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스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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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드원 율님이 접속하였습니다.]
[길드] [광인한 남자 : 율님 어서 와요~ 오늘도 빠르네요~]
[길드] [율 : 안녕하세요]
[길드] [광인한 남자 : 이제 잘 들어올 거죠?ㅋㅋ]
[길드] [율 : ㅋㅋㅋ 네]
[길드] [광인한 남자 : ?!?!?!!??]
비록 채팅이지만, 처음으로 웃어 보인 자신의 행동에 충격에 빠진 광인한 남자의 사정도 모른 채, 율은 쉼터에 앉아 스킬 창을 열었다. 컴패니언 스킬 중에 신경 쓰이는 스킬 하나가 있었는데, 그간 접속하지 못해서 제대로 확인을 못 해봤었다. 가만히 앉아 스킬 설명을 차근차근 읽어보던 율은 해당 스킬을 올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사용을 했다.
[컴패니언 노아님이 접속하였습니다.]
[귓속말] [율 : 노아님]
[귓속말] [노아 : 일찍 왔네요?]
[귓속말] [율 : 네 저기.. 잠깐 쉼터 와주실 수 있으세요?]
[귓속말] [노아 : ? 갈게요]
율의 부름에 쉼터에 도착한 노아가 평상 위에 앉아 있는 율에게 다가가자, 대뜸 거래가 걸려왔다. 의아한 마음에 수락을 누르자, 율은 ‘만나’라는 소비 아이템 3개를 건네줬다.
[노아 : 이게 뭐예요?]
[율 : 어...아마도...노아님이 사용할 수 있는 회복 템...이요?]
[노아 : 네?]
[율 : 하루에 3개만 만들 수 있고 3개만 소비할 수 있데요]
[노아 : 저는 회복 템 못 먹잖아요?]
[율 : 제 스킬 중에...컴패니언 전용 회복 템을 만드는 스킬이 있었어요]
[노아 : ?!]
[율 : 근데 저도 긴가민가해서...]
정확한 확답을 주지 못해 말끝을 흘리는 율의 말과 동시에, 노아의 캐릭터 위로 만피와 똑같은 양의 힐과 율이 걸어줄 수 있는 모든 아크비숍 스킬의 이펙트가 연속으로 떠올랐다. 아마도 노아가 3개의 만나 중 한 개를 사용해 본 듯했다.
[율 : ??]
[노아 : 대박..]
[율 : 피만 채워 주는 건 줄 알았는데..]
[노아 : 율님 때문에 다른 프리들이 눈에도 안 들어오게 생겼어요..]
[율 : 아..]
[노아 : 그래도 이거 진짜 유용하겠네요]
[율 : ㅋㅋㅋ]
[노아 : ??]
율의 웃는 채팅에 놀라워하는 건 노아도 마찬가지였다.
[율 : ?]
[노아 : 아... 아니에요 ㅋㅋㅋ 아무튼 고마워요 율님]
[율 : 네ㅋㅋ]
***
[길드원 왈도님이 접속하였습니다.]
[길드] [왈도 : 안녕하신가! 힘세고 강한 아침! 만약 내게 물어보면 나는 왈도!]
[길드] [무지개 요정 : 시끄러워!!!!]
[길드] [왈도 : ;ㅁ;]
쉼터에 앉아서 사냥터를 물색하던 질풍과 율은 접속하자마자 요란한 인사를 남기고, 무지개 요정에게 한 소리를 듣는 왈도의 행동에 절로 기함을 했다. 그런 두 사람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쉼터에 들어온 왈도는 거침없이 두 사람에게 다가와 율의 옆에 바짝 붙어 앉았다.
[질풍 : ?]
[율 : ;]
[왈도 : 왜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 거예요 율님?]
[율 : 네?]
[왈도 : 내가 길마님께 쿠사리를 먹는 동안 이렇게 유유자적 있기에요?]
[율 : ??]
[왈도 : 귀엽기는]
왈도는 율의 반응에 귀엽다며 율을 향해 뽀뽀하는 이모티콘을 사용했다.
[질풍 : ?!!?!!]
그에 기겁한 율이 벌떡 일어나 질풍의 옆으로 도망을 갔고, 왈도의 행동을 보던 질풍이 덩달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질풍 : 뭐하는 거예요!]
[왈도 : 귀여우니까]
[질풍 : 변태에요?!]
[왈도 : 익숙해 져야겠지~ 이제 당분간 내 것이니까♡]
[질풍 : 어메! 시벌!!]
[길드] [질풍 : 길마님!!!!!! 도움!!!!!!!!!!]
[길드] [무지개 요정 : ???]
[길드] [도련 : ?]
[길드] [질풍 : 왈도님이 율님 희롱해요!!!!!!!!!!!!시벌!!!]
[길드] [무지개 요정 : ?!?!?!]
[길드] [질풍 : 징그러워요!! 저사람!!!]
[길드] [무지개 요정 : 감히 누굴 뭐? 희롱?! 율이를 희이로오옹?!]
[길드] [왈도 : 그대들 나를 노아님 대신으로 생각해~ 그럼 익숙해지겠지~]
[길드] [도련 : 기름기 빼고 와]
[길드] [율 : 노아님은 안 그러세요...]
[길드] [질풍 : 왈도님 다른 의미로 넴드였던거 아니에요?! 실력 말고 징그러운 걸로!!!]
[길드] [왈도 : 훗 나를 얕잡아보면 큰일 나~]
[길드] [무지개 요정 : ....블루비 이 잡것들이 저딴걸...]
[길드] [도련 : 넴드 바꿔 달라 그래요]
[길드] [왈도 : 나는 굴하지 않지~]
[길드] [질풍 : 옌병...]
[길드] [왈도 : 자 이제 율님도 나와 함께 둘만의 사냥을 떠나YO~]
[길드] [율 : 저는 풍님하고...]
[길드] [왈도 : 오 갓 안 돼요 스왑의 취지를 모르겠어요? 난 율님을 체험하러 이 길드에 온 거예요~ 그러니까 스왑이 끝날 때까진 율님은 나랑 사냥해야 해요]
[길드] [율 : ...]
[길드] [질풍 : 길마님!!!!]
[길드] [무지개 요정 : ... 율아 대단히 미안하긴 한데...짜증나더라도 어울려줘라]
[길드] [율 : ;]
[길드] [질풍 : ?!]
[길드] [무지개 요정 : 솔직히...너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있거든 나는]
[길드] [왈도 : 허락이 떨어졌네요~ 이제 율님과 나 사이를 방해할 수 있는 건 없어요♡]
[길드] [도련 : 진짜 변태 아니에요...?]
[길드] [무지개 요정 : ;;; 풍이 풍이가 같이 가!]
[길드] [왈도 : 안 돼요~ 난 율님이랑 단둘이 있을 거니까♡]
[길드] [무지개 요정 : 안 돼 풍이랑 같이 가!!]
[길드] [왈도 : 자꾸 이렇게 나오면 나도 우리길드에 요청해서 노아님 더 힘들게 하라고 할 거예요]
[길드] [도련 : 새끼가 협박?]
[길드] [질풍 : 미쳤어요?]
[길드] [율 : 제가! 그냥... 왈도님하고 사냥 갈게요...]
[길드] [무지개 요정 : ...잠깐 잠깐!! 그럼 사냥터는 내가 지정하는 곳으로 가]
[길드] [왈도 : ??]
[길드] [무지개 요정 : 거절하면 너를 핑계로 스왑을 취소시킬 거야]
[길드] [왈도 : 뭐... 사냥터정도는 양보 하죠~ 난 율님을 손에 넣은 행운아니까]
[귓속말] [무지개 요정 : 노아야 너 오늘 어디로 사냥 가냐?]
율과 왈도는 무지개 요정이 지정한 화산 던전 2층에 와 있었다. 사방에 불꽃과 용암이 흐르는 화산 던전은 보기만 해도 땀이 날 정도로 후끈후끈해 보였다. 화산 던전은 2인 파티로 가기에는 약간 무리가 있는 던전인데, 왜 무지개 요정이 굳이 이 던전을 고집한 건지는 두 사람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율은, 무지개 요정 나름대로 자신에게 불이익을 줄 곳을 고르진 않았을 거란 생각을 하며 버프를 걸었다.
(베네딕 티오)
(베네피치움)
(아우덴티아)
(클레멘티스)
(인 라피뎀)
시전하는 즉시 율과 자신의 머리 위로 동시에 떠오르는 스킬 이펙트에 왈도는 침을 질질 흘리는 이모티콘을 남발했다.
[왈도 : 황홀하네요...]
[율 : ...]
버프를 모두 끝낸 율은 유유히 앞서 걸어가는 왈도의 뒤를 말없이 따랐다.
***
[귓속말] [무지개 요정 : 노아야 너 오늘 어디로 사냥 가냐?]
[귓속말] [노아 : 저요? 화산 던전 2층 와있어요]
[귓속말] [무지개 요정 : ㅇㅇ]
두서없이 물어오는 무지개 요정의 말에 노아는 의아하게 생각하면서도 답을 해주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을 끝으로 더 말이 없기에 노아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화산 던전은 몬스터 대부분이 선공에 개체 수가 많이 나오는 던전으로 리젠 속도도 어마어마해서 1:1로는 끊임없이 무빙을 하면서 사냥을 해야 하는 곳이었다. 한자리에 서서 조금만 지체하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몬스터들이 몰리기 일쑤기 때문이었다.
율과 사냥을 할 땐, 율이 쉴 새 없이 힐을 넣어주곤 했다. 대충 한 방 정도 맞은 정도는 그냥 둬도 자동회복으로 금세 차오르지만, 율은 노아가 한 방이라도 맞으면 세상이라도 무너진 듯 급하게 힐을 넣곤 했었다. 게다가 율의 힐량은 보통 프리들의 1.5배이기 때문에, 지금. 오필리아가 넣어주는 힐이 상당히 마뜩잖은 노아였다.
게다가 오필리아는 율과는 다르게 노아의 피가 절반 이상이 비어야지만 급하게 힐을 넣는 버릇까지 있었다.
[노아 : 피통 재지 말고 바로바로 힐 넣어요 허접한 힐로 밀리잖아]
[오필리아 : 어머 정말 말버릇이 나쁜 남자네]
[노아 : 상황이 안 보이나 그쪽이 힐 밀리기 시작하면 끝인 거 몰라요?]
[오필리아 : 그러니까 왜 여길 2인으로 오냐고요]
[노아 : 하아...율님이었으면 문제없었을 텐데]
[오필리아 : 저기 노아님 계속 나랑 율님이랑 비교하는 거 나한테 실례인거 알아요? 나 되게 기분 나쁜데]
[노아 : 알면 잘 좀 하죠?]
[오필리아 : ....]
[노아 : 어째 자극을 시켜도 나아지는 게 없어]
[오필리아 : 노아님!!]
화가 난 듯한 오필리아의 채팅을 무감정하게 보던 노아는 갑자기 타깃팅이 분리되며 시야가 흐려지는 현상에 놀라며, 화면 중앙에 떠오른 (루프 나흐 디어) 스킬을 바라보다 급하게 사용을 했다. 스킬을 사용하자 노아의 주변에서 둥실 떠오른 두 개의 빛의 구체가 어디론가 빠르게 날아갔다.
[오필리아 : ...뭐예요?]
오필리아의 물음을 무시하고, 주변을 살펴보던 노아는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진 빛의 구체가 사라진 방향으로 급하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왈도 : 그 영상에서 봤던 스킬 써달라니까요?]
[율 : 못써요]
[왈도 : 안 써주면 나도 계속 방치할건데?]
[율 : 안 써 주는 게 아니라 못쓴다니까요...]
[왈도 : 왜?]
[율 : 그건 합동기라 노아님 없으면 쓸 수 없어요;]
[왈도 : 내가 노아님 대신이라니까?]
[율 : 아니...]
율은 제 주위로 한없이 몰려드는 몬스터들에게 맞으며, 근처에서 하이딩을 한 채로 말을 시키고 있는 왈도와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왈도는 율에게 (인 데오 스페라무스)를 써줄 것을 강요하며, 몬스터가 몰려 맞고 있는 율을 하이딩을 한 채로 바라보며 방치 중이었다.
[왈도 : 그거 내가 안 잡아주면 율님 죽는데?]
왈도의 말과 행동에 율도 슬슬 지쳐가고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힐도 해야 하고, 채팅도 해야 하는 통에 안 그래도 정신이 없는데, 써주고 싶어도 쓸 수 없는 스킬을 써 달라 강요하며, 속을 긁는 통에 더 답답할 뿐이었다.
[율 : 그만하시고 빨리 잡아주세요]
[왈도 : 싫~ 은~ 데~ 맞고 있는 율님은 가학 심을 자극해서 섹쉬~]
하지만 왈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어디선가 빛의 구체 두 개가 날아와 율의 주변에 있는 몬스터에게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왈도 : 뭐여?]
[율 : ???]
시원한 타격음과 함께 왈도의 평타보다 높은 데미지로 빠르게 공격을 가하던 빛의 구체는 몬스터를 두, 세 마리를 정도 잡고 나니 소멸했다.
[왈도 : 뭔데??]
어리둥절한 왈도는 주변을 둘러봤다. 하지만 주변에 사냥 중인 다른 파티들도 덩달아 당황한 듯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율 : 이제 그만하시고 잡아주세요...]
[왈도 : 그 스킬 써달라니까?]
[율 : ...못써요! 노아님 없어서 못쓴다니까요!!]
아마 게임을 하면서 화가 나본 건, 흙미밥 이후로 처음인 것 같았다. 억지를 부리는 왈도의 행동을 더는 참을 수 없었던 율이 그에게 한마디를 하려는 순간, 무수한 빛의 구체들이 연속으로 날아들었다.
[왈도 : 뭐야 이건!!!!]
[율 : ????]
구체들에 의해 율에게 몰린 몬스터들이 하나둘씩 쓰러져 가자, 왈도는 오히려 화를 내며 율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왈도 : 율님 대체 무슨 스킬을 쓰고 있는 거예요?? 공격 못 하는 거 아니었어?]
[율 : 제가 한 게 아닌데요;;]
[왈도 : 율님이 안 하면 누가 하는데!!!]
(디 블라우에 플라메)
실랑이를 벌이는 두 사람의 발밑으로 푸른색의 범위 표시가 생겼다. 그리고 땅속에서 푸른 불꽃을 두른 무수한 검들이 교차하듯 솟아나며 율을 공격하던 몬스터들을 순식간에 전멸시켰다.
[왈도 : ?!]
[노아 : 왜 여깄어요 율님?]
노아는 눈앞에 벌어진 행태에 어이가 없었다. 자꾸만 활성화되는 루프 나흐 디어를 연신 사용해 가며 던전을 뒤졌는데, 오래지 않아 홀로 몬스터에게 맞으면서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율을 발견했다.
저 사람이 왜 혼자 여기서 저러고 있나 싶어 멍하니 바라보는데, 율의 근처.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말풍선이 연신 떠올랐다. 그리고 그제야 사태가 파악됐다. 절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노아는 찌푸려지는 미간을 펼 새도 없이 서둘러 율이 서 있는 자리에 스킬을 시전 했다.
(디 블라우에 플라메)
난데없는 스킬로 깔끔하게 정리된 주변을 어리둥절하게 바라보던 율은 불쑥 끼어 들어온 채팅에 화들짝 놀랐다.
[노아 : 왜 여깄어요 율님?]
[율 : 노아님?]
난데없는 노아의 등장에 적잖이 당황한 율이 우물쭈물하는 사이, 왈도가 하이딩을 풀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밑도 끝도 없이 노아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왈도 : 뭐하는 겁니까?]
[노아 : ?]
[왈도 : 왜 몹을 스틸하고 그래요?]
[노아 : 이건 뭐예요 율님?]
하지만 노아는 왈도에겐 관심이 없다는 듯 율에게 되물었다. 노아가 말하는 ‘이건’은 아무래도 왈도를 가리키는 듯해서, 율은 슬쩍 왈도의 눈치를 보다 더듬더듬 답했다.
[율 : 블루비 길드 넴드님이요..]
[노아 : ???]
[율 : ...]
율의 답을 들은 노아는 이번엔 화면을 돌려 오필리아를 향했다.
[노아 : 저딴걸 보내요?]
[오필리아 : ??]
[오필리아 : 저딴거라뇨? 저희길드 넴드님이세요]
[노아 : 그러니까 왜 저딴걸 보내느냐고요]
[오필리아 : ...]
[노아 : 블루 비엔 쓸만한 넴드가 저 수준입니까?]
[오필리아 : 노아님...]
[왈도 : 이봐요!! 듣고 있자니 사람을 두고 이거라느니! 저딴 거라느니! 이 무슨 무례에요?]
[노아 : 제정신 박힌 사람이 아닌 것 같아서요]
[왈도 : 뭐요?]
[노아 : 제정신 박힌 사람이 맞고 있는 프리를 앞에 두고 하이딩을 한 채로 구경을 하고 있습니까?]
[왈도 : 내가 뭘 어쩌든!!]
[노아 : 보아하니 몹 잡아줄 실력도 없으니 하이딩 하고 제 몸만 사린 것 같은데 능력도 없으면서 이런델 왜 둘이서 옵니까?]
[왈도 : 그쪽이 무슨 상관이야! 그리고 날 언제 봤다고 실력 운운 질이야?]
[노아 : 실력이 있는 사람이 그렇게 사냥을 해요?]
[노아 : 그 길드에 아네미아란 사람이 딱 당신 수준하고 걸맞겠네요 파티 다시 짜서 오지 그래요?]
[왈도 : /짜증]
[노아 : 아니면 거지 같은 컨을 더 익히던가]
[왈도 : 야!!!!]
[노아 : 뭐]
[오필리아 : 둘 다 그만해요!]
[노아 : 저치를 데리고 사라져 주면 그만할 수 있을 것 같긴 하네요]
[왈도 : 뭐?]
[오필리아 : 노아님!!]
[왈도 : 아나 시이벌.. 율님 이게 다 율님 때문인 거 알죠?]
[율 : 네?]
[왈도 : 한낱 게임 스킬하나 보여주는 게 뭐 그렇게 어렵다고 비싸게 굴어요? 귀엽다 이쁘다 해주니까 아주 머리 꼭대기까지 기어 올라가려고 하죠?]
[노아 : 뭐라는 거야?]
[율 : 못써드리는 거라고 누누이 얘기 드렸잖아요]
[왈도 : 쓰지도 못하는 스킬을 왜 달고 다녀요?]
[노아 : 뭔 소리에요 저건?]
[율 : ...]
[율 : 왈도님이 계속 스페라무스 써달라고 하셨는데..노아님 없어서 못써드렸거든요]
[노아 : 설마 그것 때문에 율님 방치한 거는 아니죠?]
[율 : ...]
[노아 : 미친ㅋㅋㅋ]
[왈도 : 웃어?]
[노아 : 해 줘요 그냥 그게 그렇게 받아 보고 싶었나 본데]
[율 : ...]
[노아 : ?]
[노아 : 율님?]
[율 : ...싫어요]
[노아 : 네?]
[율 : 해 드리기 싫어요]
[노아 : ?!]
[왈도 : 뭐지 이건? 밀당?]
[율 : ??]
[노아 : ??]
[오필리아 : ??]
[왈도 : 하 결국 다 내 관심을 끌기 위한 앙탈이었나 보군요 내가 율님을 오해 했어요♡]
[노아 : 뭐야?]
[왈도 : 사랑스러운 내 사람 /쪽]
왈도는 율의 옆으로 다가와 뽀뽀를 하는 이모티콘을 사용했다.
[율 : ...]
[왈도 : 자 이제그만 내 품으로 돌아와요 오늘밤엔 재우지 않을 테니까~]
[노아 : 미쳤나]
[율 : 노아님 죄송해요...]
[노아 : 네?]
[율 : 왈도님이 자기랑 사냥을 하지 않으면 블루비에 요청해서 노아님을 괴롭힐 거라고 했어요]
[노아 : ?]
[오필리아 : ?!]
[율 : 그래서 참아 보려고 했는데...도저히 못 참겠어요]
[노아 : 무슨 소리에요 이게?]
[율 : 저... 저 사람.. 싫어요]
말을 끝으로 율은 귀환 스킬을 사용해 도망치듯 마을로 가버렸다.
쉼터에 앉아 수다를 떨던 세츠나와 도련은 주막의 입구로 들어서는 율을 보며 반갑게 맞았다. 하지만 율은 말없이 구석의 평상에 자리를 잡을 뿐이었다.
[도련 : 율님?]
[세츠나 : 왜 그래요?]
율의 행동에 의아한 두 사람이 조심조심 율이 앉은 평상으로 옮겨 앉으며 물었다. 하지만 율의 대답 대신 왈도의 길드 말이 올라왔다.
[길드] [왈도 : 율님? 이건 방치플레인가요?]
[길드] [무지개 요정 : ??]
[길드] [무지개 요정 : 밑도 끝도 없이 뭔소리여?]
[길드] [왈도 : 앙탈이 제법이에요~ 역시 내 사람♡]
[길드] [질풍 : ????]
[길드] [왈도 : 기다려요~ 내가 금방 곁으로 갈 테니까]
[길드] [무지개 요정 : ????]
[도련 : ??]
[세츠나 : 뭔 소리야 저건?]
[길드] [무지개 요정 : 율이 어딨는데??]
[길드] [도련 : 율님 쉼터에 있는데요?]
[길드] [무지개 요정 : 쉼터?!]
[길드] [세츠나 : 네 좀 전에 왔는데... 아무 말도 안하시는 게 이상하긴 해요]
[길드] [무지개 요정 : 알았어]
조금 뒤, 무지개 요정과 질풍이 나란히 쉼터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뒤를 왈도가, 그리고 조금 더 지나서 노아와 오필리아까지 쉼터에 모여들었다. 상당히 많은 수의 인원이 모이게 되어 웅성웅성 정신없는 쉼터에서 어떻게 된 일이냐, 무슨 일이냐 하는 대화가 오가는 도중, 계속 조용하기만 하던 율의 채팅이 올라왔다.
[율 : 제가... 왈도님 두고 그냥 와버렸어요..]
[무지개 요정 : 뭐?]
[도련 : 네?]
[세츠나 : ?!]
[질풍 : ??]
놀랐는지 연신 되묻는 말들이 올라오는 와중에 유일하게 놀라지 않은 노아만이 율을 옹호하고 나섰다.
[노아 : 그럴만했죠 얼마나 추접스럽게 굴던지]
[도련 : 추접?]
[질풍 : 왜?! 설마!! 사냥하면서까지 율님 희롱했어!?]
[노아 : 희롱을 해?]
[질풍 : 저거 변태야!!]
[노아 : 변태?]
[무지개 요정 : 그런 것보다 추접스럽게 굴었다는 게 무슨 소리야?]
[노아 : 율님한테 몹 죄다 붙여놓고 지는 하이딩 한 채로 율님 맞는 거 구경하고 있더라고요]
노아의 말에 한순간 정적이 일었다. 그리고 곧이어 폭풍 같은 채팅이 시작됐다.
[도련 : 미친....]
[세츠나 : 또라이 아냐?]
[질풍 : 욕! 매우 심한 욕!]
[길드원 왈도님이 길드에서 추방되었습니다.]
[왈도 : ?!?!?!?!]
[질풍 : ㅋㅋㅋ추방됐엌ㅋㅋㅋ]
[노아 : ??]
[세츠나 : 잌ㅋㅋ길마님ㅋㅋㅋㅋ]
[도련 : 미치것넼ㅋㅋㅋㅋ]
[왈도 : 길마님???]
[무지개 요정 : 내가 하다하다... 글록동맹이랑 스왑하는 것도 참았고 스왑해서 온 넴드가 저딴거인 것도 참았고 그 넴드가 변태인 것도 참았는데]
[무지개 요정 : 이건 도저히 못 참겠네]
[무지개 요정 : 블루비는 레인보우힐을 상당히 우습게 봤나 보네요?]
[오필리아 : 잠깐만요 무지개 요정님! 그런 거 아니에요!]
[무지개 요정 : 그게 아니고서야, 내 길드 안에서 저런 추접스런 짓을 하고 다녔을 리가]
[무지개 요정 : 노아는 당장 그 길드 소속이니 그렇다 치고 감히 내 길드에서 다른 사람도 아닌 율이한테 그딴 행동을 했어요?]
[오필리아 : 오해세요!]
[무지개 요정 : 오해애? 노아는 블루비로 빼돌려서 꼬드기고 율이는 왈도 이용해서 덩달아 데려가려고 했던 거, 모를 줄 압니까?]
[오필리아 : ...]
[무지개 요정 : 눈에 빤히 보이는 수작질에도 순순히 응해줬으면 닥치고 몸 사렸다가 조용히 꺼질 것이지 인성쓰레기 같은 변태 앞잡이 하나 내세워서 내 길원한테 그딴 짓을 해?]
[무지개 요정 : 블루비와는 이 이상 스왑 진행하고 싶지 않네요]
[무지개 요정 : 노아도 그만하고 돌아와]
[오필리아 : 잠깐만요!! 일방적으로 이러시는 건 아니죠!]
[무지개 요정 : 일방적?! 그럼 왈도가 율이한테 한 행동은 상호간에 협의가 돼서 한 행동입니까?]
[오필리아 : 그건...]
[무지개 요정 : 율이가 왈도한테 내가 맞고 있을 테니 왈도님은 절 지켜봐주세요!! 라고 하기라도 했냐고요!]
[무지개 요정 : 애가 오죽했으면 저놈을 버리고 혼자 마을로 도망을 와요!!]
[오필리아 : 그건 그쪽길드에서 일어난 일이니 왈도하고 율님이 서로 간에 해결할 일이죠!!]
[무지개 요정 : 뭐?!]
[오필리아 : 무지개 요정님 본인 길드에서 일어난 일이잖아요? 근데 왜 저희 블루 비에서 피해를 봐야 하는 건데요?!]
[무지개 요정 : 넴드나 길마나 수준이 피차일반이시구만?]
[오필리아 : 뭐라고요?!]
[무지개 요정 : 그래! 내 길드니까 내가 책임을 져야지!! 그래서 저놈을 추방시켰으니 데리고 꺼져주시라고!!]
[오필리아 : ...]
[왈도 : 난 가기 싫어요~]
[오필리아 : ?!]
[무지개 요정 : 뭐야?]
[왈도 : 난 율님이 상당히 맘에 들었거든요~ 스페라무스도 꼭! 받아보고 싶고♡]
[도련 : 뭔 똥고집이야?]
[세츠나 : 뭐 저런..]
[질풍 : 미친...]
[무지개 요정 : 율아!!! 써줘!! 그냥 써주고 꺼지라고 해!!!]
[율 : ..싫어요.]
[무지개 요정 : ?!!?]
[세츠나 : ???]
[도련 : 헐?]
[질풍 : 헉??]
[노아 : 율님?]
[율 : 왈도님만 고집부리실 수 있는 거 아니에요.. 저도 싫어요.]
[오필리아 : 하! 그쪽도 길마님이나 율님이나 수준 알만한데요?]
[무지개 요정 : 우...]
[오필리아 : ??]
[무지개 요정 : 우쭈쭈 내 새끼!!! 짜란다 짜란다!!!]
[오필리아 : ?!]
[질풍 : 율ㅋㅋㅋ님ㅋㅋㅋㅋㅋ]
[도련 : 최고닼ㅋㅋㅋㅋㅋㅋ]
[세츠나 : 길마님은 뭐얔ㅋㅋㅋㅋㅋ]
[노아 : 미치겠네ㅋㅋㅋㅋㅋㅋ]
율의 한마디에 축제라도 난 듯 소란을 피워대는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을 바라보던 오필리아는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왈도가 고집을 부린다고, 저도 똑같이 고집을 부리겠다는 철없는 행동에 왜 저렇게까지 호응과 환호를 해주느냔 말이다.
[오필리아 :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이게 그렇게 신나할 일이에요?]
[무지개 요정 : 길드창립이래 제일 신나는데?]
[오필리아 : 레인보우 힐에서도 이 문제는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 것 같네요 그러니까 예정대로 스왑은 계속 진행하죠]
[무지개 요정 : 누구 맘대로!]
[노아 : 그럼 이렇게 하죠]
[무지개 요정 : ?]
[오필리아 : ?]
[노아 : 왈도님을 블루 비에서 영구 제명해주시면 제가 블루비로의 이적을 생각해보도록 할게요]
[무지개 요정 : ??]
[왈도 : ...뭐?]
[오필리아 : 블루비로 이적을 바로 하는 게 아니라... 생각을 해 주신다구요?]
[노아 : 네]
[오필리아 : 그건 저희한테 너무 불공평한 거 아닌가요?]
[노아 : 뭐가요?]
[오필리아 : 노아님이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데 저희는 무조건 넴드 한명을 잃어야 하는 거잖아요]
[노아 : 지금 사태를 보세요 그 정도 손해는 감수하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니면 그냥 평생 저치나 끌어안고 사시던가요]
[오필리아 : ...]
[노아 : 싫으신가요?]
[오필리아 : 바로 결정할 수 없는 문제인 것 같은데요...]
[노아 : 그럼 관두세요]
[오필리아 : ??]
노아는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말을 끝내고, 바로 블루 비를 탈퇴했다. 그리고 신속하게 리스까지 하고 나자, 아이디 앞에 붙어 있던 블루 비의 엠블럼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난 뒤였다.
[노아 : 길마님 길드주세요]
그리고 유유자적 레인보우 힐로 돌아가는 노아를 보던 오필리아는 황당함을 넘어서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오필리아 : 자를게요!!! 왈도 자를테니까!!]
[노아 : ??]
[왈도 : 누님?!!?!?!]
[오필리아 : 그러니까...블루 비에 남아서 길드이전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해 주시면..]
[노아 : 싫은데요?]
노아의 대답과 동시에 노아의 아이디 앞에 레인보우 힐의 엠블럼이 새겨졌다.
[오필리아 : 이게 뭐하시는 거예요!]
[노아 : 왜요?]
[오필리아 : 생각해주신다고 하셨잖아요!!! 일방적으로 이러시는 건 아니죠!]
[노아 : 그래서 생각해보고 싫다고 한 거잖아요?]
[오필리아 : 어디가 생각을 해보신거...게다가!!스왑의 기간은 일주일이 아닌가요?!]
[노아 : 제가 처음 스왑을 갔을 때 정해진 기간을 채워야 한다는 약속은 없었던 것 같은데요.]
[오필리아 : ...]
[노아 : 문제될 거 없으니 저 물건 데리고 사라져주시죠]
[노아 : 그리고 그쪽 보조 스타일 저랑 안 맞아요]
[오필리아 : 하? 그건 서로 간에 조율해서 맞춰갈 일이죠!!]
[노아 : 그쪽한텐 맞추고 싶지 않네요]
[오필리아 : 정말..웃기지도 않아 꼴에 히든 클래스라고 뻗대는 건가요?]
[노아 : 네 뻗대는 거 맞아요 히든은 히든이랑 놀 테니 오필리아님도 그쪽 수준에 맞는 왈도랑 노시죠]
[오필리아 : .... 상종 못할 길드 같으니.. 듣보잡 길드가 히든 두어 명 얻었다고 기고만장해서는...]
[노아 : 그 히든 두어 명 얻었다고 기고만장한 듣보잡 길드보다 못한 게 블루 비 인건 알죠? 억울하면 히든 두어 명 얻어서 오죠?]
[오필리아 : ...]
[오필리아 : 가자! 왈도]
노아의 말에 반박할 거리가 없어진 오필리아는 왈도를 부르며 성큼성큼 걸어 주막을 나섰다. 하지만 왈도는 오필리아의 부름에도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왈도 : 에잉? 싫어요~]
[오필리아 : 닥치고 당장 못 와?!]
왈도의 어울리지 않는 투정에 오필리아가 소리를 지르듯 얘기했고 왈도는 우물쭈물 오필리아의 뒤를 따라나섰다.
[왈도 : ㅠㅠㅠㅠㅠ]
[왈도 : 율님...우리는 흡사 로미오와 줄리엣ㅠㅠㅠㅠ]
[노아 : 미친]
[무지개 요정 : 염병하네]
[도련 : 마지막까지 지랄이네?]
[세츠나 : 놀구있네 선녀와 나무꾼이지]
[질풍 : 그럼 날개옷은 노아 형이야?ㅋㅋㅋ]
블루 비와의 한바탕 소란이 물러가고, 쉼터에 남은 그들 사이로 율의 채팅이 올라왔다.
[율 : 죄송해요...]
[도련 : ??]
[노아 : 뭐가요?]
[무지개 요정 : ?]
[세츠나 : ?]
[질풍 : ??]
[율 : 그냥 제가 참았으면 끝날 일이었잖아요]
[노아 : 왜 참아요?]
[율 : 네?]
[노아 : 참지 마요 율님이 참을 필요 없어요 싫은 일을 하기 싫은 건 누구나 마찬가지에요 여기 있는 누구하나 율님 탓하는 사람 없어요]
[무지개 요정 : 노아 말이 맞아 하기 싫은 건 하기 싫다고 해도 돼]
[도련 : 오늘 아주 속 시원했어요]
[세츠나 : 잘 했어요 ㅋㅋㅋ]
[질풍 : 박수쳐!!]
블루 비와의 일이 있고, 다음 날 노아의 접속 시간에 맞춰 발키리 길드가 쉼터로 찾아왔다. 블루 비 다음으로 스왑을 하기로 한 길드였다.
[사탄수수 : 블루 비와의 일은 들었어요]
[노아 : 그래서요?]
[사탄수수 : 저희는 무조건 블루 비보다는 좋은 지원과 대우를 해드리겠다고 장담할 수 있어요]
[노아 : 관심 없어요]
[사탄수수 : ...그러니까 저희 쪽 조건도 한 가지만 지켜주세요]
[노아 : 뭔데요?]
[사탄수수 : 스왑의 기간인 일주일이요]
[노아 : 쯧...]
[노아 : 저희도 조건이 있습니다]
[사탄수수 : 네?]
[노아 : 발키리에서 보내는 넴드는 받지 않기로 했어요 스왑이지만 저만 갑니다]
[사탄수수 : 음...그러죠 뭐.저희는 노아님만 모실 수 있으면 충분하니까]
[사탄수수 : 자 그럼 길드 옮겨주세요!]
[길드원 세츠나님이 접속하였습니다.]
[노아 : 하이]
[율 : 안녕하세요]
[세츠나 : 헬로~]
막 접속해 들어오는 세츠나와 인사를 나누고, 레인보우 힐을 길탈한 노아가 발키리 길드에 가입했다. 노아의 아이디 앞에 레인보우 힐의 엠블럼 말고 다른 길드의 엠블럼이 달리는 걸 바라보던 율은 왠지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사탄수수 : 역시 히든도 스킬 말고 직업이 좋네요!]
[노아 : ?]
[율 : ?]
[세츠나 : ??]
[사탄수수 : ^^?]
[세츠나 :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린가요?]
[사탄수수 : 그럴 리가요~^^]
[세츠나 : 기분이 더러운데?]
[사탄수수 : ㅎㅎ 왜 그러실까? 자 노아님! 이제 저희 쉼터로 가시죠]
***
노아가 발키리 길드로 스왑을 간 지 하루째, 평화롭기만 한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은 이른 오후, 쉼터로 씩씩거리며 들어오는 노아를 보고, 다들 어리둥절했다. 별말 없이 율의 옆에 앉은 노아를 졸졸 따라 들어온 궁기가 율의 뒤에 앉아 율의 머리 위에 제 머리를 얹고, 하품을 쩍 했다. 그런 궁기의 행동을 지켜보던 무지개 요정이 넌지시 노아에게 물었다.
[무지개 요정 : 웬일이야?]
[노아 : 도저히 발키리 프리들하고 사냥을 못하겠어요]
[율 : 무슨 일 있으셨어요?]
[노아 : 사냥한 지 한 시간 만에 율님이 줬던 만나 3개를 다 썼어요. 이걸로 설명되나요?]
[율 : 네??]
[무지개 요정 : 그걸 한 시간 만에 다 썼다고?!]
[노아 : 네 만나 없이 그 사람들이랑 사냥하려면 전 하루에 골백번은 더 죽을 것 같아요]
[율 : 오늘은 더 만들어 드릴 수가 없는데...]
[노아 : 알아요 만나 다 쓰고 오 분도 안 돼서 절 기어코 눕히더라고요 짜증이 나서 오늘은 사냥 접는다고 하고 온 거예요]
[질풍 : 어이구...]
[노아 : 게다가 꼴마초들만 모였는지 말 섞기도 혐오스러울 때가 많아요 같은 쉼터에 있는 것도 고문이에요]
[KING Husband : 저런...]
[노아 : 아...율님 보조가 그립네요]
[율 : 저도 해드리고 싶어요...]
[무지개 요정 : ㅋㅋㅋ 로미오와 줄리엣은 너희 둘 같다]
한참을 주막에 앉아서 무지개 요정, 율과 수다를 떨던 노아는 발키리 길드에서 자길 찾는다며 귀찮다는 내색을 잔뜩 드러내곤 글록시니아로 가버렸다. 그리고 왠지 의욕이 저하된 율도 사냥을 가지 않고, 쉼터에 앉아서 길드원들과 수다만 떨다가 늦은 시간이 돼서야 게임을 끌 준비를 했다.
[길드] [율 : 저는 이만 자러가 볼게요]
[길드] [KING Husband : 낼봐용~]
[길드] [질풍 : ㅂ2ㅂ2]
[길드] [무지개 요정 : 우리 율이~ 코야코야 하러가니~]
[길드] [율 : 네?!]
[길드] [츄파 : 으잌ㅋㅋㅋㅋㅋㅋㅋ]
[길드] [니지 : 코야코얔ㅋㅋㅋㅋㅋㅋㅋ]
[길드] [도련 : 뭐 애 키워요?]
[길드] [광인한 남자 : 앜ㅋㅋ근뎈ㅋㅋ뭔갘ㅋㅋ어울리긴 한닼ㅋㅋㅋ]
[길드] [율 : ...]
[길드] [세츠나 : 코야코야하고 내일봐요~ㅋㅋ]
[길드] [질풍 : 코야코야 해요~ㅋㅋ]
[길드] [KING Husband : 좋은 꿈꾸는 코야코야해요~ㅋ]
[길드] [무지개 요정 : 늦었다~ 얼른 코야코야해~]
[길드] [율 : ...네]
[길드원 율님이 로그아웃하였습니다.]
노아가 발키리 길드에 간 지 며칠이 지났다. 하지만 매일 아침 만나를 받으러 레인보우 힐 쉼터로 찾아오는 노아 덕분에 얼굴을 마주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평소와 같이 10시에 접속을 해서 노아를 기다리던 율은 10분쯤 지나서 쉼터에 들어오는 노아에게 거래를 걸어 만나를 건네줬다. 율에게 만나를 건네받은 노아는 짧은 인사를 남기고, 바로 쉼터를 벗어나 글록시니아로 향했다.
하지만 노아가 떠난 뒤 30분쯤 지났을 때, 쉼터에 앉아서 질풍을 기다리던 율에게 대뜸 귓속말이 걸려왔다.
[귓속말] [노아. : 율님]
갑작스럽게 노아에게 걸려온 귓속말에 율은 반가운 마음에 대답을 하려 했다. 그런데 걸려온 귓속말이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어디가 이상한 건지 몰라 율은 연신 갸웃거리다 우물쭈물 답을 했다.
[귓속말] [율 : 네?]
[귓속말] [노아. : 나 율님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귓속말] [율 : ?]
[귓속말] [노아. : 나 발키리 길드에서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어요]
[귓속말] [율 : 네??]
[귓속말] [노아. : 그분하고 컴패니언하고 싶네요 율님 계정 좀 팔아주실래요?]
노아의 갑작스러운 요구에 율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당황한 손끝이 키보드 위를 배회했다.
[길드 마스터 무지개 요정님이 접속하였습니다.]
[길드] [무지개 요정 : 하이~]
[길드] [광인한 남자 : 하용~]
[길드] [복세편살 : ㅎ2]
[무지개 요정 : 율~ 형님 왔는데 인사도 안 해주네~?]
[율 : 저기; 길마님..]
[무지개 요정 : 응?]
[율 : 노아님이...]
[무지개 요정 : ??]
율은 떨리는 손끝으로 겨우겨우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무지개 요정의 사자후 같은 채팅이 시작됐다.
[무지개 요정 : 뭐? 뭐가 어째?!]
[율 : ...]
[무지개 요정 : 그거 스샷 찍어서 길드박스에 올려줘 봐]
[율 : 네? 네...]
[길드원 세츠나님이 접속하였습니다.]
[길드] [세츠나 : 헬로우 에브리원~]
[길드 박스에 한 장의 사진이 등록되었습니다.]
[길드] [세츠나 : 뭐예요?]
[길드] [광인한 남자 : 뭐 올린 거예요?]
[길드] [무지개 요정 : 노아가 율이한테 발키리 길드 사람한테 계정을 팔라고 했댄다 그거 대화 캡처해서 올려 달라 그랬어 미심쩍어서 확인 좀 해보려고]
[길드] [광인한 남자 : 뭐라고요?!]
[길드] [세츠나 : 노아오빠 미쳤나?]
무지개 요정의 설명을 들은 길드원들이 길길이 날뛰며 길드 박스에 올려진 사진을 확인하러 갔다. 그리고 다들 폭소를 터트렸다.
[길드] [광인한 남자 : 미친 이거 사칭아냨ㅋㅋㅋ]
[길드] [복세편살 : 점찍은 거 봐라 ㅋㅋㅋ]
[길드] [세츠나 : 민소희구만ㅋㅋㅋㅋ 아니 민노아라고 해야하낰ㅋㅋ]
[길드] [무지개 요정 : 이거 아무리 봐도 발키리 길드 놈들 짓 같은데...]
[길드] [율 : 노아님이..아니에요?]
[길드] [광인한 남자 : 백퍼 아니잖아욬ㅋㅋㅋ]
[길드] [세츠나 : 아낰ㅋㅋ율님ㅋㅋㅋㅋ]
난리가 난 길드원들 사이에서 홀로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율에게 또 한 번 귓속말이 왔다.
[귓속말] [노아. : 율님? 듣고 있어요? 왜 대답이 없어요 발키리 길드에 마야라는 분한테 계정 좀 팔아줘요]
그제야 율의 눈에도 노아라는 아이디 뒤에 찍힌 점 하나가 보였다.
[스크린 샷이 저장되었습니다.]
[길드 박스에 한 장의 사진이 등록되었습니다.]
[길드] [무지개 요정 : 뭐야 또?]
[길드] [복세편살 : ??]
[길드] [광인한 남자 : 으앜ㅋㅋㅋㅋㅋㅋ 아이디까지 지정해줬엌ㅋㅋㅋ]
[길드] [광인한 남자 : ㅋㅋㅋㅋ 우리 이거 인벤에 박제해욬ㅋㅋ]
[길드] [세츠나 : 공개처형?ㅋㅋㅋㅋ]
[길드] [광인한 남자 : 내갘ㅋㅋ인벤에 올리고 올께욬ㅋㅋㅋㅋ]
광인한 남자가 낄낄거리며 인벤에 글을 올리러 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버 채팅으로 해당 게시물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서버] [뀰 : 미친 ㅋㅋㅋㅋ 님드라 인벤에 올라온 글 봄?]
[서버] [RED : 머임?]
[서버] [곰돌이푸 : 발키리길드의 민소희?ㅋㅋㅋㅋㅋㅋ]
[서버] [뀰 : 엌ㅋㅋㅋ그겈ㅋㅋㅋㅋ]
[서버] [RED : 보러감]
[서버] [유노 : 무슨 내용인데요?]
[서버] [곰돌이푸 : 발키리길드 마야라는 사람이 퓨리나이트 노아님 사칭해서 그 컴패니언한테 사기 치는 거 ㅋㅋㅋ]
[서버] [뽀로로 : 나도 그거 봄ㅋㅋㅋ 졸렬의 끝을 달리더만ㅋㅋ]
[서버] [노아 : 무슨 말임?]
[서버] [뀰 : 진짜다!!! 진짜가 나타났다!!]
[서버] [곰돌이푸 : 노아님 인벤가봐요 ㅋㅋㅋ]
[서버] [RED : 미친ㅋㅋㅋㅋ 지금 조회수 천 넘음]
[서버] [브리트니 점례 : 근데 왜 민소희임?]
[서버] [곰돌이푸 : 사칭한 아듸가 노아. 임 ㅋㅋㅋ 점찍고 와서 민소희인듯ㅋㅋㅋ]
[서버] [브리트니 점례 :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 [광인한 남자 : 앜ㅋㅋㅋ노아 형 등판 했엌ㅋㅋㅋㅋ]
[길드] [무지개 요정 : ㅋㅋㅋ일 커진닼ㅋㅋㅋ]
[길드원 질풍님이 접속하였습니다.]
[길드] [질풍 : 굿모닝~]
[길드] [광인한 남자 : 야 좋을 때 왔닼ㅋㅋ]
[길드] [질풍 : ??]
[길드] [광인한 남자 : 인벤에가서 발키리길드의 민소희 보고 왘ㅋㅋ]
[길드] [질풍 : 그게 뭐임?]
[길드] [무지개 요정 : 타나섭 핫 플레이슼ㅋㅋ]
[길드] [질풍 : ? 보고옴]
[길드] [율 : 어? 노아님한테 귓 왔어요]
[길드] [무지개 요정 : 헐? 뭐래?]
[길드] [율 : 쉼터로 오신대요]
노아가 쉼터로 온다는 소식에 사냥터에 나가 있던 길드원들이 모두 쉼터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잔뜩 기대하며 기다리던 길드원들의 눈에 노아가 마야라는 하이 프리스트와 사탄수수를 달고 주막으로 들어오는 게 보였다.
[마야 : 글쎄 제가 한 게 아니라니까요...]
[사탄수수 : 마야가 아니라고 하니까...]
[노아 : 그걸 누가 믿습니까?]
[마야 : 너무 하신 거 아니에요...?]
[노아 : 뭐가요?]
[마야 : 다른 사람들이 다 절 의심해도 노아님은 절 믿어주셔야죠]
[노아 : 왜요?]
[마야 : 그야...우린...]
[무지개 요정 : 우린 뭐?]
말끝을 흘리는 마야의 채팅에 무지개 요정이 궁금하다는 듯 노아에게 되물었다. 노아는 잠시 말이 없다가 머리 위로 /짜증 이모티콘을 띄웠다.
[노아 : 설마 내가 그 제안에 응할 거라고 생각했습니까?]
[마야 : 네?!]
[사탄수수 : 하지만 노아님 별말 없으셨던 게...]
[노아 : 대꾸할 가치가 없으니까 무시한 겁니다 왜 멋대로 긍정으로 받아들여요?]
[사탄수수 : ;;;]
[노아 : 그래서 이 짓을 벌였습니까? 내가 마야님이랑 결혼할 줄 알고?]
[율 : ??]
[무지개 요정 : 헐?]
[도련 : 뭔 소리야?]
[질풍 : 결혼?!]
[세츠나 :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래?]
[노아 : 초반부터 은근히 마야님이랑 붙여놓으려고 하더라고요]
[노아 : 데이트를 하라며 마야님이랑 둘만 사냥을 다녀오라고 하질 않나 그런데 둘이 갔더니 한 시간 만에 만나3개를 몽땅 쓰게 만들고...]
[율 : 아, 그때...]
[노아 : 네]
[노아 : 그 이후에도 툭하면 마야님이랑 잘 어울린다 보기 좋은 한 쌍이다 천생연분이다 라면서 헛소리를 하더니 마야님이랑 결혼해서 발키리에 정착할 생각 없냐고 하더라고요 하도 어이가 없어서 무시했더니 그걸 긍정으로 받아들여서 이 사달을 낸 모양이에요]
[노아 : 괜히 율님만 놀라게 해드려서 미안하네요]
[율 : 아뇨; 놀라긴 했지만 괜찮아요]
[노아 : 그럼 다행이고요]
[무지개 요정 : 그럼 널 붙잡아두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율이 계정도 탐을 냈다는 거네]
[노아 : 네 그러게요]
[마야 : 제가...마음에 안 드셨던..거예요? 처음부터?]
[노아 : 내가 그쪽이 마음에 드나 안 드나 관심을 가져봐야 했습니까?]
[마야 : ;;]
[도련 : .... 완전 아오안이었네]
[세츠나 : 혼자서 김칫국 마신 거네;]
[노아 : 무엇보다 난 발컨 싫습니다]
[질풍 : 핵직구...]
[사탄수수 : ;;;]
[노아 : 솔직히 이 스왑자체가 의미가 없는 일이란 걸 왜 모릅니까?]
[사탄수수 : ?]
[노아 : 나한테 최적화된 스킬을 가진 컴패니언이 있는데 다른 프리들이 눈에나 들어오겠어요?]
[노아 : 다른 프리들이랑 파티를 해봤자 율님이랑 비교만 더 될 뿐이에요]
[사탄수수 : 그러니까...율님이 마야한테 계정을 팔아주면..어떻게든..]
[노아 : 마야님이 율님 계정을 산다고 율님 컨까지 살 수 있습니까?]
[마야 : 네...?]
[노아 : 율님이고 율님이 컨트롤하는 아크비숍이니까 만족하고 있는 겁니다]
[노아 : 글록동맹의 의미도 없는 장단에 맞춰주고 피해를 감수하는 건 나 하나로 충분합니다 율님까지 끌어들이지 마세요 다 엎어버리기 전에]
서슬 퍼런 노아의 기세에 마야와 사탄수수는 말없이 글록시니아로 되돌아갔다. 노아는 스왑을 중단하고 레인보우 힐로 돌아오고 싶어 했지만, 사탄수수가 약속을 지켜달라며 고집을 피우는 통에 어쩔 수 없이 발키리길드에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마야의 모습은 타나 서버에서는 볼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넷카마라는 소문까지 돌기 시작했다. 내부의 고발로 보이는 소문은 꽤 신빙성이 있었고, 인벤에 박제된 민소희 사건까지 겹쳐 해당 아이디로는 게임을 할 수 없게 된 그가 서버 이전을 한 건지, 게임을 접은 건지, 부캐로 활동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 후, 게임 전체적으로 망신을 당한 발키리 길드가 글록 동맹에서 제외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글록 동맹은 중추가 되는 대형 길드가 4개가 있다. 머스킷 티어, 블루 비, 화이트 홀, 그리고 지금은 제외된 발키리. 그중 화이트 홀 길드는 유일하게 레인보우 힐에 접촉을 해오지 않은 길드였다.
[세페우스 : 저희는 노아님 영입이 목표가 아닙니다]
[무지개 요정 : 그럼요?]
[세페우스 : 저희는 지금 길드체제로도 충분히 만족하거든요 히든스킬 보유자도 두엇 있고... 근데 애들이 히든 클래스랑 인맥을 맺고 싶다고 해서요ㅋㅋ]
[노아 : ?]
[세페우스 : 그냥 오셔서 친목을 좀 쌓아주시면 좋겠습니다ㅋㅋ]
[무지개 요정 : 허허...]
[세페우스 : 그리고 저희 쪽 넴드도 잘 부탁드려요]
[무지개 요정 : 죄송하지만 넴드는 받지 않겠습니다]
[세페우스 : 아ㅠㅠㅠ안돼요ㅠ 저희 쪽 길드원 하나가 레인보우 힐 길드원 중에 꼭 만나 뵙고 싶다던 분이 계세요]
[무지개 요정 : ?]
[길드] [집사 : 안녕하세요, 도련님. 꼭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길드] [도련 : ?!]
[길드] [KING Husband : 뭐얔ㅋㅋㅋㅋ]
[길드] [질풍 : 미쳤엌ㅋㅋㅋ]
[길드] [니지 : 케미봨ㅋㅋㅋ]
[길드] [집사 : 도련님의 친구분들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길드] [집사 : 열과 정성을 다하는 레인보우 힐의 집사가 되겠습니다.]
[길드] [도련 : 헐...]
[길드] [집사 : 도련님 지금 어디 계신지요? 직접 만나 뵙고 싶습니다.]
[길드] [도련 : 안 오셔도 됩니다;]
[길드] [집사 : ...슬픕니다.]
[길드] [집사 : 제가, 도련님을 모시기엔 부족한 사람인가 봅니다...]
[길드] [도련 : 아니;]
[길드] [무지개 요정 : 좀 받아줘랔ㅋㅋ]
[길드] [질풍 : 두 분이 같이 다니면 시너지 효과가 두 배!]
길드는 떠들썩하기만 한데, 쉼터에 앉아 있는 율은 왠지 외롭다는 생각을 했다. 노아의 스왑 때문인지 글록 동맹에서도 더는 자신을 괴롭히지 않았고, 그 때문에 질풍도 자신과 붙어 있는 일이 줄었다. 노아도 아침에 잠깐 봤을 뿐이었다.
각자 사냥도 해야 하고, 아이템 파밍도 해야 할 테고, 노가다도 해야 하는 사람들인지라 언제까지 저한테만 붙어 있을 수는 없다는 걸 율도 잘 알고 있었다. 이럴 때는 솔플을 할 수 없는 자신의 직업이 조금은 원망스러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홀로 쉼터에 앉아 있던 율은 자리에서 일어나 쉼터를 벗어났다. 계속 혼자 생각만 하고 있다가는 땅굴을 파고 들어갈 것만 같았다. 그냥, 노아가 보고 싶었다.
노아가 보고 싶다는 생각에 율은 무턱대고 글록시니아로 향했지만, 화이트홀이 글록시니아 어디에 쉼터를 두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여기저기 다니다가 중앙거리의 즐비한 장사진들의 가판대에 올라온 물품들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훌쩍 시간이 지나버렸다. 그렇게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돌아다니던 율의 눈에 중앙거리의 끝자락의 왼편 골목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화이트 홀 길드원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중엔 노아가 있었다. 우연히 발견하게 되어 반가운 마음에 노아에게 가려던 율은 문득 그의 주변을 보게 되었다. 등 뒤를 감싸듯 누워 있는 궁기와 그 궁기에 기대듯 앉아 있는 노아가 화이트홀 길드원들과 즐거운 듯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왠지 노아가 낯설게 느껴졌다. 처음 발견했을 때 느꼈던 반가움은 온데간데없었다. 말을 시켜보면 자신을 반겨줄까? 혹, 방해가 되지 않을까? 왜 찾아왔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 아니, 애초에 자신은 왜 노아가 보고 싶었던 걸까?
끊이지 않는 생각 속을 유영하며 멍하니 노아를 바라보고 있는데, 길드원들과 수다를 떨던 노아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중앙거리로 나왔다. 놀란 율이 무심결에 옆에 있던 한 가판대 옆으로 숨었고, 노아는 그대로 중앙거리를 내려가 사라져 갔다.
이미 인파 속에 파묻혀 흔적도 보이지 않는 노아의 자취를 쫓던 율은 왠지 모르게 침전되는 기분에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얼마나 서 있었을까? 길었을 수도 있고, 짧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감각을 깨부수는 귓속말 알림음에 율은 눈을 들었다.
[귓속말] [노아 : 어디에요?]
노아의 부름에 부랴부랴 쉼터로 향한 율은 주막의 입구에서 노아를 포함해, 무지개 요정과 왕광풍이 있는 걸 보고 어리둥절해하며 주막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런 율의 모습을 발견한 길드원들이 하나같이 성화를 부리며 다가왔다.
[노아 : 어디 갔었어요?]
[율 : 네?]
[무지개 요정 : 쉼터에 있는 줄 알았는데 쉼터에도 없고 불러도 대답도 안 하고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질풍 : 혹시 노아 형한테 갔나 싶어서 물어봤는데 노아 형도 모른다고 그러고!]
[광인한 남자 : 또 먼일 생긴 줄 알고 얼마나 놀랐는데요]
[율 : 아...]
[율 : 글록시니아에서 가판대 구경하고 있었어요; 거기에 정신이 팔려있어서 부르신 줄 몰랐어요...]
[무지개 요정 : ...]
[질풍 : ...]
[KING Husband : 암튼...별일 없다니 다행이네요]
[율 : 죄송해요..]
쭈뼛쭈뼛 사과하는 율의 모습에 모두 긴장했던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 자신들이 하던 일을 마저 하러 뿔뿔이 흩어졌다. 텅 비어버린 쉼터에 노아와 둘만 남아버린 율이 이상하게 긴장을 하는 사이, 노아가 평상 한쪽에 앉으며 물었다.
[노아 : 글록시니아 까지 왔으면, 나도 좀 보러 오지 그랬어요?]
[율 : 네?]
[노아 : ?]
[율 : 아...지나가다 보긴 했는데...말을 걸면 방해가 될까 싶어서요]
[노아 : 방해가 왜 돼요?]
[율 : 그럼..말 걸어도 괜찮아요?]
[노아 : 괜찮아요 다음부턴 모른척하지 말고 말 좀 걸어줘요]
[율 : 아...네ㅋㅋㅋ]
[율 : 저 그 길드는 어떠세요?]
[노아 : 화이트홀이요? 앞선 길드들보단 낫네요]
[노아 : 사냥을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앉아서 수다만 떨어도 다들 좋아하더라고요]
[율 : 아]
[노아 : 그래서 내일부턴 앙그르재료 팔던 거 마저 하려고요]
[율 : 그럼 사냥은 안 가시는 거예요?]
[노아 : 네 당분간 만나는 안 만들어 주셔도 될 것 같아요]
[율 : 네..]
***
[질풍 : 율님 이거 진짜 좋은 템이라니까요?]
[광인한 남자 : 나름 중상급인데!]
[율 : 그래도요...]
[KING Husband : 쓰면 이뻐요~ 율님도 이쁠꺼에요~]
[율 : 그거...수녀님들이 쓰는 거잖아요]
[질풍 : 그렇긴 한데...]
[광인한 남자 : 그래도 남녀 공용 템이에요!]
왕광풍은 사냥 중에 먹은 ‘코이프’라는 투구를 율에게 입히려고 수를 쓰고 있었다. 남녀공용 아이템이긴 하지만 보통 여성 유저들이 사용하는 아이템이라서, 우선 입혀 놓고 놀릴 참이었는데, 율이 생각 외로 우직하게 버티고 있어서 애를 먹고 있었다.
[광인한 남자 : 이게 제련도만 높이면 지금 율님이 쓰고 있는 비레타보다 좋다니까요?]
[율 : 비레타...세츠님이 주신 건데]
[질풍 : 이거 드랍율이 극악이라서 구하기 힘든 거예요!]
[KING Husband : 하지만 드랍율에 비해 실속이 없긴 하죠!]
[율 : 네?]
[광인한 남자 : 야 이 미친!!]
[KING Husband : 헐 취소]
[광인한 남자 : 아무튼! 이거 구하기 힘든 템이에요! 율님한테 선물로 주려는 건데 한번만 써 봐요? 네?]
[질풍 : 율님이 필요 없다고 하시면 내다 팔 거예요!]
[율 : 네...]
[질풍 : 팔 거라니깐요?]
[율 : ...]
[질풍 : ...팔아요?]
[율 : 네]
[질풍 : 이씨...]
끈질기게 붙잡고 늘어지는 세 명을 가까스로 떼어내고, 율은 도망치듯 글록시니아로 향했다. 후다닥 멀어지는 율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왕광풍은 아깝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왕광풍을 피해 글록시니아로 도망 온 율은 쫓아오지 않는 세 사람에 안심하며 중앙거리로 향했다. 요즘 들어 가판대 구경에 맛을 들인 율이었다. 자신이 구해야 할 아이템의 시세도 알아보고, 예쁜 의상 아이템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의상 아이템 중엔 갖고 싶을 정도로 맘에 쏙 드는 것들도 있었지만, 탐내기엔 시세가 터무니없이 높거나 해서, 율은 그냥 욕심 없이 구경하는 데에만 의의를 두기로 했다.
그렇게 여기저기, 이 가판대, 저 가판대를 기웃거리며 돌아다니길 한참. 즐비한 가판대와 상인들 틈에서 채팅방을 띄워놓고 앉아 있는 익숙한 인영이 눈에 들어왔다.
반가운 마음에 근처로 다가가 앉았지만, 선뜻 채팅방으로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정말 방해가 될 수도 있는 거니까. 그냥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가 만난 게 반가워서, 잠시 근처에 앉아 있다가 일어날 요량이었는데, 귓속말 알림음이 울렸다.
[귓속말] [노아 : 율님 채팅방 들어와요]
[채팅방에 율님이 입장하였습니다.]
[노아 : 모른 척하지 말고 말 걸어달라고 했잖아요]
[율 : 아뇨 모른 척 하려던 게 아닌데..]
[율 : 재료 파시는데 방해될까봐..]
[노아 : 방해 안 된다니까요 ㅋㅋ]
[율 : 아...]
[노아 : 근데 글록엔 어쩐 일이에요? 뭐 살 거 있나요?]
[율 : 아뇨 풍님들이 이상한 투구를 자꾸 준다고 하셔서..도망 왔어요.]
[노아 : 이상한 투구요?]
[율 : 네 코이프? 라고 하던데]
[노아 : 아 ㅋㅋㅋㅋ]
[노아 : 많이 쓰지는 않지만 초반 템으로는 그다지 나쁘진 않을 텐데 왜 거절했어요?]
[율 : 수녀님들이 쓰는 거잖아요...]
[노아 : 어차피 남녀공용 템이잖아요?]
[율 : 그래도요...]
[노아 : ㅋㅋㅋ왈도 때도 그렇고 이상한데서 고집이 있네요 ㅋㅋㅋ]
[율 : 네?!...죄송해요]
[노아 : 아니 나무라는 거 아니에요 재밌어서 그래요 ㅋㅋㅋ]
[율 : 재밌..]
[노아 : 그래서 그 코이프는 어쩌기로 했어요?]
[율 : 풍님이 파신다고 했어요]
[노아 : 그래요?]
[율 : 네]
[노아 : 잘 나오는 템도 아니고 시세가 비싼 것도 아닌데 그냥 쓰지... 어?]
[율 : ???]
[노아 : 저기 왈도네요]
[율 : 네?!]
대화 중에 노아의 반응이 이상하다 했더니, 인파 속에 섞여 있는 왈도를 발견했던 모양이었다. 노아의 말에 율도 서둘러 중앙거리를 바라보자, 멀리서 가판대를 구경하는지 느릿느릿 걸어오던 왈도가, 자신들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리더니 빠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노아 : 쯧..]
[채팅방을 비공개로 전환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두 사람이 있는 채팅방이 비공개되었다. 눈앞에서 입장이 저지된 왈도는 두 사람의 지척까지 다가와 바닥에 엎드린 채 좌절하는 모션을 했다. 그리고 율의 옆에 앉아 한참을 /엉엉 이모티콘을 띄우다 사라졌다.
[노아 : 여전히 블루 비에 붙어있네요 저거]
[율 : 그러게요..]
[노아 : 면전에서 자르겠다는 말을 들었는데도 벨도 없는 놈인가]
[율 : ㅋㅋ]
그 이후로 두 사람은 한참을 대화를 이어갔다. 노아가 화이트 홀에서 있었던 일이나, 율이 레인보우 힐에서 있었던 일.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얘기들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는 와중에 노아의 채팅방엔 그 누구도 들어오지 않았다. 사실, 들어올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채팅방은 여전히 비공개인 상태였으니까. 이런저런 이야기로 해가 지고, 달이 뜨고, 자정이 넘어가자 율은 슬슬 눈이 감겨왔다.
[율 : 노아님 저 이만 자러 가야 할 것 같아요]
쉴 새 없이 대화를 이어가던 노아가 율의 말에 답이 없었다. 졸린 눈을 비비던 율은 갑자기 침묵하는 노아의 행동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 번 더 그를 불렀다.
[율 : 노아님?]
[노아 : 코야코야 하러가나요??]
[율 : 네?!]
[노아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율 : 어..어...]
[노아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율 : 어떻게....아셨어요? 어디서 들으셨어요 ㅠㅠㅠㅠ]
[노아 : ㅋㅋㅋㅋㅋ길마님이랑ㅋㅋㅋㅋ풍이 한텤ㅋㅋㅋㅋㅋ]
[율 : 아...]
[율 : 이씨...]
[노아 : ?!]
[노아 : 화내시는 거예요?]
[율 : 네?! 아....니요...]
[노아 : 아나ㅋㅋㅋㅋ 진짜 미치겠넼ㅋㅋㅋ]
[율 : ...]
[노아 : ㅋㅋㅋㅋ잘 자고 내일봐요 ㅋㅋㅋ]
[율 : 네..노아님도 주무세요..]
[노아 : 그럴게요 ㅋㅋㅋㅋ]
[채팅방에서 율님이 퇴장하였습니다.]
[컴패니언 율님이 로그하웃하였습니다.]
***
수요일. 업데이트 때문에 게임의 오픈이 늦어진다는 걸 통달한 율은 아예 평소보다 조금 더 여유롭게 접속을 했다. 그리고 접속한 쉼터에서 평상 하나를 통째로 차지하고, 벌러덩 드러누워 코를 골고 자는 궁기를 보았다.
궁기의 모습을 잠시 넋을 잃고 바라보던 율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쉼터를 두리번거렸다. 궁기가 있다는 건 노아가 쉼터에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노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아, 의아한 마음에 노아에게 귓을 했다.
[귓속말] [율 : 노아님]
[귓속말] [노아 : 왔어요? 오늘은 좀 늦었네요?]
[귓속말] [율 : 네 저...어디세요?]
[귓속말] [노아 : 글록인데 왜요? 쉼터 갈까요?]
[귓속말] [율 : 아뇨 저기.. 궁기가 쉼터에 혼자 있길래요]
[귓속말] [노아 : 쉼터에요? 어딜 갔나 했더니...왜 거길..]
[귓속말] [율 : ㅋㅋㅋ 혼자서도 다니고 신기하네요]
[귓속말] [노아 : 그러게요 분명 AI일 텐데]
[귓속말] [노아 : 참 율님 오늘 업뎃된 투구들 봤어요?]
[귓속말] [율 : 네? 아니요]
[귓속말] [노아 : ㅋㅋㅋ 아마 왕광풍이가 상당히 난리를 칠 것 같아요]
[귓속말] [율 : 네??]
[귓속말] [노아 : ㅋㅋㅋㅋㅋㅋㅋ]
[질풍 : 으허어어럴어어ㅏ얼 율님 미워요!!!!]
[율 : 저기...]
[광인한 남자 : 왜 때문에ㅠㅠㅠ]
[KING Husband : 차라리 하루만 더 늦게 팔았어도!!!!!!]
수요일 업데이트 목록엔 신규 모자들이 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제작형 레어 아이템 중 쥬얼 플룸이라는 투구의 재료가 코이프였던 것이다.
문제는 이 코이프가 실속과 비교하면 드랍율이 낮아서 잘 나오지 않는다는 것과 코이프 자체의 가격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갔다는 것, 그리고 질풍은 어제 코이프를 팔아버렸다는 것이었다.
[질풍 : 아니 평소엔 몇날며칠을 올려놔도 팔리지도 않는 건데!!! 어젠 대체 어떤 시키가 그걸 사갔느냔 말이에요ㅠㅠㅠ]
[광인한 남자 : 누구냐 대체 그 벼락 맞을 운 좋은 놈이!!!]
[KING Husband : 쥬얼 플룸 옵션 보니까 완전 아크비숍 전용 템이더만 ㅠㅠ]
[질풍 : 맞아요ㅠㅠㅠ 기본옵션은 그럭저럭 인데 그리다보르의 지팡이랑 셋트 옵션이 있더라고요ㅠㅠㅠ]
[질풍 : 거기다가 의상 템으로 변환도 가능하고 ㅠㅠㅠ]
[광인한 남자 : 안되겠어!!! 가자!! 다시 한번 코이프를 먹으러! 자 율님도 가는 거예요!!]
[질풍 : 그래요 가요!!!! 억울해서 안 되겠어요!!]
[KING Husband : 코이프 2개먹어서 하나는 쥬얼 플룸 만들고 하나는 팔아서 나눠요!!!]
[율 : 어....]
결국, 왕광풍의 등쌀에 못 이겨, 시간의 탑에 오게 된 율은 던전의 입구부터 드글드글한 유저들에 혀를 내둘렀다. 아마도 모두 코이프를 구하러 온 듯했다. 코이프는 시간의 탑 지상 4층의 타임 듀크라는 몬스터가 낮은 확률로 드랍을 한다.
문제는 지상 4층은 맵이 넓고, 회중시계라는 몬스터가 주류이기 때문에, 비주류인 타임 듀크의 개체 수는 상당히 적다는 거였다. 게다가, 일정한 데미지를 받으면 랜덤한 확률로 텔포를 사용해 도망을 가기 때문에 상당히 까다로운 몬스터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의 탑에서 사냥을 시작하고, 한 시간이 지나도록 왕광풍과 율은 단 한 마리의 타임 듀크도 잡아보지 못했다. 개체 수보다 너무 많은 인원이 몰린 탓에 여기저기서 타임 듀크 한 마리를 두고 파티 간에 언쟁이 벌어지거나, 스틸이 횡행하기 시작하더니, 종국엔 길드 간의 세력 전으로까지 번져버렸다.
결국, 난장판이 된 시간의 탑에서 계속 사냥을 할 수 없어진 네 사람은 조용히 다시 쉼터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쉼터에 돌아와서는 억울함에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는 세 명에게서 괜한 불똥이 튈까 싶어, 율은 냅다 글록시니아로 도망을 쳤다. 중앙거리에서 가판대를 구경하며 은근히 노아를 찾아 헤매던 율은 중앙거리에서도, 화이트홀의 쉼터에서도 노아를 발견하지 못했다.
왠지 수많은 사람이 배회하는 거리 한가운데인데도 혼자 있다는 느낌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그렇게 그날 하루는 오전에 잠깐 귓속말로 대화를 나눈 것 빼고는 노아를 볼 수 없었다.
화이트 홀과의 스왑이 끝나는 날, 율은 쉼터에 앉아 노아를 기다렸다. 하지만 기대했던 마음도 잠시, 노아의 소식을 전해오는 무지개 요정의 말에 율은 가슴 한쪽이 답답해지는 걸 느꼈다.
[길드] [무지개 요정 : 노아 거기서 바로 머스킷으로 넘어간대]
[길드] [도련 : 우리길드 안 들렀다 간대요???]
[길드] [무지개 요정 : 응 머스킷에서 데리러 와서 막무가내인가 봐]
[길드] [광인한 남자 : 노아 형이 어디 도망이라도 가나? 뭐가 그렇게 조급해서 몰아붙이고 난리래...]
[길드] [율 : 그러게요...]
[길드] [질풍 : 우리 노아 형인데..]
[길드] [KING Husband : 중간에 잠깐 들렀다 가는 수준이긴 해도 안 온다니까 되게 서운하네]
[길드] [무지개 요정 : 우리가 백날 왈가왈부해도 그렇게 하기로 결정한 건 노아니까 군소리들 말자]
꼭 아침 조회 같던 무지개 요정의 소식 전달이 끝나고, 율은 사냥을 가자는 왕광풍의 권유도 의욕이 나지 않아 거절했다. 그리고 망연자실 쉼터에 앉아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혹여나 노아가 쉼터에 찾아오지 않을까 싶은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은근했던 바람이 무색하도록 노아는 율을 찾아오지 않았다.
[길드원 집사님이 접속하였습니다.]
[길드] [집사 : 좋은 아침입니다.]
[길드] [무지개 요정 : ㅎ2]
[길드] [질풍 : 하용]
[길드] [율 : 안녕하세요]
[길드] [광인한 남자 : 집사님 오늘이 마지막이네요]
[길드] [도련 : 즐거웠어요]
[길드] [KING Husband : 그래도 자주 만나요 우리]
[길드] [질풍 : 무지개 언덕을 기억해줘요]
[길드] [집사 : 저...길마님?]
[길드] [무지개 요정 : ??]
[길드] [집사 : 저...어제 화이트 홀 길마님하고는 얘기가 끝났는데요...]
[길드] [무지개 요정 : ??]
[길드] [집사 : 저...레인보우 힐에 남고 싶습니다.]
[길드] [도련 : ?????]
[길드] [무지개 요정 : 뭣?!]
[길드] [집사 : 도저히...도련님을 두고 갈수가 없습니다ㅠㅠㅠ]
[길드] [도련 : 헐....집사..]
[길드] [집사 : 제가 어떻게 도련님을 두고 홀로 떠난단 말입니까!!!! 도련님!!!도련님!!!ㅠㅠㅠ]
[길드] [도련 : 집사!!!ㅠㅠㅠ]
[길드] [집사 : 도ㅓ렬ㄴㅣㅁ!!!ㅠㅠㅠ]
[길드] [도련 : 집사ㅠㅠㅠㅠ]
[길드] [집사 : 성심을 다해 마지막이 될 그 날까지 모시겠스빈다ㅠㅠㅠㅠ]
[길드] [무지개 요정 : 뭐여...]
[길드] [집사 : 여러분 저는 앞으로도 계속 레인보우 힐의 집사입니다!!!ㅠㅠ]
[길드] [질풍 : 집사님...졸라 감동이에요...]
[길드] [광인한 남자 : 진짜 잘 부탁드려요ㅠ]
[길드] [KING Husband : 엌ㅋㅋㅋㅋㅋ 환영해욬ㅋㅋㅋ]
[길드] [율 : 잘 부탁드려요ㅋㅋ]
[길드] [무지개 요정 : 뭐여....]
집사에 의한 한바탕 소란이 지나가고, 도련님을 봬야겠다며 사냥터까지 쫓아간 집사의 행동을 다들 훈훈함으로 포장해 마무리했다.
[길드원 크로이츠님이 접속하였습니다.]
[크로이츠 : 어? 자기 혼자에요?]
[율 : 안녕하세요]
[크로이츠 : 오늘은 왕광풍님들이랑 사냥 안 가셨나 봐요?]
[율 : 네]
[크로이츠 : 그럼 자기 나랑 사냥 갈래요?]
[율 : 네? 아뇨...죄송해요]
[크로이츠 : 잉ㅠㅠㅠㅠ 나도 자기랑 사냥하고 싶은데;ㅁ;]
[크로이츠 : 혹시 노아님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율 : 네? 그게..저..]
[노아 : 그랬어요?]
크로이츠의 말에 부정도 긍정도 하지 못하고, 버벅거리고 있던 율은 불쑥 끼어 들어온 채팅 하나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시선을 돌리자, 주막의 입구에 들어서는 궁기와 노아가 보였다. 그리고 노아의 아이디 앞에는 머스킷 티어의 엠블럼이 걸려 있었다. 쉼터에 들어온 노아는 크로이츠에겐 신경도 쓰지 않고, 율의 옆에 앉았다.
[노아 : 율님 만나 좀 만들어주세요]
[율 : 네]
노아의 부탁에 율은 일어나서 스킬을 사용했다. 총 3번의 사용으로 3개의 만나를 만들어낸 율이 노아에게 거래를 걸어 만나를 건네줬다.
[율 : 사냥가시나 봐요?]
[노아 : 사냥이라기보단 노가다?]
[율 : 노가다요?]
[노아 : 네 이번에 업뎃된 투구들 좀 만들려고요]
[율 : 아...]
[노아 : 율님은 오늘 뭐 하나요?]
[율 : 저는 딱히...]
[노아 : 그럼 제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요?]
[율 : ?]
[노아 : 제가 돈 좀 드릴 테니까 저 대신 글록에서 물건 좀 사다 주실래요?]
[율 : 아 네 ㅋㅋ 그럴게요]
[노아 : 좀 넉넉히 드릴 테니까 맘에 드는 의상 템 있으면 사셔도 돼요]
[율 : 네? 아뇨 괜찮아요!]
[노아 : 요즘 의상 템 보려고 글록에 자주 왔던 거 아니었어요? ㅋㅋ]
노아의 말에 율의 손이 잠시 멈췄다. 확실히 가판대를 구경하기 위해 글록에 자주 가긴 했지만, 사실은 노아를 보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노아의 물음엔 두 개의 답이 공존하는데, 뭐라고 답해야 할지 율은 결정할 수 없었다.
[율 : 잘 모르겠어요..]
[노아 : 네?]
[율 : 가판대를 구경하려고 자주 갔던 건 맞는데...노아님이 보고 싶어서 간 적도 많거든요.]
[노아 : ?]
생각지도 못한 답에 노아는 의문을 채팅으로 표현하고 말았다.
[율 : ?]
[노아 : 아...뇨 아니에요 아무것도]
[율 : 뭘 사다 드리면 되는 거예요?]
[노아 : 아 세이렌의 눈물방울이랑 시카의 보석심장, 여왕의 보옥상자요]
[율 : 어...다 처음 들어보는...]
[노아 : ㅋㅋㅋㅋ 흔템이 아니긴 한데 제작투구 재료들이라 오늘부터 꽤 풀려 나올 거예요]
[율 : 아...]
말을 끝으로 노아는 율에게 거래를 걸었다. 그리고 율은 노아가 거래로 건네주는 돈을 받아 들고는 기겁을 했다. 게임을 시작하고, 처음 접해보는 액수였다.
[율 : 이렇게 많이..요?]
[노아 : 네 지금 재료들 가격도 어떻게 뛸지 잘 모르겠어서요 우선 넉넉히 드려볼게요]
[율 : 네]
[노아 : 아마 세 가지 다 사고도 남을 테니까 의상 템 맘에 드는 거 있으면 한두 개 정도 사요]
[율 : 정말 괜찮은데...]
[노아 : ㅋㅋㅋ 아무튼 전 그만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율 : 네]
[노아 : 이따 밤에 다시 올게요]
[율 : 밤에 오실 거예요?!]
[노아 : ?]
[노아 : 네]
[율 : 네 ㅋㅋㅋ]
[노아 : ㅋㅋㅋㅋ 갈게요]
[율 : 네 ㅋㅋㅋ]
밤에 다시 올 거란 노아의 말에 한껏 들떠서 대답하는 율을 두고, 노아는 쉼터를 벗어났다. 멀어져 가는 노아의 모습에 멀뚱히 앉아서 두 사람을 지켜보던 크로이츠가 율에게 다가왔다.
[크로이츠 : 노아님이 얼마를 주신 거예요?]
[율 : 많이요]
[크로이츠 : 아...많이...]
[율 : 저는 노아님이 부탁하신 거 사러 글록갈게요]
[크로이츠 : 네? 네..]
글록시니아에 도착한 율은 중앙거리로 향했다. 그리고 중앙거리의 시작 부분부터 끝부분까지 차근차근 걸으며, 열려 있는 모든 가판대를 뒤져보고 다녔다. 하지만 한 바퀴를 다 돌아도 노아가 말한 재료들을 파는 가판대는 없었다. 하지만 가판대는 수시로 물건이 추가되기도 하고, 가판대 자체가 추가로 열리는 경우도 많아서 율은 쉬지 않고 중앙거리를 오르내렸다.
한 시간째, 중앙거리를 돌아다녀도 노아가 말한 재료를 파는 가판대는 생기지 않았다. 율은 차라리 채팅방을 열어서 재료를 산다고 써 놔볼까도 했지만, 재료들의 시세를 알 수 없어 섣불리 시도할 수가 없었다. 그러는 와중에 심심치 않게 보이는 한 의상 아이템이 자꾸만 율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료스알프의 귀라는, 투구 중단에 장착하는 의상 아이템이었다. 만화나 영화에서 보던 엘프들의 뾰족한 귀처럼 만들어주는 아이템인 듯했다. 게다가 꽤 흔한 아이템인지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았다.
[길드] [율 : 저기...저 궁금한 거 있는데요..]
[길드] [도련 : ?]
[길드] [무지개 요정 : 뭐~?]
[길드] [율 : 그..의상 템 중에요 료스알프의 귀라는 거 괜찮나요?]
[길드] [질풍 : 오~ 사려고요?]
[길드] [율 : 네? 아니...그냥..]
[길드] [아네미아 : 그런데 쓸 돈이 있으면 장비나 맞추지 그래요?]
[길드] [세츠나 : 네가 맞춰줄 거 아니면 고나리 하지 말지?]
[길드] [니지 : 그거 예쁘긴 한데 유행 지난 템이라 별로일 거예요~]
[길드] [광인한 남자 : 율님한테는 그거 보다 발그레가 더 어울릴 듯?ㅋㅋㅋㅋ]
[길드] [KING Husband : 헐ㅋㅋㅋ 진짴ㅋㅋㅋ]
[길드] [율 : 발그레요?]
[길드] [무지개 요정 : 엌ㅋㅋㅋ 그래 발그레가 더 잘 어울리겠다]
[길드] [츄파 : 발그렠ㅋㅋㅋ 찰떡이넼ㅋ]
왁자지껄한 길드 창을 뒤로하고, 율은 천천히 중앙거리를 뒤졌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한 가판대에 올라와 있는 발그레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냥, 분홍색 동그라미 두 개가 있는 투구 중단 의상 아이템이었다. 그런데 가격은 료스알프의 귀 2배 정도 되었다. 율은 해당 가판대 앞에서 또 한참 동안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이내, 단념한 듯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귓속말 알림음이 울렸다.
[귓속말] [노아 : 율님]
[귓속말] [율 : 네?]
[귓속말] [노아 : 발그레 갖고 싶으시다면 서요?]
[귓속말] [율 : ?????]
[귓속말] [노아 : 길드원들이 귓말로 알려 줬어요 ㅋㅋㅋ]
[귓속말] [율 : 아...]
[귓속말] [노아 : 더 좋고 예쁜 거 많을 텐데 왜 발그레에요?]
[귓속말] [율 : ..제가 고른 게 아니고...길드원분들이 저한테 어울릴 것 같다고..]
[귓속말] [노아 : ?]
[귓속말] [노아 : ㅋㅋㅋㅋㅋㅋ어울릴 것 같긴 하네요ㅋㅋ]
[귓속말] [노아 : 하나사요 ㅋㅋㅋㅋ]
[귓속말] [율 : 네? 그치만...]
[귓속말] [노아 : 그다지 비싼 게 아니라서 좀 유감이긴 한데...율님한테 잘 어울릴 것 같으니까 우선 하나 사죠 ㅋㅋ]
[귓속말] [율 : ...정말 사도 돼요?]
[귓속말] [노아 : 괜찮아요 꼭 사요]
[귓속말] [율 : 네..]
노아와 귓속말을 끝내고, 율은 발그레를 팔고 있는 가판대를 클릭했다. 가판대에 올라와 있는 많은 물품의 목록이 펼쳐졌고, 그 중 발그레를 선택해 구매했다. 그리고 떨리는 마음으로 소지 창을 열어 발그레를 장착했다.
“힉.”
절로 새된 소리가 튀어나왔다. 자신의 캐릭터 얼굴이 사춘기 소년처럼 붉게 홍조가 들어 있었다.
발그레를 사고 난 후, 충격으로 잠시 무력감에 빠져 있던 율은 곧, 삐걱삐걱 좀비처럼 움직여 중앙거리를 휩쓸고 다녔다. 노아가 부탁했던 재료들을 사기 위해서였다. 오후 느지막한 시간이 되자, 가판대도 더 많아지고, 채팅방을 띄워놓고 물건을 매매하는 사람들도 부쩍 늘었다. 그리고 그중 하나의 채팅방에서 찾고 있던 재료의 이름을 볼 수 있었다.
<여왕의 보옥상자 팜. 흥정有>
[채팅방에 율님이 입장하였습니다.]
[율 : 안녕하세요]
[향단이 : 안뇽하세요~]
[율 : 보옥상자 얼마에 파시나요?]
[향단이 : 아...지금 시세가 불안정해서 저도 얼마라고 확정 지을 수가 없어서요..]
[향단이 : 먼저 선 제시 해주시고, 서로 조율해보면 안 될까요?]
[율 : 아...그럼 잠시만요]
[향단이 : 넹~]
[귓속말] [율 : 노아님 보옥상자 파시는 분 계시는데 가격 확정을 못 지으시겠다고 저보고 선제시하고 서로 조율을 하자고 하시는데...]
[귓속말] [노아 : 그래요?]
[귓속말] [율 : 네 얼마를 제시해야 할지..]
[귓속말] [노아 : 음...그게 원래는 5000만이거든요. 이번 업데이트로 적어도 가격이 2~3배는 뛰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우선 1.5배로 부르고, 조율하면서 조금씩 올려보세요. 2.5까지는 좀 빠듯해도 괜찮은 정도긴 한데, 만약 3까지 부르면 그냥 사지 마시고요.]
[귓속말] [율 : 그럼...우선 7500만 부르면 되는 건가요?]
[귓속말] [노아 : 네 ㅋㅋㅋ]
[귓속말] [율 : 네]
[율 : 저...7500만이요]
[향단이 : 에이 너무 짜게 부르신다~]
[율 : 아...그럼 향단이님이 제시를..]
[향단이 : 음...저는 무조건 2배 이상 팔 생각이라 서요^^]
[율 : 그럼 1억]
[향단이 : 어....]
[율 : ?]
[향단이 : 콜...?]
[율 : 거래주세요]
[향단이 : 네~]
비교적 어렵지 않게 가격을 책정하고 거래를 끝낸 율은 보고하듯 노아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귓속말] [율 : 노아님 일억에 샀는데 괜찮아요?]
[귓속말] [노아 : 일억이요? 적당하네요 ㅋㅋㅋ 고마워요]
[귓속말] [율 : 네 ㅋㅋ]
[귓속말] [노아 : 율님 8시까지는 쉼터 와주세요]
[귓속말] [율 : 8시요?]
[귓속말] [노아 : 네ㅋ]
[귓속말] [율 : 네]
노아와의 대화를 끝내고, 남은 재료들도 사기 위해 중앙거리를 헤매던 율은 자신을 부르는 반갑지 않은 아이디에 절로 눈살을 찌푸렸다.
[왈도 : 율님이다!!율님~]
자신을 보고 신나서 달려오는 왈도의 모습에 율은 모르는 척, 갈 길을 가려 했으나, 왈도는 흡사 거머리처럼 끈질기게 자신을 부르며 따라붙었다.
[왈도 : 율님~ 여전히 방치플레이?]
[왈도 : 적당히 튕겨야 매력 있어요~]
[왈도 : 율님이 해야 하는 건 밀당이지 철벽이 아니에요~]
[왈도 : 저번에 밀었으니까 이번엔 당겨주지 않을래용?]
[왈도 : 나 대차게 당김당할 수 있는데~]
[왈도 : 율님~ 적당히 안하면 나 저번처럼 또 화내요~]
[왈도 : 우리 사이에 이러기에요~]
[왈도 : 율님~율님~ 유울님~ 율~님!]
[율 : 따라오지 마세요]
[왈도 : 왜 또 이러실까~]
[왈도 : 얼굴도 날 만나서 발그레 해졌는데~]
짜증 나고, 신경도 쓰이지만 애써 왈도를 무시하고 가판대를 둘러보던 율은 한 가판대에서 세이렌의 눈물방울을 발견했다. 등록된 가격은 10억 리블. 터무니없이 높아 보이는 가격에 가판대 앞을 서성이던 온은 빠르게 채팅을 쳤다.
[길드] [율 : 세이렌의 눈물방울이 원래 얼마 정도 해요?]
[길드] [무지개 요정 : 갑자기 웬?]
[길드] [율 : 노아님이 사다달라고 부탁을 하셔서요...]
[길드] [무지개 요정 : 아...]
[길드] [질풍 : 그거 얼마 전까지는 1억 5천에서 2억에 올라오는 거 봤었어요]
[길드] [율 : 지금은 가격이 많이 올랐겠죠?]
[길드] [질풍 : 지금 투구업뎃 때문에 시세가 엉망이에요 안정화 될 때까지는 이렇다 할 시세가 없다고 생각하심 될 거예요]
[길드] [광인한 남자 : 살 거면 바가지 쓰지 않게 조심하세요]
[길드] [율 : 가판대에 10억에 올라온 게 있는데 사면 안 되겠죠?]
[길드] [KING Husband : 소오름 그거 사면 호구인증이에요!]
[길드] [율 : 호구...]
[길드] [광인한 남자 : 팸플릿 사서 검색하시면 더 편해요~]
[길드] [율 : 팸플릿이요?]
[길드] [광인한 남자 : 네 도구상점에 팔아요 그걸로 템 이름 검색하면 가판대에 올라와있는 건 다 서치 돼요]
[길드] [광인한 남자 : 눈물방울 검색해서 가격 적당한 거 찾아서 사세용]
[길드] [율 : 와... 몰랐어요 감사합니다 광님!]
[길드] [광인한 남자 : 에이 뭘~ㅋㅋㅋㅋ]
율은 광인한 남자가 말 한대로 도구상점으로 가서 팸플릿을 샀다. 팸플릿은 장당 100리블로 한 장에 5번의 검색이 가능했다. 우선 한 장을 사서 세이렌의 눈물방울을 검색하자, 총 3건이 서치가 되었다. 그중 제일 싸게 올라온 게 7억 정도였다.
율은 팸플릿을 들여다보며 낮은 한숨을 흘렸다. 아무래도 적당한 가격이 없어 보여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시카의 보석 심장을 검색했다. 총 5건이 서치가 되었고, 제일 싸게 올라온 게 3억 2천이었다.
[길드] [율 : 시카의 보석 심장은 원래 얼마 정도에요?]
[길드] [도련 : 어 내가 일주일전에 봤을때가 2억인가 그랬어요]
[길드] [율 : 네? 지금 3억 2천에 올라와 있는 게 있는데 이거 사도 되나요?]
[길드] [도련 : 지금 상황에 꽤 싸게 올라왔네요? 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길드] [율 : 감사합니다 도련님ㅋㅋ]
대화를 끝내고 해당 가판대로 이동하는 율의 뒤엔 여전히 왈도가 따라붙었다.
[왈도 : 아까부터 뭘 그렇게 살려고 돌아다니는 거예요?]
[왈도 : 혹시 신규투구 재료? 율님이 만드는 거면..쥬얼플룸?]
계속되는 왈도의 물음에도 무시로 일관하며, 시카의 보석 심장을 팔고 있는 가판대를 찾아낸 율은 가판대를 열어 보석 심장을 구매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팸플릿으로 세이렌의 눈물방울을 검색해봤지만, 여전히 가격에 변동은 없었다. 결국, 율은 발품을 팔기 위해 중앙거리를 다시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세이렌의 눈물방울 팝니다. 선 제시, 흥정ㅇ>라는 채팅방을 발견했다.
[채팅방에 율님이 입장하였습니다.]
[채팅방에 왈도님이 입장하였습니다.]
[숏바디 : 어서 오세요~ 선제시요]
[율 : 2억 5000이요]
[숏바디 : 죄송함다 기본 3억생각하고 있슴돠]
[율 : 그럼 2억 7000도 안될까요?]
[숏바디 : 으음... 적어도 2억 9000정도는...]
[왈도 : 그럼 제가 2억 9000에 살게요]
[숏바디 : 네?]
[율 : ??]
[왈도 : 거래주세용]
[숏바디 : 두 분이 일행이세요?]
[율 : 아니요..]
[왈도 : 네~]
[숏바디 : 뭐예요??]
[율 : 일행 아니에요]
[왈도 : 또~ 또 그러신다~]
[숏바디 : 일행 아닌 거예요?]
[율 : 네 아니에요]
[숏바디 : 으음...율님은 2억 9000안 되세요? 먼저 선 제시 해주신 게 율님이니까 이왕이면 율님한테 팔아야 할 것 같긴 한데..]
[왈도 : 일행 맞아요 저한테 거래주시면 된다니까요?]
[숏바디 : 율님은 아니라고 하시잖아요]
[왈도 : 내가 맞다고 하잖아요!]
[숏바디 : 왜 승질이에요? 이상한 사람이네?]
[왈도 : 내가 누군지 몰라서 이래?!]
[숏바디 : 알 게 뭐야!!!]
[왈도 : 내가 블루비야!! 블루비!!]
[숏바디 : 어쩌라고 난 화이트홀이다!!]
[율 : 저기...]
[숏바디 : 율님은 어느 길드에요!]
[율 : 네? 저는..]
[숏바디 : 레인보우힐이네!! 응? 레인보우힐? ...율?]
[숏바디 : 헐? 노아님 컴패니언 이신?!]
[율 : 네? 네....]
[숏바디 : 헐 이런 실례를...2억 7000에 거래할게요!!!]
[율 : ???]
[왈도 : 뭐야?!]
자신의 말에 성난 개처럼 짖어대는 왈도를 무시하고 숏바디는 상냥하게 율에게 거래를 걸어 2억7000에 세이렌의 눈물방울을 건네줬다. 그리고 그는 어안이 벙벙한 율에게 해맑게 손을 흔드는 모션을 취하며 사라졌다.
결국, 그대로 왈도를 두고 쉼터로 돌아온 율은 8시가 좀 넘어서 모습을 드러낸 노아에게 구매한 재료들과 남은 돈들을 넘겨줬다.
[노아 : 하루 만에 이걸 다 구했어요??]
[율 : 오늘... 다 구해달라는 거 아니셨어요?]
[노아 : 아니 저는 며칠 걸릴 줄 알았는데..]
[노아 : 몇 시간 만에 다 구하기가 쉽지 않으셨을 텐데..]
[율 : 운이 좋았나 봐요 ㅋㅋ]
[노아 : ㅋㅋㅋ]
[노아 : 별일은 없었죠?]
[율 : 네? 아... 네]
[노아 : 그래요...?]
[율 : ?]
[노아 : 아니에요]
[노아 : 그나저나 발그레 잘 어울리네요 ㅋㅋ]
[율 : 그...이상...하지 않아요?]
[노아 : 확실히 남캐한테 어울리는 템은 아니긴 한데..]
[노아 : 왠지 율님한테는 잘 어울려요 ㅋㅋ]
[율 : ...]
[노아 : 맘에 안 드나요? 다른 거살까요?]
[율 : 어...아니에요!]
[노아 : ㅋㅋㅋㅋㅋ]
[노아 : 길드에도 별일 없죠?]
[율 : 그...화이트홀에서 스왑오셨던 분이 아예 저희 길드로 정착하셨어요.]
[노아 : 네??]
[율 : 그분 아이디가 집사..이신데 도련님을 뵙고 싶다고 오셨대요 근데 도련님을 두고 떠날 수가 없으시다고 저희 길드에 남으신다고 하셨어요]
[노아 : ?????]
부재중의 길드에서 일어난 일이 황당하기 짝이 없는 노아였다.
***
머스킷 티어에 간 노아는 첫날을 시작으로, 하루도 쉬지 않고 율에게 만나를 받으러 왔다. 매일 어디를 그렇게 다니고 있는 건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율은 차마 묻지 못하고, 그에게 만나를 건네주기만 했다.
하루하루가 그렇게 지나고, 스왑이 하루 남았을 때,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 사이에선 머스킷 티어와 노아에 관한 조금 불안한 얘기들이 오갔다. 이유인즉슨, 노아가 타 길드들과 달리 머스킷 티어 길드원들과 심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거였다.
매일 그들과 어울려 사냥을 가고, 쉼터에 앉아 쉴 새 없이 수다를 떠는가 하면, 사적으로 전화번호를 교환했다는 얘기까지 흘러들어 왔다. 그리고 왠지, 노아와 거리감이 느껴지기 시작한 게 큰 이유였다.
노아는 매일 율에게 만나를 받기 위해 쉼터에 들르긴 했지만, 만나만 받고 다른 길드원들과는 이렇다 할 대화도 없이 바로 글록시니아로 가버리기도 했고, 붙잡고 이런저런 얘기라도 해볼라치면 바쁘다는 듯 잽싸게 자리를 피하기도 했다.
결국, 노아의 태도와 들려오는 머스킷 티어와의 관계 때문에 길드원들은 스왑이 끝나가는 이 시점에 다들 단 한 가지를 걱정했다. 혹시나 노아가 머스킷으로 가버리지 않을까.
[길드] [흑염룡 : 길마님 ㅠㅠㅠ 화월 세로로 깔려면 어떻게 해야해요?ㅠ]
[길드] [무지개 요정 : ? 넌 렙이 몇인데 여태..]
[길드] [흑염룡 : 아무리 해도 세로로 안 깔아져요...]
[길드] [무지개 요정 : 네 바로 옆 셀에 깔면 세로 앞뒤로 깔면 가로]
[길드] [흑염룡 : 옆에 깔아도 가로가 대여..]
[길드] [무지개 요정 : 네 바로 옆 셀에 깔았어?]
[길드] [흑염룡 : 셀이 뭐예요?ㅇㅅㅇ]
[길드] [무지개 요정 : 아나...]
[길드] [무지개 요정 : 네가 서 있는 칸의 바로 옆에 칸에 깔아]
[길드] [흑염룡 : 오? 오!! 댓어요! 이러케하는거구나~]
[길드] [흑염룡 : 별것도 아니네요~]
[길드] [무지개 요정 : -ㅛ-]
쉼터에서 흑염룡과 무지개 요정의 대화를 보던 율은 곧, 쉼터로 몰려 들어오는 중2병 4인방을 보았다. 그들은 쉼터에 들어오려다 평상에 혼자 앉아 있는 율을 보고는 잠시 멈칫했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우르르 몰려 들어와 다른 평상 하나를 차지하고 앉았다.
[파티] [블㉣┥⊆✡КⅰП9 : 미친ㅋ 저시키 얼굴 봐라]
[파티] [흑염룡 : 헐 미친ㅋㅋㅋ역겨워]
[파티] [월광의 마녀∑민지♕ : 우웅 민지는 이쁜 것 같은데..나도 저거 가꼬시포]
[파티] [눈감아♡김민지 : 오빠가 사주까?!]
[파티] [월광의 마녀∑민지♕ : 꺄핳♡ 진짜루?]
[파티] [눈감아♡김민지 : 그럼! 저놈보다 우리 민지가 하는 게 백배는 더 이쁘고 낳을거야~]
[파티] [흑염룡 : 저거 비싸지 않냐?]
[파티] [월광의 마녀∑민지♕ : 우웅?]
율이 끼고 있는 발그레에 대해 얘기를 하는 도중 허를 찔러오는 흑염룡의 질문에 김민지는 잠시 고민을 하는듯하더니 대뜸 율을 불렀다.
[눈감아♡김민지 : 저기요]
[눈감아♡김민지 : 거기 율...님]
[율 : 네?]
[눈감아♡김민지 : 그..얼굴에 끼고 있는 거.. 그거 얼마주고 샀어요?]
[율 : 어...4백이요..]
[눈감아♡김민지 : 비싸...]
[율 : /땀]
[눈감아♡김민지 : 혹시 그거...나한테 좀 싸게 팔면 안 대요?]
[율 : ?]
[율 : 어..죄송해요; 저도 노아님이 사주신 거라서요..]
[눈감아♡김민지 : ...에이씨]
[월광의 마녀∑민지♕ : 와...노아님이 사주셨어요?]
[율 : 네..]
[월광의 마녀∑민지♕ : 부럽다...]
[월광의 마녀∑민지♕ : 노아님더러 저도 좀 사달라고 해주심 안대영?]
[율 : 네?]
[월광의 마녀∑민지♕ : 율님보다 내가 하면 더 이쁠 것 같은데...우웅..]
[눈감아♡김민지 : 그러게 역겨운 사내자식이 하는 것보다 우리 민지가 하는 게 더 낳을텐데~]
[월광의 마녀∑민지♕ : 웅...가꼬시퍼 저거...나 줬음 좋겠다..]
민지는 채팅하며 슬금슬금 율의 옆으로 와 앉았다. 그녀의 행동에 영문을 모르는 율은 좌불안석이 따로 없었다.
[월광의 마녀∑민지♕ : 저..그거 잠깐만 껴보면 앙대여?]
[율 : 네?]
[월광의 마녀∑민지♕ : 잠깐만 껴보께여ㅠㅠㅠ]
어이없는 요구를 하며 자신의 옆에서 억지를 부리는 민지의 행동에 안절부절못하던 율의 눈에 쉼터의 입구로 어슬렁어슬렁 들어오는 궁기가 보였다. 궁기는 율을 보더니 꼬리를 세우고 골골거리며 다가와서는 율의 왼편에 앉았다. 그리고 오른편에 앉아 있는 민지를 향해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놀란 민지가 후다닥 일어나 자리를 피하자, 그제야 만족한 듯 배를 보이고 드러누웠다. 갑자기 나타난 궁기의 행동에 모두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 궁기의 뒤를 따르듯 노아도 쉼터에 모습을 드러냈다.
[율 : 노아님?]
갑작스러운 등장에 놀란 율이 노아를 부르자, 쉼터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온 노아가 율의 옆에 앉으며 중2병들을 훑어봤다.
[노아 : 쉼터 공기가 안 좋네요]
중2병들을 저격해서 하는 말임이 분명한 노아의 말에 중2병들보다 율이 더 당황하고 말았다. 대뜸 시비를 거는 듯한 노아의 언행에 싸움이라도 나면 어쩌나 노심초사하는데, 노아에게서 거래가 걸려왔다. 의아한 마음에 수락을 누르자, 생각지도 못한 물품 하나가 거래 창에 올라왔다.
[율 : 노아님??]
[노아 : 받아요]
[율 : 네???]
[노아 : 율님 주려고 만든 거예요 아니면 나도 풍이처럼 내다 팔까요?ㅋㅋ]
웃으면서도 반협박처럼 말하는 노아 때문에 율은 쭈뼛쭈뼛 거래를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거래가 완료되자, 이번엔 어서 껴보라며 성화를 부리는 통에 율은 더듬더듬 소지 창을 열어 건네받은 아이템을 장착했다.
귀 뒤에서 관자놀이까지 옆머리를 감싸며 장식하는 깃털 장식. 흰색, 하늘색, 파란색의 깃털들이 섞여 그라데이션을 이루고, 깃 자루에서 깃털로 이어지는 부분에 화려한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는 투구. 쥬얼 플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