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NTS
9. 전환점
10. 스왑
11. 폭풍전야
12. 소강상태
13. 마음이 시작되는 곳
9. 전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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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패니언 노아님이 접속하였습니다.]
[길드원 노아님이 접속하였습니다.]
더 오지 않는 꽃잔의 귓속말에 안도하며 얌전히 쉼터에 앉아 있던 율의 눈에 노아가 접속해 들어오는 게 보였다. 곧 쉼터에 모습을 드러낸 노아는 반가워하는 율의 옆으로 와 앉았다.
[노아 : 좀 늦었어요]
[율 : 괜찮아요]
[노아 : 웬일로 쉼터가 썰렁하네요?]
[율 : 아..좀 전까지 길마님 계셨는데...]
[노아 : 그래요?]
[길드] [무지개 요정 : 이 미친 글록동맹 새끼들!!!!]
[길드] [도련 : ????]
[길드] [노아 : 왜요?]
[길드] [무지개 요정 : 우리길드에 히든 집중되어있다고 분산시키라고 지랄한다]
[길드] [노아 : 네?!]
[길드] [무지개 요정 : 머스킷에선 율이 빼갈라고 염병싸고있고!!]
[길드] [도련 : ????]
[길드] [무지개 요정 : 꽃잔이 율이한테 귓 해서 지네 길드로 오라고 했댄다]
[길드] [도련 : 뭐요?!]
[노아 : 진짜에요??]
[율 : 네...]
[노아 : 어떻게 했어요?]
[율 : 길마님이 가르쳐 주신대로 거절했어요;]
[노아 : 순순히 포기를 해요?]
[율 : 어... 귓 더 안 오는 거 보니까 그런 것 같은데..]
[노아 : 그냥 포기할 것 같진 않은데요...매번 거절하기 어려울 것 같으면 그냥 귓 차단해둬요]
[율 : 아...네;]
[길드] [도련 : 우린 글록동맹도 아닌데 걔들 왜 우리한테 난리래요?]
[길드] [무지개 요정 : 글록 거주중인 길드 중에서 나름 굵직한 길드들만 모인 동맹인데 정작 히든있는 길드가 몇 없거든 근데 이번에 히든클래스가 2명이나 동시에 나왔고 그게 또 한 길드에 집중되어있으니까 지들끼리 작당해서 빼가려는 것 같아]
[길드] [노아 : 허...]
[길드] [노아 : 율님 이제부터 모르는 사람한테 오는 귓은 전부 차단해요]
[길드] [율 : 네?]
[길드] [무지개 요정 : ??]
[길드] [노아 : 율님은 성격상 거절도 잘 못하고 휘둘려지다가 휩쓸려가기 쉽잖아요]
[길드] [노아 : 그냥 다 무시해요 나머지는 나랑 길마님이 알아서 대처할게요]
[길드] [무지개 요정 : 그래 그게 좋겠다 혹시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우리한테 말하고]
[길드] [노아 : 대부분 나랑 같이 있을 테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율님 혼자 있지 말고요]
[길드] [도련 : 길드원들 다 알 수 있게 공지로 내걸죠]
[길드] [무지개 요정 : 그러자]
[길드] [노아 : 그나저나 길마님이 가르쳐 주신대로 거절했더니 꽃잔이 떨어져 나갔다던데 어떻게 한 거예요?]
[길드] [도련 : ??]
[길드] [무지개 요정 : 내가?]
[길드] [노아 : ? 네]
[길드] [무지개 요정 : 좆까라 그랬는데?]
[길드] [노아 : ?!!]
[길드] [도련 : ????]
***
[질풍 : 그래서 꽃잔한테 좆까라고 한 거예요??]
[도련 : 그랬다나봐 ㅋㅋㅋ]
[광인한 남자 : 앜ㅋㅋㅋㅋㅋㅋ]
[도련 : 그 노아가 당황을 하더라니깤ㅋㅋㅋ]
[질풍 : 율님 성격 나쁘다고 소문나는 거 아니에요?ㅋㅋㅋㅋㅋ]
[KING Husband : 그러면 오히려 좋은 거 아닌가?ㅋㅋㅋ]
[세츠나 : 아 꺼지라고!!!]
웃고 떠들던 왕광풍과 도련은 갑작스럽게 끼어든 세츠나의 말에 주막의 입구를 바라봤다. 주막에 들어서는 세츠나는 연신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고, 그 뒤를 처음 보는 캐릭터 하나가 졸졸 따라 들어오고 있었다.
[사탄수수 : 아니 세츠나님 그러시지 마시구요]
[세츠나 : 본인이 싫다는데 왜 귀찮게 지랄이래?!!]
[사탄수수 : 생각은 해봐 주실 수 있잖아요?]
[세츠나 : 그러니까 싫다고 하잖아요]
[질풍 : 뭐야?]
[도련 : 세츠야 왜?]
[광인한 남자 : 저건 누구야?]
[KING Husband : 엠블이 발키리 길든데?]
[도련 : 글록동맹아냐...?]
[세츠나 : 사람 짜증나게 접속할 때부터 발키리길드로 오라고 쫓아다니잖아ㅡㅡ]
[도련 : ???]
[사탄수수 : 저희 길드 오시면 지원 많이 해드린다니까요?]
[세츠나 : 지원이고 나발이고 너네길드 싫다고!!!]
[사탄수수 : 왜.. 왜 싫으신데요...ㅠㅠ]
[세츠나 : 비 매너 발컨 맨스플레인]
[사탄수수 : 아...세츠나님...]
[세츠나 : 꺼져라 이 사탄아!!!]
[도련 : 이봐요]
[사탄수수 : 네?]
[도련 : 길드 쉼터까지 따라와서 뭐하는 겁니까?]
[KING Husband : 완전 당당하시네? 우리는 병풍인가? 대놓고 우리 앞에서 길드원을 빼가려고 드네?]
[사탄수수 : 어...여기가 쉼터에요?]
왠지 불안감이 엄습했다.
[사탄수수 : 다음에 또 찾아뵐게요 세츠나님!!!]
건수를 잡았다는 듯 신나서 퇴장하는 사탄수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남아있는 이들은 절로 쌍욕이 튀어나왔다.
[질풍 : 글록동맹 미친 것 같아요]
[무지개 요정 : 어 그 새끼들이랑은 말이 안 통하더라]
[KING Husband : 아니 우리가 글록동맹길드도 아닌데 왜 자꾸 난리인 거예요?]
[무지개 요정 : 아무래도 타나섭 최대동맹이라 기고만장해서 그런 듯]
[도련 : 이제 거기에 다른 길드들까지 편승하는 분위기던데요]
[무지개 요정 : 히든 분산 안 시키면 글록시니아에 발 못 붙이게 하겠다고 협박까지 하더라니까]
[광인한 남자 : ???미친놈들ㅋㅋㅋㅋ 글록시니아가 지네꺼래요?ㅋㅋㅋㅋ]
[질풍 : 아니 정작 당사자들이 싫다고 하는데 왜 유난이래요?]
[무지개 요정 : 우리가 억지로 잡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던데?]
[도련 : 그럴 수도 있겠네요 보통 히든되면 길드를 새로 파서 독립하니까요]
[무지개 요정 : 주변에서 이 지랄들을 떨어대니 길마가 돼 버리는 게 맘 편하지 나도 그랬고]
[광인한 남자 : 그나저나 이것들이 아주 서라운드로 우릴 괴롭혀대는데 어쩌죠]
[무지개 요정 :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골머리가 아프다]
[질풍 : 평소엔 우리한테 관심도 없던 것들이...]
투덜거리는 질풍의 눈에 주막 입구로 달려 들어오는 궁기가 보였다. 궁기는 곧 비어 있는 평상 하나를 통째로 차지한 채 몸을 쭉 늘어트리며 하품을 하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노아와 율이 주막으로 들어섰다.
두 사람은 궁기가 온통 차지하고 누워 있는 평상에 비집고 앉았고, 두 사람의 행동에 궁기가 실눈을 뜨고 두 사람을 바라보며 그르렁거리다 다시 눈을 감았다.
[광인한 남자 : 왜 벌써 와?]
[질풍 : 그러게 사냥 간 지 얼마 안 됐잖아]
[노아 : 거지 같은 것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사냥터까지 따라와서 귀찮게 하기에 도망 왔어]
[KING Husband : 와...미친...]
[노아 : 동물원 원숭이도 아니고 시답잖은 것들까지 따라와선 영상에서 봤던 스킬을 보여 달라며 들러붙질 않나]
[광인한 남자 : 대 환장쑈다 진짜...]
[도련 : 한동안 계속 들들 볶일 텐데 걱정이다]
[무지개 요정 : 둘만 다니니까 더 그런 것 같은데...차라리 인원을 좀 늘려서 몰려다니는 건 어때?]
[노아 : ?]
[노아 : ...좋은데요?]
[노아 : 율님은 어떻게 생각해요? 인원이 늘어도 상관없겠어요?]
[율 : 네? 저는 뭐든 괜찮아요]
무지개 요정의 의견을 반영해 왕광풍과 함께 종종 사냥을 나가게 된 노아와 율은 본진에 율과 율을 지켜줄 질풍을 두고, 나머지는 각개전투를 펼치는 방식의 사냥을 했다.
버프가 끊길 시간에 맞춰 줄줄이 본진에 되돌아온 세 명에게 율은 올 스테이터스 증가를 시켜주는 (베네틱티오)를 시작으로 이동속도와 공격속도, 회피를 올려주는 (베네피치움), 물리 공격과 마법 공격을 모두 올려주는 (아우덴티아), 지속적으로 엠을 회복시켜주는 (클레멘티스), 15번의 방어를 해주고, 방어 횟수가 끝나면 자동으로 데미지 감소를 시켜주는 (인라피뎀)까지 차례차례 버프를 걸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노아에게만 (오라티오)를 추가로 걸었다.
버프를 받기가 무섭게 뿔뿔이 흩어지는 세 사람을 바라보던 질풍이 율을 불렀다.
[질풍 : 율님]
[율 : 네?]
[질풍 : 마지막에 노아 형한테만 건 거는 뭐예요?]
[율 : 아...체력 지속회복 스킬이에요]
[질풍 : 지속회복?]
[율 : 네 원래는 안올렸던 스킬이었는데 노아님 포션 못 드시는 거 알고 난 후에 도움 될 만한 스킬 있나 찾아보다가 올렸거든요 근데 노아님이 쓸 만한 것 같다고 해주셨어요]
[질풍 : 저것도 노아 형한테만 걸어줄 수 있는 거예요?]
[율 : 네..컴패니언 스킬이라;]
[질풍 : 오...]
[질풍 : 근데 율님]
[율 : 네?]
[질풍 : ‘율’이 본명이에요?]
[율 : 아....]
[질풍 : ?]
[율 : 네...]
[질풍 : 외자?]
[율 : 네;;]
[질풍 : 오...글쿠나..]
[율 : 아; 저 풍님은 고3이시라고...]
[질풍 : 넵! 나일롱 고쓰리지요]
[율 : 공부..안하셔도 괜찮으세요?]
[질풍 : 방학이잖아요~;ㅁ;]
[율 : 아...]
[질풍 : 9월에 수시 넣을 거거든요 ㅋㅋㅋ 그거 떨어지면 이제...벼락치기해서 수능 봐야 해서..잘 못 들어올 거예요ㅠㅠ]
[율 : ;;;;]
[질풍 : 수능까지 망하면 군대를 가야할지도...]
[율 : ;;;;;;;]
[질풍 : 율님은 수능 잘 봤나요? 군대는 다녀오셨어요?]
[율 : 네? 아... 저는;;]
자신의 물음에 당황해하며 버벅거리는 율의 행동에 질풍이 덩달아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질풍 : 아;;제가 괜한 거 물었나 봐요;]
[율 : ;;아뇨;;;저...죄송해요;]
[질풍 : 네?! 왜 율님이 죄송;; 제가 더 죄송해요ㅠㅠㅠㅠ]
[율 : ㅠㅠㅠㅠ]
두 사람이 울고, 땀 흘리며 서로에게 끝나지 않을 듯 반복되던 사과는 본진에 되돌아온 3명에 의해 겨우 끝맺을 수 있었다.
왕광풍과 함께 사냥을 다닌 지 일주일쯤 지났을 때, 율과 질풍은 다른 사람 눈에도 보일 만큼 사이가 가까워져 있었다. 아마도 본진에 계속 둘만 남아 있었던 영향인 듯했다. 사냥을 가지 않을 때는 노아, 율과 함께 쉼터에서 수다를 떠는 일도 많았고, 노아가 개인적인 일이 있을 땐 질풍에게 율을 맡기기도 했다.
[질풍 : 앙그르무기 재료를 팔 거라고?]
[노아 : 응 레바테인 때문에 만들 이유가 없어졌잖아]
[질풍 : 그렇네...]
[노아 : 율님 저 당분간 사냥할 때 빼고는 글록시니아에 있을 것 같아요 저 없어도 혼자 다니지 말고 풍이랑 다녀요]
[율 : 네]
[노아 : 풍이가 같이 못 있게 되면 다른 길드원들하고 있구요]
[율 : 그럴게요]
[노아 : 모르는 사람한테 귓오는 건 대꾸하지 말고 무조건 차단해요]
마지막까지 신신당부하며 주막을 나서는 노아의 모습에 평상 위에 늘어져 있던 궁기가 벌떡 일어나 율의 주위를 몇 바퀴 배회하더니 후다닥 노아의 뒤를 쫓아갔다.
[질풍 : 노아형 보호자 무슨 보호자같네욬ㅋㅋㅋ]
[율 : ?;]
[질풍 : ㅋㅋㅋㅋ그나저나 노아 형한테는 블루 비가 붙었다고 하던데...글록가도 되려나..]
[율 : 블루 비요?]
[질풍 : 머스킷하고 같이 글록 동맹 중추가 되는 길드에요]
[질풍 : 규모는 최대인데 아직 히든이 없어서 눈에 불을 켜고 노아 형 영입하려고 한다더라고요]
[율 : 어; 노아님 괜찮으실까요?]
[질풍 : 뭐..우리가 누굴 걱정하겠어요....노아 형은 걱정해봤자 손해에요]
[율 : ...]
[질풍 : 그나저나 율님 컨이 갈수록 일취월장이에요!!]
[율 : 네?]
[질풍 : 노아 형이 율님한테 컨으로 구박한 적 없잖아요 미아누나도 그 형한테 컨으로 많이 까였는뎈ㅋㅋ]
[율 : 아; 세츠님이나 풍이형들이 많이 가르쳐 주셔서 그런 것 같아요...]
[질풍 : 네?]
[율 : ??]
[질풍 : 지금 형들이라고...]
[질풍 : 율님...설마 나보다 어려요?]
질풍의 말을 끝으로 둘 사이에 잠시 잠깐의 침묵이 일었다.
[길드원 율님이 로그아웃하였습니다.]
그리고 도망치듯 로그아웃해버린 율의 행동에 질풍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모니터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만이 어두운 방 안을 희미하게 밝혔다. 부들부들 떨리는 두 손을 입가에 둔 채, 책상에서 한두 걸음 뒤로 물러선 율의 얼굴은 희미한 모니터 불빛에도 확연할 만큼 희게 질려 있었다.
***
질풍과의 대화를 마지막으로 율이 게임에 접속하지 않은 지 3일이 지났다. 아무런 언질도 없이 갑작스럽게 시작된 율의 부재에 다들 의아해하면서도 걱정도 하고, 기다려보기도 했지만, 그들 모두 직면한 사실은 누구 하나 율과 연락할 방도가 없다는 것이었다.
[광인한 남자 : 율님 무슨 일 있나...]
[니지 : 벌써 3일째 접속 안 하시는데;]
[무지개 요정 : ....]
[도련 : 노아도 화 많이 나 보이던데; 접속하면 인사도 없이 맨날 글록시니아에 짱박혀있고...]
[KING Husband : 어떻게 율님하고 연락할 방도가 하나도 없냐..]
[세츠나 : 설마 이대로 게임 접으시는 건 아니시겠지...?]
[츄파 : 설마;;;]
심각하게 얘기를 나누는 길드원들 사이에서 질풍은 홀로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다만, 율의 부재가 지난번 자신과 나눴던 이야기에서 비롯된 걸 수도 있다는 짐작을 어렴풋하게 하고 있을 뿐이었다. 누구에게도 섣불리 얘기할 수 없는 이야기를 홀로 묻어두고, 왠지 처진 길드 분위기 속에 또 하루가 허무하게 흘러갔다.
4일째, 여전히 율은 게임에 접속하지 않았다. 10시 이전에 접속한 사람들은 10시가 되기만을 목이 빠지라 기다렸고, 10시 이후에 접속하는 사람들은 접속하자마자 율의 접속 여부를 물었다. 하지만 그들의 기다림이 무색하게도 길드 창에 있는 율의 아이디 앞에는 on이 뜨지 않았다.
장사진들이 즐비한 글록시니아 중앙거리를 걷던 질풍은 곧, 자신이 찾고 있던 누군가를 발견했다. <앙그르재료 팝니다. 분할판매, 가격조율 有> 이라고 써둔 채팅방을 띄워놓은 채 앉아 있는 노아의 옆에는 오필리아라는 하이 프리스트가 있었다. 그리고 채팅방의 인원은 2명. 아마도 노아와 오필리아가 채팅방에서 대화를 나누는 듯했다.
혹시나 재료를 사려는 구매자인가, 지금 자신이 채팅방에 들어가면 방해가 되겠지, 라고 짧게 생각하던 질풍은 오필리아의 아이디 앞에 붙은 엠블럼을 보고 급하게 채팅방에 쳐들어갔다.
[오필리아 : 안녕하세요 노아님]
[노아 : 또 왔습니까?]
[오필리아 : 어머 안되나요?]
[노아 : 네]
[오필리아 : 어머...]
[노아 : 방해되니까 나가주세요]
[오필리아 : 노아님이 저희 길드로 오시면 귀찮으실 일도 없으실 텐데요]
[노아 : 그 길드가면 허구한 날 그쪽을 봐야 할 텐데 그것보다 귀찮은 일이 어디 있습니까?]
[오필리아 : 보다 보면 정들지 않겠어요?]
[노아 : 끔찍하네요]
[채팅방에 질풍님이 입장하였습니다.]
[노아 : ??]
[오필리아 : ??]
[질풍 : 노아 형!!]
[노아 : 웬일이야?]
[질풍 : 어...나 형한테 할 말이 있어서!]
[노아 : 할 말?]
[질풍 : 저기..오필리아님 재료 사시는 거 아니면 채팅방 좀 나가주실래요?]
[오필리아 : 어머...]
[오필리아 : 어쩔 수 없네요 노아님 다음에 또 찾아올게요]
[노아 : 오지 말죠?]
[오필리아 : 또 올 거예요^^]
[채팅 방에서 오필리아님이 퇴장하였습니다.]
[노아 : 아오]
[질풍 : 블루비... 사람이지?]
[노아 : 어 길마라더라]
[질풍 : 괜찮...은거지 노아 형?]
[노아 : ?? 뭐가?]
[질풍 : 저 길드 안 갈 거지?]
[노아 : ㅋㅋㅋㅋ걱정 마]
[노아 : 그런데 할 얘기란 건 뭐야?]
[질풍 : ...율님에 대한 건데..]
[노아 : ?]
[질풍 : 솔직히 나도 어림짐작이라 얘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많이 고민했거든 얘기한다고 율님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노아 형은 알고 있어야 하지 않나 싶어서...]
[노아 : 뭔데?]
[질풍 : 율님이 접속 안 하게 된 이유...랄까 저번에 나랑 얘기하다가 율님이 나랑 왕광 형을 싸잡아서 형들이라고 불렀거든...]
[질풍 : 그리고 놀랐는지 바로 로그아웃 해버리더라고;]
[노아 : 형들?]
[질풍 : 뭐 율님이 두 사람보다 어려서 왕광형을 싸잡아 부르다가 실수로 나까지 합해서 형들이라고 했을 수도 있다고는 생각해 근데 그런 거라면 그냥 실수라고 하면 되는데]
[노아 : 그런데 너한테까지 형이라고 했다고?]
[질풍 : 응..나보다 어리면 많아도 18살이라는 건데... 그 나이면 고등학생일 거 아니야... 근데 접속하는 시간 보면... 말 못 할 사정으로 백수라고 숨기고 있던 걸 나한테 들켜버려서 안 들어오나 싶어...]
[노아 : 18살...]
[질풍 : 근데 이대로 율님 계속 접속안하면 어쩌지...]
[노아 : ...]
[질풍 : 그래도...제일 답답한 건 노아 형이겠지....]
***
“아들, 엄마 간다?”
방 밖에서 들려오는 다정한 목소리에 침대에 엎드려 있던 율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요 며칠 평소보다 더 의기소침해져 방에서 나오지 않던 자신의 모습을 알게 모르게 신경 쓰던 모친이 얼굴을 한번 보여 달라는 뜻으로 방문 밖에서 자신에게 인사를 건넨 거라는 걸 안다.
율이 서둘러 방문을 열고 나가자, 현관 앞에서 구두를 신던 모친이 율을 보며 웃었다. 그리고 팔을 벌려서 이리 오라는 듯 손짓을 했다. 그에 응하듯 율이 다가가 안기자, 그녀는 율을 감싸 안으며 등을 토닥였다.
“엄마 다녀올게?”
“응.”
짧은 대화가 끝나고, 웃으며 현관문을 나서는 모친을 배웅한 율은 터덜터덜 걸어 방으로 향했다. 새벽에 일어나 켜두었던 컴퓨터가 미세한 소음을 내고 있었다. 오랫동안 건드리지 않아 절전모드가 된 시커먼 화면을 바라보던 율이 마우스를 가볍게 흔들자 모니터에 불이 들어오며 레페르토르의 홈페이지가 화면 가득 차올랐다.
벌써 5일째 접속을 피하고 있다. 질풍과의 대화에서 얼결에 튀어나온 형들이란 말에 당황해 변명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게임을 꺼버렸던 게 불과 며칠 전의 일인데 율에겐 상당히 오래된 일인 것처럼 느껴졌다. 게임을 하지 못하고 홈페이지만 띄워놓은 채, 침대 위에 눕거나, 책상 앞에 앉아서 멍하니 모니터만 바라봤던 시간이 더욱 길게 느껴진 탓이기도 했다.
처음엔 감추던 나이를 들켜버린 것에 겁이 났다. 나이를 알면 자신이 고등학생이란 것을 알게 될 테고, 그럼 학교에 가지 않는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이런저런 핑계로 둘러댈 수도 있겠지만, 만에 하나 자신이 왕따를 당해서 학교를 그만뒀다는 걸 알게 되면 그곳에서도 똑같이 왕따를 당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정하게 대해주던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알 수 없는 야유와 이유 없는 폭력이 시작되면…. 줄줄이 나열되던 생각 속에 다정하게 대해주던 사람들이 스치듯 지나갔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얼굴도 모르는 게임 속의 길드원들. 그 모든 사람이 또다시 자신에게 등을 돌린다면…. 율은 생각하고 싶지 않은 상황을 상상하다, 잔뜩 흐려진 얼굴로 모니터 앞에 엎드렸다. 그런데도 길드원들이 너무 보고 싶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엎드린 채로 깜빡 잠이 들어버린 율은 요란하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비몽사몽 한 얼굴로 후다닥 거실로 뛰어나가 수화기를 들어 올렸다.
“여보세요?”
「율아, 잤니?」
수화기 너머에서 다정한 모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응….”
「점심은 먹었어?」
“점심?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율의 대답에 간헐적으로 웃는 소리가 들렸다.
「뭐, 맛있는 거 시켜줄까?」
“응? 아니야, 대충 먹으면 돼.”
「대충 먹으니까 자꾸 마르잖니.」
“그런…가….”
「아니면 저녁에 아빠랑 같이 고기 먹을까? 율이가 좋아하는 고기!」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신나 보이는 모친의 목소리에 율도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응, 그게 좋겠어. 엄마.”
「그럼 엄마가 저녁에 고기 사 갈게!」
“응.”
「점심 대충 먹지 말고.」
“응.”
「그럼 끊는다?」
“저기, 엄마….”
「응?」
“나… 왕따 당한 거 말이야.”
「…….」
“내가… 정말 잘못한 게 있었던 걸까?”
「음… 율아, 엄마는 너도 아니고, 그 아이들도 아니니까, 너희들 사이에 어떤 사정이 있어서 일이 그렇게 된 건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어.」
“…….”
「그런데 율아, 엄마는 율이 엄마잖아?」
“응….”
「엄마는 우리 아들 믿고 있어. 절대 네 탓이 아니란 것도 알고 있어. 아빠도 그럴 거야. 그런데 혹시라도 너를 모르는 사람들이 네 잘못이라고 억지를 부리며 손가락질하면 엄마랑 아빠는 언제든지 그런 사람들과 싸울 수 있어. 그러니까 혹시라도 네 탓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 주렴.」
“엄마….”
「하지만 싸움만 해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잖니?」
“…….”
[싸우는 건 엄마와 아빠가 할 테니, 율이는 네 잘못이라고 억지 부리는 사람들이 아닌, 율이를 믿어주는 사람을 만들어 보지 않을래?]
“그런… 사람이 있을까?”
「요즘…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 않았니?」
“아….”
모친의 말에 율은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을 생각했다.
“그런데… 더 무서워졌어. 내가 왕따 당했던 걸 모두 알게 되면, 또 반복되지 않을까 싶어서.”
「그중에 한 사람만이라도 널 믿어주지 않으려나?」
“한… 사람?”
「응. 한 사람이 믿어주면, 그 사람을 믿어주는 사람 또한 널 믿어주게 될 테니까.」
“…….”
「율아, 천천히 해도 괜찮아. 엄마랑 아빠는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어.」
“…….”
「느린 게 대수니? 그리고 율이 너는 아직 18살밖에 되지 않았잖니.」
“정말… 괜찮아?”
「당연하지.」
“아….”
「이런… 율아, 엄마 이제 끊어야 할 것 같아.」
“어? 으, 응.”
「점심 잘 챙겨 먹고.」
“응, 엄마 고마워….”
「사랑해, 아들.」
“나도 사랑해.”
다음 날 출근하는 엄마를 배웅한 율은 조용히 방으로 돌아와 컴퓨터 앞에 앉았다. 접속하자고 마음먹었지만, 마음과는 다르게 몸은 여전히 긴장한 채, 좀처럼 움직여 주지 않았다. 심호흡하듯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길 수차례. 마우스를 쥐고 홈페이지의 스타트 버튼 주위를 배회하던 율은 두 눈을 꾹 감고, 스타트 버튼을 눌렀다.
[길드원 율님이 접속하였습니다.]
실로 오래간만에 접속해 보게 된 쉼터의 모습에 율은 절로 웃음이 났다. 익숙한 주변을 처음 보는 듯 훑어보다, 조용한 채팅창을 보며 조심조심 길드 창을 열었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접속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길드 창에 나열된 아이디들을 보기만 해도 반갑고 설레어서, 율은 차근차근 길드 창에 나열된 아이디들을 읽어 내렸다. 그러다 어느 순간 손을 멈췄다. 휠을 위로, 아래로 급하게 돌려 봤지만 찾는 아이디는 보이지 않았다. 6일 만에 돌아온 길드엔 노아가 없었다.
아무리 뒤져봐도 보이지 않는 노아의 아이디에 율은 망연자실해 버렸다. 사고가 정지해 버린 듯 멍하니 길드 창을 바라보고 있는데, [길드원 질풍님이 접속하였습니다]라는 알림이 떠올랐다. 그리고 곧 쉼터에 모습을 드러낸 질풍은 접속해 있는 율을 보곤 머리 위에 /헉 하는 이모티콘을 띄우며 달려왔다.
[질풍 : 율님!?!?!?!?!]
[율 : 풍님...]
[질풍 : 으허휴ㅠㅠㅠ 율니뮤ㅠㅠㅠ!!!!!]
[질풍 :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데ㅠㅠㅠㅠㅠ 왜 안 왔어요ㅠㅠㅠㅠ]
[질풍 : 이대로 말없이 접는 줄 알았단 말이에요ㅠㅠㅠㅠㅠㅠㅠ]
[율 : 죄송해요...]
[질풍 : 요새 길드 분위기도 최악이었어요ㅠㅠㅠㅠ]
[율 : 저...그런데 풍님]
[질풍 : 네ㅠㅠ?]
[율 : 노아님...이 안보이시는데...]
[질풍 : 아...노아 형..]
[율 : 어디 가셨나요?]
[질풍 : ....노아 형 블루비... 갔어요ㅠ]
[율 : 네?]
[율 : ??]
[율 : ?!!?!]
[질풍 : 으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율 : ????????]
[질풍 : 율님 반응잌ㅋㅋㅋㅋㅋㅋㅋ]
[율 : 저기; 노아님...왜...?]
[질풍 : ㅋㅋㅋ율님 없는 동안 글록동맹에서 노아 형 어지간히 괴롭혔거든요]
[질풍 : 근데 노아 형이 너무 철벽을 치니까 동맹 측에서 일정 기간 스왑을 해보자고 하더라고요 근거 없는 요구를 하는 것 보다 한번 체험해보면 길드를 옮기고 싶어질 거라면서... 노아 형은 그것도 거절했는데 길마님이 계속 괴롭힘 당하느니 차라리 가서 며칠 있어 본 다음에 확실하게 잘라내면 군말 나오지 않을 거라고 해서...]
[질풍 : 노아 형 가 있는 동안엔 해당 길드의 네임드가 우리 길드로 오기로 했구요]
[율 : 아...]
[질풍 : 그나저나...노아 형 화 많이 났어요...]
[율 : 네...]
[질풍 : 우선 노아 형 들어오면 형이랑 얘기해 봐요]
[율 : 그럴게요;]
[질풍 : 아무튼 다시 봐서 너무 좋네요:D]
[율 : 저도요]
질풍과의 해후를 풀고, 쉼터에서 노아를 기다리는 사이, 복세편살과 광인한 남자가 접속했다. 두 사람은 쉼터에 있는 율을 보고 기절할 듯이 놀라며 반겨주고, 기뻐했다. 광인한 남자와 복세편살이 접속해 들어오고, 조금 북적북적해진 쉼터에서 대화를 나누는 사이, 어느덧 율은 긴장이 조금 풀어져 있었다.
[컴패니언 노아님이 접속하였습니다.]
하지만 노아의 접속 알림을 보자마자 다시 심장이 미친 듯이 뛰며, 손끝이 차갑게 식었다. 다른 세 명도 노아의 접속을 알았는지 쉼터는 순식간에 찬물 뿌린 듯 조용해졌다.
[질풍 : 율님...노아 형 왔어요]
[율 : 네...]
하지만 기다려도 쉼터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노아를 기다리며 의아해하는데, 광인한 남자가 조심스레 말을 덧붙였다.
[광인한 남자 : 노아 형 지금 블루비 쉼터에 있을 거예요.. 여기에 안와요;]
[율 : 네?]
[복세편살 : 귓 해봐요]
[율 : 아..]
세 사람과 함께 있으면 노아와 대화를 하는 것도 조금은 수월할 거로 생각했던 율이었다. 그런데 길드를 옮기며 쉼터도 옮겨버린 노아 덕에 귓속말할 수밖에 없게 돼 버렸다. 율은 떨리기 시작하는 손끝을 주무르며, 긴 심호흡을 몇 번 내쉬고는 노아에게 귓속말을 했다.
[귓속말] [율 : 노아님...]
[귓속말] [율 : ...노아님?]
[귓속말] [율 : 노아...님;]
아무리 불러봐도 묵묵부답이라 더욱 초조해진 율이 다시 한번 노아를 불러 보려는 순간, 노아의 채팅이 올라왔다.
[귓속말] [노아 : 어디예요]
평상에 앉아 노아를 기다리던 율은 노아보다 먼저 주막으로 달려 들어오는 궁기를 보았다. 궁기는 자신을 발견하자, 한달음에 달려와 앉아 있는 자신의 무릎에 얼굴을 비비며 그르렁거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쉼터로 성큼성큼 들어서는 노아를 본 율은 저도 모르게 캐릭터를 벌떡 일으켜 세웠다.
이미 율을 혼자 둔 채, 구석의 평상에 모여 앉은 질풍, 광인한 남자, 복세편살은 숨을 죽인 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쉼터에 도착한 뒤, 노아는 한참을 말이 없었다. 그저 죄인처럼 서 있는 율의 앞에 고요히 서 있기만 할 뿐. 폭풍전야 같은 분위기에 모두 숨죽이며 노아의 눈치만 보고 있는데, 조용히 율을 부르는 노아의 채팅이 올라왔다.
[노아 : 율님]
[율 : 니ㅔ?]
[노아 : ...]
[율 : 죄송해요...]
[오필리아 : 노아님!]
그런데 이제 막 대화를 시작하려는 듯한 두 사람의 사이로 처음 보는 아이디 하나가 끼어들었다. 율이 시선을 들자, 주막의 입구로 들어서는 웬 하이 프리스트가 보였다.
[오필리아 : 빨리 가야해요 파티원들 기다린다고요]
[노아 : 그쪽끼리 가던가]
[오필리아 : 어머?]
[오필리아 : 당장은 블루비에 계신 거니까 길마인 제 말 들으세요]
[노아 : ...]
[노아 : 율님 7시에 다시 올게요]
[노아 : 도망가지 말고 기다려요]
[율 : 네? 네...그럴게요]
율의 대답을 들은 노아는 조금 더 율의 앞에 말없이 서 있었다. 그러다 또다시 성화를 부리는 오필리아에게 /짜증 이모티콘을 내보여주곤 쉼터를 떠났다. 노아가 쉼터를 떠나고, 율의 곁에 맴돌던 궁기가 율과 노아를 번갈아 바라보다, 아쉬운 듯 연신 뒤를 돌아보며 노아를 따라 달려 나갔다.
[질풍 : 매도 먼저 맞는 게 나은데...]
[광인한 남자 : 하... 똥줄 타...]
[복세편살 : 심장 멎겠다...]
노아가 떠난 뒤 다시 율이 있는 평상으로 우르르 몰려든 세 사람이 한마디씩 거들고 나섰다. 그럴수록 율은 더욱 안절부절못하고 연신 /뻘뻘 이모티콘을 남발할 뿐이었다.
[길드원 왈도님이 접속하였습니다.]
[길드] [왈도 : 안녕하신가! 힘세고 좋은 아침! 만약 내게 물어보면 나는 왈도!]
[질풍 : ;;;]
[광인한 남자 : 아..꼴 뵈기 싫어...]
[복세편살 : ㅋㅋㅋㅋ]
[율 : 누구...에요?]
[질풍 : 아 노아 형이랑 스왑해서 온 블루 비 넴드에요]
[길드] [왈도 : 아무도 없어?]
[길드] [질풍 : ㅎ2...]
[길드] [광인한 남자 : ㅎㅇ]
[길드] [복세편살 : 안녕 ㅋㅋ]
[길드] [율 : 안녕 하세요]
[길드] [왈도 : 오?! 오!!!!!! 율님이다!!!!!!!]
[길드 마스터 무지개 요정님이 접속하였습니다.]
[길드] [질풍 : 길마님!!!!!!!!!!!!!!!!!]
[길드] [광인한 남자 : 율님 컴백!!!!!!!!!!!!!!!]
[길드] [무지개 요정 : !??!!ㅜ머라?!!!]
[길드] [율 : 길마님ㅠ]
[길드] [무지개 요정 : 이누무 시키!!!!!!]
[길드] [왈도 : 뭐야? 나와 다른 이 온도 차이는??]
무지개 요정을 선두로 차례차례 접속한 길드원들은 접속해 있는 율을 보며 놀라고, 반가워하며 하나같이 약속이라도 한 듯 율이 있는 쉼터에 모여들었다. 그리고 하나같이 물어오는 질문은 왜 접속을 하지 않았는가에 국한되었다. 그리고 난감한 듯 대답하지 못하는 율을 대신해 질풍이 적당히들 하라며 중재를 하고 나섰다.
결국,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한 길드원들은 질풍의 성화에 못 이겨 다들 사냥이나 노가다를 하러 뿔뿔이 흩어졌고, 쉼터엔 율과 질풍, 무지개 요정과 왈도가 남았다.
[무지개 요정 : 노아가 스왑으로 블루 비에 간 거 들었어?]
[율 : 네 풍님한테요..]
[무지개 요정 : 당분간 이 길드 저 길드 옮겨 다니느라 우리하곤 못 어울릴 거야 쉼터에도 잘 못 올 거고 이해하지?]
[율 : 네...]
[무지개 요정 : 근데 이거는 율이 네가 이해하고 자시고 할 게 없어]
[율 : 네?]
[무지개 요정 : 노아는 지금 네 몫까지 뛰고 있는 거니까]
[율 : ??]
[무지개 요정 : 스왑 요청은 받아들였지만 동맹 쪽에선 너하고 노아 두 명 다 스왑을 해주길 바랬거든]
[무지개 요정 : 근데 노아가 전적으로 반대하더라 자기는 불평불만 다 표출할 수 있고 부당한 요구는 쌍욕을 하면서 거절할 수 있지만 너는 아니라고]
[율 : 아...]
[무지개 요정 : 네가 스왑을 간 길드에서 너를 안 놔주고 길드에 있기를 강요하면 넌 거절도 못하고 거기에 억지로 뿌리를 박게 될 거라고 하더라고]
[무지개 요정 : 노아는 지금 동맹의 스왑을 전부 다 돌고 확실한 거절로 다시는 길드이전 요청이 들어오지 못하게 초석을 쌓으려고 해]
[무지개 요정 : 확실하게 말하면 노아는 하기 싫은걸 참고 하고 있는 중인거지]
[율 : ...]
[무지개 요정 : 그러니까 율이 너도 노아를 위해 할 수 있는 걸 해줘라]
[율 : 네...]
[질풍 : 어;;; 그런 사정이 있는지는 저도 몰랐어요;]
[무지개 요정 : 나도 깜짝 놀랐다 처음에 노아는 되게 자기중심적이었는데 귀찮은 거 싫어하고 남한테 피해 받는 것도 싫어하고 지가 싫은 건 싫은 거고...]
[질풍 : 와...나 좀 감동...]
[무지개 요정 : 뭐 저한테도 피해가오니까 하는 거겠지만]
[질풍 : ....내 감동 물어내]
[왈도 : 아무튼 노아님 없는 동안 율님은 내 차지네요!]
[질풍 : ??]
[무지개 요정 : /짜증]
단란한 분위기 속에 눈치도 없이 초를 치고 들어오는 왈도를 날려버리고 싶은 무지개 요정이었다.
혹시나 7시 전에 노아가 올까 싶어 온종일 쉼터에서 노아를 기다렸던 율은 7시가 되기 전에 쉼터로 들어오는 노아의 모습에 왠지 모를 안심을 느꼈다. 오전에 와서는 한참을 말없이 서 있었던 때와는 다르게 노아는 오자마자 율의 옆에 앉아 질문을 던졌다.
[노아 : 율님 몇 살이에요?]
대뜸 날아든 돌직구에 구석에서 숨죽이고 있던 질풍이 /헉 하는 이모티콘을 띄웠다. 그러나 우물쭈물하며 당황할 거로 생각했던 율이 의외로 순순히 대답을 해줬다.
[율 : 18이요..]
[노아 : 왜 숨겼어요?]
[율 : 무서..웠어요..]
[노아 : 뭐가요?]
[율 : 뭐든 지요...]
[노아 : 학교는요? 고등학생이잖아요]
[율 : 안...다녀요.]
[노아 : ??]
[율 : ...]
[노아 : 자퇴? 퇴학?]
[율 : 자퇴...]
[노아 : ...]
[노아 : 내가 이 이상 물으면 율님한테 실례인가요?]
[율 : ...]
[노아 : 그런데 솔직히 실례여도 난 묻고 싶네요 아니면 묻지 않는 게 좋겠어요?]
[율 : 왕따 당했어요]
[노아 : ??]
[질풍 : ?!]
[율 : 괴롭힘 당하다가 못 견디겠어서...그만 뒀어요]
율은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이 참 좋았다. 하지만 자신을 믿어주지 못할 사람들이라면 더 정이 들기 전에 빨리 정리를 하고, 다시 새로운 사람들을 찾아보는 게 나았다. 그래서 평소라면 절대 입 밖에 내지 못할 말들을 술술 뱉어냈다. 전날 모친과 전화로 나눴던 대화 덕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세 사람 사이에 잠깐의 침묵이 찾아왔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초조해지는 율을 아는지 모르는지,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침묵은 멀찍이 앉아 있던 질풍에 의해 종결됐다.
[질풍 : ㅠㅠㅠㅠㅠㅠㅠㅠ율ㄴ미ㅠㅠㅠㅠㅠㅠㅠㅠ 나쁜 놈들ㅠㅠㅠㅠㅠㅠ]
울며불며 율과 노아가 있는 평상에 달려온 질풍이 율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의 머리 위로는 /엉엉 이모티콘이 연신 남발되고 있었다. 동시에 적잖이 당황한 듯한 노아의 채팅이 올라왔다.
[노아 : 어...미안해요]
[율 : 네?]
[질풍 : 졸라 천사 같은 율니믈ㅠㅠㅠㅠㅠ]
[노아 : 솔직히 이런 답이 나올지는 생각도 못했어요...좀 당황스럽네요;]
[율 :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질풍 : 율니뮤ㅠㅠㅠ 느낌표썼어ㅠㅠㅠㅠ]
예상치 못한 두 사람의 반응에 율은 안절부절못하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두 손을 키보드 위에 배회시키기만 했다.
[노아 : 그런데 그걸 왜 숨겼어요?]
[율 : 알게 되면...여기서도 왕따를 당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질풍 : 허류ㅠㅠㅠㅠㅠ 안 그래요ㅠㅠㅠ 율님 우리 안 그래요!!!ㅠㅠㅠㅠ]
[노아 : ...]
[노아 : 지금 대화 내용 율님에 대한 거 길마님한테는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은데... 괜찮나요?]
[질풍 : 어떤 길마?ㅠㅠㅠㅠ 형네 길마?ㅠㅠㅠ]
[노아 :...너네 길마]
[율 : 네 괜찮아요...]
율의 허락에 노아는 무지개 요정에게 귓을 해서 그를 쉼터로 불러냈다. 의문을 품은 채 쉼터에 도착한 무지개 요정은 노아와 율의 얘기를 모두 듣고는 오열을 하며 난리를 부렸다.
[무지개 요정 : 왕따라니!!!!!! 우리 유리가 왕따라니!!!!!!ㅠㅠㅠㅠㅠㅠ]
[율 : 저기..]
[무지개 요정 : ㅠㅠㅠㅠ내가 쫓아가서 그놈들 때려주까?!]
[질풍 : 저도 데려가요ㅠㅠㅠㅠ 나도 잘 때려줄 수 있을 것 같아요 ㅠㅠㅠ!!!]
[무지개 요정 : 설마... 맞기도 했니?!!]
[율 : ...]
[무지개 요정 : 시버류ㅠ 침묵은 긍정!!!!!!]
[질풍 : 혹시 돈도.... 뺐겼어요?!]
[율 : 네...]
[질풍 : 육시러류ㅠㅠㅠㅠㅠ!!!]
[무지개 요정 : 18살이면 존나 애기인데ㅠㅠㅠㅠ!!!]
[율 : 애기 아니에요;]
[무지개 요정 : ?]
[질풍 : ?]
[무지개 요정 : 흐미!!!! 이렇게 귀여운거류ㅠㅠㅠㅠㅠ]
[질풍 : 못 참겠어요ㅠㅠ 어떻게 이런 율님을 괴롭힐 수가 있어ㅠㅠㅠㅠ!!!]
[노아 : 두 사람이 율님 괴롭히는 것 같으니까 그만들 해요...]
[무지개 요정 : ?!]
[질풍 : !?]
[율 : ...]
[노아 : 우선 율님 나이나 사정은 우리만 알고 있는 걸로 해요... 소문 내서 좋을 거 하나 없을 것 같으니까]
[무지개 요정 : 그래!!지켜 줄께!!! 이 형이 지켜 줄께!!!!]
[질풍 : 율님 나이를 생각해요ㅠㅠㅠ 길마님이 어떻게 형이야?ㅠ]
[무지개 요정 : !?]
[노아 : 율님]
[율 : 네?]
[노아 : 율님이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오늘은 정말 미안해요]
[율 : 아니에요!]
[무지개 요정 : ...말..하기 힘들지 않았어?ㅠ]
[율 : ...]
[질풍 : ㅠㅠ?]
[율 : 그래도..감추고 있던 때가 더 힘들었어요...]
[무지개 요정 : 아ㅠㅠㅠㅠ]
[노아 : 아무튼 힘들었을 텐데 말해줘서 고마워요]
[율 : 저도...저도 감사..해요]
[노아 : ?]
[율 : 그냥 감사해요..]
믿어주는 사람이 한 명이면, 그 사람을 믿어주는 사람 또한 자신을 믿어주게 될 거라고 했다. 지금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이 세 명이나 있다. 그럼 저 세 사람을 믿어주는 사람들이 언젠가 자신을 믿어 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느려도 괜찮아….”
율은 조용히 모친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읊조렸다. 그리고 웃었다. 모니터 속의 얼굴도 모르는 세 명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