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 6 (31/31)

CONTENTS

외전 6

퍼펙트 엔드

퍼펙트 엔드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이 두 번째 오즈 공략에 나선 건 첫 번째 오즈 공략이 있고, 근 1년 이상이 지나서였다. 첫 번째 공략의 수월했던 출발과 달리, 두 번째는 이상하리만치 인원이 모이기 힘들었다. 날을 잡아도 누군가 꼭 불발을 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각자 파티나 공대를 짜서 다니기만 하다가 율이 검정고시를 시작하면서 무기한 연기가 되었었다.

그리고 율이 합격한 날, 길드원들은 끝없는 축하와 함께 오즈 2차 공략을 제안했다. 그동안 타나섭의 오즈는 다른 파티에 의해 첫 공략이 깨진 상태였다. 모두의 예상대로 오즈의 마지막 보스 방엔 히든 코드가 숨겨져 있었고, 파티원 중 한 명이 히든 코드를 얻어 나갔다고 했다. 그 이후에도 몇몇 파티가 공략에 성공했다. 그리고 클리어 보상엔 직업별 히든 스킬을 얻을 수 있는 봉인된 보석이 랜덤으로 나온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

히든 스킬을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이 있다는 사실은 꽤 큰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아이템은 봉인을 풀지만 않으면 거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은 신중하게 날을 고르고, 각자 스케줄을 조정해 무지개 요정, 제로사이드, 노아, 율, 왕광풍. 7명의 조합으로 2차 오즈 공략에 나섰다. 1차 공략에서는 악운이 겹쳐 5번째 보스 방에서 단일 파티로 공략을 하게 되었었지만, 2차 공략은 그때와 달리 업그레이드된 모두의 장비와 운이 겹쳐 순풍에 돛 단 듯 흘러갔다.

어렵지 않게 5번째 보스 방에 들어선 길드원들은 보스 방 한가운데 있는 보스를 바라봤다. 여기저기 놓여 있는 소꿉놀이 세트나, 인형의 집, 화려한 레이스로 장식된 캐노피 침대, 바닥 전체에 깔린 분홍색 러그 위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곰 인형. 그리고 검은색 고딕 의상에 하프보닛을 끼고, 방 중앙에 산처럼 쌓인 베개 사이에 앉아 있는 작은 여자아이. 5번째 방의 보스. 이자벨이었다.

지난번, 모두를 좌절하게 했던 이자벨의 앞에 다시 선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은 보스 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자신들 말고 세 팀의 파티가 더 있었다.

[율 : 와 세팀이나 있어요]

[노아 : 그러게 좀 수월하겠네]

[제로사이드 : 이게 정상이지 뭐]

[KING Husband : 응 이게 정상이지]

[무지개 요정 : 전에는 진짜 운이 없었어]

[질풍 : 맞아요]

[광인한 남자 : ㅇㅇ]

사실 노아와 율을 뺀 다섯 명에게 이번 오즈 공략은 2차 공략이라고 할 수 없었다. 제로사이드와 무지개 요정은 공대를 짜서 주기적으로 오즈를 함께 다녔고, 왕광풍도 파티를 구해 오즈를 다녔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종종 노아에게도 공략을 함께하자고 권했지만, 노아는 언제나 바쁘다는 핑계로 그들의 제안을 피했다. 오즈 공략에 가담하면 며칠 동안 손을 놓을 수가 없는데, 그러면 검정고시 때문에 고군분투하는 율을 혼자 둬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모두는 오즈를 다니며 장비 업그레이드를 했고, 노아와 율 역시 그에 뒤지지 않을 만큼 빠르게 장비를 업그레이드했다. 노아의 자금력도 있었지만, 좋은 장비로 좋은 사냥터를 다닌 덕분이었다.

“안녕하세요.”

누군가의 인사로 여기저기서 인사말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제로사이드가 있다는 사실에 팀 리딩은 자연스럽게 제로사이드가 맡게 되었다.

“직업으로 보나, 장비로 보나, 탱은 노아가 맡는 게 좋겠다.”

“어.”

“1페이즈는 제일 멀리 있는 사람이 어글, 2페이즈는 제일 가까이 있는 사람이 어글이야. 초반 공격 맞으면 수면에 빠질 테니까 율이가 힐 잘 줘야 해. 수면 중에 어글자가 죽어버리면 이자벨이 곧바로 광폭화해버려.”

[율 : 네]

제로사이드의 독단으로 탱이 결정되었지만, 팀원 누구 하나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 눈에도 히든 클래스인 퓨리나이트보다 좋은 탱은 없어 보였으니까.

“가죠.”

각 파티의 프리스트들이 보조 버프를 끝내자, 제로사이드의 말이 들려왔다. 노아를 제외한 모두는 빠르게 중앙의 이자벨을 향했다. 자신에게 가까워지는 팀원들을 인식한 이자벨은 제일 멀리 자리한 노아에게 베개를 집어 던졌고, 노아는 데미지를 입고, 그대로 수면에 빠졌다.

팀원들이 우루루 이자벨에게 몰려가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지만, 이자벨은 등에서 기계 다리가 뻗어 나온 기괴한 모습으로 변해 노아를 향해 달려갔다. 그 뒤를 쫓으며 제로사이드가 말했다.

“율아, 이자벨 수면은 상태 이상 해제 스킬로도 안 풀려. 죽어라, 힐 줘.”

팀원들보다 먼저 노아에게 도착한 이자벨은 기계 다리를 높게 치켜세우며 노아를 공격했다. 하지만 내리꽂힌 기계 다리는 노아에게 직격하지 못했다. 이유인즉슨 이자벨의 다리 밑, 노아가 잠들어 있던 장소는 텅 비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볼렌테 데오)

어디선가 율의 스킬이 발동했다. 웅장한 스킬 시전음에 팀원들이 돌아보자, 율이 제 앞에 잠들어 있는 노아에게 체력을 대량 회복시키는 컴패니언 전용 힐을 넣고 있었다. 이자벨의 발아래 있던 노아가 왜 율의 앞으로 옮겨진 것인지 팀원들은 어리둥절해 보였지만,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은 율이 컴패니언을 부르는 스킬인 에이히루어를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갑작스레 사라진 노아 때문에 잠시 멈춰 있던 이자벨이 다시금 노아를 타깃팅 삼고 돌진해 오기 시작했다. 이자벨이 움직이자 덩달아 쫓아오며 공격을 퍼붓는 팀원들을 무시하고 달려온 이자벨은 다시금 기계 다리를 치켜들며 노아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인 라피뎀)

이자벨의 공격과 동시에 율의 스킬이 발동하고,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 모두에게 스킬 이펙트가 떠올랐다. 15회 공격을 방어해 주는 배리어 스킬이었다. 방어 횟수를 다 채우더라도 일정 시간 데미지 감소 효과가 있는 스킬이라 효율적인 선택이었지만, 이자벨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이자벨의 공격 한 방으로 배리어가 무너지고 만 것이다.

수면에 빠진 노아가 이렇다 할 대처를 못 하는 사이, 이자벨의 공격이 속수무책 쏟아졌고, 율은 정신없이 힐을 넣을 수밖에 없었다.

“율아, 혹시 모르니까 비아트리스 써볼래?”

그때, 마이크를 타고 노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비아트리스는 아크 비숍이 쓰는 상태 이상 해제 스킬이었다. 소용이 없다고는 하지만, 밑져야 본전 아닌가. 자신도 공략 영상을 많이 보아 왔고, 프리스트의 또 다른 히든 클래스인 오라클의 스킬도 통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지만, 아크 비숍의 스킬은 아직 이자벨에게 사용해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노아의 말에 율은 바로 비아트리스를 사용했다. 조금 전 제로사이드가 상태 이상 해제 스킬이 들지 않는다고 말해 주었음에도 말이다.

“그거 안 통한다니….”

율이 노아에게 비아트리스를 사용하는 모습에 제로사이드의 한숨 섞인 말이 들려왔다. 하지만 말을 끝맺지는 못했다. 비아트리스 스킬로 수면 상태가 해제되어 몸을 일으키는 노아를 보았기 때문에.

제로사이드는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꽤 많은 횟수만큼 오즈를 공략하러 다녔다. 그만큼 수많은 프리들과 파티를 했고, 한 번이지만 운 좋게 오라클과도 파티를 맺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의 스킬로도 이자벨의 수면이 풀린 적은 없었다.

자신과 같은 것을 본 팀원들 또한 술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제로사이드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리딩을 이어갔다.

“노아 수면 풀렸으니까, 바로 스페라무스 가자.”

혹시나 해서 던진 말에 정말로 수면이 풀려버리자, 적잖이 당황하던 노아와 율도 제로사이드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움직였다.

(인 데오 스페라무스)

선행 스킬들을 거쳐 인 데오 스페라무스가 발동되자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 주변으로 빛의 배리어가 둘러싸였다. 그리고 폭포수 같은 공격들이 쏟아졌다. 인 데오 스페라무스의 발동 시간은 시전자의 총 마나에 영향을 받는다. 그동안 레벨도 많이 오르고, 장비도 업그레이드된 율은 인 데오 스페라무스의 발동 시간도 상당히 길어진 채였다.

이자벨에게 정신없이 쏟아지는 공격들이 끝났을 때, 이자벨의 체력은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슬슬 2페이즈 넘어갈 것 같다. 노아 붙고, 나머지는 나오세요.”

모두가 이자벨에게서 거리를 걸리는 틈에 노아의 스킬이 이자벨을 직격했고, 곧바로 2페이즈로 넘어가며 패턴이 바뀌었다. 이자벨은 기계 다리가 아닌 여자아이의 발로 땅을 딛고, 기계 다리를 모두 공중으로 치켜세웠다. 육중한 기계 다리를 지탱하고 있는 몸이 위태롭게 휘청였다.

[아이스슈 : 난 여기가 제일 까다롭더라]

[줄자 : ㅇㅇ]

[하프물 : 그래요? 모션만 잘보면 까다로울거 없지 않나?]

“네~ 하프물님 말씀대로 모션만 잘 보시면 돼요. 이자벨이 부들부들 떨다가 기계 다리를 하나씩 내리칠 거예요. 1, 2타는 자생이지만, 3, 4, 5타는 보스 방 내에 생기는 소꿉놀이 세트에 앉으면 돼요. 한 세트당 4명씩 앉을 수 있으니 주변 잘 살펴 주시고요, 자생 타임에 소꿉놀이 세트에 앉지 않도록 조심하도록 하세요.”

모두는 제로사이드의 말에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계 다리 패턴이 나오기 전까지는 최대한 피를 깎아 두어야 했다. 패턴이 시작되면 공격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원거리들은 진작에 소꿉놀이 세트 근처에서 공격을 퍼부었고, 노아를 비롯한 근거리들은 이자벨의 근처에서 공격을 퍼부었다. 그러기를 한참, 이자벨의 기계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는 게 보였다.

“1, 2타 자생입니다. 소꿉놀이 세트에 앉지 마세요.”

(인 라피뎀)

율이 스킬을 사용하자,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 모두에게 스킬 이펙트가 떠올랐다. 동시에 이자벨의 기계 다리가 땅을 가격하며 충격파가 퍼져 나갔다. 이어 두 번째 기계 다리가 땅을 가격하며 두 번째 충격파가 퍼져 나갔지만, 분주한 팀원들과 달리 율의 스킬로 보호받는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은 너무나 평온해 보였다.

두 번째 공격까지 끝내자, 이자벨은 땅에 박힌 두 개의 기계 다리로 우뚝 섰다. 그 덕에 또다시 공중으로 들어 올려진 이자벨이 몸을 비틀며 비명을 질러댔다.

“3, 4, 5타는 자생 안 먹힙니다. 근처에 있는 소꿉놀이 세트에 앉으세요.”

보스 방 곳곳엔 어린이 소꿉놀이 세트로 보일 법한 테이블과 의자들이 있었다. 테이블 위엔 찻잔과 케이크 등이 올려져 있었다. 팀원들이 각자 자신의 근처에 있는 소꿉놀이 세트를 향해 흩어졌다. 율도 자신과 가까운 곳에 있는 소꿉놀이 세트에 자리를 잡았다.

팀원들이 분주하게 자리를 잡고 나자, 이자벨의 기계 다리가 연속으로 내리꽂혔다. 텀도 없이 연속으로 이어지는 공격이었지만, 모두 소꿉놀이 세트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걱정은 없었다.

[둥글레차 : ??]

“뭐야?”

“어?”

[도리 : 뭐시여]

하지만 모두가 안심한 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이자벨의 공격이 이어지는 와중, 누군가의 탄성과 의아함을 표출하는 채팅이 줄지었다. 이자벨의 공격이 끝난 후, 무슨 일인가 싶던 팀원들은 눈앞에 벌어진 참상에 기함하고 말았다.

한 소꿉놀이 세트에 앉아 있던 팀원들 4명이 모두 전투 불능이 되어 있었다. 문제는 그 인원 중에 노아가 있었다는 점이었다. 모두는 어리둥절한 마음에 사태 파악도 못 하고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기만 했다.

사실 팀원들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1, 2타에 소꿉놀이 세트에 앉은 건 하프물이었다. 쿨타임 계산을 잘못해 자생 타임에 스킬을 사용하지 못한 하프물이 소꿉놀이 세트에 앉은 것이었다. 모두를 입 다물게 한 침묵이 깨진 것은 이자벨이 새로운 어글자로 제로사이드를 선택하고 나서였다.

“율아 방어 좀!”

다급한 제로사이드의 음성에 율은 서둘러 인 라피뎀을 사용했다. 그리고 노아를 향해 달렸다. 다른 프리스트들도 자신의 파티원을 살리기 위해 모여들었다. 그리고 리저렉션을 사용하려는 순간, 이자벨의 원거리 공격이 직격했다. 인 라피뎀으로 방어를 하고 있던 율과 달리 모여들었던 프리스트들은 모두 그로기가 되어 바닥을 굴렀다.

율은 서둘러 프리스트들에게 힐을 넣었다. 프리스트들의 그로기가 풀리는 걸 확인한 율은 노아에게 리저렉션을 사용했다. 뒤이어 그로기가 풀린 프리스트들도 자신의 파티원에게 리저렉션을 사용했다. 잠시 휘청였던 이자벨 공략은 다시 안정 궤도로 되돌아왔다.

부활한 노아를 위해 율은 다시 한번 버프를 돌렸다. 노아가 부활했지만, 어글자는 여전히 제로사이드였다. 공격에 특화된 직업이지만, 대부분 어그로를 맡고 있기에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던 노아는 저 대신 어그로가 되어준 제로사이드 덕분에 폭발적인 공격력을 자랑했다. 그리고 두어 번의 기계 다리 패턴을 지나 이자벨을 쓰러트릴 수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제로사이드의 음성에 여러 사람의 인사가 줄지었다. 모두는 텅 비어버린 이자벨의 보스 방을 뒤로하고 안전구역으로 향했다.

[노아 : 우리 오늘은 안쉴거죠?]

[무지개요정 : 응 다음방 건너가서 쉴거야]

[질풍 : 다음방이 뭐였지]

[KING Husband : 아마 나포레이우스?]

[광인한 남자 : 아 고래쉑]

[율 : 아 저도 그거 동영상으로 봤어요]

[노아 : 거의 난장판 수준이던데?]

[제로사이드 : 원래 되게 쉬운 보스거든... 피도 적고 패턴도 간단해서 거의 쉬어가는 보스였는데... 트롤새끼들이...]

[광인한 남자 : 맞아]

[KING Husband : ㅇㅇ골때림]

[무지개요정 : 그딴것보다 내새끼 대박인걸 논해라]

[율 : ?]

[제로사이드 : 어 진짜 이자벨 수면은 오라클 스킬로도 안풀렸었는데 대박이었어]

[노아 : 나도 진짜 풀릴지 몰랐는데 ㅋㅋ]

[질풍 : 오라클보다 대단한 우리 율이!]

[KING Husband : 아무래도 오라클보다 좀 더 상위라는 느낌이 있긴하지!]

[광인한 남자 : 누구씨 덕분에 장비도 상위지]

[노아 : ㅋㅋㅋㅋㅋㅋㅋㅋ부럽냐]

[질풍 : 예]

[KING Husband : 네]

[광인한 남자 : 뉘예]

[율 : ㅋㅋㅋㅋㅋ]

안전구역에서 수다를 겸비한 짧은 휴식을 취한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은 상점에서 소모품을 채워 넣고, 다음 보스 방을 향했다.

어지럽게 얽힌 덩굴 숲 같은, 간간이 빛이 새어 들어오는 길을 따라 걸으며 앞뒤에서 덮쳐오는 몬스터를 잡기를 한참. 눈앞에 커다란 문이 나타났다. 화려한 문양으로 양각된 문은 군데군데 푸른 이끼가 자라나 있었고, 상당히 눅눅해 보였다. 6번째 보스. 나포레이우스의 방이었다. 문 앞의 장치를 활성화하고 기다리자, 머지않아 시스템 알림과 함께 육중한 문이 열렸다.

[SYSTEM] [장치의 조건이 충족되어 보스 방의 문이 열립니다.]

땅 울림과 함께 양쪽으로 활짝 열린 문 안쪽으로 들어가자 온통 젖은 바닥과 커다란 산호, 바위, 조개와 진주, 해초, 소라 껍데기 등이 늘어져 있는 내부가 보였다. 그리고 자신들 말고도 2개의 파티가 더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보스인 나포레이우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곧, 머리 위에서 묵직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끝도 보이지 않을 높은 천장 아래, 커다란 고래 한 마리가 공중을 헤엄치고 있었다.

오즈의 보스 방은 회를 거듭할수록 보스의 크기와 방 크기가 작아진다. 하지만 나포레이우스는 첫 번째 방의 보스였던 파라움보다 방의 크기도 보스의 크기도 현저하게 커 보였다.

[제로사이드 : 조금있으면 저 고래가 물 뿜어내면서 방에 물이 차오를거야 그럼 천장에서 인원수 만큼 부유섬이 떨어질건데 그 부유섬 위에 올라타면 돼]

[제로사이드 : 물이 저 고래가 있는 곳까지 차올라야만 우리가 공격할수 있어 지금은 사정권에 안닿아서 공격못해 그리고 딜타임이 길지 않기 때문에 스페라 시전할수 있는 시간이 부족할거야... 이번에는 스페라 빼고가자]

[율 : 아ㅠㅠㅠ]

[질풍 : 헐....]

[제로사이드 : 노아야 나포레이우스는 어글자없는거 알지?]

[노아 : ㅇㅇ]

[제로사이드 : ㅋㅋㅋㅋ 장판만 잘 밟아주면 돼]

[율 : 저 그거 너무 헷갈리던데ㅠ]

[질풍 : 사실 나도...]

[KING Husband : 나도... 나 고래까지 와보긴 했는데 클리어한적이 없어..]

[광인한 남자 : 제로형만 믿어...]

[무지개 요정 : ;;]

[제로사이드 : 음... 내가 최대한 알려줘볼게;]

[제로사이드 : 게다가 여기가 트롤들이 제일 활개를 치는 곳이기도 해서 정신 바짝차리고 있어야 해]

[KING Husband : 우리 팀중엔 없기를ㅠ]

오즈가 유행을 하면서 또 다른 문제 하나가 급부상했다. 그건 바로 공략이 목적이 아닌, 트러블이 목적인 트롤 파티가 성행을 탄 것이었다. 누군가의 장난으로 시작된 트롤 파티는 무섭게 부피를 피워가며 전염병처럼 번졌다.

오즈에 오려면 레벨이나 장비가 중요한데, 트러블을 일으키면서도 막힘없이 클리어해 들어오는 걸 보면 트롤 파티의 인원 대부분은 어중이떠중이가 아닌, 고 레벨 유저들의 부 캐릭터들인 것 같았다. 평범한 공략보다는 트러블을 일으키는 변태적인 공략에 더 맛을 들인.

[제로사이드 : 나포레이우스 패턴은 어떻게 보면 정말 간단해 물이 고래가 있는 곳까지 다 차오르면 흰장판과 검은 장판이 물 위에 생길거야 장판을 밟는 방법은 간단해 자신이 탄 부유섬이 장판위를 지나가기만 하면 돼]

[제로사이드 : 흰 장판을 다섯 번 밟으면 물 위에서도 이동이 가능해져서 고래를 공격하러 갈수 있어 근데 흰장판을 밟은 사람은 검은 장판을 밟으면 안되고 검은 장판을 밟은 사람은 흰장판을 밟으면 안돼]

[제로사이드 : 잘못 밟으면 고래가 광역기를 쏴 장판을 안밟으려면 부유섬에서 뛰어내리면 돼]

[제로사이드 : 근데 물속에는 쫄따구들이 있어 걔들이 물속에 뛰어든 유저들을 공격하거든 그 쫄따구들을 없애려면 검은 장판을 밟아줘야해]

[제로사이드 : 보통 장판 밟기는 밟을 사람을 미리 정해놓고 하는데 여기는 누가 어떤 장판을 밟게 될지 예측할 수가 없어 부유섬이 끊임없이 움직이거든]

[율 : 검은 장판은 횟수 제한같은 거 없어요?]

[제로사이드 : 응 없어 양껏 밟아!]

[율 : 네!ㅋㅋ]

[제로사이드 : ㅋㅋㅋㅋㅋㅋ]

[무지개 요정 : 오구 내새끼/ㅅ/]

[노아 : 내새낀데요 ㅋㅋ]

[광인한 남자 : ?]

[무지개 요정 : 뭐라?!]

[제로사이드 : 형새낀 나여]

[광인한 남자 : ?]

[무지개 요정 : ㄲㅈ]

[질풍 : 이 무슨 데자뷰...]

[KING Husband : 제정신인가 이사람들..]

[율 : ㅋㅋㅋㅋㅋㅋㅋㅋ]

“놈들아, 형 알지? 형은 긴말 안 한다. 리딩은 나다.”

수다로 꽃을 피우던 중에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왔다. 허스키하고 가래 끓는 음성. 그는 대뜸 팀원들에게 거들먹거리듯 얘기하며 리딩을 자처했다. 하지만 그는 오즈에서 제법 유명한 네임드였다.

[포크 : 에이~ 알죠 행님]

[돈카스카스 : 리딩은 맡기겠습니다!]

[칵스 : 형님 리딩아니면 못깨요~]

[파티] [무지개 요정 : 아... 저새끼 또나왔네]

[파티] [제로사이드 : 아니 저새끼는 오즈에 살림차렸나 왜 허구언날 있어?]

[파티] [KING Husband : 으엑... 나도 저새끼 만난적있어]

[파티] [노아 : 왜?]

[파티] [제로사이드 : 그냥 시벌 꼴마초야]

[파티] [율 : 꼴마초...]

[파티] [무지개 요정 : 리딩을 못하는 건 아닌데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개짜증남]

[파티] [제로사이드 : 그렇다고 잘한다는 것도 아님;]

[파티] [KING Husband : 레알 ㅇㅇ]

[파티] [질풍 : 그냥 제로형이 리딩하면 안되나?;]

[파티] [제로사이드 : 저새끼 있는 팀에선 리딩은 꿈도 못꿔]

[파티] [광인한 남자 : 나도 저놈이랑 다른사람이랑 리딩갖고 싸우는 영상 본적있음]

[파티] [광인한 남자 : 근데 은근 저놈 후빨러들이 많더라고]

[파티] [KING Husband : ㅆㅎㅌㅊ들이 둥가둥가 존나해줌ㅇㅇ]

[파티] [노아 : 둥가둥가는 율이한테나 해야하는건데]

[파티] [광인한 남자 : ?]

[파티] [무지개 요정 : 인정]

[파티] [광인한 남자 : ?]

[파티] [KING Husband : 정신차려님들... 율이도 이제 성인이야...]

[파티] [질풍 : 그만큼 형도 나이를 먹었지]

[파티] [율 : 풍형ㅋㅋㅋㅋㅋㅋㅋ]

[파티] [질풍 : :D]

[파티] [KING Husband : ;;;]

[파티] [제로사이드 : 매섭다 매서웤ㅋㅋㅋ]

[SYSTEM] [나포레이우스가 물을 뿜기 시작합니다.]

그때, 나포레이우스의 움직임을 알리는 시스템 알림이 화면 상단에 떠올랐다.

[파티] [제로사이드 : 어 시작됐다 이제 부유섬 내려올거야 올라타]

제로사이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천장에서 부유 섬들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부유 섬은 캐릭터 한 명이 올라탈 만한 크기였다. 여기저기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캐릭터들 사이에서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도 각자 부유 섬에 올라탔다.

물과 함께 떠오르는 부유 섬 위에서 율이 돌리는 버프 이펙트가 화려하게 수 놓였다. 나포레이우스의 근처까지 떠올라 타겟팅을 해보니 나포레이우스는 생각보다 생명력이 크지 않았다.

아마도 반복되는 패턴 속에서 공격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은 보스다 보니, 크기만 컸지 생명력은 적은 모양이었다.

“형은 말 많이 안 한다. 알아서 장판 잘 밟아라.”

거들먹거리는 음성과 함께 차오른 물 위로 검은색과 흰색의 마법진 같은 것이 생겼다. 물 뿜는 걸 멈춘 나포레이우스가 천천히 수면을 헤엄치기 시작했고, 물결에 쓸려 부유 섬들이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 멀리 흘러가는 부유 섬들이 흰색장판을 밟기 시작했다. 흰색장판과 멀리 있던 율은 검은 장판을 밟았다. 차례차례 지나가는 부유 섬들이 흰색장판을 다섯 번 밟게 되었고, 출렁이던 수면이 시간이 얼어붙은 듯 멈췄다. 그리고 흰 장판이 확장되듯 퍼지며 발판을 만들어냈다.

“공격~ 공겨억.”

음성과 함께 저 멀리 부유 섬에서 거의 헐벗은 여성 캐릭터 하나가 훌쩍 뛰어내려 나포레이우스에게 달려갔다. 목소리나 행동으로 보면 우락부락한 덩치 큰 남성 캐릭터가 튀어나와야 할 법한데 말이다.

그 뒤를 따르듯 다수의 캐릭터가 부유 섬에서 뛰어내려 나포레이우스에게 향하고 있었다. 율은 떨떠름한 기분을 갈무리하며 부유섬에서 내려와 본능적으로 노아를 찾았다. 멀지 않은 곳에 나포레이우스에게 향하는 노아의 모습이 보였다. 율은 방향을 틀어 노아의 근처로 달렸다. 딱히 붙어 있을 필요는 없었지만, 습관적으로 그의 곁으로 향했다.

나포레이우스의 생명력은 빠르진 않지만, 느리지도 않게 줄어들었다. 보스의 크기에 비교하면 3개의 파티, 21명의 유저들이란 숫자는 현저하게 적어 보였지만, 그런데도 착실하게 생명력은 줄어들고 있었다.

한참 공격에 집중하던 제로사이드는 시간을 재고 있었다는 듯이 화면을 돌려 보스 방 끄트머리를 바라봤다. 보스 방 전체로 퍼져 나간 흰 장판의 말단 한 줄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제로사이드는 대열을 빠져나오며 채팅을 쳤다.

[파티] [제로사이드 : 부유섬으로 돌아가야 해]

제로사이드의 말에 모두는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빠르게 그의 말을 따랐다. 대열을 이탈해 부유 섬에 돌아오자, 나포레이우스의 근처에서 공격을 넣던 몇몇 캐릭터들도 부유 섬으로 돌아오는 게 보였다. 그중엔 리딩자의 캐릭터도 있었다. 하지만 리딩자는 나포레이우스의 곁에 남아 있는 유저들에게 아무런 주의도 주지 않았다.

[팀] [제로사이드 : 고래주변에 남아 계신 분들 부유섬으로 돌아오세요 곧 장판 없어집니다]

결국, 보다 못한 제로사이드가 남아 있는 유저들에게 알리자, 나포레이우스의 곁에 남아 있던 유저들 또한 헐레벌떡 부유 섬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제로사이드의 참견이 마뜩잖았는지 걸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뭐지? 형은 투 리딩 안 한다. 주제넘게 참견하지 마라.”

[팀] [제로사이드 : 누군 하고 싶어서 참견합니까? 한두번도 아니고 리딩 제대로 해요]

“다 알 만한 놈들이다. 때 되면 제깍제깍 알아서 돌아온다.”

[팀] [제로사이드 : 오즈에 숙련자가 몇이나 된다고 그딴 소릴 합니까? 여기 있는 사람들 대부분 헤딩이나 반숙일텐데]

[팀] [제로사이드 : 그리고 다 알고 있다고 치더라도 그런거 주의주고 알려주는게 리딩자가 할 일 아닙니까?]

“형은 긴말 안 한다.”

[팀] [제로사이드 : 뭐라는거야ㅡㅡ]

[팀] [너무너무너무 : 제로님 말씀대로 리딩 제대로 해주세요.. 조금전에 제로님이 안알려주셨으면 전 죽을뻔했는데요;]

[팀] [보헤미안 : 리딩도 제대로 안해주시고 아까부터 계속 반말에ㅡㅡ]

[팀] [쿠키몬스터 : 게다가 오즈에서는 그쪽보다 제로님이 더 유명하지 않아요?]

[팀] [oranqeade : 사람 기분나쁜 어투에 리딩도 설렁설렁... 그럴거면 리딩 바꿔주세요]

언쟁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부유섬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리딩자는 귀찮다는 듯 말했다.

“오케이, 형이 너희를 너무 과대평가한 모양이다. 이제부터 원하는 대로 해준다.”

[팀] [노아 : 말투는 왜 안바꿉니까?]

[팀] [무지개 요정 : 목소리부터 맘에 안듬]

“불만 접수 더 안 한다. 형 화나게 하지 마라.”

화를 삭이는 목소리로 무례하게 경고하자, 여기저기서 원성이 터져 나왔다. 그래서였을까, 그들은 침묵하고 있던 일부 유저들의 수상한 움직임을 감지하지 못했다.

유유히 헤엄치던 나포레이우스가 갑자기 물 깊숙이 잠수하더니 그대로 수면 위로 점프를 했다. 그리고 육중한 몸을 수면에 내리꽂았다. 엄청난 물보라와 함께 거대한 파도가 일었다. 부유 섬에 서 있던 모두는 앗, 하는 사이에 파도에 밀려 물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뭐야?”

리딩자의 허망한 물음을 시작으로 웅성거림이 퍼졌다. 너도나도 사태를 파악하지 못해 어리둥절해 있을 때, 비웃음과 비아냥이 가득 담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병신들, 서로 혈안이 되어 있는 꼴하고는.”

“리딩이 좆같은 거랑 별개로 너희는 여기 못 깨.”

난잡한 웃음소리가 난무했다. 설마 하던 가능성이 실제가 되었다. 팀 중에 트롤 파티가 섞여 있었던 것이었다. 언쟁으로 정신없는 틈을 타 일부러 장판을 잘못 밟고 나포레이우스의 공격을 유도한 듯 보였다.

유저들이 물속에 빠지자 수면 밑바닥에서부터 작은 고래들이 무수히 헤엄쳐 올라와 유저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부유 섬 위에서 검은 장판을 밟아줄 유저들이 없으니 팀원들은 속수무책 당하기만 했다.

아비규환 속에서 몇몇 유저들이 겨우겨우 부유 섬 위로 기어 올라왔다. 그리고 부유섬의 움직임에 따라 검은 장판을 밟기 시작했다. 물속에 빠진 유저들을 공격하는 작은 고래들의 수가 점점 줄어들자 일부 유저들은 간신히 타겟팅에서 벗어나 부유 섬으로 올라올 수 있었다.

“물에 빠진 유저들이 아직 많으니 우선 검은 장판 위주로 밟아주세요.”

탁하고 걸걸한 목소리가 아닌 제로사이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로사이드의 리딩에 항의하는 원 리딩자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모두는 제로사이드의 말에 따랐다. 그렇게 유저들도 대부분 부유 섬으로 돌아오고, 다시 침착하게 공략이 진행되던 때, 흰 장판을 밟고 지나간 부유 섬이 검은 장판 위를 지났다.

원래라면 부유 섬에 타고 있던 유저가 물속으로 뛰어내려야 했지만, 부유 섬에 타고 있던 유저는 유유히 검은 장판 위를 지났다. 팀원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모션까지 사용하고 있는 유저는 트롤 파티의 인원인 듯했다.

“씨발….”

누군가의 욕설이 적나라하게 울리고, 나포레이우스가 수면 위로 점프하며 거대한 물보라와 함께 파도를 일으켰다. 부유 섬에 있던 모두가 다시 파도에 휩쓸려 물속에 빠지고, 수면 아래에서 작은 고래들이 빠르게 헤엄쳐 올라오기 시작했다.

[팀] [oranqeade : 적당히해 이 미친새끼들아!]

[팀] [곰곰 : 얼마나 할 일이 없으면 여기까지와서 지랄이야ㅡㅡ]

“어쩔~.”

“여러분의 오즈 공략은 여기까지입니다~.”

“내리는 곳은 오른쪽, 오른쪽입니다.”

“형은 안 참는다. 경고는 이번뿐이다.”

뭐가 그리 신났는지 시시덕거리는 트롤들의 태도에 리딩자는 잔뜩 화가 난 듯했다.

“뭐래, 찌질한 게? 그리고 난 여자거든?”

“오빠는 안 참는다.”

“미친.”

“오빠랜다.”

여전한 리딩자의 태도에 한껏 비웃는 웃음소리가 왕왕 울렸다. 그들에게 휘둘리는 리딩자를 보며 제로사이드는 한심하고 짜증 난다는 듯 말했다.

“트롤 상대하지 말고, 상황 정리부터 해요.”

“모자란 놈이 또 있네? 상황 정리해 봤자, 너희는 여기 못 깬다고.”

하지만 트롤 파티는 제로사이드의 말까지 조롱하고 나섰다. 작정하고 팀을 망치려는 속셈인 것 같았다. 하지만 제로사이드의 말대로 트롤은 상대해 봤자 시간 낭비였다.

물에 빠져 있던 유저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작은 고래의 공격을 피한 유저들이 하나둘씩 부유 섬에 올라오기 시작했고, 검은 장판을 밟으며 작은 고래의 숫자를 줄여갔다. 게다가 운이 좋았던 건지 물에 빠져 있던 트롤 파티의 파티원들이 작은 고래 때문에 대다수 전투 불능이 되어버렸다.

인원이 줄어버린 트롤 파티는 이번엔 방해보다는 발판이 생기는 걸 기다리는 듯했다. 발판이 생겨야만 전투 불능이 된 파티원을 살릴 수 있으므로. 머지않아 팀원들이 흰 장판을 다섯 번 밟았고, 흰 장판이 확장되듯 퍼지며 발판이 만들어졌다.

나포레이우스를 향해 달려가는 팀원들 속에서 트롤 파티는 자신의 파티원을 모두 살려낸 뒤 다시 부유 섬으로 향했다. 그리고 가만히 서서 발판이 사라지기만을 기다렸다. 그들의 행동은 당연하게 딜로스를 만들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타임어택 게이지는 차분하게 채워져 가고 있었다.

[파티] [노아 : 저새끼들이 계속 지랄하면 타임어택 걸리겠는데?]

[파티] [KING Husband : 좆될듯]

[파티] [율 : 어떡해요?]

[파티] [제로사이드 : 운이 따라주는 수밖에...]

[파티] [질풍 : 그런...어중간한..]

[파티] [무지개 요정 : 뭐 방법없나?]

[파티] [광인한 남자 : 뭐가 있겠어요...]

[파티] [KING Husband : 이러다 망하는거 아님?]

발판이 다시 사라지고 부유 섬에 올라탄 길드원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순풍에 돛 단 듯 순조롭던 공략이 커다란 벽에 가로막힌 기분이었다.

[파티] [노아 : 타임어택 시간까지 계산해보면 앞으로 최대 3번정도밖에 공격 못할것같은데]

[파티] [제로사이드 : 안그래도 간당간당한데 저새끼들이 딜로스까지내니까 진짜 위험할것같아]

[파티] [무지개 요정 : 눈 딱감고 스페라 써봐야 하는거 아냐?]

[파티] [노아 : 게이지 채우다가 발판없어질거예요]

[파티] [무지개 요정 : 돌겠네...]

[파티] [율 : 저 트롤들 때문에 우리 이번 공략도 망하는거예요?ㅠㅠ]

[파티] [질풍 : 오노ㅠㅠㅠ]

물결을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는 부유 섬들이 흰 장판과 검은 장판을 배회했다. 팀원들은 확실하게 장판을 골라 밟았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트롤들이 탄 부유 섬은 검은 장판 위로만 지나가고 있었다. 흰 장판에서 확장된 발판이 수면 위로 퍼지고, 팀원들은 서둘러 나포레이우스에게 향했다. 하지만 트롤들은 여전히 부유 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놈들아 발판 사라진다.”

잠시 잊고 있던 걸걸한 목소리가 들렸다. 팀원들은 빠르게 부유 섬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파티] [제로사이드 : 저새끼는 리딩을 지좆대로하네]

[파티] [노아 : 아까는 안알려주더니 지금은 또 알려주네]

[파티] [무지개 요정 : 차라리 주둥이를 틀어막고 싶다]

[팀] [보헤미안 : 리딩좀 제대로 해주세요ㅡㅡ]

[팀] [제리 : 일괄적으로 해야지 어떨땐 알려주고 어떨땐 안알려주고 왜그러시는거예요?]

불만이 있는 건 비단 레인보우 힐 길드원뿐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안 그래도 트롤 파티 때문에 예민하던 분위기에 불을 붙인 듯 여기저기서 원성이 터져 나왔다.

“주체적인 놈들하고만 하다가 너희랑 하려니까 형도 헷갈려서 그런다.”

[팀] [차에타봐 : 뭐라고요?ㅡㅡ]

[팀] [oranqeade : 왜 우리 탓으로 돌려요?]

[팀] [노아 : 주체적이지 못한건 그쪽같은데 제멋대로하는 리딩말고 할줄아는게 뭡니까?]

[팀] [노아 : 주체적으로 직접 생각해서 리딩하세요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 일일이 지시해야 해줍니까 어떻게?]

“내 리딩엔 문제가 없다. 문제는 다 모자란 너희지. 형은 주체적이고 자기관리 철저한 사람이다.”

[팀] [노아 : 자기관리? 대가리 빈 것부터 관리하시지]

“뭐라고?”

“와~ 싸워라! 싸워라!”

“이기는 편 우리 편!”

“제일 재밌는 게 불구경하고 싸움 구경이다!”

노아와 리딩자의 언쟁에 트롤들이 더 신이 나서 부추기기 시작했다. 자칫하면 큰 싸움으로 번질 뻔도 했지만, 부유 섬이 움직이기 시작하며 언쟁도 사그라들었다.

타임 어택 돌입까지 남은 시간과 나포레이우스의 남은 생명력이 아슬아슬했다. 이번에도 트롤들의 방해를 받는다면 정말 공략에 실패할지도 몰랐다. 다시 한번 운이 따라주길 바라며 모두는 부유 섬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하지만 트롤들이 탄 부유 섬이 흰 장판과 검은 장판을 순서대로 거치며 나포레이우스가 수면 위로 뛰어올랐다.

거대한 파도가 팀원들을 덮치고, 모두는 속수무책 물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여기저기서 한탄과 욕설이 난무했다.

“푸핫, 모두 애쓰셨습니다. 여러분 안녕~.”

“다음에 또 만났으면 좋겠네요.”

[팀] [oranqeade : 꺼져 이 또라이 새끼들아]

“왜 욕을 하고 그러실까~ 스샷 찍었으니 신고할게요!”

[팀] [두부 : 존나 한심한 새끼들]

“오즈 클리어도 못 하는 너희가 더 한심~.”

[팀] [Tic Tok : 아오....시발]

“너희는 형이 절대 용서 안 한다.”

“저 병신, 또 지랄이네.”

“야, 불쌍하니까 욕은 하지 말자. 팀원들한테도 욕 어지간히 먹더구먼.”

팀원들을 조롱하는 트롤들의 행동을 지켜보던 율은 근처에 보이는 부유 섬까지 헤엄쳤다. 다행히 작은 고래들의 공격을 받지는 않았다. 우선 검은 장판을 밟아서 작은 고래들을 없애려던 율은 무언가 생각난 듯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대뜸 자신에게 힐을 퍼붓기 시작했다.

힐로 사용하는 마나를 포션까지 사용해 채우며 끊임없이 힐을 하는 율의 행동에 이목이 쏠렸다. 웅성거림이 퍼지고, 트롤들의 조롱 어린 음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쟤는 뭐냐? 미쳤나?”

“그냥 포기한 거 아님?”

“저거 아크 비숍 아냐?”

“머저린가 왜 저러고 있데?”

그 순간, 율의 무기에서 빛이 터지는 이펙트가 퍼졌다.

(인 데오 스페라무스)

율의 무기인 그리다보르의 지팡이에 새로 붙었던 옵션. 낮은 확률로 인 데오 스페라무스 즉시 시전. 율은 그것을 위해 자신에게 끊임없이 힐을 넣었던 것이었다. 스킬 시전과 동시에 길드원들 주변으로 빛의 조각들이 배리어처럼 둘러싸였다.

그리고 물에 빠져 있던 길드원들이 동시에 물 위로 부상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팀원들과 트롤들이 멍하니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을 바라봤다. 하지만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은 놀랐다는 내색을 비출 새도 없이 나포레이우스를 향해 달렸다.

사실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 놀란 길드원들이었지만, 인 데오 스페라무스 버프를 받은 이상 공격이 우선이었다. 하지만 마이크를 타고 나오는 환호성과 웃음은 숨길 수가 없었다.

빛의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는 궁극기와 광역기의 이펙트 속에서 나포레이우스의 생명력은 눈에 띄는 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시발, 뭐야!”

“뭔데 갑자기!”

“다 된 밥에 코 빠트리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트롤들의 다급한 음성이 왕왕 울렸다. 그들의 목소리가 다급해질수록 나포레이우스의 생명력은 빠르게 줄어들었다. 곧이어 타임 어택 게이지가 다 차며 타임 어택이 시작되었지만, 나포레이우스의 생명력은 이미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불과 몇 분 전까지 트롤들 때문에 좌절했던 공략이었지만, 눈앞에서 나포레이우스가 쓰러지는 모습에 모두는 환호성을 내질렀다.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의 주변으로 빛의 조각 같은 배리어가 남아 있는 걸 보면 율의 인 데오 스페라무스는 여전히 시전 중인 듯했다.

나포레이우스가 쓰러짐과 동시에 보스 방에 차올랐던 물이 천천히 빠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스 방 바닥이 드러나자 안전구역으로 향하는 워프가 열렸다. 망연자실한 트롤들을 두고 팀원들은 빠르게 워프를 건넜다.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도 안전구역으로 넘어오자, 여기저기서 감사 인사와 수고 인사가 줄을 지었다. 다음 방에서도 만나고 싶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밀물처럼 밀려오던 모두의 인사가 끝나자 이번엔 길드원들의 채팅이 줄을 이었다.

[KING Husband : 이번에 진짜 타이밍 개오져따!]

[광인한 남자 : 진짜 이번탐은 율이가 다 살렸다]

[질풍 : 아니! 어떻게 그렇게 스페라를 시전할 생각을 했어?!]

[노아 : 물 위로 부상할거란건 예상했던거야??]

[율 : 그냥 물속에 빠진것도 상태이상으로 분류되지 않을까 싶었어요ㅋㅋ 다급하니까 그냥 이판사판으로 ㅋㅋ]

[무지개 요정 : 대박... 내새끼 천잰가봐...대박...]

[제로사이드 : 와 진짜 상황판단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그들 곁으로 캐릭터 하나가 다가왔다. 헐벗은 듯한 코스튬을 입고 있는 여성 캐릭터. 리딩자였던 유저였다. 아이디는 불멸의 펜릴부대.

“이번 공략의 핵심은 내 탁월한 리딩과 너의 기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율, 수고했다.”

[제로사이드 : 뭐라는거야ㅡㅡ]

[질풍 : 소오름;;;;;]

[KING Husband : 와...할말이 없다 진짜...]

“뭘, 말을 잃을 것까지야….”

[노아 : 진짜 말이 필요 없네...]

“너도 인정하는 건가 노아? 이게 바로 완벽한 자기관리다. 날 무시하던 너도 결국 나를 인정했군. 엣헴.”

[노아 : ?]

[율 : 왜저래;]

[제로사이드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무지개 요정 : 미친]

“그나저나, 율. 형은 긴말 안 한다. 내 친추를 받아라.”

[율 : ??]

[SYSTEM] [불멸의 펜릴부대님으로부터 친구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YES] [NO]

당연히 NO였다.

“왜 거절하지?”

[율 : 싫으니까요;]

“형이 나중에 널 스카우트하러 가야 하니 친추를 받아라. 너는 그럴 자격이 있다.”

[제로사이드 : 자격이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광인한 남자 : 진심으로 묻는건데 컨셉이죠?]

[질풍 : 저게 컨셉이 아닐리 없어;]

[KING Husband : 컨셉이어도 소름 아니어도 소름]

“완벽함은 컨셉을 연구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란 걸 모르는 건가? 이해 못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하지만, 율은 달라! 율은 가능성이 있는 아이야! 그러니 율. 형이 너를 데려가 나의 모든 것을 알려주려고 한다. 나처럼 완벽한 사람이 되는 방법.”

[노아 : 더이상 헛소리 듣는것도 한계인데, 이만 다음으로 넘어가죠?]

[율 : 찬성이요!]

[무지개 요정 : 내 새끼!! 귀가 썩어가고 있었구나!! 그래!! 얼른 가자!!]

[질풍 : 내 최악의 리딩자는 아네미아로 끝날줄 알았어]

[SYSTEM] [불멸의 펜릴부대님으로부터 친구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YES] [NO]

율은 자신의 화면에 뜨는 친구 요청 창을 바라보았다. 집요하게 친구요청을 할 거 같지만 그렇다고 받아줄 수 없었다. 율은 다시 NO 버튼을 눌렀다.

[SYSTEM] [불멸의 펜릴부대님으로부터 친구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YES] [NO]

거절하기 무섭게 다시 들어오는 친구 요청에 율이 다시 NO 버튼을 눌렀다.

[율 : 그만하세요; 친추안해요;;]

“율. 형이 이만큼 인내심을 갖고 참아주는 것도 네가 처음이야. 호의를 계속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지. 어서 받아라, 저 친구들은 무시하고. 형이 다 알아서 할 테니, 넌 형만 믿으면 된다.”

[제로사이드 : 아니 저거 계속 친추 걸고있는거야? 미친거아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노아 : 추하니까 그만하지? 율아 환경설정에 친구요청 메시지 받기 체크 되어있는거 해제해]

[율 : 응]

“간사한 이들의 말이 아닌, 성숙한 지식인의 말을 들어야 하는 거다. 내 말 들어라.”

[율 : 제가 왜 들어야 하는데요?;;]

“말대답하는 거 아니다. 형이 말하면 예 하는 거다.”

[질풍 : 와이?]

“와이? 반말하나?”

[율 : 와이YO?]

“…….”

[무지개 요정 : 주접 그만 떨지? 우리 율이는 너같은 인간 유서 깊게 싫어해]

[KING Husband : 유병장수나 하슈]

[질풍 : 미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광인한 남자 : 대뜸뭔뎈ㅋㅋㅋㅋㅋㅋㅋㅋ]

***

전날 질척거리는 불멸의 펜릴부대를 무시하고 브레이크 타임을 가진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은 이른 아침부터 속속들이 접속해 재정비에 한창이었다.

[노아 : 풍이 아직 안옴?]

[율 : 네 풍형 아직안왔어요]

[KING Husband : 이새끼 빠져가지고ㅡㅡ]

[무지개 요정 : 풍샛퀴...]

[제로사이드 : 연락해봐야 하는거 아님?]

[광인한 남자 : 내가 지금 해봄ㅇㅇ]

[길드원 질풍님이 접속하였습니다.]

[질풍 : 늦어서 죄송!]

[율 : 어 왔네요!]

[제로사이드 : 늦었네?]

[무지개 요정 : 왜 늦었어 이샛퀴야!!]

[KING Husband : 아주 맘놓고 쳐잤나 보다??]

[광인한 남자 : 뭘 잘했다고 당당하게 들어와! 무릎걸음으로 들어와!]

[질풍 : ㅇㅅㅇ;;]

[질풍 : 언젠가와 너무 다른 이 데자뷰는 뭐지...?]

[노아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안전구역을 벗어난 길드원들은 온통 눈으로 뒤덮인 길을 걸었다. 율과 노아는 언젠가 할리마을을 발견했을 때와 같은 기분이 들었다.

[노아 : 다음이 설녀인가?]

[제로사이드 : 응]

[노아 : 근데 설녀다음엔 아무리 찾아봐도 공략영상이 없던데?]

[제로사이드 : 아.. 불가침같은거야]

[노아 : 불가침?]

[제로사이드 : 나는 힘들게 깼는데 너희는 왜 쉽게 깨려고 하냐... 같은거지]

[제로사이드 : 게다가 클리어한 파티가 손에 꼽을 정도니까 그게 더 잘지켜지는거야]

[노아 : 그래서 던전 중후반 보스 공략영상이 전무한거야?]

[제로사이드 : 응 게다가 다른 유튜버들이 영상 올려도 신고먹여서 잘라버리는것같더라]

[질풍 : 그게 그렇게 쉽게 잘려?]

[제로사이드 : 클리어한 사람들은 대부분 대형길드에 몸담고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 동맹까지 합세해서 신고하면 충분할걸? 결국 지들끼리만 정보 공유하고 안푼다는거지]

[율 : 너무하네요;]

[제로사이드 : 그래서 이번에 우리 클리어하면 내가 영상 다 올려버릴까 하고 있어]

[무지개 요정 : 신고당해서 잘리면?]

[제로사이드 : 계속 올리면 되지 여차하면 인벤같은데도 풀어버리고]

[무지개 요정 : 너 공공의 적 된다]

[제로사이드 : 녀러분이 제 든든한 백이 되어주실거져?]

[노아 : ㄲㅈ]

[무지개 요정 : ㄲㅈ]

[율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로사이드 : ㅇㅅㅇ;]

후반부로 갈수록 보스 방에 도달하는 시간도 짧아졌다. 눈 속에서 튀어나오는 몬스터들을 해치워 가며 걸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만 같은데 눈앞에 거대한 보스 방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얼음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문 앞에서 장치를 활성화하자, 곧바로 시스템 알림이 떠올랐다.

[SYSTEM] [장치의 조건이 충족되어 보스 방의 문이 열립니다.]

[제로사이드 : 바로 열리네?]

[노아 : 설마 단일인가?]

불안한 마음으로 보스 방 안을 들여다보자, 자신들이 있는 문의 반대편에 모여 있는 한 개의 파티가 보였다.

[무지개 요정 : 다행히 단일은 아닌가 보다]

[노아 : 그러게요]

[율 : 저희보다 먼저 도착한 파티인가봐요]

[제로사이드 : 어제랑 같은 놈들만 안 만나면 좋겠는데]

[KING Husband : 동감]

[광인한 남자 : 아 제발 정상인들 만나기를]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이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인사말이 건네져 왔다.

“어서 오세요.”

[팀] [왕좌-G : 안녕하십니까!!!]

[팀] [건들면문다 : 잘 부탁드려요~]

[팀] [스크림꺄악꺄악 : 헐? 퓨리랑 비숍?]

와중에 노아와 율의 직업을 알아본 한 유저에 의해 분위기는 삽시간에 달아올랐다. 그리고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도 상대편 파티에 포함된 유저 한 명을 보고 놀라고 말았다. 네크로멘서의 히든클래스인 파우스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팀] [제로사이드 : 헐 파우스트다]

[팀] [KING Husband : 대박!! 저희야 말로 잘 부탁드려요!]

[팀] [질풍 : 오즈 공략하면서 노아형이랑 율이 아닌 히든클래스는 처음만나봐!]

[팀] [율 : 와! 저도요!]

[팀] [무지개 요정 : 느낌 좋네 잘부탁드려요]

[팀] [노아 : 잘 부탁드려요]

[팀] [광인한 남자 : !!]

서로의 직업을 확인하며 손쉬운 공략을 예상한 그들은 더할 나위 없이 서로에게 호감을 표시했다.

[팀] [제로사이드 : 파우스트면.. 혹시 오즈 클리어유저중에 한분 아니세요?]

“네, 맞아요.”

말에 기분 좋은 웃음이 섞였다.

[팀] [제로사이드 : 혹시 실례가 안된다면 리딩 부탁드려도?]

“저로 괜찮으시다면요.”

[팀] [건들면문다 : 탱은 누가?]

[팀] [제로사이드 : 탱은 퓨리나이트가 제일 나을것같은데요]

[팀] [왕좌-G : 그게 좋겠네요]

[파티] [질풍 : 히든이 셋이나 있으니 엄청 든든한데요!]

[파티] [율 : 괜히 실수할까봐 떨리네요ㅠㅠ]

[파티] [무지개 요정 : 내 새끼가 제일 잘하는데!! 무슨 소리야!!]

[파티] [제로사이드 : 저번에도 말했지만 당신 새끼는 나 새끼입니다만]

[파티] [무지개 요정 : 저번에도 말했지만 ㄲㅈ라고했다]

“버프 돌려주세요.”

리딩자의 목소리에 율은 서둘러 버프를 돌렸다. 한발 늦게 리딩자의 파티도 버프를 다 돌렸는지 다시금 목소리가 들려왔다.

“탱이… 노아님이시죠?”

“네.”

“노아님 혹시 숙련자이신가요? 아니면 공략 숙지하고 오셨나요?”

“헤딩입니다. 공략은 숙지하긴 했습니다.”

“그럼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리딩자의 말이 끝나자 노아는 곧바로 맵의 중앙으로 향했다. 보스 방은 날카로운 바람에 벼려진 듯 이리저리 날카롭게 뻗친 고드름 같은 얼음들이 즐비할 뿐 텅 비어 있었다. 하지만 노아가 맵의 중앙으로 들어서자 이벤트 영상이 재생되었다.

노아가 맵의 중앙에 서자, 어디선가 구슬픈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울음소리는 누가 들어도 너무 애처로워 그냥 지나칠 수 없을 정도였다.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보던 노아는 곧 근처에 솟구쳐 오른 듯한 빙산 위에 등을 보이고 앉아 있는 설녀를 발견했다.

노아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천천히 설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설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 순간, 설녀의 울음소리가 멈추고, 숙어져 있던 고개가 서서히 들렸다. 노아는 홀린 듯 설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설녀는 천천히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간헐적인 구슬픈 울음과 함께 몸을 완전히 일으킨 설녀는 둥실, 하고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천천히 뒤돌아 노아를 마주했다. 창백한 피부에 눈처럼 새하얀 머리카락이 스산하게 흩날렸다.

흐릿하던 설녀의 눈이 조금씩 선명함을 찾으며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핏발이 선 흰자위는 번지듯 붉게 물들었고, 아무런 감정도 내비치지 않던 설녀의 입꼬리는 서서히 올라가며 미소를 띠었다. 소름 끼치도록 차가워 보이는 미소였다.

이내 활짝 웃은 그녀의 입 사이로 날카로운 송곳니가 보였다. 설녀는 천천히 노아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노아를 향해 달려드는 모습을 끝으로 영상이 끝나고 말았다.

영상이 끝나고 모습을 드러낸 설녀의 주변엔 높다란 빙벽이 둘러쳐져 있었다. 그리고 노아도 그 안에서 설녀와 대치하듯 마주하고 있었다. 설녀는 총 3페이즈로 구성이 되어 있다. 처음 등장한 설녀를 공격하면 설녀는 모습을 감추고 설동이 나타나 1페이즈를 치르게 된다. 1페이즈가 끝나면 설아가 나타나 2페이즈를 치르게 되고, 2페이즈가 끝나면 다시 설녀가 모습을 드러낸다.

처음 나타난 설녀는 탱커가 패턴을 한 번만 넘겨주면 쉽게 처치할 수 있었다. 빙벽도 설녀가 사라지면 함께 사라지니, 탱커를 제외한 팀원들은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설녀는 혼자 있는 노아를 향해 날카로운 손톱을 휘두르며 두 번의 공격을 하고, 이어 양손으로 할퀴어 내렸다. 동영상을 돌려보며 초반 패턴을 모조리 외우고 있던 노아는 손쉽게 설녀의 공격을 피했다. 할퀴어 내리는 공격을 후방 이동으로 피한 덕에 거리를 벌리게 되자, 설녀는 찌르듯이 손톱을 앞으로 내민 후, 빠르게 다가와 양손을 크게 벌려 공격을 이었다.

(패링)

회피보다는 방어를 선택하자, 설녀는 얼음처럼 변한 머리카락으로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하지만 패링에 의해 공격이 모조리 막히자, 설녀는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이 괴성이 빙벽을 파괴하는 방법이었다. 노아는 패링을 거두고, 괴성이 시각화된 이펙트를 피해 빙벽을 따라 달렸다.

설녀의 괴성이 빙벽에 부딪히게끔 공격을 피하며 빙벽을 한 바퀴 돌자, 괴성이 내뿜는 파장에 빙벽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무너져 내리는 빙벽에 잠시 당황한 듯한 설녀는 빙벽 밖에 서 있는 팀원들과 노아를 노려보다 그대로 훌쩍 날아올라 공중에서 모습을 감췄다.

설녀가 사라지자, 천장에 매달려 있던 무수한 고드름들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고드름들이 떨어져 내려 자욱하게 깔린 얼음 먼지들이 걷히고 난 후, 맵의 중앙엔 추위에 두 볼이 붉게 물든 작은 남자아이 하나가 한 손에는 얼음으로 만들어진 바구니를 들고 서 있었다. 1페이즈를 치르게 될 설동이었다.

설동은 팀원들은 안중에도 없는지 바닥을 훑어보며 이리저리 움직여댔다. 그리고 깨진 고드름 조각들을 주워 바구니에 담기 시작했다.

“1페이즈입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설동을 공격하는 게 아니라, 설동이 주워 담고 있는 고드름 조각들을 파괴해야 합니다. 설동은 절대 공격하시면 안 됩니다. 공격하시면 광역기 와요. 하지만 고드름을 파괴하면 설동이 우리를 공격합니다. 그냥 맞으셔야 해요. 고드름을 많이 파괴해야 2페이즈 설아가 약해집니다.”

리딩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율은 제가 봤던 공략 영상을 떠올렸다. 설동이 바구니에 주워 담고 있는 고드름 조각들이 설아가 되었었다. 고드름을 많이 파괴할수록 설동이 주울 고드름 조각들이 없어져서 설아가 약해지는 구조였다.

“프리님들은 내 파티 네 파티 구분 없이 힐 넣어주시기 바랍니다.”

율은 후방으로 물러서서 팀원 전체를 바라봤다. 자신의 파티원들은 상단 왼쪽에 떠 있는 파티 창으로 체력 확인이 가능했지만, 리딩자의 파티원들은 캐릭터 아래 떠 있는 체력 바를 봐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여기저기서 움직이기 시작한 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바닥에 부서져 있는 고드름 조각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설동이 놀란 듯하더니 눈물을 뚝뚝 흘리며 눈보라를 일으켜 팀원들을 공격했다.

(인 라피뎀)

(플로레스 니비움)

(오라티오)

15방의 데미지 차단 후, 일정 시간 물리 데미지 감소를 시켜 주는 방어 스킬과 파티원의 전체의 체력을 회복시켜 주는 힐과 컴패니언인 노아의 체력을 지속해서 회복시켜 주는 스킬을 연달아 사용했다. 그리고 파티가 아닌 팀원들을 살폈다.

설동의 눈보라 때문에 체력이 줄고 있는 팀원들과 다르게 히든 클래스인 파우스트 혼자 만피를 유지하고 있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네크로멘서의 상위 클래스답게 바닥에 떨어진 고드름 조각들을 조종해 다른 고드름 조각들에 부딪히게 하고 있었다. 고드름으로 고드름을 공격하는 셈이니 설동의 공격 범위엔 들어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오래 걸리지 않아 1페이즈가 끝이 났다. 설동은 제가 흘린 눈물에 녹아 물이 되어 사라졌고, 남겨진 얼음 바구니 속에서 설동보다 조금 더 큰 여자아이가 나타났다. 2페이즈를 치르게 될 설아였다.

설아는 나타나자마자 공중으로 살짝 떠오르더니 ‘설한’이라는 스킬을 써서 팀원들의 발을 얼려버렸다. 모두는 바닥에 발이 붙어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이어 맵 가장자리부터 날카로운 얼음송곳들이 차례차례 안쪽을 향해 솟구쳐 올랐다.

“방어해 주세요.”

리딩자의 말에 율은 다시 한번 ‘인 라피뎀’을 사용했다. 전체 스킬을 사용하는 율과 달리 리딩자의 파티는 각자 방어를 해야 했기에 공격에 노출되는 파티원도 있었다.

“설아의 스킬은 저희 발을 얼린 얼음도 같이 파괴합니다. 그러니 속박이 풀릴 때까지 각자 방어하며 패턴을 넘겨야 합니다.”

리딩자의 말과 함께 이번에는 맵 중앙에서 얼음송곳이 솟구쳐 올라 맵 가장자리까지 이어졌다. 같은 패턴을 몇 번 더 반복하니 리딩자의 말처럼 발을 붙들어 놓은 얼음이 깨지며 속박에서 풀려났다.

“이제 설아 공격하시면 되는데, 설아 주변으로 바람이 휘몰아칠 겁니다. 잘못하면 공격이 튀어 다른 팀원들이 맞게 됩니다. 무작정 공격하지 마시고 바람이 약해지는 때를 공략하세요.”

공중에 살짝 떠 있는 설아의 주변으로 눈바람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설아는 표풍을 탄 듯 맵을 어지럽게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튕겨낼 것만 같은 매서운 바람이 끝없이 이어졌다. 하지만 어느 순간 바람의 회전이 느려지며 눈바람 속에 숨어 있던 설아가 보이는 순간이 있었다. 동시에 팀원들이 튕겨 나가듯 달려가 설아를 공격했다.

설아의 바람이 약해질 때는 눈바람에 흩어진 녹아버린 설동의 물이 있는 곳에 있을 때였다. 온통 얼어붙어 있는 공간 속에 설동이 녹아버린 물은 이질적인 존재인 듯했다.

패턴만 알면 공략은 손쉬웠다. 모두는 어렵지 않게 2페이즈 설아를 해치웠고, 3페이즈에 돌입했다. 설아가 쓰러지며 맵 전체에 매서운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그리고 눈보라와 함께 흰머리를 사납게 휘날리는 설녀가 공중에 모습을 드러냈다.

설녀는 피눈물을 줄줄 흘리며 축 늘어진 설동과 설아를 끌어안고 있었다. 하염없이 울던 설녀는 설동과 설아를 거대한 고드름으로 만들어 천장에 매달아 놓고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왔다.

[설녀 : 너희들의 피로 설동과 설아를 되살리겠다.]

피로 얼룩진 얼굴을 한 새하얀 설녀가 말했다. 동시에 맵을 빙 둘러 얼음 조각상 같은 것들이 솟아올랐다.

“제일 까다로운 결계석 패턴입니다. 설녀는 저희 중 3명에게서 기운을 흡수해서 조각상에 힘을 불어넣는데, 그때마다 랜덤으로 조각상과 똑같이 생긴 3개의 결계석이 생깁니다. 결계석을 시동해 줘야 조각상에 힘을 불어넣는 걸 막을 수 있습니다. 결계석의 위치는 패턴마다 바뀝니다. 어디에 결계석이 생기는지는 제가 주시하면서 알려드릴 거고요, 그럼 여러분은 해당하는 결계석을 잘 찾아가서 시동을 해주시면 됩니다. 만일 시동을 못 하거나 다른 결계석을 시동하면 기운을 흡수당한 3명이 즉사합니다. 리딩자인 저는 시동 임무에서 제외되고요, 짝이 안 맞으니, 레인보우 힐 길드에서 파티창 맨 마지막에 있는 한 분도 제외됩니다. 1번 파티인 저희 파티부터 순서대로 3명씩 짝지어 시동합니다.”

[팀] [광인한 남자 : 그럼 제가 제외네요]

“네, 광인한 남자님 제외이고요, 시동 신경 쓰지 마시고 딜 넣어주세요.”

[팀] [광인한 남자 : 네]

“아, 그리고 율님.”

[팀] [율 : 네?]

“혹시 괜찮으시면 제 보조도 맡아주실 수 있나요?”

[팀] [율 : 네??]

“저희 파티 프리가 초행이라 여섯 명 커버하는 게 좀 버거운 모양이에요. 혹시 좀 여유 있으시면 제 보조도 맡아주시면 안 될까요? 버프는 못 받는 거 아니까, 힐만 좀 신경 써주시면 됩니다.”

[팀] [율 : 그 정도라면...]

“네, 그럼 부탁드립니다.”

[팀] [율 : 네]

율의 답을 끝으로 설녀가 공중으로 날아올라 바닥을 전부 얼려버렸다. 잘 벼려진 날붙이처럼 날카롭게 얼어붙은 바닥은 모두에게 지속적인 데미지를 넣었다. 율은 모든 파티원에게 힐을 넣는 ‘플로레스 니비움’과 컴패니언인 노아의 체력을 대량 회복시키는 ‘볼렌테 데오’ 그리고 리딩자에게 ‘힐’을 넣었다.

“힐 계속 주세요.”

리딩자의 요구에 율은 어렵지 않게 리딩자에게 힐을 넣었다. 하지만 시선은 언제나 자신의 파티원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설녀 : 숨조차 얼어붙어라.]

설녀의 스산한 음성과 함께 팀원 중 세 명의 캐릭터에서 흰 기운이 빠져나가 설녀에게 흡수되었다. 기운을 흡수당한 팀원들은 발끝부터 타고 오른 얼음 속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설녀는 흡수한 흰 기운을 한데 모아 터트리듯 배출시켰다.

흰 기운은 회오리치는 눈바람처럼 바닥을 쓸 듯이 날아가 맵을 빙 둘러싼 얼음 기둥에 흡수되었다. 설녀를 예의 주시하던 리딩자는 얼음 기둥 중에 흰 기운을 흡수하지 않는 3개의 방향을 지시했다.

“12시, 4시, 8시. 시동해 주세요.”

순서를 정해준 대로 리딩자의 파티원 중 세 명이 달려와 각 방향의 결계석을 시동했다. 그리고 시동과 동시에 팀원들을 가둬두고 있던 얼음이 깨지며 팀원들이 풀려났다.

“지금 얼음에서 풀려나신 분들은 한기 버프 걸렸으니까, 프리분들한테 리커버리 받으세요.”

율은 얼음 속에 갇혔었던 KING Husband를 위해 상태 이상을 해제시키는 ‘비아트리스’를 사용하고, 힐을 주었다. 그러는 와중, 리딩자의 목소리가 율을 불렀다.

“율님, 저도 힐 주셔야죠.”

서둘러 바라보니 리딩자의 체력이 아주 소량 줄어 있는 게 보였다. 율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정도면 자동회복으로 충분히 회복할 수 있을 텐데 왜 힐을 달라고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각자 원하는 보조 스타일이 있을 테니 이해하며 힐을 주었다.

하지만 그 후에도 리딩자는 툭하면 율을 부르며 힐을 강요했다. 무엇보다 거슬리는 건 노아에게 무언가 스킬을 걸고 있으면 반드시 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2시, 5시, 7시. 시동해주세요.”

이번엔 무지개 요정과 질풍이 얼음 속에 갇혔다. 리딩자의 지시대로 결계석을 시동하자 두 사람이 풀려났고, 율은 서둘러 상태 이상을 해제시키는 ‘비아트리스’와 전체 힐인 ‘플로레스 니비움’을 시전했다. 그리고 슬슬 모두의 버프 효력이 떨어져 갈 시간이라 다시 한번 버프를 돌렸다.

(베네틱티오)

(베네피치움)

(인 라피뎀)

(스페스)

(아우덴티아)

(클레멘티스)

(오라티오)

컴패니언의 체력을 지속해서 회복시켜주는 스킬을 마지막으로 버프가 끝나고, 한숨 돌리려는 율에게 또다시 리딩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율님, 저도 힐 주세요.”

“저희 파티 프리님 좀 그만 부르세요.”

이어, 심기가 불편한지, 평소보다 더 가라앉은 노아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흘렀다.

“네?”

“저희 여섯 명 보조하는 횟수보다, 그쪽 한 명한테 불리는 횟수가 더 많은 것 같은데요.”

“아… 불편하셨나 보다… 제가 1:1에 너무 익숙하다 보니… 주의하겠습니다.”

“네, 그래 주세요.”

[파티] [제로사이드 : 미친 율이를 지전용 프리처럼 생각했다는 건가]

[파티] [질풍 : 우리 보조하는 꼴을 못보더라니]

[파티] [율 : 진짜 스치기만 해도 부르더라고요;]

[파티] [KING Husband : 보면 저쪽프리 전혀 버거워보이지 않는데]

[파티] [무지개 요정 : 죽여버릴까...]

[파티] [노아 : 절반만 죽여주세요]

[파티] [광인한 남자 : 절반은 노아형 몫인가?]

[파티] [노아 : ㅇㅇ]

[파티] [광인한 남자 : ...]

“4시, 8시, 11시. 시동해주세요.”

리딩자의 말을 듣고 움직이던 제로사이드 손끝이 움찔거렸다. 그리고 무언가를 확인하듯 화면을 돌려 11시 방향을 바라봤다.

“어…?”

의구심이 고개를 드는 순간, 세 명의 팀원이 결계석을 시동했고, 동시에 얼음 속에 갇혀 있던 팀원들이 즉사했다.

“앗… 아… 제가 방향을 잘못 봤나 봐요. 죄송합니다.”

“…….”

문제는 그 얼음 속에 갇혀 죽은 팀원 중 한 명이 노아였다는 것이었다.

[파티] [노아 : 이거 고의죠?]

[파티] [무지개 요정 : 백프로일듯...]

[파티] [제로사이드 : 분명 11시가 아니라 10시 였는데... 저새끼 뭐하는 새끼야]

[파티] [질풍 : 우연이겠지; 설마 노아형 엿먹이자고 제 팀원도 죽이고 공략까지 꼬아 놓을 리가..]

[파티] [KING Husband : 진짜 실수였을수도 있으니까 조금만 더 지켜보죠]

[파티] [율 : 저도 의심은 가지만 왕이형 말처럼 조금만 더 지켜봐요;ㅁ;]

[파티] [광인한 남자 : 그래요... 율이도 저렇게 말하잖아]

하지만 의심이 확신이 되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리딩자는 레인보우 힐 길드원이 얼음 속에 갇혀 있을 때만 종종 실수인 척 방향을 틀리게 알려주고 있었다.

[팀] [건들면문다 : 저기... 실수를 너무 많이하시는 게 아닌지..?]

[팀] [왕좌-G : 이러다 공략망해요]

[팀] [제로사이드 : 리딩못하실 것 같으면 넘기세요 그냥 제가 할게요]

“아… 죄송해요. 이제 실수 없도록 할게요.”

[팀] [노아 : 그게 자의로 됩니까?]

“한 번만 더 믿어주세요.”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은 리딩자를 바꾸고 싶었지만, 리딩자의 저자세와 리딩자의 파티가 그냥 넘어가길 바랐기 때문에 리딩자를 바꾸진 못했다. 그리고 리딩자는 처음처럼 아무런 문제 없이 스무스하게 리딩을 이어갔다. 마치 여태까지는 진짜 실수였다는 듯이 말이다.

“결계석 패턴은 끝이 났습니다. 원래 조각상에 기운을 흡수시키면 안 되는데, 제 실수로 기운이 좀 흡수되었어요. 설녀는 이제 공중으로 완전히 떠올라서 맵 전체에 ‘혹한’을 흩뿌릴 겁니다. 설녀의 광역기라고 보시면 돼요. 방어도 저항도 통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조각상에 흡수된 기운 때문에 데미지가 더 강해질 거예요. 혹한은 데미지가 일괄적이지 않고, 어느 부분은 데미지가 더 들어오고, 어느 부분은 데미지가 덜 들어오니, 적절하게 자리를 옮겨가며 버텨주세요.”

설녀는 조각상에 모인 기운을 모조리 흡수하며 공중으로 떠올랐다. 동시에 매서운 바람이 보스 방 전체에 휘몰아쳤다.

[설녀 : 눈과 얼음의 초석이 되어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것 같은 바람이 멈추고, 정적 속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가랑눈 같던 눈은 어느새 함박눈이 되었고, 폭설이 되어 내렸다. 빗발치듯 내리는 눈송이들은 날카롭게 벼려진 얼음인 양, 팀원들에게 데미지를 입히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포션 사용과 힐이 난무했다. 정신없이 회복하는 리딩자의 파티와 달리 율의 파티는 포션 사용률은 낮았다. 여섯 명 정도는 율 혼자 충분히 커버 가능했으니까. 데미지가 약한 곳을 찾아 몇 번 이동하자, 혹한 패턴이 끝나고, 설녀가 다시 바닥으로 내려와 구슬피 울기 시작했다.

“이제 매혹 패턴입니다. 설녀가 랜덤으로 한 명을 끌어당겨 매혹한 후 다시 던질 거예요. 매혹당한 분은 매혹을 전염시키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폭발하므로 팀원들과 멀어져야 합니다. 3명 이상에게 매혹이 번지면 전멸기 옵니다. 매혹에 걸리지 않으신 분들은 설녀 딜 하시면 됩니다.”

구슬피 울던 설녀는 손을 앞으로 뻗더니, 무언가를 움켜쥐듯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잡아당기듯 손을 거두자, 율의 캐릭터가 빨려 들어가듯 설녀의 앞으로 향했다. 율이 보는 게임 화면이 설녀의 붉은 두 눈으로 가득 찼다. 설녀는 율에게 매혹을 걸고, 내동댕이치듯 집어 던졌다.

율은 얼른 몸을 일으켜 팀원들과 최대한 멀리 떨어졌다. 율의 머리 위로 시한폭탄이라도 걸린 듯 타이머가 걸리고, 시간이 줄어들수록 설녀의 웃음소리가 난무했다.

타이머의 시간이 다 하고, 요란한 경고음과 함께 폭발이 일어난다. 보통 바탈 계열도 체력의 80%가 깎여 나가고, 어질계는 즉사해버리는 폭발이었다. 그런데 율은 체력의 10%도 깎이지 않은 채였다.

[팀] [스크림꺄악꺄악 : 저분은 대체; 장비가 얼마나 좋은거여;]

[팀] [건들면문다 : 괴물인가;]

“와… 율님 장비 진짜 좋으신가 봐요?”

[팀] [율 : ㅎㅎ;]

다음 매혹 스킬에 걸려든 건 리딩자였다. 매혹에 걸리고 내동댕이쳐지자, 리딩자는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율님, 저 폭발하면 진짜 아슬아슬해서 그런데, 이번만 저 주시하시다가 힐 좀 주시면 안 될까요.”

[팀] [율 : 그럴게요]

대수롭지 않은 요구에 율은 흔쾌히 허락했다. 타이머가 도는 10초 남짓 제가 리딩자에게 집중하고 있어도 제 파티원들에게 큰 타격은 없을 것이었다. 그만큼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리딩자를 주시하고 타이머가 7초쯤이 지났을 때, 리딩자가 갑자기 캐릭터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설녀를 공격하고 있는 노아에게 달려들었다. 앗, 하는 사이 모두의 앞에서 참상이 벌어졌다.

노아를 노리고 달려든 리딩자의 폭발에 주변에 있던 다수의 유저들이 말려든 것이었다. 하지만 노아의 피는 5%도 채 깎이지 않은 채였다.

“뭐합니까?”

한심함을 담은 노아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리딩자는 묵묵부답이었다. 입이 있어도 대답할 수 없었다. 간의 기별도 가지 않을 만큼 타격을 입은 노아와 달리 자신은 전투 불능상태로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었으니 말이다.

다행히도 노아의 주변에 있던 건 대부분이 어질계라 폭발과 함께 전투 불능이 되어버린 덕에 매혹 스킬은 노아에게 전염되었을 뿐이었다. 율은 서둘러 전투 불능에 빠진 유저들에게 리저렉션을 시전했다.

[노아 : 저놈은 살리지 말자]

[제로사이드 : ㅇㅇ 리딩은 내가 하지뭐]

[무지개 요정 : 찬성]

[왕좌-G : 저도요]

[아델리펭귄 : ㅇㅇ]

율은 모두의 의견을 수렴해 리딩자인 ‘귤이없어YES’ 만 부활시키지 않았다.

“율님? 저도 살려 주셔야죠!”

[율 : 그쪽 프리분한테 부탁하세요]

율의 거절에 리딩자는 말이 없었다. 아마도 파티 말로 파티의 프리에게 부탁을 하는 듯했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리딩자가 부활하는 일은 없었다. 리딩자의 파티에서도 리딩도 엉망에 공략까지 꼬아버린 리딩자를 살려주지 않으려는 셈인 듯했다. 결국, 귤이없어YES는 제로의 리딩으로 설녀의 공략을 클리어할 때까지 바닥에 누워 있어야만 했다.

설녀를 쓰러트리고, 모두는 수고와 감사의 서로에게 인사를 건넸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산통을 깨듯 잔뜩 꼬인 듯한 모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아, 넌 좋겠다 새끼야? 처음부터 네 전용 프리도 있고?”

귤이없어YES의 말에 노아는 한껏 코웃음 치며 비웃었다.

“넌 프리 하나 고정할 인맥도 없냐?”

“누가 그런 인맥이 없다고 했냐? 아크 비숍을 거저먹은 주제에 뭐가 잘났다고.”

“어쩌라고? 그렇게 부러우면 오라클한테 가서 빌어보던가, 새끼야. 저딴 스킬에 나가떨어지는 걸 보면 장비도 후진 새끼가.”

[KING Husband : 팩폭오져따]

[광인한 남자 : 형이랑 율이 장비를 누가 따라가냐곸ㅋㅋㅋ]

[질풍 : 존나 노아형에 비하면 저놈은 천민임 ㅋㅋ]

[율 : 제가 노아형 전용이 아니고 노아형이 제 전용인건데]

[노아 : ??]

[무지개 요정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로사이드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귤이없어YES를 한껏 비웃어주고, 워프를 통해 안전구역으로 넘어온 길드원들은 공략의 긴장으로 잔뜩 굳어버린 몸을 풀리는 걸 느꼈다.

[질풍 : 와우 살것같다 ㅠㅠ]

[율 : 다음 보스는 뭘까요?ㅠ]

[제로사이드 : 세이렌일거야]

[노아 : 세이렌?]

[무지개 요정 : 세이렌은 음성대화만 꺼두면 간단해서]

[질풍 : 왜요?]

[제로사이드 : 세이렌답게 목소리로 교란을 주거든 팀원들 목소리 흉내내서 리딩꼬이게 만들어]

[무지개 요정 : 번거롭긴 하지만 채팅으로 리딩하면 편하게 깰 수 있어]

[제로사이드 : ㅇㅇ]

[KING Husband : 거저먹는 보스로구만!]

[광인한 남자 : 그렇구만!]

안전구역을 나선 길드원들은 꼭 바닷속 같은 길을 걸었다. 다양한 형태와 색의 산호초와 조개, 소라, 허공을 헤엄치는 알록달록한 물고기들, 그리고 즐비하게 늘어선 부서진 배의 파편들. 아름답지만 한편으론 스산하게 느껴지는 길이었다.

중간중간 튀어나오는 머맨과 머메이드를 처리하며 몇 시간쯤 걷자, 전방에 거대한 문이 보였다. 각종 산호와 진주, 특이하게 생긴 조개껍데기와 소라 껍데기로 장식된 문이었다.

[SYSTEM] [장치의 조건이 충족되어 보스 방의 문이 열립니다.]

문 앞의 장치를 조작하자, 시스템 알림과 함께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자, 어두운 배경에 커다란 보름달이 제일 먼저 보였다. 이어 신비로운 노랫소리가 한가득 울려 퍼졌다. 맵의 중앙엔 반파된 배가 덩그러니 놓여 있고, 뱃머리엔 보라색의 구불구불한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가 달빛을 받으며 앉아 노래하고 있었다. 8번째 방의 보스, 세이렌이었다. 그리고 세이렌의 방에는 자신들 외엔 아무도 없었다.

[노아 : 단일인가 보네]

[제로사이드 : 트롤들 있는것보단 단일이 낫지]

[KING Husband : 인정!]

[율 : 제로형 리딩 받을수 있으니 좋고요ㅠㅠ]

[광인한 남자 : 인정!]

[무지개 요정 : 내새끼가 좋다면 좋은거지]

[질풍 : 인정!]

[제로사이드 : 이방 끝나면 쉴거죠 우리?]

[무지개 요정 : 응]

[제로사이드 : 그럼 바로 시작하죠. 설녀에서 너무 피곤했어]

[제로사이드 : 세이렌은 기본패턴은 간단해서 공략 영상을 몇 번 봤으면 쉽게 외웠을 거야 문제는 산호석 패턴이야 맵 보면 3군 대에 산호석이 있어 산호석은 세가지 색으로 불이 켜지는데 노란색은 다운 빨간색은 그로기 초록색은 기절이야]

[제로사이드 : 타이밍에 맞춰서 산호석에 해당 기술 넣어주면 돼 타이밍을 못 익혔거나 헷갈려도 내가 알려줄 테니까 괜찮고 산호석에 해당 기술을 못 넣으면 세이렌의 공격력하고 방어력이 증가해 그리고 한 번이라도 틀리면 5타 광역패턴이 와]

[제로사이드 : 방어나 저항으로도 못 피하고 맞으면 출혈이 생겨 세이렌의 출혈은 스킬로는 못 없애고 세이렌의 노래를 들어야 없어지는데 이 노래는 산호석 패턴을 넘기면 받을 수 있어]

[노아 : 바로 들어갈게]

제로사이드의 설명이 끝나자, 노아는 곧바로 맵 중앙으로 향했다. 노아가 세이렌에게 다가가자, 온화한 얼굴로 노래하던 세이렌이 노래를 멈추고 노아를 바라봤다. 그리고 목에서 귀 뒤까지 비늘이 돋으며 관자놀이에서 산호초 같은 뿔이 자라났다. 반들반들하던 검은 눈동자는 세로로 길게 서며 짐승이 눈같이 변했다.

결 좋아 보이는 머리카락들이 마치 수중에 있는 것처럼 물결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이렌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세이렌은 인어의 꼬리로 허공을 헤엄치듯 뱃머리 주변을 맴돌며 노래를 했다.

(뒤나미스)

(알레테이아)

노아는 자신의 무기에 공격력을 인챈트 하고, 무기의 속성을 세이렌의 상극인 풍 속성으로 바꾸었다.

(아나토메)

그리고 여유롭게 허공을 유영하는 세이렌에게 돌진했다.

(파토스)

(포보스)

연계기를 사용해 세이렌의 등 뒤로 돌아간 노아는 등 뒤에 칼을 꽂아 넣고 비틀어 갈랐다. 순식간에 공격을 당한 세이렌은 구슬픈 비명을 지르며 허공에서 한 바퀴를 빙글 돌아 꼬리지느러미로 노아를 공격했다. 하지만 노아는 손쉽게 세이렌의 꼬리를 피해 거리를 벌렸다. 노아의 공격을 포문으로 다른 길드원들의 공격도 빗발치기 시작했다.

(디 블라우에 플라메)

푸른 불꽃을 두른 검들이 지면에서 마구잡이로 솟아올라 세이렌을 공격했다. 세이렌은 비명조차 노랫소리 같았다. 푸른 달 아래, 고통에 몸부림치는 세이렌은 끔찍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인 데오 스페라무스)

모두의 공격이 순조롭게 이어지는 와중, 율의 스킬이 시전되며 빛의 배리어 같은 것들이 길드원들을 둘러쌌다. 그리고 모두의 공격 이펙트가 빛의 홍수처럼 동시다발적으로 세이렌에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무더기 같은 이펙트 속에 파묻힌 세이렌이 몸부림치며 괴로운 목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이렌의 매끄럽던 꼬리 비늘이 떨어져 나와 세이렌의 주변을 떠다녔다.

[제로사이드 : 산호석 패턴 온다]

세이렌이 움직이지 않고 꼭 죽은 것처럼 허공에 떠 있자, 맵의 세 군데에 존재하던 산호석 중 하나에 불이 켜졌다.

[제로사이드 : 다운]

제로사이드의 말에 질풍이 노란색 산호 석에 다운 스킬을 넣었다. 동시에 산호석에서 사슬이 튀어나와 세이렌의 꼬리를 묶었다. 다음은 산호석에 초록색 불이 켜졌고, KING Husband가 기절 스킬을 넣었다. 이어 다른 산호석에 빨간색 불이 켜지자, 무지개 요정이 그로기 스킬을 넣었다.

순조롭게 이어진 공격에 세이렌의 두 팔과 꼬리에 사슬이 연결되었다. 힘없이 허공에 떠 있기만 하던 세이렌은 제 몸에 사슬이 연결되자 괴로운 듯 몸부림치며 비명을 질렀다. 노래 같지 않은 순수한 비명은 이명처럼 번져 모두에게 데미지를 남겼다.

하지만 데미지 자체는 크지 않아서 모두는 자체 회복을 하거나 율의 힐을 받아 회복했다. 세이렌은 페이즈 없이 패턴이 같고 단조로워서 체력을 깎아내는 게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세 번째 산호석 패턴에서 처음으로 공략이 꼬이고 말았다.

“그로기.”

녹색으로 빛나는 산호석을 보며 기절을 넣으려면 광인한 남자는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그로기를 넣고 말았다.

[제로사이드 : ???]

[노아 : ?]

[무지개 요정 : ?]

스킬을 잘못 넣자 산호석은 바로 색을 잃었고, 사슬에 묶여 있던 세이렌이 허공을 빙글 돌아 사슬을 파괴하고, 꼬리지느러미로 허공을 쳤다. 그러자 공기가 일렁이는 이펙트와 함께 공기의 파도가 모두를 덮쳤다. 파도는 총 5번으로 커다랗게 밀려오며 모두를 5번 공격했고, 모두에게 출혈이라는 상태 이상을 남겼다.

율은 이자벨 때처럼 상태 이상을 해제시키는 자신의 ‘비아트리스’가 통할까 싶어 스킬을 사용해 봤지만, ‘비아트리스’로도 세이렌의 출혈은 없애지 못했다. 결국, 전체 힐인 ‘플로레스 니비움’을 사용해 모두의 체력을 회복시키는 것 말고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질풍 : 저거 누구 목소리야?]

[KING Husband : 우리 목소리는 아니지 않아? 우리 마이크 쓴사람없잖아;]

[무지개 요정 : 어떻게 된거야?]

[제로사이드 : 나도 몰라;]

[노아 : 뭐 패치된 거 있나?]

[율 : 오즈 패치 소식은 없었는데...]

[광인한 남자 : 설마 잠수패치한거아냐 이것들?!]

[제로사이드 : 아 진짜 그런가? 이새끼들 오즈 잠수패치하는걸로 악명 자자하잖아]

[무지개 요정 : 아무튼 마이크는 쓰지마 여기에 우리 목소리까지 섞이면 더 정신없어져]

[제로사이드 : ㅇㅇ]

출혈이 걸렸으니, 세이렌의 노래를 받아야만 했다. 모두는 신중하게 산호석 패턴을 기다렸다. 출혈 때문에 수시로 빠지는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여기저기서 포션을 먹는 이펙트가 남발했다. 출혈로 생기는 체력의 소모 폭이 상당했다. 자신까지 합해 7명의 체력을 홀로 관리하는 율을 배려한 모두는 수시로 포션을 마셨다.

“기절.”

노랗게 빛나는 산호 석에 다운을 넣으려는데, 또 상황을 교란하려는 세이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제로사이드는 침착하게 산호석에 다운을 넣었고, 세이렌의 꼬리는 사슬에 묶였다. 이어 노아와 광인한 남자가 기절과 그로기를 넣어 산호석 패턴을 넘겼고, 사슬에 꼬리와 두 팔이 묶인 세이렌이 비명이 아닌, 구슬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의 이펙트가 달빛에 비친 수면처럼 잔잔하게 흘렀다.

세이렌의 노래로 모두에게 걸려 있던 출혈이 풀렸다. 체력의 소모가 멈추자, 다들 안도의 숨을 내쉬며 공격에 집중했다. 사슬에 묶인 탓인지 세이렌의 움직임이 묵직했다. 세이렌은 공중으로 높이 떠오르지 못했고, 자유롭게 허공을 빙글빙글 돌지도 못했다. 사슬이 거슬리는지 간혹 몸부림을 치기도 했다.

“기절.”

뻔히 보이는 교란인데도, 질풍은 저도 모르게 빨간색 산호석에 기절 스킬을 넣고 말았다. 세이렌은 저를 묶고 있는 사슬을 파괴하고 허공에 꼬리지느러미를 내리쳤다. 일렁이던 공기는 파도가 되어 길드원들을 덮쳤고, 모두는 또다시 출혈에 걸리고 말았다.

하지만 문제는 실수가 줄지었다는 점이었다. 모두는 세이렌의 목소리에 홀린 듯 산호석 패턴에서 연이어 실수했고, 어느덧 출혈은 3 중첩이 되어 어마어마한 속도로 체력을 뺏어가고 있었다.

[제로사이드 : 출혈도 문제인데 세이렌 공증 방증된게 더 문제야]

[질풍 : 처음하고 달리 공격이 너무 아파졌어;]

[노아 : 데미지도 확실히 덜 들어가고]

[무지개 요정 : 더는 실수하지 말자]

[율 : 출혈로 빠지는 체력 소모도 너무 커요;]

[KING Husband : 우리 힐넣다가 율이 엠오링 오겠는데]

[광인한 남자 : 율이가 엠오링 오는 순간 우리도 다 끝날 듯]

[노아 : 아직 포션 많고 안전구역가서 또 사면 되니까 그냥 마구 빨아]

노아의 말에 모두는 안심하고 포션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포션을 사용하지 못하는 율이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게 다들 정말 열심히 포션을 사용했다. 하지만 출혈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첫 번째 희생자가 나오고 말았다.

[파티원 질풍님이 사망하였습니다.]

[질풍 : 아나ㅠㅠㅠㅠ 출혈이 너무 심해서 뭘 못하겠어;]

[율 : 혀유ㅠㅠㅠ]

율은 전투 불능이 되어버린 질풍을 살리기 위해 질풍에게 향했다. 그때, 반파된 배 속에서 머메이드 2마리가 튀어나오더니 빠르게 헤엄쳐 율을 추월했다. 그리고 전투 불능이 된 질풍을 들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질풍 : 뭐야??]

[율 : ??? 뭐야; 뭔데;]

머메이드들에게 끌려가는 질풍과 그 뒤를 쫓는 율의 추격전이 시작됐다.

[율 : 야이놈들아ㅠㅠㅠ 우리형 돌려줘라 ㅠㅠ]

[질풍 : 율아ㅠㅠㅠㅠ]

처음 보는 황당한 광경에 일부는 공격하는 것도 잊은 채, 두 사람을 지켜봤다.

[노아 : 뭐냐 저게..]

[KING Husband : 글게...]

[무지개 요정 : 아 저거 이벤트같은거야]

[광인한 남자 : 이벤트요?]

[제로사이드 : 흔하게 나오는 광경은 아닌데 운 좋았네 풍이 ㅋㅋㅋ]

[질풍 : 이게 운이좋은거야?!]

[율 : 살릴수가 없는데요ㅠ]

[무지개 요정 : 시간지나면 알아서 없어질거야 그냥 내버려둬]

[율 : 아 진짜요?]

무지개 요정의 말에 질풍을 쫓아가던 율이 행동을 멈췄다.

[제로사이드 : 응 그냥 딜로스 유도하는거라서 ㅋㅋ]

[율 : 딜로스 나면 안되는거 아니에요?;]

[노아 : 초반에 스페라 쓴것 때문에 남아 돌걸]

[율 : 아...]

제로사이드와 노아의 말에 율은 깔끔하게 질풍에게서 뒤돌아섰다. 질풍의 부활을 포기한 율의 등 뒤로 질풍의 초라한 외침만이 남았다.

질풍이 머메이드들에게서 벗어난 건 모두가 세이렌을 쓰러트렸을 때였다. 질풍은 모두가 자신을 버렸다며 우는 시늉을 했다. 율과 광인한 남자는 그럭저럭 달래려는 모습을 보였지만, 무지개 요정은 콧방귀를 뀌며 워프를 통해 냅다 안전구역으로 향할 뿐이었다.

[질풍 : 이 냉혈한들... 내가 꼭 성공해서 복수할거야;ㅁ;]

***

안전구역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한 길드원들은 상점에서 소모품을 채워 넣고, 안전구역을 나섰다. 그들의 눈에 나타난 건 나선으로 된 계단이었다. 보통 오즈의 방과 방 사이를 잇는 건 끝없이 이어진 길이었기에 그들은 생소한 기분을 느끼며 계단을 올랐다.

계단은 층마다 커다란 아치형 창문이 있었는데, 창문 밖으로는 온통 푸른 숲이 보였다. 오즈에 들어와서 바깥의 풍경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제로사이드와 무지개 요정도 처음 겪는 일인 듯 신기해했다.

끝없이 이어진 계단을 오르는 동안 몬스터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계단을 오르면 오를수록 창밖의 풍경도 변했고, 계단의 모양새도 변했다. 평범하던 계단이 낡고, 부서진 오래된 모습을 띠게 된 것이었다. 창밖의 풍경은 나무만 있던 숲에서 점차 건물이 늘어나고, 버려진 왕국 같은 모습이 되었다. 하지만 창문 밖의 풍경보다는 나선형의 계단을 오르고, 또 오르는,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하나둘씩 어지러움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질풍 : 너무 어지러워요ㅠㅠㅠ 우리잠깐 쉬었다가면 안돼요?]

[율 : 풍형 괜찮아??]

[질풍 : ㅠㅠㅠㅠㅠ 너는 괜찬ㄴㅎ아?]

[율 : 응... 나는 괜찮은데;]

[무지개 요정 : 나도 어지러워 어차피 몹도 안나오는 것 같은데 여기서 잠깐 쉬자]

[노아 : 아무래도 배경이 반복되다보니까 어지러워지는건가봐요]

[광인한 남자 : 아주 눈감고 가야할판이여ㅠㅠㅠ]

[KING Husband : 무슨 길을 이렇게 지랄맞게 만들어놨어]

[제로사이드 : 그럼 여기서 쉬자]

결국, 그들은 어지럼증이 사라질 때까지 짧은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다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문이 나타났다.

[질풍 : 쉬벌; 거의 다 와서 쉰거였네;]

[무지개 요정 : 너 때문에 풍샛퀴야]

[질풍 : ㅇㅅㅇ? 길마님도 어지럽다고 쉬자고 했잖아요...]

[KING Husband : 너 때문이다]

[광인한 남자 : 너때문이야]

[율 : 왜 우리 풍이형 기를 죽이고 그래욧!]

[무지개 요정 : ?!?!?!?!?!]

[노아 : 뭐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뒤로하고 문 앞의 장치를 활성화하자 곧바로 문이 열렸다. 길드원들은 여태까지 거쳐 왔던 보스 방과는 현저하게 좁은 내부에 어리둥절했다.

[노아 : 왜 이렇게 좁아?]

[제로사이드 : 그러게; 여기서 무슨 보스를 잡으라는거야?]

내부로 들어서자 보스 방 중앙엔 활성화된 워프 하나만 덩그러니 있을 뿐이었다.

[무지개 요정 : 뭐야? 안전구역으로 가는거야?]

[KING Husband : 설마요;]

[율 : 우선 워프 타봐야 하는거 아니에요?]

[광인한 남자 : 뭐가 뭔지 알수가 없네...]

[질풍 : 워프 타요?]

[무지개 요정 : ㅇㅇ 타봐]

뭔가 다른 장치가 되어 있는 게 아닐까 싶어 질풍을 먼저 보냈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잠시 침묵을 유지하던 그들은 차례차례 워프를 탔다.

워프를 건넌 그들이 도착한 곳은 던전이 아닌 넓은 필드였다. 그리고 인벤토리에 있던 아이템과 장비들이 모조리 사라지고, 남은 건 채집용 나이프, 부싯돌, 지도, 물(1), 빵(2). 뿐이었다.

[무지개 요정 : 뭐야 이게?]

[질풍 : 저도 잘;;]

[노아 : 어.. 설마 이거 생존구역인가?]

[제로사이드 : 어?? 그거 발표만 나고 패치는 아직이잖아?]

[제로사이드 : 설마 이새끼들 이것도 잠수 패치했나????]

[KING Husband : 그... 오즈 공략에 시간 너무 걸린다는 항의 때문에 후반부 보스 방 건너뛰는 숏컷만든다던 그거?]

[광인한 남자 : 인벤토리 아이템 보니까 맞는가본데;]

[제로사이드 : 미친새끼들아냐;]

[율 : 그럼 여기 빠져나가면 마지막 방인거 아니에요?]

[질풍 : 헐! 기네! 우리 막보보는거야?!]

[KING Husband : 헐 그렇네!]

[광인한 남자 : 이거 완전 운 좋은거 아니야??]

[율 : 대박!]

[무지개 요정 : 정상패치 됐어도 숏컷에 걸릴 확률은 정말 낮을 텐데]

[제로사이드 : 그러게... 어떻게 보면 진짜 운 좋은거네]

[노아 : 악운과 행운이 번갈아가며 찾아오는 기분인데]

[율 : ㅋㅋㅋㅋ 보니까 상태창쪽에 배고픔, 목마름, 체력 게이지도 새로 생겨있어요]

[노아 : 뭔가 먹고 마시고 쉬어야 하는건가보다]

[KING Husband : 지도 보니까 가야할곳 표시도 되어있네]

[무지개 요정 : 아 진짜?]

[광인한 남자 : 근데 지도 자체가 되게 조악한데;]

[질풍 : 우선 가보자!]

[무지개 요정 : ㅇㅇ]

길드원들은 지도를 살펴보며 걸음을 옮겼다. 지도 자체는 조악해서 길이 제대로 나타나 있지는 않지만, 중간중간 이정표가 될 만한 것들이 그려져 있었다. 예를 들면 첫 번째로는 돌무덤.

걷기 시작하자, 배고픔, 목마름, 체력 게이지가 줄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피로 게이지 주는 속도가 어마어마했다. 모두는 적당히 ‘정답’일 것만 같은 방향을 잡아 걸으며 주변에 있는 나무 열매나 떨어진 나뭇가지, 나뭇잎 등을 채집했다. 채집되는 것들 주변으로 가면 저절로 인식돼서 어렵지 않게 이것저것을 모을 수 있었다.

[노아 : 체력 주는게 장난이 아닌데;]

[KING Husband : 쉬어서 좀 채워야 할것같아;]

[무지개 요정 : 근처에 쉴만한 곳을 찾아야 하나?]

[광인한 남자 : 그냥 바닥에 앉으면 차는거 아냐?]

[제로사이드 : 잠깐 저기 앞에 오두막아냐?]

제로사이드의 말에 모두는 전방을 바라봤다. 나무와 풀숲 사이 통나무로 지어진 작은 오두막이 보였다. 너 나 할 것 없이 오두막으로 향한 그들은 고즈넉한 내부에서 편하게 휴식을 취했다.

[질풍 : 이런 곳도 뒤져보면 아이템이 잇기 마련인데]

질풍은 휴식보다는 파밍에 더 관심을 보였다. 혼자 이리저리 오두막 안을 돌아다니더니 무언가를 발견한 듯 신이 나서 달려왔다.

[질풍 : 이거봐라! 빠루!]

[무지개 요정 : 빠루??]

[제로사이드 : 오 생존게임의 필수품아니냐?ㅋㅋㅋㅋ]

[질풍 : 난 만능키를 얻었소]

[노아 : 육체노동은 이제 다 네몫이다 ㅋㅋㅋ]

[질풍 : 헐?]

[KING Husband : ㅋㅋㅋㅋㅋㅋㅋ]

[율 : 형 체력 잘 채워둬 ㅋㅋㅋㅋ]

[질풍 : 헐?]

[광인한 남자 : 일해라 노예야]

[질풍 : 헐?]

휴식으로 체력은 채워졌지만, 배고픔과 목마름은 채워지지 않았다. 모두는 인벤토리에 있던 물과 빵으로 게이지를 채우고 다시 길을 나섰다.

[율 : 어 저기 저거 지도에 있던 돌무덤아니에요?]

율의 말대로 성인의 허리쯤 오는 높이의 돌무덤이 보였다. 모두는 드디어 첫 번째 표시에 왔다며 기뻐했다. 두 번째 표시는 탑이었다.

[질풍 : 그나저나 슬슬 물을 구하지 않으면 위험하겠는데;]

처음 인벤토리에 있던 물은 하나뿐이었다. 그것도 조금 전 모두 마셔버린 터라 물을 구해야 할 것 같았다. 근처에 물이 없나 세심하게 살피며 걸어가던 그들은 작은 연못을 발견할 수 있었다.

[노아 : 담기긴 하는데 먹지를 못하네 먹을 수 있는 물이 아닌가봐]

물을 발견했다는 기쁨도 잠시, 아무래도 식수는 따로 있는 모양이었다. 착잡한 기분에 침묵하던 그들 사이로 무지개 요정의 채팅이 올라왔다.

[무지개 요정 : 부싯돌이 있던걸보면 불을 피울수 있는 모양이던데? 물도 끓여야 하는거 아냐?]

무지개 요정의 말에 기다, 아니다, 대답도 없이 모두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주웠던 나뭇가지와 나뭇잎을 조합해서 모닥불을 만들고, 부싯돌을 이용해 불을 붙였다. 불을 피우자 무지개 요정의 예상대로 물을 끓일 수 있었다. 이로써 식수는 해결이었다.

불을 피운 김에 불씨가 꺼질 때까지 휴식을 취하는 게 어떻겠냐는 노아의 말에 모두는 수긍하며 모닥불 주위에 모여 앉았다. 불 앞에 앉으니 체력게이지가 더욱 빠르게 차올랐다.

[제로사이드 : 아 불피우면 체력이 더 잘차는구나]

[광인한 남자 : 어? 음식 나눠먹기 된다]

[KING Husband : 어디서 고기같은거 못구하냐 ㅋㅋ]

[질풍 : 캠프파이어냐?ㅋㅋㅋ]

[무지개 요정 : 빠루맨 고기 구해와]

[질풍 : ㅇㅅㅇa]

다음엔 고기를 구해서 나눠 먹자는 이야기를 나누며 모닥불이 꺼질 때까지 수다를 떤 길드원들은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짐승의 포효소리가 들렸다. 놀라 주변을 살펴보니 풀숲 사이, 숲 그림자 속에 숨어 있던 집채만 한 곰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곰은 위협적인 울음소리를 내며 길드원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광인한 남자 : 헐 뭐야?]

[KING Husband : 미친;]

[무지개 요정 : 빠루맨! 뭐하냐 빠루맨!]

[제로사이드 : 빠루맨! 선봉! 선봉!]

[질풍 : 왜 나한테 그래 ㅠㅠㅠ]

[율 : 어떡해요;;]

우왕좌왕하는 길드원들 틈에서 노아는 서둘러 꺼진 모닥불에 다시금 불을 붙였다. 불씨가 튀며 불꽃이 타오르자, 곰은 신경질적인 울음을 두어 번 내뱉더니 도망치듯 사라져 버렸다. 일단 물러서게 만들었지만, 더욱 화를 돋운 것처럼 보였다.

[질풍 : 뭐야씨ㅠㅠㅠ 곰나오는거야??]

[무지개 요정 : 불을 피울 수 있던 이유가 또 있었다는거지;]

[노아 : 휴식할때는 되도록 건물안에 있는게 좋겠는데]

[제로사이드 : 아니면 꼭 불을 피워놓던가;]

[KING Husband : 너무 무서운거 아니냐고..]

[율 : 여기서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ㅠ]

[광인한 남자 : 뭐.. 전멸하면 끝인거겠지]

[율 : ㅠㅠㅠㅠ]

슬슬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파랗던 하늘 한구석이 붉게 물드는 모습에 길드원들은 왠지 소름이 돋았다.

[KING Husband : 해도 지냐; 가지가지한다;]

[질풍 : 빨리 쉴곳 못찾으면 더 위험한거 아냐?]

[광인한 남자 : 빠루맨이 지켜주겠지]

[무지개 요정 : 채팅 칠 시간에 걸어라]

왕광풍은 대답도 못 하고 캐릭터를 움직여야만 했다. 초조해져 가는 마음으로 걸음을 재촉하기를 한참, 완전히 어둠이 내린 하늘과 동시에 낡고 무너져 가는 저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택은 무언가의 공격에 무너져 내린 듯 문과 창문이 박살이 나 있었고, 1층 대부분은 벽까지 무너져 있었다.

[노아 : 우선 불부터 피우죠]

[질풍 : 파밍도 해봐야지]

모두는 저택 이곳저곳에 모닥불을 피워가며 파밍을 시작했다. 그렇게 얻은 아이템은 빵, 물, 낡은 천, 알코올이었다. 그리고 저택의 2층을 둘러볼 때 창문 너머로 우뚝 솟은 탑을 발견했다.

모두는 2층의 안전해 보일 법한 방에서 밤을 지새우기로 했다. 필드에 처음 와서 밤이 되기까지 3시간 정도가 걸렸으니, 밤도 그 정도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불침번을 정해놓고, 짧게 눈을 붙여도 좋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게임 시간이 밤일 뿐이지, 현실은 화창한 대낮이라 쪽잠을 자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는 모닥불 앞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이런저런 얘기로 꽃을 피웠고, 3시간은 금방이었다.

[노아 : 무슨 소리 안나?]

노아는 창밖이 어슴푸레 밝아지는 동시에 작은 소음을 주워들었다. 의아한 듯 묻자, 모두 숨죽이며 주변의 소리를 들었다. 방 밖으로 묵직한 발소리가 들렸다.

[율 : 설마 곰이에요?]

[질풍 : 설마;]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무지개 요정이 꺼져가는 모닥불에 다시 불을 붙였고, 제로사이드가 일어나 방 밖을 살폈다. 자신들이 밤새 저택 이곳저곳에 지펴놓은 모닥불은 모두 꺼진 채였고, 멀리 육중한 몸을 자랑하는 곰이 무언가를 찾듯 바닥의 냄새를 맡으며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제로사이드 : 와씨... 모닥불꺼지니까 들어온 모양인데;]

[무지개 요정 : 진짜 곰이야??]

[제로사이드 : 응;]

[KING Husband : 미친! 어떡해?]

[무지개 요정 : 우선 방안엔 모닥불 피웠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싶은데..]

[노아 : 우선 방 입구에도 하나 더 피우죠]

[제로사이드 : 그러는게 좋겠다]

노아는 조심히 방 입구로 다가갔다. 그리고 빠르게 나뭇가지와 나뭇잎들을 조합해서 모닥불을 만들고, 불을 붙였다. 하지만 불꽃이 타오르는 소리에 곰이 시선을 돌렸다. 커다란 포효와 함께 묵직한 발소리가 빠르게 다가왔다. 곰은 모닥불 때문에 들어오지 못하는 듯했지만, 모두는 기겁하며 방 안쪽 벽에 달라붙었다.

[KING Husband : 빠루맨!!!!!]

[광인한 남자 : 물리쳐줘 빠루맨!!!]

[질풍 : 왜자꾸 나한테 지랄여!]

[무지개 요정 : 네가 빠루 주웠잖아!]

[질풍 : 가져가요! 가져가!]

[무지개 요정 : 왜이래 빠루맨!]

[제로사이드 : 이거 어떡하냐? 어떻게 빠져나가?]

[노아 : 뭐 미끼같은거 없나?]

[광인한 남자 : 빠루맨?]

[KING Husband : 빠루맨?]

[율 : 이 사람들이...]

[질풍 : 내편은 율이 밖에 없지ㅠㅠㅠ]

[율 : 빠루는 남겨야죠]

[질풍 : ?]

[광인한 남자 : 질풍맨?]

[KING Husband : 질풍맨?]

[무지개 요정 : 요 와썹맨 빠루를 넘기고 뛰어들어 맨]

[질풍 : 나 정말 님들이 유서깊게 싫다]

[노아 : 아 우리 파밍한걸로 횃불 만들 수 있지 않나?]

[제로사이드 : 어... 맞아! 천이랑 알코올 있었잖아]

[노아 : 횃불 만들어서 위협해보자]

두 사람의 말에 길드원들은 빠르게 나뭇가지, 낡은 천, 알코올을 조합해 횃불을 만들었다. 그리고 모닥불을 이용해 불을 붙였다. 모두가 모닥불을 들자, 곰은 주춤거리는 듯하더니 천천히 물러섰다. 그리고 몇 번 위협적으로 울어대다 도망쳐버렸다.

[KING Husband : 와씨;;; 앞으로 횃불도 필수일듯;]

[질풍 : ㅇㅇ;]

곰의 습격에 망연자실했던 모두는 또다시 곰이 올까, 서둘러 저택을 빠져나가 탑으로 향했다. 탑에 도착해 지도를 펼치고 다음 이정표를 찾았다. 처음 자신들이 나왔던 곳에서 구불구불한 길이 이어져 있고 길옆에 띄엄띄엄 돌무덤, 탑, 나무, 네모, 성이 그려져 있었다.

[율 : 나무? 지천에 깔린게 나무인데...]

[노아 : 뭔가 좀 특이한 점이 있는 나무가 아닐까?]

[율 : 그럴까요?]

[제로사이드 : 그러기를 바래야지..]

[무지개 요정 : 우선 가자 또 곰이 쫓아올라]

[질풍 : 무브무브]

모두는 조악한 지도에 의지해 길을 걸었다. 체력게이지가 바닥이 나면 모닥불을 피우고 앉아야 했기에 물가가 있으면 무조건 불을 피우고, 체력을 채우며 식수도 함께 만들었다. 빵을 아끼기 위해 나무 열매를 채집해 배고픔을 채웠다. 나무 열매는 소량의 목마름도 함께 채울 수 있었다.

[질풍 : 어 저기봐]

[광인한 남자 : 웬 은행나무?]

질풍이 가리킨 곳엔 노랗게 단풍이 든 은행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있었다. 온통 녹색인 숲속에서 노란 은행나무는 이질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율 : 저게 이정표 아닐까요?]

[무지개 요정 : 그럴싸한데?]

[노아 : 다음은 네모였지?]

[제로사이드 : 응]

[KING Husband : 근데 대체 네모.. 어쩌란 말임?]

[광인한 남자 : 뭐 네모난 무언가가 있겠지]

[질풍 : 대충대충이구만]

[광인한 남자 : 빠루맨은 빠우져]

[질풍 : 흥]

다음 이정표를 찾아 걷던 모두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말을 잃었다. 거대한 산이 나타난 것이었다. 돌아서 가다간 길을 잃을지도 모르고, 넘어서 가자니 막막하기만 했다.

[율 : 그래도 산 위에서 보면 이것저것 더 잘보이지 않을까요]

[무지개 요정 : 일리있네 내새끼 천재인가]

물러날 곳도 없고, 율의 말도 일리가 있기에 모두는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금세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다.

[노아 : 안돼 걸렸어 안올라가져 내려가]

[제로사이드 : 조금 빗겨서 살살 긁으면서 올라가봐]

[노아 : 아예 길이 아닌 것 같아]

[제로사이드 : 대체 몇 번째냐;]

산길은 대부분이 막혀 있고, 제대로 된 길을 찾기가 힘들었다. 순조롭게 올라가다가도 금세 막힌 길이 나왔고, 그럼 제대로 된 길을 찾아 산을 빙 돌아야만 했다. 무슨 미로에 갇힌 것만 같았다.

[무지개 요정 : 해 진다...]

[질풍 : 큰일이네; 여기는 암것도 없는데;]

[광인한 남자 : 물은 충분하니까 적당한 곳에 불부터 피우죠]

그들은 적당한 곳을 찾아 헤매다 나무가 빽빽해 보이는 장소에 불을 피웠다. 사방이 열려 있는 것보다는 나무가 방어막이 되어줄 것 같아서였다. 다행히 산속이라 나뭇가지와 나뭇잎은 차고 넘치도록 주운 덕에 사방으로 모닥불을 피워놓을 수 있었다.

[KING Husband : 근데 이게 대체 몇시간째야... 이거 진짜 숏컷 맞아?]

[제로사이드 : 그래도 이정표 2개밖에 안남았잖아]

[율 : 고생 끝에 낙이 온다잖아요]

[무지개 요정 : 그래 이새끼야 율이 좀 본받아라]

그때, 멀리서 짐승이 우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곰의 포효가 아닌 늑대의 하울링 같은.

[노아 : 이게 무슨 소리야?]

[질풍 : 아씨; 설마 곰말고도 뭐 있는거야?]

[제로사이드 : 혹시 모르니까 배고픔이랑 목마름은 채워두자]

[광인한 남자 : ㅇㅇ;]

만발의 준비를 마친 길드원들은 주변을 끊임없이 경계하며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먼저 찾아온 것은 아침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 빛나는 눈이었다.

[제로사이드 : 저게 뭐야;]

제일 먼저 이상을 발견한 제로사이드의 말에 모두는 주변을 둘러봤다. 나무 사이 짙은 어둠 속에서 형형하게 빛나는 눈들이 있었다. 문제는 한두 개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질풍 : 곰이야????]

[율 : 되게 많은데?;]

[KING Husband : 저거 설마 늑대야??]

[무지개 요정 : 오갓]

[노아 : 그래도 불 피워놨으니까 근처로는 못오겠지; 아침되면 횃불들고 쫓아내자]

[제로사이드 : 응;]

사방으로 피워둔 모닥불에 의지하며 해가 뜨기만을 기다리는데, 왠지 주변의 밝음이 점점 줄어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이유를 금방 발견할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온 늑대가 뒷발로 흙을 날려서 모닥불을 끄고 있던 것이었다.

자신들이 방심하고 있는 사이, 모닥불을 끄며 거리를 좁혀온 늑대들의 사나운 얼굴이 일렁이는 불꽃에 비쳤다. 모두는 혼비백산하여 횃불을 만들었다.

[KING Husband : 어떡해??]

[노아 : 우선 주변에 모닥불부터 더 만들자]

[광인한 남자 : 쟤들이 또 끌텐데?]

[노아 : 횃불로 쫓아내면 돼]

[제로사이드 : ㅇㅇ]

길드원들은 서둘러 모닥불을 만들었다. 주변이 밝아지자, 지척까지 다가왔던 늑대들이 꼬리를 말고 뒷걸음질 쳐 어둠 속에서 두 눈만을 빛냈다. 하지만 늑대들은 수시로 모닥불을 노리며 불을 끄려 했고, 모두는 그럴 때마다 횃불을 휘둘러 위협을 했다.

길던 대치 상태는 동이 터오며 끝을 맺었다. 주변이 밝아지자 늑대들은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본 뒤,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뒤돌아 숲속으로 사라졌다. 모두는 혹시 모를 습격을 대비해 횃불을 손에 든 채, 다시 길을 나섰다.

어찌어찌 산 중턱까지 오르자, 동굴이 하나 보였다. 게다가 주변으로는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없었다. 아무래도 동굴로 들어가야 할 것 같았다. 모두는 조심스레 동굴 안쪽으로 향했다.

대낮인데도 동굴 안쪽은 상당히 어두웠다. 모두는 한 번 더 횃불을 손에 들었다.

[광인한 남자 : 어디서 물소리 나지 않아?]

[질풍 : 어 난다]

둘러보니 동굴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모두는 마침 비어버린 물통에 물을 담았다.

[노아 : 이거 식수네]

[율 : 응 안끓여도 먹을 수 있어요]

[무지개 요정 : 목마름 풀로 채우고 다시 담아서 가자]

[제로사이드 : ㅇㅇ]

[질풍 : 근데 이 동굴은 어디까지 이어진 걸까]

[KING Husband : 정상까지 다이랙트면 좋겠다]

[광인한 남자 : 오 좋은 발상]

[질풍 : 근데 막 곰굴이고 ㅋㅋ]

[노아 : 저주를 하지 그러냐?ㅋㅋ]

[율 : ㅋㅋㅋㅋ]

[무지개 요정 : 말이 씨가 된다]

뒤쪽에서 낮은 포효소리가 동굴 벽을 타고 울렸다. 놀란 모두가 돌아보자 일렁이는 횃불 때문에 밝아진 동굴 벽에 동물의 그림자가 비쳤다. 정말 말이 씨가 된 것이었다.

[KING Husband : 빠루맨!!!!]

[광인한 남자 : 너 때문에 빠루맨!!!]

[질풍 : ㅠㅠㅠㅠㅠㅠ]

곰은 순식간에 모습을 드러냈고, 날카로운 송곳니를 내보이며 쫓아왔다. 모두는 혼비백산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사방으로 나뉘는 갈림길이 나왔고, 모두는 본의 아니게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홀로 남게 된 율은 불안한 마음에 주변을 둘러봤다. 모두와 떨어지게 됐지만, 다행히도 곰이 자신을 따라오진 않은 듯했다. 율은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 볼까 했지만, 이대로 나아가기를 택했다.

동굴 속이라 먹을 것을 구하기는 어려웠지만, 물은 구하기가 쉬웠다. 동굴 속에서 구하는 물은 모두 식수라 담아서 바로 마실 수 있었다. 율은 모닥불을 피워 바닥나 버린 체력을 채우고, 인벤토리에 남은 하나뿐인 빵으로 배고픔도 채웠다. 길드원들 없이 혼자 있으려니 우울하고 외로워지는 것 같았다. 말없이 앉아 모닥불만 바라보던 율은 체력이 다 채워짐과 동시에 미련 없이 자리를 떴다.

한참을 걷자 횃불의 붉은 빛이 아닌, 외부에서 새어 들어오는 불빛으로 동굴 내부가 점차 밝아졌다. 율은 횃불을 버리고, 전방에 보이는 출구로 동굴을 탈출할 수 있었다. 밖으로 나와 보니 KING Husband의 바람대로 산 정상이었다.

하지만 먼 곳은 부옇게 안개가 끼어 있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산 정상에서 얻는 수확은 없었지만, 동굴을 빠져나왔다는 안도감에 서둘러 산에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다음 이정표에 도착하면 흩어진 길드원들을 만날 수 있을 터였다.

지도를 보며 차근차근 걸어가던 율은 전방에 손톱만 하게 보이는 캐릭터 두 명을 발견했다. 누구인지는 몰라도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자 멀어서 보이지 않던 채팅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무지개 요정 : 넌 빠루만 들었지 할줄아는 게 뭐야!]

[질풍 : 아니; 어떻게 빠루를 들고 곰한데 덤벼요!]

[무지개 요정 : 그럼 그건 뭣하러 주워왔어!]

[질풍 : 이거슨...생존의 필수품..]

[무지개 요정 : 몇시간 동안 써먹어 본적이 없는데 필수품은 얼어죽을]

[질풍 : 마지막 순간엔 장렬하게 빛을 발할거예요]

[무지개 요정 : ㄲㅈ]

[질풍 : ㅠ]

율은 반가운 마음에 두 사람을 불렀다.

[율 : 길마니뮤ㅠㅠㅠ 풍혀유ㅠㅠ]

[무지개 요정 : 헐!]

[질풍 : 헐! 율이다!]

이산가족 상봉하듯 세 사람의 격렬한 재회를 시작으로 속속들이 길드원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지개 요정 옆에 딱 붙어 있던 율은 노아를 발견하자마자 그의 곁으로 달려가 버렸고, 무지개 요정은 투덜거리며 제로사이드를 기다렸다.

모두가 다 모인 것은 해가 지고 난 후였다. 제일 늦게 도착한 것은 KING Husband였는데, 곰에게 공격을 당한 통에 이동속도가 느려진 탓이었다. 모두는 우선 모닥불을 피워놓고 둘러앉아 식량과 식수가 바닥이 난 것에 대해 걱정을 했다.

[노아 : 우선 음식이나 물은 남아 있는 사람꺼 나눠먹기하자]

[제로사이드 : 응 그리고 날 밝으면 찾자]

[KING Husband : 그나저나 이정표인 네모는 어디있는거야]

[광인한 남자 : 지도상으로 보면 분명 이 근처인데]

[무지개 요정 : 아무리 찾아도 없더라]

[질풍 : 길을 잘못 온걸까?]

대화를 나누고 있는 길드원들의 머리 위로 순간 돌풍이 불었다. 동시에 무언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율은 의아함에 화면을 위로 올렸다. 자신의 바로 머리 위 나뭇가지에 무언가가 매달려 있었다. 네모난 이정표 같은.

[율 : 파르한?]

[노아 : 뭐?]

[율 : 저기 나무위 이정표에 화살표랑 같이 쓰여있어요 파르한이라고]

[노아 : 이정표?]

[무지개 요정 : 이정표?]

모두는 화면을 올려 머리 위를 바라봤다. 율의 말대로 나뭇가지에 네모난 무언가가 매달려 흔들리고 있었다.

[제로사이드 : 이정표가 진짜 이정표였을 줄이야...]

[질풍 : 저렇게 만들어 놓으면 어떻게 눈치를 채란 말임..]

[무지개 요정 : 아무튼... 길은 제대로 찾아가고 있나봐 이제 마지막 이정표만 찾으면 되네]

[제로사이드 : 숏컷이라고 좋아했더니 은근 복잡하고 머리아프네..]

[노아 : 지금은 패치 직후라 오히려 쉬운거 아냐? 나중가면 숏컷도 더 복잡하고 어렵게 변할 듯]

[무지개 요정 : ㅇㅇ 그럴듯]

그때, 멀리서 늑대의 하울링이 울렸다. 모두는 또다시 덮쳐올 늑대 무리의 습격에 불안해했다. 하지만 늑대보다 먼저 모습을 드러낸 건 곰이었다. 곰은 모닥불 바로 앞까지 다가와 사납게 그르렁거리다 집채만 한 몸을 과시하듯 두 발로 섰다.

그리고 커다란 앞발로 모닥불을 날려버렸다. 아비규환은 순식간이었다. 곰이 모닥불을 없애는 동안 어디선가 늑대 무리가 나타나 달려들었다. 꺼진 모닥불 사이로 파고들어 사납게 이를 드러내자, 길드원들은 횃불을 만들어 볼 새도 없이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처를 입어 이동속도가 느려진 KING Husband는 도망치지 못했다. 늑대에 물려 전투 불능에 빠진 KING Husband를 두고, 누구 하나 도움을 주지 못하고 제 목숨 지키기에만 급급했다.

길드원들이 사방으로 퍼지자, 모닥불을 없애던 곰도 누군가의 뒤를 쫓았다. 곰에게 쫓기는 건 질풍이었다. 질풍은 혼비백산 도망치다 두 눈을 질끈 감고 빠루를 마구 휘둘러댔다.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빠루에 얻어맞은 건지 곰이 비명을 지르며 물러섰다.

질풍은 곰이 물러선 순간을 놓치지 않고 서둘러 횃불을 만들어 들었다. 그리고 횃불을 마구 휘둘러대며 곰을 쫓아내고, 흩어진 길드원들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횃불도 들지 않은 길드원들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던 질풍은 그대로 지도를 펼치고 다섯 번째 이정표인 성을 향했다. 한 명이라도 살아서 도달해야만 했다.

***

곰과 늑대 때문에 엉망이 된 수라장에서 가까스로 도망친 율은 서둘러 횃불을 만들어 들었다. 가득 채웠던 체력도 한참을 달린 탓에 절반 가까이 줄어 있었다. 게다가 정신없이 달린 탓에 지도를 봐도 자신이 지금 있는 곳이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물도 식량도 없었다. 망연자실한 마음에 그냥 앞이라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걷기만 했다.

한참을 그렇게 걷고 있는데, 어둠 속에 불빛이 일렁였다. 나무 사이에 가리고, 다시 나타나는 건지 깜빡거리고 있었다. 율은 서둘러 앞선 불빛을 향해 달렸다. 그리고 누군가의 뒷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율 : 으어ㅠ퓨ㅠ 풍형!!!]

[질풍 : ??? 율아!!]

[율 : 풍형ㅠㅠㅠㅠ 다행이다ㅠㅠ]

[질풍 : 다른 사람들은?]

[율 : 몰라ㅠ]

[질풍 : 완전히 다 흩어진건가...]

[율 : 길도 잃은 것 같아ㅠ]

[질풍 : 길은 괜찮아 내가 이정표에 있던 화살표 방향으로 뛴거거든]

[율 : 아 진짜??]

[질풍 : 응 그래서 우선 마지막 이정표 있는대로 가려고]

[율 : 그럼 곰이랑 늑대가 쫓아오기 전에 빨리 가자]

[질풍 : ㅇㅇㅇ]

두 사람은 서둘러 길을 재촉했다. 하지만 배고픔과 목마름이 제대로 채워지지 않아 진행은 지지부진하기만 했다. 어두워서 주변 사물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나무 열매를 찾는 것조차 힘들었다. 하지만 간헐적으로 무언가를 찾아 먹을 수는 있었다.

체력이 다 떨어져서 쉴 곳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 작은 샘물을 발견한 두 사람은 서둘러 모닥불을 피우고 물을 끓였다. 이로써 목마름은 해결이었다.

[율 : 해는 언제 뜨지...]

[질풍 : 그니까ㅠ 유독 더 긴것같아]

[율 : 그래도 혼자 아니라서 다행이다]

[질풍 : 나도ㅠ]

[질풍 : 나 아까 길마님이랑 둘만 있었는데 겁나 갈굼당했어ㅠ]

[율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체력을 채우는 와중, 하늘이 푸르스름하게 밝아 오기 시작했다.

[질풍 : 해뜨나봐!]

[율 : 와 한시름 놓겠다 ㅠㅠ]

[질풍 : 이제 먹을것만 구하면 되는데..]

[율 : 차라리 피걱정 하는게 맘편하지 ㅠㅠ]

[질풍 : 맞아 그건 네가 힐해주면 끝이니까]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던 두 사람 사이로 늑대의 하울링 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채팅이 뚝 끊기고 약속이라도 한 듯, 두 사람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서둘러 걸음을 재촉했다.

날이 밝으니 나무 열매를 찾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나무 열매는 배고픔을 아주 소량 채워주지만, 한번 발견할 때마다 그 양이 많으니 배고픔의 3할은 채우면서 나아갈 수 있었다. 뒤쫓아오며 거리를 좁혀오는 늑대에게서 도망치듯 달리다 걷기를 반복하던 두 사람은 숲 너머로 높게 치솟은 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성의 크기가 작게 보이는 걸 보니 거리가 아직 많이 남은 듯했다. 조바심이 두 사람을 부추겼지만, 두 사람은 서두르거나 안달 내지 않고, 똑같은 페이스로 길을 걸었다. 길가에 나무 열매가 보이면 따서 배고픔을 채우고, 체력이 바닥나면 모닥불을 피워놓고 앉아 체력을 채웠다. 그러다 멀리서 하울링 소리가 나면 체력이 다 차지 않더라도 서둘러 자리를 비웠다.

그렇게 차근차근 걷다 보니 어느새 울창한 숲은 끝나 있고, 거대한 성과 성문이 나타났다. 그리고 성문 앞에는 노아와 제로사이드가 있었다.

[노아 : 율아]

[율 : 형!]

[질풍 : 형들!]

[제로사이드 : 잘 찾아왔네 ㅋㅋㅋ]

[SYSTEM] [고여 있는 왕국, 파르한을 발견하였습니다.]

네 사람이 만나자, 화면 상단에 시스템 알림 글이 떠올랐다. 그리고 성문 앞에 워프가 열렸다.

[노아 : 뭐야? 살아 남은게 우리가 다야?]

[제로사이드 : 그런 모양인데?]

[율 : 우리 숏컷 클리어한거예요?]

[질풍 : 대박!!!]

[제로사이드 : 워프 타자]

[율 : 죽은 사람들은 어떡해요?]

[노아 : 워프타면 같이 날릴 듯]

[질풍 : ㅇㅇㅇ]

노아의 말에 격하게 긍정을 표한 질풍이 냅다 워프를 탔고, 나머지 세 명도 줄지어 워프를 사용했다. 워프를 통해 이동한 곳은 붉은 벨벳 카펫이 길게 깔려 있고, 천장엔 화려한 샹들리에와 양옆으로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즐비한 복도였다. 그리고 모두의 장비도 다시 돌아와 있었다.

[KING Husband : 나를 그렇게 버리고 가다니...]

[무지개 요정 : 야 제로 넌 살아서 온 모양이다?]

[광인한 남자 : 길마님은 날 버리고 갔으면서 그런말이 나와요?]

동시에 생존 구역에서 전투 불능이 되었던 세 사람이 나타났다. 그들은 모두 간당간당한 빨피 상태였다. 율은 서둘러 세 사람에게 힐을 넣었다.

[제로사이드 : 누구를 챙길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잖아; 노아도 율이 못챙겼는데;]

[무지개 요정 : 뭐라?! 그럼 율이는 어떻게 왔어?]

[노아 : 율이는 풍이랑 왔더라고요 ㅋㅋ]

[율 : 풍이형이랑 있어서 든든했어요 ㅋㅋㅋ]

[질풍 : 훗 빠루로 곰을 물리치고 극적으로 율이를 만났지 내 빠루가 불을 뿜는걸 님들이 못봐서 안타까움]

[광인한 남자 : 아조까쇼]

[질풍 : 진짜야!]

[KING Husband : 좆까]

[질풍 : 아 진짜라고!!]

[무지개 요정 : ㄲㅈ]

[질풍 : 아 왜요~!!]

[노아 : 근데 안전구역없이 바로 보스 방으로 날린건가?]

[제로사이드 : 그런 모양인데;]

[KING Husband : 길은 하나뿐이니 가보면 알겠지!]

[질풍 : 그렇겠지!]

[율 : 그렇겠죠!]

[노아 : 왜 이렇게 신이 났어 ㅋㅋ]

[율 : 우리 오늘 진짜로 클리어 할수도 있는 거잖아요!]

[노아 : 그렇긴 하지 ㅋㅋㅋ]

[질풍 : 빨리 가보자! 막보 뭔지 진짜 궁금해!]

길다고 생각했던 복도는 얼마 걷지 않아 끝을 보였다. 눈앞에 나타난 새하얀 아치형 문은 서로 마주 보며 기도하고 있는 여신의 모습이 양각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엔 보스 방문을 열 수 있는 장치가 있었다.

[SYSTEM] [장치의 조건이 충족되어 보스 방의 문이 열립니다.]

장치를 활성화하자 곧바로 문이 열리고, 보스 방이 드러났다. 내부는 팔각형 모양으로 바닥엔 부드러운 카펫이 깔려 있고, 내부를 빙 돌아 거대한 창문들이 늘어서 있었다. 창문 앞, 12시, 4시, 8시 방향엔 흰 로브를 뒤집어쓴 신관이 한 명씩 서 있었다. 그리고 전방엔 금과 붉은 보석으로 장식된 왕좌가 있었다.

[제로사이드 : 정보가 전혀 없어서 리딩은 무리겠다]

[노아 : 각자 판단해서 움직여야지 뭐]

[KING Husband : 앵간해선 율이랑 노아형은 살아남을 테니 전멸 걱정은 한시름 놓네]

[광인한 남자 : 그러게]

[질풍 : 형도 살아남을 노오력을 좀 해봐 노오력을]

[광인한 남자 : ...]

[KING Husband : 넌 다음에 캐릭터 만들면 유약한 남자해라]

[질풍 : 개 안어울렼ㅋㅋㅋㅋㅋㅋㅋㅋㅋ]

[광인한 남자 : 쒸익..쒸익]

[무지개 요정 : 저기 저 로브 둘러쓰고 있는게 보스인건가?]

[율 : 되게 임팩트 없게 생겼네요]

[제로사이드 : 진보는 아닐 듯?]

[노아 : 저거 잡으면 진보가 나온다던가 하는거겠지]

[무지개 요정 : 탱은 노아가 해야겠지?]

[제로사이드 : ㅇㅇ]

[KING Husband : ㅇㅇㅇ]

[질풍 : ㅇㅇㅇㅇ]

[광인한 남자 : ㅇㅇㅇㅇㅇ]

[율 : ㅇㅇㅇㅇㅇㅇ]

[노아 : ㅋㅋㅋㅋ 우선 들어갈게요]

노아의 말에 율이 서둘러 버프를 돌렸다. 버프를 받은 노아가 맵 중앙으로 다가가자, 창문 앞에 서 있던 신관들이 중앙으로 다가와 서로 등을 지고 삼각형 모양으로 섰다. 노아를 봐도 반응하지 않는 걸 보면 선공은 아닌 모양이었다. 잠시 반응을 보듯 서 있던 노아가 더 다가가지 않고 스킬을 사용했다.

(카타스트로페)

노아의 등 뒤로, 무수한 검들이 부채처럼 펼쳐졌다.

(퀴리오스)

그리고 그 무수한 검들이 빗발치듯 신관들에게 날아가 주변을 종횡무진 가로지르며 공격을 가했다. 노아의 공격이 시작되자 가만히 서 있던 신관들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무언가가 일어날 거라는 건 알 수 있었지만, 무엇이 일어나는지는 가늠도 되지 않았다.

(인 라피뎀)

율은 대비하듯 방어 스킬을 한 번 더 사용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일어난 일에 기함하고 말았다.

인 라피뎀의 이펙트가 끝나자마자, 무언가에 얻어맞는 듯 파티원 전원에게 데미지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연속으로 끊임없이 들어오는 데미지는 인 라피뎀의 방어조차 통하지 않았다.

[파티원 질풍님이 사망하였습니다.]

[파티원 KING Husband님이 사망하였습니다.]

[파티원 무지개 요정님이 사망하였습니다.]

율이 패닉에 빠진 사이, 파티원들이 줄지어 전투 불능에 빠졌다.

[KING Husband : 뭐야;]

[질풍 : 뭔일이 일어난거야?]

[무지개 요정 : ??]

율은 서둘러 정신을 차리고, 전체 힐인 ‘플로레스 니비움’을 사용했다. 그리고 전투 불능이 된 파티원을 살리는 것보다, 살아 있는 파티원에게 집중했다.

줄기차게 들어오던 데미지가 멈춘 건 한참이 더 지나서였다. 율은 그제야 리저렉션을 사용해 파티원들을 살려내고, 다시 한번 버프를 돌렸다.

[노아 : 아무래도 데미지가 스플래쉬로 돌아오는 모양인데]

[제로사이드 : 그런거야??]

[노아 : 정확하진 않은데 내가 공격했던 횟수랑 우리가 공격당했던 횟수가 같아]

[질풍 : 개아파ㅠㅠ]

[KING Husband : 이렇게 쭐떡 죽어버릴 줄이야;]

[무지개 요정 : 율이 방어도 안통하는 것 같더라]

[율 : 진짜 놀랐어요...]

[광인한 남자 : 저거 설마 우리가 하는 공격 전부 스플래쉬로 되돌리는거야? 죽을때까지?]

[제로사이드 : 데미지도 크고 공격 속도도 빨라서 율이 혼자서는 커버가 안될것같은데]

[노아 : 포션 써야지뭐]

[무지개 요정 : 한꺼번에 공격 퍼부으면 우리가 오히려 감당이 안될테니까 한명씩 돌아가면서 공격하자]

[질풍 : 타임어택 없으려나요?]

[KING Husband : 모르지 뭐...]

[광인한 남자 : 저거 피 빠지는 속도 보면 한참은 걸릴 것 같은데]

[KING Husband : 아니면 길마님이랑 노아형, 제로형만 공격해요. 세 사람이 지금 여기서 공 제일 높잖아]

[KING Husband :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하르바르드 연주하고 있을게]

하르바르드의 노래는 범위 안에 있는 아군의 체력을 높이고, 주기적으로 소량의 체력을 회복시켜주는 민스트럴의 스킬이었다.

[율 : 괜찮을 것 같아요 거기에 제가 전체 힐 써주면 괜챃지 않을까요]

[노아 : 음... 해볼만 할것같긴 해]

[무지개 요정 : 응 나도 괜찮은 의견같아]

[제로사이드 : 그럼 그렇게 하자]

노아, 무지개 요정, 제로사이드 세 사람의 허락이 떨어지자 KING Husband는 곧바로 하르바르드의 노래를 연주했다. 그리고 공격에 가담하지 않는 율, 질풍, 광인한 남자와 원거리 공격을 하는 무지개 요정도 범위 안으로 들어왔다.

세 사람은 차례차례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리고 율은 체력이 빠르게 줄어드는 파티원들에게 정신없이 힐을 넣었다.

노아에겐 체력을 지속해서 회복시키는 ‘오라티오’를 걸어 놓았기에 가끔 체력을 대량 회복시키는 ‘볼렌테 데오’를 넣어주기만 하면 충분했다. 제로사이드도 한 텀의 공격 정도는 위험하지 않게 넘기는 정도였기에 두 사람에게는 손이 많이 가지 않았다.

고비를 제일 많이 넘기는 건 질풍이었다. 바탈을 조금씩 찍는 다른 캐릭터와는 다르게 질풍은 극어질 캐릭터로 바탈을 전혀 찍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율의 힐을 제일 많이 받는 것도 질풍이었고, 포션을 제일 많이 사용하는 것도 질풍이었다.

[질풍 : 나 존나 민폐같아ㅠ]

[율 : 아니야ㅠㅠㅠ]

[광인한 남자 : 민폐 빠루맨]

[KING Husband : 무소용 빠루맨]

[질풍 : 누가! 빠루 소리를 내었는가?]

한참을 공격하고, 공격받고를 반복하던 중에 대뜸 노아가 말했다.

[노아 : 내가 두 번 연속으로 할게]

[제로사이드 : 엉?]

[노아 : 반사시켜보려고]

[제로사이드 : 아아 ㅇㅇ]

(디 블라우에 플라메)

퓨리나이트의 궁극기가 신관들에게 직격했다. 푸른 불꽃을 두른 검들이 범위 안에 마구잡이로 솟구쳐 올라 신관들을 공격했고, 푸른 불꽃을 남기며 지속적인 데미지를 입혔다. 노아의 공격이 끝나자 데미지가 스플래쉬 되어 파티원들에게 돌아왔다.

(엑소시아)

동시에 노아가 스킬을 사용했다. 되돌아오는 공격을 고스란히 받으며 데미지를 축적시킨 노아는 그것을 다시 신관들에게 되돌려주었다. 노아의 공격으로 한 명의 신관이 쓰러졌다. 쓰러진 신관은 로브만 널브러트린 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어진 제로사이드의 공격에 또 한 명의 신관이 쓰러졌고, 무지개 요정의 공격으로 또 한 명의 신관이 쓰러졌다. 신관들이 쓰러진 자리엔 로브만 널브러져 있을 뿐이었다.

[제로사이드 : 이제 진보나오나?]

[노아 : 너무 조용한데?]

[질풍 : 저게 진짜 막보 였던거 아냐??]

[무지개 요정 : 꿈깨라]

[질풍 : ㅇㅅㅇ;]

[율 : 어 저기]

맵 중앙, 남아 있던 신관들이 로브가 울룩불룩하게 부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차 부피를 키우며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세 벌의 로브가 한데 엮이고, 형태를 잡아가기 시작하더니 문양과 장신구 등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태프를 한 손에 든 대 신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 신관의 등장에 모두가 숨죽이는 사이, 대 신관은 스태프를 바닥에 한 번 강하게 내리쳤다. 거대한 진동이 스태프를 두드린 곳에서부터 번지듯 퍼졌고, 울림을 시각화한 듯한 이펙트와 함께 대 신관을 중심으로 거대한 마법진이 바닥에 그려졌다.

마법진은 큰 원과 원안에 펜타클 모양이 있을 뿐 조금 허전한 모양새였다. 하지만 대 신관이 주문을 외기 시작하자, 알 수 없는 문양과 글씨들이 조금씩 새겨지기 시작했다.

[무지개 요정 : 왠지 저 마법진이 완성되면 안될것같지 않냐?]

[노아 : 우선 공격할까요?]

[제로사이드 : ㅇㅇ 가랏 노아몬!]

[노아 : 피카피카다 이새끼야]

[KING Husband : ....제로형이랑 어울리더니 노아형 약간 이상해진것같아]

[질풍 : 피카피카라니..]

[광인한 남자 : 꼬북꼬북보단 낫잖냐]

[율 : 못 놀게 해야 할까봐요...]

[제로사이드 : .......]

[무지개 요정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원들의 채팅에 노아는 웃음이 터졌다. 정확하게는 율의 채팅에. 하지만 별다른 말 없이 대 신관에게 향했다. 맵 중앙에서 주문을 외우고 있던 대 신관은 노아가 다가오자 외우던 주문을 멈추고, 땅에 꽂아두었던 스태프를 들어 올렸다.

대 신관의 행동에 마법진이 번쩍였다. 그리고 마법진에서 기공파 같은 것이 연속으로 터져 나왔다. 기공파는 길드원들 전체를 후방으로 날려버리며 데미지를 입히기 시작했다.

[파티원 질풍님이 사망하였습니다.]

[파티원 KING Husband님이 사망하였습니다.]

[파티원 무지개 요정님이 사망하였습니다.]

[파티원 제로사이드님이 사망하였습니다.]

[파티원 광인한 남자님이 사망하였습니다.]

[질풍 : ?!]

[광인한 남자 : 와씨 뭔데;]

[제로사이드 : 뭐냐..]

[무지개 요정 : 미친거아냐;]

[KING Husband : 도랏맨?]

손가락 하나 까딱해 보지 못하고 전투 불능에 빠진 길드원들은 황당함이 담긴 원성을 쏟아냈다. 살아남은 노아와 율도 어안이 벙벙하긴 마찬가지였다. 가까이 있을수록 데미지가 더 들어오는 건지, 죽지는 않았지만, 노아가 입은 피해도 상당했다.

율은 서둘러 노아와 자신에게 힐을 하고, 전투 불능이 된 길드원들을 부활시켰다. 그리고 다시 한번 전열을 가다듬었다.

[제로사이드 : 저것도 진보처럼 보이진 않는데 무슨 데미지가 이렇게 무식해?]

[KING Husband : 근데 우리 왜 공격당한거야?]

[노아 : 몰라 그냥 다가가기만 했는데]

[율 : 제로형이랑 광이형까지 죽어버릴 정도면 너무 위험한거 아니에요?]

[무지개 요정 : 그러게 이러다 전멸각 나오는거 아님?]

[질풍 : 노아형 있어서 앵간해선 전멸은 안나지 않을까요?]

[광인한 남자 : ㅇㅇ]

길드원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대 신관은 다시 주문을 외기 시작했고, 마법진의 큰 원 안쪽으로 문자가 한 바퀴 빙 돌아 새겨졌다. 쿠르릉, 하고 무언가가 무너질 듯한 소리가 울렸다.

난데없는 소음에 모두가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 바닥에 새겨졌던 마법진이 대 신관의 주변으로 축소되듯 줄어들더니 천천히 회전하다 터지듯 다시 맵 전체로 퍼졌다. 동시에 길드원의 전투 불능 알림이 또다시 줄지었다.

[파티원 질풍님이 사망하였습니다.]

[파티원 KING Husband님이 사망하였습니다.]

[파티원 무지개 요정님이 사망하였습니다.]

[파티원 제로사이드님이 사망하였습니다.]

[파티원 광인한 남자님이 사망하였습니다.]

[질풍 : 아 뭐야; 또;]

[광인한 남자 : 이번엔 뭔데;]

[제로사이드 : 오류아냐? 암것도 안했잖아!]

[무지개 요정 : ....]

[KING Husband : 짜증나네]

[노아 : 뭐가 어떻게 된거야]

패닉에 빠진 모두를 두고, 율은 서둘러 리저렉션을 시전했다. 그러는 도중 눈에 띈 것이 있었다.

[율 : 저기... 마법진 모양 바뀌지 않았어요?]

웅성거림 속에서 율의 채팅이 침묵을 유도했다. 모두는 말없이 맵 전체에 퍼진 마법진을 살폈다. 한 번 축소되었다 다시 커진 마법진은 율의 말대로 모양이 바뀌어 있었다. 큰 원에 펜타클이 있는 기본 형태는 바뀌지 않았지만, 알 수 없는 문자가 원 안에 덧그리듯 쓰여 있었고, 펜타클 주위에도 다른 문양들이 얽히듯 복잡하게 그려져 있었다.

[무지개 요정 : 아무래도 저거 완성되면 진보 나오는 듯?]

[질풍 : 게다가 마법진이 조금씩 진행될때마다 자동공격 되는 것 같은데;]

[제로사이드 : 아니; 처음 공격보면 대 신관한테 다가가지도 못하는 것 같은데 뭔수로 막아;]

[KING Husband : 어딘가 공격이 통하지 않는 안전구역이 있는건 아닐까?]

[율 : 진짜 그런거 아닐까요?]

[광인한 남자 : 그걸 알아보려면 우린 오조오억번 죽을텐데]

[노아 : 다 눕혀놓고 율이랑 나랑 둘이서 알아볼게]

[질풍 : 우린....병풍...?ㅠ]

[KING Husband : 일리 있구만 뭘...]

[광인한 남자 : 맞아.. 우리 눕혀놓고 하는게 더 이득이야... 잼스톤하고 포션도 아낄겸]

[무지개 요정 : 그럼 우리가 맵 여기저기로 퍼져 있어볼게 운좋게 얻어걸릴지 어떻게 알아]

[제로사이드 : ㅇㅇ]

[노아 : 그럼 각자 자리 잡으면 갈게요]

노아의 채팅을 끝으로 길드원들이 맵 이곳저곳으로 퍼졌다. 적당히 자리를 잡자, 노아가 대 신관에게 다가갔고, 여지없이 기공파가 터져 나왔다. 율과 노아를 제외한 길드원들이 속절없이 전투 불능에 빠졌다. 적어도 그들이 서 있던 곳에 안전구역은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 후로도 노아는 많은 공격을 해보았다. 원거리 공격은 한 대만 맞아도 기공파가 터지며 다음 공격을 무효로 만들었고, 근거리 공격은 검 끝도 대보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하던 노아는 대 신관의 후방을 공격했다. 여지없이 기공파가 터져 나왔지만, 처음으로 대 신관을 공격할 수 있었다.

“아… 뒤를 잡으면 되네.”

나지막한 노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돌파구가 생기자, 율은 서둘러 전투 불능이 된 길드원을 부활시켰다.

“뒤를 잡으면 된다고?”

“응.”

[KING Husband : 근데 기공파는 무조건 터지는 건가?]

“그런 것 같아. 다가가도 터지고, 때려도 터지는 듯.”

[KING Husband : 헐?]

[광인한 남자 : 그럼 우리는 계속 죽어 있어야 하는 거야?]

[무지개 요정 : 딜로스나]

[광인한 남자 : 아...]

[율 : 그럼 어떡할까요?]

“포션 먹으면서 공격하는 수밖에 없어.”

“딜로스도 딜로스인데, 포션 남발하다가 막보에서는 어떡하려고? 지금도 이런데.”

확고한 노아의 목소리에 제로사이드가 반대를 하고 나섰다. 하지만 이어진 율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율 : 기공파를 맞으면 날아가기 때문에 제가 힐을 드릴수가 없어요 포션밖에 방법이 없는데..]

“아… 그것도 그렇네.”

[질풍 : 우리가 죄인이요...]

[KING Husband : 안전구역 찾자는건 포기한거야?]

[무지개 요정 : 뒤가 잡히는걸 보면 안전구역은 없을 듯]

그때, 마법진의 펜타클을 따라 알 수 없는 문양과 문자들이 덧그려졌다. 쿠르릉, 하는 울림과 함께 천장의 흔들리며 파편들이 쏟아져 내렸고, 바닥의 마법진이 또 한 번 대 신관의 주변으로 빨려들 듯 줄어들더니 천천히 회전하다 터지듯 다시 맵 전체로 퍼졌다.

[파티원 질풍님이 사망하였습니다.]

[파티원 KING Husband님이 사망하였습니다.]

[파티원 무지개 요정님이 사망하였습니다.]

[파티원 제로사이드님이 사망하였습니다.]

[파티원 광인한 남자님이 사망하였습니다.]

[KING Husband : 아 좀!]

[무지개 요정 : 방심을 못하겠네;]

[질풍 : ㅠㅠ]

[제로사이드 : 뭐하는거여]

[광인한 남자 : 뭐이렇게 픽픽 죽냐;]

율은 서둘러 전투 불능에 빠진 길드원들을 부활시키고 버프를 돌렸다.

[질풍 : 아무래도 나는 스펙이 안되는 건가봐;]

[노아 : 근데 어질캐릭터는 어쩔수 없을것같은데]

[율 : 맞아 형]

[KING Husband : 광이도 죽잖냐]

[광인한 남자 : 미안하게 됐수다]

[무지개 요정 : 광이만 죽었냐 나도 죽고 민우도 죽었는데]

[제로사이드 : 맞아 이건 스펙문제는 아니야!]

[노아 : 스스로 변호하는 꼴봐라]

[제로사이드 : 들켰냐?]

[노아 : 들켰다]

[무지개 요정 : 어차피 죽을거 공격이나 실컷 퍼부어보자]

[광인한 남자 : 맞아요!]

[질풍 : 뚜까패!!]

[KING Husband : 야 그거 진짜 오랜만이다 ㅋㅋㅋㅋㅋㅋㅋ]

[율 : 맞아욬ㅋㅋㅋㅋㅋㅋㅋㅋ]

[무지개 요정 : 우선 당장 2페이즈 넘기는게 중요하니까 포션 신경쓰지 말고 해보자]

[제로사이드 : 맞아 지금이야 패턴이 괴랄해서 그렇지 원래는 포션없어도 율이가 우리 다 커버하잖아]

[노아 : 그래 그럼 율이만 믿고 가보자]

[율 : :D]

[무지개 요정 : 어흌ㅋㅋㅋ귀여웤ㅋㅋㅋㅋ]

[질풍 : :D]

[무지개 요정 : (무시)]

[질풍 : ㅠㅠ]

모두가 공격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 길드원들은 일제히 대 신관의 후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타이밍에 맞춰 한꺼번에 공격을 시작했다. 그리고 되돌아오는 기공파에 맞아 날아가며 정신없이 포션을 먹었다. 포션은 정말 엄청난 속도로 줄어갔지만, 그만큼 대 신관의 체력도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길드원들의 공격이 줄기차게 이어졌기 때문에 마법진의 그려지는 속도가 현저하게 줄어들긴 했지만, 그렇다고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마법진에 문양과 문자들이 늘어나며 요란한 파열음이 들렸다. 무너질 듯한 소리가 아닌, 무너지는 소리. 동시에 높다란 천장에서 샹들리에들과 파편들이 무수히 쏟아져 내렸고, 거대한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천장을 뚫고 바닥으로 뻗어 나온 건 거대한 손이었다. 손 아래 깔린 샹들리에 조각들이 깨어진 유리잔의 파편들처럼 조그맣게 보였다. 바닥의 마법진이 대 신관의 주변으로 빨려들 듯 축소되었다가 다시금 커다랗게 퍼졌다. 마법진은 문양과 문자가 몇 겹이고 둘러친 것 같은 화려하고 복잡한 모양을 띠고 있었다.

“저 손은 뭐야?”

놀란 듯한 노아의 목소리가 모두의 심정을 대신했다. 그리고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저 손의 주인이야말로 오즈의 마지막 보스일 것이라고.

그 순간, 화면이 암전됐다. 그리고 이벤트 영상이 재생되었다. 대 신관은 스태프를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 천장을 바라보며 소리치듯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대 신관의 주문에 반응하듯 땅 울림이 심해졌다. 진동의 압력에 못 이긴 듯 즐비한 창문들이 박살이 나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떨어져 내리는 샹들리에와 천장의 파편, 그 사이로 뻗어 나온 거대한 손, 바닥에 쏟아지는 창문의 유리 조각, 요란해지는 땅 울림은 건물 자체를 뒤흔들었고, 대 신관의 목소리도 점차 커졌다.

대 신관의 주문 때문인지, 천장에서 쾅, 쾅! 하고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가 천장을 부수고 있는 것 같았다. 곧이어 대 신관의 커다랗게 외우던 주문 소리가 멈췄다. 그리고 천장을 향해 뻗었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 주문을 다 외운 것인지 대 신관은 스태프를 떨어트리며 부들부들 떨다 미친 사람처럼 웃으며 소리쳤다.

“오신다! 드디어 오신다! 파르한이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대 신관의 고함과 함께 요란한 소리가 울리더니 천장 일부가 또다시 무너져 내리며 거대한 손이 뻗어 나왔다. 그리고 그 손은 대 신관을 짓눌러 버렸다. 대 신관이 거대한 손에 의해 압사되어 버리자, 마법진이 번쩍거리며 시간을 되돌리듯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화려했던 문자와 문양이 사라지고, 점차 빛을 잃기 시작했다.

동시에 천장에서 찢어질 듯한 비명이 들렸다. 비명에 반응하듯 캐릭터들이 귀를 틀어막고 괴로워했다. 천장은 더욱 균열이 가며 파편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지만, 오히려 견고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곧 땅 울림과 균열이 멈추고, 비명도 점차 줄어들었다. 남은 건 아수라장이 된 보스 방의 모습뿐이었다.

이벤트 영상이 끝나고 모두는 텅 비어버린 보스 방을 바라봤다. 보스 방엔 천장에서 뻗어 나온 두 개의 손과 대 신관을 대신한 흥건한 핏자국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뭔가 달라진 게 있나 싶어 보스 방을 이리저리 움직이던 길드원들은 결국, 황당함과 허무함을 토로하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질풍 : 뭐야? 이게 끝이야?]

[제로사이드 : 그래서 진보는??]

[노아 : 뭐가 어떻게 된건데?]

[무지개 요정 : 끝났다면 워프같은게 생길텐데 아무것도 없다?]

[율 : 오류에요?]

[KING Husband : 설마;]

[광인한 남자 : 어쩌자는겨?]

스산할 정도의 고요함도 잠시, 잠잠해졌던 땅 울림이 다시 시작됐다. 그리고 천장에서 뻗어 나와 침묵했던 두 팔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 팔은 커다란 손으로 몇 번인가 바닥을 짚더니 팔을 굽혀 천장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천장 속에서도 무언가가 천장을 내리치기 시작했다.

천둥 같은 소리를 내며 천장이 큼지막한 크기로 뚝뚝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천장이 모두 무너져 내리며 그 속에 있던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무너진 천장 속은 끝도 보이지 않는 동굴이었다. 거대한 종유석들이 어지러이 매달려 있고, 종유석을 타고 흐른 용암이 바닥으로 질질 흘러내렸다. 용암의 불씨가 이리저리 튀며 내부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천장의 중앙 깊숙한 곳, 크기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종유석에 무언가가 매달려 있었다.

동굴의 어둠에 가려져 있던 모습은 종유석을 타고 흐르는 용암과 불꽃의 일렁임에 서서히 그 위용을 드러냈다. 전체적으로 볼 때는 용을 닮은 도마뱀 같았다. 하지만 얼굴은 사람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거대한 몸체로 종유석에 매달려 있는 그것은 긴 허리를 가졌는데, 허리엔 거대한 사람의 팔이 수 개가 얽히고 한데 붙은 형태로 달려 종유석을 붙들고 있었다. 그중 두 개는 길게 뻗어 내려와 바닥을 짚고 있는 게 보였다. 오즈의 마지막 보스. 파르한의 대제였다.

기괴한 형태와 파라움과 나포레이우스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는 거대한 크기에 본능적인 두려움이 엄습했다. 모두는 어떤 반응도 없이 천장 속 지옥을 방불케 하는 광경을 멍하니 바라만 봤다.

“미친… 이게 뭐야?”

침묵 속에 나지막한 제로사이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모두는 입까지 얼어붙은 듯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모두가 망부석처럼 파르한의 대제를 바라만 보는 사이, 대제의 거대한 얼굴이 천천히 아래를 향했다. 그리고 멍하니 서 있는 길드원들을 바라봤다. 도자기같이 매끈하던 얼굴이 순식간에 찌푸려지고, 목 옆에 있는 비늘이 파르르 떨렸다.

이어 대제는 찢어질 것 같은 포효를 내질렀다. 소리의 파동 때문에 용암과 불꽃이 사방으로 튀어 오르고, 파편으로 가득한 바닥이 진동에 떨리며 달그락거렸다. 대제의 포효만으로도 질풍과 KING Husband가 그로기가 되어 쓰러졌다.

[질풍 : 뭐야; 이걸 어떻게 깨ㅠ]

[KING Husband : 미친거 아니냐고;]

율은 서둘러 그로기에 빠진 두 사람에게 힐을 해 그로기를 풀어내고, ‘인 라피뎀’으로 길드원들을 보호했다.

[율 : 이제 어떡해요?]

[노아 : 내려오든가 해야 공격을 할 수 있는거 아냐?]

[무지개 요정 : 아니면 우리가 떨어뜨려야 한다거나?]

[광인한 남자 : 저 팔은 공격안되나?]

광인한 남자는 천장에서 뻗어 나온 대제의 두 팔을 가리켰다. 모두의 시선도 대제의 두 팔로 향했다.

[노아 : 타겟팅 잡히는거보면 공격할수 있을것같은데]

[제로사이드 : ㅇㅇ 타겟팅되네]

[KING Husband : 그럼 우선 공격해봐?]

[질풍 : 다른수가 없잖아]

[노아 : ㅇㅇ 탱설게]

(뒤나미스)

노아는 곧바로 자신의 무기에 공격력을 인챈트 하고, 대제에게 향했다. 그리고 ‘카타스트로페’로 무수한 검들을 소환하고, ‘퀴리오스’로 검들을 조종해 일제히 대제를 공격했다.

공격을 당한 대제는 팔로 바닥을 쓸듯이 움직여 노아를 공격했고, 노아는 ‘엑소시아’로 공격을 되돌려주었다. 찢어질 것 같은 비명이 왕왕 울리고, 그 진동에 천장에 남아 있던 파편들과 모래들이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디 플라우에 블라메)

(콰트로 볼텍스)

(페니텐츠)

노아의 궁극기가 대제를 직격하자, 연이어 무지개 요정과 제로사이드의 히든 스킬이 작렬했다.

(인 데오 스페라무스)

그리고 기다렸던 율의 인 데오 스페라무스가 발동되었다. 모두에게 빛의 조각들이 배리어처럼 둘러싸였고, 후 딜레이와 캐스팅, 마나 소모, 쿨 타임이 사라졌다. 모두의 궁극기와 히든 스킬이 빗발치듯 대제에게 쏟아져 내렸다.

인 데오 스페라무스가 끝나자, 대제의 한쪽 팔이 떨어져 나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묵직한 소음과 함께 떨어져 나간 팔은 순식간에 돌처럼 굳어버렸고, 모래처럼 바스러져 버렸다. 자신의 팔이 떨어져 나가자 대제는 붉게 충혈된 눈을 하고 온몸의 비늘을 바짝 세웠다. 그리고 바닥을 짚었던 한쪽 팔을 들어 올려 마구잡이로 내리찍기 시작했다.

[파티원 질풍님이 사망하였습니다.]

[파티원 제로사이드님이 사망하였습니다.]

[파티원 무지개 요정님이 사망하였습니다.]

[파티원 KING Husband님이 사망하였습니다.]

전투 불능 메시지가 줄을 지었다. 율은 서둘러 자신과 살아남은 두 사람에게 힐을 하고, 대제의 공격을 피해 길드원들을 부활시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게 대제의 맘에는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대제의 손이 곧바로 율을 향했다. 길드원들에게 리저렉션을 사용하려던 율은 저를 낚아채려는 손을 후방 이동으로 피하고 ‘인 라피뎀’을 사용해 자신을 보호했다. 하지만 대제의 손은 끈질기게 율에게 따라붙었다. 크기가 워낙 크다 보니 공격의 범위도 상당했다. 결국, 대제의 손은 율을 강타했고, 한순간에 ‘인 라피뎀’의 방어를 날려버리며 율에게 어마어마한 데미지를 남겼다.

율이 대제에게 공격을 받기 시작하자, 노아는 타겟팅이 분리되며 화면의 초점이 흐려지는 현상을 겪었다. 동시에 화면 중앙에 스킬 아이콘 하나가 활성화되었다.

(루프 나흐 디어)

스킬을 사용하자 두 개의 빛의 구체가 빠른 속도로 날아가 대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노아의 스킬 덕분에 대제의 타겟팅에서 벗어난 율은 서둘러 거리를 벌리고, 미처 살리지 못했던 길드원들을 부활시켰다.

“얘 데미지가 장난 아닌데?”

[질풍 : 그러니까; 맞으면 거의즉사야]

[광인한 남자 : 포션도 다써가지고 간당간당하고]

[KING Husband : 이런 괴물을 무슨수로 잡아;]

[무지개 요정 : 노아랑 율이 고군분투하는거 안보이냐? 떠들시간있으면 한방이라도 더때려]

“아, 율아!”

[파티원 율님이 사망하였습니다.]

놀란 듯 내지르는 노아의 목소리와 동시에 율의 전투 불능 메시지가 떠올랐다.

[율 : 아ㅠㅠㅠ]

“헐…?”

[KING Husband : 헐..]

[광인한 남자 : ;;]

율의 전투 불능으로 패닉에 빠질 법도 했지만, 질풍과 무지개 요정이 서둘러 율에게 달려갔다. 일회용 부활 아이템인 세계수의 나뭇잎으로 율을 부활시키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제는 두 사람이 율에게 다가가지 못하게 했다.

손쓸 방도도 없이 대제의 공격에 노출되어 고군분투하는 두 사람 사이로 노아가 달려 들어왔다. 노아는 데미지를 증폭시켜 되돌려주는 ‘엑소시아’를 사용해 대제의 공격을 반사하고, 만나를 사용해 체력을 회복했다. 노아가 대제를 상대하는 사이, 질풍과 무지개 요정은 서둘러 율을 부활시켰다.

율은 부활하자마자 서둘러 버프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만나를 사용했지만, 그 짧은 사이에 대제에게 공격받아 체력이 반타작 난 노아에게 대량의 체력을 회복시키는 ‘볼렌테 데오’를 사용했다.

(디 블라우에 플라메)

노아의 궁극기에 남아 있던 대제의 한쪽 팔이 떨어져 나갔다. 대제는 종유석에 매달려 비명 섞인 포효를 내지르며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대제의 몸부림에 용암이 사방으로 튀며 길드원들을 급습했다.

길드원들은 놀랄 새도 없이 용암을 피하고자 고군분투했지만, 적지 않은 피해를 보고 말았다. 율은 서둘러 전체 힐인 ‘플로레스 니비움’을 사용했다. 대제가 종유석에 매달려 몸부림치자 종유석을 붙들고 있던 손들이 쩍, 쩍 소리를 내며 떨어지기 시작했다.

기괴한 방향으로 꺾이거나, 두어 개의 팔이 서로 한데 붙어 얽혀있는 손들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바닥을 짚었다. 종유석에서 손이 떨어져 나온 탓인지 대제의 몸도 절반은 종유석에서 내려와 있었다.

대제는 팔꿈치를 바닥에 붙이더니, 맵 전체를 팔로 쓸었다. 생각지도 못한 공격에 율은 ‘인 라피뎀’을 노아는 자신의 생명력을 담보로 방어력을 높이는 ‘알카이오스’를 사용했다. 하지만 공격을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파티원 율님이 사망하였습니다.]

[파티원 질풍님이 사망하였습니다.]

[파티원 KING Husband님이 사망하였습니다.]

[파티원 제로사이드님이 사망하였습니다.]

[파티원 광인한 남자님이 사망하였습니다.]

[파티원 무지개 요정님이 사망하였습니다.]

대제의 공격에 살아남은 건 스스로 방어력을 높인 노아뿐이었다. 그마저도 체력 게이지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노아는 서둘러 만나를 사용해 체력을 회복했다.

“시발, 미친 거 아냐?”

생각지도 못한 사태에 제로사이드의 욕지거리 섞인 고함이 들려왔다. 그리고 모두의 원성이 줄지었다. 노아는 당황함에 빠진 길드원들을 뒤로하고 ‘마니아코스’를 사용했다.

마니아코스는 알카이오스 이후에 쓸 수 있는 연계기로 정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여 광폭화하는 스킬이었다. 마니아코스 상태가 되면 최대까지 끌어올렸던 방어력이 전부 공격력으로 전환이 되기 때문에 데미지는 폭발적으로 늘어나지만, 공격을 당하게 되면 아주 위험한 상태가 된다. 게다가 광폭화가 끝나면 그로기에 빠진다. 그럼 마지막 만나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노아는 방패를 들 수 있었던 한 손 검 대신 양손 검을 들어 공격력을 더욱 높였다. 그리고 무서운 데미지와 속도로 대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상상도 못 할 데미지가 엄청난 공격 속도와 더불어 대제에게 피해를 주고 있었다.

하지만 노아도 아슬아슬하게 대제의 공격을 피하고 있었다. 방어력이 0이 되었기 때문에 한 대라도 맞는다면 바로 전투 불능이 되어버릴지도 몰랐다. 모두는 숨죽인 채 노아와 대제의 대치를 지켜보았다.

한참을 대제와 대치하던 노아는 대제의 공격을 피해 횡 이동을 했다. 그리고 그대로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마니아코스 상태가 해제된 것이었다. 모두는 새된 숨을 집어삼켰지만, 노아는 당황하지 않고 만나를 사용해 그로기를 벗어나고, 후방 이동으로 대제와 거리를 벌렸다.

대제도 상당한 피해를 보았는지 다시 종유석으로 기어 올라가고 말았다. 율을 살릴 타이밍을 고민하던 노아는 곧바로 율을 부활시켰고, 율은 서둘러 길드원들을 부활시켰다.

[율 : 조마조마해서 죽는줄알았어요]

[제로사이드 : 어... 숨도 못쉬겠더라;]

[질풍 : 만약 노아형 공격 받았으면...]

[KING Husband : 끔찍한 소리 하지도마;]

[무지개 요정 : 저주를 퍼부어라]

[광인한 남자 : 이제 어떡해?]

[노아 : 저거 내려오게 만들 방법이 없나?]

모두는 종유석에 달라붙어 꼼짝도 하지 않는 대제를 바라봤다. 그리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던 기함할 만한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노아 : 미친... 저거 회복하는데?]

30%가 넘게 줄었던 대제의 체력이 서서히 차오르고 있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믿을 수 없는 사태에 모두는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무지개 요정 : 저 미친... 이대로두면 다시 만피되겟는데?]

[제로사이드 : 우선 떨어뜨려야 할것같은데]

[노아 : 율아 스페라 쿨 어때?]

[율 : 다 돌았어요]

[노아 : 그럼 우선 스페라 사용하고, 원거리들이 공격 쏟아붓죠]

[KING Husband : ㅇㅇ 그게 최선일 듯..]

[질풍 : 원거리라고 해봤자; 나랑 길마님이랑 왕이형밖에 더있나;]

[노아 : 나도 원거리 스킬있으니까 공격할게]

[제로사이드 : ㅇㅇ 궁극기 아니어도 원거리 있으면 무조건 사용해]

[광인한 남자 : ㅇㅇ]

모두가 인 데오 스페라무스 사용에 동의하자, 율이 콘템플라티오를 사용했다. 이어 노아와 율이 번갈아 사용하는 선행 스킬을 거쳐 명상 게이지가 다 차올랐고, 인 데오 스페라무스가 시전되었다.

길드원들에게 빛의 조각 같은 배리어가 둘러싸이는 걸 시작으로 모두는 천장의 종유석에 매달린 파르한의 대제에게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대제는 모두의 공격에 짧게 몇 번이고 포효하더니 꼬리를 휘둘러 용암과 종유석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모두는 대제의 공격을 피하면서 쉬지 않고 공격을 가했다. 하지만 대제는 끈질기게 종유석에 붙어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인 데오 스페라무스가 끝나고, 모두는 대제의 체력을 확인했다.

“저거 진짜 미친 거 아냐?”

“뭐 어쩌라는 거야?”

제로사이드와 노아의 음성이 잇달았다. 인 데오 스페라무스를 받은 상태로 스킬을 퍼부었는데도 대제의 체력은 변화가 없었다. 황당함으로 이어지던 침묵은 분노로 번지며 채팅창을 시끄럽게 했다.

율은 인 데오 스페라무스로 텅 비어버린 마나를 보충하기 위해 파티원들에게 마나를 나누어 받는 ‘메 아마테’를 사용했다. 하지만 ‘메 아마테’를 사용하자마자, 그리다보르의 지팡이에서 빛이 터지는 이펙트와 함께 화면 중앙에 ‘인 데오 스페라무스’ 스킬이 활성화되어 떠올랐다.

(인 데오 스페라무스)

율은 곧바로 스킬을 사용했고, 채팅과 음성으로 울분을 토하던 길드원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공격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길드원들이 공격하는 동안 율은 대제의 체력을 확인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대제는 체력이 달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공격을 가하면 확실하게 체력은 줄어들었지만, 그만큼 빠르게 재회복되고 있던 것이었다.

[율 : 공격받는 와중에 회복되고 있어요]

“뭐라고?”

“회복한다고?”

율의 말에 성난 듯한 제로사이드의 반문이 들려왔다. 이어 노아의 목소리도 들렸다.

[율 : 네 회복하고 있어요]

[광인한 남자 : 아니 회복이 얼마나 빠르길래 바로 회복이 돼?]

[무지개 요정 : 이거 깨라고 만든거 맞아??]

[질풍 : 미친놈들 지들도 직접 깨보라고 해요!!]

[KING Husband : 아니 다른 파티들은 이걸 어떻게 깬건데??]

공격이 소용없다는 걸 깨닫자, 폭포수처럼 퍼붓던 공격이 차츰 사그라들었다. 모두는 공격을 포기한 듯했다.

[제로사이드 : 이거 완전 밑빠진 독에 물붓기 아냐..]

[질풍 : 공격하는 의미가 없는데...]

[무지개 요정 : 이게 진짜 오류가 아닌건 맞는거야?]

[노아 : 오류가 아닌거라면 뭔가 수가 있을 것 같은데..]

[광인한 남자 : 이대로 그냥 손놓고 있어?]

[KING Husband : 피 다 찰텐데..]

[율 : 공격이라도 계속 하고 있어야 하는거 아닐까요...]

돌파구가 생기지 않아 이도 저도 못 하고 있는데, 맵 중앙에 갑자기 웜홀 같은 것이 생겨났다. 무지갯빛의 웜홀은 강한 빛을 발하며 번쩍였고, 곧 웜홀을 통해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그리고 모두는 기함하고 말았다. 웜홀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름 아닌, 히든 엔피씨인 지크프리트였다.

[무지개 요정 : ....뭐여?]

[제로사이드 : ?????]

[노아 : 지크프리트면 길마님 아니에요?]

[율 : 길마님이 움직이는거예요?]

[무지개 요정 : 그럴리가;]

[질풍 : 그럼 쟤는 뭐에요??;;;]

[무지개 요정 : 난들 알아?]

[광인한 남자 : 해킹인가?]

[KING Husband : 누가 히든엔피씨를 해킹해서 오즈 막보방에 온거라고? 말이 되는 소릴해라]

[광인한 남자 : 저 엔피씨가 여기 있는게 더 말이 안된다!]

[제로사이드 : 진짜 뭐야?]

“기어이 봉인을 푼 모양이군.”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이 시끄럽게 떠들어댔지만, 지크프리트는 신경도 쓰지 않는 듯 파르한의 대제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중후하고 묵직한 목소리였다.

“그대들은 대제의 토벌을 위해 온 것인가?”

[무지개 요정 : 뭐라는거야;]

지크프리트는 주변을 천천히 걸으며 말을 이었다.

“숨겨진 왕국을 잘도 찾아내었군.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어.”

[무지개 요정 : 야 임마 네 주인은 나야임마! 왜 주인도 없이 멋대로 돌아다녀!]

지크프리트는 정해진 대사와 정해진 동선대로 움직일 뿐인 것 같았지만, 무지개 요정은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시비를 걸었다.

[제로사이드 : 와.. 목소리도 행동도 중후한거봐 형이 들어가 있으면 그냥 양아치 욕쟁이인데]

[무지개 요정 : 뭐라고?!]

[질풍 : 그래서 대체 저 지크프리트는 뭔데요?]

[노아 : 혹시 원래 이런 스토리인가? 히든 엔피씨가 공략을 돕는?]

[율 : 어 진짜 그런거 아니에요?]

[KING Husband : 일리 있는 듯?]

[무지개 요정 : 근데 왜 하필 지크프리트냐! 내건데!]

[제로사이드 : 랜덤이겠지]

[광인한 남자 : 랜덤인데 지크프리트라니 뭔가 운명적인데]

길드원들이 떠드는 사이, 머리 위에서 포효가 울렸다.

“집중해라.”

지크프리트가 한발 앞으로 나서며 경고했다. 동시에 지크프리트의 발밑으로 스킬 이펙트가 퍼졌다. 그리고 길드원들 모두에게 ‘아스가르드의 가호’라는 버프가 걸렸다.

“대제의 토벌은 아스가르드에서 허가하지 않는다. 나는 대제를 다시 봉인하러 왔으니, 그대들은 나를 도와라.”

말을 마친 지크프리트는 훌쩍 뛰어올라 종유석에 매달려 있는 대제의 몸에 올라탔다. 그리고 허리춤에 찼던 단검을 빼내, 대제를 향해 가로로 길게 그었다. 지크프리트의 손짓에 허공에 거대한 칼날이 생겨나더니 그대로 대제를 갈랐다. 종유석을 붙들고 있던 대제의 팔이 뚝뚝 떨어져 나갔다.

대제가 고통에 몸부림치며 온몸에 비늘을 세웠다. 지크프리트는 대제의 몸에서 훌쩍 뛰어올라 천장에 매달린 수많은 종유석 중 하나에 매달렸다. 그리고 종유석을 발판삼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대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지크프리트의 움직임은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대제의 신체들이 뚝뚝 잘려 떨어져 내리는 걸 보면 확실하게 공격을 가하는 듯했다.

[율 : 어... 대제 피 줄기 시작해요]

[노아 : 진짜네 이제 공격이 먹히는건가?]

노아는 곧바로 ‘카타스트로페’로 무수한 검들을 소환했고, ‘퀴리오스’로 검들을 조종해 대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노아의 공격으로 대제의 체력이 줄어드는 게 보였다.

[질풍 : 먹힌다!]

[KING Husband : 지크프리트가 걸어준 가호버프 때문인가?]

[제로사이드 : 우리도 공격하자]

전의를 잃었던 모두는 지크프리트와 노아의 공격이 먹히는 모습에 다시금 무기를 들기 시작했다. 동시에 율의 버프가 모두를 휩쓸었다. 직업상 공격을 하지 못하는 율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1회 공격의 데미지를 두 배로 받게 하는 ‘옵타티오’를 끊임없이 대제에게 걸었다. 정체되어 있던 대제의 체력이 눈에 띄는 속도로 줄기 시작했다.

한참을 종유석과 대제의 몸을 발판삼아 공격을 가하던 지크프리트가 휘두르는 대제의 팔에 맞아 추락했다. 바닥을 요란하게 구르며 떨어져 내린 지크프리트는 낮은 신음과 함께 몸을 일으켰다. 동시에 대제의 팔이 지크프리트를 짓누르기 위해 빠른 속도로 덮쳐왔다.

대제의 손이 지크프리트를 덮쳤지만, 지크프리트는 자세를 낮추고, 바닥을 쓸듯이 이동하며 공격을 피했다. 그리고 노출된 대제의 거대한 손에 제 단검을 꽂아 넣고, 손등을 밟아 훌쩍 뛰어오르며 거리를 벌렸다.

역습을 당한 대제는 비명을 지르며 지크프리트의 단검이 꽂힌 제 손을 정신없이 털어냈다. 대제의 손이 내부의 이곳저곳에 부딪히며 내부가 부서지고 무너져 내렸다. 지크프리트는 대제의 손등에서 떨어져 내린 자신의 단검을 되찾아 쥐고 다시금 대제를 향해 뛰어올랐다.

지크프리트는 작은 단검을 사용했지만, 그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검기가 거대한 이펙트로 발현하여 대제를 덮쳤다. 허공을 가르는 거대한 검기의 이펙트는 정신없이 대제를 향해 쏟아져 내렸고, 온몸이 잘리고, 상처투성이가 된 대제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마구잡이로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몸부림치는 듯한 공격에 지크프리트가 뛰어 내려와 맵의 중앙에 방어막을 펼쳤고, 길드원들은 대제의 공격과 쏟아져 내리는 종유석의 파편을 피해 맵의 중앙으로 향했다. 모두가 중앙에 모여 지크프리트의 방어막 안으로 들어오자, 지크프리트는 대제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한때 번성하던 파르한의 왕은 스스로를 대제라 칭하며 신들의 권위에 오르고 싶어 했다.”

지크프리트는 품속에서 손바닥만 한 구체를 꺼내 손에 쥐었다.

“파르한의 신관들과 대 신관은 왕의 바람을 들어주기 위해 왕에게 영원한 생명을 부여한다는 명목으로 왕국을 고여 있게 했지. 시간을 멈추어 버린 것이다.”

지크프리트의 손안에서 구체는 점차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억겁의 시간 속에서 신이 아닌 인간은 살아갈 수 없었다. 왕은 결국, 끔찍한 모습으로 변모하며 자아를 잃었고, 신관과 대 신관은 왕국의 시간을 다시 흐르게 만들어 왕을 되돌리려 했다.”

지크프리트는 눈이 부시게 빛나는 구체를 허공에 띄웠다. 그리고 떠오른 구체는 대제를 향해 다가갔다.

“하지만 신의 뜻을 거스르고, 스스로 고여버린 파르한을 아스가르드의 신들은 용서할 생각이 없다.”

대제의 눈앞까지 떠오른 구체는 곧 시간을 되돌리기 시작했다. 엉망으로 잘리고 상처투성이가 되었던 대제의 몸이 원래대로 돌아오고, 바닥으로 흘러내렸던 용암들도 거꾸로 흘러 종유석을 타고 흘렀다. 무너졌던 천장의 파편들이 모여 균열을 이루고, 이윽고 뻥 뚫렸던 천장이 화려한 샹들리에가 즐비한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넓은 실내를 빙 둘러 있던 창문의 깨진 유리들도 한데 모여 언제 그랬냐는 듯 매끈한 모습이 되었다.

“대제에게는 영원히 죽음이란 안식은 허락되지 않는다.”

말을 마친 지크프리트는 자신의 역할은 끝났다는 듯 다시 무지갯빛 웜홀을 이용해 모습을 감췄다. 처음 모습으로 돌아간 보스 방에 남겨진 길드원들은 어안이 벙벙한 듯 주변과 천장을 살펴보기만 했다.

이제 공략이 어떻게 진행되는 건지 알 수가 없어서 멍하니 있던 길드원들의 뒤로 무언가 터지는 이펙트와 함께 보물 상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즈의 전리품은 모두 로비의 전리품 관리인에게서 받을 수 있어서 보스 방에 보물 상자가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

[노아 : 뭐야?]

[제로사이드 : 왜 보물상자가?]

[질풍 : 열어볼까?]

[율 : ㅇㅇㅇ]

[무지개 요정 : 열어봐]

질풍은 보물 상자로 다가가 상자를 열었다. 그리고 눈을 화등잔만 하게 뜨고 말았다. 보물 상자 안에는 전설 무기를 만들 수 있는 일부 재료들과 레인저의 히든 스킬을 얻을 수 있는 봉인된 보석이 들어 있었다.

[질풍 : 헐! 전설 무기 재료하고 봉인된 보석인데?!]

[KING Husband : 뭐?]

[제로사이드 : 헐?]

[광인한 남자 : 우리.. 설마 깬거야???]

[율 : 오즈 깬거에요?!]

[노아 : 그런거야?]

[무지개 요정 : 대박!!!!!!!!!!!!!]

[광인한 남자 : 대박!!!!!!]

[KING Husband : 미쳤다!!!!!!!!!!!!]

[질풍 : ㅁ니ᅟᅡᆼ리ㅓᅟᅡᆫㄹ아ㅣ린ㅇㄹㄴ어!!!]

[제로사이드 : 시바!!!!!!!]

[율 : 와!!!!]

[노아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광인한 남자 : 야!!!!!! 봉인된 보석 뭐야!!! 직업 뭐야!!!]

[질풍 : 카콕세나이트야!!! 레인저꺼!]

[KING Husband : 퉷]

[질풍 : 뭐야 이 온도차]

[노아 : 레인저꺼면 풍이가 쓰면 되겠네]

[질풍 : ?!!?!?]

[율 : 와! 풍이형 히든 스킬 생기는거야?ㅋㅋㅋㅋ]

[질풍 : ?!?!?!!]

[무지개 요정 : 그래 풍이가 쓰면 되겠다]

[질풍 : 헐??]

[제로사이드 : 최고 수혜자네 ㅋㅋㅋ]

[질풍 : 진짜 나써??]

[노아 : 레인저꺼라며 ㅋㅋㅋ 너 말고 누가 써?]

[KING Husband : 왜!! 팔아서 n분해야지!!]

[광인한 남자 : 옳소!!!]

[율 : 난 안받아도 돼요ㅋㅋㅋㅋ]

[노아 : 나도 ㅋㅋ]

[제로사이드 : 어렵게 구한건데 쓸사람있으면 쓰는게 낫지]

[무지개 요정 : ㅇㅇ전리품인거니까]

[질풍 : 그럼 괜찮으면 전설무기 재료는 왕광형 주면 어때요?]

[무지개 요정 : ? 그러던가]

[제로사이드 : 그럼 되겠네]

[KING Husband : 헐?]

[광인한 남자 : 레알...?]

[율 : 형들 속물적이얔ㅋㅋㅋㅋ]

[KING Husband : /부끄]

[광인한 남자 : /부끄]

보물 상자를 취득하자 그 자리에 워프가 생겨났다. 모두는 이 설레는 승전보를 길드원들에게 전할 생각에 부푼 가슴을 안고 워프를 탔다.

[SYSTEM] [무지개 요정님의 파티가 오즈를 클리어하였습니다.]

워프를 타고 오즈의 로비로 되돌아오자, 시스템 알림이 자신들의 클리어 소식을 온 서버에 알렸다. 자신들이 알릴 것도 없이 길드원들에게 승전보를 전한 셈이었다.

[길드] [세츠나 : ??????]

[길드] [니지 : 내가 헛것을 보나?]

[길드] [도련 : 나도 헛것을 보나?]

[길드] [집사 : 헛것이 아닌 것 같은데요?]

[길드] [욕정벌레 : 저 무지개 요정이 우리길드 그 무지개 요정이 맞는거지?]

[길드] [아타락시아 : 달리 무지개 요정이 있을 리가...]

[길드] [츄파 : 진짜야???]

[길드] [달빛 : 길마님이랑은 오즈 나온거야 안나온거야?]

[길드] [무지개 요정 : 이몸등장!!]

[길드] [세츠나 : 헐?]

[길드] [니지 : 길마님이다!]

[길드] [질풍 : 다녀왔어!!]

[길드] [율 : 다녀왔어요!]

[길드] [츄파 : 저거 진짜에요? 뭔 오류같은거 아니고?!]

[길드] [KING Husband : 오류라니 우리를 뭘로 보고!]

[길드] [도련 : 그럼 진짜야?! 진짜 오즈 클리어 했다고???]

[길드] [질풍 : 클리어하고 레인저 히든스킬 보석도 얻었어!]

[길드] [욕정벌레 : 헐???]

[길드] [세츠나 : ?!]

[길드] [니지 : 레알?!]

[길드] [질풍 : 응!!ㅇㅅㅇ!]

[길드] [아타락시아 : 대박! 축하해요!!]

[길드] [집사 : 축하드려요!]

[길드] [노아 : 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나오니까 이렇게 좋은걸 ㅋㅋ]

[길드] [제로사이드 : 인정 ㅋㅋㅋㅋ 오늘은 진짜 발뻗고 편히 자겠다 ㅋㅋ]

[길드] [율 : 저도요ㅋㅋㅋ 완전 늦잠잘거에욬ㅋ]

[길드] [광인한 남자 : 나돜ㅋㅋㅋ]

[길드] [질풍 : 나도!]

[길드] [무지개 요정 : 그동안 별일 없었고?ㅋㅋ]

[길드] [니지 : 별일?]

[길드] [세츠나 : 별일은 없었고, 어제 웬 미친놈이 동맹을 맺자고 찾아왔었어요]

[길드] [제로사이드 : 동맹? 갑자기 웬?]

[길드] [세츠나 : 몰라 지 수제자가 있다고 우리길드하고 동맹을 맺어야 한다던데?]

[길드] [노아 : 수제자?]

[길드] [율 : 수제자...?]

[길드] [무지개 요정 : 설마 무슨 어쩌구 펜릴부대?]

[길드] [세츠나 : 어떻게 아셨대? 오즈에서 만난 사람이에요?]

[길드] [질풍 : ㅇㅇ;; 생각보다 더 미친놈이었네;]

[길드] [KING Husband : 길드명은 뭐였어?]

[길드] [세츠나 : 뭐였더라?]

[길드] [니지 : 글록시니아 제1사단]

[길드] [세츠나 : 아아 맞아 저거였어]

[길드] [제로사이드 : 꼬락서니 하고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 [질풍 : 미친ㅋㅋㅋㅋ컨셉 확고하네ㅋㅋㅋ]

[길드] [광인한 남자 : 졸라 골때리네 ㅋㅋㅋㅋㅋ]

[길드] [KING Husband : 오즈에는 꼭 정신나간 놈들이 한둘씩 껴있다니까;]

[길드] [노아 : 그래서 뭐라고 했어?]

[길드] [세츠나 : 죠죠충에 군대염불외길래 재수없어서 꺼지라 했어^^]

[길드] [무지개 요정 : 시발 잘했다 ㅋㅋㅋㅋ]

[길드] [세츠나 : ^^]

[길드] [니지 : 길마님이랑 노아오빠 없으면 세츠언니 단독천하에요 ㅋㅋ]

[길드] [욕정벌레 : 부부길마 시켜줘요 우리 언닠ㅋㅋ]

[길드] [세츠나 : 그게 뭐얔ㅋㅋㅋㅋㅋㅋ 하지만 시켜준다면 마다는 하지 않게ᅟᅵᆻ음]

[길드] [도련 : 다급한거봐라 ㅋㅋ 오타까지 나고 ㅋㅋㅋㅋ]

[길드] [세츠나 : .....]

[길드] [집사 : 그래서 그 분의 수제자는 누구였어요?]

[길드] [노아 : 율이 ㅋㅋ]

[길드] [율 : 저요 ㅋㅋ]

[길드] [세츠나 : ??]

[길드] [니지 : 뭐라?]

[길드] [달빛 : 감히?]

[길드] [세츠나 : 죠죠충 가만안둬...]

[길드] [니지 : 재입대시켜...]

[길드] [츄파 : 차에 타봐...]

[길드] [광인한 남자 : 차는 왜 태워?;]

[길드] [츄파 : 광이오빠 차에 타봐...]

[길드] [광인한 남자 : ?]

[길드] [세츠나 : 차에 타봐...]

[길드] [니지 : 타봐...]

[길드] [광인한 남자 : ㅠㅠㅠ?]

[길드] [욕정벌레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 [무지개 요정 : 아무튼 잘했다 ㅋㅋㅋ 나는 너무 피곤해서 오늘은 쉬어야 겠어 ㅋㅋ]

[길드] [세츠나 : 벌써 가시게요?]

[길드] [제로사이드 : 나도 피곤해서 자야겠어]

[길드] [노아 : 나도]

[길드] [율 : 저도]

[길드] [질풍 : 난 더 놀거야!]

[길드] [KING Husband : 체력이 넘치는구만?]

[길드] [광인한 남자 : 나도 쉬어야겠다]

[길드] [니지 : 쳇 나약한 인간들]

[길드] [무지개 요정 : 좀 봐줘라ㅋㅋㅋ 우리 오즈 클리어 하고 나왔다고 ㅋㅋㅋ]

[길드] [율 : 맞아요ㅠ]

[길드] [노아 : 다들 쉬고 내일봐 ㅋㅋ]

[길드] [세츠나 : 굿밤]

세츠나의 배웅을 끝으로 질풍을 제외한 여섯 명의 로그아웃 알림이 줄줄이 이어졌다. 하지만 길드는 여전히 시끌벅적했다.

***

[길드원 율님이 접속하였습니다.]

오즈를 클리어하고 며칠이 지난 날이었다. 시언은 그동안 찾아 헤매던 물건을 겨우 구매할 수 있게 되어 급하게 율의 캐릭터로 접속을 했다. 늦은 새벽이라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민우가 남아 있었다.

[제로사이드 : 이런 늦은 시간에 웬일이야?]

[율 : 볼일이 있어서]

[제로사이드 : ?]

[율 : 뭐]

[제로사이드 : 아...너 설마 노아냐?]

[율 : ㅇ]

[제로사이드 : 율이 캐릭터로 접속좀 하지마; 적응안돼진짜;]

[율 : 니사정]

[제로사이드 : 아나; 그럼 적어도 접속하자마자 네가 노아라는걸 알리기라도 해줘라]

[율 : 니사정]

[제로사이드 : 개새끼;]

[율 : ㅋㅋㅋㅋㅋㅋㅋㅋ]

[제로사이드 : 볼일이 뭔데 이 야심한 시간에 율이 캐릭터로 들어오냐?]

[율 : 찾던걸 파는 사람을 찾았거든]

[제로사이드 : 뭘 사는데?]

[율 : 갔다와서 보여줌]

시언은 민우의 답을 듣지도 않고 그대로 글록시니아로 향했다. 남겨진 민우는 쉼터에 덩그러니 앉아 시언을 기다렸다. 글록시니아에 갔던 시언은 오래지 않아 쉼터로 돌아왔다. 그리고 민우는 어렵지 않게 시언이 산 물건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

아침부터 레인보우 힐 길드는 시끌벅적했다. 주말이라 접속 인원이 많은 덕이었다. 오전 10시쯤이 되자, 노아가 접속을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율이 접속을 했다.

[길드원 율님이 접속하였습니다.]

[노아 : 왔어?]

[율 : 하이~]

시언에게 인사를 하던 율은 자신의 캐릭터가 뭔가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매일 보던 익숙한 뒷모습이 아니었다. 어딘지 생소하면서도 익숙한 뒷모습에 놀라 화면을 돌려 캐릭터의 정면을 바라봤다.

목과 입가를 살짝 감싸고, 목 뒤쪽으로 예쁘게 리본 매듭지어져 꼬리를 늘어뜨린 붉은색 머플러. 리본 테일 머플러였다.

[율 : 어... 이거]

[노아 : 그거 물량이 없는지 진짜 안팔더라]

[율 : 어떻게?]

[노아 : 원래는 잃어버렸을 때 바로 사주고 싶었는데 파는 사람도 없고 물량도 없더라고]

[노아 : 못구하는건 아닌가 싶었는데 어제 겨우 구했어]

시언의 말에 율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저 멍하니 제 캐릭터에 입혀진 리본 테일 머플러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다가 인벤토리를 열어 입고 있던 코스튬을 벗었다. 그러자 아크 비숍의 직업복이 드러났다. 전직하면 주는 기본 아이템이었지만, 히든 클래스의 직업복이다 보니 웬만한 코스튬보다 화려한 옷이었다.

리본 테일 머플러를 하고 다닐 때는 그냥 아크 비숍의 직업복을 입고 다녔었다. 율은 왠지 그리운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율의 캐릭터를 바라보고 있는 시언도 같은 기분일 것이다.

[노아 : 그 모습 진짜 오랜만이네 ㅋㅋ]

[율 : 응 ㅋㅋㅋㅋ]

[율 : 이거 비싸지 않았어요?]

[노아 : 응? 적당했어 ㅋㅋ]

[율 : 거짓말 ㅋㅋㅋ]

[노아 : ㅋㅋㅋㅋㅋㅋ]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두 사람 사이로 율의 롭이어가 뛰어 들어왔다. 율과 똑같이 리본 테일 머플러를 낀 흰 토끼. 그리고 롭이어를 따라 궁기가 어슬렁거리며 걸어와 율과 시언의 주변을 맴돌았다.

[길드] [니지 : 헐!! 막내! 리본테일 머플러 끼고 있어!!!]

그때, 쉼터에 들어오던 니지가 율의 모습을 보고 놀라 길드 말로 외쳤다. 니지의 말에 순식간에 모여든 길드원들 때문에 쉼터는 어느새 북새통이 되고 말았다. 어떻게 된 거냐는 질문이 잇따르고, 귀찮을 만큼의 관심이 집중되었지만, 율은 이제는 익숙한 일인 듯 모두와 이야기하며 웃었다.

아크 비숍의 직업복을 입고, 리본 테일 머플러를 낀 처음과 같은 모습으로.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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