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우시현은 언제나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 왔다. 단순한 직선처럼 곧은 눈빛을 품은 보석안이 아름답기는 했지만, 좋고 싫음을 과감하게 드러내는 태도는 양날의 검이다. 이 솔직한 태도가 좋으냐고 묻는다면 역시 껄끄러운 쪽에 가깝다. 심지어 이쪽에 대한 감정이 호오(好惡) 중 후자에 가깝다면 더더욱.
현실에서 살아 움직일 것 같지 않은 미남의 역동적인 표정을 응시하던 고은교가 입을 열었다.
“우시현 군은 정말 내 수업을 듣지 않았군요?”
“뭐?”
우시현이 그랬듯 솔직하게 말했을 뿐인데, 대번에 공기 중으로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게이트에 들어가는 건 기대하는 목표값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사람은 죽기로 결심해서는 안 돼요. 자신의 자아실현을 위해 힘써 정진하며 살아야 합니다.”
“…….”
그의 말을 들은 우시현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와 동시에 옆에 서 있던 이승우가 웃음을 흘리며 슬쩍 고개를 돌린다.
어쨌거나 그는 시종일관 침착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겠는데, 이 게이트는 내게도 중요합니다. 우시현 에스퍼가 팀장이라는 걸 이승우 에스퍼가 미리 알려 주었어도 이 게이트를 포기하지 않았을 겁니다.”
물론 고은교의 말이 고분고분하게 들릴 리는 없었다.
“변명 따윈 집어치워. 어디서 내가 팀장이라는 걸 주워듣고 온 거겠지.”
우시현은 경험으로 자신했다.
죽기 직전까지 얻어맞아도, 팔다리가 부러져도, 다 낫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개새끼처럼 꼬리를 치며 반갑다고 달려드는 게 그가 지난 시간 보아 온 고은교였다. 아마 이번 일도 고은교가 그 망할 집착증을 버리지 못해 벌인 사달일 것이다.
“자존심도 없는 새끼.”
비웃음을 띤 눈이 고은교를 응시한다.
그 말은 분명 지난날 폭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 있는 고은교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하아.’
그는 우시현의 이 건방진 태도가 어떤 자신감에서 나오는 것인지 정확히 읽었다. 우시현은 이미 고은교의 ‘my’에서 삭제되었으나, 고은교가 자신의 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고은교가 본래의 전략을 폐기하고 다른 전략으로 바꾸었다고 여길 뿐 자신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터였다. 이 상황에서 굳이 부정해도 소용없을 게 뻔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힘들여 설득할 필요도 없다.
“모의 게이트 시뮬레이션 결과서를 제출하고, 출발일에 모이자는 건 들었는데.”
“그런데?”
“브리핑은 그게 끝입니까?”
자의든 타의든 어쨌건 그간 고은교의 수업을 들었으니, 우시현은 고은교가 그다음에 할 법한 말을 자동으로 연상시켰다. 사실, 남선재의 발표를 제외하고 고은교는 이것과 흡사한 어투로 학생들을 지적해 왔다.
‘형편없군요.’
부드러운 어투의 뒷말이 들리는 듯했다. 우시현은 발표를 하지 않아 자신을 향한 리딩을 겪은 적 없지만, 실제로 그 말을 들었다면 더 열이 받았을 것이다. 안 그래도 가뜩이나 팀장으로서 첫 임무다. 자신이 무시당했다고 생각한 우시현의 눈에서 불꽃이 튄다.
“너, 이 새끼…….”
우시현은 그대로 고은교의 어깨를 붙잡아 쥐고 벽에 이 작은 몸을 처박을 생각이었다. 그러고 나면 대화도 한층 쉽게 풀릴 거라 생각했다. 압도적인 무력에 짓눌려, 벌벌 떠는 얼굴의 고은교를 상대로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데 익숙했으므로.
하지만 우시현의 손은 고은교의 어깨에 닿지 못했다.
“이승우…….”
바로 코앞까지 왔다가 떨쳐내진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우시현이 이승우의 이름을 신음처럼 중얼거리는 게 들렸다. 그제야 고은교가 이승우와 함께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잘생긴 얼굴에 배신감이 어렸다 사라진다.
그래, 사라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승우가 자신을 배신할 리는 없을 거라는 깊은 신뢰가 그 안에 있었다. 대신, 우시현은 확실하게 하자는 생각이 들었는지 이승우에게 본격적으로 화살을 돌렸다.
“안 그래도 물어보려 했다. 너, 왜 이 새끼랑 같이 있냐?”
“이 새끼라니 시현아.”
이승우의 목소리는 약간의 웃음기를 담고 있었지만, 서늘했다.
“교수님께 그런 말버릇은 좀 곤란하지.”
“무슨 그딴…….”
거칠게 중얼거리던 우시현이 번뜩 고개를 돌려 도리어 그들을 번갈아 바라본다.
“너…… 씨발, 약점 같은 거……. 잡혔냐?”
“약점?”
이승우의 목소리에 조금 더 웃음기가 섞였다. ‘약점’ 운운할 정도로 이승우와 고은교 사이에 맥락이 없지는 않았다. 하나의 게이트를 팀으로서 클리어한다는 건 그사이에 끈끈한 유대감이 생긴다는 의미였으므로.
하지만 우시현에게는 이승우의 말이 그런 의미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정말로? 고은교 저 새끼가…… 도대체 어떻게…….”
“시현이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나는…… 저번에 말한 내용이 다인데.”
이미 우시현에게 언질을 해 두었나 보군.
“그러니까 그것도 말이 되는 소리냐고, 이 새끼야!”
우시현의 언성이 높아지자 방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이쪽으로 꽂히는 듯하다. 그는 살짝 눈썹을 찌푸린 채 입을 열었다.
“승우 군.”
천천히 과열되던 대화가 단숨에 식었다. 고은교가 이승우의 이름을 부른 게 놀라운 건지 어쩐 건지, 우시현의 눈이 커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고은교는 냉담한 어투로 말했다. 적어도 대화를 걸 때는 말이 통하는 쪽을 부르는 것이 현명하다.
“그만하고 이만 해산합시다. 팀장 브리핑이 끝났다는데.”
“네.”
이승우는 선선히 대답했지만, 여전히 우시현으로부터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우시현이 언제 튀어 오를지 모른다는 걸 아는 것처럼.
“아, 결과서는…….”
당연하지만 모의전 게이트 시뮬레이션 역시 게이트에 들어가는 팀원들과 함께 들어가야 한다. 속이 부글거리는 듯 이쪽을 죽일 듯이 노려보던 우시현이 능청스러운 ‘결과서’ 소리에 더욱 화가 난 듯했다.
“결과서? 무슨 결과서, 이 씹…….”
“우시현.”
이승우가 경고 조로 이름을 부르자, 우시현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친구를 쳐다봤다. 그 모습이 꼭 주인 잃은 개새끼 같다. 속으로 혀를 차며, 고은교가 말했다.
“아까 우시현 에스퍼가 말한 모의 게이트 시뮬레이션 말입니다.”
“아.”
뭐라고 말을 꺼내야 적당할까. 지금처럼 과열된 분위기에서 공적인 이야기를 하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시현에게 따로 연락을 취하고 싶지는 않았으니 이 자리에서 해결을 보고 싶은데…….
우시현은 별로 협조하고 싶은 눈치가 아니었다. 오히려 잔뜩 찌푸린 눈썹 사이로 짙어진 눈동자가 번뜩번뜩하는 것 같았다. 잘 걸렸다는 표정이다.
“우리 팀원들은 빌려 줄 생각 없으니, 한번 가져와 봐.”
“…….”
“기준 미달이면 탈락이다. 여기서 당장 꺼지는 거야. 알겠냐?”
이건 뭐…… 애새끼도 아니고.
시뮬레이션 때 팀원들과 손발의 합을 맞춰 놓는 건 당연히 중요하다. 모의 시뮬레이션은 몬스터의 강약을 조절할 수 있기에 단 두 명으로도 클리어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지만, 당장 눈앞의 분노에 우시현이 되는 대로 내뱉는 느낌이었다. 아니면 고은교가 너무 무능해서 시뮬레이션조차 엉망으로 해낼 것이라고 생각하든지.
우시현은 고은교가 끼어든 것이 굉장히 화가 나는 모양이었다. 드글드글 끓는 눈이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고은교를 향한다. 이대로 계속 여기 남아 있었다가는 우시현이 결국 자신에게 덤벼들게 될 것 같았다. 그러면 이승우가 불필요하게 우시현과 부딪히게 된다. 당장 다음 주가 게이트인데, 전력 손실을 초래할 상황은 최대한 피하는 게 좋았다.
“좋습니다.”
무슨 말 하나 덧붙이지 않고 긍정해 버리자, 있는 힘껏 빈정거리던 우시현이 말문이 막힌 채 그를 보는 게 느껴졌다.
“그러면 당일날 봅시다. 가죠, 이승우 에스퍼.”
짜증과 분노로 머리가 달구어진 건 우시현만이 아니었다. 싸늘하게 내뱉은 고은교가 이승우를 끌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게이트에 들어가는 당일.
“……씨발, 조작 아니야?”
A급 드라이밸리 게이트(모의)를 완벽하게 클리어했다는 결과 보고서를 읽으며 우시현이 욕설을 내뱉었다.
‘조작이겠냐?’
그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으며 우시현을 쳐다보았다. 그 시선에 발끈한 우시현이 뭐라고 하려는 순간, 이승우가 그를 막으며 덧붙였다.
“정석대로 순서를 지켜 클리어한 게 다 기록이 남아 있어. 시간이 빠듯하더라. 아, 다른 팀원들이 있길래 같이 해 보자고 하긴 했는데……. 그건 괜찮지? 교수님만 들어가라고 따로 지정해 준 건 아니니까.”
“…….”
“그게 말이 안 되기도 하고.”
지 친구가 한 말이라 한 수 접어준 건지, 아니면 반박할 거리를 찾지 못한 건지 우시현은 묵묵히 입을 닫고 고은교를 노려보았다.
이승우의 말처럼 우시현의 팀원들 역시 빠듯한 기일 내에 모의 게이트 시뮬레이션 결과를 내기 위해 노력했고, 남은 일주일의 반 정도는 거의 매일 마주쳤다. 우시현과 마찰을 일으킨 걸 대부분의 팀원들이 봤으므로 그들은 고은교와 이승우가 없는 사람인 것처럼 못 본 척하려 했지만, 개중엔 꼭 튀는 이들이 있는 법이다.
‘우리 팀장님이랑 왜 이렇게 사이가 안 좋아요?’
호기심 어린 눈길을 보내며 슬그머니 같이 시뮬레이션을 돌리자고 다가온 녀석들이 있었다. 우시현과 친해 보이기에 혹시 자신의 수업을 들은 녀석들일까 면면들을 살폈지만 모두 낯선 얼굴이었다. 어차피 진짜 게이트에도 같이 들어갈 놈들이고, 실력이 어떤지 파악해 볼 필요가 있어 그들과 함께 게이트를 클리어했다.
손발이 크게 어긋나는 느낌은 아니었다. 센스도 있었고 실력도 나쁘지 않았다. 그들 역시 똑같은 감상을 느꼈는지, ‘팀장님 성격이 특별히 지랄맞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주 나쁜 놈은 아닌데’라고 저들끼리 말하는 걸 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마지막 날 인명록에 이름을 남길 때 그가 쓴 ‘고은교’라는 이름을 보고 괴상한 탄식을 내며 멀어져 갔다.
따로 찾아와 찝찝한 얼굴로 ‘편하게 했으니 우리는 좋수다’라고 감사 인사 비스무리하게 한 녀석도 있었고. 전체적으로 그다지 나쁘지 않은 모의 게이트 시뮬레이션이었다.
아는 얼굴들은 하나도 없었으니 대학 동기들은 아닌 것 같고, 어디 녀석들일까. 그 생각을 잠깐 했다.
멀리서 왁자지껄하게 떠들던 팀원 중 하나가 우시현을 향해 ‘팀장, 우리 언제 가요?’하고 큰 소리로 물었다. 대충 얼굴을 보니 고은교와 함께 모의 게이트 시뮬레이션을 클리어한 녀석 중 하나다.
“……출발해.”
우시현이 으르렁거리듯 잇새로 내뱉었다. 고은교와 이승우 역시 무사히 그 팀에 포함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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