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0. -- > * 1화 *
평범한 플레이는 해볼만큼 했다. 한 세력의 군주로 시작해서 대륙을 통일하는 정석적인 플레이나 기존 세력에 들어가 휘하로서 주군을 돕는 장수 플레이들. 각기 몇 번씩이나 엔딩을 보았다. 군주로서 플레이 할땐 대륙의 태반을 집어 삼킨 뒤 여유를 부리며 세력이 작은 나라들을 괴롭히기도 했다. 침공하지 않는 댓가로서 가혹하다 싶을 정도로 대량의 공물을 요구한다거나, 왕실이나 귀족들의 자제를 인질로서 보낼것을 요구해 그들을 능욕하거나 죽고 싶어질 정도의 수치를 안겨주기도 했다. 혹은 인접한 소국들끼리 강제로 전쟁을 하게 만들어 어느 한 쪽이 멸망해가는 모습을 즐기기도 했다. 물론 반기를 들거나 저항하려는 모습을 보인다면 바로 대군을 동원해 가차없이 짓밟고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고통을 주었다.
조국에 헌신하는 충성스러운 장수 플레이에 질렸을땐, 일부러 뜻이 맞는 이들을 모아 모반을 일으켜 역으로 주군으로 모시던자의 세력을 집어 삼키기도 했었다. 틀림없이 자신을 충성스런 수하라 믿어 의심치 않던 이가 배신을 당하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순간에 내보이는 절망을 바라보는건 중독성이 있을 정도였다. 모시던 주군이 남자일땐 눈 앞에서 그의 부인이나 딸과 같은 가족을 붙잡아 범했고, 주군이 여자일땐 직접 진득한 능욕을 가했다. 스스로가 이젠 지겹다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온갖 방법을 동원해 괴롭히고 나서야 겨우 죽여주거나, 혹은 노예로 팔아치워 편하게 죽는것만도 못한 삶으로 떨어트리기도 했다.
아무튼 군주 플레이와 장수 플레이로 어지간한건 할 만큼 하고 나니, 이제 남은것은 방랑자 플레이였다. 어느 세력에도 속하지 않고 세상을 떠돌며 원하는대로의 삶을 살아가는 플레이. 군주와 장수 플레이의 기본적인 엔딩 조건은 대륙의 통일이지만, 방랑자 플레이의 엔딩 조건은 여러가지가 있었다. 자기가 선택한 직업의 명성치를 한계치까지 올리거나, 재산을 일정 수치 이상 모아 대부호가 되거나, 혹은 특정 세력이나 집단을 결성하거나 그곳에 속한채로 특별한 목표를 이루거나, 숨겨진 퀘스트나 보물을 찾아 그것에 얽힌 목적을 달성하거나, 정말 이도 저도 아니면 가정을 꾸리고 2세를 낳아 일정 연령까지 양육하거나... 하지만 일단은 잠시 쉬어야 할 것 같았다. 새로운 업데이트 내역이 있음을 알리는 느낌표 모양의 아이콘이 화면 우측 상단에서 깜빡이고 있었다.
"그럼 잠깐 밥이라도 먹을까."
서진석은 새로운 패치파일의 다운로드를 수락한 후 헤드기어를 벗으며 게임 리베라의 세계에서 벗어났다. 발매 후 지금까지 반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잦은 업데이트가 있었다. 주로 버그픽스나 소소한 아이템/퀘스트 정도의 추가였지만 이따금 새로운 종족이나 직업의 추가같은 큼직한 업데이트도 있었다. 가까운 시일내에 방대한 추가 컨텐츠를 담은 리베라의 첫 유료 DLC가 나올거라는 소식도 들려왔다.
"아 벌써 4시네."
창 밖의 해가 꽤 기울어 있었다. 점심을 먹기엔 한참 늦은 오후 4시. 점심보다는 되려 저녁에 가까운 때였다. 아침 점심을 한 번에 해결하는 브런치는 아점. 그럼 점심 저녁을 한 번에 해결하는건 점저인가? 진석은 시덥잖은 생각을 하며 방바닥에 굴러다니던 리모컨을 주워 TV를 켰다. 딱히 TV를 보고싶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자취방이 썰렁했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얼핏 본 통계지만 TV를 켜놓는 가장 큰 이유는 TV 시청이 목적이 아니라 생활소음, 즉 조용한 공간을 채워주는 잡음이 필요해서라던가.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TV로 꾸준히 보는건 몇몇 예능 프로그램 뿐. 그 외에 TV를 보는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채널을 몇 번 돌리다 뉴스채널에 멈춰 둔 진석은 리모컨을 한 켠에 던져두고 냉장고를 열었다.
"아참 저번에 사다둔거 거의 다 먹었지. 으 내일은 뭐라도 사다놔야겠다..."
썰렁한 냉장고 안엔 내용물이 별로 없었다. 평소 사다 먹는거래봐야 인스턴트 위주였지만 그나마도 다 먹고 남은게 없었다. 어머니가 해다주신 김치와 밑반찬 역시 벌써 거의 다 먹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쉬운대로 그거라도 박박 긁어 밥통에 남아있던 찬밥으로 적당히 한끼를 때웠다. 남자 혼자 지내다보니 장도 잘 안보는데다 귀찮으니 근처에서 사먹거나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일도 잦았다.
"으으 이렇게 부실하게 먹으면 일할때 힘 못 쓰는데. 종합비타민제 싼거라도 사다 먹어볼까?"
남들처럼 대학 1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다녀온 서진석은 바로 복학한 뒤 2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신청했다. 등록금을 벌기 위해서였다. 허나 당장 학비가 모자란 것도 아니었고 직장을 다니는 아버지의 정년도 아직 몇 년 남아있었기에 부모님 두 분은 휴학을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군대를 다녀오고나니 나름 한 사람 몫은 해야되지 않을까 싶어, 상의끝에 딱 1년만 일을 하고 복학하기로 결정했다. 진석이 다니는 대학은 학비가 비싼편은 아니었기에 1년간 낭비하지 않고 착실히 모은다면 남은 2년분 등록금은 얼추 모을 수 있을것 같았다. 물론 2년분 생활비와 방세는 부모님에게 도움을 받아야할테지만 학자금 대출으로 빚부터 지고 시작하지 않는것만 해도 어딘가. 그렇게 진석이 시작한 건 대형 물류 창고 단지의 일로 오전엔 기업용 단체 화물의 입출입을, 오후엔 대형 인터넷 쇼핑몰의 상품 창고에서 발주가 난 상품을 찾아 포장 후 발송하는 일이었다. 많은 화물이 드나는 곳이다보니 당연히 힘쓸일도 많아 일 자체는 힘든편이었지만 그런대로 급료가 괜찮은 편이었다. 계약직이지만 딱 평일 근무만 한다는점도 좋았다. 접시를 대충 물에 헹구듯 빠른 설거지를 마친 진석은 TV를 끄고 VR기어의 모니터에 표시된 업데이트 상황을 확인해봤다.
"벌써 다 됐구나. 어디보자 패치된 내역이..."
늘 있는 버그픽스와 더불어 수많은 아이템, 몇가지 스킬과 더불어 퀘스트들의 추가였다. 용병단이나 도적떼, 사교집단 같은 비정규 세력의 대량 추가도 확인 할 수 있었다. 방랑자 플레이가 더 흥미진진 해질만한 내역이었다.
"우선 타이머를 세시간만 맞춰놓고."
진석은 셋업 프로그램을 실행시켜 타이머를 설정해놨다. VR기어를 사용하고 있으면 게임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경우가 잦기 때문에 사전에 타이머를 설정해두면 지정한 시각이 지났을때 게임내에서 알림을 받을 수 있었다. 게임 리베라에서 의 설정되어 있는 현실시간과의 게임시간내의 비율은 VR 게임의 표준인 144대 1. 즉 현실의 10분이 게임속의 하루였다. 온라인 VR 게임의 경우엔 수많은 유저가 동시에 같은 게임을 즐긴다는 특성상 시간의 흐름을 현실과 동등하게 설정하거나 비율이 높아도 24대 1 이하인 경우가 많았지만, 싱글게임인 리베라는 144배의 표준배율을 따르고 있었다. 물론 그 이상의 고배율 게임도 있었지만 그런 고배율 게임들은 플레이 후 유저의 피로도가 매우 높아지기 때문에, 일정 플레이 타임 경과시 자동으로 바이탈 체크가 진행되는 안전장치가 구비되어 있기도 했다.
"자 그럼."
타이머를 세팅한 진석은 의자에 편안히 앉아 헤드기어를 깊이 눌러 쓰고 VR기어가 제공하는 완전한 가상의 세계속으로 빠져들었다.
평원에서 벌어지는 수천 병사들의 치열한 전투. 달조차 가리운 밤에 어둠을 틈타 은밀하게 등을 찌르는 암습. 세치 혀만으로 상대를 실각시키는 의회의 정치가들. 괴이한 몬스터들과 그에 맞서 싸우는 모험자들... 진석은 셀수 없이 봐온 인트로 영상을 스킵했다. 잠깐의 로딩 후 리베라 로고와 함께 메인 타이틀 화면이 눈 앞에 떠올랐다. 저장된 게임들은 이미 엔딩직전의 세이브 파일들뿐이고, 이번엔 새로이 방랑자 플레이를 하기로 마음먹었으니 지체없이 뉴 게임을 골라 게임의 난이도를 기본으로 설정하고 방랑자의 신분을 선택 한 뒤 캐릭터 생성 단계로 넘어갔다.
"우선은 종족이지?"
리베라에는 여러가지 종족이 구비되어 있었다. 가장 기본인 인간부터 유사인종, 아인종, 심지어 몬스터에 가까운 종족도 선택할 수 있었다. 잠깐 고민하던 진석은 그냥 늘 하던 인간을 선택했다.
"인간이 편하지. 무난하고 성장도 빠르고."
캐릭터 생성 후 본격적인 게임의 시작 전 대륙의 환경에 대해 설정을 하는데, 이때의 설정에 따라서 어느정도 차이는 생겨나지만 인간은 기본적으로 리베라의 세계에서 가장 많이 분포하며 주류 문명을 이끄는 선도 종족이었다. 학습 능력이 뛰어난 편이라 기술의 습득과 성장이 빨랐다. 비주류 종족인 아인종이나 몬스터 종류를 선택 할 경우 그들을 혐오하는 국가나 세력엔 아예 접근할 수 없거나 적대시되어 공격받기도 하므로 가장 분포도가 높은 인간을 고르는게 편했다.
"그리고 성별은 남자."
물론 호기심에 여자 캐릭터로 진행해 본적도 있었지만 별 재미는 느끼지 못했었다. 현실의 본인부터가 남자인데 여자가 되어 다른 남자의 관심을 받는 입장이 되자니 영 어색했던것이다. 또 지금까지 해온 군주 플레이나 장수 플레이 때도 남자로 진행 하는게 목표로 삼은 상대방을 농락하고 능욕하기 좋았다. 물론 여자 캐릭터로도 하자고 마음먹으면 못할건 없었지만 결국 그냥 취향에 안맞았다.
"다음은 외모 설정."
외모는 키와 근육같은 기본적인 것부터 점의 위치나 눈썹의 높낮이 같은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조절이 가능했는데, 이미 수차례 게임을 진행했던 진석은 이전에 저장해둔 프리셋이 있었다. 현실의 자신의 외모와 비슷하게 만들어둔 캐릭터였다. 익숙하게 프리셋을 로드해온 진석은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능력치... 어떻게 할까?"
군주나 장수로 진행할때는 그에 걸맞는 능력치와 기술을 선택했었다. 군주의 경우 많은 수하들을 부려야 하고 외교 및 온갖 협상자리에도 나설일이 많으니 통솔력과 정치력 위주로. 장수의 경우 전선에 나가 전투에 참가하고 군략을 짜야했으니 무력과 지력 위주로. 하지만 이번엔 방랑자 플레이니 그런 특별한 필요성 없이 능력치를 자유로이 설정해도 됐다. 거기에 리베라의 경우 한 번 엔딩을 볼때마다 다음에 캐릭터를 생성할때 사용 가능한 보너스 포인트가 10씩 증가해 최대 10회까지 중첩됐는데, 진석은 엔딩 10회 따윈 이미 오래전에 달성한터라 추가 보너스 100 포인트도 사용가능한 상태였다.
"능력치도 일단 무난하게 배분을... 아, 스킬을 여러가지 찍어볼까?"
리베라에 존재하는 스테이터스 수치는 총 여섯가지. 통솔/무력/민첩/지력/정치/매력이었다. 그리고 각 수치의 최대치는 50. 기본으로 주어지는 포인트는 200으로 보너스 포인트 100을 받는 현재로선 이 여섯가지 수치를 모두 최대치까지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럴경우 스킬을 하나도 입수하지 못했다. 게임내엔 각 스테이터스를 기반으로 하는 수많은 스킬이 존재하는데 이것 역시 포인트를 사용해야 입수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간단한 스킬의 경우 요구하는 포인트가 매우 적기에 최대 랭크인 S까지 올리는것도 어렵지 않았지만, 능력치에 쭉 영향을 주는 패시브 스킬이나 효용도가 높은 고위 스킬은 입수하는것 만으로도 꽤 많은 포인트를 잡아먹었다.
"어쨌건 방랑자니 통솔이나 정치력은 그리 높일 필요 없겠지. 무력을 가장 높게 잡아둘까."
통솔 20 / 무력 45 / 민첩 40 / 지력 35 / 정치 20 / 매력 40
리베라에서 일반인의 능력치는 10을 평균으로 했다. 20이 넘어가기 시작하면 나름 유능한 축에 속하며, 30이 넘어가면 수재. 해당 영역에서 상위권의 능력을 발휘한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40에서 50사이는 그야말로 상대할 자가 없는 천재. 한 나라에서 손꼽힐만한 인재였다. 보너스 포인트가 없는 기본 상태라면 200포인트 만으로 스킬까지 찍어야 하므로 스킬에 사용할 포인트를 어느정도 제외하면, 균등히 분배한다 가정했을 시 평균 20 중후반대의 능력치를 가지게 된다. 일반인보다 모든 영역에서 월등히 유능하긴 하지만 딱 내새울 수 있는 장점은 없는 능력치. 어느 한두가지에 포인트를 몰아준다 쳐도 그만큼 다른 능력치는 떨어지게 됐다. 하지만 지금 진석은 기본 포인트 200을 전부 스테이터스 배분에 사용한 상황. 남은 100포인트는 온전히 스킬 입수에 사용하기로 했다.
"어떤 스킬을 올려볼까..."
모든 스킬은 패시브이냐 액티브냐를 가리지 않고 최초엔 E랭크부터 시작했다. 순서대로 D, C, B, A 순으로 그 등급이 올라가며 최종적으로는 S랭크에 오를 수 있었다. S랭크는 해당 스킬에 대한 이해도와 사용능력이 극에 달한 상태로 스킬이 가진 본래의 능력을 어떠한 실패나 패널티 없이 완전히 사용할 수 있었다.
"일단 몸을 지켜야 하니 무기를 다룰 기술은 있어야겠지."
지금까지 가장 많이 선택해서 익숙해진 검술을 고르기로 했다. 검술은 한손검, 양수검, 쌍검, 단검, 세검, 혹은 방패를 함께 사용하는 쉴드 앤 소드 스타일 등등 가장 기본이 되는 무기인 만큼 그 선택범위가 무척 다양했다.
"한 번도 안 써본 단검쪽으로 가볼까?"
평범한 장검이나 대검류는 여러번 다뤄봤으므로 이번엔 단검술을 선택해보기로 했다. 한 자루만이라면 공격과 방어 모두 약할 것 같으니 기왕이면 두 자루, 쌍단검쪽의 트리를 열어보았다. 곧 여러가지 분류의 기술목록이 떠올랐다.
"어디보자... 대륙에서 가장 큰 도적들의 길드인 쏙독새의 깃, 거기서 소수의 암살자에게만 전승한다는 단검술 문댄스. 서부 사막지대에서 무희들이 추는 검무에서 유래한 막야난희. 해적군도의 일부 해적들이 사용한다는 오래된 해적검술 버카니어의 친구도 있고. 이건 또 뭐야. 비전교단 솜브라의 전투기술 바일리 델 비엔토?"
그 외에도 각 지방이나 특정 단체, 혹은 가문에서 유래한 온갖 쌍단검술이 진석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뭘 고를까 고민하던 그는 묘하게 끌리는 바일리 델 비엔토를 선택했다. 간략히 나오는 설명과 이미지로 보건데 바일리 델 비엔토란 기본이 되는 고유한 체술에 단검의 은밀한 활용을 더한 형태로, 다수와의 전투보다는 불시의 습격에 유리한 암살기술에 가까웠다.
"뭐 딱히 장수플레이를 하는것도 아니고 전쟁터에서 싸울일 같은건 없을테니까 이걸로도 괜찮겠지."
그런데 바일리 델 비엔토가 생각외로 고위의 전투기술이었던지 입수하는데만도 무려 20포인트를 요구했다. 아니 10포인트 전후로도 그런대로 쓸만한 검술을 익힐 수 있는데 20포인트 씩이나... 진석은 잠시 고민하다 결국 스킬 입수 버튼에 손을 댔다. 대신 바일리 델 비엔토는 초기 입수 요구 포인트가 높은대신 랭크를 올리는데는 각 10포인트만 필요했다. 원래 스킬은 랭크가 올라갈수록 요구하는 포인트도 높아지기 마련인데, 10포인트 고정이라니. 그나마 양심적이구만. 진석은 그렇게 생각하며 30포인트를 사용해 스킬 레벨을 B까지 올렸다.
"으아 전투기술 하나로 포인트를 반이나 썼잖아?"
첫 선택부터 출혈이 컸다. 남은 절반은 신중하게 골라야겠다고 생각하며, 수많은 스킬들의 목록을 천천히 넘겨봤다. 한참을 생각한끝에 해부학과 식물학, 약학을 선택했다. 우선 해부학의 습득엔 6포인트가 필요했는데 여기에 4포인트를 더 투자해 D랭크를 만들었다. 해부학은 패시브 스킬로서 상대를 공격 할때 근육이나 장기에 더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단순히 말하자면 크리율이 올라갔다. 거기에 D랭크라면 외상에 대한 기본적인 진단과 간단한 응급처치도 할 수 있었다. 식물학은 입수에 5포인트, 여기에 10포인트를 더 써서 C랭크를 만들었다. 식물학 E랭크는 단순히 식용여부만 판별 가능한 정도였지만 C랭크에선 약초와 독초를 구분할 수 있고 각종 식물들의 정확한 효능도 알 수 있었다. 약학의 습득엔 10포인트가 들었고 14포인트를 더 써서 역시 C랭크를 만들었다.
"해부학은 전투나 간단한 응급처치나 여러모로 활용도가 높고... 약학은 분명 C랭크부터 미약을 제조 할 수 있었지?"
약학 C랭크부터는 꽤 효능좋은 치료약이나 간단한 독의 제조가 가능해졌는데, 그 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성욕을 끌어내 타락시키는 미약의 제조도 가능했다. 이전 플레이때 능욕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굴복하려 않으려 버티던 상대들에게 몇 번 미약을 써서 꽤 재미를 봤었는데, 진석이 기억하기론 미약의 가격이 상당히 비쌌었다. 그래서 언제고 한 번은 직접 미약을 만들어 원없이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어, 1포인트 남았네?"
스킬의 습득에 총 99포인트를 사용하고 1포인트가 남았다. 진석은 남은 1포인트로 스테이터스를 올릴까 하다가 혹시 1포인트짜리 스킬은 없을까 싶어 스킬목록에서 조건 검색을 해보았다.
"와 1포인트짜리 스킬도 있긴 있네."
하지만 달랑 1포인트인 만큼 별볼일 없어보이는, 이런건 왜 만들어 넣었나 싶은 스킬들만 보였다. 휘파람, 실뜨개, 수납기술, 예민한 촉감, 고성방가, 유연한 표정 등등... 진석은 스킬 선택을 관두고 스테이터스나 올릴까 하다 예민한 촉감의 설명문에서 잠시 손을 멈췄다.
"손가락의 촉감의 예민해집니다. 고랭크로 올라갈수록 손의 촉감만으로 사물을 구분하고 판정하는 능력이 강화됩니다... 라고."
처음엔 이걸 어디다 써먹을까 싶었지만 왠지 찍어두면 어딘가 써먹을데가 있지 않을까 싶은 막연한 느낌이 들었다.
"하긴 지금도 충분히 고스탯인데 달랑 1 포인트 더 올리느니 아무 스킬이라도 하나 얻어두면 의외의 상황에서 쓸일이 있을지도 모르지."
스킬의 선택까지을 마치고 나니 캐릭터 생성과정의 마지막으로 이름을 정해달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이름이야 아무려면 어떠냐. 진석은 랜덤 버튼을 누르고 넘겼다.
- 이름
러셀 헤이든
- 종족
인간/남성
- 스테이터스
통솔 20 / 무력 45 / 민첩 40 / 지력 35 / 정치 20 / 매력 40
- 액티브 스킬
바일리 델 비엔토[B랭크] / 약학[C랭크]
- 패시브 스킬
해부학[D랭크] / 식물학[C랭크] / 예민한 촉감[E랭크]
이상의 설정이 틀림없냐는 확인 문구가 재차 떠올랐고 진석은 버튼을 눌러 캐릭터 생성을 마쳤다. 캐릭터 생성 다음은 대륙의 환경 설정이었다. 대륙의 지도 모양 자체는 고정이지만 식생과 인구, 성비, 국가들의 상황 등 여러가지 설정을 게임 시작전에 결정 할 수 있었다.
"뭐 별거 있나? 성비만 좀 조절하고 대충 하자."
성비가 한쪽으로 극단적으로 치우치면 너무 많은것이 변한다. 성별에 대한 인식과 사회적 지위부터 도덕관념까지 싹 바뀐다. 남성1 : 여성9의 세계라면 일부다처가 당연하게 여겨지고 남성의 지위도 상승하지만 여성1에 남성 9라면 그 반대가 되고 후손을 낳을 수 있는 여성들이 일종의 주요 자원 취급을 받기까지 한다. 심지어 미녀를 두고선 가문이나, 마을, 심지어 국가간에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으니... 진석은 남성4 : 여성 6의 비율로 놓고 식생과 기후, 등장 종족등의 설정은 모두 기본으로 놔두었다. 국가의 경우 기본적으로 설정된 여러 국가들의 위치가 있지만 랜덤으로 지정할 경우 나라가 있던 지역이 아무것도 없는 공백지가 되기도 하고, 넓은 땅덩어리를 놔둔채 아주 좁은 지방에 수많은 소국들이 옹기종기 뭉친 형태가 되거나, 반대로 고작 두셋밖에 안되는 대국들이 대륙 전체를 빈틈없이 차지한 모양이 나오기도 했다.
"기본은 익숙하니까 랜덤으로 하자."
대륙 환경 설정까지 마쳤으니 이제 본격적인 게임을 시작할때였다. 마지막으로 시작하길 원하는 지역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진석은 캐릭터의 이름을 정할때처럼 그냥 랜덤버튼을 눌렀다. 잠깐의 로딩 후 게임을 시작한다는 문장이 흐르며 눈앞이 천천히 밝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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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후 초반부 진도엔 성적인 묘사가 다량 등장합니다. 쓸땐 아무생각 없이 신나게 두드렸는데 쓰고 보니 너무 노골적이라... 눈물을 머금고 정말 왕창 쳐냈습니다. 그래도 걸릴 것 같아 불안하군요. 모쪼록 잘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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