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콜 가이드-45화 (45/132)

#45

“도움이 안 되네…….”

이승우는 그 이후로 세 번이나 게이트를 클리어 했다. 물론, 아무리 좆 빠지게 뛰어 갔어도 이승우가 그와 함께 게이트에 들어가는 일은 없었다. 나중에는 게이트 알림이 와도 그냥 무시했다.

어차피 게이트에 안 들여보내 주는데 뭐 하러 가겠는가.

이승우를 설득하려는 시도를 안 해 본 것은 아니었다. 그가 게이트를 클리어할 때까지 기다리자, 이승우는 그의 말에 귀 기울이기는커녕 집에 좀 들어왔다 가시라는 둥, 오늘 일정은 뭐가 있으시냐는 둥 쓸데없는 수작이나 걸었다.

고은교는 원래 계획대로 제주도 게이트를 클리어 하기로 했다. 게이트가 있을 것으로 믿고 제주도 비행기 티켓도 끊어 뒀다.

그러던 중에 문제가 생겼다. 제주도 게이트 반응이 일주일 전을 기점으로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게이트 반응이 0%라는 말은 게이트가 생길 가능성이 아예 없다는 뜻이었다.

제주도 게이트가 터지면 즉시 게이트에 들어가려던 이능력자 팀은 게이트 반응 퍼센테이지가 0을 기록하자마자 철수를 시작해서 어제를 기점으로 완전히 마쳤다고 했다.

고은서는 다른 게이트를 알아봐 주겠다고 했지만, 기본적으로 기업이 뛰어들 만한 큰 게이트는 이래저래 이목이 많이 모였다. 제주도 게이트가 예외였던 것뿐이지, 게이트가 탐지될라치면 센터나 다른 길드, 기업에서 귀신같이 냄새를 맡고 주위를 배회하며 이권 싸움을 했다.

‘하아…….’

처음에는 고은교 역시 제주도 게이트를 포기했다. 게이트가 없어지는 건 종종 있는 일이었으니 딱히 미련 따위 없었던 것이다.

그는 고은서에게 회사 에스퍼를 아무나 붙여 달라고 했고, 센터든 사설 기업이든 몰래 게이트 작전에 참여하려 했다. 고은서가 생각보다 협조적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승우가 아니었다면 충분히 잘 해결될 일이었다. 분명 고은교에게 사람을 붙여 놓은 건 아닌데, 어떻게 알고 나타나는 건지 그가 게이트에 들어가려고 치면 어느새 다가와 게이트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다.

애초에 고은교에게는 게이트 경험이 없기도 했고, 가이드로서의 평판이 좋지 않아 그러지 않아도 팀장들은 고은교와 함께 게이트 들어가는 일을 은근히 못마땅해 했다. 따라서 이승우가 나타나 위험하다고 고은교를 말리면 얼씨구나 하며 ‘다음 기회에’ 같이 하자는 둥의 말로 그를 내쫓았다.

이게 현장의 불합리성이었다. 센터나 기업들이 다 달라붙는 등급 높은 게이트에는 ‘임시’ 딱지가 붙은 B급 가이드가 들어가는 건 불가능했고, 자잘한 게이트들은 팀장들의 입김이 워낙 세서 아무리 들어가기로 구두 약속이 되었다 하더라도 일이 틀어지면 마음대로 강행하기가 어려웠다는 이야기다.

‘차라리 도움이 안 될 거라면 방해나 하지 말지.’

괜히 현장 가이드 임시 라이선스가 있는 걸 말했다 싶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손에 들린 비행기 티켓을 내려다보았다.

지푸라기라도 잡을 수 있는 건 제주도 게이트밖에 없는 셈이다. 고은서가 진작 꾸려 두었던 엘리트 팀은 감히 고은교를 배척하지 못할 터였다. 게이트 신호는 끊어졌지만, 그는 완전히 게이트 신호가 끊어졌을 때 돌발적으로 게이트가 튀어나오던 상황이 몇 번 있음을 알고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갑자기 생성된 게이트에 빨려 들어간 민간인들이 피해를 입는 경우는 보통 이런 경우였다.

“즐거운 여행 되세요.”

“감사합니다.”

검색대 앞에서 승무원이 싱긋 미소 지어주었고, 그 역시 따라서 미소를 지으며 캐리어를 들었다.

이번에는 이승우에게 덜미가 잡히지 않도록 그의 스케줄도 미리 확인한 상태였다. 지금쯤이면 이승우는 우시현과 동창회에 가고 있을 것이다.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 저녁 비행기 표를 끊은 건 절대 모르겠지. 그는 비행기에 오르며 어쩔 수 없이 이승우에 대해 떠올렸다.

가이딩을 해 주었을 때를 기점으로 크게 달라진 이승우의 태도는 고은교가 그를 처음으로 데리러 갔을 때부터 더더욱 극적으로 변화했다. 마치 고은교의 그림자라도 된 듯 그를 졸졸 따라다니는 것으로도 모자라, 고은교와 온종일 붙어 있기 위해 정성과 시간을 쏟았다.

그를 밀어 낼라 치면 아주 서운한 척을 하거나 몰래 뒤따라다는 것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승우는 자신의 시선이 닿는 곳에 늘 고은교를 두고 싶어 했다.

처음에는 이승우가 통제에 대한 집착이라도 있는 건가 싶었다. 고은교가 좋아서 그에게 자연히 관심이 기울어졌을 리는 없지 않은가. 생전 처음으로 가이드가 생겼으니 그래, 나름대로 좋게 이해해 주려 했다. 아마 이승우의 입장에서는 고은교 역시 극적으로 변화했다고 여길 것이었으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예전의 고은교가 남아 있어서 아무리 고은교가 이전의 고은교와 달라졌다 한들 한순간에 그를 팽하고 떠나거나 큰 사고를 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했다.

그렇지만 이승우에게 자신은 원래의 고은교가 아니고, 사실은 상급 가이드였던 장이주라고 말할 수 있을 리 없으므로 이승우의 불안을 해결해 줄 수는 없었다.

기가 막히게도 고은교는 장이주가 가진 특징까지 똑같이 지니고 있었는데, 심지어는 기호를 떠나 알레르기까지 똑같이 보유하고 있었다. 무슨 영문인지 복숭아는 알레르기 때문에 먹지 않고, 커피는 꼭 아이스 아메리카노, 오이나 토마토는 물컹거리는 식감 때문에 먹지 않는 식성까지 같았다.

놀라운 점이라면…… 이승우가 고은교의 취향을 샅샅이 꿰뚫고 있다는 것일까.

당연하다는 듯 이승우의 시중을 받고 있다가 깜짝깜짝 놀랐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대로면 자신이 고은교가 아니라고 말해 봐야 믿어 주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아주 진지하게 고은교가 자신과 말로만 듣던 영혼의 쌍둥이는 아닐까 의심했다. 그리고 이승우는 대체 왜 고은교의 식성이나 기호에 대해 꿰뚫고 있는지도 궁금했다…….

사실 이승우는 고은교를 좋아했던 게 아닐까?

웃기는 소리긴 하지만, 왜. 그런 게 있지 않은가. 너무 싫다고 생각한 것을 매일같이 생각하고, 그것에 과민 반응을 하다 보면 그게 조금쯤은 좋아지는 경험 말이다. 그러다 보면 극렬히 싫어했던 것만큼 좋아지기도 했다.

고은교는 실없는 생각을 하며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승무원의 안내에 따라 자신의 좌석을 찾기 위해 고개를 두리번거릴 때였다.

“교수님.”

배정된 좌석을 찾던 고은교가 홱 뒤돌아섰다. 그곳에는 웃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이승우가 있었다.

너무 놀란 나머지 심장이 몹시 뛰었다. 분명 아까까지는 없었는데 어디에서 튀어나온 거지? 심지어 이곳은 비행기 안이다.

“……뭐, 뭡니까. 동창회 간다고 하지 않았어요?”

“갔다 왔어요. 그보다 예약한 좌석, 어디세요?”

“무슨 놈의 동창회가 벌써 끝난다는…….”

“좌석, 어디세요?”

“C-11…….”

미묘한 박력에 밀린 고은교가 좌석 번호를 뱉었다.

“여기네요.”

이게 말이 되는 건가. 마술쇼도 아니고, 갑자기 공중에서 튀어나온 유령 몬스터를 보는 느낌이다. 그는 아주 황당한 기분을 느끼며 이승우가 부드럽게 이끄는 대로 가 좌석에 앉았다. 기가 막히게도 이승우는 바로 그 옆, C10번 좌석이었다.

자리에 털썩 앉으면서도 고은교는 이승우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이승우는 그린 듯이 눈을 접어 웃고 있었다.

“나를 감시했어요?”

“너무 수상쩍게 행동하시니까 모르고 싶어도 알게 되던데요. 무슨 일을 꾸미시나 궁금해서 그냥 모르는 척하고 놔뒀는데……. 저 빼고 휴가라도 가려고 하셨어요?”

“…….”

이승우가 다정한 목소리로 말하며 고은교의 안전벨트를 채워 주었다. 그는 아무 말 못하고 그대로 이승우와 동승해야 했다.

아무리 ‘my’ 목록에 서로 올라 있는 사이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사람은 타인에게 무관심하다. 이승우의 헤아림은 분명 다른 사람에 비해 유별난 구석이 있었다.

아니, 바보라도 모를 수가 없다. 기내 창문으로 밖을 멍하니 바라보던 고은교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들어 이승우를 한 번 더 돌아보았다.

휴대 전화를 내려다보던 이승우가 고은교를 돌아본다.

“같이 볼까요?”

“……아닙니다.”

무슨 비행기를 처음 타 보는 사람도 아니고…… 사이가 애틋해 좋은 것을 보면 공유하고 싶은 것도 아닌데 뭘 같이 본단 말인가. 비행기 밖 풍경을?

그는 한숨을 내쉬며 약 한 시간 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내에서 제주도 공항에 도착할 것이라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고, 비행기가 착륙하자 사람들은 모두 내릴 준비를 했다.

그때 이승우가 고은교에게 몸을 살짝 굽혔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나 싶어 안전벨트를 풀던 손을 멈춘 순간, 이승우의 손이 다가와 고은교의 안전벨트를 풀어 주었다. 그리고 싱긋 웃는다.

“…….”

“가요.”

그는 아주 제 것처럼 자신의 캐리어까지 챙겨 나가는 이승우를 멀거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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