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콜 가이드-59화 (59/132)

#59

장이주였을 때도 하지 않았던 짓을 고은교일 때 하다니.

그는 기가 막히다는 생각을 하며 조그만 방공호 안에서 이승우를 돌보았다. 아니, 이승우가 죽었을까 봐 두려워 그가 살아있는지 수시로 확인했다. 그러지 않으면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좁고 불안한 상황에서 홀로 있었다면 분명 미쳐 버렸을 거라고 고은교는 생각했다.

이승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고은교와 함께 있었다.

때때로 그는 발작적으로 이승우의 손을 잡고 가이딩이 통하는지 확인했다. 대개의 경우 이승우의 몸은 돌처럼 딱딱하고 차가웠다. 동굴 안은 너무 추웠다. 고은교는 이승우의 체온이 더 떨어지면 위험해질 것이라고 판단했다.

동굴이 무너졌을 때 이승우가 자신에게 그랬듯 그는 이승우를 보호하기 위해 그의 몸 위에 엎드렸다. 그가 이승우를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은 이승우를 끌어안아 그에게 자신의 체온을 나누는 방법뿐이었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살갗과 살갗을 맞대며 이승우의 가슴에 귀를 댄 채 그의 심장이 약하게 뛰는 것을 들었다.

살아 있어라. 제발…… 이대로 죽지 말고 살아 있어.

고은교는 끊임없이 생각했다. 만약 그들이 몬스터에게 발각된다면…… 그렇다면…… 고은교는 이승우를 돌 사이에 묻어 둔 뒤 도망 다녀야 할 것이다. 그는 부디 골렘들이 보스 몬스터보다 빠르지 않기를 진심으로 기원했다. 이승우가 보이는 족족 몬스터들을 갈아 버렸기 때문에, 그는 이 제주도 게이트 안의 골렘들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이미 오른쪽 다리는 제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였다. 불거북을 피해 다니느라 여기저기 부딪힌 것은 물론, 종유석을 주워 온답시고 질질 끌고 다녔기 때문이었다.

이승우는 얼마나 정신을 잃고 있을까? 그가 눈을 뜬다면…… 안전해질 수는 있을까?

이승우에게 기대어 사방을 경계하면서 고은교는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 아니, 사실 이곳에는 해가 없었으므로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알 수 없었다. 불침번을 설 수 있는 것은 한 사람뿐이었으므로 고은교는 한시도 눈을 붙여서는 안 됐다. 골렘에게 들킨다면, 고은교는 골렘들의 주의를 끌며 이 게이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쪽 다리로 뛰어다녀야 할 것이다.

얼마 버티지도 못할 것이다. 아마 그 끝은…… 죽음이겠지.

들키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사흘 내내 게이트 안은 리젠 된 몬스터들로 가득 찬다고 했으니, 고은교는 그들 모두를 피할 수 없을 터였다. 움직이지 않아도 오른쪽 발목이 시렸다. 어느 순간부터는 통증도 시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주 둔한 감촉만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운이 좋으면 살아남을 수 있을 거야. 고은교는 스스로를 위로하듯 계속해서 희망의 불씨를 피워 올렸다.

그는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생각뿐이었으니 자꾸만 잡념이 떠올라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갈증 역시 몹시 심해졌다. 고은교는 죽기 전에 물을 한 모금이라도 마실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꾸만 눈이 감겼다.

‘자서는 안 돼.’

추운 곳에서 잠들면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고은교는 죽음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는 소금기로 인해 하얗게 반짝이는 이승우의 이마를 쓸어 주다가 귀를 찌르는 듯한 이명을 들었다. 동시에 현기증이 왔다. 눈앞이 점멸하듯 까맣게 변했다가 찬찬히 돌아온다. 그가 생각하기로는, 이미 오래 전부터 한계가 왔던 체력이 마지막 힘을 다하고 있었다. 지금 그를 버티게 하는 것은 정신력이었다.

이대로 사흘을 더 버틸 수 있을까?

“괜찮아요, 이승우 에스퍼.”

그가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건 사실 이승우에게 하는 말이라기보다는 스스로에게 하는 말에 가까웠다.

“우리는 괜찮아. 괜찮을 거야.”

그는 치열하게 갈등했으나 결국 남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자신이 지는 것이었다.

너무나 지친 채로 꼼짝하지 않고 이승우를 껴안고 있을 때였다.

그는 어두운 시야 밖으로 무엇인가 지나가는 기척을 느끼고 숨을 죽였다.

도각, 도각 하는 걸음은 곧 그들을 스치고 지나갔다.

고은교는 한참동안이나 가만히 있었다. 마침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을 때, 그는 이승우를 끌어안고 몸을 둥글게 말았다.

오랫동안 동굴 안은 정적만 남아 고요해졌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지나친 긴장감으로 정신은 너무 쉽게 지쳤다.

만약 몬스터에게 들킨다면…….

너무 지쳐서 도망 다닐 자신이 없었다. 그들은 온몸이 뜯어 먹힐 것이다. 어쩌면 골렘의 손에 산산이 부서질지도 모르지. 이승우가 골렘들을 허리케인에 밀어 넣어 갈아버렸던 것처럼 으적으적 씹혀 목 안으로 넘어가서……. 아니다. 골렘은 불거북이 아니니 그들을 먹는 것보다는 단순히 찢어 죽이는 것을 택할지도 몰랐다.

그로부터 몇 번이나 골렘들은 보스 방 안을 왔다 갔다 했다. 고은교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똑같은 자세로 가만히 있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러나 훈련되지 않은 몸은 부동자세를 견디지 못해 저절로 떨리고 움츠러들었다. 그때마다 그는 조용한 공기를 흐트러뜨리지 않기 위해 더더욱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시간이 갈수록 이승우의 심장 소리가 흐리게 들렸다.

이승우가 죽는다면…… 그가 죽으면…….

그는 소리 없이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승우가 숨을 편히 쉴 수 있게 곱은 손으로 그의 상의를 풀어 헤쳤다. 그리고 이승우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 이토록 가까이 귀를 가져다 대었는데도 이승우의 맥박 소리는 너무도 희미하게 들렸다.

그는 아주 숨죽여 호흡하며 이승우와 닿은 피부 면적으로 가이딩을 있는 힘껏 퍼부었다. 이 가이딩이 마지막이 될 테니,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기력을 쏟아 부어야만 했다. 그는 이승우가 죽기를 바라지 않았다. 이 불쌍한 에스퍼의 끝이 겨우 만난 가이드를 지키느라 허망한 결말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기를 바랐다.

그는 기절한 이승우에게 가이딩을 했다.

계속해서.

계속해서…….

그는 몇 번이고 가이딩을 반복했다. 이승우를 살리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몸 안의 모든 기운을 다 소진했다. 이승우의 얼굴과 목 위로 눈물이 계속해서 흘러내렸다. 그건 너무 끔찍한 일이었다. 그의 에스퍼가 죽어가는 걸 느끼는 것은.

이승우를 살리고 싶다는 생각만이 고은교의 머릿속을 지배했다.

남은 체력을 모두 끌어다 쓴 고은교는 눈앞이 점차 흐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교수님?”

이윽고 익숙한 목소리를 들었을 때, 그는 그대로 정신을 놓아버렸다.

*

모든 것이 휩쓸린다.

세상에 무거운 것은 사람이다. 감정이다. 인연이다. 그것들은 언제까지고 그를 붙잡고 아래로, 아래로 끌어당긴다. 그러나 가벼운 것은 마음이다. 천지간에 마음처럼 변화무쌍한 것이 없다. 마음은 연기처럼 순식간에 모습을 뒤바꾸고 몸 안에서 빠져나간다. 어떤 순간에는 너무나 귀중했던 것이 죽음의 문턱에 이르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된다.

삶은 먼지 같다. 가장 무거운 것과 가장 가벼운 것이 뒤섞이다 끝내 죽음이란 가위가 그사이를 싹둑 끊어 낸다. 그때 그는 강제로 자유로워지고, 갈 곳 잃은 영혼은 허공으로 떠올라 순식간에 푸른 별을 일별한다.

후회는 없다.

그에게 삶은 고통이었다.

아프고, 또 아픈 것이었다. 태어나 죽지 못해 온갖 역병과 싸워야 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는 질기게 숨을 이어 갔다. 이제 이 불필요한 투쟁을 하지 않아도 되니 기쁘다. 그는 풀어져 땅으로 떨어지는 붉은 인연의 실들을 내려다보며 생각한다. 이대로 사라지고 나면 그 누구도 자신을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해방되기를 원했다. 이대로 완전히 소멸되기를 원했다. 그 누구보다 치열히 살아 냈으므로 그 끝도 단번에 오기를 바랐다.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곳에서 그는 자신의 끝을 본다. 정확히는 ‘끝’이라고 생각했던 순간을 마주한다. 떠오르던 영혼은 안식을 찾아 하늘로 올라가는 듯했다.

그리고 바로 그다음 순간,

바람이 발목을 쥐고 당겼다.

그는 완전히 얼어붙은 채 자신이 추락하는 것을 응시한다. 자유로웠던 영혼이 다시 인연의 끈에 묶여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다시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차갑지 않은 육체를 찾는 것을 말이다.

그래, 드디어 기억났다. 이승우를 어디에서 봤는지.

그건 착각도 아니었고, 꿈에서 본 것도 아니었다. 바로 이때, 자신이 죽었을 때였다. 그의 영혼이 막 지상에서 흩어지려던 때. 이승우는 그를 추락시킨 장본인이었다.

어떻게 이걸 잊고 있었을까.

‘너였어.’

생의 마지막 장에서 기어코 자신을 붙잡은 것은 이승우였다.

‘네가, 네가 나를…….’

그는 깨닫는다.

‘나를 다시 불렀어.’

고통이, 삶이 다시 시작하게 된 이유를.

그는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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