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그러나 손은 닿은 순간 떨어져 나갔다.
“……승우 군?”
늘 그랬듯 강하게 움켜쥐어 오던 방식이 아니었다. 손을 잡았다 놓는 동작은 놓쳤다는 말이 알맞을 정도로 순간적이었다. 도리어 이승우가 당황한 표정으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왜 그랬냐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지금 이승우는 즐겁게 가이딩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냉정하게 판단했을 때, 그들은 막 A급 게이트를 클리어했다. 그동안 이승우는 매칭률 높은 가이드에게 꾸준히 가이딩 받으며 만성 가이딩 부족 증상이 어느 정도 호전되었지만 완벽한 수준은 아니었다. 능력을 많이 사용했으니 가이딩을 받아야 한다는 소리였다.
그는 빠르게 결정했다.
“조금만 참아요.”
“…….”
고은교가 손을 뻗어 바로 앞에 있는 손을 잡았다. 허공중에 멈춰 있는 손가락을 쥐자 눈을 내리깔고 자신의 손을 바라보던 이승우가 시선을 돌려 자신을 응시한다.
이승우의 손가락은 차갑고 곧았다. 기운이 순환되자 이승우의 숨소리가 달라지는 게 느껴졌다. 여전히 불편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지만, 어쨌거나 그들은 가이딩하는 중이었다.
연결되어 있다는 건 일시적으로나마 강제로 안정감을 부여했다. 심리적인 이유든 아니든 가이딩 거부 증상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가이딩’이라는 접촉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느끼면 느낄수록 심리적인 거부감이 심해진다.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남에게 쥐어 준 것 같다는 불안감을 호소하는 에스퍼들이 늘고 있다는 것은 안다. 심하면 가이드보다 대체 약물만 복용하려고 드는 에스퍼들 역시 있었다. 자신의 인생은 자신의 것이고, 그 누구도 간섭할 수 없다는 생각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인생이란 그런 것이 아니다.
“이승우 에스퍼, 모든 걸 혼자서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건 그가 게이트 안에서 해 주고 싶었던 조언이기도 했다.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이승우는 천천히 고은교의 손을 마주 잡았다. 이를 악문 것 같기도 한데…… 그건 착각이겠지.
이승우가 입을 연 건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서였다.
“제가…… 착각하고 있었나 봐요.”
“무엇을 말입니까?”
가이딩에 집중하고 있던 고은교가 눈썹을 찡그리며 이승우를 바라보았다. 이승우는 예의 그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묻지 않으시길래 다 알고 있거나 아니면 하나도 모르거나, 둘 중 하나인 줄 알았거든요.”
“…….”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이승우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데,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떨어졌다.
“제가 그동안 교수님을 감시한 것 말이에요.”
‘나를 감시했다고?’
그 찰나에 이승우가 집착증이 있군, 하고 안일하게 넘어갔던 과거가 스쳐 지나간다. 얼빠진 얼굴로 이승우를 올려다보자, 설핏 미소 짓고 있는 입술이 있다.
“……왜? 왜 감시했습니까?”
“우시현을 못 만나게 하려고요.”
“…….”
이승우의 목소리는 아주 태연하게 들렸다. 너무 놀라 맞잡은 손에서 힘이 빠졌으나, 이번에는 이승우가 그의 손을 쥐고 있어 손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승우는 아주 분명히 말했다.
“어제도 따라오지 말라고 하셨지만, 저는 호수까지 따라갔어요.”
아니, 그건…… 이승우가 따라올 걸 알고 했던 판단이었다. 게다가 그는 이승우에게 따라오지 말라고 말한 적 없었다. 갔다 오겠다고 했지. 그건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속이기 위해 한 말이었다.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그렇게 말하려는 순간, 이승우가 이어 말했다.
“예전에 저는 그 누구도 교수님을 대체할 수 없다는 걸 느꼈고 교수님께 그걸 말씀드렸던 적 있었어요.”
“…….”
“교수님은 저에게 동의하지 않으셨고요.”
“……그건, 승우 군.”
“정말 우시현의 말대로…… 우시현이 교수님의 운명인 건가요?”
“아닙니다.”
그가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이승우는 그의 말을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그야, 그때 이승우가 자신에게 ‘운명’을 이야기했을 때…… 그는 무척 당황해서 대답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는 이승우를 ‘my’ 목록에 받아 줄 마음이 없었으므로 입을 닫았고, 말이다.
“그렇다면 왜 저를 부르지 않으셨어요?”
“…….”
“제가 거기 있는 걸 아셨을 텐데.”
이승우가 말하는 건 자신과 우시현이 함께 있을 때였다. 물론 그때, 그 역시 몇 번이고 그렇게 생각했다. 왜 이승우가 이 일에 개입하지 않는지, 분명히 드라이밸리의 나무 뒤에서 이승우를 봤는데 왜 나서지 않는지 말이다.
왜 이승우를 부르지 않았느냐고?
그건…… 우시현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생각도 있어서였지만, 사실 본질적으로는 혼자 일을 해결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었다.
몬스터를 잡는 것은 에스퍼들의 일이다. 하지만 게이트 작전을 세우거나 지시를 내리는 건 한 사람이 하는 게 효율적이었다. 인간관계 역시 그렇다. 이 몸의 원래 주인이 벌여 놓은 일을 정리하는 것도 그중 하나에 해당했다.
특히, 우시현이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원래 ‘고은교’가 망쳐 놓은 일 중 가장 큰 것이지 않은가.
우시현을 끊어 내거나, 혹은 고은교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는 일은…… 누가 도와준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자신은 그렇게 생각했다.
“교수님은 제가 끼어들 틈을 전혀 주지 않으면서…….”
“…….”
“저에게는 혼자서 하지 말라고 하시네요.”
이승우가 지적하는 건 바로 그 점이었다.
“당분간은 생각할 시간을 좀 주세요.”
말문이 막힌다.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정신이 멍했다.
이승우의 얼굴 위로 떠올라 있는 희미한 미소는 금세 사라져 있었다. 가볍게 목례를 한 뒤 그가 가이딩실을 떠난다.
그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에스퍼와 가이드가 갈라지는 일은 생각보다 흔히 일어난다. 자신 역시 ‘my’ 목록에 올랐던 에스퍼를 삭제하고 새 에스퍼를 들이는 일을 자주 겪었다.
이유는 다양했다. 단순히 변심해서, 게이트 작전을 하는 패턴이 맞지 않아서, 현장 이능력자를 그만두고 작곡가를 하고 싶어서……. 등등.
이제 와서 이렇게나 큰 상실감이 느껴지는 건 ‘고은교’의 기분에 영향을 받아서인가, 아니면 단순히 데리고 있었던 유일한 에스퍼를 잃어서인가.
‘새로운 에스퍼를 매칭하세요!’
다시는 볼 일 없을 거라고 여겼던 텅 빈 목록을 내려다보며 그는 천천히 이전의 기억을 상기했다.
이승우의 말대로였다.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비단 이승우에게 국한된 문제 역시 아니다. 그는 어렴풋이 원래의 ‘고은교’가 자신에게 끼치는 영향력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다.
‘언젠가 고은교가 돌아올 거라고 생각한 건 어쩌면 이런 것 때문일지도 모르지.’
자신의 것이 아닌 감정은 쉽게 널뛴다. 기호나 알러지 반응 같은 기본적인 틀은 비슷하지만, 고소 공포증이 있다든가 충동적으로 일을 하려고 드는 점은 분명 자신답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 우시현의 일을 홀로 해결하려고 든 건 자신의 의지였다.
이승우가 지적한 것은 정확히 이것이었고 그는 변명할 말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똑같은 순간이 다시 돌아온다 해도 그는 자신의 일을 스스로 해결하려 들 것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누가 때렸느냐고 물으며 옷을 들추던 그때의 이승우에게 우시현의 이름을 말했겠지.
기호가 달라도, 성격이 달라도 괜찮다. 하지만 가치관이 다르면 관계를 오래 유지할 수 없다. 늦든 빠르든 결국 이 순간은 왔을 거라는 이야기다. 더군다나 이건 그가 결정한 게 아니라 이승우가 결정한 일이었다.
그는 애써 위안했다.
이미 지나간 감정에 매몰되어 있는 건 시간 낭비였다. 그는 센터로부터 쓸 만한 가이드라고 인정받았다. 다만 지금 가용할 수 있는 에스퍼가 없으므로 이번에도 팀장이 아닌 팀원으로서 차출 받을 예정이었다.
현장 라이선스가 있다는 건 이래서 좋았다. 팀장으로서 실적을 내는 것보다야 못하겠지만, 목록에 전담 에스퍼가 없는 지금은 여러 게이트를 다니며 ‘my’에 들일 에스퍼를 찾는 것에 주력해야 했다.
이승우보다 매칭률이 높은 에스퍼는 없겠지만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수준의 에스퍼는 있을 테니까.
그는 꼬박 보름을 기다려 게이트를 배정받았다. 배정받은 게이트는 B-급이라 왜 자신에게까지 차례가 돌아왔는지 의아했지만, 게이트의 이름을 본 그는 왜 자신이 이 게이트에 들어갈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일명 ‘쓰레기장 게이트’
이곳을 지키는 몬스터는 C급 게이트에서나 볼 수 있는 조무래기들이다. 하지만 이 게이트가 B급인 이유는 게이트의 환경이 무척 위험하기 때문이었다. 이 게이트는 규모가 굉장히 커서 방이 50개 내외이며, 각 방마다 산성 호수들로 가득 차 있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쓰레기는 보통 가연성과 불연성으로 나뉜다. 소각할 수 있는 가연성 쓰레기는 소각시키고, 불연성은 매립하는데 문제는 쓰레기를 묻을 수 있는 매립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쓰레기는커녕 사람을 묻을 땅조차 부족해지는 판국이니 게이트를 쓰레기장으로 이용하려는 시도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특이한 공략법이 필요한 몬스터가 없고, 게이트 공략 인원은 터무니없이 등급이 높은 에스퍼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에 비해 가이드의 수는 고작해야 둘.
‘……그만큼 쉬운 게이트기는 해도.’
좀 어이없었다. 어떻게 국장의 허가가 떨어졌는지 모를 수준이었다. 드라이밸리 게이트를 클리어했다고 해서 고은교에 대한 신뢰가 대단한 수준으로 높아지지는 않았을 텐데, 이 게이트에 들어가는 가이드 둘 중의 하나가 자신이라면 그들은 실질적으로는 가이드 하나를 믿고 들어가는 꼴이 아닌가.
소집일이 되어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
“……이승우는 어쩌고?”
그래, 우시현.
우시현이 이 게이트 팀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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