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콜 가이드-30화 (30/132)

#30

어찌됐든 고은교는 가이드가 되었고, 우시현과의 매칭률을 이용해서 그를 자신의 ‘my’에 집어 처넣었다. 친구인 이승우가 우시현을 도우려 했지만 고은교는 센터의 약칙에 대해 빠삭하게 알았고 그것을 이용할 줄 알았다. 아마 변호사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물론 이승우의 집안도 만만치 않아서 고은교와 첨예하게 대립했다. 우시현이 알기로 몇 번의 이권이 그들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결국, 우시현은 이 지긋지긋한 힘 싸움을 포기하기로 했다. 머리 아프게 규칙이니 뭐니 하며 힘겨루기를 하기에는 고은교에게 그럴 만한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완전히 무시하면 제가 뭘 어쩌겠는가.

비록 고은교의 ‘my’ 목록에 강제로 들어가게 되었지만 그게 뭐가 됐든 무시하면 그만이었다. 고은교는 가이드긴 하지만 일반인이었다. 결코 우시현을 제 마음대로 할 수 있을 만한 힘을 가지진 못했다. 게다가 집안 배경이 변변찮은 자신 대신 이승우가 고생하는 것도 기분이 좀 그랬다.

하지만 고은교는 우시현이 그를 무시하기 시작하자, 더더욱 발악을 하며 우시현을 괴롭혔다.

어느 정도였냐면, 이승우가 자신과 우시현의 관계를 방해한 게 괘씸하다면서 이승우를 자신의 ‘my’에 강제로 넣었을 정도였다. 이전에 우시현을 ‘my’에 넣은 것과 동일한 방식이었다. 당연히 고은교는 자신이나 이승우에게 단 한 번도 가이딩을 해 주지 않았다. 이승우는 자신과 파장이 맞는 가이드를 찾지 못해 이러나저러나 똑같은 처지였기에 예전과 달라진 것이 없으니 미안해할 필요 없다며 웃었다.

하지만 미안한 건 미안한 거였다. 자신이 아니었다면 이승우는 결코 고은교 같은 또라이와 엮이지 않았을 테니까. 그날, 우시현은 처음으로 제 발로 고은교를 찾아갔다.

‘이 씹새끼야, 너 가이딩은 할 줄 아냐?’

‘그게 중요해?’

‘뭐?’

‘중요한 건 말이야, 시현아. 네가 내 것이라는 사실이야.’

욕을 해도, 심지어는 운신이 불가능할 정도로 두들겨 패도, 고은교는 우시현이 자신을 상대해 주는 게 좋은지 웃기만 했다. 그게 얼마나 소름끼치고 끔찍하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한동안 작정하고 피해 다녔던 고은교가 교양 외부 강사로 나타났을 땐 정말이지 그 작은 몸뚱어리를 패죽이고 싶었다.

의도야 뻔하지. 수업을 핑계로 우시현을 보고, 학점을 빌미로 우시현의 이곳저곳을 만지작댈 생각이었을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실컷 재미를 보고 난 뒤에는, 우시현을 낙제시켜 졸업을 유예시킬 생각이겠지. 가능한 한 계속, 계속해서.

그런데…….

징글맞게 굴던 고은교가 언제 그랬냐는 듯 갑자기 우시현에게 관심이 떨어진 것처럼 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당연히 이 새끼가 또 무슨 수작질을 하려고 이러는 거겠거니 생각했다. 이제 와서 갑자기 제정신을 차릴 리가 없으니까. 수업을 하는 것도 처음만 그럴듯하게 하는 거지 절대 제대로 할 수 있을 리가 없다고 여겼고.

그렇게 생각할 만한 이유는 있었다. 우시현이 알기로 고은교는 무능했다. 애초에 ‘가이드’만 에스퍼를 가질 수 있다는 말에 집안의 뒷배로 가이드가 된 녀석이었으니까.

이승우가 알아보기로는, 고은교는 가이드긴 가이드지만 가이딩을 하는 법은 배우지도 않았다고 들었다. 따라서 고은교는 가이딩을 할 줄 몰랐고, 단지 가이딩을 빌미로 더러운 짓을 하려고 몸을 비벼대는 새끼였다.

이 새끼는 오히려 현장 이능력자들을 경멸하고 무시했다. 그런 잡역부나 다름없는 노동을 왜 하느냐면서.

말 한마디를 해도 마음에 안 드는 쓰레기였다. 고은교 때문에 제대로 된 가이딩을 받지 못한 지 오래된 상황이라 매일매일 머리가 아프고 몸이 무거웠다. 그런 와중에 고은교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다른 가이드에게 가서 가이딩을 도와 달라고 하지 그러냐는 말을 들었을 땐 정말이지, 그대로 퓨즈가 나갈 뻔했다.

하지만, 고은교가 ‘my’에서 자신을 자유롭게 해 줬다.

국장이 그 사실을 자신에게 알렸을 때까지만 해도 그럴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정말 고은교의 ‘my’ 목록에서 탈퇴가 가능했다. 심지어 우시현은 고은교에게서 벗어나 고은교가 아닌 다른 가이드와 매칭되었다. 비록 매칭률이 20%밖에 안 되었지만 고은교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정상적인 가이드였다.

새로운 ‘my’ 목록을 거듭 확인하며 그는 정말로 고은교가 자신을 잊기로 결심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그 며칠 동안은.

크나큰 착각이었다.

자유는 채 며칠이 가지 않았다. 새로운 가이드와의 매칭이 강제로 끊어지고, 가이딩이 필요한 체내 위험률 고위험군 에스퍼, 우시현에게는 가장 파장이 잘 맞고 담당 에스퍼가 가장 적은 가이드가 강제로 매칭되었다. 물론 당연히 고은교였다.

이런 짓을 한두 번 겪었겠는가? 우시현과 매칭되었던 그 새로운 가이드는 센터를 그만두었다. 이번에도 이유 불명의 개인 사정이었다. 이런 추잡한 짓이 몇 번이나 반복되었는지 모른다. 그러니 당연히 우시현은 이게 고은교의 짓이라는 걸 알았다.

고은교를 벗어났다는 해방감에 기뻤던 것도 잠시였다. 정말로 고은교가 자신을 놓아준다고 생각하자 묘한 찝찝함이 뒤따라왔던 터였다. 우시현은 일이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화가 치밀었음에도 불구하고 묘한 안도감이 들었고, 그건 아마 이전에 느꼈던 찝찝함이 들었던 이유와 같을 것이다. 그래서 우시현은 더욱 화를 냈다.

자신이 고은교에게 묶여 있지 않는 상황이 더 어색해지다니, 그건 정말이지 납득불가의 일이 아닌가.

이 모든 것이 고은교의 탓이었다. 그동안 우시현에게 고은교라는 미친 또라이가 저질러 온 짓이었다. 고은교는 이전에 그랬듯 앞으로도 우시현을 순순히 놔주지 않을 것이다.

그는 아주 쉽게 고은교에게로 화살을 돌렸다.

“정도껏 사람을 놀려야지. 응?”

우시현은 이승우처럼 말로만 하지 않았다.

눈앞에 순간 불이 붙었다. 뺨을 맞았다는 인식은 맞은 뒤에야 따라왔다. 처음에는 맞은 줄도 몰라 단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살과 살이 맞붙는 섬뜩한 마찰음 소리와 함께 뺨이 화끈해지고 나서야 맞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대로 고은교의 얼굴을 두 대 더 때린 우시현이 고은교의 의자를 발로 걷어찼다.

에스퍼의 힘을 못 이긴 의자는 그대로 뒤로 나동그라졌고, 앉아 있던 고은교 역시 큰 충격을 받으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곧바로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우시현이 목을 지그시 밟아 일어나지 못하게 했다.

“흐윽…….”

아픔에는 빠르게 익숙해졌다.

만약 에스퍼인 우시현이 정말 있는 힘껏 때리고자 했다면 안면이 함몰되어 맞자마자 죽었을 것이다. 따라서 우시현이 하는 건 단순한 분풀이였다. 우시현은 진심으로 자신을 죽일 생각이 없다.

아픈 와중에도 머릿속은 냉철히 이곳에서 살아 나갈 수 있을 가능성을 계산했다. 전생에서 아팠던 것에 비해서는 이건 아픈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이런 식으로 무례하게 맞은 게 처음이라 화도 나지 않았다.

단지 궁금했다.

“어디서 착한 척이야.”

이 새끼, 어디에서 버튼이 눌린 거야?

“비……켜.”

고통스럽게 바르작대며 말하자 우시현은 오히려 비웃으며 발에 힘을 더 눌러왔다. 그것만으로도 숨통이 막혀서 숨 쉬기가 어려워졌다. 우시현이 조금만 더 발에 힘을 주면 우두둑, 소리와 함께 목이 부러질 것 같았다. 사람의 목 따위는 에스퍼 앞에서 지렁이만도 못하다.

그제야 덜컥 무서워졌다. 이건 자신의 몸이 아니었다. 이대로 죽어도 되는 몸이 아니었다. 하지만 도저히 그의 힘으로는 우시현을 막을 수 없었다.

이대로…… 우시현의 손에 죽는 건가?

본능적으로 살기 위해 손을 뻗어 우시현의 발목을 긁어댔지만 살의를 담은 발은 전혀 움직여지지 않았다. 우시현은 고은교의 발악이 아주 가소로운 듯했다.

가이딩실에서 에스퍼에게 두들겨 맞는 가이드라니. 센터는 대체 뭐 하는 거지?

생리적인 눈물이 고였다. 우시현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발악해도 그건 그냥 발악에 불과했다.

“……헉! 허억, 허억…….”

벌레처럼 살아남으려 애쓰는 고은교를 내려다보던 우시현이 어느 순간 발을 떼어 냈다. 바로 목을 매만지며 몸을 일으키자, 그가 퍽 소리가 나게 고은교의 상체를 발로 걷어찼다. 가슴을 얻어맞은 고은교는 그대로 픽 고꾸라졌다.

그다음에는 일어날 생각도 못했다. 고통, 고통이 모든 의욕을 꺾었다. 일시에 모든 생각이 휘발되었다. 머릿속을 지배하는 것은 어떻게든 우시현에게 멀어져야겠다고, 이 방에서 도망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엎어진 채 기어서 방 안을 빠져나가려는 고은교의 머리채를 잡고 우시현이 다른 방향으로 질질 끌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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