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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콜 가이드-56화 (56/132)

#56

그때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불거북이 벽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기민하게 몸을 돌려 피한 이승우가 이쪽을 돌아보는 게 느껴졌다.

우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가까운 동굴 천장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종유석과 돌무더기가 쏟아지기 직전 이승우가 아슬아슬하게 고은교를 낚아채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와 동시에 두 사람은 먼지구름 사이로 사라졌다. 돌 더미를 앞에 두고 숨자, 시야에서 먹잇감을 놓친 불거북이 포효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으세요?”

이승우가 급히 물었다. 고은교는 괜찮다는 대답을 돌려주는 대신 할 말을 했다.

“보스 몹은 눈이 안 좋아요.”

“네?”

“그리고 머리가 나쁜 편이라 도발당하면 일단 돌진하고 봅니다.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물리적인 힘만 효용이 있는 것 같은데,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계속해서 충돌시킨다면 분명 공략할 수 있을 겁니다. 어디 손 좀 봅시다.”

이승우와 불거북의 전투를 관찰하며 알아낸 사실을 빠르게 브리핑하듯 읊은 고은교가 이승우의 손을 잡고 눈높이에 맞게 들어올렸다.

이승우의 손은 과연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흉하게 물집이 잡힐 것 같았다.

화상은 아주 고통스러운 상처였다. 지금도 이승우는 몹시 아플 게 틀림없었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제 옷을 찢어 이승우의 상처를 단단히 감아 주었다.

“최대한 직접적인 접촉은 피하세요. 승우 군이 다치면 그만큼 우리 팀의 전력이 누수됩니다.”

이승우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보스 몬스터가 돌더미를 하나하나 부서뜨리기 시작했다.

이 안에 숨어 있는 먹이들을 찾아내고 말겠다는 듯이.

더 이상은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고은교는 몇 번이고 이승우에게 당부했다.

“명심하세요. 절대 다치면 안 됩니다.”

“네.”

상황이 급박했다. 고은교가 이승우의 뺨을 두 손으로 꽉 붙들었다. 가이딩이 순식간에 스며들어 이승우의 몸 안을 두루 살폈다. 원체도 가이딩이 부족한 몸이었다. 지금 당장은 호수에서 한 가이딩도 있으니 괜찮은 수준이었지만, 앞으로 이승우가 능력을 쓰면 쓸수록 가이딩은 금세 바닥을 드러낼 것이다.

쿵쿵대는 소리가 가까워졌다. 고은교가 재빨리 이승우의 입술에 제 입술을 가져다 댔다. 얇은 점막을 통해 순도 높은 가이딩이 한층 더 빠르게 전달되었다.

“자, 가세요.”

이승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멍한 눈으로 고은교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은 천천히 바뀌었다. 또렷해진 눈동자가 마지막 순간처럼 그를 담고 있었다.

고은교는 이 순간 이승우가 어떤 것을 결심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게이트를 반드시 클리어하고 함께 나가겠다는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승우가 말했다.

“저는 교수님을 구해 드릴 겁니다.”

“……그래요. 믿겠습니다.”

이승우가 자신을 구하지 못할 것을 알더라도 그는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애틋함인지 기특함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며 이승우를 바라보는데, 일어나 떠나려던 이승우가 다시 한번 고은교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이승우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어떤 비밀을 말하듯 속삭였다.

“먼저 저를 구해 주신 건 교수님이에요.”

고은교는 이 영문 모를 말에 뭐라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눈썹을 찡그렸다.

이어진 전투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난장판을 방불케 했다.

이승우는 고은교의 조언을 충실히 들었다.

그는 고은교가 숨어 있는 방향으로는 돌조각이 튀지 않는 선에서 보스 몬스터가 동굴 벽에 지속적으로 머리를 들이받도록 유인했다. 종유석을 이용하여 불거북을 때렸을 때, 불거북에게 유의미한 충격을 줄 수는 없었지만 약을 올릴 수는 있었다. 단단히 열받은 불거북은 제 머리가 곤죽 나는 줄 모르고 어떻게든 윙윙 날아다니는 이승우를 잡기 위해 아우성쳤다.

다행이도 이승우는 충분히 날래고 민첩했다. 작정하고 동굴 벽 근처에 붙어 다니는 이승우를 불거북은 어떻게든 들이받으려 했으나, 결과적으로 이승우의 머리털 하나 건드릴 수 없었다.

그럴수록 불거북은 점점 더 열이 받는 것 같았다.

대형 게이트의 보스 몬스터답게 어느 정도 데미지를 받자 불거북은 전력으로 이승우에게 달려들 준비를 시작했다.

바야흐로 2 페이즈였다.

아예 다른 패턴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불거북이 한층 더 강력해진다는 뜻이었지만 곧 이 게이트의 공략이 끝난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 순간만 잘 넘기고 불거북에게 꾸준히 데미지를 준다면 불거북을 공략할 수 있을 것이다.

고은교는 종유석들 사이를 엉금엉금 기며 불거북의 시야에 자신이 보이지 않도록 최대한 주의했다. 혹시라도 자신에게 어그로가 튄다면 이승우가 한 노력이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종유석 틈 사이로 불거북의 모습을 꼼꼼히 살폈다.

불거북은 네 다리를 쫙 편 채 제 등을 바짝 세웠다. 놀랍게도 그곳에서는 시뻘겋게 달아오른 돌 파편들이 쏘아져 나왔다.

‘아니…… 마그마인가?’

그건 돌보다 훨씬 위험했다. 액체였기 때문에 범위도 아주 넓었고 돌을 녹여 그 뒤에 숨어 있는 사람을 위험하게 했다.

이승우는 아주 빠르게 불거북의 공격을 피하면서 바람으로 자신의 몸을 보호했지만, 사방으로 쏘아지는 마그마는 이승우뿐만이 아니라 보스 방 전역으로 쏘아졌다.

이승우가 고은교를 걱정하여 뒤를 돌아보는 순간 불거북이 그에게로 돌진했다.

2 페이즈에 돌입한 불거북의 속도는 지나치게 빨랐다. 당연하지만 이승우는 갑자기 빨라진 불거북의 속도에 대처하지 못했다.

슬로우 모션처럼 이승우가 퉁겨져나가 동굴 벽에 부딪혀 떨어지는 것이 보인다.

바보같이. 바보같이!

그는 이승우가 방금의 일격으로 죽었을까 봐 걱정하는 동시에 플랜 B를 떠올리려 노력했다. 그들에게 태연히 앉아 걱정할 여유 같은 건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체하면 죽는다.

고은교는 이를 꽉 깨물고 동굴 천장으로부터 떨어지는 종유석과 마그마를 피해 최대한 그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뛰었다. 종유석을 뛰어넘고, 뛰어넘던 그는 아슬아슬하게 꽂힌 채 줄지어 서 있는 종유석을 발견했다.

불거북은 마침내 침입자를 쓰러뜨렸다는 기쁨에 등에서 수증기를 마구 분출했다. 그 덕에 보스 방 안이 뿌연 수증기로 차기 시작했다.

다행인 점은, 이 대규모 공격이 불거북에게 상당한 무리가 가는 것처럼 보였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강력한 공격을 자주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야말로 적을 소멸시킬 필살기였다. 고은교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 불거북의 필살기를 피할 수 있었지만, 이승우는 고은교를 걱정하느라 불거북의 공격 중 하나를 허용하고 말았다.

보스 방 안이 천천히 고요해졌다. 시뻘겋게 달아올랐던 불거북의 등껍질은 처음 봤던 것처럼 완전히 식었다.

불거북은 이승우를 잡아먹기 위해 그에게 느긋하게 다가갔다.

그사이 고은교는 동굴 입구에서 살금살금 걸어 아까 봐 두었던 종유석 뒤까지 돌아갔다. 그리고 불거북이 이승우에게 닿기 직전 있는 힘을 다해 종유석을 밀었다. 송곳처럼 아래로 갈수록 얇은 종유석은 적은 힘으로도 쉽게 밀려 앞으로 떨어졌다.

쿵, 하고 종유석이 부서지는 소리에 불거북이 움직임을 딱 멈춘다. 그리고 머리를 돌려 뒤를 보았다.

새까만 동공이 천천히 고은교가 있었던 자리를 살폈다.

정확히는 산산이 부서진 종유석의 잔해를 확인하는 것에 가까웠다.

아까 싸움의 여파 때문에 종유석이 흔들리다 넘어진 것이라 생각했는지 불거북이 기묘한 울음소리를 내며 새까만 머리를 기우뚱했다.

고은교는 그다음 종유석에 몸을 숨긴 채 가만히 숨을 죽였다.

불거북이 다시 이승우를 향해 고개를 돌린 순간, 고은교는 옆에 있는 종유석을 더 밀어뜨렸다.

쿠콰캉, 하는 소리와 함께 종유석이 도미노처럼 줄줄이 넘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부디 이것으로 불거북이 유인되기를 바랐다. 한편으로는 이 짓이 정말 미친 짓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가이드가 자신의 위치를 드러내며 몬스터의 어그로를 끄는 것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위였다. 하지만 모든 상황에는 예외가 있는 법이다.

이대로 이승우가 불거북의 배 속으로 들어가 사라진다면 고은교 역시 살아남지 못한다. 일말의 희망마저 사라지는 셈이다.

그러니까 이건 이승우를 살리려고 목숨을 거는 희생 같은 게 아니라고 고은교는 생각했다.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불거북이 으르렁대며 사방을 휙휙 둘러보았다. 악의에 찬 새까만 눈이 침입자가 더 있음을 깨닫고 잔뜩 가늘어져 종유석을 하나하나 살폈다. 하지만 아까 불거북이 뿜어낸 수증기 때문에 보스 방 안은 안개라도 낀 것처럼 사물을 식별하기 어려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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