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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콜 가이드-31화 (31/132)

#31

“부모한테서 버려져서 불쌍하다며? 당연히 더럽고 냄새 날 줄 알았는데, 안 그래서 신기하다며, 이 개좆같은 새끼야. 왜, 니가 나를 발끝으로 내려다보던 걸 모를 줄 알았어?”

“이거, 놔, 놓고…… 놓고 말해.”

“도망가려는 걸 눈으로 봤는데 뭘 놓고 말해.”

머리카락이 두피에서 뜯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우시현에게 맞은 옆구리는 불에 타는 것처럼 아팠고, 머리는 멍해서 둥둥 울렸다.

“……놔!”

“왜.”

우시현이 지그시 입 안의 살을 물며 비죽 웃었다.

“죽을까 봐 무서워?”

“…….”

무섭냐고? 당연히 무섭다. 너무 두려웠다. 겨우 얻은 이 삶이, 다시 손에 넣은 삶이 이대로 허무하게 끝나 버릴까 봐.

설마, 진짜 죽을 때까지 때릴까?

아닐 것이다. 그러지 않을 것이다…… 이곳은 센터였다. 가이드의 안전지대였다. 가이딩 예약 시간이 지났는데 사람들이 나오지 않으면 분명 누군가 가이딩실을 점검하러 올라올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죽게 되면 어쩌지?

아파. 너무 아파서 눈앞이 흐릿할 정도였다.

“눈 떠야지.”

“…….”

귓가로 잔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은교, 이게 니가 원하는 거잖아. 안 그래?”

“…….”

“내가 너한테 닿는 걸 좋아하잖아……. 응?”

때리는 것을 닿는다고 표현하다니.

착, 착 하는 소리가 났다. 우시현이 그의 뺨을 손바닥으로 때리며 그를 살피고 있었다. 아주 힘을 줘서 때리는 것은 아니지만 손바닥이 뺨을 칠 때마다 따끔한 통증이 있었다.

“말을 안 듣네.”

우시현이 중얼거렸다. 기척이 조금 멀어지는 듯하더니, 어깨를 콱 쥐고 그를 내팽개친다.

“으, 윽…….”

죽지만 않는다면…… 고통이란 건 결국에 지나가는 것이다. 그는 때로는 날카롭게, 때로는 잔잔하게 욱신거리는 고통에 누구보다 익숙한 사람이었다. 우시현이 그를 두들겨 팰 때도 그랬다. 잘 맞으면 죽지는 않을 거라고 필사적으로 생각하며 그는 바닥에서 웅크린 채 우시현이 때리는 것에 대비하려 했다. 그러나 우시현은 그보다 빨랐다. 생각지도 못한 통증이 이어졌다.

눈꺼풀이 떨렸다. 안 아픈 지 너무 오래 되서 그런 것 같았다. 오랜만에 겪는 통증은 더욱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에스퍼여서 그런지, 우시현은 너무 아프게 때렸다. 눈, 뜨라니까? 뺨을 세 대쯤 더 맞자 입안이 터졌다. 귀청이 나갈 것 같았다. 이대로 고막이 터져 평생 장애인으로 살거나, 뇌진탕이 와서 죽거나 할 것 같았다.

그는 살기 위해 우시현의 손을 막았다. 손목이 부러질 것 같은 충격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우시현이 순순히 잡혀 준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살겠다고 바르작대는 그가 너무 우스워서인 것 같았다. 아니면 더 아프게 때리려고. 어느 쪽이든 섬뜩했다.

그는 더 맞기 전에 소리치듯 말했다.

“내가 원한 게 아니야.”

“뭐?”

“그건 고은서 독단으로, 윽!”

이번엔 멱살이 잡혀 올라갔다.

“그래, 고은서. 잘 알지. 변명 안 해도 돼. 니 말이 맞거든. 부모한테 학대당하고, 고아원에서 글러먹으면서 자라다가 너 같은 인간한테 걸려서 인생 더 좆같아졌으니까. 그래도 야, 나는 너처럼 먹다 남긴 쓰레기 같은 건 안 먹어.”

“……놓, 끄, 흐…….”

“알아들어?”

너무 강하게 멱살이 잡혀 숨이 막혔다. 목에서 이상한 가르랑대는 소리가 질질 새고, 눈앞이 새하얘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죽는 건가 싶었을 때, 무슨 생각이었는지 우시현은 멱살을 풀고 그를 바닥으로 툭 던졌다. 간신히 숨이 트였다.

“학, 하, 하아, 하아…….”

당연히 죽는 건 무서웠다. 맞는 것도 무서웠고, 우시현이 자신을 극렬히 증오하게 만든 것이 다름 아닌 ‘자신’이라는 것도 무서운 일이었다. 우시현에게 모욕적인 말을 쏟아 놓은 것 역시 결코 오해가 아닌 진실이었으므로 감히 변명조차 할 수 없었다.

“왜…… 이제 그런 말은 못 하겠어?”

하지만 두려움과 동일한 크기로, 분노와 적개심이 머리를 들었다.

그는 ‘진짜’ 고은교가 아니었으니 실제로 우시현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이런 응징을 받는 게 자신이라는 점이 억울하고 화가 났다. 그리고…… 동시에 우시현이 불쌍했다. 우시현이 방금 내뱉은 건 그의 단편적인 삶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우시현의 인생이 진창이었던 것이 느껴졌다.

고은교는 우시현이 불행해지는 것에 일조했다. 우시현의 말로 미루어 보면, 우시현의 아름다움을 숭배하면서도 자신이 우시현을 짓밟고 내려다보는 일을 아주 즐거워했던 것 같았다.

‘비열한 새끼가…… 맞네.’

숨은 천천히 원래대로 돌아왔다. 우시현이 차갑게 굳은 얼굴로 비스듬히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발이 머리를 툭툭 친다.

“부모 잘 만나서, 세상 좆같은 줄 모르고 역겨운 짓만 할 줄 아는 너 같은 새끼한테는…….”

하지만 우시현이 모르는 사실이 한 가지 있다.

‘진짜’ 고은교 역시 우시현을 동정했을 거라는 사실이다. 그게 아니라면 우시현의 가이드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리가 없었다. 어쨌거나 ‘진짜’ 고은교가 최소한 가이드였다면, 본능적으로 이 에스퍼의 불행을 돌보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겠지.

“이런 대우가 어울려.”

우시현은 정말 이승우와 친구가 맞군.

자연히 비가 쏟아지던 날 저녁, 이승우가 자신에게 했던 짓과 우시현의 행동을 비교해 보게 되었다. 이승우 역시 고은교의 머리를 툭툭 쳤다. 물론 그는 손가락으로 친 것이었고, 정신이 이상해진 것 아니냐는 뜻으로 한 것이었지만 고은교에게 모멸감을 주려는 의도는 같은 것이었다.

어느 쪽이든 별로 좋지 않다. 하지만 굳이 말하라면 우시현이 더 끔찍하다고 하겠다.

최소한 이승우는 자신을 그 자리에서 죽이려고 하지는 않았으니까.

그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악의에 가득 차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우시현을 향해 말했다.

“그래…… 고생했네.”

“……뭐?”

우시현이 얼굴을 확 찌푸린다. 방금 자신이 들은 말이 맞는지 의심하는 표정이다.

“고생했다고.”

우시현은 고은교의 어설픈 위로에 오히려 더 화가 난 것 같았다.

냉혹한 얼굴이 한쪽으로 살짝 기울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얄팍한 입술이 비틀리며 험한 말을 쏟아냈다.

“이 병신 새끼가 뭐라고 지껄이는…….”

하지만 더 때리지는 않았다. 너무 황당해서 더 때릴 생각조차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건 정말 다행이었다. 더는 맞고 싶지 않았다.

그는 피비린내가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그동안 잘 참았어.”

“…….”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는데 혼자서 잘 견디다니, 너는 분명 착한 애일거야.”

“이 새끼가 실성했나…….”

중얼거리는 말과 함께 우시현이 다리를 움직였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눈앞이 다시 하얘졌다. 한 번 차였던 옆구리를 다시 차이자 숨이 턱 막혔다.

하지만 그는 이런 고통 속에서도 견디며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킬 줄 알았다. 사실, 정말 더 맞았다간 최소한 어느 한 군데가 부러질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는 숨을 몰아쉬며 몸을 떨었다. 그리고 겨우 입을 열었다.

“내가 미안해. 이젠 널…… 다시는 힘들게 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너도 널 그렇게 비하하는 건 그만둬.”

솔직히 말하는 중간에 우시현이 다시 그를 걷어차 버릴까 봐 무서웠다. 그래서 뒤로 갈수록 목소리가 작아졌지만, 그래도 그는 자신이 해야 할 말을 끝까지 해냈다.

“……야. 너 무슨, 약이라도 처먹었냐? 아니면 이건 또 무슨 새로운 수작이야?”

잔뜩 성이 나서 고은교를 노려보던 우시현이 돌연 헛웃음을 지었다. 그의 목소리는 아주 낮게 잠겨 있었다. 이 황당한 상황이 우시현에게는 버거운 듯했다. 그는 고은교를 때리다 말고 아주 피곤하다는 듯이 손바닥으로 제 눈썹 뼈를 문질렀다.

그리고 그가 제 손바닥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축축해진 손바닥을.

“이게 뭐…….”

우시현은 즉시 자신의 몸의 이상을 알아차렸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한 번 더 제 눈가를 훔친다. 동시에 주춤, 하고 고은교로부터 한 걸음 물러났다.

“씨발.”

그가 고은교를 아주 증오하듯 쳐다보려다 그에 실패하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러나 여전히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우시현은 자신이 전조도 없이 울고 있다는 것을 몰랐고, 그것을 멈추는 방법은 더더욱 몰랐다. 몇 번 얼굴을 닦아 내던 우시현은 잠깐 동안 어쩔 줄 몰라 했다.

뭐가 됐든 우시현은 고은교의 앞에서 계속 울고 싶지는 않았던 게 분명했다. 그대로 얼어붙어 당황해하던 우시현은 몸을 홱 돌려서 가이딩실에서 나갔다.

우시현이 멀리까지 걸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살았다.

고은교는 바닥에 누운 채 팔다리를 쭉 늘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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