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콜 가이드-9화 (9/132)

#9

고은교가 자신들을 보고 있음을 알 텐데도 그들은 고은교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이건 혹시…… 질투인가?’

기본적으로 ‘my’에 있는 에스퍼는 자신의 가이드를 다른 누군가와 나누려 하지 않는 기질을 갖고 있었다.

자꾸 그를 쳐다보고, 남선재와 대화를 나눴다고 소유욕을 드러내는 것을 보니 그들이 일반적인 에스퍼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기도 한데…….

자신이 우시현을 오해했던 걸까?

생각해 보면, 아직 그는 정식으로 자신의 에스퍼들과 인사를 나누지 못했다. 우시현이 자신을 싫어하는 기색을 보인다 해서 일방적인 편견을 가지고 그를 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쩌면 우시현은 그냥 눈빛이 그런…… 다른 사람과 조금 다른…… 본의 아닌 모습을 보여 주는 사람일지도 몰랐다.

일단 그는 장이주였던 시절 하던 것처럼 자신의 에스퍼들에게 괜찮다는 싸인을 보내 줄까 고민했다.

물론 그럴 필요는 없었다. 무엇인가 해 볼 사이도 없이 그들은 흥미 없다는 듯 그에게서 시선을 떼어 내고 저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럼 그렇지.’

그는 약간 실망감을 느꼈다.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자 강의실이 서서히 비워졌다. 물론 아직까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는 벽시계를 힐끔거렸다. 저 학생들은 다음 수업이 없나? 하긴, 오늘은 금요일이었다. 그는 시선을 내려서 출석부를 확인했다. 벌써 11팀이 명단을 제출하고 나갔다.

이제 한 팀이 남은 것 같다. 딱 봐도 저기 있는 저 녀석들인데…….

고민 끝에 그는 의자까지 돌려 앉아 시끌시끌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학생들에게 다가갔다. 사실, 교탁에서 한 걸음 내딛는 순간부터 6명의 학생들이 그를 주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가이드라서 그런 건가?’

에스퍼라면 알게 모르게 가이드에게 신경을 쓰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그중 몇 명은 에스퍼가 아니라 가이드일 텐데도 그랬다.

그가 가까이 다가올 수록 하나 둘 입을 다물더니, 마침내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어쩐지 모두들 곱지 않은 눈길로 그를 쳐다보는 것 같다.

그는 눈썹 위를 한 번 긁적인 다음 최대한 평범하게 말을 꺼냈다.

“명단을 내고 조별 과제를 시작해도 될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렇죠?”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아……. 명단이요.”

누군가 느릿느릿 중얼거렸다. 그는 학생들이 자신을 흘깃흘깃 보며 저들끼리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하는 것을 보았지만,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여기까지 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교수님. 깜빡했네요.”

죄송하다는 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남아 있어서 전혀 죄송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기다리고 있었으면 어련히 알아서 갔을 텐데, 뭐 하러 여기까지 오느냐는 뜻 같기도 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우시현이 코웃음을 치는 소리가 선명히 들렸다.

후자의 뜻이 맞나 보군.

아주 대놓고, 적대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정수리에 꽂혀 따끔거리는 듯했다. 그는 여태까지 자신에게 내밀어진 도전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적이 없었다. 바로 고개를 들어 올리자 곧장 우시현의 지나친 잘생긴 얼굴과 마주할 수 있었다.

자신을 증오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눈동자의 색은 옅은 회갈색이었다.

“어련하시겠지.”

빈정거리는 어투였다. 그따위 무례한 태도에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동시에 그는 왜 이 몸의 주인, ‘고은교’가 우시현에게 이토록 미움 받으면서도 우시현을 열렬히 사랑할 수밖에 없었는지 정확하게 이해했다.

그는 누구에게나 있는 검은 머리카락이 매우 인상적으로 느껴지는 미남이었다. 반듯하게 드러낸 이마와 완벽한 형태의 아치형 눈썹, 젊음으로 빛나는 눈동자, 조화로운 콧대와 그 아래 모양 좋은 입술까지 자로 잰 것처럼 아름다웠다. 사진은 실물의 반밖에 담아내지 못했다.

이 남자, 그러니까 고은교가 제 방에 벽지를 대신하여 그의 방을 장식하고 있는 남자 우시현은, 고은교에게 맹렬한 적의를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관심조차 짜릿하게 느껴질 정도로 아주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멀리서 봤을 때도 잘생겼다고 생각했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더욱 그 외모가 두드러져 보였다.

“여기 명단입니다, 교수님.”

‘아차.’

머리 위로 얼음물이 쏟아지는 것 같다. 아무리 잘생겼다지만 그의 얼굴에 잠시 넋을 잃었던 게 믿을 수 없었고 동시에 수치스러웠다. 그의 바보 같은 모습을 모두들 봤을 테니까.

그는 급히 이승우가 내미는 포스트잇을 받았다. 깜빡했다는 말은 진짜인지 이미 그 위에는 단정한 글씨체로 여러 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런 뒤에는 동그란 안경 뒤에 눈동자와 조금 길게 눈을 마주쳤다. 마치 상대방을 관찰이라도 하는 것 같은 시선. 우시현처럼 대놓고 사납게 노려보지는 않았지만, 그 역시 조금도 호의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학생들 역시 그를 좋게 보고 있지 않아서, 그들이 찔러대는 시선에 피부가 따끔거리는 것 같았다. 조금도 견딜 수 없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다른 학생 같은 게 아니라 우시현과 이승우였다.

당연했다. 우시현과 이승우는…… 어쨌든 ‘my’에 있는 에스퍼였다.

그러니까…… 이 에스퍼들은 무슨 이유든지 비록 자신을 싫어하더라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자신의 편을 들어줄 것이라 생각했다. 아까 이승우가 박경호의 손에서 자신을 구했던 것처럼. 그래서 마음의 경계를 내려놓았으나, 지금은 그들이 손수 조장하는 것 같은 싸늘함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왜 그의 ‘my’에 있는 에스퍼가 그를 적대하는 걸까?

이런 건 들어본 적도, 느껴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고스란히 드러낼 수는 없는 일이다. 자신이 맨얼굴을 드러낸 순간 분명 얕잡혀 보일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그는 의연하기 위해 노력했다.

“발표 준비 잘하세요.”

흐린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포스트잇을 쥔 채로, 그는 서둘러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는 자신에게 있는 줄도 몰랐던 회피 성향과 마주하며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다. 물론 고민한다고 해서 답이 나올 만한 문제는 아니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의미 없는 추측밖에 없었다. 자신의 에스퍼들이 자신을 적대하는 데는 분명 ‘고은교’와 관련한 일이 있을 것이다. 지금의 자신으로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결코 알 수 없는 일 말이다.

그런 것보다는 앞으로 있을 강의가 훨씬 중요하지 않냐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그들이 자신을 적대하는 건 이득일 수도 있었다. 우선 그들은 자신을 적대하는 만큼 자신과 많은 대화를 나누려 하지 않을 것이다. 또, 그건 그들이 ‘고은교’에게 가이딩을 받지 않아도 괜찮다는 이야기였다.

그 말은 자신이 진짜 고은교가 아님을 들킬 가능성이 현저히 적어진다는 의미였다.

아무리 센터의 가이드가 부족하다지만 그건 등록된 가이드에 한해서였다. 당장 고은교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가이드지만 일반인이나 다름없이 복무하는 가이드의 수 역시 상당히 많았다. 고은교가 가이딩해 주지 않아도 저들은 저들만의 관계를 구축한 가이드가 있겠지.

그는 최대한 자신의 ‘my’에 있는 에스퍼, 우시현과 이승우를 잊어버리려고 노력했다. 왜 그러는지 모르겠는 그들의 상태를 추리하는 것보다는 앞으로 자신이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는 게 더욱 효율적이었다.

‘고은교와 아주 최근에 싸웠을지도 모르지. 고은교도 저 빌어먹을 벽지 사진을 떼어 내려고 마음먹었는데 하필이면 그날 욕실에서 넘어져서…….’

그는 속으로 투덜거리며 고은교와 그들 사이의 일을 멋대로 상상했다.

일단, 앞으로도 계속 강의를 해야 한다는 것은 확실해졌다. 그가 잘할 수 있는 일은 가이드밖에 없는데, 아무리 방법을 고민해 봐도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 당장 현장 가이드로 복직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일단 현장 가이드가 되려면 게이트에 들어가야 하는데, 일반 가이드인 고은교가 아무런 교육도 받지 않고 게이트에 투입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지금 그의 밥줄을 쥐고 있는 것은 이 위탁 강의였다. 그는 아쉬운 마음으로 ‘일단 게이트에 들어가기만 하면……’으로 시작되는 달콤한 상상을 억눌렀다. 대신 그는 일단 발등 위에 떨어진 불을 끄기로 했다.

교수 노릇은 생각보다 어려웠지만, 돈 벌어먹고 사는 일은 원래 어렵다. 처음부터 날로 먹으려던 마음가짐이 잘못된 것이다. 그는 가볍게 자신의 어리석음을 질책했다.

부엌 천장을 뒤져서 커피 티백을 찾아낸 그는 진하게 커피를 우렸다. 그리고 발끝을 까딱이며 강의 계획서를 고쳤다. 약 2주 동안…… 이론을 배운 뒤 조를 이루어 실습하는 것 정도면 괜찮을 듯했다.

‘흠…….’

사실 말이 2주지 벌써 1주차는 끝났다. 다음 주 금요일부터 당장 발표 수업이 시작될 예정이니까, 실질적으로 그가 이론을 설명할 시간은 단 한 시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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