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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 백작 부부에게는 네 명의 아들이 있었다.
첫째 아들 아인스는 몹시 얌전했다. 아이는 걷기 시작할 무렵부터 글자를 익혔고, 하루 종일 서재에 틀어박혀 있을 정도로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백작의 서재에는 어린아이들이 읽을 동화책은 꽂혀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아인스는 또래 아이들에 비해 다소 성숙했다. 네 살이 되던 해에는 어눌한 발음으로 제국의 역사를 줄줄 외다시피 했다. 아이는 그야말로 천재였다.
그런 아인스가 여섯 살이 되던 해, 쌍둥이 형제가 세상에 나왔다. 아인스는 동생이 한 번에 둘이나 생겼다며 좋아했으나, 그랬던 그가 쌍둥이들이 태어나던 날을 암흑의 날이라 부르기까지는 몇 년도 걸리지 않았다.
15분 차이로 형이 된 로베인과 그의 동생인 조이는, 눈만 마주쳐도 으르렁거렸다. 똑같은 장난감을 사줘도 두 개를 모두 갖겠다고 아웅다웅 다퉜고, 날이 갈수록 그들의 장난기는 심해져갔다.
로베인과 조이가 어느 정도 컸을 때부터는 형인 아인스를 골탕 먹이는 것을 낙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따뜻한 햇살 아래 졸고 있던 아인스의 얼굴에 청개구리를 올려둔다든지, 즐겨 읽던 책을 다른 책꽂이에다 몰래 숨겨버린다든지 하는 사소한 장난이었다. 아이들은 형인 아인스처럼 책을 좋아하지는 않았으나, 타고나기를 영특하게 태어났다. 그들의 장난 수법은 날이 갈수록 발전해갔다.
“어머니, 저는 더 이상 동생이 필요하지 않아요.”
동생이 가지고 싶지 않냐는 말에 아인스는 몇 년 전과는 다르게 염세적으로 읊조렸다.
“어머…. 너희 싸웠니?”
여섯 살이나 어린 동생과 싸우다니? 유치하기 그지없는 짓이다. 아인스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중얼거렸다.
“……차라리 싸우고 싶어요.”
하지만 이미 루트 백작부인의 뱃속에는 생명이 움터 있었다. 아인스와는 다르게, 쌍둥이들은 동생이 생기면 좋을 것 같다고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곧 열두 살이 될 아인스가 제국 아카데미에 가면 놀릴 사람이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그들에게는 새로운 장난감이 필요했다.
동생이 생기면 매일 데리고 다니면서 심부름을 시킬 거야.
식사에 나오는 완두콩은 전부 동생이 먹으라고 해야지.
저 멀리로 공을 던지고 멍멍이처럼 주워오게 시키자!
쌍둥이들은 심부름꾼이자 장난감이 될 동생이 태어날 날만을 목이 빠져라 기다렸다. 그들의 관심이 뱃속의 막내 동생에게로 돌아가자, 아인스는 당분간 평화로운 나날들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해의 겨울, 예정일보다도 한 달이나 빠르게 아이는 태어났다.
그 날은 유독 눈보라가 세차게 불어 창밖이 온통 새하얗게만 보였다. 하필이면 그렇게 궂은 날씨에 백작부인은 진통을 시작했다. 문 너머로 들려오는 어머니의 비명소리에 쌍둥이들은 아인스의 눈치를 보며 불안에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칼바람을 헤치고 겨우 의원이 저택을 찾았을 때, 그녀는 거의 혼절하기 직전이었다.
산모도, 태아도 위험한 고비를 가까스로 넘겼다. 꼬박 반나절 만에 가까스로 태어난 넷째 아이는 다른 아이들보다도 훨씬 자그마했다. 몸이 약한 탓에 잔병치레도 잦아, 거의 매일을 저택 안에서만 생활해야 했다.
백작은 가까스로 세상의 빛을 본 아들이 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자랐으면 좋겠다는 뜻에서, 제국 전설에 나오는 장수와 생명을 다루는 신의 이름을 따 ‘제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동생이 태어나면 충실한 노예로 삼겠다던 쌍둥이들도 자연스럽게 제리의 듬직한 형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4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첫째 아인스는 열여섯, 쌍둥이들은 열 살, 그리고 막내인 제리는 네 살이 되던 해의 여름이었다.
“에이, 놓쳤네.”
“로베인, …제리가 없어졌어.”
“어어? 어디 갔지?”
쌍둥이들이 빵조각을 쪼아 먹는 참새를 잡겠다고 한눈을 팔던 사이, 제리는 팔랑거리는 하얀 나비를 따라가다 그만 연못에 퐁당 빠지고 말았다. 키에 비해 턱없이 깊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제리를 구한 것은 꽃 덤불을 손질하던 정원사였다. 종일 사경을 헤매던 제리는 일순간 심장이 멎었다. 몇 분 뒤, 아이가 다시 얕은 숨을 내쉬기 시작했을 때에는 온 얼굴이 눈물로 엉망이던 백작부인도 그만 의식을 놓았다.
“상태를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의원은 비통하게 고개를 숙인 채 읊조렸다. 제리는 희미한 숨소리만으로도 온 저택을 들었다 놨다 했다. 루트 백작은 저택의 자랑이라 할 정도로 아름답던 연못을 완전히 메워버렸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막내아들이 생각나는 탓에 우울해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아이는 무려 1년이나 침대에 죽은 듯이 누워, 한동안 잠만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