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콜 가이드-123화 (122/132)

#123

말 그대로 호수에 내동댕이쳐졌다. 그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며 허우적거리다가, 이곳이 꿈속이라는 것을 생각해내고 나서야 의미 없는 발버둥을 멈췄다.

꿈이라면 분명 숨을 쉴 수 있을 것이다.

두 눈을 꾹 감고 숨이 막혀 오는 것을 잊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이곳이 꿈이라고, 나는 숨을 쉴 수 있다고 거듭 생각했다. 그러나 불안한 마음 때문인지 호흡은 여전히 잘되지 않는 것 같고 가슴은 답답했다.

그때, 누군가 그의 팔을 붙잡고 거칠게 끌어당겼다.

눈을 뜨자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창백한 얼굴의 미남이 물속에 서 있다. 그는 물속에서 아주 자유로운 사람처럼 보인다. 마치 물이 제 손안에 놓인 무기라도 되는 듯이.

“고은교.”

물속이라면 소리가 들릴 수 없을 텐데, 놀랍게도 그의 음성은 귓속에 달라붙는 것처럼 선명히 느껴졌다. 목소리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아름다운 생김새는 물속에서도 그 경이로움이 꺼지거나 희석되지 않았다. 마치 인어처럼 신비로웠다.

이 비현실적인 광경을 보고 나서야 이곳이 꿈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자신은 현재 장이주의 모습이었다. ‘고은교’와는 완전히 다른 외형임에도, 이 남자는 그를 단숨에 알아보았다.

“돌아와. 흔적을 남겨 줄 테니까.”

그는 새까만 머리카락이 물속에서 해초처럼 흔들리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우시현의 흰 살갗은 파리하게 질려 있었고 두 눈은 몹시 화가 난 듯 번뜩거렸다.

그는 얼마나 오래 이 물속에서 잠겨 있었던 걸까?

“그 망할 자식이 바로 왔으면 이딴 고생은 하지 않았을 텐데…….”

음산한 어조로 이를 갈며 말한 우시현이 팔을 뻗는다. 그는 저항하지 않고 그 팔에 순순히 안겼다. 사실, 물속으로 무한히 떨어지고 있는 몸을 어떻게 움직인다 한들 다시 물 위까지 헤엄쳐서 올라갈 자신이 없었다.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했고.

우시현은 자신을 해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에스퍼다. 이승우와 분업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흔적을 남긴다면 어떤 식으로…….

“다시 잠들어야 해.”

입 밖으로 말하지 않았음에도 우시현은 알아들은 듯 대답했다.

그래…… 자면 된단 말이지.

서서히 시야가 좁아진다. 가슴은 여전히 답답했다. 그럼에도 온몸은 자유로우며 편안하다. 마치 물속에 빠진 뒤, 폐부로 물이 가득 들어와 몸이 무거워져 잠기고 만 사람 같다.

우시현은 착한 아이처럼 순순히 눈 감은 자신의 가이드를 내려다보았다.

바로, 이 사람이 그를 흔들었다.

확실히 초면의 사람이다. 이승우의 말이 맞았다. 그때, 쓰레기장 게이트에 들어가기 전, 이승우는 우시현에게 찾아와 「고은교의 몸 안에 다른 사람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죽은 사람을 끌고 돌아온 건 자신이니 고은교는 자신의 것이라고 했다.

우시현은 그 말을 전혀 믿지 않았지만, 그날 이승우와 우시현, 남선재는 보스 몬스터 방 앞에서 고은교가 하는 말을 듣고 말았다.

진짜 고은교가 찾아오면 자신은 떠나야 한다는 말을.

그 순간 굉장한 충격이 세 명의 에스퍼를 휩쓸었다. 그중에서도 우시현은 가장 큰 충격을 느꼈다. 아니, 충격을 넘어 억울함까지 느껴졌다.

과거 그를 진력나도록 붙잡고, 흔든 것은 다름 아닌 고은교였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지독한 집착증이었다. 누구나 고은교가 우시현에게 미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우시현이 고은교를 붙잡고 휘두를 수 있었던 건 처음 고은교의 행동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

하지만 이렇게 되어 버리면……. 더는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 우시현을 사랑해서 매달렸던 고은교는 이미 이 세상에 없는 거니까.

이 물속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버틸 수 있었던 건 그 혼란스러움 덕분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치열했던 생각은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네가 한 거야.”

우시현이 손을 뻗어 장이주의 머리칼을 쓰다듬는다. 물속에서. 유영하듯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머리카락.

다른 가이드와는 가이딩할 수 없게 막았잖아. 이제는 너밖에 남지 않았어. 마음을 흔들어서 네가 아니면 안 되도록 만들어 놓고, 책임을 유기한 채 떠나려 하다니.

그건 안 되지.

원하던 사람을 품에 안았음에도 혼란은 가중된다. 그러나 모든 일을 덮은 채 어쨌든 지금 자신의 품에 안은 이가 고은교라고, 다른 누구도 아닌 이 남자가 자신을 책임져야만 한다고 생각했을 때…… 우시현은 비로소 고은교의 오랜 열망이 이루어진 것을 알았다.

우스웠다. 자신을 괴롭혔던 고은교는 사라져 껍데기만 남아 있다. 결국 자신을 차지한 건 고은교의 육체를 입은 장이주였다.

생전 처음 보는 얼굴을 가진, 고은교와는 너무도 다른, 그의 가이드.

우시현은 어째서 이승우가 본래 계획대로 첫날에 고은교를 데리고 오지 않았는지 이해했다.

그래, 어차피 네가 떠날 거라면.

이대로 그를 안은 채 침몰해도 괜찮을 것 같다.

한 달 전.

6월 21일, 오후 3시 29분.

환상 게이트 종료.

고은교 교수와 센터 지원 에스퍼, 차영헌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게이트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클리어가 완료된 반물질 게이트는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과연, 국장의 설명대로였다.

우선 자리에 남은 상급 에스퍼들은 급한 대로 학생들을 돌려보냈다. 기말고사가 끝난 뒤 있었던 실습이었으니, 실질적으로 고은교가 할 일은 모두 끝난 셈이다.

그들 중에 이승우가 가장 빨랐기 때문에 그는 정신을 잃고 쓰러진 고은교를 독점할 수 있었다. 그는 게이트에서 나오자마자 고은교를 안고 센터 병원으로 쏜살같이 날아갔다. 차영헌은 미리 대기하고 있던 센터의 지원팀에게 실려 갔다.

후처리를 끝낸 고은교의 에스퍼들 역시 마지막에는 센터 병원으로 향했다. 사실, 학생들을 돌려보낼 사람은 우시현과 남선재뿐이었는데 남선재는 넋이 아예 나가 있었기 때문에 그 모든 일들은 우시현이 알아서 해야만 했다.

“이 새끼야, 너 왜 이래?”

“…….”

우시현은 자신의 성질머리를 있는 대로 누르며 학생들에게 짜증을 내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 고생을 생각하면 남선재 따위는 확 버리고 가고 싶었지만, 고은교가 이 자식을 아꼈던 게 생각났다.

결국 그는 남선재를 질질 끌고 센터 병원으로 향했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바디 체크를 비롯한 각종 검사가 마무리되고, 결과가 나와 있었다. 그들은 얌전히 앉아서 고은교와 차영헌이 나란히 정신을 잃은 이유가 ‘의미 불명’이라는 것을 들어야 했다.

“반물질 게이트는 클리어가 되고 나면 그 힘이 소멸됩니다. 따라서 고은교 가이드와 차영헌 에스퍼는 이른 시일 안에 깨어날 확률이 높습니다.”

하지만 고은교는 하루가 지나도, 일주일이 지나도, 열흘이 지나도 눈을 뜨지 않았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가슴만 새카맣게 태우는 것뿐이었다. 그들은 이미 ‘고은교’가 진짜 ‘고은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필이면 마지막으로 고은교가 한 말이, 진짜 ‘고은교’가 나타나면 자신은 미련 없이 떠나 버리겠다는 선언을 들은 이후라 더욱 절망적이었다.

이대로 그가 떠나 버릴까 봐.

그래, 그건 두려움이었다. 미지의 공포 속에서 짓눌리는 기분은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끔찍했고, 그들은 그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뭐든 해야만 했다.

정밀 검사를 몇 번 더 했는지 모른다. 치료 에스퍼를 수없이 데려와 능력을 쓰게 만들기도 했다. 센터에서는 최대한 고은교의 편의를 봐주려 했으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의미 불명’이라는 결론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고은교가 일어나지 않은 지 2주가 되는 날이었다.

병원 주변을 어슬렁대며 ‘식물인간’에 대해서 알아보던 우시현은 살벌한 파열음에 놀라 즉시 고은교에게 달려갔다. 병원에서 사고가 난다면, 그가 1차적으로 보호해야 할 대상은 언제나 조용히 누워 있는 자신의 가이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건 고은교와 상관없었다. 정확하게는, 이승우가 남선재를 때린 것에 불과했다. 어찌나 호되게 때렸는지, 남선재는 의자와 함께 바닥에 넘어져 있었다.

“야, 뭐 하는 거야?”

못마땅한 얼굴로 우시현이 이승우를 말리는 시늉을 했다.

그동안 남선재는 대단히 무기력한 모습으로 고은교의 곁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아서, 보다 못 한 사람들이 그를 억지로 고은교의 병실에서 쫓아내야 했다.

몰골을 좀 다듬은 남선재는 하루가 지나지 않고 반드시 고은교에게 찾아왔다. 그의 곁에 앉아, 그가 깨어나기만을 기다리는 개처럼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런 남선재가 썩 보기 좋았던 건 아니지만, 이렇게 맞을 이유는 없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시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뭘 했는지는 남선재한테 물어봐야지 시현아.”

그 차가운 목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뭐?”

얼빠진 얼굴로 우시현이 남선재를 바라보았을 때, 이승우는 몹시 냉혹한 눈빛으로 남선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말해 봐, 남선재. 무슨 짓을 했어?”

남선재는 말없이 입술을 훔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것도 안 했어.”

곧 꺼질 것처럼 희미한 목소리로 남선재가 중얼거렸다. 이승우는 여전히 차갑게 굳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정말 아무것도 안 했어. 아무것도 안 했다고. 난 그냥, 그냥…….”

거짓말처럼 남선재가 고개를 숙였다. 그의 이마가 고은교가 누워 있는 병실 침대에 닿았다. 남선재는 명백히 괴로워하고 있었다.

기분 나쁜 새끼라고 생각했지, 설마 남선재가 고은교를 해칠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있었던 우시현의 이성이 끊어진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럼 뭔데?”

남선재를 들어 올려, 그의 멱살을 움켜쥔 채 우시현이 잇새로 중얼거렸다.

“너 뭔가 알고 있는 거지. 이 씹새끼가……. 니가 했어? 니가 한 짓이야?”

“아니야.”

부들부들 떠는 손으로, 남선재가 우시현의 손을 꽉 쥐었다. 동요하고 있는 것이 여실히 보이는 손이었다.

“그럼 질문을 바꿀게.”

그들에게 한 걸음 다가온 이승우가 나긋한 어조로 물었다.

“원래 네가 본 미래는 뭐였어?”

“그게 뭔…….”

“본 게 아니라 느꼈다고 해야 할까.”

미래를 보다니? 이건 정말 상상도 못 한 말이었다. 혹시, 이승우가…… 좀 미쳐 버린 건가? 일 분 전까지만 해도 이성을 잃어버리고 날뛰었던 자신의 모습을 까맣게 잊은 채, 우시현이 황당한 얼굴로 이승우를 돌아보았다.

아, 하는 소리와 함께 이승우가 웃는다. 그러나 남선재를 쳐다보는 싸늘한 시선은 그대로였다.

“남선재 능력…… 잊었어?”

“…….”

“염동력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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