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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Re

황량한 벌판을 걷고 걸었다. 해가 뜨기 직전처럼 어스름한 이곳은 밝지도 어둡지도 않았다. 멀리서 수평선과 맞닿은 바다가 보였다. 출발점은 기억나지 않았다. 어느새 걷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왜 걷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냥 걸어야 할 것 같아서 이후로 한참을 걸었는데도 전혀 지치지 않았다.

‘음….’

바다를 향해 걷는 중인데 전혀 가까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파도 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도 않다. 우뚝 멈춘 나는 손을 뻗어 바다와 하늘의 가운데를 가렸다. 해를 등져 손이 어둡게 보였다. 잔잔한 파도가 손가락 사이의 움푹 팬 곡선을 따라 넘실댔다.

‘예쁘네.’

한참 파도를 구경하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주언이….’

벅차오를 정도로 예쁜 풍경을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이름이 하나 떠올랐다. 처음에는 누구지, 하는 낯선 느낌이 들었으나 이내 짧은 탄식과 함께 머리를 때렸다. 그걸 까먹냐, 주언이는 내 동생이다. 아픈, 불쌍한 내 동생. 그러고 보니 주언이가 보이지 않는다. 여행을 왔다면 같이 왔을 텐데.

목을 빼 사방을 살폈으나, 눈이 닿는 곳에 주언이는 없다. 하는 수 없이 다시 걸었다. 마냥 좋던 기분이 조금 가라앉았다.

문득 주변을 에워싼 황량함이 쓸쓸하게 느껴졌다. 풀이 무성하게 자랐으면 좋겠다 생각하니, 발치에 풀잎이 새순처럼 빠르게 돋아났다. 가볍게 뒤돌아섰다. 여태껏 걸어온 발자국마다 초록 풀잎과 덩굴이 가득했다. 가슴이 들뜬 난, 이번에는 눈이 부실 만큼 환한 별이 떴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하늘은 물론, 바닷가 위로도 등롱 같은 별이 우수수 떠올랐다.

고개를 돌려 모두 눈에 담고 다시 걸었다. 피곤하지 않았지만, 쉬고 싶으면 쉬었고 지루하면 다시 일어나 걸었다. 틈틈이 주언이가 있는지도 살폈으나 헛수고였다.

‘어?’

걷는 사이, 물이 발목까지 차올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발가락이 꽝꽝 얼어 버릴 것 같은 냉기에 소름이 돋았다. 그동안 추위와 더위를 전혀 알아채지 못해, 굉장히 생소한 느낌이었다. 뒷걸음질을 쳤지만, 물은 계속 발목까지 찰방댔다. 하는 수 없이 걸어야 했다.

‘하아, 하아…….’

그렇게 물은 소리 없이 점점 차올랐다. 정강이, 무릎을 지나 배꼽 위까지 차올라, 이제는 물을 헤치고 걷는 몸이 이리저리 휘청댔다. 다른 무엇보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끔찍했다. 따뜻한 담요로 몸을 덮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원하는 대로 상황이 바뀌진 않았다.

따뜻한 품을 생각하자, 잊고 있던 지원이 형이 떠올랐다. 아, 하는 탄식과 함께 물은 가슴을 훌쩍 넘어왔다. 허우적대며 주위를 살폈지만 형은 당연히 이곳에 없다. 왜냐하면……. 이미 죽었으니까.

나를 보러 오는 길에 사고가 났었다. 형의 차가 부서진 채 나뒹굴던 모습, 빈소 앞에서 서성였던 걸음이 떠오르며 숨이 턱 막혔다. 부조하는 곳에서 이름을 쓰는데 허둥대다 펜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그걸 누군가 주워 줬다. 여기, 하며 내미는 손과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어 본 듯 소름이 돋는다.

결국 물은 턱 끝까지 차올랐다. 아랫입술을 덜덜 떨며 깊은 물을 헤치고 걸었다. 입에도 물이 들어가고, 콧구멍 안으로도 매운 물이 꼴깍대며 넘어왔다. 이 물살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벅찰 정도로 무거운 물결이 팔다리를 감싸고 나를 끌어당겼다.

탈주하는 인간처럼 볼썽사납게 발버둥 쳤다.

벗어나려 하는 것인지, 필사적으로 잠겨 드는 것인지. 바닷물은 기다렸다는 듯 왈칵 머리 위를 덮쳐 왔다.

파도가 귓가를 가려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고, 파란 물이 시야까지 가렸을 때 비로소 사위가 고요해지며 마음이 편안해졌다. 극한의 차가움 속에 머리끝까지 잠긴 순간, 누군가의 인영이 떠올랐다.

그리고, 먹먹한 소음과 함께 눈이 뜨였다.

희미하게 뭉개진 빛이 흐린 초점을 따라 느리게 부유했다. 눈꺼풀을 들고 있는 것조차 너무나 무겁고 버거워 다시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들어 올렸다. 웅웅대는 귓가로 들어 본 듯한 목소리가 흩어졌다. 바다에 가라앉기 직전 떠올렸던 사람이 지척에 서 있었다. 고개를 돌리고 싶었으나 몸이 전혀 움직여지질 않았다. 전신의 탈력감과 함께 참을 수 없는 졸음이 밀려왔다. 하는 수 없이 눈을 감았다.

두 번째로 눈을 떴을 땐 뇌와 코, 목구멍이 모두 타는 것처럼 아팠다. 너무나 뜨겁고 따가워서 컥컥 기침을 뱉고 싶었지만, 역시나 무엇 하나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눈알을 느리게 돌려 주위에 도움을 청했으나 여전히 흐리고 뭉개진 시야가 펼쳐졌다. 꿈이든, 현실이든 왜 이런 고통이 치미는 건지 이유도 모른 채 서러움에 헐떡였다. 눈꼬리 아래로 뜨거운 눈물이 주륵 흘렀다.

다급한 발소리, 달깍대며 몸을 건드리는 감촉. 와 닿는 모든 것이 날카로운 통증처럼 느껴졌다. 누군가 머리맡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여전히 물에 잠긴 것처럼 모든 소리가 뭉개져 제대로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고통을 참다 보니 점점 무뎌졌고, 한참 뒤 몽롱한 기운과 함께 잠이 쏟아졌다.

차가운 손가락이 눈가를 쓸어 눈물을 닦아 주는 것을 마지막으로 느끼며 나는 다시 잠에 빠져 들었다.

***

비가 온다.

비가 오는 것을 알아챈 건, 빗소리가 들려서였다.

타박, 타박. 제법 거센 빗줄기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눈가가 미세하게 경련했다.

여전히 무거운 눈꺼풀이지만 예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뜨였다. 살갗에 닿는 공기의 감촉과 온도가 날것처럼 생생했다. 초점을 찾는 데 오래 걸렸지만, 어둠 속에서 빛나는 사물 하나를 응시하는 것이 가능했다.

몇 초간 바라보고 있다가 그게 아주 희미한 조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일어났어요?”

온전한 말소리가 들린 것도 처음이었다. 이번엔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이번에는 정말 저번과는 다르다. 아주 느리지만, 목 정도는 움직일 수 있었다. 질문을 던진 이는 앉았던 의자에서 퍼뜩 몸을 일으켰다. 나한테 물어 놓고도 막상 내가 움직이자, 놀란 듯했다.

“어, 나 보여요?”

“…….”

“백나언?”

너무나 자연스럽게 내 이름을 부르는 남자. 붉은 눈과 낯설도록 파리한 안색을 한 그에게 사소한 의문이 깃든다.

나는 대답 대신 그를 빤히 응시했다. 익숙한 눈, 코, 입.

왜 익숙하지.

눈을 깜빡, 깜빡. 느리게 뜨고 감으며 그의 얼굴을 읽었다.

아, 그러고 보니 아는 얼굴이었다.

지원이 형의 하나뿐인 동생, 최기원이 나에게 눈을 맞춰 왔다.

***

그렇게 몇 번을 더 자다, 깨다를 반복했던 것 같다. ‘것 같다’의 의미는 가끔 한두 시간씩 깨어 있을 때도 있었고, 어쩌다 보니 며칠 동안 잠들어 있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사이 난 내가 누워 있는 이곳이 병원이고, 이유는 모르겠으나 꽤 아픈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모든 혼돈의 순간에 내 곁을 같은 사람이 지키고 있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바로 최기원 말이다.

그는 언제나 가까이에 있었다. 무언가 말을 두런두런 걸기도 했지만 아직 말하고 듣는 것이 버거워, 그의 낮은 목소리는 언어가 되지 못한 채 부드럽게 스쳐 지나갔다. 눈을 뜨지는 못한 채 정신만 깨어 있던 시간이 길었는데, 그때에도 최기원의 향은 늘 내 코언저리를 맴돌았다.

따뜻한 수건이 내 뺨과 입술을 꼼꼼하게 훑고 지나가거나, 손가락이 머리카락과 눈썹을 기분 좋게 쓸어 주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낯설면서도 익숙한 그를 곁에 두고 드문드문 잠들었다 깨어나기를 반복했다.

“…….”

오랜 잠에서 깨어나는 지독한 몽롱함이 걷히고 정신을 또렷하게 차렸을 땐, 꽤 지지부진 내리던 비가 그쳐 있었다. 늘 들려오던 빗소리 대신 햇살이 조용히 스며든 창가를 바라봤다. 고개를 돌리자, 잠깐 자리를 비웠던 최기원이 나에게로 천천히 걸어왔다.

“일어났어요?”

물어 놓고도 대답을 듣는 대신, 그는 부산스럽게 제 할 일을 했다. 물을 떠서 가습기에 채우고, 노트북 전원을 연결한 후 내 침대와 가까운 곳에 앉아서 전원을 켜는 행동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나는 눈동자를 움직여 천천히 그를 따라다녔다. 내가 눈을 뜰 때마다 그는 늘 같은 것을 물었다. 항상 대답할 힘이 없어 눈만 겨우 뜨고 있다 다시 잠들었었고. 하지만 이번에는 컨디션이 다르다는 것이 느껴졌다.

‘왠지 오늘은….’

건조하게 들러붙은 입술을 떼어 내고, 모래같이 꺼끌꺼끌한 입 안에서 굳은 혀를 움직였다. 목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픈 통증과 함께, 허공에 아주 작은 쇳소리가 흩어졌다.

“……네.”

무언가를 타이핑하던 손이 멈추고, 그는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당황하기도 하고, 놀라기도 한 얼굴에서 섬뜩할 만큼 차가운 눈빛이 고스란히 쏟아졌다. 나는 겨우 최기원을 바라보다 떨떠름하게 시선을 돌렸다. 아마 목소리를 듣고 많이 놀란 듯했다. 그렇지만 공기와 뒤섞인 아주 작은 소리였을 뿐인데.

“하….”

잠시 숨을 멎었던 그가 낮은 탄식과 비슷한 소리를 뱉어 냈다. 그는 당혹감에 살짝 벌어진 입술을 닫고 나를 천천히 들여다봤다. 그러더니 천천히 손을 뻗는다. 깜빡이는 속눈썹을 살짝 건드린 손가락이 입술을 지났고, 이내 손으로 내려와 손바닥 안을 살짝 파고들었다.

갑작스러운 스킨십에 놀라 손가락 끝이 움찔, 하며 구부러졌다. 졸지에 그의 손을 쥔 모양이 되자 그는 내 손을 빤히 내려다보며 내 손바닥을 간지럽히듯 살살 문질렀다. 마치 내가 정말 살아 있는 것을 확인하려는 듯, 눈꼬리가 붉어진 예민한 눈이 내가 움직이는 곳을 샅샅이 살폈다.

그는 여전히 손을 만지작대며, 반대 손을 뻗어 호출벨을 누르고 의자를 당겨 앉았다. 곧이어 도착한 의사 역시 눈을 뜨고 시선을 따라 옮기는 나를 보고 꽤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최기원은 내가 대답했다는 사실을 의사에게 재차 설명했다. 의사가 와도 앉아 있는, 다소 거만한 태도였으나 그의 목소리는 평소 귓가에 들리던 목소리보다 조금은 빠르고 상기되어 있었다. 그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인 의사가 라이트 펜을 들어 내 상태를 확인하고, 간단한 것들을 물었다.

“나언 씨, 안녕하세요.”

말을 하기 힘들어 고개를 살짝 숙이니, 중년의 의사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간단한 것들을 묻기 시작했다.

“몸은 어때요? 어디 특별히 아픈 곳은 없어요?”

아직 목 아래로는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고 미세한 두통이 있었으나, 나는 간신히 입을 벌려 바람 소리가 반 이상인 대답을 힘겹게 남겼다.

“…네.”

“좋아요. 말씀하시기 힘들면 눈을 깜박여서 의사를 표현해 주세요. 긍정은 한 번, 부정은 두 번.”

눈을 한 번 깜빡이자, 의사가 소통까지 된다며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언 씨. 우선 많이 힘드셨을 텐데, 긴 시간 동안 포기하지 않고 잘하셨어요. 혹시 왜 병원에 오게 됐는지는 기억나세요?”

시선이 흔들렸다. 오랜 꿈을 꾸며 보았던 바다, 하늘 같은 허황된 풍경 대신, 내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진짜를 끄집어내는 데만 해도 한참이 걸렸다. 의사와 최기원은 아무런 기척도 내지 않고 내 대답을 오랫동안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아팠던 기억은 없다. 내 기억은 뭉텅뭉텅 까맣게 잉크를 쏟은 것처럼 끊어져 있었다.

천천히 두 번 눈을 깜빡이자 의사가 역시나 사람 좋은 얼굴로 따뜻하게 위로했다.

“괜찮습니다. 오랜 기간 혼수상태가 지속된 경우, 종종 사고 전후의 기억이 손실되곤 해요. 그러니 너무 놀라시거나 불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차차 돌아올 겁니다.”

의사는 펜을 집어넣으며 최기원에게 말했다.

“일단 지금은 환자분도 쏟아지는 감각 때문에 많이 혼란스러울 겁니다. 자세한 건 치료를 진행하며 천천히 파악하는 편이 낫겠어요.”

“네.”

“최대한 빨리 치료 일정 잡은 후 말씀드리겠습니다.”

가벼운 인사를 남긴 의사가 병실을 떠났다.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최기원은 의자에 앉는 대신, 내 널찍한 침대의 끄트머리에 엉덩이를 기대고 앉아 나를 비스듬히 내려다봤다. 쏟아진 앞머리와 하얀 얼굴, 그리고 내가 알던 모습보다 많이 야윈 턱선이 날카로워 인상이 전체적으로 굉장히 예민해 보였다.

그의 손가락 끝이 침대의 난간을 톡, 톡 두드렸다.

침묵이 내린 조용한 병실에, 그가 만들어 내는 규칙적인 소리가 어쩐지 무섭게 느껴졌다. 나는 숨 쉬는 소리조차 크게 내지 않고 얌전히 그의 말을 기다렸다. 한참 뜸을 들이던 그가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언 씨 많이 아팠는데. 기억 안 나요?”

나는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기억이 안 난다고.”

다시 툭, 툭 난간을 두드리던 그가 낮게 한 번 더 읊조렸다. 최기원은 잠시 입술을 달싹이다 말고 작은 한숨과 함께 뺨을 쓸어내렸다.

“그럼. 어디까지 나는데요?”

그대로 나를 들여다보는 낯선 이의 표정은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했다. 살짝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웃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핏발이 선 눈과 흐린 색의 눈동자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사람처럼 불안해 보이기도 했다. 나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시선을 떨어뜨렸다.

내 마지막 기억은….

너무 추웠던 형의 장례식. 그리고 어둑한 방에 돌아와 무릎을 안고 이마를 묻었던 참혹한 외로움이었다.

어차피 말을 하지도 못할 상태였고, 말을 할 수 있더라도 그에게 털어놓을 수 없었다.

형의 동생, 그러니까 최기원은 나와 형의 관계를 모를 것이다. 그런 그에게 어디까지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조차 모르겠다. 게다가 왜 그가 아픈 내 곁을 지키고 있는지, 왜 형의 애인인 나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걸고 저런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인지.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어려웠다. 스러질 것 같은 낯으로 색색 숨만 내뱉다가 눈을 감아 버렸다. 역시나 곁을 떠나지 않는 이에게서 이렇게, 저렇게 두런두런 말을 거는 조용하고 고요한 목소리가 들렸으나, 나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 채 밀려드는 졸음에 정신을 빼앗기고 말았다.

***

눈을 떴다고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 소변 줄을 단 채로 지냈고, 무언가를 삼키는 것도 못 해서 몸에 연결된 튜브 관으로 식사를 대신해야 했다.

말을 하려고 하면 목이 찢어질 것처럼 아프고 가슴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생선처럼 눈만 뜬 채로 창밖을 보거나, 주기적으로 드나드는 의사나 간호사들을 구경하는 게 내 지지부진한 하루의 일과였다. 그리고 내 초라한 하루에는 늘 최기원이 함께했다.

나는 그가 불편했다. 왜냐하면 형이 최기원을 싫어했었다. 내 앞에서 가족 이야기를 잘 꺼내지 않는, 오히려 살짝 숨기려 들었던 형은, 최기원과 통화를 끊고 난 후 종종 격양된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착하고 무딘 형을 자극할 정도의 성미라면 분명 좋은 사람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의식을 잃은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내 유일한 보호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었다.

가끔 급한 일 때문에 회사에 다녀온다고 할 때, 간병인 두 명을 붙이는 경우를 제외하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병실에서 나와 함께 보냈다.

내가 눈을 뜨는 것에 맞춰 하루를 시작하고, 내가 눈을 감으면 그게 한낮이든, 초저녁이든 블라인드를 치고 불을 꺼 버렸다. 내가 밥을 먹을 때 함께 식사했고, 내가 얼마 못 가 게워 버리면 그걸로 그의 식사도 끝이었다.

시간마다 침대를 일으켜 굳은 몸을 움직이게 해 줬고, 햇살에 눈이 부셔 살짝 눈가를 찌푸리는 것도 기민하게 알아차려 블라인드를 조절했다. 가끔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내 머리카락을 넘겨 주다, 내 어리둥절한 시선을 느끼고 손을 떼어 내기도 했다.

이상한 일이다. 그가 다정한 것이 못내 불안했다. 일면식 없는 사이에 살뜰히 나를 살피는 것에 고마워해야 하는 것이 마땅한데도 이유 모를 거부감부터 일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그를 보는 게 너무나 힘들고 이상하게도 역겹기까지 했다.

***

모든 순간이 의문이었고,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너무나 많았다.

그저 살아났다고 그래서 어영부영 삶을 이어 가고는 있었다. 눈만 떠도 잘했다고 그러고 빨대로 물 한 입 마셨다고 대단하다고 그랬다. 하지만 하루하루, 둔해진 머리가 깨어나며 나는 더욱 혼란에 빠졌다.

내 마지막 계절은 코끝까지 추위가 사무치는 겨울의 한가운데였는데, 지금 창밖에는 노란 은행잎이 가득했다. 처음에는 그저 ‘나뭇잎이구나’라고 단순히 여겼지만, 점차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되며 내가 모르는 사이 흘러가 버린 계절이 무려 10개월 치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걸 깨닫게 된 순간, 내 손가락과 연결된 심전도 기계 장치에서 삐빅, 하는 소리가 울렸다. 나는 팔 하나도 내 뜻대로 움직이지 못하면서 몸을 바르작대며 침대에서 내려오려 난리를 쳤다. 침대 아래로 굴러떨어질 뻔한 몸을 최기원이 가까스로 붙잡아 올렸다. 그는 한 팔로 나를 받친 채 내 턱을 당겨 고개를 끌어올렸다.

“왜 그러는데.”

회색 눈동자가 나를 바라봤다. 어디선가 들어 본, 낮고 음산한 목소리를 듣자마자 심장이 콱 옥죄어 오며 숨이 막혔다. 흉곽이 뻐근하게 저려 와 호흡이 엉켜 들었다. 바들바들 떨며 나는 더듬더듬 말을 뱉었다.

“주, 언이. 주언이한테 가야 해요.”

“…….”

“제 동, 생…. 아파요.”

쇳소리가 가득한 목소리가 처음으로 문장을 만들었다. 눈을 뜬 이후로 고작 멍하게 시간을 죽이는 것만 한 주제에 주언이를 잊고 있었다는 것도, 머릿속에 가득 있는 말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나 자신도 너무나 답답해 환멸이 느껴졌다.

결국 코끝이 찡하게 아려 오며 눈물이 뚝뚝 흘렀다. 그는 말없이 손으로 내 젖은 뺨을 문질러 닦았다. 식어 버린 얼굴을 커다란 손이 감싸 쥐었다. 그는 답지 않게 타이르는 목소리로 나를 차분하게 어르고 달랬다.

“알아. 다 아니까 제발 진정해.”

“주, 언이……. 잘 있어요?”

간절하게 그를 올려다봤다. 그리고 늘 한결같던 그의 느른한 얼굴에 처음으로 망설임이 번진다. 그 찰나의 순간 나는 깨달았다. 주언이는 이미 나를 떠났다는 것을.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이 치밀었다.

***

[매서운 한파의 기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는 요즘. 중부 지방에 올해 첫눈이 내렸습니다. 내일 출근길까지도 추위는 이어져 도로 곳곳에서 정체가 예상됩니다. 이번 주에 눈 소식이 잦기에 피해가 없도록….]

은행잎이 열렸던 가지 위로 흰 눈이 소복하게 쌓였다. 조금 흩날리고 말 것이라 여겼던 눈은 생각보다 꽤 많이 내렸고, 병실에는 어느 날부터 훈훈한 히터가 돌아갔다.

반찬 하나 없이 멀건 유동식이 전부인 저녁을 겨우 먹은 후, 휠체어를 타고 병원을 한 바퀴 돌고 왔다. 최기원은 침대 가까이에 휠체어를 멈춘 후 내가 한 모자, 목도리, 장갑을 벗기고 카디건과 두꺼운 패딩까지 벗겼다.

한파라고 떠드는 TV 소리와는 달리, 과한 착장 때문에 목덜미는 뜨끈해져 땀까지 살짝 났다. 그가 걷는 내내 뒤에서 우산을 받쳐 준 탓에 내 몸에는 작은 눈송이 하나 묻지 않았다. 나를 침대에 앉히고 제 점퍼를 벗어 거는 그의 옷은 녹은 눈 때문에 등 부근이 흠뻑 젖어 있었다.

이렇게 바깥 산책을 나가기까지 꼬박 한 달이 걸렸다. 주언이의 이야기를 듣고 일주일을 앓은 뒤에야 뒤늦게 재활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재활 치료는 물론, 두통이나 원인을 알 수 없는 우울감 때문에 정신과에서도 함께 치료를 이어 갔다.

이 주 만에야 목과 가슴 통증 없이 말을 할 수 있게 됐고, 삼 주가 지나서 겨우 무언가를 붙잡고 서기 시작했다. 물론 다리 근육이 빠져서 걷지 못해, 침대를 내려오거나 화장실을 갈 때는 거의 최기원에게 안기다시피 했다.

갑작스러운 병원 생활은 물론, 최기원에게 적응하는 것도 힘들었다. 특히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후, 이유 없이 자주 구토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최기원은 거리낌 없이 환자복의 단추를 풀어 토사물로 젖은 몸을 맨손으로 씻기려 했다. 경악하며 옷을 잡아끌어도 그와 힘을 겨루는 건 무의미해, 나는 귓바퀴가 벌겋게 달아오른 채로 몸을 내맡겨야 했다.

더 이해하기 힘든 것은 가끔 내가 잠든 줄 알고 머리카락이나 손가락을 집요하게 건드리는 그의 행동이었다. 모르는 척 눈을 감고 버티고 있으면 가슴에 작은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기분은 형에 대한 죄책감과 함께, 어느 것 하나도 스스로 할 수 없기에 그의 손길을 거부할 수 없는 데서 오는 무력감, 그리고 조금씩 그의 손길에 적응해 가는 나에 대한 혐오감에서 기인했다.

하지만 최기원과 나는 그 불편한 침묵을 구태여 티 내지 않았다. 마치 구멍 난 소파 위를 낡은 담요로 어설프게 덮은 것처럼, 우리의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상태를 그 누구도 먼저 들쑤시려 하지 않았다.

“…….”

“…….”

잠깐의 산책이 고단했는지, 나는 어느 순간 몰려온 졸음에 밀려 눈을 끔뻑였다. 역시나 최기원은 이른 시간임에도 조명을 끄고 노트북을 덮었다. 안경을 벗고 나에게로 천천히 걸음을 옮긴 그가 TV 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졸려요?”

“네.”

“그래요.”

잘 자라는 인사 대신, 그는 이불을 끌어 올려 가슴께 위로 덮어 준 뒤, 침대와 떨어진 소파로 걸어갔다. 작은 조명에 의지해 노트북을 살피는 그가 작은 타자 소리를 냈다. 나는 그 탁탁대는 소리를 들으며 건조한 눈을 감았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밤새 이어지는 소음이었다.

***

“우울감은 어때요?”

낮에는 괜찮지만 어둑한 밤이 되면 심장이 두근대고 가끔 식은땀이 흐를 만큼 불안해졌다. 잠을 깨면 쉽게 다시 들지 못했는데, 간의 상태 때문에 약한 수면제를 써서 잘 듣지도 않았다. 우울은 차도 없이 비슷했지만, 난 그냥 괜찮다고 대답했다. 의사는 나의 두루뭉술한 대답 속에 어설프게 숨긴 거짓을 쉽게 가려낼 것이다.

“병원 생활 하면서 불편한 건 있어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천천히 대답했다.

“예전 일을 생각하려고 하면 머리가 아파서…….”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살짝 웃어 보였다.

“억지로 기억해 낼 필요는 없어요. 기억은 예상치 못한 순간 불쑥 돌아올 수도, 혹은 영영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괜찮아요, 나언 씨. 예전의 나언 씨가 살아날 나언 씨를 위해 버려 준 것입니다. 스스로가 내린 결정에 미리 겁먹지 말아요.”

정신과 상담은 재활보다 훨씬 좋았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와 경련하는 왼손을 억지로 움직일 때면 전신이 땀에 젖고, 종내에는 울컥 치미는 눈물 때문에 숨을 시근덕대야 했다. 치료 후 열패감에 젖어 한없이 우울해지는 재활과는 달리, 상담은 별로 한 것도 없이 위로나 칭찬만 듬뿍 듣고 오는 것 같아 마음이 가벼웠다.

오늘 역시 상담이 끝난 후 괜히 힘이 나, 병실까지 걸어가 보겠다며 객기를 부렸다. 최기원은 갑작스레 올라간 텐션에 눈썹을 끌어 올리더니 내가 휠체어를 붙잡을 수 있도록 겨드랑이 아래로 손을 넣어 나를 일으켰다.

내가 조심스레 손잡이를 쥐고 서는 동안, 그는 한쪽 손으로 허리를 감아 내가 제대로 서는 것을 도왔다. 여전히 그의 예고 없는 터치가 부담스러웠으나 걷는 것에 집중하려 애썼다.

그가 손을 뗀 후 천천히 걸음을 옮겨 봤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마침내 병실 문 앞에 휠체어가 멈춰 섰다. 최기원이 문을 열어 주었고, 그사이 나는 천천히 휠체어를 밀며 후들대는 다리를 끌어당겼다. 늘 거의 도착할 때쯤 다리가 풀려 풀썩 주저앉아 버렸는데, 오늘은 무사히 침대맡까지 걸어왔다. 난 뿌듯한 얼굴로 도톰한 이불 위에 털썩 앉았다.

머릿밑까지 잔뜩 젖은 채로 헐떡이는 내게 그는 물 한 잔을 건넸다. 갈무리하는 호흡 사이로 후련한 한숨이 흘렀다. 턱을 타고 내린 땀을 닦기 위해 왼손을 들었는데 갑작스레 찌릿하는 통증과 함께 손끝이 잘게 떨렸다.

결국 손을 들다 말고 멈춰 손목을 물끄러미 들여다봤다. 분홍색의 매끈한 흉터가 두껍게 손목을 가로지르고 있다. 꽤 오래 잠들어 있던 사이, 겉은 잘 아물었으나 끊어진 힘줄과 신경은 아직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과하게 움직이는 날엔 이렇게 덜덜 경련하며 손이 굳어 버렸다. 걷는 것, 먹는 것은 다 천천히 나아 가는데 손목은 늘 제자리 같아 울적해졌다.

내 상심한 낯을 보고 다가온 최기원이 물컵을 건네받아 콘솔에 올렸다. 경련하는 손을 붙잡아 약하게 누른 그가 내 손을 부드럽게 마사지했다. 좋았던 기분이 다시 바닥을 치고, 나조차도 내 감정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막연함에 충동적인 질문이 새어 나왔다.

“……제가 왜 그랬을까요.”

손목을 풀어 주던 커다란 손이 움직임을 멈췄다. 내가 아팠던 제일 큰 원인은 이 흉터고, 이건 내가 스스로 그은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세히 묻지 않았지만 오늘은 궁금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런 무모한 짓을 했을까 하고.

잠시 뒤, 최기원은 볼 안쪽을 깨물더니 옅은 웃음을 터뜨리며 다시 마사지를 시작했다. 아주 미미한 웃음에는 쓴맛이 분명하게 묻어 있다. 비틀리고 오묘한 웃음은 점차 가라앉았다. 그가 느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걸 알았으면 네가 다칠 일이 없었겠지.”

물론 내가 왜 이런 짓을 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했다. 형도 잃고, 동생 주언이도 떠나보낸 뒤 많이 힘들었겠지 싶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토록 극단적인 선택까지 한 것은 아직 와닿지 않았지만, 대충 이해하고자 하면 그러했다.

한 가지 의문을 어설프게 해결하자, 더 큰 의문이 곧장 다른 방향으로 튀었다.

내 유일한 보호자이자 나를 지켜 줄 수 있던 지원이 형이 죽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딱히 연락할 사람이 없었다. 이렇게 몸이 만신창이가 될 정도로 다쳤다면, 아마 나는 무연고자 처리가 되어 입원조차 하지 못했을 것인데.

‘왜……?’

물컵을 치우고 담요를 펴 허벅지 위를 덮어 주는 최기원을 물끄러미 들여다봤다. 호화로운 병실에서 나 같은 사람을 간호하고 있는 모습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혹시 지원이 형이…. 저 부탁했어요?”

내가 지원이 형을 말하자마자 그의 움직임이 멎었다. 그가 나를 삐딱하게 내려다보며 말끝을 올렸다.

“부탁?”

“그냥……. 무슨 일 있으면 저 챙기라고.”

침대 위로 툭 떨어진 오른손은 어느새 손톱 끝을 타닥타닥 뜯고 있었다. 살점이 벌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손끝의 아릿한 통증도 느끼지 못한 채 나는 은근하게 미뤄 뒀던 사실을 입에 올렸다.

“저……. 그쪽 형이랑……. 사귀던 사이였거든요.”

나를 응시하는 그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처음 보는 서늘한 표정이었지만, 이상하게도 크게 낯설지 않은 공포를 느꼈다. 결국 주섬주섬 늘어놓던 말끝이 볼품없이 사그라졌다. 나는 그의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고개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늘 거만하고 묘하게 남을 하대하는 것이 몸에 밴 최기원은 유독 나에게만 친절했다. 물론 따뜻하게 말한다거나, 웃어 준다거나 하는 통상적인 친절은 아니지만, 내 행동 하나하나에 따라붙는 시선 끝에는 형용할 수 없는 다정함이 있단 걸 느꼈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흠.”

그가 낮은 비웃음을 터뜨렸다. 이내 손을 휙 올린다. 그 순간 나는 어깨를 웅크리며 몸을 낮췄다. 하지만 그의 손은 내 머리로 내려와 부스스한 뒷머리를 살살 쓸어내렸다. 나는 내가 왜 버릇처럼 몸을 숙였는지 알 수 없었다.

귓바퀴를 살짝 건드린 손가락이 턱으로 내려와 얼굴을 위로 들어 올렸다.

“잃을 거면 그거까지 다 잃어버리지 그랬어요.”

나를 비스듬히 내려다보는 그의 눈꼬리가 사르르 휜다. 분명 웃는데도, 얼굴의 냉기가 그대로 남아 있어 전혀 웃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미세하게 피곤함을 담은 눈빛이 나를 아래에서 위로 훑어 내리는 순간, 배 속이 스멀스멀 아릴 만큼 무서운 기분이 들었다.

실수한 건가, 사과해야 하나.

망설이는 사이 그는 손톱을 뜯어내는 내 엄지를 가볍게 쥐어 떨어뜨렸다.

“내가 나언 씨 좋아해서 그래요. 그뿐입니다.”

툭, 손가락이 뺨을 약하게 두드리고 지나갔다. 어느새 그는 다시 내가 알던 최기원으로 돌아와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눈을 끔뻑이다, 재차 고개를 떨어뜨렸다.

나를 좋아한다는 고백이 생각보다 새삼스럽지 않게 다가왔다. 오히려 그 담담한 고백보다, 어딘지 모르게 기시감이 드는 낯선 말투에 소름이 돋았다. 손가락에서 비어져 나온 붉은 피 역시 어디선가 본 듯하다. 그 붉은 잔상은 오랫동안 허공에 들러붙어 나를 괴롭게 했다.

***

어두컴컴하고 휑뎅그렁한 공간, 한가운데에 피투성이가 된 시체가 늘어져 있었다.

꾸물꾸물 벌레가 내 쪽으로 기어 오기 시작했다.

끔찍한 악취 속에서 알을 까고 태어난 벌레였다.

다리를 웅크리고 몸을 뒤틀며 도망가려 했지만 굳은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고개를 내리니 팔과 다리가 단단하게 묶여 있었다.

어둑한 인영이 나를 비딱하게 바라보고 있다. 안간힘을 다해 소리쳤다. 누군가를 향해 줄곧 잘못했다고, 죄송하다고 이마를 찧었다. 하지만 결국 벌레는 벌어진 옷깃 사이로 기어들어 와 몸 위를 기어 다녔다. 피 맛이 나는 목이 괴로울 만큼 가렵고, 얹힌 것처럼 속이 메스꺼웠다. 금방이라도 숨이 멎어 버릴 듯한 공포에 눈앞이 아득해진 순간, 누군가의 목소리가 나를 흔들었다.

“-언.”

“…….”

“……나언!”

“……으.”

“왜 그래.”

“흐, 윽…….”

탁, 어두운 병실의 불이 켜지고 나는 몸을 부르르 떨며 눈을 크게 떴다. 밭은 숨이 건조한 입술 사이로 흘렀다.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해 꺽꺽대며 우는 나를 최기원이 일으켜 앉혔다. 뺨이 모두 젖어 있었다. 그사이에도 볼 위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지도 못한 채, 최기원의 어깨에 이마를 박고 서럽게 울었다. 이 나이에 가위에 눌려 우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지만, 너무나 생생해 손톱 밑이 저려 올 만큼 소름 끼치는 악몽이었다.

최기원은 숨을 제대로 뱉지 못해 간헐적으로 경련하는 등을 차분하게 두드렸다. 큰 손이 등을 쓸어내리고, 식은땀이 솟아난 목덜미를 지그시 누르며 제 품속으로 나를 더 깊이 끌어안아 줬다.

꿈에서 봤던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날 때마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의 옷을 잡아 뜯을 듯 쥐고 매달렸다. 느른한 목소리가 가볍게 물어 왔다.

“꿈꿨어?”

어린아이를 달래듯 편하게 물어 오는 목소리에 나는 한 번 더 생각했다. 꿈? 분명 꿈인데 머릿속에 떠오른 이상한 것들은 마치 꿈 같지 않았다. 하지만 그 환영이 실재라고 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꿈이라고 하기로 하고, 봇물 터지듯 사나운 꿈자리에 대해 털어놓았다.

“시체가 있었어요……. 그리고 벌레가…. 저는 묶여 있는데,”

“다 꿈이야. 진짜일 리 없잖아.”

태연한 목소리로 말을 끊어 버린 그가 차분하게 하나씩 되짚어 줬다. 여기엔 시체도, 벌레도 없다고. 묶여 있지도 않다며 내 팔목을 들어 달랑달랑 흔들기까지 했다. 여기가 아니라 어떠한 공간이었고, 나를 바라보는 누군가도 있었다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그쯤이면 됐다. 지금은 그의 장난스러우면서도 나긋한 태도에 긴장을 풀고, 진정하는 게 먼저였다.

“마저 자요.”

그가 나를 편히 눕혔다. 불을 끄고 침대 가까이의 조명만 건드린 최기원이 몸을 돌려 소파로 걸어가려 했다. 순간, 나는 손을 뻗어 그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얇은 니트의 소매가 치즈처럼 늘어났다. 최기원이 고개를 돌리며 눈을 크게 떴다.

“…….”

서늘한 눈이 나를 빤히 바라봤다. 노란 조명 때문에 눈두덩이와 코 옆에 어둑한 그림자가 져 있었다. 이내 입꼬리가 미미하게 올라간 입술 새로 부드러운 목소리가 흐른다.

“가지 마?”

나는 입술을 달싹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최기원은 옅은 미소를 지은 후 침대 곁의 의자에 앉았다. 여전히 붙잡고 있는 니트를 잡아 뺀 후, 대신 내 손을 잡았다.

“…….”

“뭘 봐요, 눈 감고 자요.”

그의 별스럽지 않은 말투 때문에, 어둑한 병실에서 그와 내가 손을 붙잡고 있는 행동마저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와닿는다. 최기원도, 나도. 도대체 우리는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나는 눈치를 보다 눈을 감았다. 맞닿은 손이 신경 쓰여 눈썹 사이가 옅게 찌푸려졌다.

눈물 때문에 살짝 부어오른 눈두덩이는 무거웠고, 나는 그의 손을 붙잡은 것도 잊은 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저 까맣고 까만 꿈을 꿨다.

뒤척이다 게슴츠레 눈을 떴다. 건조한 눈을 깜빡이며 주위를 살피니, 어느새 병실에는 겨울 아침의 회백색 햇볕이 쏟아지고 있었다.

“…….”

나는 큼직한 손을 붙잡고 있는 내 손을 멍하게 바라봤다. 잠이 걷히며, 새벽녘 소란을 피웠던 것이 하나둘씩 기억났다. 귓바퀴가 점점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최기원은 줄곧 나에게 손을 내어 준 채 휴대 전화를 보며 의자에 앉아 있었다.

‘한숨도 안 잔 건가.’

내가 적당히 잠에 빠지면 알아서 손을 빼고, 보호자용 침대로 가서 잘 줄 알았는데. 멋쩍은 기분에 괜히 안절부절못한 채 생각만 많아졌다. 최기원은 굳어 있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물었다.

“일어났어요?”

“네…….”

조그만 목소리로 대답하며 잡혀 있던 손을 뺐다. 그는 미련 없이 손을 놓아줬다. 느릿느릿 자리에서 일어난 최기원은 블라인드를 걷고 환기했다. 기다렸다는 듯 가습기 물을 갈고 커피를 내리는 모습이 여느 아침과 다를 바 없다. 유리잔을 든 그는 피곤한 듯 목을 좌우로 꺾으며 소파로 걸어갔다. 다리를 꼬고 앉은 최기원은 커다란 잡지를 살피며 인덱스를 붙이거나 가벼운 메모를 했다.

아침으로 나온 흰죽을 먹으며 흘긋 최기원이 앉은 소파를 바라봤다. 어느새 그가 보던 잡지는 소파 테이블에 거꾸로 엎어져 있고, 최기원은 뺨에 손을 얹은 채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다리를 꼬고,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졸고 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숟가락이 식기에 부딪히지 않도록, 나는 조용히 죽을 떠 입에 넣었다.

***

며칠 동안 불편했던 마음을 잘 숨겼지만, 결국 소란스런 속앓이가 몸 상태를 통해 고스란히 티가 났다. 간호사는 38.7도를 찍은 체온계를 나에게 보여 주며 눈썹을 끌어 내렸다.

“열이 더 올랐네요. 해열제 놓아 드릴 테니 따뜻하게 하고 주무시는 게 났겠어요.”

그리고 간호사가 오건 말건, 다리를 꼬고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은 최기원은 나에게 다소 삐딱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그는 검은 정장을 차려입었고, 평소와 달리 이마가 드러나도록 머리를 올린 상태였다.

“…….”

애써 그 서늘한 얼굴을 무시한 나는 무거운 머리를 베개에 묻고 눈을 감았다. 자꾸만 울컥하고 치미는 감정을 최대한 삭였다. 최기원의 앞에선 울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형의 기일이다.

며칠 전부터 매스컴에서 형의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렸다. 반파된 차나, 장례식장의 모습 등이 자료 화면으로 등장했다. 최기원은 오늘 결국 TV 리모컨을 부쉈지만, 앵커의 또렷한 목소리는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기억을 잃은 이후 날짜를 신경 쓰고 지내지 않았다. 하지만 형의 기일만큼은 본능적으로 헤아리고 있었다. 딱 이맘때 온도였고, 색깔이었으니까.

1주기라 말하지만, 나에게는 고작 몇 개월 전의 사고로만 느껴질 뿐이다. 가을을 지나 겨울을 맞이했으면서 이상하게도 가을을 거슬러 다시 형이 사고가 난 겨울로 되돌아간 것만 같다.

최기원이 리모컨을 부수기 전까지 며칠간 뉴스 채널만 봤다. 형의 생전 모습이 잠깐씩 화면에 나올 때마다 나는 숨을 참았다.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하며 형을 기리고 있었다. 그게 좋으면서도 한편으론 씁쓸했다. 나와 형의 관계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기에, 내 슬픔을 온전히 티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휴, 젊은 나이에 참 안타깝죠.

-…네.

영양제를 주사하러 온 간호사가 멍하게 TV를 들여다보는 나를 보며 물었다. 안타깝다는 말을 곱씹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그맣게 대답했다. 이곳은 세원 그룹 산하의 병원이고, VIP인 최기원이 보호자로 있는 곳이기에 으레 건넨 사소한 위로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TV 속 사람들의 추모에 묻힐 만큼 평범하고 적당하게 반응해야 했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내가 잊으면 끝나 버리는 추억은 참으로 허무하다. 나에게 남은 건 혼자가 된 현실과 머리를 뜨겁게 만드는 열뿐이었다.

그렇게 며칠 잠을 설쳤다. 최대한 티 내지 않으려 했으나 지나치게 생생한 악몽을 꾸고 땀에 흠뻑 젖어 깨어났다. 악몽은 아주 다양한 형태로 나를 괴롭혔다. 제일 견디기 힘든 건 주언이의 꿈이었다. 주언이가 나를 빤히 바라보다 주룩주룩 눈물을 흘린 꿈을 꿨을 땐, 깨고 나서 이불을 뒤집어쓴 채로 조용히 눈물을 삭혀야 했다.

컨디션은 자각할 정도로 빠르게 나빠졌고 이틀 전부터 시작된 미열과 몸살은 차도를 보이지 않고 심해져만 갔다. 어제는 결국 저녁 먹은 것을 모두 게워 내고 수면제 처방을 받아 겨우 선잠에 들었다.

하지만 새벽녘 결국 뒤척이다 깨어나 버렸다. 늘 내가 자고 깨는 것에 기민한 최기원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눈을 감고 자는 척 버티고 있었다. 그때 자그만 노크 소리와 함께 병실 문이 열렸다.

-사장님.

소란스럽지 않은 발걸음 소리와 단정한 말투는 최기원의 비서 목소리였다. 보호자실에서 생활하는 최기원 때문에 오며 가며 면을 텄다.

내가 자는 줄로만 아는 둘은, 나를 배려한답시고 보호자실로 들어가 이야기를 나눴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최기원과 비서님의 낮고 심각한 목소리가 –사실 비서님의 것만 심각했고, 최기원의 쪽은 줄곧 심드렁했다– 오고 갔다. 비서님의 간곡한 설득 끝에, 결국 형의 제사에는 참여하지 않고 대외적 행사인 추모식에만 참여하기로 결정이 났다.

기일 오전, 병원에서 출발하기 전 그는 온 낯으로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며 내 이마를 짚었다. 길게 내쉬는 무거운 한숨이 어째 추모식보다 아픈 내가 더 못마땅한 것 같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열에 달뜬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

오늘만큼은 이 아픔을 억지로 참거나 거부할 생각은 없었다. 아프면 아플 거고, 울고 싶으면 왕창 울 생각이었다. 다만 최기원 곁에서 그러진 않기로 했다. 내가 낫기를 바라는 사람 앞에서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그가 떠나자마자 세운 무릎에 이마를 묻고 기진한 숨을 뱉었다. 최기원의 빈 자리를 대신하는 간병인 두 명은 나를 살뜰히 간호했다. 최기원보다 더 능숙하고 다정한 손길인데도, 왜 문득 최기원의 생각이 나는지는 모르겠다.

간병인들은 내가 밥을 먹다가도 눈물을 터뜨리고, 재활 치료를 하면서도 손가락 움직이기를 쉽게 포기하는 것을 보고 오늘 컨디션이 나쁜 줄로만 알고 나를 위로했다. 뻥 뚫린 가슴을 스쳐 지나가는 위로는 아무런 힘이 되지 못했다. 꾸역꾸역 상담까지 받고 나니 어느덧 바깥에는 주황빛 노을이 내렸다.

“저기…….”

병동을 나서기 직전, 걸음을 천천히 멈췄다. 나보다 조금 앞서 걷던 사람들은 두 걸음 가고 나서야 내가 멈춘 것을 눈치챘다.

“네, 나언 씨.”

“잠시 혼자 걸어도 될까요?”

조심스러운 질문에 간병인 둘이 잠시 눈을 맞추더니 눈썹을 끌어 내렸다.

“음, 사장님이 계속 같이 있으라고 그러셨는데.”

“맞아요.”

이해가 가지 않는다. 뛰는 것은 물론, 걷는 걸음조차 위태로운 내가 가면 어딜 그렇게 멀리 간다고 이렇게 불안해하는지.

“제가 이러고 어딜 가겠어요.”

나는 병원복 차림의 나를 내려다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간병인들도 이해가 가지 않는 건 마찬가지인지 멋쩍게 웃었다.

“그냥 너무 답답해서요.”

“그래도 안 될 것 같은데요…….”

서로 어떻게 하지도 못할 흐릿한 대치 상황이 이어졌다. 나는 코를 한 번 먹고 두 명을 설득했다.

“그럼 이렇게 해요. 추우니까 한 분은 목도리 가져다주시고, 한 분은 따뜻한 음료 한 병만 사서 와 주세요. 딱 10분만 걸을게요.”

겨울의 하루 중, 햇볕의 색이 제일 따뜻한 지금. 난 형을 떠올릴 수 있는 곳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주언이가 입원한 뒤, 병문안을 온 형과 병동 주변을 걸었던 커다란 등나무 아래. 매서운 바람을 피해 앉아 있기 괜찮은 곳이 있었다.

결국 두 분은 내 고집을 이기지 못했고 몇 번이나 멀리 가지 않기를 당부한 뒤 자리를 떴다. 나는 꾸벅 인사를 한 뒤 천천히 걸음을 옮겼고 마침내 익숙하고도 고요한 벤치에 도달했다.

온 김에 주언이가 입원했던 곳까지 가 보고 싶었지만, 이미 체력을 너무 많이 써 버렸다. 나무 등치에 앉아 짧은 사색에 잠겨 들었다. 작게 울먹였으나 울음은 금세 멎었다.

형이 죽은 뒤의 기억은 없고, 남들은 전부 제자리를 찾은 일상 속에 나는 허겁지겁 적응해야 했다. 주언이라도 있었다면 나에게 더할 나위 없는 힘과 동기가 되어 줬겠지만. 주언이 까지 흐린 기억 속에 억지로 묻어야 했다. 그게 현실이니까, 깨어나 보니 그렇다고 하니까. 부정할 힘도 없는 나에게 매정한 현실이 얼른 적응하라며 채찍질을 한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너무나 아파서, 그러니까 육체적으로 고통스러워서 마음까지 온전히 살필 겨를이 없었다. 겨우 말하고 겨우 걷고, 겨우 버틸 만큼 회복하면서 나는 사랑하는 이들이 없는 세상에 강제로 무뎌져 갔다. 차라리 망각한 것이 많아 그 시간만큼이라도 덜 아픈 것이 다행이었다.

-나언 씨 좋아해서 그래요. 그뿐입니다.

무심하면서도 불안한 고백. 막막한 와중에 던져진 유일한 현실에는 최기원이 우뚝 버티고 있었고, 유달리 힘든 날 내가 붙잡을 건 어이없게도 최기원밖에 없었다. 담담하면서도 서늘한 얼굴이 나를 쳐다볼 때면 그가 나를 정말 좋아하는지, 그게 아니면 나를 싫어하는지 헷갈릴 때가 있었다. 호불호를 특정하지 못할 들끓는 감정만이 눈빛으로 전해졌다.

“어렵다.”

이제 곧 간병인들이 올 시간이었다. 의자에서 일어서 걸음을 떼는 순간, 익숙한 향이 코끝으로 들이닥쳤다.

“하아, 하아…….”

가슴을 작게 시근덕대는 최기원의 입술 사이로 하얀 입김이 모락모락 피었다. 예상치 못한 시간과 장소에서 조우한 것에서 오는 당황스러움과, 맥없는 반가움에 눈썹을 살짝 끌어 올렸다. 그런데 최기원의 표정이 이상했다.

“빨리, 왔네요…….”

알은체를 해 보려던 목소리가 점점 사그라져 말끝이 애매하게 뭉개졌다. 침묵 속에서 몇 번 눈을 깜빡이며 그를 올려다봤고 끝내 그의 통증 같은 시선에 못 이겨 시선을 떨궜다. 아주 잠깐 그가 우는 것인가 착각한 순간, 그의 성난 손길이 내 병원복 목깃을 사정없이 휘어잡았다.

불쑥 멱살이 붙들린 모양새로 벤치에서 끌려 나왔다. 절뚝이며 걸음을 따라가려 했지만, 그의 성난 보폭은 빠르고 넓었다. 게다가 사정없이 당기는 우악스러운 힘 때문에 몇 번이고 휘청대며 넘어질 뻔하자, 결국 그는 나를 어깨에 들쳐 멨다.

“윽!”

저녁 시간이라 오가는 사람이 꽤 있었다. 최기원에게 업히다시피 둘러메진 나를 흘긋대는 시선과 수군덕대는 소리가 느껴졌다. 그의 바위 같은 등을 두드리며 발버둥 쳤지만 완연한 힘의 차이만 와닿을 뿐이었다. 거꾸로 쏠린 머리에 피가 몰려 현기증이 일었다.

그대로 병동까지 도달하자, 특실 입구의 간호사와 경호원이 깜짝 놀라 우리 쪽을 쳐다봤다. 그들은 최기원을 저지하지도 못한 채, 짐짝처럼 들려 가는 나를 바라보며 당혹스러운 표정만 지었다.

병실 문을 열어젖힌 최기원은 나를 던지다시피 침대 위로 내팽개쳤다. 쾅, 문이 닫히는 소리가 귀를 찢을 듯 크게 들렸다.

“아, 흑!”

시트 위였지만 엉덩이를 세게 부딪쳐 신음이 절로 흘렀다. 안 그래도 몸살 기운 때문에 전신 곳곳이 쑤셨는데, 코끝이 찡할 정도의 통증에 순식간에 서러워졌다.

내가 아는 최기원보다 야윈 모습에,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그의 기이한 친절에 마음을 너무 놓고 있었을까. 형이 미친놈이라 욕하고 헐뜯던 최기원의 흉포한 모습을 직면하자 본능적인 무서움이 일었다.

“왜 이래요…?”

굳은 혀가 더듬대며 문장을 겨우 뱉었다. 헐거운 말투와 어정쩡한 자세 때문에 따져 묻는 모양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미간을 찌푸리고, 반쯤을 울먹이는 얼굴로 그를 올려다봤다. 리모컨을 던진 것부터 지금의 우악스러운 행동까지. 의미 없는 화풀이를 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형의 기일인 게 못마땅해서? 내가 때맞춰 형을 그리워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게 미워서?

그게 뭐든 나한테 이렇게까지 위협적으로 굴 이유는 없었다.

내 질문에 그는 곧장 대답하지 않고 끓는 눈으로 나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필사적으로 분노를 누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의 분노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솟아난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걸 느끼며 그를 향해 겨우 이유를 말했다.

“잠시 혼자 있고 싶어서, 그래서 그런 거예요.”

“…….”

“멀리… 간 거… 아닌데….”

나에게 집착적으로 군다는 것은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으나 겨우 10분의 산책이었다. 도대체 이걸 왜 설명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선은 흥분한 그를 가라앉히는 게 먼저라 생각했다.

그런데 내 말을 들은 최기원의 입꼬리가 허탈하게 올라간다.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리며 뒷목을 주무르는 그의 얼굴은 복잡했다. 짧은 찰나 수많은 생각이 그의 눈동자를 흔들어 놓는 것을 똑똑히 봤다.

“그냥 씨발……. 얌전하게 좀 있으면 안 될까.”

갑작스러운 욕설에 놀라 주먹을 쥐자 손바닥 아래에서 얇은 이불이 사그락대며 구겨졌다. 훅, 열이 올라 일전보다 훨씬 뜨거워진 숨이 잇새로 흩어졌다.

그러잖아도 형 때문에 약해진 마음이 최기원의 날 선 말투 탓에 금이 가 버렸다. 아픈 나를 1년 가까이 보살펴 주는 게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안다. 하지만 그의 예민하고도 다정한 간호가 단순히 간호가 아니라는 것이 느껴질 때마다 난 불안하고도 역겨운 죄책감에 사로잡혀야 했다.

내가 뒤척일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라 곁에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가끔 코밑에 손을 대어 보고 심장 위에 귀를 가져다 대는 행동과 코끝과 입술을 지그시 건드려 보는 가벼운 손길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기억에서 잘려 나간 작년 겨울과 올해 봄에, 우리 둘 사이엔 어떤 얼룩이 존재하는 걸까.

그리고, 나는 기억해 내기를 유예해 버린 과거 속에 그가 일방적으로 잠겨 있다는 것이 못내 불안했다.

“왜…… 왜 그래야 하는데요.”

복합적인 탄식이었다. 나를 좋아해서 그렇다는 대답을 믿고 그저 호의로 받아들이려고 했다. 하지만 단순한 질투라고 하기엔 최기원의 행동은 지나쳤다.

“내가 어떻게 굴었길래, 왜……. 도대체 우리가 뭘 했길래 이렇게 굴어요.”

나의 질문에 병실의 공기가 순식간에 불온해졌다. 최기원의 짙은 눈썹이 움찔했다. 감정을 삭이지 못한 얼굴이 순식간에 가라앉는다. 그 식어 버린 차가운 낯에서 그가 더 화가 났다는 걸 알아차렸다.

“……!”

성큼 다가온 그가 내 뒷덜미를 단단하게 붙들었다. 침대에 앉아 있는 나에게 커다란 몸을 숙인 그가 그대로 입술을 겹쳤다. 그의 향이 코끝으로 훅 풍겨 왔다. 너무나 익숙해서 무서운, 몸이 절로 굳고 가슴을 두방망이질 치게 만드는 기억 속의 체취.

손을 뻗어 어깨를 밀었지만, 그는 남은 손 하나로 내 몸을 가볍게 저지하며 고개를 틀어 입술을 더 깊게 겹친 후 핥아 올렸다. 당황해 숨을 헛들이켠 순간, 벌어진 입술 사이로 뜨거운 혀가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그의 무게 때문에 몸이 뒤로 무너지려 했다.

“으, 읍!”

“…….”

조용한 병실에 내가 몸부림치는 소리와 입술이 마찰하며 나는 노골적인 소리만 들렸다. 일부러 혀를 섞고, 밀어내는 허벅지를 제 무릎으로 짓누르고, 힘의 차이를 극명하게 느끼게 하는 사납고 질 낮은 키스였다.

입술 주변이 부르틀 정도가 되고 나서야 그가 입술을 떼어 냈다. 무의미한 반항을 하느라 힘이 빠진 손목을 그가 툭 던지듯 내려놨다.

“하아, 흑…….”

나는 잔뜩 흐트러진 채 가쁜 숨을 내쉬었다. 제대로 된 생각이 이어지지 않을 만큼 머리가 멍하게 멈췄다. 입술을 손등으로 가리고 벌벌 떨고 있는 나를 내려다보며 그도 손등으로 입술을 문질러 닦았다.

최기원은 손을 뻗어 쇄골께를 툭 건드리며 내게 속삭였다.

“놀랐어?”

“……미쳤-,”

“이걸로 뭘? 더한 짓도 한 사인데.”

히죽 웃는 얼굴이 소름 끼쳤다. 더한 짓이라는 단어에 눈이 크게 뜨였다. 내가 다친 건 형이 죽고 고작 4개월 정도가 흐른 때였다. 그 짧은 사이에 나와 최기원이 더한 짓까지 했다니. 믿고 싶지 않았다.

그를 보며 입술을 달싹이다 이내 고개를 푹 떨구고 말았다. 충격 때문에 턱이 잘게 떨렸다. 어지러운 머릿속에서 빨간 질문만 선명하게 둥둥 떠다녔다.

설마, 내가 최기원을 좋아했을까.

혀끝을 맴돌던 질문은 끝내 뱉지 못했다. 들려올 대답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날 처음으로, 난 기억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핑계에 몸을 숨겼다. 최기원의 행동을 잊어야만 할 것 같았다.

***

겨울은 지지부진하게 길었다.

2월 끝자락의 하늘은 잿빛이었다. 먼지가 낀 것 같기도, 하얗게 얼어붙은 것 같기도 했다. 곧 3월이 다가오는데도 아직 사람들은 발목까지 오는 패딩을 입고, 귀 끝을 빨갛게 물들인 채 빠르게 걸어 다녔다.

코를 훌쩍이자 최기원이 일어나자고 말했다. 그가 쥐여 준 유자차는 어느새 바람에 식어 온기를 잃었다. 병이 미지근해진 걸 눈치챈 그가 내 손에서 병을 뺏어 가고 그가 마시던 커피 컵을 쥐여 주었다. 그의 것은 아직 따뜻했다. 그걸 손난로처럼 양손으로 쥐고 병동으로 돌아갔다.

짧은 저녁 산책이 끝났다. 이제 보조기 없이도, 최기원이 팔뚝을 잡아 주지 않아도 걸음을 잘 뗐다. 나는 착실하게 나아 갔다.

어느새 씻는 것도 혼자 하게 되고, 죽 대신 밥으로 바뀐 식사도 잘 소화했다. 밥을 먹기 시작하니 자연스레 살이 붙기 시작했고 재활의 속도도 빨라지며 절뚝대던 걸음이 느린 뜀박질로 바뀌었다.

물론 힘줄과 신경이 손상돼 왼손가락이 부자연스럽게 움직이고, 면역력이 낮아져 감기에 자주 걸리긴 했지만, 이 정도 회복도 꽤나 오래 걸렸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걷게 되어 외출할 수 있는 범위도 넓어지며 최기원은 종종 나를 데리고 바깥으로 다녔다.

먹지도 못하는 밀가루 음식을 잔뜩 시켜 놓고 분위기를 내거나, 어차피 병원 밖을 나가지 않는 나에게 옷을 잔뜩 사 줬다.

그렇게 조금씩 병원에서 벗어나 일상을 보기 시작하자, 차단되었던 현실적인 생각이 나를 차분하게 파고들기 시작했다. 점점 나아 가며 새로운 불안이 가슴에서 자라나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새 상담의 주제는 잃어버린 기억이 아닌, 앞으로의 나의 생활에 대한 막연한 걱정으로 옮겨 갔다. 주언이를 위해서만 살아왔기에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가 막막했다. 특별히 잘하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애써 씩씩한 척 상담을 마치고 나올 때면, 어색해진 왼손을 보며 최기원에게 기생하고 있는 한심한 인생을 욕했다.

지난달, 은근히 퇴원을 화두로 꺼내며 병원비를 어떻게 갚느냐고 물었다가 그의 서늘한 표정을 다시 한번 마주했다. 내 질문에 의아한 듯 나를 빤히 바라보던 최기원은, 네가 몸을 팔아도 못 갚는 돈이라는 미친 대답을 했다.

표정을 숨기지 못해 낯빛을 굳혔더니, 뒤늦게 그가 농담이라며 웃었다. 억지로 입꼬리만 끌어 올리는 그의 예민한 표정 탓에 전혀 농담으로 느껴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는 나에게 어떠한 것도 갚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런 그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는 그저 고맙다는 인사를 열심히 하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요 앞에 산책 갈 때 일부러 새로 산 옷들을 하나씩 꺼내 입었는데, 그때마다 최기원은 나를 말없이 바라봤다.

그가 바라보는 나의 모습이 과거의 나를 투영한 허상인지, 현재의 나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는 그렇게 가끔씩 멍하게 흐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살이 따가울 정도로 오랫동안, 그의 묘한 시선이 닿을 때면 영문도 모른 채 귓불을 붉히며 어색하게 몸을 굳혀야 했는데, 떠올려 보면 참으로 별것 없는 순간들이었다.

TV에서 즐겨 보던 예능 프로그램의 재방송을 보며 웃음을 터뜨린 날.

재활 훈련이 유독 지독해 땀을 잔뜩 흘렸던 날, 가까이 다가온 그를 피하며 냄새난다는 말을 했던 때.

병원 내의 카페에서 최기원이 거스름돈을 잘못 받아 온 걸 알아채고 직원을 붙잡고 2,000원을 더 받아 온 순간.

왼손 재활 훈련 숙제로 삐뚤삐뚤한 글씨를 쓰며 작게 한숨을 쉬었던 저녁.

목과 허벅지에 남은 옅은 화상 흉터를 무의식중에 만지작댔던 순간.

지금 생각해도 공통점도, 특정할 수도 없는 사소한 것들에 그의 시선은 곧잘 안정을 잃었다. 그 가파른 감정의 변화를 느낄 때마다 괜히 마음이 어려워졌다. 지금 그는 이성과 본성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듯했다. 지나친 불안을 감추고 있는 최기원과, 그 불안을 직면하기 싫은 내가 만드는 어색한 흐름. 서로 묘하고 애매한 것을 알고 있지만 그저 덮어 둔 채 우린 모호한 관계를 유지했다.

치료 초반, 주언이의 마지막을 기억하지 못한 게 너무나 안타까워서 얼른 기억이 돌아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상담을 받으면서도 하나라도 기억을 끄집어내기 위해 애썼고, 벽을 바라보면서도 구멍이 난 부분을 곱씹고 되짚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외면하고 싶었다. 알고 난 뒤 밀려올 검은 물결이 무서웠다. 내가 너무 혐오스러울 것 같아서, 스스로 손목을 그을 만큼 나를 미워했던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아서 잠시 생각을 멈췄다. 마치 텅 빈 방에서 다가올 폭풍을 무력하게 기다리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내가 기억에서 도망치고 싶어 하는 것을 어째 최기원도 달가워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벌레가 나오던 악몽은, 내가 누군가에게 처절한 강간을 당하는 꿈으로 옮겨 갔다. 헐떡이며 잠에서 깬 내 손을 붙잡은 최기원은 줄곧 그건 꿈이라는 말을 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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