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콜 가이드-105화 (104/132)

#105

*

달칵.

가이딩실의 문이 가볍게 닫힌다.

“앉아요.”

고은교가 가볍게 손짓했다. 아까부터 쭉 말이 없던 우시현은 고은교의 지시대로 의자에 앉는 대신, 문 앞에 서서 고은교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상태가 안 좋긴 안 좋네.’

밖에서는 안간힘을 써서 딴청을 피우고 있는 것 같더니, 확실히 사람들의 이목을 벗어나자마자 태도가 달라진다. 가이딩실에 들어오자마자 우시현은 세상에 사람이 고은교 하나뿐인 것처럼 눈도 깜빡이지 않고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마 우시현은…… 능력을 쓰면서도 이렇게까지 상태가 확 나빠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보스 몹이 너무 컸어.’

그동안 우시현은 고은교에게 여러 번 가이딩을 받으면서 몸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몸의 컨디션에 예민해졌다. 능력을 많이 사용하고 나자 체내 위험률 수치가 부쩍 나빠진 걸 느끼게 되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오히려 이쪽이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능력을 사용하면서도 몸 상태가 어떤지 모르면 그게 비정상이었다.

방 한가운데에 어정쩡하게 서 있던 고은교가 우시현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우시현이 눈동자가 고은교의 움직임을 따라 조용히 움직인다.

“우시현 에스퍼.”

“……응.”

우시현이 얌전히 대답했다. 이지를 상실할 정도로 상태가 나빠지지는 않았다. 우시현의 상태를 대충 체크한 고은교가 손을 뻗자, 그 역시 손을 마주 잡는다. 고은교가 그 사이로 가이딩 기운을 흘려 넣기 시작했다. 서로 파장이 아주 잘 맞는 것은 아니어서 손바닥 사이로 불쾌한 기분이 겉돈다.

지금 가이딩해 두면, 우시현은 48시간 뒤에 상태가 호전될 것이다.

“후우…….”

이번에는 우시현이 고은교에게 다가온다. 거의 딱 붙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팔 아래가 붙들리자마자 고은교가 익숙하게 우시현의 입술과 턱을 막았다. 가로막힌 손 위로 자신을 불만스럽게 쳐다보는 한 쌍의 아름다운 눈이 지그시 시선을 마주쳐온다. 뭘 해야 기분이 좋아지는지 우시현은 잘 알고 있었다.

“우시현 에스퍼, 할 말이 없어야 할 텐데요. 이건 내 지시를 무시한 우시현 에스퍼의 잘못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

긴 속눈썹이 아래로 내리깔렸다가 다시 위로 뜨였다. 천천히 깜빡이는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홀릴 것 같았다. 형광등 아래 반쯤 가려진 얼굴이 가끔 비현실적으로 보일 때가 있었다.

대답 없이 우시현이 고개를 살짝 기울인다. 그리고 자신의 입술을 막고 있는 고은교의 손바닥을 아프지 않게 깨문다. 말랑한 피부 위로 이가 스치는 감각이 소름 돋았다. 즉시 우시현의 얼굴에서 손을 떼어 낸 고은교가 이번에는 제 입술을 가렸다.

“다시는 능력을 이렇게 한꺼번에, 많이 써서는 안 됩니다. 알겠습니까?”

우시현은 이 으름장이 허락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잘생긴 입술 끝이 살짝 올라간다. 그가 몸을 조금 더 붙여 왔다.

“알았어.”

그가 얼굴로 고은교의 손을 비비듯 밀었다. 숨결이 코와 손가락 사이로 느껴졌다. 가까워진 눈동자가 비스듬히 휜다.

힘이 빠진 손가락을 입술 사이에 두고 우시현이 약간 드러난 입술과 손가락을 한꺼번에 핥았다. 우시현의 얼굴 힘에 반쯤 곱아든 손가락이 몹시 간지러워 얼굴에서 떼어 내자마자 입술이 빨렸다. 혀가 단숨에 그 틈을 가르고 들어온다.

“으음…….”

이상하게도 우시현과 하는 점막 가이딩은 하면 할수록 능력이 개발되는 것 같다. 손으로 시작했던 가이딩이 입술 점막으로 옮겨가고, 새롭게 가이딩 되는 느낌이 전신으로 확 퍼져나가며 호흡이 흐트러졌다. 우시현의 어깨를 밀듯 움켜쥐자마자, 입술이 질겅 씹힌다.

그는 애써 소리를 참았다. 우시현은 먹어도 먹어도 모자라다는 듯 고은교의 입술을 먹어 치웠다. 우시현과의 점막 가이딩은 몹시 거친 면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래도 기본적인 선을 지키려고 하더니, 날이 갈수록 가이딩에 휘둘리는 것 같았다.

아마 고은교가 느끼는 것을 우시현도 똑같이 느끼고 있는 모양이었다. 점막 가이딩을 하면 할수록 감각이 예민해진다. 그만큼 효율도 좋아지는 것 같지만, 우시현이 이성을 잃기 시작하는 것도 그 때문인 것 같았다. 분명 벽과 고은교 사이에 우시현을 두고 시작한 점막 가이딩이었는데 어느새 자신의 뒤통수가 벽에 짓눌리고 있었다.

얼마나 빨렸는지 혀뿌리가 얼얼했다. 그럼에도 우시현은 멈추지 않고 몇 번이고 각도를 바꾸어 고은교의 혀와 입술, 입 안쪽 점막을 훑고 빨았다. 입을 다물 틈을 주지 않아 계속 입을 벌리고 있자니 턱이 뻐근했다. 호흡을 가다듬기 위해 머리를 틀자 바로 입술이 따라왔다.

“잠, 깐…….”

그 잠시도 참지 못하고 턱과 뺨이 핥아지고 깨물렸다. 그 상태로 부푼 가슴을 진정시키던 고은교는 그 몇 초를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는 듯 제 고개를 붙들고 입을 맞춰 오는 입술에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어 주었다.

혀를 깊게 집어넣어 입천장을 긁듯 문질러대며 키스에 집중하던 우시현이 대뜸 고은교의 허벅지를 쥔다. 계속 고개를 낮춰 키스하는 것이 불편했는지, 그가 그대로 고은교의 몸을 들어 올렸다.

“아, 흐읍…….”

당연히 놀랐다. 신음성이 새어나가자 허벅지를 쥔 손에 힘이 꽉 들어간다. 몇 번이고 몸이 들어 올려진 경험이 있는데, 그 순간 이상하게도 그 감각이 몹시 낯설게 느껴졌다. 간지러운 듯 몸이 파드득 떨린다. 몸에 열이 훅 올랐다.

“흡, 내, 려…… 읏.”

얼굴이 약간 위쪽에 있는 게 더 키스하기 용이했는지 우시현은 숫제 그를 안아 들었다. 두 다리 아래로 미끄러지듯 팔이 들어오자 자세에 안정감이 생긴다. 다른 손은 고은교의 옷 안으로 들어왔다. 거침없이 납작한 배를 누르고 허리를 지나 등을 꽉 움켜쥐듯 누른 손 때문에 몇 번이고 우시현의 어깨를 두드려야 했다.

“하읏, 윽, 우시, 현…….”

만지지 말라는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우시현의 눈동자가 열기로 반짝인다. 고은교가 내는 소리가 몹시 마음에 든 듯했다. 거세게 빨린 아랫입술에서 은은한 통증이 느껴졌다. 끈끈해진 타액을 삼키며 혀가 능숙하게 입 안을 채웠다.

이 정도로 점막 가이딩을 하게 되면 어쩔 수 없는 생리적인 현상이 일어난다.

고은교가 입술에 힘을 주며 우시현의 혀를 밀어냈다. 배를 더듬고 허리를 만지작거리던 손이 어느새 옷 밖에서 빠져나와 엉덩이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허리를 단단히 조이고 있는 벨트 때문에 손이 그 아래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아쉽다는 듯 긴 손가락이 그가 단단히 채운 벨트를 스윽 그으며 지나간다.

“하아…….”

젖은 숨소리에 우시현이 정신없이 얽던 혀를 빼낸다. 살짝 부풀어 오른 아랫입술을 물컹한 혀가 쓰다듬는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앞에서 벨트가 풀리는 소리가 났다. 우시현은 만지고 싶다는 말도, 만져도 되냐는 말도 하지 않았고 그냥 본능이 시키는 대로 했다. 말리기도 전에 상대방의 옷을 까 보는 스타일이라는 뜻이었다.

“그만…….”

아까처럼 격렬한 키스는 아니었지만, 가볍게 서로 입술을 문 상태로 키스가 이어졌다. 고은교는 여전히 번쩍 들린 채 우시현의 한 손을 두 손으로 힘껏 막고 있었다. 저절로 오금 사이에 힘이 들어간다. 머리를 젓자 입술이 떨어져 나갔다. 어쩔 줄 모르던 그는 우시현의 어깨에 이마를 댄 채 몸을 떨었다.

“그, 만…….”

물론, 우시현은 집요했다. 결과를 보고 나서야 고은교의 말을 들었다. 눈을 질끈 감은 채 반쯤 흐느끼며 우시현의 어깨에 이마를 비비던 고은교가 몸을 축 늘어뜨렸다.

우시현은 아무 일 없다는 듯 그의 벨트를 다시 채웠다. 그가 물 에스퍼라는 이점은 여지없이 발휘되어, 고은교는 처음의 말끔한 상태 그대로 돌아갈 수 있었다.

“가이딩 다 해 놓고, 일부러…….”

젖은 눈으로 우시현을 노려보자, 우시현이 씩 웃었다.

“좋았잖아.”

“…….”

그 말 뒤로 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이래서 점막 가이딩을 자주 하는 편이 아니었다. 사고가 일어나기 쉽기 때문이다. 에스퍼들은 가이드가 조금이라도 원하는 바가 있으면 그걸 기가 막히게 알아차리고 주저 없이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 순종적인 에스퍼라면 당연했고, 그렇지 않은 녀석들이어도 가이딩 중에는 기꺼이 그렇게 하는 편이었다.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고를 두고 ‘좋다’ 혹은 ‘싫다’로 말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고은교는 입술을 깨물며 내려놓으라는 손짓을 했다.

“왜……. 응? 말 좀 해 봐.”

만족할 만큼 가이딩을 받아 기분이 좋아진 우시현이 어울리지 않는 애교를 부렸다. 작은 어깨 위에 턱을 올려놓은 채 사담을 청한다.

“다음부터는 그만하라고 하면 그만하도록 하세요.”

한껏 홍조가 오른 뺨을 진득한 시선이 더듬는다. 우시현은 순순히 고은교를 내려놓았다. 바닥에 내려놓은 건 아니었고, 가이딩을 위해 마련된 의자에 앉아 제 무릎 위에 가이드를 앉혔다. 그리고 고은교의 목덜미에 만족스럽게 뺨을 비빈다.

“대답하세요.”

“싫은데…….”

우시현은 대부분 차갑고, 거리를 두는 편이었지만 가이딩을 받은 직후에는 유독 살갑게 구는 면이 있었다. 특히 이런 대형 사고를 치고 나면, 더더욱 곰살맞게 군다.

그런 우시현을 가만히 바라보던 고은교가 손을 들어 그의 이마에 검지를 튕겼다.

“아야.”

에스퍼가 엄살은.

“점막 가이딩은 이제 안 합니다.”

“알겠어. 알겠다고.”

우시현이 아주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입을 벌려 고은교의 목을 콱 깨물었다. 질근거리는 감각이 느껴졌다.

“이갈이를 하면 곤란합니다, 우시현 에스퍼.”

우시현의 얼굴을 밀고 그의 무릎에서 내려온 고은교가 물린 목을 쓱 닦았다.

“갈까요?”

말 못 할 불만으로 가득했던 우시현의 눈길이 고은교의 표정을 확인한다. 언제 발그스름했냐는 듯 평소대로 돌아온 담담한 얼굴 틈으로 웃음기가 어려 있는 듯하다. 우시현은 자기도 모르게 고은교를 따라 슬쩍 웃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