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콜 가이드-80화 (80/132)

#80

고은교…….

‘미친 망나니 새끼.’

김민성에게는 안 된 말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자신 역시 ‘고은교’의 욕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더 이상은 고은교에게 무슨 사정이 있었겠지, 오냐오냐 자라서 그런 거겠지, 그래도 사람으로서 뭔가 더 사고를 치지는 않았겠지…… 따위의 생각이 들지 않았다.

까도 까도 계속 벌여 둔 사건 사고가 튀어나오니 이건 사람이 아니라 양파 같다. 일반인이나 다름없는 몸으로 (심지어 가이딩을 할 마음도 없었을 것이다) 게이트를 따라왔다고? 이건 감싸 줄 수 있는 수위를 넘은 거나 다름없었다.

당연하지만 모든 게이트 작전은 필요한 에스퍼와 가이드의 수를 정확히 책정하여 진행한다. 짐이나 다름없는 일반인이 끼어들면, 다른 사람의 목숨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죽고 싶어 작정한 게 아니고서야 그런 짓을 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고은교를 욕하는 에스퍼들을 탓할 수도 없는 것이다. 자신이었어도 일반인이 팀원 중 누구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무작정 게이트까지 따라왔다면 제정신이냐고 물어봤겠지.

‘하아…….’

문제는 이 방만한 분위기였다. 그들을 말릴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 에스퍼들은 신이 나서 고은교가 한 짓에 대해 큰 소리로 떠들어댔다. 당연히 그 목소리는 다른 사람의 귀에 들어갔고, 드라이밸리 게이트를 함께 클리어해 고은교의 능력을 아는 사람들 역시 뜨악한 표정으로 고은교를 힐끔거렸다.

애초에 우시현이 고은교에 대해서 뭐라고 말해 둔 건지, 아니면 고은교가 우시현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비슷한 짓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고은교의 명성이 어느 정도 베이스가 되어 있는 상황이었으므로 고은교는 자신의 평판이 실시간으로 망가지는 것을 느꼈다.

그냥 최대한 무시하는 게 답인 건가.

‘아니야.’

저 에스퍼들을 앞으로도 언제, 어디에서 마주칠지 모르는데……. 그때마다 고은교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을 퍼트리게 만들 수는 없었다. 비록 그 소문이 사실이라고 해도.

‘무슨 뾰족한 수를 내기는 해야겠는데.’

일단…… 지금은 우시현이 게이트를 혼자서 박살 내고 있는 상황이라 가이딩을 하는 모습을 보일 수도 없었다. 가이드들 역시 그저 헐레벌떡 그들의 뒤를 뒤따라가느라 바빴다. 다행인 점은 이 게이트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건 다른 에스퍼들도 마찬가지라는 것이었다.

“……는, 그래! 그렇다니까.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무능하고…….”

“저기요.”

“엉? 뭡니까?”

“어차피 우리도 팀장님께 업혀 가는 중인데, 가이드를 그렇게 욕할 것까지는 없지 않습니까?”

고은교를 껌처럼 씹던 에스퍼들 사이에 끼어든 건, 드라이밸리 게이트에서 고은교에게 가이딩을 받은 에스퍼 중 한 명이었다.

“아니 뭐, 그러니까 우리는 다른 분 욕한 게 아니고요. 저 고은교라는 사람이 예전에 그랬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데.”

“그건 예전이고요. 그리고 당사자가 앞에 있는데, 애도 아니고 이게 뭐하시는 건지 모르겠네요.”

“아, 무슨 말도 못 하게…….”

“야, 야. 그만해. 예에, 죄송합니다. 그때 고생한 게 생각나 가지고 그만 울컥했네요. 아무튼 이제 자제할 테니까 갈 길 가시죠?”

“주의 좀 해 주세요.”

그때 고생했다는 말에 뭐라 더 말하려던 에스퍼가 그냥 얼굴을 찌푸린 채 물러난다. 우시현을 ‘대장’이라고 부르는 무리들이 고은교를 헐뜯는 내내 불편한 얼굴이던 에스퍼였다. 어쨌거나 그 말이 효과가 있었는지, 저들끼리 수군대던 에스퍼들이 입을 다문다.

‘이 정도로는 부족한데.’

계속 고은교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를 흘리지 못하게 하려면, 저 녀석들 앞에서 제대로 가이딩을 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 했다. 아니면 권위 있는 누군가가 고은교의 실력을 보증해 주거나.

무슨 좋은 수가 없을까 고민하던 고은교의 눈에 쭉쭉 전진하던 에스퍼들이 더 이상 앞으로 가지 않고 멈춰 있는 게 보였다.

“팀장님, 괜찮으세요?”

우시현이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제 무릎을 잡고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아.’

어쩐지, 너무 강력하더라.

‘이 자식…….’

왜 이렇게 바보 같은 짓을 한 거지.

“……팀장님이 무리하신 것 같아요.”

옆에서 김민성이 속삭였다. 그 말대로였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우시현은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능력을 사용하여 각 방을 돌파해 나간 것 같았다. 괜히 이곳이 B-급 게이트인 게 아닌데…… 혼자서, 모든 방을 쉬지 않고 완전히 휩쓸었다. 한마디로 소 잡는 칼로 닭 여러 마리를 잡느라 기진맥진한 꼴이었다.

‘……이제야 탈진이 된 게 용하군.’

원래도 우시현은 체내 위험률 수치 상태가 좋지 않았다. 매칭률이 잘 맞는 가이드가 이승우처럼 아예 없는 수준이었으니 자신의 가이드를 찾아 전국 팔도를 다녀야 하는 상황이란 뜻이다. 체념한 건지, 아니면 고은교 때문에 ‘가이드’라면 지긋지긋해져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우시현에게는 가이드가 없었다.

그래도 팀의 가이드에게는 열심히 가이딩을 받는 것 같던데.

‘솔직히…… 안 받은 수준이었지.’

아예 안 받은 것보다야 나았다. 하지만 드라이밸리 호수에서 가이딩을 해 주었을 때 그는 우시현의 상태가 그에게 처음 가이딩을 해 주었을 때와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드라이밸리 게이트를 공략하느라 능력을 많이 쓰고 난 이후의 상황인 것을 고려해도……. 팀의 가이드와 궁합이 극악이라는 것 정도는 추측할 수 있었다.

“가이딩이 필요하신 것 같은데…….”

가만히 운을 떼자, 우시현의 근처에 모여든 에스퍼들의 시선이 홱 이쪽을 향한다. 가이드가 뒤따라오든 말든 그들을 버려둔 채 저들끼리 시시덕거리며 놀다가, ‘아, 우리한테 가이드가 있었지’라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인간들이 적어도 넷은 됐다.

후방에 남았던 건 정말 가이드끼리 따라오도록 내버려 두면 안 될 거라는 생각에 천천히 앞서가던 에스퍼가 하나, 그리고 일부러 느릿느릿 가면서 고은교를 안줏거리로 삼던 녀석들이 둘이었다.

“우 팀장님이 오늘 솜씨 발휘를 너무 하셨는데 가이드님들이 따끔하게 혼 좀 내주세요.”

네 명의 에스퍼 중 하나가 농담 삼아서 이야기하며 길을 터 주었다.

고은교는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팀장인 우시현을 가이딩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아까 고은교가 무능력하다고 떠들어댔던 녀석의 말이 정면에서 반박되는 셈이었으니까.

게다가 이대로 우시현을 내버려 두면 위험하기도 했다. 방 두 개만 더 건너가면 터닝 포인트였고, 그다음이 보스 방이다.

이 게이트가 간신히 B급에 턱걸이할 수 있었던 이유는 게이트의 규모도 규모이지만, 보스 몹이 상당히 까다로운 편이기 때문이었다.

김민성이 약간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척 보기에도 우시현의 상태를 호전시킬 수 있을 만큼 매칭률이 높지 않아 그러는 모양이었다.

“음,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아, 김민성 가이드. 일단 제가 먼저 해 보겠습니다.”

자신이 나서자, 김민성이 깜짝 놀라 그를 쳐다본다. 우시현과 고은교의 사이가 나쁘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헉, 넵. 그…… 팀장님이랑 매칭률 맞으세요?”

“예. 어느 정도는.”

고은교의 단호한 대답에 김민성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얼마나요?”

“41.5퍼센트.”

“네에?”

이제 김민성의 눈은 거의 왕방울만 했다. 이게 조작된 매칭률이라는 걸 알면 더 놀라겠지만, 굳이 말할 필요 없는 정보다.

“아, 그럼 형, 아니, 고은교 가이드님이 해 주시면 좋죠…….”

다른 에스퍼들 눈을 의식해서 예의를 차리는 김민성을 보니 기분이 약간 유쾌해졌다. 김민성의 반응으로 우시현에게 매칭률이 괜찮은 가이드가 없다는 걸 확인한 건 별로 좋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예전의 ‘고은교’가 우시현과 조금이라도 매칭률 맞는 가이드들을 전부 내쫓은 건 아니기를 바랄 뿐이었다.

“우시현 에스퍼.”

그는 어지러운 모양인지 눈을 감고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고 있었다. 고은교를 알아본 우시현이 눈을 가늘게 뜬다.

“뭐야?”

“가이딩합시다. 손 주세요.”

하지만 우시현은 손을 주는 대신 짜증스럽게 손을 휘저었다.

“됐어. 가까이 오지 마.”

고은교라고 해서 우시현과 가이딩하는 게 좋은 건 아니었다. 느긋한 상태에서 공들여 가이딩할 수 없다면 그냥 리듬 게임이나 하고 집어 치우고 싶은 상대였으니까.

“우시현 에스퍼도 알 텐데요. 우시현 에스퍼는 현재 능력을 과도하게 사용한 상태입니다. 가이딩 없이는 보스 방에 갈 수 없습니다. 손 주세요.”

왜 가이딩을 해야 하는지 이유를 말했음에도 우시현은 요지부동이었다.

“언제는 옆에도 오지 말라면서?”

“…….”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80)============================================================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