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콜 가이드-3화 (3/132)

#3

이런 짤막한 뉴스로는 제대로 된 게이트 정보를 얻을 수 없지만, 어쨌거나 게이트 하나에 수십, 수백의 기업들이 덤비는 만큼 이를 관심 있게 지켜보는 사람들도 상당수였다.

TV를 보던 사람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저건 정부에서 가져갔겠지?”

“센터가 어떻게든 사수했다고 듣긴 했는데, 잘됐나 모르겠네.”

“기업들이 문제야. 공생 윤리는 갖다 버리고, 사익만 추구하니…….”

“쯧.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이래.”

특히 이번에 열린 A급 게이트에는 고급 시료(시료; 게이트에서 얻을 수 있는 가치 있는 부산물 일체를 이르는 말)가 많이 묻혀있을 거라는 전문가의 평가가 이어졌다.

몬스터를 잡으면 나오는 마정석과 부산물들의 가치는 석유보다 더 무궁무진했다. 지구의 자원은 빠르게 고갈되고 있었으니 자연히 사람들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그때 뉴스 하단에 작은 글씨로 게이트 작전을 수행할 센터 가이드 명단에 변동이 생겼다는 속보가 떴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 속보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깝다.’

자신 역시 저 명단에 있었다.

명단에 변동이 생긴 이유는…… 아마 자신이 죽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어떻게든 ‘장이주’라는 이름 석 자를 이번 A급 게이트에 밀어 넣기 위해 온갖 용을 썼고 마침내 성공했다.

게이트 입성은커녕 과로로 픽 죽어버렸지만.

그는 한숨을 쉬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억지로 뉴스에서 시선을 떼어 냈다.

어차피 자신은 죽었고, 현재 본의 아니게 차지하게 된 이 B급 가이드의 몸으로는 게이트 작전에 참여할 수 없다. 그러니 애초부터 욕심을 가지지 않는 게 현명했다.

현장 가이드였으나 빈번하게 센터에 드나들었던 그가 고은교를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는 것은 고은교가 센터에서만, 그것도 에스퍼를 까다롭게 골라 가이딩하는 일반 가이드라는 의미였다.

현장 이능력자들이 흔히 하는 말로 ‘일반인’이나 다름없는 ‘일반’ 가이드가 현장으로 나가게 해 달라고 지원을 넣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소리다. 그게 A급 게이트라면 더더욱.

명료한 사실관계를 늘어놓자 구질구질한 미련마저 깔끔히 정리할 수 있었다.

“고은교 님.”

“네.”

“진료실로 이동하실게요.”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문 의료진에게 말라붙은 핏자국을 닦아 내고 거즈를 대는 간단한 응급처치 받은 후 CT를 찍는 데 약 한 시간이 걸렸다. 의사는 그가 가벼운 뇌진탕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뇌에 어떤 손상이 갔을지 모르니 당분간 몸조리를 하라는 이야기도 함께였다.

“갑자기 어지럽거나, 눈이 보이지 않거나 들리지 않거나 하면 바로 119를 부르세요.”

“네.”

그는 의사의 당부를 대충 들어 넘기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병원비 결제는 지갑 안에 든 신용카드로 대신했다. 블랙 카드가 아닌 흔히 볼 수 있는 카드였다. 그건 좀 실망스러웠다. 어쩌면 고은교는 대기업 사생아 같은 게 아닐지도 몰랐다.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현관문 앞에 선 그는 지갑을 뒤져 이 중에 무엇이 현관 카드키인지 고민했다. 운 좋게도 두 번째로 집어 든 카드가 현관 카드키였다.

열린 현관문 안으로 들어서는데, 주머니에서 휴대 전화가 울렸다.

[고은서]

이 몸의 이름은 고은교이니 고은서는 아마 형제나 자매일 확률이 높았다.

‘내가 전화를 받아도 되나.’

짧게 고민했으나 일단 전화를 받으며 엘리베이터에 탔다. 그 탓에 전화가 잠깐 끊어졌다가 다시 연결되었다.

[고은교! 대답 안 해?]

“음……. 여보세요.”

그는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고속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휴대 전화 너머에서 들리는 것은 쨍그랑 소리가 날 것처럼 높고 차가운 여자의 목소리였다.

[전화는 왜 안 받았니? 한국대 교수로 부임한다는 이야기는 또 뭐고?]

“…….”

이건 또 무슨 소리지.

[니가 잘난 게 뭐 한 가지라도 있어야지, 교수라니……. 국장을 협박해서 그런 기상천외한 짓거리까지 해? 너 제정신이야?]

“…….”

영문을 몰랐지만, 이 여자는 그가 왜 교수가 되어야 하는지 정말 몰라서 물은 것은 아닌 듯했다. 단단히 화가 난 목소리가 그를 몰아 세웠다.

[보나마나 우시현인가 뭔가를 보려고 벌인 짓이겠지. 집안 망신을 혼자 다 시키는구나. 조금 반반한 에스퍼에게 미쳐서는, 나잇값을 못 해도 유분수지. 언제까지 그렇게 멍청한 짓만 골라서 할 거니?]

그는 문 앞에 선 채 날카롭게 쏘아대는 여자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목소리는 서슴없이 이 몸의 주인을 욕했다. 멍청하고, 무례하고, 허영심에 가득 찬 녀석! 참으로 통렬하게 사람을 꼬집는 어조였다.

고은교의 행실이었지만 혼나는 것은 자신이라니, 이건 아무래도 조금 억울하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도어락 위쪽에 현관문 카드키를 가져다 댔다. 문은 부드럽게 열렸다.

집 안으로 들어서면서 그는 전화를 이어 갔다. 전화를 끊지 않은 것은 고은교의 몸으로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고은교에 대한 단서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너라도 이제 변명할 말이 없는 모양이구나?]

“…….”

일단 고은서는 고은교의 주변인으로 보였다. 고은교의 행실을 탓하며 분노와 경멸을 쏟아내던 목소리가 한풀 꺾였다. 어쨌거나 그는 그녀가 한 말을 통해 최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다.

내용을 종합해 보자면 다음과 같았다.

한국 최고 명문대인 한국대는 당연히 에스퍼-가이드로 발현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특수과가 있었고, 센터에 근무하고 있는 상급 가이드를 초청하여 종종 위탁 강의를 진행했다. 이번에는 고은교가 강의를 하러 나갈 수 있는 자격을 얻은 것이다.

중급 가이드인 그가 위탁 강의를 맡을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사적인 권한을 남용했기 때문이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짝사랑하는 에스퍼를 보려고.

“…….”

진심인가.

[저번에 내가 했던 경고를 잊지 않았겠지? 이번 일로 너와 우리 집안의 연은 끝이다. 어디, 그렇게 무시하던 사람들에게 싹싹 빌며 잘 근무해 봐라. 네 카드로 들어가는 지원일랑 앞으로 일절 없을 테니 그렇게 알고.]

“…….”

카드가 끊긴다고? 오늘 병원비를 결제한 바로 그 카드?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 몸으로 눈 뜬 지 겨우 만 하루 된 그에게는 이 처사가 무척 부당하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이 냉혹한 말투를 구사하는 여자에게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끊는다.]

전화를 받은 뒤 그가 한 말이라고는 ‘음, 여보세요?’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다.

“…….”

어쩌겠는가?

어떻게든 사람이 살 길은 열린다고 했다. 노력하면 카드 없이도 충분히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심란한 마음을 가라앉히며 한숨을 내쉬었다. 쓸데없이 걱정하는 것만으로는 그 어떤 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전화를 끊자마자 그는 집안을 샅샅이 뒤졌다.

언제 이 몸의 주인이 돌아올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붕대 감은 머리로 멀쩡히 살아 있기는 해야 했다. 머리의 흠집은 그의 실수가 아니었으니 괜찮았지만 먹을 게 없어 굶어 죽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안타깝게도 냉장고에는 생수 몇 병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없었다. 고은교는 집에서 아예 밥을 해 먹지 않는 부류의 인간인 모양이었다. 물론 자신이라고 해서 밥솥에 쌀을 씻어 넣고 밑반찬을 꾸려 먹는 사람은 아니었다. 이것 한 가지만큼은 서로 거울처럼 닮았다.

음식을 사 먹으려면 돈이 필요했다. 이보다 더 명확한 명제는 없었다. 그는 식탁 의자에 앉아 휴대 전화를 뒤적거렸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주거래 은행처럼 보이는 곳의 통장 잔고를 확인할 수 있었다.

78,000원.

‘…….’

정말 집안의 카드로 모든 걸 해결해 온 건가? 지금까지 모은 돈이 정말 단 하나도 없는 거야?

눈앞이 깜깜해졌으나 이대로 가만히 앉아 절망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보다는 약 7만 원으로 얼마나 먹고 살 수 있나 고민하거나 간단히라도 일할 수 있는 곳을 알아보는 편이 현실적이었다.

그때, 경쾌한 알림 음과 함께 돈이 입금되었다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동시에 78,000에 멈춰 있던 잔고가 훅 불어났다.

4,078,000원.

이걸로 우리의 연은 끝이라고 선고하던 냉혹한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렇다면 이건…… 마지막 자비 같은 건가?

그렇게 생각한 것도 잠시, 휴대 전화로 메시지가 하나 더 도착했다.

[강사 수임료가 지급되었습니다. 영수증 출력은 한국대학교 홈페이지에서 할 수 있습니다. 개강 날짜는 9월 1일입니다. 감사합니다.]

‘…….’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렇다. 아까의 통화 내용으로 추측해 봤을 때, 그는 한국대에 부임할 강사였다. 다시 말해 생계 비용을 벌기 위해 다른 일을 찾을 필요가 없다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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