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2조 조장인 남선재와 달리 1조 조장은 그의 첫 수업, OT를 보이콧한 학생 중 하나였다. 사실 남선재를 제외한 모두가 그랬다.
“안녕하셨어요, 교수님.”
그날은 목요일 오후 3시였다. 월요일 1교시 수업 이후로 처음 보는 자리였다.
남선재는 사교성이 좋은 친구라 생글생글 웃는 낯으로 그에게 인사를 했지만, 1조 조장은 무뚝뚝한 얼굴로 고개만 꾸벅 숙였을 뿐이었다.
이미 학생들이 자신을 경시하는 태도에는 익숙해졌다. 그는 별다른 불만을 품지 않았다.
“선재 군부터 할까요?”
“네.”
대답하는 남선재의 등 뒤로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진짜 그랬다는 것은 아니고, 그 정도로 남선재가 자신을 따른다는 의미였다. 분명 남선재는 이 수업을 듣는 학생 중에서 유일하게 그를 좋아하는 학생일 것이다.
1조 조장은 아무 말 없이 꾸물대며 남선재의 옆에 가서 섰다.
그는 노트북으로 남선재의 조가 제출한 리포트를 켰다. 남선재가 긴장된 시선으로 노트북 화면을 응시하는 게 보인다.
“2조는 가이드가 많고, 염동 에스퍼만 두 명이라 좀비 게이트를 선택했다는 거죠?”
“네.”
“흥미롭네요.”
염동력은 연비가 아주 좋다. 보통 에스퍼들은 복잡하고 강력한 능력을 가질수록 연비, 즉 가성비가 구린데 반해 염동력은 가성비가 가장 좋은 능력 중 하나다.
바꿔 말하자면, 염동력은 단순한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으며 매우 흔한 능력이라는 이야기였다.
그의 조는 총 일곱 명이었는데, 에스퍼 두 명을 제외한 나머지가 전부 가이드였다. 문제가 있다면 남선재와 다른 에스퍼 한 명의 등급이 그렇게 높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남선재가 C급 에스퍼였고, 다른 에스퍼는 D급이었다.
하지만 좀비 게이트 역시 D급 게이트다. 물량이 좀 많기는 하지만, 제대로 대처할 수만 있다면 단 한 명의 부상자도 낳지 않는 게이트기도 했다.
“하지만 게이트에서 얻을 수 있는 시료가 거의 없는데, 굳이 이 게이트를 클리어 할 이유가 있을까요?”
그리고 현재, 좀비 게이트는 안에 좀비가 가득 차 버려 게이트가 터질 위기에 처한 것이 아닌 이상 아무도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 게이트였다.
S.M.T의 목표 값이란 근본적으로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얻을 수 있는 이득을 말한다.
좀비 게이트 대부분은 반세기 전 현대가 배경이었다. 땅속 자원은 텅 비어 있고, 폐허가 된 도시에서는 부식된 통조림 같은 쓰레기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 마디로 쓸 만한 시료가 전혀 없다는 의미다.
“……경험치요?”
남선재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살짝 미소 띤 얼굴로 남선재를 바라보았다.
“이건 게임이 아닌데요, 남선재 군.”
“네…… 교수님. 제 말 뜻은, 좀비 게이트는 다른 게이트에 비해 준비가 많이 필요한 게이트라서 한 번 클리어하고 나면 다른 게이트를 보다 쉽게 클리어 할 수 있을 거라는 의미였어요.”
괜찮은 답변이었다. 조금 당황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리고 남선재는 아마 현장으로 오게 된다면 진짜 경험치가 있다는 것 역시 알게 될 것이다.
이능력자들이 현장에 뛰어드는 이유였다. 대부분의 이능력자들은 자신이 서서히 강해지는 것에 중독된다. D급 능력자가 1~2년 후에 C급으로, C급 능력자가 3~4년 후에 B급 능력자가 되는 건 바로 이 경험치 때문이었다.
초기에는 능력을 진단하는 기기의 결함이라 생각했으나, 현장 이능력자들의 능력치 상승이 빈번하게 이루어지자 최근 게이트를 클리어하면 등급이 올라간다는 소문이 알음알음 퍼지기 시작했다.
쓸데없는 좀비 게이트를 각 기업에서 얻기 위해 치열하게 물밑 경쟁을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좀비 게이트 안에는 기본적으로 어마어마한 몬스터가 있으므로.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보상이 주어지는 법이었다. 남선재는 곧 가파르게 성장하는 에스퍼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그는 남선재에게 격려의 미소를 보냈다.
“일리가 있네요. 발표 기대할게요.”
“넵.”
2조 피드백이 끝나가는 듯하자, 1조 조장이 한 걸음 가까이 다가왔다.
그는 한숨을 쉬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노트북 화면으로 1조의 리포트를 띄웠다. 그리고 1조 조장을 돌아보았다.
*
“……이상, 1조 발표를 마칩니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1조의 수정된 리포트를 팔락거리며 침묵을 지켰다. 수정하라고 지시했으나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기에 사실상 처음에 제출한 준비 리포트와 별로 다르지 않은 발표였다.
본래 발표는 10분 내외로, 나머지 10분은 질문 및 리딩 피드백으로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그래서 한 시간에 두 조가 충분히 발표할 수 있게끔 말이다.
물론, 그는 1조 준비 리포트를 피드백 해 주면서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본래 그의 계획대로라면 1시간에 두 조씩, 일주일에 4조씩 발표를 시켜서 1학기 내에 각 조마다 최소 두 번씩 발표를 하게 하려 했다. 하지만 모든 발표가 이런 식이라면, 학생들은 제대로 된 팁은커녕 S.M.T의 S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할 것이다.
차라리 하나라도 제대로 알고 가는 게 나았다. 그래서 그는 한 시간에 하나의 발표만 듣기로 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표는 할당된 30분 중 20분은 준비 장면 및 잡담을, 5분은 모의 게이트 시뮬레이션의 녹화 장면을 살짝 보여 주고 끝났다.
발표가 끝난 1조 조장이 그의 눈치를 슬그머니 보는 게 느껴진다.
“질문 받으세요.”
이렇게 형편없이 발표를 준비해 놓고, 심지어 5분이나 일찍 끝내다니. 기가 막혀 한숨도 나오지 않았다.
1조 조장은 앵무새처럼 그의 말을 따라 했다.
“질문 있으십니까?”
있을 턱이 있나. 뭐를 질문하란 말인가. 영상에서는 1조 조장님이 전날 햄버거를 먹고 배탈이 났다고 하셨는데, 무슨 햄버거를 드셨나요? 이런 걸 질문하라는 소리인가?
그는 애초에 1조 조장에게 리포트부터 시작해서 모든 과정을 제대로 뜯어고치라고 충고했다. 방향성도 아주 자세하게 제시해 주었다. 아예 처음부터 어떻게 발표를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한 것 같길래, 이렇게 해서는 점수가 나갈 수 없다고도 경고했다. 원한다면 발표 날짜를 미루어 주겠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1조 조장은 예정일에 발표하고 싶어 했고, 고은교 역시 1조와 2조는 게이트 작전의 앞부분만 발표하는 것이었기에 수정이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결과물은 몹시 실망스러웠지만.
어쩌면 이 정도 발표 수준이 학생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예상대로 학생들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그가 보기에는 1조의 발표 중 무엇이 잘못된 건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중이거나.
솔직히 말해, 그는 1조 조장이 수업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이렇게 최악의 발표를 준비해 온 것은 아닌가 합리적인 의심을 하는 중이었다. 아무도 질문하지 않자 1조 조장은 오히려 안심한 기색이었다. 그 방만한 태도에는 미간이 찌푸려졌다.
정말 아무도 질문하지 않을 건가?
다른 건 몰라도 동료애는 있는 학생들이다. 그는 입을 다물고 이제 그만 내려가도 되나 다시 그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 1조 조장을 빤히 쳐다보았다.
“1조 조원들 모두 출석했습니까?”
엉망이라고밖에는 할 말이 없는 준비 리포트를 팔락팔락 넘기며 묻자, 1조 조장의 얼굴 위로 당혹스러운 빛이 떠올랐다.
“네…… 교수님.”
이미 두 번의 피드백으로 1조 조장은 처음의 무뚝뚝한 태도와는 달리 꽤 고분고분한 자세가 되어 있었다. 누구라도 여러 번 쥐 잡듯 잡히다 보면 그렇게 태도가 바뀔 것이다. 하지만 기분은 전혀 흡족하지 않았다. 오늘 아침, 1조 조장은 풀이 죽은 얼굴로 연구실을 나갔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럼 1조 조원들도 강단에 올라가서 서세요.”
다들 왜 그래야 하는지 몰랐지만, 일단 그의 말에 따랐다.
쭈뼛대는 걸음으로 1조 조원들은 줄줄이 강단 위로 올라가서 섰다. 고은교는 가볍게 손짓해서 빔 프로젝트를 막지 마라고 말했다. 1조 조원들은 네모난 크기의 화면을 중심으로 반씩 나누어 비켜섰다.
학생들이 준비가 된 것 같자 고은교는 1조 조장을 향해 녹화 영상을 처음부터 다시 재생하라고 지시했다.
“1초부터 다시 볼까요?”
당연하지만, 그건 물음이 아니었다. 이제부터 발표 리딩을 시작하겠다는 뜻이었다.
*
1조 조원들은 고은교에 대하여 알고 있었다. 그가 시간 강사로 부임하기 전에 이미 학생들 사이에서 그의 소문이 짜하게 돈 상태였다.
그들은 소문으로 듣기에 능력도 없고, 에스퍼에게 추근덕대기만 한다던 고은교 교수를 얕잡아 보는 마음이 없잖아 있었다. 게다가 이 소문은 상당한 신빙성이 있는 소문이었다.
여섯 살이나 어린 에스퍼를 쫓아다니다 못해 스토커 짓까지 한다는 이야기를 퍼트린 것은 다름 아닌 그 당사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으므로.
‘고은교, 그 징그러운 새끼가.’
우시현이 씹어 말하는 어조에는 증오심이 깃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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