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콜 가이드-6화 (6/132)

#6

첫 수업 때 그렇게 당해놓고도, 학생들이 수업을 얼마나 경시하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았다는 게 첫 번째 문제였다. 두 번째 문제는 생각보다 강단에 서서 수업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스피칭은 혼자 연습했을 때처럼 잘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대충 알 것 같았다. 두 번째 수업인 금요일 8교시가 되어서야 볼 수 있었던 학생들이 적대적인 시선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으니까.

이러니 수업이 잘될 턱이 있나. 잘될 수업도 망가질 게 틀림없지, 약간 아연실색한 기분으로 그는 생각했다.

‘수업이 월요일 1교시, 금요일 8교시여서 그런 건가?’

그런 거라면……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는 바는 아니다. 누가 선정했는지 정말 끔찍한 시간표였으니까. 하지만 설마 수업 시간표를 고은교가 직접 정했으려고.

이건 그냥 불운인 것이다.

미리 남선재를 통해 공지한 대로 학생들은 저마다 강의 게시판에 올려져 있는 pdf 파일을 프린트해서 가져온 상태였다. 뜻하지 않게 금요일까지 시간을 벌었으니 그는 학부 시절의 기억을 되살려 어찌저찌 조금 더 자세해진 ppt를 만들어 업로드했다.

고은교가 업로드한 강의 계획서가 있었지만 그건 너무 생략되어 있는 강의 계획서였다. 따라서 그는 자신이 새로 만든 ppt 파일과 고은교의 강의 계획서를 기반으로 OT를 할 생각이었다. 일단은 말이다.

앞으로 강의 계획서를 조금…… 바꾼다 하더라도, 일단 첫 시간에는 이 수업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학생들에게 알려 줘야 할 게 아닌가.

하지만 그의 학생들은 해오름식에 참여한다는 핑계로 첫날 수업을 보이콧했던 망나니들이었다. 이런 녀석들이 나중에 현장에 들어오면 ‘넵, 선배님!’하는 병아리들이 된다니. 순진해 보이는 남선재를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은 말 그대로 재기 불능의 양아치였다…….

아니지, 벌써부터 학생들에게 편견을 가져서는 안 된다.

그는 애써 학생들이 자신의 수업을 무시한 원한을 내리눌렀다.

한 번도 선생님 비슷한 게 될 거라고 생각한 적 없었지만, 그래도 이왕 이렇게 된 것 이상적으로 생각하던 교육자의 모습을 흉내 내기라도 해야 했다.

본격적인 OT를 들어가기 전 가볍게 농담을 던질 만한 주제 10분, 간단한 강의 계획서 브리핑 10분, 나머지 30분은 조 과제를 할 수 있도록 자유롭게 조를 꾸려 보라고 할 예정이었다. 강의 게시판에 올린 새로운 ppt를 보면서 발표 주제를 정하는 것이 이번 시간의 과제였는데…….

아무도 빔 프로젝트에 나오는 동영상을 보고 웃지 않았다. 여기에서 농담을 던진다 해도 분위기만 싸할 것이다. 학생들은 아예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쩌라고.’라고 쓰인 것 같은 표정들이었다.

‘기분 탓이겠지.’

이 학생들이 자신을 미워할 이유는 없다.

처음으로 강단에 서서 다수를 대상으로 수업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너무 떨려 그렇게 착각한 것이리라.

그는 티 나지 않게 심호흡을 하며 동영상을 다 본 뒤 자연스럽게 그다음 단계로 ppt를 넘겼다.

“다음은…… 우리가 이번 학기 동안 공부할 내용입니다. 다들 아마 강의 계획서를 보셨겠지만, 강의는 조별 활동으로 이루어지며 다음 주 금요일부터 발표 수업으로 진행됩니다. 지금 보이는 강의 계획서와는 조금 상이한 내용으로 강의가 진행될 거고요.”

고은교의 강의 계획서를 그대로 복사해서 붙여 넣은 1-17주차가 그대로 띄워졌다. 그는 몇 번이나 강조해서 강의 계획서가 변동되었다는 사실을 학생들에게 알렸다.

“새로운 강의 계획서와 관련 논문 목록은 강의 게시판에 올려 두었으니 확인해 보세요.”

“…….”

차가운 대학생들은 신임 교수의 말 따위는 사람의 말처럼 느껴지지 않는지 대답조차 해 주지 않았다.

그는 치밀어 오르려는 한숨을 삼켰다.

‘하긴, 나도 학부 시절에 교수의 질문 같은 건 대답하지 않았었지…….’

그렇다면 이건 부메랑일지도 모른다. 업보 말이다. 자신의 진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전공 교수도 아닌데 학생들이 자신에게 살갑게 굴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위안하며 그는 조금 작아진 목소리로 ‘그럼 나머지 시간 동안 자율적으로 조를 만들어서 명단을 제출해 주세요.’라고 중얼거렸다.

물론 이번에도 대답은 없었다. 비가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가, 그는 이번에도 심한 오한을 느꼈다.

그때였다.

“교수님? 질문 있습니다.”

귀여운 남선재인가 싶어서 퍼뜩 정신을 차리고 앞을 보자 전혀 면식이 없는 학생 중 하나가 손을 들어 올린 것이 보였다.

왁스를 발라넘길 필요가 없는 짧은 스포츠식 머리인데도 왁스를 너무 발라 머리 전체가 반들반들해 보이는 넙대대한 인상의 학생이었다. 그에게 시선을 주자 그 학생은 한쪽 손바닥을 자기 얼굴 앞에 살짝 들어 올렸다.

“그래요.”

그가 고개를 끄덕여 그 학생을 바라보았다. 그러지 않아도 어젯밤 혹시 모를 질문을 대비해 Q&A를 적어 답변을 연습한 참이었다.

목록에 있는 논문 말고 다른 논문을 참고해도 되냐고 물어볼까? 아니면 시험이나 리포트 일정에 대해서 물어보려는 걸까? 기대감인지 초조함인지 모를 감정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첫 번째 주 주제 말인데요.”

아니, 그런데 질문하기 전에 자기 이름을 말하지 않는 건가?

그건 아무래도 좀 건방지게 느껴졌다.

그가 생각한 이상적인 질문자의 태도는, 한쪽 손을 귀 옆에 붙이며 ‘제 이름은 누구입니다. 질문 있습니다, 교수님!’이라고 말하며 공손하게 질문하는 것이었다. 그는 교수였고 약 80명의 학생들을 상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출석부가 있었지만 학생의 얼굴과 이름을 매치하기는 어려웠다. 자기소개 없이 그 학생이 누구인지 알아보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는 의미다.

그건 그렇고, 그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네.”

헛기침을 한 학생이 이어서 질문했다.

“교감……이 뭡니까?”

이것 역시 예상 Q&A 목록에 있는 질문 중 하나였다.

그는 사실 이보다 구체적인 질문, 그러니까 ‘각 주차의 주제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와 비슷한 형태의 질문이 들어올 거라 예상했다. 다만 첫 강의로 학생들이 학구열이 없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고, 따라서 당장 다음 주에 수업에서 다룰 주제, ‘교감’에 대해서만 궁금해 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그때, 학생들로부터 ‘박지성 가이드와 연애하려면 박 씨 성을 가진 사람과 만나 그를 개명 시키는 방법밖에 없다’는 주제의 영상을 봤을 때도 나오지 않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는 눈을 깜빡이며 웃음소리를 들었다. 비웃음인지 억지로 웃는 건지 알 수 없는 높은 톤의 웃음소리였다.

“…….”

이건…… 그로서 영 면역이 없는 웃음소리다. 아무리 그가 위탁 강의를 처음 맡아 본 초짜 교수라 할지라도, 악의와 선의를 구분할 수는 있었다. 학생들은 명백하게 그를 업신여기고 있었다.

그는 최대한 당황한 티를 내지 않으려 애썼다.

한 가지는 확실하군.

자신은, 그의 수업은 이곳에서 환영 받지 못한다.

그 사실을 인지하자 오히려 머릿속이 차가워졌다. 어떤 상황이든 간에 그는 수업을 관둘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또한 불가항력인 처지는 차치하더라도, 누군가 자신을 환영하지 않는다고 해서 하기로 마음먹은 것을 관두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의 강의를 듣는 이들은 자신보다 다섯 살에서 열 살쯤 어린 학생들이었다. 기가 죽어 더듬거리거나, 상심하여 강의실에서 쫓겨나듯 도망가기에는 그가 살아온 세월들이 만만치 않았다.

“교수님?”

그는 자신이 할 말을 빠르게 정리했다. 그리고 질문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답변했다.

“에스퍼와 가이드는 교감 없이 충분한 가이딩을 진행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이딩 이전에 이능력자들은 서로 ‘교감’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니까 교수님.”

그래도 처음 질문했을 때는 공손한 척이라도 했는데, 그의 말에 대꾸라도 하듯 따라붙는 목소리에는 거친 느낌뿐이었다.

그 학생은 뺨을 한 번 씰룩거리더니, 큰소리로 말했다.

“그 ‘교감’이 뭐냐구요……. 혹시 저희가 강의실에서 뭐, 점막 가이딩이라도 하는 건가요?”

질문자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아까보다 학생들로부터 더 큰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다짜고짜 점막 가이딩을 하냐고 묻는다니, 이게 요즘 애들의 정신 상태인가?

점막 가이딩이란 최소 키스를 말한다. 대부분은 섹스를 의미하고. 그러니 저 질문은 ‘강의실에서 난교 섹스라도 벌이는 것이냐’고 묻는 것과 뉘앙스가 다르지 않았다.

의아함보다 불쾌함이 더 커서 그는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그는 현장에서 구를 대로 굴렀던 상급 가이드로서 에스퍼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가이드에게 존중 받아왔다. 현장의 ‘ㅎ’도 모를 햇병아리들에게 이런 식으로 성희롱에 가까운 웃음거리가 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는 소리다.

“학생은 이름이 뭔가요?”

살짝 낮아진 목소리는 얼핏 부드럽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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