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1. -- > * 6화 *
외출은 한 시간 남짓밖에 안 됐던터라 에나는 아직 잠들어 있었다. 진석은 사온 짐꾸러미를 거실 한 켠에 놓아두곤 의자에 앉아 두 다리를 탁자에 턱하니 올렸다. 지도 창을 연 다음 흐음 하고 턱을 매만지며 다음 행선지에 대해 생각했다.
"수도인 데오그라즈 쪽으로 갈까?"
해밀턴도 많이 발달한 도시지만 데오그라즈는 수도인 만큼 훨씬 번화했을것이다. 게다가 그 위치는 남동부 요지의 항구도시. 대륙 곳곳의 온갖 화물이 드나는 곳일테니 분명 돈만 있다면 구하지 못할물건이 없을것이었다. 에나의 돈으로 방랑자로서 여정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과 장비는 마련했지만, 역시 더 좋은 장비라던가 마음껏 부릴 수 있는 노예도 갖고 싶었다.
"이 도시에도 노예시장이 있을테지만..."
지금 자신은 돈이 없다. 평범한 잡일노예라면 저렴한 편이었지만, 지금처럼 집도 절도 없는 상태론 평범한 노예 따위 거저 줘봐야 별 쓸데도 없다. 게다가 진석은 일반 노예가 아니라 뛰어난 신체와 특별한 능력을 갖춘 전투노예가 가지고 싶었다. 마법과 술식으로 강제해 주인을 향한 무조건적인 충성과 헌신을 이끌어내는 전투노예들의 몸값은 그야말로 어마무시했다. 정말 쓸만한 전투노예들은 그 한 명 한 명이 대저택 한 채 값에 견줄만큼 비쌌다.
"이전 장수 플레이때 한 번 사서 쏠쏠하게 써먹었었는데."
한 번은 큰 돈을 들여 구입한 전투노예를 24시간 데리고 다니며 자신을 호위하게 했었다. 그때 구입한 노예는 수인종인 견족 바울의 셰퍼드 수컷이었다. 신장 2m가 훌쩍 넘어가는 근육질의 거한으로, 멧돼지 같은 맹수도 단 일격에 즉사시키는 무시무시한 전투력을 보유했었다. 전장에도 여러차례 데리고 나가 자신의 등 뒤를 맡기기도 했다. 비록 마법을 걸어 강제로 끌어 낸 충성심이긴 했지만 개와 흡사한 특성을 보이는 견족 바울답게 주인인 자신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헌신하는 모습은 정말 인상깊었다. 결국 나중엔 제법 정이 들어 꽤나 신경써서 대해줬던 기억이 떠올랐다.
"흠... 그럼 다음 행선지는 데오그라즈로 잡는걸로 하고. 그나저나 어디 뭔가 재미난 모험거리나 큰 돈을 벌 건수를 찾을 방법은 없으려나?"
눈 앞에 그럴듯한 퀘스트라도 떡 하니 나타났으면 좋겠지만 감나무 아래에서 입 벌리고 열매가 떨어지길 바라는게 빠를터. 리베라, 라틴어로 자유라는 의미. 제목처럼 플레이어의 자유도를 강조하는 리베라는 퀘스트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닌, 스스로 찾아 나서야 하는 개념이었다. 진석은 팔짱을 끼며 끄응 하고 고민에 잠겼다. 미친척하고 환락가에 있을 아무 폭력단에라도 처들어가 윗놈들 몇 때려잡고 조직을 강탈해버릴까? 그 세력을 바탕으로 암흑가에 진출해 보는거다. 아니면 적당한 부잣집을 골라서 힘으로 다 제압해 털어버려? 괴도가 별거냐 잘 털면 그게 괴도지. 진석은 주로 범죄쪽으로 특화된 한심천만한 계획들을 고심해봤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침실 안쪽에서 맨몸에 셔츠 한 장만 걸친 에나가 눈을 부비며 비틀비틀 걸어나왔다.
"하암... 외출하고 오셨나요..."
"음."
에나도 현재 자신의 노예라면 노예겠지만 어디까지나 평범한 일반인이다. 특별한 능력이나 강력한 전투력을 갖춘 전력이 아닌것이다. 그래도 작정하면 데리고 다니지 못할것도 없지만 성욕처리나 사소한 수발을 드는것 외에 그녀가 나설 일은 없을터. 대놓고 막장으로 나가자면 매춘이라도 시켜 돈을 벌게 할 수도 있겠지만 포주노릇 따위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탁자에 두 다리를 올린채 팔짱을 낀 자세로 생각에 잠겨있는 진석의 옆에 다소곳히 손을 모은 자세로 다가와 서는 에나. 진석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에나의 시선을 느끼곤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거기 서서 뭐해?"
"네? 아니... 그게, 저... 주인님이 뭔가 시키시지 않을까 하고..."
얼굴을 붉히며 수줍게 눈을 내리까는 에나. 그 모습이 귀여워서 앞으로의 고민은 뒤로 밀어두고 다시 한 번 그녀를 안아버릴까 생각하다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번 게임을 시작하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지금까지 한거라곤 기껏 강도질에, 미약 한 번 만든거랑 섹스밖에 없지 않은가. 가상현실에서의 섹스라고 해도 분명 기분은 좋다. 허나 이번엔 어디까지나 방랑자 다운 모험이나 여행을 하고 싶었던거지 섹스가 목적인건 아니었다. 하지만 셔츠 사이로 드러나 보이는 그녀의 하얀 허벅지를 보고있자니 이게 참 또... 아니지 아니야. 급할 것 없다. 몇시간 전까지도 실컷했었는데 발정난 원숭이도 아니고 일단은 좀 참자! 진성은 스스로에게 한심함을 느끼며 말문을 열었다.
"그... 뭐냐. 그러면 좀 이르긴 하지만 점심밥이라도 차려줬으면 하는데?"
"아, 네! 빨리 해드릴께요!"
왠지 들뜬 어조로 대답하는 에나. 한 쪽에 걸려있던 앞치마를 익숙하게 걸쳐 두르고 도마와 식칼을 꺼내들며 식사 준비를 하는 모습이 왠지 신나보였다.
"그럼 그 동안 이거라도 읽어볼까."
식사 준비를 시작한 에나를 놔두고 사온 짐보따리에서 책을 꺼내는 진석. 아까 서점에서 구입한 화염화살의 마법이 담긴 책이었다.
"어디보자..."
마법주문이 담긴 책 치고는 좀 얇은 미묘한 두께. 표지를 넘기고 안의 내용을 보자니 화염화살의 대한 개요와 주문을 사용하는 방법 및 요령, 스킬의 랭크 별 차이점, 기타 응용법 따위의 내용이 상세한 가이드 이미지와 함께 쓰여있었다. 책을 읽기 시작함과 동시에 화면 좌측 하단에 자그만하게 '스킬 화염화살 습득 진행중 : 1%' 라는 게이지가 떠올랐다. 계속해서 책을 읽고 있으면 그 시간에 비례해 습득률이 자동으로 올라가는 시스템이었다. 이렇게 완독해서 스킬을 익히고 나면 책은 자동적으로 소멸했다. 그렇지 않으면 책 한권으로 수많은 인원에게 무한정으로 계속 스킬을 익히게 할 수 있었으니, 할 수 없이 만들어진 게임상의 룰이었다.
"흠흠..."
화염화살의 스킬 입수 제한은 지력 12였다. 즉 지극히 평범한 수준의 지능만 가지고 있어도 누구나 배울 수 있다는 의미. 입수 난이도의 문턱이 낮은데다가 현재 진석의 지력이 35나 되는 만큼 책을 읽기 시작한지 몇 분 지나지 않았는데 게이지가 금세 10%까지 차올랐다. 책의 맨 뒷편에는 다른 플레이어들의 팁이나 스킬에 대한 소감, 정보 따위를 적고 공유 할 수 있는 교류 페이지가 딸려있었다. 인터넷 상의 게시판이 책 속에 들어있는 형태라고 생각하면 비슷했다. 책의 이 특수 페이지 부분에 스킬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적고 전송해두면, 그 문구가 서버로 전송되어 나중에 이것과 같은 스킬책을 읽는 플레이어가 그 글들을 읽을 수 있는 형태였다. 하지만 딱히 내용에 대한 검열이나 제재는 없는지 교류 페이지에 떠오르는 내용 중 태반은 화염화살 마법과 관련없는 것들이었다. 자신이 뭘 했었는데 그게 어쨌다느니, 지금 이걸 읽는 놈은 뭐뭐뭐다 라느니, 기타 욕설이나 시덥잖은 잡담이 빼곡했다. 진석은 그 중에 아무글이나 하나 골라 읽어보았다.
작성자 / 빠이얏
제목 / 캬 갓염화살 차냥해
본문 /
화염화살 같은 허접한 스킬 왜쓰냐 하는 분 계시면 꼬추잡고 반성합니다.
이런 기초스킬 파고 잘 가지고 놀 줄 알아야 싸나이 아니겠십니까..
물론 화염화살 위력이 약한건 아는데 S랭크 딱 찍어주면 엄청 좋습니다.
S랭 도달시 A랭에 비해서 시전속도 두 배. 그런데 소모되는 SP는 B랭 수준으로 줄어듭니다. 게다가 A랭에서 세발 나가던게 동시에 다섯발까지 나가짐! 단일 표적에게 전부 히트시킬 경우 중간랭크 찍은 화염구 수준 데미지 들어갑니다. 개아픔. 물론 소모 SP는 화염구 반의 반도 안됨. 개이득.
전쟁할때도 이거 S랭 찍어두면 일반 병사는 양학한다능.. 무쌍이라능..
공략이나 리뷰같은거 보면 대부분 고위력의 화려한 스킬 위주로 찍고 자랑글처럼 쓰고 그러든디 이런 평범한 스킬도 노력해서 S랭 찍고 써보면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습죠.
댓글(6) /
- ksh0079 : 이분 최소 허접스킬성애자
- 애쉬더스트 : 전쟁할때 일반 보병상대로 멀찍이서 S랭 화염화살 쓰면 겁나 편하긴합니다 무슨 리볼버 쏘는 느낌임 SP소모 무시하고 연타로 쏴대다보면 전열은 진짜 갈려나감
- 피자먹고싶다 : 화염구 무시함??? 어디 화염화살 나부랭이에 비교함?????
- >>STARS<< : 네 다음 똥망캐
- 법사는힘 : 나는 경기도 안양의 힘법사다!
- dig44da33 : 이거 S랭 찍을 시간에 더 센 스킬랭 올리는게 이득 아닌가요
딱 인터넷 게시판 보는 느낌이었다. 뭐 실제로도 별 다를게 없었으니. 진석은 키득거리며 책장에 떠오르는 다른 유저들의 글을 한참 읽어나갔다. 그것만으로도 책을 읽는것으로 간주되어 습득율 게이지는 꾸준히 올라갔다. 그렇게 책, 아니 교류 페이지에 올라온 다른 유저들의 글을 읽은지 한 이십여분. 게이지는 빠르게 올라가 벌써 60%에 육박하고 있었다. 그때 식사 준비를 마친 에나가 쟁반에 담은 음식접시를 가져와 탁자 위에 하나 둘 옮겨놓았다.
"급한대로 있는 재료를 가지고 해봤는데... 입맛에 맞으시면 좋겠네요."
진석은 책을 덮으며 에나가 옮겨다놓은 요리들을 살펴보았다. 에나가 익히고 있는 요리 스킬은 제법 랭크가 높은편인지 짧은 시간이었는데도 꽤 여러가지의 음식을 차려내왔다. 물론 현실이라면 아무리 숙련된 요리사라도 이렇게 짧은 시간내에 다양한 음식을 차려내긴 힘들테지만, 어디까지나 게임속이다보니 가능했다. 진석은 책을 옆에 치워두고 에나가 정성껏 차려낸 점심 식사에 손을 댔다.
"잘 먹을께."
"...헤헤."
식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채 얼굴에 옅은 홍조를 띄우며 웃는 에나. 손을 뻗어 이것저것 맛을 보자니 에나가 차려낸 음식들은 겉보기만큼 맛도 좋았다. 좀전에 에나를 데리고 다니는건 별 쓸모가 없지 않을까 싶었는데, 정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화면 우측 상단에 숙련된 솜씨로 만든 음식을 먹었을때 받는 버프효과가 여러가지 나타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테이터스가 일시적으로 상승하는 가장 기본적인 버프부터, 버프가 지속되는 동안 최대 체력치에 일정량의 추가 체력이 붙는 '오버 힐', 스킬의 효과와 안정성을 높여주며 소모 SP도 감소시켜주는 '아이언 윌' 등, 온갖 상급의 버프가 속속 떠올랐다. 이 정도 요리 실력이라면 분명 꽤나 고랭크임이 확실했다. 최소 B랭 이상. 진석은 메뉴를 띄워 에나를 관심 NPC로 지정해보았다.
리베라에는 두 종류의 NPC가 존재했는데, 고정 NPC와 가변 NPC가 그것이었다. 고정 NPC는 특정 국가나 세력에 고정적으로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말했다. 이들은 게임 제작 단계에서 구현된 인물들로 한 왕국의 국왕이나 주요 신하들과 귀족가문의 일원들, 특정 세력의 지도자들 등이 있었다. 국가 설정을 랜덤으로 할 시 영토의 위치나 면적은 달라지더라도 통치하는 국왕과 그 주변인물은 바뀌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는것이다. 삼국지를 예로 들자면, 국가 설정을 랜덤으로 지정해서 위나라의 위치가 강남으로 옮겨졌다 하더라도 군주는 변함없이 조조이며 하후돈, 허저 같은 휘하 장수들이 그대로 이어지는것과 같았다. 그리고 가변 NPC는 중요도가 낮은 평범한 일반 NPC를 말했다. 전장의 일반 병사나 도시의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일반인들이 이에 해당했다. 이런 NPC들은 플레이어가 상호작용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 이상 그저 흘러가는 배경이나 다름없었다. 플레이어의 행동권내에서 필요에 따라 끊임없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존재들. 에나 역시 한낱 가변 NPC였지만 플레이어인 진석이 상호작용을 하고 있었기에 유지되고 있는 것이었다. 만약 진석이 도시를 벗어나거나 어떤식으로건 에나의 상태를 확인 할 수 없는 상태로 일정 시간이 흐르게 되면 저절로 사라지게 될 터였다.
게임상에서 NPC를 특정 지을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관심 지정이었고 다른 하나는 주요 지정이었다. 관심 지정은 해당 NPC를 목록에 등록하여 그 생사여부와 스테이터스를 확인 할 수 있었다. 관심 지정을 하는것 만으로도 꾸준히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것으로 간주되어 플레이어가 멀리 떨어지거나 긴 시간이 지나도 평범한 가변 NPC처럼 저절로 사라지진 않았다. 그리고 주요 지정은 게임을 진행하는데 있어 플레이어가 해당 NPC는 중요한 존재라고 판단할때 쓰는 기능이었다. 가변 NPC를 주요 NPC로 지정할 시 기본적으로 설정되어있는 해당 NPC의 성격과 게임의 진행 상황에 맞추어 과거사가 주어지고 행동패턴, 감정 및 사고반응의 단계가 고정 NPC만큼이나 높여져 재설정되었다. 허나 시스템적으로는 그만큼의 메모리를 추가로 배당하여 사용하는 만큼 관심 NPC와 주요 NPC 지정은 각 100명이라는 숫자 제한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게임이 발매된 초기엔 관심 NPC와 주요 NPC의 목록을 각 100명씩 꽉 채울시 메모리 버퍼 오류가 발생해 VR기기 자체가 그냥 꺼져버리는 버그가 있기도 했었다. 물론 200명분의 NPC 목록을 일일이 다 채우는 유저는 매우 드물었던데다가 버그 역시 금방 수정되었다. 진석은 관심 NPC로 지정한 에나의 스테이터스 창을 능숙한 손놀림으로 열어보았다.
- 이름
에나 필즈
- 종족
인간/여성
- 스테이터스
통솔 9 / 무력 7 / 민첩 8 / 지력 19 / 정치 13 / 매력 24
- 액티브 스킬
가사[B랭크] / 요리[A랭크] / 감정안 - 식재[D랭크] / 가창[E랭크]
- 패시브 스킬
회계[D랭크] / 교섭[D랭크]
그나마 지력과 매력 이외엔 스테이터스가 높은것도 아니었고 특출난 뭔가가 있는것도 아니었지만 가사능력과 요리솜씨는 굉장한 수준이었다. 게임내에서도 A랭크급 요리사의 음식을 먹으려면 정장을 차려입어야 하는 비싼 레스토랑엘 가야한다. 허나 눈앞의 상대방과 식재료만 있다면 그런 훌륭한 요리를 얼마든지 공짜로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전문 요리사로 일할수 있는 최소한의 실력이 B랭크라는걸 감안하면 에나는 이미 프로급의 솜씨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였다. 진석은 단순히 음식의 맛보다는 음식을 먹음으로서 받을 수 있는 버프효과가 탐났다. 음식을 통해 얻는 버프는 길어봤자 게임상 시간으로 두세시간 정도인 짧은 효과긴 했지만 그것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컸다. 군주와 장수 플레이를 하며 성이나 저택에서 지낼때는 솜씨 좋은 요리사들이 삼시세끼 알아서 좋은 음식을 가져다 바치니 몰랐지만, 지금은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해 나가야 하는 방랑자의 상태가 아니던가. 그리고 회계와 교섭. 이쪽은 둘 다 랭크가 낮은편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 효과를 발휘한다면 상점에서 물건을 구입할때 약간이라도 할인을 받을 수 있을터였다.
'그야말로 생활형 NPC구나. 천상 주부 타입인데...'
그런데 액티브 스킬 중에 또 눈에 띄는것이 하나 있었다. 감정안. 사물의 좋고 그름을 눈으로 판별하는 기술이었다. TV에서 골동품을 감정해주는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전문가들이나 익히고 있을법한 스킬. 검술의 형태가 검의 분류에 따라서도 다르듯, 감정안의 종류도 목표가 되는 대상에 따라 달랐다. 무구에 대한 감정안, 예술품에 대한 감정안, 골동품에 대한 감정안... 그리고 식재료에 대한 감정안까지. 에나가 익힌 감정안의 분류가 식재로 되어있는것이 요리 A랭크 다웠다. 아니 A랭크씩이나 되는 요리기술을 익혔으면서 식재료의 상태를 파악하지 못한다는게 더 말이 안되는 일이니까. 아무튼 에나의 능력을 확인하고 나니 왠지 그녀를 그냥 내버리기 아까워졌다. 그녀가 만들어 준 음식을 먹는것 만으로도 이렇게 많은 버프효과를 받을 수 있었으니...
"으으음..."
"저기... 음식에 무슨 문제라도?"
"어? 아니 아니, 맛있어 맛있어. 너무 맛있어서 그래."
대충 둘러댄 실없는 칭찬임에도 다행이라는 듯 가슴을 쓸어내리며 쑥스러운 웃음을 짓는 에나. 진석은 입 안으로 꾸역꾸역 음식을 밀어넣어 공복도 게이지를 채우며 고민했다. 에나를 주요 NPC로 지정하고 앞으로의 데리고 다닐것인가 말것인가를. 사실 어제 처음 그녀를 강도질의 대상으로 삼았을때는 거 대충 적당히 돈이나 털고 해치워 입막음 한 뒤 도망가려고 했었다. 그것이 아랫도리가 동해 강간으로 이어지고, 범하다보니 재미가 붙어 미약의 시험상대로 써서 능욕만으로 하룻밤새 복종시키는 지경에 도달한게 아닌가. 별 생각없이 되는대로 저지른 행동이긴 한데 스스로가 돌이켜 봐도 좀 어처구니가 없긴 했다. 게다가 하룻밤새 몇십번을 범한것 만으로 상대를 굴복시켰으니 정말이지 스톡홀롬 신드롬이 다 뭐냐 싶은 성범죄자의 귀감이다. 장난감처럼 실컷 가지고 놀고, 돈도 빼앗고, 그러고 나서도 에이 별 쓸모가 없을 것 같으니 이걸 언제 어떻게 버리고 떠날까~ 하는데 요리라는 의외의 부분에서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는걸 알게 된 상황.
'에이. 마음 좀만 독하게 먹으면 나중에 버리거나 떼어놓는건 일도 아니니까.'
진석은 입 안에 들어있던 음식을 꿀떡 삼키고, 나무잔에 잠긴 물을 벌컥 들이키며 결정을 내렸다. 메뉴를 열어 관심 NPC에 등록되어있던 에나의 이름을 주요 NPC쪽으로 옮겼다. 그 짧은 순간, 눈에 보이거나 달리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시스템 상에서는 수많은 연산이 처리되어 에나라는 캐릭터의 과거사와 수많은 설정들이 재정립 됐으리라.
"......"
맞은편에 앉아있는 에나는 진즉 자신 몫의 식사를 끝낸건지 잠자코 진석의 식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달그락. 손에 들고 있던 포크를 내려놓은 진석은 벌떡 의자에서 일어나 에나에게 다가갔다.
"아 저 식사는 이제 다 하신..."
"됐고 따라와."
무작정 에나의 손목을 잡아끌어 침실쪽으로 이끄는 진석. 앗 하며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에나의 얼굴엔 순간 당황스러움이 떠올랐지만, 침실로 끌려간다는게 무슨 의미인지 눈치챘는지 곧 다가올 일에 대한 기대감과 흥분감도 살짝 나타났다. 기대를 실망시키면 안되겠지? 진석은 에나를 침대위에 쓰러트리고 자신도 그 위에 올라탔다.
"밥 값은 이걸로 충분히 계산해줄테니까 말이야."
음흉하게 웃으며 자신의 아랫도리를 가르키는 진석. 이후의 섹스는 버프 효과를 받은만큼 한층 격렬했다. 진석은 글자 그대로 몸으로 밥 값을 치뤘다.
============================ 작품 후기 ============================
글 내에 한자나 영단어의 주석은 달지 않고 있습니다. 원래 후기 부분에 별도로 각주를 달까 했는데 괜한짓 같아서 생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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