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콜 가이드-43화 (43/132)

#43

게이트 탐지기로 게이트가 언제 생길지 알아본다 해도 100% 완벽하게 알아맞히는 것은 아니었다. 확률이 80%라고 하지만, 현장에서 뛰어 본 결과 한 60% 정도 맞는 것 같았다. 그러니 제주도 게이트도 없던 일로 무산이 될 확률 역시…… 상당히 있는 편이었다.

바람은 여러모로 유용한 능력이었고, 이승우가 이곳저곳 게이트를 자주 다닌다면…… 제주도 게이트가 열리지 않아도 이승우를 이용해서 임시 라이선스를 정식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차문에 기댄 채 가만히 서서 푸른빛이 넘실거리는 게이트 입구를 바라보았다.

일정 인원이 들어가 포화 상태가 된 게이트는 더 이상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다. 다만 그 신비로운 광경은 사람의 시선을 잡아끄는 마력이 있었다.

그때, 고은교의 귀로 근처에 서서 자신의 에스퍼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저 사람, 누구야?’, ‘왜, 있잖아. 어느 대기업 사생아라는 가이드.’, ‘아……. 그래서 한 번도 못 본 건가?’, ‘그럴걸. 이번에는 무슨 바람이 불어서 왔나 몰라.’, ‘아, 안에 우시현 에스퍼가 있나 보지.’, ‘무슨 소리야, 없어.’, ‘뭐야, 그럼…….’

“…….”

‘다 들린다, 이 자식들아.’

그는 비딱하게 선 채로 게이트 입구를 바라보다가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쓱 돌렸다. 그와 눈이 마주친 가이드들이 헉하는 소리를 내고 숨죽이는 게 느껴졌다.

특정 가이드에 대한 추문이 이렇게까지 알음알음 퍼져 있는 게 정상적인 일인가 싶었지만, 또 고은교가 얼마나 유별나게 굴었으면 그랬을까 싶기도 했다. 특히 현장을 다니는 이능력자들, 센터에 속해 다니는 이능력자들의 풀은 꽤 좁은 편이었으므로 그놈이 그놈인 게 현실이기도 했다.

그러니 새로운 얼굴이 눈에 띄면 그게 누군지 알아보고 싶었겠지. 거기에 ‘대기업’의 사생아라는 타이틀은 만고불변의 가십거리였으므로 고은교가 유명인사일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과 달리 정말로 이 게이트에 우시현이 있었으면 그는 이곳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생각해도 우시현은 미친놈이었다.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우시현에게 달라붙을 생각이 없었다.

지금부터는 이승우뿐이다. 이승우를 이용해서 반드시 정식 라이선스를 따내, 현장 가이드로서의 능력을 증명하리라. 그래서 그 어느 누구도 자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지 못하게 할 결심이 섰다.

이승우의 경력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S급 에스퍼이니 굳이 고은교가 게이트에 들어가려고 이리저리 기웃대지 않아도 알아서 훌륭한 실적들을 코앞에 갖다 바칠 것이다. 또한 이승우는 앞으로도 고은교에게 가이딩을 받을 테니 분명 순순히 협조해 줄 것이 틀림없었다.

협조하지 않는다면?

‘그때는 제주도에 가면 되지.’

명료하게 생각을 정리하며 그는 이승우가 게이트에서 나오기를 기다렸다.

크기가 작은 게이트 중 하나인 거미 둥지 애크로맨투라는 하급 이능력자들 세 명이 이틀 동안 클리어 하면 적정인 게이트였다. 다만 거미가 독성이 있어 물리면 중독되고, 그 수가 많고 몸집이 적어 불침번을 서는 것이 까다롭기 때문에 상급 이능력자가 포함하여 단시간에 클리어하는 것이 훨씬 가성비가 좋았다. 그렇게 되면 게이트 클리어 시간이 5시간 전후로 마무리 된다.

굳이 이렇게 나와서 서 있을 필요가 없었다.

그는 자신을 힐긋거리는 시선들을 피해 차로 들어갔다. 내친 김에 운전석에 앉아 차 시트를 뒤로 젖혀 반쯤 누워 앞으로의 일을 계획했다. 세상일은 계획을 짠다 해서 다 계획대로 되는 건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무슨 일이 일어나든 상관없도록 대체 플랜을 최대한 많이 세우면 해결된다.

현재 운용할 수 있는 에스퍼가 이승우뿐이었으니, 그는 이승우와 함께 클리어 하면 괜찮을 게이트를 주르륵 떠올렸다.

바람 에스퍼와 상성이 맞는 게이트는 정말 많았다.

게이트는 기본적으로 크게 물질계와 비물질계로 나누어진다. 대부분의 게이트는 물질이지만 고등급 게이트의 경우 비물질 게이트도 종종 있었다.

물질이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을 뜻한다. 비물질이란 그 반대다.

분명히 존재하는데, 만질 수도 없고 눈에 보이지도 않아 인식되지 않는 것들을 말한다. 유령이나 정령들이 이 비물질에 해당한다. 전자는 무척 유해하지만, 후자는 아니었다. 생명체에 해를 끼치지 않는 정령 몬스터들은 기분이 내키면 제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는데, 그것이 몹시 아름다워서 휴양지로 개발된 게이트가 있을 정도였다.

바람 에스퍼는 물질 게이트에만 유용할 것 같지만 실은 아니다. 바람이라는 능력은 물질과 비물질의 경계에 있는 능력인데, 그 경계라는 것도 개념이 불분명하다. 아주 강력한 능력은 물질을 넘어 비물질에까지 영향을 줘서 그런 것이 아닐까 추론할 뿐이다.

이승우와 함께 활동하면 예전의 실적을 복구하는 것은 물론, 더욱 많은 실적을 낼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그때였다.

웅웅거리는 소리가 천지간에 울려 퍼졌다. 이능력자 팀이 들어간 지 아직 두 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끝났다고?’

그는 게이트 파동이 일어나는 소리를 듣고 차 밖으로 나왔다.

이렇게 이례적으로 게이트 클리어 시간이 단축된 게 흔치 않은 건지 가이드들은 물론이고 게이트를 지키는 가드들 역시 게이트 입구를 바라보며 웅성대고 있었다.

“이번 게이트가 유독 쉬웠나 봐?”

“아니지. 상급 에스퍼가 들어갔다니까…….”

“나도 걔 봤어. 완전 어리던데. 초짜 아니었어?”

푸른빛이었던 게이트 입구는 붉은색과 흰색으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게이트가 클리어 되었다는 징후에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한 센터 의료팀과 구급차들이 일 순위로 게이트 입구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센터 가이드들은 그 뒤를 천천히 따라갔다. 구급차가 먼저 지나가야 했으므로 차량을 타고 이동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그는 조금 머쓱한 기분으로 그 무리에 합류했다.

사람들 몇몇이 그를 돌아보며 흘깃거리는 게 느껴졌다. 그런 관심들이 불편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조금만 견디면 시간은 금세 지나간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게이트가 완전히 열리기까지 기다렸다.

게이트가 열리고, 시료 운반을 위해 센터 가드들이 들어갔다. 그는 에스퍼들이 줄을 지어 걸어 나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게이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일반 가이드의 수가 제법 되는 것으로 보아 게이트에는 에스퍼들끼리 들어간 모양이었다.

‘하긴, 너무 하급 게이트라 가이드가 들어갈 필요가 없기는 하지.’

게다가 일반적으로 가이드는 능력이 없으므로 위험하다는 인식이 있었다. 사실에 기반한 인식이기는 했다. 에스퍼의 수가 적은 것도 아니니 센터에서는 혹시라도 생길 수 있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일반 가이드의 경우 게이트 안으로 들여보내지 않았다.

현장 가이드는 대부분 등급이 높은 게이트에서 실적을 쌓는 편이었다. 한마디로 이 에스퍼들과 함께 게이트에 들어간 가이드는 없었다. 그래서일까, 가이딩을 받지 못하고 단기간에 능력을 쏟아 붓고 나온 탓인지 에스퍼들은 무척 지쳐 보였다. 게이트 입구에서 자신의 에스퍼를 기다리던 가이드들이 와글와글 떠들며 에스퍼들에게 몰려 들었다.

고은교는 이승우를 금세 발견할 수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맨 뒤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던 이승우 역시 그를 바로 알아본 듯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이승우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이승우…… 에스퍼.”

하마터면 학생이라고 부를 뻔 했다.

“…….”

“고생했습니다. 게이트에 들어간다고 왜 미리 말하지 않았어요? 우선 데려다줄 테니, 차로…….”

하던 말은 다 하지 못했다. 잠깐 제자리에 서 있었던 이승우가 언제 그랬냐는 듯 가까이 다가와 허물어지듯 스르륵 안겼기 때문이었다.

고은교는 크게 당황했다. 이승우가 대뜸 안길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힘들었나? 겉보기로는 멀쩡해 보이는데.

큰 상처라도 있는 건 아닐까?

이승우의 얼굴을 다시 확인하려는데, 몸에 무게가 실린다. 허겁지겁 쏟아지는 이승우를 받아내느라 고은교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그……. 병원이라도 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저도.”

“예?”

“저도 보고 싶었어요.”

이게 무슨 말이야……?

“승우 군, 무슨 말인지…….”

그는 그게 무슨 뜻인지 물어보려다 말고 입을 다물어야 했다. 이승우가 기절한 듯 온몸에 힘을 빼고 기대 와 몸이 다시 휘청거렸다.

그는 자신이 고작 에스퍼 하나 감당하지 못할 근력 수준을 가졌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물론 고은교는 장이주처럼 엄격하게 근력 및 체력 관리를 하는 스타일이 아니었고, 선천적으로 몸집이 작고 왜소한 편이었다. 이승우 역시 에스퍼답게 키가 컸지만, 근육이 많이 붙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역시 에스퍼는 에스퍼인지 전해져 오는 무게가 상당했다. 저도 모르게 몸이 뒤로 밀릴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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