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콜 가이드-78화 (78/132)

#78

우시현은 물 에스퍼였기 때문에 쓰레기장 게이트와 가히 압도적인 상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B-급 게이트인데도 불구하고 이토록 단출한 인원을 꾸려 팀을 이룬 것이 이제 이해된다.

“내가 그런 것까지 대답할 이유는 없는 것 같은데요.”

하필이면 공교롭게도 우시현이 이승우에 대해서 물었다. 약한 부분을 눌린 듯 말투가 저절로 날카로워진다. 온건하지 않은 고은교의 대꾸에 우시현은 눈썹을 찌푸렸지만, 용케 화를 참는 기색이었다.

“……뭐. 그건 그렇지.”

우시현은 모르겠지만, 아무 수고도 없이 제 친구와 고은교를 갈라놓았으니 우시현만 좋은 일을 한 셈이 됐다. 뜻대로 됐으니 만족하느냐고 비아냥거리고 싶은 마음이 반, 게이트에 들어가기도 전에 팀 내에 잡음을 만들어서 좋을 것 없다는 마음이 반이었다.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느라 팀의 분위기를 망치는 것은 초짜 때나 했던 짓이다. 그는 우시현에게 화풀이를 하지 않기 위해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이승우와 그렇게 됐다는 걸 우시현에게 알려 줄 필요도 없고.’

또다시 선심이라도 쓰듯 이승우를 놓아주는 조건으로 자신을 목록에 넣으라고 말한다면, 그때 가서 이승우와 갈라섰다는 말을 해 주어도 늦지 않을 터였다.

그러면 우시현은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자신을 비웃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열받는군.

시간이 지나자 팀원들이 모두 모였다. 익숙한 얼굴이 반, 모르는 얼굴이 반이었다.

“다들 알다시피 이번 게이트는 간단하다.”

우시현은 딱딱한 목소리로 브리핑했다. 우시현의 옆에서 그와 함께 게이트에 들어갈 또 다른 가이드, 김민성이 아주 반가운 얼굴로 입 모양으로 뻐끔거렸다. ‘형님!’

그랬다.

이번에도 우시현은 팀장이었다. 사실, 우시현은 이 팀의 핵심 전력이자 이번 게이트를 아예 무효화시킬 물 능력자였다. 그가 어찌나 유능했던지 이론대로라면 가이드가 함께 들어가지 않아도 괜찮은 수준이었다. 물론 게이트의 규모가 규모이니만큼 만에 하나를 걱정하여 센터에서 가이드 둘을 배정해 준 모양이었다.

이쪽을 힐끔대는 것으로 보아 자신이 팀원으로 참여하게 된 게 못마땅한 눈치였지만…… 어쩌라는 건가. 마음에 안 들면 본인이 센터에 항의하겠지.

‘……그래 봐야 매칭률이 그나마 맞는 게 나뿐일 텐데.’

아무 노력 없이 고은교에게 B-급 게이트가 떨어진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아마 팀장인 우시현을 고려한 센터의 결정이리라.

어쨌거나 아무리 선호하지 않는 류의 게이트라고 해도 게이트는 게이트. 만약 가겠냐고 물으면 망설이지 않고 지원할 중상급 게이트였다.

‘그 매칭률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끔은 이렇게 ‘고은교’의 덕을 보는 날도 있어야지. 그는 꼼짝도 하지 않고 팔짱을 낀 채 우시현의 브리핑을 들었다.

쓰레기장 게이트는 서울이 아닌 경기도 외곽 지역에 있었다. 이제는 이승우와 함께 이동할 수 없었으니 이동 시간도 고려하여 동선을 짜야 했다. 이승우의 생각을 그만하고 싶은데도 이곳저곳에서 빈자리가 느껴지니 어쩔 수가 없었다.

‘생각해 보니 괘씸하잖아.’

이 말이 올바른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이미 이승우의 상당 부분을 용서했다. 함께 제주도 게이트의 전선을 드나들었다. 가끔 뜻 모를 소리를 하는 이승우를, 자신을 지킨 이승우를 신뢰하게 됐다.

이승우의 마음이 어떻든, 결심이 어떻든 한순간에 버려지듯 남겨진 당사자로서는 꽤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불가피했다. 지금까지도 이것저것 생각하게 되는 걸 보면…… 어울리지 않게 감성적이 됐다는 뜻이니까.

물론 이승우는 주제넘게 굴지 않았다.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한 건 그 나름대로의 의사 표시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결국 고은교의 목록에서 사라지는 것을 택했다. 그게 단순한 휴식인지, 아니면 완전한 삭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승우가 고은교에게 사적인 감정이 생겨 그를 다른 누군가와 나누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면…… 이렇게 마음을 정리하는 게 옳을지도 모른다.

‘똑똑한 녀석이긴 해.’

고은교는 어떤 에스퍼에게도 자신을 독점할 수 있는 권한을 줄 생각이 없었다. 그는 이미 고은교의 삶을 살기로 한 것이 아니라 장이주였을 때 삶의 방식을 택해 살고 있었다.

‘그걸로 충분하지 않다면 욕심이지.’

헛웃음을 지으면서 고은교는 자신의 배낭을 챙겼다. 근력이 상당히 뒤떨어지는 몸이었기 때문에 부피가 크지 않은 생수 두 병과 건포 몇 개만 챙길 수 있었다. 이번 게이트가 끝나면 PT를 끊어 틈틈이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늦었잖아.”

게이트 입구에 도착하자, 가드들을 헤치고 우시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을 보자마자 하는 소리가 불평이었다.

‘성질머리하고는.’

자기보다 늦게 오면 다 늦은 줄 아는가 보다. 아니면 고은교에게 어떻게든 시비를 걸고 싶어서 미치겠거나. 물론 고은교는 정각보다 십 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그는 우시현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이 느릿느릿 제가 할 일을 마쳤다. 빠트린 물품은 없는지 꼼꼼히 점검하고, 현장 라이선스를 기계에 꾹 눌러 찍었다.

그동안 우시현은 고은교의 배낭을 들어 안쪽을 살피고 있었다.

“이건 뭐야. 배낭? 금방 끝날 텐데 뭐 하러 매고 온 거냐? 그냥 들어가기나 하지, 뭘 이렇게 쓸데없이…….”

“입장 시각까지 아직 오 분 남았습니다.”

“무슨 틀딱 같은 소리를.”

미간을 구기며 우시현이 투덜거린다. 고은교는 우시현이 들고 있는 배낭을 채 가듯 가져갔다.

저번에도 느꼈지만, 요즈음은 갈수록 게이트에 빨리 들어갔다가 빨리 나오는 추세였다. 변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자신으로서는 별로 썩 당기지 않는 유행이었다.

“시간을 지켜서 게이트를 계획대로 클리어하자는 게 잘못입니까?”

“……하.”

FM 앞에서는 누구나 할 말이 궁색해지는 법이었다. 신경질적인 한숨 소리가 들렸지만, 고은교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대신 우시현은 코앞에서 혀를 똑딱이며 정신 산만하게 굴었다. 팀장이 뒤로 빠져 있으니 게이트 입구에서 대기하던 팀원들이 수시로 뒤를 돌아 그들을 확인했다. 그때마다 우시현이 눈을 부라려 정면을 보게 했지만, 누구나 우시현이 삼백 초를 세고 있음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시간이 되자마자 우시현은 팀원들을 게이트 안으로 밀어 넣었다.

“빨리 움직이라고, 빨리. 다리가 보인다, 새끼들아.”

“으, 대장. 오늘 게이트 끝나고 데이트 약속이라도 있어요?”

등이 떠밀린 팀원이 큰 소리로 투덜대며 게이트 안으로 쑥 빨려 들어간다. 왁자지껄 떠들며 안으로 들어가던 팀원 중 하나, 그러니까 김민성이 같이 들어가고 싶은 눈치인지 쓱 뒤를 보았다.

고은교는 마지못해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우시현은 기어이 제시간에 맞춰 게이트에 들어가게 만든 고은교가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그를 지나쳐 걷다가, 갑자기 반걸음 되돌아와 고은교의 팔을 붙들고 게이트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으니까.

“우시현 에스퍼, 이게 지금…….”

“뭐.”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우시현이 고은교의 팔을 탁 놓는다. 우시현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고은교가 잡혔던 팔을 문질렀다.

등 뒤로 게이트가 서서히 닫히는 게 느껴졌다.

“문제라도 있냐?”

“…….”

좀 나아졌다고 생각했던 우시현의 태도는…… 여전히 무례했다.

이승우가 없어서 태도를 바꾸었다기엔, 고은교가 뭘 기다리는지 알고 있어서 그걸 훼방 놓고 싶은 마음에 그랬다고 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고은교가 도착하자마자 이승우는 어디 있는지 이리저리 둘러보는 눈치였으니까.

‘유치하기는.’

어차피 이승우는 오지 않는다. 그렇게 상처받은 것처럼 지껄이다 가이딩실을 휙 나가 버렸고, 고은교는 이승우에게 자신이 게이트에 들어갈 거라고 알려 주지 않았다.

‘……올 생각도 없었을 테고.’

체념인지 뭔지 모를 감정 때문에 속이 차분해진다. 우시현 덕에 오지 않을 사람을 기다리며 스스로가 미적거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묵묵히 앞을 보고 걸음을 떼어 냈다. 고은교가 움직이자 우시현도 그 옆에서 걸음을 맞춰 걷기 시작했다.

게이트 입구가 완전히 닫히기 직전.

‘……님!’

누군가 그를 부른 것 같았다. 걸음을 멈추자 우시현이 의아한 기색으로 그를 본다.

‘전혀 듣지 못한 건가?’

목소리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건…… 정말 이상한 느낌이었다. 가이딩을 하는 중간이 아닌데도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는 이 느낌은.

“빨리 가자는 말 못 들었냐?”

우시현이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고은교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니, 잠깐…….”

고은교가 뒤를 돌아보았다. 물론,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고 텅 빈 게이트 입구만이 일렁이고 있을 뿐이었다.

“하……. 이걸 버리고 갈 수도 없고…….”

신경질적으로 뒷머리를 벅벅 긁은 우시현이 주위를 쓱 둘러보더니, 고은교의 팔을 또 한 번 잡고 끌어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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