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우시현의 미모가 무시무시하긴 하지.’
남선재 또한 당황스러운 기색이었지만, 착한 녀석답게 가만히 주위를 살피기만 할 뿐 입을 열지는 않고 있었는데 우시현은 그런 것도 없이 그냥 지르고 봤다.
“어디서 굴러먹다 온 개뼈다귀가…….”
“……허.”
차영헌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지만, 딱 보니 알겠다. 저 녀석, 별로 기분 나쁘지 않은 얼굴이다. 우시현이 본인의 성격과 비슷해서인가? 아니면 우시현의 말이 욕 같지 않다고 생각되어서인가.
하긴…… 이 압도적인 미모 앞에서는 누구나 ‘개뼈다귀’가 되는 법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러자 뒤이어 뭐라 욕설을 지껄이려던 우시현의 입술이 움찔했다. 우시현뿐만이 아니라, 기 싸움을 이어 가던 실내 공기가 순식간에 느슨해졌다.
의아한 얼굴로 우시현을 바라보자, 우시현이 조금 허둥거린다……면 착각일까?
“아니 내가 뭐라고 하려는 게 아니라.”
“흠?”
차영헌도 언제 인상을 구겼냐는 듯 멀쩡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우시현이 고은교를 슬쩍 곁눈질한다.
“그, 뭐. 회의하지? 그러려고 모였잖아.”
언제 으르렁댔냐는 듯 어깨를 으쓱하는 모습이 몹시 인위적이다.
‘흠…….’
갑자기 어른스럽게 굴고 싶어진 걸까? 그렇다면야 이쪽도 사양할 필요가 없기는 하다.
“……아, 그래요. 그러도록 하죠.”
안면 없는 에스퍼가 하나라도 나타나면 영역 싸움을 하는 동물들처럼 기세가 날카로워진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일부러 방치해 뒀더니만……. 생각보다 싸움이 아주 싱겁게 끝났다.
‘서열 정리를 안 하겠다면 오히려 반길 일이지.’
차영헌은 이번 게이트에서만 함께할 테니, 잡음이 생길 건덕지가 없을 터였다.
“게이트 처음 아니야? 할 수 있겠어?”
언제 무시무시한 기세를 보였냐는 듯 차영헌이 싱글대며 말을 던져왔다. 이 말을 파랗게 받아친 것은 놀랍게도 남선재였다.
“그런 말씀을 들으실 분이 아닙니다. 교수님은 지난 석 달 동안 총 여섯 개의 게이트를 클리어하셨어요.”
“허,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차영헌이 말도 안 된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석 달 동안 게이트 6개? 베테랑들도 그렇게는 안 해. 무슨 일 중독자도 아니고.”
웃으며 말하던 그가 말하다 말고 멈칫했다. 차영헌과 한 번 더 눈이 마주친다. 고은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차영헌은 그를 몇 초 더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심란해진 표정이군.
그래, 어쩌면 차영헌은 자신을 떠올렸는지 모른다. 그때 자신은 대단한 워커홀릭이었으니까. 괜히 과로사를 한 게 아니었다.
고은교는 차영헌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보고 묘한 느낌을 받았다. 장이주와 전혀 닮지 않은 고은교를 보고도 장이주를 떠올린다는 건, 차영헌의 마음에 그만큼 장이주가 남아 있다는 뜻일 것이다.
*
“도련님, 짐은 사람을 시켜서 따로 보내드리는 게 어떻겠습니까?”
“괜찮습니다.”
심 비서는 여전했다. 퇴원한 이후로 쭉 그랬듯 그를 도와주지 못해 안달이었다는 뜻이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안부 전화를 걸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꼬박꼬박 확인했다. 교수직을 한 번 더 달고, 게이트를 나가기로 했다는 말에 그는 ‘고 상무이사님께서는 좋아하시지만, 그래도 몸을 아끼셔야 할 것’이라고 말하며 걱정을 표했다.
심 비서의 말에 따르면, 마치 자신은 누군가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하여 열심히 사는 것처럼 보인다. 글쎄, 그 말은 틀리지 않을지도 몰랐다. 가이드는 타인의 기쁨을 위해 사는 존재였으니까. 게다가 능력이란 쓰지 않으면 녹슬고 마는 바퀴와도 같은 것이니, 늘 굴려야 시간을 윤택하게 잘 썼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도 게이트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무심코 이야기했더니, 무슨 게이트에 들어가기로 했느냐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러더니 게이트에 들어갔을 때 쓰면 좋을 침낭이라든지 보호구 등을 바리바리 싸서 가져왔다.
가져온 성의가 있으니 들고 가기야 하겠다만, 그걸 모두 차에 싣고 운전하려고 하자 심 비서가 난처해하며 그를 붙잡았다.
“제가 도련님을 모시겠습니다.”
자기가 운전하겠다는 둥, 몇 번이나 짐은 따로 보내드리겠다는 둥 이미 한 번 거절한 이야기를 계속 꺼내는데……. 솔직히 말해, 굳이 불필요한 인력을 동원할 필요가 있나 싶다.
“괜찮습니다. 일반인은 게이트 근처에 접근하면 안 돼서요. 그리고 저 운전하는 거 좋아합니다.”
“그러면 짐이라도 따로……. 아니, 에스퍼분들은 도대체 뭐 하고 계시는 건가요? 저는 그분들이 도련님을 데리러 오는 줄 알았습니다만.”
“아닙니다. 에스퍼들도 게이트에 들어갈 준비를 해야죠.”
아주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심 비서가 눈꼬리를 휙 치켜뜬다.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다.
심 비서는 잘 모르겠지만, 그는 혼자서 움직이는 게 훨씬 편한 사람이었다.
‘그 녀석들이 데리러 오면 더 귀찮지.’
분명 누가 자신을 데리러 올지 으르렁대며 기 싸움을 하다, 결국에는 네 명 모두 집으로 찾아올 것이라는 데 S급 게이트도 걸 수 있었다.
그날, 그들은 모인 김에 시뮬레이션도 한 번 돌려 보기로 했다. 게이트 현장에서는 학생들 열 명이 동행할 테지만, 실제로 학생들이 솜씨를 발휘하기보다는 상급 에스퍼들의 힘으로 게이트를 공략하게 될 터였다. 과연 상급 에스퍼들의 힘은 엄청나서 그들은 별로 고생하지도 않고 금세 게이트를 공략할 수 있었다.
오늘은 게이트를 공략하는 당일이었다. 고은교는 가볍게 운전대를 잡고 SUV를 몰았다. 그리고 게이트에 바로 간 것이 아니라, 센터에 들러 게이트 공략에 필요한 아이템을 챙겼다.
“교수님.”
어젯밤 전화를 해 내일 무엇을 하느냐, 몇 시에 게이트에 들어가느냐 꼬치꼬치 캐물었던 건 심 비서뿐만이 아니었다.
“이승우 에스퍼. 왜 센터로 왔습니까?”
게이트 앞에서 바로 가면 된다고 이미 공지했는데, 이승우는 부득불 그 말을 어겼다. 글쎄, 물론, 그 공지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 이승우가 ‘어겼다’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집으로 오지 말라고 하셔서요. 센터로 데리러 올 수밖에요.”
이승우가 눈썹을 살짝 늘어뜨리며 불쌍하게 말했다. 또 사람을 나쁜 놈으로 만들려고 하는군. 여전히 기자들이 이승우를 붙잡으려고 진을 치고 있었을 텐데, 그걸 도대체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모르겠다. 역시 바람 에스퍼답게 날쌘 건가?
“그건 뭔가요?”
“아, 이거요.”
이승우의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고은교는 손에 든 것을 가볍게 들었다. 함부로 남용되지 않도록 바스락거리는 투명 비닐에 감싸인 이 물건은 이번 게이트를 더더욱 안전하게 공략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핵심 아이템이었다.
“센터의 배려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의뭉스러운 미소를 띠며 고은교가 말하자, 이승우의 시선이 잠깐 고은교의 얼굴 위에 머물렀다.
6월 20일, 오후 12시 00분.
환상 게이트.
“모두 도착했습니까?”
환상 게이트에 들어갈 이능력자는 총 열다섯 명으로, 고은교가 맡은 ‘이능력자의 이해’의 상위 수강생 10명과 고은교, 고은교의 상급 에스퍼 3명, 그리고 센터에서 지원해 준 상급 에스퍼 한 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게이트에 들어간 뒤에는 절대 단독 행동하지 마세요. 무조건 제 지시에 따르시고, 문제가 생길 경우에는 근처에 있는 상급 에스퍼를 부르세요.”
“넵!”
말 잘 듣는 학생들로만 이루어진 팀이어서 그런지, 기합이 들어간 대답이 돌아왔다. 왠지 어린애들을 데리고 현장 실습을 나가는 기분에 고은교는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며 학생들 중 누군가 빠지지는 않았는지, 뒤쳐진 학생은 없는지 살폈다.
열다섯 명의 인원이 게이트 안에 들어가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오 분.
“……우와.”
학생들 중 하나가 감탄을 내뱉었다.
‘처음 게이트에 들어오면 그럴 만하지.’
완전히 새로운 공기가 물처럼 밀려온다. 무더운 바깥과 달리, 뺨을 적시고 머리카락을 곤두서게 만드는 찬 공기다. 게이트 안은 밤이었다. 소슬바람 부는 추위임에도 불구하고 어두운 사방에서 반딧불이가 날아올랐다.
춥다고 생각하자마자, 그의 곁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추우세요?”
게이트에 들어온 이래로 쭉 지켜보고 있었는지 남선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미 그는 물음과 함께 고은교의 어깨 위에 두툼한 담요를 감싸 주고 있었다.
“아,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런 거 걸치고 있으면 안 돼.”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담요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떨어지던 담요가 그대로 허공중에 멈추더니, 그대로 보기 좋게 접히며 남선재의 손으로 날아들었다.
담요를 떨어트린 장본인, 차영헌은 비죽이 웃으며 고은교의 어깨 위에 제 외투를 입혔다.
“좀 크더라도 옷을 입는 게 낫지. 안 그래?”
그건 맞는 말이다. 게이트 안에서 담요를 어깨 위로 두르고 있는다는 건, 그만큼 사지를 원활히 움직이지 못한다는 뜻이고, 자연스럽게 움직임이 둔감해질 테니까. 이건 바로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애초에 춥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만.”
“고맙다는 인사는 됐어.”
차영헌이 빙글거린다…… 남선재는 약간 억울한 눈치였다. 아마 게이트 안이 춥다는 걸 예상하고, 일부러 담요를 챙겨온 것 같은데 그 노력이 쓸모없어진 셈이니까.
“움직임이 둔해져서 그런 거지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호의는 고맙습니다, 선재 군.”
“……네.”
시무룩한 표정이 된 남선재가 대답했다. 그 곁에서 차영헌은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 그들의 얼굴을 번갈아 본다.
“그래서, 제대로 안 입어? 추울 텐데.”
“…….”
추운 건 사실이었고, 계속 옆에서 툭툭 건드리며 말을 얹으니 그냥 원하는 대로 외투를 입어 주자 싶었다. 품이 많이 남는 소매를 접어 올릴 쯤엔, 뒤쪽에서 집요한 시선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