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Third order
소위 ‘게이트를 따내는 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이능력자가 운 좋게 게이트를 발견하여 센터에 신고하고 게이트에 진입하는 방법이다. 두 번째는 본인이 가진 커넥션을 이용하여 다른 기업을 협력체로 두고, 그 기업과 함께 게이트에 들어가는 방법이다. 세 번째는 국가나 기업 같은 협력체가 특정 이능력자를 지명하여 게이트에 들어가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가장 흔해서, 이능력자 사이에서 ‘콜을 받았다’라는 말을 종종 쓰고는 한다.
국외는 당연하고, 당장 국내에서도 수백, 수천 개의 게이트가 무작위로 발생한다. 당연하지만 게이트는 자원의 일환이었으므로 웬만해서는 국외로 유출하지 않는다. 내수로 돌리는 게이트의 대부분은 센터의 이능력자들이 클리어했다.
“그래도 고은교 가이드는 고작해야 B급이지 않습니까? 게다가 임시 딱지를 이제 막 뗀 햇병아리라고요!”
한마디로 자기 차례만 얌전히 기다리면 그 앞으로 게이트가 떨어진다는 뜻이었다.
“봐요, 이 가냘픈 손목을. 게이트는 무슨…… 몬스터를 앞에 두고 도망가지나 않으면 다행이겠네.”
그리고 당연하지만, 게이트를 클리어하면 배당금이 주어진다. 아무리 하찮은 게이트라도 주어지는 배당금은 아주 쏠쏠해서, 어느 팀장이든 제 게이트를 사수하고 남의 게이트를 빼앗아 먹으려고 아주 혈안이었다.
이해는 한다. 배당금은 자신에게만 주어지는 게 아니라 팀원들에게 고루 전달되는 것이므로 팀원을 아끼는 팀장일수록 게이트에 눈이 벌게진다.
두툼한 산적 같은 손아귀에서 손목을 빼내며 고은교가 싱긋 미소 지었다.
“그러셔도 안 됩니다. 주시죠, 제 출입증.”
“쳇.”
박 팀장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군 그래.
“키도, 몸집도 조그만 사람이 고집은.”
그가 구시렁거렸다.
‘키?’
이게 작은 키인가? 장이주였을 때, 그는 180cm에 달하는 표준 키를 가지고 있었다. 고은교가 된 이후로 눈높이가 낮아졌다는 생각은 했지만 작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었는데.
‘뭐 상관없나.’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저러셔도 나쁜 분은 아니에요.”
박 팀장이 잔소리를 하는 내내 키득거리며 웃던 센터 직원이 고은교에게 출입증을 내주었다. 치료 팀과 지원팀 스태프들이 머무르는 건물을 오갈 수 있는 출입증이었다.
당연하지만, 팀장들은 대부분 이 출입증을 가지고 있었다. 게이트에 들어가기 전에 확인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에 고은교가 배당받은 게이트는 C급으로, 등급은 낮지만 규모가 상당해 게이트 안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게이트였다.
물론 품이 많이 드는 만큼 그 안에 묻힌 시료의 가치도 상당했다. 그러니까 오늘 오후 세 시에 게이트에 들어가셔야 하는 양반이 여기까지 와서 노닥거리고 있었던 거다.
이해는 한다. 고은교가 세상 물정 모르고 게이트를 받았다고 생각한 거겠지.
그는 코웃음을 쳤다.
뭐, 종종 ‘가로채지는’ 경우가 꽤 있음은 부정하지 않겠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센터의 게이트 분배 방식이 너무 주먹구구식이라 스타트업 기업이나 다름없다고 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장이라는 건 어쩔 수 없이 변수가 많고, 팀장들의 입김에 따라 들어가는 게이트가 달라진다.
‘하지만 내 건 안 되지.’
손가락 사이로 출입증을 쥔 채 고은교가 입술 끝을 올렸다. 산적처럼 우람한 몸집을 가진 박 팀장은 어느새 어슬렁어슬렁 사라졌다.
센터 중앙 건물을 나서자, 그를 기다리고 있던 이승우가 다가왔다.
“오래 기다렸습니까?”
“별로요.”
이승우가 살짝 미소를 띤 채 고은교의 손에서 출입증을 받아 갔다.
“오늘 스케줄은 이게 끝인가요?”
“아니. 이따 다시 와야 합니다. 아마…… 다섯 시쯤?”
“그때는 퇴근 시각이라 아무도 없을 텐데요.”
“글쎄요.”
그는 비밀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이승우는 고개를 기울이며 자신의 가이드가 무슨 꿍꿍이를 품고 있는지 파악해 보려 했지만…… 잘되지는 않았다. 정확히는 넉 달 전부터 그랬다. 이승우는 고은교에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그쳐 묻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물론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고은교를 잃고 싶지 않다는 생각 역시 꽤 오래전부터 해 왔으므로.
그들은 겨우 단둘뿐인 팀이었고, 센터로부터 게이트를 받아 냈다. 하지만 수가 너무 적어 아주 낮은 등급의 게이트만 배당받을 수 있었다. 본래 한 게이트에는 한 팀만 들어가는 것이 원칙이었으니까.
하지만 사실, 수가 적으면 다른 팀과 합치면 되는 일이었다.
‘내 건 안 되지만…… 남의 것을 가로챌 수는 있지.’
그들은 빠르게 센터 지원팀으로부터 게이트를 클리어할 때 필요한 물품들을 지원 받았다. 또한 게이트를 나왔을 때 혹시 모를 사태를 위해 즉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치료팀과 게이트 일정을 조율해 두었다.
그는 정확히 다섯 시를 지켜 본래 자리로 되돌아왔다. 즉, 중앙 센터 건물 앞마당으로 돌아왔다는 뜻이었다.
차가운 태양 아래 서서 고은교는 누군가를 기다렸다. 그리고 어떤 여자가 아주 바쁜 걸음으로 그들을 스쳐 지나가는 순간, 자연스럽게 그 뒤를 따라갔다.
“……오 팀장님? 무슨 일이세요?”
“무슨 일이 있죠, 유 대리. 내가 며칠 뒤에 S급 게이트에 들어가는 거, 알고 있나요?”
“아, 그…… 이번에 주산 기업에서 가져간 게이트 말이죠?”
“그래요, 그거. 우리 팀 전체가 콜 받아서 함께 가게 됐거든.”
잘됐네요, 라고 말하며 탄성을 지르는 센터 직원의 목소리가 점차 가까워졌다. 영문 모른 채 고은교의 뒤를 따라오던 이승우가 문고리와 고은교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는 손가락을 살짝 입술 위에 댄 채 입 모양으로만 중얼거렸다.
‘쉿. 기다려.’
문 너머에서는 계속해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센터에서 받은 게이트는 못 가게 됐어.”
“왜요? 원래 들어가시려던 게이트도 A급이잖아요.”
“그러니까 말이야.”
오 팀장이 혀 차는 소리가 들렸다.
“S급 게이트가 코앞인데 어떻게 A급 게이트도 같이 들어갈 수 있겠어요.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지.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더라고…….”
“저런.”
“옛날이면 믿을 만한 사람한테 주겠는데 이제는 그런 사람도 없어. 내가 벌써 센터에서 근무한 지 십 년이 넘었어요. 참 세월이 빠르기는 해, 그렇죠?”
시간을 너무 지체해서는 안 된다. 적당히 대화가 무르익었을 타이밍에, 하지만 오 팀장이 게이트를 포기하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을 때…… 바로 그때 고은교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면 이 게이트는 어떻게 처리해 드릴……. 어머? 고은교 가이드님. 무슨 일이세요?”
방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두사람 분의 시선이 그에게 꽂힌다. 그는 천연덕스럽게 용건을 말했다.
“안녕하세요. 출입증은 언제 반납해야 하는지 잘 몰라서 여쭤보려고 왔는데요.”
“아……. 게이트가 끝나면 센터 가드들이 기다렸다가 수거해 가요. 이렇게 다시 안 오셔도 괜찮은데.”
센터 직원이 미안한 듯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물론 그런 것쯤은 당연히 안다. 출입증 같은 건 그냥 게이트에서 나오면서 가드들에게 맡기면 끝나는 일이라는 걸. 이건 그냥 이 방으로 들어올 핑계일 뿐이다. 햇병아리 고은교 가이드가 뭘 모를 때 써 먹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랄까.
센터 직원은 오늘 5시 전까지 고은교가 용무를 마치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뛴 줄 아는 얼굴이었다. 고은교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그렇습니까, 대꾸했다.
그런 그를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바라보던 오 팀장이 슬그머니 말을 붙였다.
“자기가 그 고은교 가이드? 제주도 게이트를 갔다 왔다던?”
“안녕하십니까.”
바라던 바다. 그는 속으로 씩 웃으며 인사했다. 눈앞에 손이 불쑥 나타난다.
“반가워요. 나는 오동백 팀장. 뒤에는 누구?”
맞잡은 손에 힘이 꽉 들어왔다가 놓인다. 고은교는 간단히 이승우를 소개했다.
“제 에스퍼입니다.”
“아, 자기 에스퍼라면…… 바람 에스퍼? 맞죠? 외국에서 콜이 그렇게 많이 들어온다면서.”
“아닙니다. 안녕하세요.”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아리송할 만한데도 이승우는 구변 좋게 인사하며 오 팀장과 악수를 나누었다.
‘오 팀장님…… 여전하시네.’
게이트 잘 따고, 능력 좋고. 이승우 같은 원소 계열 에스퍼는 기본적으로 머릿속에 다 넣어 두는 게 티가 난다. 아무리 유명세를 타는 사람이라도, 이렇게 앞에서 자신을 알아주면 확실히 기분이 좋다. 점수 따는 법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아마 오 팀장은 고은교가 들어오자마자 자신이 ‘그’ 고은교라는 것을 알아봤을 것이다. 동시에 그의 뒤를 호위하듯 따라오는 이승우에 대해서도 눈치챘겠지. 자신에게 말을 붙인 건 순전히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그리고 이승우와 인사 한번 나누어 보기 위해서일 확률이 높았다.
어딜 가든 원소 계열 에스퍼라는 전력은 중요했으니까.
당연하지만 오동백 팀장은 전생의 장이주처럼 굉장한 워커홀릭이다. 완벽주의자이기 때문에 고등급 게이트에 들어가게 되면 무조건 하나만 선택해 거기에 전념한다는 특징이 있다. 어떤 게이트든 끈질기게 달라붙는 특징도 있어서 웬만한 사람들은 오 팀장이 완벽주의자라는 걸 모른다.
이맘때쯤이면 주산 기업에서 오동백 팀장에게 콜을 하곤 하는데, 혹시나 싶어 기다렸던 것이 주효했다. 예전이었으면 오 팀장이 그에게 먼저 연락했을 것이다. 장이주는 보장되어 있는 또 다른 워커홀릭이자 훌륭한 동료였으므로.
“그러면 출입증은 반납 처리해 드릴까요?”
“네. 감사합니다.”
약간의 미안함으로 과도하게 생글거리는 센터 직원이 그의 손에서 출입증을 받아 갔다.
그때였다.
“흠…….”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오 팀장이 헛기침을 했다. 고은교는 전혀 모르겠다는 듯 약간 어리둥절한 기색을 보이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