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우시현은 잘생긴 외모와 압도적인 능력으로 또래 사이에서 우상처럼 자리매김하고 있는 알파메일이었다.
강력한 원소 계열의 에스퍼, 잘생긴 외모, 싸늘한 성품은 그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늘 미소 짓고 있지만 그런 얼굴로도 사람을 깔보는 느낌을 주는 이승우가 항상 같이 다녔다.
이승우 역시 강력한 원소 계열의 에스퍼로, 대대로 가업을 잇는 좋은 집안에서 자라났다. 한국에는 일찍이 발현한 이능력자들이 만든 기업들이 꽤 있었는데, 그들은 신생 재벌이 되어 권력과 재화를 누렸다. 이승우는 그중에서도 강력한 에스퍼들을 배출해 내는 집안의 자식이었다.
고은교가 자신의 뒷배를 이용해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려는 우시현과 고은교로부터 우시현을 빼돌리려던 이승우마저 ‘my’에 집어넣기 전까지 그들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혹자는 그것을 이승우의 집안과 고은교 집안의 알력 다툼이라고 말하기도 했고, 고은교가 가이드 매칭의 허점을 노려 이승우까지 제 손에 쥐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진실은 그 누구도 몰랐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들은 결코 고은교를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우시현과 이승우는 고은교에게 함께 엮이기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까지 친한 사이는 아니었을 수 있었다. 그러나 분명히, 고은교라는 공공의 적이 생긴 뒤로 그들은 늘 우정을 과시해 왔다.
대체적으로 이승우가 자리를 만들고 우시현이 소문을 만들어 내는 식이었다.
지난주부터 시작된 공짜 술자리에서 빠진 동기들은 아무도 없었다. 이 술자리에 초대된 한국대의 특수과 이능력자들은 졸업반으로, 마지막 학기에 들을 필수 교양을 남겨 둔 이들이었다. 이미 촉망 받는 몇 명은 센터에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기까지 했다.
당연하지만 그중에서 우시현과 이승우는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 루키였다. 현장 이능력자로 활약하려면 결코 연줄을 무시할 수 없다. 발현 직후부터 S급 에스퍼로 자리매김해 온 그들은 말 그대로 걸어 다니는 대기업이었다.
첫날 OT 수업을 보이콧한 것은 우시현과 이승우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학생들이 낸 아이디어였다. 예상대로 고은교 교수는 아무 말도 못 했고, 시계를 보는 척하며 우시현을 계속 해서 곁눈질했다. 그걸 학생들 모두가 볼 수 있었다.
‘진짜 좀 역겹잖아.’
수요일 저녁, 맥주를 마시던 중 누군가가 말했다.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아닌 게 아니라, 고은교 교수는 정말 볼품없게 생겼다. 비쩍 마른 것은 물론이고 얼굴이 특별하게 예쁘다거나 호남처럼 잘생기지도 않았다. 밋밋하게 생긴 데다 우울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니 오히려 어째서 우시현을 그렇게 따라다니며 귀찮게 구는 건지 알 것 같았다. 그의 옆에서 우시현은 그야말로 신화의 남신처럼 완벽하게 보였다.
“여기에서 멈춰 볼까요? 네, 5분 36초.”
그런데 왜 이 별거 없는 남자의 말이 이어질수록 가벼운 긴장감이 드는 걸까.
1조 조장은 몇 번이나 얼간이처럼 굴며 제 조원들을 힐끔거렸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이제 와서 사과라도 하자고? 그와 눈이 마주친 조원들은 저마다 인상을 찌푸렸다.
“1조 조장 김선열 군.”
“네.”
“준비 물품 점검이 끝난 것으로 보이는데요. 문제점이 있습니다, 그게 뭘까요?”
호명당한 김선열은 빠르게 머리를 굴려봤지만, 당연히 제대로 된 답이 나올 리가 없었다. 애초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다면 진작 그걸 고쳤을 거다. 그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고은교 교수의 검은 눈에서 벗어나려고 눈을 굴렸다. 저 교수가 얼마나 꼬장꼬장한 지에 대해 말해 봤자 조원들은 제 말을 들어 주지 않았다.
“리볼버를 챙긴 거요?”
잠시 침묵하던 김선열이 우물쭈물 말했다. 물론 고은교 역시 그를 지적하고 혼내기 위해 물어본 것은 아니었다. 1조 조장이 그걸 알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그는 그저 상냥한 교육자의 시늉을 한 번 내 본 것뿐이다.
“아니에요. 총구류를 챙기는 것을 금지한 적 없으니까요. 하지만 글쎄, 화기를 왜 챙겼는지는 물어보고 싶네요. 이곳은 늪지대 게이트고, 진흙 골렘에게 불은 전혀 소용없지 않습니까? ‘게이트 상성’에는 에스퍼와 몬스터만 따지지 않아요. 당연히 여러분이 준비한 무기와 몬스터 간의 상성 역시 아주 중요하죠. 이건 준비 리포트에서 지적한 부분인데 전혀 고치지 않았군요.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여러분이 배낭을 안 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정도 크기의 게이트라면 적어도 이틀은 게이트 안에서 있어야 하는데, 텐트와 침낭 없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그때까지만 해도 고은교는 별 생각이 없었다. 문제가 수십 가지는 되지만, 그것을 다 지적할 생각 역시 없었고 말이다.
하지만 영상을 보면 볼수록 도저히 지적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버젓이 산재해 있는 심각한 문제들이 보였다. 심지어 이 문제점들은 리딩을 하면 할수록 더더욱 잘 보였다.
그나마 침착하고 어른스러운 교육자의 태도를 때려치운 건 십 분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거의 반쯤 정신을 빼놓은 1조를 내려다보며 고은교는 손수 리모콘을 들고 녹화 장면을 툭툭 넘겼다.
“22분 23초. 처음 대면한 진흙 골렘이 최소한 무슨 종인지는 파악해야죠. 22분 25초. 아무리 격투술 이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몬스터를 먼저 두드려 보는 건 별로 좋지 않은 습관이네요. 독이라도 내뿜는 몬스터 종류라면 어떻게 할 건가요? 특히 진흙에서 사는 몬스터들 대부분이 독침을 가지고 있다는 걸 기억해야겠네요. 22분 26초. 팀의 유일한 가이드가 혼자 있는 게 보이시나요? 22분 29초. 이런, 심지어 어그로(aggro; 몬스터의 관심을 끄는 행위)를 끌고 싶은 것처럼 보이네요. 미끼 역할을 맡은 사람이 가이드인 건 별로 좋은 선택이 아닌 것 같습니다. 골렘은 고주파에 반응하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소리를 질러서는 안 되는 걸 기억하세요. 23분 02초. 당연히 에스퍼는 가이드가 쫓기는데 그걸 방관하면 안 되고요. 23분 11초. 아직도 가이드가 쫓기는 걸 구경하는 건가요? 반응 속도가 너무 늦어요. 24분 22초. 자, 지금 가이드가 잡혔죠. 28분 10초. 늪지대 게이트 모의 전투 실패. 이곳이 진짜 게이트였으면 더 끔찍한 상황이었을 겁니다.”
너네는 죽었을 거다. 전부 전멸이다. 아니면 신의 가호가 있기를 바라며 기도하거나.
팀장으로서 매일 같이 했던 소리를 지껄이며 그가 리모콘을 마침내 내려놓았을 때, 강의는 정확히 3분 남아 있었다.
시계를 힐끗 확인한 고은교가 1조를 휙 쳐다보았다.
모두가 입을 헤 벌린 채 고은교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에게는 오히려 이런 표정들이 익숙했다. 고은교는 담담한 표정으로 김선열을 응시했다.
“이능력자 브이로그를 찍어 오라는 게 아니라 모의 게이트 시뮬레이션을 제출하라고 했는데요, 김선열 군.”
“…….”
“이렇게 발표를 하면 점수를 줄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조원들에게 전달하는 것을 잊어버렸나 봅니다.”
띡, 하는 소리와 함께 프레젠테이션이 깔끔하게 종료되었다. 그와 동시에 김선열의 얼굴이 타는 듯 붉어졌다.
“시간 관계상 발표는 다시 할 수 없으니 준비 리포트를 처음부터 다시 작성하고, 그를 바탕으로 모의 게이트 시뮬레이션을 찍어서 강의 게시판에 업로드 하도록 하세요.”
“……네.”
한마디로 다시 처음부터 과제를 해 오라는 소리였다. 김선열을 제외한 1조 조원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중 한 명은 대놓고 불평 가득한 얼굴을 했지만, 꾹 참는 기색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들은 학생이고 고은교는 교수였다. 이 수업은 필수 교양이었으니, 그들은 반드시 점수를 얻어 이 수업을 이수해야만 했다.
고은교 역시 한숨을 쉬고 싶은 기분이 되었지만 그 역시 어른답게 한숨을 참았다. 학생들에게 더 뭐라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수준에 맞게 점수를 준다. 단, 학생은 학생이니 만회할 기회 역시 공평하게 준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첫 발표 리딩이었다. 누군가 묘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것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고은교는 꽤 긴장해 있었다.
두 번째 발표는 좀 나았다.
다음 주 월요일, 전날 저녁 맥주를 마시며 스트레스를 푼 그는 한결 편하게 풀린 표정으로 남선재가 또박또박 발표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솔직히 말해 2조의 발표는 아주 훌륭해서 리딩 할 것이 거의 없었다. 남선재는 틀림없이 현장에서 게이트를 클리어해 본 적 있는 에스퍼 중 하나일 것이다. 발표를 보는 학생들 모두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좋네요.”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그의 한 마디가 가볍게 그 위에 얹혔다. 그는 미소 띤 얼굴로 남선재를 바라보았다.
“모두 좋은데, 남선재 군은 C급 에스퍼죠?”
“네.”
“상급 에스퍼를 대체하기 위해 화기를 들여왔고요. 맞습니까?”
“네, 교수님.”
고은교의 물음에 강아지처럼 귀여운 얼굴에 묘한 긴장감이 어렸다. 저번 발표에서 1조가 미친 것 같은 피드백 지옥에 갇혔던 것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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