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그는 눈을 떴을 때부터 바람이었다. 세상의 순환이 바로 그의 손바닥 위에 있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공기를 다룰 줄 알았다. 바람도 불지 않는 방에서 모빌이 흔들리는 것을 보며 이승우는 원소 계열 에스퍼로 발현했음을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았다.
그는 아기였을 때부터 이승우는 가이딩 약을 복용했다. 그렇지 않으면 가이딩을 받지 못한 작은 몸이 버티지 못할 터였다.
에스퍼들은 자신이 가진 능력을 닮는다. 특히 원소 계열 에스퍼들은 그 원소의 성질을 그대로 빼닮았다. 어쩌면 능력의 성질을 가진 인간에게 바로 그 능력이 내려오는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묻는 질문에는 언제나 답이 없다.
이승우는 처음부터 그런 헛된 질문에 관심 가지지 않는 류였다.
‘승우야, 바람은 변덕스럽단다. 절대 가만히 있지 않고 늘 어디론가 흘러가지.’
아버지 역시 바람 에스퍼였다. 그 능력은 유전되었다.
이 가업은 이승우를 부유한 도련님으로 만들어 주었다. 조상이 물려 준 강력한 능력은 집안에 권력과 재화를 풍요롭게 했다. 이승우에게는 저 아이 역시 바람 에스퍼일 거라는 질투 어린 시선이 언제나 따라붙었다.
그건 틀리지 않았다. 이승우는 태어났을 때부터 바람을 조종해 왔으므로.
삶은 어렵지 않았다. 순풍을 탄 배처럼 순조로웠다. 입에 물린 수저를 씹으며 그는 누구보다 바람 에스퍼답게 살았다. 어쩔 때는 바람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을 조종하고, 속이면서 살기도 했다. 그가 원하는 것은 하나였다. 자신의 바람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랐다.
그는 영리했으며 활달했고 운이 좋았다. 바람 에스퍼는 언제나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던 그에게 눈엣가시 같은 인간이 생겼다.
바로 고은교였다.
고은교는 무능력한데다 교활한 남자였다. 우시현을 손에 넣기 위해 고은교는 가이드가 되었다. 실제로 고은교가 가이드이기는 했다. 겨우 F급이라고 판정 정도 받을 수 있을 정도일까? 그가 가이딩 기계를 속이고 B급 가이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고은교의 집안이 힘을 썼기 때문이었다.
우시현을 도우려 하자 고은교는 이승우의 발목까지 잡았다. 그는 심술이 났다. 누구든지 그를 가두어 정체시키려고 하면 가장 기분이 나빠졌다. 그의 성질이 바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고은교에게 이것을 어떻게 앙갚음해야 할지 생각했다. 모든 일은 항상 그랬던 대로 그의 손바닥 위에 있을 것이다.
다만 그때, 그는 처음으로 누군가 자신의 가이드가 되어 준다면 어떤 사람이 좋을까 생각해 보았다.
가이딩 약에 너무 익숙해진 그는 가이드의 필요성에 대해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아버지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이 그에게 가이드를 권했기 때문에 몇십 명에 달하는 가이드를 만나 가이딩이라는 것을 받아 보았다. 하지만 그 어떤 가이드도 그를 가이딩 할 수는 없었다.
어떤 가이드는 그에게 이승우가 가이딩과 최악의 궁합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이승우의 성질이 바람이고, 가이딩은 몸 안에 머무르며 남아 있는 것이라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기운이라고 한들 몸에 정체시켜 두지 않는다고.
이승우는 누구도 자신을 길들일 수 없다는 사실이 꽤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어떤 가이드의 ‘my’에 들어간다면, 만약 그렇다면…….
‘이번 게이트는 마흔일곱 시간 만에 클리어 완료했습니다. 기대했던 석탄 액화연료 시료는 없었지만 대신 천연가스처럼 보이는…….’
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자신이 하는 일에 열의를 가진 것이 겉으로 드러나는 사람. 고은교 같은 한량이 아니라, 매사에 유능하고 열심인 사람.
장이주 가이드.
그가 클리어한 수백 개의 게이트를 꼼꼼히 살펴보며 이승우는 장이주라는 사람에게 흥미를 가졌다. 그 흥미란 것은 깊지 않고 아주 얕은 것이었다. 심지어 장이주는 ‘my’에 들일 에스퍼를 더 이상 모집하지 않았다. 에스퍼의 수가 이미 포화 상태라는 것이다.
하지만 가이드와 에스퍼의 사이는 그렇게 무 자르듯 딱 잘라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단순한 호기심 때문에 장이주와 우연을 가장하여 마주치려 했다.
그러던 과정에서 이승우는 얼결에 장이주에 대해 좋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그가 걸어 다니는 병원이나 마찬가지라든지…… 그래서 지금 게이트를 클리어하는 일조차 그의 몸에는 굉장히 무리라든지. 그래서 장이주의 ‘my’에 있는 모든 에스퍼들이 안절부절못하며 그의 뒤를 따라다니고 있다는 사실이라든지.
장이주의 에스퍼들은 다른 에스퍼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언제나 눈을 부릅뜨고 장이주를 지켰다. 이승우는 그것이 꽤나 우습다고 생각했다. 국가 원수도 경호원에게 이 정도로 보호를 받지는 못할 텐데.
불행한 사람을 보니 세상의 일이 정말로 공평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을 낭비하며 사는 고은교 같은 인간에게는 저토록 많은 시간이 대가 없이 주어지는데, 저렇게 열심히 인생을 사는 사람에게는 그 짧은 시간조차 마음껏 누릴 수 없구나.
불쌍하다.
그렇게 느낀 순간 이승우는 자신이 장이주에게 지나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그런 건 처음이었다. 사람에게 흥미가 생겨 그와 가까워지려는 마음을 품은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장이주가 죽었다.
이승우는 그의 에스퍼들이 모두 참여한 장례식에 흰 꽃을 들고 참여했다. 어차피 장이주는 알아주는 가이드였으므로 그를 추모하기 위해 모인 무리의 수는 셀 수조차 없었다. 별다른 신원을 밝히지 않아도 장이주를 추모할 수 있었다.
그의 사인은 과로사였다. 장이주의 에스퍼 중 그 누구도 장이주가 스스로를 학대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는 뜻이다. 장이주는 병마와 싸우며 그 고통을 잊기 위해 자신을 늘 한계까지 몰아붙였다고 했다.
이승우는 그것이 참 아쉽다고 생각했다.
‘승우야, 바람은 변덕스럽단다. 절대 가만히 있지 않고 늘 어디론가 흘러가지.’
아주 긴 조문 행렬 틈에 섞여 이승우는 장이주의 영전 앞에 꽃을 바쳤다.
‘하지만 승우야.’
이승우는 처음으로 무엇인가를 욕망해 보았다. 삶이란 건 너무 쉽고 간단했으므로 언제나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그러던 중 이 장이주라는 남자를 자신의 가이드로 삼고 싶다는 욕망이, 욕망이라고 부르기도 너무 하찮았던 마음이 그가 죽음으로서 흩어져 버렸다.
이승우는 그것이 너무 아쉬웠고…… 장이주를 가졌더라면, 아니 최소한 만나기라도 했더라면 자신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궁금했다.
‘허리케인을 본 적 있니?’
두 번 절하고 일어난 이승우는 미련 없는 사람처럼 뒤돌아섰다. 그러면서도 생면부지의 시체를 앞에 두고도 움직이지 않는 다리가 어떤 것을 뜻하는지 그는 도저히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의 기억은 유독 아득하다.
이승우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상복을 벗고 침대에 누웠다. 장이주가 죽은 것을 안 순간부터 내내 맴돌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아주 또렷하게 들렸다.
허리케인은 바람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그건 흘러가지 않지. 변덕스러운 바람이 한번 마음을 먹으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끌어당긴단다. 그게 무엇이든지 바닥까지 끌어당기지. 그래서 허리케인은 아주 위험해. 바다에서 허리케인이 생기면 몇천 톤의 배도 지나가지 못하고 종이처럼 끌어당겨져 보이지 않는 심해까지 빨려 들어가게 된단다.
기억하렴.
진정 원하는 것이 생겼을 때, 절대 그 순간을 놓치면 안 된다. 가끔 인생에는 목숨을 위협할 만큼 아주 위험한 순간이 오기 마련이지만…….
보이지 않는 입술이 말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어떤 것은 반드시 가져야만 해.
그날 밤 이승우는 꿈을 꿨다.
무슨 꿈인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승우…… 승우야. 승우야! 정신 좀 차려 봐!’
그날 밤 그는 너무 많은 능력을 썼고, 그 이유로 한동안 입원해야 했다. 체내에 가이딩이 너무 부족한 상태였다.
‘혹시 혼자서 게이트를 클리어했나요?’
깨어났을 때 의사가 이렇게 물었을 정도였다.
이승우는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몰랐다. 다만 흰 병원복을 입은 채 지난밤의 일을 골똘히 생각했다.
무엇인가를 데려온 것 같은데.
도대체 그게 뭘까?
“……교수님.”
눈을 떴을 때, 그의 눈에는 자신의 몸 위에 엎드려 있는 고은교가 보였다. 예전과는 너무나 많이 달라진 왜소한 남자가.
*
게이트 밖으로 나왔을 때는 저녁이었다. 그러나 한산했던 절벽 위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로 진이 쳐져 있었다.
제주도 게이트는 한국에서 생긴 게이트 중 가장 비싼 시료가 묻혀 있을 거라 예측되는 게이트로 급부상했다. 물론 제주도 게이트가 유명해진 데에는 그런 이유만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게이트에 들어간 것이라고 추정된 이능력자는 단둘.
바람 에스퍼 이승우와 그의 가이드 고은교였다.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았다. 아무 대비 없이 게이트에 진입한 두 명의 가여운 사람들은 분명히 시체가 되어 게이트 안에서 묻힐 거라고. 하지만 저주에 가까운 우려와는 달리 게이트 입구의 불은 오랫동안 꺼지지 않았다.
한참 뒤, 제주도 게이트에서 탈출 포탈이 생겨났다.
단둘로 A급 게이트를 클리어한 위대한 이능력자들의 출현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모든 기자가 이 영광의 순간을 잡아내고 싶어 혈안이 되어 있었다.
게이트 입구 밖으로 두 사람이 나타나자 몰려든 기자들이 미친 듯이 셔터를 눌러 댔다. 한 사람이 소중한 무엇인가를 받쳐 안고 나오는 중이었다.
“이승우 에스퍼! 이승우 에스퍼 맞습니까? 제주도 게이트를 단독으로 클리어하신 소감은 어떠십니까?”
그때, 어떤 기자가 큰소리로 물으며 마이크를 가져다 대려 했다. 살짝 눈썹을 찌푸린 에스퍼가 그 기자를 쳐다보았다.
그 에스퍼는 제주도 게이트에서 굉장한 고생을 했는지, 온몸이 모래인지 돌인지 모를 알갱이를 뒤집어쓴 모습이었다. 다만 알갱이가 기묘하리만치 반짝여서 멀리에서 보면 별처럼 빛이 났다. 사람을 홀리는 빛이었다.
상처투성이인데도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있을 수 있구나.
다만 눈썹 아래 눈빛만큼은 몹시 살벌했다. 과연 생사를 넘나든 이능력자의 눈빛다웠다. 기자는 왠지 모를 위압감에 움츠러들었고, 에스퍼는 다시 정면을 바라보며 걸어갔다.
그때였다.
“승우야…….”
에스퍼의 품에 바람이라도 불면 꺼질 새라 소중하게 안겨 있던 남자가 부스스 눈을 떴다. 그러자 에스퍼의 입가로 거짓말처럼 봄바람 같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남자를 가볍게 추슬러 안으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더 주무세요, 교수님.”
“응…….”
품 안의 남자는 자신의 에스퍼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주위도 둘러보지 않은 채 다시 스르륵 눈을 감는다.
에스퍼, 이승우는 고은교를 더없이 귀중한 것을 보듯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가 게이트에서 지켜낸 자신의 가이드였다. 자신의 가이드 역시 자신을 버리지 않고 지켜 주었다. 사실 누가 누구를 지켰다는 상황 자체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고은교가, 자신의 가이드가 드디어 자신에게 어떤 복잡하고도 집착적인 감정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이승우 에스퍼, 구급차가 준비돼 있습니다. 지금 당장 가이드분을 옮겨야…….”
“제가 가면 됩니다.”
이승우가 아주 짧게 말했다. 그는 그 누구의 손도 타게 두기 싫다는 듯 고은교를 스스로의 손으로 옮겼다.
그래야만 한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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