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이거 부서지는 거 아닌가?’
동굴이 부서지면 좀 곤란했다. 이승우가 함께 있으니 동굴 천장이 무너져도 압사당하지는 않겠지만, 괜히 멀쩡한 지반을 때려 부수는 것 같아 기분이 좀 그랬다. 호텔 바로 뒤 절벽이라 호텔의 사유지일지도 모르는데. 고작 이런 걸로 피해 배상을 청구하지는 않겠지?
막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동굴 벽이 위에서부터 쩌적 갈라지더니 그 틈으로 강력한 돌개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고은교가 생각하기에 이건 아까 이승우가 만든 바람이었다.
“이건…….”
바람 소리 때문에 이승우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동굴 벽이 한꺼번에 부스러지고 있었다. 그것은 이미 벽이 아니었다. 올올이 깨어지고 부서져 진흙처럼 뭉쳐졌다가 물처럼 풀어지기를 몇 번이고 반복한다.
고은교는 한껏 상기된 얼굴로 게이트 입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사라진 것 같았던 게이트가 다시 생성되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건 단순한 시간 문제였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고은교는 몹시 뿌듯한 얼굴로 이승우를 돌아보았다. 게이트의 생성을 목격했으니 그들이 할 일은 끝났다.
“좋아요. 이제 올라가서, 다른 사람을 부릅시다. 고생했어요, 승우 군.”
“뭘요…… 잠깐만요.”
살짝 미소 짓던 이승우의 얼굴이 한순간에 굳어졌다.
“음?”
다음 순간 이승우는 거의 번개 같은 속도로 가까운 고은교를 껴안고 동굴 밖으로 빠져나가려 했다. 동굴이 워낙 작아 채 밖까지 채 열 걸음도 안 됐는데도 제때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이미 동굴이 그들을 빨아 들이기로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그 모든 것은 아주 슬로우 모션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다음 순서로 아주 강렬한 압력이 두 사람을 엄습했다…….
그는 정신을 잃었다.
*
게이트 작전의 전체적인 가이드라인은 이렇다.
첫째, 반드시 첫 번째 입장에는 게이트를 클리어할 전체 인원이 들어가야 한다. 보스 몬스터를 잡기 전까지 게이트 문이 다시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게이트를 클리어한 팀에게는 ‘베네핏’이 존재한다. 보스 몬스터를 잡으면 바로 게이트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임시 탈출 포탈이 생성되는데, 이 포탈은 30분 뒤 사라지는 임시 포탈이다. 게이트를 클리어한 팀이 게이트에 남기로 결정한다면 그때부터는 팀이 해당 게이트를 독점할 수 있게 된다.
보스 몬스터를 잡고 나면 게이트 내 잡몹들은 무한으로 리젠되는데, 실질적으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이능력자가 몬스터를 죽이면 ‘경험치’가 쌓인다. 따라서 포탈을 통해 나가지 않은 팀은 약 3일 동안 게이트에 남아 몬스터를 사냥하여 경험치를 쌓을 수 있다. 경험치가 일정 이상 쌓이면 등급이 상승한다는 것은 현장 이능력자들이라면 알음알음 알려져 있는 내용이다.
단, 무한 리젠 몬스터를 상대하며 생기는 변수라든지 누적된 피로 등으로 부상의 위험이 있으므로 지금 와서는 대부분 바로 탈출 포탈을 이용하여 나간다. 그럴 경우 게이트 내 몬스터들은 모두 사라진다.
셋째, 베네핏을 받기로 결정한 경우, 없어진 임시 탈출 포탈 대신 3일 뒤 새로운 탈출 포탈이 생성된다. 또한 이 탈출 포탈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이 탈출 포탈을 통해 이능력자가 게이트 밖으로 나가면 바깥에도 게이트에 들어갈 수 있는 포탈이 생성되며, 이 포탈을 통해 사람들은 자유롭게 드나들며 게이트 내 시료를 캘 수 있다.
똑, 똑.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천천히 흐릿하던 정신이 또렷해진다. 의식이 저편으로 빨려가는 감각에 의식을 잃은 것 같은데, 그 이후로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은…… 왠지 부드럽고 푹신한 것에 안겨 있는 것 같다.
“아…….”
“일어나셨어요, 교수님?”
……이승우다. 그러니까…… 그건 착각이 아니었다. 자신은 이승우의 품에 안겨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여기는 어디입니까?”
분명히 게이트가 생기는 것을 확인하고 정신을 잃었는데, 지금 눈에 보이는 건…… 아까와는 완전히 다른 동굴이었다.
아깐 동굴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좁고 얕은 동굴이었는데, 이곳은 아니었다. 제주도의 수정 동굴처럼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을 만큼 깊고, 천장이 높은 거대한 동굴이었다. 이승우가 자신을 이쪽으로 옮긴 건가 싶어 묻자, 침착한 대답이 돌아온다.
“게이트 안입니다.”
“뭐……라고?”
이승우의 설명은 이랬다.
그는 위험을 느끼자마자 고은교를 보호하기 위해 껴안았고, 탈출하려 했지만 기이한 경계가 생겨 그 밖으로 달아나지 못했다. 그리고 전신을 죄는 압력에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떠 보니 게이트 안이었다. 밖을 나가기 위해 문 밖으로 손을 뻗어 봤지만 통과되지 않았다. 본래 이 동굴도 이렇게 크지 않았다고 한다.
“불안정한 게이트였어요. 절벽 전체가 게이트 입구였던 것 같습니다.”
“…….”
게이트는 없어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제 몸집을 불리기 위해 절벽 안쪽을 야금야금 먹어 치우고 있었던 거다. 그것도 모르고, 이승우에게 게이트를 좀 박살내 보라고 시켰다.
난데없는 충격으로 균열이 간 게이트는 모종의 작용을 하며 그들을 삼켰고, 몸집을 확 부풀리면서 그들을 삼켜버렸다.
그리고 현재.
미완성 게이트는 그들이 게이트에 접속한 것을 확인했고, 이승우와 고은교를 첫 번째 방문자라고 생각해 게이트 문을 닫아버린 상황이었다.
“하…….”
고은교는 천천히 자신의 이마를 문질렀다. 그리고 이승우의 품에서 일단 몸을 일으켰다.
이렇게 이승우와 단둘이 게이트에 들어올 생각은 없었다. 말이야 바른말로, 게이트가 생기자마자 이 게이트가 어떤 게이트인지 파악도 하지 않고 무작정 들어오기부터 하는 것은 자살 시도나 다름없는 아주 위험한 짓이었다.
게이트는 밖에서 탐지기와 이능을 통해 이것이 어떤 게이트인지 충분히 분석할 수 있었다. 게이트를 인명 피해 없이 성공적으로 클리어 하기 위해서는 이 분석이 핵심적인 요소였다. 어떤 몬스터가 나오는지, 또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고 게이트 모의 시뮬레이션을 충분히 돌려 사상자 없이 게이트를 클리어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심지어 이곳은 바닷가에 생긴 게이트였다. 범상치 않은 환경에서 만들어진 게이트이니 장기간 수중에서 잠복해야 하는 상황이 있을 수도 있고, 터무니없이 공략이 어려운 몬스터가 튀어나올 수도 있었다.
“아주 큰일 났네요.”
고은교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 역시 어떤 게이트인지도 모르고 무작정 게이트에 입장한 적은 처음이었다.
이승우와 함께 내려와 게이트 신호가 잡히는지 확인하지 않았더라면, 아니 최소한 그에게 동굴 벽을 부숴 보라고 요구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텐데.
“미안해요, 승우 군. 이런 일이 생길지 모르고 벽을 때려 보라고 했어요.”
“괜찮습니다.”
죽을 수도 있는데 뭐가 괜찮냐고 묻고 싶었다. 차마 양심이 있어 그렇게는 묻지 못했다. 고은교가 아무런 말이 없자, 이것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이승우가 걱정 어린 눈길로 고은교를 바라보았다.
“무서우시죠?”
“…….”
게이트에 한두 번 들어온 게 아닌데, 무섭고 자시고 할 게 있나. 이승우를 전력 삼아 이 게이트를 클리어하는 것이 가능할까 걱정인 거지.
차라리 배낭이라도 들고 왔더라면 먹고 자는 걱정은 덜었을 텐데……. 그게 아니니 더욱 문제였다. 이 게이트는 최대한 속전속결로 해결해야만 했다. 생존에 필요한 최소 식량도 없고 식수를 구하는 건 더욱 힘들었다. 심지어 잘 때도 문제였다. 그들은 결코 안전하지 않을 것이고 이승우는 눈조차 붙일 수 없을 터였다.
그래, 이승우.
이승우는 지금 자신의 가이드와 가장 위험한 상황에 처한 에스퍼였다. 보통 에스퍼라면 스트레스로 인해 미쳐 버려도 진작 미쳤을 거다. 이 상황에서 가장 요구되는 것은 가이드의 침착함이었다. 에스퍼를 다독여 그의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독려하며 게이트를 클리어해야만 했다.
그는 일부러 불퉁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내가 어디 보통 사람이에요? 이 정도로는 겁먹지 않습니다.”
그러자 이승우가 살짝 웃음소리를 흘렸다. 그러면서 자신에게서 조금 떨어진 고은교에게 다가왔다.
웃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고은교에게 딱 붙어 있으려고 하는 걸로 봤을 때, 이승우가 느끼고 있는 초조함은 상당한 것으로 짐작되었다.
그때 이승우가 제안했다.
“그래도 위험한 건 맞으니까 저에게 안겨서 이동하시는 건 어떨까요.”
“……아니, 그렇지만.”
“바닥에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이니까요.”
“…….”
틀린 말은 아니다. 이곳은 게이트, 어떤 몬스터가 있을지도 잘 모른다. 다행히 그와 함께 게이트에 들어온 에스퍼는 원소 계열 에스퍼 중 그나마 상성이 자유로운 에스퍼였다. 몬스터가 갑자기 허공이나 바닥에서 튀어나와도 훌륭하게 그를 보호해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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