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Edge of the cliff (1)
화장실에서부터 뿌옇게 흐려지던 기억이 까만 단면을 보이며 뚝 잘렸다. 그러다 침대 위로 장소를 옮긴 최기원이 유두를 살며시 핥아 올려 그의 머리를 밀어내던 기억이 한 번, 입 안에 꽉 들어선 최기원의 손가락에 숨 쉬기 어려워 눈이 돌아가던 기억이 한 번. 그러고는 제대로 정신을 잃었는지, 온통 암흑이었다.
끔뻑끔뻑. 침대에 누운 나는 아침 햇살이 번진 하얀 천장을 멍하게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곱씹어 봤자 좋은 기억이 아니었다. 어쩐지 몸이 처지고 속이 답답해 식은땀에 젖은 이마를 쓸어 넘기려는데, 달싹 손을 움직이자 묶인 왼손까지 딸려 왔다.
‘아….’
묶인 손목도 그대로, 혹시나 하고 더듬어 보니 목에 둘러진 목걸이도 그대로였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던 책장 신세만은 면하게 해 주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언제까지 이걸 하고 있어야 하는지 막막했다. 울컥, 눈물이 나오려 했지만 나는 코를 먹으며 가까스로 눈물을 참았다.
다시 눈을 감았으나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뜨기에도 버겁게 부은 눈꺼풀을 겨우 들어 올리고 침대 시트를 짚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전신의 뼈와 근육이 삐걱대며 아려 왔다. 특히 어제 아무런 준비 없이 최기원의 것을 받아 들였던 구멍은 열상을 입은 것처럼 화끈하고 아릿한 통증이 밀려왔다. 겨우 붙은 살이 다시 찢어진 것 같다.
황량한 머릿속에서 어제의 기억이 다시 떠오르기가 무섭게, 난 슬리퍼에 발을 끼우고 절뚝대며 너른 방을 돌아다녔다. 책장에 꽂혀 있는 책 중 아무거나 손에 닿는 것을 꺼내 펼쳤다. 악몽 같은 기억에 잠식되기 전에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조급함에 사로잡혔다.
유리창을 통과한 햇볕이 잘 읽히지 않는 글자 주변으로 흩어졌다. 초점이 맞지 않아 여러 개로 보이는 글자 아래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 억지로 눈에 담았다. 미간은 찌푸려지고 입에선 소리가 되지 못한 웅얼거림이 흘렀다.
그러나 글자와 글자 사이의 빈 곳에 자꾸만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 엉겨 붙었다. 조금만 집중하지 않으면, 끔찍한 기억이 영사기처럼 반복된다.
싸해진 최기원의 눈치를 살피던 식탁, 그 아래에서 풍겨 오던 양고기의 향. 정강이가 다 부딪히도록 질질 끌려가던 계단의 미끄러운 촉감과 코피가 뚝뚝 떨어지던 새하얀 바닥. 싫다는 말을 할 때마다 목을 찢어지게 괴롭혔던 진동.
“아-,”
어느새 나는 묶인 손으로 목걸이 주변을 사정없이 긁고 있었다. 손가락에 희미하게 남은 핏자국을 확인하고 나서야, 목에서 따가움이 느껴졌다. 얼른 파우더룸으로 가 목을 확인했다. 벌겋게 성이 난 손톱자국이 목울대에 가득했다. 떨리는 손으로 레버를 올려 냉수를 튼 나는 손톱 끝에 매달린 핏방울을 말끔하게 씻어 냈다. 쓰라린 통증이 목걸이 주변의 기분 나쁜 간지러움을 조금이나마 가시게 했다.
결국 책도 잘 읽히지 않아 다시 침대에 드러누웠다. 멍하게 천장이나 벽을 바라보며 시간을 죽이다 노크 소리가 들려와 흠칫 고개를 돌렸다. 잠깐의 정적 후 문고리가 천천히 돌아갔다.
“식사 놓고 가겠습니다.”
사용인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나는 두꺼운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 올렸다. 이런 모습을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조심스러운 발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왔다. 죽은 듯이 숨죽이고 있는 동안 이불 안에 뜨뜻미지근하고 불쾌한 공기가 체류했다.
콘솔 테이블 위에 묵직한 쟁반을 내려놓는 소리, 그리고 잠시 뒤 좁은 보폭의 걸음 소리와 함께 다시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
그제야 눈 아래까지만 이불을 끌어 내렸다. 방 안에 아무도 없다는 확신이 들고 나서야 이불을 완전히 젖힌 난, 이질적인 냄새가 풍겨 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묽은 단호박 죽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분명 허기가 지는 것 같긴 한데, 노란 죽과 각종 채소 반찬이 정갈하게 담겨 있는 것을 보자마자 욕지기가 일었다. 나는 다급하게 침대에서 내려서 화장실로 뛰어갔다.
“우, 우욱….”
그러나 화장실이 멀리 있어 차마 변기까지 가지도 못한 채 방 중간에서 입을 가리고 등을 들썩였다. 다행히도 쏟아져 나오는 건 없었으나 토악질 소리에 다시 목에 걸린 목걸이가 아프게 진동했다. 목을 쥐고 밭은 숨만 내쉬던 나는 다시 침대로 기어들어 갔다. 음식 냄새가 코 아래로 치미지 않도록 숨을 참고 또 참으며 눅눅한 이불 속에서 젖은 눈을 꾹 감았다.
글자를 읽는 것도 죽을 떠먹는 것도 제대로 못 하겠다.
그저 자고, 또 자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차가운 공기에 이불 속으로 더 파고들었다. 누군가 어깻죽지를 부드럽게 두드렸다. 더 자고 싶었으나 최기원이 깨우는 것 같아 억지로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
몽롱하게 부유하는 시선이 낯선 이를 확인하자마자 반사적으로 크게 뜨였다. 침대 곁에 서 있는 사람은 바로 그 불편한 기운을 풍기는 경호원이었다. 힘 빠진 몸이 긴장 때문에 바짝 굳었다.
“왜….”
목걸이 때문에 길게 묻지도 못했다. 눈을 찌푸리며 미미한 진동을 참던 중 경호원이 손대지도 않은 아침 식사 쟁반을 눈으로 흘긋 확인했다.
“아주머니께서 점심 식사 들고 가시기에 제가 대신 들어왔습니다.”
그러니까 왜. 저 사람이 뭔데 멋대로 이걸 대신 들고 오냐는 말이다. 내 표정에 퍼지는 불쾌감에 그가 멋쩍은 얼굴로 뒷덜미를 주물렀다. 한 손에 든 쟁반은 어디에 놓아야 할지 고민하다 그냥 책상 위에 올려놓곤 말을 이어 갔다.
“운동도, 수업도 취소되었더라고요. 어디 편찮으신가 해서….”
“…무슨 상, 관….”
찌르르, 목젖이 아파 겨우 잇던 말도 문장이 되지 못한 채 흩어졌다. 경호원은 내 목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상처를 향해 무작정 손을 뻗었다. 나는 누운 채로 그의 손을 힘껏 밀어냈다. 그러는 사이 경호원은 내 손목이 묶인 것까지 알아챘다.
잠시 표정이 모호해진 그가 제 턱을 한 번 쓰다듬더니 귀에 연결된 투명한 이어폰을 뺐다. 그러곤 나를 향해 몸을 낮추고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신고해 줄까요?”
그는 대답을 기다리는 듯 침묵하며 내 얼굴의 멍과 목덜미의 긁힌 상처도 살폈다. 단정하게 정돈된 짧은 머리 아래의 짙은 눈썹이 찌푸려져 있었다. 걱정하는 표정 같기도 하지만 알게 모르게 느껴지는 찜찜한 시선에 나는 입을 꾹 다물고 그를 쳐다보기만 했다.
“사장님 안 계십니다, 지금.”
속삭이듯 낮게 읊조리는 목소리에 혹했으나 당장 경찰에 신고한다고 한들 무엇 하나 떳떳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게 없다. 다 큰 성인이 이 집에 왜 이러고 있냐고? 글쎄, 6,000만 원에 등 떠밀려 내 발로 걸어 들어온 기억이 났다.
최기원에게 맞은 건 맞냐고 묻겠지? 상상 속에서 그렇다고 끄덕이자 증거를 묻는 아무개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당황한 내가 증거는 없지만 정말 맞았다고 하니 왜 진작 신고하지 않았냐고 물어 온다. 비딱한 시선에 벌써 주눅이 들어선, 최기원이 동생 병원비를 주기로 했다고 대답하자 모르는 이들이 이죽대는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뭐냐고, 결국 돈 받은 것 아니냐고.
“피… 납니다.”
“…….”
또 정신없이 목을 긁고 있었다. 경호원이 손목을 낚아채는 손길에 겨우 상념에서 벗어난 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말라붙은 입술을 벌려 다 쉬어 버린 목소리를 짜냈다.
“나, 가요….”
경호원은 붙들었던 내 손목을 놓더니 방문을 흘긋 살폈다. 아랫입술을 혀로 축인 그가 아침 식사 쟁반을 챙겨 들고 자리를 떴다. 저벅저벅 문을 향해 걸어 나가는 소리에 다시 이불을 정수리까지 끌어 올리고 웅크린 나는 문이 닫히는 소리만 기다렸다. 그러나 문이 열리는 소리 대신 달칵, 하며 안에서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다시 저벅대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어딘가 황급하게 느껴지는 발걸음 소리는 소름 돋게도 점점 가까워졌다.
‘……뭐야, 뭐지.’
어두컴컴한 이불 속에서 눈알이 바쁘게 돌았다. 내뱉는 호흡이 불규칙적으로 얽힌 순간 테이블 위로 쟁반을 툭 놓는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 이상해 몸을 일으키려는 것과 동시에 이불이 확 걷어졌다.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경호원이 내 어깨를 꾹 누르며 몸을 붙여 왔다.
“뭐, 하는 거 아, 윽…!”
“잠시만, 잠시만요….”
목소리를 내자마자 목에서 진동이 콱 울렸다. 경호원은 잠긴 문을 여러 번 힐끔대며 한 손으로 내 몸을 마구잡이로 문질렀다. 가슴과 배를 쓸 때마다 얇은 홈웨어가 제멋대로 끌려 올라가며 헐벗은 몸이 드러났다.
경호원은 유두 주변의 잇자국과 허리에 남겨진 손바닥 자국의 멍을 보곤 놀란 듯 헛숨을 뱉었다가 다시 손을 뻗어 맨살을 마음껏 주물렀다. 두툼한 손바닥이 배를 쓸 때마다 나는 있는 힘껏 바르작대며 고개를 마구 저었다. 두려움에 눈물이 섣부르게 터져 나왔다.
“으, 저리, 가… 윽.”
“도대체 사장님한테 무슨 잘못을 한 거예요?”
“시, 싫, 흐윽….”
“거짓말하지 마세요. 신고도 안 하면서 싫다고만 하면 누가 믿는다고.”
어깨를 짓누르는 손을 밀어내려 했으나 납덩이가 꾹 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아예 침대 위로 무릎걸음을 내디디고, 밀어내는 내 손을 억지로 끌어 내려 제 앞섶에 가져다 댔다. 경호원이 짙은 차콜색 정장 바지의 두툼한 윤곽 위로 내 손바닥을 꾹 겹쳤다. 그와 동시에 끓는 듯한 신음이 터졌다. 뜨거운 기둥이 불끈대는 것이 손바닥 아래로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는 그렇게 내 손을 겹쳐 누른 채로 진득하게 허릿짓을 했다. 뭉근하고 불룩한 성기의 촉감이 천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대로 느껴졌다. 그는 계속 바깥을 흘긋대며 손바닥에 아래를 마음껏 비비고 문질렀다. 음습한 공기가 숨통을 고통스럽게 짓누르는 것 같았다. 나는 큰 목소리도 내지 못한 채 뻐끔대며 애원했다.
“미쳤, 흐, 윽. 하지, 마요…. 제, 발….”
이 집엔 정상이 없다. 피 묻은 바닥을 닦고 때맞춰 음식을 가져다주면서도 정작 나를 알은체도 안 하는 수많은 사용인들. 그렇게 최기원의 개로 묶여 있는 걸 알면서도 아랫도리를 세우며 달려드는 인간까지. 밖으로 뛰어나가 아무나 붙잡고 하소연한들 모두가 나를 미쳤다고 하지 절대 내 말을 믿어 주지 않을 정도로, 그 정도로 이곳은 비현실적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사타구니 주변을 내 손으로 꾹꾹 누르던 경호원이 길게 한숨을 뱉으며 내 손을 놓아주었다. 가슴팍으로 툭 떨어진 묶인 손이 갈 곳을 잃고 바들바들 떨렸다. 나는 필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침대 구석으로 몸을 피했다. 그는 엉덩이걸음으로 도망치는 나를 보며 끙, 하고 앓더니 침대에서 내려섰다.
“아……. 진짜 좋은데.”
“흐, 으…윽.”
“사장님한테 들키면 큰일 나겠죠?”
교도소와 다를 바 없는 방 안을 찬찬히 살펴본 경호원이 뒷덜미를 긁으며 기분 나쁘게 헤실댔다.
“뭐 저도 죽겠지만, 그건 백나언 씨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그가 힐끔, 다시 잠긴 문을 살피더니 내 쪽으로 다가와 손을 뻗었다. 어깨를 흠칫 떨며 벽에 등을 더 바짝 붙이자 뻗어진 그의 손도 덩달아 움찔댔다. 낮게 웃는 소리를 낸 경호원은 움츠렸던 손가락을 마저 뻗어 뺨을 쓸어 주었다. 이미 젖을 대로 젖어 버린 차가운 볼을 벅벅 닦아 주곤 쟁반을 챙겨 방을 나섰다.
나는 무릎을 세워 앉은 채 멍하게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발치에 구겨져 있는 이불을 끌어 올려 찢어진 입 안으로 욱여넣었다. 목에서 피 맛이 나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온 힘을 다해서 울었다. 악을 지르며 흐느끼는 소리가 꽉 막힌 두꺼운 이불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미친 인간들뿐인 이 집에 적응하는 것보다, 내가 미쳐 버리는 게 더 빠를 것 같다.
정신을 잃은지도 몰랐는데,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어느새 어둑하게 해가 진 다음이었다. 해가 진 창문의 풍경이 현실인지, 아니면 잠결에 보인 허상인지 헷갈렸다. 꿈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실감 났고 현실이라고 하기엔 어딘가 뿌옇게 흐린 듯했다.
그때 문이 열리며 바깥의 환한 빛이 쏟아졌다. 눈알만 겨우 굴린 난 방으로 들어오는 인영을 확인했다. 등 뒤로 2층의 조명이 비쳐 와 어두운 방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의 얼굴이 정확하게 보이지 않는다. 검은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리며 어두운 얼굴을 읽기 위해 애썼다.
최기원?
아니면 저녁 식사를 가지고 온 사용인?
그것도 아니라면 …경호원?
뒷골이 서늘해지며 심장이 가쁘게 뛰었다. 얼른 몸을 일으키고 싶었으나, 손가락 끝까지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색색대며 흩어지는 숨이 지나칠 정도로 뜨거웠다.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검은 인영에 숨이 꼴깍, 넘어갈 것처럼 잘 쉬어지지 않았다. 누군가 물속에 얼굴을 처박고 뒷덜미를 꾹 누르고 있는 것만 같다.
“왜 이래.”
달칵 소리와 함께 콘솔 위의 조명이 켜졌다. 아래에서 퍼진 따뜻한 색의 조명이 한없이 차가운 얼굴을 비췄다.
짙은 눈썹, 곧은 콧대, 도톰한 입술, 그리고 회색의 눈. 최기원인 것을 확인하자마자 참았던 숨이 와르르 쏟아졌다. 나는 정신없이 쿨럭대며 최기원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무표정한 얼굴에 언뜻 당혹스러움이 비치고, 그가 손을 뻗어 내 이마를 짚었다.
오늘따라 너무나 차가운 그의 손바닥 때문에 전신에 소름이 일었다. 그가 와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건가. 그건 그렇고… 내가 지금 숨을 제대로 내쉬고 있는 것일까.
“백나언, 정신 차려.”
사지를 파들파들 떨던 나는 최기원이 어깨 아래로 손을 집어넣어 일으키는 것을 마지막으로 까무룩 눈을 감았다. 코끝에 미미하게 와 닿고 있는 최기원의 향에서 왜 안도감이 드는 것인지 끝내 이유를 찾진 못한 채였다.
***
참 오랜만에 맡아 보는 냄새였다. 맡을 때마다 기운 빠지던 그 냄새가 오늘따라 유독 기뻤다. 아마도 주언이를 보러 병원에 가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나는 병원에서만 맡을 수 있는 특유의 소독약 냄새를 폐부 깊숙이 들이켜며 감았던 눈을 떴다.
부유하는 초점 끝, 노란 물과 투명한 물이 사이좋게 걸려 있는 링거대가 먼저 닿았다. 그 아래로 연결된 줄로 시선을 미끄러트리자 손등 위에 꽂힌 바늘과 바늘을 고정하고 있는 투명한 반창고 스티커가 보였다.
그제야 손목이 묶여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링거 바늘이 꽂혀 있지 않은 손을 들어 목을 더듬었다. 목을 아프게 옥죄었던 목걸이 대신, 두툼한 거즈가 붙어 있었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누워 있는 1인용 간이침대 주변으로 하얀 커튼이 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
규칙적으로 인쇄된 파란 글씨를 한참 바라보다 겨우 병원이라는 글자를 읽어 냈다. 그러고 나서도 한참 글씨를 되뇌고 나서야 이곳이 주언이가 입원한 병원의 응급실이라는 것을 완연하게 깨달았다.
정확하게 언제 정신을 잃었는지, 언제 이렇게 병원까지 도달한 것인지. 뭉텅이로 잘려 나간 기억은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요 며칠 사이 자꾸만 정신을 잃는 탓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짜 기억인지도 헷갈렸다. 무언가 생각이라도 하려 하면 머리는 안개가 낀 것처럼 부옇게 흐리기만 했고, 뒷골을 울리게 하는 두통 때문에 겪은 일을 길게 되짚을 힘도 없었다.
그때 커튼 틈 사이로 불쑥 손이 들어오더니 침대를 둘러싼 커튼이 걷혔다. 도록 눈알만 굴리자 내 뜬 눈을 확인한 최기원이 보였다. 한쪽 눈썹을 끌어 올린 그가 마저 커튼을 치고 가까이 다가섰다. 바깥의 겨울 냄새와 묵직한 담배 향이 소독약 냄새를 흐리게 만들었다. 또렷하지 않은 감각 속에서 최기원의 목소리가 불분명하게 들려왔다.
“언제까지 안 먹나 했는데. 기어코 숨이 넘어갈 때까지 굶을 셈이었네요.”
“…….”
“억지로라도 목구멍으로 넘겨 줘야겠네.”
빈정대는 말투였지만, 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눈에 담았던 그의 표정을 알기에 나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고 시선을 거두었다. 그는 자리를 뜨지 않고 자주색 싸구려 쿠션이 딸린 의자에 걸터앉았다.
“수액 다 맞으면 동생 보러 가요.”
흠칫 손가락 끝이 튀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예상치 못한 말에 내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최기원은 그 특유의 무감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
그렇게 뚫어지게 그를 쳐다보던 나는 흠, 하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면 그렇지, 이건 빌어먹을 꿈이었다. 다시 눈을 뜨면 어두컴컴한 방 안에 손목이 묶인 채로 쓰러져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책장에 묶여 있을 수도. 나도 모르게 흐느껴 울다 목에서 피 맛이 나도록 울리는 진동에 바닥을 처참하게 기고 있겠지. 다른 것도 아니고 주언이를 보러 가라니. 깨면 더욱 비참할, 참으로 거지 같은 꿈이었다.
“지금 정신 안 차리면 후회할 텐데.”
내 웃음을 보고 비슷하게 비틀린 미소를 지은 최기원이 뺨을 가볍게 툭 쳤다. 뺨에 닿는 서늘한 손가락과 미미한 통증이 아무래도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진짜 같다. 나는 무심결에 손을 뻗어 최기원의 손목을 붙잡았다. 힘이라고는 조금도 들어가 있지 않았으나 그는 팔을 멈추어 주었다.
“……진짜예요?”
소리는 거의 나지도 않게 뻐끔뻐끔 물었다. 색색대는 숨소리 끝에 갈라진 목소리가 섞여 들자마자 놀란 내가 퍼뜩 소리를 낮추었는데, 어깨를 움츠리고 나서야 목을 옥죄던 목걸이는 이미 풀어져 있단 것을 깨달았다.
최기원이 갑자기 무슨 바람이 일어 이러는지 모르겠다. 내가 아픈 것으로 동정심을 느꼈다기엔, 지난번 열이 펄펄 끓는 나를 데리고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녔던 전적이 있었다.
변덕처럼 건네진 그의 호의에 고맙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게 맞는 것인지 아니면 또 무슨 속셈이냐고 따져 물어야 할지 얼른 판단을 내리지 못한 사이 시간이 하염없이 흘렀다. 내가 그의 손목을 붙잡은 채로 간절하게 올려다보고만 있자 그가 느른한 목소리로 성의 없는 대답을 남겼다.
“싫으면 말고.”
도리도리 고개부터 저었다. 얼른 고개를 돌려, 남은 수액의 양을 확인했다.
또옥, 똑. 규칙적으로 떨어지는 수액 방울이 너무나 느린 것만 같아 마음이 초조해졌다. 저 좀생이의 마음이 언제 변할지 모를 일이었다.
***
“본다고 빨리 떨어지는 것 아니에요.”
한참 시간이 흘렀으나 수액은 제자리인 것만 같다. 고개를 젖혀 수액 양만 확인하고 있는 나에게 최기원이 훈계하듯 말했다. 슬쩍 고개를 내리자 최기원이 손을 뻗어 내 눈두덩이를 꾹 덮었다.
“짜증 나게 굴지 말고 좀 자요.”
나도 자고 싶었으나 조금만 있으면 주언이를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눈을 가린 손바닥 아래에서 눈을 깜빡대자, 속눈썹이 그의 손바닥을 간지럽힌 모양이었다. 그가 혀를 낮게 차곤 ‘자라니까.’라며 얼굴을 살짝 쥐고 흔들었다. 그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얼른 눈을 감았다. 확실히 아까보단 열이 내려 그의 손이 아주 조금은 따뜻하게 느껴졌다.
결국 수액을 다 맞을 때까지 한숨도 자지 못했으나 나는 꿋꿋하게 눈을 감고 있었다. 링거액이 다 되자 최기원이 간호사를 불렀고, 링거 바늘을 빼고 뒤 처치를 하는 동안 나는 벌써 침대에 앉아 신고 나갈 신발을 찾고 있었다.
최기원은 발치에 내려 둔 종이 가방들을 침대 위에 올렸다. 뭐냐는 뜻으로 그를 올려다보자 그가 작은 한숨과 함께 대답했다.
“신발까지 챙겨서 올 정신은 없어서.”
종이 가방에는 신발부터 상의 하의, 두툼한 외투까지 들어 있었다. 모두 가격표가 뜯어져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내가 쓰러져 있는 동안 사람을 시켜 사 온 물건 같았다. 꾸벅, 최기원에게 인사하고 땀에 젖은 홈웨어 단추를 하나씩 풀었다. 최기원이 뒤에 서 있는 것이 신경 쓰였으나 지금은 달리 옷을 갈아입을 공간이 없었다.
커튼 바깥은 응급실답게 지나치게 소란스러웠다. 왜 자신부터 봐 주지 않냐고 따지는 환자의 소리, 긴박한 상황이 지나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퇴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튼 너머로 들려왔으나, 좁고 갑갑한 이 침대 주변만은 지독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최기원이 사 온 검은색 목 티를 입고, 바지도 꿰입었다. 지퍼를 올린 뒤 청바지의 단추를 잠갔는데, 허리춤에서 손을 떼자마자 속옷 밴드가 보일 정도로 바지가 슥 내려갔다. 얼결에 다시 추켜올렸으나, 지나치게 큰 바지가 다시 슬쩍 내려갔다.
“몇 주 전에 숍에 갔을 때랑 같은 사이즈 옷인데. 다 크네요?”
“…….”
“진짜 밥 안 먹으면 죽여 버릴 테니까 그렇게 알아요.”
“……네.”
최기원이 화를 억누르는 목소리로 ‘밥’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자마자, 경호원이 저녁 식사를 들고 방을 찾았던 일이 떠오르며 속이 부대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티를 낼 순 없었다. 나는 입술을 꾹 깨물며 토악질이 이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특실 병동은 응급실과는 떨어진 곳에 있어 조금 걸어야 했다. 최기원이 앞서 걷고, 나는 그를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쌀쌀한 1월의 겨울바람이 눈가와 뺨에 시리도록 부딪혔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움츠리는 대신 눈에 닿는 모든 곳을 유심히 살펴보며 걸었다.
사람들로 복작이는 거리는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었다. 패딩을 껴입고 병원의 둘레 길을 종종걸음으로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자꾸만 시선이 머물렀다. 그들이 부럽다기보단 그저 마음이 헛헛해, 구멍 뚫린 가슴 속으로 옛 추억이 불쑥 침범해 왔다.
-있지. 주언이도 나을까?
-그럼.
-이 길 걱정 없이 걸어 보는 게 소원이야.
-주언이 퇴원할 때, 여기 꼭 한 번 걷고 가야겠네.
작년, 뜨거운 태양 빛이 아스팔트로 쏟아지던 여름날. 잠시 짬을 내어 나를 보러 온 지원이 형과 병원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고, 사이좋게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으며 이 길을 걸었었다.
무서워 울먹이는 주언이를 ‘괜찮다, 곧 끝날 거다.’라며 어른스럽게 달래던 나도, 지원이 형만 보면 없던 어리광을 끄집어냈다. 아무래도 나도 위로받고 기대고 싶어 내심 더 서러운 척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귀가 찢어져라 매미가 우는 그늘 아래에서 형은 내 어깨를 툴툴 다독이며 다정하게 웃어 주었었다. 손 속의 아이스크림보다 그 목소리가 훨씬 달콤하고 부드러웠다.
그땐 이렇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형이 가는 길 조금이라도 편할 수 있게, 괜찮다고, 나 잘 해낼 수 있다고 말해 줄 걸 그랬다.
“……?”
그때 불쑥 차가운 손이 턱을 들어 올렸다. 차가운 바람을 맞아 평소보다 얼굴이 더 하얗게 질린 최기원이 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많이 아픕니까?”
“아니요.”
“그럼 왜 울어요?”
아닌데…. 낮게 읊조린 나는 손을 들어 뺨을 문질렀다. 정말 가슴 한편이 먹먹했을 뿐, 눈물이 날 정도로 슬프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뺨이 눈물로 흥건했다. 코를 훌쩍이며 손바닥으로 눈물을 다 닦아 냈다. 최기원이 무어라 말하려 하다 손을 내리고 뒤돌아 걸었다. 이번에는 다른 생각이 들지 못하도록 고개를 푹 떨어뜨린 채 최기원의 구두 뒷굽만 보고 걸음을 옮겼다.
이미 저녁 시간이 지나 소등한 병원 복도는 어둑했다. 나와 최기원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복도의 조명이 반짝 밝아졌다. 최기원은 바깥에서 기다리고, 나는 주언이의 병실이 있는 쪽을 향해 홀로 걸어갔다.
병실에 다가갈수록 심장이 쿵쿵댔다. 주언이는 잘 있으려나, 갑자기 온 나를 보고 너무 놀라 경기하는 것은 아닐까. 수만 가지 감정과 걱정이 복잡하게 교차했다. 작게 심호흡한 후 노크를 하고 들어섰다.
먼저 발견한 건 가습기의 물을 갈고 있던 간병인이었고, 넓은 보폭으로 조금 더 안으로 걸어 들어가자 침대에 등을 기대고 앉아 휴대 전화를 만지작대고 있는 주언이가 보였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고 부러 아무렇지 않게 아이를 불렀다.
“백주언, 형 왔어.”
“……형?”
형! 주언이가 소리치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입꼬리가 찢어져라 맑게 웃는 주언이의 얼굴에 순식간에 울음이 섞여 들었다. 입술을 비죽대고 눈을 열심히 깜빡이던 주언이는 결국 참지 못하고 성마른 울음을 토해 냈다.
“혀, 으흥, 혀응….”
“응, 주언아.”
“왜,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돼….”
“…미안, 형이 미안해.”
숨이 가쁘게 우는 아이를 향해 의연하게 웃어 보이며 미안하단 말을 되뇌었다. 서럽게 우는 아이를 능숙하게 달래며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난 주언이에게 부러 어른스러운 척을 한 적이 없었다. 언제나 약하고 여린 아이 앞에서 난 무조건 어른이 되어야 했던 것이었다.
헐떡이는 마른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마음껏 울라고 어깨를 내 주었다. 시근덕대는 아이가 점차 울음을 그쳐 가고, 제 호흡을 되찾을 때까지 괜찮다며 속삭여 주고 포근하게 안아 주었다. 콧물을 매달며 징징대는 아이에게 달콤한 과일 주스 하나를 뜯어 물려 주고 나서야 겨우 병실이 조용해졌다.
침대 옆 의자에 몸을 떨어뜨린 난 아이의 동그란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장염 많이 힘들었구나? 살이 많이 빠졌네.”
“그냥…. 이제 괜찮아.”
“밥은 잘 먹고 있는 거야? 화장실은 잘 가고?”
고개를 끄덕이던 주언이가 주스를 내려놓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형은? 형은 얼굴이 왜 이래? 어디 아파?”
“형? 아닌데. 건강한데.”
반사적으로 뺨을 쓰는데, 아이의 눈이 손등에 닿았다. 링거 바늘 자국 위로 테이핑한 것을 보자마자 주언이의 눈이 크게 뜨였다. 아마 누구보다 잘 아는 자국일 것이다. 아차 했지만, 이미 늦었다.
“거짓말….”
길고 차가운 바늘이 몇 번이고 손등을 헤집어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던 주언이는 내 손등의 바늘 자국을 보자마자 큰 눈에 눈물방울을 그렁그렁 매달았다. 평소엔 투닥거리며 장난만 잘 치는 놈이, 오랜만에 본다고 자꾸만 눈물을 보인다. 이러면 떼 놓고 가는 내 마음이 더욱 무거워지는 것도 모르고. 나는 부러 눈을 휘게 웃으며 손사래 쳤다.
“오버하지 마. 형 괜찮아.”
히끅대며 고개를 끄덕인 아이가 겨우 눈물을 멈추었다.
허락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휴대 전화가 없어 평소처럼 같이 모바일 게임은 하지 못했으나, 나는 주언이에게 바짝 붙어 아이의 팀이 이길 때까지 열심히 응원해 주었다. 밀린 수학 문제집 검사도 해 주고, 주언이가 띄엄띄엄 쓴 일기도 꼼꼼하게 읽었다. 내가 보고 싶다는 말과 사소한 투정이 한가득 담긴 쪽에서는 쉽사리 종이를 넘길 수 없었다.
어느새 잘 시간을 훌쩍 넘겼음에도 쉽게 자리에 눕지 않는 주언이에게 몇 번이나 금방 오겠다고 약속을 하고 나서야 아이는 겨우 눈을 감았다.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작은 가슴팍을 내려다보며 나는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한 번 뒤돌면 미련이 두 번 발바닥에 옮겨 붙을 것 같아, 간병인 아주머니께만 인사를 남기고 도망치듯 병실을 나왔다.
문을 꾹 닫자마자 참았던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어깨 한 번 들썩이지 않고 뚜욱, 뚝 굵은 눈물만 흘리던 나는 열과 눈물 때문에 아른거리는 눈을 손등으로 벅벅 문질러 닦아 냈다.
“가요….”
울음을 억지로 누르고 꺼져 가는 목소리를 뱉어 내자, 병실 앞 소파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던 최기원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고요한 병동 복도에 최기원의 구두 소리와 내 운동화 소리가 번갈아 가며 울렸다.
병동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그의 차가 비상 깜빡이를 켠 채 서 있었다. 싸늘한 공기에 어깨를 말고, 말없이 그 차를 향해 걸어가는데 최기원이 내 팔을 붙잡아 돌려세웠다. 하얀 입김을 뱉으며 그를 올려다보자 그가 주머니에서 무언가 노란 것을 꺼내 툭 내밀었다.
“차에 먼저 가 있어요.”
조금 냉담한 어투와 함께 건네받은 건 따뜻한 유자차 병이었다. 얼어붙은 손끝에 번지는 미미한 온기를 느끼며 차에 올라탔다. 이미 히터로 데워진 차 시트에 엉덩이를 붙이자 금세 몸이 녹진하게 풀어졌다.
손으로 유자차 병을 만지작대며 바깥으로 시선을 돌렸다. 담배를 잇새에 물고, 입술 사이로 뿌연 연기를 뱉어 낸 그의 표정은 평소와 같이 냉랭할 뿐이었다.
익숙한 담배 향을 매달고 차에 올라탄 그는, 한 번 와 봐서 눈에 익은 길을 여느 때처럼 거칠게 운전했다. 빠르게 뒤를 향하는 노랗고 빨간 불빛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나는 흔들대는 머리를 차창에 기대었다.
“다음 달 입원비랑 항암 치료비 수납했어요.”
최기원은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내가 얌전히 망가져 가고 있는 유일한 이유를 읊어 주었다.
“…감사합니다.”
나도 희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느새 내 손의 냉기를 알음알음 뺏어 간 유자차는 차게 식었다.
오는 길에 최기원이 말하길, 주언이의 항암 일정이 2주 뒤로 미뤄졌다고 했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일이었다. 아이의 컨디션이 최상일 때 진행하더라도 며칠은 예의 주시해야 할 만큼 독한 치료였다.
담당 교수님께서 아무래도 지금 상태로는 무리이니, 체력을 회복할 때까지 연기하는 것이 낫겠다는 의견을 주셨다. 항암을 진행하며 일정이 어그러진 건 몇 번이나 겪었던 불가항력적 일이지만, 이번엔 어쩐지 아이를 자주 찾지 못한 내 잘못인 것만 같았다.
최기원과 내가 나란히 집으로 들어온 것은 거의 한 달 만이었다. 코트 주머니 속의 유자차 병을 만지작대며 어색하게 떨어져 복도를 걸었다. 집에 들어서면서부터 코트를 벗어 팔에 걸친 최기원은 본인 침실 대신 2층 내 방으로 향하는 계단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앞서 걷는 너른 등을 보고 주먹을 움켜쥔 난 조심스럽게 그를 따라 걸었다.
최기원이 먼저 방에 들어서고, 내가 문을 닫자마자 그가 코트를 바닥에 툭 떨어뜨렸다. 그는 무심한 얼굴로 다가와 내 뺨을 양손으로 감싸 올리며 진득하게 입을 맞추었다. 벌어진 입술 새로 파고든 그의 혀가 건조한 입 안을 부드럽게 훑고 지나갔다.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느낌에 몸에 힘이 콱 들어갔다. 쿵 소리가 나도록 등이 부딪히고, 나는 눈을 감으며 잇새로 달뜬 신음을 흘렸다. 뜨겁게 젖은 최기원의 입술이 상처 난 입술을 집요하게 머금었다. 숨이 차 고개를 조금 틀어도 틈은 벌어지지 않고 입꼬리에 입술이 스치는 간지러운 입맞춤이 이어졌다. 그는 내가 바르작대며 빠져나가지 않도록 한 팔로 내 허리를 단단하게 고정했다.
“흐, 읏….”
단단한 치골과 허벅지를 내 아래에 진득하게 비비며, 그는 내 귀, 뺨, 턱선으로 입술을 미끄러뜨렸다. 난 목을 젖히며 떨리는 호흡을 겨우 뱉어 냈다. 간지러운 느낌에 손을 허우적대다 그의 단단한 팔뚝을 붙잡았다. 동시에 그는 팔을 거칠게 돌려 내 손을 떼어 낸 뒤, 곧장 큰 손으로 깍지를 껴 제 허리를 껴안게 끌어당겼다. 손바닥에 셔츠가 닿고 그 아래로 미지근한 그의 살 온도가 선연하게 전해지는 순간 허벅지 안쪽에 빠듯하게 힘이 들어갔다.
최기원답게, 키스 역시 집착적이었다. 내 움직임을 따라 고개를 비틀며 키스를 이어 갈 때마다 입술이 짓뭉개졌다. 꽤 오랜 시간이 흘러 입술이 얼얼하고 화끈하게 부어오를 때 즈음, 점차 입맞춤이 느른하게 잦아들고, 입 안 곳곳을 훑고 나온 혀도 스윽 빠져나갔다. 나는 입술을 벌린 채로 희미하게 헐떡였다.
최기원은 내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맞붙이곤, 침으로 흥건하게 젖은 입술을 느리게 두 번 머금고 떼어 냈다. 갑자기 멈춘 키스에 눈을 떠 그를 올려다보자, 나와 눈을 맞춘 그의 눈꼬리가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그의 긴 한숨 끝에 작은 욕설이 섞여 들었다.
“씻고 일찍 자요.”
그는 떨어진 코트를 들고, 주머니에 들어 있는 약 봉투를 꺼내 선반 위에 던지듯 올렸다.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눈을 끔뻑이며 입 주변을 손등으로 문지르고 있는 나를 살짝 옆으로 치운 그가 허무하게 방을 떠났다.
“…….”
닫힌 문에 등을 기댄 채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른세수를 한 나는 느린 움직임으로 코트를 벗었다. 주머니를 축 처지게 했던 식은 유자차는 책상 위에 놓였다. 뚜껑을 돌려 뜯지도 않아 투명한 스티커가 반짝이는 노란 병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왜 다정해?’
병을 향해 물었다. 왜 내가 쓰러졌을 때 걱정하는 표정을 짓고, 왜 갑자기 변덕처럼 주언이를 보여 줬냐고. 왜 이런 같잖은 음료수를 건네서 속을 불편하게 만드는 거냐고. 열이 끓어도 목을 틀어쥐고 당연스레 아래를 너덜거리게 만들었던 때처럼 자비 없이 굴지, 왜 이대로 맥없이 방을 나가 버렸냐고.
수많은 의문을 툭툭 모나게 던졌으나 당연하게도 노란 병에게선 아무런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최기원이 오늘따라 유독 마음이 약해진 이유가 뭘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많이, 지난번보다 훨씬 많이 아파서 그런 것 같다. 침대에 걸터앉은 나는 손을 들어 이마를 짚었다. 아직 현기증이 일고 뜨겁긴 했으나, 아까처럼 열이 펄펄 끓지는 않았다.
어쩐지 불안해져 손끝을 자꾸만 비비적대게 된다. 허물 벗듯 옷을 벗어 내린 난, 땀에 전 몸을 씻기 위해 샤워 부스로 들어갔다.
눈을 감고 쏟아지는 물로 천천히 몸을 데웠다. 김이 솟아오를 만큼 따뜻한 물을 맞던 내 표정이 점차 어두워졌다. 오늘 있었던 일을 되새긴 난, 한 번 더 이마를 짚어 보았다.
“…….”
푹 젖은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조심스럽게 레버에 손을 올려 냉수 쪽을 향하도록 끝까지 돌렸다.
쏴아아.
순식간에 훈기가 사라지고, 뼛속까지 아릴 만큼 차가운 물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쏟아져 내렸다. 발치로 떨어져 내리는 물방울을 멍하게 내려다보며 더, 더 몸이 차갑게 식어 얼어붙길 기다렸다. 물이 닿는 곳곳이 아리다가 이내 아무런 감각이 없어졌다. 곳곳에 붉은 자국이 피어나고, 전신이 얼어 버릴 때까지 양껏 찬물을 끼얹고 나서야 레버를 끄고 샤워 부스를 나섰다.
수건으로 몸을 닦으며 거울 속 나를 마주 보았다. 극심한 추위에 잠깐 현기증이 일어 눈앞이 까맣게 물들었다, 깜박이며 초점이 돌아왔다. 얼굴은 하얗고, 손끝은 빨갰으며 덜덜 떨리는 입술은 새파랬다. 주저하지 않고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었다. 꽝꽝 얼어붙은 손끝이나, 이마나 얼음장 같긴 매한가지였다.
속옷과 새 홈웨어를 입은 나는 꾸물꾸물 침대로 돌아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차가운 물 때문에 떨어진 체온이 쉬이 올라오지 않아 몸이 파들파들 떨렸다. 차마 이불까진 포기하지 못해, 모로 누워 웅크린 채 눈을 꾹 감았다.
내일은 더 아팠으면 좋겠다.
아예 며칠을 눈을 못 떠, 그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약해졌으면. 오늘처럼 수액만 다 맞으면 주언이를 만날 수 있다고 말해 준다면 쥐약이라도 한 움큼 털어먹을 수 있었다. 자조적인 웃음을 터뜨린 나는 쏟아지는 졸음을 이겨 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
그렇게 죽은 듯이 잠에 빠진 나는 불현듯 소스라치게 놀랐다. 시트를 밀며 몸을 번쩍 일으키고, 핏발 선 눈알로 문을 살폈다. 분명, 문고리가 끼익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사위는 고요하고 또 어둑했다. 후욱, 후욱. 내가 뱉는 떨리는 숨에 가슴이 뻐근하게 짓눌렸다. 가슴을 부여잡은 난 선잠을 깨운 소리의 근원을 향해 다가가기 위해 이불을 걷어 냈다.
슬리퍼에 발을 끼우고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어두운 방을 가로지르고, 굳게 닫힌 하얀 방문에 귀를 가져다 댔다. 빠르게 뜀박질하는 심장 소리 때문에 바깥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
문고리를 잡을까, 말까 고민하다 결국 뒤돌아 침대로 돌아왔다. 편하게 앉지도 눕지도 못한 자세로 침대 헤드에 기대어 문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핏발 선 눈알에 불안이 덕지덕지 붙어 갔다.
문을 잠가야 하나? 문득 걸어 잠그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였다. 하지만 아침에 최기원이 와, 문이 잠겼다는 걸 알면 분명 미친놈처럼 굴 것이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 채 가려운 목을 벅벅 긁었다. 상처 위를 덧댄 거즈가 떨어져 나가고, 이미 손톱으로 긁힌 자국 위로 벌건 자국이 새롭게 죽죽 그였다.
낮에 있었던 일이 떠올라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갔다. 이대로 잠에 들었다가 그 경호원이 몰래 침실이라도 들어오면 꼼짝없이 당하고 말 것이다. 불안한 시나리오에는 자꾸만 살이 붙어 가며 나를 괴롭혔다. 1층에 최기원이 자고 있으니 그럴 리 없다는 상식적 판단이, 낮에 일로 비롯된 불안에 자꾸만 휘둘렸다.
무릎을 껴안은 자세로 졸았다. 고개가 떨어지고, 몸이 옆으로 기울며 잠에 빠지려 할 때마다 문고리가 달칵달칵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퍼뜩 몸을 일으켜 문 앞으로 가 서 있기도 해 보고, 벽에 기대어 웅크리고 있다 갑자기 문을 활짝 열어 보기도 했다. 이상하게도 방문 앞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목이 더 가려워졌다.
아무런 소득 없이 동이 터 오기 시작했다. 박명의 새벽빛이 하얗게 질린 얼굴을 파리하게 비췄다.
귀를 막고 무릎 사이에 이마를 파묻었다. 입술이 닿는 허벅지에 뜨거운 숨이 번져 나갔다. 분명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야 하는데. 귀를 막은 손 아래, 고막 아래 깊은 곳에서부터 문고리를 갉작갉작 돌려 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툭. 툭.
성의 없는 두드림에 겨우 건조한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무릎을 말아 세우고 침대 헤드에 기대어 졸고 있던 내가 고개를 들자, 최기원이 미간을 찡그린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도대체 쪼그리고 앉아서 뭐 하는 거냐고, 눈빛만으로도 쌍욕을 퍼붓는 표정에 주눅이 들어 변명을 주섬주섬 늘어놓았다.
“무, 무서운 꿈을 꿔-,”
“아침 먹게 내려와요.”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말허리를 뚝 끊어 버린 그가 쌀쌀맞게 뒤돌았다. 너른 등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 나는, 제대로 수면을 취하지 못해 어질한 시야를 겨우 붙들고 계단을 내려왔다.
1층에 가까워질수록 눅눅한 밥 냄새와 반찬 내가 진해졌다. 도대체 내면의 어디가 곪아 가느라 이러는지 모르겠으나 먹는 것, 자는 것 같은 기본적인 행위들을 몸에서 전혀 받아들이질 못하고 있었다.
코를 틀어막았다간 뺨이 얻어터질 것 같아, 입으로만 숨을 몰아쉬며 식탁에 앉았다. 내 몫으로 차려진 야채 죽과 반찬이 꼭 해치워야 할 산더미 같은 숙제처럼 보였다. 누군가 입 안에 마른 모래알을 잔뜩 욱여넣은 것같이 목구멍이 꽉 막히고 입 안이 꺼끌했다.
“먹죠.”
“…네.”
찻물로 입을 적신 최기원은 부라타 치즈가 올라간 샐러드와 아보카도 샌드위치를 먹기 시작했다. 나도 미지근한 물로 목을 축이고, 수저를 들어 죽을 살짝 펐다. 뒤늦게 풍기는 밥 냄새에 미간이 옅게 찌푸려졌다.
맛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조금씩 떠서 입에 머금었다. 미끄덩대는 죽이 역하게 느껴질 때면 물과 함께 숭덩숭덩 넘겼다. 차마 반찬은 쳐다도 보지 못하여서 젓가락은 단 한 번도 쓰지 않았다. 최기원은 평상시 속도대로 식사했기에 진작 접시를 비웠다. 내 죽은 2/3가 넘게 남아 있는 상태였다.
그가 식사를 끝내 나도 조심스럽게 숟가락을 내려놓자 최기원이 귀찮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 먹어요.”
“……전부는 힘들어요.”
“투정도 적당히 해야 귀여워요.”
“……정말 속이….”
하아…. 최기원이 눈알을 굴리며 일어섰다. 쿵쿵 심장이 조여들었다. 그의 손이 올라간 순간 이를 악물며 어깨를 움츠렸는데, 그는 뺨을 내려치는 대신 내 머리카락을 붙잡아 뒤로 확 당겼다. 순식간에 고개가 뒤로 젖혀지며 입이 벌어졌다. 그는 숟가락을 들어 죽이 담긴 그릇에 푹 처박았다.
김이 풀풀 나는 죽이 벌어진 입속으로 고스란히 쏟아졌다. 나는 몸을 파드득 떨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두피가 찢어질 듯이 머리칼을 쥐고 있는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커헉, 컥, 뜨거, 우으흑….”
“아, 해요.”
다시 죽이 한 뭉텅이 들어왔다. 반은 씹어 넘겼으나 반은 그대로 목구멍으로 넘어가 사레가 들렸다. 코끝이 찡하게 아려 오고 생리적인 눈물이 주룩 흘렀다. 나는 그의 손목을 손톱으로 긁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먹, 제가 으헉, 쿨럭, 먹, 을게요….”
“그래요, 그럼.”
그가 숟가락을 식탁 위로 휙 내팽개치고, 쥐고 있던 머리카락을 놓았다. 아직도 당겨진 두피가 얼얼했다. 내가 대리석 식탁 위에 침을 뚝뚝 흘리며 한참을 기침하는 동안 그는 식탁을 빙 둘러 제자리에 앉았다. 나는 손을 뻗어 나동그라진 숟가락을 쥐었다.
“…….”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죽을 퍼 입에 집어넣고 씹었다. 최기원은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한 표정으로 내가 죽을 먹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고개를 처박고 입 안 가득 죽을 퍼 넣었다. 울컥, 욕지기가 일어 물로 겨우 삼켜 내고 다시 숟갈로 죽을 담뿍 떴다.
“으, 욱….”
몇 입 더 억지로 삼켜 내던 것도 잠시, 이번엔 정말 이물이 목구멍을 역류하는 느낌이 선연했다. 입을 가리고 자리에서 일어선 나는 1층의 화장실로 가 변기 커버를 올리고 먹은 것을 모조리 게워 냈다.
“우욱, 우웩! 흐…욱….”
비틀대며 레버를 내리고, 겨우 세면대를 짚고 섰다. 손바닥 아래에 차가운 식은땀이 배어 나오고 눈에는 핏발이 섰다. 죽에 덴 입술을 차가운 물로 씻어 내며 눈물을 매단 눈꼬리도 문질렀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다이닝룸으로 돌아온 나는 힘 빠진 손으로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
그는 내가 몇 번이고 화장실로 뛰어가 먹은 것을 게워 내고 올 때까지 의연하게 자리를 지켰다. 숟가락이 그릇의 바닥을 차락 긁으며 마지막 한 입을 겨우 넘긴 순간, 최기원은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밥 다 먹었으니 약 꼭 챙겨 먹으라는 다정한 말이 초라한 식탁 위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생수병 하나를 들고 방으로 올라왔다. 선반에 놓인 약국 봉투를 뒤집어 뱀처럼 둘둘 감긴 약봉지들을 유리 위로 쏟아 냈다. 1일 아침 점심 저녁 식후 30분, 일주일 치 약 총 21봉지였다. 평소라면 곱셈으로 간단하게 구했을 해답을, 나는 몇 번이고 손가락으로 봉지를 짚어 가면서 세었다.
소화제, 진통제, 소염제, 해열제…. 색색의 약이 작고 불투명한 종이에 담겨 뒹굴고 있었다. ‘아침’이라고 적혀 있는 약을 뜯으려다 멈칫했다. 봉지를 뜯는 대신 무감한 얼굴로 이마를 짚어 보았다. 아직은 묵직한 열이 남아 있었다.
고민하던 나는 망설이다 뜯지 않은 아침 약 한 봉지를 쥐고 화장실로 뛰어갔다. 아무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문을 꽉 잠그고 몇 번이나 문틈을 흘끔거렸다. 떨리는 손으로 선반 속 깊숙한 곳에 놓인 파우치를 꺼낸 난, 안쪽 바닥에 약을 숨기고 지퍼를 꽉 잠갔다.
“후우….”
선반의 문을 닫으며 긴 숨을 뱉어 냈다. 퀭한 눈과 핏기 없이 하얗게 뜬 얼굴, 건조하게 갈라져 피가 비치는 입술이 생소했다.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에서 예전의 밝은 얼굴을 도통 찾기 힘들었다.
도망치듯 화장실을 빠져나온 나는, 선반을 부여잡고 긴 숨을 내뱉었다. 죄를 지은 것처럼 가슴이 조여들고 식은땀이 흘렀다. 허벅지에 손바닥을 문질러 배어 나온 땀을 닦아 낸 나는, 생수를 뜯어 반 넘게 들이켰다.
약을 숨겼다. 이건 분명 최기원을 재차 기만한 행동이지만, 약을 먹으면 왠지 다음 날이면 몸이 가뿐해질 것 같다. 그의 변덕스러운 다정함이 쥐도 새도 모르게 거두어질까 두려웠다. 오늘 아침만 해도, 조금 괜찮아 보이니 그런 식으로 죽을 먹였겠지.
“……?”
우두커니 방 한가운데에 서 있다 기민하게 고개를 돌렸다. 바깥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얼른 방문 앞으로 뛰어가 잠금 버튼을 누르고 귀를 기울였다. 2층 청소를 하는 모양인지 스산한 발소리는 금방 잦아들었다.
손을 들어 잠긴 문고리가 단단한지 살짝 흔들어 보았다. 최기원이 출근해 있는 동안에는 방문을 잠그고 있을 생각이었다. 달칵대는 소리가 들리든 말든, 절대 문을 열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 감금을 자처한 나는 그제야 안도감을 느끼고 침대 시트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손톱 옆의 살은 나으려 하면 뜯어 대 결국 피딱지가 앉았다. 건들지 않아야 하는 걸 잘 알면서도 무의식중에 딱지 위를 손톱으로 살살 긁었다. 새하얗게 빈 머릿속에는 유자차를 건네주던 무심한 손과 죽을 억지로 먹이던 자비 없는 손이 뒤죽박죽으로 겹쳤다. 어느 모습이 진짜 최기원인지 모르겠다.
느리게 고개를 돌려 창문을 바라보았다. 2층에서 내려다보이는 정원의 조경수와 조형물은 본래 높이보다 반쯤 작아 보였다. 높고 따뜻한 곳에 있으니 겨울바람의 한 자락에 흔들리는 앙상한 나뭇가지가 참 연약하고 아슬하게 보였다. 부러지지 못해 버티는 것이라면 대신 꺾어 줘야 할 것만 같아 마음이 쓰였다.
오전 무렵 해가 잘 드는 방이었다. 찬란한 햇살이 투명한 창을 통과해 이마와 콧등으로 쏟아졌다. 언제 또 바깥에 나갈지 모르는 일이기에, 하얀 얼굴로 고스란히 쏟아지는 따가운 햇살이 못내 아까웠다. 커튼을 치지 않고 일부러 햇살을 맞으며 시간을 죽이던 난, 불현듯 피어난 희미한 현기증에 그대로 쓰러지듯 누웠다.
열 번을 넘게 토하며 헤집어진 위가 쓰렸다. 배를 감싸 쥐고 태아처럼 몸을 둥그렇게 말았다. 밤새 한 시간도 채 제대로 자지 못해 벌겋게 충혈된 눈이 벽지와 선반, 천장과 책상을 정처 없이 오갔다. 기력이 쇠한 몸뚱어리는 수면을 격렬히 원했으나, 눈꺼풀을 감기만 하면 한 달 사이 몰아친 끔찍한 기억이 산발적으로 정신을 어지럽혔다. 나는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베개에 이마를 파묻고 이를 악물었다.
최기원이 밤마다 거칠게 나를 탐하고, 버거움을 견디다 못해 정신을 잃을 때까지 몰아붙여 까만 어둠으로 떨어뜨리는 것이 너무나 무서웠다. 그때마다 간절히 혼자 있기를, 얼른 최기원이 나를 내버려 두고 나가 주기만을 바랐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 방이 너무나 넓게 느껴졌고, 혼자 버텨야 하는 시간이 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안이 빼곡하게 박힌 목은 갑갑하고 가려웠으며, 이유 모를 울음이 자꾸만 토악질처럼 터져 나오려 했다. 차라리 고통에 못 이겨 까무룩 정신을 놓을 수 있다면 좋겠다. 사흘 정도 아무 생각 없이 깊게 잠들고 싶었다.
이불 안으로 몸을 꾸물꾸물 집어넣은 나는 어둠 속에서 눈을 천천히 감았다. 잠시 숨을 고르고 홀린 듯 양손을 들어 목으로 가져갔다.
“…….”
겹쳐진 엄지와 검지 아래로 작게 맥동하는 두근거림이 느껴졌다. 손아귀에 조금 더 힘을 주자 목젖이 빠듯하게 눌렸다. 내가 무슨 짓을 하는 것인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손끝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조금 더, 조금만, …더.
“으, 읍….”
혀를 입천장에 꾹 붙이고 숨을 참자 코 뒤부터 이마까지 피가 체류하며 얼굴에 시뻘겋게 열이 올랐다. 숨이 오가지 못하며 가슴이 동그랗게 부풀고, 이마에 핏줄이 섰다. 바들바들 떨면서도 무언가에 씐 사람처럼 목을 감싸 쥔 손은 풀지 않았다. 역설적이었으나 이렇게 해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한계까지 버티고 버티다, 결국 손보다 입이 먼저 벌어졌다. 이불 속에 머무르던 산소를 있는 힘껏 빨아들이며 목을 조이던 손을 떨어뜨렸다.
“푸, 흡, 쿨럭, 쿨럭….”
반사적으로 터진 기침에 쿨럭였다. 아릿하게 저려 오는 폐를 꾹 누르며 못다 쉰 숨을 몰아쉬었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밭은기침은 끊이질 않았다. 스스로 목을 졸랐다는 것에 대한 놀람과 충격도 잠시, 섬뜩하면서도 오묘한 기분에 표정이 멍하게 가라앉았다. 숨 쉬기 두렵고 힘겨웠던 그 아득한 순간, 돌연 가슴이 평온해진 순간이 있었다. 딱 한 템포의 망설임과 두려움을 넘는다면 왠지 더없이 편해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희미하게 들었다.
‘아니야, 그건 아니야.’
고인 침을 삼켜 내며 얼른 고개를 저었다. 제 마지막을 가늠해 보지도 못하고 떠나야 했던 지원이 형과 병마와의 힘겨운 싸움으로 저물어 가는 주언이를 곁에 두고선 절대 하면 안 되는 생각이었다. 손아귀의 압박감이 미약하게 남은 목덜미를 쓰다듬고 옅은 한숨을 흘렸다.
그때 노크 소리가 났다. 평소에 들리던 것보다 확연히 뚜렷한 소리에 눈을 홉뜨며 몸을 바짝 굳혔다. 덜컥, 덜컥. 문고리를 돌려 보더니 잠금 때문에 열리지 않자, 바깥에서 자그마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점심 식사 하세요.”
아프고 난 뒤에 늘 식사를 가져다주는 아주머니의 목소리였다. 불안하게 날뛰던 심장에 안도감이 번졌다. 실없는 짓을 하며 오전 시간을 날려 먹었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점심시간이 되었다. 굳은 뺨을 손바닥으로 꾹 누르며 몸을 일으켰다. 갑작스레 긴장했다 안도한 상태로 걸음을 옮기니 힘없는 발바닥이 바닥을 제대로 누르지 못하고 질질 끌렸다.
똑똑.
그녀는 그 짧은 새를 참지 못하고 재촉하는 듯 한 번 더 노크했다. 평소답지 않게 나를 재촉하는 아주머니의 태도에, 보폭을 조금 더 넓혀 걸으며 바깥을 향해 대답했다.
“앞에 놓고 가 주세요.”
“아, 그런데….”
아주머니가 말끝을 늘이고, 내가 문고리의 잠금을 돌리기 위해 손을 뻗는 순간 이질적인 목소리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백나언 씨, 잠시 들어가겠습니다.”
“…….”
“문 열어 주시겠습니까?”
씨발…. 욕이 저절로 튀었다. 숨이 더럭 막혀 오고, 문고리를 열려던 손이 그대로 굳었다. 겨우 평정을 유지하던 얼굴이 구겨지고 숨이 시근덕대며 차올랐다.
쾅쾅.
이번엔 아주머니가 아닌, 경호원이 문을 세차게 두드렸다.
“열쇠로 따기 전에 열어 주세요.”
“왜, 요… 무슨 일인데요.”
문고리를 꾹 잡고 겨우 잇새로 말을 뱉어 냈다. 불완전하게 뱉어지는 호흡 사이로 뭉개진 발음이 문 너머로 제대로 전달될 리 없었다. 인내심이 다한 경호원이 문고리 사이로 차가운 열쇠를 끼워 넣었다. 잠금장치가 돌아가는 마찰음과 함께 문은 맥없이 열렸다.
나는 피하듯 주춤대며 뒷걸음질 쳤다. 먼저 들어온 아주머니는 쟁반을 들고 옆으로 비켜서고, 경호원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저번과는 달리 지극히 사무적인 표정에 나는 입술을 짓씹었다. 저 얼굴이 역겹게 달아오른 꼴이 지금의 얼굴과 겹쳐 보여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비서실장님께서 식사하시는 것 확인하라고 하셨습니다.”
“…먹을 테니까 두고 가세요.”
“저기 앉으시죠.”
“내가 먹을 테니까 꺼지라고요…!”
쨍한 고함이 방 안을 울렸다. 꽉 쥔 주먹 아래, 손바닥의 살갗에 손톱을 따라 반달의 자국이 새겨졌다. 이 집에 들어온 이후 사용인들에게 단 한 번도 날을 세운 적 없었기에 그녀 역시 당황한 표정으로 나와 경호원을 번갈아 살폈다.
“아주머니, 나가 주세요.”
경호원의 일갈에 그녀는 가까운 선반 위에 쟁반을 내려놓곤 서둘러 방을 나갔다. 진절머리 나는 꼴 따윈 보기도 싫다는 듯 눈을 내리깔고 나가 버리는 그녀의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싶어졌다. 아주머니가 꾹 문을 닫자마자 경호원이 내 팔뚝을 잡아챘다.
“건드리지 마요….”
손목을 뒤틀며 빠져나가려 했으나 그의 손이 나를 더 단단하게 옭아맸다. 철저한 무시였다. 몸에 힘을 주고 버텼으나 그는 한 손으로 나를 강하게 끌어당겼다. 나를 인형처럼 질질 끌어다 놓은 그는 다른 손으로는 책상 의자를 빼내 여전히 뻗대고 있는 나를 강제로 앉혔다. 선반에 올려진 쟁반을 가슴 앞에 내려놓고 한 걸음 떨어져 섰다.
“식사하세요.”
“그쪽 있으면 밥 못 먹어요.”
“드셔야 합니다.”
“…….”
“실장님께서 어떻게든 먹이라고 하셨습니다.”
앵무새 같은 반응에 힘이 풀렸다. 고개를 늘어뜨린 난 수저를 들어 죽을 펐다. 기계적으로 입에 넣고 맛을 느끼기 전에 목으로 넘겼다. 음식에 시선을 고정하였으나 시야에는 말없이 서 있는 커다란 인영이 걸렸다. 언제 갑작스레 몸을 만질지 예측할 수 없다는 두려움이 치밀고, 나를 빤히 바라보는 시선 때문에 뺨이 따끔거렸다.
“…….”
억지로 자행된 식사에 속이 더부룩하게 불러 왔다. 수저 끝이 부르르 떨리고, 나는 치미는 토기 때문에 눈을 질끈 감으며 몸을 굳혔다. 숟가락을 놓고 생수를 들이켰다. 더 먹으면 분명 토할 걸 알면서도 다시 수저를 쥐었다.
그를 얼른 나가게 할 유일한 방법은 빌어먹을 이 죽을 얼른 다 먹는 것뿐이었다. 재촉하듯 입에 죽을 넣고 씹지 않고 삼켜 냈다. 죽 그릇이 비자마자 쟁반을 밀어 버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곧장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변기 커버를 올리고 고개를 처박았다. 밥알의 형태가 남은 토사물이 고스란히 물 위를 떠다녔다. 한 번 토하고 나니, 억지로 먹은 음식 때문이 아니라 역한 기억들 때문에 더 토기가 심해졌다.
등을 들썩이며 바닥까지 긁을 기세로 다시 고개를 처박자 비틀대는 등에 묵직한 손이 닿았다. 나는 파드득 몸을 떨며 그의 손을 강하게 쳐 냈다. 얼얼한 통증이 맞부딪힌 손끝에서 피어올랐다.
“나가라고.”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경호원을 있는 힘껏 노려보았다. 난감한 표정을 지은 그가 손을 거두고 한 걸음 물러섰다.
“틈만 나면 방에 들어오려고 하는 거…. 한 번만 더 했다간 최기원한테 전부 말해 버릴 거야.”
“예? 무슨….”
“…나가, 얼른.”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입술을 달싹이던 경호원은 무언가 못마땅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화장실 문을 닫은 그가 방을 나서자마자 하얀 뺨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주륵 흐른 눈물이 턱에 고였다가 화장실 타일 아래로 떨어졌다. 토한 뒤 힘없이 화장실 바닥에 늘어진 나는 쌀알만큼 자그맣게 피어난 곰팡이에 시선을 맞추었다. 호기롭게 경호원에게 대들었으나 그 사실을 최기원에게 말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손톱 옆 피딱지에서 다시 피가 번졌다. 당장 아주머니 앞에서 경호원에게 지랄했던 게 최기원의 귀에 들어가면 어쩌지, 하는 고민이 앞섰다. 어차피 먹어야 할 것, 그냥 얌전히 먹고 조용히 게워 버릴 걸 그랬나. 또 나 혼자만 정신 나간 놈처럼 굴었다는 후회가 뒤늦게 나를 괴롭혔다.
수만 가지 가능성을 셈하며 하염없이 시간을 죽이던 나는 천천히 일어나 입을 헹궜다. 시간이 흐르다 보니 내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던 것인지도 뿌옇게 흐려졌다. 스스로도 놀랄 만큼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표정이 가라앉은 난, 선반으로 걸어가 점심 약을 뜯어 다시 파우치 안에 숨겼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괜히 손으로 목을 꾹 눌러 보았다.
며칠 먹은 것이 없으니 목을 꾹 쥐는 것조차 버거웠다. 맥없이 손을 늘어뜨린 난 젖은 눈을 감고 죽은 듯이 잠에 빠져들었다. 쓰러지듯 맞이한 오랜만의 단잠이었다.
최기원이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 저녁 식사가 준비되었다. 먹는 것으로 두 번이나 어깃장을 놓은 결과, 내 몸 상태와는 별개로 일단 먹고 보는 편이 모두에게 낫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소 비장한 각오로 다이닝룸에 들어선 난, 최기원이 수저를 들기도 전에 숟가락을 들고 죽을 펐다. 숨을 참고 입 안에 든 것을 굴려 넘기자 최기원이 의자를 빼 앉으며 나른한 웃음을 터뜨렸다.
“잘 먹네요.”
입을 벌렸다간 그대로 헛구역질을 할 것만 같아, 대답 대신 꾸벅 고개를 숙이고 다시 죽을 펐다. 몇 번이나 숟가락을 집어 던지고 싶었으나 눈앞에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최기원이 무서워 겨우 다 넘겼다. 필사적으로 음식을 넘기는 내 앞에서 최기원은 여유롭게 저녁 식사를 이어 나갔다.
최기원이 식사를 끝내자마자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뒤집히려는 위를 꾹 누르며 곧장 2층으로 올라가는데 최기원이 나를 불러 세웠다. 복도 끝에서 멈춰 선 내가 주춤대며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그는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복도의 조명이 아른아른하게 번지며 그의 차가운 눈매가 조금 부드럽게 보였다.
가까이 다가온 그에게로 자연스레 시선을 올렸다. 차가운 손을 뻗은 그는 내 뺨을 꽉 눌렀다. 치아에 맞닿은 볼 안쪽의 여린 살이 아파 한쪽 눈을 찌푸렸으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내렸다. 최기원은 붕어처럼 볼살이 눌려 입이 벌어진 모습을 찬찬히 살피며 말했다.
“게워 내면 맞아요.”
“…….”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요. 씻고 올라갈 테니까.”
삐거덕대는 로봇처럼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한쪽 입꼬리를 느리게 올리며 내 귓바퀴로 손을 옮겼다. 차갑게 식은 손이 아직 열감이 남은 귓바퀴와 귓불을 진득하게 문질렀다. 손가락이 귀를 스칠 때마다 목 아래와 배에 오싹오싹 소름이 끼쳤다. 그의 커다란 손이 귀를 지나 이마를 덮었다.
“이상하다. 열이 안 내리네.”
약을 숨긴 파우치가 떠올라 주먹을 꾹 쥐었다. 어색한 표정으로 이마를 쓰다듬는 손길을 받아 냈다. 그는 나를 묘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다 느리게 손을 떼어 냈다. 최기원이 휘적휘적 침실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달아오른 귀에 남은 그의 흔적을 지우듯 세게 문질렀다.
흘긋 닫힌 방문을 살핀 나는 뜯어낸 저녁 약을 화장실에 가져가 숨겼다. 불안하게 오가는 시선 끝에 변기가 걸렸다. 들썩이면 언제든 속을 비울 수 있을 것 같은 상태였으나 입을 틀어막고 토기를 억눌렀다. 오늘 밤만큼은 제발 편안하게 흘러가길 바랐다.
샤워를 하고 뒤까지 준비하느라 시간이 꽤 걸렸다. 멀미하는 사람처럼 현기증이 일고 속이 뒤집혀 샤워 부스에서 몇 번이고 휘청댔다. 급속도로 몸이 망가져서 그런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씻기만 했음에도 전신엔 벌써 탈력감이 가득했다. 모락거리는 수증기로 가득한 화장실을 빠져나오자 마찬가지로 머리가 까맣게 젖은 최기원이 침대에 앉아 있었다. 그를 향해 옮기는 체념 섞인 걸음이 익숙했고, 그는 버튼을 눌러 방의 불을 꺼트렸다.
***
겨우 하루 손대지 않은 것에 대한 분풀이였을까. 편안하길 바랐던 것이 우스울 만큼 최기원은 나를 한계까지 몰아붙였다. 벗을 거면서 왜 꾸역꾸역 걸치고 나오냐고 조롱받았던 홈웨어는 뱀의 허물처럼 침대 이곳저곳에 널브러졌다.
최기원의 좆이 쉴 새 없이 드나들었던 구멍은 이제 닫히지 않고 미세하게 벌어진 채, 젤과 정액이 뒤섞여 희멀겋게 변한 액을 엉덩잇살 사이로 토해 냈다. 찢어질 것 같은 통증은 몇 시간 사이 무뎌지고, 이젠 저릿하고 얼얼한 통증만이 미미한 성감까지 부추겼다.
“하윽…!”
오랜 시간 동안 빨려 붉게 부어오른 유두 끝에 최기원이 이를 세웠다. 잘근대며 씹자 찌릿한 고통이 느껴져 허리를 뒤틀며 신음했다. 최기원의 뜨거운 혀가 따가운 유두 위를 쓸어 올리고, 그는 다시 내 다리를 제 어깨에 걸쳤다. 엉덩이가 시트에서 살짝 떠올랐다.
처음에야 예의 차리듯 콘돔을 뜯어 사용했으나, 이제 그도 그게 무의미한 짓인 걸 알았다. 이미 질척하게 더럽혀진 제 성기를 위아래로 쓰다듬고 재차 구멍 입구에 두툼한 귀두를 가져다 댔다. 전신에 비릿한 냄새가 진동했다.
“흐, 으….”
벌어져 있긴 해도, 그의 것이 드나들기엔 여전히 좁았다. 생살이 벌어지는 통증에 본능적으로 허우적대며 몸을 뒤로 물렸다. 오늘 낮만 해도, 최기원이 고통스럽게 몸을 짓이겨 정신을 잃게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너무나 버거운 행위가 몇 시간이나 지속되자 몸이 먼저 거부하고 나섰다.
“아, 윽!”
“하….”
빠듯하게 들어온 성기가 다시 깊숙하게 처박혔다. 다리를 어깨에 건 채로 최기원이 몸을 숙이자 내 몸이 반으로 접히며 그의 성기가 배 안쪽까지 더욱 깊게 삽입되었다. 고통에 몸을 바짝 조이며 허리를 띄웠다. 동시에 최기원이 인상을 찌푸리며 긴 숨을 뱉어 냈다. 배 안을 꽉 채운 성기가 불끈대는 것이 느껴졌다.
최기원은 내 머리칼을 손으로 쥐며 열이 끓는 목소리로 다그쳤다.
“조이지 마.”
하지 말란다고 마음대로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무자비하게 처박은 건 본인이면서 책임은 나에게로 돌리는 그의 말투에 울음이 터지려 했다.
“흐, 윽….”
가쁜 숨을 뱉어 내며 최기원의 어깨를 붙잡고 애원했으나 최기원은 진득한 허릿짓을 시작했다. 어깨에 걸쳐진 발가락이 오므라들고, 겨우 그의 어깨를 붙잡았던 손이 시트 위로 힘없이 떨어졌다.
철벅, 철벅. 접합부에서 들리는 소리가 끔찍했다. 위로 살짝 휘어진 그의 성기가 아래에서 위로 처박히며 내장 안쪽을 꽉꽉 짓눌렀다. 그의 선단이 요의와 사정감 사이의 아찔한 부분을 자꾸만 농락하듯 건드리고 지나가고, 그때마다 머리에 피가 몰리고 혀가 굳었다. 단어조차 되지 못해 뚝뚝 끊어지는 발음이 잇새로 마구 뭉개졌다.
“아! 읏, 싫, 잠시, 으윽.”
전립선을 집요하게 때려 박는 삽입이 이어지자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그의 아래에서 삽입만으로 사정한 적은 있었으나, 점점 사정감과는 거리가 있는 자극이 치밀기 시작했다.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방광과 전립선을 건드려서 그런가, 정액이 아닌 오줌이 나오기 직전처럼 아래가 저리기 시작한 것이다.
“아, 흑, 안 돼….”
몸을 바짝 붙이고 과격하게 삽입하고 있는 탓에 최기원과 내 배가 빈틈없이 맞닿아 있었다. 지금 오줌을 쌌다간 그의 배에도 모두 묻어 버릴 것 같아 나는 겨우 정신을 붙들고 그를 불렀다.
“잠, 시만, 흐으, 아, 잠, 깐…, 흐윽…….”
하지만 최기원은 내 머리칼을 쥐어 잡고 허리를 세게 박아 넣기만 할 뿐 전혀 몸을 물려 주지 않았다. 깜빡, 깜빡. 치솟는 요의에 눈이 뒤집혀 가고, 나는 아무 말을 뱉지 못한 채 그의 아래에서 마구잡이로 흔들리기만 했다.
“아, 아, 윽, 빼, 빼 줘요 제, 바알….”
한계였다. 귓가에서 흩어지는 최기원의 낮은 신음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의 어깨를 손톱으로 죽죽 긁었다. 단단한 어깨를 밀어 보기도 하고 깔린 엉덩이를 꿈틀대기도 했으나 결국 눈을 질끈 감으며 울음을 토해 냈다. 전신에 바짝 힘이 들어가며 몸이 파르르 경련했다.
“뭐가, 나와 흐, 윽, 읏….”
이미 액을 뱉어 내 힘이 빠진 채로 흔들리고 있던 귀두 끝에서 멀건 것이 푹 쏟아졌다. 배 주변으로 뜨거운 액체가 확 번지자 그제야 최기원이 움직임을 멈추고 상체를 들어 올렸다. 한 번 내뿜기 시작하자 거침없이 쏟아지는 액체가 배를 흥건하게 적시고 시트 아래로 축축하게 고여 들었다.
“아, 흐윽, 죄, 송 하윽… 읏….”
사과하는 말 사이에도 더러운 신음이 자꾸만 옮겨 붙었다. 다급하게 손으로 귀두 끝을 붙잡고 틀어막아 보았지만, 손가락 사이로 액체가 줄줄 쏟아져 흘렀다. 놀란 내가 얼른 최기원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방이 너무 어둑해서 그림자가 진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울먹이며 시트를 짚고 상체를 일으켰다. 맞을 각오를 하고 얼른 휴지를 가져오려는데 그가 내 어깨를 툭 밀어 다시 시트 위로 넘어졌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얼굴에 마구잡이로 붙었다. 아직 구멍에는 그의 성기가 꽂힌 채였다. 최기원이 내 배로 손을 뻗어 액체를 문질렀다. 배꼽 주변과 허리로 액체를 문질러 펴 바를 때마다 몸이 불가항력적으로 경련했다. 난 시트를 꾹 쥐어 잡으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더럽게 뭘 싼 거예요?”
“흐…아, 죄, 죄송… 죄송해요. 얼른 닦-,”
“하기 싫으면 말을 하지, 이딴 걸….”
와, 씨발. 그가 손을 들어 올리자 흥건하게 적셔진 손가락을 따라 주르륵 액체가 흘렀다. 모래를 가지고 노는 고양이처럼 몇 번이고 그 행위를 반복하던 최기원이 비웃음을 터뜨리며 물었다.
“뭐냐니까?”
“…아니, 그래서, 잠깐 그만해, 달라고….”
“뭐냐고 물었는데.”
울먹이며 변명하자 그가 싸늘하게 목소리를 낮추었다. 히끅대며 입을 다물었다. 차마 내 입으로 오줌이라고 말할 수 없어 소리 없이 눈물만 떨궈 댔다. 그때, 한쪽 눈썹을 끌어 올린 최기원이 젖은 손을 들어 올렸다.
‘맞겠다, 세게 맞겠다….’
각오하며 눈을 감는 순간, 입술 사이로 차가운 손가락이 비집고 들어왔다. 젖은 손에 묻은 액체가 고스란히 입술과 혀에 닿았다. 나는 눈을 크게 뜨며 팔을 휘저었다.
“시, 싫, 우읍, 컥!”
“왜 싫어요. 네 거잖아.”
“흐 우욱, 쿨럭, 우읍!”
“씨발, 맨날 ‘싫다 싫다’ 하더니 걸레 짓은 혼자 다 하고, 어?”
최기원이 혀로 볼 안쪽을 밀며 입에 물린 손가락을 마구 휘저었다. 입꼬리를 한쪽으로 비뚜름하게 올린 채 그는 조롱 섞은 웃음을 터뜨렸다. 난 그의 손목을 붙잡고 몸을 뒤채며 발버둥 쳤다. 울먹이느라 그런 건진 모르나 향도, 맛도 오줌처럼 비릿하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 아래에서 흘러나온 것을 보았다. 그러잖아도 억지로 먹은 죽 때문에 속이 뒤집히기 직전이었는데, 그가 오줌 묻은 손으로 혀뿌리를 긁어 대니 순식간에 토기가 치밀었다.
“우, 욱!”
결국 걷어차듯 그를 밀어내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발을 헛디뎌 딱딱한 바닥으로 한 번 우당탕 넘어지고도 얼른 몸을 일으켜 변기까지 뛰어갔다.
“우웩! 우으, 욱!”
주저 없이 모두 토해 냈다. 목과 이마에 벌건 핏대가 서고, 변기를 붙잡은 손이 주체할 수 없이 떨렸다.
“흐윽….”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인가 싶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레버를 내리고 세면대로 가 입을 마구 헹궜다. 토는 물론 억지로 삼킨 오줌까지 모조리 뱉어 낼 기세로 물을 입 안 가득 머금고 뱉어 내길 반복했다.
“다 토했네.”
온기 하나 없는 목소리에 퍼뜩 고개를 들었다. 화장실 거울에 비친 최기원의 모습이 보였다. 알몸에 얇은 가운을 걸치고 다가온 그가 내 등 뒤쪽에서 손을 뻗었다. 커다랗고 하얀 손은 틀어져 있는 물의 레버 대신, 세면대의 배수구 물마개로 향했다. 끼익 소리와 함께 세면대 구멍이 막혔다.
콸콸 쏟아져 내리는 차가운 물이 세면대에 차오르기 시작했다. 입가에 묻은 물을 손등으로 문지르며 그를 향해 돌아서려는데 최기원은 나에게로 바짝 붙어 서며 뒷덜미를 가볍게 쥐었다. 목덜미를 적신 끈적한 식은땀이 그의 손바닥에 옮겨 붙었다.
“말을 씨발 지지리도 안 들어.”
피곤한 듯 혀끝에 오래 머물러 뱉은 진득한 목소리였다. 목덜미를 살살 어루만지던 손이 조금씩 위로 올라갔다. 힘없이 자라난 검은 머리카락을 손가락 사이에서 이리저리 흘려 보는 동안 세면대의 물은 흘러넘쳐 타일 아래로 쏟아져 내렸다. 발바닥 아래로 스며든 차가운 물에 주춤대며 뒷걸음질을 치자 뒷머리를 붙잡은 최기원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
세면대로 머리가 처박혔다. 헛숨 한 번 들이켜지 못하고 곧장 수면 아래로 처박힌 입과 코에서 공기 방울이 마구 치솟았다. 고개를 비틀며 빠져나오려 했으나, 최기원이 무언가 짓씹으며 말을 할 때마다 이마가 세면대 바닥에 푹푹 닿을 듯이 처박혔다.
손을 끌어 올려 뒷머리를 누르는 최기원의 손을 매만졌다. 코와 입으로 물을 먹으며 들리지 않는 고함을 쳤다. 한참 머리를 세면대에 누르던 그가 머리카락을 확 잡아당기며 내 얼굴을 꺼냈다.
“푸, 흐악! 콜록, 끄으, 흐….”
잠겨 있던 입속으로 공기가 섞이고 나는 흠뻑 젖은 얼굴로 정신없이 기침했다. 최기원이 계속 무어라 말을 걸어 댔으나 전혀 들리지 않았다. 괴로움에 발을 동동 구르며 퍼덕대는데도, 최기원은 낮게 혀를 차며 다시 머리를 물속에 집어넣었다.
손을 매만지고, 허벅지를 밀어내는 손에 점점 힘이 빠져나갔다.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숨을 쉬고 싶다는 갈망도, 내가 이렇게까지 유린당해야 하는 이유도 아무것도 모르겠다. 그저 까맣고 까만 어둠이 점점 눈앞에 번져 가고, 이성이 사그라진 머릿속에는 이대로 죽겠구나 싶은 아득한 감각만이 메아리처럼 울렸다. 문득 스스로 목을 졸랐던 그 순간의 편안함이 떠올랐다.
다리가 풀어지고 몸이 아래로 무너지려는 순간, 최기원이 뒷덜미를 잡은 손을 툭 놓았다. 얼른 고개를 들고 싶었지만 허리를 들 힘이 없어 그대로 수면 아래로 얼굴이 가라앉았다. 최기원이 손을 뻗어 세면대 배수구 버튼을 다시 눌렀다.
꼬르륵 소리를 내며 물이 구멍으로 빠져나갔다. 흐름을 따라 울컥, 울컥 물이 코와 입으로 스며들었다. 동그란 물이 맺힌 세면대에 뺨을 비비며 숨을 뱉을 때마다 입에서 물이 터져 흐르고, 폐부가 저렸다.
“푸, 흐으….”
지독한 현기증이 일었다. 바닥으로 풀썩 쓰러지려는 내 허리를 붙든 그가 엎드린 채 내보이고 있는 구멍 사이로 제 성기를 푹 찔러 넣었다. 나는 세면대에 뺨을 댄 채로 아무런 미동 없이 늘어졌다.
허리가 맞붙어 올 때마다 멍하게 시야가 흔들렸다. 하얀 세면대가 눈에 보이는 것의 전부였고 사타구니가 턱턱 부딪히는 소리에 이젠 치욕을 느낄 힘도 없었다. 머릿속이 멍하게 가라앉고 물 밖에 버려진 생선처럼 뻐끔뻐끔 숨만 겨우 내쉬었다. 잠깐씩 정신을 잃을 때마다 배 안쪽을 푹 파고드는 성기의 자비 없는 움직임에 파르르 몸이 떨리며 눈이 떠졌다.
휘청대며 중심을 잡지 못하는 내가 답답한 듯, 최기원은 세면대 아래로 늘어진 내 팔을 뒤에서 끌어 올렸다. 뒷짐 지게 하는 모양으로 두 손목을 교차해 허리에 올리고, 한 손으로 내 두 팔목을 꾹 짓누르며 허릿짓을 이어 갔다. 턱턱 소리가 날 정도로 맞부딪히던 중, 그의 움직임이 점차 잦아들더니 성기가 쑥 빠져나갔다.
“으….”
삽입만큼이나 구멍을 빠져나가는 느낌도 벅찼다. 작게 앓으며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최기원이 의문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누가 그랬어?”
뭘 말하는 거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세면대에 얼굴을 박은 채 엎드려만 있자 최기원이 내 머리카락을 잡아채 몸을 강제로 끌어 올렸다. 휘청대며 그의 가슴팍에 기대어 섰다. 그는 축 늘어진 내 팔뚝을 들어 올려 눈앞에 가져다 댔다. 쉬이 초점을 잡지 못하는 눈이 흐릿하게 부유했다.
그가 틀어쥔 내 팔목 위엔 살갗이 쓸린 자국이 선명했다.
아. 조금 늦게 머리가 돌아가며 기억이 떠올랐다. 오늘 낮 경호원이 나를 책상에 앉히며 팔뚝을 끌어당겼는데, 그 손자국을 따라 살갗이 붉게 뜬 듯했다. 깜빡깜빡 눈을 감았다 뜨자 최기원은 재촉하듯 손목을 가볍게 흔들었다. 힘 빠진 손이 덜렁덜렁 흔들리는 걸 보며 느리게 입을 열었다. 띄엄띄엄 끊어지는 목소리로 사실을 털어놓았다.
“경…호원.”
“걔가 왜?”
“밥… 먹으라고….”
최기원은 아무런 대답 없이 팔목을 툭 놓았다. 그대로 미끄러지며 주저앉으려는 나를 가볍게 들어 올린 그는, 욕조로 걸어가 나를 안에 앉혔다. 최기원은 샤워기를 틀어 물이 적당한 온도가 될 때까지 제 손을 적셨다. 이내 미지근한 물이 정수리로 쏟아지고, 그는 손에 보디 클렌저를 묻혀 내 몸을 성의 없이 문질렀다. 몸 곳곳에 말라붙은 정액과 식은땀이 포근한 향의 클렌저와 미지근한 물에 모두 녹아 갔다.
또 무슨 바람이 불어 씻겨 주기까지 하는 걸까. 창백한 얼굴로 최기원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물이 자꾸만 눈꺼풀 안쪽으로 들어와 앞이 가물가물 흐렸다. 무감하고 낯선 회색의 눈동자가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입술을 떼며 속삭였다.
“진짜…….”
“응?”
내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지, 욕조에 걸터앉은 최기원이 귀를 가까이 가져다 댔다. 어느새 내 입술에 이유를 알 수 없는 미약한 웃음이 번졌다.
“이…상해…….”
한 글자, 한 글자 제대로 목소리를 냈다고 생각했으나, 아스러지는 듯한 바람 소리만 입술 새로 빠져나왔다. 무언가 더 말할 새도 없이 앞으로 고꾸라지는 나를 최기원이 받쳐 드는 순간 시야가 까맣게 암전됐다.
-2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