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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콜 가이드-7화 (7/132)

#7

실제로도 그는 자신의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훈련이 되어 있었다. 감정 기복이 크면 클수록 침착하게 보이려는 이유는 간단했다.

게이트 안에서는 에스퍼들이 자신의 가이드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몹시 예민해져 있기 때문에 자신의 가이드가 보이는 모습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러니 가이드는 기분이 나빠도, 충격을 받아도, 초조해도 언제나 일관된 태도를 유지해야 했다.

그의 물음에 비죽비죽 웃으며 적의를 드러내던 학생이 그를 역력히 깔보는 기색으로 대답했다.

“특수과 박경호입니다.”

그래, 경호야. 너는 나중에 현장에서 보면 죽었어.

그렇게 무심코 생각하자마자, 그는 원래 자신은 죽었고 지금은 저 햇병아리들처럼 현장에 다니지 않는 일반 이능력자의 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복수도 당연히 할 수 없겠지. 그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그의 충직한 에스퍼들도 없을 테니까…….

그건 상당히 불쾌한 기분이었다. 동시에 약간의 무력감이 들었다. 장이주였을 때 오랜 시간을 들여 구축했던 관계와 실적은 고은교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동안 쌓아올린 것들이 사라졌지만, 고은교가 된 이상 장이주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이것에 익숙해져야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무 말 하지 않는 것도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미성년자는 아니지만 학생은 학생이었고 그는 교수였다. 학생을 올바르게 훈육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는 눈썹을 살짝 찌푸린 채 입을 열었다.

“가이딩의 기본은 손잡기입니다. 그리고 연인 사이가 아니라면 그런 사적인 접촉은 지양해야 합니다.”

“…….”

“미성년자도 아닐 텐데 이런 기본적인 것까지 알려 줘야 하는지 몰랐네요. 고등학교에서 성에 대한 의무교육을 받지 못했나요?”

그의 말이 끝나자, 강의실이 소름끼치도록 조용해졌다. 아무리 부드럽게 이야기했다지만 말한 내용이 어디로 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겨우 이 정도로 훈계가 먹히지는 않겠지만 상대방에게 모멸감을 주려고 했을 때 최소한 상대를 가려야 한다는 생각은 하게 될 것이다. 누군가에게 섣불리 덤벼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스무 살 이상의 성인이라면 그 정도 머리는 가지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정확히는 그러기를 바랐다. 하지만 ‘성교육도 받지 않았느냐’는 말에 기분이 나빴는지, 껄렁거리는 태도로 앉아서 질문하던 박경호가 얼굴을 벌겋게 붉힌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기요, 교수님!”

좀 귀찮아질지도 모르겠다. 그는 무소처럼 자신에게 돌진하려는 박경호를 보면서 생각했다. 육체 강화 에스퍼인 것 같은데……. 이 강의실 안에서 자신을 도와줄 학생이 과연 있을까?

‘조금 참을 걸 그랬나.’

한가하게 생각하는 동안 박경호는 씩씩대며 강단으로 나오려 했고, 이를 보다 못한 남선재가 박경호를 억지로 붙잡아 앉히려 했다.

그래, 남선재가 있었지.

“너 뭐 하는 거야. 앉아.”

“씨팔, 남선재. 이거 놔. 놔, 이 새끼야. 안 놔?”

그는 새삼스러운 시선으로 자신을 도우려는 남선재를 바라보았다. 박경호는 남선재의 손을 뿌리치며 그에게 가까이 다가오려 했다.

그 목소리는 강의실 뒤편에서 들려왔다.

“박경호.”

“놓으라고…… 어, 어……?”

“그만해.”

부드럽고도 단호한 목소리가 시뻘겋게 얼굴을 붉힌 멧돼지를 저지했다. 우시현의 옆에 앉은, 동그란 안경을 낀 남학생이었다.

바람결에 흩날리는 듯 가벼운 느낌의 목소리였다. 시끄러워진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태연한 목소리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단 한마디로 박경호의 움직임을 저지시켰다.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힘이 그 목소리에 깃들어 있었다.

대부분의 에스퍼들은 타고난 지배자다. 사람 역시 생물체였으므로 힘의 논리에 의해 본능적으로 좌우된다. 박경호가 입을 닫고 수그리는 것도 단박에 이해되었다. 그와 별개로 그는 이승우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무엇인가 이상함을 느꼈다.

발바닥으로 찌릿하는…… 정전기 같은, 전류가 흐르는 느낌. 미세하지만 명확히 무엇인가를 알리는…… 알람 같은 감각.

……뭐지?

“교수님이 틀린 말씀을 하신 것도 아닌데 너무 시끄럽게 군다.”

“야, 이승우. 나는…….”

“손잡기가 기본이라고 본인 입으로 말씀하셨으니 안 무르시겠지. 그렇죠, 교수님?”

‘나한테 능력을 쓴 건가?’

하지만 몸의 구성이 달라졌다거나 기분이 극적으로 바뀌었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에스퍼가 능력을 썼다면 분명히 그 증상이 나타날 텐데……. 그는 바쁘게 몸 내부를 점검하느라 이승우가 하는 말을 거의 듣지 못했다. ‘그렇죠, 교수님?’이라고 되묻는, 캐러멜처럼 부드럽지만 어쩐지 냉철하게 들리는 부름에 정신을 차렸을 뿐이었다.

“…….”

그는 침묵을 지켰다. 대답이 필요하지 않았는지 이승우는 두 번 묻지 않았다. 대신 무료한 얼굴로 턱을 괴고 그를 응시했다.

고은교는 천천히 마른침을 삼켰다.

어쩌면…… 어쩌면, 이렇게 유난 떨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동그란 안경을 쓴 남학생의 이름은 이승우로, 우시현과 함께 그의 ‘my’에 있는 고은교의 에스퍼였다. 그러니 분명 이 몸에 손해를 줄 만한 일은 하지 않았으리라. 대부분의 에스퍼는 자신의 가이드를 자신의 몸처럼 소중히 생각하니까.

그렇게 판단을 내린 그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안경 너머의 검은색 눈동자가 뜻밖이라는 듯 크게 뜨였다. 그러고는 부드럽게 접히며 휘어진다.

미소 짓자 놀랍게도 냉한 얼굴의 인상이 다정하게 바뀌었다. 그러자 불안했던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아마, 고은교의 에스퍼는 양아치 같은 학생이 교수한테 하극상을 하려고 하니까 나서서 도와준 모양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고마운 마음이 든다.

반면, 이승우의 옆에 앉은 우시현은 제 친구가 이런 일에 나선 것이 못마땅했는지 다리를 꼰 채 삐딱하게 앉아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역시 사귀는 사이가 아니었던 건가.’

생각해 보면 사귀는 사이치고 너무 연락이 드물기는 했다.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내내 고은교의 휴대 전화는 울리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설마, 설마 했는데…….

끔찍하게도 그건 짝사랑이었나 보다. 우시현은 아주 지긋지긋한 것을 보듯 그를 흘겨보고 있었다.

‘반반한 에스퍼한테 미쳐서는!’

고은서의 고함 소리가 떠올랐다. 그녀의 말대로 고은교는 정말 자신을 싫어하는 에스퍼를 보기 위해 위탁 강의까지 맡은 건가?

아니, 잠깐. 그렇다면…… 애초에 ‘my’에는 우시현을 어떻게 넣은 거지?

아무리 매칭률이 우선된다 하더라도 ‘my’ 목록은 에스퍼와 가이드, 양측의 동의가 있어야만 성사할 수 있는 관계였다. 서로를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관계가 되는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설사 두 명의 이능력자가 매칭률 100퍼센트를 기록해도 누구 한 사람이 원하지 않으면 만들어질 수 없는 관계였다.

그는 애써 이어지는 상념을 떨쳐냈다. 지금은 강의 중이다.

“질문 더 있습니까?”

여전히 강의실 안은 조용했다.

그를 반기지 않는 곳에서 상급자로서 주도하여 말을 하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 강의의 주인이었고, 교수였다. 어떻게든 오늘 수업을 마쳐야 했다.

“명단은 조장이 나와서 제출하고 가세요.”

곧 강의실이 다시 시끌시끌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밀도 높은 액체가 흘러내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지나친 스트레스의 전조 증상이었다.

*

생각 같아서는 당장 집에 가서 몸을 누이고 싶었지만 강의실 문을 박차고 나가는 상상만 열두 번째 되풀이할 뿐이다. 아직 4시 30분밖에 안 됐다니, 시계를 너무 자주 쳐다봐서 시계가 닳아 없어질 것만 같다.

그는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참았다. 학생의 절반 정도는 노트나 포스트잇에 이름을 적어 제출했지만, 나머지 절반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저들끼리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절대 강의에 관련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자기소개를 하고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애초에 이 강의는 특수과 필수 교양 강의라, 학생들은 서로 서로 아는 사이였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겠는가. 강의는 뒷전이고, 저들끼리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틀림없이 그중 태반은 아까 있었던 일에 대해서 말하고 있으리라.

벽시계를 다시 힐끔 쳐다보고 시선을 내리는데 강의실 가장 뒤에 앉은 이승우와 눈이 마주쳤다. 실눈처럼 접혔던 눈웃음이 떠올랐다. 그러나 이승우는 다시 그에게 눈웃음을 지어 주는 대신 모르는 척 시선을 떼어 낸 뒤, 자신의 옆자리에 앉은 우시현에게 고개를 기울여 뭐라고 속삭였다.

기분이 이상했다.

‘my’에 있는 에스퍼를 향해 ‘내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가이드라면 당연한 감정이겠지만, 자신을 향해 싸늘하게 코웃음을 치던 우시현도 그렇고 그린 듯이 미소 짓고 있는 이승우도 도무지 자신의 것 같지 않았다.

그렇지만 확실히 이승우에 한해서만큼은 왜 그가 고은교의 ‘my’에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정확하게는 이런 느낌이 처음이라고 해도 좋았다.

방금 전에는 이승우가 자신에게 능력을 썼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말하자면, 이 ‘전기가 통하는 감각’은 그가 소문으로만 접했던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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