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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콜 가이드-5화 (5/132)

#5

그는 당황한 나머지 두 번이나 강의실 안과 밖을 왔다 갔다 했다. 그러자 유일하게 강의실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학생이 조심스럽게 그를 불렀다.

“오늘 1교시 수업 맞으세요.”

“아…….”

한 번 더 문 밖에 나가 보려던 걸음이 멈칫했다. 그는 천천히 뒤로 돌아 자신에게 말을 붙인 학생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는 ‘학생’이라는 단어에 딱 알맞은 외모의 남학생이었다.

하얀 피부, 동그란 눈, 강아지처럼 처진 눈매. 거기에 곱슬곱슬한 갈색 머리카락이 그를 더욱 어려 보이게 만들어 주었다. 대학생이 아니라 고등학생처럼 보인다.

그이의 투명한 시선에는 마른침을 삼키며 문에서 손을 떼어 낼 수밖에 없었다. 학생들이 없다는 사실이 믿을 수 없어 밖을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얼마나 바보처럼 보였을까?

그는 헛기침을 하며 강의실 안으로 완전히 들어왔다.

“……그렇구나. 그래요. 알려 줘서 고마워요.”

“아니에요.”

일단 강의실에 들어오기는 했지만 기분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그는 오늘 OT를 하려고 했다. 강의 계획서 일부가 변경된 것을 알리고, 다음 주부터 발표 준비를 하라는 안내를 했어야 했다. 그리고 오늘은 수업 첫날이니, 자유롭게 조를 정하라고 시키려 했다.

하지만 조도 꾸리지 않은 학생들에게 발표 준비를 하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쩔 수 없이 다음 시간에 OT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강의실에 남아 있는 딱 한 명의 학생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어떻게 해석한 건지, 남학생이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저는 특수과 남선재라고 해요.”

남선재는 목소리까지 소년처럼 부드러운 미성이었다. 절로 호감이 가는 인상이다.

“고은교 교수님 맞으시죠. 저, ‘이능력자의 이해’…….”

“맞습니다.”

그의 대답에 남선재는 조금 쑥스럽다는 듯 웃었다.

사실 남선재의 표정 같은 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착잡한 표정으로 수십 번 둘러보았던 강의실을 다시 한 번 둘러보았다.

‘요즈음 대학생들은 OT에 결석하는 게 당연한 건가……. 아니,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한 명 빼고 전부 결석을 할 수가 있어.’

마음이 몹시 심란했다. 수줍은 듯 따라붙는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을 것이다.

남선재가 변명이랍시고 덧붙이는 말은 이러했다.

“죄송해요. 저희 과가 오늘 해오름식이 있어서요. 1교시라서 들어오기 힘들었나 봐요. 저는 늦잠을 자서 해오름식에 못 갔거든요…….”

“…….”

늦잠을 잔 걸 고맙다고 해야 할지…….

만약에 강의실에 들어왔는데 학생이 하나도 없었다면 그는 1시간 내내 이 멍청한 짓을 반복했을 것이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당황한 기색이 남은 얼굴로 남선재의 말을 듣는 것뿐이었다.

자신을 강아지처럼 초롱초롱하게 바라보는 남선재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

“중요한 공지사항은 제가 따로 과사무실에 전달할까요?”

착하게도 남선재가 먼저 말했다.

“아,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다음 시간에 OT를 하면 되니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 휴대폰 번호를 알려 주겠어요?”

“앗……. 넵.”

그는 너무 초짜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애썼다. 학생들은 신임 교수의 경력이 어떤지 잘 모르니 지금부터 굳이 자신에 대한 신뢰를 약하게 만들 필요는 없겠지.

그는 자신의 휴대 전화에 제 번호를 입력한 뒤 공손히 두 손으로 휴대 전화를 돌려주는 남선재를 한층 따뜻하게 바라보았다. 학창 시절, 왜 선생님들이 모범생들을 골라 예뻐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이렇게 똘똘하고 착한 학생이라면 사적으로 만나 술이라도 한 잔 사 주고 싶어지는 건 인지상정인가 보다.

“고마워요, 선재…… 학생.”

선재 군? 선재 학생? 뭐라고 부를지 고민하던 끝에 ‘학생’이라고 호칭을 붙이자 남선재가 눈꼬리를 접으며 환하게 웃었다.

“그냥 선재라고 불러 주시면 안 돼요? 교수님.”

“…….”

요즘 애들은 다 이런가? 이렇게…… 살갑게 굴며 이름을 불러 달라고 하나?

나 때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그는 조금 망설였다. 하지만 학생과 친해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때, 그의 앞에 서서 미소 짓고 있던 남선재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남선재의 뺨 위로 옅은 홍조가 떠올라 있었다.

이 녀석, 에스퍼인가 보군.

그는 짧게 웃었다.

“그래요…… 선재 군.”

다음 수업은 금요일이었다. 그사이 시간이 꽤 있었기 때문에 그는 제대로 된 수업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사실 그게 정말로 제대로 된 수업 준비인지 아닌지는 잘 모른다. 그는 ‘제대로 된’ 수업 준비가 무엇인지 몰랐다. 자신이 위탁 강의를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고, 따라서 수업에 대한 경험이 전무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수업 준비는 인터넷의 힘을 빌려야 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이 몸의 원주인이 얼마나 해 놓은 것이 없었는지 제대로 실감할 수 있었다.

그래도 상황은 꽤 낙관적이었다.

수업하던 중간에 고은교의 몸으로 깨어났다면 다음 수업을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몰라 허둥댔을 것 아닌가. 처음부터 강의 준비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은 행운이라 할 만했다.

게다가 어제 만난 남선재는 친절한 학생이었다. 어쩌면 다른 학생들 역시 남선재처럼 예의 바를지도 모른다.

금요일, 강의실 문을 밀고 들어갔을 때 그는 약간의 기대감마저 품고 있었다.

남선재는 맨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가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남선재는 그를 보자마자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러자 저도 모르게 긴장했던 몸에서 힘이 스르륵 풀렸다.

그는 자신이 딱 한 번 본 남선재에게 심리적으로 꽤 기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그건 교수로서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것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법이다.

남선재의 미소 덕에 그는 태연히 교단 앞에 설 수 있었다. 그리고 어수선하게 채워져 있는 강의실을 훑어보았다. 아직 강의 시작 전까지 시간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학생들은 이쪽을 힐끔힐끔 쳐다보기만 할 뿐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다.

걸을 때마다 조금씩 시큰거리는 오른쪽 발목을 제외하고, 오늘 몸의 컨디션은 아주 좋았다. 팔꿈치는 멀쩡했고 뒷머리에도 더 이상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 문득 그는 추위를 느꼈다. 9월이라 한참 늦더위가 이어지고 있었기에 이건 확실히 이상했다.

살을 에는 것처럼 차가운 바람이 강의실 뒤편에서 불어오고 있었다.

‘뭐지?’

착각이 아니다.

그는 고개를 들어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잘생긴 남학생 둘이 등을 의자에 깊이 기댄 자세로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들의 얼굴을 확인한 그가 어깨를 움찔 굳혔다.

‘이상하다. 낯이 익은 것 같은데…….’

잠깐.

‘……우시현이잖아?’

둘 다 그의, 정확히 말하자면 고은교의 ‘my’에 있던 에스퍼들이었다.

특히 우시현은 아침저녁으로 눈을 뜨고 감을 때마다 얼굴을 마주 보기 때문에 그 얼굴을 모르려 해도 모를 수가 없었다.

그는 약간 초조한 기색으로 그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들이 무슨 제스쳐를 취하기를 기다렸다. 어쨌거나 그들은 고은교의 에스퍼였으니까.

우시현은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물끄러미 이쪽을 바라보던 이승우가 눈을 가늘게 뜨더니 고개를 한 번 까딱였을 뿐이었다. 그게 전부였다.

‘뭐지.’

이건 이상했다.

왜 인사를 하러 안 올까?

우선 임시방편으로 고은교인 척하기로 했지만, 이런 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my’에 에스퍼가 단 둘밖에 없길래 꽤 단란한 사이인 줄 알았는데……. 특히 고은교가 우시현에게 맹목적인 애정을 갖고 있다는 것은 명백해 보이는 사실이었다. 고은서도 ‘그 반반한 에스퍼에게 미쳐서는’이라고 말했으며, 고은교의 방 사면은 우시현의 얼굴이 잔뜩 붙여져 있었으니까 말이다.

다른 담당 에스퍼, 그러니까 이승우는 모르더라도 우시현만큼은 고은교와 특별한 사이일 게 분명했다.

그는 잠시 우시현에게 아는 척을 해야 할까 고민했지만, 지금 막 교수로서 강의실에 들어왔는데 특정 학생에게 아는 척을 하면 공평성에 어긋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최소한 그들은 사귀는 사이일 테니 수업이 끝나면 우시현이 다가와서 무슨 말이든지 건네리라.

사귀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시현과 이승우는 고은교의 에스퍼였으므로 지금쯤 내색만 하지 않을 뿐 자기 가이드에게 아는 척을 하고 싶어 죽을 지경일 것이라 판단했다.

그래…… 그러면 곤란해지는 것은 오히려 자신이다.

사귀는 사이에, 특히 에스퍼와 가이드의 관계라면 스킨십은 기본이다. 연애로 넘어가면 무조건 깊은 스킨십을 하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여러 에스퍼에게 단련이 되어 있는 자신이어도 처음 보는 에스퍼와 점막 가이딩을 하는 건 거북했다.

‘수업 끝나면 도망이라도 갈까…….’

애써 드는 생각을 털어내려 노력하며 그는 시계를 확인했다. 정각이었다. 빔 프로젝트를 틀며 그가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다들 반갑습니다.”

드디어 강의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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