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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라 - 부회의 방랑자-9화 (9/155)

< --   - 1.   -- >         * 9화 *

"으헉...!"

어두운 골목길. 거구의 사내가 신음성을 토하며 허물어지듯 제자리에 쓰러졌다. 쓰러진 사내의 앞에 주먹을 날린 자세 그대로 서있는건, 눈 아래를 복면으로 감춘 검은 머리의 사내. 진석이었다.

"여긴가."

선착장 일대를 돌다 거리에서 마약을 팔던 잔챙이를 족쳐 한 폭력단의 사무실 위치를 알아냈다. 현실의 마약 조직이라면 여러 단계의 점조직으로 나뉘어 있어 하부 판매책 몇 조진다고 그 윗선이나 총책을 찾아낼 순 없을테지만 이거야 뭐 어차피 게임이다보니 가능했다. 눈 앞에 있는 허름한 2층짜리 목조건물이 녀석들의 사무실이라고 했다. 도박장이나 매춘굴 같은 영업장을 덮치는게 이런식으로 습격할 곳을 찾을 필요 없이 더 쉬울터였다. 하지만 사람이 많은 곳에서 소란을 피우는건 사양하고 싶었다. 게다가 놈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영업장을 보호하기 위한 인력은 충분히 배치해 놓았을테니... 오늘밤은 어디까지나 가능한 조용히 처리하는게 목적이었다. 게다가 폭력단 사무실이라고 해도 일정수준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을건 틀림없었다. 원래 모든 조직이란게 돈 없인 굴러가지 않는법이니.

"자 수금 할 시간이다."

문 앞에 선 진석은 장난기가 동해 우선 노크라도 해볼까 하다가, 에라이 하며 그냥 냅다 문을 발로 걷어차고 안으로 들어섰다. 쾅! 문짝이 떨어질듯 열리며 안쪽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싸구려 탁자와 의자 몇 개 이외엔 별다른 가구나 집기도 없는 살풍경한 실내. 한 눈에 보기에도 나 깡패요 자랑하는 것 같은 험상궂은 외모의 사내 네 명이 앉아있었는데 발치에 술병이 몇 굴러다니는게 이미 다들 어느정도 취한것 같았다.

"넌 뭐야 이 새끼야!"

대번에 날아드는 욕설. 취한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사내들은 품에서 단검이나 옆에 굴러다니던 빈 술병을 빠르게 집어들며 진석을 경계했다.

"뭐긴 뭐야 너네 상대조직에서 부탁해서 왔다."

거짓말을 하며 사내들에게 달려드는 진석. 어차피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일은 없을터였지만, 그래도 이렇게 거짓말도 흘려줘야 정말 만에 하나라도 자신이 특정되는 일을 막을 수 있을터였다.

"개새끼가!"

맨 앞의 단검을 든 사내가 진석에게 반응해 거칠게 검을 휘둘렀다. 맞는다면 치명상이 될법한 강한 공격이었지만 민첩 40의 진석에게는 그저 슬로우 모션같았다. 날아드는 팔을 가볍게 쳐내고 안면에 주먹을 꽂았다. 빠악! 통쾌한 소리가 울려퍼지며 허공에 주인 잃은 앞니 두 개가 흩뿌려졌다. 펀치머신을 후려치는 것 이상의 짜릿한 손맛! 크리티컬이 분명했다.

"자 한 분 가셨고."

"이 새끼가 죽으려고!"

"찢어버린다!"

이번엔 좌우에서 두 사내가 동시에 달려든다. 하지만 진석의 입장에선 방금전과 별반 다를게 없는 공격이었다. 덤벼드는 사내들의 동작이 눈엔 느리다 못해 허우적 거리는걸로 보인다. 도통 긴장감이 안들잖냐! 진석은 먼저 우측의 사내의 명치에 오른손 팔꿈치를 찔러넣고, 충격을 받아 욱 하며 멈춘 사내의 턱을 왼손 장저로 후려쳤다. 쩍 벌어진 입에서 긴 침줄기를 흩뿌리며 나가떨어지는 상대방. 이어 좌측의 사내에겐 몸을 빙글 반바퀴 돌리며 복부에 옆차기 한 방. 욱 하고 허리를 꺾는 사내에게 주저없이 달려들어 머리통을 잡고 아래로 끌어 당기면서 안면에 니킥 한 방. 뻐억. 묵직한 소리와 함께 코피가 튀었다.

"짜잔!"

정말 연습해서 짜고해도 이렇게 합이 맞아들까 싶을정도로 눈 깜빡하는 사이 벌어진 깔끔한 공방. 그야말로 앗 하니 두 명의 사내가 나가떨어져 있었다. 가상현실인 게임속이다보니 자신의 몸이 생각하는대로 완벽히 움직이는게 너무나도 상쾌한 기분이었다. 진석에게 맞은 사내들은 그렇게 찍소리도 못하고 기절해버렸다. 이제 남은건 한 명 뿐. 혼자 남은 사내는 진석의 선전에 놀랐는지 입을 헤 벌린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꿈벅거리기만 했다.

"뭐해? 너는 안덤벼?"

"으... 으으, 씨발!"

마지막 사내는 악을 쓰듯 손에 든 접이식 칼을 진석의 눈 앞에 붕붕 휘둘렀다. 마치 내게 다가오지 말라는 무언의 발악같았다.

"아이고 우리 애기 잘한다~ 지금 재롱 잔치 하시나?"

바닥에 굴러다니는 빈 술병 하나를 발로 톡 쳐올린 진석은 그것을 사내를 향해 뻥 걷어차버렸다. 와장창! 잘게 부서진 병 파편이 화악 흩뿌려지자 사내는 히익 하고 양팔로 얼굴을 가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 틈에 접근하여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진석은 사내의 멱살을 콱 움켜쥐고, 옆쪽의 탁자 위로 힘껏 집어던졌다.

"으학?!"

무력 45에서 나오는 완력은 어마어마한 것이라 성인남성도 장난감처럼 집어 던질 수 있었다. 사내는 아무 저항조차 못하고 무슨 조약돌처럼 날아 탁자를 부숴트리며 바닥에 데굴데굴 나가 떨어졌다. 꿈질거리는 폼이 기절하진 않은 것 같았지만 아마 어디 두어군데쯤 부러진 것 같았다. 무저항이 된 채 끄으으 기어들어가는 신음을 내는 사내. 가까이 다가간 진석은 그의 이마를 한 대 찰싹 때리곤 훈계하듯 말했다.

"그러니까 이런꼴 당하기 싫으면 평소에 착하게 좀 살어 착하게."

"그으... 끄으윽..."

반박 한 마디 못하고 괴로워하는 사내를 내버려두곤 2층 계단을 찾아 올라갔다. 별로 넓지 않은 2층엔 두 개의 방이 있었는데, 하나는 시덥잖은 잡동사니들과 짐상자가 쌓여있었고 다른 하나는 문이 닫겨있었다. 진석은 닫힌 쪽 문에 다가가 통통 가볍게 노크를 하며 말을 했다.

"거 안에 누구 계세요? 어차피 멋대로 들어갈거지만."

"...들어와라."

의외로 안쪽에선 대답이 들려왔다. 묵직하고 낮은 저음의 목소리. 단 한 마디 뿐이었지만 목소리에선 기도가 느껴졌다. 진석은 장난기를 거두고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엔 책상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에 앉아 시거를 문채 서류에 뭔가를 적고 있는 중년의 사내가 있었다. 그 뒤쪽으론 꽤나 큼직한 금고도 하나 보였다. 중년사내는 진석을 힐끗 쳐다보더니 흥 하고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새파란 놈이 통 겁이 없군."

"뭐 그렇지."

"누가 보냈나?"

"글쎄. 맞춰봐."

"...흥, 누가 보내서 온 놈은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알겠다. 항쟁이라도 벌일 심산이었다면 고작 한 놈만 왔을리가 없으니."

"......"

중년 사내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난다. 확실히 1층에 있던 잔챙이들과는 격이 다르다는게 느껴진다. 짧은 대화로 자신의 거짓말도 간파한걸 보면 머리도 꽤 돌아가는게 확실했다. 이 이상의 쓸데없는 대화나 장난으로 호기를 부려 자신의 정체를 노출시킬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다. 진석은 입을 꾹 다물고 싸울 자세를 취하며 덤벼보라는 듯 중년사내를 향해 손을 까닥거려 보였다.

"하여튼 변변치 못한 부하놈들 때문에 내가 이까짓 수고를 해야하다니."

사내는 재떨이에 시거를 비벼끄고 머리를 쓸어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진석을 노려보던 사내는 눈 깜빡 하는 순간 재떨이를 빠르게 집어던지곤 책상을 발판삼아 뛰어들며 쏜살같은 발차기를 날렸다.

'제법!'

빠르기도 빠르거니와 재떨이 뒤에 이어지는 날아차기의 타이밍도 절묘하다. 몸을 틀어 재떨이를 피해낸 진석은 할 수 없이 옆으로 두어걸음 물러나 발차기도 마저 피한 다음, 착지하는 중년 사내의 몸통을 향해 바디블로를 날렸다.

"흥!"

허나 중년 사내는 빗나간 발차기의 착지 이후 바로 자세를 낮추며 몸을 회전시켜 하단 쓸기로 역반격을 가했다. 바디블로를 피하며 동시에 하단공격을 가하는 절묘한 수. 진석은 우측으로 껑충 뛰며 하단 공격을 피했는데, 중년 사내는 자신의 하단쓸기가 빗나갈거란 것을 예상이라도 했는지 바로 용수철처럼 진석을 향해 뛰쳐오르며 어퍼컷을 날렸다.

'이건 못 피한다!'

자신은 그냥 대충 공격을 피한 반면, 상대는 자신이 공격을 피할거라는걸 확실히 예측하고 연속 공격을 펼친것이다. 아무리 자신의 민첩이 높다한들 이건 공방에서 확실히 한 수가 밀린 상황. 할 수 없이 양 팔을 올려 가드를 굳혔다. 뻐어억! 간신히 막긴 했지만 이건 무슨 주먹이 아니라 통나무가 날아와 후려친게 아닐까 싶은 강력한 일격이었다. 방어를 했음에도 체력치가 꽤 손실되는게, 그냥 맞았더라면 분명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을터. 진석은 공격을 맞은 기세에 밀려 뒤로 두세걸음 주춤주춤 물러났다. 중년 사내는 어퍼컷을 날린 자세 그대로 선채 씨익 웃어보였다.

"기세가 좋았던 것 치곤 별거 아닌데 그래?"

"...칫."

여기서 단검을 꺼내고 바일리 델 비엔토를 쓰... 기에는 어째 자존심이 상한다! 어차피 상대는 뒷골목 깡패인데 전력을 다 해야한다는건 납득 못하겠다. 이 놈 정도는 무기따위 쓰지 않고 맨손으로 이겨줄테다! 진석은 자신이 밀렸다는 사실에 내심 흥분하며 선제공격에 나섰다. 자세를 낮추고 잽싸게 파고들며 날리는 우측 스트레이트. 그러나-

"캇!"

중년 사내는 기합성을 내지르며 진석의 오른 주먹을 역시 자신의 오른 주먹으로 맞받아쳤다. 민첩 40의 공격에 정확히 맞추는 카운터라니 진석은 기가 막혔다. 그것도 주먹에 주먹을 맞추는 이 상남자스러운 패기는 또 뭔가? 깡패라고 낮잡아 봤지만 이 자 정말 생각보다 강하구나. 주먹이 맞닿기까지의 짧은 순간 진석의 머릿속엔 그런 여러가지 생각이 오갔다. 그리고 곧- 꾸웅! 건물바닥이 울릴 정도로 통렬한 타격음이 퍼져나갔다. 주먹과 주먹이 부딪혀서 나는 소리라고 보기엔 너무나도 묵직했다.

"...크윽."

"분명 당신 솜씨는 한 수 접어줄만치 대단했지만... 내 힘이 어마어마 하다는건 모르셨나보군."

중년 사내는 진석의 주먹에 부딪혀 제멋대로 꺾어진 자신의 손가락들을 바라보며 고통에 찬 신음성을 흘렸다. 진석의 무력은 45. 마음만 먹으면 사람을 맨손으로 해체할 수도 있는 힘을 지닌 괴물이었다. 맨손으로 통나무나 벽도 부술 위력에 주먹에 맞부딪혔으니 박살나는건 당연한 결과였다. 중년 사내의 격투기술은 진석보다 뛰어났고 카운터를 건 것 까지도 좋았지만 압도적인 스테이터스의 차이를 알지 못한것이 패인이었다. 승기를 잡은 진석은, 극심한 고통으로 오른팔을 떨구며 제자리에 굳어있는 중년 사내의 턱을 노리고 빠르게 왼손 훅을 때려넣었다. 뻐억! 뇌를 뒤흔드는 충격에 중년사내의 눈동자가 위로 휙 돌아가며 실 끊어진 꼭두각시마냥 제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후우... 의외로 강한 상대였어."

이렇게나 높은 능력치를 지닌 자신과 싸워 이 정도의 선전이라니. 비록 폭력단의 일원이라지만 제법 대단한 격투가인건 확실했다. 진석이 1층에서 정리했던 수준의 떨거지들이라면 한 트럭을 데려와도 이 중년사내 혼자서 싹 쓸어버릴 수 있으리. 일반적인 기준으로 보자면 이 자 역시 충분히 괴물이라 할만큼 강했다. 그냥 그 이상으로 플레이어인 진석의 스테이터스가 높았을 뿐.

"뭐 그건 그렇고 받아갈건 받아가야지."

진석은 쓰러진 사내의 품을 뒤져 금고 열쇠를 찾아내었다. 휘파람을 불며 금고를 열었더니, 안엔 예상대로 금화와 은화가 가득찬 주머니가 여럿 들어있었다. 건물의 권리서라던가 고리대금업쪽의 서류, 거기에 마약뭉치까지 몇 개 들어있었지만 그것은 건드리지 않았다. 물론 지금도 이들이 자신의 정체를 안다면 죽이려 들건 마찬가지겠만, 저것마저 손을 댄다면 이 조직의 기반을 흔드는 셈이니 이판사판 정말 모든것을 동원해 흉수인 자신을 찾아내려 할 게 분명했다. 이전 플레이때 소탕했다고 생각한 범죄조직이 방화를 저지르고 암살자를 보냈던 일이 떠올랐다. 더군다나 복면으로 얼굴 반쪽은 가렸지만 머리칼의 색이나 체격, 목소리 정도는 알고 있을터. 집요하게 쫓다보면 언젠가 꼬리를 잡힐지도 몰랐다. 이미 일방적으로 적대관계를 만든 마당에 그 이상 원한을 살 필요는 없었다. 이들 입장에서야 조직원이 얻어터지고 돈도 좀 털렸지만, 돈이야 다시 모으면 그만. 어디까지나 철저히 이익만을 노리고 움직이는게 범죄조직의 생리니 자신들이 되려 위험해질 수도 있는 정체불명의 실력자를 목숨 내놓고 쫓진 않을거라 생각했다. 그렇다고 이놈들이 부정한 범죄로 번 돈을 경비대에 털렸다고 신고할수도 없을테고. 나름대로 그런 계산을 한 진석은 아쉬운대로 돈주머니만을 챙겼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우연히 금고 가장 안쪽 부분에 들어있던 무언가가 눈길이 갔다.

"뭐지 이건?"

꺼내들고 보자니 검게 옻칠이 된 한 뼘 길이의 목재 조형물이었다. 원통형 기둥 모양으로 굵기는 손가락 두셋을 합쳐놓은 정도. 그 전면에는 묘하게 사이해 보이는 무늬가 빈틈없이 음각 되어 있었다. 이게 대체 뭘까? 정체 모를 나무 막대를 손에 들고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자니, 갑자기 메시지 창에 [퀘스트 '?????'를 입수하였습니다.] 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엥?"

뭔가하고 퀘스트 창을 열어 내용을 확인해보려 했지만 내용조차 어떠한 설명 하나 없이 그저 물음표 뿐이었다. 손에 쥔 이것의 정체가 뭔지 모르겠지만 금고 안 깊숙히 넣어두고 있던것을 보니 분명 뭔가 중요한 물건이긴 한 모양이다. 범죄조직에 쫓기는 입장이 되긴 싫어 적당히 돈만 훔쳐 달아나려고 했는데 갑자기 의문의 퀘스트를 던져준 정체모를 이 물건. 이게 뭔지도 모르는데 괜히 가지고 갔다가 놈들이 끝까지 추적을 시도하는건 아닐까? 가져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고민하던 진석은 에라 모르겠다 될대로 되겠지 하며 품속에 목재 조형물을 챙겨넣곤 건물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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