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난생 처음으로 가이딩을 받았는데 그게 하필 매칭률이 가장 높을 것으로 추측되는 고은교였다. 저렇게 이승우가 약이라도 한 듯 돌아버린 건 어느 정도 정상 참작할 여지가 있다는 이야기다. 앞으로의 가이딩 역시 고은교가 아니면 안 될 것 같고, 혹시라도 고은교가 불의의 사고로 픽 죽어 버릴까 봐 엄청나게 불안하고 초조하겠지.
하지만 사람은 그렇게 쉽게 죽지 않는다. 지독한 병마와 싸우면서도 그는 충분히 많은 실적을 쌓아 왔다. 게다가 그는 이승우가 자신을 어린 아이라도 되는 것처럼 빙글빙글 맴돌며 과보호하는 것에 완전히 질려 버렸다.
이승우만 매칭률이 가장 높은 가이드를 만난 게 아니었다. 고은교 역시 처음으로 운명의 에스퍼를 만났다. 장이주였을 때 인생과 현재의 인생을 통틀어서 말이다.
나름대로 그는 자신이 만난 에스퍼 중에 이승우를 가장 신경 써서 대해 주려 노력했다.
잘되지는 않았지만.
호텔 조식을 먹고 객실로 돌아온 그는 배낭을 챙겨 호텔을 나갔다. 체크아웃을 할 필요는 없었다. 이미 일주일 장기 투숙으로 예약해 두었다.
마침 호텔 주위에 게이트 신호가 희미하게 잡혔던 곳이 있었다. 그는 천천히 해변가를 둘러보며 유의미한 흔적이 있는지 살폈다.
‘첫 신호가 있던 곳이 제일 가능성 높은데.’
게이트 입구는 일반적인 문이 아니었다. 일렁거리는 빛무리 같은 것이었다. 블랙홀이나 화이트홀에 가깝다고 보면 된다.
따라서 게이트가 생성되기 전 그 안에 든 돌조각이나 몬스터의 체액, 그리고 아주 드물게 몬스터가 빠져나오고는 했다.
탐지기는 바로 그것을 탐지하는 것이었다.
게이트 밖으로 빠져나온 게이트 부산물들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거나 지구에 동화되어 게이트 내부에서 가졌던 비정상적인 힘을 잃고는 했다. 그는 한쪽 무릎을 꿇어앉은 채 해변의 모래를 만지작거렸다.
그다음, 그는 렌트해 둔 차를 끌고 호텔 근처를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소형 탐지기를 든 채 돌아다녔지만 탐지기에 신호가 잡힌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호텔 근처를 대충 다 뒤져본 그는 반경을 넓혀 그 근처를 다시 살폈다. 하지만 결국 그는 다시 호텔로 돌아와야만 했다.
벌써 오전이 다 가고 오후였다. 그는 점심으로 호텔 레스토랑에서 불고기 정식을 먹었다.
배를 채운 그는 굴하지 않고 제주도를 천천히 돌아다녔다. 제주도는 상당히 큰 섬이었다. 특히, 이런 식으로 뭔가를 찾아다니는 건 더욱 많은 품을 필요로 했다. 하루 만에 녹초가 된 고은교는 호텔로 돌아와 머리를 대자마자 기절했다.
삼 일 정도는 똑같은 루틴을 반복했다.
‘정말 없는 건가…….’
화요일 저녁, 마지막으로 게이트 신호가 감지된 곳에 다녀온 그는 심각한 얼굴로 자신이 정리한 메모를 들여다보았다.
게이트 신호는 섬 외곽을 필두로 차례로 신호가 잡혔다. 해변에 가장 많은 신호가 있었고, 특히 모래사장에 게이트의 것으로 추측되는 모래조각과 돌조각이 잡혔다. 그것들은 파도에 닿자마자 지구의 모래처럼 변해버렸다고 했다.
게이트 신호가 잡혔던 점들을 빨간색으로 표시한 그가 그것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을 때였다.
삐익-
호텔 객실로 돌아오자마자 대충 책상에 올려 둔 소형 탐지기가 아주 희미한 빛을 내고는 꺼졌다.
“……아.”
고은교는 후다닥 침대에서 내려와 탐지기를 들고 객실을 나갔다. 너무 흥분한 상태여서 배낭을 챙길 여유 따위는 없었다.
살짝 신호가 잡혔던 곳은 호텔 바로 뒤 절벽이었다. 그는 아주 조심스럽게 절벽 근처를 둘러보다가, 깎아지를 듯 거대한 절벽 앞에 서서 아래를 굽어보았다.
초겨울 저녁이라 이른 시각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주변이 어둑어둑했다. 저 아래가 어떤지 잘 보이지 않았고, 설상가상으로 소형 탐지기는 더 이상 반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인데…….’
좀 더 아래로 내려갈 수는 없을까?
고민 끝에 고은교가 살짝 더 앞으로 몸을 내민 순간이었다.
후드득.
심상치 않은 소리를 내며 발밑의 지반이 쑥 꺼졌다. 고은교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그의 팔과 허리를 붙든 손이 먼저였다.
“……아, 고맙…….”
“…….”
“……고마워요.”
반사적으로 물러나긴 했지만, 행여나 미끄러지기라도 했으면 큰 사고가 날 수도 있었다. 새카만 바닷물이 출렁이는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간…….
이승우의 눈은 새카만 바닷물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굉장히 놀란 것처럼 보이는 얼굴이라, 고맙다는 말을 거듭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휴대폰은요?”
“아…….”
신호가 사라질까 봐 소형 탐지기만 들고 튀어 나오느라 휴대 전화를 챙길 정신 같은 건 없었다. 그는 약간 머쓱한 얼굴로 두고 나왔다고 중얼거렸다.
“연락한 줄 몰랐습니다. 무슨 일이에요?”
“…….”
“연락이 안 돼서 나를 찾다가 발견한 거예요?”
이승우는 계속해서 말이 없었다. 완전히 기분이 바닥인 것 같았다. 너무 놀라서 그런 걸까? 아무튼, 그를 애써 달래며 살갑게 말을 붙이려는 노력이 통했는지 한참만에야 이승우가 입을 열었다.
“아니요.”
더없이 무뚝뚝한 목소리였다.
“교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싫어하시는 걸 알지만 무슨 일이 생길까 봐요. 그런데 휴대폰도 없이 이런 위험한 곳에…… 오실 줄은 몰랐네요.”
“…….”
“혹시라도 제가 없었으면…… 떨어졌다면……. 휴대폰도 없으니 구조 요청도 못하셨을 텐데.”
그는 무심코 반박했다.
“글쎄, 여기에서 떨어지면 즉사이지 않을까…….”
“즉사?”
“……아, 방금 내가 입 밖으로 말했습니까?”
“…….”
이승우의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 동시에, 허리와 팔을 감싸 쥔 손에 더욱 힘이 실려 꽉 끌어당겨졌다. 고은교는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소리를 냈다.
“아!”
고은교가 놀라거나 말거나, 확실한 안전지대를 확보한 이승우가 고은교를 바라보며 물었다.
“무엇을 찾으시는 겁니까?”
“응? 아, 그건…….”
“저한테는 말해 주실 수 없는 내용인가요?”
그를 따라다니며 지켜봤다는 말이 사실인 모양이었다. 아마 요 며칠 간 고은교가 돌아다니며 뭔가를 찾아다니는 걸 본 듯했다.
하여간 스토킹 좀 작작하라니까. 역시 귓등으로도 말을 듣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 덕에 사고를 피했다.
고은교는 이것을 좋아해야 할지, 싫어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구해 주기까지 했으니 말은 해야 하겠다 싶어 고은교가 입을 열었다.
“그래요, 숨겨서 뭐 하겠어요. 이곳에서 게이트 신호가 잡혔습니다. 본래 이능력자 팀이랑 같이 들어가기로 한 제주도 게이트입니다. 원래는 게이트 신호가 사라져서 게이트가 없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게이트 신호가 다시 잡히더라고. 그래서 확인 차 온 겁니다.”
“……교수님이 왜 이능력자 팀에…….”
“현장 가이드 라이선스가 있다고 말했잖아요? 나는 현장을 경험해 보고 싶어요. 그러니 게이트를 찾은 겁니다. 센터에서는 초짜를 별로 안 좋아하고, 이승우 에스퍼도 나와 같이 게이트에 들어가기 싫다면서요?”
“…….”
“그래서 여태까지 방해한 것 아닙니까.”
이승우는 차마 아니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는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래,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걸.’
계속 그렇게 입 다물고 있어라. 고은교는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소형 탐지기를 껐다가 켜기를 반복했다. 그래도 신호는 잡히지 않았다. 그가 절벽 쪽으로 팔을 쭉 뻗었다.
이승우의 시선이 고은교와 절벽 아래를 천천히 번갈아 향했다.
“그럼, 지금은 왜 혼자 계시는 겁니까? 가까운 곳에 이능력자 팀이 있나요?”
고은교는 소형 탐지기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신호가 다시 잡히는지 확인해 보느라 이승우의 눈이 번뜩이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완전히 절벽 아래에 정신을 팔린 채 대답했다.
“아니, 음……. 사실 게이트가 있는지 없는지 확실하지 않아서……. 그리고 게이트가 원한다고 해서 무조건 생기는 건 아니니까요. 게이트가 있는지 확인되면 이능력자 팀을 부르려고 했는데 쉽지 않네요. 내 생각에는 이 아래에 있는 것 같은데…….”
영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자, 이승우가 불쑥 제안했다.
“그러면 제가 확인만 대신하고 올까요?”
의아할 정도로 반가운 소리였다. 고은교는 반신반의하며 이승우를 쓱 훑어보았다. 이승우가 이런 기특한 소리도 할 줄 아는 녀석이었던가?
“혼자서 말입니까?”
“네. 대신 그 이능력자 팀에 저도 넣어 주세요.”
‘갑자기 뭐지?’
그건……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애초에 자신이 절벽 아래까지 갔다 오는 건 불가능했으니까.
‘왜 갑자기 호의적으로 바뀐 거지?’
안전을 핑계로 게이트 근처에도 못 가게 하던 녀석이.
어쨌든 고은교에게는 나쁠 게 없는 제안이었다. 그는 이승우의 생각이 바뀌기 전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승우 군이 합류해 주면 나야 좋지요.”
“약속하신 겁니다.”
안전을 위해 고은교를 한 걸음 더 물러나게 한 이승우는 시커먼 바닷물이 철썩이는 절벽 끄트머리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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