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308화 (308/956)

주목(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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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유야! 괜찮아?”

명수가 병실로 쳐들어오는 소리에 단유가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괜찮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

“조금 다쳤어.”

“조금 다쳤는데 입원을 해?”

라고 말하던 명수가 병실을 둘러보더니 입을 헤 벌렸다.

“우와 이렇게 넓은 데를 혼자 쓰는 거야?”

“그러게. 부담스럽지만 그렇게 됐다.”

깨끗하게 정리된 병실에 하얀 병원복을 입고 있는 단유의 모습이 썩 어울린다고 생각하며 명수는 가방을 아래 내려놓았다.

“언제 퇴원하는데?”

“많이 다친 게 아니라서, 금방 할 거야.”

“수술해야 돼?”

“아침에 치료받았고 이제 약만 먹으면 된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해서 잠시 있는 거야. 아마 내일은 퇴원해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 잘 모르겠다.”

“조금 있다가 상미도 온다고 했는데, 오지 말라고 할까?”

“상미가? 왜?”

“왜긴? 친구 병문안 오는 건데 왜는 무슨 왜야.”

“그냥 오지 말라고 해. 어차피 내일 퇴원해서 보면 되는데.”

병문안을 받을 만큼 심각한 병에 걸린 것도 아니고, 잠시 치료를 위해 있는 건데 너무 일이 커지는 것이 아닌가 싶어 단유가 부담스럽다는 뜻을 보였다.

“혹시 몰라서 책도 들고 왔는데, 그럼 필요 없으려나?”

“무슨 책?”

“그냥 니 책장에 있던 책 중에 하나 가지고 왔어. 두꺼운 책 좋아하니까, 제일 두꺼워 보이는 거로 가지고 오긴 했는데, 금방 퇴원할 거면 필요 없는 거 아닌가?”

라며 내려놓았던 가방에서 책 한 권을 꺼내 드는 명수였다.

“고맙다.”

단유는 진심을 담아 웃음을 지어 보이곤 명수가 건넨 책을 받았다.

“확실히 두꺼운 책이긴 하네.”

제목에 끌려서 샀던 책이긴 했는데, 아직 읽어보지 못하고 있던 책이어서 이참에 읽어보면 좋을 것 같기도 했다.

“근데 집에서 고를 때는 급히 고르느라고 제목을 제대로 안 봤었는데, 제목이 좀 수상하네.”

명수는 단유의 손에 들린 책 표지를 보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하긴 「살인의 해석」이란 제목이 어린 명수의 눈에는 수상하게 보일 법도 했다.

그 뒤로 명수와 시시한 잡담을 나눈 후, 명수는 집으로 돌아갔다. 다시 조용해진 병실에 남게 된 단유는 책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살인이라.”

책은 정신분석학자들이 범인을 찾아가는 내용이었지만, 단유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어젯밤 벌어진 사건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셈이었다.

단유는 가습기에서 올라오는 하얀 수증기를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생각이 깊어질수록 마음속의 혼란함만 더하는 것 같았다. 이런 상태로는 책을 읽어도 집중이 잘 안 될 것 같아, 잠시 게으름을 피우기로 마음을 먹었다.

가끔은, 그냥 머리를 텅 비우고 시간을 보내는 시간을 가져도 좋으리라. 1분 1초도 쉬지 않고 주위를 살피며 머릿속으로 온갖 것들을 계산하느라 노곤해졌던 뇌가 이제는 쉬고 싶다고 말하는 기분이었으니까.

****

새벽 무렵, 단유는 인기척을 느끼고 잠이 깼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보니, 자신보다 더 느리게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가 보였다.

“안녕하세요.”

단유의 인사에 들어오던 이가 멈칫했다.

“깼냐?”

“네.”

“미안하네. 얼굴만 보고 가려고 했는데.”

재훈은 머리를 긁적이다가 젖은 머리가 덜 말랐다는 것을 깨닫고는 긁던 것을 멈췄다. 병실 문을 닫고 침대 쪽으로 다가오는 재훈을 보며 단유는 몸을 일으켰다.

“그냥 누워 있어.”

“괜찮아요. 너무 오래 누워 있었더니 몸이 가렵기도 하네요.”

“그건 목욕을 안 해서 그래.”

실없는 농담을 뱉으며 침대 옆에 놓인 의자를 가져다 앉은 재훈은 이후 말없이 단유를 바라보기만 했다.

“많이 피곤해 보이세요.”

“아, 요즘 잠을 잘 못 자서 말이야. 원래 병원 실습이란 게 힘든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피곤할 줄은 몰랐네.”

달빛처럼 희미한 웃음을 짓는 재훈을 보던 단유는 옆에 놓인 냉장고에서 초콜릿을 꺼냈다.

“낮에 주영 누나가 잠시 들렀다가 주고 간 건데, 형한테 더 필요해 보이네요.”

“고맙다.”

재훈은 애써 거절하진 않고, 단유가 내민 초콜릿 하나를 집어 포장지를 뜯어낸 뒤 입안에 넣고 천천히 녹이기 시작했다.

“미안하다.”

말없이 시간을 보내다, 한참 후 재훈이 뱉은 첫 마디였다. 그 한마디가 그렇게 꺼내기 어려웠던 건지. 재훈은 내친김에 말을 이었다.

“나 때문에 니가 고생을 하는구나.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내가 생각이 짧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형이 왜 미안해요? 형은 잘못한 게 없잖아요.”

“···그래도 미안해. 내가 신경을 쓰지 못한 것도 그렇고, 내 출신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니 그것도 미안하고.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널 입양하기로 했을 때 주영이 반대했던 게 고맙기까지 하네. 만약 입양이었다면 더 심한 일도 벌어졌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형.”

재훈이 고개를 들어 단유를 보았다.

“저랑 명수는 진심으로 형한테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형 덕분에 저희 두 사람, 지금까지 편하게 생활할 수 있었고, 공부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물론 이런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해 형이 어떤 마음인지 모르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그런 이유라면, 과연 사건의 원인을 어디까지 거슬러가야 하는 걸까요? 만약 제가 ‘부모님이 안 계셔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미안해하면 형이 이해하시겠어요?”

“······.”

“저랑 명수가 고아이기 때문에, 형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였기에, 그래서 형의 후원을 받으며 생활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 그러니 결국 원인은 저랑 명수가 고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형에게 심려 끼쳐 죄송하다고 사과를 한다면, 형이 받아들이실 수 있으시겠어요?”

“···그건 억지지.”

“형도 억지를 부리신 거예요. 형이 연성그룹과 관련 있다고 해서, 그것이 이 일의 원인이라고 말씀하시면 안 되죠. 이번 일은······.”

단유는 잠깐 말을 멈추고 병실의 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불투명한 창으로 희미한 불빛이 비치고 있었다. 달빛이라기엔 너무 밝은 빛이어서 아마 주변 상가의 간판에서 비친 불빛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요. 이번 일은 그냥 사고였어요. 욕심, 욕망, 동정, 은혜와 같은 감정들이 전력으로 질주하다가 교차로에서 난 사고였어요.”

사람의 보이지 않는 감정들이 그렇게 치달았고 맞부딪치며 피를 흘리고 상처를 헤집었던 사고였을 뿐이었다.

“물론 한 사람의 욕심이 신호위반을 한 것 같지만, 뭐 그 정도는 어디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잖아요?”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달빛 같은 웃음으로 재훈을 달래는 단유였다. 재훈은 고맙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했다. 애초에 자신이 단유를 입양하려 할 때 가졌던 가벼운 마음도 조금 무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비로소 재훈은 ‘책임감’이란 것이 이토록 무거운 것이라는 사실을 통감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형.”

“응?”

“씻었으면 좀 말려요. 그러다 머리에 비듬 생겨요.”

단유가 재훈의 젖은 머리를 가리키며 말하자, 재훈이 방긋 웃었다.

“그게 보여?”

“번들거리는데요?”

두 사람은 유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병실을 나가기 전, 재훈이 물었다.

“주영이한테 들었는데, 경찰에게는 신고를 안 했다며?”

“별일 없었는데, 그냥 조용히 덮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서요.”

“그것도 설마, 나 때문이야?”

“형, 그러다 피해의식 생기겠어요. 그게 왜 형 때문이에요? 저 때문이죠.”

빈말이 아니라 정말 단유 본인을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하지만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조금 달랐나 보다. 주영도 그러더니, 재훈 역시 ‘고맙다’는 말로 인사를 건네고는 병실을 나섰다.

****

퇴원할 때도 주영이 와서 도와주었다.

“바쁘신데 저 때문에 곤란하게 해드리는 것 같아 죄송하네요.”

“그런 말 하지 마세요, 김단유씨.”

주영은 싱긋 웃으며 단유의 손을 붙잡았다.

“저희가 너무 소홀했던 것 같아 미안해서 더 유난 떠는 거랍니다.”

“그러지 마세요, 누나. 진짜 부담스러워요.”

“그렇게 부담스러우면 이제부터는 사고 좀 치지 말고.”

“그럴게요.”

“1등도 다시 하고.”

“1등이요?”

“공부, 해야지?”

“지난번에는 그런 말씀 없으시더니, 은근 걱정하고 계셨나 봐요?”

“걱정이야 당연히 하지. 물론 니가 알아서 잘하는 아이라는 걸 모르진 않지만, 그래도 갑자기 그렇게 성적이 뚝 떨어져 버리면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잖니?”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진짜 친누나 같네요.”

주영은 단유의 손을 꼭 붙잡고 앞뒤로 크게 흔들며 걸어갔다.

“너 같은 동생이라면야 친누나 백번도 더 하지.”

“명수도 있고요.”

“음···명수는 조금 고민해봐야 겠는데?”

“명수가 들으면 섭섭하겠어요.”

“걔가 공부에 조금만 더 관심을 쏟는다면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르지.”

“그렇게 전할게요.”

집으로 돌아온 단유에게 일주일간 통원치료하는 거 잊지 말라는 당부를 남기며 주영은 돌아갔다.

“밥 줄까?”

아직 점심을 먹기엔 이른 시간이지만, 이모님은 반가운 마음에 다른 말 대신 식사를 권유했다.

“네, 먹을게요.”

이모님은 냉장고에서 밑반찬들을 꺼내고, 김치전을 노릇하게 구워 접시에 내 주었다.

“학교는?”

“내일부터 가려고요.”

“괜찮고?”

“의사 선생님이 괜찮다고 했어요.”

“그래도 조심해. 다친 곳 덧날 수 있으니까.”

“네. 고맙습니다.”

단유는 미소를 지어 보인 뒤, 숟가락을 들었다.

오후에는 상미가 집으로 찾아왔다.

“야, 너 왜 내가 간다는데 오지 말라고 한 거야?”

“상미야.”

“왜!”

“그 전에 먼저 할 말 있지 않냐?”

“뭐?”

“예를 들면, 아픈 데는 괜찮냐는 둥 뭐 그런 거.”

“아, 맞다. 괜찮아?”

“이럴 때 ‘엎드려 절받기’라는 말을 쓴다지.”

“···니가 너무 괜찮아 보여서 깜박해서 그렇지. 진짜 괜찮아? 안 아파?”

“괜찮고, 안 아파.”

“거기야?”

“응. 궁금하다고 손대면 안 된다. 누르면 아파.”

“내가 그럴 애로 보여?”

“응.”

“···역시 넌 나를 너무 잘 아는 거 같아.”

“됐고, 아직 명수 안 왔는데, 혼자 놀고 있어.”

“야, 같이 놀자.”

“나 아픈 사람이야.”

“방금은 안 아프다며?”

“사람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습관은 좋은데, 그래도 융통성 있게 듣도록 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그래. 그게 너지.”

“···그거 놀리는 거지?”

“됐다. 난 그냥 옆에서 구경만 할 테니까, 너 혼자 해.”

“그럼 옆에 붙어 있어. 내가 설명해줄게.”

“설명 안 해줘도 되니까, 그냥 혼자 놀아.”

화냈다가 미안해했다가 삐졌다가 웃다가 하며 얼굴로 ‘열일’하던 상미는 결국 단유를 옆에 앉혀놓고 혼자 게임을 했다. 가끔 단유를 흘깃 바라보며 괜찮은지 표정을 살피는 모습은 또 어린애 같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상미야.”

“응?”

“너네 기말고사 일정 나왔지?”

상미는 게임 패드를 툭 떨어뜨렸다.

“왜 재밌게 노는데 그래? 너 일부러 그러는 거지?”

“다음 주부터 같이 공부하자고.”

“···그럼 다음 주에 이야기하면 되잖아?”

“미리 얘기해줘야 마음의 준비를 하지. 넌 마음의 준비를 해야 공부를 할 수 있다며.”

“에이, 참.”

상미는 다시 게임 패드를 손에 쥐고 몇 번 틱틱거리더니 다시 손을 놓았다.

“너 진짜 못 됐어.”

“뭐가?”

“너 나 싫어하지?”

“아니.”

“그럼?”

“좋아하지.”

“진짜?”

“응.”

“그런데 왜 사람 놀려?”

“놀리긴. 그냥 있는 그대로 이야기한 것뿐인데.”

“너 때문에 게임도 못 하겠어.”

“잘됐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미리 공부나 좀 할까?”

상미는 얼른 게임 패드를 손에 쥐고는 다시 게임을 재개했다. 단유는 피식 웃으며 몸을 뒤로 젖혔다. 상미는 그런 단유를 몰래 훔쳐보았다가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생각해보니 단유와 이렇게 편하게 대화를 나눠본 적이 별로 없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다친 게 어깨가 아니고 머린가?’

슬쩍 단유의 머리를 쳐다보는 상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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