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콜 가이드-131화 (130/132)

#131

남선재는 들어올 때부터 눈을 바닥에 두고 들어왔다. 예의 바르게 노크하고 들어오기에 평소처럼 돌아온 건가 싶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단지 ‘시무룩하다’라고 표현하기에는 지나치게 자책하는 표정이다. 얌전히 들어와서는 문 앞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가만히 서 있는 모습이 곧 단단히 혼날 새끼 개를 보는 것 같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저 지경으로 기가 죽었으면 묻는 것도 조심스러워야 한다. 아무 생각 없이 그를 ‘선재 군’이라고 부르려던 그는 잠시 생각한 끝에 호칭을 다르게 했다.

“선재야.”

그제야 바닥에 내려가 있던 시선이 흠칫 놀라며 위로 올라온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공적인 업무에 대하여 물어볼 때는 격의 없는 말투를 쓰면 좋지 않다. 공과 사의 구분이 금세 흐려지기 때문이다. 물끄러미 남선재를 바라보던 고은교가 앞에 있는 의자를 눈짓했다.

“앉으세요.”

작게 난 창문에 미지근한 햇빛이 들어와 남선재의 눈을 비추었다. 투명한 갈색 눈동자가 그를 보고 있다.

남선재는 그를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살짝 젖어 들어갔던 눈은 곧 말끔해졌다. 그러고는 아무렇지 않은 듯 그의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자칫 건조해 보이기도, 모든 걸 감수할 것처럼 담담해 보이기도 하는 태도였다.

“알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얼마 전에 있었던 환상 게이트 관련한 일 말입니다.”

“……네.”

그가 가볍게 운을 떼며 남선재의 얼굴을 살폈다.

“차영헌 에스퍼가 그러더군요. 남선재 에스퍼가 당사자라고.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남선재 에스퍼가 왜 당사자인지 모르겠어요. 혹시 남선재 에스퍼가 따로 알고 있는 부분이 있으면 공유해 주세요.”

남선재는 잠깐 동안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대뜸 말했다.

“죄송합니다.”

순간적으로 고은교는 자신의 요청이 거절당했다고 생각했다. 남선재의 표정이 워낙 결연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죄책감이 어려 있었다. 울 듯 늘어뜨려진 눈썹 끝을 바라보며 고은교는 뭐라고 남선재를 얼러야 할지 고민했다.

“……다 제 탓이에요.”

가이딩을 해 주면서 살살 캐물어 볼까? 막 그렇게 생각했을 때, 남선재가 울적한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본래라면 간단히 끝났어야 할 환상 게이트, 아니 소원 게이트[所願 Gate]가 자신의 능력, 염동력과 감응(感應)한 일, 그래서 고작 A-등급에 불과한 게이트가 S급 게이트를 방불케 하는 게이트로 변이된 일, 차영헌의 염원 때문에 고은교가 함께 게이트 속으로 빨려 들어간 일, 그래서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여 이승우와 우시현을 그 안으로 넣어 고은교를 구해낸 일을.

이 모든 것을 자세히 듣고 난 뒤, 그는 생각 끝에 물었다.

“……이런 일이 자주 있었습니까?”

“처음이에요. 그래서 바로 대처하지 못했어요. 무능력해서 죄송합니다…….”

무능력하다고 할 것까지야. 게이트 안에서 ‘신입’ 차영헌에게 말했듯, 신입 에스퍼는 그저 팀에 적응하기만 하면 그걸로 충분히 잘했다고 할 수 있었다.

“아닙니다. 남선재 에스퍼는 신입 에스퍼잖습니까.”

“…….”

“상급 염동력자가 흔치 않다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고생 많았겠네요.”

그는 버릇처럼 남선재를 도닥였다.

“고생은…… 전혀…….”

천천히 말하던 남선재가 입술을 질끈 깨문다. 심상치 않은 기색이다. 한참 그렇게 입을 다물고 있던 남선재가 도리어 물었다.

“제가 잘못한 일이에요. 왜 화내지 않으세요? 저 때문에 두 달이나 잠들어 계셨는데.”

글쎄, 그걸 남선재의 탓이라고 할 수 있을까. 굳이 누군가의 탓을 하자면, 남선재의 능력과 게이트의 상성을 충분하게 고려하지 못한 자신의 탓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학생들에게 수도 없이 강조했듯이, 게이트와 에스퍼 간의 상성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기본적인 걸 고려하지 못했다는 건 팀장으로서 실격이다. 이 일에 대한 전말을 듣고 나자 확실히 알겠다. 이 일의 책임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아니. 선재 군 탓이 아닙니다. 선재 군의 능력과 게이트의 상성을 고려하지 못한 내 탓이에요.”

“그게 무슨…….”

“그러니까 선재 군이 사과할 필요 없습니다.”

그 말을 듣자, 남선재의 얼굴이 확 창백해졌다. 느릿느릿 자신이 한 일에 대해 고해성사라도 하듯 말하던 얼굴빛과 완전히 달랐다. 그러고는 무언가를 점검해 보듯 몇 번이고 눈을 굴리며 자신의 손을 내려다본다.

이상한데.

눈썹을 찌푸리며 남선재가 하는 모양을 보고 있던 고은교가 그의 손을 잡았다. 입술을 살짝 벌린 채 남선재가 그를 멍하니 바라본다.

“남선재 에스퍼?”

“……네.”

“내 말 알아들었습니까?”

“…….”

남선재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가 얼마나 맹렬하게 자신의 자아와 싸우고 있는지 고은교는 전혀 몰랐다. 그는 천천히 고은교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빼냈다.

허? 고은교는 정말이지, 자신의 손이 거절당한 적이 거의 없었다.

“교수님은 이 일이 제 잘못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하신 거예요. 그래서 화내지 않으시는 거고.”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눈매를 좁히는 순간, 남선재가 고개를 들었다.

“저를 버리셔야 해요. 처음부터…… 그러셨어야 했어요.”

이번에는 말하라고 타박할 필요가 없었다. 묻지 않아도 그는 자신이 어렸을 적부터 센터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속였는지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자신이 어떻게 세상을 편리하게 살아올 수 있었는지에 대하여 토로했다.

이거 완전 가스라이팅인데.

남선재의 설명을 듣던 고은교의 눈썹이 확 찡그려졌다. 아무리 위험한 능력을 가진 에스퍼라 하더라도, 애를 그렇게까지 철저하게 감시하면서 억눌렀다고……? 그것도 ‘너는 위험하다’고 꾸준히 인식시키면서 말이야. 아니, 이 정도면 가스라이팅을 넘어 억압이고 차별이었다. 사람을 괴물로 취급해도 정도가 있지……. 심지어 남선재는 자신이 정말 ‘끔찍한 인간’이라고 인지하고 있었다. 아니 최소한 자신을 ‘인간’이라고는 생각하고 있는 건지…….

“……저는 이해해요. 저도 모르게 교수님께 능력을 쓰고 있더라고요.”

침울한 얼굴로, 남선재는 천천히 속삭였다. 속으로 센터 욕을 하며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고민하던 고은교가 깜짝 놀라 남선재의 눈을 쳐다보았다.

“죄송해요. 교수님이 너무 좋아서, 좋다는 말로 용서받지 못할 거라는 걸 알지만……. 자제할 수 없었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그래서 교수님께 최대한 다가가지 않으려 했는데.”

……이 녀석도 우는 건 아니겠지?

요즈음 에스퍼들이란 에스퍼들은 죄다 그의 앞에만 있으면 눈물 바람이어서, 솔직히 약간 불안한 마음이다.

“불러 주셔서…… 거절하고 싶지 않았어요. 교수님을 보고 싶었어요. 죄송해요. 저는 절대 제 발로는 교수님을 떠날 수 없을 것 같아요. 정말 죄송합니다…… 무섭고 불편하시죠.”

중간중간 고비가 왔는지 더듬거리기는 했지만, 남선재는 꽤 무사히 자신이 할 말을 마쳤다. 그러면…… 잠깐. 그동안 남선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든지, 그에게 뭔가를 해 주고 싶었던 마음이 다 남선재의 능력 때문이었다고……?

정말 능력 때문인가?

고은교는 새삼스러운 시선으로 그를 살폈다. 여전히 남선재는 둥글고 순진해 보이는 눈과, 강아지를 연상시키는 갈색 곱슬 머리카락을 하고 있었다. 남선재의 말대로라면, 고은교는 그의 귀여운 외형에 현혹되어 그에게 손을 대어서는 안 된다. 하긴, 분명 예전에는 귀엽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의 머리를 쓰다듬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원래도 강아지를 좋아했다. 남선재에게 처음 호감을 갖게 된 건, 남선재만이 모범생이었기 때문이다.

정말 남선재의 말이 다 맞다면, 그는 마땅히 남선재가 소름 끼치고 더럽게 느껴져야 할 것이다. 우시현이 오랫동안 고은교를 증오했듯이.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리처럼 투명해 보이는, 곧 눈물을 흘릴 것 같은 이 귀여운 에스퍼에게는 도무지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남선재 에스퍼의 말이 사실이라면…… 곤란하긴 하네요.”

그 말에 남선재는 천천히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마치 사형을 기다리는 사람 같은 얼굴이었다. 결연함보다는 체념에 가까운 표정이다.

하지만 곤란한 건 곤란한 거고, 그걸 가지고 남선재를 탓할 것까지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야 그럴 것이…….

“앞으로는 적당히 쓰도록 해요. 큰 이슈가 생기면, 오늘처럼 숨기지 않고 모두 말하면 됩니다.”

“……네?”

어차피 자신이 잘못을 저지르든 말든 어떻게든 꾀를 써서 웃는 얼굴로 넘어가려는 이승우나, 무슨 짓을 하든 ‘어쩌라고’라는 식으로 나오는 우시현이 있다. 차영헌도 뭐, ‘my’ 목록에서 해지될라 치면 센터 앞에 드러누워 시위라도 할걸.

그에 비해 남선재가 낫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자신을 껄끄럽게 여기지 않는 게 무슨 생존 본능이 고장 난 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구는 남선재에게는 세상에 이런 무던한 종류의 인간도 있다는 걸 알려 줘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번 일은 사고였습니다. 그렇죠?”

“……하지만.”

“남선재 에스퍼도 몰라서 바로 대처하지 못했다고 했지 않습니까. 거짓말이었어요?”

“아니, 아니에요. 절대 거짓말은…… 단 한 번도…….”

“그럼 사고가 맞네요. 더는 자책하지 마세요.”

고은교가 손을 까딱했다. 남선재는 이 신호를 전혀 못 알아듣는 에스퍼처럼 몸을 완전히 굳히고 있었다. 그런 그를 가만히 바라보던 고은교가 입을 열었다.

“자.”

“…….”

“가이딩 받고, 돌아가서 충분히 쉬어요. 알았으면 손잡고.”

한참 만에야 남선재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교수님의 손을 잡아도 될까요, 라고.

그는 뻐근해진 목뒤를 늘리며 가이딩실을 나와 문을 닫았다. 긴장이 풀렸는지, 아니면 피로가 누적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남선재는 가이딩을 받는 중에 스르륵 잠들었다. 깨우기도 뭐해서 남은 가이딩을 해 주고 조심스럽게 나오는 길이다. 기감이 예민한 에스퍼가 세상모르고 잠들다니,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던 걸까. 아무래도 좀 딱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처리해야 할 내근 업무가 별로 없으니 꽤 홀가분하다. 확실히 게이트 안에서 매일 야근을 해 보니 알겠다. 해가 떠 있을 때 퇴근한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지 말이다.

느긋하게 센터를 빠져나오려는데, 정문에서 누군가 발을 탁탁 구르며 서 있는 게 보였다.

고은교의 눈이 대번에 가늘어졌다. 가만, 저건 우시현이다. 우시현이 갑자기 왜? 오늘 그의 스케줄을 떠올려 봐도, 당분간 우시현은 들어갈 게이트가 없다.

당연히 우시현은 그가 나오는 줄 미리 알고 있었는지 기다렸다는 듯 이쪽을 힐긋 본다. 그러고는 주위를 한 번 쓱 살피더니 자신에게 걸어왔다. 그 모습이 아주 자연스러워서 고은교는 우시현의 볼일이 센터에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제야 주위를 살펴본 게 이해가 된다. 저도 남을 따라다니는 게 쪽팔린 줄은 아는 모양이지.

“센터는 웬일입니까? 우시현 에스퍼.”

우시현이 왜 왔겠는가? 그러지 않아도 그가 센터 헬스장을 드나들 때 우시현은 매일 출근 도장을 찍었다. 실내에서, 형광등 아래에서 보는 우시현의 외모도 물론 경이로웠지만 자연광 아래에서 우시현은 그야말로 몹시 인상적이다.

“아니, 뭐…….”

우시현은 몇 걸음을 남겨 두고 멈춰 섰다. 그러고는 민망한 듯 제 뒷머리를 마구 털더니 시선을 마주한다.

“저기 말이야.”

평소의 ‘야’ 혹은 ‘고은교’라고 함부로 부르던 것과는 조금 다른 부름이었다. 답지 않게 조심스러운 것 같기도 했다. 그런 표정의 우시현은 처음이라, 그는 신선함을 느꼈다.

“물어볼 게 있는데, 그…… 고은교 몸에 들어간 지 꽤 됐다고 했잖냐.”

아, 그렇지. 그날 퇴원하면서 자신의 에스퍼들에게 비밀을 당부하기는 했다. 몇 번의 질의응답이 오갔고 네 명의 에스퍼들은 대충 고은교의 사정을 짐작하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언제부터 고은교의 몸에 들어갔는지’, ‘부작용은 없는지’ 등을 물었을 뿐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그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아무래도 그렇죠. 조금 있으면 일 년이 됩니다.”

“……어.”

그래서 주위를 둘러봤나 보다. 자신의 비밀을 지켜 주려고. 확실히 센터 정문 앞은 한산했다. 약간의 기특함을 느끼며 우시현을 바라보는데, 우시현이 망설이며 눈을 아래로 내렸다가, 다시 그를 똑바로 쳐다본다.

“그러면 그……쪽이 교수를 할 때부터 그 몸에 있었다는 건데,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걸까? 이것 역시 우시현답지 않다. 그는 기본적으로 쾌활하고 직선적인 사람이었다. 그를 빤히 바라보던 고은교가 손목 워치를 내려다보고 시간을 확인했다. 이야기가 더 길어질 것 같으면 어디 자리를 옮겨야 하나 싶어서였다.

“내가…… 때렸잖아.”

아.

깨달음이 머릿속을 스침과 동시에 눈앞의 우시현이 약하게 심호흡하는 것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순간 그는 자연광 때문인지, 아니면 우시현의 새로운 표정 때문인지, 아니면 지나치게 잘생긴 외모 때문인지 알 수 없는 이유로 눈이 부셨다.

우시현은 명백히 뉘우치는 기색이었다. 이 드문 광경에 그는 저절로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참아보려 했지만, 이미 얼굴에는 웃음기가 만연해 있었다. 그가 웃어 버리자 우시현은 눈에 띄게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사과하려고 마음을 먹었다니.

다른 누구도 아닌 우시현이.

“하…….”

제 손바닥으로 가볍게 뺨을 문지르던 그가 몇 번 입술을 벌렸다가 닫더니, 결국 힘주어 입을 연다.

그는 그 모든 과정을 신기한 기분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마음이 가벼워진다. 먼지처럼. 그간의 고통이, 그를 누르던 시간이 가볍게 날아올라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것 같다. 기대하지 않았던 사과를 듣는 건 마음을 부드럽게 만드는 일이다. 그는 우시현에게 필요한 것을 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니까…….”

그는 유쾌한 기분으로 우시현의 남은 말을 기다렸다.

리콜 가이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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