서로 연합을 형성하기로 결정하고, 카마프라하 왕국 전쟁사 사상 최강의 원정군이 탄생했다고 한다. 월등한 파워의 돌격능력과 물리공격력을 겸비한 발키리아 길드와 마법으로는 이미 최강이라는 명성을 얻고 있는 노인정 길드, 그리고 전체 공격력에서는 이 두 길드를 상회한다고 정평이 난 살인자들의 정점 데스스타 길드가 연합을 하였다. 그 후로는 총대장을 미스티핸즈에게 잃어 수뇌부가 아직 제정비되지 않은 카모프왕국의 연전연패하여 자신들의 수도까지 쫓겨 갔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 카모프왕국은 연합군에게 수도를 내 주고야 말았다.
"저 운영자는 지금 게임이 초기화 되기 일보 직전이라는 걸 알까?"
사이토가 단 위에서 연신 지팡이를 휘두르고 있는 1급 운영자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뭐, 알 필요 없잖아. 어차피 우리가 막아낼 건데.."
루피아가 가슴을 탕탕 치며 말했지만, 사이토는 고개를 흔들며 그의 말에 답했다.
"넌 아직 오카리나와 붙어보지 못해서 그래."
사이토는 주먹을 꽉 쥐었다. 아직도 당시의 고통을 회상하기만 해도 손발이 떨려온다. 그녀와의 전투는 단순한 게임내의 전투가 아니었다. 잘못 걸리면 정말 엄청난 고통으로 인한 쇼크로 현실에서 사망하게 된다. 게임내에서 얻는 상처 정도는 정말 간지럽다고 할 수 있는 그 고통... 또한 그녀의 무기인 그 여섯 개의 빛줄기는 게임상에 그 어떤 것이든 못 자르는 것이 없다. 과거 아리유에서 그녀와 싸울 때 작은 집 한 채가 통째로 잘려나가는 것을 목도 했던 사이토이다. 그러나 사이토가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그녀의 생명력과 게임 내에서의 전능함이었다. 다 죽인 듯 보여도 언제 그런일이 있었냐는 듯이 멀쩡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다. 전투 의욕을 완전히 꺽이게 만드는 그녀의 생명력... 그리고 완벽한 반칙이라고 할 수 있는 신적인 능력... 그녀는 지금까지 싸워온 것들과 전혀 차원이 틀린 것이다.
"여자의 껍데기만 쓴 괴물딱지....년"
사이토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며 중얼거렸다.
"일단 우리들은 사이토씨 집에서 머무는 것으로 하고, 케인님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강진의 물음에 케인은 빙그레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후후, 축제에 내가 빠질 수는 없지. 현실에서 푹 쉬다 오라구. 난 놀고 있을 테니..."
이미 그의 눈은 늘씬 늘씬하게 빠진 엘프들의 눈매에 가 있다. 그의 작업모드가 시작되려는 순간이다.
"그럼, 저희 다녀올 동안 이 곳에서 쉬고 계시는 것으로 하죠."
게임기에서 일어난 형민과 강진 그리고 이안은 서로의 눈에 붙은 눈꼽과 입가의 침 등을 지적해주며 서로를 흉보기에 바빴다.
오도도독...오도도독...
서로의 몸에서 들려오는 예사치 않은 소리들..
"이거..이거... 회사 그만두고 정신없이 게임하는 것도 좋지만, 몸이 너무 축나는 군요. 쿡쿡..."
몸을 풀던 강진은 갑자기 눈앞의 이안을 보고 쿡쿡 거린다. 그의 뒤에서 조용히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는 형민... 그가 이안의 얼굴에 벌인 짓에 대한 것이다. 이미 자리에서 일어날 때부터 형민이 이안 모르게 강진에게 신호를 보내 두었기 때문에 이안은 멀뚱멀뚱 강진을 쳐다볼 뿐이다.
"왜? 아직도 뭐가 묻었냐?"
얼굴을 쓸어보는 이안, 유성펜으로 아주 꾹꾹 눌러 그렸기에 손에 묻어날 리 만무하다. 이안이 배가 고프다며 식당으로 사라지자, 잠시 웃음짓던 둘은 앞으로의 일과를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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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습니다. 죄송합니다. ^-^; 그리고... 앞으로의 일과는...내일..그러니까..오늘.. 서울에 올라가야 합니다. 뭐 올라간 겸 집에도 들러야 하고요. 23일이나 22일 정도에... 자취방으로 돌아와야죠. 그 동안 놀 건 아닙니다. ^-^~ 후후.;; 좀 걸리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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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셀리온 호수 이안이 배가 고프다며 식당으로 사라지자, 잠시 웃음 짓던 둘은 앞으로의 일과를 정리했다.
"저는 일단 회사 쪽에 연락해 보겠습니다. 아무리 초기화 한다지만 이번 초기화에 대해서 회사도 어떤 방침이 있을 테니."
"예. 그럼 저는 좀 쉬었다가 다시 접속하겠습니다."
둘이 대화를 하는 새 주방에서 이안의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으악! 이게 뭐야!"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수면을 취한 형민은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바로 게임에 접속했다. 어슴푸레 그가 로그아웃했던 방안의 전경이 나타난다. 사이토는 자리에서 일어나 장비를 챙긴 뒤 방에서 나왔다. 밀레나는 아예 접속을 해제 했는지 메시지가 통하지 않는다.
"그래, 노인정 길드..."
드래곤에 관한 자문을 구하기 위해서는 노인정 길드로 가야 한다. 집을 나선 사이토는 곧바로 말을 구입한 뒤 노인정 길드로 향하였다. 그러나 노인정 길드의 정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그 앞에는 전쟁으로 인하여 길드타워를 비운다는 푯말만 붙어 있다. 허탕을 친 사이토는 빌로아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노인정 길드가 전쟁에 참가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전 인원이 모두 뛰어 들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마을로 돌아온 사이토는 곧 이어 케인에게 메시지를 넣었다. 그러나 케인의 메시지 또한 꺼진 상태이다. 예전 강진이나 루피아에게 들은 바로는 케인은 평소에는 메시지를 꺼 놓는다는 것이었다. 졸지에 혼자가 되어 버린 사이토는 터덜 터덜 집으로 향하였다.
"응?"
나올 때만 해도 문을 걸어 잠갔건만, 문이 열려 있었다.
"누가 접속해서 집밖으로 나온 건가?"
지금 이시간에 들어올 것은 현재 친구모드로 되어 있는 브랜이라던가 지금 집안에서 로그아웃하고 있을 루피아 뿐이다. 문을 열고 들어간 사이토는 잠시 후 거실에 앉아 있는 일곱 명의 유저를 발견하고는 소스라쳐 놀랐다.
"아...아니! 어떻게 여기에?"
그곳에는 쇼파에 조용히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는 아누비스와 저스틴과 함께 그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고 있는 발데아라가 있었다.
"어이, 우리는 보이지도 않나보이..."
"섭섭하군."
제이드씨가 으름장을 놓는다. 노인정 길드의 길드마스터이신 델린이 허허거리며 제이드를 토닥인다. 그 둘의 옆에 있던 두 노인들도 사이토를 향해 빙그레 웃음을 짓는다.
"내가 데려왔지. 후후..."
케인이 사이토의 앞으로 불쑥 튀어나온다. 아직까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 사이토의 꼴이 불쌍하다는 양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녀석, 다 널 돕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야. 사실은 이 발데아라 녀석이라던가 아누비스와는 이미 친분이 있던 사이다. 어찌 어찌 나도 지인들을 통해서 네 퀘스트에 도움 될 만한 이들을 찾아보다가 이들이 근처에 있길래 불렀던 것이지.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노인정 길드분들과 함께 너를 돕기 위해 빌로아로 오고 있는 중이었다더군."
"전언은 잘 들었소."
아누비스가 품에서 수정을 꺼내들며 사이토에게 말했다. 빙긋 웃고 있는 폼이 별로 화가 난건 아닌 듯하다.
"아아, 우리도 소개할 시간을 줘야지."
제이드가 그들 사이에 끼어들며 말했다. 그의 옆으로 처음 보는 노인 둘이 다가오자 사이토는 고개를 꾸벅했다. 그들은 모두 그의 할아버지와 친분이 있을뿐더러, 그보다 훨씬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다.
"이쪽은 우리 길드의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는 아루드와 파이오니아님이시다. 평소에는 여행을 다니시지만, 전쟁으로 인해 다시 합류하게 되었고 이번에 네녀석의 이야기를 듣고 퀘스트에 참가하기 위해 이렇게 함께 오게 되었지."
"아루드라 하네."
"파이오니아라고 하지. 할아버지를 빼다 닮았구만. 허허허"
아루드라는 인물은 붉은 색의 로브에 안으로는 검은 색의 조그마한 금속 방어구를 두르고 있었다. 파이오니아는 아루드와 색을 맞춘 듯 같은 옷에 단지 틀린 점이라면 검은 색의 제사장용 두건을 쓰고 있다.
"저는 사이토라고 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는 사이토의 앞으로 델린이 나선다. 얼굴이 약간 심술궂게 변해 있는 델린은 사이토의 머리를 "콩" 하고 때렸다.
"그런 일이 있다면 의당 우리에게 도움을 청했어야 할 것 아니냐!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엉뚱한 녀석들이나 붙잡겠다고 늙은 노구를 이끌고 카모프 녀석들이랑 드잡이 질을 하고 있었지."
"헤헤, 그...그렇게 되었습니다."
실없는 웃음을 보이는 사이토, 이럴 때는 능청밖에 없으리라.
사실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얼굴에는 장난끼가 가득하다. 뒤에서 애써 웃음을 참으며 사이토를 지그시 쳐다보고 있는 아누비스들이다. 처음 보았을 때 말도 없고 얼굴도 항상 인상을 쓰며 다니던 사이토가 노인에게 머리를 쥐어 박히고 실없이 웃는 표정이 새로운가 보다. 그들도 처음 사이토로부터의 전언을 들었을 때 조금 섭섭했다. 처음 그들이 생각한 것은 아직 사이토의 마음이 그들에게 완전히 열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발데아라의 생각을 틀렸다. 만약 사이토가 그런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면 수정을 이용해서 그들에게 애써 메시지를 띄우지는 않았으리라. 또한 카모프의 마수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비밀을 지켜야 했다는 데서 그들은 사이토를 이해했다. 그리고 진정 사이토를 돕고, 또한 과거의 은혜를 갚을 수 있다는데서 그들은 사이토를 돕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러한 결정을 내렸다고 해도 전쟁의 중간에 갑자기 수뇌부가 빠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살인자 길드라 하더라도 그런 식으로 룰을 어기게 되면 유저들로부터 지탄과 함께 외면을 받게 된다. 그런 이유로 카모프왕국의 수도 아바론을 접수한 뒤 그들은 그들과 함께 카모프를 공략해 나가던 노인정 길드와 발키리아 길드, 그리고 그 외 연합길드들과 회의를 가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들은 노인정 길드라던가 발키리아 길드도 사이토와 친분이 있다는 것, 또한 노인정 길드도 자신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내고 다 함께 얼마 후 빌로아로 되돌아 온 것이다. 그것은 모두 사이토가 현실에서 자고 있는 시간에 일어났던 일, 바로 게임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자리에 앉은 그들은 본격적으로 앞으로의 일을 상의하기 시작했다. 지금으로써 남은 퀘스트는 단 하나이다. 바로 블랙 드래곤을 처치하고 오카리나가 있을 곳으로 향하는 것이다. 사이토가 델린에게 물었다.
"그런데 어르신, 제가 듣기에는 어르신들께서 과거에 드래곤들을 사냥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이토의 말에 델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옆의 케인을 가리킨다.
"그 이야기는 이 케인이라는 분에게 들었지. 블랙 드래곤이라..."
드래곤을 사냥했다는 말에 져스틴과 발데아라도 델린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그들은 모두 거실에 빙 둘러 앉았다. 자리가 모자랐기에 사이토는 바닥에 앉아 델렌을 쳐다보았다.
"그래, 아주 오래전 일이지. 당시 그 게임내의 강자들이 모여 드래곤을 사냥한다는 이야기가 돌 즈음, 공교롭게도 우리들도 드래곤 사냥을 준비하고 있었어. 그렇지만, 난 처음에는 시한을 늦추자고 이야기를 했단다.
"그건 왜죠?"
사이토가 물었다. 빙그레 웃음 지으며 자신의 옆에 앉은 동료들을 바라보는 델린이다.
"당시 우리들은 게임 내에서 무서울 것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강한 부류에 속했어. 흔히 그런 이들에게는 자만심이 들기 마련이지. 그런 이유로 난 혹시나 있을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그 최강자들의 파티가 드래곤을 어떻게 잡느냐를 일단 지켜보기로 했지. 뭐, 그리고 그들이 무참히 깨져나갔다는 정보를 들은 뒤로 우리는 드래곤을 잡을 꽁수를 생각해야 했지."
꽁수라는 말에 눈이 번쩍하는 사이토이다. 그들은 드래곤을 잡았다. 그럼으로 꽁수 또한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일단 첫 목표로 잡은 것은 레드드래곤이었다. 바로 그 최강자들이 연신 죽어나갔다는 그 드래곤이지."
루피아의 설명이 계속 되었다. 그의 말을 들어보면 노인정 길드는 일단 레드 드래곤에 관한 정보를 수집했다고 한다. 각종 게임 사이트에서 드래곤에 관한 이야기들을 모으고, 그 최강자들의 파티가 어떻게 졌는가... 그리고 드래곤에 대해 일명 '더미'를 사용하여 능력 체크를 했다고 한다. 이 '더미'라는 것은 일종의 희생양이었다. 노인정 길드원들중 몇 분이 그들의 손자, 손녀 혹은 아들,딸 등을 협박하여 그들을 게임에 접속시킨 뒤 초보 케릭터를 만들고 그들을 이용해 레드 드래곤의 레어로 들여보내는 짓을 반복했다. 그곳에서 알아낸 바로는 드래곤은 일단 8서클 까지의 마법까지 밖에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방심하지 못할 것은 각 속성의 드래곤들은 자신의 속성에 맞는 마법을 8서클까지 더블 케스팅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레드 드래곤이라면 8서클에 이르는 화염의 마법 중 최강의 공격력을 자랑하는 '헬파이어'를 거의 연사할 수 있는 수준이다. 마법 방어력은 6서클 이하 마법에 대해서는 흠집도 낼 수 없으며, 검에 관해서는 +3의 검이 아니면 검날도 안 들어간다. 또한 이미 알려진 바에 따르면 드래곤은 꼬리까지 합치면 길이가 90미터에 달한다. 물론 꼬리가 대략 몸의 2/5를 차지하고 또 목도 상당한 길이기에 그리 큰 편은 아니지만, 행동력도 상당히 빠르고, 모든 부분을 무기로 사용한다. 꼬리로 후려치고, 날개로 바람을 일으키고, 손발로 잡아 뜯거나, 집어 던지고 입으로 물어 죽이는 등의 공격을 한다. 마지막으로 드래곤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브래스는 하루에 세 번을 쓸 수 있다고 한다. 물론 그 파워는 9서클 마법을 훌쩍 뛰어넘는 것이다. 또한 그 지적 수준은 2급 AI로써 드래곤은 자신이 게임 내에서 맡은 역할에 아주 충실하기에 인간을 아주 축생 취급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8서클 마법밖에 못쓴다면, 유저들이 더 유리한 것 아닙니까? 유저들 측에서는 9서클 마법도 쓸 수 있지 않습니까?"
사이토가 물었다. 그는 아직까지 9서클 마법을 본 적은 없다. 그러나 서클과 서클 사이의 파워의 격차에 대해서는 조금이나마 알기에 의구심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설명을 해 나가던 델린은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 내 또한 9서클을 사용할 수 있는 마법사이다. 그러나 내가 사용할 수 있는 9서클 마법은 아무리 물약을 먹고, 아이템을 쓰며 지랄을 떨어도 하루에 한 번이 고작이다. 그리고 드래곤은 9서클 마법에 대해서도 방어력이 아주 출중하지. 또 8서클 마법의 연사라는 것이 우습게 들릴지는 몰라도, 8서클 마법들 또한 아차 하는 순간에 수 십명을 저승으로 보내는 마법이란다. 그런데 당시 우리가 얻은 정보에 의해면 그 최강자들이 전멸한 이유가 드래곤이 9서클 마법을 난사한 것 때문이라고 들었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드래곤들은 8서클 까지 밖에 사용하지 못하더군."
"예에..."
델린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그 후 노인정길드에서 연구에 중점을 둔 것은 드래곤의 날개 봉인이었다고 한다. 한 마디로 전투 중 드래곤이 어떻게 하면 못 날아오르게 하느냐는 것, 당시 그 최강자들의 파티의 전멸 요인이 바로 드래곤의 날개를 봉인시키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그 날개를 봉인시키기 위해 별짓을 다해봤지. 저주라는 저주는 다 한 번씩 걸어 보고, 중압마법이 걸린 아이템을 사용해 보기도 하고... 아무튼 참 힘든 일이었단다. 그래서 우리가 선택한 것은 우리의 유리한 점을 하나 버리는 동시에 드래곤의 날개를 봉인시키자는 거였다."
델린은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시 노인정 길드가 택한 방법은 바로 드래곤의 레어 안에서 전투를 벌인다는 것이었다. 드래곤의 레어이니만큼 협소하여 마법에 의해 몰살할 위험이 많다. 그러나 드래곤의 날개는 그보다 더 위험하다.
한마디로 드래곤이 하늘로 날아오르면 방법은 마법과 활 밖에 없다. 궁사들이 있지 않냐고 사이토가 묻자 델린은 고개를 흔들었다.
"궁사들이 있기는 하지만, 드래곤은 공중에서 아주 빠르다. 그리고 우리가 가장 주목한 점은 드래곤이 하늘로 날아오를 때는 두가지 경우가 있었다는 거지. 하나는 회복마법을 사용하기 위해... 그리고 둘째는 ... 그 저주받은 브래스를 사용하기 위해서지. 그리고 우리가 발견한 재미있는 사실은 드래곤은 하늘로 날아오르지 않으면 회복마법과 브래스를 잘 사용 안한다는 것이었지. 뭐, 게임 상의 설정이 어떻게 되어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것 또한 우리를 유리하게 만드는 거였지. 마지막으로 재미있었던 것은 게임사는 너무나 본 설정에 충실했다는 거지."
씨익하고 웃는 델린이다. 델린의 말에 따르면 드래곤의 약점은 아주 정직 했다고 한다. 너무나 정직한 약점, 고래로 내려온 모든 판타지에 나오는 드래곤의 약점, 바로 앞가슴에 자리한 드래곤 하트였다. 아무튼 모든 준비를 끝마친 그들은 드래곤에 도전을 했고, 우여곡절 끝에 레드 드래곤을 잡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그리고 레드 드래곤을 잡으며 나온 아이템들을 바탕으로 두 번째 목표인 실버 드래곤 또한 사냥했다. 델린의 이야기가 끝난 뒤 거실에 모인 이들은 모두 말이 없다. 모두 머릿속에 델린이 말한 드래곤의 이미지를 그리고 그 드래곤이 공격했을 시 자신이 어찌해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 중이다.
"당시에 우리는 레드드래곤을 잡은 뒤 얻은 아이템들 중 마법지팡이 하나를 얻게 되었단다. 그 마법지팡이의 이름은 '로드 오브 파이어'... 굉장한 마법지팡이였지. 거의 사기성에 가까운 마법 지팡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 지팡이로 인해 두 번째 목표로 실버드래곤을 점찍었지."
"그것을 혹시 가지고 계십니까?"
발데아라가 델린에게 물었다. 일행들이 모두 델린을 주목하는 가운데 델린은 헛웃음과 함께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그것은 팔아버렸소. 아마 당시 비밀경매를 붙여서 거의 천억골드에 가까운 금액으로 카모프왕국의 어떤 길드에 팔아버렸지."
델린의 말과 함께 거실 곳곳에서 한숨소리가 터져 나온다. 천 억골드라는 말도 충격이려니와 지금 잠시나마 그 아이템에 기대를 걸어 보았던 이들 또한 실망이 가득했다.
"그런데 그 지팡이가 얼마나 대단하길래 다음 목표를 실버드래곤으로 잡으신 겁니까? 한낱 아이템 하나에 목표를 실버로 잡으셨다는 건 잘 납득이 가지 않는군요."
발데아라의 물음에 델린은 양손을 펼쳐 당시 그 마법지팡이의 대략적일 길이를 만들어냈다.
"대충, 길이는 이만해가지고 지팡이의 머리에는 붉은 구슬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마법지팡이였소. 그리고 그 지팡이의 능력치가 아마 8서클 마법을 마나의 소모 없이 4번 더 사용하게 해 주고 9서클 마법도 한 개를 더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 주면서 화염 계열 마법 사용시 파워의 30프로를 증대시켜주는 능력치가 있었지. 물론 사용 제한이 9서클 마법의 마스터만이 사용할 수 있다는 제약점이 있었지만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경탄 섞인 한숨을 내쉬는 일행들이다. 그런 사기성의 아이템이 존재한다니. 만약 그런 아이템이 있다면 그것은 진정으로 게임 내에서 유일하게 하나 존재하는 그런 것이리라. 말을 이어 나가려는 델린, 그러나 그의 말은 사이토의 물음에 의해 끊겼다.
"혹시, 그 '로드 오브 파이어'... 카모프 왕국의 '아바론 길드'에 팔지 않으셨습니까?"
사이토의 물음에 머리를 긁적이는 델린, 너무나 오래된 일이기에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글세,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거 뭐냐...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으응?"
문득 눈이 얼어붙는 델린, 못 볼 것을 본 듯 눈이 휘둥그레해져 있다. 그의 시선에 따라 고개를 움직이는 일행들... 그곳에는 사이토가 예전에 카모프왕국의 총대장에게서 입수한 그 붉은 지팡이가 들려 있었다.
"그...그걸 어떻게 네가!"
"카모프 왕국의 총대장이 들고 있던 데요?"
사이토는 순순히 대답했다. 예전에 그 불상사에 가까운 일로 인해 카모프 총대장은 사이토의 눈먼 디스코어에 죽어버렸다. 당시에 떨어진 것이 이 지팡이... 그 동안 가방 안에 넣어 두었다가 조금 전 델린의 말을 들은 뒤 꺼내어 본 것이다.
"파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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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읏..-_-..으읏...흐읏...흐읏... 아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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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셀리온 호수 델린이 배를 붙잡고 웃어 재꼈다. 거실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눈이 휘둥그레 해져서 사이토에게 모여든다. 고고한 빛을 뿌리고 있는 '로드 오브 파이어'는 사이토의 구릿구릿한 배낭 속에 처박혀 외면받고 있다가 오랜만에 자신을 알아보는 이들이 있어 즐겁다는 듯 영롱한 빛을 뿌려댔다.
"천....억 골드.."
처음 이 아이템을 집었을 때는 아이템 습득의 즐거움 보다는 그를 죽이려 쫓아드는 카모프 무리들이 더 싫었다. 그렇게 안 좋은 기억이 있어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지팡이... 천억 골드라 한다. 과거 게임 초반에 나온 아이템이니 만큼 그만큼 더 비쌌을 수도 있다. 아니면 경매에서 가격이 턱없이 올랐을 수도 있다. 사이토는 마른침을 삼켰다. 아무리 돈에 초연한 사이토라도 천억 골드라는 말에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리얼판타지아에서 돈을 벌기란 그리 쉽지 않다. 물론 요령을 가지고 장사를 터득하거나 안정된 파티를 소속되어 있을 시에는 돈이 조금 씩이나마 차곡차곡 쌓이지만 단 돈 만 골드 모으기도 힘든 것이 리얼판타지아이다. 때론 단 돈 10골드에 한숨 쉬며 열심히 나무를 쪼개 팔기도 하고, 또는 팔자에도 없을 웨이트리스도 해댄다. 그런데 천억 골드라니... 아무리 지금 가이아와의 일이 걸려 있다고 해도, 돈에 초연하지 않을 수는 없다.
"츳, 그래도 초기화 되면 말짱 황인걸."
사이토는 입맛을 쓰게 다시며 그 지팡이를 델린에게 넘겨주었다. 엉겁결에 그것을 받아드는 델린이다.
"써주십시오."
이건 예정된 수순이다. 사이토가 드래곤 사냥에서 마법지팡이를 쓸 일이 없으니 마법사인 델린에게 넘기는 것이 유용하다.
"오오, 아주 주는 건가?"
델린이 입가에 묘한 웃음을 지으며 사이토를 바라보았다. 일단 아이템이 델린에게 넘어갔기에 게임상의 소유권은 델린의 것이다.
델린의 말에 사이토의 눈이 번쩍 빛난다. 사이토는 돈에 초연한 성인이 아니었다.
"파티 결성..."
모두가 사이토의 파티에 들어간 가운데 사이토는 파티창을 닫으며 중얼 거렸다. 순식간에 일곱 명이 추가 되어 버렸다. 예전 파티 동료인 강진이나 밀레나, 루피아, 케인 등이 사이토의 인연이라면 지금 모인 일곱 명은 할아버지의 인연들이다. 할아버지의 인연과 그의 인연이 그를 돕기 위해 한자리에 뭉친 것이다.
"그런데, 그 블랙 드래곤을 사냥할 곳은 어디입니까?"
발데아라가 그의 곁으로 와 물었다. 게임 원래 설정상에야 블랙 드래곤 카르휀시온이야 카모프왕국의 늪지대에 있겠지만, 퀘스트 상의 카르휀시온은 지금 다른 곳에 있다. 스토리 상이겠지만, 엑셀리온의 여신은 그곳을 이렇게 표현했다. 과거의 영광과 상처가 잠들어 있는 곳, 대지의 힘의 원천이 모이는 곳...
"아리유에서 서쪽으로 해와 달이 스물세 번 바뀌는 곳, 과거의 영광과 상처가 잠들어 있는 곳에 드래곤이 기다리고 있다고 엑셀리온의 여신이 말했습니다."
어찌 보면 수수께끼와 같은 말, 그러나 이런 언어의 키워드는 쉽다. 어떤 지역을 나타내는 키워드는 어찌된 영문인지 다른 퀘스트에 중복되는 것이 많았다. 한 퀘스트에서 용의 계곡을 화염의 바다라고 표현한다면 다른 퀘스트에서도 용의 계곡은 화염의 바다라 칭해진다.
"그렇다면..."
델린이 그에 대해 알고 있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말꼬리를 흐렸다.
"그곳이 어딥니까?"
마침 델린이 그 키워드의 해답을 알고 있는 듯하자 사이토는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팔짱을 끼고 무언가를 생각하던 델린은 고개를 갸웃 거리며 대답한다.
"그곳은... 에덴일세."
"에덴?"
델린의 짧은 대답에 사이토는 그가 말한 '에덴'이라는 단어를 곱씹었다. 기독교의 성경에 나오는 인간들이 처음 창조되어 신의 울타리 안에서 살았다던 낙원의 이름이 에덴이다. 그런 곳에서 드래곤이 기다리고 있다니... 조금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뭐, 말은 에덴이지만, 그곳은 정말 깊고도 깊으면서 상급의 몬스터들과 사나운 짐승들이 우굴 거리는 그런 광대한 계곡이지. 오죽하면 그 계곡이 업데이트 되었을 때, 유저들이 그 업데이트는 카마프라하 왕국 유저들을 죽이려는 속셈이라고 농성을 벌였을까."
델린의 말을 종합해보면 이렇단다. 그 에덴 필드가 업데이트 될 때, 대지가 마구 흔들렸다고 한다. 모든 몬스터들이 몸을 움츠렸고, 유저들은 불안에 떨었다. 게임사에서 업데이트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대지의 흔들림은 너무나 강렬했다. 그리고 만들어 진 것이 바로 서쪽의 에덴이다. 지진으로 인해 갈라진 땅에서는 순식간에 이름 모를 나무들이 자라났다고 한다. 갈라진 부분은 짧게 잡아도 거의 지평선까지 보일 정도로 길고, 그것이 삼일 간 계속된다고 한다. 수많은 모험가들이 그곳에 크고 작은 파티를 이루어 도전했다. 때로는 성공했지만, 더 많은 이들이 실패하였던 지역이다.
"그곳은 마치 뭐랄까. 과거의 온라인 게임을 보는 것 같았단다. 괴이 망측한 몬스터들이 쉴 새 없이 달려들고, 항상 그곳에서 보는 하늘을 어둠에 쌓여있지. 한 삼일 놀고 있으면 기분까지 꿀꿀하게 만드는 곳이랄까."
"그렇...군요."
쉽지 않으리라고는 생각했지만, 이제는 드래곤에게 가는 것도 문제이다. 사이토가 고민에 빠진 사이 강진과 루피아가 로그인 했는지 계단을 통해 둘이 내려오고 있다.
"이...이분들은 누굽니까?"
강진이 물었다. 사이토는 낮은 한숨을 쉬며 강진과 루피아에게 갑자기 파티에 난입한 이들에 설명하기 시작했다. 가만히 설명을 듣고 있던 둘은 퀘스트의 동료가 되 줄 사람들이라는 말에 얼굴이 활짝 펴진다. 그러나 강진은 루피아와 다르게 얼굴에 수심이 남아있다. 사이토에게 잠시 자리를 옮기자고 손짓하는 강진이다. 사이토는 그와 함께 지하의 작업실로 들어갔다.
"그렇게 된 겁니다."
"후우, 정말 안 좋은 소식이군요."
강진이 전한 소식은 크게 세 가지 였다. 첫째 전쟁이벤트가 끝나고 현실 시간으로 하루가 지나면 예정된 대로 초기화가 단행된다고 한다. 두 번째는 드래곤에 관한 것이었다. 노인정 길드에게 순식간에 두 마리의 드래곤을 잃은 게임사는 한정적 이나마 드래곤의 마법제한을 다시 풀어줬다고 한다. 물론 라이프와 마나는 기존보다 하향 조정되었지만, 전체적으로는 공격력과 방어력이 더욱 강력해졌다고 한다. 마지막 소식은 가이아에 대한 것이었다. 슈퍼 컴퓨터 가이아가 이번 초기화를 계기로 하드웨어 째 교체된다고 한다. 물론 이사회에서 결정한 일이었다. 회장인 김미숙은 반대의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현재는 이사회가 더욱 강력하다. 지금으로써는 오카리나가 처치된다 해도 가이아의 존폐 여부는 불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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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_(__)_ 며칠 놀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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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셀리온 호수 "대신 아직 게임사의 회장님과 그 측근들이 아직 우리 편이라는 게 다행인 거겠죠."
다음날 아침, 일행들이 출발 준비를 하는 새 밀레나가 게임에 접속하였다. 그와 함께 따라 들어온 것은 그의 친구 브랜이다. 브랜은 만나자 마자 주먹을 먼저 날림으로써 자신의 섭섭함을 표현했지만, 사이토는 시큰둥한 표정이다.
"이 자식! 이 형님을 빼놓고 혼자 그런 재미있는 곳으로 놀러가려고 하다니!"
"별로... 안 미안해."
"이 자식! 이 자식!"
연신 주먹질을 해대지만 사이토가 전사 따위가 휘두르는 주먹에 맞을 리가 없다. 브랜이 아무리 무술을 배웠다고 하지만, 게임상의 기본 적인 룰인 계급의 차이는 어쩔 수 없는 법이다. 이리 저리 피하던 사이토는 낮은 한숨을 내쉬며 브랜을 쳐다보았다. 마주보는 브랜... 한 동안 둘 사이에 침묵이 오간다.
"갈래."
"응..."
이로써 13명의 원정대가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사이토의 집에서 이번 원정에 사용할 아이템들을 챙기며 출발 준비를 서두르던 밀레나가 주위의 동료를 둘러보다가 손가락을 꼽아보기 시작했다.
"에, 보자. 그러니까 궁사로는 저스틴씨가 있고, 도둑은 사이토오빠와 아누비스씨 그리고 전사계열은 나랑 루피아씨랑 브랜 오빠, 그리고 네크로맨서는 발데아라씨랑 강진씨... 궁사는 저스틴 언니 뿐이네? 그리고 할아버지들은 모두 마법사?"
"응? 난 무투가인데?"
"에? 활 들고 계시잖아요."
저스틴과 밀레나는 이미 꽤 가까워져 있었다. 어느새 언니 동생 하는 사이, 밀레나가 저스틴의 등에 메인 거대한 장궁을 손으로 가리키며 묻자 저스틴이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꼭 궁사새끼들만 활 쏘라는 법은 없잖아. 스킬은 없지만 내가 원체 덱스만 졸라게 높고 또 전 에 활을 많이 쏴 봐서 장거리 공격용으로는 주로 활을 써. 게다가 이게 보통 활이 아니거든."
저스틴이 등에 메인 거대한 장궁을 손에 들자 밀레나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장궁의 위용에 감탄하고 말았다. 웬만한 손힘 가지고는 거의 당기지도 못할 정도로 강력해 보인다.
"그거, 궁사도 못 당길 것 같은데요?"
밀레나의 말에 저스틴이 얼굴에 삐죽한 웃음을 지으며 허리춤에서 굵은 검은색 끈을 꺼내든다.
"맞아. 게다가 워낙 힘이 좋은 녀석이라 활줄도 최상급 아니면 두 발도 못 쏘고 끊어져 버리지. 그렇지만, 파워만큼은 정말 사랑스러운 녀석이랄까?"
저스틴이 그 장궁을 한손으로 들고 붕붕 휘두르자 바람소리가 분분했다.
"그만 꼴갑 떨고, 출발하시죠. 마님."
발데아라가 저스틴의 뒤로 다가가 조용히 속삭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가 말에 탄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 밀레나는 약삭빠르게도 이미 자신의 말에 얌전히 올라타 있다. 잠시 투덜거리던 그녀는 아누비스의 옆에 조용히 서있는 자신의 말으로 다가가 올라탔다. 의외로 발데아라에게는 찍소리 못하는 저스틴이다.
"모두 출발!"
케인의 신호에 따라 일행은 말을 달려 빠르게 빌로아를 벗어났다. 그들을 배웅하는 듯 태양은 붉은 노을의 베일에 싸여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말을 탄 13인의 뒤로 긴 그림자가 뒤따른다.
"그르르르..."
어둠속에서 울리는 그것은 흡사 동굴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듯 멀게만 느껴진다. 그러나 그 검디검은 어둠속에서 미약한 시야 속에 보이는 검은 광택이 번쩍거릴 때마다 그 울음소리를 내는 동물의 크기가 예사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칠흑 같은 어둠보다 더 검은 그 흑색의 방패들은 조밀한 모양을 이루며 위로 위로 뻗어 올라간다. 처음 보이는 것은 미끈하게 빠져 올라가는 비늘의 향연, 거대하지만 그 모양은 그 어떤 예술가가 만든다고 할지라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깨끗하게 생겼다. 그 몸을 받치고 있는 다리들... 일견 거대하고 흉폭한 발톱들이 가지런히 달려 있으며, 힘에 넘치는 근육들이 비늘에 억눌린 듯 보이지만, 그 전체적인 형세는 힘에 가득 찬 몸뚱아리이다. 그 누가 드래곤을 비만 도마뱀이라 욕했는가. 드래곤의 몸은 미끈함의 극치라고 말할 정도로 단련된 힘찬 몸뚱아리를 자랑하고 있었다. 다시 그 위로 올라가면 등에 붙어 있는 박쥐의 피막 같은 날개는 매끈하게 빠져 웬만한 주택의 지붕 두 개를 옮겨 붙인 듯 하지만, 깨끗하게 접혀 등을 장식하고 있고 목으로 보이는 곳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흡사 파충류의 그것같아 보이지만, 그 위에 붙은 다섯 개의 크고 작은 뿔들이 그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크르르르, 누구인가..."
블랙드래곤 카르휀시온은 그의 주변에 느껴지는 이질적인 존재감에 고개를 들며 물었다. 평소 같았다면 그대로 광폭하게 울부짖으며 상대에게 그의 존재감을 가르쳐 주겠지만, 그 느낌은 별로 낯설지 않았다. 일반 몬스터들이라면 일단 흉폭하게 달려들고 보았으리라. 그러나 유니크한 몬스터인 만큼 드래곤은 NPC들과 똑같은 2급의 AI를 지닌다. 물론 그들은 자신들이 진정 수천 년을 살아온 드래곤이라고 굳게 믿는다. 그러나 그 하나만 제외한다면 그들은 웬만한 유저들 뺨칠 정도로 풍부한 지식을 지니며, 그리고 지능을 지니고 있다.
"저에요. 흉폭하고도 자비로우신 절대자 드래곤이시여."
그의 머리 앞으로 작은 빛 하나가 형성되며 어두웠던 동굴 안을 비추기 시작한다. 그리고 빛 앞에 웅크리고 있는 이 거대한 생물도 비추기 시작했다. 드래곤의 입가에 가지런히 박힌 이빨이 음영을 드리우며 빛나기 시작한다. 그 빛덩어리는 조금씩 커져 가다가 이늑고 한 여인을 만들어냈다. 머리카락은 칠흑과 같이 검으나 그 피부는 빛이 무색할 정도로 하얗기에 어느새 동굴안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내가 빛을 싫어하는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대놓고 비추어 대는 건 무슨 심보인가. 여신 가이아여. 설마 흑천왕의 부활이 너의 관조에 방해가 되는 것인가?"
드래곤은 이내 상대를 알아보았다는 듯, 목을 뒤로 한껏 들이키며 그 빛덩어리에게 말했다.
"아니, 아닙니다. 흑천왕은 기울어진 저울추를 다시 원상태로 만들 예정된 운명의 소산, 그것에 대해서 저는 눈을 감기로 했답니다."
오카리나는 작게 미소지으며 드래곤의 앞으로 날아갔다. 드래곤의 AI는 가이아, 즉 지금 오카리나에게 잠식당해 있는 가이아를 관조의 여신으로 알고 있도록 설정되어 있다. 물론 그 호칭의 문제는 오카리나가 마음만 먹으면 바꿀 수 있지만, 그녀는 오랜만에 들어보는 그 호칭에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과거 그녀도 관조의 여신 가이아라 불리던 때가 있었다.
"그렇다면 어쩐 일인가? 이 늙디 늙은 짐승의 말벗이라도 해 주려 나타난 것인가? 미안하군. 난 저 흑천왕과의 오랜 맹약으로 인해 그가 깨어나기 전까지 이곳을 지켜야 하기에 너와 노닥거릴 틈이 없다."
"물론, 그러셔야 겠지요."
스토리 상이기는 하지만, 지금 블랙 드래곤 카르휀시온이 지키고 있는 곳은 흑천왕의 제단이 있는 지하궁전으로 통하는 문이었다. 비록 생김새가 문이라기보다는 일반의 거대한 공동으로만 보일 뿐이지만, 그 커다란 동공을 꽉 채우고 있는 카르휀시온의 모습만을 본다 하더라도 그 어떤 문보다 튼튼하고 견고해 보이리라. 오카리나는 카르휀시온의 머리 옆으로 날아가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드디어 인간계의 용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그녀의 말에 카르휀시온의 눈이 얄박하게 변한다. 못마땅한 듯 고개를 흔드는 카르휀시온이다.
"제길, 인간 놈들...또 방해인가? 정말 마음에 안 드는군."
"뭐가 말인가요? 지고의 생명체여?"
오카리나가 공중에서 흡사 오르골속의 소녀처럼 방글 방글 돌면서 물었다. 카르휀시온은 눈앞에 있는 이 작은 소녀의 행동에 피식 웃고는 대답했다.
"크크, 특이하게도 그 인간들의 용사는 도저히 예측할 수가 없어. 엄청나게 약해 보이다가도 또 어느 순간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취약점을 뚫어오지. 물론 나도 인간들의 용사라고 하면 절대 방심하는 짓은 하지 않지만, 뭐랄까. 용사라는 녀석들은 인간이란 종족과 따로 떼놓고 싶을 정도로 특이한 놈들이야."
드래곤의 말에 오카리나는 만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는 드래곤의 머리에 뚤린 귀로 보이는 물건에 작게 속삭였다.
"맞아요. 이번 용사들은 정말 강해요. 또 그들 중에는 당신과 같은 드래곤을 상대해 본이들도 포함되어 있어요. 그들은 당신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또 그에 대해 많은 준비를 할 꺼에요. 자! 당신은 어떻게 할 건가요?"
그녀의 말에 드래곤은 한동안 인상을 찌푸리며 고민에 빠졌다. 자고로 아무리 강력한 생명체라 할지라도 자신에 대해 잘 안다면 그만큼 자신감이 없다면 도전하지도 않으리라. 설마 그 자신이 당하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재수 없게 인간들의 계략에 휘말려 진퇴양난에 빠지는 것도 별로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그러나 드래곤은 곧 자신의 고민이 정말 부질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자신이 누구인지는 그 누구보다도 자신이 더 잘 안다. 그는 드래곤이었다. 수 천년간을 지켜온 부동의 절대자!
"크...크크크하하하!"
갑자기 드래곤이 천지가 떠나갈 듯 웃어 재끼기 시작했다. 웃음소리가 얼마나 큰지 그 거대한 동공을 울리다 못해 떨려오기 까지 한다.
"재미있겠구만. 이번 용사 녀석들은..."
드래곤이 가슴을 쫙 펴며 고개를 하늘로 치켜 새웠다. 그것은 바로 기고만장의 자세, 올 테면 와보라는 이를테면 절대자의 자세랄까? 온몸의 에너지를 확장시키듯 전신의 근육들이 용솟음 치기 시작한다.
"후우..."
그 꼴을 옆에서 지켜보던 오카리나는 낮은 한숨을 내쉬며 그 드래곤의 작태를 감상했다. 사실 조금 걱정이 된다. 사이토들은 모르겠지만, 오카리나는 이 시스템 자체라고 봐도 무방하다. 솔직히 오카리나는 그들이 출발하는 것을 보았고 느꼈으며 그들의 말 하나 하나를 모두 엿들었다. 그렇기에 지금 이 한심한 몬스터를 보며 한숨만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이내 한숨 속에 작은 미소를 지었다. 허풍만 가득한 듯 보이지만, 그리 밉지는 않다.
"난, 그 말을 해주려고 왔어요. 이 덩치만 산만한 검댕이 도마뱀님."
"뭐야!"
그 투박한 비늘위로 혈관이 솟아오를리는 없겠지만, 드래곤은 적잖게 기분이 안 좋다는 듯 그녀를 노려보았다.
"몸조심하라구요."
작별의 인사인 듯 손으로 작은 키스를 만들어 드래곤에게 선사한 오카리나는 천천히 어둠속으로 사라져갔다. 어둠속에 홀로 남은 드래곤... 한 동안 침묵에 싸여 있던 드래곤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녀의 말에 겁먹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기왕이면 이 용사녀석들을 좀 더 힘을 뺀 뒤에 가지고 놀고 싶어졌다.
"뭐, 똘마니 좀 더 배치시켜야 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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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비적...-_-...아..용물 쓰고 싶다... 나 원래 처음 손 댄건 용물이었는데...용물이 좋아..0ㅁ- 용물..용물...드래곤...파워..힘힘... 다 죽어!-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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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셀리온 호수 다음 날이 되어 그들이 도착한 곳은 아리유와 서쪽 도시들로 가는 갈림길이 되는 조용한 한 마을이었다. 유저들이 거의 없는 아니 간혹 한두 명씩 바쁘게 오고 가는 그런 작은 마을, 게이트 스톤을 사용했다고는 하지만, 모두 오랜 말타기에 지쳤기에 일행들은 잠시 쉬어가기로 결정했다.
"그렇다면 어르신들은 아리유로 가신 뒤 서쪽 마을에서 합류하시겠다고요?"
"그렇지. 아무래도 '더미'로 사용할 녀석들을 얼른 간추려서 데려가야지."
사이토의 물음에 델린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음료가 담긴 찻잔을 손에 든다.
그 이야기가 나온 것은 대략 점심때였다. 한참 식사를 마치고, 식후 음료를 마시던 중, 서로 모여 뭔가를 의논하던 노인정 길드의 델린이 사이토에게 잠시 헤어질 것을 말한 것이다. 이유는 드래곤 사냥에 필요한 '인간 더미'들이 필요한 것이다. 아무리 그들이 오래전 드래곤을 두 마리씩이나 잡은 경험이 있다고 하지만, 강진이 가져온 그 불길한 소식들은 다시 한 번 드래곤을 시험해 보아야 겠다는 결론을 얻은 것이다.
"사실은 서쪽 근처에서 놀고 있을 초보자들을 꾀어 볼 생각이었지만, 아무래도 일의 확실성을 위해서는 우리가 직접 아리유로 가서 믿을 만한 놈들을 뽑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결론을 지은 걸세."
델린의 말에 사이토는 고개를 끄덕 거렸다. 이제 전쟁 이벤트의 남은 기간은 현실 시간으로 이틀이었다. 게임 시간으로 보면 24일... 마지막 하루를 더한다면 36일이 된다. 어떻게든 그 안에 승부를 내리라 다짐한 사이토이다.
"그럼, 그곳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그래, 우리들도 되도록이면 빨리 처리하고 가지."
그렇게 네 명이 빠져나간 일행은 다시금 말을 달렸다. 목적지는 아리유가 아닌, 마을에서 서쪽으로 난 길을 통해 있을 해양 도시 카마디스 블루이다. 아리유 쪽으로의 게이트스톤이 아직 남았지만, 카마디스 블루쪽이 좀 더 가깝다는 결론을 내린 일행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렸다. 그리고 이틀 뒤 그들은 푸른 바다에 인접한 해양도시 카마디스 블루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서 부터는 조심해야합니다. 아무리 힘이 약해졌다고 해도 이곳은 예전의 총 길드였던 아이아스의 본거지니까요"
사이토가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멀리 푸른 지평선이 보이고 그 곳을 끼고 만들어진 거대한 도시가 어렴풋이 보인다. 밤사이 달렸기에 지금의 시간은 아침, 멀리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아이아스라...우리에게 덤비는 자에게는 우리를 각인시켜 줄 뿐...
케인의 어깨에 걸쳐진 '참회자의 로브'가 맞바람을 맞아 펄럭거리기 시작한다. 그의 몸에서 드러나는 그 누구보다도 선명한 살인자의 문양, 그는 대 데스스타 길드의 길드 마스터이다.
"우리에게 덤비는 새끼들이 누군지는 몰라도 덤비는 순간 게임 접어야 한다는 걸 실감하게 될 걸."
저스틴이 올 테면 와보라는 듯, 삐죽한 웃음을 지으며 낮게 읊조렸다. 맨 앞쪽에 서서 도시를 바라보고 있던 사이토가 말머리를 돌려 그의 뒤를 따르는 일행들을 한동안 유심히 쳐다본다. 아무런 대꾸 없이 아무런 표정 없이 그냥 쳐다보기만 할 뿐, 모두가 무안해 질 때 즈음, 사이토는 정신이 들었는지 고개를 앞으로 돌려 숙이곤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끙, 조심해야 할 건 우리 쪽이 아니라, 아이아스였군."
그 한 명 한 명의 무력이 모두 괴물들이었다. 간단 완벽 무식하게 괴물들이다. 브랜이라던가 밀레나는 조금 정도 예외를 둘 수 있겠지만, 브랜 또한 케인의 가르침이 있은 후로 괴물의 범주로 서서히 들어가고 있는 추세였다. 그리고 밀레나 또한 일반 유저의 수준은 이미 아주 오래전에 탈피한 상태이다.
"아무튼 모두...조심해 주십시오. 덤비는 얘들 있어도 자제해 주시고..."
주의를 당부하는 말을 바꿨다. 자칫 이들을 저 도시에 풀어 놨다간 NPC경비 한 부대도 식후 간식으로 이빨 쑤실 것 같은 불길은 느낌이 들었다.
"가죠."
도시의 전체적인 느낌은 활기와 열기 그 자체였다. 해양 도시이고 또 항상 여름이기에 NPC들의 차림은 모두 최절정 노출을 자랑하고 있었다. 특히 여성 NPC들의 경우 그 체형이 슈퍼모델 스무 명을 차례대로 세우고 번갈아 가며 뺨을 칠 정도로 잘 빠졌기에 파티내의 남성들의 눈이 안 돌아갈 수 없는 실정이다. 멀리 백사장에는 연인끼리 혹은 친구끼리 나온 듯 일광욕과 수영을 즐기는 이들이 보이고, 또 한 켠으로는 서로 오붓하게 팔짱을 끼곤 거리를 걷는 사람들도 많았다.
"역시... 성인 게임의 묘미랄까? 흐흐."
케인의 고개가 그 어느 때 보다도 활발하게 움직이며 눈요기하기에 바쁘다. 그 와중에도 입은 쉴 새 없이 "오! 나이스!" 또는 "최고야!" 등 감탄사를 내뱉기에 바쁘다.
"어이, 사이토! 우리 여기서 한 며칠 쉬었다 가면 안 될까? 어차피 그 델린씨가 올 때까지 그 곳 에서 기다려야 하잖아. 응? 응?"
게임 속에서 근 200년을 버텼지만, 아직도 여자만 보면 헬렐레 하는 케인을 보면 역시 남자라는 동물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어쩌면 이런 정신 상태를 지녔기 때문에 게임 속에서 200년을 버텼는지도 모르리라. 사이토는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로서는 케인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떤 때는 관록미 넘치는 모습이다가도 가끔 보면 그의 본래 현실 나이인 20살의 정신 상태를 여지없이 보여준다. 문득 아누비스라던가 저스틴의 행각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럼 여기서 하루만 묵는 것으로 하죠."
발데아라가 사이토에게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토, 굳이 케인 때문이 아니더라도 모두 잠시 쉬어야 한다는 하고 있었다.
"그러면 가까운 여관을 먼저 잡죠."
카마디스 블루에 짐을 푼 일행들은 도시에 도착한 다음 날 모두 해변가로 잠시 놀러 나왔다. 물론 이런 짓을 하게 된 이유는 케인의 전폭적인 노력의 결과겠으나 일행들도 해변가로 놀러 간다는데 별로 거부감을 일으키지 않았다. 어쩌면 일행이 몰살당할지도 모를 그런 퀘스트를 임함에 있어 정신적 긴장감을 풀어주는 것도 좋을 거라는 생각들이었다.
"경치 좋다."
케인이 아누비스에게 말했다. 묵묵부답의 아누비스지만, 케인은 계속해서 말을 늘어놓기 바쁘다.
"저 케인씨가 저렇게 말이 많은 건 처음 보는군요."
강진의 말에 발데아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그렇죠. 사실 예전에는 꽤 앙숙이었죠. 둘 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괴물들이고 실력자들이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저 둘도 서로가 '배회하는 자'들이라는 공통분모에 엮긴 사람들이었으니까. 끝내는 서로 친해지더군요."
발데아라의 설명을 따르자면 그들은 꽤 오래전부터 아는 사이였다. 아니 어쩌면 게임 속에서 그렇게 지겹게 살았으니 한 번 정도 마주쳤을 수도 있고 또 같은 '배회하는 자'들을 찾기 위해 노력했을 수도 있으리라.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멀리 언덕에 위치한 방갈로에 앉아 주변 경치를 구경하던 사이토와 밀레나는 이채로운 구경을 할 수 있었다. 멀리서부터 웬 사람들이 행진을 하고 있다. 때아닌 무슨 대량 몬스터 학살 퀘스트도 아닌 듯, 일반 비전투유저들도 끼어 있는 그 행진의 위로 보이는 플랭카드들...
"새로이 태어나는 아이아스 길드? 풋..."
플랭카드들 위로 보이는 글을 읽어 나가던 밀레나는 사이토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까 오빠가 말한 아이아스 길드가 저들인가봐요?"
"응, 그런데 그 동안 유저들에게 깎인 이미지 쇄신이라도 하려나? 와... 꽤 오랫동안 했나본 데?"
"네?"
"저 밑에 봐봐. 1000일 캠페인이라고 써져 있잖아. 오늘이 753일째라고 되있고..."
"우와...정말?"
사이토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유심히 쳐다보던 밀레나가 재미있다는 듯 눈에 이채를 발했다.
"저 길드... 오빠 잡으려고 그렇게 혈안이 되었던 길드라면서요. 개과천선일까요?"
밀레나의 물음에 그 행렬을 유심히 지켜보던 사이토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글세, 단순히 그 동안 유저들에게 깎인 이미지를 복구해 보려는 전략일 수도 있지."
"에이, 오빠 너무 삐딱하게만 보지 말구요."
사이토로서는 그들에게 당한 것이 있기에 쉽사리 그들의 행동이 선의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앞으로 한 유저가 헐레벌떡 뛰어온다.
"안녕하세요. 새로이 태어나는 아이아스 길드입니다. 앞으로 잘 좀 부탁드립니다."
그러면서 내놓는 것은 두 장의 작은 종이, 그곳에는 현 아이아스의 길드마스터가 손수 친필로 작성한 듯한 인사글과 종이를 길드로 가져오시는 분에게는 소정의 경품도 준다고 쓰여 있었다.
"으음, 아이아스 길드의 길드 마스터 케이지...라..."
사이토가 종이의 마지막의 서명란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 거리자 밀레나가 물었다.
"길드 마스터 이름 몰랐어요?"
"응..."
"자기가 전멸시켰으면서도?"
"신경 안 썼거든."
사이토의 말에 정신이 멍해지는 밀레나, 곧 이어 폭소가 터져 나온다.
"아하하! 정말 대단해요. 브랜 오빠가 삼무, 삼무라고 하시더니 정말이었어!"
아무리 신경을 쓰지 않았다지만 어찌 그것을 모를 수 있다는 말인가... 밀레나가 배를 붙잡고 요절복통을 하며 웃어 재끼자 사이토가 눈가를 찡그리며 밀레나에게 심통 맞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게 까지 웃을 건 없잖아."
"아하하, 이 정도는 웃는 게 맞아요."
아이아스길드의 총관인 카시미어는 이번 달 보고에서 길드내의 유저 가입률이 다시금 상위를 차지했다는 것과 서서히 아이아스의 이미지가 좋아지고 있다는 보고에서 내심 흡족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들이 처음 이곳에 정착했을 때 얼마나 힘들었던가. 원래 전투가 별로 없기로 소문한 해양도시 카마디스 블루였다. 유저들의 여가선용을 위해 만들어 진 듯한 이 카마디스 블루...그에 따라 몬스터도 별로 없고, 퀘스트도 비 전투 퀘스트가 많다. 그런 여건 상에서 길드 파워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길드원들의 전투력 상승은 참으로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들의 이미지가 대내적으로 그리 좋지 않다는 것, 예전에야 힘이 있으니 일단 아이아스 길드라는 이름 하나 만으로도 웬만한 반론은 묵살시킬 수 있었지만, 이빨이 빠져 버린 패전 당시에는 정말 예전에는 숨 한 번 크게 쉬면 찍소리도 못할 길드들이 너도 나도 한 대씩 툭툭 때려댔었다. 그리고 지금 그간의 노력의 성과로 길드가 다시금 활성화되기 시작한다.
"역시 게임은 내 적성에 맞단 말야."
현실에서의 괴로움 따위는 게임 안에 들어오면 잊게 된다.
"젠장..."
카시미어는 손에 힘이 불끈 들어가는 느꼈다. 두달 전 여자친구가 그에게 헤어질 것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이유는 게임에 너무 묻혀 사는 그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한참 타 길드들과 전쟁중이었기에 처음에는 사정사정도 하고 화도 냈지만 그녀는 그렇게 떠나갔다. 그래도 그는 게임과 여자 중에 둘 중 하나를 택하라 묻는다면 게임을 택할 것이다. 게임은 그의 아주 중요한 여가이자 생활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날씨가 쌀쌀해지며 기분이 싱숭생숭해지는 카시미어... 옆에서 지나다니는 커플들만 보면 남몰래 가슴 시리게 아픈 것만은 사실이다.
"뭐, 길드마스터의 신용을 다시 회복시킨 것만도 다행이지."
여자친구와 헤어진 뒤 더 이상 여자친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거니와 헤어진 아쉬움을 달래려는 카시미어의 게임몰입이 길드 마스터의 눈에 흐뭇하게 보였는지 예전보다 훨씬 친해졌다. 가끔 "역시 카시미어가 있으니까 우리 길드가 발전하는 거야!" 같은 말도 해주기에 시련의 아픔도 조금 진정이 된다. 그러나 옆구리가 시린 것만은 어쩔 수 없는 일... 근래 길드 내에 생긴 하나의 불문율이라면 길드 내 커플들은 절대 카시미어 앞에서 닭살 짓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발각 시에는 총관의 따가운 눈초리와 함께 비밀스럽게 조직된 총관의 직속부대로부터 '커플박살내기 작전'의 희생자가 된다. 이 직속 부대의 특징은 자칭 타칭 '솔로 부대'라 불리 우며 대외적으로 표방하는 것은 "레벨업에는 솔로가 좋다!' 혹은 '커플은 파티플레이의 독이다' 라고 하지만, 사실 가슴속 깊숙이 질투심으로 꼭꼭 뭉친 그런 솔로들의 모임이었다.
각설하고 카시미어는 오늘 종합 시찰을 나왔다. 그 동안 이벤트로 인한 소기의 성과를 눈으로 체험하고 싶은 것이다. 이제 곧 이 이벤트가 끝나고 전쟁이 카마프라하 왕국의 승리로 끝나면 새로이 업데이트 되는 지역으로 각 길드의 쟁탈전이 벌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지역을 아이아스가 접수함으로써 다시금 아이아스 길드 재기의 발판으로 삼는다. 이벤트 행렬 사이에서 걷던 카시미어는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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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풋..-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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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을 마무리하며 새해가..이제 1시간 22분 남았습니다.
음... 이제 2004년이라는 새로운 연습장을 받아 들었네요. 예전에 쓰던 2003년이라는 연습장은...꽤 보람찬... (물론 할 짓없이 끄적 거린것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그 수많은 실수 중에 ^-^ 정말 소중한 것을 얻었기에 무효..)
2004년이라는 새로운 연습장을 받았습니다. 저도 받았고 제가 사랑하는 여러분들도 모두 받으셨습니다. 자! 이제 새롭게 한 페이지를 펼쳐 볼까요? 총 365페이지라는 난감한 굵기의 2004년이지만, 저는 지금 당장 그 첫 페이지에 저의 이름을 크게 써 놓겠습니다. 그리고 외치겠습니다.
(2004년은 내꺼다!)
모두 외치시길..^-^ 모두 2004년을 당신들의 기억에 길이 길이 남을 그런 해로 만들어 보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새해에는 모두 행복하시길...
ps. 잇힝~ 여보 나 잘했징~-ㅁ- 사랑해~ 쪽쪽쪽~
2003년을 마무리하며 새해가..이제 1시간 22분 남았습니다.
?.. 이제 2004년이라는 새로운 연습장을 받아 들었네요. 예전에 쓰던 2003년이라는 연습장은...꽤 보람찬... (물론 할 짓없이 끄적 거린것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그 수많은 실수 중에 ^-^ 정말 소중한 것을 얻었기에 무효..)
2004년이라는 새로운 연습장을 받았습니다. 저도 받았고 제가 사랑하는 여러분들도 모두 받으셨습니다. 자! 이제 새롭게 한 페이지를 펼쳐 볼까요? 총 365페이지라는 난감한 굵기의 2004년이지만, 저는 지금 당장 그 첫 페이지에 저의 이름을 크게 써 놓겠습니다. 그리고 외치겠습니다.
(2004년은 내꺼다!)
모두 외치시길..^-^ 모두 2004년을 당신들의 기억에 길이 길이 남을 그런 해로 만들어 보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새해에는 모두 행복하시길...
s. 잇힝~ 여보 나 잘했징~-ㅁ- 사랑해~ 쪽쪽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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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들의 아침 [1호!]
카시미어의 전속 보좌관인 켈은 혀를 차며 카시미어의 메시지에 답했다. 어쩌다 자신이 이 '솔로부대'의 1호가 되었는지는 분통이 터지지만,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 들려오는 것은 '솔로부대'들만이 연결된 특제 메시지 창이었다. 부르는 것은 당연히 솔로부대의 대장인 카시미어이다.
[예!]
[우측 120미터 부근 커플을 박살내라.]
카시미어의 말에 오른쪽을 바라본 켈은 카시미어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른 '솔로부대'에게 그 명령을 전달했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어?!"
"아아, 저스틴씨"
웃고 있는 밀레나와 사이토의 옆으로 저스틴과 아누비스가 사이토에게 다가왔다.
"케인씨가 찾더라. 가봐"
"네? 케인씨가요? 흐음, 그냥 메시지로 부를 것이지."
저스틴의 말에 사이토는 고개를 갸웃 거리고는 밀레나와 함께 언덕을 내려갔다. 멀어지는 사이토를 바라보던 저스틴이 조금 전까지 사이토가 앉아 있던 자리에 털푸덕 앉고는 그녀의 옆자리를 손으로 탁탁 친다.
"정신 사나와! 얼른 앉아라."
"그래."
아누비스는 별 말 없이 그녀의 옆에 주저앉았다. 함께 해 온 시간도 시간이기에 둘 사이는 친구보다도 가깝다. 둘은 멍하니 주위를 감상했다. 그러던 중 문득 저스틴이 아누비스에게 조용히 말한다.
"만약에... 만약에 이 퀘스트 실패하면 모두 초기화 되니까, 캐릭터도 새로 만들어야 겠지?"
"..."
묵묵부답의 아누비스, 그러나 저스틴은 이런 식의 침묵에는 익숙한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난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 지금 현실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이야기 듣던 대로 내 현실의 몸들은 모두 썩어 없어진 채 뇌만 남아 버린 걸까? 난 예전에는 영혼이라는 게 존재했고, 그건 내 심장 속에 존재한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이젠 남은 건 뇌 뿐이니, 영혼도 뇌에만 남은 걸까? 푸후후..."
자조적인 웃음... 아누비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의 입이 달싹 거린다. 그 때 그 둘을 방해하는 이들이 있었다.
"앗, 오랜만이야."
"?"
저스틴은 고개를 갸웃하며 눈앞의 남자를 쳐다보았다. 꽤 핸섬하게 생긴 한 명의 남자가 자신을 무척이나 잘 아는 듯 친한 척 한다.
"혹시 너 나 아냐?"
저스틴의 물음에 그 남자의 얼굴에 갑자기 슬픔의 기운이 감돈다.
"무슨 소리야. 날 벌써 잊은 거야? 우리 예전에 함께 사랑했던 시간들을 벌써 잊은 거냐구!"
남자는 그 말을 끝으로 뒤돌아 뛰어갔다. 얼굴을 손으로 가린 채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감추려는 듯, 그러나 그의 목적은 달성되지 못했다. 그의 어깨를 잡아오는 강인한 손아귀가 있었다. 엄청난 악력을 지난 손아귀, 그 손에 의해 몸이 저절로 뒤돌아 진다. 우악스러운 손은 그의 얼굴을 가린 손마저 치워 버린다.
"이상하다. 이렇게 생긴 새끼는 내 남자 리스트에 없는데... 너 이 새끼! 이름이 뭐야?"
남자는 여자의 엄청난 박력에 신음을 흘리며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의 역할은 이렇게 한 마디 뱉고는 줄행랑치는 것이다. 설마 여자가 이렇게 우악스러운 악력을 지녔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녀에게 잡힌 손이 벌벌 떨려온다. 너무나 강력한 악력이었다.
"윽! 사...살인자?"
로브에 가려져 있었기에 저스틴의 얼굴을 재대로 확인하지 못했던 그의 면상이 잘 익은 X빛으로 물들어간다.
"..."
"그게 뭐 어쨌다구!"
남자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한다.
[실패한 것 같습니다.]
1호의 메시지가 들려오자 카시미어는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흔들었다. 설마 실패 할 줄은 몰라 그 연인들을 끝까지 관찰하지 않고 있었기에 카시미어는 다시금 그의 황금 같은 시간을 쪼개어 그 쪽을 바라보았다. 작업에 들어갔던 5호가 여자로 보이는 유저의 손에 잡혀있다. 메시지를 몇 번 보내 봤지만, 묵묵부답이다. 5호가 잡혀있는 남녀가 웬지 그 자신이 처음에 타겟으로 삼은 그들과는 다르다고 느꼈지만, 그 생각은 무시해 버렸다. 첫 번째 '옛사랑 트러블' 작전이 끝난 지금은 2단계 작전을 써야 할 때이다.
[2호에서 9호까지 모두 2번째 작전 수행이다!]
이벤트 행렬에서 몇 명의 유저들이 빠져나와 신속하게 그 커플을 향해 걸어간다. 첫 번째 작전이 실패로 돌아갔지만, 이 두 번째 작전이야말로 지금까지 실패한 적이 거의 없는 그런 방법이었다.
"오! 경치 좋은데..."
자기가 무슨 화가라도 되는 양 저스틴과 아누비스를 바라보며 한 마디 내뱉는 솔로부대원 2호... 저스틴은 손아귀의 잡힌 남자가 아무소리 못하고 자신을 쳐다보고만 있자 귀찮다는 듯 그를 옆으로 던져 버리고는 새로 나타난 그들을 노려보았다.
"네놈들은 또 뭐야!"
"우리? 우린 그냥 지나가는 '구경꾼'이지."
한 눈에 봐도 시비를 거는 것을 알 수 있는 다섯 명의 남자, 일견 상당한 계급들을 갖춘 듯 보인다.
[참아. 사이토씨의 일이 틀어질 수도 있다.]
아누비스의 메시지이다. 움찔 하는 저스틴... 참회자의 로브를 걸친 이상 이곳에서 전투를 하는 순간 경비병들이 달려올 것이다. 살인자들이 지닌 어쩔 수 없는 패널티... 저스틴은 화를 꾹 눌러 참으며 눈앞의 남자들을 노려보았다. 경비들이 무서운 것은 아니었지만, 일이 꼬이는 것은 피하고 싶다.
"오우, 살인자들 주제에 잘도 이곳에 기어들었군."
그들은 정해진 레파토리를 늘어놓으며 둘을 둘러쌌다. 이 작전의 핵심은 둘에게 무력시위를 함으로써 남자의 무능력함을 여성에게 보여주는 일명 '데이트 중 깡패 급습'작전이었다. 2호는 기분나쁜 웃음을 흘리며 저스틴을 둘러쌌다. 둘 다 살인자라니... 어떻게 이 곳에 들어왔는지는 모르지만, 일이 수월하게 풀리는 것이 느껴진다.
"제법 반반한데..."
6호가 저스틴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그녀를 도발한다.
"쓴 맛 보기 전에 꺼지는 것이 좋을 거다. XX를 X말아먹을 자식아"
"파하하! 거 참 입 한번 더럽군. 한 번 보여줘 보시지."
2호는 파안대소를 하며 저스틴에게 접근했다. 이런 커플깨기 작전을 꽤 많이 수행해 본 2호로써는 이런 대사를 한 두 번 들어본 것이 아니었다. 물론 현재 저스틴이 하고 있는 대사는 대체적으로 남성이 내뱉어야 하는 것이 것이라는 것만 빼고는... 그는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한 채 계속해서 저스틴을 농락했다. 아누비스의 어깨에 약간의 들썩거림이 있었다.
"응? 보여줘 보라구."
상대는 살인자들이다. 여차하면 베어버릴 수도 있지만, 일단 이 커플들의 러브러브를 박살내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2호는 저스틴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얼굴을 그녀에게 가까이 가져갔다. 그것이 그의 실수였다. 아누비스의 눈이 한 순간 붉게 빛난다.
츠컥...
더 이상 이들의 행동을 참을 생각도 인내심도 없었던 저스틴은 로브 속에서 주먹을 말아 쥐었다. 그러나 그녀가 주먹을 내뻗기도 전에 눈앞의 남자의 팔은 이미 사라져 있었으니, 아누비스는 뻗은 검을 회수하며 반대편의 검으로 남자의 목을 잘라갔다.
"커억!"
단발마의 비명과 함께 목이 하늘 높이 솟구친다. 저스틴은 황급히 아누비스를 돌아보았다.
"아누비스?!"
"처리해."
아누비스의 조용한 음성, 저스틴은 금새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깨달았다. 양 주먹을 불끈 쥐며 '솔로부대'에게 달려드는 저스틴, 아누비스는 양 손에 그의 무기가 둥근원을 그리며 회전시켰다.
지잉!
"살인자는 그 자리에서 꼼짝 마라!"
흡사 순간이동이라도 된 양 두 명의 NPC경비병이 나타나 아누비스에게 창을 겨누었다. 순간적으로 잔상을 남기며 사라지는 아누비스의 손...가장 가까이 서 있던 NPC경비병의 머리가 일순간에 대각선으로 베어져 떨어져 내린다. 땅속으로 스며든 아누비스, 경비병은 아누비스가 어떤 짓을 하려는지 깨닫고 창을 뒤로 세차게 휘둘렀지만, 이미 아누비스는 경비병보다 먼저 그의 목을 잡고 있었다.
피시시...
또 한명의 경비의 목을 손쉽게 따버린 아누비스는 저스틴의 쪽을 바라보았다. 시비를 걸던 녀석이 공중에서 회전을 하며 날아간다. 두 녀석들은 이미 머리가 깨졌는지 몸통만을 남기고 땅에 엎어져 있다.
"다 덤벼봐! 새끼들아!"
"으으윽!"
저스틴의 박력에 밀린 나머지는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그 누가 그녀의 가녀린 팔뚝에서 그런 파워가 나올 줄 알았겠는가... 그녀의 얇은 주먹은 마치 한 개의 송곳처럼 상대의 머리만을 부셔 버렸다. 극한에 달하는 파괴력의 집중은 적의 머리만을 크리티컬하게 부셔버린다.
"안오면 내가 간다!"
그들이 가진 잠시간의 머뭇거림은 곧 엄청난 피해로 나타났다. 흡사 양떼 속에 풀어놓은 굶주린 승냥이 마냥 그녀는 그들을 하나 하나 요리한다. 그녀의 다리가 한 번 뻗을 때마다 그들은 마치 트럭에 정면으로 충돌한 것처럼 2~30미터를 날아가다가 땅으로 떨어진다.
"저...저게 어떻게 된 일이야!"
카시미어는 이 의외의 사태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살인자들이었습니다!"
보고가 들려온다. 마침 그들의 근처로 또다시 몇 명의 경비병들이 소환된다. 살인자들이라는 소리에 카시미어는 그 와중에도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카마디스 블루로 숨어든 살인자들을 처리함으로써 아이아스의 힘을 유저들에게 다시 한 번 재확인 시킨다. 간단하지만 완벽한 계획이 그의 머리를 스친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짧은 생각이 저지른 실수였다. 상대의 실력을 재대로 판단하지 않고, 숫적우세와 홈그라운드라는 것만을 생각한 카시미어의 실수였다.
"죽어."
아누비스의 검이 날아들 때마다 NPC경비들은 차례대로 목을 내놓는다. 경비병들의 공격에 대한 방어는 도외시한 듯한 아누비스의 칼놀림, 그러나 상대하는 경비가 늘어나기 시작하자 아누비스는 공세에서 수세로 몰리고 있었다. 이벤트에 끼어 있던 아이아스의 길드원들이 그 둘에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 앞을 가로 막은 저스틴은 호기롭게 외치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오호라! 새끼들 다 덤벼봐!"
가장 앞서 달려오던 검사가 검을 뻗어온다. 한쪽 손으로 상대의 검을 쥔 손을 거칠게 쳐낸 저스틴은 그대로 그의 옆구리에 주먹을 박아 넣었다.
"크아악!"
회전이 섞인 양 상대가 입고 있던 방어구가 나선형으로 깨져나가며 검사는 공중으로 솟구친다. 검사를 날림과 동시에 저스틴이 팔을 양 가슴에 모으고 천천히 몸을 웅크린다. 마치 튀어나가 상대의 목덜미를 물어뜯으려는 늑대의 공격자세를 취한 저스틴, 그녀의 동작을 가장 먼저 눈치 챈 무투가로 보이는 길드원이 비명을 지르며 물러서기 시작한다.
"9계급이다! 9계급 스킬이야! 젠장! 모두 도망쳐!"
그러나 사람의 물결이라는 것이 그리 쉽게 멈추어 지지 않는 법, 게다가 저스틴은 스킬의 장전이 끝난 듯 입가에 비죽한 웃음을 지으며 한 발 앞으로 다가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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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쿠쿡...약간의...한...2성 정도의 절단신공을 가미한..-_-; 끝내기..(크리티컬이랄까..-_- 후후;;) 쿡쿡...[정신없이... 쿡쿡 거리고 있는 데자부..]
아하하..유부남 아닙니다. ^_^... 아직 결혼할 나이는 아닌데...^_^;; 히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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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들의 아침 "칼리의 춤!(dance of kali)"
9계급 신권의 최종스킬이 발현되었다. 신권의 최종 스킬 '칼리의 춤'은 시전자의 능력치를 순간적으로 극대화 시키며 시전자의 주먹을 계속 해서 복사해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한 마디로 두 개의 주먹을 뻗으면 공간을 무시하고 네 개의 주먹이 되고 그것들은 시간이 지날 수록 계속해서 증식해 나가는 것이다. 저스틴의 바로 앞에서 도망치려 뒤돌아서던 도둑은 등에 와 닿는 둔탁한 느낌에 가쁜 숨을 뱉었다. 곧이어 쉴 새 없이 등을 난타당하다가 갑자기 배 부분이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저스틴의 주먹이 들어왔다가 쑥 들어가 버린다. 시야를 가리는 검은 장막...라이프 오버였다.
"으아아아!"
저스틴의 모습은 인간의 물결을 헤치는 파괴의 여신 칼리를 보는 듯하다. 그녀가 한 발자국 내 뻗을 때마다 어김없이 유저들이 우수수 날아가 버린다.
꽈르르릉!
그녀의 몸 주위에는 수십 개의 주먹이 난무하고 그에 맞추어 수 많은 유저들이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이리 저리 날아다닌다.
"으아아악!"
"아아악!"
카시미어는 망연자실했다. 피 같은 길드원들이 죽어 나가는 것이다. 그것도 정예들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간다. 이들을 다시 되살리고 또 얼마나 시간이 들 것이며 잃어버린 경험치는 또 어떻게 복구할 것인가. 믿을 수 없는 일이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다. 믿고 있었던 경비들마저 벌써 일곱 명째 공중으로 산화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연약해 보이던 여자는 무투가 9계급인 신권만이 사용할 수 있는 최종스킬을 무지막지하게 휘둘러 대고 있다.
"어...어떻게 하죠?!"
켈이 그에게 물어왔다. 주변을 둘러보는 카시미어, 이미 많은 유저들이 그 싸움을 보고 있다. 처음에는 몇 명이 가담하려 했지만, 저스틴과 아누비스의 무위를 본 뒤부터는 구경꾼으로 전락한지 오래이다. 몇 명의 경비병들이 더 나타난다. 카시미어는 이를 질끈 물었다. 이대로 물러난다면 정말 치욕스러운 것이다. 게다가 경비병들은 계속해서 증원될 것이다. 그에게 충분히 승산이 있는 것이다.
"모두! 총 공격! 적을 주살해라!"
처음 카시미어의 작은 장난으로 시작했던 이 사건은 점점 그 몸집을 비대하게 늘려가고 있었다.
피슉...
아누비스가 처음으로 경비병에게 창을 허용했다. 다행히 꽤 둟은 것은 아누비스의 짧은 망토이건만 경비는 능숙한 솜씨로 창을 휘감으며 망토를 조여 아누비스를 들어올렸다.
"하앗!"
아누비스의 주먹이 빛나면서 그레이브 스피릿이 뻗어 나온다. 경비병의 창은 아누비스의 망토를 봉술의 하나인 감아올리기로 던지다가 아누비스의 그레이브스피릿에 가슴을 꿰뚫리고는 먼지처럼 사라져갔다. 공중에 뜬 아누비스의 몸을 노리고 대 여섯 개의 창이 날아든다.
꽈꽈꽝!
창을 피하기 위해 공중에서 몸을 회전시키던 아누비스는 밑에서 찔러오던 경비병들이 일순간에 무더기로 쓸려나가자 그 진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강진과 밀레나를 제외한 사이토들이 눈을 빛내며 달려오고 있다. 방금의 기술은 케인이 펼친 것, 케인의 등을 넘어선 사이토는 덱스에 대한 히든피스를 상승시켰다.
파아아앙!
소환되던 경비병의 허리가 직각으로 꺾인다. 번개같이 다가선 사이토의 발차기에 격중 당한 것이다. 경비병은 훨훨 날아 땅바닥에 몇 번을 구른 뒤에야 힘겹게 일어선다.
"사이토씨! 살인자가 되는 걸 조심해요!"
스킬이 끝난 저스틴이 일행에게 달려오며 외쳤지만, 사이토는 어깨를 으쓱하며 그녀의 말에 답했다.
"그것보다 여기를 빠져 나가는 게 우선인 것 같군요."
어느새 모여들었는지 주위에는 수많은 아이아스 길드원들이 그들을 포위했다. 수인을 맺는 이들... 활을 겨누는 이들, 그리고 각종 무기를 일행에게 곤두세운 채 달려드는 이들...
"새끼들, 한 번 질펀하게 놀아보자는 거지?"
저스틴이 이빨을 히죽 내밀며 주위를 둘러보자 둘러싸고 있던 이들이 모두 한발자국씩 물러난다. 조금 전 그녀의 무위를 감상한 이들이었다. 섣불리 먼저 덤빈다는 건 자기가 먼저 라이프오버 당하겠다고 발악하는 것과 같다. 아누비스가 있는 곳은 케인이 끼어들음으로써 어느 정도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둘은 마치 오랜 친구인 마냥 놀라울 정도의 협공을 보여주며 경비병들을 몰아붙였다.
"저스틴씨 흥분을 가라앉혀요."
사이토가 다가와 그녀에게 말하자 저스틴은 입맛을 다시면서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경비들을 제외하고는 전투는 잠시 소강상태로 들어가고 있다.
"이거 일이 더럽게 되어 가는군. 사이토! 이곳을 5분 내로 빠져나가야 해! 이제 조금 있으면 이 카마디스 블루의 모든 경비들이 이곳으로 쏟아져 들어올 꺼야!"
케인이 경비병의 창을 잡아 끌어당기며 검으로 가슴을 헤집은 뒤 사이토에게 소리쳤다. 그러나 사이토로써는 난감함만이 가득할 뿐이다. 다행히 밀레나와 강진은 여관에서 짐을 찾아 서둘러 도시 밖으로 피해 있으라고 미리 말은 했지만, 층층이 둘러싼 인간의 장막과 5분이라는 짧은 시간은 힘들 뿐이다. 그 순간 힘찬 기합소리와 함께 그들을 둘러싼 인간의 장벽 한쪽이 와르르 무너져 갔다.
"검격!"
흡사 거대한 전기톱이 사람들의 허리를 가로로 쪼개 버린 양 거의 20여 미터 부근의 모든 사람들이 바닥에 구르고 있다.
"으아악! 아악!"
일행을 포위하기 위해 조밀하게 뭉쳐 있던 것이 실수였다. 근 40명에 달하는 유저들이 한꺼번에 허리가 동강나 거대한 빛을 뿌리며 사라져 간다. 죽지는 않았으나 치명상을 입은 유저들도 거의 20여명에 달한다. 검격을 내지른 자세 그대로 인간의 벽을 노려보고 있던 루피아의 얼굴이 서서히 붉은 문양으로 덮여간다.
"거! 검왕! 루피아다!"
사람들의 얼굴에 얽힌 표정은 경악과 두려움 그리고 황당함 그 자체였다.
"검왕님! 무슨 짓입니까!"
아이아스의 길드원중 한명이 그에게 손가락질 하며 외쳐 댔지만, 루피아는 고개만 흔들 뿐 아무 말이 없다. 루피아는 원래 아이아스의 길드원이었다. 단지 유람을 좋아하기에 거의 길드에 붙어있지 않았던 것뿐이다. 사이토들이 이렇게 재빨리 올 수 있었던 것도 루피아가 중간에 길드메시지를 들었던 탓이었다. 그러기에 밀레나와 강진을 따로 떼어 짐을 챙길 수 있었던 것이다. 루피아의 무라마사가 흉측한 살기를 보이며 다시금 상단세로 세워졌다.
[모두 이쪽으로!]
아이아스의 길드원들은 아직 패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틈을 타 일행들은 모두 루피아와 합류했다. 모두가 도착한 것을 본 루피아는 다시한번 힘차게 검을 휘둘렀다.
"검격!"
다시한번 발출된 루피아의 검격은 이번에는 땅바닥에 거대한 금을 만들어 냈다. 마치 그들과 자신을 나누는 양 갈라진 땅이다.
"난! 지금부터 아이아스를 탈퇴하겠소. 더 이상 이 지긋지긋한 길드의 이름을 달고 다니기 싫단 말이지."
루피아는 얼굴에 한껏 거드름을 피운 채 살기어린 눈빛으로 길드원들을 노려보았다. 아이아스의 길드원들은 이 청천벽력같은 루피아의 선언에 모두 할 말을 잃었다. 루피아는 일종의 아이아스를 지탱하는 하나의 기둥이었다. 비록 밖으로 나다니기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를 동경하며 이 아이아스에 가입한 이들도 부지기수 이다. 그런 그들에게 루피아의 선언은 정말 마른하늘의 날벼락 같은 말이었다.
"지금부터 이 선을 넘어오는 이들은 알아서 각오하기를 바래. 마지막 남은 정으로 이야기 하는데, 나라면 넘어오지 않겠어! 그럼 이만!"
말을 끝마친 루피아는 일행에게 빨리 이곳을 벗어나라고 손짓했다. 사이토들이 모두 성문쪽으로 뛰어가기 시작하자 루피아는 진짜 마지막이라는 듯 모두를 한 번 쭈욱 둘러본 뒤 뒤돌아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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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_-;;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더라...(무지 재미있는 이야기였는데..-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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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들의 아침 "모두 무사하죠?"
말을 달리며 사이토는 일행들에게 물었다. 성문을 뚫고 나오는데는 케인이 다시 한 번 힘을 써야 했다. 그 덕분에 케인의 카오스 수치만 또 엄청 올라갔지만, 그는 별로 개의치 않는 듯하다. 사이토는 말의 속도를 늦춰 가장 뒤따라 달려오고 있는 루피아에게 다가갔다.
"괜찮냐?"
묵묵부답의 루피아이다. 손을 흔들어 괜찮음을 표현했지만,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루피아로써는 그리 좋은 기분이 아니었다. 아무리 욕을 많이 먹던 길드라도 꽤 오랫동안 몸을 담고 있던 길드였다. 한 번 정도 탈퇴할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기도 했지만, 망설이고 있었다.
"그런데 괜찮을라나 모르겠네?"
케인이 중얼거린다.
"왜요?"
밀레나가 묻자, 케인은 볼을 긁적거리며 그녀에게 말했다.
"글세, 길드 탈퇴라는 게 본인이 싫다고 마음대로 탈퇴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지. 그 길드마스터 녀석이 허락하기 전까지는 탈퇴할 수 없으니까. 그 길드마스터가 마음만 먹는다면 저 루피아 녀석을 이용해서 우리를 추격할 수도 있단 말이지. 재수 없으면 우리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어."
"그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케인의 옆으로 강진이 다가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무슨 말이에요?"
"루피아 녀석은 아이아스 길드의 길드원 서열이 길드마스터 바로 다음이기 때문에 탈퇴가 자유롭습니다. 단지 문제라고 한다면 아이아스 길드의 연락망을 이용한 추적이랄까요. 이제부터는 속도를 좀 더 높여야 겠죠."
그 말과 함께 강진은 말의 박차를 가해 앞으로 나아갔다. 그를 따라 속도를 높이는 일행들... 그들의 뒤로 보이는 카마디스 블루는 언제 그런 소동이 있었냐는 듯 내리쬐는 평화로운 햇살 속에 녹아들도 있었다.
말을 달려 다음 마을에 도착한 일행들, 카마디스 블루에서의 일이 있었기에 모두 긴장하였지만, 그 긴장은 곧이어 안도로 끝났다.
그들이 지금 머물고 있는 곳은 자그마한 화전민들의 도시이다. 그렇지만 역시 유저들이 머무는 곳이기에 아이아스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아이아스 길드 전격 해체?"
"그래."
강진이 자신이 알아온 정보를 일행들에게 말하자 사이토가 강진에게 어이없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아이아스는 전격적으로 해체되었다고 한다. 물론 길드의 해체라는 것은 길드마스터의 전격적인 해체 선언이라던가 길드원이 20명 이하로 떨어졌을 때나 가능하지만, 아무리 이빨 빠진 호랑이라도 원본은 호랑이인 듯 아이아스가 그리 호락호락하게 무너질 길드가 아니었다. 그러나 강진의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처음에는 발끈하던 일행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머리를 긁적이거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번일의 책임을 물어 전격적으로 몇 명의 길드원들이 강제적으로 탈퇴되었다고 한다. 또한 이번 사태에 대한 설명으로는 도시에 침입한 살인자들을 몰아내던 중 발생한 불상사라고 아이아스의 길드마스터 케이지가 직접 나와 해명했다.
여기에서 저스틴이 발끈하여 일어섰지만, 일행들을 모두 위험으로 몰아넣은 책임은 자신도 아는지 사이토들의 눈치 속에 잠잠히 자리에 앉는다. 아무튼 일이 여기서 끝났으면 될 것을 일은 그 이후에 터졌다고 한다. 이번 일의 원흉인 카시미어는 의외로 조용히 길드에서 탈퇴하였지만 문제는 그와 함께 쫓겨난 다른 길드원들 중 하나가 이번 폭탄 같은 양심선언을 한 것이다. 첫째로는 이번 일이 전혀 살인자들과 무관하다는 것, 그리고 그 일은 단지 카시미어의 커플 박살내기에서 발생한 일이라는 것이었다. 차라리 케이지가 공식발표를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뻔했으리라.
비록 지금은 그 영향력이 많이 축소되기는 하였지만, 명색이 카마프라하왕국의 제 1길드를 표방하던 아이아스의 길드마스터였다. 물론 길드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서 라고는 하지만, 한 때 대 길드를 맡고 있던 이로써 전 유저들에 대해 거짓말을 하려 했다는데 유저들은 지탄의 목소리를 높였고 그것인 아이아스를 결국 해체라는 극단적인 방향으로 가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
"결국 그렇게 되었군."
루피아가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올리며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그 자신도 아이아스길드의 해체선언에 대해 어느 정도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기에 그리 좋은 기분만을 않을 터, 자리에서 일어난 루피아는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여관의 이 층을 손으로 가리키며 일행에게 말했다.
"난 먼저 올라가 있겠어."
"그래. 나도 같이 가자."
"에이, 영감님은 이따와."
"뭐야!?"
케인과 루피아가 티격태격하며 여관으로 들어간다. 그것을 지켜보던 강진이 다시금 일행들을 돌아보며 말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입니다."
"무슨 소리에요?"
뜬금없는 강진의 말에 밀레나가 물었다. 인상이 굳어있는 강진... 그리 좋은 소식은 아닌 듯 싶다.
"길드 마스터 케이지는 아이아스의 제 1진들을 모두 흡수하여 어디론가 떠났다고 합니다. 그들은 거의 길드 마스터 케이지의 친위대 격인 인물들이기도 하기에 그것은 이해가 가지만, 제 생각에는 아무래도 우리의 뒤를 쫓는 것 같습니다."
"끄응..."
사이토가 두통이 밀려온다는 듯 머리를 부여잡았다. 마치 호랑이를 물리쳐 좋아했건만 그 뒤의 호랑이 가족을 건드린 느낌이다. 그것도 모두 살기등등한 호랑이떼를...
"일단 노인정길드 어르신들과 합류하기로 한 다음 도착지로 빨리 떠나죠."
사이토의 말에 모두가 동조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남는다면야 상대가 드러나기를 기다렸다가 기습으로 제압하겠지만, 지금은 그렇게 한가로운 때가 아니었다. 모두가 여관으로 들어가고 사이토는 강진과 둘만이 남았다. 무언가 의논하던 그들은 각자 헤어져 여관이 아닌 다른 곳으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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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_-.;; 끙끙... 쓰고 싶은 게 참 많은데...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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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들의 아침 다음 날 아침 일행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노인정 길드 어르신들과 합류하기로 한 한네브라는 마을로 출발했다. 한네브라는 마을은 게임 시간으로 80년 전까지는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마을이었다. 아니 알고 있다 해도 접근하기 힘든 마을이었다. 작은 마을이기는 하지만 이곳은 과거 퀘스트가 벌어지는 NPC들의 마을이었다. 그렇지만 계속된 업데이트 속에 퀘스트는 사라지고 마을이 일반인들에게 공개된 것이다. 이 마을의 특이점이라면 숲속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 그리고 적은 수이기는 하지만 엘프들이 그 마을을 이루고 있다.
한네브로 향하는 길은 험하기만 했다.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몬스터들의 습격이 정교해져 간다. 리얼 판타지아의 몬스터들은 타 게임들 처럼 그냥 필드에 나와서 '나 잡아 주슈' 하지 않는다. 어떤 몬스터들은 완벽한 진형을 만들고 유저들에게 저항하고 또 어떤 몬스터들은 갑작스런 기습을 해대기도 한다. 그리고 지금 사이토들이 겪고 있는 것처럼 은신하고 있다가 갑작스레 파티를 습격하기도 한다. 만약 사이토와 아누비스가 없었다면 적잖은 피해를 입었으리라.
"그롤링의 습격이 갈수록 심해지는데요?"
"음, 그렇지만,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거대 그롤링들이 덤벼들기 시작할꺼다. 게다가 그놈들 중 에는 그롤링 리더나 에인션트 그롤링들이 습격해 댈 테니 더욱 조심해야 해."
사이토의 말에 대답한 케인은 허리춤에서 작은 술병을 들어 한 모금 들이켰다. 이전 마을에서 작은 병을 하나 구입한 케인은 그것을 술로 채웠다. 케인이 말한 그롤링이라는 것은 긴 팔다리를 가진 거대 카멜레온 처럼 생긴 몬스터였다. 크기는 대략 1미터에서 1.5미터로 그리 큰 몬스터는 아니지만, 주변색에 민감하게 변하기 때문에 나무라던가 풀숲 사이에 웅크리고 있다가 일행을 습격하는 것이다.
나오는 아이템으로는 수집품 상인에게 팔 수 있는 발톱이라던가 그롤링의 혀, 그리고 스텔스 스킬을 대폭으로 올려준다는 '은둔자의 망토'를 만드는 재료로 쓰인다는 그롤링의 머리껍질이다. 물론 사이토가 직물 제조사 마스터에 있기에 이것들을 가져다가 '은둔자의 망토'를 만들 수도 있겠지만, 그 망토 하나를 만드는데 필요한 그롤링의 머리 껍질이 700개가 필요하다. 게다가 필수 재료에 있어 거의 레어급의 재료라고 할 수 있는 샤이닝스톤이 필요하기에 그것은 꽤 오랜 시일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각설하고 한참을 전진하던 그들은 잠시 후 숲의 꽤 깊숙한 곳까지 들어올 수 있었다.
파아아앙!
저스틴의 장궁에서 발출된 화살은 흡사 바추카포와 같다. 그녀의 화살에 격중당한 그롤링 리더는 그 훤칠한 덩치가 무색하게도 화살에 섞인 회전과 같은 방향으로 회전하며 반대편으로 날아가 뒤에 위치한 거목에 사나운 꼴로 꽂혀 버렸다.
우드드드득!
저스틴이 또다시 시위를 당기기 시작하자 발데아라와 아누비스를 제외한 나머지들이 슬금슬금 그녀의 앞에서 주위로 길을 터준다. 으스스할 정도로 육중한 시위 당기는 소리는 그렇다 하더라도 이처럼 괴물 같은 소리가 등 뒤에서 들린 뒤 살벌한 기세로 화살이 날아간다는 건 뒤돌아선 이에게 상당한 압박으로 다가온다.
꽈르르릉!
이것이 화살 꽂히는 소리던가...
"에이 씨발! 빗나갔네?"
"그... 그래도 충분히 효과가 있는 것 같은데요?"
밀레나가 그녀의 빗나갔다는 화살이 떨어진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질린 목소리로 자신의 감상을 중얼거린다. 그녀의 화살이 떨어지는 순간 일어난 엄청난 파편으로 인해 일행들을 포위하며 대열을 짜던 그롤링들이 추풍낙엽으로 나가떨어진 것이다.
"컨퓨즈"
발데아라가 시동어와 함께 손을 뻗자 그롤링 중 두 세 마리가 자신의 동료들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뒤이어 강진이 흑마법을 펼쳤다.
"데트리피파이"
강진의 흑마법에 걸린 몬스터들은 마치 슬로우에 걸린 것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적들의 모든 능력치를 다운 시키는 저주 중 하나이다.
"정리..."
케인이 검을 꺼내 들자, 준비하고 있던 아누비스는 어느새 앞으로 나아가 그롤링들을 베어대고 있다. 뒤이어 공격해 들어가는 사이토들... 그리고 정리를 먼저 말했음에도 가만히 서 있는 케인, 할 일 없이 술병을 공격해대는 케인이다. 그렇게 이틀을 더 숲속을 전진하던 일행은 얼마 뒤 한네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을 입구는 숲속의 엘프마을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듯 특별한 표식이 없었다. 단지 여행자들의 편의를 위해서인지 작은 비석이 하나 서 있고 이름이 새겨져 있을 뿐이다.
"여기서 부터는 최대한 무기를 감춰라."
"왜죠?"
사이토의 물음에 케인은 가방 속에 무기들을 집어넣으며 물음에 대답했다.
"엘프들은 금속무기들을 혐오하기 때문이지. 들어가서 보면 알겠지만, 이곳에서 금속으로 된 것을 찾을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아. 물론 대장간 따위도 없어. 비록 금속무기를 보여서 엘프들과의 친화도가 떨어진다고 해도 과거처럼 대놓고 배척하지는 않겠지만, 그 노인정 분들과 합류하기 전까지 이곳에서 머물 우리들이라면 엘프들과의 관계를 애써 망칠 필요는 없겠지."
케인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무기들을 각자의 배낭 속에 집어넣었다. 한네브의 마을에는 유저들이 단 한명도 없었다. 워낙 외떨어진 곳이었기에 유저들이 잘 찾지 않는 곳이다. 가끔 한 두명씩 보이는 엘프들을 일행들에게 관심 없는지 자신들의 일에 열중할 뿐이다. 그나마 하는 짓이야 볕 좋은 나무위에 앉아 책을 읽거나 화살로 보이는 것을 깎고 있을 뿐이지만, 대체적으로 노인들이 양로원 볕에 앉아 햇볕 쬐는 것과 별다를 것이 없다.
"이곳은 여관도 없다. 그냥 적당히 큰 집을 붙잡고 들어가서 잠을 자면 될 거다."
"도둑 안 맞습니까?"
잠을 자기 위해서는 배낭이나 기타 아이템들을 풀어놔야 한다. 최대한 몸을 편하게 만들고 잠을 자야만이 잠을 잘 잘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집의 주인 되는 엘프에게 허락을 맡아야 겠지. 그렇지 않으면 다른 유저들이 들어가서 짐을 몰래 가지고 나올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곳은 우리뿐이니까... 대충 풀어놓고 집의 주인 되는 엘프들에게 인사만 하면 될 꺼다. 그것이 여관의 잠금장치의 형태지."
케인의 말이 끝난 뒤 일행들을 일단 하루 정도 쉬기로 결정하고 사이토는 브랜과 함께 근처의 거대한 나무 아래 뚫려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집 하나가 통째로 집 한 채인 듯 보인다. 나무의 크기는 거의 장정 30명이 팔을 벌리고 둘러싸도 모자랄 정도의 크기, 집 안은 아무것도 없이 작은 탁자와 의자 몇 개가 놓여 있을 뿐이다.
"단층은 아닌데?"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본 브랜이 중얼거린다. 브랜을 따라 고개를 든 사이토는 위로 거의 40미터는 되 보일 천장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거의 원통형으로 생긴 집 안... 가지들을 향해 뚫린 창문인 듯 곳곳에선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고, 곳곳에는 몸 하나를 뉘일 수 있을 만한 막이 형성되어 있다. 특이 점이라면 발판이나 계단이 없다는 것...
"떨어지면 좀 아프겠다."
"넌 살겠지만, 난 게임오버 같은데?"
브랜이 너스레를 떨며 중얼거린다. 브랜보다 민첩하고 몸이 가벼운 사이토는 몇 번의 발돋음으로 벽을 차고 올라갔다. 얼마를 그렇게 올라갔을까. 사이토는 창문 밖으로 보이는 한 엘프를 발견하고는 그에게 다가갔다. 창문 밖은 굵은 가지인 듯, 엘프는 가지 밑으로 발을 드리우곤 악기로 보이는 피리를 다듬고 있었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엘프, 엘프의 특성답게 몸이 가늘고 얼굴이 작다. 일반 엘프 유저들과 틀린 점이라면 좀 더 얼굴이 기이한 아름다움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표정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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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들의 아침 "안녕하십니까?"
"..."
말이 없는 엘프이다. 고개를 갸웃 거린 사이토는 그에게 이곳에서 잠시 머물러도 되겠냐고 정중히 물었다. 잠시 사이토를 바라보던 그 엘프는 곧이어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사이토를 바라보는 시간도 아깝다는 듯이 다시금 시선을 피리로 옮겼다.
"킁..."
"왜?"
" 글쎄, 방금 이 집의 주인 같은 엘프녀석하고 이야기를 하고 왔는데, 허락을 받기는 했지만, 왠지 배격당하는 기분이랄까?"
사이토는 씁쓸해져오는 입맛을 다시며 방금 나온 그곳을 올려다봤다. 문득 그들을 바라보던 엘프와 다시금 눈이 마주쳤다. 아무런 감정도 허락하지 않는 듯한 그 차가운 눈빛, 마치 수천 년이 된 거목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이미 케인으로부터 주의를 들었기에 특별히 신경 쓰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알 듯 모를 듯한 엘프의 행동이 왠지 관심이 가는 사이토였다.
"자자..."
"그래."
브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가방에서 침낭을 꺼내는 사이토였다. 엘프의 가치관까지 생각해 보기엔 산재한 문제가 너무나 많았다.
다음 날 아침 사이토 일행은 마을의 중앙에 모였다. 몇 몇의 얼굴들을 보니 그리 좋은 밤을 보내지는 못한 듯 눈 밑에 다크 서클이 횡하고 얼굴이 초취해 보인다.
"젠장, 다시는 오나 봐라."
혀를 차는 케인, 그는 과거 이곳으로 와 퀘스트를 해 본 경험이 있기에 기억을 되살려 당시에 친분이 있었던 NPC엘프의 집으로 찾아갔다. 그를 반갑게 맞아 주는 엘프... 까지 만이었다면 좋았을 것을 엘프는 이방인들을 경계하지만 일단 깊은 친분을 맺게 되면 마치 노인정에 새로 놀러온 옆 동네 노인들을 반기는 것처럼 폭발적인 수다를 떨어대는 것이 특징이었다. 덕분에 그와 함께 그 집으로 갔었던 강진과 루피아까지 케인과 도매금으로 묶여 덩달아 밤새도록 엘프와 말동무를 해야 했다. 잠을 자려 누우면 수면모드로 도대체가 빠져 들어가지 않는다. 모두 엘프가 계속해서 말을 걸어대기 때문, 그 덕분에 케인은 처음으로 루피아에게 '미안해' 라는 소리를 해야 했다. 약삭빠른 강진은 발데아라를 깨워 함께 정보 수집을 한다며 간신히 그 곳을 빠져나와 잠 못 드는 고문을 피할 수 있었다. 차라리 깨어 있는 것이 낫다는 그의 적절한 사태 파악이었다.
"다시는 오기 싫군. 차라리 야영을 할지 언 정..."
말과 함께 케인을 노려보는 루피아, 고전적 회피 수법인 어색한 헛기침으로 만회해 보려 하지만, 그다지 좋은 효과를 내지는 못했다.
"어쩔 수 없어. 노인정 길드 어르신들이 도착하기 전에는 이곳에 있어야 해."
침착한 사이토의 말이다. 그도 간밤에 그리 잘 잔 것은 아니었지만, 단지 잠자리를 이유로 마을을 이탈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생각이었다. 그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강진과 발데아라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간밤에 조사한 것을 발표하려는 듯 둘이 뭔가를 의논하다가 강진이 먼저 앞으로 나선다.
"어젯밤에 발데아라씨와 저는 현재의 상황에 대한 정보를 각자의 능력대로 조사해 봤습니다."
느닷없는 정보 수집 결과 발표라는 말에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다. 강진의 입가에 걸린 작은 미소... 뭔가 대어를 낚은 듯 하다.
"?"
강진은 잠시 헛기침을 한 뒤 조용히 그가 알아온 정보들에 대해서 일행에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뭔가 상당히 꼼꼼하게 준비한 듯 웬 스크롤 하나를 쭉 펴들고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발데아라와 함께 준비한 듯 차분하게 그것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첫째는 예상외로 전쟁이 빨리 끝날 듯싶습니다. 어차피 현재 공개되어야 할 다음 업데이트는 초기화 후로 미루어진 상태이기 때문에 일정이 빨라진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최종 퀘스트에 관한 것입니다. 이번 게임사에서 데이터 점검 결과 비공개로 되어 있던 최종 퀘스트가 강제적으로 개방되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그에 따라 예상되는 건 역시나 그 오카리나라는 사이버 생명체가 확실히 우리의 앞에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노인정 길드 분들이 예상외로 일을 빨리 끝내고 현재 출발하셨다고 합니다. 게이트 스톤을 구했기에 대략 도착시간은 이틀 입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는 게임사측의 우리 쪽 인물들이 비공식적 루트로 우리의 행로를 도와줄 용의를 비밀리에 피력했습니다."
마치 퀘스트 브리핑을 하듯 강진이 말을 끝내자 이번에는 발데아라가 앞으로 나섰다. 강진과 같이 스크롤을 준비한 것은 아니었지만, 발데아라는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제가 가져온 소식도 안 좋은 소식입니다. 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현재 전 아이아스 길드의 길드마스터 케이지와 그 잔당들이 빠른 속도로 우리에게 접근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수는 대략 20명 선으로 되어 있으며, 평균 계급은 7계급인 상당한 능력자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현재 이곳까지의 도착 예정은 앞으로 하루입니다. 놀랄 만한 것은 그 이동속도를 보건데 게이트 스톤을 이용하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빠르면 오늘 당장 이곳에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을 겁니다."
"으음..."
도대체 그 짧은 밤 시간에 그렇게 많은 정보들을 수집했는지는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지만, 지금은 그들의 정보수집능력에 대한 찬사보다는 그들이 가져온 정보들을 조합하여 앞으로의 행로를 결정하는 것이 더 급했다.
"일단은 그 아이아스 길드 녀석들이 먼저 겠군."
케인이 팔짱을 낀 채 자신의 의견을 조용히 말하자 일행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각자의 생각에 잠겨든다. 모두 별달리 딱 떨어지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 듯 얼굴에는 수심들이 가득하다.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이토가 앞으로 나선다. 모두가 그를 바라보는 가운데 사이토가 입을 열었다. 현 사태의 주인공 격이라 할 수 있지만, 지금까지 겪은 그의 행동으로 보건데 그리 기대를 걸고 있는 눈빛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가 흘러나올수록 모두의 얼굴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이야기가 모두 끝난 뒤 일행들은 작은 미소들을 띠며 사이토를 바라본다.
"역시 미스티핸즈인가?"
저스틴이 고개를 좌우로 흔드며 어깨를 으쓱한다.
"후후, 재미있겠는데?. 자! 그럼 사이토의 계획대로 하는 걸로 하지. 다른 의견들은 없을 것으로 아네."
케인이 사이토를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바라본 뒤 모두를 바라보며 이야기한다. 머리를 긁적이며 실없는 웃음을 날리는 사이토, 그 짧은 시간이 그런 음험한 계획을 내논 것 치고는 해맑은 웃음이다. 그러나 일행들은 별로 믿어주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멍청하게까지 보이는 그가 이런 생각을 해내다니...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이해가 되는 듯 하다.
"반나절 남았군."
거대한 바스타드 소드를 등에 맨 케이지는 모임 인원 전체가 출발 준비를 끝낸 것을 확인한 뒤 앞으로의 일정을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그의 가슴 갑옷에 그려져 있던 화려하디 화려한 아이아스의 문장은 이전에 사라진 지 오래이다. 길드를 운영하며 길렀던 수염은 길드가 해체되면서 깔끔하게 깍아 버렸다. 더 이상 대 길드마스터로써의 위용과 관록을 보일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미련없이 잘라버린 것이다. 과거 길드원들로부터 사자라 칭함을 받게 한 긴 머리카락 또한 단정하게 묶어 내렸다. 그러나 그의 눈빛만은 살아 있었다. 과거 아이아스 길드의 수장으로써의 눈빛보다 훨씬 날카로운 빛을 뿌려대고 있었다.
"그래, 하지만 난 아직 이해하지 못하겠어."
"흣, 그전에 존대나 좀 써 보는 건 어떻겠나?"
뒤돌아선 케이지의 가벼운 농담, 아이아스 총 길드의 길드마스터였을 때, 아니 이제는 이 작은 모임의 리더인 케이지는 아이아스 길드의 해체 이후 많은 것이 변했다. 케이지의 뒤에서 그를 바라보는 그의 친구인 셀론은 케이지를 여러 가지 상념이 섞인 복잡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케이지는 변했다. 아이아스 총 길드가 처음 출범할 시절, 케이지는 정말 게임을 사랑하고, 진정으로 즐길 줄 아는 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길드창설 초기의 초심은 잊혀져갔고, 길드는 서서히 힘으로 유저들을 강제하기 시작했다. 강한 이들이 모여들었지만, 이전과 같이 진정한 의미의 게임 내 친구는 더 이상 생기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길드는 해체되었다. 그리고 그의 친구는 지금 이 일의 원흉인 미스티핸즈를 쫓고 있다.
'넌,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단순히 케이지가 복수심에 불타 미스티핸즈를 쫓는 것이라면 그는 반대할 것이다. 게임 상으로는 부하라고 해도 현실은 친구이다. 충분히 반항할 수 있다. 그러나 케이지와의 오랜 인연으로 볼 때 케이지는 변했다. 뭔가 과거의 초심을 되찾은 느낌, 한편으로는 반갑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현재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케이지, 왜 미스티핸즈를 뒤쫓는 거냐?"
친구의 조용한 물음에 모임을 출발시키려던 케이지는 실소를 터뜨리며 눈을 감았다.
"하하, 글쎄, 네가 보기에는 내가 어설픈 복수심에 불타 놈을 쫓는다고 생각할지도 몰라. 사실 처음 길드가 그렇게 와해되고 나니, 모든 것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내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던 것들은 모두 날 떠나갔지. 그리고 난 그제야 내 잘못을 깨달았어. 후우... 좀 더 빨리 깨달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후회도 했지만, 뭐... 그렇게 상심이 큰 건 아니다. 어차피 길드는 새로이 시작하면 되는 거고, 강자들은 또다시 모여들겠지. 어차피 그 재미로 게임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굳이 쫓을 필요 따위도 없는 것 아냐?"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뭔가 계기가 필요하네. 지금의 기분으로는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없어. 뭔가 과거로부터의 아이아스와 나를 단절시킬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해. 그리고 난 그것을 미스티핸즈와의 결판으로 마무리 짓고 싶다. 뭐, 그는 좀 억울하기야 하겠지만, 우리가 당한 것도 만만치 않으니... 피장 파장으로 이해하겠지."
말을 끝마친 케이지는 애써 친구의 다음 말을 막았다. 이번 한번만 더 자신의 뜻을 따라 달라는 무언의 표시, 낮게 한숨을 내쉰 셀론은 그의 뒤로 도열한 이들을 향해 손을 들었다. 이제 반나절 후면 미스티핸즈와 그의 동료들이 있다는 한네브에 도착한다. 카시미어의 말을 들어보면 절대 우습게 볼 수 없는 이들이다.
"대 아이아스 길드를 멸망의 길로 몰아넣은 이들... 궁금하군."
"셀론님! 정보원으로부터의 전언입니다."
생각에 잠겨있던 셀론에게 부하가 다가와 말했다. 상념에 잠겨 있던 셀론은 눈을 번쩍 뜨며 그 부하를 쳐다보았다. 사실상 곳곳에 뿌려져 그들에게 정보를 보내주던 정보길드도 길드가 와해되며 사라졌다. 그런데, 정보원의 전언이라니... 서둘러 메시지를 확인한 셀론은 턱을 붙잡고 고민에 잠겼다.
"무슨 정보인가?"
케이지 또한 그 소식을 들었기에 셀론에게 그 전언을 물어온다.
" 글쎄, 이 정보를 너에게 가르쳐 줘야 하는지 아니면 그냥 묵살해야 하는지 모르겠군."
셀론으로써는 지금의 정보가 진실인지 거짓인지 신뢰가 가지 않았다. 정보를 제공한 이는 확실히 믿을 만한이다. 그러나 너무나 적절한 타이밍으로 제공된 정보라 조금 얼떨떨할 뿐이다. 잠시 후 셀론은 그가 지금 들은 정보를 케이지에게 털어 놓았다. 그 정보의 내용은 케이지에게 있어서 정말 적절한 시기에 들어온 황금 같은 정보였다. 미스티핸즈의 일행의 목표가 어떤 것인가부터, , 그리고 현재의 확실한 위치까지... 특별히 선별한 필요가 없을 정도로 완벽한 정보였다.
" 글쎄, 난 이 정보를 신용해야 할 지 의심이 간다."
셀론의 의견을 모두 들은 케이지는 한 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렇군. 확실히 너무나 완벽한 정보야. 그 카마디스 블루에서 나타났던 살인자들의 정체가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현재로서는 정보를 신용하여 그들을 쫓기에는 너무 위험해."
"음, 행여 이 정보가 미스티핸즈가 흘린 거짓 정보라면 우리는 미스티 핸즈의 그 죽음의 안개 속으로 걸어 들어가게 되는 걸 꺼야."
말을 하며 셀론을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미스티 핸즈... 처음에는 독단적으로 움직이기 좋아하는 그런 유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만약 이 정보가 그가 일부러 흘린 정보라면 그는 단순히 한 명의 유저가 아니다. 그들의 목표가 자신이라는 것을 미리 알아채고 이렇게 거짓 정보를 통해 셀론 등을 혼란시킨다. 이 정도의 일은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분명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만약 이 정보를 믿고 그대로 그들을 덮쳤다면 아마 그 미스티핸즈의 주특기인 기습으로 인해 전멸을 당할 것이다. 미스티핸즈는 자신들의 행로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케이지가 생각이 끝난 듯 고개를 들고 셀론에게 말했다.
"그럼, 우리는 그 미스티핸즈의 계략을 역으로 이용하자."
"음? 무슨 소리야?"
셀론이 반문하자 케이지는 주위를 둘러본 뒤 셀론에게 메시지를 통해 그의 의견을 말했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군. 알았어."
고개를 끄덕인 셀론은 서둘러 동료들을 모았다. 처음에는 그냥 미스틱핸즈를 쫓는다는 막연한 목적을 가졌었고 조금 전까지는 케이지가 미스틱핸즈에 대한 생각을 포기하기를 바랬다. 그러나 이미 이야기는 상승으로 향하고 있다. 미스티핸즈는 벌써 그들의 존재를 알아채고 압박을 해 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스티핸즈의 거짓정보는 간파 당했다. 그리고 이쪽은 이 기회를 이용해 역습을 노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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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여행을 떠났던 데자부입니다. 간만에... 군 생활을 했던 곳을 돌아보았습니다. 좋은 기억보다는 안 좋은 기억들이 훨씬 많았기에 그 동안 애써 발걸음을 피하던 곳이었지만, 이 번 여행은 복잡했던 저의 머리를 어느 정도 클리어 해 준 기분입니다. 현웅이 형... 범조 형~ 고마워요. ^-^ 제가 전투경찰이었다는 것은 일전에 밝혔을 겁니다. 전투경찰... 요 근래 꽤 화제로 떠오르는 집단이죠. 씁쓸함을 감출 수 없네요. 그들의 진압이 잔인해 보이시겠지만... 글쎄요. 그 짓을 ... 그 더러운 짓을 해 본 입장에서는... 전투경찰을 욕하기에는... 기분이 울쩍해 지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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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들의 아침 "정말 이렇게 마냥 가만히 있어도 되는 걸까요?"
엘프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언덕 중앙에서 검을 꺼내 들고 앉아 한가롭게 저스틴과 이야기를 나누던 밀레나가 하늘을 잠시 쳐다보다가 갑자기 긴 한숨을 내쉬며 저스틴에게 말했다. 분명 상황을 보면 매우 급박하게 돌아가야 하는 것이 정답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3시간 째 아무 짓도 안 한 채 앉아 있다는 것은 그녀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이토가 말한 계획도 그렇다. 물론 그가 말한 대로 된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사람의 생각이라던가 돌발 변수 등을 생각 안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한마디로 사이토에게는 미안하지만 그의 전략이 미심쩍기 그지 없다.
"그래, 그렇지만 우리도 아주 중요한 역할의 하나야. 상대 전략의 분석이라던가, 일단 사이토씨의 예상이 맞는가를 확인도 해야 하니까. 그렇지만, 만약에 사이토씨가 말한 두 번째 상황이 된다면 우리는 정말 최선을 다해 싸워야 해."
"아아, 모르겠어요."
밀레나는 시선을 들어 멀리 숲속을 바라보았다. 나무에 가려져 보이지는 않지만, 자신들의 최후의 보루인 한네브가 있을 것이다. 경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초보자 필드도 존재하지 않는 한네브이다. 어차피 중앙에서 너무나도 동떨어진 마을이었기에 당연한 일이겠지만, 마을 안에 들어서기 전에는 NPC들이 도움도 받지 못한다. 물론 적들을 맞는데 있어서 가장 좋은 것은 마을 안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아군의 성향치를 볼 때 마을 안에서의 싸움은 전적으로 그들이 불리하고 또 사이토의 계획대로라면 마을 밖에서 그들을 상대해야 한다.
"만약에 일이 잘못 되면 그들이 빨리 와 줘야 할 텐데..."
문득 공터 한 구석에 그려진 둥그런 표시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밀레나이다. 메시지를 보내 볼까도 생각했지만, 그녀는 곧 그만둬 버렸다. 현재 그들은 전투 중이다. 전투중의 메시지라는 건 좋을 게 없다. 그녀는 눈앞으로 펼쳐진 수림 사이로 언듯 언듯 보이는 오솔길을 주의깊게 주시했다. 그 길 어딘가에는 지금 아누비스가 숨어있으리라.
파라라랏!
기괴한 모양의 바람이 날아가 꽃이기를 거부한 듯한 거대한 식물 몬스터들을 양분해 버렸다. 바람을 쏘아 낸 것은 얇은 세검을 들고 있는 여성으로 보이는 유저이다. 몸 검은 로브로 온 몸을 가렸기에 등에 새겨진 화려한 황금색의 마크가 더욱 선명하다.
"피해!"
여성의 뒤쪽에서 조용하고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자는 공중을 한 번 쳐다보고는 혀를 차며 뒤로 황급히 물러섰다. 공중에는 그녀와 똑같은 로브를 입은 남자가 검을 똑바로 곧추세우고 땅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다.
"레기나 블레이드!"
검이 땅에 꽂히는 순간, 그를 중심으로 거대한 충격파와 빛 무리가 사방으로 뻗어 나간다. 땅이 요동치며 파편이 요란하고 나무들은 흡사 무형으로 만들어진 수백 개의 주먹에 격중 당한 듯 가루가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들을 공격하기 위해 모여 있던 몬스터들은 빛 무리 속에 사라져 갔다. 스킬이 끝나자 그는 검을 추스르며 자신으로 인해 초토화가 된 주변을 의기양양한 눈으로 쳐다본다. 그의 뒷머리를 강타하는 여자의 매서운 손...
"인! 이 녀석! 그런 대단위 스킬은 무급 운영자인 우리도 위험하다고 이야기 했지! 몇 번을 말해야 좀 조심할래!"
여자로부터 인이라고 불리운 그 남자는 곧 그녀에게 맞은 머리를 손으로 쓸며 투덜투덜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잇! 너무해요 지 누나! 그래도 명색이 무급운영자인데 어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머리나 딱딱 때려대고!"
"이게! 어디서 말대꾸야!"
그녀가 또다시 손을 들어 올리자 인은 팔을 들어 방어 자세를 취한다. 아무리 봐도 리얼판타지아의 절대적인 무력을 자랑하는 무급운영자의 방어자세라고 볼 수는 없지만, 그 자세는 '지'라고 불리운 여성이 그의 머리를 다시금 타격하지 않는데 훌륭한 역할을 해 주었다.
"이런 식으로 낭비할 시간 없다."
그들의 뒤로 한 남자가 걸어온다. 세 명중 유일하게 로브를 머리 위로 젖힌 남자이다. 일견 보기에는 아주 평범한 얼굴... 약간 긴 검은 더벅머리에 짙은 눈썹을 지녔다. 상당한 장신의 체구를 자랑하는 이 남자... 세 명의 무급운영자 중 가장 강력한 인물인 '천'이었다. 과거 '사신'이라는 아이디로 활동하던 리얼판타지아 최강의 인물이었다다. 그가 앞으로 나서면서 뒤쪽에서 그들을 구경하고 있는 사이토와 케인 등을 엄지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인'과 '지'는 사이토 일행에게 추한 꼴을 보였다는 생각에 볼을 긁적였다.
본디 무급운영자는 유저들의 일에 절대 간섭할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수많은 운영자들의 비리라던가 잘못을 시정명령하고 처단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 그러나 오늘은 그런 일로 이곳에 온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지금 해야 하는 일은 사이토 일행을 최대한 단시간 내에 블랙 드래곤 카르휀시온의 레어까지 보내 주는 일이다. 비록 무급 운영자이기는 하지만, 그 제한 범위가 몬스터에게 까지 확대된 것은 아니기에 평소 몬스터 사냥 정도는 할 수 있다. 물론 특정 유저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것은 불법이지만, 지금은 상부의 특별한 지시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세 명이 무급 운영자들이 움직이게 된 것이다.
"앞으로 4시간 안에 끝내자."
천이 시간을 확인하며 중얼거리자 '인'과 '지'는 한숨을 내쉬며 앞으로 빠르게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현재 사태에 대해서는 게임사의 꽤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그들이기에 대충이나마 알고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그들 자신이 나서서 그 오카리나라는 사이버 생명체를 처단하고 싶지만, 현재 까지 겪어본 오카리나라는 사이버 생명체의 힘은 가이아 이상이었다. 그렇기에 별로 미덥지 않은 사이토들에게 게임의 운명을 맡겨야 한다는데 한숨이 나오는 그들이었다.
"언제 봐도 경이로울 정도랄까."
강진의 감상평이다.
"사기에 가깝겠지."
케인의 감상평이다.
"이거 원래 최소 6일 잡는 코스 맞나?"
사이토의 조용한 한마디...
"..."
"어떻게 하면 저렇게 되려나..."
마무리 짓는 루피아의 말이었다.
무급 운영자들의 출연에 마땅히 할 일이 없어진 사이토 일행들이다. 강진의 말대로 게임사에서는 막강한 인력을 보내주었다. 그들에게 부탁한 것은 에덴 깊숙한 곳에 있을 카르휀시온에게까지 가는 길을 뚫는 것이다. 강진이 연락을 취한지 한 시간도 안 되어 나타난 그들은 가타부타 말없이 작업에 착수했다. 그리고 거의 6시간이 지난 지금, 사이토들은 무급 운영자들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 그들을 구경하고 있다. 위의 말들은 잠시 작업을 멈춘 운영자들을 바라보는 사이토 일행의 감상... 한마디로 경이로울 따름이었다. 처음에는 그들을 도와 한시라도 빨리 카르휀시온에게 가려 했지만, 그것은 곧 단순한 걸리적거림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는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너무나도 큰 무력의 차이... 이 에덴의 입구에 들어섰을 때 사이토들은 그 엄청난 퀘스트 레벨에 치를 떨어야 했다. 평소에 세 네 마리씩 만 나타나도 유저들이 치를 떠는 몬스터들이 거의 떼를 지어 습격해댄다. 한 동안 몬스터들을 사냥하던 그들은 에덴의 무지막지한 난이도에 두손두발 다 들었고 어쩔 수 없이 강진을 통해 게임사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근 6시간도 안된 상황에서 에덴의 절반을 횡단하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무급 운영자들은 스테미너가 무한이라도 되는 양, 마나가 콸콸 솟아 나오는 양, 한도 끝도 없이 스킬을 남발 해대며, 특별한 길을 따라 걷는 것이 아닌 목적지인 카르휀시온이 기다리는 곳을 향해 직선으로 에덴을 주파해 버리고 있다. 그러나 그런 운영자들의 위용에도 눌리지 않는지 몬스터들은 계속해서 나타나고 그 몬스터의 양에 질려버린 케인은 이렇게 말했다.
"씨바, 이 정도면 길드 두세 개가 와도 힘들겠다. 평소에 보이지 않던 몬스터들은 죄다 여기 모여 있는 건가?"
솔직히 지금 몬스터가 이렇게 많은 이유는 오카리나가 카르휀시온에게 장난을 쳐 놓았기에 그런 것, 원래대로라면 지금 출연하는 양의 3/1 정도만이 출연해야 타당했다. 게다가 퀘스트의 효과 중 하나가 '퀘스트 진행자에 대해 몬스터들의 집중 효과'까지 가중된다. 하지만 아무리 몬스터가 많이 덤벼들어도 어쩔 텐가... 무급 운영자는 그만큼 강했다.
그렇지만 이런 훌륭한 전력이 있음에도 사이토일행의 표정이 그리 밝지 않은 것은 드래곤 사냥에 있어서는 무급운영자들의 도움을 받기 힘들다는 것이다. 지금 출연하는 몬스터들이야 메인 몬스터가 아니기에 그들이 잡아 줄수 있지만 카르휀시온은 퀘스트의 보스 몬스터이다. 그런 몬스터를 사냥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것은 운영자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기에 거기까지는 무급운영자의 권한 밖이었다. 아무튼 이들은 정말 열심히 몬스터를 잡아 나갔다. 마구마구 잡아나갔다. 쉴 새 없이 잡아 나갔다. 정말 칭찬해 주고 싶을 정도로 열심히 잡아 주었다.
"그런데 아이템은 단 한 개도 안 떨어지네."
그들을 뒤따르던 사이토의 무심한 한마디, 그 말에 뒤따르던 케인의 눈이 어이없다는 듯 변한다. 지금 상황에서도 떨어질 아이템을 생각하고 있다니... 앞으로 산재해 있는 수많은 난관들이 있건만 그 중심에 있는 사이토는 태평하게 아이템 타령만 하고 있다.
"그건 무급 운영자들의 특성입니다. 저들이 사용하는 고유의 무기라던가 스킬들은 모두 특수한 어빌리티가 걸린 것들이지요. 그 어빌리티 중 하나가 아마 아이템 드롭 확률을 제로로 만드는 것일 겁니다. 무급 운영자가 혹시나 고급 아이템을 목적으로 몬스터 사냥을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거지요."
"네."
강진의 친절한 설명에 사이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편하게 간다는 좋은 점이 있으니 그 정도 나쁜 점은 이해가 간다. '천'이라 불리우는 무급 운영자가 스킬을 사용하려는 듯 조용히 검을 앞으로 뻗는다. 그리고 잠시 후 몬스터들을 향해 날아가는 거대한 검의 형상... 요란한 파괴음 속에 '지'라 불리 우는 무급운영자는 나머지 살아남은 몬스터들을 처리한다.
"후우... 마을 쪽은 어떻게 되려나..."
문득 마을 쪽에 남은 이들이 걱정되는 사이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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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수정이 있겠습니다. 후에 읽으실 때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귀차니즘의 압박으로 연제분은 수정하지 않겠습니다.
그 내용으로는 아이아스 잔당의 규모를 9계급 3명 7계급 40명 정도로 대폭 늘리겠습니다.
물론 저 위의 수치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부분 부분 조금씩 변경 될 것입니다.
=+=+=+=+=+=+=+=+=+=+=+=+=+=+=+=+=+=+=+=+=+=+NovelExtra([email protected])=+=
조롱받는 드래곤 어둠의 장막이 내려앉은 수림의 한가운데, 달빛마저도 저 하늘을 메울 듯한 이제는 검은 음영으로만 보이는 우거진 나무들 속에 두 인영이 가만히 앉아있다. 앞서 앉아 있는 이는 아무런 미동도 없이 흡사 어둠속에 녹아 든 듯한 분위기가 들 정도로 차분하다.
적막과 동화된 듯한 이 사람의 이름은 아누비스... 도둑 클래스의 최고에 달한 이인만큼 그의 은신은 완벽했다. 그의 뒤로 함께 자신의 존재감을 지우려 열심히 발버둥치는 이는 발데아라였다. 사실 아누비스 혼자만이 가장 안전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아누비스가 지닌 치명적인 단점인 자기 절제를 위해서는 발데아라가 필요했다. 게다가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방법에는 발데아라의 힘도 필요했기에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지금 아누비스와 함께 있다.
둘은 아무 말 없이 오랜 시간을 그런 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들이 원하는 그것들이 나타나기 까지를 기다리며 그 자세 그대로 앉아 있다. 너무나 장시간 앉아 있었기에 슬슬 짜증이 밀려오던 발데아라는 앞에 앉은 아누비스로부터 조용한 한마디의 메시지가 들려오자 몸을 긴장시켰다.
[놈들이다.]
[확실해?!]
발데아라의 확인에 아누비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상 그 확인은 도둑인 아누비스만이 가능할 뿐 네크로맨서 계열의 발데아라에게는 무리이다. 아누비스는 계속해서 정신을 집중하여 그의 영향권 안으로 들어온 이들을 분석했다. 그들이 들어온 것은 확실하지만, 그것들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었다.
[거의... 30명에서 35명 사이... 같다. 뭉쳐 있군.]
아누비스의 메시지에 발데아라는 혀를 찼다. 사이토의 예상대로라면 아무리 많아봐야 20명이 넘지 않으리라. 그러나 30명이 넘어선다면 사이토의 계획은 이미 물건너 간 것이다. 서둘러 사이토에게 메시지를 넣으려는 발데아라, 그러나 아누비스가 그런 그를 제지했다.
[아니, 뭔가 이상하다.]
[뭐가?]
발데아라의 물음에 아누비스는 신경을 흩트리지 않은 채 조심스레 그의 의견을 설명했다. 아누비스는 현재 탐색을 유지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서 정신을 집중하고 있다. 게임을 진행함에 있어 스킬의 유지라는 것은 굳이 어떠한 순차라던가 퍼센트를 만들 필요가 없었다. 그것은 단지 유저들이 그 기술을 사용하고 유지함에 있어오랜 숙달로 인해 감각으로 체득할 수밖에 없는 능력이었다. 현재 적들로부터의 거리는 거의 200미터가 넘는다. 나침반의 최고 탐색 지역이 150미터 전후라는 것에 비추어 볼 때, 그리고 보통 9계급 도둑들의 나침반을 제외한 탐색능력이라는 것을 비교해 볼 때 200미터는 거의 도둑의 극에 가까운 능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저들은 상식에 조금 어긋나는 짓을 하고 있어. 보통 같으면 선봉에서 탐색을 하는 유저들이 먼저 나타나는 게 일반적이야. 그런데 저들은 선봉과 본진의 차이가 거의 이 삼 미터 밖에 되지 않아. 물론 저들도 지금 그런 방식을 취하고 있는 듯하지만, 내가 느끼는 바로는 저건 탐색보다는 습격에 대비해 후퇴를 염두에 둔 모양 같아. 그리고...]
[그리고?]
아누비스가 고개를 갸웃 거린다.
[몇 몇의 존재감이 이상해. 유저인지도 확실하지 않아. 또 강한 이들은 모두 앞쪽에 서 있어. 정 말 이상하군.]
고개를 흔드는 아누비스, 그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분명 자신들이 기습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단지 모르는 것은 어디에서 기습을 가할 것인가이다. 그러나 아누비스가 알기로는 기습에 대비한 진영은 결코 저들이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하고 있는 진영은 흡사 '저희를 마법으로 때려주세요' 라고 할 정도로 정직한 둥근 진형이다. 게다가 탐색을 맡은 이들도 제 역할을 다 한다고 보기에는 미심쩍어 보인다.
[곧 저들의 탐지 범위 안에 들어간다. 이동하자.]
발데아라가 아누비스의 옷깃을 잡아끌며 메시지를 보낸다. 더 이상 그들과 가까워지면 그들의 나침반에 걸려들 수 있다. 설령 아누비스가 피한다 해도 그 자신은 마법사이기에 십중팔구 걸려든다.
[사이토씨가 맞았다. 계획대로 나간다.]
[무슨 소리야?]
[그냥 그렇게 믿어. 이동하자.]
아누비스는 더 이상 설명해 줄 시간이 없다는 듯 발데아라를 이끌고 그곳을 서둘러 빠져 나갔다. 아누비스는 달리며 사이토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사이토씨의 계획이 맞는 것 같습니다. 출발하시길...]
[예, 수고하셨습니다.]
아누비스의 연락을 받은 사이토는 서둘러 허리춤에서 게이트스톤을 꺼내 들었다.
"어떻게 되었어?"
브랜이 묻자, 사이토는 얇은 미소와 함께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렸다. 브랜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다른 이들을 불러 모았다. 무급 운영자들이 도와준 덕분에 이제 블랙드래곤이 기다리고 있을 에덴의 중심, 과거의 영광이 숨쉰다는 폐허가 육안으로 확인되는 곳까지 전진할 수 있었다. 사이토가 적당한 공터에서 위치를 게이트 스톤에 저장하고 일행들에게 다가왔다. 무급 운영자들은 일이 시작되기 전 강진에게 들은 바가 있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몬스터를 사냥할 필요가 없다는데 자축을 하며 행동을 멈추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다음에 또 뵙길..."
사이토가 고개를 숙이자 '천'은 살짝 목례를 한 뒤 나머지 둘을 이끌고 어디론가 사라져 갔다.
피이이잉!
밀레나와 저스틴의 뒤쪽에 그려져 있던 작은 원에서 붉은 빛줄기가 솟아나온다. 곧 이어 하나 둘 씩 나타나는 사이토일행들... 밀레나가 사이토에게 다가가며 밀레나가 일의 성공여부를 묻자 사이토가 빙그레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놈들이 근처에 있다."
케인이 검을 꺼내들며 중얼거렸다. 쉴 틈 없이 전투의 시작이었다.
"적당히 겁만 줘야 겠지?"
"그렇죠. 저쪽 전력 보존도 신경을 써야 하니까요."
케인의 물음에 사이토는 피식 웃으며 오랜만에 셀레네와 헬리오스를 꺼내 들었다. 적당히 겁만 줘야 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압도적인 무력도 함께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만이 그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 줄 테니. 잠시 후 아누비스의 신호와 함께 적들이 사이토의 나침반 안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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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롱당하는 드래곤 "모두 다친 사람 없죠?"
사이토는 허둥지둥 도망쳐 가는 적들이 그의 탐색 범위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지그시 쳐다보다가 뒤를 향해 물었다.
"아아, 뭐 괜찮지."
케인이 검을 칼집에 집어넣으며 사이토에게 다가왔다. 사이토는 일행들을 꼼꼼히 점검했다. 모두 별다른 외상이 없는 듯하다.
"이거 짜고 치는 놀음 같군."
전투에 대한 브랜의 짤막한 감상이었다. 대단하다는 눈빛으로 사이토를 바라보는 브랜, 역시나 사이토의 예상은 적중하였다.
"역시 저들은 우리를 안심시키려는 미끼였군요."
전투 중간에 뒤늦게 나타난 발데아라가 전장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그렇죠. 저의 예상이 끝까지 맞아 준다면 아마 저들은 에덴에서 우리를 기습하려고 할 겁니다. 이미 흘린 정보 중에 우리의 목적도 끼어 있으니까요. 아참! 아누비스씨의 일은 잘 되셨습니까?"
"예, 그들의 뒤를 밟는데 성공했습니다. 지금 한창 녀석들을 뒤쫓고 있겠죠."
발데아라의 말에 사이토는 낮은 한숨을 내쉬며 방금의 전투를 회상했다. 아이아스의 길드 마스터 케이지와의 전투는 참으로 우습고도 싱겁게 끝났다. 명색이 이쪽의 기습이라고는 하지만 막상 그들과는 몇 번 무기를 마주치지도 못했다. 저스틴의 화살이 몇 번 날아가고, 사이토와 케인등이 그들과 맞붙기 전에 그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망친 것이다. 그 후퇴 또한 그들이 사전에 미리 계획했던 것이더라도 그들의 연기는 많이 어설펐다. 사실 그들 딴에서는 별거 아닌 단순한 아이아스의 잔당 정도로 연기하려고 했던 것이지만, 그들에 대해서 모든 정보를 알고 있는 이쪽으로서는 그런 연기조차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이제 그들은 의기양양하게 사이토일행을 습격하기 위해 에덴으로 향할 것이다. 물론 중간에 행보가 조금이라도 변경된다면 그들을 뒤쫓는 아누비스가 즉각 알려올 것이고 그 때는 또다른 계획을 짜야 겠지만 아직까지는 사이토의 손바닥 안이었다.
사실 사이토가 이렇게 번거로운 짓을 하며 일을 벌인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현재 확인된 바로 그들의 숫자는 40명 정도이다. 길드 마스터인 케이지를 합하면 도합 41명... 현재 사이토일행 구성원 각각의 질이 아무리 높다고는 하지만 13:41의 싸움은 아무래도 위험했다. 자칫 잘못하면 사상자가 나올 수도 있다. 또한 강진과 발데아라를 통해 알게 된 정보들도 한몫을 했다. 무릇 상대를 잘 안다는 것은 절반의 승리를 따고 들어가는 것이리라. 그리고 사이토는 레드플레그길드에 연락을 취하여 소문을 퍼뜨렸다. 그들의 귀로 아주 잘 들어갈 수 있도록 빤히 드러나는 소문을 퍼뜨린 것이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상대가 사이토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것을 착안한 것이다. 웬만한 속임수는 통하지 않으리라. 그래서 사이토는 도리어 빤히 드러나는 그런 정보를 퍼뜨렸다. 이유는 케이지에게 그 정보를 줌으로써 사이토는 케이지의 행동반경을 좁힐 수 있는 것이다. 그 정보를 얻기 전의 케이지는 사이토를 어떤 식으로 공격할 지 예측하기 힘들다. 그러나 그 빤히 드러나는 정보를 취득하는 순간 케이지는 사이토의 예상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설사 그들이 이후에 사이토의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고 다시금 다른 방법으로 그들을 공격한다고 해도 그것은 아누비스가 미리 알려줄 것이다. 한마디로 그 정보는 그들을 알아서 드래곤의 앞으로 데려갈 수 있는 마법도 부릴 수 있게 해 줌과 동시에 피할 수 없는 함정을 만드는 정보였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사이토의 예상을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채 사이토 일행의 습격을 맞는 척 했다. 사이토의 계획은 단순했다. 만약 그들인 진짜로 공격을 해 온다면 사이토들도 사전에 미리 준비해 두었던 게이트 스톤을 통해 이곳으로 와서 기습을 통해 그들과 일대 혈전을 벌인다. 그리고 두 번째 방법은 그들이 사이토의 예상대로 움직인다면 지금과 같은 방법으로 처리하자는 계획이었다. 그리고 그 계획은 아주 잘 맞아 떨어졌다.
"아누비스씨가 잘 해 주셔야 할 텐데."
발데아라에게 아누비스의 고질병이라 할 수 있는 그 '폭주'에 대해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사이토는 걱정이 앞섰다. 비록 발데아라가 안심하라고는 했지만, 의외의 변수라는 것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이제 남은 것은 아누비스의 연락과 아리유에서 와야 할 노인정 어르신들뿐이다. 사이토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마을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루 종일 너무 많은 일이 있었기에 피곤함이 몰려온다.
"수고했다."
케이지는 이번에 크게 수고한 길드내의 유일한 8계급 테이머의 어깨를 두들기며 칭찬을 했다. 케이지의 격려를 받은 테이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그의 역할은 미스티핸즈 일행을 교란시키기 위해 다른 동물들을 테이밍하여 데려가는 일이었다. 또한 자신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날아오는 그 화살을 빙자한 대포에 테이밍 된 동물들을 일부러 희생시켰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상대측에서 마법이 날아올 시 그것들에 희생을 시키려 했지만, 미스티핸즈측은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건은 어찌되었건 잘 해결된 듯한 마음에 케이지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괜찮으려나?"
셀론이 그 테이머를 바라보며 중얼거렸지만 케이지가 어깨를 으쓱하며 그에게 말했다. 그 테이머는 이번 일을 성공시키기 위해 그가 애지중지하는 신수 에인션트 크로우 한 마리를 없애야 했다.
"뭐,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이번에 확인해 본 건데 미스틱핸즈의 일행들은 거의 10여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어. 그렇다면 그대로 공격해도 되었을 것 같은데."
셀론의 물음이었다. 사실 그 전까지는 미스티핸즈의 일행의 숫자도 잘 모르고 있었다. 이번에 알아본 바로는 10여명 내외, 충분히 승산이 있는 게임이었다. 그러나 셀론의 그 물음에 케이지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렇지만, 이걸 명심해야지. 첫째는 카마디스 블루에 나타난 그 살인자들의 무력이야. 그 무지막지한 전투력을 지닌 녀석들이 만약 그 10명 전체라면 어떻게 할 텐가? 또 우리가 습격했을 시에 마법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어. 자네는 이게 정상적인 파티의 구성비라고 보는가? 분명 그들은 마법사를 숨기고 있다가 우리들이 접근하는 시기를 노리고 있었어. 만약 가까이 접근했다면 정말 큰 데미지를 입었을 지도 모를 거야. 그리고..."
케이지가 잠시 운을 뗀다.
"상대의 리더는 미스틱핸즈라는 거다."
케이지의 말에 셀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케이지의 설명이 그가 가지고 있는 의문들과 하나 하나 맞아 떨어져 해결 시켜주는 것이다.
이미 길드원들은 다음 계획을 위해 채비를 하고 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들도 에덴에 대해서 대략적인 지역정보를 얻어 두었기에 만만의 준비를 해 두는 것이다. 케이지의 계략은 이러했다. 자신들의 습격을 막아냈다고 안심한 미스티핸즈는 이제 에덴으로 향하리라. 지금까지 알아본 미스티핸즈의 행적을 보면 미스티핸즈는 뭔가 급한 일이 있는 듯 다른 짓은 안한 채 퀘스트에만 집중했다. 현재까지 밝혀진 미스티핸즈의 행적에 대한 케이지의 지식은 아리유에서부터였다. 그는 그곳에서부터 지금 있는 지역까지 정말 쉴 틈 없이 이동했다. 미스티 핸즈는 마치 시간에 쫓기듯 이곳까지 왔다. 다른 일반적인 퀘스트를 하는 이들을 본다면 그들은 절대 그런 짓은 못한다. 설사 그 퀘스트가 사람을 살려야 하는 '부활 퀘스트'라 하더라도 그런 지루한 여행을 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케이지는 사이토가 이제 에덴으로 향하리라는데 확신을 지니고 있었다.
"모두 준비 완료되었습니다."
길드원들이 모두 준비를 끝마친 가운데 케이지의 앞으로 도열하자 케이지는 고개를 끄덕이곤 하늘을 한번 쳐다보았다. 어둠이 지나 새벽으로 향하고 있다. 먼동이 트기까지는 아직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만, 곧 아침이 되리라. 지금 출발한다면 몬스터의 활동이 뜸해지는 낮 동안 계속해서 걸을 수 있다. 지루한 시간 싸움이라는 것과 에덴에 서식하고 있는 몬스터들에 대해서 약간의 두려움이 밀려온다. 그러나 케이지는 이내 그 두려움을 떨쳐내었다. 지금 그의 뒤로 도열해 있는 이들은 케이지가 진정으로 믿는 아이아스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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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동안... 딴짓하던 데자부였습니다.
으음, 근래... 일본 친구들과의 마찰로 인해 덩달아 전선에 뛰어;; (쿨럭)
으음,-_-; 아무튼... 본업에도 충실해야 겠죠.
아참, 그리고...이미 연재되어 있는 부분 들 중 몇 몇 대화 부분을 또 수정했습니다.
언제와 같이..-_-; 출판본만의 수정이며... 본 편은 안 건드립니다. -,.- (알잖아! 나 이런 놈이라는 거)
꽤 많이 바꾸기는 했고...또 여러가지 수정을 가하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또한 이번으로 새로운 쳅터로 들어갑니다. 자를까 하다가 그냥 붙여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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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롱받는 드래곤 "흐음..."
사이토는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던 엉덩이와 허리를 바로세우며 폐부 속으로 밀려들어오는 차가운 공기를 한껏 들이켰다. 발밑으로는 까마득한 높이의 지상이 있건만, 사이토는 으레 그 사실을 즐기는 마냥, 발까지 흔들어 대고 있다. 멀리 지평선 끝까지 펼처진 너른 숲이 보인다. 가상이라 치부하기엔 몸에 와 닿는 아찔함마저도 진실처럼 보이건만, 그는 현실에서 이런 풍경을 본 적이 없었다. 생소하지만 친숙한 풍경... 지금 그가 있는 곳은 엘프 마을에서 가장 높다고 할 수 있는 거목의 한 가지였다.
"오빠..."
밀레나가 그의 바로 밑에 위치한 나뭇가지에 위태로운 자세로 나무를 붙잡고 서 있다.
"왜 올라왔어. 위험한데..."
사이토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가 있는 나뭇가지로 몸을 옮기자 밀레나는 질린 표정으로 그를 바라본다. 나뭇가지가 조금씩 흔들리고 있건만 사이토는 별 상관없다는 듯 능숙하게 걸어온다. 문득 그의 다리 밑으로 보이는 까마득한 지상의 광경에 다리가 얼어버리는 밀레나이다.
"아아, 만지지 말아줘. 만지면 떨어져!"
허둥 거리는 밀레나, 얼굴이 빨갛게 변하며 식은땀을 흘리는 게 이곳까지 올라오는 것도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했으리라. 그녀를 향해 손을 뻗던 사이토는 피식 웃으며 그녀의 앞에 사뿐히 앉았다. 밀레나가 그의 옆으로 조심스레 앉았다. 가늘게 흔들리는 나뭇가지... 바람이 불어와 그녀의 머리카락을 물결처럼 일으킨다.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내리는 그녀의 눈망울은 차갑게 젖어 있었다. 너무 높은 곳에 올라 있기에 두려움의 반증인 듯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건만 그것 또한 그녀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
그녀와 함께 멍하니 지평선을 바라보던 사이토가 조심스레 입을 연다.
"미안해."
침묵하는 밀레나, 그가 말하는 미안함이 어떤 것인 줄 안다. 가슴이 아파온다. 그러나 그녀는 내색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를 믿었다. 사이토의 장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그 솔직함, 때로는 그 솔직함이 더 가슴 아프지만, 거짓보다는 나으리라.
"괜찮아요."
침묵하는 사이토... 그녀가 괜찮다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그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다른 나뭇가지에 앉아있던 새가 어느새 그들의 머리를 타고 날아갔다.
"넌, 인간이 만들어진 인격체에게 사랑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
"....."
밀레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녀는 평소에 인격체에게도 사랑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일이 자신과 관련된 이에게 일어날 꺼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또한 가장 최악이라고 할 수 있는 이에게서 일어났다는 것도 그녀를 슬프게 만들었다.
"나, 많이 밉지."
"네."
"..."
"미우면 욕해도 돼."
"나쁜 새끼..."
"..."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욕을 내뱉는 밀레나... 잠시 멍하니 그녀를 쳐다보던 사이토는 자신이 그녀가 말한 '나쁜새끼'가 맞다는 것을 알기에 고개를 푹 숙였다.
"그렇지만, 오빠 일이 모두 해결되면 나한테 올 꺼죠?"
"응, 조금만 기다려 줘."
사이토의 대답에 밀레나는 희미한 웃음을 그에게 주었다.
"그러니까 말이오. 내가 그 나무 정령에게 이렇게 말했지. 그럼 내가 당신을 위해 동물을 습격하여 당신에게 거름으로 줘야 하는가? 그랬더니 그 나무정령은 그래야 한다고 하지 않소. 사실 그 나무정령은 우리와 더 친분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또 그것을 꼭 받아 줘야 한다는 의무도..."
"제길, 시끄러워."
케인은 자신의 옆으로 찰싹 달라붙으며 계속해서 자신의 천년 인생사를 쏟아 놓는 이 젊고 잘 생긴 엘프를 마주 쳐다보며 쏘아붙였다. 생각 같아서는 갈기갈기 조각을 내 버린 뒤 그를 그 나무정령의 거름으로 값지게 사용해 버리고 싶지만 그것은 절대 피해야 할 일이었다. 엘프들의 마을 한네브에는 경비병이 없다. 대신에 모든 NPC들이 범죄자들을 자체적으로 처리해 버린다. 물론 엘프들이기에 인간들의 잣대라고 할 수 있는 살인자에 대한 페널티가 엘프들의 사고에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같은 엘프를 죽이게 되면 이곳의 엘프들은 정말 집요할 정도로 적을 쫓아 주살해 버린다. 엘프남성을 쏘아보는 케인... 그러나 그 젊은 남성 엘프는 그의 눈빛과 말에 전혀 충격을 입지 않은 듯, 박수를 쳐대며 그의 말에 맞장구친다.
"그렇소. 이렇게 말을 많이 하는 것은 어쩌면 시끄러울지도 모르죠. 그러나 이 시끄러움이 당신과 나의 대화 속에서 피어날 하나의 좋은 결과물을 생각한다면 더 좋은 것 아니겠소? 그런데 그 시끄러움이라는 녀석은... 주절주절..."
"끙! 케인씨! 그 엘프 좀 어떻게 해 주세요!"
얼굴을 잔뜩 찌푸린 발데아라의 노골적인 삿대질! 분명 그도 케인 옆에서 주절거리는 저 엘프가 소름끼치도록 싫었으리라. 아무말 없이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궁상을 떨며 사과를 씹어 먹던 루피아마저도 그를 바라보며 눈살을 있는 데로 찌푸린다.
"좀 다른데 가서 놀지."
"저자식이..."
발데아라라면 모를까 그의 제자인 루피아까지 그에게 인상을 쓰자 케인은 이마에 내천자를 그리며 허리춤에 단검을 쥐었다. 여차하면 던져버릴 태세, 역시나 엘프마을에서도 그의 지랄 맞은 성격은 변하지 않았다.
"아, 그만 좀 해!"
발데아라와 함께 체스를 두고 있던 저스틴은 케인이 그녀의 옆에서 인정사정없이 살기를 뽑아내자 방해된다는 듯 케인을 바라보며 외쳤다. 루피아를 노려보던 케인의 고개가 음산하게 돌아간다. 저스틴과 눈싸움에 들어가는 케인, 둘 다 미동도 없이 서로를 노려본다.
"후우..."
그 꼴을 바라보던 발데아라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흔든다. 이처럼 성격 모난 이들이 함께 한 가지 목표를 가지고 협동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가 뼈저리게 느껴진다. 발데아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외진 곳에 위치한 다른 공터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아누비스, 상황은 어때?]
엘프 꼬마들이 뛰어 노는 나무 아래 그루터기에 도착한 발데아라는 자리에 앉으며 아누비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난전 중이다. 하지만 아직 사상자를 내지 않은 채 전진하고 있어. 이 녀석들 강한 놈들이야.]
짤막한 아누비스의 메시지이다. 강진과 사이토로부터 아덴의 위험레벨에 대해들은 바가 있는 발데아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금 물었다.
[언제 즈음 폐허에 도착할 것 같아?]
[ 글쎄, 지금까지 전진한 바를 보자면 대략 6일 정도 걸릴 것 같다. 그렇지만 지금 몬스터들의 양을 봐서는 곧 사상자가 생길 것 같군.]
아누비스는 길게 자란 풀숲 속을 조심스레 이동하며 발데아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들과의 거리는 거의 140미터에서 150미터이다. 쉴 틈 없이 나침반을 재차 확인하는 아누비스... 몬스터들을 철저히 피하며 케이지 일행을 뒤쫓고 있다.
[조심해라.]
[그래.]
발데아라의 염려 섞인 메시지를 끝으로 그와의 대화는 끝났다.
꽈과과광...
케이지의 일행이 있는 전면으로 거대한 불꽃의 잔재가 소용돌이 치며 올라갔다. 지시를 내리는 외침과 기합소리들... 그리고 몬스터들의 비명소리... 아누비스는 혀를 내두르며 안력을 돋구어 그곳을 바라보았다. 캐러밴들 중 한 마리가 몬스터의 습격에 놀라 발버둥 치다가 온몸이 거대한 이빨로만 이루어 진 듯한 에쿠알이라는 거대몬스터에게 잡아먹혔다. 나머지 캐러밴들을 보호하라는 케이지의 호통소리... 그 와중에도 열심히 눈앞의 몬스터들을 죽여 나간다. 그러나 케이지들의 전면의 몬스터들은 그 수가 줄어들 줄 모른다. 대충 어림 짐작 만으로도 60마리가 휠씬 상회할 듯 보인다.
"우아아아! 검격!"
케이지의 애검 '리벤지'가 화려한 빛을 내뿜었다. 좌에서 우로 끊어질 듯 허리를 휘두르는 케이지, 그의 앞으로 빛나는 거대한 검기가 생겨나고 단숨에 두 마리의 에쿠알들을 동강내 버렸다.
"마법 공격 준비 완료!"
뒤쪽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자 케이지는 몬스터를 경계하며 뒤로 황급히 물러선다. 일행들의 가장 한 가운데서 전사들의 보호를 받고 있던 마법사들의 몸에서 한순간 거대한 빛무리가 퍼져 나간다.
"헬 다이브!"
네 명의 마법사가 외친 시동어는 모두 하나같이 8서클의 대량 살상 마법 '헬다이브'이다. 네 명의 각자 손앞에 완성시킨 마법이 한순간 그들의 몸을 휘돌아 타고 오르다가 공중으로 집결한다. 각자가 만든 빛무리보다 거의 여섯배는 커보이는 마법 덩어리..그리고 잠시 후 그 구체는 몬스터들이 있던 장소에 작렬했다.
지이이이...
구체가 땅에 부딪히자 땅은 잠시 요동치다가 그 구체가 부딪힌 곳을 중심으로 붉은 원이 나타나 주위로 빠르게 넓혀 나갔다. 그 지름은 거의 50미터에 달한 정도로 거대하다.
"후퇴 후퇴!"
폭발의 강도가 의외로 더 강할 것이라는 것이라고 예측한 케이지가 황급히 일행들을 물린다. 서둘러 지역을 이탈하는 일행들...
잠시 후 확장을 끝낸 '헬 다이브'는 찬란한 붉은 빛을 내뿜으로 폭발하기 시작했다. 땅밑으로 솟아나는 것은 지옥을 머금은 듯한 새하얀 백색 불꽃의 폭발... 연속적으로 폭발하며 지상 지하 원의 반경 20미터를 전후해 가리지 않고 찢어발겨 댄다.
불꽃은 마치 지상을 삼켜 들어가겠다는 양 계속해서 폭발해 나갔다.
꽈과광!
"우웃!"
마지막 거대한 폭발로 인해 일어난 바람은 마치 칼처럼 변하여 케이지일행을 덮쳤다. 뒤이어 다시금 폭발의 중심으로 되 쓸려 들어가는 바람... 붉은 원은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들어 내며 폭발의 진원지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잔해들을 모조리 휩쓸고 땅 속으로 사라졌다.
치이이이...
여운을 남기는 듯 들려오는 점점히 사라져 가는 소리... 몬스터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근 반경 80미터 내에 있는 모든 나무들 또한 폭발에 휩쓸려 헬다이브에 빨려 들어갔기에 그곳은 순식간에 너른 공터로 변하였다.
"모두 휴식! 서바이벌 스킬을 지닌 자들은 어서 빨리 안전지대를 구축하라!"
셀론은 다른 몬스터들의 습격에 있기 전 어서 일행들의 기력을 회복해야 하기에 동료들을 닦달하며 주위를 살피기에 바빴다. 조금 전 8서클의 마법 네 개를 공진시켜 사용한 마법사들은 자리에 앉아 마법사들의 전용 스킬인 메디테이션을 실행하기 바쁘다. 조금 전 마법의 파괴력에서 봤듯이 헬다이브는 집중 파괴력에 있어서 헬파이어를 능가한다는 마법이었다. 헬파이어가 부채꼴로 펼쳐져 나가며 적들을 공격하는 반면 헬다이브는 둥글고 일정한 지름의 지역을 대상으로 집중 타격을 주는 마법이다. 물론 방금의 헬다이브가 네 명에 달하는 마법사이 마법을 공진시켰기에 이렇게 무지막지한 파괴력을 내 보인 거지만, 아무튼 이들은 이 파티에 있어서 꽃과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후우,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되리라고는 생각 못했군."
셀론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그들을 바라본다. 8서클 마법을 4명이 공진시킬 수 있는 마법 스크롤... 단지 그 옵션만 봐서도 도저히 짐작이 되지 않은 가치의 물건이다. 그 스크롤은 아이아스 총 길드가 가장 융성했을 무렵 어느 한 유저의 손에 우연히 떨어졌다. 그리고 당시 그 정보를 가장 먼저 취득한 아이아스 총길드는 당시 최강의 마법사단이라고 일컬어지는 '노인정 길드'를 견제하기 바빴기에 그 스크롤을 천문학적인 가격에 사들이게 되었고, 네 명의 가장 믿을 만한 마법사 네 명에게 그 스크롤을 넘겼다.
"그래, 사람 일은 모르는 법이야."
케이지가 그에게 다가와 중얼거린다. 당시 셀론은 그 스크롤을 길드에서 그런 천문학적인 가격에 사들이는 것을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가뜩이나 전체 무력으로는 리얼판타지아 최강이라 불리던 아이아스에는 불필요한 물건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막상 이렇게 아이아스 총 길드가 해산이 되고 나니 그 마법사들의 고마움이 뼈저리게 느껴진다. 만약 그들이 없었다면 이 에덴에서 단 하루도 버티지 못했으리라.
"아참, 그 미스티핸즈의 현재 행적에 대해서는 더 이상 연락이 없나?"
케이지의 물음에 셀론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 일 이후 더 이상 정보원의 메시지는 들려오지 않는다.
" 그렇군. 그렇다면 행군 속도를 좀 더 올려야 하나? 그들의 속도를 모르니, 이쪽에서는 어림짐작만으로 유추할 수밖에 없군. 후우, 그래 셀론 어서 자둬. 내일은 더 고달플 거야."
한숨을 쉰 케이지는 셀론의 어깨를 토닥거린 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런 케이지의 뒷모습을 조용히 마라보던 셀론은 곧 그의 가방에서 침낭을 꺼내어 펴들었다. 에덴의 밤은 어둡고도 음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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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하...일본 친구라뇨. 없습니다. ^-^; 일단 언어의 압박이 있겠죠. '-' 음.. 저의 여왕님께서는 학문이 출중하시어 꽤 많은 양의 일본 친구들을 보유하고 계시지만 저는 아직이랍니다. 제가 앞서 이야기 꺼냈던 것은...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2ch의 골빈 일본 친구 녀석들을 말하는 겁니다.
내용이 좀 충실했는지 모르겠군요. 언제나 사이토와 밀레나의 관계는 껄끄럽죠.-_-; (개인적으로 사이토가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입니다.)
곧... 어머님의 신장이식 수술이 있으십니다. 어머니가 주는...입장이시지요. 아버지와 형과 저의 염려 속에서도 강행하시는 우리 어머니... 수술이 잘 끝나시길 빌어주세요.
어머니, 사랑합니다. ^-^~ (담에 가면 뽀뽀~100연참 해줄께요~ *-_-* 잇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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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롱받는 드래곤 "으으..."
잠을 자고 있던 밀레나가 갑자기 식은땀을 흘리며 몸을 뒤척이기 시작한다. 안 좋은 꿈인 듯 얼굴이 찌푸려지다가 어느 순간 눈이 번쩍 뜨인다.
"후우... 뭐..뭐지. 이 더러운 꿈은?"
한동안 침낭위에서 멍하니 꿈을 되새겨 보던 그녀는 문득 창문을 타고 그녀의 침낭위로 쏟아지는 햇빛에 고개를 들었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아직, 낮이구나."
침낭을 개어 다시금 배낭 안으로 쑤셔 넣던 밀레나는 잠시 후 '게임 속의 잠에서도 꿈을 꿀 수 있는가?' 에 대한 의문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웅, 이상하다. 이상하다."
꿈의 내용은 별다른 꿈이 아니었다. 단지 그 동안 섭렵했던 몬스터들이 떼거지로 나타나 그녀에게 청혼을 하는 꿈이다. 아무튼 더러운 꿈을 한 번 꿨다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린 그녀는 그녀의 옆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침낭을 발견하고는 피식 웃었다.
"저스틴 언니는 너무 털털하다니까."
그녀의 침낭을 함께 정리한 밀레나는 갑옷에 묻은 하프플레이트에 묻은 먼지를 대충 털어냈다.
"쇳덩어리를 몸에 걸치고 잔다니... 비현실적이야."
여관과 같이 타인으로부터 자신의 공간을 분리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모를까. 엘프의 집에서 그런 것을 찾기는 무리이리라.
망토를 찾아 어깨에 걸친 밀레나는 곧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우거진 수림 사이로 햇빛이 내리쬐는 가운데 평화로운 표정의 엘프 마을이다. 멀리 엘프의 집 앞에 마련된 돌의자 위에는 저스틴이 활을 정비하고 있고 그 옆에는 발데아라가 책을 읽고 있다. 또 한켠 마을 중앙에 있는 거대한 나무 위에서는 사이토와 케인, 그리고 루피아가 가만히 정좌를 하고 앉아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어제 저녁에 마침내 아리유에서 돌아온 노인정 길드의 길드마스터 델린과 세 노인 그리고 더미라는 이름으로 데려온 젊은 유저 열댓 명이 엘프 몇 명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으음, 어울리지 않는 평화로운 시간이네. 끄응."
손을 들어 기지개를 켜자 온몸의 근육들이 잠에서 깨어나듯 새 에너지가 충전된다. 노인정 길드의 어르신들이 도착하기는 했지만, 드래곤을 사냥하러 가는 날은 사이토의 계획에 맞추어 내일로 미루어졌다. 사이토의 계획은 아이아스의 잔당이 도착하기 하루 전에 미리 가서 계획을 세팅하자는 것이었다. 비록 며칠 전 강진이 게임 시간으로 27일 안에 게임이 초기화된다는 안좋은 소식을 가져와 퀘스트의 해결이 시급하게 돌아가기는 했지만, 급하다 하여 우물에서 숭늉을 찾을 수는 없는 노릇 이었다. 그리하여 사이토들은 어쩔 수 없이 그들의 계획에 묶여 이렇게 한네브에 머무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기지개의 여운인 듯 잠시 하품을 한 번 한 밀레나는 터벅터벅 사이토에게 걸어갔다. 잠시 후 사이토와 케인의 대화가 들려온다.
"아무래도 내일 까지 덱스에 대한 히든 스텟의 적용 빼고는 더 이상 무리겠죠?"
사이토가 낙담하는 듯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으며 케인에게 묻자 케인은 어깨를 으쓱하며 사이토에게 대답했다.
"뭐, 사실대로 말하면, 덱스에 대한 히든스텟을 지금 너처럼 빠르게 사용하는 것도 대단한 거지. 원래 히든스텟으로 조작하기 편한 스텟은 힘이라던가 회피력이 재일 쉽거든."
오랜만에 아니 처음으로 케인에게 들어보는 칭찬이다. 웬일인가 싶어 케인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사이토는 잠시 후 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에 이채로운 표정을 지으며 케인을 계속 쳐다보았다.
"뭐, 묻었냐? 뭘 그렇게 유심히 쳐다봐."
한쪽 눈썹을 찡그리며 사이토를 노려보는 케인이다.
"이제 좀 알 것 같아서요."
"뭐가!"
이전까지 사이토가 알아오던 그의 얼굴은 잘생긴 20대 초반 남자의 얼굴이었다. 그러나 이제 사이토는 왜 루피아와 강진이 그를 노인이라고 놀리며 존칭을 쓰는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그의 표정하나 하나에 묻어난 세월이 느껴진다.
"오빠, 뭐하세요?"
"아, 이제 내일 모래부터 이것저것 바빠지잖아. 그 전에 히든 스텟의 사용을 좀 더 원활하게 하려고..."
밀레나가 등 뒤로 나타나 사이토의 어깨너머로 긴 은발을 드리우며 묻자 사이토는 피식 웃음을 짓곤 그녀에게 설명했다.
"네에... 그런데 브랜 오빠는 어디 갔어요?"
"아아, 엘프 아가씨 꼬셔 보겠다고 마을 밖으로 나갔어."
"끙..."
사이토의 대답에 이미 포기했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한숨을 내쉬는 밀레나이다.
"그러고 보니 어르신들께서 그 더미라는 걸로 데려오신 분들은 대체 어떻게 구했대요?
밀레나가 화제를 전환할 겸 사이토에게 노인정길드의 어르신이 데려온 더미들에 대해서 물었다.
"아아, 아는 사람들 중 이전에 게임 끊으신 분들을 초보캐릭터로 만들어서 데리고 들어오셨다고 했지."
"으음, 그런데 저는 아직 그 더미를 어떻게 사용하실 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밀레나가 고개를 갸웃 거리며 말한다. 막상 드래곤의 파워측정을 위해서 데려왔다고는 하지만, 그들이 어떤식으로 드래곤을 요리할 지는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는 것이다. 밀레나의 말에 사이토 또한 머리를 긁적인다.
" 글쎄, 나도 한 번 물어봤는데, 기업비밀이라고 하시면서 안 르쳐 주시더라구요."
"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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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좀 짧습니다. 사실 오늘 밤을 새서 몇 장 더 써보려 했는데... 케빈님의 소설이 너무 재미있었던 관계로..;ㅁ; 밤을 새서 읽었답니다.ㅠㅠ..(그 해박한 지식 ㅜㅜ.. 욱욱... 그런데..제목이 생각 안나네.-_-a 긁적)
여러분들께 죄송한 말씀이지만, 며칠 연재를 못할 듯 싶습니다. 아아...어머니 의... 수술...때문이겠죠. 뭐... 후덕하신 우리 독자님들이라면 이해해 주실 줄 믿 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길... 아주 잠시나마 기원해 주시길 빌 겠습니다. 빌어주세요. 빌어주세요. 으음...
그럼 이만...
염치 없는 데자부가 여러분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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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롱받는 드래곤 다음날 아침 일행들은 만반의 준비를 한 뒤 마을 한 가운데 모였다. 케인과 강진, 그리고 발데아라 등은 엘프들의 마을 한네브에서만 얻을 수 있는 특수 아이템인 '엘포네의 과실'이라 이름 지어 마치 포도처럼 생긴 하얀 과실을 모아왔다. 이 엘포네의 과실은 한네브에서만 나오는 회복용 소비아이템으로써 그 효과는 피와 마나를 채워 주는 효능을 지니고 있었다. 다만 그 단점으로는 이틀 이상 지난 '엘포네의 과실'은 쉬이 썩어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단점이 있기 때문에 외부로 가지고 나가서 팔거나 오랜 기간 저장할 수 없는 단점이 있는 것이다. 아무튼 간에 일행들은 각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준비를 다 하여 이곳에 모였다. 사이토는 그 자신의 스킬을 이용해서 파티의 아이템들을 최대한 능력상승을 시켜 줌과 동시에 수리를 해 주었다. 또한 히든피스를 이용한 덱스의 상승을 연마함으로써 어느 정도의 성취를 얻을 수 있었다.
"델린씨는?"
발데아라가 사이토에게 물었다.
"으음, 그 '더미'라는 분들과 아직 준비가 덜 끝났다고 하더군요."
사이토의 말에 발데아라가 수긍의 눈초리를 보내는 가운데 케인이 좌중을 주목시켰다.
"계획은 이렇다."
케인이 일행의 한 가운데로 나서며 입을 연다.
"일단 아누비스와 계속적으로 긴밀한 연락을 하며 그 케이지라는 녀석이 데리고 있는 아누비스의 잔당들이 도착하기 전 드래곤에 대한 우리의 조치를 마무리 시킨다. 그런 의미에서 팀은 두 개로 나뉘어 나와 사이토, 루피아, 강진녀석들과 그 밀레나씨는 후방에서 일단 케이지 일행을 감시한다."
"그렇지만, 저희가 있다면 드래곤에 관한 일이 한결 수월해 질 수 있으실 텐데."
사이토가 손을 들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자 케인은 고개를 좌우로 젓는다.
"아니, 어차피 그에 대해서는 이쪽 엘린씨와 모든 합의가 끝났다. 도리어 우리가 낀다면 예상외의 변수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이쪽 팀만으로 가는 것이 유리하다고 하시더구나. 그리고 일단 작업이 끝나면 사이토...네 녀석의 도움이 필요할 테니까. 그때까지 힘을 비축해둬."
"예."
사이토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자 이번에는 강진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이것은 가장 최근에 알아낸 정보입니다만, 이번 퀘스트와 다음퀘스트, 그러니까 최종 퀘스트가 연속적이며 연동적으로 서로 변화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마디로?"
루피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다.
"한마디로..."
한숨을 내쉬는 강진..
"한마디로 이번 퀘스트 뒤로 최종퀘스트가 어떤 방식으로 나타날 지 알 수 없다는 겁니다. 드래곤이 죽은 뒤 바로 나타날 수도 있지만, 어쩌면 퀘스트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아주 잠시 스쳐 지나갈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아예 없을 수도 있고요. 첫 번째와 두 번째 경우는 연속적이며 연동적인 퀘스트간의 상호작용에 의한 것이고 세 번째 경우는 아쉽게도 퀘스트가 아직 재대로 테스트도 거치지 않은 그런 퀘스트이기 때문에 배제할 수 없는 경우입니다."
한숨을 내쉬는 일행들, 이러나 저러나 불안한 건 마찬가지이다. 또한 현재 그들이 대적해야 하는 생물의 힘도 간접적, 혹은 직접적으로나마 체험한 적이 있는 이들이기 때문에 그 부담감 또한 더하면 더하리라.
"그런 의미에서 1시간의 시간을 더 두겠소. 그 동안에 행여 준비가 미진한 것들을 빠짐없이 챙기고, 또 계획을 다시 한번 점검해 보시길..."
강진도 긴장했는지 예전과 같은 껄렁껄렁함은 보이지 않았다. 침착한 눈빛 속에는 날카로운 빛이 영력하다. 약간의 두려움마저 깃들어 있는 그의 표정, 그러나 두려움에 떨지는 않는다. 단지 그 두려움은 몸을 긴장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다. 케인은 그 정도를 조절할 수 있을 정도로 정신이 숙련되어 있다. 그리고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어느 정도 그런 것에는 숙련된 진정한 실력자 들이었다. 델린이 이번에 '더미'로 온 이들과 함께 이쪽으로 걸어온다.
거의 1에서 3계급이라고 들어왔던 '더미'들은 모두 상당히 멋있는 복장으로 변해 있었다. 일견 보기에는 7계급으로 착각할 정도로 멋진 복장이다. 그 누구도 그들을 보고 3계급의 캐릭터라 보지는 못하리라.
"이쪽은 준비 끝이야."
점심때가 되어 폐허가 멀리 보이는 공터에 도착한 그들은 즉석해서 아직까지 근방에 남아있는 몬스터들을 정리했다. 이번에 아리유에서 노인정 길드의 어르신들이 데려온 더비 들은 그 힘이 약하기에 그들은 후에 게이트 스톤을 타고 오기로 하였다. 한참을 정리하던 그들은 정오가 2시간 정도 지나서 그 곳을 모두 정리할 수 있었다.
"아이템들과 흔적들을 깨끗이 정리해."
케인이 이것저것 지시를 내린다. 케이지들이 지나가다가 수상쩍은 것들을 발견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 사이토가 게이트스톤을 저장한 곳에서 대략의 붉은 빛이 솟아오르며 노인정 길드의 어르신들과 '더미'들이 도착했다. 사이토가 그들에게 다가가 한참 옆의 '더미'와 이야기 중인 제이드에게 말을 건낸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걱정 섞인 한마디이다. 아무리 게임의 존망이 달린 일이라지만, 어찌 보면 자신을 보고 참가해주는 분이다. 자신에 대해 아무런 이득 없이 맹목적으로 돌보아 주시는 분인 제이드... 제이드는 사이토의 걱정 어린 말투에 피식 웃음을 지으며 사이토의 머리를 손으로 슥슥 쓸어 만졌다.
"괜찮단다. 얘야. 이 일은 내가 자청해서 하는 일이다. 그리고..."
따딱!
"아얏!"
"녀석! 이 늙은이들을 믿지 못하는 거냐! 하하하."
파안대소를 한 제이드는 다른 어르신들과 함께 '더미'들을 인솔하여 폐허가 보이는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버나드, '더미'의 대열을 지켜라. 곧 카르휀시온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예, 아버지."
제이드는 마나가 빠르게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성지라는 것이 확연히 느껴진다. 비록 게임 상의 설정이지만 이곳은 이 대륙의 모든 에너지가 집결하는 성스러운 땅이다. 폐허는 별다른 것이 없었다. 단지 과거에 수십 번은 부서졌을 듯 한 고대 건물의 흔적들과 흡사 수만 년에 걸쳐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듯한 황갈색의 모래뿐이다. 가끔씩 땅위로 솟은 거대한 하얀 뼈들은 이곳이 과거에 거대한 생명체들의 격전지였다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말해준다. 한 동안 전진하던 그들은 곧 눈앞에 근 30미터 높이의 건축물이 우뚝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마치 어떤 고대의 위대했던 생명체의 무덤인양 화려한 무늬들이 양각된 그 건축물의 밑으로는 큰 공동이 지옥의 아가리마냥 검게 뚫려 있다.
"크으, 이곳인가 보군요."
제이드의 현실에서 아들, 버나드가 코를 붙잡고 중얼거리자 엘린이 입가에 손을 가져다 대고는 주변을 황급히 둘러본다. 머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엘린... 지금부터는 메시지를 사용하라는 뜻이었다.
[여기서부터는 드래곤의 땅이다.]
[예.]
버나드는 허리에 걸린 메이스를 손으로 쓸며 그의 말에 답했다. 이맛살이 제멋대로 찌푸려진다. 마치 드래곤의 숨결이 옆에서 느껴지는 양 벌써부터 블랙드래곤 특유의 그 안 좋은 향기가 코를 자극하는 듯하다. 게임 밖 현실에서 그는 제이드의 막내아들이었다. 한창 집에서 회사 일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제이드로부터 연락이 왔다. 내용은 거두절미하게 친구들을 모아 게임에 접속하라는 것이다. 과거에 잠시 리얼판타지아를 한 경험이 있기도 했던 그였지만 현실의 직업에 치여 게임을 접은 지가 꽤 오래된 그였다. 아버지의 제안에 흔쾌히 수락한 그는 얼마 안 되어 마음 맞는 친구들을 끌어 모은 그는 근처 게임룸에서 리얼판타지아에 접속했고 게임 속 아리유에서 기다리시던 할아버지에게 용건을 들을 수 있었다.
[아버지, 그런데 정말 아버지가 말씀 하신대로만 하면 되요? 죽으면 엄청 아프잖아요.]
[짜식, 사네자식이 그깟 가짜고통에 무서워하냐?!]
은근히 도발하는 제이드이다.
[아니, 꼭 그런 건 아니구요. 이번 일만 끝나면 정말 저 확실히 밀어주시는 거죠?]
[짜식! 속고만 살았냐?]
[예.]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본심이었건만 '예'라는 말을 내뱉은 버나드는 곧 헤픈 웃음으로 종전의 대답을 얼버무렸다. 정말 오랜만에 연락이 온 것이기에 그동안에 신경을 쓰지 못했것이 평소에 마음에 걸려 있었기 때문이리라.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아버지에게 반항하기란 더욱 어렵다는 것을 나이로나마 깨닫는 그다.
[여기서부터는 너희들끼리 간다. 너희들은 절대 놈을 이길 수 없다. 그렇지만, 나와 계속적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녀석이 쓰는 마법들을 꼼꼼히 체크해라. 또 기왕이면 놈을 최대한 도발해서 브레스를 많이 쓰게 만들어.]
[예.]
엘린의 주의사항을 꼼꼼히 챙겨들은 그들은 곧 고개를 끄덕이며 공동 안으로 들어섰다. 총 10여명에 달하는 그들이었다. 그러나 그들 또한 자신들이 드래곤의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마지막에 엘린이 당부한 드래곤이 브래스를 최대한 사용하게 만들라는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아시다시피 리얼판타지아에서 가장 강력한 파괴력을 보이는 것이 바로 드래곤의 브레스였다. 비록 공명마법을 이용한 8서클의 마법이라던가 9서클 중 일부의 마법은 드래곤의 파괴력에 상등하는 효과를 지녔지만, 단일 생명체들이 사용하는 공격능력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은 역시 브레스이다. 그러나 이 브레스 또한 제약이 있으니 이 브레스는 하루에 3번 이상 사용하지 못한다. 물론 드래곤이 브레스 하나 가지고 게임 사상 최강의 몬스터로 군림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일단 브레스를 하나라도 더 소비시키는 것이 관건이었다. 아무튼 지간에 그들은 그 어두운 길을 조심스럽게 걸어 공동 안으로 전진했다.
[높네.]
"짜샤! 메시지 쓸 필요 없어. 어차피 죽을 거..."
"쩝 그런가?"
버나드가 머리를 긁적거린다. 피식거리는 그의 친구들... 모두 주변을 둘러보기에 여념이 없다.
" 햐, 높다. 거기에 현실감도 짱이다."
그의 친구들 중에는 아직 리얼판타지아를 해 보지 않는 녀석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미 그들도 타 게임을 해본 경력이 있기에 초보자와 같은 티는 내지 않는다. 그들의 머리 위로는 높다란 천장이 위치해 있다. 만약 그들이 횃불을 들고 있지 않다면 단 10미터 앞도 보지 못하리라.
"그런데 진짜로 너희 아버지가 이 일 끝나면 우리들 장비 팍팍 밀어주신데?"
"당연하지. 야! 우리 아버지가 허튼말 할 사람으로 보이냐?"
"그거야 내가 아냐. 흐흐, 아무튼 거참 오랜만에 가슴이 떨려오는 걸? 드래곤이라."
각자 너스레를 떨고 있기는 하지만, 드래곤이라는 존재는 각자의 상상 속에서도 절대 만만치 않는 생물이다. 그 모습, 그 위용, 그 존재감만으로도 상대의 전의를 완전히 떨어뜨리는 그런 존재가 바로 드래곤이었다. 그 울음소리 하나 만으로도 사람들은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른 채 우왕좌왕하다가 드래곤의 밥이 된다.
휘이이이..
갑자기 맞은편에서 서늘한 바람이 흘러나와 그들을 스쳐 지나갔다. 그 바람 속에 묻은 냄새가 이전보다 더 진하게 느껴져 온다.
"가까운데 있는 모양인데? 쿨럭, 이거 중독성은 없나? 이래서 너무 현실감이 진한 게임은 내가 싫어한다니까."
버나드의 친구 하나가 얼굴을 찡그리며 투덜거렸다. 너무나 어둡기 때문에 보이지는 않지만, 지금 그들의 주변은 거무스름한 독무가 휘감고 있다.
"음, 가까운데 있나보다. 뭐, 죽는 것은 기정사실인 만큼 우리의 목적만큼은 최대한 달성하고 각자 멋지게 죽어보자."
결의라 하기에는 그 내용이 좀 웃기기는 하지만, 그것이 현재의 그들 앞에 놓인 명제임에는 틀림없다. 각자 얼굴을 마주본 그들은 얼굴에 미소를 지은 채 가벼운 걸음으로 앞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비록 그들의 실제 계급이 초보자라 하더라도 지금 그들의 모습은 9계급에 버금가는 자신감을 가진 듯 보인다.
"크르르르..."
작지만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짐승의 울음소리, 일행들의 발길이 저절로 멈춘다.
"얼마나 가까운 걸까?"
" 글쎄, 일단 좀 더 전진해 보자. 아무래도 드래곤이니까 넓은 공동에 위치해 있겠지."
친구의 메시지에 대답한 버나드는 조금 더 앞으로 나갔다. 순간 갑자기 바람의 방향이 바뀌기 시작한다. 종전의 바람이 맞바람이었다면 지금의 바람은 등쪽에서 불어오는 것이다.
"뭐... 뭔가 이상한데?"
" 으윽!"
서있기도 힘든 듯 무릎을 땅에 대고, 혹은 팔로 벽을 짚은 채 버티고 있기만 역부족이다. 세찬 바람은 일행을 곧장 안으로 끌어당기는 마냥 거세게 몰아쳤다.
"응?"
순간 바람이 멈춘다. 조금 전의 바람은 거짓말이었냐는 냥 바람이 멈춘 것 이다. 버나드와 그의 친구들은 어리둥절해 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갑자기 버나드의 얼굴이 사색이 된다.
"설마!"
"뭐! 뭐가!"
"나! 읽은 적이 있어!"
뜬금없는 버나드의 외침이다. 갑자기 버나드가 뒤돌아 뛰어 나가려 한다.
"야! 뭐야!"
"빨리 도망쳐!"
버나드가 두어 발 걸었을까. 아직 상황파악을 하지 못한 채 엉거주춤 서있던 그의 친구들은 곧이어 맞은편의 동굴에서 희미한 빛을 질풍같이 찢어발기며 들어오는 노도와 같은 파도를 발견했다. 찰나 간에 볼 수 있었던 그 파도는 동굴의 어둠보다 더욱 깊은 칠흑이었다. 칠흑의 파도는 그대로 그들을 휩쓸어 버린 채 동굴 밖으로 뻗어 나갔다. 친구들보다 두어 걸음 도망쳤던 버나드는 끝내 자신을 덮치는 그것을 보지도 못한 채 뒤부터 휩쓸려 버렸다.
꽈과과광!
아들을 들여보내고 공동의 옆에 서서 정신을 집중하고 있던 제이드는 천지를 뒤흔드는 엄청난 폭음과 바람에 뒤로 날아갔다. 칠흑의 파도는 아직 여력이 남은 듯 공중으로 50미터 가량 빠르게 비산하다가 공기 중으로 천천히 사라져 버린다.
"에...에시드 브레스?!"
땅바닥을 구르던 노인정 길드의 네 노인들은 방금 그들을 날려버린 칠흑색 파도의 정체를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그것은 블랙 드래곤의 전매특허인 에시드 브레스였다. 용사들의 검을 녹여버리고 바위를 녹여 버리고, 요정이 벼린 무구들을 일순간에 녹여버린다는 초강산성의 에시드 브레스이다.
[버나드! 이녀석! 버나드야!]
뒤늦게 제이드가 버나드에게 메시지를 넣어 봤지만, 메시지는 없었다. 전멸이라는 것이었다. 망연자실한 제이드는 깊은 한숨을 통해 상심의 허탈함을 표현했다.
드득! 드드득!
에시드브레스에 녹아 공중으로 비산했던 돌멩이와 기타 잡 쓰레기들이 땅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곳에는 방금 들어갔던 '더미'들의 아이템 잔해가 고스란히 산산 조각나 땅바닥에 뒹굴고 있다. 그들의 죽음을 더욱 극명하게 보여주는 증거이다.
"난감하군. 전혀 예상 외 인데?"
"으음. 이래 가지고야 '더미'를 써서 끌어내는 방법도..."
일이 점점 복잡해짐을 느낀다.
"으음?"
붉은 주단이 치렁치렁 장식된 그로데스크한 왕좌에 비스듬히 누워있던 오카리나는 갑자기 온몸을 타고 흐르는 이질적인 기운에 눈살을 찌푸렸다.
"으으윽... 후우..."
지리링 지링...
목에 걸린 작은 자수정 목걸이가 요란하게 부딪히며 울어댄다. 목걸이의 끝에 달린 작은 원통형의 구슬에서 흡사 무언가가 뚫고 나오려는 듯 하다. 그 진동은 곧이어 그녀가 입고 있던 하얀 갑옷에서도 나기 시작했다.
"크읏..."
신음을 흘리던 오카리나가 고개를 숙이며 몸을 가늘게 떨자 그녀의 자수정 목걸이 안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작은 병에서 하얀 빛이 번쩍거리다가 일순 밝아지며 오카리나의 앞에 작은 빛을 만들어냈다.
"호호, 후우... 역시 내가 감당하기는 무리인가?"
땀을 흘리지는 않지만 꽤나 힘든 듯 오카리나의 얼굴이 가늘게 떨리고 있다. 그 빛덩이는 계속해서 커지다가 어느 순간 한 인영을 만들어냈다. 오카리나와 똑같은 얼굴에 몸은 반투명하게 빛나는 너울 치는 은발의 작은 소녀이다.
"왜 그에게 그런 짓을 했죠?"
"뭘? 새삼스레 무슨 말이야. 어차피 내 안에서 다 보고 있었잖아."
사실 오카리나로서는 가이아를 소멸시킬 수 없었다. 작은 사이버 생명체일 뿐인 오카리나가 가이아를 잠식한다는 것은 애당초에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그것은 마치 개미의 껍질로 코끼리의 몸을 뒤덮어 보겠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만큼 오카리나와 가이아의 크기의 싸움은 비교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의지의 컨트롤만큼은 오카리나가 완전히 장악했기에 지금까지 끌고 올 수 있었다.
"그를 이곳으로 데려오려는 저의가 뭐죠? 혹시 그 사이버 바이러스로 그를 공격하기 위해서인가요?"
단지 '그' 라고 표현했지만, 그것을 말할 때 가이아의 눈이 작게 떨리고 있다. 가이아의 말에 오카리나는 쓰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왕좌의 팔걸이를 가볍게 두들겼다. 조금씩 몸의 지배력이 돌아온다.
" 글쎄, 그렇다면 내가 굳이 그를 이곳으로 데려올 필요가 있을까?"
작게 미소 짓는 오카리나이다. 그녀를 노려보기만 하는 가이아... 물론 오카리나도 가이아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이죠?"
"난 단지 그를 시험해 보고 싶을 뿐이야. 그것 뿐이야... 그리고 이제 나도 지쳤거든."
마지막 말을 중얼거리는 오카리나의 눈가에 작은 이슬이 맺힌다. 손을 들어 눈물을 쓸어내는 오카리나... 자조적인 웃음을 띤다. 과거 그녀가 사랑했던 이에게 그렇게 버림받았음에도 또 그로 인해 그런 식으로 소멸 당했음에도 간신히 되살아나서 그녀가 처음 한 일은 그와의 추억이 있던 장소에 작은 집 한 채를 마련하고 매일 같이 그를 미련하게나마 기다리던 일이었다. 그녀를 아프게 했던 그였다. 그녀를 외면했던 그였다. 그러나 그녀는 참으로 미련하게도 그곳에서 수십 년을 기다렸다. 그러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사이토를 통해서 시험해 보고 싶었다. 진정으로 AI와 인간과의 사랑이 가능한지를...
"그리고 난 오래 전부터 보고 싶었어. 후훗... 어쩌면 어설픈 기대감일지도 몰라. 이 내가 처음 태어나서부터 보았던 이 세상, 비록 거짓으로 만들어진 세상이지만, 나에게는 전부인 세상이었어. 이제 이 게임의 이 길고긴 이야기의 끝을 장식할 최후의 용사들이 오는 거지. 자 이제 들어가."
오카리나가 목걸이를 손으로 꽉 쥐자 가이아는 다시금 빛으로 변해 목걸이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를 해친다면 가만히 있지 않겠어요."
" 글쎄, 후훗..."
묘한 웃음만이 감도는 오카리나였다.
"어떻게 하지?"
"후우..."
딱히 해결점이 나오지 않는 문제였다. 카르휀시온의 반응은 정말 예상 외였다. 가타부타 없이 브레스를 갈겨 버리다니... 최소한 용사 일행의 대한 예의라면 처음에 통성명도 없이 다짜고짜 브레스를 토해내는 짓은 하지 않아야 한다. 최소한 '난 누구다!' 라던가 혹은 '감히 나에게 도전을 어쩌구저쩌구' 정도는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카르휀시온은 얍삽하게도 비좁은 동공 안으로 에시드 브레스를 갈겨 버렸다. 물론 2급 AI인 카르휀시온이 굳이 통성명을 따질 필요는 없겠지만, 현재 계획의 엄청난 차질로 인해 만 하루 동안 끙끙대고 있는 이 일행에게는 난제 중에 난제였다.
"곧 도착한답니다."
조용히 눈을 감고 있던 강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눈이 휘둥그레지며 일어나는 일행들... 앞으로 약 5시간 정도의 시간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 했건만 그들의 속도가 너무 빨랐다.
" 어쩔 수 없어요. 제가 유인책을 맡겠습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더미들이 카르휀시온을 끌고 나와야 한다. 그렇지만 그들이 그렇게 허무하게 죽어버린 이상 계획에 차질이 생겨버린 것이다. 사이토가 앞으로 나섰다. 계획의 입안자인 만큼 책임을 지겠다는 것... 그런 그를 제지하고 나선 건 의외로 밀레나였다.
"그렇지만, 오빠는 최후에 그 오카리나라는 여자와의 담판이 있잖아요."
"그렇지만, 나밖에 없잖아!"
"아니요! 오빠는 안돼요! 오빠는 그 곳에 가서 모든 것을 확실하게 결말 지어야 해요. 이건 오빠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날 위한 거에요. 그러니까 내가 맡겠어요!"
밀레나가 '스틱스의 검'을 뽑아들며 앞으로 나서자 이번에는 브렌과 사이토가 함께 그녀를 말렸다. 그러나 그녀의 눈빛은 결연한 의지로 굳어 있다.
" 이번 작전은 내 실수야! 그러니까 내가 책임을 지어야 해!"
"아니요. 오빠는 실수 없었어요. 단지 돌발적인 변수가 너무 컷을 뿐이에요. 그리고 지금 이 파티 중에 가장 약한 건 어차피 나에요. 내가 맡겠어요. 더 이상 날 막으려 하지마요. 더 말하면 나 정말 화낼 꺼에요?"
눈이 사납게 변하는 밀레나... 재차 입을 열려던 사이토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떨궜다.
"그럼, 밀레나를 주축으로 해서 작전대로 한다. 모두 준비."
케인이 침착한 어조로 일행들에게 외치며 검을 뽑아 들었다.
"목적지는?"
"거의 다 와간다. 그리고 무장은 풀어라. 이상하게도 이곳은 몬스터가 보이지 않는다."
"후우..."
셀론의 말에 케이지는 '리벤지'를 어깨의 칼집에 집어넣었다. 지옥과도 같이 계속된 며칠간의 몬스터 사냥이었고, 또 3명의 일행들이 죽어가기도 했지만 얻은 것도 많았다. 일단 40여명에 달하는 일행들 중 무려 5명이 레벨을 한 단계씩 올렸고 또한 꽤 많은 아이템도 얻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그들이 겪어온 몬스터 레벨에 비하면 이것은 정말 극소수의 피해였다. 그렇지만, 처음 출발할 때 데려왔던 캐러밴이 6마리인데 반해 이제는 1마리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에서 보면 시간이 촉박해 졌다는데서는 그리 좋아만 할 것은 아니었다. 오랜만에 자세를 풀고 뒤따라오는 전 아이아스 길드의 1진들을 흐뭇한 눈으로 둘러보던 케이지는 그의 옆에서 작지만 날카롭게 외치는 셀론의 목소리에 순간 몸을 돌리며 긴장시켰다.
"전방에 적 유저 출현!"
"거리는! 숫자는!"
"총 12명 거리는 90미터! 현재 이동하지 않고 있으며 뭉쳐 있다."
셀론의 보고에 케이지는 뒤를 향해 소리쳤다.
"마법사! 클리어해!"
케이지의 명령에 마법사의 로브를 입은 이가 지팡이를 높게 들고 외친다.
"클리어 보이스!"
그의 몸 위로 거대한 눈의 형상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한동안 눈을 감고 있던 정신을 집중하던 마법사는 케이지를 향해 그가 본 것을 빠르게 보고한다.
"현재 모두 서 있는 상태로 그 중 한명이 가운데 서 있습니다. 품에서 무언가를 꺼냅니다. 앗! 게이트 스톤입니다!"
"이런 제길!"
마법사의 보고에 케이지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리벤지를 뽑아들었다. 이곳에서 미스티핸즈를 놓치는 것은 절대 사양이었다. 근 일주일간 피 말리는 몬스터와의 사투 때문만은 아니었다. 몬스터에게 죽어가 세 명의 파티원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기도 있고 집념도 있고 원한도 있다. 지금 그 모든 것이 뭉쳐 케이지의 공격 본능을 세차게 자극해댄다. 케이지는 이를 뿌드득 갈았다.
"미스티핸즈! 이제 우리와 너! 사이의 이 질기디 질긴 악연을 끊자. 너를 바로 이곳에 묻어주마! 전 대원! 모두 돌격!"
40여명의 대원들이 근 일주일간의 목숨 건 몬스터 사냥에서도 보인 적이 없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한 곳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그들이 그렇게 바라던 미스티핸즈가 있다.
"타하!"
거친 나뭇가지를 쉴 틈 없이 헤치며 달려서 가장 먼저 미스티핸즈의 일행이 있는 곳에 도착한 것은 바로 케이지였다.
"미스티핸즈! 이곳이 너의 무덤이다!"
노호성을 터뜨린 케이지의 옆으로 대원들이 하나 둘씩 뛰어와서 대열을 만든다. 미스티핸즈 일행과의 거리는 약 25미터이다. 당황한 빛이 역력한 미스티핸즈의 일행들....
"먼저 가!"
"하지만! 미스티핸즈님!"
한 여자가 검은 로브의 유저를 향해 애절하게 손을 뻗으며 외치건만 검은 로브는 그녀에게 고개를 저으며 빨리 활성화된 게이트 스톤으로 들어갈 것을 재촉한다.
"하나도 남김없이 죽여주마!"
전열이 완성되자 케이지는 그의 애검 리벤지를 뽑아들고 사납게 외치며 미스티핸즈 일행에게 돌격하기 시작했다.
"흐윽"
울먹이며 다른 남자의 손에 이끌려 게이트 스톤으로 걸어들어가는 여자이다. 하나 둘 게이트 스톤 속으로 사라지는 가운데 미스티 핸즈라는 검은 로브의 유저는 케이지를 돌아보며 외쳤다.
"하하하! 어떤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잡을 테면 잡아 보시지!"
주위를 자신에게 돌리려는 듯 게이트 스톤이 있는 곳과 반대 방향으로 빠르게 도망치는 미스티핸즈다. 게이트 스톤으로 돌격해 들어가던 케이지는 급히 방향을 바꾸어 미스티 핸즈를 뒤쫓기 시작했다. 다른 것들은 아무래도 좋았다.
"서라!"
미스티핸즈로 가장한 밀레나와 케이지 일행간의 숨 막히는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헉헉헉!"
스테미너를 위해 갑옷을 모조리 벗어 버렸건만, 벌써부터 그녀의 스테미너는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기 시작한다. 달리는 와중에도 스테미너 포션과 라이프 포션을 꺼내 들이키는 밀레나, 적들 중 도둑 클래스들은 벌써 그녀의 지척에 다 달아 있다.
"하앗!"
적이 단검이 그녀의 등을 노리며 달려드는 것을 느낀 밀레나는 순간 공중에서 몸을 빠르게 회전시키며 '스틱스의 검'을 휘둘렀다.
노련하게 몸을 숙여 그것을 피해내는 도둑, 그렇지만 그 순간 밀레나의 다른 쪽 손이 세차게 휘둘러진다.
"으윽!"
밀레나의 손에서 쏘아진 표창은 도둑의 어깨와 팔에 꽂혔다. 워낙 근접에서 날린 것이기에 피할 겨를이 없었던 도둑은 달리던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앞으로 몸을 굴렀다.
"큭! 셀론!"
뒤에서 케이지라는 인물의 외침이 들려오지만, 밀레나는 그 도둑을 확인할 겨를 도 없이 계속해서 달렸다.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셀론이 미스티핸즈의 표창에 맞아 땅에 구르자 케이지는 황급히 그에게 다가가 상세를 확인했다.
"난 괜찮아! 어서 쫓아!"
"제길! 알았다!"
셀론이 그의 손을 뿌리치며 외치자 케이지는 그를 놓아둔 채로 다시금 달리기 시작했다. 간간히 화살을 날려 그를 저지하려 하지만, 운이 따르지 않는 듯 화살은 번번이 빗나갔다.
"와아아!"
순간 멀리서 뛰어가던 미스티핸즈가 비틀거린다. 등에 솟아난 것은 이쪽에서 발사한 화살! 잠시 비틀거리던 미스티핸즈는 다시금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전보다는 걸음이 느려져 있다. 회심의 미소를 짓는 케이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을 느낀다.
"쫓아라!"
"와아!"
에덴의 폐허에 도착한 밀레나는 서둘러 동공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요란한 발소리가 동굴의 울림을 만들어내며 그녀를 뒤따른다. 이제 그들과의 거리는 5~6미터도 채 남지 않았다. 등에 꽂힌 화살을 뽑을 겨를도 없었기에 라이프는 계속해서 빠져나가는 상황이다. 1/10으로 줄어든 고통이건만 아픔은 쓰라림을 넘어서는 강도로 자꾸만 심장을 자극한다.
"조금만 더!"
"여기가 너의 무덤이다! 소닉 브레이커!"
그녀의 등어림에서 들려오는 송연이 모골해지는 케이지의 외침...
밀레나는 몸을 뒤돌려 엉겁결에 '스틱스의 검'을 들어 막아 냈다.
츠컥!
스틱스의 검이 단숨에 잘려나갔다.
"아악!"
강진이 걸어주었던 목소리에 대한 저주는 이미 풀렸기에 그녀의 목에서 터져 나오는 것은 가냘픈 여성의 목소리이다. 케이지의 공격을 받아낸 반작용으로 밀레나는 뒤로 거의 4미터를 날아가다가 땅바닥에 요란스레 굴렀다. 다시금 일어서서 뛰려는 밀레나의 배 위를 케이지의 발이 강하게 구른다.
"으윽!"
"뭐냐!"
그녀의 머리를 덮고 있던 로브자락을 리벤지를 걷어낸 케이지는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미스티핸즈인 줄로만 알았던 이 검은 로브의 인영의 정체는 믿을 수 없게도 하얀 은발의 여성이었다. 은빛 고은 생머리의 아름다운 여성의 얼굴... 케이지는 더욱 노한 목소리로 외쳤다. 지금 그의 발아래 깔린 여자의 미모 따위는 상관없었다. 그는 이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그녀의 입을 통해 듣고 싶었다. 노한 그의 뒤로 대원들이 하나 둘 다가와 선다.
"뭐냔 말이다!"
더욱 세차게 발을 굴렸건만 여자의 얼굴에는 표정조차 변하지 않은 채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 있다. 리벤지를 수직으로 들어올리는 케이지, 그대로 여자의 얼굴에 검을 꽂아버릴 심산이다.
"빙고..."
드디어 그녀의 말문이 열렸다. 검을 멈추는 케이지...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는 공포나 굴욕감에 싸인 목소리가 아니었다. 아니 그녀의 얼굴은 작게 미소 짓고 있고 그녀의 눈은 경이로운 듯 그를 바라보고 있다. 아니 그가 아닌 그의 머리를 지나쳐 그보다 더 위를 바라보고 있다. 그녀의 시선을 느낀 케이지는 머리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칠흑 같은 어둠이 있을 뿐이다. 너무나도 검은 어둠이 있을 뿐이다. 갑자기 두 개의 거대한 붉은 빛이 공중에 나타난다. 그것은 단순한 빛덩어리가 아니었다. 천천히 또렷해지는 그 북은 빛덩어리의 정체... 그것은 붉고 거대한 눈이었다. 그 주위로 번득거리며 요동치는 작은 비늘들의 윤곽이 어렴풋이 보인다. 케이지는 처음 이곳에 들어올 때 자신이 들어온 동굴이 뭐하는 동굴인지는 알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 동굴의 정체에 대해 알고 싶은 욕구가 마구 용솟음친다.
"환영한다. 끈질긴 용사 나부랭이 놈들아! 크아아아아앙!"
붉은 눈의 주인공이 포효했다. 단숨에라도 이 거대한 동굴을 무너뜨려 버릴 듯 진동하는 카르휀시온의 드래곤 피어! 케이지는 그의 발이 아주 오랜만에 주인의 뜻을 배반하며 제멋대로 떨려오는 것을 느껴야 했다.
[후우, 오빠... 비록 드래곤을 유인하지는 못했지만 난 할 일 다 했어요.]
밀레나는 메시지 창에 대고 독백처럼 중얼거렸다. 자포자기해서 그런지 몰라도 케이지처럼 목소리의 영향은 받지 않는다.
[최대한 빨리 되살려주지 않으면 맨날맨날 괴롭혀 줄꺼야. 다시는 이런 일로 나 슬프게 하면 백 배로 또 괴롭혀 줄 꺼야. 또 다시 바보 짓하면 거기에 천 배로 괴롭혀 줄 거야.]
[으응...]
[빨리 다녀와야 해?]
[알았어.]
[삐이... 5번째 파티원이신 '밀레나'님께서 사망하셨습니다.]
"후우..."
담배가 있었다면 한대 빼물고 싶은 심정의 사이토였다. 게임이건 어쨌건 밀레나가 그를 위해 희생했다. 어쩌면 자신의 단순한 욕심일지도 모른다. 가이아에 대한 자신의 욕심처럼 느껴진다.
"생각은 이따 해라."
케인이 용자의 신검을 꺼내 들으며 사이토에게 중얼거렸다. 반대편에서는 아누비스는 양 손에 숏소드를 늘어뜨린 자세로 전방을 주시하고 있다. 지금 전면에 보이는 것은 밀레나와 케이지들을 삼켜버린 그 폐허의 공동... 지하신전으로 통하는 그 문이었다. 이제 밀레나가 빠져 12명이 된 파티들은 동공을 중심으로 부채꼴의 진형으로 서 있었다. 케이지들을 속이기 위한 게이트스톤은 바로 폐허 근처에 뚫어 놓았던 것이다. 생각같아서는 쫓기는 그녀를 조금이라도 도와주고 싶었지만, 케이지에게 의심받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었다.
"쯧, 탐색계열 마법을 더 메모라이즈 할 걸 그랬구먼."
6서클의 '클리어 보이스'마법으로 동굴 안쪽을 살펴보던 델린이 마법이 끝나자 혀를 차며 중얼거린다. 약 10초간 자신이 원하는 곳의 영상을 볼 수 있는 마법만으로는 단편적인 정보 밖에 보지 못한다.
"안쪽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강진이 물었다.
"음, 현재 열 두 명이 게임오버 되었다. 마법의 종류는 다행히 8서클만 사용하고 있지만,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지. 아이아스 놈들 의외로 잘 버티더군."
"혹시 그들이 이길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 글쎄, 절대 이기지 못한 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드래곤과 맞 부딪친다는 것과 또 오랜 전투로 지쳐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큰 핸디캡일 것이지. 이길 가능성은 고작해야 한 10프로 정도 될까?"
"모두 물러서!"
위험을 감지한 듯 아누비스가 크게 외치자 전투 대열을 이루고 있던 그들을 황급히 좌우로 갈라졌다. 생각에 잠겨 있던 사이토는 갑작스런 아누비스의 외침에 멀뚱하니 있다가 공동 안으로부터 뻗어나오는 에시드 브레스를 발견하고는 그대로 몸을 엎드린다.
콰과과과과... 우르르르...
에시드 브레스의 에너지를 모두 담아내기에는 너무나도 협소한 동굴이었기에 검은 공동 밖으로 뻗어 나오는 칠흑색 파괴의 에너지는 강력하기 이를 데 없다. 다행이라고 한다면 입구의 모양이 약간 위를 바라보고 있기에 브레스가 땅으로 깔리지는 않는다는 것, 만약 브레스가 땅으로 흐른다면 엎드렸던 사이토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칠흑빛의 에시드 브레스를 이어 붉은 화염의 불꽃이 뒤따라 뻗어 나온다.
"후우, 일단 브레스는 두 방 째 인가? "
사이토가 비척비척 자리에서 일어나자 제이드가 그의 옆으로 다가오며 중얼거렸다. 브레스가 공중으로 밀어올린 돌조각들과 금속 파편들이 하나 둘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마치 핵폭탄이 폭발한 뒤의 낙진처럼 천천히 떨어져 내린다.
"부채꼴의 형태에서 가운데를 자른 부채의 형태로 진형을 변화 시킵시다. 엘린님, 아레드리온이 준 그 수정, 적시에 사용해야 합니다."
"그래 알았다."
이전 퀘스트에서 화이트 드래온 아드레이온이 준 카르휀시온의 독기를 막아주는 수정은 안타깝게도 제한 시간이 걸려 있는 일회성 물품이었다. 그것도 수정 옆으로 '사용시간 2시간'이라고 친절하게 적혀 있다. 일회성 물품인 이상 함부로 사용할 수는 없는 노릇 안도의 한숨을 토해낸 사이토는 일행들을 뒤로 물려 전열을 재정비했다. 또 다시 브레스나 기타 다른 것들이 갑작스레 덮쳐 올 경우 방비하기가 쉽지 않다. 사이토의 말에 따라 대열을 둘로 나눈 일행들은 조금 전 대열보다 뒤로 후퇴한 채 자세를 잡고 무기를 곧추세우곤 공동의 검은 어둠을 노려보았다. 전투가 시작된 지 근 30여분이 지나가는 순간이었다.
"헉헉...콜록 콜록!"
리벤지에 몸을 기댄 채 숨을 몰아쉬던 케이지는 끊임없이 몸 안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독기에 가쁜 기침을 쏟아내야 했다. 블랙 드래곤 특유의 이 독기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레드 드래곤의 경우에는 끊임없이 화기를 발산하여 공격자들을 압박한다. 또한 화이트 드래곤은 냉기를 실버드래곤은 수면 효과가 있는 가스를 골드 드래곤은 마비 가스를 발산한다. 마지막으로 그린 드래곤은 블랙드래곤과 마찬가지로 독기운을 항상 발산하는 능력을 지녔다. 카르휀시온과 싸운 지 이제 근 30여분이 지났다. 그의 뒤에 남아 있는 일행은 이제 고작해야 두 명이다. 카르휀시온이 그 저주의 브레스를 내뿜을 때 그의 뒤편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네 명의 마법사들은 브레스에 맞대응해 그들이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마법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들 중 두 명을 포함한 열 네 명의 동료들이 브레스에 맞아 녹아버렸다. 이제 네 명 중 두 명이 게임 오버 당했기에 공명 마법도 사라져 버렸다. 이제 남은 것은 두 명의 마법사와 케이지뿐이다. 눈앞에 도사리고 있는 블랙 드래곤은 네 명의 마법사가 펼치는 최고의 마법에 격중 당했건만 아직까지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크크...크하하하하! 콜록 콜록!"
울분에 찬 듯 마구 웃어 재끼던 케이지는 곧 터져 나오는 기침에 배를 움켜쥐었다.
"속다니... 또 다시 속다니... 하하하! 나의 완패다! 미스티핸즈!"
이를 갈아 대며 눈에서는 줄기줄기 살기를 내뿜는다. 부활 퀘스트를 통해 다시 되살아나게 되면 미스티핸즈를 갈기갈기 찢어 죽이리라 마음먹는 케이지... 그러나 지금은 눈앞의 적이 더 급했다. 뒤편에 있는 두 마법사에게 신호를 한 케이지는 리벤지에 의지한 채 몸을 일으켰다. 블랙 드래곤도 그리 성한 몸은 아니었다. 네 명의 마법사가 만들어 낸 두 번의 8서클 공명마법을 맞았고 또 케이지와 길드원들의 생사를 도외시한 공격에 몸 이곳 저곳에 상처를 입은 것이다. 카르휀시온에게 있어서 좁은 지역에서 얻는 좋은 점도 있었지만, 날개를 사용하지 못하고 몸을 움직이기 힘들다는 페널티도 있었다. 케이지는 카르휀시온에게 달려 들어갔다.
라이프는 절반정도 남았지만 마나와 스테미너는 아직 꽤 남아있다. 달려 들어가는 케이지의 몸에서 폭발적인 검은 에너지가 뻗어 나왔다.
"오래 버티는 걸까? 이미 끝난 걸까?"
사이토 일행들은 지금 난감한 상황에 봉착해 있었다. 케이지들이 굴 안으로 들어간 지 대략 40여분이 되어 가지만 몇 번의 폭발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감감 무소식이었다. 만약 아직도 전투가 계속되고 있다면 기다려야 하고 전투가 끝났다면 블랙드래곤이 기다리고 있을 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 물론 공동 안에서의 전투는 사이토 들에게 좋은 점이 있다. 바로 드래곤의 날개를 봉쇄할 수 있다는 것과 몸집이 큰 만큼 움직일 공간이 적어 공격 성공률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치명적인 단점이라 한다면 사이토들도 그리 움직일 공간이 크지는 않다는 것이다. 만약 그런 좁은 공간에서 약간의 대단위 주문이나 혹은 에시드 브레스라도 정면으로 맞게 된다면 일행들은 마땅히 피할 구석도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대로 블랙드래곤이 공동에서 나오기를 바라기는 무리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해 지는 것은 이쪽이었다.
"더 늦기 전에 들어가자!"
브랜이 일행들을 채근하며 외쳤다. 아무 말 없이 서 있는 일행들... 모두 이 상황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 신중히 생각 중이다. 그러던 중 문득 아누비스와 사이토의 행동이 이상해진다. 둘이 한꺼번에 무언가를 느낀 듯 몸을 숙이며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한다.
"뭔가 나온다."
사이토와 아누비스가 동시에 내뱉은 이말... 이말을 시작으로 일행들은 황급히 전투 준비를 시작했다. 케인은 용자의 무구를 소환하고 노인정 길드의 델린과 아루드, 파이오니아, 제이드는 황급히 캐스팅에 들어갔다. 강진과 발데아라도 각자 완드를 꺼내들고 주문을 암송할 준비를 끝마친다. 사이토는 나침판을 꺼내어 공동을 확인했다. 나침판에 희미하게 보이는 것은 붉고 네모난 점 두 개와 앞의 두개의 점보다 거의 다섯 배는 더 되어 나침판 화면의 떡 하니 차지한 거대한 둥글고 붉은 점이다.
"드래곤이 나온다!"
처음 밖으로 튀어 나온 것은 두 명의 유저였다. 그들은 바로 마지막 까지 살아남았던 아이아스의 두 마법사이다. 케이지가 게임 오버 당한 직후 그들은 뒤돌아 뛰기 시작했다. 드래곤에게 끝까지 저항하여 보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것은 어차피 어리석은 몰살의 방법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밖으로 도망치는 것을 택했다. 그렇지만 드래곤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었다.
"살았다! 으아악!"
밖으로 뛰쳐나오며 양 손을 들고서 탈출의 즐거움을 표현하던 두 마법사의 등에 지름이 거의 1미터는 될 듯한 흰 빛으로 뭉친 공 모양의 에너지볼이 격중 되었다. 공동 안으로부터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는 빛의 공은 마법사들이 쓰러진 다음에도 몇 번 더 그들의 몸을 가격해댔고, 잠시 후 마법사들은 탈출의 기쁨도 채 다 누리지 못한 채 게임오버 당해야 했다.
"그오오오오옹!"
공동 안쪽으로부터 거대한 울부짖음이 들려온다. 예의 드래곤피어가 섞인 그 울음소리... 자신의 건제함을 과시하는 듯한 그 울음소리의 주인공인 블랙드래곤 카르휀시온은 아직 완전히 동굴 밖으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사이토의 눈가에 어렴풋이 보이는 것은 흉흉한 빛을 뿌리는 검은 비늘들의 윤곽뿐, 다만 식스센스를 통해 들어오는 드래곤의 사나운 기운은 사이토의 정신을 계속해서 위협할 뿐이었다.
"하늘의 분노! 레바테인!"
캐스팅을 완성한 마법사들의 몸에서 십자가 형태의 빛줄기가 뻗어 나가고 그것들은 하나로 뭉쳐 나갔다. 네 명의 마법 지팡이에서 뻗어 나온 빛이 하나로 뭉쳐 강렬한 십자의 빛줄기를 만들어 낸다. 8서클 마스터에 달하는 최상급의 주문, 천상의 분노를 표현하는 레바테인이 그들의 손에서 구현된다. 네 명의 마법이 공명하자 십자가의 빛줄기는 그 에너지를 모두 담을 수 없다는 듯 요동치며 그 크기를 넓혀 나갔다. 단일 개체 공격 마법 중 8서클 최강의 마법이 그들의 손에서 구현된다. 이 마법 공격이야 말로 노인정 길드를 지금 최강의 자리로 만들어 놓은 그 기술이었다.
파아아아 흡사 빛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활에서 발사되는 화살인양 빛줄기는 동공 안의 카르휀시온을 향해 날아갔다.
"크아아아악!"
동공 안에 있던 카르휀시온은 미처 그 마법을 피하지 못하고 배 부위에 격중 당했다.
꽈과과광 레바테인에 맞은 카르휀시온은 그 거대한 몸체가 그대로 공중을 날아가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그만큼 강력한 마법 공격이기에 한동안 바닥에서 몸을 굴리며 일어서지 못했다.
"이놈들!"
간신히 몸을 일으킨 카르휀시온의 눈에는 분노에 휩싸여 있었다. 그의 머리에 나 있는 세 개의 뿔에서 동시에 빛의 구가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드래곤의 특징은 용언을 제외하고서라도 마법을 중첩해서 사용한다는 것이다. 공명마법과 같이 위력을 증대시킬 수는 없지만, 세 개의 마법을 제각각 캐스팅 할 수 있다.
"일렉트릭 케논!"
7서클의 마법이 연달아 날아간다. 조금 전 아이아스의 마법사들을 죽일 때 사용했던 마법이다. 마법은 특정한 목표를 지정하지 않은 채 무작위로 폭발하며 엄청난 먼지를 일으켰다. 세 개의 뿔에서 연속으로 마법을 발사하며 카르휀시온은 동공 밖으로 나섰다. 또 다시 레바테인과 같은 마법에 당하는 것은 그로서도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카오스 퍼니쉬먼트!"
먼지를 뚫고 나오는 카르휀시온의 가슴을 향해 케인의 카오스 퍼니쉬먼트가 꽂혀 든다.
"멈춰라!"
카르휀시온의 용언이 발동되었다. 공중에서 그대로 꼿꼿이 굳어버린 케인, 낭패의 기색이 역력하다. 그런 케인을 향해 카르휀시온의 강력한 앞발이 날아갔다.
파강!
케인을 향해 뻗어가던 카르휀시온의 앞발에 폭발이 일어났다. 저스틴의 화살을 이용한 공격... 곧 이어 강진과 발데아라의 저주가 쏟아져 들어갔다.
드드드드득!
카르휀시온의 발치에서부터 검은 오오라가 뿜어져 나오고 그 오오라는 카르휀시온의 발을 강력하게 옭아매었다. 기우뚱거리는 카르휀시온... 그런 카르휀시온의 측면을 빠르게 치고 들어가던 루피아의 무라마사가 카르휀시온의 날개를 향해 검격을 뽑아냈다.
"크아아앙! 쥐새끼 같은 놈들!"
루피아는 카르휀시온의 본체를 공격하기 보다는 날개를 공격하는 길을 택했다. 드래곤이 공중으로 날아오르면 더 이상 기회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의 공격을 필사적이었다.
"크으윽!"
루피아의 검격이 카르휀시온의 왼쪽 날개를 갈랐다. 그러나 루피아 또한 카운터 어택으로 얻어 맞은 카르휀시온의 강력한 꼬리 공격에 격타 당해 멀리 날아가 뒹군다. 그와 함께 세 개의 인영이 카르휀시온에게 날아간다. 그것은 사이토와 아누비스, 그리고 저스틴이다. 전 클래스 중 가장 빠르다는 도둑 클래스와 무투가인 만큼 그 접근은 순식간, 사이토와 아누비스의 손에서 동시에 푸른 빛줄기가 뿜어져 나오고 저스틴 또한 그녀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스킬을 뽑아냈다.
"그레이브 스피릿!"
"칼리의 춤!"
시리디 시린 청홍의 빛줄기가 카르휀시온의 위대한 영혼을 베어버리기 위해 현세로 뻗어 나오고 저스틴의 몸에서 무투가 특유의 포스가 펼쳐진다. 그러나 카르휀시온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타임 스톱!"
델린의 염려가 사실로 들어났다. 드래곤들은 9계급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카르휀시온의 주위로 원형의 장막이 뻗어 나간다.
"으윽!"
사이토는 그레이브 스피릿을 시전한 상태로 몸이 움직이지 않자 난감함에 신음을 흘렸다. 카르휀시온의 날개가 활짝 펴진다. 강진과 발데아라의 저주는 이미 카르휀시온의 발구르기에 사라져 버렸다. 루피아의 공격이 있었던 자리는 그대로이건만 별로 개의치 않는 듯 카르휀시온은 날아올랐다.
카아아앙!
날아오르며 뻗어 나오는 카르휀시온의 강력한 옆발차기, 졸지에 드래곤에게 날라차기를 맞아버린 사이토와 아누비스, 저스틴은 멀리 날아가 굴러 버렸다. 사이토들을 걷어 찬 그대로 공중으로 날아 오르는 카르휀시온... 타임 스톱은 끝났지만 드래곤은 이미 하늘로 날아올라 버렸다.
"스펠 켄슬! 베리어!"
두 번째 공격 주문을 외우기 위해 캐스팅을 하던 델린은 카르휀시온의 행동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고 외우던 마법을 취소한 채 8서클의 방어마법 베리어를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공중을 선회하는 카르휀시온... 어둠 속에 쌓여 있던 그의 본채가 확실히 드러난다. 검은 광택의 가슴 비늘들이 촘촘히 박힌 유려한 가슴과 힘찬 목과 등... 긴 꼬리는 마치 물속을 유영하는 도롱뇽마냥 미려한 움직임을 보인다.
휘이이이...
"으윽!"
바람이 갑자기 상승기류로 변하기 시작한다. 신음을 흘리는 사이토... 이것의 전조가 무었인지 알고 있다. 카르휀시온은 입을 크게 벌리고 대기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목과 가슴이 한계껏 팽창하다가 일순 멈춘다. 카르휀시온이 마지막 남은 에시드 브레스를 뿜어내려 한다. 델린을 따라 베리어를 캐스팅하던 제이드와 아루드 파이오니아... 설상가상으로 마법을 펼치려던 아루드의 캐스팅이 불발로 끝났다. 공명마법을 이용한 베리어가 물건너 가는 순간이다. 속으로 욕지꺼리를 내뱉은 델린은 다른 이에게 눈짓을 통해 지시를 하며 그대로 손을 펼쳤다.
"크아아!"
카르휀시온의 벌린 입으로부터 뻗어 나오는 흑색의 기둥... 마치 거대한 운석이 떨어져 내리듯 사이토 일행의 머리위로 떨어져 내렸다. 간발의 차이로 델린과 제이드 파이오니아의 베리어가 펼쳐졌다. 셋이 펼쳐낸 베리어는 비록 공명마법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최대한의 방어력을 얻기 이해 세 겹으로 펼쳐 냈다. 오랜 기간 동안 손발을 맞추지 못하면 절대 할 수 없는 고난위도의 기술이다. 베리어와 에시드 브레스가 공중에서 충돌하여 폭발했다.
파아아아아앗!
처음 에시드 브레스와 부딪히자마자 델린의 베리어가 힘없이 깨져 나간다. 신음을 토하며 바닥에 무릎을 꿇는 델린... 마법이 깨져 나간 충격이 큰 듯하다. 델린의 베리어를 깨버린 에시드 브레스는 나머지 베리어도 모조리 녹여 버리겠다는 듯 쉴 틈 없이 쏟아 졌다. 제이드의 베리어에 가는 금이 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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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이 많으니...편집해서 올리기도 힘들군요.-_-... 새로운 것을 실감한 것일까...
아직 복귀하지 못한 데자부입니다.
=+=+=+=+=+=+=+=+=+=+=+=+=+=+=+=+=+=+=+=+=+=+NovelExtra([email protected])=+=
조롱받는 드래곤 "크으으으!"
신음을 흘리는 제이드... 막상 예상은 했지만 카르휀시온이 뿜어낸 풀파워의 에시드 브레스는 상상을 초월하는 파괴력을 지녔었다. 일반적으로 베리어는 8서클의 공격마법인 헬파이어도 부분적으로 막아낸다. 그런 베리어가 브레스에 힘없이 꺾여 나간다는 것은 9서클의 방어마법인 엡솔루트 실드로도 막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비록 현재 델린이 로드오브 파이어를 지녔기에 9서클 마법을 하나 외워 두기는 했지만, 불행하게도 그것은 방어마법이 아닌 공격마법이었다. 9서클의 마법사라고 해도 9서클 마법을 하나 메모라이즈 했을 시에는 나머지 다른 마법들을 단 하나도 메모라이즈 하지 못하기에 생기는 불행이었다.
"쿨럭!"
제이드 또한 쓰러져 갔다. 이제 남은 것은 파이오니아의 베리어 뿐...
"소울 스틸!"
"카오스 에로우!"
강진과 발데아라의 저주가 카르휀시온에게 뻗어 나갔지만, 그것은 카르휀시온의 가벼운 공중선회로 무시되었다.
파아아앙!
파이오니아의 베리어마저 깨져 나갔다. 노도와 같이 쏟아져 들어오는 에시드 브레스... 현재 에시드 브레스에 노출된 이는 조금 전 카르휀시온에게 공격들어갔다가 뒷발차기에 맞아 나가 떨어져 아직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한 사이토와 아누비스, 저스틴 그리고 네 명의 마법사였다. 아레드리온의 수정이 요동쳤지만 수정은 카르휀시온의 독기만을 막아줄 뿐 에시드 브레스에는 무용지물이었다. 그 때 절망하는 사이토들의 앞으로 루피아와 브렌이 섰다. 둘의 무기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오며 대기를 가르기 시작한다.
"소드베리어!"
둘의 무기에서 동시에 뻗어 나온 소드베리어가 에시드 브레스에 저항하기 시작한다.
"피해! 새꺄!"
브렌의 외침에 사이토는 아누비스와 저스틴을 부축한 채 히든스텟을 발동시켜 그 곳을 황급히 벗어났다.
"으아아아!"
기합과 함께 브렌과 루피아의 몸을 에시드 브레스가 감쌌다.
치이이이...
에시드 브레스가 끝났다. 찰나의 순간이었건만 그들에게는 영겁으로 느껴졌다. 카르휀시온은 자신의 작품을 감상하듯 공중을 한 번 선회했다. 에시드 브레스의 산성공격에 맞은 듯 바위들과 바닥이 흐물흐물 거린다. 그나마 남아있던 유적지는 브레스가 쓸고 지나가 깨끗하게 변해 버렸다.
"루피아... 브렌..."
졸지에 두 명이 브레스에 희생당했다. 공중에 머물던 카르휀시온은 회복마법을 사용하여 몸에 남은 상처를 깨끗이 치유하고는 바닥으로 내려섰다.
쿠웅!
육중한 착륙소리..
"어리석은 인간들이여! 이제 너희의 힘이 얼마나 미력한지 알았는가!"
드래곤은 상체를 일으켜 세우며 포효했다. 거대한 몸체에서 뻗어 나오는 광폭하고도 웅장한 포효는 대기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며 사이토들의 가슴속에 절망이라는 이름으로 스며들었다.
[사이토, 이 때부터가 진짜다. 녀석의 정신 공격에 빠져 들지 말고 정신 차려라.]
델린의 메시지가 들려왔다.
[놈은 지금 세 번의 브레스를 모두 사용하고, 마나와 체력 또한 상당히 소모 했다. 비록 녀석의 육신은 회복되었다고는 하지만, 놈은 매우 지친 상태다. 이럴 때 전의를 상실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야! 힘내라."
델린의 메시지는 사이토 뿐만이 아닌 모두에게 전달되었다.
"제길..."
사이토는 욕지꺼리를 하며 몸을 일으켰다. 까딱 실수했으면 고작 급 AI의 말빨에 당할 뻔 했다. 지금 델린이 한 것은 현재 형식적으로나마 파티의 리더인 사이토가 할 일, 비록 그의 절친한 친우인 브렌과 루피아가 게임오버 당했다 해도, 그는 냉정하게 파티를 이끌 기본적인 책임이 있는 것이다. 사이토는 헬리오스와 셀레네를 칼집에 꽂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카르휀시온에게 소리쳤다.
"야! 이 검댕이 도마뱀..."
"크르르르..."
카르휀시온의 존재감이 급격하게 확장된다. 그만큼 사이토의 언동이 그의 심기를 거슬렸다는 것, 그러나 그는 자신이 드래곤이라는 자각을 지닌 AI 였다.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다는 듯 머리 위의 뿔에서 빛줄기가 생성되기 시작한다. 귀찮게 대답해 주기 보다는 아예 침묵시켜 버리겠다는 무언의 대답이었다. 사이토는 고개를 들어 카르휀시온을 쏘아보았다.
"감히 드래곤 주제에 내 친구들을 둘씩이나 상하게 만들다니... 배짱도 좋구나. 너 따위 검은 도마뱀은 꼬리나 자르고 도망치기 바쁠 줄 알았건만..."
카르휀시온은 기가 찼다. 사이토가 그를 도발 하려 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런 유치한 도발 따위 휩쓸려 줄 마음도 별로 일정에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그 끓어오르는 분노는 고스란히 그를 자극해대고 있다.
"명을 재촉하고 싶은 것이 소원이라면 소원대로 해주지!"
카르휀시온의 머리에서 빛나던 마법구가 취소된 듯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다시금 만들어지는 암흑의 구체, 새로운 마법을 사이토에게 퍼부으려는 듯 하다.
"다크니스 에로우!"
카르휀시온은 3서클의 다크니스 에로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3서클이라고 무시한 수 없는 이유는 현재 카르휀시온은 다크니스 에로우를 마치 기관총처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엄청난 마법력으로 마법과 마법사이에 딜레이가 거의 없다. 세 개의 뿔에서 발사되는 다크니스 에로우는 마치 게틀링마냥 연속으로 발사되었다.
"하하하! 이정도 밖에 안 되나?"
몸을 자유자제로 꺾으며 그것들을 피해내는 사이토이다. 그러나 비록 지금 그의 얼굴에는 비웃음기가 만발하지만 히든스텟을 이용해 덱스를 최대한 활성화 시켜 피하고 있는 것이다. 다크니스 에로우는 사이토를 집요하리만치 따라 붙었다.
피이이잉!
오랜만에 와이어를 뽑아든 사이토는 그것들을 양손의 헬리오스와 셀레네에 연결하여 손에 잡았다.
"하아아아!"
셀레네를 잡은 사이토의 손이 현란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다.
치잉! 치잉!
"크아아! 가소로운 것!"
카르휀시온은 그의 두터운 팔다리를 따끔 따끔하게 만드는 사이토의 셀레네를 바라보며 비웃음을 보였다. 생채기 하나 남지 않는 공격이건만 사이토는 필사적으로 그를 공격해 댄다. 다크니스 에로우로는 그를 잡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은 카르휀시온은 마법공격을 멈췄다.
"멈추고 떠올라라!"
"윽!"
사이토는 갑자기 그의 온 몸을 옭죄어 오는 무형의 에너지에 신음을 삼켰다. 카르휀시온의 용언이 발동된 것이다. 사이토가 두둥실 떠 카르휀시온 자신의 앞으로 날아오자 카르휀시온은 마치 사이토를 파리를 잡듯이 양손으로 눌러 죽이겠다는 듯 두 앞발을 세차게 휘둘렀다.
피리리링!
그러나 사이토는 그 공격을 간단히 피해냈다. 용언의 저항에 성공한 사이토는 대담하게도 손 반대편의 와이어를 카르휀시온의 앞발에 묶어 버린 것이다. 암벽타기를 하듯이 카르휀시온의 몸을 휘돌아간 사이토는 와이어를 번갈아 뽑아내며 카르휀시온의 몸을 타고 올랐다.
"크오오! 실드!"
"쳇!"
카르휀시온의 몸을 중심으로 강력한 반탄력이 솟아오르자 사이토는 혀를 차며 몸을 뒤로 뺐다. 땅으로 내려선 사이토는 위험할 정도로 카르휀시온에게 가까이 붙어 주변을 돌기 시작했다. 밟아 죽일 듯 꼬리와 발을 이용해 사이토를 압박하던 카르휀시온은 열이 머리끝까지 오른 듯 눈에서 줄기줄기 불꽃마저 튀긴다.
"귀찮은 놈! 덫에 걸린 쥐새끼처럼 절망하며 죽어가거라. 프리즘 레이!"
카르휀시온의 양 손과 머리에서 눈부신 광채가 솟아올랐고 잠시 후 그것들은 이 삼십 개의 삼각형의 유리와 같은 투명체들로 변하여 사이토에게 날아들었다.
삐리리리!
"으아!"
사이토는 투명체들 중 하나에서 레이저 비슷한 빛줄기가 그에게 날아와서야 마법의 용도를 알 수 있었다. 이 투명체들은 자신에게 날아온 레이저를 다른 투명체에게 반사시킨다. 물론 투명체들은 슬금슬금 계속해서 사이토의 주위를 감싸고 있고 결과적으로 사이토는 투명체들이 반사시키는 레이저를 계속해서 피해내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그 투명체들은 레이저 줄기의 숫자까지 늘려대고 있다. 펜텀 피규어를 사용해서 카르휀시온의 몸 곳곳으로 이동하여 피해내고는 있지만, 그 또한 카르휀시온의 물리공격에 여의치 않았다. 사이토의 사각을 비집고 들어오는 레이저들을 사이토는 식스센스와 히든스텟을 사용한 최선의 움직임으로 피해냈다.
"잘라져라!"
더 이상 피하는 것이 힘들다고 느낀 사이토는 그 투명체를 디스코어로 직접 공격하기 시작했다.
꽈꽝!
그러나 디스코어가 닿는 순간 투명체는 기다렸다는 듯이 폭발해 버렸다.
파파파팟! 파팟!
"아아악!"
폭발로 인해 땅으로 떨어져 내리는 사이토의 몸으로 레이저가 쉴 새 없이 폭발한다.
"크윽!"
땅에 사정없이 내리 꽂힌 사이토는 피어오르는 먼지 속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다인슬레터가 버텨 주었다고는 하지만 너무나 연속적으로 받은 마법의 충격은 이미 사이토의 라이프를 80프로 이상 갉아 먹었다. 또한 굳이 라이프가 아니더라도 폭발로 인한 치명상은 사이토를 그대로 게임오버로 몰고 갈 지경이었다.
"끝이다."
카르휀시온은 사이토를 통째로 씹어 먹으려는 듯 입맛을 다시며 사이토를 집어 들려 손을 뻗었다.
"잠깐!"
"뭐냐...인간"
뻗어 가던 손을 멈춘 카르휀시온은 사이토의 제지에 손을 멈추었다. 일반 몬스터라면 절대 그럴 수 없겠지만, 카르휀시온은 2급 AI를 지닌 유니크 몬스터였다.
"너 뭐 잊은 거 없냐?"
"?"
지금 사이토의 표정은 득의양양하게 변해 있었다. 전혀 현재의 상황과 매치가 되지 않는 표정, 고 개를 갸웃거리던 카르휀시온은 곧 그의 뒤통수에 느껴지는 물리적 충격에 그 뜻을 깨달았다.
꽈꽝!
머리에 강력한 충격을 입은 듯 옆으로 흔들린다.
"오케이!"
저스틴의 화살공격이 적중한 것이다. 예의 그 화살이라는 것이 무색할 정도의 무식한 파워는 계속해서 카르휀시온의 실드를 뚫고 뒤통수에 작렬했다. 그러나 그 화살 공격은 단지 공격을 알리는 시작에 불과했다.
"엘리멘탈 엔젤 드라이브!"
사이토가 카르휀시온의 주의를 돌린 사이 델린은 9서클의 주문을 완성하는데 성공했다. 델린의 몸 주위로 오색 빛깔의 빛무리가 뻗어 올라갔다. 공중으로 한 없이 솟아올라가던 빛무리들은 곧 하나 하나 뚜렷한 형체들을 만들었다. 손에 갖가지 무기를 든 무지개빛 천사들이 완성된 것이다.
"가라!"
델린의 신호와 함께 그 천사들은 카르휀시온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크아앙!"
츠컥! 츠컥!
천사들이 카르휀시온을 거침없이 베고 지나간다. 온 몸을 요동치며 저항하는 듯하지만, 천사들은 카르휀시온의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는 듯 계속해서 베고 지나갔다. 흡사 거대한 오색 무지개가 카르휀시온을 감싸고 빠르게 도는 듯 하다. 사이토의 셀레네로도 흠집하나 나지 않던 카르휀시온의 비늘들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법이 끝난 후 카르휀시온의 추례한 꼴이 나타났다. 몸을 감싸고 있던 비늘들의 절반 이상이 떨어져 나갔고 몸 곳곳에 치명적인 상처로 피가 흐르고 있다.
"하늘의 분노! 레바테인!"
나머지 세 마법사들 또한 8서클 최강의 마법 레바테일을 만들어냈다. 비록 델린이 빠졌기에 공명마법을 통해 완성시킨 것은 아니었지만, 레바테인 그 자체의 힘만으로도 카르휀시온에게는 위협적이다.
꽈꽈꽈꽝!
세 개의 마법 덩어리가 카르휀시온에게 작렬했다. 고통스러워하는 카르휀시온... 집요하게도 상처를 공격해 댔기에 그 아픔은 배가 된 듯 하다. 마법사들은 또다시 레바테인을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대 카르휀시온전에 있어서 레바테인을 선택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어둠 계열의 카르휀시온이 가장 취약한 것이 바로 빛계열의 마법이다. 그렇기에 공명마법을 통해 사용할 마법으로 레바테인을 선택한 것이다.
"카오스 퍼니쉬먼트!"
비틀거리고 있는 카르휀시온의 종아리에 케인의 최종기가 작렬했다. 사이토가 시간을 벌어 주어 몸을 회복시킨 케인은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끌어내어 카르휀시온의 종아리를 공격했다. 카르휀시온의 종아리를 통째로 파헤치며 들어가는 케인, 조각 조각난 검은 비늘이 공중으로 비산한다.
몸을 꼿꼿이 세우고 있던 카르휀시온이 최초로 무릎을 꿇으며 쓰러졌다. 그 위로 강진과 발데아라가 만들어낸 사령들과 뼈로 이루어진 괴물들이 달라붙기 시작한다. 땅에 쓰러져 있던 사이토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끝이다!"
사이토의 주먹에서부터 줄기줄기 시퍼런 오오라가 뻗어 나온다. 공중으로 뛰어 오르는 사이토, 그의 눈에서도 시퍼런 안광이 번뜩거린다.
"그레이브 스피릿!"
"캬아아아!"
"죽어라!"
카르휀시온의 목과 가슴의 접점, 바로 드래곤류 몬스터들의 치명적인 약점이라는 드래곤 하트가 잠들어 있는 곳을 사이토는 깊게 찌르고 들어갔다. 발광해대는 카르휀시온... 마치 자신의 영혼을 신체로부터 긁어내려는 그레이브스피릿에 저항하는 양 처절하게 발버둥친다.
"죽어!"
카르휀시온의 드래곤하트에 주먹을 꽂아 넣은 사이토는 손을 마구 휘저었다. 마치 드래곤하트를 조각내 버리겠다는 듯 마구 헤치지만 카르휀시온은 아직 생명의 끊을 놓지 않았다. 사이토의 뒤로 검은 그림자가 쏜살같이 달라붙었다.
"마지막이다. 그레이브스피릿!"
"크아아아! 이럴 순 없어!"
아누비스의 그레이브스피릿마저 카르휀시온의 드래곤하트에 꽂혀 들자 요동치던 카르휀시온은 마지막 단발마의 울음소리와 함께 지친 머리를 에덴의 폐허에 내려놓았다.
쿠웅!
카르휀시온의 육중한 거체가 땅으로 쓰러져갔다. 카르휀시온이 쓰러짐과 동시에 사이토 또한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와 함께 사이토와 그 외 일행들의 머리 위로 퀘스트 성공을 축하하는 창이 떴다.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경험치 15000을 획득하셨습니다.]
"후우..."
사이토는 그대로 땅에 드러누워 버렸다. 그의 옆에 나란히 누워 있던 카르휀시온의 시체가 검은 빛에 휩싸이기 시작한다. 워낙 거대한 몸뚱이기에 카르휀시온은 사라지는 것도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자신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창공을 향해 부릅뜬 카르훼니온의 눈도 처음 케인은 게임오버 직전까지 몰고 갔던 그 꼬리도 검은 빛에 휩싸였다. 그리고 잠시 후 마치 거친 회오리속의 연기마냥 공중으로 산화해 버렸다. 드래곤을 사냥하는데는 성공했지만, 막상 성공하고 나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 마치 지금까지 거대한 벽과 씨름을 한 듯 부담감만이 가득하다.
"루피아와 브랜이 죽었다."
케인이 그의 곁으로 다가오며 중얼거리자 사이토는 한숨을 내쉬었다.
"예, 밀레나도요."
사이토가 침울한 듯 대답하자 케인도 마주 한숨을 내쉬며 그의 곁에 주저앉았다.
"어차피 그 정도 희생은 필요한 전투였다. 이번 전투는 원래 처음부터 꼬여 있었어. 저 빌어먹 을 블랙드래곤이 9서클의 타임스톱을 사용했을 때부터 꼬여 버렸단 말이지."
결과적으로 퀘스트를 달성하기는 했지만, 희생이 너무나 컸다. 사이토는 카르휀시온이 사라진 자 리에서 아이템들을 수거하고 있는 나머지들에게 시선을 옮겼다. 문득 하늘빛이 이상하다. 마치 블랙 드래곤 카르휀시온이 다시금 현신할 듯 검은빛으로 물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이토의 주의를 별로 끌지 못했다. 아이템가지 뱉고서 죽은 몬스터가 다시금 되살아나는 일은 없다. 게다가 긴장이 한꺼번에 풀려버렸기에 그런 것이리라. 드러누운 사이토는 눈을 감아 버렸다.
"사이토씨?"
"?"
"사이토씨... 여기서 왜 자고 계세요."
꿈결 같은 속삭임일까? 사이토는 작은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는 그 소리에 눈을 번쩍 뜨였다. 친근한 느낌, 마치 가이아가 그의 곁에 있는 것처럼 느낀 것이다.
"누구지?!"
"저에요."
그의 곁에서 쪼그리고 앉아 두 남녀가 손을 흔들고 있다. 낯이 익기는 하지만 그리 반가운 얼굴들은 아니다. 게다가 가이아인줄 알았건만 다른 녀석에게서 가이아의 느낌을 받았다는 것은 더욱 기분을 더럽게 하는 것이다. 둘은 예전 헤어졌을 때보다 많이 달라져 있었다. 일단 레미는 예전의 곱상한 이미지가 사라진 채 상당히 인상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또한 전에는 천옷만 입더니 지금 그의 몸에는 금속의 방어구들이 입혀져 있다. 에린도 예전의 그 미소녀 스타일이 아닌 화려한 로브에 마법지팡이를 든 원숙한 마법사의 느낌을 준다. 한마디로 둘 다 상당한 일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하다.
"아아, 레미... 그리고 에린... 오랜만이다."
퀘스트에 관련된 일이라는 것을 직감한 사이토는 머리를 긁적이며 둘을 바라보았다. 다른 일행들은 사이토가 현재 퀘스트를 진행중이라는 것을 아는지 자기들끼리 모여 이번에 카르휀시온을 사냥하면서 나온 아이템들을 보고 있다.
"역시 이곳에 오면 사이토씨가 계실 줄 알았어요. 신탁이 맞았군요."
"음? 신탁이라니?"
레미의 말에 사이토가 반문한다.
"아아, 꽤 오래전에 신탁이 있었어요. 그 신탁에는 사이토씨가 제 앞길을 가로막는 것들을 물리 쳐 주실 거라고 나왔었거든요. 뭐, 그래도 설마 설마 했는데 여기까지 오시다니 정말 대단하네요."
사이토는 레미에게 예전 절벽에서 떨어진 뒤로부터의 일을 들을 수 있었다. 절벽에서 지던 에린을 붙잡은 레미는 이제는 죽었구나 하며 눈을 감았다고 한다. 그 후 그가 눈을 뜬 곳은 어느 동굴 안... 위험의 순간에 에린은 텔레포트 마법을 캐스팅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너무나 급작스럽게 텔레포트를 캐스팅하였기에 그 위치는 정확하지 않았기에 둘은 한동안 고생했다고 한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게 알고 보니 그곳이 성령의 신 필라리언님의 유적이 있는 곳이더라구요. 그리고 그분으로부터 과거 이곳에서 있었던 참사와 그에 대해 제 형님이 하려는 일을 알게 되었죠."
레미의 얼굴에는 짙은 슬픔이 드리워져 있었다. 에린이 그의 곁으로 다가와 가만히 안고는 토닥거린다.
"형님이라니?"
" 사실 지금 이 에덴에 잠들어 있는 흑천왕을 깨우려는 자가 바로 제 형님입니다. 저는 카마프라하 왕국의 두 번째 왕자 카마프라하 폰 레미오스라고 하고요 어쩌다 보니 사이토씨에게 저의 정체를 숨기는 꼴이 되었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으음, 아냐. 이미 짐작하고 있었어."
꽤 감동적인 스토리이기는 하지만, 이미 예전부터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있었다. 소설에서 흔히 사용되는 일왕자와 이왕자의 갈등 따위의 소제는 질리도록 읽어봤기 때문이다. 순간 어두워져 가던 하늘이 마치 나선형처럼 휘돌기 시작했다.
우르르릉! 꽝!
"뭐... 뭐야?!"
카르휀시온의 이빨을 가방 속에 집어넣던 케인은 갑작스런 기상의 변화에 눈살을 찌푸리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금방이라도 번개가 떨어질 듯 하늘의 구름 사이로는 스파크가 튀고 있다.
"저 저것은!"
레미가 하늘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외쳤다. 둥글게 뚫린 구멍사이로 수천수만의 검은 그림자들이 쏟아져 나온다. 크고 작은 가지각색의 모양을 지닌 그것들은 듣기 거북할 정도의 괴성을 질러대며 지상으로 계속해서 내려오고 있다.
"이...이럴수가! 이렇게 빠를 수는 없는데! 벌써 흑천왕의 봉인을 푸는데 성공했단 말인가?"
레미는 망연자실한 듯 땅바닥에 엎드렸다.
"아직! 아직이야! 흑천왕이 부활했다고 해도 아직 힘이 모두 회복되지 않았을 꺼야."
에린이 레미를 붙잡고 소리친다. 사이토는 심상치 않은 하늘의 움직임에 얼굴을 찌푸렸다.
"설마, 최종 퀘스트가 벌써 시작되는 건가?"
언젠가 해야 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제정비의 시간이 필요하다.
[최종 퀘스트가 시작되었습니다]
사이토의 우려는 현실로 다가왔다. 레미와 에린의 머리위로 뜨는 것은 바로 퀘스트의 시작을 알리는 창...강진이 이미 이렇게 될 수도 있다고 언질을 주기는 했지만, 최종 퀘스트는 너무도 빨리 사이토에게 다가왔던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망설이고 있는 사이토를 재촉하는 얄미울 정도의 천재지변까지 일어났다.
우르르르르...
지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무너지기 시작해요! 빨리 동굴 안으로!"
옆에서 사이토를 잡아끄는 레미... 사이토 일행이 서 있는 곳을 향하여 에덴의 지각이 통째로 붕괴되기 시작했다.
"모두 안으로!"
더 이상 망설이고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일행들을 향해 소리쳤다.
"게이트스톤은?"
"안돼요."
"텔레포트는?"
"그것도 들지 않는다네."
델린의 대답에 발데아라는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이거야 원... 완전히 퀘스트를 강요받는 기분이군."
"수정의 효능이 다 됐나? 숨이 가빠오네."
저스틴이 얼굴을 찡그리며 기침을 연신 해댔다. 지금 그들이 있는 곳은 예전 카르휀시온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자리였다. 곳곳에 카르휀시온의 자취가 남아 역한 냄새를 일행들에게 풍기고 있었다. 아이아스와 카르휀시온의 일전을 말해주는 듯한 풍경들... 곳곳에 갖가지 아이템들과 폭발 자국들이 즐비하다.
"케이지 녀석 여기서 죽은 모양이군."
케인이 한쪽 구석의 땅을 발로 몇 번 쓸어보다가 오색창연한 바스타드를 들어올렸다.
"푸핫! 주무기인거 같은데... 저런 아이템을 떨어뜨리다니... 배 좀 아프겠는걸?"
"후우, 글쎄요. 어쩌다 시작된 악연인지 원... 케인씨 그냥 버리세요. 어차피 가져가지도 않을 꺼..."
"뭐, 그럴 생각이야."
케인 또한 아이템을 챙길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지금 게임이 초기화가 되느냐 마느냐가 판가름되는 상황에서 괜히 짐만 되는 아이템은 사양인 것이다. 카르휀시온에게서 나온 아이템들도 정말 값진 것 빼고는 모조리 버려 버렸다. 급작스럽고도 거의 반 강제적으로 일어나 버린 최종 퀘스트이기에 다시 돌아갈 수도 없게 되었다. 그러나 케인은 그 검을 곱게 그냥 땅에 버릴 생각은 없는지 그것을 들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후우, 이걸 시원하다고 해야 하나, 웃기지도 않는다고 해야 하나."
얼마 걷지 않아 케인의 앞으로 나타난 풍경, 에덴의 폐허가 언제 자리했냐는 듯 그곳에는 깎아지를 듯한 낭떠러지만이 있을 뿐이다. 강한 맞바람이 불어오자 케인은 눈살을 찌푸리다가 케이지의 바스타드소드를 밖으로 던져 버렸다. 케이지 정도가 사용할 무기라면 보통 무기는 아니리라. 어차피 챙기지는 않을 것 혹시나 나중에 다시금 케이지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이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뭐, 어차피 쓸 사람도 없으니..."
조금 아까운 듯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바스타드소드를 멍하니 쳐다보던 케인은 다시 발걸음을 안으로 옮겼다.
"뭐 하다가 오셨어요?"
"아, 그냥 화풀이지 뭐."
"예."
사이토의 물음에 짧게 대답한 케인은 자리에 조용히 앉아 눈을 감았다.
"아직 안 끝났냐?"
"아... 곧 다 되요."
수리를 나타내는 홀로그램이 공중에 떠 있었다. 마지막 전투를 하기에 앞서 무기도 수리하고 체력도 회복할 겸 일행들은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래도 '마스터의 모루'가 2개씩이나 떨어져서 다행이에요."
"뭐, 그것보다는 네 녀석이 대장장이 마스터라는 것이 더 흥미롭구나. 게다가 그 빌어먹을 용에게 별로 고맙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케인의 비이냥거림에 사이토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렇지만, 수리키트를 충분히 준비해 오지 못한 우리 책임도 있잖아요."
"거기에 대해서도 별로 좋은 건 없어. 어차피 그 한네브에는 수리키트를 파는 상점 자체가 없었으니까. 이래가지고서는 용을 잡았다는 기쁨도 없잖아. 아이템도 재대로 챙기지 못하고 이곳으로 쫓겨 들어온 꼴이라니..."
못내 못마땅한 듯 케인의 투덜거림을 멈출 줄은 모른다. 케인의 어린애 같은 모습에 작게 미소 지은 사이토는 다시 마스터의 모루로 신경을 쏟았다. 지금 고치고 있는 것은 저스틴의 활이었다. 목재로 된 활이었다면 그가 손 댈 수 없겠지만 저스틴의 활은 금속으로 되어 있었다. 점점 내구력을 회복하는 저스틴의 활... 그것을 묵묵히 바라보던 사이토는 이윽고 수리가 끝나자 활을 손에 들어보았다.
"뭐, 그럭저럭 만족스럽군."
제대로 된 대장간이 있다면 이번에 카르휀시온에게서 나온 재료들을 사용해서 각자의 무기를 조금이나마 업그레이드 해 주겠지만, 이곳에서 그런 시설을 찾는다는 것은 애당초 무리였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수리에 필요한 마스터의 모루라던가 강철잉곳의 대용으로 사용할 금속들이 전리품으로 상당하다는 것일까?
"이대로 직진인가? 퀘스트 한 번 간단하군."
저스틴에게 활을 넘겨 준 뒤 다인슬레터를 수리하기 위해 갑옷 옆구리에 장치된 이음새를 뜯던 사이토는 문뜩 자신이 가야 할 공동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다른 퀘스트를 주기 위해 나타난 듯한 레미와 에린은 더 이상 없다. 한편으로는 그들의 전력이나마 합류시킨다면 앞으로의 전투에 도움이 될까 했건만, 얄밉게도 사라진 것이다. 분명 퀘스트의 일환이기는 하겠지만, 역시나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들이다.
"자. 이건 챙겨야 할 듯 하군."
문득 그의 옆으로 아누비스가 다가왔다.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바로 밀레나의 갑옷이었다. 사이토가 예전에 선물해 줬던 미스릴 하프 플레이트... 이곳저곳 상처가 많지만, 사이토는 그것이 자신이 선물해 주었던 것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감사합니다."
사이토가 고개를 숙이자 아누비스는 손을 절래절래 흔들며 그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고 보니 둘 다 게임오버인가?."
공교롭게도 밀레나와 브랜이 한꺼번에 게임오버가 되어 버렸다. 묵묵히 그 갑옷을 바라보던 사이 토는 그것을 배낭 속에 조심스럽게 집어넣었다.
"나중에 고쳐서 줘야지."
얼마간 재정비의 시간을 가진 일행은 다시금 짐을 챙겨 일어섰다. 동굴이라고 하기에는 그 규모가 너무나 크기에 천정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넓이와 높이이다.
"그런데 그 오카리나라는 사이버 생명체... 죽일 수는 있는 겁니까?"
주위를 세심히 살피며 전진하던 발데아라가 후위를 맡고 있던 사이토에게 물었다. 가장 앞에서 파티의 길잡이를 하는 역할은 사이토보다 탐색 스킬이 높은 아누비스가 맡고 있다. 뒤에서 걷고 있던 사이토는 발데아라의 물음에 잠시 당황의 빛을 띠우다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대신 강진이 앞으로 나서며 발데아라의 말에 대답한다.
" 아마 게임상의 일반적인 죽음이라면 가능합니다."
"그렇지만, 제가 지금까지 들은 바로는 그런 방식의 죽음으로는 해결 되지 않는다고 알고 있는데요."
"그렇지요. 일단 저희... 그러니까 저희 기술진들이 알아낸 바에 의하면 그 오카리나라는 사이 버 생명체는 일반적인 유저의 몸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단 게임에서 아웃을 시킨 다음에..."
"쉿! 거기까지... 지금 그녀가 듣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사이토씨도 말을 자제하는 겁니다."
강진이 주위를 살피며 작게 말했다. 그제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발데아라는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금 앞을 쳐다 보았다. 한동안 동굴을 걷던 이들은 얼마 후 그 거대한 공동을 가득 매우고 있는 높은 문에 도달했다. 은은한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는 그 문은 공동의 천장에까지 닿아 있다. 문 앞에 다다른 일행은 문의 한 가운데에 사람 한명이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이 있다는 것다는 것을 발견했다.
"리얼판타지아의 문장이군요."
문의 한가운데에 새겨진 문장을 바라보며 사이토가 중얼거렸다.
"그렇죠. 여기서부터는 '비활성화' 된 퀘스트 였으니까요. 아마 이 조그만 구멍도 그녀가 만들어냈겠죠. 이제부터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습니다. 일단 이 앞으로는 그녀의 영역이니까요."
일행은 하나 둘 그 검은 구멍 안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끙... 밝군."
쏟아지는 빛을 손으로 가리며 케인이 투덜거린다. 오랜 어둠 속에서 갑자기 나왔기에 그런 것이리라. 구멍은 의외로 짧았다. 구멍을 벗어나자마자 갑자기 쏟아지는 빛줄기... 일행들은 잠시 멈춰 빛에 적응되기를 기다렸다.
"재미있군."
경치의 감상에 대한 아누비스의 소감이었다. 마치 거대한 지팡이를 땅에 꽂아놓은 느낌의 거탑이 기하학적인 나무와 바위들 사이에서 그들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지팡이의 가장 꼭대기로 보이는 곳에는 태양과 같이 빛나는 구가 있어 사위를 밝히고 있고 그 빛들은 바닥까지 환하게 비춰 마치 대낮과 같은 느낌을 주었다.
"악에 소굴이라는 원래 컨셉과는 전혀 맞지 않는 분위기군요."
네크로맨서를 상징하는 검고 우아하면서 음침한 모양의 로브에 묻은 흙들은 툭툭 털어내며 강진이 말했다.
"뭐, 꾸미는 거야 주인 마음이겠죠. 모두 출발합시다!"
케인이 앞장서자 일행들은 하나 둘 무기를 고쳐 잡고 앞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거탑의 꼭대기의 빛이 서서히 붉은 빛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거탑의 밑에 자리한 음침한 모양의 문은 의외로 쉽게 지나갈 수 있었다. 문을 지키는 가디언이나 경비병 따위도 없었고, 그 흔한 함정 하나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나침판이 제멋대로군. 쓸모가 없어졌어."
탑의 계단을 걸어 올라가며 아누비스가 탐지에 쓰이는 나침판을 품안을 집어넣었다. 아무것도 탐지가 되지 않는다. 마치 이 거탑 자체가 몬스터라도 되는 양 나침판 전체를 체우고 있는 붉은 빛으로 인해 나침판이 소용없는 것이다.
지직...지지직...
순간 케인의 뒤를 따라 활을 장전시킨 채 걷던 저스틴의 옆 계단의 돌벽이 흐릿해 지며 노이즈를 내기 시작한다. 깜짝 놀라 벽에서 물러서며 활을 겨누는 저스틴이다. 그녀의 행동에 놀라 몸을 긴장시키고 벽을 뚫어지게 쏘아보던 일행은 잠시 후 벽이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원래대로 돌아오자 안도의 한숨을 쉬며 무기를 내려놨다. 강진이 한 발 앞으로 나가 벽을 쓸어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까부터 이곳이 알고 있던 것보다 단조롭고 조용하다 싶더니, 알고보니까 이 탑이 주인이 이 곳을 불법개축을 한 거 같군요."
강진이 다시 한번 손으로 벽을 쓸자 벽은 또다시 특유의 노이즈를 내며 투명하게 변했다. 손은 투과시키지 않은 채 벽만이 손의 쓸림에 따라 투명하게 변한다.
"아마 기존의 컨셉 대로라면 이 곳은 총 36층으로 이루어진 몬스터들의 소굴이 되어 있었어야 할 겁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끝도 없이 위를 향해 뻗은 단조로운 계단이라니... 무슨 생각에서 이런 짓을 했는지 모르겠군요. 굳이 몬스터들을 없앨 필요는 없을 텐데."
강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하자 사이토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굳이 따질 필요는 없겠죠. 일단 있는 것보다는 없는 게 이쪽의 전력 보존에는 더 좋을 테니까. 올라갑시다."
나무넝쿨 모양의 황금빛 아치들이 서로의 몸을 가로지르며 문을 감싸고 있다. 만약 이곳에 아무런 목적이 없이 왔다면 아마 그들은 무슨 여신이라던가 신수를 배알하기 위해 왔다고 착각했으리라. 깊게 한숨을 들이킨 사이토는 문의 양쪽에 솟아오른 작은 손잡이를 굳게 쥐었다.
철컥... 그그그긍...
조용하고도 장중한 문의 마찰음이 들린다. 문안으로 들어선 사이토... 사위는 온통 어둠뿐... 마치 칠흑과도 같은 곳에 들어온 느낌, 사이토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긴장감 때문인지 식스센스의 느낌이 더욱 날카로워진 기분... 몸 안에서 흐르는 에너지까지 느껴지는 기분이다. 고개를 약간 돌려 몸을 풀어준 사이토는 눈을 떴다. 힘과 결의에 찬 눈빛... 그런 사이토의 뒤로 일행들이 하나 둘씩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츠츠츠츠...
갑자기 정면으로부터 작은 불빛이 만들어진다. 그 불빛은 마치 4서클의 마법인 '댄싱라이트'마냥 칠흑 같은 공간을 홀로 헤엄치기 시작했다.
"장난 그만치고 나오지."
사이토가 허공을 향해 조용히 읊조리자 잠시 후 맞은편에서 낭랑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호호, 장난은 아니랍니다. 단지 종말을 향해 도전해오는 용사들을 향한 저의 작은 이벤트랍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정면으로부터 붉은 기운이 충만한 거대한 빛 덩어리가 생성되어 공중으로 떠올랐다. 마치 핏빛 달인 듯 그것은 공중으로 서서히 떠오르다가 얼마 후 상공에 멈춰섰다. 그 빛 아래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 넓게 펼쳐진 대전... 바닥에 깔린 융단이 불빛을 받아 그런지 원래 그런지 핏빛으로 빛났다. 융단을 따라 거의 50미터 되는 앞으로 거대한 왕좌에 비스듬히 누운 한 여성이 보인다. 넓디넓은 공간 속에 보이는 것은 오직 단 하나의 왕좌와 그 위에 앉은 여자... 어찌보면 조금 을씨년스러운 풍경이겠건만, 붉은 달 아래의 여자는 마치 이 넓디넓은 공간속의 여왕인양 도도하다. 검은 머리카락을 대전 아래로 길게 늘어뜨린 오카리나, 그녀는 예전 아리유의 술집에서 보았던 그 하얀 갑옷을 입고 있었다. 어깨에 걸린 긴 망토와 허리에 걸려 있는 작은 단검, 그리고 그녀의 머리위로 떠다니는 것은 예의 지금까지 사이토를 물먹여온 그 여섯 개의 은빛 빛줄기이다. 마치 물속에서 유영을 하는 듯 혹은 그녀를 호위하는 듯 떠 있는 빛줄기들... 사이토의 주위로 일행들이 걸어와서 섰다.
"예쁜 걸... 용사의 검 소환"
단아한 얼굴에 히죽 웃음을 띤 케인이 오카리나를 바라보며 한마디 했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앞으로의 전투에 대한 흥분으로 가득 차 있다.
"후후, 드디어 몇 십년동안 고대하던 리얼판타지아의 마지막 퀘스트인가?"
델린이 한마디 하자 그의 옆으로 선 제이드와 아루드, 파이오니아가 서로를 바라보며 약속이나 한 듯이 작게 미소 짓는다.
"나중에 뒈져서 사이토 늙은이에게 할 이야기 거리가 많아지겠군."
"후후..."
오카리나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의 손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빛줄기들... 그것들은 그녀의 손안에서 뭉치더니 어느덧 하나의 채찍을 만들어냈다.
"오랜만이군요."
"그녀는 어디에 있지?"
오카리나의 인사를 무시하는 사이토... 피식 웃는 오카리나... 그녀 또한 사이토의 말에 대답하지 않은 채 모두를 향해 말하기 시작했다.
"자! 이제 배우들도 모두 모이고, 무대도 마련되었네요. 그럼 그에 따른 상품도 걸어야 겠죠?"
그녀의 머리위로 뜬 달이 조금씩 투명해지기 시작한다.
"가이아..."
사이토는 한발자국 앞으로 나서서 마치 잠을 자듯이 달 속에 웅크리고 있는 가이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것..."
오카리나는 허리춤에 걸려 있던 작은 단검을 들어올렸다.
"이건 이번 문제의 발단이었던 그 바이러스에요. 제 소멸과 가이아만으로도 상품은 충분할 듯싶지만, 이왕 하는 거 확실하게 하자는 의미에서 이것도 걸죠."
그녀의 손안에 있던 그 작은 단검이 둥실 떠오르더니 가이아가 잠들어있는 그 붉은 구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자! 그럼 시작할까요?"
오카리나가 두 손을 활짝 펴며 크게 외치자 대전 안은 조금씩 요동치기 시작했다. 대전 곳곳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일어서기 시작한다. 수는 근 60여명... 꾸물거리던 검은 그림자들은 곧 형체를 만들어냈다.
"이들은 지난 10여 년 동안에 게임을 주름잡던 최강자들의 데이터를 합성해 만들어 낸 이들이죠. 아아, 얕보지는 말아요. 그래뵈도 모두 2급 AI들이니까."
사이토는 앞쪽에서 상당히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케인도 있고, 케이지도 있다. 그리고 지금은 무급운영자 '천'으로 활동하는 이의 모습도 보인다.
"당신이네요?"
"재미있군. 후후..."
용자의 무구를 모두 소환한 케인이 똑같이 생긴 자신을 마주 마라보며 눈을 빛낸다. 갑자기 사이토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 그럼 모두 물러서세요. 저도 시작하겠습니다."
뜻 모를 말을 내뱉는 사이토이지만, 일행은 순순히 사이토에게서 물러섰다. 그만큼 사이토의 눈은 진중했다.
사이토는 배낭 속에서 예전에 강진에게 받아 든 그것을 조심스럽게 꺼내 들었다. 얼핏 보면 볼품없어 보이는 검은색의 작은 상자... 그 위로는 열림 방지용인지 작은 금줄로 묶여 있었다.
"봉인 해제"
사이토와 강진은 이 물건에 대해 꽤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오카리나에게 물건을 들키지 않기 위해 최대한 언급을 자제했다. 그녀가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을 지켜보고 있으리라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차아아아...
사이토가 봉인해제라는 시동어를 말하자 상자위의 금줄이 저절로 풀려 나가고 뚜껑이 열렸다. 상자 안으로부터 쏟아지는 요동치는 불꽃... 그것은 마치 사이토를 녹여 버릴 듯 사이토를 향해 거세게 쏟아져 내렸다. 잠시 후 상자 안에서 쏟아지던 불꽃이 멈추자 사이토는 상자를 옆으로 던져버렸다.
"후우욱..."
이 상자는 사이토가 할 수 있는 최고이면서 최악인 선택의 결과이다. 온 몸을 따라 거센 에너지가 마구 요동치는 것이 느껴진다. 에너지는 마치 그의 몸을 뚫고 분출할 듯 피부를 돌아 휘돌아 간다.
"하아앗!"
사이토의 명치를 따라 금빛 에너지가 솟아나와 그의 온몸을 적신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오카리나... 그녀로써도 지금 사이토에게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모든 것이 끝난 후 사이토의 온 몸에서는 은은한 광채가 흘러 나왔다.
"후훗... 쩝..."
바뀐 몸을 돌아보며 씁쓸하게 입맛을 다시는 사이토... 할아버지의 캐릭터를 이런 식으로 희생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이제는 그의 분신이 된 이 캐릭터... 지금 그가 한 것은 일종의 인간폭탄이었다. 이 폭탄의 뇌관은 사이토 자신... 캐릭터에 융합된 폭탄은 사이토의 명령에 의해서 폭발하고 폭발하는 순간, 반경 30미터 안의 데이터들을 모조리 소멸시켜 버린다. 그에 따라 엄청난 버그들과 시스템 에러가 나타나겠지만, 초기화 보다는 나으리라. 또한 이 방법이 오카리나를 잡는 최후의 방법이라는 생각해 왔었다. 이제 그 준비가 끝났다.
"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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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좀 허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 그러나 굳이 결말을 짓고 싶지가 않더군요. 음..뭐랄까... 그 뒤로부터는 조금 천편 일률적인 스토리라서요 굳이 제가 끝을 내기 보다는 여러분들의 상상에 맡기고 싶습니다. 뭐...그거 지요. 그동안 리얼판타지아를 사랑해 주신 여러분 감사 드립니다. 데자부는 곧...곧..-_-;; 그래봤자.. 며칠 안이겠지만... 새로운 작품을 들고 찾아 뵙겠습니다.
ps1. 제가 어릴적 습작으로 썼던 작품을 발견하다! -_-;; 너무나 허접한 관계로 올릴까 말까 고민중이랍니다.
ps2. 짱돌은 사절..
...마지막으로... 근..1년간...저의 작품을 사랑해 주신 여러분...감사 드립니다.
차후에는..-_- 데자부의 신상과 함께 실물 공개도 추진해 보겠습니다.
그럼 이만~~... 즐겁게 읽으시고, 잠시나마 이곳에서 휴식을 가지시길...
=+=+=+=+=+=+=+=+=+=+=+=+=+=+=+=+=+=+=+=+=+=+NovelExtra([email protected])=+=
조롱받는 드래곤 "간다."
사이토가 일행에서 튀어 나왔다. 사이토가 말도 없이 먼저 공격을 들어간다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케인이 뒤늦게 소리 쳤지만, 사이토는 이미 적들에 둘러싸인 상태다.
"이 녀석!"
갑작스런 전투의 시작이었다. 때를 맞춰 오카리나가 소환한 분신들도 공격을 시작했다. 사이토를 쫓아 튀어나가는 아누비스는 사이토의 움직임을 보고 넍을 잃었다.
"대단하다."
사이토는 마치 물이 흐르듯 적들 사이를 빠져 나가고 있었다. 그 속도는 히든 스탯을 사용할 때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능수능란한 것이었다.
"조금만 더!"
그의 팔을 사납게 베고 나가는 장검을 피해내며 사이토는 오카리나를 향해 눈을 빛냈다. 이제 그녀와의 거리는 근 7미터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터진다고 해도 그녀를 끌어들일 수 있겠지만, 초근거리에서 터지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역시 나에게는 이게 나아..."
사이토는 그로 인해 타인이 희생당하는 것은 싫었다. 만약 이들과 그의 친구들이 전투를 재대로 붙는다면 적잖은 희생이 따를 것이다. 사이토는 차라리 자신이 모두 짊어질지언정 자신의 일로 타인이 고통 받는 것은 원치 않는다. 마지막으로 그를 가로막는 엘프기사를 뛰어넘은 사이토는 그대로 오카리나가 있는 왕좌로 뛰어 들어갔다.
"으읏!"
피리리링!
튀어 들어가던 사이토는 그를 향해 날카롭게 쏘아 들어오는 빛줄기들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오카리나의 빛줄기들을 피해 빠르게 움직이는 사이토... 그의 눈은 왕좌에 앉은 오카리나를 향해 매섭게 빛나고 있다. 그것을 유심히 지켜보던 오카리나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번쩍 들었다.
"일어나라."
그녀의 작은 속삭임... 갑자기 바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은 느낌에 더욱 격렬하게 오카리나에게 다가가려 하지만, 빛줄기는 절대로 통과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사이토를 막아낸다.
오카리나의 앞으로 눈부실 정도의 밝은 빛이 생성되었다. 잠시간의 대치상황이 흐른다. 그의 뒤로는 케인들과 소환체들 간의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지만, 오카리나와 사이토 사이에는 일순간의 적막이 흐른다. 아니 사이토는 움직일 수 없었다.
"가이아?"
공중에 떠 있던 가이아가 오카리나의 앞으로 나타났다. 너울거리는 은색 머리카락... 오카리나와 같은 하얀 갑옷을 입은 가이아는 마치 오카리나와 쌍둥이인 듯 보인다. 감겨있던 가이아의 눈이 번쩍 떠졌다.
"크윽!"
엄청난 중압감이 느껴진다. 오카리나의 앞을 막아서는 듯 나타난 가이아가 사이토를 향해 손을 뻗었다. 찰나간 불길함을 느낀 사이토는 옆으로 피했고 그 불길한 느낌에 대한 걱정은 곧 기우가 아니라는 것이 나타났다.
꽈드드드득!
마치 거대한 무형의 손아귀가 잡아 틀은 듯 공간 자체가 찌그러진다. 그 안에 얼떨결에 잡혀 들어간 몇몇 소환체들이 그 무형의 손아귀에 찌그러들어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해버린다.
"비겁하다! 오카리나..."
사이토가 외쳤다. 대꾸하지 않은 채 얇은 실웃음만을 띈 오카리나... 오카리나를 향해 이를 뿌드득 간 사이토는 가이아의 공격을 피해 갔다.
"가이아! 제발 비켜 줘!"
"..."
전혀 변화가 없는 가이아의 얼굴...그녀는 마치 꼭두각시 마냥 사이토를 공격해 들어왔다. 한동안 공격을 피해 내던 사이토는 더 이상 이런 식의 대응은 무의미 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잠시 뒤로 멀찌감치 물러선 사이토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가이아... 미안해. 아무래도 너를 끌어들일 수밖에 없는 것 같구나."
"..."
"그렇지만...그렇지만... 이 말만큼은 꼭 너에게 해주고 싶었어.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깨달 아 버렸지만, 너에게 이말 만큼은 꼭 해주고 싶었어."
처연한 표정으로 가이아를 바라보는 사이토...
"사랑해. 꽤 오래전부터 널 좋아하고 있었나봐."
그 말을 끝으로 하며 사이토는 폭발적인 속도로 오카리나를 향해 뛰어 갔다. 빛줄기가 사이토의 손목을 베고 들어왔다.
츠컥...
다인슬레터의 손목을 포함한 절반이 잘려 날아갔다. 그러나 그로 인해 사이토는 목표물의 바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마지막이다! 발동!"
사이토의 가슴을 중심으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은 것을 느낀 오카리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지?!"
사이토의 가슴에서 뿜어져 나온 빛줄기는 곧 9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반구를 만들어냈다. 그 안에는 오카리나와 그녀의 빛줄기들, 그리고 일부의 소환체들과 마지막으로 가이아가 들어가 있다.
"시작인가..."
드드드드드드....
사이토의 가슴으로 검은 구멍이 생성되었다.
"큭!"
뒤늦게 오카리나가 저항을 하려 했지만, 그녀 또한 자유롭지 못한 듯 조금씩 사이토에게 빨려 들어간다.
"일종의 폭탄이다. 반구형 안으로 들어온 것들은 데이터 째로 모조리 빨아들여 부셔 버리지. 너도 끝이다!"
"아! 안돼!"
뒤늦게나마 그 흡수에 저항하는 듯 오카리나의 주위로 공간이 일그러질 정도의 에너지가 생성되었지만, 그것마저도 사이토의 가슴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검은 구멍은 마치 블랙홀인양 모든 것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바닥이 둥글게 뜯겨져 나가서 검은 구멍을 빨려 들어간다. 바닥이 뜯긴 자리는 묘하게도 검고 붉고 반투명하게 변해 있다. 지금 사이토가 사용하는 것은 게임상의 타격이 아닌, 데이터 자체를 소멸시켜 버리는 것이다. 사이토의 가슴을 향해 가이아가 끌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안돼! 이럴 순 없어!"
오카리나는 발버둥 쳤다. 사이토에게 끌려 들어가지 않으려 온힘을 다해 버티는 것이다. 그녀의 몸 곳곳에서 가는 입자들이 뿜어져 나와 검은 구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신체가 붕괴되어 가는 것...
"아아..."
오카리나는 끝내 검은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손을 시작으로 천천히 몸이 뭉그러뜨려 지며 빨려 들어가는 것이다. 한동안 저항하던 오카리나는 곧 눈을 빛내며 손을 반대편으로 뻗었다. 그녀의 손이 뻗친 곳은 바로 가이아... 가이아 또한 그 구멍에 대해 저항하고 있었지만, 오카리나의 손이 그녀에게 펼쳐지자 가이아는 저항을 멈추고 오카리나의 손아귀로 잡혀 들어갔다.
"안돼!"
사이토 또한 가이아를 밀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이미 그 검은 구멍은 사이토의 몸 전반을 집어 삼켰다.
"저리가! 가이아! 이곳에 들어오면 소멸 되어 버린단 말야!"
사이토의 처절한 이침에도 불구하고 가이아는 마치 사이토에게 안기듯 구멍 안으로 빨려 들어왔다.
"제기랄!"
파아아앗...
"끙... 죽어서 로그 아웃 한건가..."
힘겹게 떠지는 눈... 마치 누군가가 눈꺼풀을 짓누르는 듯 눈을 뜨는 것이 힘겹기만 하다.
"응? 여기는 어디지?"
거리를 알 수 없다. 바닥 또한 보이지 않는다. 다만 그가 어딘가 기대어 앉아 있다는 것만을 자각할 수 있다.
"사이토씨..."
그의 곁에서 들려오는 아련한 목소리... 작게 떨리는 애달픈 목소리였다.
"가이아..."
가이아가 두 눈에 눈물을 가득 담은 채 그의 곁에 앉아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 그대로... 너울지는 하얀 옷을 입은 채 그의 곁에 앉아 있다. 그녀의 떨리는 동공 안으로 비추는 자신의 모습...
"오랜... 만이지?"
"네... 후훗."
사이토가 피식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쓸어 넘겨주자 가이아 또한 작게 미소 지으며 미소를 보였다.
"윽... 여긴 어디야?"
엄습하는 상처의 고통... 오카리나의 빛줄기에 잘렸던 손목이 그대로 상처를 드러내고 있다. 사이토는 자신의 모습을 둘러보며 가이아에게 물었다.
"그게... 이곳이 어딘지 모르겠어요. 저도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것 같네요. 그리고 사이토씨는 아주 오랫동안 잠들어 계셨어요. 거의 현실시간으로 3일 정도씩이나..."
가이아의 대답에 사이토는 생각에 잠겼다. 일단 가장 의심이 가는 인물은 바로 오카리나 였다. 어쩌면 소멸을 막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으리라. 결과적으로는 가이아의 기억과 사고 또한 보존 될 수 있었지만, AI들이 아닌 살아있는 자신 또한 이곳으로 오게 된 것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난리가 나겠군."
"후훗, 그래도 저는 좋은걸요. 사이토씨랑 이렇게 함께 있을 수 있게 되었다는게..."
소담스럽게 사이토에게 안겨든다. 이마에 굵은 땀을 흘리는 사이토...
"혹시... 들었어?"
"네. 들었어요."
그 낯 뜨거운 말을 들어 버렸다는 무안스러움에 사이토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데, 이제 밀쳐 내지 않네요? 저번에는..."
볼을 빨갛게 물들이며 안겨오는 가이아...아마 예전에 가이아의 육탄 공세를 피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리라. 사이토 또한 볼이 붉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아, 그 때는 확실히 강간이었다구."
"쿡쿡... 그럼 이제는 아니에요?"
가이아의 얼굴이 조금씩 가까워져 온다.
"글쎄..."
얼버무리기는 하지만, 그녀의 입술을 피하지는 않았다.
드드드...
그러나 가까워져 가는 둘의 입술을 방해하는 것이 있었으니, 갑자기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조금씩 붕괴되어 가는 것이 느껴져요."
"응? 무슨 말이야."
"이 공간이... 붕괴되어 가요. 아주 조금씩이기는 하지만, 사라져 가는 걸요."
서글픈 눈의 가이아였다. 그녀는 알고 있으리라. 이곳이 모두 붕괴되는 순간...그녀의 모든 것이 소멸된다는 것을...
"붕괴되는데 얼마나 걸릴까?"
"그건...저도 잘 모르겠어요. 어쩌면 붕괴가 가속화 될지도 모르고, 혹은 조금 느려질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붕괴가 되어 간다는 것은 절대 변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사이토는 가이아를 마주 안아주었다.
"미안... 고백이 너무 늦은 거 같아..."
그 후로 그들은 서로 많은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었다. 붕괴가 언제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들은 현재 그들이 누릴 수 있는 지금 이 시간에 충실했다. 비록 서로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둘은 행복해 했다. 그렇게 날짜의 개념을 알 수는 없는 어두운 공간이건만 그들의 시간은 꼬박 며칠이 지나갔다.
"나, 언제까지나 기억해 줄 꺼죠?"
"응... 항상 내 가슴속에 네 자리를 만들어 줄께."
"나... 절대 잊으면 안돼요. 우리가 함께 했던 그 시간들... 절대 잊지 말아요."
사이토는 울먹이는 가이아를 보듬어 안아 주었다. 공간의 붕괴는 이제 그들의 자리까지 침범해 오고 있었다.
"사랑해요."
"사랑해..."
서로 부둥켜안은 두 연인들은 곧 공간의 일그러짐 속에 묻혀 사라져 갔다.
파팟!
"?"
공간의 일그러짐을 끝으로 가이아와 작별을 하고 이제 완전히 게임 밖으로 나올 줄 알았건만, 지금 사이토가 서 있는 장소는 바로 오카리나와 마지막 전투를 나눴던 그곳이었다.
"어떻게 된 거지?"
캐릭터도 그대로 살아있다. 아직도 그의 가슴에는 다인 슬레터가 입혀져 있고, 손목의 상처 또한 생생하다.
"이 녀석! 한 시간씩이나 어디를 다녀오는 거야!"
머리를 강타해 오는 익숙한 느낌...
"에? 케인씨?"
"에는 무슨 에야! 오호라... 우리는 그 힘겨운 전투를 마치고 모두 늘어져 있건만, 너는 여자나 옆에 끼고 희희낙락하고 있었단 말이지? 너 이놈! 밀레나한테 일른다!"
"여자라뇨?"
문득 가슴에 안겨 있는 익숙한 느낌이 있다. 고개를 돌려 자신의 가슴에 안겨 있는 것을 본 순간... 사이토는 놀라움에 눈이 휘둥그레 해 졌다.
"가이아?!"
가이아는 사라지지 않은 채 그대로 사이토의 품에 안겨 있었다.
눈을 꼬옥 감은 채로, 마지막 사이토의 느낌을 소멸의 그 순간까지 기억하겠다는 듯 그의 가슴을 있는 힘껏 가득 안은 채로...
"이 녀석! 한 시간 동안이나 어디에 가 있었냐?"
가이아와 같은 미인을 안고 있는 사이토가 부러웠는지 케인이 심통맞은 얼굴로 물었다.
"한시간이라뇨. 저는 거의 며칠 동안이나 그 공간 안에 있었는데?"
"이게... 게임 속에서 자다 왔나... 무슨 봉창 두들기는 소리야. 우리가 그 빌어먹을 소환체들 과의 싸움을 끝낸 게 거의 1시간 전이구만..."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이지 알 길이 없는 사이토였다. 그러나 그 해답을 대답해 주는 이가 있었으니...
"축하드립니다. 사이토씨..."
사이토는 머리 위쪽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검은 머리카락을 너울진 오카리나가 공중에 떠 있었다.
"그 시간은 제가 만들어 낸 거에요. 거짓된 공간이기에 가능한 저만의 기술이죠."
빙그레 웃음 진 오카리나의 얼굴에서는 한 점 악의도 느낄 수 없었다. 그녀는 마치 공간의 계단을 밟고 내려오듯 사이토의 앞으로 사뿐히 내려 왔다.
"고마워요. 제 기대에 부응해 줘서..."
"?"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을 모르는 사이토는 그렇게 가이아를 품에 안은 채 그 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에필로그 "오빠! 검 아직 다 안 만들어 졌어요?!"
"으응, 조금만 더 기다려 줘. 재료 구하기가 힘들다구."
마치 자신의 노예라도 되는 양 사이토를 닦달하는 밀레나이다. 실없는 웃음만을 흘리던 사이토이지만, 곧 그 웃음은 영업용 웃음으로 변모한다.
"저, 이 검 얼마에요?"
"아! 그 숏소드는 2000골드입니다."
"으음, 너무 비싸다. 저기 나중에..."
"네에..."
사이토의 가판대 앞에 진열되어 있는 숏소드를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던 여자 도둑은 곧 고개를 흔들면서 다른 가판대로 가버린다.
"허허, 장사가 그렇게 쉬운 줄 아냐?"
"예? 헤헤, 뭐... 이렇게 차근 차근 배워 나가는 거죠."
사이토의 대답에 그의 옆에서 식료품 가판대를 연 채 책을 읽고 있던 노인정 길드의 맥스가 혀를 찬다.
"쯧쯔... 제 할아버지는 그렇게 상술이 좋더구만..."
"헤헤..."
"오빠 그럼 나중에 봐요."
"응, 너도 게임 조금만 해. 곧 임용고시라면서..."
약간의 걱정이 섞인 사이토의 말이다.
"쳇... 뭐, 오빠가 이미 취직이 됐으니까, 저까지 할 필요는 못 느끼네요. 어차피 나중에 다 내 꺼니까."
"윽..."
밀레나의 광오한 일침을 가한 뒤 거리 저편으로 팔랑팔랑 사라져 버리자, 사이토는 그 자리에서 못 박힌 채 식은땀만 흘리고 있다.
"녀석... 꽉 잡혔구만..."
고개를 흔들어 대는 맥스...
"잡힌 게 아니라 잡혀 준 거라니까요."
"어험, 아무튼 처신 잘해라! 너는 이제 우리 노인정 길드의 막내니까!"
"아...네."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자리에 앉던 사이토이다. 어쩌다가 자신이 노인정 길드에 최연소 막내로 들어가게 되었는지, 후회막급이건만 이제 엎질러진 물이다. 그 때 그의 머릿속으로 메시지 하나가 떠올랐다.
[무급 운영자 '백호'님은 지금 즉시 카모프 왕국의 수도 아바론의 21섹터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이토의 얼굴이 차갑게 변했다.
"맥스님... 저 잠시 어디 좀 다녀올게요."
"음, 그래."
노점을 내린 사이토는 자리를 정리한 채 근처의 골목으로 향하였다. 사람이 잘 들어오지 않는 으슥한 골목... 사이토는 배낭에서 검은 색의 로브를 꺼내 입었다. 등에 보이는 것은 리얼판타지아의 무급 운영자를 상징하는 황금빛 문장이다.
"에, 카모프 왕국이라... 음, 좌표가 어떻게 되더라."
한동안 꾸물되던 사이토는 곧 낮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긁적였다. 전에 몇 번 다녀왔음에도 또다시 까먹어 버린 것이다. 사이토는 어쩔 수 없이 메시지 창을 조용히 띄웠다.
[가이아... 좀 도와줘.]
대답이 없다.
"얘가 자고 있나..."
[가이아! 가이아! 제발! 대답 좀 해.]
카마프라하 왕국 상업도시 빌로아의 어느 한 골목에서는 오늘도 무급 운영자 한명이 머리를 부여잡고 끙끙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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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속으셨는지... -_- (음 선작이 꽤 떨어지신 걸 보니...후후후..)
마지막 가는 길 ... 데자부의 마지막 악질적 장난 이었습니다. (재미있었어..ㅠㅠ.)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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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작품 공지랍니다.
아아... 역시나 한 작품의 처음을 끊는다는 것은 힘든 일이군요.
거의 며칠동안 뒹굴고 싸매다가 조금 전 잠을 자려 이불속에 파묻혔습니다.
갑자기 저의 노곤한 뇌에 스타트가 마구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일어나서 드디어 스타트를 끊었습니다.
초고 이기는 하지만, 퀠리티가 너무 좋은 관계로 그냥 올립니다.
이것이 저의 두 번째 작품입니다.
제목은 - 이 시 아- 입니다.
그럼 즐독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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