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권-1. 만남 (1/31)

CONTENTS

1. 만남

2. 시작

3. 변화

4. 레인보우 히스토리

5. 대가와 희생

6. Play Fun

7. 전직

8. 어른은 아이의 거울

고등학교 2학년. 왕따를 당했다. 이유 없이 시작된 괴롭힘은 나날이 견디기 어려운 폭력으로 변해서, 선생님께도 부모님께도 알리지 못했던 겁 많았던 자신은 홀로 견디다 못해 끝내 잘못된 선택을 하고야 말았다.

모든 걸 포기하고 저질렀던 한 번의 자살 시도는 겁 많던 자신을 표출하듯 실패하고 말았다. 그로 인해 모든 걸 알게 되신 부모님은 손목에 지독한 절상만을 남긴 나에게 당신들의 탓이라며 목 놓아 우셨다.

그 이후로 자연스럽게 시작된 등교 거부는 어느새 자퇴란 형태가 되어 있었고, 그렇게 석 달 이상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아니, 나가지 못하는 나에게 어느 날 아버지가 최신형 컴퓨터 한 대를 선물해 주셨다.

속상한 마음에 술을 좀 드시고 오신 것인지, 미약하게 풍기는 알코올 냄새와 함께 죄인처럼 앉아 있는 나에게 아버지는 세상에 적응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라고… 한 번의 실패로, 타인에 의한 실패로 모든 걸 포기하지 말아 달라며 사회라는 건 여러 가지 형태가 있으니 네가 원하는 새로운 사회를 찾아보라고 하셨다.

그렇게 덩그러니 컴퓨터와 마주하게 된 나는 며칠간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모니터 화면만 멍하니 바라보다, 생각 없이 띄어놓은 인터넷 화면 한편에 떠 있는 게임 홍보 배너를 보게 되었다.

1. 만남

[율] 캐릭터를 생성하시겠습니까?

캐릭터 생성 여부를 묻는 알림 창을 보며 율의 손끝에 잠시 머뭇거림이 스쳤다. 처음 해보는 게임에 캐릭터 이름을 뭐로 할지 몰라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 자신의 이름을 써넣었다.

너무 밋밋한 느낌에 성까지 붙여서 [권율]을 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왕따의 원인이 되었던 본명 두 자를 모두 써넣자니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아 그저, [율]로 캐릭터 생성 완료를 하게 되었다.

레페르토르.

오픈 이후로 몇 년간을 꾸준히 인기의 중심에 있는 게임이었다. 이 게임이 주목받게 된 이유는 게임을 대표하는 두 가지 시스템 때문이었는데, 하나는 유저의 npc화. 게임 내 npc의 절반은 유저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히든 시스템.

게임 내 곳곳에는 히든 코드가 숨겨져 있다. 히든 코드는 발견하는 유저들을 히든 클래스로 전직할 수 있게 하는 퀘스트를 부여하는데, 코드를 발견할 수 있는 조건이 까다롭고, 부여되는 퀘스트도 난도가 높기 때문에 발견과 달성 두 개를 합쳐서 최상위급 퀘스트로 분류되고 있다.

히든 클래스는 한 계정당 하나의 캐릭터만 가능하고, 부여된 히든 퀘스트를 포기할 경우 해당 계정으로는 두 번 다시 히든 클래스 전직이 불가하다. 히든 클래스는 한 직업당, 단 한 명만 전직할 수 있고, 총 몇 개의 히든 클래스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히든 시스템은 클래스 전직 말고도 히든 스킬을 열 수도 있다. 한 가지 스킬을 마스터 급으로 연마를 하고, 랜덤한 조건을 충족시켜야만 오픈되는 히든 스킬은 계정당 한 번만 가능한 히든 클래스 전직과는 다르게 캐릭터별로 오픈이 가능하다. 단, 히든 클래스는 히든 스킬 오픈이 불가하다.

그리고 히든 스킬 한계점 돌파를 하면 아주 낮은 확률로 게임 내 신급 npc인 히든 npc가 되거나 역린이라는 스킬을 얻게 된다. 역린은 히든 npc를 소환하는 스킬로, 소환자와 히든 npc는 계약을 통해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관계를 맺는다.

레페르토르에는 14명의 히든 npc가 존재한다. 즉, 역린을 얻을 수 있는 것도 14명의 유저들뿐이라는 뜻이다. 게임에 접속하는 동안 조금은 오래 걸리는 로딩화면을 바라보며 홈페이지에서 봤던 게임의 주 시스템을 생각하던 율은 화면이 전환되며 게임 내에 우뚝 서 있는 캐릭터의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머리 위에 새겨져 있는 아이디는 율. 자신의 캐릭터였다.

처음 접해본 게임은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인터페이스를 전부 숙지해도, 알 수 없는 것들투성이였다. 원거리로 활을 쏘는 캐릭터를 선택하기는 했지만, 원거리가 무색하리만치 얻어맞기만 했다.

맵을 제대로 볼 줄 몰라 넓은 필드에서 길을 헤매고, 방어 스킬을 제대로 쓸 줄 몰라 뻑 하면 죽고, 돈도 잘 모이지 않아 포션도 사지 못했다. 몬스터를 잡으면 생명력을 소량 회복시켜 주는 아이템이 간간이 드랍 돼서 그런 아이템을 모아 먹거나, 가만히 앉아서 피나 엠이 회복되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렙업은 더뎠지만, 회복을 위해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조금은 지루한 시간이 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여유로움을 느끼게 해줘, 점점 더 게임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가던 중, 여느 때와 같이 게임에 접속하기 위해 홈페이지에 접속한 율은 홈페이지 상단에 걸려 있는 엔피씨 모집을 위한 공고를 보게 되었다.

호기심에 팝업창을 눌러 들어가 보자, 공고 중인 npc의 정보를 열람할 수 있었다. 초보 존 전직 npc이기 때문에 지정된 범위를 벗어날 수 없는 디 메리트와 npc 유저에게만 지급되는 특별한 장비라는 메리트. 하지만 무엇보다 율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월급제라는 눈에 띄는 단어였다.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지만, 돼도 그만 안 돼도 그만이라는 생각에 율은 길게 고민하지 않고, 지원서를 작성할 수 있었다.

[전직 npc 율]

며칠 뒤, 채용 메일과 함께 인 게임 내에 달라진 자신의 아이디를 보며 율은 그저 어안이 벙벙하기만 했다. 뭘 어째야 하나 싶어 선뜻 사냥을 나서지도 못하고 방황하고 있자, 띠링- 하는 알림 소리와 함께 대화창이 떠올랐다.

- GM 소하네님과의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

[GM 소하네 : 안녕하세요. 율님.]

[전직 npc 율 : 아.. 안녕 하세요]

[GM 소하네 : 전직 엔피씨가 되신 걸 축하드려요.]

[전직 npc 율 : 될지 몰랐는데; 감사합니다 저... 이제부터 뭘 해야 하나요?]

[GM 소하네 : 율님은 1차 전직용 엔피씨로서 율님을 찾아오는 유저들에게 전직 퀘스트를 부여하시면 됩니다. 부득이하지만 율님의 활동 반경은 30레벨 제한의 이둔평야까지로 제한됩니다. 이둔평야를 벗어나지 않는 한에서 율님은 평소와 같이 자유롭게 행동하시면 됩니다. 게임을 끄실 땐 캐릭터를 오토 모드로 돌려주세요.]

[전직 npc 율 : 어....전직 퀘스트는 어떻게 줘야 하나요?]

[GM 소하네 : 유저들이 율님을 타깃팅 가능한 거리로 접근해서 율님을 타깃팅하게 되면 자동으로 퀘스트를 받게 됩니다. 간혹 오류로 퀘스트가 받아지지 않는 경우가 발생할 때는 해당 캐릭터에 커서를 대고 오른쪽 클릭하시면 퀘스트 부여하기 선택지가 있으니 수기로 퀘스트를 부여해주세요.]

[전직 npc 율 : 엔피씨 활동을 하는데 제 레벨에 제한은 없는 건가요?]

[GM 소하네 : 그럼요. 일정 레벨 이상이 되시면 2차 전직 엔피씨나, 다른 종류의 엔피씨로 이직도 가능합니다.]

[전직 npc 율 : 아...네 감사합니다]

[GM 소하네 : 율님은 저희 레페르토르의 소중한 한분이십니다. 율님의 언젠가를 기대하며 앞으로 엔피씨 활동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전직 npc 율 : 저도 잘 부탁드릴게요]

- GM 소하네님과의 대화가 종료되었습니다. -

GM과의 대화가 종료되고, 멍하니 제 캐릭터 위에 떠 있는 [전직 npc 율] 이라는 이름을 읊조리던 율은 GM과 나눴던 대화창을 다시 한번 읽어 내려갔다. 믿기지 않는 듯, 한 번, 두 번, 여러 차례 대화창을 살펴보던 율은 곧 “우편물이 도착하였습니다.”라는 시스템 음성을 듣고, 의아해하며 우편함을 열었다.

보낸 이 : 레페르토르

[npc 채용을 축하드립니다.]

흰 나뭇가지의 활(귀속) x1

네 잎 클로버 후드(귀속) x1

공작의 글러브(귀속) x1

흰 날개의 부츠(귀속) x1

빨간포션 x100

주황포션 x100

노란포션 x100

[루팅펫] 롭이어(귀속) x1

npc에게만 지급되는 특별한 귀속아이템들과 펫. 그리고 각기 회복량이 다른 포션이 가득 담겨왔다. 하지만 율은 장비와 펫이 아닌 차고 넘쳐나게 된 포션을 보고 눈을 빛내고 있었다.

며칠 새 차고 넘친다고 생각했던 포션도 어느새 절반은 써버렸다. 부족한 컨트롤을 포션빨로 견디다 보니 빨간 포션은 어느새 바닥이요, 주황포션도 절반은 써버린 상황이었다. 나름 레벨도 높였겠다, 이제 포션빨이 아닌 컨트롤로 견뎌보잔 생각에 위급한 상황에도 포션을 먹지 않고 버텨보았지만, 결과는 차디찬 바닥에 초라하게 누워버린 꼴이었다. 죽어버린 주인 곁에서 열심히 헬프를 외치는 롭이어를 보며 착잡한 기분에 얼른 부활하려고 하는 순간.

[노아 : 와...엔피씨가 죽어있어]

[전직 npc 율 : ;;;]

[노아 : 살려드려요?]

[전직 npc 율 : 어...살려주실 수 있으세요?]

딱 봐도 프리스트가 아닌 것 같은데 대뜸 살려주냐는 물음에 율은 의아한 듯 되물었다. 하지만 돌아온 건 대답이 아닌, 벌떡 일어나 있는 자신의 캐릭터였다.

[전직 npc 율 : 어? 어...감사합니다;;]

[노아 : 퀘스트는 어떻게 받는 거예요? 타깃팅 하면 된다는데 안 되네요.]

[전직 npc 율 : 아.. 제가 죽어서 오류 났나 봐요. 잠시만요;]

당황한 마음에 율은 허둥지둥 노아의 캐릭터에 오른쪽 클릭을 하고 퀘스트 부여하기를 선택했다.

[노아 : 아 왔네요]

[전직 npc 율 :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해요]

[노아 : 아뇨 나름 웃겼어요]

[전직 npc 율 : 웃겼....]

[노아 : 뭐 조심히 사냥하세요]

조심하라는 말에 율이 대답을 위한 키보드를 치는 동안 노아는 사라지고 난 후였다. 아마 퀘스트를 받았으니 퀘스트를 수행하러 간 듯했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추태를 보였다는 생각에 율은 얼굴에 미세하게 달아오르는 열기를 느끼며 오토 모드로 게임을 종료시켰다.

npc로 지낸 지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정해진 월급날, 정확하게 지급된 금액을 확인하며 나름 뿌듯한 기분에 제일 먼저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부모님의 선물을 샀다. 첫 월급엔 빨간 내복. 한여름에 내복이라니 안 어울리긴 하지만 그래도 기뻐해 주실 부모님의 얼굴을 상상하며 서둘러 결제를 마치고, 게임에 접속했다.

일주일이면 대부분의 유저들은 레벨 30을 넘겨버리고 만다. 하지만 npc로서 이둔평야를 벗어나지 못하는 율은 자신의 레벨에 적합하지 않은 적은 경험치를 주는 사냥터 덕에 타 유저들과 비교해 현저하게 렙업 속도가 더뎠다.

그래도 꾸준히 평야 곳곳을 돌아다니며 쉬지 않고 사냥을 한 덕에 어느덧 레벨도 49가 되어 있었다. 이둔평야의 구석구석 모르는 곳이 없을 정도로 돌아다닌 덕에 이제는 미니맵을 보지 않아도 길을 헤매지 않을 정도였다.

사냥에 열중하다 보니 사람들이 그다지 다니지 않는 외진 구석까지 와 버렸다. 돌아가는 길이 상당히 길어서 귀환 스킬을 사용해서 마을로 돌아갈까, 아니면 걸어서 돌아가는 길에 틈틈이 사냥할까 고민하는데, 어디선가 스킬을 사용할 때 나는 이펙트 음이 들려왔다.

근처에 유저가 있는가, 하는 마음에 주변을 둘러보던 율은 평야 맵의 끝자락 절벽 아래, 바닥에 동그랗게 먼지가 퍼지는 듯한 이펙트를 보았다. 쉬익- 하는 소리와 함께 먼지가 날리는 이펙트는 몇 번 반복되더니 [수상쩍은 노인 더발]이라는 이름의 npc가 모습을 드러냈다.

율은 놀란 마음에 잠시 그 npc를 가만히 보고 섰다. npc는 굽은 허리가 아픈지 허리를 두드리기도 하고, 가래 끓는 기침을 내뱉기도 하고, 굽은 허리를 펴며 기지개를 켜기도 했다.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게 유저는 아니란 느낌이 들었다. 율은 천천히 npc에게 다가갔다. [수상쩍은 노인 더발]에게서 말풍선이 뜨며 대화 탭이 열렸다.

[수상쩍은 노인 더발 : 혼자인가?]

[전직 npc 율 : ?]

[수상쩍은 노인 더발 : 둘이 와야 할 것 아닌가?]

[전직 npc 율 : ?]

[수상쩍은 노인 더발 : 뭘 멀뚱히 서 있어? 둘이서 가져야 할 걸 혼자서 가지고 오면 어쩌라는 게야?]

[전직 npc 율 : ?]

[수상쩍은 노인 더발 : 자네가 가진 걸 누군가에게 나눠 주고, 둘이서 오거나, 아니면 다른 누군가에게 모두 나눠 주도록 하게.]

일방적인 대화를 끝으로 [수상쩍은 노인 더발] 은 바닥에 동그랗게 먼지가 날리는 이펙트와 함께 모습을 감췄다. 율은 더발과 나눈 대화가 영 이해가 되질 않았다. 아니, 일방적으로 떠들어 댄 더발과 물음표를 남발할 뿐이었던 자신이 대화했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아무튼 더발은 자신의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걸 모두 나눠 주거나, 아니면 나눠 갖고 둘이서 오라고 했다. 이 말이 더발의 고정 멘트인건지, 아니면 자신의 캐릭터에게만 하는 이벤트 대화였는지는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왠지 선뜻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려 율은 절벽 아래서 벗어나 평야의 초입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드문드문 보이는 몬스터들을 어렵지 않게 잡다 보니 어느새 레벨업 이펙트와 함께 [50레벨을 달성하였습니다]라는 알림 글이 화면의 중앙에 떠올랐다.

자신의 레벨을 바라보며 슬슬 이둔평야에 있는 건 한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율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건지 띠링- 하는 소리와 함께 대화창이 떠올랐다.

- GM 천의성님과의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

[GM 천의성 : 안녕하세요. 율님.]

[전직 npc 율 : 어 안녕하세요.. 이번엔 다른 운영자님이시네요]

[GM 천의성 : 네^^ 율님 레벨이 더는 이둔평야에 적합하지 않아서 이직 여부를 묻기 위해 대화 걸었습니다.]

[전직 npc 율 : 아... ]

[GM 천의성 : 율님은 현재 1차 전직 엔피씨로서 활동하고 계셨는데요, 이직 가능한 엔피씨는 2차 전직 엔피씨와 그 외의 상인 엔피씨입니다.]

[전직 npc 율 : 전직 엔피씨하고 상인 엔피씨는 많이 다른가요?]

[GM 천의성 : 전직 엔피씨는 지정된 범위 내에선 자유롭게 움직이고, 사냥도 가능하지만, 상인 엔피씨는 지정된 마을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사냥도 불가합니다.]

[전직 npc 율 : 아...그럼...2차 전직 엔피씨로 가능할까요?]

[GM 천의성 : 접수하겠습니다. 다음 정기점검 이후로 2차 전직 엔피씨가 되실 예정이시고요. 활동 반경은 이둔평야를 포함한 80레벨 제한의 스카디 산맥까지입니다. 정기점검 전까지는 지금까지처럼 1차 전직 엔피씨로서 이둔평야에 계셔 주시면 됩니다.]

[전직 npc 율 : 네]

- GM 천의성님과의 대화가 종료되었습니다. -

[서버] [무지개 요정 : 무지개 요정이 살고 있는 무지개 언덕으로 오셔요~]

[서버] [KING Husband : ...? 도랏? ]

[서버] [무지개 요정 : 닥쳐 왕 서방]

[서버] [KING Husband : 아씨...왕 서방 하지 말라니까요;;]

[서버] [도련 : 레인보우 힐 길드에서 길드원을 모집합니다]

[서버] [광인한 남자 : 부담 없이 함께 게임하실 분들 오세요]

[서버] [질풍 : 레벨, 스펙에 상관없이 편하게 모십니다]

[서버] [복세편살 : 문의, 상담 환영합니다]

지엠과의 대화가 끝나자 채팅창에 한 길드의 길드원 모집이 서버 채팅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꾸준히 홍보 글이 올라오는 길드였다. 하지만 홍보보단 저들끼리 만담을 나누는 대화가 8할이라 율은 언제나 관람하는 기분으로 대화를 지켜보곤 했다.

[블㉣┥⊆✡КⅰП9 : 야 씨발 저기 있다]

멍하니 서서 쉴 새 없이 올라오는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의 서버 채팅을 보고 있는데, 그 안에서 색깔이 다른 전체 채팅하나가 끼어 들어왔다.

[눈감아♡김민지 : 존나 멀리까지 기어와 있네]

[흑염룡 : 줘 터져야 정신을 차리지]

그리고 세 명의 유저가 율의 근처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들의 적나라한 욕설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비속어 필터가 풀려 있는 모양이었다. 아마도 이것저것 건드리다 실수로 풀어버린 것 같았다.

[블㉣┥⊆✡КⅰП9 : 엔피씨가 처 돌아다니고 지랄이야]

[흑염룡 : 퀘스트 내놔 새끼야]

[전직 npc 율 : 타깃팅 하시면 받아집니다]

[눈감아♡김민지 : 타깃팅이 뭐야?]

[전직 npc 율 : 네??;]

[블㉣┥⊆✡КⅰП9 : 네? 는 무슨 아이디만 봐도 존나 찐따같은 게 유식한척 오지네]

[눈감아♡김민지 : 그러게 존낰ㅋㅋㅋ 아이디 꼬라짘ㅋㅋㅋ]

[흑염룡 : 미칰ㅋㅋㅋㅋ]

자신을 두고 낄낄거리며 욕설을 내뱉는 세 명이 자신의 아이디까지 거들먹거리며 비아냥거리기 시작하자, 율은 불쾌감보다는 두려움이 덜컥 앞섰다. 그래서인지 타깃팅이 무언지 설명하기보단 수기로 퀘스트를 부여하고, 서둘러 귀환 스킬을 사용해 마을로 돌아와 버렸다.

마을에 도착해 세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이 자신을 두고 나눴던 대화는 채팅창에 고스란히 남아있어 괜스레 초조하고, 불안해졌다. 율은 또 그 유저들이 쫓아와 저를 욕할까 봐 지레 겁을 먹고, 차갑게 식은 손끝으로 게임을 종료시켰다.

***

학교를 자퇴하고 나서 요일의 개념은 자신에게 큰 의미는 없었지만, 게임을 시작하면서 나름 기다려지는 요일이 생겼다. 레페르토르의 정기점검인 수요일. 오늘따라 유독 연장되는 점검시간을 체크해가며 초조하게 기다리던 율은 예정시간을 2시간이나 훌쩍 넘겨 끝난 정기점검을 원망하며 서둘러 게임에 접속했다.

[위저드 전직 npc 율]

딱히 외형이 변했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캐릭터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자신을 지칭하는 단어가 변한 것만으로도 율은 남모를 고양감을 느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둔평야를 벗어나 새로운 지역을 가볼 수 있다는 것에 가슴이 뛰었다.

레페르토르엔 편리한 마을 이동 시스템이 존재한다. 북유럽 신화를 기반으로 하는 게임의 세계관에 걸맞게 헤임달의 비프로스트 워프 시스템이란 게 있다. 물론 소량의 이용료를 지급해야 하긴 하지만 굳이 그 이용료를 아끼기 위해서 필드를 통해 걸어서 마을 이동을 하는 유저는 극히 드문 편이었다.

조급한 마음에 마을의 비프로스트 워프로 마을 이동을 하려던 율은 “우편물이 도착하였습니다.”라는 시스템 음성을 듣고는 우편함을 먼저 확인하기로 했다.

보낸 이 : 레페르토르

[2차 전직 NPC로의 이직을 축하드립니다.]

NPC 장비 업그레이드 이용권 x4

각성제 x30

하얀포션 x300

현재 장비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이용권과 새로운 포션들이었다. 율은 또다시 장비 업그레이드 이용권보다는 포션에 군침을 삼키며 서둘러 인벤토리에 털어 넣고, 비프로스트를 통해 다른 마을로 이동했다.

이둔평야에도 3개의 마을이 있다. 하지만 세 개의 마을 다 거쳐 가는 마을일 뿐이라서 유저들이 고이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레페르토르의 수도라고 불리는 글록시니아는 상상을 초월하는 도시의 크기와 그 도시를 가득 메울 만큼의 유저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왠지 자신이 오면 안 되는 곳에 온 기분이었다. 자신이 마음 놓고 오고 갈 수 없는 곳에 온, 시골에서 올라온 촌뜨기가 된 느낌.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누군지 알지도 못하고, 신경도 쓰지 않을 것이다. 그 누구도 자신에게 이 도시에 온 것에 눈총을 주는 사람은 없을 테지만, 왠지 자연스럽게 이 도시를 다니는 사람들에게 주눅이 들어 자꾸만 눈치를 보게 됐다.

불과 몇 분 전에 느꼈던 고양감과 기대감은 어느새 사라지고, 다시 이둔평야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마음만이 남아 버렸다. 그렇게 그 자리에 못 박혀 있기를 잠시, 율은 더듬더듬 마우스를 움직여 캐릭터를 이동시켰다. 시선은 모니터의 정면을 보지 못하고, 화면 하단을 주시하며.

하지만 주눅 들었던 마음도 잠시, 금세 무기점 찾기에 집중해 버린 율은 광장 한가운데 캐릭터를 세워 둔 채 열심히 지도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워낙 넓은 도시라 미니맵에 표시된 무기점 표시를 아무리 봐도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어 지도를 펼쳐 봐야 했다. 화면 전체에 커다랗게 뜬 지도를 열심히 바라보며 무기점으로 가는 길을 대략 파악한 율은 다시 마우스를 움직였다.

한참을 걸어 지도상에 표시된 위치까지 왔지만 무기점은 찾을 수 없었다. 의아한 마음에 지도와 게임을 번갈아 보던 율은 카메라 시야를 위로 올렸다. 그제야 높은 석단 위에 자리 잡은 무기점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온 방향으로는 석단 위로 올라갈 길이 없어서 지도를 보며 다른 길을 찾아 올라가야만 했다.

결국, 돌고 돌아 겨우 무기점에 도착한 율은 장비 업그레이드를 위해 무기점 안에 자리 잡은 대장장이에게 향했다.

[무지개 요정 : 야 왕광풍]

하지만 율은 대장장이에게 가는 도중 익숙한 아이디를 보고 손을 멈추고 말았다. 무기점 한쪽에 서버 채팅으로만 보던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 몇 명이 있었다.

[광인한 남자 : ?]

[KING Husband : ?]

[질풍 : 네?]

[무지개 요정 : 가름협곡에서 몹좀 몰아라]

[KING Husband : ㅡㅡ]

[질풍 : 싫어요]

[광인한 남자 : 저번에도 그러다가 지엠한테 걸려서 채금 먹고 마을로 강제 소환됐잖아요]

[무지개 요정 : 이것들이?!]

[질풍 : 그때도 우리 셋만 채금 먹고 길마님은 지엠 뜬거보고 우리 버리고 튀었잖아요]

[무지개 요정 : 야 그거 진심 맹세하는데 그때 튄 거 아님]

[KING Husband : 그럼요?]

[무지개 요정 : 타이밍이 좀 안 좋아서...]

타이밍 운운하며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는 무지개 요정과 그 말에 반발하는 왕광풍이라 불린 삼인방이 치열한 썰전을 벌이는 사이, 또 한 명의 레인보우 힐 길드원이 무기점 안으로 들어왔다.

[도련 : 마침 모여들 있네]

[질풍 : 어? 도련님 광장에서 길드원 모집 중 아녔어요?]

[도련 : 응 가입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있는데...이게...가입여부 결정하기가 너무 난감해서 의견 좀 들으려고]

[KING Husband : 왜요?]

[도련 : 아...아이디가...좀...]

[무지개 요정 : 왜?]

[도련 : 아...좀 창피한 수준이긴 한데...노아가 너무 학을 떼고 싫어해서;;]

[광인한 남자 : 어...길창에 노아 형 난리 났는데;]

[질풍 : 아이디가 어느 수준 이길래요?]

[무지개 요정 : 왕 서방 보다 창피한 아이디가 있단 말야?]

[KING Husband : 내 아디가 어때서요?!! 그리고 왕 서방 아니라고!!!!]

[무지개 요정 : 그냥 가입시켜]

[도련 : 네?!]

[무지개 요정 : 창피해 봐야 중2병 수준이겠지]

[도련 : 어...중2병 수준인건 맞는데...]

[무지개 요정 : 오히려 그런 게 깡도 있고 적당히 뻔뻔하다는 증거라서 좋은 거 아냐?]

[KING Husband : 길마님 처럼요?]

[무지개 요정 : 뒤질?]

[도련 : ;;; 근데 정말 아이디 확인 안하셔도 괜찮아요?]

[무지개 요정 : 괜찮아~ 개쪽팔린 정도만 아니면 된 거지]

[도련 : ...가입 시킬게요...]

[길드] [도련 : 신입 세분 오셨습니다 인사들 나누세요]

[길드] [눈감아♡김민지 : 안녕 하세요~]

[길드] [흑염룡 : 신입이에요 잘 부탁 드려요]

[길드] [블㉣┥⊆✡КⅰП9 : 안녕 하세요!]

[질풍 : 헐....]

[광인한 남자 : 앜ㅋㅋㅋㅋㅋㅋㅋ]

[KING Husband : 블러듴ㅋㅋㅋㅋ킹ㅋㅋㅋㅋㅋㅋ]

[길드] [도련 : 세분은 가입여부는 거의 길마님 독단으로 결정되었네요]

[길드] [노아 : ...]

[길드] [블㉣┥⊆✡КⅰП9 : 감사합니다! 길마님 멘토로 모실게요!]

[길드] [흑염룡 : 종이 되겠습니다!]

[길드] [눈감아♡김민지 : 딸랑 딸랑~]

[길드] [무지개 요정 : 개쪽팔리니까 말 걸지 마라]

[무지개 요정 : 시벌...]

중간에 길드 대화를 한 탓에 대화의 공백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율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띄엄띄엄 이어지는 대화 끝에 무지개 요정이 험한 말을 내뱉고는 패닉에 빠져 있는 네 명을 버려둔 채 혼자 사라졌다는 것뿐.

***

[서버] [npc 지크프리트 : 넌 머가리에 똥만 들어찼냐? 이 개념 없는 새끼야?]

[서버] [제로사이드 : 뚫린 입이라고 멋대로 나불거린다?]

[서버] [npc 지크프리트 : 내가 분명 정해진 시간에만 소환하라고 했지?]

[서버] [제로사이드 : 내가 내 스킬 쓰고 싶은 시간에 쓰겠다는데 왜 지랄이야]

[서버] [npc 지크프리트 : 니 새끼가 역린을 쓰면 내가 소환이 되니까 하는 소리 아니냐고!! 난 놀아 새끼야? 한두 번도 아니고 매번 니 쪼대로만 하냐?]

[서버] [제로사이드 : 억울하면 너도 역린 쓰지?]

[서버] [npc 지크프리트 : 씨발...어쩌자고 저딴 새끼랑 계약을 하게 돼서]

[서버] [제로사이드 : 억울해? 그럼 엔피씨 때려치워]

[서버] [npc 지크프리트 : 개새끼야 넌 이번 달 공물 폭탄 맞을 줄 알아라]

[서버] [제로사이드 : 뭐?! 야!!]

[서버] [제로사이드 : 야!!! 지크, 야!!!]

[서버] [제로사이드 : 야 이 씨발 나갔어?! 개새끼야!!!!]

[서버] [제로사이드 : 씨발 넌 누군지 밝혀지기만 해!!!]

접속하자마자 서버 채팅으로 언쟁을 벌이는 두 사람이 있었다. 아마도 히든 엔피씨와 그를 소환할 수 있는 계약자인 듯했다. 제로사이드라는 아이디는 분명 머스킷티어라는 길드의 길마 명이었다. 레인보우 힐만큼이나 자주 서버 채팅으로 길드 홍보와 신입 모집을 하는 길드라서 길마의 이름은 기억하고 있는 율이었다.

서버 채팅으로 쩌렁쩌렁하게 언쟁을 벌인 두 사람 덕에 마을은 두 사람의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히든 엔피씨는 일부러 자신의 본캐를 밝히는 사람도 있고, 지크프리트처럼 본캐를 숨기는 사람도 있다. 개개인의 사정을 알 수는 없지만, 지금 같은 상황엔 역시 지크프리트의 정체에 대한 주제가 도마 위에 오르는 건 당연한 순서인 듯했다.

율은 거품처럼 올라오는 두 사람의 이야기로 떠들썩한 마을을 뒤로하고 언제나처럼 필드로 나섰다. 글록시니아 변방의 아스크 필드는 율이 잡기에는 조금 부족한 몬스터들이 분포되어 있어, 율은 필드를 건너 조금 더 멀리 나갈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업그레이드된 흰 날개의 부츠는 이속 증가 옵션이 붙어 있어서 프리스트의 이속 증가 버프를 받지 않아도 빠르게 달려 원하는 필드에 금세 도착할 수 있었다. 시간은 조금 걸렸지만 어렵지 않게 스카디 남쪽 필드까지 다다른 율은 필드의 입구에서 처음으로 각성제를 사용했다.

각성제는 30분 동안 공격 속도를 올려주는 보조 포션으로, 엔피씨 이직 선물로 받기 전에는 직접 사서 써볼 생각은 해보지 못했었다. 새로운 장비에 새로운 포션. 율은 떨리는 마음으로 사냥을 시작했다.

간당간당하던 체력 게이지가 결국 붉게 물들었다. 놀란 율은 서둘러 채집한 약초를 사용하고, 하얀 포션을 사용해 체력을 회복했다. 스카디 남쪽 필드엔 대부분의 몬스터들이 녹색 연기를 뿜고 있었는데, 그게 독이라는 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몬스터를 공격하면 자신의 캐릭터가 중독 상태에 빠지게 되었기 때문에.

잡으면 잡을수록 자신의 캐릭터는 중독되어 맞지 않아도 체력이 깎여 나갔다. 체력 게이지가 붉게 물들면 자신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루팅을 하던 롭이어가 워닝, 워닝하고 외쳐댔다.

깎여 나가는 피와 덩달아 빠져나가는 포션의 개수가 늘어갈수록 초조해졌던 율에게 필드에 간혹 피어나 있는 녹색 약초가 눈에 띄었다. 혹시나 해서 채집해 먹어봤더니 금세 해독이 되기에 율은 몬스터를 잡는 틈틈이 약초를 캐고 다녔다.

하지만 중독의 횟수에 비교해 약초의 개수가 현저하게 모자랐다. 몬스터는 넘쳐나지만, 약초는 정말 간간이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약초도 아껴야 하고, 포션도 아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버렸다. 간당간당하게 붉게 물든 체력 게이지로 버텨가며 사냥을 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한창 체력 관리를 신경 써 가며 사냥을 하는데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노아 : 오늘은 안 죽어있네요?]

[위저드 전직 npc 율 : 네?]

[노아 : 저번 이둔평야에서는 죽어 계셨잖아요]

[위저드 전직 npc 율 : 어....어!!! 그때 그..]

말은 끝맺을 수 없었다. 예기치 못한 만남에 어버버 거리며 채팅창에 집중하는 사이 캐릭터가 죽어버렸기 때문에. 죽어버린 주인 옆에서 롭이어가 다급하게 헬프를 외쳐댔다.

[노아 : ...]

[위저드 전직 npc 율 : ;;]

[노아 : 살려드려요?]

[위저드 전직 npc 율 : 네..]

대답하기가 무섭게 캐릭터가 벌떡 일어났다.

[위저드 전직 npc 율 : 매번 죄송해요;]

[노아 : 아뇨..뭐...그나저나 왜 여기서 사냥해요?]

[위저드 전직 npc 율 : 네?]

[노아 : 여기는 바탈이 높아야 중독 안 돼서 보통 바탈계열이 사냥하는 곳이에요]

[위저드 전직 npc 율 : 아...]

[노아 : 남동쪽에 고블린 잡으시는 게 더 좋을 거예요]

[위저드 전직 npc 율 : 감사합니다...]

짧은 대화를 끝으로 율은 부랴부랴 필드를 건너 남동쪽으로 향했다. 사라지는 율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노아는 곧 쉴 새 없이 올라오는 채팅창을 바라보며 걸음을 옮겼다.

[파티] [무지개 요정 : 노아 뭐해?]

[파티] [노아 : 방해꾼이 있길래 쫓아냈어요]

[파티] [질풍 : 노아 형 여기 지원!]

[파티] [아네미아 : 노아오빠 빨리 와서 발 좀 묶어줘]

[파티] [광인한 남자 : 나 죽는다!!!]

[파티] [KING Husband : 이거 맞아서 죽을 거면 넌 캐삭감이다]

[파티] [광인한 남자 : 쟈가워...]

[파티] [도련 : 노아 오면 왕이 연주시작하고]

[파티] [달빛 : 니지 언니도 곧 도착요]

[파티] [아네미아 : 편살 오빠도 곧 이야]

[파티장] [무지개 요정 : 노아 빨리]

[파티] [세츠나 : 광이 힐 밀려]

[파티] [아네미아 : 우리 엠이 먼저 마르겠어]

[파티] [KING Husband : 포션이라도 먹어라]

[파티] [광인한 남자 : 인듀어 쓰고 뺑이칠까?ㅠㅠ]

[파티] [노아 : 그냥 갈겨 중간에 묶을 게]

채팅창이 난장판이었다. 신입 길원이 3명 들어오고 나서, 길마의 진두 아래 길드원들 대부분이 스카디 남쪽 필드로 끌려 나왔다.

신입 3명을 위한 필드 장악 사냥을 가장한 쩔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필드 중앙에 신입 세 명이 파티를 한 채 대기하고, 나머지 길드원들은 각자 몬스터를 몰아 중앙으로 모여든다.

중앙엔 신입 세 명과 함께 하이 프리스트인 아네미아와 세츠나, 경험치 추가 버프를 걸어줄 민스트럴 KING Husband, 혹시 모를 불발을 대비해 몬스터를 잡아줄 소서러 무지개 요정이 대기 중이었다.

하지만 신입 세 명이 데미지를 넣으면 몬스터들이 전부 그들에게 달려가기 때문에 몬스터의 발을 묶어줄 그림러커 노아가 중앙에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이 쩔이 탐탁지 않은지 수시로 중앙을 비우며 몬스터를 몰러 나가기 일쑤였다. 그리고 그가 몰아온 몬스터들이 신입 삼인방을 죽이기도 부지기수였다.

그렇게 몬스터를 몰러 나간 노아가 율을 만나 짧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로드 나이트인 광인한 남자가 몰고 온 몬스터들의 수가 상상을 초월해서, 딜컷을 하며 노아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하지만 더 버텼다간 정말 힐이 밀려 광인한 남자가 죽을 판이었다. 결국, 무지개 요정의 지시로 KING Husband이 경험치 추가 효과가 있는 리그르의 노래를 연주했고, 동시에 네크로맨서인 블㉣┥⊆✡КⅰП9과 위저드인 흑염룡이 광역기를 시전했다. 그리고 그 난장판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한 노아가 어스 체인으로 몬스터들의 발을 묶는 연계기가 펼쳐졌다.

하지만 안심하기도 잠시, 곧 로드 나이트인 니지가 몰아온 어마어마한 양의 몬스터들이 두 명의 광역기 범위 안으로 들어왔고, 발이 묶이지 않은 몬스터들의 동시다발적 공격으로 인해 삼인방은 초라하게 바닥에 누울 수밖에 없었다.

[블㉣┥⊆✡КⅰП9 : ㅠㅠ]

[흑염룡 : 아파요ㅠㅠ]

[눈감아♡김민지 : 넘해ㅜ]

[도련 : 니들이 더 너무해...]

[츄파 : 얘들 너무 잘 죽어요]

[니지 : 방어력이 종잇조각이여 뭐여...]

[광인한 남자 : 공격력도 안습인데...]

[세츠나 : 김민지 너는 프리면서 제일 먼저 죽으면 어떡하니?]

누워 있는 삼인방에게 비난이 쏟아지는 가운데, 팔라딘인 복세편살이 몰고 온 몬스터들을 손쉽게 해치운 무지개 요정이 그들에게 쏟아지는 비난에 동조하고 나섰다.

[무지개 요정 : 내가...신입 들어올 때마다 이 짓을 하지만... 너흰 정말 답이 없다...]

[노아 : 짜증나니까 그만 접어요]

[질풍 : 보통 이 쩔에서 10업은 하는데...]

[아네미아 : 시간 아까워]

[세츠나 : 너희 살릴 젬스톤도 아깝다]

[무지개 요정 : 접어접어]

무지개 요정의 말이 올라오기 무섭게 노아는 그대로 귀환스킬을 써서 마을로 가버렸고, 차갑다 못해 살을 에는 듯한 그의 행동에 몇 명이 땀을 흘리는 이모티콘을 사용했다.

[흑염룡 : 노아님 정말 우리 싫어하나 봐요 ㅠㅠ]

[눈감아♡김민지 : 저님 저희 싫어하는 이유가 대체 뭐예요??;]

김민지의 물음에 모두는 차마 너희 아이디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부자연스러운 침묵 속에 세츠나가 삼인방을 살려낸 후, 마을로 통하는 워프를 열고는 [가]라고 한마디 했을 뿐.

***

레페르토르 최대의 유저 밀집 장소는 글록시니아지만, 레인보우 힐이 둥지를 튼 마을은 포인세티아라는 변방 마을이었다. 산악마을이라고도 불리는 이 마을은 크지는 않지만, 동양적인 건축물들이 들어서 있어서 한국인의 정서에 좋다는 이유로 무지개 요정의 독단으로 길드의 쉼터로 결정지어졌다.

마을에서 제일 많이 사용하게 되는 건 아무래도 도구점과 비프로스트 서비스였다. 비프로스트 서비스는 창고 서비스도 겸용하고 있어서 반드시 가까운 거리에 있어야만 했다. 그래서 그런 이점을 모두 따져 자리 잡게 된 포인트는 도구점에서도 가깝고, 비프로스트 서비스에서도 가까운 주막.

주막의 마당에는 서너 개의 평상이 있는데, 그 평상들을 모조리 레인보우 힐에서 독점하고 있다. 주말, 이른 시간부터 접속해 아무도 없는 쉼터에 평상 하나를 차지한 세 명이 있었다.

[블㉣┥⊆✡КⅰП9 : 노아새끼 존나 재수 없지 않냐]

[흑염룡 : 재수만 없냐? 싸가지도 존나 없다 저번에 쩔 받을 때도 거의 그 새끼가 몰아온 몹 때문에 우리가 죽은 건데 하나같이 우리한테만 지랄들 하고 씨발]

[눈감아♡김민지 : 다음 주면 민지도 게임 시작하는데 저 새끼 민지한테도 지랄하면 내가 진짜 조사 버린다]

[블㉣┥⊆✡КⅰП9 : 그 새끼도 게임 시작한지 얼마 안 된 거라고 하더만]

[눈감아♡김민지 : 지도 짬밥 안 되는 좆밥 주제에 존나 나대는데 주제에 템은 좋은 것 같더라]

[흑염룡 : 시발...그 찐따새끼가 학교만 그만 안 뒀어도 그 새끼 주머니 털어서 우리 템 맞추는 건데]

[블㉣┥⊆✡КⅰП9 : 그러게 그 새끼 못 패줬더니 주먹도 심심하다]

[눈감아♡김민지 : 말해뭐하냐]

[흑염룡 : 시발...학교도 좆같고 길드도 좆같고]

[블㉣┥⊆✡КⅰП9 : 차라리 머스킷을 갈걸 그랬어]

[흑염룡 : 맞아 저번에 서버챗 보니까 거기 길마가 역린 사용자 더만]

[눈감아♡김민지 : 근데 거긴 가입조건 까다롭잖아 우린 스펙 딸려]

[블㉣┥⊆✡КⅰП9 : 나중에 스펙 쌓고 옮기자]

[흑염룡 : 퉷... 앉아서 머하냐... 파티나 구해서 사냥이나 가자]

[눈감아♡김민지 : 아...쩔 받을 때가 좋았는데...]

[블㉣┥⊆✡КⅰП9 : 가자]

세 명이 쉼터를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길드원들이 속속들이 접속하기 시작하면서 썰렁했던 쉼터가 북적북적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질풍 : 인벤에 제로사이드가 올린 글 봤어요?]

[무지개 요정 : 뭐?]

[질풍 : 지크프리트가 공물 요구한 거 내역 올려놓고 신랄하게 까고 있던데요]

[무지개 요정 : 뭘 얼마나 요구했길래?]

[KING Husband : 지크프리트는 장비는 안 받잖아요 돈이나 소비 템 위주로만 받아서 안 그래도 귀찮았다는데 이번에 요구한 내역이 공물 최대한도 꽉꽉 채웠다던데요]

[무지개 요정 : 저번에 두 사람이 서버챗으로 싸웠다고 하지 않았나?]

[광인한 남자 : 네 그때 지크프리트가 공물 폭탄 먹일 거라고 했었는데 진짜 할 줄은 몰랐나 봐요]

[질풍 : 그거 못 내면 한 달 동안 소환 못하잖아요]

역린을 사용하는 소환자는 한 달에 한 번 히든 엔피씨에게 공물을 바쳐야 한다. 소환자와 엔피씨 사이가 좋다면 서로 간에 조율을 통해서 공물의 양을 조절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지금 같은 경우가 벌어진다.

공물을 바치지 않으면 소환자는 한 달간 역린을 사용하지 못한다. 현실 시간으로 하루에 한 번만 사용 가능한 역린은 소환자가 히든 엔피씨를 소환하는 스킬로 소환된 엔피씨는 한 시간 동안 유지되며 소환자의 사냥을 돕는다. 소환이 끝나도 3시간 동안 유지되는 특수한 버프를 받게 되는데, 이 버프는 캐릭터의 모든 능력을 일시적으로 올려주고 경험치 증가와 몬스터에게 받는 데미지까지 절반으로 감소시켜 준다.

한 달에 한 번 요구되는 공물은 두 사람의 관계도를 향상해 주고, 관계도 레벨이 10레벨이 되면 소환자가 소속된 길드에 경험치를 향상해주는 패시브 스킬이 생기게 된다. 하지만 중간에 공물을 한 번이라도 바치지 못하면 관계도는 다시 1레벨이 돼버린다.

히든 엔피씨 또한 관계도 레벨이 10레벨이 되면 소속된 길드에 경험치를 향상해 주는 패시브 스킬이 생기게 되고, 평소에 자유도 없이 소환자의 소환에만 응하게 하던 족쇄가 풀리게 된다.

[광인한 남자 : 아무튼 그거 때문에 인벤에서 지크 나오라면서 깽판을 치고 있는가 보더라구요]

[무지개 요정 : ㅉㅉ 나오란다고 나오겠냐]

[KING Husband : 우리도 역린사용자나 히든 클래스 있었으면 좋겠어요...]

[무지개 요정 : 네가 히든 클래스 돼서 와라]

[KING Husband : 이미 트로바토레 있잖아요...]

[무지개 요정 : 꿈도 희망도 없구나]

[KING Husband : 이씨... 워록도 이미 있거든요!!]

[무지개 요정 :...꿈도 희망도 없구나.....]

[광인한 남자 : 룬 나이트도 이미....]

[질풍 : 왜 히든 클래스는 중복이 안 되는 걸까요...]

[무지개 요정 : 희소성 때문이겠지...개나 소나 히든 클래스 할 순 없잖냐...]

[KING Husband : 사냥이나 갈래요...]

[무지개 요정 : 가름협곡에서 몹 몰아줘]

[질풍 : 저흰 부캐 키울 거예요]

[무지개 요정 : 부캐?]

[광인한 남자 : 네 저번에 풍이랑 왕이랑 셋이서 맞췄어요]

[무지개 요정 : 누가 왕광풍 아니랄까봐...]

[길드] [질풍 : 세츠누나 우리 부캐 키우는데 쩔이 좀~]

[길드] [세츠나 : 꺼지시지]

[길드] [광인한 남자 : 쟈가워...]

[길드] [무지개 요정 : 그럼 나 몹 몰아죠~]

[길드] [세츠나 : 꺼지세요^^]

[길드] [KING Husband : 쟈가워....]

정중한 거절 앞에 짜게 식은 네 명이었다.

***

수요일. 업데이트를 통해 새로운 던전이 추가됐다. 오즈라고 불리는 이 던전은 레페르토르의 여느 던전들과는 다른 로그라이크 방식이 적용되어 있었다. 레페르토르의 풀 파티 정원은 12명이지만 오즈에서는 7명이 되는 데다, 파티가 전멸하면 진행하던 던전이 바로 초기화되어 버린다. 오즈에서는 기존 펫은 데리고 들어가지 못하고, 오즈 공략 필수 아이템인 공략 키트에 포함된 오즈 전용 펫 1마리만을 활성화할 수 있다.

게다가 오즈는 외부와 차단된 공간이기 때문에 길드 채팅과 귓속말이 불가하다. 내부에서는 길드 채팅 탭이 활성화되지 않고, 외부에서 나누는 길드 대화도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전체 채팅과 파티 채팅, 팀 채팅만이 가능하다.

히든 클래스, 히든 스킬 보유자는 입장에 제한이 없지만, 히든 엔피씨를 부르는 역린은 사용 불가하다. 던전의 진행은 입구에서 지상과 지하로 나눠진 길을 선택하고, 선택한 곳에서 또 갈래갈래 나눠진 길을 선택하며 나아가야 한다.

중간중간 나오는 보스 방은 공동구역으로 사냥은 레이드 형식으로 진행이 되고, 파티별 기여도에 따라 보상이 다르다. 보스를 해치우면 일정 시간 동안 안전구역이 열리게 된다. 그리고 운영진이 밝힌 또 하나의 정보는 이 던전은 클리어하는 데 현실 시간으로 7일 이상이 걸릴 거라는 것이었다.

율은 텅 비어버리다시피 한 글록시니아를 바라보며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아마도 오즈를 공략하러 모두 빠져나간 듯했다. 처음 보는 생소한 모습에 잠시 멍하니 있던 율은 비프로스트를 이용해 포인세티아로 이동을 했다.

포인세티아 마을에서 연결된 필드에 자신의 렙에 맞는 사냥터가 있었다. 그 사냥터로 이동을 하기 위해 포인세티아로 온 율은 필드로 나가는 길목에 자리한 주막을 보게 되었다.

주막의 마당 평상 위엔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이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아무래도 여기가 길드 쉼터인 듯 보였다. 그리고 그중 노아라는 아이디가 눈에 띄었다.

저도 모르게 감탄이 흘러나왔다.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언제나 죽어 있는 상황에 만나게 된 사람이라 경황이 없어 아이디 외에는 보지 못했었는데 레인보우 힐 길드원이었을 줄은 몰랐다. 율은 잠시 노아에게 말을 걸어 볼까, 하다가 왠지 머쓱한 기분에 그대로 마을을 빠져나가 필드로 향했다.

주막 앞에 서 있다가 그대로 필드로 빠져나가는 율의 모습을 바라보던 노아는 왠지 저 치가 또 어딘가에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잡념도 잠시, 쉴 새 없이 올라오는 채팅을 바라보며 대화에 가담했다.

[아네미아 : 오즈 때문에 난리도 아니네]

[질풍 : 풍문이긴 한데 오즈 던전 끝에 히든 코드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던데?]

[복세편살 : 진짜 그럴 수도 있겠다]

[도련 : 우리는 공략 안하나요?]

[무지개 요정 : 하긴 해야지]

[KING Husband : 길마님 머스킷은 벌써 팀 짜고 있대요]

[무지개 요정 : 뭣!]

[노아 : 근데 공략에 일주일 이상 걸린다고 하잖아요]

[무지개 요정 : 그러니까.. 무턱대고 갈 수가 없다]

[블㉣┥⊆✡КⅰП9 : 공략 짜면 저도 넣어주세요!!]

[무지개 요정 : 너는 빠우져]

[노아 : 직업별로 잘 짜야겠는데요]

[무지개 요정 : 음... 직업별도 중요하지만 파일럿이 시간이 돼야 하는 거잖아?]

[노아 : 그러네요... 아무래도 일주일 이상 걸리는 거니까...]

[무지개 요정 : 간다고 하면 나랑 왕이 광이 노아 편살이 도련 프리는 세츠 혹은 미아.. 아 풍이가 못 가는 게 너무 아쉬운데]

[질풍 : 현실의 벽에 부딪힌 고쓰리입니다 ㅠㅠㅠ]

[노아 : 프리를 두 명 하는 건 어때요? 미아님 혼자 가게 되면 불안한데]

[무지개 요정 : 아...미아 컨으로는 불안하긴 하지...]

[아네미아 : 내 컨이 왜요ㅡㅡ]

[노아 : 우선 팀을 짜고 일정을 맞춰 봐요 일주일 이상 걸린다고는 하는데 저희가 한 번에 클리어 한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광인한 남자 : 그것도 그러네요 하루 만에 작살나서 쫓겨날 수도 있는 거고...]

[무지개 요정 : 그럼 나랑 왕, 광, 노아, 편살, 확정이고... 프리는 미아나 세츠 둘 중에 하나를 하고 도련이를 데려 가던지 아니면 프리 둘을 해서 가자]

[아네미아 : 그냥 세츠 빼고 나랑 도련님 데려가요ㅡㅡ]

[KING Husband : 솔직히 누나 컨으로 1프리는 불안해]

[아네미아 : ...나 안 갈래요 편살 오빠도 데려갈 생각하지 말아요]

[복세편살 : 미아야;;;]

[무지개 요정 : 그럼 미아랑 편살이 빼고 세츠랑 도련가자 날짜는 금요일 오후부터 잡고, 풍이도 데려가면 딱이네]

[질풍 : 오예!!!!!!!!]

[아네미아 : ....]

[복세편살 : 아;;;]

[무지개 요정 : 이번 주 금요일 날 바로 간다 시간들 잘 조정해둬]

오즈 공략을 위해 팀을 짰던 레인보우 힐은 결국 세츠나의 참여 불발로 무지개 요정, 노아, KING Husband, 광인한 남자, 질풍, 아네미아, 복세편살. 이 조합으로 7인 파티를 꾸리게 됐다. 그리고 금요일 오후에 오즈에 들어가 토요일 밤, 개 박살이 난 채로 돌아왔다.

다들 지친 몸으로 쉼터에 돌아와 자신들 공략의 문제점을 논해 보려 하는데 아네미아가 말없이 로그아웃을 해버렸다.

[복세편살 : ;;;]

[노아 : 다음번엔 미아님은 데려가지 말죠]

[질풍 : ....찬성;;]

[복세편살 : 너무 그러지들 마;;]

[무지개 요정 : 편들지 마라 다음번엔 너랑 미아대신에 세츠랑 니지 데려갈라니까]

[복세편살 : 아;;;]

쉼터에 앉아 이야기를 풀어놓는 6명 주위로 다른 길드원들이 몰려들었다.

[달빛 : 미아 언니가 왜요??]

[KING Husband : 보스 방에서 컨의 끝자락을 보여주더라]

[츄파 : 어쨋는데요?]

[광인한 남자 : 파티 전멸하면 끝이라고 자기만 살아있으면 전멸 안 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더니 저는 범위에도 안 들어가는 광역기 피해야 한다고 혼자 도망 다니다가 버프 끊겼는데 버프도 안주고 힐도 안주고 결국 우리 파티 나랑 편살이 형 죽으니까 살려준답시고 왔다가 광역기 맞고 그대로 버로우.]

[질풍 : 결국 탱도 프리도 죽은 우리 파티는 격수만 남아 있다가 전멸]

[도련 : 맙소사...]

[니지 : 쩐다...]

[무지개 요정 : 저거 맨날 편살이한테 빨대 짓만 하고 각팟만 찾아다니더니 발컨의 극치야]

[노아 : 아무튼 미아님하고는 다시는 파티하고 싶지 않네요]

노아의 말을 끝으로 복세편살을 제외한 나머지의 길드원들의 머리 위에 고개를 끄덕거리는 이모티콘이 일제히 떠올랐다.

***

[SYSTEM] [GM 천의성 : 오늘 한잔 콜?]

한참 필드에서 사냥에 집중하던 율은 화면 중앙에 올라오는 시스템 글을 보곤 멈춰 섰다. 한 잔을 하자니 대체 무슨 뜻이지? 하는 생각을 하는데 서버 채팅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서버] [사나 : 앜ㅋㅋㅋㅋ 지엠님 쏘시려구요?ㅋㅋㅋㅋ]

[서버] [파티아 : 어디로 갈깝쇼? ㅋㅋㅋㅋ]

[서버] [옷걸이 :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서버] [지지베베 : 우리 지엠님 통도 크시지!]

[SYSTEM] [GM 천의성 : 헉;; 죄송합니다;;]

[귓속말] [GM 소하네 : 너 뭐하냐?ㅋㅋㅋㅋㅋ]

[귓속말] [GM 천의성 : 아나 ㅠㅠㅠㅠ]

[귓속말] [GM 소하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귓속말] [GM 천의성 : 아씨, 쪽팔려;]

[귓속말] [GM 소하네 : 존웃ㅋㅋㅋㅋㅋ]

[귓속말] [GM 천의성 : 웃지 마!!!]

[귓속말] [GM 소하네 : 컄ㅋㅋㅋ]

[귓속말] [GM 천의성 : 아오..저거 씨...]

[귓속말] [GM 소하네 : 그나저낰ㅋㅋㅋ 컴패니언 카운터 들어갔닼ㅋㅋ]

[귓속말] [GM 천의성 : 오? 벌써?]

[귓속말] [GM 소하네 : 엉ㅋㅋㅋ]

[귓속말] [GM 천의성 : 기대되네]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자취를 감춘 지엠과는 다르게 서버 채팅은 한참이 더 시끄러웠다. 떠들썩한 분위기로 달아오른 채팅창을 구경하던 율은 곧 화살과 포션이 없다는 사실을 눈치채곤, 귀환 스킬을 사용해 마을로 향했다.

인접한 마을이 포인세티아라서 레인보우 힐의 쉼터를 지나 비프로스트로 향한 율은 창고에 넣어뒀던 화살과 포션을 챙겨 들고, 롭이어가 주워 먹고 다닌 전리품들을 몽땅 창고 안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 필드로 나가며 흘끗 훔쳐본 레인보우 힐 쉼터에는 노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흙미밥 : 야 이 씨발 개새끼야!!]

율은 당황스러웠다. 마을에 들려 화살과 포션을 챙겨 들고 다시 나온 필드에서 웬 유저 하나가 쫓아다니며 자신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그리고 비속어 필터를 아직 잠그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흙미밥 : 미친 새끼가 사람 엿 먹이는 것도 아니고 내가 널 쫓아서 필드마을필드!!!]

[위저드 전직 npc 율 : 아.. 죄송합니다;;]

[흙미밥 : 또라이같은 새끼가 죄송하다면 다야?! 엔피씨 주제에 무슨 사냥을 쳐 하겠다고 여기저기 헤집고 다녀 씨발!!!]

[위저드 전직 npc 율 : 저기; 욕은 좀 삼가주세요..]

[흙미밥 : 뭐?! 미친 새끼가 대가리 박살나고 싶냐?]

[위저드 전직 npc 율 : 말씀이 너무 심하신 거 같아요;]

[흙미밥 : 닥쳐 개새끼야!!!]

일방적으로 욕을 얻어먹고 있는 율은 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화가 났어도 그냥 퀘스트를 받고 가줬으면 하는데, 흙미밥이라는 유저는 계속 자신을 따라다니며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그냥 게임을 종료시켜야 하나, 아니면 마을로 귀환을 해서 도망을 칠까 궁리하는데 익숙한 아이디 하나가 끼어 들어왔다.

[노아 : 입에 걸레를 물었나]

[흙미밥 : ?]

[위저드 전직 npc 율 : ?]

[노아 : 지금 엔피씨님한테 욕한 거 내가 스샷 다 찍었는데 신고할까요?]

[흙미밥 : 넌 뭐야!!!]

[노아 : 그쪽이 엔피씨님 머리를 박살 내는 것보다 내가 그쪽 계정을 박살 내는 게 더 빠를 것 같은데]

[흙미밥 : ....씨발]

[노아 : 가지?]

[흙미밥 : 넌 다음번에 내 눈에 띄면 진짜 죽여 버린다]

마지막까지 율에게 독설을 퍼붓고 가버리는 흙미밥의 행동에 잠시 말이 없던 노아가 물었다.

[노아 : 저런 사람 많아요?]

[위저드 전직 npc 율 : 네?]

[노아 : 막 엔피씨한테 욕하고 그런 사람이요]

[위저드 전직 npc 율 : 아...네...종종이요]

[노아 : 왜 듣고만 있어요? 욕하는 거 스샷 찍어서 다 신고하지]

[위저드 전직 npc 율 : 아...그런 게 있어요?;;]

[노아 : ....]

[위저드 전직 npc 율 : ;;]

[노아 : 모르는 사람한테 욕먹고 그러면 열 받지 않아요?]

[위저드 전직 npc 율 : 네? 아...당황스럽기는 해요;;]

[노아 :....]

[위저드 전직 npc 율 : 그런데 노아님은 여기엔 어쩐 일....]

[노아 : 아... 여기 몹이 떨구는 전리품이 필요해서요]

[위저드 전직 npc 율 : 아...네..]

[노아 : 그럼 가볼게요]

[위저드 전직 npc 율 : 네;; 감사했습니다]

[노아 : 네]

대화를 끝으로 쭈뼛쭈뼛 사라지는 율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노아는 율이 꽤 오래 포인세티아에 있었다는 게 생각났다. 그가 포인세티아에서 필드로 나가는 모습을 쉼터에서 종종 봤기 때문에 노아는 율이 자신이 구하려는 전리품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하는 게 어려운 아이템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인기가 있는 사냥터가 아니므로 아이템이 잘 풀리지 않는 편이었다. 노아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율의 뒤를 쫓으며 그를 불렀다.

[노아 : 저기 잠시만요 율님]

[위저드 전직 npc 율 : 네?]

그리고 그 순간, 두 사람을 휘감고 화려한 이펙트가 터지며 필드 전체가 뒤흔들렸다.

[SYSTEM] [히든 코드 컴패니언이 소모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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