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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콜 가이드-39화 (39/132)

#39

쉽지 않았다. 이 몸으로 가이딩을 하기 힘들다고 느낀 건 이승우를 가이딩 하던 때를 제외하고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다만 이승우는 가이딩하는 방법이 어렵다기보다는, 가이딩을 아예 흡수해 본 적 없는 몸이라 손수 길을 트고 지나가느라 힘들었던 것에 가까웠다. 하지만 뭐랄까……. 차영헌에게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이유는 아마 고은교가 가이딩을 자주 하지 않아서인 것 같았다.

차영헌은 본래 장이주의 에스퍼였으므로, 가이딩하는 법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건 차영헌이 아닌 고은교의 문제였다. 말 그대로, 자신의 가이딩 경험치가 부족하다는 이야기였다. 예전에는 손쉽게 맨손으로 실뜨기를 했다면 지금은 장갑 낀 손으로 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마음대로 섬세한 가이딩이 되지 않아 답답했다.

눈 감고도 가이딩을 하던 장이주였을 때의 경험이 아니었다면 차영헌의 가이딩을 포기했을 것 같았다. 차영헌이 그의 에스퍼였던 적이 없었거나, 그가 장이주가 아니었더라면 절대 되지 않았을 가이딩이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고은교는 차영헌에게 그런 대로 ‘리듬게임’을 한 판 했다. 차영헌의 몸을 쭉 둘러본 결과 그래도 폭주 상황까지 간 혈맥을 대강 진정시킨 것 같기는 했다. 아마 이 정도면 제 발로 가이딩실에 걸어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오랜만에 봤으니까…….’

서비스 한 번 더 해 주지 뭐.

여전히 차영헌은 눈을 감고 있었고, 그는 한층 익숙해진 차영헌의 몸 안에 가이딩 기운을 돌려주었다. 그렇게 리듬게임을 한 판 더 했는데도 차영헌을 눈을 뜨지 않았다.

‘이상하다…….’

실력만 죽은 게 아니라 감도 죽었나? 이 정도면 괜찮은 줄 알았는데. 아니면 혹시 잠이라도 든 건가?

기절 상태였으니 몸 상태가 호전되면서 그대로 수면 상태로 이어졌을 수도 있었다. 그는 고민 끝에 차영헌을 깨우기로 결정했다. 하지 않아도 될 가이딩을, 카페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하게 되었으니 이만 가이딩을 종료하고 싶었다. 뒤에 이승우와 약속이 있기도 했으니까.

“일어나세요, 차영헌 에스퍼.”

고은교는 약간의 감정을 실어 차영헌의 뺨을 짝짝 때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장 팀장님?”

차영헌이 눈을 떴다.

*

하마터면 대답을 할 뻔 했다. 그 이름을 남에게서 듣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동시에 아주 익숙하기도 했다. 다행히 그는 적절한 침묵을 지켰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연기하며 차영헌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그리고 차영헌과 눈이 마주쳤다.

폭주의 여파인지, 풀려 있던 차영헌의 동공이 수축하며 좁아졌다가 다시 풀리기를 반복했다.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려는 것처럼. 그렇게 한동안 차영헌은 넋을 잃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는 듯했다.

“……아.”

다음 순간 차영헌의 표정이 일그러졌다가 되돌아온 것 같았다.

‘착각인가?’

어쩐지 머쓱한 기분이었다. 해서는 안 될 짓을 한 것 같기도 했다. 어쨌거나 그는 이전처럼 고은교의 몸으로 차영헌의 가이드를 해 줄 수 없었다. 그는 더 이상 장이주가 아니었으므로.

차영헌은 장이주의 주변인임과 동시에 장이주를 잘 아는 에스퍼였다. 만약 그가 고은교의 에스퍼가 된다면, 분명 고은교가 장이주인 것을 알아볼 것이다.

차라리 그러면 다행이었다. 고은교가 장이주를 사칭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주변에 알린다면 그의 입장이 아주 곤란해진다.

“정신이 들었습니까? 가이딩 종료하겠습니다.”

“…….”

차영헌에게 괜한 희망을 불어 넣어 주지 말자. 그에게는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일이 많았다. 매칭률이 잘 맞지도 않는 에스퍼를 거두어 그를 돌보는 일은 나중에 해도 괜찮았다. 그는 헛기침을 하며 완전히 가이딩 기운을 갈무리했다.

정확히는…… ‘그러려고 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더 해 줘.”

나른한 표정으로 차영헌이 속삭였다. 뺨을 짝짝 때리면서 중단되었던 가이딩이, 차영헌이 고은교의 손목을 감아쥠으로써 조금씩 다시 연결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까처럼 고은교가 마음먹고 ‘리듬게임’을 하지 않는 이상 제대로 가이딩이 되지 않음을 차영헌도 알 텐데. 대체 무슨 생각인 걸까.

그는 눈썹을 찌푸린 채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콱 붙든 손길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보세요.”

“응.”

“응이 아니라……. 놓으세요. 배은망덕한 짓은 그만두고.”

“너 아까 내 뺨 때렸잖아. 미안하지도 않아?”

“전혀.”

“듣던 대로 싸가지 존나 없네.”

차영헌이 피식대며 웃었다.

이런. ‘듣던 대로……’라고? 그렇다면 조금 더 곤란하다. 차영헌이…… 고은교를 알고 있었나? 고은교의 주변인 중에 차영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놔 주세요.”

“싫어.”

풀린 표정과는 달리, 손목을 쥔 손아귀에는 점점 힘이 가해지고 있었다. 뿌리치고 가기에는 너무 강한 힘이었다. 혼자의 힘으로는 벗어날 수 없을 만큼.

점심시간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차영헌이 부린 난동 때문인지 아무도 이 카페테리아에 나타나지 않았다.

구급대원들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내 가이드가 되어 줘.”

설상가상으로 차영헌은 그가 걱정했던 제안까지 꺼냈다.

차영헌은 장이주와만 매칭률이 낮았던 게 아니었다. 대부분의 가이드와 그랬다. 그래도 간혹 매칭률이 괜찮은 가이드가 튀어나오기는 했는데, 모종의 이유로 가이드들이 죄다 센터를 그만두게 되자 어쩔 수 없이 장이주에게 배정되었던 에스퍼였다.

지금이라고 해서 사정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겠지. 차영헌의 사정을 뻔히 아는데, 모르는 척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립니까?”

“나는 가이드가 없어. 다들 가이딩이 어렵다고 꼬리를 말고 도망가더라고.”

“저도 잘 못합니다만.”

“아까 했잖아?”

“그게 무슨 가이딩입니까.”

“가이딩이지. 왜 가이딩이 아닌데?”

“…….”

말이 안 통한다.

서로가 서로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데, 더 이상은 대화를 할 필요가 없을 듯했다. 그는 입을 다물고 가만히 주위를 살폈다. 그러자 손목을 쥔 손에 악력이 더 강해진다. 고은교의 주위를 끌기 위함인 듯, 그가 차영헌을 바라보자마자 손목을 쥔 손의 힘이 약해졌다.

이러다가는 손목에 손자국이 남을 것 같다. 그는 눈썹을 찌푸린 채 차영헌이 붙든 손목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동안 의미 없이 가이딩 기운이 두 사람의 몸속을 흘러 다닌다.

차영헌은 입꼬리를 올린 채 그를 올려다보았다.

“어차피 도와줄 만한 사람은 없는 것 같은데…… 다른 데 보지 말고. 어차피 나도 너에 대해 아예 모르는 건 아니야.”

“싫습니다.”

이 느글거리는 말투는 또 뭐야.

“왜? 아, 그 좋다는 에스퍼가 있어서?”

“…….”

고은교가 유명한 것은 익히 안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실까지 알려져 있을 줄은 몰랐다.

“어차피 둘은 티도 안 나. 나한테도 기회를 줄 수 있잖아, 어? 이왕 가이딩까지 해 봤으니 면접은 통과했고……. 앞으로 나도 책임져 보는 건 어때?”

덧붙여, 이승우도 그의 에스퍼라는 사실은 알려져 있지 않은 모양이었다.

차영헌은 언제 능글맞게 굴었냐는 듯 살짝 입꼬리를 올린 채 고은교를 끌어당겼다. 고은교는 반사적으로 차영헌에게 끌려가지 않기 위해 몸에 힘을 줬다. 물론, 차영헌은 인정사정없었다.

쌍방이 힘을 줬을 때, 한쪽의 힘이 현저하게 적으면 반작용이 더 큰 법이었다. 딱딱한 가슴팍에 이마를 퍽 부딪친 고은교가 머리를 들었다.

“……지랄하네.”

해쓱해진 얼굴로 그를 노려보자,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강하게 손목을 움켜쥐고 있던 차영헌이 킬킬대며 웃었다.

“도련님이어서 영 욕설 같은 건 못하는 줄 알았는데……. 괜찮아. 난 이런 게 더 좋거든.”

“…….”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다니며 가이딩을 해 달라고 조를 줄밖에 모르는 녀석인 줄 알았더니, 사람을 협박할 줄도 알았다는 게 놀라웠다. 이놈이건 저놈이건 다 협박부터 하는 게 아주 꼴사납고 황당하다.

배은망덕한 새끼.

가이딩을 해 줬더니 가이드를 해 달라고 협박하는 꼴이라니.

그래, 이건 협박이었다.

사람들이 늘 자신을 존중해 주고 인정해 주는 삶을 살아왔던 과거와 달리, 현재의 고은교에게는 인망이랄 것이 없었다. 처음에는 자신의 처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우시현에게 제대로 대면하고, 상황을 설명하고자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결과는 어땠지? 우시현에게 개처럼 두들겨 맞았다. 기지를 발휘해 그의 감정을 자극하지 않았더라면 빠져나오기 힘들었을 거다.

차영헌이라고 다를 것 같지 않았다. 그래도 우시현과는 가이딩실에 있기라도 했지, 이곳은 야외였다. 조만간 사람들이 우르르 들이닥칠.

절대 이곳에서 맞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차영헌이 우시현처럼 가이드를 때리는 개쓰레기 같은 새끼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때 에스퍼에게 맞았던 기억이 너무 충격적이라 그를 침묵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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