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
염동력. 다른 말로는 염력(念力)이라고도 한다.
보통은 물건을 공중 부양시키거나, 손을 대지 않고 다른 데로 옮기는 데 한정되어 있는 능력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이 능력의 본질은 자신이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게 만드는 데 있다. 염동력의 ‘염’이 염원(念願)의 ‘염’과 똑같은 글자인 이유다.
남선재는 한국에서 태어난 A급 염동 능력자다.
염동력은 등급이 낮으면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는 하급 능력이지만, 상급으로 올라간 순간 대단히 경계심을 산다. 왜 아니겠는가. 무엇이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게 만드는 엄청난 능력인데.
당연히, 그는 에스퍼로 발현한 순간부터 센터의 요주의 대상이 되었다. 동시에 강박적으로 올바르게 자라나기를 강요받았다.
그가 어려서부터 반장을 도맡아 했던 건 자신이 밝고 순수하게, 도덕적으로 성장했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보여 주기 위해서다.
‘못 하겠어요.’
그는 본능적으로 무해하고 선량하게 보이는 법을 익혔다. 그러나 태어났을 때부터 감시당하며 산다는 건 마음속에 깊은 반감을 키우는 일이다.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자신뿐. 남선재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숨겼다.
‘할 줄 알아야 해요?’
그는 자신의 능력이 너무 커서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아이처럼 굴었다. 실제로 한국에서 상급 염동 능력자는 처음 태어났기에, 그에게 능력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알려 줄 만한 사람이 없었다.
물론…… 그럴 필요도 없었다. 남선재는 스스로 모든 것을 깨우쳤다. 염력이란 정신 계열의 초능력이어서, 사람의 두뇌를 한계까지 활성화시킨다. 굳이 배우지 않아도 완벽하게 자의로 습득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에 상급 염동력자가 없다는 건 그런 맹점을 몰고 왔다. 아무도 그가 완벽하게 능력을 터득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16세기 러시아에서는 아이가 상급 염동력자로 각성하면 즉시 총살했다고 하는데…….
열네 살, 남선재는 각성한 지 단 일 년 만에 자신이 원하는 대로 C급 판정을 받았다. 센터에서는 의견이 분분했을 것이다. 이 아이가 어째서 A급에서 C급으로 떨어졌는지에 대해. 아마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서 기계가 그렇게 판단한 것이리라 생각한 모양이다.
‘능력 사용하는 연습 안 했니?’
결과지를 유심히 살피던 닥터가 말하자, 등 뒤에 서 있던 남선재의 부모님이 말없이 눈빛을 주고받았다. 다행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는 눈빛이었다.
‘죄송해요……. 열심히 할게요.’
‘아니야. 혹시 어려운 점 없었니?’
‘…….’
‘솔직하게 말해도 된단다.’
친하지 않은 어른이 질문하는 이 상황 자체가 몹시 불안하다는 듯, 남선재가 눈을 굴리더니 대뜸 뒤에 서 있던 엄마에게 달려 가 그녀의 한쪽 다리를 끌어안았다.
‘선재야. 박사님께 대답해 드려야지?’
그런 그를 안쓰럽게 내려다보며 엄마가 무릎을 굽혀 그를 끌어안고 토닥였다.
엄마 품에 얼굴을 묻으며 울상을 짓는 아이를 들여다보던 공무원들은 괜찮다며 하하 웃음 지었다.
조금은 안심하고, 또 조금은 경직된 표정을 보며 남선재는 생각했다. 상급 염동력자라는 꼬리표는 영원히 떨어지지 않겠구나.
좀 귀찮네.
연기는 그의 삶과 일체화되었다. 일관적으로 순순하게 행동한 지 십 년쯤 되자, 그는 자연스레 신뢰를 얻었다. 여전히 그를 지켜보는 시선은 있지만, 그를 제약하는 건 대부분 사라졌다.
어쨌거나…….
그는 살아가면서 그 어떤 재난과 위험도 겪지 않았다. 순조롭게 자라난 사람답게 고통이나 슬픔 따위는 몰랐다. 그러면서도 순진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자신을 경계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가소로웠다. 자신은 신의 축소판이었다. 미천한 인간은 모르는 전지전능함을 한 스푼 입에 문 채 살고 있었다.
그는 모든 걸 알 수 있다.
그래, 모든 것. 이를테면, 시험을 치기 전에 문득 드는 생각 같은 거.
이번 시험은 잘 치겠구나─와 같은.
또래들은 힘이 없으면 깔보는 녀석들이 대다수니 적당히 기어오르는 놈들은 힘으로 눌러 주고, 상급 염동능력자라면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는 편협한 시각의 학교 기관 같은 보수적인 곳에는 C급으로 판정받은 검사 결과지를 보냈다. 그 결과 그는 적당히 즐겁고 행복한 학교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맹세코, 우시현이 이를 바득바득 갈았던 ‘고은교’라는 사람에게 처음부터 호기심이 생겼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날 밤, 잠들기 전, 그는 굉장히 새로운 느낌에 사로잡혔다. 보이콧하기로 했던 수업에 나간 건 그 느낌 때문이었다. 늘 자신에게 이득을 가져다주는 길잡이이자 열세 살부터 자신과 함께했던 능력을 남선재는 맹신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그는 딱딱한 표정으로 강의실에 걸어 들어온 작은 남자를 본 순간, 강렬한 호감을 느꼈다.
그때 그가 한 생각은 단 하나.
갖고 싶다.
저걸 갖고 싶다. 하얗고 마른, 어딘지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얼굴의 우울한 저 남자를.
말해 두건대 그는 단 한 번도 사람에게 그런 종류의 욕망을 느낀 적이 없었다. 사실, ‘갖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대부분의 물건이 그의 수중에 떨어졌기에 그럴 욕망을 느낄 필요도 없었다는 말이 정확하겠다.
그 남자는 가이드였다. 듣기로는 우시현을 좋아한다고 하던데. 우시현은 그렇게 진저리를 치며 싫어했으니까……. 그러면 내가 가져도 되지 않을까?
자신에게 그런 마음이 드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즐겁기도 했다. 무료하던 인생에 활기가 돌았다. 그는 신선한 기분을 따라 내키는 대로 고은교에게 다가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은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모든 방식으로. 부자연스럽지 않게끔. 가능한 한 고은교의 곁에 머무르면서. 가져다 댈 수 있는 모든 핑계를 들며 노력했다.
처음에는 분명 나도 에스퍼긴 하구나, 가이드에게 이렇게 끌리다니─같은, 심심한 감상이 전부였는데.
자신에게 호의적인 미소를 짓는 고은교의 얼굴을 자꾸만 훔쳐보게 됐다. 계속해서 그가 자신에게 웃어 주기를 바랐다.
명백히 고은교를 갖고 싶다고 「염원했다」
남선재는 기꺼이 자신의 능력이 요동치는 것을 내버려 두었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것─바로 이런 방식으로 능력을 쓰는 것이야말로, 센터가 엄중히 경계했던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무의식중에 풀려나간 마음은 다시 돌아올 줄 몰랐다.
센터의 노력이 녹록치 않았던 것은 아니어서, 어느 정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는 했다. 이런 식으로 능력을 쓰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고, 학기가 끝난 뒤 고은교를 만나지 못할 때는 그것을 기회 삼아 고은교를 잊어 보려고도 결심했지만…… 결국에는 고은교를 만나게 해 주겠다는 이능의 속삭임에 못 이겨 센터로 들어갔다.
그는 당연한 순서처럼 고은교를 만났다. 무의식은 고은교의 마음을 다시금 끌어당겼을 것이다. 그건, 그렇게 능력을 쓰는 건…… 정말이지 너무나 유혹적이라서 스스로도 제어할 수 없었다. 감이 좋은 우시현이 때때로 자신을 매섭게 노려보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이런 게 사랑일까? 이게 사랑이라면, 자신은 그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그래……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 오로지 시간만이 그의 적이었다. 고은교는 단번에 마음을 빼앗기는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차츰 시간을 들이면 그는 분명 자신에게로 기울게 되리라.
남선재는 웃으며 낙관했다. 환상 게이트에 들어가기 전까지도 그는 웃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어리숙하게 행동하면 할수록, 미련하게 충성하면 할수록 고은교가 자신에게 마음을 쓰게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능력이 자신에게 그렇게 가르쳤다.
“……이…… 씹새끼가…….”
“그래서. 환상 게이트에 들어가기 전에는 이상한 게 없었어?”
그딴 사정 따위는 듣고 싶지 않다는 듯 차갑게 잘라내는 어조에, 남선재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아무 일 없을 것이다. 이 게이트는 아무것도 아니며, 이번에도 무사히 끝날 것이다─라는 예감이 들었고, 틀렸다.
최초의 어긋남이었다.
그 이유는 첫째, 남선재가 고은교에게 잘 보이기 위해 과도하게 능력을 썼기 때문이다. 둘째, 게이트와 남선재의 상성이 지나치리만큼 잘 맞았기 때문이다.
그 게이트는 그 안에 있는 생물의 간절한 염원을 들어주는 특질을 지녔다.
그래, 염원(念願).
게이트는 남선재의 열심을, 능력을 흡수했다. 그리고 강렬한 열망에 반응했다. 차영헌이 발산한 염원은 그대로 차영헌과 고은교를 집어삼켰다.
새로운 에너지원을 흡수한 게이트는 이상 현상을 발생시켰고, 이미 클리어가 된 탓에 게이트 내부를 변경할 수 없었으므로 게이트는 환상을 덧씌워 차영헌과 고은교의 의식을 환상 세계로 보냈다. 그 까닭에 두 사람의 의식이 수면 아래 가라앉게 된 것이다.
“봐.”
추측에 가까운 설명을 들은 이승우가 중얼거렸다.
“너 때문이네.”
“…….”
“그냥 평범하게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나와야 될 사람을, 단지 좋아한다는 이유로 식물인간으로 만들어서 병원에 처박은 거.”
그 목소리는 별로 차갑지도 않았고 그저 덤덤한 것 같았지만, 단어 하나하나가 예리한 비수가 되어 누군가의 심장을 찌르고 있을 것이다.
“아니야, 나는 그저…….”
염원을 이루어 주고 싶었다. 고은교가 가진 염원이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이루어 주고 싶었다. 맹세코 자신에게 그토록 이타적인 마음이 든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건, 평생을 홀로 편리하게 살아가는 데 익숙한 남선재가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빌며 헌신하도록 만들었다.
그 헌신이 너무 지나쳤다.
고은교는 자신의 염원 속에 빠진 채 영원히 잠들게 될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건 뭐든 이루어지는, 「완벽한 세상」 속에서.
남선재의 능력을 흡수한 게이트가 만들어낸 환상 세계는 몹시 견고했다. 의식의 주인이 빠져나오기를 염원하지 않는다면 결코 빠져나올 수 없을 터였다.
“변명하지 마.”
이승우는 말했다.
“정말 끔찍하다. 만약에 교수님이, 네가 교수님을 해칠 인간이라는 걸 알았더라면 절대 너를 곁에 두지 않았을 텐데.”
“…….”
“아니지. 네 그 빌어먹을 능력으로 교수님을 속였겠지?”
그런 게 무슨 소용이 있어. 네가 꾸며낸 허상이나 마찬가지인데. 이승우는 입술을 살짝 비틀어 올린 채 남선재를 비웃었다.
“너는 그런 인간이잖아. 능력을 쓰는 게 아니면 아무것도 못 하는, 불쌍하고 저열한 인간.”
심각하게 이승우의 말을 듣던 우시현이 움찔했다. 남선재의 얼굴은 말로 할 수 없이 참담해져 있었다.
우시현은 이승우의 말에서 어떠한 의도를 느꼈다.
물론 고은교가 눈을 뜨지 못한 지 벌써 2주나 됐다. 그만큼 화도 났고, 걱정도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승우는 자신의 감정을 잘 참아 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정도는 판별해 낼 수 있는 녀석이란 뜻이다.
그는 지금 단순히 남선재를 비난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기회에 남선재의 마음을 짓밟아 버리려고 하는 것이다.
우시현은 눈썹을 조금 찌푸린 채 이승우의 팔을 툭 쳤다.
“야, 됐어.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방법은 없냐? 씨발, 뭐든 해 봐야 되는 거 아니냐고 지금.”
가능하다면 이 새끼를 뒈질 때까지 족쳐 보겠다는 서슬 퍼런 기세가 느껴졌다. 이승우는 우시현의 말을 듣고 난 뒤 아무 말이 없었다.
“글쎄……. 그건 남선재가 생각해 봐야겠지.”
그렇게 말하며 이승우가 건조한 눈빛으로 남선재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건 조롱의 의미보다는…….
일종의 섬뜩함이 느껴졌다.
우시현은 이승우를 이해했다. 그 역시 고개를 돌리고 손을 천천히 쥐었다 폈다. 그래, 만약 고은교가 깨어날 수 있다면, 그 대가로 남선재가 죽어야 한다면……. 자신 또한 이승우에게 동조하겠지.
그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남선재가 능력을 쓴 결과든 아니든, 고은교는 남선재를 제법 아꼈으니까.
오랜 토론 끝에 세 사람은 가장 효율적이고 안전한 방법을 도출했다.
먼저, 남선재는 능력을 써서 통로를 만들기로 했다. 두 사람분의 의식이 겨우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통로였다. 그 안에서 이승우와 우시현은 각자의 능력을 사용해서 고은교의 무의식, 또 그 안의 무의식에 스며들어 그를 깨우기로 했다.
바야흐로 몽중몽(夢中夢) 구출 작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