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콜 가이드-130화 (129/132)

#130

*

미리 말해 두지만, 몬스터를 죽이는 것과 사람을 죽이는 것은 천차만별로 다르다.

“……팀장님?”

무거운 목소리로 그를 불렀으나 눈을 감은 장이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평화로운 얼굴은 마치 잠든 것 같다. 그는 끈 없는 인형처럼 풀썩 쓰러진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차영헌은 그를 껴안고 잠시 동안 숨을 골랐다.

폭우가 쏟아지는 창가에 붙어 서 있는 탓에 한기가 스민다. 장이주의 흐름을 끊자마자, 이 센터 건물 안에서 느껴졌던 모든 인기척이 사라졌다. 이 세계를 감당해야 할 주축 중 하나가 사라졌기에 그만큼 이 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 에너지도 현저히 부족해졌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 자신은 그를 죽이고 만 걸까.

무언가를 죽이는 건 터무니없이 쉬웠다. 그럼에도 손이 떨린다. 팀장님은, 그의 가이드는 수단에 목적을 매몰시켜서는 안 된다고 말했으나 그건 말처럼 쉽지 않았다. 정말 어릴 때 그 말을 들었다면 뭔가 달라졌을까? 하지만 자신은 그가 없는 이십 대를 보냈다.

차영헌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품속을 뒤적거리다, 담배와 라이터를 꺼냈다. 그리고 행여나 불씨가 옮겨붙을까 봐 장이주를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후우…….”

흡연은 오랜 습관이었다. 그의 에스퍼가 된 뒤로는 자연히 끊었다가, 그가 죽은 뒤로는 골초라도 된 것처럼 뻑뻑 피워댔다. 상황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장이주를 안고 있을 때만 해도 전혀 당기지 않던 담배가, 그가 사라지자마자 미칠 듯이 당겼다.

가느다란 연기가 입김처럼 흘러나가 천장으로 솟구쳤다. 즉시 화재 경보가 울려 퍼졌다. 곧, 얼마 지나지 않아 천장에서 스프링쿨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차영헌은 아주 짧게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건물 안에서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는 규칙을 망각했다. 이 말도 안 되는 실수에 그는 웃지도 못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쏟아지는 물을 피해야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하긴, 방금 자신의 가이드를 죽였을지도 모르는데 제정신일 리가 없다.

건물 안에서도 비가 내린다. 삽시간에 온몸이 흠뻑 젖었다. 손으로 담뱃불을 감싸 쥔 채 계속해서 담배를 피우던 차영헌은 담배 하나를 다 피우고 나서야 겨우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있었다. 이제 자신 역시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그때.

“머, 머리 아파…….”

들릴 리 없는 목소리에 차영헌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는 바로 옆을 돌아보았다. 혼이 육체를 떠나 가만히 쓰러졌던 장이주가 다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

아니, 아니다.

저건…… 장이주가 아니었다. 자신이 장이주와 이 세계를 잇는 흐름을 끊어 냈기 때문에 확신할 수 있었다. 그 증거로 장이주는 흐름이 끊어지자마자 정신을 잃고 이 세계에서 내쫓기듯 사라졌다. 중력을 잃은 사람처럼 이 세계 밖으로 퉁겨 나가 버린 것이다.

대신, 그곳에는 장이주의 흐름에 묻혀 보이지 않던 미약한 흐름이 존재하고 있었다.

차영헌은 그것이 마치 원 주인의 행세를 하며 아주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는 것을 눈치챘다. 그리고 그건 차영헌의 심기를 몹시 불편하게 만들었다.

“여기는 어디……? 이, 이봐. 당신은 누구야. 욕실에서 미끄러졌던 것까지는 기억하는데……. 여기, 여기가……. 센터? 센터 건물이야?”

혼자 몇 번이나 되풀이하며 말하던 그가 무심코 창가를 바라보더니 기절할 듯 놀랐다. 어찌나 놀랐느냐면, 비틀대며 몇 걸음이나 뒤로 물러나다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을 정도였다. 확장된 동공은 명백하게도 검은 창에 비추어진 본인의 얼굴을 향하고 있었다.

“누, 누구……. 이, 이게 나?”

어쩐지 팀장님에게 듣도 보도 못한 애인 같은 게 있더라니…….

차영헌의 입술이 천천히 비틀린다.

“……고은교?”

“나, 나를 알아?”

과연,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주저 않고 반말을 해 대는 것으로 보아 소문으로 익히 듣던 무뢰한이었다. 당황하여 눈만 굴리던 것도 잠시, ‘진짜’ 고은교가 눈을 희번득하며 묻는다.

“너 아버지 사람이지? 나를 아는 걸 보니까……. 누나가 붙인 감시역인가? 뭐든 대답해.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야, 내 몸은 어디 갔고?”

‘진짜’는 아주 빠르게 중얼거리며 주변을 정신없이 살핀다. 금단 증상이라도 온 듯 끊임없이 손끝을 맞비비며.

“아니지, 이게 중요한 게 아니야……. 오히려 좋을 수도 있어. 야, 너. 얼마 받고 일해?”

“글쎄…….”

횡설수설하는 꼴을 보니 제정신이 아님에도 제 욕망에 미쳐 있다는 것 하나만큼은 잘 알겠다. ‘진짜’의 욕망이 얼마나 대단해 보였는지, 만약 그 게이트에 ‘진짜’ 고은교가 있었더라면 자신이 아닌 이놈과 우시현이 이 게이트 안에 빨려 들어왔겠다 싶었을 정도였다.

그래, 우시현. 우시현을 보고 처음으로 사람의 외모 때문에 놀라움을 느꼈다. 자신의 가이드에게 붙어 있는 녀석들은 모두 하나같이 매우 거슬렸지만, 우시현의 경이로운 외모는 그를 사모하는 에스퍼에게 불에 기름을 붓는 것 같은 미칠 듯한 질투심을 유발했다.

“두 배, 아니 세 배 더 얹어 줄게. 당장 사람 하나 찾아와.”

에스퍼라면 그럴 것이고, 가이드라면 갖고 싶어서 욕망하게 만드는 얼굴임을 익히 알고 있었다.

차영헌이 픽 웃었다. 집착과 욕망으로 번들거리는 ‘진짜’ 고은교의 모습을 보니 확실히 육체란 껍질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영혼을 담는 그릇이라는 점에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겠지만, 단지 안에 든 게 달라졌을 뿐인데 이토록 역겨운 기분이 들 수도 있다니.

“찾는 건 잘 못 하고……. 죽이는 건 잘해.”

참 신기했다.

“뭐, 뭐……. 무, 무슨 개소리야?”

그나마 생존 본능은 살아 있는지, 자신을 보며 뒷걸음질 치는 ‘진짜’ 고은교를 느리게 쫓아가며 차영헌은 비죽 웃었다.

설사 팀장님이 끊어져 돌아오지 못한다 한들, ‘진짜’를 죽여 없애면 고은교의 몸에 돌아올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것 아닌가?

합리화할 수 없는 죄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차영헌은 기꺼이 손에 피를 묻힐 생각이었고,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에게 이런 기회가 주어져서 다행이라고 여겼다.

자신은 결코 실수하지 않을 테니까.

*

삶은 금세 정상 궤도로 돌아왔다. 중간에 헤프닝(고은서에게서 전화가 와서 당장 현장직을 그만두라는 둥, 심 비서를 붙여 줄 테니 당분간 병원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말라는 둥)이 있었지만 그런 소란은 시간이 해결해 주었다.

회복에 전념하며 그는 심 비서의 도움을 받았다. 재활 훈련은 약한 수준의 운동 치료와 전기 치료를 병행하는 정도였는데, 그 기간 동안 그의 에스퍼들은 접근 금지 명령을 받았다. 이 접근 금지 명령이란 심 비서가 직접 내린 것이었다. 그는 손 쓸 수 없이 위험한 상황에서 그의 에스퍼들이 넷이나 되는데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에 몹시 분개했다.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학생들에게 성적이 어떻게 나갔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다행히 영국에서 근무를 하던 전임자가 그 일을 도와주었다고 했다. 어차피 게이트 실습을 데리고 나가려면 학생들의 성적을 합산하여 상위 열 명을 뽑아야 했기에 기존 데이터를 이용하여 성적을 내면 되었으므로 크게 어려움은 없던 모양이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맡은 바 소임을 그럭저럭 완벽하게 끝낼 수 있어서.

무해하다고 알려진 반물질 게이트에 휘말려 현장 이능력자 두 명이 두 달 동안 자리보전을 한 것 때문에 국장 호출이 있었다.

하지만 자리에 온 것은 그를 포함하여 넷. 와야 할 사람이 하나 보이지 않았다.

‘선재 군은?’

‘미리 국장님께 브리핑했다고 해요. 오늘은 몸이 아파서 호출에 불참이고요.’

……에스퍼가 몸이 아파?

그건 아무래도 농담에 가까운 말이었다. 가이딩만 잘 받으면 에스퍼는 아주 건강한 상태를 유지한다. 괜히 차영헌이 S급 에스퍼라서 죽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한 게 아니었다.

이승우가 깔끔한 대답을 내놓았지만 여전히 입맛이 개운하지 않았다.

남선재가 일부러 자신을 피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착각은 아니겠지.

대충 아는 대로 대답하고 국장실을 나오자, 에스퍼 셋이 그를 따라서 나온다.

‘혹시 내가 모르는 일이 있습니까.’

‘다 아시잖아요.’

떠보듯 묻자, 이승우는 살짝 웃으며 능숙하고 대답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래, 이승우는 묻는다고 해서 순순히 대답해 줄 위인이 아니었다. 바로 그 옆에 있는 우시현을 쳐다보자 방심하고 있던 모양인지 움찔한다.

‘왜?’

부르지도 않았는데 대답부터 하는 걸 보면 어지간히 신경이 쓰이나 보다.

‘선재 군이 진짜 아픈 겁니까?’

‘아프다니까 아픈 거겠지.’

용케 모르는 척을 하고 있기는 하다만,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옅은 짜증이 묻어 있었다. 애초에 우시현은 자기 가이드에게 뭔가를 숨길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켕기는 게 있으면 견디지 못하는 솔직한 성격이란 뜻이다. 조금만 더 물어보면 벌컥 화를 내며 술술 말해 줄 것 같은데…….

‘당사자에게 듣는 게 제일 빠르지 않겠습니까, 팀장님.’

차영헌이 슬쩍 끼어들었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함께 잠들었다 깨어난 이후로 급격하게 공손해진 차영헌을 볼 때마다 우시현이 눈썹을 치켜세웠지만, 이 극적인 태도 변화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기에 뭐라 말하지 않는 것 같았다. 어쨌든 자신은 그때도 팀장이었고, 지금도 팀장이었으니까.

‘……그래요.’

팀장의 직무는 팀원의 컨디션을 살피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가이딩을 명목으로 남선재를 호출한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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