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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콜 가이드-14화 (14/132)

#14

발표를 하면 할수록 학생들의 발표는 더욱 엉망진창이 되어 갔다. 저번 시간에 지적했던 게 다음 발표에 고쳐지지 않고 그대로 나올 정도였다.

일부러 이렇게 하려고 해도 못할 것 같아서 처음에는 자신을 물 먹이려고 이러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일부러 그러려고 하는 게 아닌 거라는 걸 안다.

하도 엉망진창인 준비 리포트를 써 왔기에 각주까지 모두 고치라는 피드백을 한 뒤 머리가 아파 연구실 밖으로 나갔다가, 방금 막 피드백을 받은 조의 학생이 저 교수의 코를 뭉개주겠다고 전화로 욕설을 지껄이는 걸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조 또한 예외 없이 엉망진창인 발표를 했다.

뭐가 문제일까.

어쩔 수 없이 지적은 점점 길어졌다. 워딩도 세졌다. 자신도 사람이다 보니 반복된 문제에 신경질이 났다. 이러니 리딩을 명목 하에 학생들을 괴롭히는 악당이라도 된 것 같기도 했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리모콘을 틱틱 돌리다 멈췄다. 이제는 학생들을 위해 한숨을 참지 않게 되었다. 어떻게 해도 학생들은 그를 좋아하지 않고 그 역시 학생들을 좋아할 수 없었다.

그가 대놓고 한숨을 쉬자, 훌쩍거리던 학생이 조그맣게 끅끅대기 시작했다. 6조 학생들 얼굴 역시 가관이다.

울긋불긋한 게 꼭 단풍 같네. 벌써 가을이 깊어졌나 보다.

그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딱딱하게 말했다.

“6조, 준비 리포트부터 다시 써서 제출하세요. 그리고 분명히 모의 게이트를 선택할 때 팀과의 상성을 생각하라고 했는데, 물리 계열 에스퍼 팀이 유령 도시 게이트를 선택한 이유는 뭡니까?”

“……다, 다시 선택해서 준비하겠습니다.”

이제는 변명도 안 하네.

오히려 이런 것이 나았다. 되지도 않는 논리로 헛소리를 늘어놓는 걸 지켜볼 바에는.

실제로 4조의 조장은 곧 죽어도 자신들이 정한 게이트 수행 방법이 옳다고 끝까지 주장했다. 고은교의 조언이 모두 틀렸다는 건방진 태도였다. 물론 어린 학생들과 대거리를 하는 것은 사양이라서, 고은교는 발표에서 자신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점수가 나갈 수 없다고 경고했다.

이에 4조의 조장은 아주 불만스러워했지만 끝까지 제 의견을 밀어붙였다. 그리고 당연히 4조의 발표는 고은교를 설득하는 데 실패했고, 고은교는 냉정하게 다시 준비 리포트부터 써서 모의 게이트 시뮬레이션 녹화까지 제출하지 않으면 과제 점수를 줄 수 없다고 말했다.

4조 전원은 울며 겨자 먹기로 그의 조언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학생들 대부분은 고은교의 조언이 옳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래요. 그리고 팀 에스퍼들 역시 기본적인 진형 숙지가 되어 있지 않은 것 같군요. 기본이 아주 부족해요. 고스트 타입 몬스터를 진압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면 바로 가이드를 데리고 생존을 위해 도망갔어야 합니다. 당연히 도망을 선택했을 때 몇 명은 미끼가 되어 몬스터의 어그로를 끌어야 하고요. 이렇게 다 같이 뭉쳐 다니는 게 아니라요. 이건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다음 모의 시뮬레이션에서는 꼭 진형부터 다시…….”

“교수님.”

피드백을 막 마무리하려고 할 때였다. 바로 그때, 6조 중 한 명이 분한 표정으로 한 걸음 나오며 고은교를 불렀다.

눈썹을 치켜세우며 그 학생을 바라보자, 용감하게 나선 학생이 분에 찬 목소리로 따박따박 말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안 알려 주셨잖아요. 발표 수업 전에 해 주셨던 강의도 게이트 강의가 아니라 가이딩 기본 교감, 행동에 관한 강의였구요. 저희 조는 다른 조처럼 경험자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모의 게이트 시뮬레이션 자체가 처음이었습니다. 죄송하지만, 당연히 저희는 다른 조에 비해 부족한 거 아닌가요?”

그 말처럼 이 강의를 수강하는 학생 중에는 남선재나 우시현, 이승우처럼 이미 센터 이능력자로서 활동하고 있는 학생들이 꽤 있었다. 물론 아닌 학생도 많았지만 말이다. 이 조는 불행히도 친목으로만 팀을 꾸려 모두가 게이트 초행이었던 모양이었다.

어쩐지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어 보인다고 했더니 그런 비하인드가 있었나 보다. 그러면 알아서 다른 이능력자와 섞였어야지. 아니면 미리 고은교에게 말해 도움을 구하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그들이었다.

학생의 말대로 초행은 어렵다.

‘글쎄, 하지만…….’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는 법이다. 모의 게이트든 진짜 게이트든 제대로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다면, 그들은 지금 고은교가 지적한 것들을 하나하나 경험에게 혹독히 수모를 당하며 배울 것이다. 그런 것보다는 지금 이 자리에서 안전하게 그에게 지적 받는 게 낫지 않은가.

그리고.

‘자기 에스퍼에게 총 쏘지 말라는 것도 알려 줘야 하나.’

6조의 기본기가 현저하게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조금만 책을 뒤져봐도 알 수 있는 당연한 수칙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게 가장 괘씸한 부분이었다. 심지어 이건 상식의 영역이다. 6조의 불만은 처음이라는 것을 방패막이로 삼고 배짱을 부리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이걸 그대로 넘어가면 다음 조도 똑같은 변명을 할 거라는 판단이 섰다.

고은교의 얼굴이 냉랭해졌다.

“질문할 때는 자기소개를 하세요.”

“……지수현입니다.”

학생과 다퉈서 얻을 이득은 당연하지만 없다. 학생과 말싸움을 해서 이겨 봐야 무슨 소용이겠는가.

하지만 그 역시 연속된 발표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마치 보복이라도 하는 것 같은 엉망인 발표를 앵무새처럼 똑같이 리딩하는 것도 힘든 일이었고, 그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집단을 꾸준히 상대하는 것 역시 스트레스를 가중시켰다.

“그래요, 지수현 학생. 나는 여러분이 모의 게이트 시뮬레이션을 어떻게 하는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수업은 4학년을 대상으로 한 교양 강의 아닙니까?”

“…….”

“내가 여러분에게 기본적인 것부터 알려 드려야 했나요? 특수과 학생들은 1학년부터 전공과목으로 게이트 수업을 듣는 것으로 아는데, 모의 게이트 시뮬레이션이 처음이라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요?”

“…….”

그의 지적에 학생들은 모두 말이 없었다. 솔직히, 양심이라는 게 있다면 할 말이 없어야 마땅했다.

“지수현 학생의 말대로 일부 학생들은 이미 게이트 현장에 나가고 있고, 나머지 학생들 역시 다음 학기부터 센터 이능력자로 취직하기 위해 자소서와 면접을 준비하고 있겠지요. 그런데 6조만 이렇게 기본적인 것을 모르고 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

“만약 몰랐다면 여러분은 이제 기본부터 공부를 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셨겠네요. 그렇죠?”

강의를 시작했을 때부터 함께 했던 두통이 다시 재발되었다. 강의실 안을 채웠던 울음소리 역시 어느새 멎어 있었다.

학생들이 그를 보고 있었다. 고개를 들지 않아도 그를 향한 적의가 느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

‘적의’라고 부른 것은 갈수록 심해졌다. 그가 생각했을 때, 그날 학생을 울렸던 게 시발탄이 되었던 것 같다.

“하…….”

엉망이다. 그는 몇 번이고 했던 익숙한 생각을 하며 지끈대는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그러지 말걸 그랬나.’

이제는 아예 발표 전 피드백을 받으러 오지 않는 조들도 생겨났고, 수업을 거부하는 학생들이나 수업에 들어가면 대놓고 그를 노려보는 학생들의 모습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었다.

‘보통은 안 그러지 않나?’

이곳은 고등학교가 아니라 대학교인데.

가차 없이 중간고사 점수를 매기면서도, 그는 자신이 진짜 교수가 아니어서 학생들이 무례하게 구는 건 아닐까 궁금했다. 물론 궁금하다고 해서 그 의문이 풀리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학생들이 다른 교수에게도 이런 식으로 굴진 않을 것 아닌가.

교양 강의치고 너무 많은 과제를 내 줘서 그런 건가? 아니면, 진짜 교수가 그보다 훨씬 잘 가르쳐서 그런 걸까?

고은교의 강의가 들어 줄 수 없는 수준이라 화가 났던 거라면……. 분하지만 납득할 수는 있었다. 사실 그게 아니라면 설명이 안 된다.

하지만 요즈음 대학 수업 수준이 어떤지 알 게 뭐냐. 자신이 대학을 졸업한 지 벌써 10년은 족히 지났다. 그리고 학생들의 수준을 고려했을 때, 그들은 화를 낼 자격이 없었다.

진지하게 자신에게서 문제점을 검토해 보던 그는 “안녕하세요.”라고 건네지는 인사말에 고개를 들었다.

11조 조장이 서 있었다. 그러니까…… 우시현 말이다.

그가 생각했을 때 그에게 지적당해 그를 싫어하게 된 학생들을 다 합쳐도 우시현보다는 아닐 것 같았다. 표정만으로 판단했을 때 그렇다는 이야기다.

시선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고은교’는 골백번 넘게 죽었을 것이다. 그는 익숙하게 우시현에게서 강렬한 살의와 증오심을 읽어냈다. 당연히, 이 ‘안녕하세요’도 우시현이 건넨 말은 아니었다. 그의 옆에 부드럽게 미소 짓고 있는 이승우가 한 말이었다.

웃음은 전염력이 있었다. 그는 얼결에 이승우를 따라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조장만 오면 된다고 했는데 같이 왔군요. 다른 조원들은…….”

“내가 왜?”

하지만 돌아온 건 예의상 짓고 있던 미소마저 단박에 사라지게 만드는, 아주 무례한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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