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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외2. 도련님, 도련님 (24/31)

번외2. 도련님, 도련님

“누드 사진을 찍게 해 주세요.”

“…….”

마시던 음료가 도로 뿜어져 나올 뻔했다.

도련은 요 며칠 자신에게 귀찮도록 만남을 요구하는 집사의 행동에 반쯤은 열이 오른 상태였다. 하지만 약속 장소에 도착해 마주 앉은 순간, 필터링 없이 액면 그대로 내뱉은 집사의 말에 마시던 음료를 뿜어낼 뻔했다.

집사는 자신이 프리랜서 사진작가라고 했다. 그리고 인물사진은 찍지 않는 그가 유일하게 사진에 담고 싶어진 사람이 도련인 자신이라고. 그런데 그게 왜 하필 누드가 되어야 하냔 말이다.

아슬아슬하게 남은 이성으로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도련이 태연자약하게 고개를 들어 집사를 바라봤다.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어?”

“안 되나요.”

“인물을 찍고 싶다면야 응해줄 수 있지만, 누드는 좀… 아니 애당초 왜 누드여야 하는 건데?”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이니까요.”

“난 내 자연스러운 모습을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데.”

“저는 도련님을 예술적인 의미로 더욱 가까이 접근하고 싶습니다.”

“난 예술과는 거리가 먼 사람인데.”

“그걸로 괜찮습니다. 제가 다가가면 문제없으니까요.”

“아니….”

“저는 음란한 의미로 도련님의 누드를 찍고 싶다는 게 아닙니다. 예술적인 하나의 피사체로 도련님을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서 남기고 싶다고 생각했고요.”

“아니….”

“도련님은 제 상상력을 자극해 주십니다.”

“…….”

밀어붙이는 집사의 말에 도련의 포커페이스가 조금 무너지고 희미하게 난색을 비추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집사는 천천히 두 눈을 감고 제 심장 위에 손을 얹은 채 말했다.

“어떤 풍경을 보거나, 어떤 사물을 보거나 하면 짧지만 벅차오르는 감정과 함께 심장이 크게 뛸 때가 있습니다. 그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것만을 찾아 포커스에 담아 왔는데, 도련님을 처음 봤을 때 그 기분을 느꼈습니다. 사람에게 그 감정을 느껴본 건 처음입니다.”

“…….”

“그러니까 도련님을 포커스에 담아보고 싶습니다.”

“왜 나야….”

“저번에도 말씀드렸잖아요. 도련님께 심취해 있다고.”

“너는 캐릭터에 너무 심취해 있다고….”

“도련….”

“호칭부터 어떻게 좀 해. 주변에서 자꾸 흘끗거리잖아.”

“성함이….”

“태렴이야, 정태렴.”

“…이우입니다. 최이우.”

“솔직히 누드는 좀 힘들 것 같고….”

“…….”

“그냥 사진으론 안 되겠어?”

태렴의 말에 이우는 정말 심각한 얼굴로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마지못한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재촉하듯 태렴을 바라봤다.

지하의 10평 남짓한 작은 스튜디오. 그곳이 이우의 작업실이었다. 이우는 작업실의 중앙에 나무 의자를 하나 가져다 놓고는 작업실의 입구에 멍하니 서 있는 태렴을 데려다 앉혔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부산스럽게 내부를 돌아다니던 이우의 모습을 눈으로 좇던 태렴은 곧, 그가 이런저런 장비들을 가지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걸 보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이우는 손을 들어 그의 행동을 만류했다.

“그냥 계세요. 앉아서 긴장을 푸시고, 좀 더 자연스럽게.”

“어… 응.”

말을 마친 이우는 태렴의 주변에 조명과 반사판을 설치했다. 말없이 몸을 움직이는 이우의 행동에 태렴은 왠지 더 긴장하게 되고 몸이 굳어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저기….”

“네.”

“원래 말수가 없어?”

“네?”

“게임을 할 때랑 이미지가 너무 다른데….”

“아… 너무 집중했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도련님.”

이우가 무의식중에 뱉어낸 호칭에 태렴은 이름을 부르라며 바로 잡아주려 했지만, 두 사람뿐인 공간에 딱히 호칭을 따질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색하시면 먼저 말을 걸어주세요, 대답해드리겠습니다.”

“사진은 언제부터 찍었어?”

“중학생 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지금 26이던가?”

“네.”

“오래됐구나….”

“그런가요.”

“찍었던 사진들 보여줄 수 있어?”

“도련님 사진을 다 찍고 나면 얼마든지 보여드리겠습니다.”

“지금 보면 안 돼?”

“안 됩니다. 지금은 저에게 집중해주세요.”

태렴과 대화를 나누며 이런저런 기재를 만져대던 이우는 어느샌가 태렴의 맞은편에 있는 탁자에 몸을 기댄 채 그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도련님은 무슨 일을 하시나요?”

“나? 나는 그냥 회사 다니는데, 월급쟁이.”

“그런가요.”

“난 예술 쪽은 전혀 모르는데,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어떡해?”

“슬럼프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음… 그것보다는 뭔가 좌절하게 될 때라던가?”

“그럼 우교회로 가면 됩니다.”

“…응?”

“…….”

이우가 한 말의 뜻을 알 수가 없어 멍하니 이우를 올려다보던 태렴은 한참 뒤에야 의미를 깨달았는지 웃음을 터트렸다. 포커페이스가 단숨에 무너지고 눈이 반달로 접히는 모습을 보며 이우는 빠르게 카메라를 집어 들고 태렴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우가 사진을 찍기 시작하니 태렴의 웃음은 금세 걷히고 말았다. 그 모습을 포커스에 담고 꼼짝도 하지 않던 이우는 카메라를 내려놓고 태렴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앉아 있는 태렴의 앞에 자세를 낮춰 앉았다.

“역시… 상의라도 벗어주시면 안 될까요?”

“…….”

앉아 있는 자신의 무릎을 붙잡고 올려다보며 묻는 이우의 단정한 얼굴이 태렴의 눈 안에 한가득 차올랐다. 커다란 녀석이 제 앞에 쪼그리고 앉아 무표정하지만 무언가 갈구하는 눈으로 올려다보고 있는 게 어딘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남자끼린데 몸뚱이 하나 보여주는 게 뭐 대수라고.

“좋아.”

“?”

“상의…까지만이야.”

태렴의 말에 이우는 몸을 일으키며 “감사합니다.” 하고 말했다. 그리고 걸음을 옮겨 탁자로 되돌아가던 이우가 뒤를 돌아 상의를 벗으려 하는 태렴에게 물었다.

“도와드릴까요?”

“아니.”

하지만 태렴은 이우를 쳐다보지도 않고 단칼에 거절했고, 이우는 작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탁자로 다가가 카메라를 들었다. 포커스를 통해 보이는 태렴의 맨 어깨가 한참 동안 이우의 시선을 옭아맸다.

“괜찮으면 에어컨 온도 좀 높여주면 안 될까?”

“추우신가요?”

“맨살에 닿다 보니까 좀 서늘하네.”

제 어깨를 쓸어내리며 말하는 태렴의 행동에 이우는 카메라를 내려놓고 리모컨을 집어 들어 에어컨 온도를 높였다. 그리고는 태렴에게 다가와 그의 어깨를 감싸 쥐었다. 갑작스러운 이우의 행동에 태렴의 어깨가 눈에 띄게 움찔거렸다.

“차갑네요.”

“으, 응.”

“잠깐 쉴까요.”

말을 하며 작업실 한쪽의 서랍으로 향한 이우는 서랍을 열어 한 장의 모포를 꺼내 태렴에게 건넸다. 머뭇거리며 모포를 건네받은 태렴은 벗어두었던 자신의 옷을 바라봤다. 하지만 이내 시선을 거두고는 모포를 어깨에 걸쳤다.

“드세요.”

이우가 건네는 커피를 받아든 태렴은 손안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몸을 녹이며 탁자에 엉덩이를 걸치듯 앉아 있는 이우를 바라봤다.

“언제 끝나?”

막 커피를 마시려 컵에 입을 대던 이우는 넌지시 물어오는 태렴의 물음에 고개를 들었다.

“좀 더 걸릴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원하는 느낌이 안 나와서요.”

이우는 시선을 내리깔더니 아예 눈을 지그시 감고 커피를 마셨다. 그런 이우를 빤히 바라보던 태렴도 곧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모포를 그대로 두르시고, 바지를 벗어주시면 안 될까요?”

“풉.”

하지만 곧 들려오는 이우의 목소리에 먹던 커피를 뿜어낼 수밖에 없었다.

“쿨럭, 컥!”

사레가 들린 듯 연신 쿨럭거리며 어깨를 떨어대는 태렴의 모습에 이우는 마시던 컵을 내려놓고 태렴에게 다가와 그의 등을 쓸어내렸다.

“괜찮으신가요?”

“큽… 켁, 바지는… 쿨럭, 안 벗어!”

“다 벗고 모포를 두르시면 다 벗은 건 아닌….”

“안 벗어.”

“…네.”

태렴의 단호한 거절에 이우는 조금 풀이 죽은 목소리로 태렴이 들고 있는 컵을 받아들고는 탁자로 돌아갔다.

“계속하겠습니다.”

“일어나셔서 벽으로 서주시겠어요?”

“벽에?”

난데없는 이우의 말에 태렴은 벽을 돌아보며 물었다.

“네. 앉아 계시니까 뭔가 자세가….”

“응.”

태렴은 별 저항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벽 앞으로 향했다. 그 뒤를 따라간 이우는 조명과 반사판을 조정하고는 멀뚱히 서 있는 태렴에게 향했다.

“허리를 좀 더….”

말과 함께 불쑥 끼어 들어온 이우의 손이 태렴의 허리를 붙들었다. 자세를 잡아주기 위한 접촉이었지만, 태렴은 화들짝 놀라며 몸을 떨었다.

“제가 만지는 게 불편하신가요?”

“응? 아니… 갑자기 만지니까 놀란 것뿐이야.”

“네.”

대답하며 뒷걸음질로 거리를 벌린 이우는 카메라를 들며 말했다.

“어깨에 힘을 빼주시고, 턱을 살짝 들어주시겠어요.”

눈썹을 덮지 않는 짧은 앞머리가 태렴의 작은 몸짓 하나에도 미약하게 흔들렸다. 27살에 어울리지 않는 앳된 얼굴을 숨기기라도 하듯 시종일관 요지부동인 포커페이스가 자신과 시선을 맞춰왔다. 그리고 그 순간 이우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 하지만 금세 잠잠해진 고동을 느끼며 이우는 여전히 자신을 바라봐주고 있는 태렴에게 말했다.

“역시 벗어주시면 안 될까요. 느낌이 올 것 같은데.”

“…….”

“어려울까요…?”

“왜 그렇게 누드에 집착하는 거야?”

“담아보고 싶으니까요. 모포를 두르고 계셔도 좋으니….”

“벗고 모포를 두르면 그건 누드가 아닌 거잖아.”

“… 그럼 누드가 아니어도 좋으니 벗고 모포를 둘러주세요.”

“뭐야, 그게.”

“…….”

꿈쩍도 하지 않는 태렴의 행동에 이우는 풀이 죽은 듯 고개를 살짝 떨어뜨렸다. 왠지 비 오는 날 쫓겨난 대형견 같은 모습이었다. 잔뜩 풀죽은 이우의 모습을 바라보던 태렴은 제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리며 의자로 다가와 모포를 집어 들었다.

“모포는 절대 안 벗을 거니까!”

“다리를 벌려주세요.”

“…뭐?”

이우의 뜻대로 전라의 상태로 모포만 어깨에 두른 채 의자에 앉아 있던 태렴은 들려오는 이우의 요구에 황당한 듯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이우도 카메라를 내려놓고 태렴과 시선을 맞췄다.

“다리를 좀 벌려주시면 안 될까요.”

“될 것 같냐?”

“다리를 벌리고 그 사이로 손을 넣어서 의자를 짚어주시면….”

“너, 솔직히 말해 봐. 이런 거 좋아하는 변태지?”

“…….”

“…….”

“너무하시네요….”

태렴의 말에 기가 찬 듯 태렴을 바라보던 이우는 탁자에 카메라를 내려놓고 조금 굳은 얼굴로 태렴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전라의 상태로 어깨에 모포만 두르고 앉아 있는 태렴의 앞에 다리를 굽혀 앉았다.

“제가 도련님 외에 사람에게도 영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

가까워진 거리감은 대수롭지 않았지만 태렴은 자신이 전라의 상태라는 점에서 묘한 경계심이 들었다. 그리고 태렴의 경계심을 읽기라도 한 건지 빤히 태렴을 올려다보던 이우는 불시에 손을 뻗어 그의 양 무릎을 잡아 벌렸다.

“읏!”

갑작스레 일어난 일에 태렴은 화들짝 놀라며 반사적으로 벌어진 다리 사이로 손을 넣어 의자를 짚었다.

“네, 그렇게 있어 주세요.”

이우는 그런 태렴의 반응에 만족한 듯 몸을 일으켰다. 돌아서서 탁자로 향하는 이우의 등을 노려보는 태렴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붉게 물들었다. 그런 태렴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연자약하게 걸어가 카메라를 들고 뒤돌아섰다. 태렴은 한참을 눈싸움하듯 이우를 노려봤지만, 이우는 신경도 쓰지 않고, 포커스에 태렴을 비췄다.

그 이후로 태렴은 이우의 요구를 무엇 하나도 응하지 않았다. 카메라를 봐 달라고 해도 고집스레 시선을 피했고, 자세를 바꿔 달라 해도 요지부동이었다. 그런데도 붉게 달아오른 얼굴만은 그대로였다. 말을 들어주지 않는 태렴을 포커스를 통해 한참을 바라보던 이우는 한숨을 내쉬며 카메라를 내렸다.

“도련님.”

카메라를 치우고 나지막이 태렴을 부르는 이우의 목소리에 태렴은 그제야 시선을 옮겨 이우를 바라봤다. 반감 가득한 두 눈동자에 이우는 또 한 번 가슴이 뛰었다. 그 고동에 이우는 제 가슴에 손을 얹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는 다시 시선을 들어 자신을 의아하게 바라보고 있는 태렴과 시선을 맞췄다.

“이상하네요.”

“…뭐가?”

“눈으로 보면 이 느낌이 오는데….”

“?”

“왜 카메라로 보면 오지 않을까요.”

“…?”

“뭐가 다른 걸까요.”

뭔가 영문 모를 소리를 하는 이우의 행동에 태렴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그만 돌아갈래.”

“…….”

태렴의 말에 이우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저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그 시선에 불안해진 건 오히려 태렴이었다. 태렴은 자리에서 어정쩡하게 몸을 일으키며 의자 등받이에 걸려 있는 자신의 옷들을 챙겼다.

하지만 어느샌가 지척에 다가온 이우가 태렴의 손에 들려있는 옷가지들을 가로채 작업실 구석으로 던져버렸다.

“뭐… 하는?”

“왜요?”

“뭐?”

“왜 가시는 건데요?”

“…하기 싫으니까.”

“왜요? 좀 전까진 문제없이 하고 계셨잖아요.”

“하기 싫다고.”

“왜요?”

“…….”

“도련님.”

어딘지 음산하게 들리는 이우의 목소리를 들으며 굳어버린 태렴은 모포를 가르고 들어와 자신의 허리를 감싸는 타인의 체온에 화들짝 놀라며 그대로 의자에 주저앉고 말았다.

태렴이 의자에 앉자, 이우는 또다시 태렴의 앞에 다리를 굽혀 앉았다. 그리고는 양손을 태렴의 무릎 위에 올렸다. 태렴의 무릎이 미세하게 떨려오기 시작했다.

“이….”

“도련님.”

그리고 이우를 부르려던 태렴의 목소리를 끊으며 들려온 이우의 목소리와 함께 태렴의 무릎 위에 올려졌던 이우의 손이 서서히 그의 다리를 쓸고 발목으로 향했다.

커다란 손이 태렴의 발목을 쥐자, 숨을 집어삼키는 소리와 함께 태렴의 다리가 튕기듯 움찔거렸다. 동시에 태렴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던 이우의 눈이 크게 뜨였다. 두려움과 불쾌함이 공존하는 태렴의 얼굴에 심장이 마구잡이로 뛰기 시작했다.

그다음엔 머릿속이 백지가 된 듯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본능이 시키는 대로 무작정 손을 뻗어 태렴의 뒷머리를 감싸고 끌어당겨 입을 맞췄다. 놀란 태렴이 무의식중에 벌린 입속으로 자신의 혀를 밀어 넣어 치열을 훑고, 그의 혀를 옭아맸다. 몇 번이나 고개의 방향을 바꿔가며 끈질기게 달라붙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태렴의 양손이 이우의 어깨를 밀어내며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읏, 하지… 읍.”

억지로 입을 떼어내며 저항을 하려는 태렴의 입술을 수도 없이 따라가며 물고, 빨고, 끈질기게 굴었지만, 그의 저항도 멈출 줄 몰랐다. 결국, 발목을 쥐고 있던 손으로 다리를 훑고 올라가, 그의 맨 허리를 쓸어내리자 태렴이 불에 댄 듯 놀라며 펄떡였다. 그 덕에 어깨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던 모포가 떨어져 내렸다.

동시에 끈질기게 태렴에게 붙어 있던 이우의 입술도 떨어졌다. 상기된 얼굴로 더운 숨을 몰아쉰 이우는 온통 붉어진 얼굴로 가쁜 숨을 내쉬는 태렴을 찬찬히 훑었다. 그리고 태렴의 주먹에 얼굴을 얻어맞고 말았다.

“너 미쳤어?”

씩씩거리며 비명처럼 질러진 목소리에 얻어맞고도 멍하니 있던 이우의 시선이 삐걱삐걱 움직였다. 잔뜩 화가 태렴이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도련님.”

나지막이 부른 음성에 태렴은 어깨를 떨며 몸을 뒤로 물렸다. 하지만 의자의 등받이에 가로막혀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태렴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이우의 손이 천천히 태렴의 양 무릎으로 향했다. 그리고 천천히 그의 무릎을 감싸 쥐었다. 동시에 기겁을 한 태렴이 이우의 어깨를 밀치며 소리를 질렀다.

“그만해!”

태렴의 고함이 이우의 작업실 안을 빙글빙글 맴돌았다. 이우는 태렴의 얼굴을 바라보다 천천히 시선을 내려 태렴의 나신을 훑었다. 마지막으로 그의 무릎을 강하게 한번 쥐었다 놓아준 이우는 서서히 손을 떼어내고 몸을 일으켰다.

갑작스런 이우의 행동에 태렴이 두려운 듯 이우를 바라봤지만, 이우는 터덜터덜 걸어 구석에 던져진 태렴의 옷가지를 주워올 뿐이었다. 그리고 말없이 그것을 태렴에게 내밀었다.

눈치싸움을 하듯 자신에게 내밀어진 옷가지와 이우를 번갈아 바라보던 태렴은 낚아채듯 자신의 옷가지를 뺏어 들었고,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문 앞으로 달렸다. 그리고 여전히 의자 앞에 내민 손 그대로 멈춰 있는 이우의 행동을 살피며 서둘러 옷을 입고 그대로 이우의 작업실을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태렴이 작업실을 빠져나가고 한참 동안 태렴이 앉아 있던 의자 앞에 서 있던 이우는 천천히 의자에 앉았다. 그렇게 또 한참을 멍하니 있던 이우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고개를 젖혀 손등으로 이마를 가렸다. 카메라를 통하지 않고, 직접 두 눈에 담아야만 가슴이 뛰었던 이유.

“도련님.”

대답해 줄 리 없는 이의 호칭을 부르며 이우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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